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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저자에 대하여
아르놀트 하우저
Arnold Hauser
1892년 테메스바에서 출생
1979년 부다페스트에서 사망
1892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던 지금 헝가리의 작은 도시 테메스바에서 태어난 아르놀트 하우저는 유대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어는 물론 헝가리어, 세르비아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나, 독서에 열중하는 교양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우저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 손에 책이 들려져 있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정은 전형적인 소시민 가정으로 대체로 가난한 편이었으며, 하우저의 어린 시절 또한 조숙한 천재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평범했던 소년 하우저가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가 부다페스트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대학시절에 들어와서야 그는 학문적으로 눈을 뜨게 되고, 훗날 그의 생애와 학문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바로 친구 칼 만하임과 스승 게오르그 루카치였다. 그러나 루카치는 하우저에게 일종의 외경심을 가진 동료로 대해주기도 했다. 이들 세 사람의 만남이 가장 집중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이른바 ‘일요써클 Sonntagskreis’에서였다. 1915년에서부터 1917년까지 지속된 이 모임을 지배했던 분위기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당시의 유럽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환멸과 종말론적인 위기의식이었고,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열띤 지적 노력이었다고 한다. 일요써클의 구성원들의 주요 관심사는 윤리적인 것에 기초를 둔 종교와 신비주의, 그리고 독일 낭만주의였다. 일요써클의 이러한 분위기로부터 루카치가 정치적, 행동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이행해 갔다면 하우저는 학문 연구활동을 통하여 삶의 거점과 전망을 찾으려고 했다.
하우저는 나치를 피해 거의 전 생애(50여 년)에 걸쳐 독일과 파리, 빈, 런던을 중심으로 떠돌아다니는 망명자 생활을 했다. 이곳 저곳을 떠도는 신세였으니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도 없었고 안정된 생활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떠돌이 경험은 훗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명저를 남기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빈을 함락하자 그는 런던으로 피신했다. 아내와도 사별한 고독한 40대 후반의 그에게 친구 만하임은 <예술사회학의 선집>에 넣을 서문을 100페이지 정도 쓰도록 주선해 주었다. 열심히 준비하던 하우저는 지금껏 나온 예술과 사회에 관한 글들이 ‘논문제목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은’ 관심표명 정도였음을 확인하고 실망해 차라리 이에 관한 역사적 사례를 자신이 연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이 글 대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0년부터 50년까지, 48세부터 58세까지 10년간의 세월을 이 책을 쓰는데 바쳤다.
하우저의 이 저서는 유럽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들의 높은 평가와 함께 진보적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필독의 저술로 평가되는 명성을 얻었다.
하우저가 드디어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첫 책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출간한 1951년으로, 그의 나이 59세 때다. 하우저는 남들이 은퇴를 고려할 나이에 이 저술 덕분에 망명지인 영국에서 전임강사직을 얻었고, 미국에 가 교환교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생애 처음으로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교수 하우저에게 이 대학 학생들은 큰 실망을 주었다. 그는 학생들이 너무 한심해서 가르치기보다는 저술에 정열을 쏟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책이 ‘예술사의 철학’(1958)이며 이 책의 내용은 ‘역사의 모든 것은 여러 개인이 이룩한 것이지만 그 개인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상으로 어느 특정한 상황에 갖혀 있게 마련이며, 따라서 그 행동은 생래적인 능력과 상황, 양자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에 초청되어 그의 전공이라 할 ‘매너리즘’(1965)을 집필했고, 또 필생의 과제 ‘예술 사회학’(1974)을 펴냈다. 다만 그가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영화 미학’만은 끝내 출간되지 못했다. 1978년 86세의 하우저는 무려 60년 만에 고국 헝가리로 돌아가 과학원 학술회원으로 대접받았으나 1년 뒤 ‘기나긴 지적 역정’을 마치고 고국 땅에 묻혔다.
그가 후세의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존경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학으로 그의 모든 이론을 정립하고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사를 전공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학력이 없다. 또한 세계 대전의 와중에서 그는 별도로 공부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를 놓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며 계속하여 실력을 키워 갔다. 그는 대학전공인 문학사 외에 뵐플린의 미술 양식사 연구, 드보르작의 역사주의적 예술사 연구, 게오르그 짐멜, 막스 베버 등의 사회학적 연구 그리고 가장 늦게 접하게 된 현대적 예술 장르인 영화에 대한 연구까지 그의 학문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문학과 예술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그의 뛰어난 연구결과로 인하여 세상을 달리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생성하게 된 것이다.
주요 저서
1951년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1958년 : <예술사의 철학> (Philosophie der Kunstgeschichte)
1964년 : <매너리즘 : 르세상스의 위기와 근대 예술의 기원> (Der Manierismus. Die Krise der Renaissance und der Ursprung der modernen Kunst)
1974년 : <예술의 사회학> (Soziologie der Kunst)》
1978년 : <루카치와의 대화> "Im Gesprach mit Georg Lukacs" kleiner Sammelband mit drei Interviews und dem Essay "Variationen uber das tertium datur bei Georg Lukacs"
내가 저자라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책
사부님께서 굳이 이 책을 이렇게 이번달의 후반부로 넣으신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이제 1년차 연구원 생활의 필독도서들을 거의 다 읽고, 그간 읽어온 책들의 목록을 보면서 자칫 ‘이렇게 어려운 책들도 다 읽어냈고, 나는 이제 어떤 책을 읽어도 자신 있어’라고 자만할 수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그만큼 어렵게 읽혔고, 나의 부족함에 대해 많이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구나, 이제 시작이구나’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고 할까. 내 독서 인생의 새 장을 새해와 함께 열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4권’을 선택한 이유
이 책은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은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2권은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3권은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한다. 책을 선택할 때는 저자에 대한 조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라 그가 ‘매너리즘’에 정통한 줄도 몰랐기에 그가 자신이 살았던 동시대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서술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또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대와 가깝기에 가장 읽기 편할 줄 알고 골랐다.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선택한 것은 언제나 단단히 혼쭐을 내 주는 법. 4권을 집어들고는 한참을 번민했다. 특히 책의 초반기에는 읽기가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책이 이렇냐’며 가족들에게 애꿎은 하소연을 해댔다.
당시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는 유럽, 특히 파리였다. 그러나 나는 그 시대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문체는 길게 늘어지고, 어느 정도의 시대적 감각과 기본 소양이 없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설명들이 이어졌다. 나의 기본 소양이 부족함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다. 잠깐이나마 프랑스에서 공부했다는 내가 이런 중요한 시대의 문학과 예술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모르고 있었으니,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문화적 전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나마 영국과 러시아 문학에 와서는 조금 숨통을 트이는 듯했지만, 그것도 금세 지나가버렸다. (하우저는 영국 문학을 여타 유럽문학보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의 몇몇 문장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과제
이 책을 제대로 논평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식이 객관과 주관을 구별할 정도가 되고, 언급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미술사에 대한 책도 좀 많이 읽어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림도 없다. 평생을 축적해온 경험을 녹여 쓴 하우저의 책을 나는 아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과제가 있다. 하우저의 사후 참으로 놀라우리만치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예술, 문학사의 변천을 누가 이어서 써나갈 것인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5권’은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쓰여져야 할 텐데, 거기에는 하우저의 치명적 단점(학술논문과 같은 만연체, 기본 설명은 무시한 채 상세설명으로 들어가는 불친절함, 동양권을 다루지 않은 한계 등)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방대한 작업을 언젠가 해보겠다는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준 것이 이 책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제1장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 1830년의 세대
18세기까지 작가란 단지 자기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중략) 그들은 당대에 통용되던 일반적 도덕원리와 취미표준을 받아들이고 이를 확인했을 뿐 그런 것들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개혁하지는 않았다. (17)
그리하여 기업은 자체의 이해와 목적을 추구하고 자체의 논리법칙에 따라가는 하나의 자율적 유기체가 되며,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는 폭군이 된다. (중략) 원래는 사람이 만든 체제가 이제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로부터 독립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변한다. (22~23)
소설양식의 발전과정에서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형태인 교양소설에서 내면화의 경향은 한층 강력하게 표현된다. (39)
베토벤의 작품부터가 벌써 그의 선배들 것에 비하여 즉흥적이다. 실제 창작과정에서는 으레 수많은 예비적 스케치들을 거쳐 조심스레 준비된 베토벤의 작곡보다 과거의 대가들, 특히 모짜르트의 작품이 더 안이하고 더 직접 영감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55)
악덕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악덕의 기괴함 때문에 그는 빠리를 사랑한다. (65)
발자끄 세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의 문체의 결함은 피했다 하더라도, 그중 발자끄처럼 자기의 시대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던 작가는 드물었던 것이다. (73)
2. 제2제정기의 문화
저급하고 불확실하고 쉽게 만족되는 취미가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반면, 진정한 예술은 예술가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해줄 능력이 없는 소수 전문가계층의 소유물이 되었다. (80)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다. (중략)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과학의 원칙을 적용한 데에 있다. (81)
여기서 주제선택이 예술적인 배려보다 정치적 배려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86)
‘퐁텐느블로파’는 (중략) 이미 새로운 시대의 집단적 정신을 나타내준다.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예술가 단체나 집단적 거주지역들, 19세기의 여러 공동적 개혁운동이나 아방가르드 집단들은 모두 이러한 연맹과 협동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와 함께 탄생한 시대의식, 이 순간의 도전과 중요성에 관한 의식이 이제 모든 예술가들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88)
당대 사회로부터의 전체 예술의 소외상태와 대중의 취향에 대한 이들의 거부태세는 철저한 것으로서, 그 결과 이들은 현실적인 성공을 얻지 못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 자체를 예술적 열등성의 징표로 보며 당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후세에 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92)
그러나 플로베르의 부르즈와 기질은 무엇보다도 꼼꼼한 작업방법과 엄격한 자기단련, 그리고 이른바 천재형의 무질서한 창작방식에 대한 반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그날그날의 임무’에 관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좋든 싫든, 영감이 떠오르든 안 떠오르든 하나의 규칙적인 부르즈와적 직업으로서 글쓰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았다. (101)
한마디로 말해 예술가의 뜨내기 광대식의 생존양식 일체가 플로베르에게 막중한 불안감과 부담감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강요한 금욕주의적 생활, 수공업자적인 부지런함, 자신의 작품 뒤에 몸을 숨긴 수도사적 태도, 이 모든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의 진지함과 부르즈와적 믿음성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요, 자신이 고띠에의 ‘빨강 조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102)
“삶이란 너무나 추악해서 그것을 피함으로써만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라고 플로베르는 신음한다. (103)
예술은 낭만주의와 갈등을 겪으면서 그 자연발생적인 활력을 잃어버렸고 그 대신 예술가가 자기 자신, 자기의 낭만적 근원, 자신의 성향 및 충동과 싸우는 가운데 쟁취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까지는 예술활동을 자기 발현의 과정 혹은 적어도 자신의 재능에 의한 자기인도의 과정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작품 하나하나가 일종의 ‘곡예’요, 작가가 자신과 싸워서 자신에게서 빼앗아내야 하는 성과로 보이는 것이다. (103)
플로베르에 있어서 자연인과 예술가의 분리를 이렇게 잘 말해주는 것은 없다. (중략) 플로베르처럼 고통스럽게 그리고 그처럼 자신의 본능에 역행하여 글을 쓴 작가도 없음이 분명하다. (104)
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한번도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정말 쓰고 싶은 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의 편지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105)
예술가는 계획이나 체계 없이 세상을 체험하고, 말하자면 스쳐지나가면서 경험의 재료라든가 생활의 특징들과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저절로 자라고 성숙하도록 내버려두다가, 어느 날엔가 이 창고에서 예기치 않은 미지의 보물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학자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하나의 문제와 더불어, 즉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실이나 또는 자기가 정말 알고 싶은 바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자료의 수집과 취사선택, 즉 취급하려는 인생부문과 가깝게 친숙해지는 일을 문제설정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다. 학자는 체험을 통해서 문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체험에 이른다. 그것은 또한 졸라가 밟은 경로요 방법이기도 하다. (110)
부르즈와지에게 ‘이상적’ 대상이란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고통을 잊게 하는 그러한 것을 뜻한다. 문학이 부여받은 임무는 불행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달래고 그들에게 실제 현실을 감추어, 지금도 그렇지 못하고 장차도 불가능한 생활에 한몫 끼일 수 있다는 환각을 던져주는 데 있다.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독자의 계몽이 아니라 속임수인 것이다. (112)
시민계급의 삶을 이상화하는 작업의 기초로서 결혼과 가족이란 제도만큼 적합한 것은 없었다. (116)
오페레타의 성장은 음악에 대한 저널리즘(시사성)의 침투를 뜻한다. 소설, 연극, 미술에 뒤이어 이제 음악이 일상의 사건에 논평을 하게 된 것이다. (126)
3. 영국과 러시아의 사회소설
그의 감정과 사고는 모두 소시민적이었고 생활의 이상도 소시민의 그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내용을 이루는 본질은 일 노력 절약 안정의 획득, 요컨대 근심 없는 상태 및 명예였던 것이다. (중략)
디킨즈는 자기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들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 (154)
디킨즈는 정치적 진보성과 기존 상황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지배체제의 전제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일개 온순한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는 다만 소시민의 부담과 불평을 알고 있었고, 부르즈와 사회의 기초를 뒤흔들지 않고 고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만 싸웠을 따름이다. (155)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죠지 엘리어트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정신적 및 도덕적 본성에 관한 것이며, 거대한 운명적 투쟁의 무대는 인간의 영혼, 내면세계, 도덕의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심리소설인 것이다. (160)
비합리적 인물의 이상적인 체험이 아니라 죠지 엘리어트 자신이 ‘지적 정열’이라 부른 태도가 그녀의 작품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그녀의 소설의 진정한 주제는 인생의 분석과 해석이요, 정신적 가치에 관한 인식과 평가이다. ‘이해’라는 단어가 그녀의 작품에 거듭 나타나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라, 책임을 져라, 자기 자신을 가차없이 다루라라는 것은 그녀가 꾸준히 되풀이하는 요구이다. (161)
그녀는 영국 소설에서 지식인을 적절하게 묘사할 줄 안 최초의 인물이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동시대 소설가 중 어느 누구도 상대나 자기를 조롱하지 않고 예술가나 학자에 관해서 말하지 못했다. (161)
근대 심리학은 영혼의 분열상을—어떤 구체적인 내적 갈등으로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부조화를—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띠고네도 이미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림을 맛보고, 꼬르네유의 주인공들은 거의 그 문제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주인공의 우유부단을 희곡의 주제로까지 삼는다. (175)
도스또예프스끼는 현대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즉 과장되고 지나치게 과시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모든 정신적 태도의 분열적인 성격과 그러한 모든 감정들의 양면성이라는 원칙을 발견한다. (176)
도스또예프스끼의 심리적 통찰이 갖는 깊이와 섬세함은 그가 현대 지성인의 문제성을 체험하는 강도에서 온다. (177)
적어도 도스또예프스끼는 정말 빈곤에 관해 쓸 줄 아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중략) 그 자신 거의 평생을 궁핍 속에서 보내며 이따금씩 문자 그대로 굶어본 사람으로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178~179)
여러가지 극단적인 대조에도 불구하고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는 개인주의와 자유의 무제에 관한 그들의 태도에서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사람 다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과 그의 고독 내지 고립을 최대의 악이라고 본다. 두 사람 다 그들이 지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된 개인에게 들이닥치려고 하는 혼돈을 막아보려고 한다. (188)
그 자신의 목표는 자기완성과 영혼의 구제이다. (193)
그가 <참회록>에서 말했듯이, 그를 기독교인으로 만든 것은 “불안과 고독과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느님과 초월적인 것에 대한 신비적 체험이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불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내려는 노력, 그 자신의 미미함과 덧없음에 대한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한없는 두려움이 그를 독실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194)
예술가는 체호프가 생각했듯이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족할는지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동시에 올바른 해답까지도 제시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199)
4. 인상주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유동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두 경향을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99)
기술의 진보와 관련하여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로 발전해가는 일로서, 이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인상주의는 유례없이 도시적인 예술인데, (201)
인상주의를 가장 단순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가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 번 다시 발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이을 것이다. (202)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을 의미한다. (203)
이전의 모든 예술이 종합의 결과라면 인상주의는 분석의 결과이다. (204)
19세기 후반에는 회화가 주도적 예술이 된다. (중략) 회화는 당대의 가장 진보적인 예술로서 다른 모든 장르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성과에서도 동시대의 문학이나 음악을 질적으로 능가한다. (207~208)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플로베르 자신도 마라르메의 이 말보다 더 플로베르적으로 요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37)
플로베르는 이미 주제 없는 책을, 순수한 형식, 순수한 스타일, 순수한 장식으로서의 책을 쓴다는 생각을 했었다. (237)
이 시대의 영국 문학을 프랑스 문학과 대조해볼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역설이라든가 기괴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며 고의적으로 충격을 연출하는 표현방법에 대한 집착이며, 오늘날 돌이켜볼 때 그 경박하고 진리에는 무관한 자기만족적 태도가 너무나 불쾌감을 주는, 자신의 재기를 과시하려는 집착이다. (242)
버나드 쇼는 (중략) 낭만주의에 대한 투쟁을 효과적으로 계속하고 이 세기의 유럽이 당면한 중대한 문제에 관한 토론을 심화시킨 유일한 작가인 것이다. (260)
니체와 프로이트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262)
프로이트 역시 그의 이론형성이 상당히 진전된 시기에 이르러서야 정신분석의 여러 문제들의 근원이 된 기본적 체험을 의식하게 되었다. (264)
프로이트는 그가 살던 시대의 극복자요 그 시대가 자기 영혼을 팔아넘겼던 어둡고 비합리적인 힘에 대해 투쟁했던 인물이지만, 동시에 그는 그 시대의 업적과 결함 양쪽 모두에 무수히 많은 측면에서 얽혀 있다. (266~267)
제2장 영화의 시대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러니까 1920년대에 비로소 시작된다. (285)
1930년에의 역사는 사회비판의 시대, 사실주의와 행동주의 시대의 역사다. 모든 정치적 입장이 극단화한 시대이며, 오직 극단적인 해결만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모든 온건주의자들의 역할은 끝났다는 신념이 널리 퍼진 시대다. (286)
20세기의 거대한 반동의 물결은 예술분야에서 인상주의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어떤 점에서는 이 전환이야말로 르네쌍스 이래 다른 어느 스타일 변화보다도 더 심각한 예술사상의 단절을 가져왔다. 이제까지의 변화에서는 자연주의 예술적 전통을 근본적으로는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289)
낭만주의 이래로 문학사의 발전은 전통적, 관습적 언어형식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19세기가 항상 낡은 것과 새것, 전통적 형식과 개인의 자연발생적 창조력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데 그쳤던 반면에, 다다이즘은 닳아빠진 기존의 모든 표현방법의 전면적 파괴를 요구한다. (293)
20세기는 심각한 대립으로 가득 차 있고 통일된 세계관은 심히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것의 통일과 가장 모순되는 것들의 종합이 20세기 예술의 주요 주제, 아니 때로는 유일한 주제가 된다. (297)
심리소설의 위기는 아마도 새로운 문학의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일 것이다. (300)
이러한 의미에서의 심리학의 지배가 프루스트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그는 열렬한 희화가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개인 성격의 묘사라기보다 정신구조 자체의 분석에 있다. 프루스트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총괄적인 묘사를 담고 있다고 흔히들 말하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현대인의 모든 욕망과 충동 재능 콤플렉스 합리성 비합리성 등 그 정신구조 전체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01)
현대의 시간경험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 속에 던져져 있는 순간의 의식, 즉 현재의 의식이다. 오늘의 인간에게는 모든 시사적인 것, 동시대적인 것, 현시점에 함께 얽혀 있는 것들이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306)
어떤 사건의 의미는 그 사건을 겪고 견뎌낸 여러 해 후에야 비로소 머리에 떠오르기 일쑤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의 침전물을 현재 시간의 경험과 구별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307~308)
그러면 오늘날과 같은 극단적인 분업화와 극도로 세련된 개인주의 시대에 어떻게 여러 사람의 개인적 노력이 조화와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311)
영화제작의 어떤 기능들을 한 사람이 겸함으로써, 즉 집단작업의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영화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이 가능할 것이다. (312)
영화예술의 일상적 양상은 영화관람 행위의 즉흥적이고 서민적인 성격과도 일치하고 있다. (314)
오직 젊은 예술만이 대중적일 수 있다. (315)
사실 그대로, 진실 그대로인 것—즉 ‘다큐먼트’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집념은 현대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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