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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 18시 20분 등록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리기
(Drawing on the Artist Within

; an inspirational and practical guide to increasing your creative power)
베티 에드워즈/강은엽 옮김/크로바 출판사


Ⅰ. 저자에 대하여

저자 베티 에드워즈(Betty Edwards)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걸쳐 미술 대학에서 실기 지도를 담당하면서 개발한 기법을 적용해보고 가르친 것을 정리하여 1979년에 『Drawing on the Right Side of the Brain』를 발간하였고, 그 후속편으로 새로운 소묘법 내용을 훨씬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것이 『Drawing on the Artist Within』이다. 특히 언어와 그림의 밀접한 관계와 시각 정보를 성공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그림을 보다 쉽게 그릴 수 있는 독창적인 시지각법을 소개하고 있다. UCLA에서 미술학, 교육학과 인지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의 학위 분야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그림의 기술과 창의성에 관해 20여년을 연구하여 창의성에 대해서 칼럼을 쓰고 많은 강연을 하였다.

이 책에서의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되 분명하다. 그림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라고 그녀는 충고한다. “개념을 그리지 말고 대상을 그려라. 생각대로 그리지 말고 보인대로 그려라.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려라.”


Ⅱ. 가슴으로 들어오는 글귀(인용)

1부 새롭게 보기의 비밀
[1] “창조한다는 것은 그 착상이 진지한 것이기도 하지만 뭔가 묘한 데가 있다. 창조에 대해서 쓰는 것도 또한 묘한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침묵의 과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묘하면서 진지하고 소리없는 것, 그것이 창조다” - 제롬 브루너(Jerome Grumer) 깨달음 : 왼손을 위한 에세이, 1965


1. 창조성 ; 카멜레온 같은 것
[3]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문제의 형식은 단지 수적이거나 실험적인 기술에 불과한 해답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새로운 의문과 가능성을 제기하고 낡은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며, 과학에서의 진정한 진보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 아인슈타인과 인펠트(L. Infeld), 물리학의 진보

[7] 만약 읽기를 배우는 데 있어서 재능이란 개념이 장애물이 된다고 말하면 부모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기에 재능이 없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덮어 놓고 수긍해 버린다. (중략)
“자, 실물 대상이 있으니 그걸 그려 봐요.”하는 지시를 받았다고 치자. 대개는 그 말은 “여러분 중 누가 끝까지 이 수업에 남게 되는지 봅시다”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이와 비교되는 상황은 프랑스어 회화 입문반의 등록에서도 나타난다. 처음에 “자 이제부터 프랑스어로 이야기해 봐요.”라는 말은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거든 억지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경고로 들린다. 미술 수업에서 그런 상황을 참아낼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래도 학생들은 다른 수업에서와 같이 사전 교육이 없다는 데서 반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 스스로 그림에 재능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조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재능이란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이란 특수한 것이고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예술적 능력은 기본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 있다.
* 그러나 저자는 사람들이 말하느 ‘예술적 재능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글을 쓴 것이지.

[8] 이름을 쓸 수 있다면 그림도 그릴 수 있다.

2. 왼쪽 생각, 오른쪽 생각
[10] “시인이나 성인이 섬광처럼 빛나는 찰나의 빛을 잡는 것 이상으로, 사람은 자기 마음의 내부로부터 퍼져나오는 빛줄기를 감지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놓치고 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모든 천재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신이 거부했던 생각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들은 낯설면서도 장엄하게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은 모두들 한쪽 편에 서서 자기주장을 할 때 우리가 당당하게 자발적인 인상을 고수해야 함을 가르친다. 언젠가는 한 낯선 이가 꽤 훌륭한 감각을 가지고 우리가 항상 무얼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말해 줄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부끄럽게도 자신의 의견을 남으로부터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 신뢰’


[14] 그리기를 배운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이 지배하는가를 의식하게 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두뇌 기능의 정신적 전이를 조절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창조적 사고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다.

[14] L-모드는 전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고, 평상시의 우세를 유지하고 싶어하며, 때로는 분명히 잘 그린 그림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이전의 그림과 이후의 그림은, 첫째, 망각을 방지해 주고, 둘째, 그림이 대단히 향상되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시각적 증거를 제공한다.

[21] 이 그림을 그린 학생들은 자신이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그들은 모두자신들의 발전을 보고 대단히 놀랐으며 이전에 자신에게서 나타나지 않던 능력을 발견해 내고 대단히 기뻐했다. 게다가 그리기를 배움으로써 보는 법을 배웠고, 그런 후에는 자기 주변의 삶을 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한 변화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학생들마다 대답이 각양각색이었다. 이제는 더 많은 것을 본다고 하거나,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거나, 사물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즉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말들에 호기심이 나서, “그림을 배우기 전과 배운 후의 지각이 그렇게 다르다면 전에는 어떠했는가?”라고 물으면 대개의 학생들은 전에는 단지 사물에 이름 붙이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즉 사물을 정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본능적으로 쳐다보기만 했었다고 한다.

[23] 말로 그리기와 손으로 그리기
그러는 동안에 또 다른 혼란이 생겼다. 이를테면 학생들의 그림 그리는 솜씨가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확 변해 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림을 그릴 수 없던 학생이 갑자기 “감을 잡았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26]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스스로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가령, 이건 어려울 것이라거나 이런 일에는 영 서투르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자).
* 그림을 그릴 때의 주의할 점

[26] 가능하다면 그리는 동안에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저어 보도록 한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적어 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 그리고 나서 그림을 제대로 보았을 때의 반응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다.

[27] 이 놀라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것은 사물을 거꾸로 봄으로써 ‘다르게 보는’ 것이다. 사물들은 지금껏 수년 동안 우리가 보아 온 그 통상적 연관에서 떨어져 나와 다르게 보인다. 이것이 일종의 창조성이다.
거꾸로 보면, 정상적인 방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명료성이 나타난다. 창조적 사고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는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 때로는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선입견은 그것이 시각적이건 언어적이건 간에 혁신적 발견의 길을 막기 때문이다.

3. 수수께끼들 ; 볼 것이냐 말 것이냐
[36] 창조는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36] 그리기와 창조성간의 연관이 ‘본다’는 데 있음은 확신이 갔다. 그리는 과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창조적 과정 자체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러 가지 면 중에서 첫째, 그릴 때는 시간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오랫동안 보는 일에 몰두하여 일한다. 이러한 초시간성은 그리기의 강한 특징인데, 그것은 창조적 과정의 다섯 가지 단계 중에서 무의식적 숙고와 유사해 보인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인지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만, 인지와는 다른 식으로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그리는 동안 지각되고 있는 대상이 갑자기 뭔가 다른 사물과 같아 보이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바닷물결 같아 보이는 머릿결, 줄기 끝의 꽃 같아 보이는 손 등. 이러한 은유적·유추적 사고는 그리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며, 연구자나 창조적 인물들이 말한 창조적 과정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셋째, 창조적 인물이 주위 환경과 고립되어 있는 장소에서 작업하길 원하는 것은 그릴 때 따로 있으려는 것, 특히 언어적 방해로부터 떨어져 있으려는 욕구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침묵 속에서 혼자 작업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는 능력은 어떠한 지각적 기술보다도 보는 능력을 필요로 하므로, 창조성의 다섯 단계 중 가장 희미한 성격의 세 단계(최초의 통찰, 숙고, 해결)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본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사용하는 시지각적 특별한 의미에서 지각과 밀접히 연관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특수 방식은 어떤 영역내의 부분들을 부분들끼리의 관계, 또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를 동시에 보면서 전체 영역까지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이것은 거꾸로 놓고 그릴 때 취하는 과정이다). 언어적 고려를 배제한 채 통합된 주의력을 가지고 외부의 사물을 보는 능력이다. 그것은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그 가능한 은유적 모습을 동시에 보는 능력이기도 하다.

4. 언어 속의 실마리 ; “아하! 찾아냈다”
[38] “나는 가끔 마음속에 감동이 일어나는 순간을 느끼곤 한다. 그것은 현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빛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할 줄기 섬광과도 같은 것이다. ....당신은 ‘나는 지금 보고 있다. 내일이 되면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특수한 증감(增感) 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면 곧 그림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 폴 발레리(Paul Valery, 프랑스 시인)

[39] “창조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보는 능력이다.”
“창조란 새로운 시각(혹은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다.”
“창조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그 대답을 찾아내는 교묘한 솜씨다.”

[40] “내가 이 그림을 흙으로 빚어 낼 수 있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며, 이러한 설명을 소묘로 그릴 수 있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우리는 흔히 문장의 의미를 소묘로 나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논리와 사고』

[40] ‘보는 능력’을 거듭 강조하는 까닭
지금까지 거듭 강조해 온 ‘보기와 그리기의 학습 활용’이라는 나의 주제는 단지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읽기와 쓰기의 학습 활용이 문학 작품을 쓰는 데만 한정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가의 보는 방식을 학습하는 것은 단순히 보다 많이, 보다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직업적인 화가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간혹 있을 수 있긴 하겠지만, 지각 능력은 언어 능력과 마찬가지로 사고를 증진시켜 주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42] 예술가는 그림 그리기가 의식 속에서 미미한 변화, 즉 종종 ‘다르게 보는’ 시지각적 변화를 그대로 표현해 낸다는 사실을 어떤 경우에서든지 입증해낸다. 작업 중인 예술가들에게 ‘다른 정신 상태에 있느냐’는 질문을 하면, 대개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물어보지 않고 “예”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일단 예술을 하는 데는 그와 같은 정신적 변화가 요구되므로 예술가들은 그 질문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예술가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다르게 보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3] “주시하는 것(looking)과 보는 것(seeing)은 모두 감각적 지각에서 시작하지만 양자의 유사성은 그것을 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살펴보고 그 현상에 대해 어떤 명칭을 부여할 때, ‘나’에 대한 유용성 여부에 따라 나는 사물을 좋다, 나쁘다,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즉각적인 선택을 한다.
주시하는 것의 목적은 살아남고, 대처하고, 조작하려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태어나자마자 훈련받는다. 그러나 한편, 내가 무엇을 볼 때 내 몸 전체가 갑자기 눈이 되고, 나는 자아를 잊게 되며,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직면하고 있는 실재에 몰입하게 된다.”
- 프레데릭 프랑크(Frederick Franck) 『시각의 선(禪)』

* “자아는 정신이 ‘실재에 전념’할 때 자유로워진다.” - 프레데릭 프랑크(Frederick Franck)

[45] 그림 그리기의 법칙은 무한한 변형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폭이 넓다. 무한한 변형이란 ‘바깥 세계’의 시각적 정보가 무한히 변화하며 복합적이기 때문에 필연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R-모드가 해결 과정의 내부적인 방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방식이 너무 다양하여 L-모드에 의해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45] 국화꽃잎들은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두 같은 형태라는 것을 증명해보자.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림 그리기의 필수 조건인 법칙과 발견은 각각의 꽃잎들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기를 바란다. 또 동시에 다른 꽃잎, 줄기, 잎, 그리고 전체 형태를 주변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도화지 형태, 선의 밝고 어두움, 표현 질감 등과의 관계 속에서 보기를 바란다.


*p 44. 그림 참조 첫 번째 그림은 몬드리안이 그린 국화다.

[47] 숙고의 잠재적 과정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아마도 L-모드는 여전히 불편한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의문점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제 해결사가 나타난다. 그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든지, 버스에 타고 있든지,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통에 들어가 있든지 간에, 마침내 ‘찾아내게’ 된다. 이 순간에 이르게 되면 계속 정보를 축적해 놓은 R-모드는 특유의 법칙과 발견법을 활용해 짝맞추기를 하게 된다. 갑자기 여러 부분들이 제 위치를 잡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맞아들어간다. 그 배치가 옳은 것처럼 보이고, 그 공간과 형태가 조화를 이루어 문제의 모든 거북스런 요소들을 납득시킨다.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드디어 해결이 가능하게 되어, “아하! 찾아냈다! 그렇구나!”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47] 상상의 것을 언어로 (확증을 위해서) 전이시키는 것은 모든 창조자의 영원한 숙제다. 19세기의 유명한 유전학자 프란시스 칼톤(Francis Galton)은 다름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있어 글로 쓴다는 것은 심각한 후퇴이며, 나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더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 말로는 다른 때와 같이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힘들여서 일을 마치고 나서 아주 명백한,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과에 도달했을 때도,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려는 순간 내 자신이 또 다른 지평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내 사상을 평소에는 친숙하지 않았던 언어로 바꿔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적절한 단어와 문구를 선택하느라고 막대한 시간을 소비하게 되며, 갑작스럽게 말을 해야 할 때는 개념적으로 명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언어의 빈곤에 의하여 매우 모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 아다마르 『수학에서의 발명의 심리학』

2부 생각 그리기와 그림 읽기
5. 언어와 그림의 이중주

[50] 그림-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종이에 그린 흔적-도 언어처럼 읽혀질 수 있고 그것을 그린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 줄 수 있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수필《새로운 말들》중에서
[51] “어느 정도 생각해 본 사람은 누구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두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서술하는 데 쓸모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 생각을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사고의 시각화 작업)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수필《새로운 말들》중에서

[52] “아름다운 의문을 갖는 사람에게는 항상 아름다운 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 커밍스(E. E. Cummings)
나단 골스슈타인(Nathan Goldstein)의 『응답적 그림의 예술』에서 인용

[53] 말과 이미지의 관계는 그림 제목과 실제 그림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말은 이미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나, 이미지에 맞게 잘 선택하며 이미지가 마음의 눈에 나중에 떠올라서 그 복합성을 유지하도록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54] "회화는 철저한 기분전환이다. 몸을 쇠진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그렇게 완전히 빨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장의 고민이나 미래에 어떤 위협이 있다해도, 일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런 일들은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다. 그것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정신적인 빛은 모두 한 가지 일에 집중된다. 그때는 시간도 옆으로 비켜나 있다." - 처칠 ‘기분전환으로서의 회화’

[54] 그리기는 가장 단순한 재료를 필요로 한다. 선사 시대 인간이 그린 동굴 벽화는 그에 필요한 재료가 얼마나 단순한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릴 수 있는 표면과 거기에 흔적을 만들 뭔가만 있으면 된다.

[54]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양손이 절단된 사람이 발가락에 붓을 끼워 그리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를 아는 것이다.

[54] 그리기와 읽기는 말없는 쌍둥이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둘 다 아주 어릴 때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55] “우리는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 철학자 폴라니(Michael Polanyi)의 은어

6. 이름 그리기; 그림은 읽을 수 있다.

[58] 그림으로서의 서명은 풍부한 정보이며, 그 정보를 담고 있는 언어를 당신은 직감적으로 읽는다. 당신의 이해력은 즉각적인 것이어서 어떤 특별한 훈련도 필요치 않다. 그리고 각 서명의 이면에 있는 사람에 대한 당신의 직관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정확할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필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59] 당신이 쓴 서명들마다 이름은 똑같은데 보는 사람에게 다른 효과를 미치는 것은 바로 선의 성격 때문이다.

[59] “직관은 빠르고 잠재 의식적인 논리로서 가장 정확히 이해되며, 그 무한한 섬세함과 유동성은 제외하더라고 의식적인 사고와 필적할 만하다. 대개 직관에 기인하는 심오한 의미는 감각적인지에 더 적합하게 귀속된다. 이러한 종류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비언어적이지만 시각이나 다른 감각으로 표명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어 세계 속의 직관은 항상 잠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조형 감각이나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에 나타나는 직관을 의식적으로 언어화시키기는 아마도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 나즐로 모흘리 나기(Laszlo Moholy-Nagy), 1947 ≪새로운 시각(The New Vision)≫

[60] "많은 연구가들을 특히 흥미롭게 하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병인데 이는 특히 얼굴에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태는 ‘얼굴 기억 장애(prosopagnosia)’라고 알려져 있다(그리스어로 prosopon은 얼굴이란 말인데 여기에 ‘모른다’는 뜻인 afnosia를 더한 말이다). 얼굴을 기억 못하는 사람도 일반적으로 사물을 식별하는 데는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언어 기능은 훌륭하며 대부분의 경우 지적으로는 흠이 없는 상태다. 그는 그가 아는 사람들에 대해 명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들에 대해 말로 설명하거나 몇 가지 특징, 예를 들어 콧수염이라든가 안경 또는 즐겨 쓰는 모자 따위를 지적하면 그들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다....."
“얼굴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는, 부수적인 특징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서 나타난다 ... 일반적으로 그 얼굴이 아주 가깝게 아는 사이거나 친척이거나 또는 환자 자신이라고 하여도 그는 전에 그를 알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 환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할 것이며, 아마 그가 마지막으로 본 이래 그 사람이(심지어는 환자 자신을 가리키며) 굉장히 변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부서진 마음‘

[60] “자네는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소요된 50분 가지고는 시간이 좀 모자랐네.”
“나는 자네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45분 가까이 거렸다는 것을 알겠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셔츠의 칼라를 그리는 것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이 모델의 머리를 그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군.”
“말하자면, 이것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그림일세.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자네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군. 무언가가 자넬 괴롭히고 있었던 것 같아. 거기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줄 수 없겠나?”
* 우리는 그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런 상황이 가능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말들을 예로 들어줬다.
.
[61] 선을 긋고 그 선을 뜯어봐라.

[62] 당신은 그림을 통해 그 느린 선들이 얼마나 주의 깊게 그려졌건 간에 그 빠른 선들을 결코 정확히 복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선의 언어에서- 선이 그려진 정확한 속도는 그 선에 의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65] 모든 선은 한 문장이며 선을 만들고 그 선을 보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의 한 형식이다. 그림은 사고와 감정의 광범위한 영역을 드러내는 대단히 복잡한 표현방식이다.

[66] “사고 그 자체는 예술이란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감각에 직접 와 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이 직접 지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막스 빌, ‘예술에 있어서의 수학적 접근’

7. 유추 그림 그리기; 감정을 그린다.
[67]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따위의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이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이들 그림에는 ‘옳은’ 또는 ‘틀린’, ‘좋은’ 또는 ‘나쁜’ 그림이라곤 없다. 각 그림은 모두 ‘옳은’ 그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에게 옳기 때문이다.
* 유추 그림 그리기 중에서

[74] “중요한 것은 대게 우리가 글씨를 쓰는 방향이다. 왜냐하면 그림 그리는 것은 글씨 쓰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언어를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갖게 하며 다른 쪽으로 움직이면서 점점 굵어지는 선은 형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오른쪽 여백에 뭔가가 놓여 있으면 당신은 그것을 큰 장애물처럼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선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힘있게 나가면, 그것을 당신은 내적인 폭력행위로서, 즉 마음을 찌르는 행위로 체험할지도 모른다.”
- 필립 로슨(Philip Rawson) ‘그리기의 예술’ 중에서

8. 초상화 그리기; 직관대로 움직인다.

[96] 창조성이란 오래된 문제의 새로운 해결 방법을 발견하는 능력, 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각을 새롭게 조화시키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96]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주인공을 블룸인데, 그는 보통 인간으로 알려진 신비한 실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블룸은 무시당하고, 또는 내쫓기면서 하루 종일 방황한다. 마침내 늦은 밤, 그의 고독은 광대무변한 의미를 얻게 된다. 그는 무한한 공간에 둘러싸여진 채 홀로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최후로 일별하는 것은 그림을 통해서다. 《율리시즈》의 초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커다란 점 하나가 블룸을 표현한다.
- 리프(Robert S. Ryf)의 조이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서
* 고독에 대한 유추 그림의 공통점은 ‘점(點)’이다.

[98] “인간의 영혼이 이 나라에서 태어났을 때 날아가려는 그를 붙잡아 놓는 그물들이 있다. 당신은 내게 그것이 국적, 언어, 종교라고 말했지. 나는 그 그물들을 빠져나갈 테다.”
* 《젊은 예술가의 초상》중에서 주인공 스테판이 그를 위협하는 세 가지 ‘그물’을 확인한다.

9. 최초의 통찰력; “신비로 신비를 말한다”

[102] 창조적인 노력은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볼’ 때에 일어난다. 그때는 아마도 잃어버렸거나 적합하지 않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어떤 것을 특별히(연루된 문제에 따라 무심히, 또는 골똘히) 찾고 있을 때일 것이다.

[103]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그의 미(美) 철학에 대해 분명하고 명료한 언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미적 목적을 위해 인간이 감각적 또는 지적인 재료를 배열하는 작업이다. 이 미적은 목적은 재료가 만족스럽게 배열되고 정리 되었을 때 성취되며, 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전체성과 조화와 광취(광채), 이 세 가지다.”
“첫째, 정신은 무한한 시공(時空)의 배경에서 사물을 분리시켜 하나와 전체로서 포괄하여 파악한다. 이것이 전체성(integritas)이다.”
"둘째, 포괄자는 미적 대상들의 부분들 간의 관계를 그 부분들의 한계 내에서 균형 있게 지각하며, 대상 구조의 리듬을 체험한다. 대상을 종합적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보고 합해서 본다. 이것이 조화(consonantia)다."
“마지막으로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으로 지각된다. 이것은 오로지 논리적이고 미학적으로만 수용 가능한 것이며, 사물의 광채(claritas)와 광휘(quidditas)를 잘 드러내 준다.”
-로버트 리프(Robert. S. Ryf) '조이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

[104] 당신은 잠재적으로 시각 언어의 어휘-선, 형태, 구조-들을 안다.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읽는가를 알고 그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저 당신이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볼 수 있다.

10. 내면 그리기 ;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본다

[121] 뭔가를 본다는 것이 사고의 태도나 습관을 바꿔 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림은 의식적 행위와 사고의 저변에 깔린 무의식에서 추출해 낸 구체적인 이미지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고 행위로 둘러싸인 은유나 유추이며, 그로부터 어지간한 해답을 생각해낼 수도 있다.
거꾸로 보기, 혹은 거꾸로 놓고 문제 풀기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덧붙여 말한다면, 이 방식을 활용해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창조적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L-모드에 따르면 거꾸로 보이는 것은 어떠한 것도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R-모드 방식의 창조력을 자유롭게 만들기는 한다.

3부.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리기
[123] “우리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 당신이 나에게 ‘나도 그림 그리기를 배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없다.”
- 아더 거프틸(Arthur Guptill)

11. 5단계 지각법; 안으로 보기, 밖으로 보기

[124] “독창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익숙해야 한다는 사실은 창조성에 대한 또 하나의 역설인 것 같다.”
-조지 넬러, ‘창조성의 예술과 과학’

[125] 꿰뚤어보기의 기본법
1. 문제의 경계를 파악한다. 하나의 사물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고 있는가? 그 문제의 범위(그 문제를 둘어싼 것들로부터 문제를 분리시키는 경계)는 어디인가?
2. 문제의 여백(negative spaces)을 파악한다. 문제의 대상이 되는 물체(혹은 객체), 배후 또는 주위의 공간(혹은 공간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러 공간들의 경계는 각각의 대상이 되는 물체에 의해 나뉘어 있는데 그 공간들은 각 물체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3. 문제의 여러 관계(relationships)와 비례(proportions)들을 파악한다. 당신이 보는 시각에 따라, 또는 변하지 않거나 변할 수 없는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는 문제의 특수한 국면은 무엇인가? 서로, 그리고 전체에 대한 부분들의 관계는 무엇인가?
4. 문제의 빛과 그림자를 파악한다. 빛에 의해 드러나는 부분과 그림자 속에 가려진 부분은 각각 무엇인가? 이때 어느 부분이 ‘보여질 수 ’ 없는가?
5. 마지막으로, 문제의 ‘형태(Gestalt)’를 파악한다. 문제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이게끔 하는 ‘사물의 본질’-아퀴나스의 실상(qukdditas)-과 그 특성은 무엇인가?
대단한 모순이지만, 이 질문은 언어를 통해서보다 예리하게 ‘보는’ 행위를 통해서 가장 훌륭하게 답해질 수 있다.

[125] “역설을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역설은 생각하는 사람의 열정의 근원이며, 역설 없는 사유자는 감정 없는 연인과 같아서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사고의 궁극적인 역설은 사고 자체가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 키에르 케고르(Soren Kierkegaard), '철학의 단편‘

[126] 보는 법칙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당신은 진정한 의미에서 용어(예컨대 ‘여백’ 같은)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기를 배움으로써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주제에 관한 참고문헌을 조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먼저 읽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126] “만일 네가 누군가에게 보는 법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그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가르쳐야할 것은 보는 법이지 그리는 법이 아니다.
* 화가는 눈이 보배, 음악가는 귀가 보배.

[126] “지각하는 것이 곧 표현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듯이 두뇌가 따로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작용한다면, 우리는 표현에 필요한 제법칙, 곧 부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그레고리, ‘과학적 사고’

[127] 읽는 일과는 다르게, 어떤 아이도 텔레비전을 보는 데 별도의 학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른들 역시, 예컨대 웨스트 포인트의 어느 학급 졸업 사진에서 별 어려움 없이 젊은 시절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를 찾아낼 수 있다.
* 저자는 이미지를 보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것을 끌어다 썼구나. 적절한 예다. 졸업 앨범을 보면서 닮은 사람 찾기라…….

[128] 쓸데없는 단어는 생략하라.
자신을 배경에 놓아라.
재검토하고 또 새로 써라.
쓴 말을 또 쓰지 마라.
쾌활한 체하지 마라.
분명하게 써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써라.
적당한 구상 아래서 작업하라.
화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알게 하라.
* 스트렁크(Theodore Strunk)와 화이트(E. B. White) 《양식의 제요소》,1935
* 디자이너 조 몰로이는 디자인과 글쓰기를 유사한 방식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면서 위의 지침을 적용해 보라고 권한다.

[129] 기본기가 중요하다.
[129] 무엇보다도 그림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며, 그리기 기술의 기본법들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 기술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며, 예술적 훈련이라기보다는 인식적 훈련(또는 예술적 훈련에 부과되는 인식적 훈련)이다.
하나의 총체적인 기술을 형성하는 작은 부분들은 일단 습득되고 나면 서로 섞이고 통합됨으로써 우리 눈에는 거의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학습 과정 중에는 그렇게 분명하던 낱낱의 기술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속에서 점점 사라져 결국에는 의식 수준에서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된다. 나는 이전까지 이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12. 보이지 않는 것 보기 ; L-모드를 속인다.

[134] 제임스 아담스(James Adams)의 표현을 빌자면 ‘하나의 문제에 대한 명료한 정신에서의 접근’ 다시 말해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결코 결론을 끄집어내려 하지 말고 이미 알고 있는 ‘남은’ 정보를 따라서 그것을 추려 내고 흡수하고 정리하고 또 재정리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잘못된 정보, 잘못된 해석에 대해 엄중히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위험한 시도를 기꺼이 감행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정보의 적합성 여부를 점검함으로써 처음의 질문 내지는 통찰의 정당함을 확인하면서 밖으로는 창조적인 최초의 통찰과 관계되면 무엇이든지 찾아내야 한다.

[135]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댕은 이렇게 말해다고 전해진다. “여기 하나의 대상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나는 내가 이전에 보았던 모든 것을 잊어야 했으며 그것이 이제까지 다른 화가들에게 그려졌던 모습까지도 잊어야 했다.”
- 샤르댕이 죽은 얼마 후 코쉰(Ch. N. Cochin)에 의해 씌여진 샤르댕의 생애에 대한 에세이 중에서

[135] 창조성의 두 번째 단계에서 여러 가지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또 문제의 맥락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너무 성급하게 ‘결론쪽으로 비약’을 유도하는 것은 탐색의 과정을 매우 편협하고 빈곤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앞의 여학생이 자기 눈에 보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절했던 것처럼, 성급한 가정과는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를 자기도 모르게 거부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거부해 버린 바로 그 정보가 창조적 문제 해결의 다음 단계인 생각키우기(숙고, Incubation) 단계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136]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둘은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
창조적 사고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 나가기 위해서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이 둘이 분쟁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개념이나 직관이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싸우지 않을 때 실제로 그렇듯이 서로 맞물리고 뒤엉킨 이 둘 다를 원한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림이 있다. 닮은 꼴의 싸움을 준비하는 그림과 어깨동무를 한 채 나란히 선 그림이 책에 실려 있다.
포켓 몬스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은꼴인 같은 몬스터끼리 자신들의 필살기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았다. 닮은꼴은 서로 싸우지를 원치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137] 미술의 여러 면을 다 다뤄 보기 위해 화가는 미국의 화가 겸 교사인 로버트 헨리(Robert Henry)가 말한 ‘고도의 상태’에 도달해야 하며, 때문에 화가들은 이러한 유형의 속임수에 익숙해 있다. 화가들의 속임 수 중 몇가지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루하고도 반복적인 행위(똑같은 선이나 형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그리는 것),
엄지손톱만한 스케치(작고 신속한 스케치),
장기간 혼자만의 작업,
그저 붓을 들고 있는 일(헨리가 제안했듯이),
또는 단순히 펜을 들고 있는 일(영국의 작가 택거리(Theckeray)와 수디(Southey)가 권한 방법).
* L-모드의 일을 빼앗는 속임수

13. 휘갈겨 그리기; 15분 소묘법
[138] 시인이면서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화가인 자신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나와 같은 종류의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 능력을 신뢰하거나 계발하지 않고 있군. 자네가 하려고만 하다면 자네는 내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네.” 또 언젠가 한 젊은 화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하고 있듯이 오직 환상의 상태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네.”
-길크리스트(A. Gilchirist) '블레이크의 생애'

[138] 예술적 환상의 능력은 단지 사람들이 그걸 믿고 계발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린, 선택의 문제이다.

[139] 몸짓 그리기에서 배울 기술은 경계에 대한 지각이다. 그리기에서 경계는 두 사물이 만나는 곳으로 개념 지어진다. 즉, 공간과 대상이 만나는 곳이며 공간이나 대상이 기초선과 만나는 곳이고, 하나의 사물이 시작되고 다른 것은 끝나는 곳이다.

[142] 자유 토론 방식으로 그리면 사고의 문이 열린다.

14. 느릿느릿 그리기; 몬드리안의 ‘국화’

[147] “너무 느려, 너무 지루하고, 또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야. 이건 말과 아무 상관도 없다구”라고 외치는 L-모드의 저항을 무시한다. 계속 그리자. 그러면 곧 얼마 지나지 않아 L-모드는 사라질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이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자꾸만 더 많이 보기를 원함을 알 것이다. 정보, 즉 아무 작은 경계와 선의 복잡한 모양이 이상하도록 강렬하게 관심을 끌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이것은 우리의 시각에 변화가 생겼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50] “연관이 별로 없는 사물들이나 생각들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데에서 은유-유추적 사고방식은 사고와 더불어 창조적인 문제 해결에 새로운 좁은 길을 열어본다.”
“만약 비슷하지 않은 사물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로 비슷하다고 할 때, 그것은 아마 다른 사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유추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 사고를 추구해 마침내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해, 그리고 종종 오래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을 찾을 수도 있다.”
- 몰튼 헌트 ‘내적 세계’

15. 여백 그리기; 빈 공간도 형태다.

[152] “홈즈(Sherlock Holmes)의 다음과 같은 말은 놀라운 예이다. ‘자네는 지난 밤에 개가 짖는 것을 듣지 못했나?’ 그러자 왓슨은 ‘나는 개 짖는 소리를 못들엇는데!’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홈즈는, ‘맞아, 중요한 것은 개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이지’라고 말했다.”
- 조나단 밀러(Honathan Miller) '마음의 상태‘
* 문제의 여백 바라보기
* 여백은 그런거야. 새롭게 보는 시각을 주지. 그렇다고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야.

[153] 공허가 아닌 무(無)의 충만

[162] 이제, 지금까지의 그리기에서 일어났던 마음 상태의 변화를 천천히 돌이켜보자. 시가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는가? 의식적으로 실제의 형태에서 여백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사물을 바라 보았던 마음 구조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 하나의 분명한 지식으로로 뛰어들어옴을 경험했는가? 그림의 부분들이 대단히 재미있는 수수께끼 같다는 느낌을 경험했는가? 어떤 것이 제대로 그렸을 때의 작은 기쁨을 경험했는가?
* ‘ L-모드의 일을 빼앗는 속임수’ 첫 단락
* 참으로 요구사항이 많고 질문도 많다. 제대로 보고 그리고 즐기는 법을 알려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느끼는 대목이다.

16. 보는 것과 믿는 것; 본 것을 믿어야 한다.

[164] “보는 것은 경험이다. .... 사람들은, 그들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은, 눈에 비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는 사실을 알 고 있다.”
- 한슨(N.R. Hanson) '발견의 법칙(1958)‘

[164] “우리는 마음은 사실에 앞서 이미 만들어져 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열린 마음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식으로 자극을 해석해야 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당신은 이미 형성된 범주와의 관계 속에서만 사물을 바라본다. 그런 식으로 내려진 결론은 객관적 지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존재해 있던 관념을 확증한다. 지각의 단계에서 사실 이전에 우리의 정신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극이 발생하기 이전에 결론을 정보화시킨다! 그 결과 당신은 막대한 양의, 이미 지각되어 있던 관념과 실재에 직면하게 된다.”
* 블루머(C. M. Bloomer) 《시지각의 원리(Principles of Visual Pereption)》(1976)

[165-166] * 그림이 어렵게 보이는 이유
첫째 : 사전 정보로 그린 그림
둘째 : 지각이냐 개념이냐
셋째 :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게 옳다

[169] “대단히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생각해 냈다. 우리가 지각한 (preceive) 것과 우리가 구상한(conceive)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각적으로는(preceptually)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여러 경우에서 우리는 그 지각(perception)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리차드 그레고리 ‘조나단 밀러와의 대화에서’

[173] 너무 이른 지각의 완결은 그림을 그리는 데나 창조적인 사고 과정에서 커다란 장애가 된다. 지각의 꿰뚫어보기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점은, 열린 눈으로 지각의 완결을 갈망하는 두뇌에 만족하지 않고 정보와 이념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176] 내 딸 앤(Anne)이 네 살 때 가족을 따라 공항에 간 일이 있다.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난 후 앤은 할머니가 비행기에 타고 멀리 날아가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앤이 물었다. “멀리 날아가니까 할머니가 작아지던데, 다시 날아오면 할머니도 다시 커지는 거야!”

[178] 대상을 같은 크기로 보는 두뇌의 습관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멀리 있는 형상을 실제보다 크게 보는 것은 개념을 실제보다 더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이다.

[179] 사실 지각적 일관성은, 복잡한 시각 정보를 조절 가능한 수치로 환원하기 위해 일상생활 가운데서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 당신은 일단 접수된 정보를 신뢰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두뇌가 말하는 것들을 무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실제로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창조적 과정의 꿰뚫어보기 단계에서도 이러한 통제는 중요하다. 창조적 과정에서 의식적 자각과 무의식적 지각인 L-모드와 R-모드로부터 비롯된 정보는 반드시 시각적 통일체로 축적되어야 한다. 화가뿐 아니라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사람은 진실로 바르게 보아야 한다.

17. 판단력·비례·관계의 포착; 관측은 믿음이다.

[181] 그림 그리기의 총체적 본질은 어떠한 기본기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그 기초에서부터 혼란스러워져 ‘비례’니 ‘원근법’ 또는 원근법에 의한 단축된 장면과 같은 ‘어려운’ 주제들을 그려 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늘 애태우게 될 것이다. 그림 그리기의 기본 기법 중에서 이것이 가장 까다로운 것이지만, 또한 가장 가치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기법들을 창조적 사고의 과정 뿐 아니라 창조의 꿰뚫어보기 단계에 총괄적으로 적용시킨다면, 정신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187] 당신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진짜 소묘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선을 베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보는 법을 배우고, 의미를 그리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사람은 직접적인 지각으로 보는 방법을 배우고, 직접 봄으로써 사람은 어떻게 그리는가-보여진 것을 어떻게 베끼는가-를 배운다. 그 두 가지는 서로 통한다.

[187] “도구를 썼다고 탓할 건 없다.”

[187] “학생은 깨달음을 자기 목표로 세워야 하며, 자기표현을 목표로 세워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목표로 노력하다 보면 표현 기법은 자연스럽게 구사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리기를 연구한다는 것은 직업적 화가로 훈련시킨다는 것 이상의 가치기 있다. 우리의 시각을 계발해서 이득을 얻지 않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마 없을 것이다.”
- 에드워드 힐, ‘그림의 언어’

[188] 지각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격자망과 유리 소묘를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교훈은 평평한 그림 평면 위로 지각된 이미지가 도화지 위의 이미지와 동일하다는 개념이다. 두 번째로 주요한 진전은, 사물이 어떻게 보여야 ‘하느냐’ 하는 개념적인 생각과 싸우지 않고, ‘바깥 세계의’ 것을 단순히 보고 그릴 때 가장 쉽게 그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해보자.
* 뒤러의 장치를 완전히 익히기

[191] 필요한 것은 종이와 연필뿐이다.

[197] 이 모든 설명과 연습들은 너무 전문적이고 계산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관측 기술을 배우고 있고, 또 소묘의 세 가지 기본법인 경계의 지각, 여백, 비례적 관계들의 통합을 배우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198] 변하지 않는 것을 봐라.
* 이 단락은 어렵다.

[201] 궁극적으로 당신은 나란히 있는, 언어와 시지각이라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쌍둥이를 관찰하고 있다고 상상하자. 나는 각 방식의 구성요소로서 언어 속에서의 단어와 지각 속에서 경계는 등가물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성립시켜 두는 언어 속에서의 문맥은 지각에서의 여백과 거의 같다. 언어에서의 문법은 구문론, 지각에서의 관계와 비례는 제 3의 등가적 요소다.
만약 문법과 관측이 등가적 관계라면 당신이 막 배운 기술은, 문법과 구문론이 학생들에게 종종 비난받듯이, 더러는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이상한가? 그러나 이 기술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가 문법 없이는 체계가 설 수 없듯이, 그림 역시 관측 없이는 완전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들을 배워야 한다. 일단 배운 뒤에는 모두 다 자율적으로 제 기능을 하고, 다른 기술과 통합되어 예리한 지각과 우리 경험의 설명에 필요 불가결해진다. 시각적이든 언어적이든 어떤 다른 방법에서도 창조적 과정의 꿰뚫어보기 단계에 필수적인 정보는 완전히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의 원리에 따라 관측하라.

18. 그림자 그리기 ; 그림자가 길을 밝힌다.

[203] 명암의 처리는 화가의 가장 신비로운 기교 중의 하나이다. 이 경우 기교란 당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보만을 택하여 밝고 어두운 면의 형태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사람들에게 실제로는 화면에 없는 것을 상상해서 보게 할 수 있다. 이 신비로운 기교를 부리려면, 화가는 관람자의 상상 반응을 일으키고 조정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제공해야 한다.

[207] 당신의 상상력은 늘 이미지를 올바르게 만든다. 화가는 세부를 다 그려서는 안된다. 오직 단서가 그 역할을 행할 뿐이다.

[209] 엑스트라폴레이트(extrapolate) - ek-strap-o-late - 이미 관찰된 것으로부터 가치를 추정해 내다. 알지 못하는 부분과 아는 것 사이의 가정된 연속성, 일치성, 혹은 병행을 토대로 한 추론에 의해, 알지 못하는 부분의 추론적인 지식에 도달하지 위해, 이미 알고 있는 자료나 경험을 모르는 혹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투영하거나 확장하다. 모르거나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지식을 얻다.
『웹스터 사전(1972)』

19. 우체통에 편지 넣기; 짧고도 긴 과정, 숙고

[220] 물리학자 카루더즈(Peter A. Caruthers)는 자신의 연구 방법에 대해 질문을 받자 “나는 그림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특정한 문제의 상태가 조직화된 유형으로 나타는 데에는, 사진 필름에 상이 떠오르듯이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어떤 지점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갑자기 눈에 띈다.”
카루더즈와 대담한 <뉴욕 타임즈> 과학부의 윌리암 브로드(William J. Broad)는 “작은 선과 그림이 여기 저기 들어가 있는 그의 노트를 보면 그 모두에서 구체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썼다.

[222] 숙고의 단계가 길다 해도 두뇌가 ‘잠시 생각을 접어 둘’ 때, 즉 문제를 계속 진행시키고 해결을 찾기 위해 두뇌에서 계획할 때 숙고가 시작된다.

[223] “글쓰기에서 당신은 당신의 무의식과 결혼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글쓰기에서 뜻밖의 문제와 부딪친다면, 당신은 어느 한 시기를 택하여 ‘나는 내일 거기서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라고 말하게 되고, 그러면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 노만 메일러(Narman Mailer)

[224] 작가인 줄이란 뒤기는 배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제시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당신은 이야기를 쓰고 싶소?”라고 그는 말했다.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지요. 당신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것은 서로 얽혀 구성을 이룹니다. 당신은 마법의 램프를 문지르기만 하면 되지요.”
“그러면 그 기법은요?”라고 나는 물었다. “우리의 즉각적인 마음은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능을 멈추는 고차원적인 두뇌의 단계입니다. 이건 혼자서도 아주 간단하게 실험해 볼 수 있지요.”
“그거 근사하군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사한 것이지요. 잠들기 전에 당신의 무의식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 두세요. 다음날 아침 당신에게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겁낼 것이란 없습니다. 램프 속의 노예는 당신의 종이니까요. 그를 불러서 끄집어내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요.” “나는 나의 내면 속의 그 낯선 자를 ‘보조자’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 뒤기드, ‘나는 설득되었다’

[225] 창조자는 때때로 깨달음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미학적 쾌락의 행복감까지 느끼게 된다. 모든 해결은 의식적 정신에까지 소통되어 문제와 해답을 연결시키는 데 마치 예술 작품 자체처럼 보인다. 이 마술적인 순간 동안 잠시 의식과 의식은 창조적 통일체가 되고, 깨달음은 순간의 황홀과 함게 기억에 남게 된다.

20. 검증; 마지막 단계의 ‘찬란한 황홀’

[226] “창조자는 자신의 창조물과 뚜렷이 연관된다. 우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자기의 개성적인 선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아는 자신의 창조물과 소통되고 동시에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한다.”
- 조지 넬러, ‘창조성의 예술과 과학’

[226] 검증의 단계는 생산물의 시험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이념들은 다른 사람과 얘기돼야 하고 당신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촉구해야 한다. 이전 단계에서 보다 이 단계에서 더욱더 큰 용기, 즉 당신 마음에 있는 작품의 신뢰가 요구된다. 당신은 주어질 통찰에 대한 관리자임을 기억하라. 만약 당신이 누군가 반대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 마지막 단계에서 뒷걸음친다면 당신의 창조적 노력은 결코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22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가 더 창조적으로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굉장한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욱 창조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창조적으로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정신의 부분인 창조적 사고에 깊이 함축된 두뇌가 가시적이고 지각적인 방식을 계발시킴으로써 더 창조적으로 된다. 나는 관찰에 대한 예술가의 방식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보다 위대한 창조성의 목표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29] 예술가의 관찰 방식이 주위 세계를 관찰하고 밖을 내다봄으로써 통찰을 자신에게로 진행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예술가를 내부에서 찾기 위해 마음속으로 보는 법에 의해 당신은 통찰을 자신의 바깥에 있는 세계로 진행시킨다. 이 역설적 통찰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은 더 나은 창조적 노력으로 이끌 것이다.

Ⅲ. 내가 저자라면
1) 주제와 전체적인 뼈대
이 책은 ‘1부 새롭게 보기의 비밀, 2부 생각 그리기와 그림 읽기, 3부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리기’로 크게 3부로 나누고 20개의 장으로 관찰과 창조성의 관계를 기술하였다.

흥미있는 부분부터 먼저 읽어나간다면 1부를 맨 나중에 읽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약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상당히 놓칠 우려가 있다. 우선은 이 책은 <미술교실>이란 이름이 붙어 있어 첫 인상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게 한다. 나는 두 번을 읽을 때까지도 때도 이러한 기대를 하고 있었고 그 외의 부분은 관심 밖이었고, 읽었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워서 간과했었다. 이번에 저자의 먼저 번 책 물론 <미술교실 시리즈>라고 이름 붙은 『오른쪽 두뇌로 그리기』라는 책에 이어서 다시 진지하게 읽어봄으로써 저자가 그리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창의성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고 책을 기술한 것을 알았다. 물론 ‘미술교실 시리즈1’은 그리는 쪽에 더 가까운 책이다. ‘미술교실 1’은 여러 가지 그리는 법에 대해서 연습해 볼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리기 (Drawing on the Artist Within ; an inspirational and practical guide to increasing your creative power)』의 머리말에서는 첫 번째 책을 쓰고서 뭔가 부족한 것을 느꼈고 두 번째에는 창조성에 대한 것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따라 간다면 이 책은 잘 그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살짝 비켜간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저자는 그리는 것은 관찰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하게도 했고, 그 관찰이라는 것이 창초성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20개의 장으로 펼쳐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 정직한(있는 그대로를 인지하는 것을 나는 ‘정직한’이란 말로 표현하겠다) 관찰과 ‘왜곡된(L-모드에 주도권을 내어줘 버린 선입견이 들어간)’ 관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관찰과는 약간 대조적인 개념으로 보이는, 어쩌면 왜곡된 관찰에 가까울 것 같은 ‘유추’라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 저자의 집필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곧 발견의 과정이었다. 처음 나는 시지각과 그리기, 그리고 창조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탐구와도 같은 것으로, 위와 같은 개념의 단편들을 포악하여 그것들을 다시 전체적인 하나의 개념으로 만들기 위한 단서를 찾아 헤매는 작업이었다.’ (p.6 머리말 ‘어둠 속의 그림’ 중에서)

‘나는 창조성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 두뇌 기능의 시각적인 사고 방식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나는 그러한 언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림의 언어로, 지금가지 우리의 생각과 사상을 말로 표현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 아니라, 실물 그대로이든 상상이든 간에 우리가 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였다. 그림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끔 문자로 형상화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운 감각적 인상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데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 (p.7 머리말 ‘어둠 속의 그림’ 중에서)


저자가 관찰과 유추라는 개념을 열심히 설명하고 강조했다 하더라도 나의 잘못된 읽기 습관(이건 어쩌면 다 읽기 전에 ‘이 내용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습관) 때문에 간과했을 것이었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생각의 탄생』이란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창조성과 연결 짓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창조성을 증가시키는 법을 따라가 보자. 1부에서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5단계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특히 1장에서 책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는 내용을 제시한다. 이 장은 그림을 공부하고자 했던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을 부분이다. 이 장은 딱딱하다. 2부에서는 자신이 강좌를 개설하여 그리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많은 경험들을 예시로 든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 장은 다분히 개념적이고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1부의 내용들은 매우 중요하다. 창조성에 접근해 가는 초기 단계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1부에서 5단계로 정의한 ‘1.최초의 통찰 /2.집중/ 3.숙고/ 4.해결 / 5. 검증’의 간략한 적용 사례들이다. 2부에서는 창조성의 중요한 부분인 ‘관찰’과 ‘유추’에 관련된 그림 그리기에 대해서 집중적이다.

3부는 2부의 연속처럼 보여지는데 19장과 20장은 창조적인 문제해결의 ‘4.해결’과 ‘5.검정’이 간략하게 나온 부분이 앞서 기술한 것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약간은 영적이기까지 하다. 검증 부분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검증을 설명하는 듯하다. 아퀴나스의 3가지의 입장에서 사물과 문제를 보는 면이 철학적이게 보이고 또 미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면 그것은 부분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나중에 발견한 것이 앞서 발견된 것을 깨뜨리지 않는 조화로움이 있다는 설명은 이해는 하지만 앞서 학술적이게 표현된 대목과 대조를 이루어서 놀라웠다. 감정적인 어법에서 저자가 결론을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2) 딱 들어맞는 예시
‘아하!’하고 감탄하게 하는 예시들이 많았다. 저자는 이미지를 보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TV 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다’라는 예시를 사용했다. 읽은 것은 배워야 하지만, 보는 것을 특별히 배우지는 않다는 것의 예로 든 것이었는데, 그 하나의 예로 다 설명이 되어졌다.

또한 ‘유추’의 능력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예시로 ‘웨스트 포인트의 어느 학급 졸업 사진에서 별 어려움 없이 젊은 시절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를 찾아낼 수 있다.’는 예는 놀랍기까기 했다. 그림에는 의미가 담겨있고, 우리가 선을 읽어낼 수 있다는 설명과 언어로는 일대일로 매치시키는 못하는 우리가 인지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같은 이름의 사인을 여러 개를 이용’한 것은 설명한 문구를 잊더라도 그 예시를 떠올리며 저자가 하려는 말을 기억해 낼 수 있게 만든다.

3) 큰 주제를 가지고 일관되게 나아가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예와 저자가 설명을 위해 끌어온 그림을 보고 설명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재미난 예시에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진 빠른 전개로 책 중반부에 이를 때까지 책 전체의 주제를 놓치고 가기도 했다. 책 전체가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란 주제를 가지고 저자 자신이 발견한, 자신의 연구분야인 그리기와 시지각의 활용을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3부 11장에 들어서면부터 였다.

4) 많은 인용들
많은 인용들을 본문과는 별도로 배치하였는데, 저자는 원본에서 자신이 인용해온 문구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인용한 것을 제 인용했을 때에도 어떤 의미인지 밝히려고 한 듯 하다.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이러하다.
“홈즈(Sherlock Holmes)의 다음과 같은 말은 놀라운 예이다. ‘자네는 지난 밤에 개가 짖는 것을 듣지 못했나?’ 그러자 왓슨은 ‘나는 개 짖는 소리를 못들엇는데!’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홈즈는, ‘맞아, 중요한 것은 개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이지’라고 말했다.”
- 조나단 밀러(Honathan Miller) 마음의 상태
(p.152)

작가인 줄이란 뒤기는 배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제시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당신은 이야기를 쓰고 싶소?”라고 그는 말했다.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지요. 당신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것은 서로 얽혀 구성을 이룹니다. 당신은 마법의 램프를 문지르기만 하면 되지요.”
“그러면 그 기법은요?”라고 나는 물었다. “우리의 즉각적인 마음은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능을 멈추는 고차원적인 두뇌의 단계입니다. 이건 혼자서도 아주 간단하게 실험해 볼 수 있지요.”
“그거 근사하군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사한 것이지요. 잠들기 전에 당신의 무의식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 두세요. 다음날 아침 당신에게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겁낼 것이란 없습니다. 램프 속의 노예는 당신의 종이니까요. 그를 불러서 끄집어내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요.” “나는 나의 내면 속의 그 낯선 자를 ‘보조자’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 뒤기드, 나는 설득되었다
(p. 224)

이러한 인용들이 본문과 나란히 배치되어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단락별로 소제목을 붙이다
책 하나에 20개의 장도 많은 조각으로 나눈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서도 일관성있게 단락을 나누고 거기에 그 단락에 맞는 제목이 있다. 외형만을 본다면 이 책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트리구조로 되어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구상하고, 각 부분들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나누어 간 듯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소제목들은 그 단락을 한줄로 요약한 문장이다.

Ⅳ. 책의 목차
1부 새롭게 보기의 비밀
1. 창조성 ; 카멜레온 같은 것
2. 왼쪽 생각, 오른쪽 생각
3. 수수께끼들 ; 볼 것이냐 말 것이냐
4. 언어 속의 실마리 ; “아하! 찾아냈다”

2부 생각 그리기와 그림 읽기
5. 언어와 그림의 이중주
6. 이름 그리기 ; 그림은 읽을 수 있다.
7. 유추 그림 그리기 ; 감정을 그린다.
8. 초상화 그리기 ; 직관대로 움직인다.
9. 최초의 통찰력 ; “신비로 신비를 말한다”
10. 내면 그리기 ; 거꾸로 그리고 뒤집어 본다

3부 눈으로 보고 눈으로 그리기
11. 5단계 지각법 ; 안으로 보기, 밖으로 보기
12. 보이지 않는 것 보기 ; L-모드를 속인다.
13. 휘갈겨 그리기 ;15분 소묘법
14. 느릿느릿 그리기 ; 몬드리안의 ‘국화’
15. 여백 그리기 ; 빈 공간도 형태다
16. 보는 것과 믿는 것 ; 본 것을 믿어야 한다
17. 판단력 비례, 관계의 포착 ; 관측은 믿음이다.
18. 그림자 그리기 ; 그림자가 길을 밝힌다.
19. 우체통에 편지 넣기 ; 짧고도 긴 과정, 숙고
20. 검증 ; 마지막 단계의 ‘찬란한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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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09 13:35:49 *.36.210.156
열심히 하느라 애쓰는 구나. 글이 나올 때는 많이 많이 쓰고 그리고 싶을 때는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정화다운 모습이 성큼 다가오겠네.

그림 읽기라는 말도 재미있다. "정화의 꿈 그림 읽기" 제목으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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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09 23:41:32 *.179.68.77
어려운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습관화시키는 것이라고 하더군.
농업적 근면성이 보기 좋다. 그게 바로 '재능'이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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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8.11 10:53:52 *.247.80.52
써니 언니,
그림읽기'라는 말을 배우면서 난 조금 무섭다란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타인의 사인을 볼 때, 그 사람은 성격이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예상하잖아. 그렇게 읽혀진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래.
그러니까, 그림이건, 사인이건, 글이건 온통 그대로 그사람을 반영하는 거잖아.
무섭더라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나, 쓴 글을 읽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두려움.

언젠가 사부님께서 글을 쓰는 것은 아이를 하나 출산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아이가 부모를 닮아서 나오잖아. 그래서 책도 나를 닮아 나올 것 같아서... 이쁜 놈 낳고 싶어졌어.

써니언니, 언니는 언니 닮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야. 기운넘치는 건강한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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