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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9일 12시 08분 등록

들어가며...

무작정 『신동엽 전집』을 읽었다. 유명한 「진달래 山川」도 별 다른 감흥없이 읽혔다. 몇 장을 더 읽어 보아도 느낌이 없다. 저자를 모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동엽 시인부터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인 신동엽』을 먼저 읽기로 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교수가 쓰고, 신동엽 시인의 부인은 인병선 선생이 신동엽 시인의 유물을 공개하여 담은 책이다. 어린 동엽의 학교 성적표에서부터 청년 동엽과 소녀 병선이 주고 받은 편지, 신동엽 시인의 초고 원본, 당시의 기사 등의 자료가 컬러로 실려 있어서 신동엽 시인에 대하여 생생하게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자료였다.

책의 첫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기대를 그대로 헤아려주어 고마웠다.
“신동엽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신동엽과 그의 가족의 삶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있다. 또한 그의 삶을 읽을 때는 항상 그의 고민이 늘 미래로 열려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열쇠로 그가 살아온 삶의 문을 열면, 그의 작품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다.”
나의 무지함 때문에 눈이 새로워지지는 않았지만 보다 밝아진 것만은 분명했다. 다시 『신동엽 전집』을 읽는데 느낌이 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신동엽 선생의 삶을 생각하며 가슴떨림을 경험하며 칼럼을 썼다. 유쾌한 과제다~!

(저자 소개는 『시인 신동엽』에 많이 인용했다. “ ” 안의 내용은 이 책에서 인용한 것이어서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 미래 역사를 쓴 시인 신동엽

● 신동엽의 탄생과 학창 시절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동엽은 부여에서 태어남으로 평생 그의 정서적인 조국은 백제가 되었다. 국가로서의 백제가 아니라, 백제가 가진 평화공동체가 그의 정서적인 조국이다.”

“동엽은 학교에서 필요 없는 일에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동엽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그는 ‘세계문학전집’ 같은 문학책을 옆구리에 끼고 기숙사와 교실 사이를 말없이 오갈 뿐이었다. 그는 『노자』, 『장자』 책을 항상 끼고 다녔다고 한다. 이외에 김소월 시집, 엘리엇 시집, 투르게네프 산문집 같은 문학 서적과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의 책 등 다양한 책이 있었다.
조금 커서는 외국 시인들의 시와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집을 많이 읽었다. 신석정 시인의 『슬픈 목가』,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 등 전통적인 서정시집과 모더니즘 계열의 시집을 폭넓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아나키즘을 주장한 크로포트킨의 책은 동엽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나키즘이란 어떤 체제나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개인이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아나키즘에 찬성한 동엽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한 쪽에 쉽게 찬성할 수 없었다.“

신동엽의 단국대학교 성적원부를 보면 청년 시절의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그가 ‘고고학’과 ‘고고학사’를 들은 것에서 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고, 선택과목으로 ‘법률학개론’, ‘경제학’, ‘정치학개론’, ‘헌법’ 등을 수강한 데서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도 읽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문학수업을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은 것 외에는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 4․19의 시인

김수영 시인과 신동엽 시인에 관한 책을 낸 최성수 선생은 신동엽을 ‘4․19의 시인’이라 불렀다.
“신동엽에게 4․19혁명은 희망이고 꿈의 실현이었다. 4월 혁명에서 그는 비로소 민중의 꿈과 염원을 읽었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계시 받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신동엽을 4․19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동엽이 모더니즘적인 시를 썼던 당시의 시인을 비판하고 사회참여적인 시를 쓰려고 애썼던 점과 4․19혁명의 의미를 생각할 때 ‘4․19의 시인’이란 별칭이 어색하지 않다.
신동엽은 “작가나 시인의 능동적 주체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능동적 주체란 “결코 협소한 자기만족적 자아가 아니어야 하며 어디까지나 민족과 인류가 갈망하는, 인간생활의 보다 나은 행복의 지표를 둔 보편적 자아”라고 설명한다. ‘능동적 주체’라는 개념은 그의 대표적 평론 『시인정신론』에서는 ‘전경인全耕人’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현실과 일치된 글을 쓰고 싶어 한 동엽에게 당시 현실을 외면했던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은 비겁해 보였다.

“당시 1950년대의 예술계는 서구의 실존주의나 모더니즘이 유행이었다. 이러한 추세에 신동엽은 동의할 수 없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체험한 동엽은, 비극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모더니스트의 문학을 극도로 비판한다. 동시에 작가의 현실참여적인 창작 자세를 고민한다. 동엽은 전쟁의 충격을 이렇게 진술한다.”

“만약에 발레리라면 남북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금의 조선에 생존하여 그의 절친한 가족의 하나가 어느 편한테 희생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발레리는 그러한 난해의 시를 썼을까.” - 신동엽

이처럼 “한국전쟁은 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신동엽은 “지루한 식민지 시절과 두 번의 전쟁, 그리고 혁명을 겪으면서 그는 역사의 흉측한 내장을 들여다보았다. 시인 신동엽은 세계사의 거센 파도와 곡절 많은 현대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 거듭났다.
그의 시는 조선과 고구려를 넘어 상고시대의 옛날까지 펼쳐내 보인다.“

그의 위대함은 “그가 아주 먼 과거를 ‘그 옛날’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생활 이야기와 함께 극적으로 살려낸다는 점이다. 그의 ‘옛날 이야기’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여는 옛날’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그렇고, 서사시 「금강」이 그랬다.
“어떤 절망의 풍경도 신동엽의 언어가 놓이면, 시대를 극복해보려는 ‘낙관적인 비관주의’로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을 그의 모든 시에서 경험하게 된다.”

● 신동엽과 부인 인병선

신동엽과 인병선은 동엽이 일했던 서점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인병선은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다. 인병선은 그 시절을 “진학에 대한 기쁨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정열도 나에겐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온통 그에게만 심취해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인병선은 신동엽의 작품 해석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신동엽과 인병선의 사랑은 다만 두 젊은이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신동엽의 거의 모든 작품 배경에 깔려 있다.
신동엽의 모든 생활에 인병선에 대한 사랑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엽은 “결코 조국이나 백성이나 박해받는 사람들의 목숨으로부터 배반하여 도피하지는 말자”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기를 기원하고 있다.“

신동엽은 아이들에게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였다. 그의 맏딸 신정섭은 죽기 얼마 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어느 저녁인가 식탁에 둘러 앉은 우리에게, 아버지는 6․25 사변 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한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 주셨다. 어른들이 감쪽같이 사실을 숨겼기 때문에, 또 그때까지도 가까운 이의 죽음이란 실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으므로 아버지의 임종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뜻밖이었다. 하늘이 낮게 드리워진 날이었다. 봄 냄새가 짙어지기 시작한 4월 초이레, 그 날의 일로 하여 그해 일년은 온통 낮은 잿빛 날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동엽은 간암으로 39세의 젊은 나이로 가족과 아내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 신동엽의 시세계

“1950년대 초기는 시인 김수영 홀로 외롭게 시대적 비극을 노래했다고들 평하곤 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수영의 외침에 여러 시인이 화답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시인이 바로 신동엽과 박봉우다.”

시인 김수영은 신동엽의 「아니오」를 예로 들면서 “이 시에는 우리가 오늘날 참여시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강인한 참여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의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의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울리고 있다. 그의 업적은 소위 참여파의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확고하다.”하고 평가했다.

평론가 김주연은 「금강」에 대하여 “최근에 나온 시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관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그려 내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연속적인 현실로 이해하게 한다.”하고 평했다. 최원식은 “이로써 근대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침묵당한 유령들이 지각을 뚫고 융기하였다. 이 서사시의 출현을 계기로 비로소 근대주의의 환상을 거절한 민족문학 민중문학의 흐름이 70년대 이후 도도한 대세를 이루었으니, 우리 문학은 비로소 오랜 금기를 넘어 농민군의 깊은 침묵의 소리에 육박해 갔다.”하고 평했다.

김응교 교수는 신동엽을 실험적인 예술가로 표현했다.
“신동엽은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그는 내용뿐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짧은 시, 긴 서사시, 극시(연극으로 쓰여진 시), 오페라까지 만든 그야말로 ‘실험적인 예술가’였다.”

신동엽과 더불어 전후 최고의 시인이라 일컫는 김수영은 신동엽에게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가 함께 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 미래의 시인

김응교 교수는 『시인 신동엽』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신동엽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예언자적 지성을 펼쳐보인 ‘미래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신동엽의 시는 온통 향그런 흙가슴으로 지어져 있다. 껍데기와 싸워 나가는 정직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신동엽의 노래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 이렇게 다시 살고 있다. 신동엽은 과거의 시인이 아니며, 1960년 대의 시인이 아니다. 그는 미래의 시인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권한다.”

신동엽은 미래의 시인이 되기로 예정이라도 된 듯이 “2003년에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서훈 대상자로 선정되어,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부인 인병선이 대리로 수상했다. 문화훈장은 상훈법 제 17조에 규정된 훈장의 하나로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이로써 신동엽은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껍데기는 가라」에 대한 김수영의 평은 찬란하다. 김수영 시인은 신동엽을 ‘미래의 시인’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의 고대에의 귀의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을 연상시키는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주의 「신라」에의 도피와는 전혀 다른 미래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 『시인 신동엽』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4] 인병선(신동엽 시인의 부인), 발간에 부쳐
“이제 유물을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으니 그를 아주 보낸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보내고 저 또한 가고……. 그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시는 영원히 우리 옆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시를 가리켜 어떤 분은 7,80년대 민족주의에 고착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10] 지루한 식민지 시절과 두 번의 전쟁, 그리고 혁명을 겪으면서 그는 역사의 흉측한 내장을 들여다보았다. 시인 신동엽은 세계사의 거센 파도와 곡절 많은 현대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 거듭났다.
그의 시는 조선과 고구려를 넘어 상고시대의 옛날까지 펼쳐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아주 먼 과거를 ‘그 옛날’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생활 이야기와 함께 극적으로 살려낸다는 점이다. 그의 ‘옛날 이야기’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여는 옛날’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10] 그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신동엽과 그의 가족의 삶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있다. 또한 그의 삶을 읽을 때는 항상 그의 고민이 늘 미래로 열려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열쇠로 그가 살아온 삶의 문을 열면, 그의 작품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다.

[11] 동엽은 부여에서 태어남으로 평생 그의 정서적인 조국은 백제가 되었다. 국가로서의 백제가 아니라, 백제가 가진 평화공동체가 그의 정서적인 조국이다.

[15] 어떤 절망의 풍경도 신동엽의 언어가 놓이면, 시대를 극복해보려는 ‘낙관적인 비관주의’로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을 그의 모든 시에서 경험하게 된다.

[30] 동엽은 학교에서 필요 없는 일에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동엽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그는 ‘세계문학전집’ 같은 문학책을 옆구리에 끼고 기숙사와 교실 사이를 말없이 오갈 뿐이었다. 그는 『노자』, 『장자』 책을 항상 끼고 다녔다고 한다. 이외에 김소월 시집, 엘리엇 시집, 투르게네프 산문집 같은 문학 서적과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의 책 등 다양한 책이 있었다.
조금 커서는 외국 시인들의 시와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집을 많이 읽었다. 신석정 시인의 『슬픈 목가』,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 등 전통적인 서정시집과 모더니즘 계열의 시집을 폭넓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아나키즘을 주장한 크로포트킨의 책은 동엽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나키즘이란 어떤 체제나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개인이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아나키즘에 찬성한 동엽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한 쪽에 쉽게 찬성할 수 없었다.

[37] 동엽은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는 것과 등록금으로 2만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밭 6백 평을 어렵게 팔아 등록금으로 보냈다.

[38] 그의 시세계를 보아도 동엽은 아나키스트이지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이런 이유로 보아 신동엽이 사회주의 사상에 완전히 찬성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42] 당시 1950년대의 예술계는 서구의 실존주의나 모더니즘이 유행이었다. 이러한 추세에 신동엽은 동의할 수 없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체험한 동엽은, 비극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모더니스트의 문학을 극도로 비판한다. 동시에 작가의 현실참여적인 창작 자세를 고민한다. 동엽은 전쟁의 충격을 이렇게 진술한다.
“만약에 발레리라면 남북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금의 조선에 생존하여 그의 절친한 가족의 하나가 어느 편한테 희생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발레리는 그러한 난해의 시를 썼을까.”

[43] (신동엽은) “작가나 시인의 능동적 주체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능동적 주체란 “결코 협소한 자기만족적 자아가 아니어야 하며 어디까지나 민족과 인류가 갈망하는, 인간생활의 보다 나은 행복의 지표를 둔 보편적 자아”라고 설명한다. ‘능동적 주체’라는 개념은 그의 대표적 평론 『시인정신론』에서는 ‘전경인全耕人’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현실과 일치된 글을 쓰고 싶어 한 동엽에게 당시 현실을 외면했던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은 비겁해 보였다.

[50] 한국전쟁은 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51] 신동엽의 단국대학교 성적원부를 보면 그의 관심사를 볼 수 있다. 그가 ‘고고학’과 ‘고고학사’를 들은 것에서 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고, 선택과목으로 ‘법률학개론’, ‘경제학’, ‘정치학개론’, ‘헌법’ 등을 수강한 데서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도 읽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문학수업을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은 것 외에는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57] 그해 봄 인병선은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다. 인병선은 그 시절을 “진학에 대한 기쁨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정열도 나에겐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온통 그에게만 심취해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인병선은 신동엽의 작품 해석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신동엽과 인병선의 사랑은 다만 두 젊은이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신동엽의 거의 모든 작품 배경에 깔려 있다.

[86] 신동엽의 모든 생활에 인병선에 대한 사랑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엽은 “결코 조국이나 백성이나 박해받는 사람들의 목숨으로부터 배반하여 도피하지는 말자”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기를 기원하고 있다.

[98] 아내를 서울로 보낸 동엽은 홀로 병과 싸웠다. 금강에 가서 고기를 잡고, 부소산에 올라 낮잠을 자면서 요양 생활을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동엽은 글쓰기만은 멈추지 않았다.

[107]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3화에서 보듯 이 시는 인간이 만든 문명은 전쟁을 일으키고 파괴적이라는 비판도 담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쓰였던 도끼나 비행기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땅에서 뜨는 것이라는 문명 비판이다. 나아가 시인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111] 박봉우 시인은 부여에서 올라온 신동엽에게 말했다. “자네는 여관에서 잘 인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안압동 초라한 하숙방으로 동엽을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둘은 ‘서로 간의 문학관과 역사관을 털어 놓으면서 한 밤에 형제보다 친한 벗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111] 1950년대 초기는 시인 김수영 홀로 외롭게 시대적 비극을 노래했다고들 평하곤 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수영의 외침에 여러 시인이 화답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시인이 바로 신동엽과 박봉우다.

[118] 마산 부두에서 김주열이라는 열일곱 살 난 고등학생이 눈에 최루탄 파편이 박힌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118] (1960년) 4월 19일에는 마침내 10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이 시청 앞과 서울역 광장에 모여 거리를 행진하며 자유를 외쳤다. 이것이 ‘4․19 혁명’이다.

[118] 1960년 7월, 동엽은 잠시 일하고 있던 교육평론사에서 『학생혁명시집』을 펴낸다. 4․19 혁명 이후 여러 잡지와 책이 혁명을 흥분된 어조로만 노래했으나, 신동엽이 손수 제작한 이 시집은 시다운 형상미와 의식이 높은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어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서적이다.

[122] 「아사녀」 끝 부분, 1963년
“온갖 영광은 햇빛과 함께,
소리치다 쓰러져 간 어린 전사의
아름다운 손등 위에 퍼부어지어라.

[126] 신동엽은아이들에게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였다.

[136] 1964년 신동엽은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서린 아픔과 아름다움을 노트에 기록하고 시로 담아 냈다.

[146] 가장 많이 알려진 신동엽의 이미지는 산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신동엽은 주말마다 산행을 즐겼다.

[146] 시인 김수영은 신동엽의 「아니오」를 예로 들면서 “이 시에는 우리가 오늘날 참여시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강인한 참여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의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의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울리고 있다. 그의 업적은 소위 참여파의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확고하다.”하고 평가한다.

[152] ‘껍데기는 가라’에 대한 김수영의 평
“그의 고대에의 귀의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을 연상시키는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주의 「신라」에의 도피와는 전혀 다른 미래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152] 3연의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는 통일의 방법에 대한 신동엽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죽산 조봉암이 단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해서 사형을 당한 것이 불과 이 시가 발표되기 7, 8년 전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담론을 시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야말로 관념의 덮개를 떨궈낸 직설적 정언이 명료한 가락을 타고 울리는 명작이다.

[154] ‘껍데기는 가라’는 시의 밑바닥에 흐르는 ‘향그러운 흙가슴’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154] 신동엽이 단순한 배타적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56] 동엽은 동학혁명 → 3․1운동 → 4․19혁명을 하나로 연결하여 계보학을 만들어낸다. 또 「금강」 전편을 관통하는 ‘하늘’이란 이미지는 모든 사람이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화공동체를 상징한다.

[158] 신동엽은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옛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가 과거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는 미래를 위한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160] 평론가 김주연은 「금강」에 대하여 “최근에 나온 시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관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그려 내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연속적인 현실로 이해하게 한다.”하고 평했다. 최원식은 “이로써 근대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침묵당한 유령들이 지각을 뚫고 융기하였다. 이 서사시의 출현을 계기로 비로소 근대주의의 환상을 거절한 민족문학 민중문학의 흐름이 70년대 이후 도도한 대세를 이루었으니, 우리 문학은 비로소 오랜 금기를 넘어 농민군의 깊은 침묵의 소리에 육박해 갔다.”하고 평했다.

[175] 신정섭, 맏딸
“어느 저녁인가 식탁에 둘러 앉은 우리에게, 아버지는 6․25 사변 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한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 주셨다. 어른들이 감쪽같이 사실을 숨겼기 때문에, 또 그때까지도 가까운 이의 죽음이란 실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으므로 아버지의 임종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뜻밖이었다. 하늘이 낮게 드리워진 날이었다. 봄 냄새가 짙어지기 시작한 4월 초이레, 그 날의 일로 하여 그해 일년은 온통 낮은 잿빛 날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188] 신동엽은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그는 내용뿐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짧은 시, 긴 서사시, 극시(연극으로 쓰여진 시), 오페라까지 만든 그야말로 ‘실험적인 예술가’였다.

[200] 신동엽 시인은 2003년에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서훈 대상자로 선정되어,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부인 인병선이 대리로 수상했다. 문화훈장은 상훈법 제 17조에 규정된 훈장의 하나로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이로써 신동엽은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203] 신동엽과 더불어 전후 최고의 시인이라 일컫는 김수영은 신동엽에게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가 함께 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그렇게 신동엽을 아끼고 칭찬해 마지 않던 김수영은 신동엽이 죽기 바로 한 해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신동엽은 김수영을 융숭한 조사로 배웅한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민족의 손실, 이 손실은 서양의 어느 일개 대통령 입후보자의 죽음보다 앞서 오천만 배는 더 가슴 아픈 손실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민족 시인의 영광이 그의 무덤 위에 빛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민족의 알맹이들은 다 알고 있다.”

[204]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구사한 언어의 마술사, 서사시 「금강」을 비롯한 그의 시들은 조국의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곧 가난과 외세, 분단 그리고 부패한 권력 따위를 걷어치우고자 하는 큰 마음의 표현이었다.
신동엽의 시는 온통 향그런 흙가슴으로 지어져 있다. 껍데기와 싸워 나가는 정직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신동엽의 노래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 이렇게 다시 살고 있다. 신동엽은 과거의 시인이 아니며, 1960년 대의 시인이 아니다. 그는 미래의 시인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권한다.

[205] 그가 노래한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의 의미는 과거에 헛된 감상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위대한 전언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록이다. 내일을 위해 그의 시를 읽을 때, 그의 정신은 우리 가슴에 향그러운 흙가슴을 펼쳐 놓을 것이다.

[216] 신동엽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예언자적 지성을 펼쳐보인 ‘미래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 『신동엽 전집』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6] <진달래 山川>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뻣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果樹園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지요.

[31] <아니오>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 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 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陵線)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都市(도시)계집 사랑했을 리야.

[42] <山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62] <4月은 갈아엎는 달>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山天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祖國에도
어느 머언 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

[67]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매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는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羅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8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一生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永遠의 하늘
볼 수 없는 사람은,

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96] <江>

나는 나를 죽였다.
비 오는 날 새벽 솜바지 저고리를 입힌 채 나는
나의 학대받는 육신을 江가에로 내몰았다.
솜옷이 궂은비에 배어
가랑이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육신은
비겁하게 항복을 하지 않았다.
물팡개치는 홍수 속으로 물귀신 같은
몸뚱어리를 몰아쳐 넣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거대한 산맥 같은
휩쓸려 그제사 그대로 물넝울처럼 물결에
쓰러져 버리더라 둥둥 떠내려가는 시체 물속에
주먹 같은 빗발이 학살처럼
등허리를 까뭉갠다. 이제 통쾌하게
뉘우침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너무 얌전하게 나는 나를 죽였다.
가느다란 모가지를 심줄만 남은 두 손으로
꽉 졸라맸더니 개구리처럼 삐걱! 소리를 내며
혀를 물어 내놓더라.
江물은 통쾌하게 사람을 죽였다.

[106] <밤은 길지라도 우리 來日은 이길 것이다>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옆에는 네가 네 옆에는
또 다른 가슴들이
가슴 태우며
한 가지 念願으로
行進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앞에서 사랑이 사랑 앞에서 죽음이
아우성 죽이며 億진 나날
넘어갔음을.

우리는 이길 것이다.
구두 밟힌 목덜미
生풀 뜯은 어머니
어둔 날 운 빼앗겼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五百年 漢陽
어리석은 者 떼 아즉
몰려 있음을

우리들 입은 다문다.
이 밤 함께 겪는
가난하고 서러운
안 죽을 젊은이.

눈은 鋪道 위
妙香山 기슭에도
俗離山 東學골
나려 쌓일지라도
열 사람 萬 사람의 주먹팔은
黙黙히
한 가지 念願으로
行進

고을마다 사랑방 찌개그릇 앞
우리들 두 쪽 난 祖國의 運命을 입술 깨물며

오늘은 그들의 巢窟
밤은 길지라도
우리 來日은 이길 것이다.

[143] 錦江(금강) 제7장

旅行(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人生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 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絶大(절대)한 거.

굶주려 본 사람은 알리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해 두해도 아니고
철들면서부터
그 지루한
3년, 50년을
굶주려 본 사람은
알리라,

굶주리고 아들 딸애들의
그, 흰 죽사발 같은
눈동자를,
죄지은 사람처럼
기껏 속으로나 눈물 흘리며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뼈를,
깎아 먹일 수 있다면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 주고
싶은,
그 아픔을
맛 본 사람은 알리라.

이미 끝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이미 죽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 『신동엽 전집』을 읽고 & 내가 저자라면

신동엽 시인과 그의 삶을 읽으며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동엽 시인의 전집과 생애를 읽고 나니 이미 형성된 나의 생각에 맞추어 독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온통 ‘지식인’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동엽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다. 혹 신동엽의 모든 것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엉뚱한 부분을 파고든 것은 아니리라.

내가 생각한 세 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한 명의 지식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었다.
신동엽이라는 시인의 삶을 쫓으면서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시는 내가 좋아할 요소를 갖추었다. 신동엽의 시는 현실 참여적이고(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모더니즘에 빠진 시를 경멸했다) 미래를 노래한다. 나는 신동엽이 일제 압제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고, 4․19혁명을 바라보며 형성되는 사상의 형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읽었던 책들과 그가 써놓은 시들의 연관성을 살펴보기도 했다. 대 서사시 「금강」은 끼니를 굶어가며 집필에 매달린 그의 대작이다. 이 작품을 위해 동학혁명을 연구하고, 집필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참혹한 현실을 비관하지 않은 시각으로 직시하고 역사를 통해 미래 비전을 발견하려 한 신동엽의 삶,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사상 등이 이미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 한 웅큼을 더해 주었다.

둘째, 지식인의 역할을 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21세기의 시민적 지식인은 직업이 아니라 마인드의 문제다. 지식인의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이 타고난 재능과 기질적인 특성을 살려 내는 것이다. 사회운동가 뿐만 아니라, 작가도 지식인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제는 시민도 지식인이 될 수 있다. 강수택 교수는 21세기의 새로운 지식인상으로 ‘시민적 지식인’을 내세웠다. 시민적 지식인이란 자신의 생활 세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지성으로써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계몽된 시민이라면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셋째, 역사를 읽고 미래를 꿈꾸는 방식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신동엽은 「진달래 산천」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강조하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 비극을 고구려 시절의 전설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이 시에는 한국전쟁 때 바위 위에 버려진 어느 병사의 주검이 등장한다. 그 바위는 후고구려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었다는 곳이다. 신동엽은 후고구려 때의 전쟁과 한국전쟁 모두가 동족 간의 비극임을 아프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가 있는가 하면, 「껍데기는 가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의 2연인데 이에 대하여 김수영은 “그의 고대에의 귀의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을 연상시키는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주의 「신라」에의 도피와는 전혀 다른 미래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고 평했다.

그의 시 하나하나를 모두 해석하지 못하여 아쉽다. 책장에는 시인들에 대한 자료가 부실했고, 머릿속의 지식은 신동엽의 시를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김수영 시인과 신동엽은 내가 살짝이나마 시를 접해 본다면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시인이다.
IP *.135.20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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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10.29 12:13:50 *.135.205.63
헉... 본 과제는 11시 30분 경에 올렸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이미지를 첨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파일로 올렸더니 과제 올린 시각이 12시를 넘긴 것으로 표시되었네요. 12시 이전에 올렸음을 보신 분들 계시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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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10.29 14:10:14 *.227.22.57
희석아~ 그래. 내가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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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0.30 08:20:04 *.244.218.10
긴장하긴...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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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0.30 13:26:11 *.75.15.205
호정아, 희석이 겁 좀 주자. 안돼!!!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깍아줄테니 밥 사! (우리 넷이서 밥 묵자. 특별 요리로. 쉿, 조용...)ㅋㄷ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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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10.31 09:24:46 *.135.205.143
누이야~ 겁 주긴 너무 늦었잖아요. 이미 안심하고 긴장 다 풀었으니까요. ^^
근데 우리 넷은 누구래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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