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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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세계
조지프 캠벨 지음 Ⅰ 과학세대 옮김
까치
1. 저자에 대하여
켐벨은 미국의 유명한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로서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신화에 대한 연구'로 요약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던 경험이 어린 그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을 하였다. 그 때 본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물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신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일생을 비교 신학과 비교 종교학의 연구에 몰두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생물학, 수학, 영문학, 중세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티어를 배우고 독일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학자였다.
켐벨은 지독할 정도로 연구에만 몰두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학자이지만, 정규학위과정을 무시하고 홀로 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켐벨은 콜롬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1929년 그는 유럽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콜롬비아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중세문학에 대한 연구 계획을 거절당하자, 학위과정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이 후 5년 동안 캠벨은 하루 중 16시간의 시간을 4시간씩 네 단위로 구분하여 세 단위를 독서와 연구에, 한 단위를 휴식에 활용하는 생활을 철저하게 유지하며 고된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캔터베리 스쿨을 거쳐,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이 교수가 된 뒤 신화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 연구의 결과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탄생했다. 이후 모든 문화권의 신화 속에 숨겨진 신화의 원형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끝에 4부작으로 된 <신의 가면 The Mask of God>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애생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연구활동을 펴지다 1987년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조셉 캠벨은 이 책에서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천복'을 따르며 살아간 사람이다.
Ⅱ. 내 맘에 무찔러든 글귀
1. 서론 : 인간과 신화의 기원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자신과 우주의 관계가 완전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우주 사이의 완전한 조화와 일치를 얻게 된다. 우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것, 이것이 신화의 주요한 기능이다. p.5
아주 최근까지, 인간 사회에서 여성의 조건은 인간 생명의 탄생과 그 유지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여성-자연의 중심이며, 자연의 계승자이기도 한 여성-의 역할의 전부였다. p.6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매우 실제적인 동물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신성한 잉여로서의 아름다움의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다. 이것은 큰 차이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적인 관심과 욕구의 최초의 작은 싹이며 다른 동물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p.12
동물은 다음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죽일 것, 내년이 또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어머니라는 원천으로 되돌려보내어 소생시키는 제의를 행할 것. p.15
자연의 신비란 생명을 죽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잡아먹음으로써 살아가는 것은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이다. 잡아먹는 쪽도, 잡아먹히는 쪽도 실은 하나의 생명이다. 따라서 어쩌면 자신의 살점을 뜯어먹는 동굴곰의 두개골에는 이미 생명의 본질에 대한 느낌이 나타나 있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이미지이다. p.16
우리는 언제나 신을 일종의 사실로서 생각한다. 신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이란 단지 초월과 신비를 상징하는 우리들 자신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신비이며,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로 나타난다. 아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나 동물로 인정되는 것이다. p.23P
신화의 역할은 근동(近東)에서 기원전 2000년에 알려진 우주가 아니라 현재 알려져 있는 우주와 당신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p.30
2. 전설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우리는 초월적인 신비로부터 태어나고, 사회는 곧바로 우리들에게 각인을 시작한다. 우리가 써야 하는 가면은 사회가 씌어준 것이다. 예이츠는 이것을 원초적 가면(primary mask)이라고 부른다. p.33
당신은 당신 자신을 참으로 영원한 것과 동일시한다. 의식은 형상을 내던졌다가 되찾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의식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만물과 하나가 되고, 따라서 지지무게(事事無礙)라고, 곧 개별 존재와 전체 사이에는 어떠한 장벽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궁극적인 신비체험이다. p.35
상현달이 뜨는 밤의 죽음과 부활은 유치한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성숙의 탄생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육체에 대한 죽음, 육체 안에 있는 영원한 것과의 동일시가 있다. p.36
우리는 신비, 곧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나오는, 무한하고 처음도 끝도 없고 영속하는 신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p.40
모든 생명은 신비로운 생명에 의해서 유지된다.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당신 자신의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려고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생명이다. p.41
성지(聖地)는 어디에나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예배를 위해서 자연의 풍경을 찾아갈 때에는 여기가 중심이다. 여기가 북쪽이다, 여기가 남쪽 산이다라는 식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신비적인 존재에게 자신의 마음을 호소할 수 있다. p.58
「24인의 철학자들의 책(Book of the Twenty-Four Philosophers)」이라는 12세기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은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球)이다.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의나 신화의 기능은, 아주 먼 옛날의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p.58
신화는 살아 있는 인간을 그의 생활주기와 조화시키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화시키고, 이미 그 자체가 환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와 조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p.58
3.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서 무기를 씼었다 : 신석기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문명은 역사와 더불어 출현한다. 청춘, 성숙 그리고 노년의 과정이다. 이것을 표현한 중요한 문헌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이다. p.61
4. 파라오의 지배 : 이집트, 출애굽 그리고 오시리스 신화
인종은 다르지만 문화는 같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전통이 확실하다면 이것을 창조적인 중심으로부터의 전파라고 부른다. 새로운 이념과 함께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신들이나 에너지의 상징들도 퍼져 나간다. p.90
세 번째 칼집은 마나마야코샤(Manamayakosha), 곧 정신이다. 정신의 활동은 양식의 칼집과 관련이 있다. 양식의 칼집이 고생하고 있으면 마나마야코샤도 고통을 느끼고 “아, 모든 것이 비참하도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식의 칼집이 행복하면, 정신의 칼집 또한 행복을 느낀다. 정신의 칼집은 양식과 호흡의 칼집을 향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세 개의 직사각형 상자가 상징하는 것이다. p.103-104
우리는 물을 지나서 들어가고, 물을 지나서 나온다. 신화에서 그런 들고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무엇이 들어가고, 무엇이 나오는가를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신화가 전하는 신비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들어간 것은 족장들이고, 나온 것은 민중이다. 지옥의 밑바닥과 같은 고난의 땅 이집트에서 민중이 일치단결하여 공동의 자기 인식을 이룬 것은 위대한 일이다. 영웅은 모세가 아니다. 구약성서의 영웅은 민중이다. 민중은 하나의 단위로서 간주되며, 개인은 그 일원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강조되는 것은 집단, 집단, 집단이다. p.109
그런즉 우리가 한 것은 타인이 한 것과는 다르다. 이것 또한 우리들(유태-기독교/역주) 전통의 특징이다. 모세는 영웅이 아니다. 그가 이끌었던 부족이 영웅이다. 우리의 신화는 부족의 신화이며, 우주의 유일한 신은 우리의 신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p.110
5. 성스러운 원천 : 영구불변의 동양철학
신화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계속성은 철학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신화는 꿈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 나더러 말하라면 그 영역을 지혜의 몸(Wisdom Body)이라고 부르겠다. p.114
우리는 신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신 관념은 하나의 상징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 상징이다. p.116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이런 훌륭한 말을 했다. “시를 쓰는 것은 말 뒤에 숨어 있는 원초적인 말(Urwort)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p.116
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례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명상하고, 참된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p.118
신화는 분석과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으며, 원인을 과학적으로 발견할 필요도 없다. 신화는 인간을 그를 둘러싼 환경에 결합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다. p.122
세계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이며, 그 속으로 무진장한 제물이 던져진다.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우리는 모두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제물이다. p.127
생명이란 끊임없이 타고 있는 불이다. 그 불을 더욱더 지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희생에 대한 일종의 열망이 생긴다. p.127
신들은 바로 당신 자신의 에너지의 상징적인 의인화이다. 당신 자신의 에너지는 우주의 에너지이다. 따라서 신은 저 곳에도 있고 이곳에도 있다. 그렇다. 천국은 당신 안에 있다. 그렇지만 또 어디에나 있다. 이것이 영구불변의 철학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p.129
그렇다면 이제 자기 내부의 불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은 심리학적인 구별 작업이다. 그것은 실재의 육체적이고 가변적인 면과 영속적인 불꽃을 구별하는 작업이다.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은 그 불꽃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p.129
부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모든 인생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인생의 본디 모습이다. 선과 악, 사람이 사물에 붙이는 모든 이름, 곧 ‘선’과 ‘악’은 모두 뒤섞여 있다.” p.131
열반이란 괴로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심리적인 태도를 말한다. p.131
당신의 인생을 괴로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불안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욕망, 사람을 속이려는 욕망이며,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는 불안이다. 이 욕망과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마하수카(Mahasukha), 곧 큰 기쁨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열(法悅)을 경험하게 된다. 법열을 경험하게 되면 고통이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하게 된다.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가며, 기쁨이 흘러넘치게 된다. 당신이 중심에 들어가면 이미 무엇을 얻는다든지 잃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 p.132
6.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 : 불교
부처는 한 그루의 나무로 나타난다. 그의 몸은 그곳에 있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가라앉은 태양과 같다. 그는 서쪽으로 진 태양처럼 자신의 육체를 떠나버렸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p.135
열반적 해방이란 대립물을 초월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욕망과 불안, 너와 나의 대립을 초월하는 것이며, 조화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삼사라(Samsara), 곧 이 세상의 괴로움과 열반, 곧 초월의 환희 사이에는 구별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구별이 없다. 그래서 현세 자체가 불성(佛性)의 구현이라고 보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p.136
부처는 지상에 앉아 있다. 그것은 명상에 의해서 자신의 의식과 불성, 곧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초월적인 의식이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p.136
부처란 합리적인 방식을 털어내고, 그 뜻을 파악한 다음, 그 뜻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p.136
부처의 이미지는 천상계의 연꽃으로 상징된다. 연꽃이나 장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 꽃이 나타내는 에너지를 의인화 한 것이다. p.138
갓난 아기는 모두 아기 부처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불가사의한 에너지의 천진난만한 표현이다. 그러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아기와 마야 왕비의 아기는 어디가 달랐던가? 마야 왕비의 아기는 자신이 아기 부처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불성의 핵심은 자산이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주된 이유는 사회가 집요하게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p.140
대승불교는 우리는 불성의 표현이며 부동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고계(苦界)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당신도 그 “존재(sattva)”가 “깨달음의 길(bodhi)”인 사람, 즉 보살(菩薩, bodhisattva)이 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부동지를 발견하게 되면, 움직이는 세계 속에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p.142
불교는 부처의 정각에로 당신을 데려가는 “탈 것(yana)”, 특히 나룻배이다. 불교는 우리를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나룻배이다. 피안이란 괴로움과 즐거움, 얻음과 잃음, 불안과 공포, 너와 나를 초월한 장소이다. 그것은 우주적인 일원성 또는 우주만물의 불변성을 자각함으로써 이원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p.143
무엇이 최선의 교훈, 최고의 규칙일까? 최고의 규칙은 벗들과 즐겁게 지내고, 즐겁게 식사하는 것이다. 당신의 놀이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라. 그 놀이, 인생의 놀이에 참여하라. 이것이 바로 극락, 곧 마하수카이다. p.145
보살이란 초월성을 자각한 사람이 현실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가형을 받는, 스스로 나서서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사상이다. p.145
당신이 그리스도를 부처와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휼륭한 대화가 생긴다. 기독교와 불교는 동일한 원소적 관념이 두 개의 민속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p.146
휴머니즘이란 인간을 신들에게 예속되지 않은, 만물의 중심으로 보는 인간관이다. 신들은 메아리로서만 존재할 뿐, 인간의 다양한 힘의 표현에 불과하다. p.151
불교는 어디를 가건 “너희의 신들을 제거하라”하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가 가는 곳마다 참으로 간단하게 종교의 융합이 이루어진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특징은 자신들이 진출한 곳의 신들을 전멸시키는 것이다. 보다 온전한 불교의 특징은 먼저 살고 있던 신들 역시 그 땅의 생명력이며, 불성의 표현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신들은 자신들의 불성을 드러내는 데에 참여한다. p.154
7. 이드에서 자아로 : 쿤달리니 요가(1)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양사상에 적합한 말로 표현한다면, 신들은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 모든 생명, 당신의 생명, 세계의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의 의인화이다. 의인화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는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서 결정된다. 의인화는 민속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에너지는 인간적인 것이다. 신들은 에너지로부터 태어난다. 신들은 말하자면 다양한 에너지의 심부름꾼이자 매개물이다. p.155
우리 서양인의 신 관념에 따르면, 신은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로부터 에너지가 방출된다. p.155
우리는 모두 그런 초월적인 의식의 표현이다. 초월적인 의식은 사물을 생각하고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우리의 모든 능력들을 훨씬 넘어선다. 이런 생각이 모든 생명의 밑바탕에 있는 기본 이념이다. p.155
상징이란 본디 신화적인 상징인데, 그 한쪽 발은 이곳에 놓여 있지만 다른 한쪽 발은 무한성에 놓여 있다. 그것은 초월성을 향하고 있다. 기호는 이곳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서양에서의 통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신은 상징이 아니라 기호이다. 신이라는 말은 하나의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p.158
이미지를 구체화하거나 상징을 구상화하는 것이야 말로 우상숭배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종교 전체가 우상숭배 체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우상숭배를 찾아내어 파괴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저 즉흥적으로 해 본 말이다. p.158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한 의식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요가의 목표이다. p.159
요가의 기능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p.159
의식을 억압하는 것은 악귀들이나 요괴들이다. 악귀의 다수는 우리 같은 대학 교수들이나 학교 선생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규칙을 정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유익한 것은 아니다. p.167
죽음의 영역 안에 있는 의식이 죽음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 그것이 재생이며 세대의 연속이다. 언제나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현세대는 죽음으로 던져진다. 생명은 그렇게 이어져온 것이다. p.169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은 생명 에너지를 상징한다. 의식은 시간의 영역, 곧 죽음과 탄생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달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그 그림자를 버린다. 뱀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그것들이 이 힘의 상징이다. p.169
생명나무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 나무는 바로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부다가야로 가게 될 것이다. p.172
8. 심리학에서 영적인 것으로 : 쿤달리니 요가(2)
호흡은 언제나 당신의 참된 실재는 우주에 생기를 불어넣는 신비한 기(氣)임을 말해주고 있다. .184
욕구불만이 계속되면 인간은 어떤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때 문명이 나타난다. 그것이 승화(昇華)라는 것이다. p.185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적극적인, 금지된, 세상의 관습을 무시한 사랑이며 초월계의 돌파구를 여는 사랑이다. 그것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를 돕는 경험과 비슷하다. 정열과 충동이 너무나 강렬하여 세계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궁정연애의 이념이다. p.189
민중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 부, 자식이다. 신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따라서 그것이 하나 뿐인 종교,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민중종교이며, 신의 이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승려와 사제의 직무,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사원에 맡겨진 과업은 그들의 신의 이름을 그것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미친 듯이 돈이 쏟아진다. p.194
꿈은 당신 자신이다. 주체인 당신은 객체인 자신을 보고 놀란다. 주체와 객체는 두 개로 보이지만 실은 같은 것이다. 당신과 나는 같다. 이것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두 개가 실은 하나라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돌파구이다. 이것이 관계를 동일성으로 인식하는 것, 곧 초월로 향하는 중간점이다. p.195
우리의 최고의 신은 우리의 가장 큰 장애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사상과 감정의 완성을 상징한다. 당신은 그것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인 헤어짐은 신[곧 원소적 관념]을 위해서 신[곧 민족적인 형태의 신]과 헤어지는 것이다. p.200
9. 천상계로의 하강 : 「티베트 사자의 서」
죽음과 삶의 신화는 곧 환생의 신화이다. 동양의 환생은 서양의 연옥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재생의 기회, 당신이 광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기회이다. p.205
이것이 자기의 성격을 개조하려고 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p.213
자신이 선택한 신에게 충실하라. 그것이 당신의 길이다. 당신의 신이 어떤 신이건 간에 그 신을 통해서 부처의 전 세계가 당신의 지식이 될 것이다. p.226
10. 어둠에서 광명으로 :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
고전시대의 그리스에서 신비 종교가 추구한 것은 영적 경험이었다. 그것의 본질은 의식을 인간생활의 순수하게 현상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 헤아리기 어려운 것, 에너지로 가득한 것,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있었다. p.229
생명은 심연 속의 어둠, 곧 지하세계로부터 나온다는 관념은 신화의 중요한 모티프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교는 죽음, 지하로의 하강, 그 뒤의 재탄생의 주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p.231
명상이란 우리는 신성한 실체를 먹고 있으며 우리를 길러주는 것은 그 신성한 실체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생명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거나 산출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p.235
이 마지막 입문식의 뜻은 우리는 성적 대립을 뛰어넘는 양성을 갖춘 존재라는 데에 있다. 또한 내가 앞서 달의 의식과 태양의 의식의 결합에 대해서 말했듯이, 우리의 죽어야 할 운명과 불멸성이 하나임을 깨닫는 데에 있다. p.244
우리가 찾는 것은 경험을 쌓는 것,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p.249
영원은 시간의 형상들과 사랑에 빠져 있지만 그 형상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간의 형상 안에서 다른 것들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당신이 이 하찮은 사물에의 의무에서 벗어나려면 해체되어 초월계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p.251
11. 길(道)은 없었다 : 아서 왕 전설과 서양의 길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부처는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살아 있음의 고통의 경험이다. 고통이 있는 곳에 당신의 인생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찾으라. p.261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거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서 우리 마음속에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신의 존재는 그것에 대한 느낌이다. p.261
성배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샘이며, 그곳으로부터 영원한 에너지가 시간의 세계로 흘러들어온다.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이다. p.268
12. 고상한 마음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연애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팔’이야말로 중세 최고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단테는 천국에서 이야기를 끝냈지만, 고트프리트는 이 지상에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에 의해서, 참으로 멋지게 해결된다. p.298
13. 성배를 찾아서 : 파르치팔 전설
파르치팔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저 주어지는 여자와 결혼하지는 않겠다. 내 아내는 내 손으로 고르겠다.” 그것이 결혼과 사랑의 최초의 결합이다. 결혼과 사랑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초의 답인 것이다. p.308
결혼은 사랑의 확인이며, 성애는 결혼의 상징이다. 그것이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만든다. p.310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미국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1982년부터 19884년까지 미국 각지에서 행한 강연집이다. 캠벨이 타계한 1987년 이후 1990년에 출간되었다. 신화의 세계는 신화입문서로 인류가 걸어온 길을 신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 고대 그리스, 티베트 사자의 서, 아서왕 전설,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전설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종교와 신화 전반에 걸쳐서 신화에 관한 거대한 서사시를 펼치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캠벨이 세계 각지의 신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지혜가 캠벨 자신의 육성으로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신화의 세계’는 비교신화학의 "입문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동양의 종교사상에 대한 캠벨의 연구가 잘 나타나 있다.
캠벨은 이 책을 통해 신화는 인류가 누리는 삶의 뿌리이며, 그 뿌리에서 자라온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캠벨은 인간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온 문명과 더불어 정신적이 역사에 있어서도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신적인 역사에 내재한 통일성이 신화로 표현되어 왔다. 그리고 이 통일성은 하나의 교향악이 우려 퍼지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펼쳐져 왔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신화에서 발견되는 통일된 주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동서양의 고전문학과 20세기 문학 ․ 예술에도 나타난다. 신화는 태고적부터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는 태고적 우물로서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인류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각지의 신화들을 연구하고 그 속에서 원형을 고찰하는 캠벨의 이야기를 통해 신화란 단순히 지어낸 옛날 이야기가 아닌 역사에 대한 반성이고 미래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원시사회에서 시작한 신화의 기원에서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신화와 상징의 의미를 되집어 보며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의미 즉 원형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경이로 이끌어 준다. 한 예로 캠벨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바로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상징적 의인화라고 한다. 에너지의 의인화로 신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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