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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5일 02시 24분 등록

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 동현 옮김 한국경제신문,2009

 

저자에 대하여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Perdinand. Drucker)

1909 11 19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였다. 빈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933년 런던에 이주하여 경영평론가가 되었다. 1937년 영국 신문사의 재미통신원으로 도미하여 학자 겸 경영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1942년에 집필한 『산업인의 미래The Future of Industrial Man(독일에서는 『산업사회의 미래』로 번역)에서 20세기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연구했다. 이 저서의 출간으로 드러커는 194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에서 2년간 경제 분석가로 일하게 되었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법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로써 학문적 분과로서의 경영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다. 그 후 드러커는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시티코프, IBM, 인텔 등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 정부 부처, 국내외의 비영리 단체를 위해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다. 1950년과 1971년 사이에는 뉴욕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를 역임했고, 1969년에 이 대학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총장상을 받았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고, 미국과 벨기에, 일본, 스위스, 스페인, 체코 등지의 대학에서 다양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는 클레어몬트 대학의 포모나 칼리지에서 극동 지역 예술을 가르쳤다.

피터 드러커는 사회, 경제, 정치, 경영의 모든 주제를 다룬 뛰어난 저술가로서 30여 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의 저서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총판매 부수는 600만 권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2005년 11월 11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현대를 대량생산원리에 입각한 고도산업사회로 보고, 그 속에서 기업의 본질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전개하였다. 기업은 영리심의 존재와 관계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이윤은 손실회피·생산액증대를 위한 2대 지도원리로써 미래의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필요한 비용에 불과하다는 그의 이론은 이윤이나 비용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보여 주었다. 제도파적 기업관(制度派的企業觀)에서 분권관리(分權管理)나 직장자치를 전개하는 등 미국에서는 크게 체계화된 경영관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 『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 등이 있다.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지식이 부족하거나 바보다, 그에 관한 자료는 출판사 자료 인용했다.  사실 자서전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책의 원제에 구경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그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들어온 글 귀


p8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과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통해서만 그 인간에 대해 더욱 입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p11 이 세상에는 약 3 5,000종의 파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파리만 존재한다. 그들에게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이다.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두 발로 걷는 인간들보다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니면 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

 

p16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는 인간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p21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전요원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p31
네 말이 확실히 흥미로운 관점이기는 하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을 거라는 점도 확실하지,  적어도 우리가 옆방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 피터, 내가 너를 비난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크란츠에 대해서는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p37 “얘들아,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거라. 무슨 일이 벌러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손녀들 가운데 하나가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기분이 상해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 전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


p67
무엇보다 저 지방색이 강하고 독선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늙은 여편네는 공동체란 것이 단지 수입이나 서비스나 현대의학의 기적을 분배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동체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었다.

 

p68 그들이 갖고 잇는 가치관 즉 일과 기능에 대한 존중과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생각해 주는 것 등,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치는 분명히 20세기에는 없어졌거나 부족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그런 가치가 없다면 그들은 부르주아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를 잃은 프롤레타리아일 뿐이며, 만자 표시를 두른 젊은 여드름쟁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p72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이간에게 고나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햇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벼노하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헤메와 게니아가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73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개연성을 가진 동시에 생생한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의 사소한 약점을 묘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과 개성은 너무 막연하고 양면성이 강해서 심지어 복합적이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이 끊임없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짜증나게 하고 때로는 괴롭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실체를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내가 붙잡는 것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p96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p111 “도대체 게니아가 무슨 말로 아버지를 설득했죠?” 아버지가 당시 이야기를 들려 주셨을 때 나는 이렇게 물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너도 게니아가 내게 설득 같은 것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잖니.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서 가르치라고 통보했을 뿐이야. 내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누스비움 박사가 방문했다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들어 왔어, 머리는 짧게 깎아서 머슴애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스코틀랜드 트위드로 만든 스웨터를 입고 내 앞에 섰지. 인사나 소개말 따위는 일체 생략하고 나보고 월요일과 수요일에 수업을 할 건지 아니면 화요일과 목요일에 할 건지 선택하라고 하더군. 나는 더듬거리면서 월요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게니아가 이러더군. ‘좋아, 화요일과 목요일 6시 30부터 9까지. 그리고 저녁을 제공하겠소.’”

그게 바로 게니아였다. 나도 그녀의 활동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p119 그녀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p137 그가 유명해서 대담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기에 출현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p140  내가 공연을 끝냈을 때(파나마 운하가 세계 무역에 미친 영향에 대한 발표) 헤메가 특유의 목소리로 뱉어낸 말은  내 생애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된 교훈이 됐다.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 마.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계수치는 의심해 봐야 해. 내가 직접 경험해본 일이야. 난 거의 12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수출현황에 대한 통계를 담당하고 있었어.

 

p144 호사가들이 비난한 대로 그녀에게는 원칙이 없었다. 그녀는 엄청난 교육적 변혁기에 학교를 시작했다. 그 당시가 바로 존 듀이와 마리아 몬테소리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교육이론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설사 아는 것이 있다고 해도 전혀 써먹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교육의 중요성을 믿었고 그 믿음을 굳건하게 지켰을 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학교는 여성의 평등으로 향하는 약간의 전진에 불과했다. 나는 그녀가 과연 교과목의 중요성을 알기나 했을지도 의문이다. 대학입학시험이 바구니 짜기나 점성술을 요구했다면 그녀는 아마 그것을 가르쳤을 테고, 게다가 아주 잘 가르쳤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떤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이념도 없었다. 그녀가 취리히에서 학창시적을 보냈을 때 온갖 정치인들을 접했을 텐데도 말이다. 당시 취리히는 마르크스주의에서부터 무정부주의와 신지학, 시오니즘에 이르는 온갖 정치사상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특정한 필요성과 그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p148 그 책의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 제국 전설의 스웨덴 판에 해당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배가 난파당해 표류하던 선원이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도시는 대부분 상인이었던 시민들의 탐욕과 자만심, 거만함 때문에 침몰했으며, 시민들은 죽음이라는 안식이 없이 영원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일요일에 교회종이 울리면 그들은 호화로운 교회로 가서 충실하게 예배에 임했지만, 나머지 6일 동안은 완전히 신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평일에는 서로를 속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거래했다. 그들은 구식의 비싼 옷을 걸쳤고 으리으리함과 화려함에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시처럼 그들은 죽은 몸이었다. 살아있는 세계에서 온 선원은 깊은 흥미를 느꼈지만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그들과 똑같은 움직이는 시체로 변하게 될 테고, 결코 대지와 태양, 사랑과 인생, 그리고 진정한 죽음이 있는 세계로 복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p153  
‘전쟁 이전’ 현상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모든 사람을 마비시키는 유독 스모와과 같은 존재로, 모든 사고기능과 상상력의 숨통을 조였다. ‘전쟁 이전’에 대한 집착은 나치당이 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나치즘은 분명 혐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찰스 린드버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 과거를 향한 물결이 되고자 기를 쓰고 있을 때 나치즘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향한 물결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 ‘전쟁 이전’ 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들조차도 ‘전쟁 이전’이라는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거의 질식할 정도의 수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193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p155
그들이 품고 있떤
전쟁 이전의 환영에서는 천박하게 경제적 실체를 따지지 않았다. 실제로 게니아의 살롱에는 경제계의 인물들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부각됐을 정도였다. 그곳에는 융대인과 비유대인들이 함께 살면서 완벽한 우정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p161-163“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글씨체를 갖고 있단다. 너도 동의하니?” 나는 당연히 동의를 했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하자꾸나.그래야 너하고 내가 네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 , 여기 네가 쓸 학습장들이 있다. 너는 여기에 학습진도표를 한 달 동안 채워야 한다. 그리고 나는 네게 준 학습장의 진도표와 똑같은 것을 내 책상서랍에 보관하고 있겠다. 보거라. 난 읽기와 철자법에 대해 아무런 목표도 정해 놓지 않았지만 네가 원할 때마다 직접 기록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이 남겨놨다. 네가 무엇을 읽었고 무슨 내용이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또는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등을 기록하는 거야.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내용을 적어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매주 네가 작성한 작문을 여기에 적어두어라. 일주일에 두 편이란 점을 명심하고,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산수 연습을 위한 부분이다. 여기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단다. 하나는 이미 네가 알고 잇는 내용에 대한 쪽지시험용이란다.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같은 것들 말이다. 다른 부분은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을 연습하는 데 사용해라. 먼저 분수부터 하자꾸나. 매주 월요일에 네가 예상하는 진도를 기록하고 마지막 날에 실제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를 적어라. 다음에 글씨 연습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꾸나. 내 생각에는 매주 네가 쓴 작문 가운데 글씨가 가장 보기 좋고 알아보기 쉬운 문단을 선택해서 그 부분만 한번 더 써보는 거야. 그 정도는 너에게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주 한 번씩 너하고 나하고 함께 학습장을 보자꾸나. 물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오너라. 그리고 네 학습장에 그 동안의 진도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나중에 네가 원한다면, 내가 보관하고 있는 학습진도표에도 네가 직접 진도를 기록하렴. 그렇게 해준다면 내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이 교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는 데다 나는 학교도 운영해야 하니 꽤나 바쁘지 않겠니?

 

p166-167 그녀는 조금도 ‘아동중심’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아동의 학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 만에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웠고 한 주가 지나면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그들의 장점을 모두 파악했다.

 

p167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미스 엘자는 그런 일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숭배했다. 50년 뒤에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신이 미스 엘자와 대단히 많이 닮았을 것이란 생각이(검은 봄바진과 코안경,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 등 그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장이 내게는 별로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의 장점을 발견하는 일에 관한 한 미스 엘자는 신이었으며, 그것은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이야기하는 그 신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p167-168 미스 엘자와는 대조적으로 미스 소피는 전적으로 아동중심적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몰려다녔다. 그녀가 자신의 무류에 아이들을 앉혀 놓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심지어 남성적인 모습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하는 다 큰 5학년 남학생들도 그녀의 품에서 훌쩍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은 기쁜 일이나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 때 마다 그녀를 향해 달려가곤 했으며, 미스 소피는 그들에게 격려나 칭찬의 말고 함께 어깨를 다독여주거나 키스를 해 줄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대신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모든 학년이 미술과 공예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5년 동안이나 같은 학생들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스 소피가 대하는 학생은 그 대상이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언제나 아이들(나는 스스로를 분명 남자라고 생각했다)이었다. 어쩌면 학생의 성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p170 미스 소피의 혁명적인 사고는 그녀의 작품이 아니다. 이 개념은 길고 복잡한 조상을 갖고 있다. 그 시초는 19세기 초 교육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가 바로 프뢰벨이라는 유치원의 창시자다.  초등학교 교과과정의 하나로 아동들에게 수공예를 가르친다는 그의 생각은 유럽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비국교도인 세이커 교도들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19세기 중엽에 다시 유럽으로 들어와 스웨덴에 정착하게 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것은 아마 시오엘이라고 불리던 장인학교운동이었을 것이다. 미스 소피는 젊었을 때 스웨덴에서 교육을 받았다. 비록 그녀가 인상적인 스웨덴 학위를 갖고 있었지만, 여자가 대패질을 하고 남자가 바느질을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p179  어쩌면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밑에서 지도를 받은 일년 동안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그들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교직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p180-181  나는 라틴어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쉽고 그만큼 공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리스어는 대단히 격조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생들은 그것을 얼마나 지루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스스로 수업을 끔직하고 지루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 정도로 능력이 떨어져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고 학생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자 나는 미스 엘자와 미스소피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선생들과 그들 사이의 엄청난 차이가 그들이 가르친 것이 로마사 같은 과목보다 훨씬 흥미로워서 생긴 차이는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적 수준은 그들이 가르 쳤던 과목이 오히려 더 낮았다. 하지만 미스 엘자는 결코 그것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도 흥미롭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미스 소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망치로 못을 똑바로 박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학생인 내가 결코 그 방법을 습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p181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내 자신을 연마하는 데 게을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문적인 작가가 별 생각 없이 빠져들게 되는 위험이다. 나는 자신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p183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내게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는 교훈이다. 그 두 노처녀는 표준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모법을 보였던 것이다.

 

p186나는 음악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잘 들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언제나 성과를 통해 학습을 해왔으며, 효과가 있거나 성과를 거두는 사람을 찾아 그것을 배우는 것이 내게 알맞은 학습방법이란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없었다. 성공만이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몇 년이 더 걸렀다.

 

p187 아마 그것은 마르틴 부버의 초기 저서였던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다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p187-188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사실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은 언제나 좋은 선생님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류급 선생들에게도 과도하게 높은 점수를 줄지 모른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선생 가운데 어떤 선생은 수업 중에 재미있는 농담만 하는데, 그들은 한낱 재담가에 불과해서 학생들을 웃기기나 한다. 다른 선생은 학자로서 높은 명성을 갖고 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기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인기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선생을 가리켜 “우리는 그분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어도 된다. 학생들은 분명히 좋은 선생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p188 하지만 또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선생이란 의미가 대단히 모호한 용어라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쪽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효과적인 선생을 만드는가?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선생 둘이 함께 같은 일을 했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며, 어떤 선생을 최고로 만들 수 있었던 요소가 다른 선생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코 적용된 적이 없었던 것이든지.

p193-194  ‘선생관찰’을 통해서 처음에 도달했던 결론에 따르면, 선생들은 어떤 유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유일하게 옳은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치는 능력은 재능이고, 좋은 선생은 그 재능을 타고 났다. 그것은 베토벤이나 루벤스, 아인슈타인이 자신만의 재능을 타고 났던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가르치는 능력은 일종의 개성이지 기술이나 숙련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에 설쳐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르치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졌기때문에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이끌어가게 한다.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하기 때문에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효과적인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고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p197-198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되어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선생은 타고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을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이든 그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타고난 선생은 자신의 재능에 교육법을 추가함으로써 아주 쉽게 더 훌륭한 선생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뒤에 그는 만능선생이 되는데, 여기서 만능선생이란 대규모 강연장이든 소규모 교실 수업이든, 초보자든 석사과정이든 어떤 조건에서도 뛰어난 교육효과를 거두는 선생을 의미한다.

미스 소피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급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p199
그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결과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다. 이 신앙에서는 박사학위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고등지식이 가르침에 적절한 (실제로 유일한)요건이라고 한다.


p200
우리는 모든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가
학습하는 유기체이며, 이들 유기체는 학습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 것이다.

한세기에 걸친 연구에도 우리가 이제까지 학습에 대해 파악하고 잇는 내용은 미스 엘자가 인식하고 있던 내용보다 더 많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알고 있었고 실행했던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니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은 장애요인이다).


p201
선생과 교육자가 공유하고 잇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학생의 실패를 언제나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p214
현대의학은 가장 위대한 성과물을 낳았다. 예를 들어 세균학이 발전하면서 전염병을 막고 치료할 능력이 생겼으며, 마취로 외과수술의 고통을 견디게 됐으며, 소독법과 무균처리로 2차 감염을 통한 환자들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질병은 개별적 원인과 개별적 징후와 개별적 치료법이 있는 개별적인 것이다. 세균학자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모든 전염이 개별적이라는 점을 입증한 것이었다. 모든 전염병은 특정 세균이 원인이 되고, 벼룩이나 모기 같은 고유한 매개체를 통해 퍼지며, 특정조직에서 특정작용을 한다.


p215
정신분석학은 모든 정서장애에 대해 보편적인 심리적 다이나미즘을 가정한다. 프로이트는 그러지 않았지만 당시 의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많은 정신병이
신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아, 이드, 초자아의 힘이 모두 영향을 미쳐 잠재의식에서의 성적 억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p216  의학계의 저명한 의사들은 의학이 완전히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증명이 가능한 결과와 통제된 실험을 강조했다.

일차적으로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주의자들은 정신분석의 결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능의 복귀인가? 아니면 근심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정신분석이 어떤 사람에게 치료의 역할을 하는가 그렇다면 정신분석을 받은 그토록 많은 환자들이 영구적으로 환자가 되거나 적어도 계속해서 정신분석학자를 다시 찾아오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만성적 상태가 완화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환자가 치료에 중독되고 그것으로 고통을 더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이 이상한 치료법의 결과를 정의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적합한 대조군은 무엇인가?


p220
프로이트의 윤리학과 정신분석의 윤리는 무엇인가? 정신분석의 결과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판단하고 측정할 수 있는가? 우주론과 임상치료는 어떻게 일치될 수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사실만은 아주 분명하다. 프로이트는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러고 나서 그를 거부한 것이다.

p225 프로이트의 시대에 빈에서 존경받는 부모라면 수입 문제를 자녀와 함께 논의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피하는 주제였다. 하지만 돈 문제는 양측 모두에게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현재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런 문제는 경제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든 일어난다.

 

p227 빈곤 신경증은 끝내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나 수입이 충분치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걱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는 자신이나 가족, 이웃의 사회적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돈에 대해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p230-23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인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내면적인 경험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종합이론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낳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이트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시인인 프로이트를 한 개체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이런 통합으로 정신분석학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지만, 동시에 그만큼 허약해지기도 했다.

이 시도는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정신분석학은 시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서구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19세기의 체계 (마르크스, 프로이트, 케인스)는 모두 가학과 마법을 통합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순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로 이어지는 논리와 경험적 연구를 모두 강조했다.


p232
완공된 건물이 공개되지 전의 준비작업 틀을 프로이트만큼 정교하게 해체한 사상가는 없다. 그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과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물음을 논의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오직 무의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방법론에 대한 문제, 결과에 대한 정의와 대조군 실험의 문제, 완전히 신비적인 방법을 비롯해 모든 심리요법의 치료성과가 똑같다는(혹은 비슷하다는) 등을 논의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 및 치료법과 인간의 인성 및 철학이라는 신화를 한데 포함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이중적 특성을 논의하는 순간에 말이다. 그는 이런 질문을 무시함으로써만 통합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p233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 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p252 나는 그분에게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형벌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라는 것이 삼촌의 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범죄의 형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에 대한 명쾌한 내용의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p253나는 한스 삼촌이 법척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형벌이라고 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대단히 빽빽하면서도 가시가 많은 관목숲과 같앗다.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흄, 벤담은 물론 로스코 파운드, 에를리히, 우리 한스 삼촌에 이르는 최근의 인물들까지 포함돼 있는데, 그들은 형별에 대한 복수나 사회보호, 정화의식, 사회복귀, 억지수단 등 서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들은 모두 무엇을 형벌로 삼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형벌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벌의 내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문화나 문명, 법조문에 상관없이 사형과 사지절단, 추방, 구금, 벌금 등 형벌이 전부 똑같았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떤 문화나 문명이든 반드시 형벌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p 254  
만약 수십가지 설명들이 모두 전적으로 다르지만 자명한 사실을 전제로 해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뒤에 기초적인 논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합리화이고 결국 요점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내가 보기에 요점은 형벌에 이쓴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형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하나의 사실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만연된 현실이었다. 진정 설명이 필요한 것은 범죄의 존재였고,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분야였다.


p265
“하지만 오늘날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다 그렇지. 예의바른 친구들이라 특별히 유익한 일도 못하고 남에게 심하게 해가 되는 일도 못해. 하지만 이제 유럽 어딘가에서 사회주의가 정권을 잡게 되면, 그건 우리가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독재정치가 되거나 고위 성직자와 관료들이 지배하는 정부가
  될 거야. 꿈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거지.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했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버렸어. 내가 영국에서 예수교 재단의 공립학교에 다닐 때  마흔여덟 명이 같이 졸업했지. 그 가운데 열여덟 명은 아직 살아 있지만, 나머지는 플랑드르의 무덤에 누워있어.


p268  
사회주의는 1914 8월의 총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사회주의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동지들 간의 상잔인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의 끝이 아니었다. 신학은 신앙보다 더 질겼다. 그것은 또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의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으로서 사회주의의 종말이었다. 비록 영원히 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세대 전체에 관한 한 말이다.

그 이후로 사회주의적 이상과 권력의 실체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결국은 권력이 승이를 거두었고, 사회주의 약속과 민족주의 열정 사이의 투쟁에서 언제나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p270 나는 20대 초반에 커다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됐는데, 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 앞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주변에 30대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플랑드르나 베르됭, 러시아, 이손초의 장교 무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일생동안 불구로 생활했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육체적으로 불구였지만, 대부분은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았다.


p306
흑인왕국 다호메이는 호혜와 재분배 위에 안정적인 사회와 건전한 경제를 구축햇기 때문이다. 시장 교역은 수출과 수입에만 제한됐고 내부경제와는 철저히 분리됐다. 그러나 이런 안정성이 노예무역과 노예투매에 직접적으로 의존햇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노예무역이 오랫동안 알려져 왔던 것처럼 자유를 사랑하고 화목하게 사는 흑인 종족사회에 사악한 외부인이 우격다짐으로 강요한 일이 아님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흑인 왕과 추장들이 노예상인을 불러들여 노예투매를 조직하고 지휘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일부는 자기 부족이나 왕국 외부의 경쟁자나 적을 파멸시키거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고, 또 다른 일부는 자기 부족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총 같은 물건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호혜와 재분배를 기초로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p309
그들은 정말로 특별한 가족이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내가 아는 가장 특이하며 가장 뛰어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목표했던 것이 아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p310폴라니가의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별로 중요한 인물이 되지는 못했다.  중요하다기 보다는 흥미로운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 100년 전인 홉스와 로크 이후, 아니면 프랑스 혁명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줄곧 서양인의 관심을 끌어왔던 절대적인 하나의 시민종교에 대한 탐구, 완전한 또는 좋은 사회에 대한 탐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실패가 나타내기 때문이다.

당시 카를은 미온적인 타협이라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만한,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산업인의 미래》에 녹아 있는 내 의도였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시장의 혼란과 불화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유를 지키게 될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대한도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갈등,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 불일치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더 큰 선()에는 관심을 덜 갖고, 적은 악()에는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 그 자체가 부수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쇠퇴해가는 사회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종국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처럼, 시회의 조직도 그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를 편협함과 자유의 박탈, 자멸적인 전쟁으로 몰아 넣을 위험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에 대한 탐구가 여전히 우세한 지금, 이런 일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구교와 신교의 교리를 통합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명석한 사상가들의 실패가 50년 후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을 예고 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p322
크레머는
3의 독일인 단독으로 자제와 정치적인 통제를 갖추기로, 3의 독일인단독으로 권력을 얻어 그것을 현명하게 이용할 능력을 지니기로 결심했다. 3의 독일인은 당시 나치의 만자 배후에서 빠르게 나타나는 추악함과 야만성, 선한 독일인의 선량하고 예의바르지만 무기력한 자유주의를 모두 반대했다. 그것은 바로 이상적인 옛 프로이센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가난하지만 만족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신을 두려워하고, 군복을 입고 무기를 지녔지만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고, 관리와 신사의 명예라는 규범 아래 자제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따라서 외알 안경, 카약에 꽂아놓은 제국해군의 군함기, 흰깃, 승마 부츠와 승마복 등, 그의 차림새는 모두 의도적인 선언이었던 것이다.


p324  
크레머 자신은 본인의 정치적인 신념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얻어낸 힌트와 주워들을 말, 그리고 그가 옛 황제에게 항상 생일축전을 보낸다고 했던 것등을 종합해서 이야기를 맞추어야했다. 그러나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자 그는 내게 자신의 야망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자신은 인생에 딱 두 가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고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p331
나 역시 그에게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로를 존경했고 서로 싫어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의 관계는 순전히 지적인 것에 제한돼 있었다. 서로에게 “기분이 어때?”라고 물었던 기억이 없다. 우리의 질문은 언제나 “어떻게 생각해?”였다.


p337
그 옛날 크레머와 나눈 긴 대화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인물이 지니는 패러독스를 인식하게 됐다. 위대한 인물이 없으면 비전도 리더십도 우수함과 업적의 기준도 없다. 또한 공적인 일에서 평범함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 개인적인 성취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p338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상태를 남긴다. 디즈레일리의 지적처럼 그의 빈자리는 대개 기법만 알지, 다른 것은 거의 알지 못하는
해병대위가 물려받게 된다.

나와 똑같이 젊고 탐구과정에 있는 크레머와의 길고 두서없는 토론에서 내가 이런 사실을 터득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공적인 일에서, 특히 조직에서(정부나 대학, 기업체 등) 위대한 사람이 지니는 패러독스를 해결하려는 평생의 관심사를 얻게 됐다.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p339 위대한 사람의 뒤를 반드시 해병 대위나 서기관, 또는 쓸모가 없는 사람만이 잇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뒤에 힘을 남겨놓은 지도자, 즉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 이가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p363-364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이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아렌트는 스스로
위대한 죄인이라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이아고(세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악한-옮긴이) , 엄청난 죄를 짓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멕베스 부인(세익스피어의 멕베스의 여주인공으로 권력욕이 강한 여인-옮긴이) 이 있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사탄을 어둠의 왕자라 부르는 관용어구가 아렌트의 표현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잇다. 주기도문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약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신에게 청하는 것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p364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괴물일까, 어린양일까? 그리고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셰퍼의 자기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되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지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하는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p412  
한번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떤 회사의 과반수 지배권을 확보해 그 회사를 개편하자는 제안서를 공들여 만들어서 갖고 들어갔다. “재미있군. 루이스를 불러다가 그 제안서를 읽혀보게.

프리트베르크의 말에 내가 항의했다. “하지만 사장님, 루이스는 부기부서에서도 가장 어린 직원 아닙니까? 그리고 며칠 전에 보셨다시피 좀 멍청해요.

“바로 그거야.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


 
p424  
놀랍게도 그는 항상 스타킹 사이즈나 배색이 잘못된 우산의 가격을 인하는 대신 판촉물을 이용했다는 얘기 등의 잡다한 일화들 속에서 갑자가 일반적인 원칙을 끌어냈다. 우산에 관한 길고 긴 이야기를 그는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 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야.” 또는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단지 상인이 게으른 거지. 고객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다고 말해서는 안돼. 고객을 ‘재교육’시키려고 해서도 안 돼. 그건 상인이 할 일이 아니거든. 상인이 할 일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지. 만일 고객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같다면, 밖으로 나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점과 상품들을 살펴보는 거야. 그러면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단지 그들의 현실이 상인의
  현실과 다를 뿐인 거야.


p428  
메뚜기처럼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예를 들면 스타킹에서 단추로, 또는 한 실험에서 다른 실험으로) 옮겨 다니기만 할 뿐 일반화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과학자들 상이에도 상인만큼이나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예술가나 좋은 과학자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인의 마음은 헨리 아저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식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화에 이르데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p431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벼렸다. 검증되지 않은 수량화에 의존하고, 경험보다는 가정에 근거한 논쟁을 하고, 대칭적이고 형식적인 모델을 만들고, 구체성을 지닌 견고한 현실을 다뤄보지도 않은 채 관념에서 관념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지금 서양에서 체계적인 분석과 사고가 막 시작됐을 때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즉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 파이드로스와의 대화를 담은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가 죽는 날 아침에 나눈 대화를 담은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두 개의 대화편은 우리에게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아니라 잡답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고 가르친다.

p448-449  새뮤얼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 현대인의 귀에는 아주 의아하게 들릴 말이지만 그 ‘영감님’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절대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는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다. 구시대의 종교적 도덕주의자인 그가 돈을 버는 일, 즉 수익이 생기는 일을 좋지 않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슨 박사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가 되는 일을 가장 적게 한다는 말이었다. 수익사업을 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을 지배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또한 축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상징에 만족하고 현실을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p471 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편집자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편집자는 인정사정없는 지독한 독재자다. 그는 모든 기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p474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p493  지식인은 이제 더 이상 여러 분야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식의 영역과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전문가다.

p503 “완벽한 <타임> 기사란 표의문자와 같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알파벳을 죽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으로 설계된 표의문자의 구성과, 하나의 상징으로 의미와 문법을 모두 전달하는 표의문자의 능력에 관해 말한 것이다.

p504-505 만일 언젠가 전자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잡지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헨리 루스가 기원리라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그는 미국 헌법을 숭배하기 때문에 나는 누가 국가법을 만들었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국가를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누가 국가의 정책을 만들었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 나가겠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p506
맥루안은 기술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으로 보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텔레비전의 출현을 예고했다. 지금은 이들이 테크놀로지 시대의 선각자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엉뚱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p508 마셜 맥루안은 기술을 인간적인 것, 인간의 연장으로 약 1세기 전 찰스 다윈과 같은 시기에 진화론을 발견한 엘프레드 러셀 윌리스는  “의도적으로 비유기적 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맥루안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 가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이 자연적인 진화를 통해 특정 기관을 새롭게 발달 시켜 다른 동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p510
기술이 형이상학과 문화, 미학, 인류학과 통합돼야 한다는 것을, 사실상 기술이 인류학의 핵심이며 인간의 자기인식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대에게 이 두 예언자는 새로운 현실을 희미하게 보여준 사람이었다.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안개에 싸여 있었지만 예언자다운 그들의 발언은 호소력을 더했다.


 
p518
“결국 당신은 인쇄가 대학의 교수과정과 대학의 역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아닙니다. 단순히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인쇄는 그 둘 다를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인쇄는 앞으로 무엇이 지식으로 간주될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p520
조립라인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일의 본지에 대한 이론적이고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시절에 조립 라인은 특징적인 새로운 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지만, 실제로는 생산의 아주 작은 부분이어서 극히 일부의 노동력이 조립라인작업을 하고 있었고 하게 될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술은 인문주의자와 과학 기술자 모두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은 생산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정의했다.

 

p523  분명히 텔레비전은(‘미디어’ 전부는) 정보의 전달방식뿐 아니라 전달되는 정보의 종류까지 바꾸었다. 또한 미디어는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비롯해서,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며 자신에게서 무엇을 찾는지까지 변화시켰다. 그러나 맥루안의 구체적인 예측 가운데는 적중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어도 인쇄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바보상자’가 거실을 침범하기 전보다 더 많은 책과 잡지가 출간되고 있다. 이는 ‘이야기하기’가 ‘쓰기’가 되고 ‘쓰기’가 ‘인쇄’가 됐다고 해서 희곡과 시가 사라지지 않은 것과 같다. 미래에는 텔레비전 수상기나 전화에 달린 전자 프린터가  ‘인쇄된 말’을 전단할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전자기기는 미래의 ‘인쇄매체’가 될 것이다. 제록스 복사기는 모든 사람을 구텐베르크로 만들 것이다.


p524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이 산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이라고 본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주인이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잇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그들의 비전은 어디에서도 기술을 노동이라는 특정한 인간의 활동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엔진니어들이 정의하는 것처럼, 5권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책 《기술의 역사》(1954년부터 1958년 사이에 영국의 위대한 학자 찰스 싱어가 편찬했다)가 정의한 것처럼, 1958년에 창설된 기술사학회의 정의처럼 기술은 도구와 기계, 그리고 그 생산품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술은 단지 ‘우주의 힘’이나 ‘인간의 확장’ 도 아니다. 싱어의 기술사가 정의한 것처럼 ‘어떤 것을 만들거나 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는가 또는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기술은 계획적, 인위적, 비유기적 진화를 다루며, 그런 진화를 통해 인간은 특별하고 독특한 인간활동인 노동을 수행한다. 인간이 뭔가를 행하고 만드는 방식, 즉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사는 방식,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방식,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인간의 생활과 역사에만 존재하는 사회적 결합이다.


p527
그러나 그 보다 더 나쁜 일은 예언자는 자신의 시대가 왓을 때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예언자는 사제가 되고 비전은 예배의식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명사가 되어 심야 토크 쇼나 신문의 사교란에 등장한다. 자기 시대를 맞이한 예언자는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그래서 탤런트의 신세로 전략하는 것이다.

 

p560  그들 가운데 직무와 관련해서 지켜야 할 긴 수칙들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글을 가르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배우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그래서 그는 직접 수십 대의 폭격조준기를 만들어봤다. 방법을 체득하고 나서는 전체 제작과정을 비디오카메라에 하나하나 담았다. 그는 필름을 프로젝터에 끼우고 화면이 돌아가는 동안 다른 프로젝터에서 작업공정도가 나오도록 설치했다. 이때 작업공정도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사람에게 이미 작업한 내용은 붉은 빛으로, 그 다음에 들어가야 할 작업은 초록불빛으로, 그리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내용은 노란불빛으로 구분해 보여주었다. 오늘날 이 방법은 수많은 조립공정에 사용되는 표준절차가 됐지만, 이것을 처음으로 고안해 낸 사람이 바로 트레이스타트였다. 그 후 몇 주 안에 아무 기술도 없고 글도 읽을 줄 몰랐던 사람들이 고도의 숙련 기계공들이 이전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을 잘했을 분만 아니라 더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p578  
“당신의 연구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 들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드러커 씨, 나는 그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동료 이사들이 모두 내 의견을 무시했어요.
  따라서 당신의 역량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내가 도울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세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은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다 얻도록 하세요. 나는 당신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연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최고이사들이 모이는 많은 회의에도 참석해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나가고, 이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군요. 물론 나는 우리가 의논하는 어떤 기밀사항도 밖으로 누설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당신이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일을 풀어가는 방법이지 결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드러커 씨,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조사하고 우리에게 어떤 것을 제안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한 가지만 말해 두겠어요. GM에는 35명의 부회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으면 타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세요. 누가 옳은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나를 포함한 경영진 가운데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이 당시의 제안이나 결론을 마음에 들어할지 아닐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틀리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바로 알려주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약속한 대로 내 연구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끝까지 지원해 주고 내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p582  “당신은 내가 모든 사람들을 정확히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오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은 뿐인데, 그것은 결론을 천천히 내린다는 의미예요.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지 않으면 뒤늦게 후회하게 되죠. 우리가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잘 판단해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절대로 자기의 후계자를 직접 임명하지 마라, 그건 결국 자신의 복사판이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옛부터 내려오는 첫 번째 규칙입니다.


p596  
“만약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면,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당연하죠. 그 정의 시간도 할애할 수 없는 사항이라면 우리는 당장 때려치울 겁니다. 우리는 아주 적은 수의 결정을 내립니다. 드러커 씨, 누구도 수많은 결정을, 그것도 옳게 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결정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p602  
전문가란 자신의 관심사와 사생활을 공적인 업무와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슬론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개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적으로 주의해야 할 대상이 됐다. 언젠가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외과의사가 맹장을 제거할 때는 그가 맹장수술에 능해서라거나 수술 자체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오. 그가 맹장을 제거하는 이유는 환자를 진단한 결과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p606
책임없는 권위는 부조리한 것이고, 반대로 권위 없는 책임도 마찬가지다. 이 두가지 경우 모두 독재의 길로 갈 가능성이 있다.


 
p679
신념과 현산, 가치관, 이념 등이 모두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언제나 생존이 비전을 무력화 시켰다. 현실은 미국을 단독으로 ‘지구상의 마지막 희망’이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들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저자라면


핸슨은
보는 것은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보다 많은 심리학적인 발견들은 인간의 객관성과 보편성에 대해서 회의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피터 드러커는 자신이 관찰자였다고 자서전의 앞쪽에 기술하고 있는 것은 그가 고백할 수 최고의 자기 반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인해서 그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인간의 행위를 바라볼 수 있었고 인간이 아닌  개인이라는 것을 구분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교육과 기술에 관한 그의 견해는 나에게 많은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와는 완전히 다르게  살아온 내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드는데 전이가 있었다.
아울러 교육과 기술에 관한 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그가 보다 개념적이고 관찰자로서의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서 다른 형태의 만족감을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깃발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고 상황과 조건에 의해 사건을 일으키는 인간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안전한 곳에서 타인들의 삶을 지켜 보면서 삶과 세계를 관조하는 것이다.

그의 여러 관점들, 특히 교육과 기술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다분히 피상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과 분석은 되지만 처방전 없는 진단처럼 그것들은 현실에 그리고 미래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관점이 인지나 심동적인 측면을 넘어서 양자들의 통합에 의한 정의적인 태도와 행동의 본질적인 배경이 된다는 것은 현대의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다 긍정적인 견해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견해이지만 아주 오래전 동양의 문화속에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이 책을 썼을 때, 그는 모르고 있는 것같다. 그는 프로이트를 비난했지만 그리고 의학이 검증과 실험을 통한 구체적인 조작가능한 영역으로 제한되는 것을 동의했지만 그것은 신체로부터 확장된 정신의 영역과 그 결과로 생성되는 과거와 미래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프로이트의 암울한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해석해 내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분명, 오류는 아니었다. 실제로 프로이트가 발견한 영역은 인지적인 추측과 논리적인 경험해석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오늘날 메타인지라는 개념으로 어렴풋이 다가와 희미한 윤곽을 보여주고 많은 심리적인 기법들이 신체와 정신의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구조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는 커다란 오류에 빠져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긍정적인 체계화된 기술이 신비스러운 비밀이었던 것들을 보다 보편화하고 일반화하는, 그래서 사회전체에 대한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왔지만 숙련이라는 과정을 건너 뛰면서 개념화될 수 없는 미묘하고 복잡한 다양한 체험과 그로 인하여 성숙하던 인간의 본질적인 차원의 발달은 점점 더 후퇴하고 말았다. 이것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전통과학이 저지른 인류 최대의 실수이며 자연에 대한 대책없는 파괴와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 있는 재앙의 싸앗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그결과 자연의 생태학적 구조인 정상분포의 형태는 개선되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상향조정되어 전체적인 삶의 구조와 속도 그리고 변화를 자연의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방관자이고 구경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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