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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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루스 베네딕트 저, 김윤석 오윤석 역
1. 저자에 대하여
개인적 약력


1887년 6월 5일에 뉴욕시티에서 출생하였으며, 그녀가 두 살이 되던해 아버지가 고열로 세상을 등지셨다. 그 결과 그녀는 삶과 죽음의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자각을 갖게 되었으며 그가 아픈동안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외가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돌보는 동안 거기에 7년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교사로서 일 할 수 있는 시골 주변으로 이사했다.
루스와 그녀의 동생인 Margery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교인 Vassar College를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1905년부터 1909년까지 Vassar College에다닌 4년동안 루스는 그녀가 쓴 에세이로 그녀에게 그녀가 목적의 가치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상금을 받게되었다. 그녀는 해외를 여행했고 그녀는 자신이 살면서 무슨일을 하기 원하는지 알지못한체 집으로 돌와왔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후에 어학교사․시인으로 지내다가 몇 년후에 그녀는 Cornell Medical School에서 생화학교수로 일하고 있는 스탠리 베네딕트(Stanley Benedict)와 결혼 하였다.
루스는 1919년 가을에 다시 학교에 입학하면서 인류학에 좀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192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거기서 Elsie Clews Parsons와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함께 인류학자가 되었다. 1930년 컬럼비아대학 조교수, 1948년 인류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명한 비평파 학자였던 Franz Boas의 밑에서 공부하였고 결국 그의 보조자가 되었으며 Margaret Mead를 가르쳤다. 루스와 마가렛은 좋은 친구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고 신뢰하였다.
루스는 그녀의 연구의 중점을 세계의 각기 다른 문화들에 두었고 그것은 후에 그녀의 저서의 기반이 되었다. 그녀의 학문적 입장은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으로서 O. 슈펭글러나 W. 딜타이의 문화유형학과 게슈탈트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문화양식론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입장은 문화와 퍼스낼리티 연구나 국민성 연구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그녀는 세계의 문화들 간의 차이점을 썼고 문화와 행동에 관계된 다른 패턴들에대해 말하고 있다.
루스는 1923년부터 1948년까지 콜럼비아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녀의 학생들은 그녀가 남의 말에 귀 귀울이지 않는것에 대해 반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논문이나 그녀의 능력에 어떠한 효과도 가지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루스는 요약하고 사실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었고 마침내 그녀는 인류학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녀의 재능은 아마도 그녀의 전생애를 통해 신문이나 잡지에서 출판된 회고들의 이유일 것이다.
1943년 미국 정보 전시국 해외정보부에 부임하게 된 베네딕트는 1944년 미 국무부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아 1946년에 ‘국화와 칼’을 출간했다. 단 한 차례의 일본 방문 없이 이루어진 이 연구는 학문적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엄밀한 검토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루스는 그녀의 생애에 네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1934년에 ‘Patterns of Culture’를 1935년에는 ‘Zuni Mythology’, 1940년에는 ‘Race: Science and Politics’, 1946년에는 ‘The Chrusanthemum and the Sword’를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초기인류학의 매우 중요한 획을 그었다. 그녀는 그녀시대의 첫 여성 인류학자들중 하나였는데 그녀의 책들은 20세기 인문학의 참조적인 역할로 공급되었다. 그녀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나머지나라들에게 인류학의 형태를 잡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1948년에 자신의 고향인 뉴욕에서 죽었다.
국화와 칼

이 책은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일본에 대한 단순한 기행이나 견문기가 아니다.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해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Pattern)을 탐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화는 평화를 상징한다. 칼은 물론 전쟁이다. 이 책은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즉,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극단적 형태의 일본 문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전쟁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 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눠 문화인류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서구인들이 볼 때 일본은 불가사의 한 나라였다. 서구인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일본이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때이다. 이제 서구, 특히 미국에게 일본은 호기심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철저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중이던 1944년 여름, 사이판 섬에 상륙한 미군은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이 일본인의 사고와 행동양식에 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들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많은 일본인데 당시 전쟁 당사자인 미국으로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사상, 감정 그리고 그것의 형성 틀인 문화를 체계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학술적 연구의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가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즉, 밀리고 있는 일본군이 앞으로 어떻게 저항할 것이며, 항복을 하게 될 때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군이 통치할 때에는 어떤 형태가 좋을 것인가 하는 것 등등 일본인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예측하는 일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이에 대한 연구를 맡게 된 것이 루스 베네딕트 여사였다. 그녀는 미국 인류학계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때까지는 일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어도 모르고 일본에 간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최고의 학자답게 온갖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일본인의 가치관과 감정의 특질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국화와 칼’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국화와 칼’은 그 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고 불명확했던 일본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구조적, 원리적 측면에서 명확히 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오해나 편견이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내용은 아직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객관적이고 구조적이며, 사회과학적인 일본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들을 외국어로 완전하게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 뜻에서인지 이책을 우리말로 옮긴 옮긴이들은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를 일본어 발음으로 적고 있다. 즉 ‘은혜’를 ‘온’이라 하고, ‘의무’를 ‘기무’라 하며, ‘의리’를 ‘기리’라 하고, ‘효’를 ‘고’, ‘충’을 ‘주’라 표기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현대적인 일본연구의 고전으로서 아직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10) 문호가 개방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씌어진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적이 없을 정도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1) 이러한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낱줄과 씨줄이 된다. 그러한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이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동시에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20) 인류학자는 평범한 사실을 연구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21) 어떤 국민 생활의 사소한 인간적 일상생활에 주의해야만, 비로소 어떤 미개 부족에도 또 어떤 문명국에도 인간의 행동은 일상생활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인류학자의 전체에 대한 중요한 의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행위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어떤 인간의 느낌과 사고방식은 그의 경험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일본인의 행동에서 무엇인가 당혹감을 느낄수록 그것은 일본인의 생활 속에 그러한 이상함을 생기게 하는 당연한 조건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만일 그러한 조건의 연구가 나를 일상적 교섭의 사소한 일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학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23) 20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식의 결핍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난 경우라도 우리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25)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도 미국은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다울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30) 덕과 악덕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고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32)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4) 일본은 정신력으로 반드시 물질력을 이긴다고 부르짖었다.
(39)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그들의 정신력부족 때문에 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미국인의 정신력에 졌다고 자인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41) 미국인은 생활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51) 일본군들은 죽음 그 자체가 정신의 승리이며, 우리 미국인같이 환자를 충분히 간호하는 것은 전투기의 구명 도구처럼 영웅적 행위를 해치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59)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64) 일본인 또한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그들의 신념을 표명한 것은 스스로의 사회적 체험에 의해서 그들 속에 깊이 뿌리내린 생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72) 일본에는 세대와 성별과 연령에서 오는 특권이 이처럼 크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멋대로 하는 독재자로서가 아니라 중대한 책무를 위탁받은 인간으로서 행동한다.
(80) 상인 계급은 늘 봉건 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가 쇠퇴한다.
(89) 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 시대의 일본 계층 제도는 근대 일본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봉건 제도가 법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은 요컨대 겨우 75년전에 불과하다. 그 뿌리 깊은 국민적 습성이 겨우 인간의 일생에 불과한 75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소멸될 수 없는 일이다.
(93) 이 두 계급이 제휴한 것은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두 계급 모두에게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서구에도 그러한 제휴가 이루어진 몇몇 특수한 사례가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대체로 계급이 철저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프랑스 같은데서는 계급투쟁이 귀족의 재산을 몰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일본에서는 계급간의 사이가 밀접하였다.
(101)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
(103) 윗사람에 대한 전통적 의무, 특히 천황에 대한 전통적 의무는 일본의 큰 장점이다. 일본은 이 ‘웃어른’의 지도하에서 견실히 나아갈 수가 있다. 또 이것은 개인주의적인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다고 스펜서는 말하였다.
(110) 일본인의 생활 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어른’에게는 서구 문화보다도 더 큰 존경-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을 주지만, 웃어른들도 그 지위를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17) 일본이 이룩한 것은 실수와 헛된 소모를 최소한도로 줄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일본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과 그 후 여러 단계의 일반적 순서’를 수정할 수가 있었다.
(124) 남에게 빚이 있는 인간은 극도로 화를 잘 내는 법인데, 일본인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채무가 일본인에게 갖가지 큰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137) 아무리 착잡한 감정을 가졌더라도 온진恩人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한, 즉 그 사람이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날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지워진 부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
(142)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144) 사람의 채무(온)은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인 것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답 행위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147) 일본인은 양에서나 기한에서나 무제한적인 온에 대한 보답과, 받은 분량과 똑같이 갚고 특정한 기한에 끝나는 보답을, 각기 다른 규익을 가진 별개의 범주로 나누고 있다.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義務’라고 불리는데, 이에 관해서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152) 이처럼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이 효행 속에 포함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채무에 대해 자식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보은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개인의 정당한 행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간섭의 사례라고 여겨지고 있다.
(159) 일본은 유사 이래 서른 여섯이나 되는 왕조가 교체된 중국과는 달랐다.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쳐 왔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 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이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 왔던 나라였다.
(162) 미국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모두 난점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난점은 법규가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국민의 승인을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의 난점은 무엇보다 어떤 사람의 온 생애를 뒤덮을 만한 큰 부채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165)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를 갚아야 하는 것처럼 기리를 갚아야 한다. 그러나 기리는 기무와는 종류가 다른 일련의 의무이다. 영어에서는 이것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학자가 세계 문화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별난 도덕적 의무의 범주에서도 가장 드문 것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특히 일본적인 것이다.
(166) 기리는 일본이 중국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로서 기리를 고려에 넣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 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67)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고 느껴지는 데 비하여,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73) 충절은 주군에 대한 기리였고, 모욕에 대한 복수는 자기 명예에 대한 기리였다. 일본에서 이 두 가지는 동일한 방패의 양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에 대한 옛 이야기들은 오늘날 일본인의 재미있는 백일몽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에 와서는 ‘기리를 갚는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정당한 주군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에 대한 온갖 종류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77) 일본인은 기리에 관하여 서구의 채무 변제 관례와 비슷한 또 한 가지 관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만일 갚는 일이 기한보다 늦어지면 마치 이자가 느는 것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180)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훌륭한 사람은 모욕에 대해서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도 그것에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이다. 그들은 서구인처럼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한쪽은 침해 행위, 다른 한쪽은 비침해 행위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어떤 행위가 침해로 인정되는 것은 오직 그것이 ‘기리의 세계’밖에서 행해지는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다. 사람이 기리를 지키고 오명을 씻는 한, 결코 침해의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빚을 갚아 셈을 치르는 것일 뿐이다. 일본인은 모욕이나 비방이나 패배가 보복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말한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을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이 아니다.
(185) “진정한 존엄성이란 항상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자기에게 알맞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188) 본심은 그가 알고 있는 체하기보다는 정직하게 알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189) 일본의 어린이는 경쟁을 장난처럼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청년이나 성인인 경우에는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뚝 떨어진다.
(191) 직접적 경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려는 노력은 일본인의 생활 모든 면에서 나타난다. 미국인은 친구들과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반면, 온에 입각하는 윤리에서는 경쟁을 허용할 여지가 아주 적다. 각 계급이 준수해야 하는 규칙을 세밀하게 규정한 일본의 계층제도 전체가 직접적 경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다. 가족 제도 또한 그것을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있다.
(199)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당사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여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202)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204)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구실을 한다.
(210)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쓰여지는 수단은 그 때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일 뿐이다. 사태가 변하면 일본인은 태도의 변경을 서구인처럼 도덕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214) 이와 같은 상황적인 현실주의는 일본인의 이름에 대한 기리의 밝은 면이다. 달과 같이 기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인 배척 법안을 만들게 하고, 해군 군축 조약을 크나큰 국가적 치욕으로 느끼게 하고, 마침내는 그처럼 불행한 전쟁 계획으로 내몰게 한 것은 그 어두운 면이었다. 1945년에 항복의 여러 결과를 호의를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은 그 밝은 면이다. 일본은 변함없이 일본 특유의 방법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215) 기리는 모든 계급에 공통된 덕이었다. 일본의 다른 모든 위무나 규율과 마찬가지로 기리는 신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무거워지기는 하지만,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요구된다.
(223)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 ‘단련’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아는 특히 뛰어난 감별법이다. 따뜻함을 멀리하고 수면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식 또한 고난을 참고, 사무라이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으면서도) 이쑤시개를 입에 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기회이다.
(231)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232) 온화한 영혼과 거친 영혼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240) 사람은 ‘고를 위해’ 행동할 때와, ‘단순한 기리를 위해’, 혹은 ‘진의 세계에서’ 행동할 때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 서구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는데 – 행동한다. 또한 각각의 세계에서 법도는 그 ‘세계’ 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현저히 다른 행동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으로서 요구되도록 정해져 있다.
(242) 서구인은 일본인이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도 하나의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와 같은 극단적인 가능성은 우리의 경험에는 없다. 그런데 일본인의 생활에서는 모순 - 우리에게는 모순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 이 그들의 인생관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치 우리의 획일성이 우리의 인생관에 뿌리박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55) 서구인은 우선 대개는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을 획득하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에 따르면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성격의 강함은 반항함으로써가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266)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대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 및 일본 정신에 의하여 지도상에 그려진 길을 따르는 열의다.
(267) 마코토는 항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271) 일본어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강하게 말하는 방법은 “자중에 자중을 거듭한다”는 표현으로, 그것은 무한히 조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경솔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도 필요 이하의 노력도 소비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272) 여러 가지 문화의 인류학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설명하고 양심의 계발을 의지로 삼는 사회는 ‘죄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274)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치욕(하지)이다.
(281) 그들의 자기 훈련 개념은 능력을 주는 것과 그 이상의 것을 주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 이상의 것’을 나는 숙달이라 부르기로 한다.
(285)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슈요)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286)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88)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의지와 행동 사이에 말하자면 일종의 절연벽이 가로막는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나’, ‘방해하는 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에 의해 이 장벽이 제거되었을 때에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있고 전류는 자유로이 흐른다.
(300) 선의 고안은 12세기 혹은 13세기 이전의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선종과 함께 이 수단들을 채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안은 중국 대륙에서는 없어졌지만 일본에서는 숙달 수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선의 입문서에서는 고안을 매우 중요시하여 다루고 있다. “고안은 인생의 딜레마를 포장하고 있다.”고안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마치 뜨거운 쇳덩어리를 삼키려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302) 고안은 ‘문을 두드리는 벽돌’이라고 불리고 있다. 문은 눈앞에 있는 수단만으로 과연 충분할까하고 지레 걱정을 하고, 자기의 행동을 혹은 칭찬하고 혹은 비난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감시의 눈을 번쩍이고 있다고 망상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인간성의 주위에 둘러쳐진 벽에 붙어 있다. 이 벽은 모든 일본인이 대단히 절실하게 느끼는 하지(치육)의 벽이다. 벽돌로 문을 두들겨 부수고 문이 열리자 마자 사람은 자유의 천지로 해방되어 벽돌을 내던져 버린다. 이제 이 이상 고안을 푸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수행은 완료되고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는 해결된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인 기세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간다. 수행을 쌓기 위해 그들은 철우를 무는 모기가 되었다. 그 결과 드디어 그들은 막다른 골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기무와 기리의 사이, 기리와 인정의 사이, 정의와 기리의 사이에도 역시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한 갈래의 길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무가의 경지에 달한다. 그들의 숙달 훈련은 훌륭하게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303) 반드시 모순 상극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행위자(로서의 나)는 방관자로서의 나의 구속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306) 죽은 자는 이제 온恩을 갚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307) 서구인과 동양인의 심리적 차이를 실로 명료하게 엿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인이 양심을 갖지 않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행에 당연히 수반되는 죄의식을 이미 느끼지 않게 된 인간을 말하는 것인데 비하여, 일본이 동일한 표현(무심, 무념 무상 등)을 사용할 때에는 이미 굳어지지 않고 방해받지 않게 된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악인의 뜻이고, 일본에서는 선인, 즉 수행을 쌓은 인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312) 뿌리 깊은 연속성의 의식 때문에 완전히 성인이 된 자식이 아버지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미국에 비해 훨씬 오래 계속되어도 서구 여러 나라에서와 같이 부끄러운 일, 면목없는 일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318)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꾸짖을 때 쓰는 ‘위험해’라는 말과 ‘안돼’라는 말 속에는 이와 같은 감정이 들어 있다. 세 번째로 늘 쓰여지는 훈계의 말은 ‘더럽다’는 말이다. 일본의 집은 정연하게 정돈되고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어린아이는 그것을 존중하도로 배운다.
(330) “아이들은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러나 점점 자람에 따라, 그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말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누구에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또 자기 자랑도 하지 않게 된다.”
(342) 할머니는 조용히 차분하게, 모든 사람이 할머니의 생각대로 행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무라거나 반박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솜털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강인한 기대가 항상 그녀의 가족을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352) 미국인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자유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생활 체험이 다른 일본인은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고 여겨 왔다. 그들은 자제에 의하여 자아를 한층 가치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그들 도덕률의 중요한 신조의 하나로 여겼다.
(356) 스스로를 존중하는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커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일대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357) 우리는 순진하게, 또한 천진난만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일본인을 미치도록 기쁘게 하는 것인가를 상기해야 한다.
(360)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할을 한다.
(361)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372) 일본인은 어떤 일정한 행동 방침을 취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하였다고 판단한다. 그의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나면 실패한 주장을 버린다. 언제까지나 집요하게 실패로 끝난 주장을 고수하는 성질은 아니다. 일본인은 “배꼽을 깨물어도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다.
(384)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서점가에는 일본은 있다 없다 식의 서적이 범람하고, 극장가에는 일본의 영화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범람속에 이렇다할 만한 서적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미 수십년전에 일본땅을 밟지도 않고 가장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일본을 말한 "국화와 칼"이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1,2년 살고 난뒤 써낸 기행식-거기에 곁들여 이색적인 사진 몇장 곁들인-일본문화 소개서가 아니다. 일본문화의 틀이라는 부제가 아깝지 않게 총13개장을 나눠 의무, 천황, 복수, 보은등 일본인의 본질적인 의식구조와 역사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분석과 비평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는 일본문화에 대한 감상이나 짧은 주관적 옹호론, 비판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단지 조용히 일본이라는 대상을 직시하고 분석해낼 뿐이다.
이 책을 계속해서 흐르는 질문은 ‘일본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가?’ 이다. 전 세계를 서구를 중심으로만 생각하던 서구세력, 특히 미국인들에게 일본인들의 행동은 의문투성이였다. 서구인의 사고체계로는 그들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할 수 있었는가? 물질적으로나 국력으로나 미국 국민은 물론 고위 정책 결정자들에게 조차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더구나 전쟁 중에 특히 전투 중에 보인 그들의 태도는 정말로 더욱 어리석게만 보였다.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들의 목숨을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항복하기보다는 할복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가미카제 같은 자살공격을 서슴없이 해 대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해답을 원했다. 바로 그 해답을 구하는 노력의 가장 큰 결실이 바로 이 책인 것이며, 이 책은 그 당시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일본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일본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적국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의 유지
루스 베네딕트가 이 글을 쓸 당시가 미국과 일본간의 전쟁중이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일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여 서술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은 돌아보면 대단한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발간된 일본에 대한 다른 책들은 일본을 무작정 비판하거나 혹은 무조건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기 일쑤이다. 대중매체는 어떠한가. 일몬인들의 절약정신, 검소함 그리고 그들이 기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일본인들을 한없이 칭찬을 하다가도 일본과 우리나라와 관련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거론되기만 하면 일본인들은 가장 사악한 인간들로 취급하곤 한다. 그들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나, 편협한 사고로 ‘일본인들의 민족 본성이 원래 전쟁을 좋아하고, 잔인한 것이다’는 식으로 억지스럽게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세한 현상에 대한 설명, 원인 설명은 부족해..
‘온恩’과 ‘기무’, ‘기리’에서부터 사회체계, 교육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보는 내내 흥미롭다. 허나 피상적 현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넘어 그 현상을 유발한 원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에 대한 답으로 베네딕트는 주로 인터뷰 기사나,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것도 근본적인 설명은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일본을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었으리라.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 일본편’에는 자세하진 않지만 이런 근본 원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예컨대 섬나라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싸움이 일어날 경우 멸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든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和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민족이 되었고, 그리하여 恩에 대한 철저한 사고가 생겼다는 것 말이다.
한국에 비교한 일본, 일본에 비교한 한국
장파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에서처럼 둘 간을 비교하여 한 쪽을 부각시키고 있다. 허나 아쉬운 것은 저자가 미국인인 탓에 미국과의 차이로서 일본이 대두되었을 뿐,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간의 차이 관점에서의 일본 문화의 특징을 조망하기는 어렵다.
책을 통해 일본에 관해 알게되면서 한국 사회와 비교되는 것을 몇가지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일본인들의 ‘이름에 대한 기리’였다. 요즈음의 한국인들은 무엇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경제의 논리가 우선이다. 물론 우리의 문화도 몇십년 전까지는 명예가 돈만큼이나 중요한 우선 요소였다는 것을 안다. 또한 지금 대부분의 일본인들 역시 이 책에서처럼 ‘이름에 대한 기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여러 매체를 통하여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름에 대한 기리’를 지키기 위해 할복하는 일본인의 모습과, 미함대에 ‘일본’이라는 이름의 기리를 위해 투신했던 가미가제 특공대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한국인들과 비교되는 일본인의 모습은 어린이에 대한 교육 방식이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응석받이로만 키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히 한 가정에서 자식을 하나 둘만 기르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물론 한국도 40˜5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부모님과 선생님은 항상 엄격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쳤다. 하지만 일본에서처럼 아이들을 놀려대면서 까지 성장을 재촉하지는 않았었다. 이는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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