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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11시 29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 고병권


- 1971
년 전남 담양 출생
-
서울대 화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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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학과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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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 추장

- 부커진R 편집인

 

이 책의 저자 고병권의 약력에 대해 들여다 보면 의문이 하나 든다. 그는 어쩌다 화학을 전공하는 공학도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변신했을까?

 

사회학, 철학등의 학문을 우주 세계의 일로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역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방향들은 천개도 넘는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그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니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화폐'(천개의 눈, 천개의 길에서 잠깐 언급되는 위조화폐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일까?)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친구들은 말한다. 일상에서 그는 항상 웃고 있다고. 니체가 말한 '긍정의 힘'이 그의 신체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는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행복론'이라고 말한다.

 

머리 아프고 진지할 것만 같은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현실에서 매우 명랑하고 또 즐거운 사람인 것 같다. 니체에 빠져 니체와 니체의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책으로 엮어낸 그는 실질적인 삶에서도 확실히 니체의 사상을 확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도 자주 분노할 때가 있는데 분노의 대상은 주로 국가, 권력, 자본, 무기력 같은 것들이다.

단순히 내가 머리 아픈 학문이라고 일컫는 것들을 그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하고, 친구들을 ''에서 내모는 그것들을 삶에서 '추방' 시키기 위해 > 현실로 끌고 들어와 적용하며, 투쟁하는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는 운동 속에서 혁명이나 코뮨주의를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있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책머리에

 

3. 니체는 사물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천개의 눈을 가진 사상가다.

 

4.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5. 그가 '미쳤던' 것은 아파서가 아니라 보편적 신념이나 시대 정신의 구속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그가 자신의 철학을 미래의 철학이라고 간주할 때, ‘미래는 과거나 현재 다음에 오는 시간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때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 있고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감각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은 시간이다.

 

5. “우리는 잘못 간주되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계속 자라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고 매년 봄마다 새 껍질을 입으며 계속해서 젊어지고 미래로 채워지며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니체

 

6. 그는 단 여서줄의 문장에도 천 개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6. 병든 시대가 자랑하는 진리들 역시 그 시대가 지닌 질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7. 니체의 말처럼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청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7. 철학을 하려거든 행복해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들이다."

 

7.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8.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병은 낫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니체는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느끼는 자에게는 불필요한 말이 될 것이며,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는 소용없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르쳐준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맛보는 법.

 

서장. 천개의 눈, 천개의 길

 

18.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남았다. 갈 길을 잘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19. 참된 인식이란 사물들을 애무하는 것이다.

 

21. 낚시꾼 니체의 독자 낚는 법-나의 모든 작품은 낚시바늘이다.

 

1.

 

1. 아모르 파티; 삶을 사랑하는 철학

 

25. 니체는 철학 바깥에서 철학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는 철학자다.

 

26. 누구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제 무게를 달아볼 수 없으며, 누구도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의 무게를 알 수 없다. 때문에 철학의 가치, 철학의 공과를 달아보고자 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지반을 떠나야 한다.

 

26. 철학은 전체를 본다 ? 플라톤

 

27. 진리를 찾는 철학자들과 황금을 찾는 모험가들 사이에는 닮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목표의 실존을 남들보다 크게 확신한다는 점이다.

 

27. 모험가들은 '어떤 곳'을 뒤지지만 철학자들은 '모든 곳'을 뒤진다. 모험가들에게 '모든 곳'에 있는 것은 무가치하지만, 철학자들에게는 '어떤 곳'에만 있는 것이 무가치하다.

 

27. 니체의 철학은 진리를 문제 삼기 보다는 진리를 찾으려는 욕망을 문제 삼는다.

 

27. 니체는 진리를 찾는 철학 자체를 하나의 문제로 삼았다.

 

28. 니체가 철학과 맺는 관계, 그 자체가 우리에겐 문제이다.

 

29. 니체 철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삶과 건강이며, 그가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과 질병이다.

 

29. 니체가 철학자들을 죽음의 설교자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이 세계 속에서의 삶을 평가 절하하고, 어떤 생성도 없는 영원불멸의 세계를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30. 서구 사상의 또 다른 뿌리인 기독교도 죽음의 설교인 것은 마찬가지다.

 

30.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죽음 이후에 벌어질 처벌을 환기한다. 이들 역시 삶을 '죽음을 위한 준비'에 쓰고 있는 것이다.

 

3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조롱한다. "그들 역시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음을 비웃고 있다."

 

31. 니체는 철학이 죽음을 위해서 쓰일 게 아니라 바로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31.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 내고 삶 앞에서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냐고 묻는다.

 

33. 신학자들이 유일신의 영광을 찬미할 때, 그리고 철학자들이 보편적 진리가 발하는 빛에 눈부셔할 때, 니체는 그들의 왜소증을 걱정한다. 신이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왜소해진 것은 아닌가?

 

33. 신과 진리는 어떻게 위대해졌는가? 그것은 바로 '부정'을 통해서, 바로 인간이 무한히 작아짐으로써이다.

 

36. 미다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현자 실레노스를 잡았을 때, 그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실레노스가 마지못해 답했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너는 내게서 무엇을 들으려 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네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죽어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비극적인 인식인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고, 태어났으면 바로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

 

37. 넘쳐나는 삶에 대한 사랑이 언젠가는 삶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과잉에서 나오는 고통과 결핍에서 나오는 고통은 질적으로 다르다.

 

39. 니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세 개의 죽음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디오니소스의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39. 디오니소스의 찢겨짐은 세계의 분화와 개별화된 사물들의 탄생을 의미하고 그가 겪은 고통은 개별화된 사물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상징한다.

 

41. 세상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고통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놀이의 대상이었다.

 

41. 하나의 파괴는 다른 생성을 위한 것이었고, 하나의 건너뜀은 다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42. 디오니소스의 갈기갈기 찢겨진 죽음에는 어떤 죄도 수반되지 않으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재생의 약속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의식을 길러냈다. 그리고 그는 무서운 심판과 함께 돌아온다.

 

43. ", 크리토! 인생은 질병이다."

 

43.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와 인생은 아무런 참된 만족도 줄 수 없다. 따라서 세계와 인생은 우리가 집착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인식이 획득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극적 정신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비극적 정신은 체념으로 향한다."

 

45. 철학자들이 삶을 개념으로 포착할 때 그것 역시 일종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45. 니체는 플라톤의 동굴에 대해 확실히 비판적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과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있냐는 점에서도 그렇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철학자는 동굴 바깥에서 참다운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 동굴로 돌아오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동굴 속에서 깨달은 풍요로움 지혜들을 나누기 위해 동굴 바깥으로 나간다. 플라톤의 동굴이 무지의 장소이고 철학자의 눈을 멀게 한 장소라면,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은 깨달음의 장소이고, 치료와 회복의 장소이며, 초인으로의 변신이 일어나는 장소다.

 

47. 관객들은 연출자나 감독들이 적당히 숨겨놓은 구조를 발견하고는 마치 제 것이나 되는 양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더구나 극장은 사람들의 감각을 평등화하고 보편화하는 마력을 지녔다.

 

47. 극장에 갈 때 사람들은 그 자신들을 집에 놓고 간다.

 

49. 니체의 철학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사유로부터 삶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염세적 사유의 굴레로부터 삶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니체의 비판이 지향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이는 '철학을 비판하는 철학'으로서 니체 철학의 절반일 뿐이다. 왜냐하면 삶을 속박하는 사유가 비판 받아 마땅한 것처럼 사유를 속박하고 있는 삶 역시 비판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9. 지배적 사상은 지배적 삶의 방식과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50. "그대가 신앙을 가질 때까지 신앙을 설교하라. 그 다음부터 그대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설교할 것이다."

 

51. 항상 사상가를 뒤쫓는 사상가, 다른 사람에 관한 사상가, 그들이 바로 철학자들이다.

 

51. 그 사회의 가치에 복종함으로써 길들여지는 것, 그리고 나서 그 가치를 미덕으로 숭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처한 가장 커다란 위기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사회는 자신을 구원해 줄 미래적 가치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51.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고, 존경 받고 있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이 어째서 광기가 아니면 안되었던가를 이해하는가? .... 모든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미치게 하거나 미친 짓을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52. "광기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 '보편적 신념'이다." 다시 말해서 '미쳤다'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 '보편적 신념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53. 광인의 시간은 미래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 다음에 오는 시간이 아니다. 언젠가 이해되어야 하거나 언젠가 도달해야 할 시간도 아니다. 미래란 '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이다.

 

53. 미래의 철학자들은 가치의 평가자이며 창조자이다. 이에 반해 철학적 노동자들은 가치를 내면화하는 자이다.

 

54. "미래를 건축하려는 자만이 과거를 심판할 권리를 갖는다."

 

55. 니체에게 심판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정을 법정에 세우는 것, 심판을 심판하는 것, 가치들에 대해 가치 평가하는 것이다.

 

56. 그가 기독교는 유죄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심판한 것은 죄가 아니라 병이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부패이며 타락이다.

 

56. “우리는 그 숙명적 불행이 시작된 재수 없는 날을 기점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왜 기독교 최후의 날로부터 계산하지 않는가? 오늘부터, 모든 가치의 재평가가 이루어진 오늘부터 따져서 말이다.”

 

56. 니체가 철학에 보내는 권고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56.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본래부터 사랑의 학문이다. 필로-소포스 '지혜에 대한 사랑', 그것이 철학이다.

 

57.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토너먼트 식 칼 싸움을 도입했다. 진리를 가리기 위한 칼 싸움.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다.

 

57. “변증법은 상대방을 설득시킬 품성을 잃어버린 자가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움켜쥐는 마지막 필사의 무기다.”

 

57.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구속으로 변질되는 일이다.

 

58.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파괴적 행동도 아니고 숙명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체념적 행동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적 행동이다.

 

59. ‘삶을 바꿔 보라’-철학을 떠난 철학자들이 철학의 목표로 제시하는 것

 

59. 그가 전하려고 했던 복음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 '회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2. 강한 자와 선한 자

 

60. 도덕은 사물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가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61. 도덕은 자신의 행동 기준이 되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62. “도덕 역시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63. 니체는 바로 도덕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는 것까지 일반화하기 때문에 도덕은 기괴하고 불합리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항상 절대적 태도를 취해서 특수한 형태에 대한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63. 도덕에는 소심함 말고도 다른 요소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지이다. 우리가 우리 시대 우리 환경에서 나온 생각들을 쉽게 일반화하는 데는 다른 민족 다른 시대, 다른 과거에 대한 빈약한 지식도 이유가 된다.

 

64. 니체는 도덕을 가리켜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 소심함, 소심함, 소심함이 뒤섞인 잡탕"이라고 불렀다.

 

65. 계보학은 무엇보다도 보편화에 반대한다. 보편적 가치란 가치에 있어 차이의 상실을 의미한다.

 

65. 문제는 역사학이 뿌리나 열매를 신성화하기 위해서 차이들을 난폭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66. 모든 사물의 기원은 천 겹이다.- 차라투스트라

 

66. 계보학자는 반듯해 보이는 평면의 굴곡들을 보는 사람이다.

 

67. 계보학자는 덮여 있던 이질성을 확인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같은 표면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68. 화폐란 도덕적 판단처럼 가치의 표시이다.

 

69. 화폐의 위조란 가치를 조작하는 행위다. 가치의 위계를 역전시켜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도덕에서의 화폐 위조 행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화폐 자체가 가치의 위조물이자 마법이며 '철저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치의 보편적 기준을 찾아 나선 도덕학자들의 노력은 곧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제학자들이 떠받드는 화폐는 하나의 가치 척도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사물이나 활동이 성공적으로 교환되도록 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법이며 뛰어난 위조 행위인 것이다.

 

70. 볼테르든 루소든 니체가 볼 때 문제는 도덕화 자체다. "인간(과 자연)의 도덕화, 그것이 바로 문제다."

 

72. 니체는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들이 역사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치의 가치를 묻는 계보학자는 그러한 도덕적 판단들이 어떠한 토양에서, 어떠한 건강 상태에서 나온 것인지를 진단한다.

 

75. 니체는 '좋음'의 판단은 '좋은 사람들' 자신에게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75. 지금 미덕들로 숭상되고 있는 가치들이 '누구의 것인지',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77. 귀족적 평가 양식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귀족들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와 달리 노예는 타자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서 시작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은 귀족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77.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79. 강자들, 귀족들의 행복한 미소를 비난하고 자신들의 고통을 정당화해 줄 독특한 해석학

 

80. 양에게 독수리의 힘을 요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면 똑같이 독수리에게 양처럼 약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80. 자신이 자신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은 매우 불합리하다. 억제하는 자신과 억제되는 자신이라는 분리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83. 자비야말로 법을 넘어서는 강자의 특권이다.

 

84. "반동적 힘은 능동적 힘으로부터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을 빼앗는다."

 

84. 약자가 뭉쳐서 강자를 이긴 것이 아니라 강자를 약자로 만드는 것을 통해, 즉 강자로 하여금 더 이상 강자일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승리한 것이다.

 

85. 성직자라는 의사들은 "의사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상처를 입혀서" 자신들을 필요하도록 만들며, "상처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상처를 감염"시킨다.

 

86. 니체는 노동이야말로 충동을 억누르는 훌륭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에 사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생활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계획표대로만 생활한다. "완전한 자기 망각, 단호히 고정된 생활 양식, 완전히 짜여진 시간, 그리고 그것을 위한 훈련."

 

86. 도덕의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동물원이다. "도덕은 하나의 동물원이다. 덫에 빠져 있을 때조차 자유보다는 철책이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거기에는 성직자라는 맹수 조련사가 있다는 것."

 

90. 악으로 지금 현재의 조건 속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과의 마주침이다. 다른 관계 속에서 만났거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해로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악이다.

 

90. “선악을 넘어선 영역에서도 여전히 좋은 것나쁜 것은 존재한다.”

 

91. "나의 철학은 위계를 향하고 있다. 도덕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다."

 

3. 투시주의와 광학의지

 

95. 자신과 거리를 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보다 '차이(거리)'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서 니체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단적으로 말해 다른 해석학과 니체의 구분선은 제우스의 의중에 있기보다는 헤르메스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103. 하버마스는 우발적이거나 가변적일 수 있는 대중적 욕망이 초래하는 불안정보다는 합리적 대표자들이 권리를 위임 받아 토론을 벌일 때 안정된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103.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도 없다."

 

103. 진리에게 있어 넘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은 왜 동일한가?

 

104. "나는 말하리라.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105. 활동과 분리되지 않는 활동 주체는 결국 활동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만큼이나 많아지는 것이다.

 

107. 그들의 문제는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종족이든 국가이든, 교회이든 문화이든 간에 보전을 위한 하나의 투시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108. "만약 내가 포유동물의 정의를 하고 나서 낙타 한 마리를 본 뒤에 '봐라, 포유동물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진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본 진리이지, 진리 자체는 아니다."

 

108. "항변할 수 없다는 것, 그 때 증명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116. 그녀(코프만)는 니체의 스타일, 특히 경구나 은유가 '저속한 무리를 내쫓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보면 니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착할 수 있는 독자를 선택하기 위해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 된다.

 

118. 결국 문제는 니체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가로지르고 있는 혁명적 힘들을 추적하는 것이며, 그것과 만나는 일이다.

 

4. 우상의 몰락과 위대한 정치

 

125. '근대 정치 비판'에서 비판이라는 말이 향하고 있는 곳은 정치라기보다는 정치의 상실, 즉 근대성이다.

 

125.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이 보여준 폭력성이 정치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차이'를 억압하는 '동일성의 정치'가 된다.

 

127. 국가는 근대의 정치적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128. 국가의 원형이 군사적 수호신을 생산하기 위한 무의식적 활동에 있다는 것을 직관을 통해 간파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132. 니체는 "철학자들이 종래 생각해 온 바의 개인, '단일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오류이며, 개인은 개별의 실체, 하나의 원자, 사슬 안의 고리, 그냥 과거로부터 내려온 존재 등이 아니며, 개인은 그에게까지 이르는, 그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하나의 연속적 전체를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135. 자유는 체제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들이 강조하는 자유에는 경찰들이 그어놓은 청색 선이 있다.

 

142. 니체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힘들을 다스리는 훌륭한 수단 중의 하나가 노동이라고 말한다.

 

147. 그리스인들은 동시대인들과 경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죽은 사람, 즉 자신의 선조들과도 경쟁했다.

 

152. 우리는 권리를 양도하는 만큼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5. 권력의지와 영원회귀(1)

 

153. "'의지'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자신 안에서' 경험할 수 있고, '권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하여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자명한 것 안에 모든 오해들의 뿌리가 존재하며 이러한 오해들은 '권력의지'라는 합성어 주위에 끊임없이 쌓이게 된다."

 

153. "나는 이 통찰을 길 위에서 얻었다. 그것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황급히 손을 뻗어 서투른 말(언어)을 사용해서 잡았다. 그러자 통찰력은 말라비틀어져 말에 매달리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응시하면서 내가 이 새를 잡았을 때 왜 행복한 느낌이 들었는지를 이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154. ''에서 시작한 기독교의 창조론이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에서 시작한 원자론은 세계의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155. 원자론은 신의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155. "저울에 달아보아 차이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다이아몬드와 흑연과 석탄이 동일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동일한 어떤 것, 불변의 어떤 것을 공상해야 했던 것 아닌가?

 

163. 과학사를 통해 볼 때 자연학은 항상 자연을 필연적인 '법칙'아래 두려고 했으며, 절대적인 체계, 하나의 이데아를 꿈꾸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자연을 차라리 "자연의 바깥에, 즉 영혼이나 주체에 위치시켰던 것이다."

 

165. 니체에게 강약의 문제는 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166. 강함은 무엇보다도 '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넘치는 것', '선사하는 것', '공격하는 것' 등으로 그려진다.

 

167. 능동적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것이 반동적 힘의 내적 의지이다. 우리는 힘의 질적인 차이가 그 내면의 의지, 즉 권력의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1. 의지는 명령하는 것이다. 힘이 다른 힘에 자신이 영향을 강제할 때 표현되는 것이 의지이다.

 

171. "의지란 본래 주인으로서 욕망을 다룬다. 즉 그것에 방향과 한도를 지시하는 것이다."

 

173.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생명 자체는 권력의지다."

 

176. 나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도덕을 혐오한다. '이것은 하지 마라! 단념해라! 너 자신을 극복하라!'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도덕은 어떤 일이든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록 자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도록, 밤은 밤대로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이것을 잘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176. 어떤 행동이나 힘과 마주할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 그것을 '부정으로 다루는가', 아니면 '긍정으로 자극하는가'가 권력의지의 질적인 차이를 말해 준다. 부정의 권력의지가 힘을 다룰 때 그것이 가져오는 것은 "약화"이다. 긍정의 권력의지가 힘을 다룰 때 그것은 "저축이고 강화"이다. "나는 약화시키는 것, 초췌하게 만드는 것 모두에 대해 아니오를 가르친다. 나는 강화하는 것, 힘을 저축하는 것, 힘의 감정을 긍정하는 것 모두에 대해 예를 가르친다.

 

6. 권력의지와 영원회귀(2)

 

185. 생성과 소멸, 건축과 파괴는 아무런 도덕적 책임도 없이 영원히 동일한 무구의 상태에 있으며, 이 세계에는 오직 예술가와 어린 아이의 유희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아이와 예술가가 놀이를 하듯 영원히 생동하는 불은 놀이를 하며, 무구하게 세웠다가 부순다. 영겁의 시간 에온(Aeon)은 자신과 놀이를 한다. 마치 아이가 바닷가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듯이... 이따금 그는 놀이를 새롭게 시작한다.

 

186. 학자들 중에도 동일한 사건의 반복으로서 영원회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대부분 "손실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세계" '무한한 시간'의 좌표축에 위치시킨 후 영원회귀를 이해하려는 데서 나오는 오해다.

 

187. 시간의 무한성과 조합하는 수의 유한성은 결코 니체의 영원회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아니다.

 

191. 영원회귀를 하나의 과학적인 법칙으로서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는 영원회귀가 의지의 문제, 다시 말해서 권력의지의 문제라는 점이다.

 

191. 부정의 권력의지는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의지나 삶은 형벌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192. 삶은 죽음과 반대말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만이 죽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만이 새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7. 긍정은 차이의 생성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차이를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은 부정이다.

 

7. 인간

 

210. 지구는 반문한다. 내가 인간을 위해 준비된 혹성이라고? 하하! 인간이 지구의 대표라고? 그런 건 "숲 속의 개미가 자신이야말로 숲의 존재 목적이라고 단단히 믿는 것"과 같다. 혹시 인간은 "세계의 희극 배우"로 데뷔할 생각은 없는가?

 

222. 그런데 니체는 왜 신의 죽음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신앙의 대상인 신이 죽었으므로 신앙도 죽을 것이고, 따라서 좋은 삶을 위한 실천과 행동이 신앙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복음이 사실상 신의 죽음과 통한다고 본 것 같다. 더 이상 이 세계를 검열하는 심판이 사라졌으며, 저 세계에서 죄를 묻는 일은 없다는 것. 천국이란 믿음(신앙)의 문제이기는커녕 새로운 사람의 방식이고 실천이라는 것.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그렇게 요약했다. 신들이 죽었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삶을 창조할 초인이 살기를 기대한다.

 

8. N개의 얼굴, N개의 철학

 

236. 활동의 순간마다 표현되는 자아를 항상 동일한 이름 아래 가두어 둠으로써 그 변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단일 주체에 대한 환상'처럼, 다양한 여러 작품들을 단일한 저자의 이름 아래 위치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름은 신체의 변신을 이해함에 있어 큰 방해물이다.

 

237. 오해와 착각이란 다른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신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37. 나와 내 작품은 별개의 문제다... 나를 다른 사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나를 나 자신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250. 아주 희미하게라도 이성의 자유에 이른 자는 지상에서 스스로를 방랑자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느낄 수 없다. 여행자는 하나의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목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250. 니체는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어렵다

이 책. 정신을 집중하기 매우 어려운 책 중의 하나였다. 읽다 보면 어느새 정신은 딴 데 가 있고 책장만 넘기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 수였다. 물론 책의 앞부분은 호기심과 어느 정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나, 이후부터는 니체와의 연결이 직접적으로는 느슨해지면서 정치학, 근대학 서적으로 변모해 가는 듯 하다.

나는 니체라는 자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방식의 저자 풀이와는 다른 책이었다. 저자는 곧 니체로 빙의 되면서 그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읽다 보면 어느 이야기가 니체의 이야기인지, 저자의 생각과 표현인지 혼동되는 경우도 잦다.

무엇보다 니체의 기본 저작들과 그의 삶에 대한 충분한 습득 없이 그를 풀이하는 저자의 책을 만난 것이 아쉽다. 더불어 빈곤한 나의 철학과 정치학에 대한 지식도 이 책을 어렵게 읽는데 한몫 했다. 배워야 할 것들이,알아야 할 것들이 끝이 없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 책 읽기였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철학이라하면 왠지 음울하면서도 진지한, 하지만 신비감을 갖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왜 사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등등 답하기만은 쉽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유의 학문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니체라는 사람은 그런 철학의 음울하고도 무거운 이미지를 가뿐히 털어버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바른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니체는 철학이 죽음을 위해서 쓰일 게 아니라 바로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31p”

 

그는 현상계를 충실히 보고 애정을 쏟는 철학자인 듯 하다.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상계를 넘어선 이데아만을 추구하는 철학이 아니라 생의 철학, 삶의 철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 자체를 우리가 보고 대하는 현실로 인지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현실 읽기와 더불어 미래를 보는 철학자였던 것 같다.

 

그 사회의 가치에 복종함으로써 길들여지는 것, 그리고 나서 그 가치를 미덕으로 숭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처한 가장 커다란 위기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사회는 자신을 구원해 줄 미래적 가치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 51p”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종교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그가 전하려고 했던 복음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 '회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59p "

 

그런데 니체는 왜 신의 죽음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신앙의 대상인 신이 죽었으므로 신안도 죽을 것이고, 따라서 좋은 삶을 위한 실천과 행동이 신앙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복음이 사실상 신의 죽음과 통한다고 본 것 같다. 더 이상 이 세계를 검열하는 심판이 사라졌으며, 저 세계에서 죄를 묻는 일은 없다는 것. 천국이란 믿음(신앙)의 문제이기는커녕 새로운 사람의 방식이고 실천이라는 것.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그렇게 요약했다. 신들이 죽었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삶을 창조할 초인이 살기를 기대한다. ? 222p ”

 

신은 죽었다라는 말의 이면 속에는 종교에 속박되어 현실의 삶이 행복과 긍정이 아니고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현 세상 이후의 또 다른 세상인 눈먼 천국을 위해 현재의 삶을 힘들게 살아내는 자들을 위한 니체의 해방선언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후대 조셉캠벨등의 사상가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또 하나의 진리’(니체는 별로 좋아할 것 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는 아닐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잘은 모르지만 니체라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
그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사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 이면에까지 섬세한 눈길과 천재적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긍정을 매우 긍정하는 사람’ ‘사고의 역전을 보여주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을 하는 자의 뇌는 일반인과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의 주제에 대해 그와 같은 관심과 길고 긴 사유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한 나에게는 벅차게만 느껴진다.

 

3. 추가로 읽어보고 싶은 책

-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기도 하며 많이 회자되는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를 더 알기 위해 이 사람을 보라

 


<
특히 와 닿는 구절>


77.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104. "나는 말하리라.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207. 긍정은 차이의 생성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차이를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은 부정이다.

 

236. 활동의 순간마다 표현되는 자아를 항상 동일한 이름 아래 가두어 둠으로써 그 변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단일 주체에 대한 환상'처럼, 다양한 여러 작품들을 단일한 저자의 이름 아래 위치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름은 신체의 변신을 이해함에 있어 큰 방해물이다.

 

237. 오해와 착각이란 다른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신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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