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山 신종윤
- 조회 수 261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8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서,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도 만물을 기른다.
물은 모든 이가 꺼리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사물의 본성에 따라 살아라.
거처를 정할 때는 땅을 가까이하고,
마음을 헤아릴 때는 가슴 깊숙이 들어가고,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하고 친절히 하라.
말한 바를 지키고,
공평하게 다스리고,
옳은 순간을 고름에 있어 때를 맞춰라.
본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사물의 이치에 맞서지 않는다.
언제나 행할 바의 진실을 알고
현재의 순간에 조화롭게 따른다.
흐르는 삶(Living in the Flow)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도와 물은 같은 의미이다. 여러분이 물이고 물이 곧 여러분이다. 어머니의 몸 속에서 보낸 여러분 인생의 첫 아홉 달을 생각해보라; 그 아홉 달 동안 여러분은 양수 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았다. 이 (flowing into you… flowing as you) 양수야 말로 진정으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여러분 몸의 75퍼센트는 물로 이루어져있으며(뇌의 경우는 85퍼센트) 그 나머지 부분도 근육의 형태를 가진 물이다.
우리가 당연시 하는 이 액체 에너지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물을 움켜쥐려고 하면 어느새 교묘히 빠져나간다. 물 안에 가만히 손을 담그면 쉽사리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물은 고이면 침체되고, 흐르면 맑아진다. 물은 높은 곳을 찾지 않고, 가장 낮은 곳을 찾아 머문다. 물은 강으로 호수로 흐르고, 바다로 향하는 줄기에 합류한다. 그리고는 다시 비로 내리기 위해 하늘로 오른다. 물은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사사로움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물은 동물과 식물을 돌보려는 생각도 없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려는 계획도 없다. 우리의 갈증을 달래주거나 우리로 하여금 수영하고, 배를 타고, 스키를 타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해주려는 마음도 없다. 이것들은 그저 물이 해야 할 바를 행하고 생긴 그대로 존재하는 데서 비롯된 이로움일 뿐이다.
도는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물과 여러분 사이의 평행선을 분명히 인식하라고 요구한다. 여러분이 바로 물이므로 물처럼 살아라. 여러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지탱하는 물과 같이 마음 편하게(만족하며) 살아라. 만물의 성질에 따라 평온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여러분은 온화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하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영원한 흐름(도)을 믿고, 여러분 깊숙한 곳의 기질에 진실해지며,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한 모든 이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교훈은 생명을 지탱하는 물이 어떻게 행동하는 가를 지켜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 물은 꾸밈없이 수수하게 흐르고, 물이 주는 이로움은 물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현재와 조화를 이루며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데서 생긴다.
노자는 자신이 쓴 도덕경의 8장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지도 모른다.
물처럼 흐를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소통할 수 있다. 지식은 교환되고 학문은 모든 이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여러분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특히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처럼 존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잘) 받아들여라. "모든 이가 꺼리는 낮은 곳"으로 가서 마음을 열어라.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도를 찾아라; 수용, 온화함, 그리고 친절함이 여러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노력을 기울이자. 안달하지 않음으로 여러분은 존중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조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도의 자연스러운 질서와 조화를 이룬 평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물처럼 되어라. 물은 그저 흐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이루려 노력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수영, 낚시, 서핑, 마시기, 웨이딩(wading), 스프린클링(sprinkling), 떠다니기(floating)) 끝도 없는 이로움을 창조해낸다.
생각이 자유롭게 떠다니도록 하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투는 삶 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은 잊어버려라;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구성하는 물(material compound)처럼 살아라.(allow yourself to be like ~) 『물 속에 감춰진 메시지(The Hidden Message in Water)』에서 "마사루 에모토는 우리가 곧 물이고, 물은 자유로워지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물을 존중하고 사랑함으로써 말 그대로 물의 결정화 과정(crystallization process)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면서 물(this compound)이 반응하는 방식을 꼼꼼히 탐험했다. 사랑, 감사 그리고 아름다움이라고 새겨진 그릇에 담으면 물은 아름답게 빛나는 수정(crystal)이 된다. 그러나 그릇에 새겨진 것이 미움, 비난, 악함이라면 수정은 산산이 깨지고, 뒤틀리고, 혼란스럽게 보인다.
에모토의 작품에 함축된 의미는 놀랍다. 의식은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물이므로(우리 몸의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물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우리 의도에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그리고 그 너머)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의 창조자로써 영원한 도는 "나는 목마른 자에게 퍼붓는 생명의 물이다(“Water of life am I, poured forth for thirsty men.”)
"라고 할 것이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조용히 물 한 잔을 마셔보자.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강물이 동물에게, 비가 식물에게 주는 것과 같이 삶을 번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남을 이롭게 할 것을 다짐하라. 자연스럽게 흐르며 여러분을 이롭게 하는 물이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라. 이 삶을 지탱하고,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라.
9th Verse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
칼을 너무 날카롭고 벼리면
그 날이 쉽게 무뎌진다.
금과 옥으로 집을 가득 채우면
이를 지킬 수가 없다.
재산과 명예로 교만해지면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
일을 다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겸허한 삶(Living Humility)
영원한 도는 계속적인 창조의 상태에 있으며 정확히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 알고 있다. 우리는 내면 깊이 이 무조건적인 공급의 구성 원리(organizing principle of unconditional supply)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가 얼마나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이 창조적인 근원은 도덕경의 9장에 나타난 겸손의 원리 속에서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도는 모든 것을 보는 이가 놀랄만한 양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온화한 겸손함은 나무, 꽃, 벌, 하마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를 알고 있다. 도는 넘치는 것을 피한다. 도는 창조를 위한 그 무한한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으며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고 있다. 이번 장은 우리에게 도의 이러한 특성에 마음을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This verse invites us to be in spiritual rapport with this characteristic of the Tao.)
넘치는 것이 결국 모자란 것이라는 깨닫게 되면 소유, 쾌락, 교만 그리고 갖가지 행위들로 가득 찬 삶은 도가 아니라 자아를 따르는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Cramming life with possessions, pleasures, pride, and activities when we’ve obviously reached a point where more is less indicates being in harmony with ego, not the Tao!) 겸허한 삶은 언제 멈추고, 놓아 보내고 그리고 우리 노력의 과실을 즐겨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이번 장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산, 더 강한 권력 그리고 더 많은 권한과 물질을 쫓는 것이 이미 잘 갈아놓은 칼을 또 다시 숫돌에 가는 것만큼이나(이 비유는 우리 속담 중에 더 어울리는 걸로 찾아볼 것) 어리석다는 것을 유추적으로 설명한다. 계속해서 칼을 가는 것은 이미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노자는 많은 재산을 모아 축적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재산을 지키는데 소중한 삶을 낭비하게 만들고 또한 항상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노자는 겸허한 삶을 실천하는 정도에서 만족하라고 이른다. 부와 명예를 갖고 싶다면 최소한 우리는 언제 그것들을 추구하는 단조롭고 피곤한 길에서 물러나 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항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중독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인 세상과는 반대되는 하늘의 길이다.
광고라는 것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우리를 유혹함으로써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아마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경제가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한 성장이 마치 암처럼 결국 그 숙주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 우리는 과잉생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교통정체를 목격하게 된다. 이제는 런던(그냥 서울이라고 해도 될 듯)의 한 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가는데 자동차 발명 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또한 매번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갈 때마다 동일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선택 과부하"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진통제 하나만 보더라도 요통, 생리통, 두통, 그리고 관절통을 위한 것이 다 다르고, 아침에 먹는 것과 저녁에 먹는 것이 또 다르다. 여기에 더해 캡슐에 들은 것, 액체로 된 것 그리고 가루로 된 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화장지, 음료수 혹은 그 밖에 무엇을 사더라도 똑같이 벌어진다.
나는 노자가 다음과 같은 현대적인 조언을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을 간직하라.
여러분은 비록 누구나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중독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다짐을 간직하라. 노자의 조언을 달리 바꾸어 말하자면, 할 일을 다하면 한 걸음 물러서라. 겉치레와 무절제한 소비 대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라. 서구사회, 그 중에서도 미국의 비만 문제는 바로 이 도덕경 9장의 단순한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먹어라. 그러나 배가 부르다면 멈춰라. 이미 부른 배를 계속해서 음식으로 채우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의 덫에 걸린 것이다. 성공을 의미하는 인위적인 상징으로 여러분 스스로를 과도하게 치장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보다는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하는 도의 지혜를 떠올려보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은 그냥 충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도의 완전함과 일치하는 것이다.
자아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분이 하는 활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자아는 여러분이 한 행위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보상 받기를 원한다. 노력한 것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을 축적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매 순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날려버릴 수 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여러분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말고 바로 그 일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이 물질만능의 세상에 여러분을 태어나게 한 무한한 지혜인 도를 믿어라. (어쨌든) 도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날 정확한 시기를 알고 있었다. 도는 "아홉 달의 임신으로 이렇게 예쁜 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 기간을 5년으로 늘리겠다. 이제 더 완벽한 아이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 도는 아홉 달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아홉 달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의 시간은 필요 없다.)
다음 번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유혹이 여러분을 찾아온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도를 생각하라. 이 창조의 원리는 할 일을 다하면 아무튼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노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왜 굳이 하늘의 길을 거스르는 일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다음 번 식사 때, 먹는 양을 조절해보자. 우선 음식을 조금 먹은 후에 아직도 배가 고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만약 배가 고프지 않다면 거기서 멈춰라. 그리고 잠시 기다려보자. 만약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식사를 거기서 끝내라. 이렇게 한 번 해봄으로써 여러분은 이 도덕경 9장의 마지막 문장을 실천해보게 될 것이다. "일을 다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IP *.109.104.64
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서,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도 만물을 기른다.
물은 모든 이가 꺼리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사물의 본성에 따라 살아라.
거처를 정할 때는 땅을 가까이하고,
마음을 헤아릴 때는 가슴 깊숙이 들어가고,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하고 친절히 하라.
말한 바를 지키고,
공평하게 다스리고,
옳은 순간을 고름에 있어 때를 맞춰라.
본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사물의 이치에 맞서지 않는다.
언제나 행할 바의 진실을 알고
현재의 순간에 조화롭게 따른다.
흐르는 삶(Living in the Flow)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도와 물은 같은 의미이다. 여러분이 물이고 물이 곧 여러분이다. 어머니의 몸 속에서 보낸 여러분 인생의 첫 아홉 달을 생각해보라; 그 아홉 달 동안 여러분은 양수 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았다. 이 (flowing into you… flowing as you) 양수야 말로 진정으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여러분 몸의 75퍼센트는 물로 이루어져있으며(뇌의 경우는 85퍼센트) 그 나머지 부분도 근육의 형태를 가진 물이다.
우리가 당연시 하는 이 액체 에너지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물을 움켜쥐려고 하면 어느새 교묘히 빠져나간다. 물 안에 가만히 손을 담그면 쉽사리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물은 고이면 침체되고, 흐르면 맑아진다. 물은 높은 곳을 찾지 않고, 가장 낮은 곳을 찾아 머문다. 물은 강으로 호수로 흐르고, 바다로 향하는 줄기에 합류한다. 그리고는 다시 비로 내리기 위해 하늘로 오른다. 물은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사사로움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물은 동물과 식물을 돌보려는 생각도 없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려는 계획도 없다. 우리의 갈증을 달래주거나 우리로 하여금 수영하고, 배를 타고, 스키를 타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해주려는 마음도 없다. 이것들은 그저 물이 해야 할 바를 행하고 생긴 그대로 존재하는 데서 비롯된 이로움일 뿐이다.
도는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물과 여러분 사이의 평행선을 분명히 인식하라고 요구한다. 여러분이 바로 물이므로 물처럼 살아라. 여러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지탱하는 물과 같이 마음 편하게(만족하며) 살아라. 만물의 성질에 따라 평온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여러분은 온화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하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영원한 흐름(도)을 믿고, 여러분 깊숙한 곳의 기질에 진실해지며,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한 모든 이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교훈은 생명을 지탱하는 물이 어떻게 행동하는 가를 지켜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 물은 꾸밈없이 수수하게 흐르고, 물이 주는 이로움은 물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현재와 조화를 이루며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데서 생긴다.
노자는 자신이 쓴 도덕경의 8장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지도 모른다.
물처럼 흐를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소통할 수 있다. 지식은 교환되고 학문은 모든 이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여러분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특히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처럼 존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잘) 받아들여라. "모든 이가 꺼리는 낮은 곳"으로 가서 마음을 열어라.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도를 찾아라; 수용, 온화함, 그리고 친절함이 여러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노력을 기울이자. 안달하지 않음으로 여러분은 존중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조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도의 자연스러운 질서와 조화를 이룬 평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물처럼 되어라. 물은 그저 흐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이루려 노력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수영, 낚시, 서핑, 마시기, 웨이딩(wading), 스프린클링(sprinkling), 떠다니기(floating)) 끝도 없는 이로움을 창조해낸다.
생각이 자유롭게 떠다니도록 하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투는 삶 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은 잊어버려라;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구성하는 물(material compound)처럼 살아라.(allow yourself to be like ~) 『물 속에 감춰진 메시지(The Hidden Message in Water)』에서 "마사루 에모토는 우리가 곧 물이고, 물은 자유로워지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물을 존중하고 사랑함으로써 말 그대로 물의 결정화 과정(crystallization process)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면서 물(this compound)이 반응하는 방식을 꼼꼼히 탐험했다. 사랑, 감사 그리고 아름다움이라고 새겨진 그릇에 담으면 물은 아름답게 빛나는 수정(crystal)이 된다. 그러나 그릇에 새겨진 것이 미움, 비난, 악함이라면 수정은 산산이 깨지고, 뒤틀리고, 혼란스럽게 보인다.
에모토의 작품에 함축된 의미는 놀랍다. 의식은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물이므로(우리 몸의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물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우리 의도에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그리고 그 너머)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의 창조자로써 영원한 도는 "나는 목마른 자에게 퍼붓는 생명의 물이다(“Water of life am I, poured forth for thirsty men.”)
"라고 할 것이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조용히 물 한 잔을 마셔보자.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강물이 동물에게, 비가 식물에게 주는 것과 같이 삶을 번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남을 이롭게 할 것을 다짐하라. 자연스럽게 흐르며 여러분을 이롭게 하는 물이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라. 이 삶을 지탱하고,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라.
9th Verse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
칼을 너무 날카롭고 벼리면
그 날이 쉽게 무뎌진다.
금과 옥으로 집을 가득 채우면
이를 지킬 수가 없다.
재산과 명예로 교만해지면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
일을 다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겸허한 삶(Living Humility)
영원한 도는 계속적인 창조의 상태에 있으며 정확히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 알고 있다. 우리는 내면 깊이 이 무조건적인 공급의 구성 원리(organizing principle of unconditional supply)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가 얼마나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이 창조적인 근원은 도덕경의 9장에 나타난 겸손의 원리 속에서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도는 모든 것을 보는 이가 놀랄만한 양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온화한 겸손함은 나무, 꽃, 벌, 하마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를 알고 있다. 도는 넘치는 것을 피한다. 도는 창조를 위한 그 무한한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으며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고 있다. 이번 장은 우리에게 도의 이러한 특성에 마음을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This verse invites us to be in spiritual rapport with this characteristic of the Tao.)
넘치는 것이 결국 모자란 것이라는 깨닫게 되면 소유, 쾌락, 교만 그리고 갖가지 행위들로 가득 찬 삶은 도가 아니라 자아를 따르는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Cramming life with possessions, pleasures, pride, and activities when we’ve obviously reached a point where more is less indicates being in harmony with ego, not the Tao!) 겸허한 삶은 언제 멈추고, 놓아 보내고 그리고 우리 노력의 과실을 즐겨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이번 장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산, 더 강한 권력 그리고 더 많은 권한과 물질을 쫓는 것이 이미 잘 갈아놓은 칼을 또 다시 숫돌에 가는 것만큼이나(이 비유는 우리 속담 중에 더 어울리는 걸로 찾아볼 것) 어리석다는 것을 유추적으로 설명한다. 계속해서 칼을 가는 것은 이미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노자는 많은 재산을 모아 축적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재산을 지키는데 소중한 삶을 낭비하게 만들고 또한 항상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노자는 겸허한 삶을 실천하는 정도에서 만족하라고 이른다. 부와 명예를 갖고 싶다면 최소한 우리는 언제 그것들을 추구하는 단조롭고 피곤한 길에서 물러나 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항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중독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인 세상과는 반대되는 하늘의 길이다.
광고라는 것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우리를 유혹함으로써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아마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경제가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한 성장이 마치 암처럼 결국 그 숙주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 우리는 과잉생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교통정체를 목격하게 된다. 이제는 런던(그냥 서울이라고 해도 될 듯)의 한 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가는데 자동차 발명 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또한 매번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갈 때마다 동일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선택 과부하"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진통제 하나만 보더라도 요통, 생리통, 두통, 그리고 관절통을 위한 것이 다 다르고, 아침에 먹는 것과 저녁에 먹는 것이 또 다르다. 여기에 더해 캡슐에 들은 것, 액체로 된 것 그리고 가루로 된 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화장지, 음료수 혹은 그 밖에 무엇을 사더라도 똑같이 벌어진다.
나는 노자가 다음과 같은 현대적인 조언을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을 간직하라.
여러분은 비록 누구나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중독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다짐을 간직하라. 노자의 조언을 달리 바꾸어 말하자면, 할 일을 다하면 한 걸음 물러서라. 겉치레와 무절제한 소비 대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라. 서구사회, 그 중에서도 미국의 비만 문제는 바로 이 도덕경 9장의 단순한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먹어라. 그러나 배가 부르다면 멈춰라. 이미 부른 배를 계속해서 음식으로 채우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의 덫에 걸린 것이다. 성공을 의미하는 인위적인 상징으로 여러분 스스로를 과도하게 치장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보다는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하는 도의 지혜를 떠올려보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은 그냥 충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도의 완전함과 일치하는 것이다.
자아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분이 하는 활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자아는 여러분이 한 행위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보상 받기를 원한다. 노력한 것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을 축적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매 순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날려버릴 수 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여러분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말고 바로 그 일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이 물질만능의 세상에 여러분을 태어나게 한 무한한 지혜인 도를 믿어라. (어쨌든) 도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날 정확한 시기를 알고 있었다. 도는 "아홉 달의 임신으로 이렇게 예쁜 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 기간을 5년으로 늘리겠다. 이제 더 완벽한 아이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 도는 아홉 달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아홉 달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의 시간은 필요 없다.)
다음 번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유혹이 여러분을 찾아온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도를 생각하라. 이 창조의 원리는 할 일을 다하면 아무튼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노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왜 굳이 하늘의 길을 거스르는 일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다음 번 식사 때, 먹는 양을 조절해보자. 우선 음식을 조금 먹은 후에 아직도 배가 고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만약 배가 고프지 않다면 거기서 멈춰라. 그리고 잠시 기다려보자. 만약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식사를 거기서 끝내라. 이렇게 한 번 해봄으로써 여러분은 이 도덕경 9장의 마지막 문장을 실천해보게 될 것이다. "일을 다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V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