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이선형
  • 조회 수 3536
  • 댓글 수 7
  • 추천 수 0
2010년 4월 16일 07시 02분 등록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원제: Gods, Graves and scholars (영문판) 신, 무덤, 학자들-고고학 장편 소설)


* 저자에 대하여

 

  쿠르트 마렉 (Kurt W. Mark : 1915.1.20 베를린 출생 ~ 1972.4.12 함부르크 사망)은 신문기자, 연극비평가, 출판인 등을 거친 저널리스트였다. C.W.체람 (C.W.CERAM)은 1949년 그 첫 저서<낭만적 고고학 산책>을 출판할 때 사용한 가명이다.


  C.W.체람은 제 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 중에 태어났으며, 제 2차 세계대전(1939.9.1~1945.8.15)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24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18살에 첫 평론을 발표하고 19살에 잡지사와 출판사를 창립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의 패전을 예상하면서도 참전할 수밖에 없었고 부상을 입고 서른 살 즈음에 종전을 맞게 된다.

  이미 2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히틀러의 독재와 게르만 민족주의의 기승으로 문학 및 저술의 기본적 토양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살도 되기 전에 첫 글을 쓰고 출판사와 잡지사를 창립할 만큼 다재다능했던 체람은 자신의 관심분야를 ‘과거’로 좁히게 되고, ‘사실’이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분야에 집착하게 된다.

 ‘사람을 배경으로 사실들을 제대로 정리하면 그 사실은 가장 재미있는 문학적 구조가 된다’ 는 그의 생각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사실’들과 ‘과거’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자연스럽게 고고학사라는 학문을 만나게 되고 이것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조합한 4년 반에 걸친 노력의 결과로 그의 첫 저서 <낭만적 고고학 산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6개 이상의 국가에 번역되었으며, 5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무자비한 개발로 말미암은 고대 유물과 유적의 훼손을 안타까워  하는 체람이 보여진다. 당시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로 인한 아부심벨의 유적이 물속에 잠기게 될 위험에 처하자, 체람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을 한껏 발휘하여 유네스코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였고 국제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는 또한 아마추어 고고학 애호가를 벗어나 터키 고고학적 발굴인 히타이트 문명 발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적은 그는, 1972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고학사에 관한 저서<The Secret of Hittites>, <The march of Archaeology>가 있으며, 화보 에세이인 <영화 속의 고고학>, 실명으로 쓴 <도발적 메모들: Yestermorrow>, 미국에서 작업한 <최초의 아메리카인> 등이 있다. 또한 여섯 편의 기록영화 <고대의 발자취를 찾아서>의 작자 겸 감독이었다.

  

 “인간이 겸허한 마음을 배우고자 한다면 하늘을 우러를 필요가 없다. 우리보다 수 천 년이나 먼저 태어나 우리보다 먼저 자랐고, 우리보다 먼저 간 문명세계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체람이 남겼다는 이 말은 그가 고고학에 열정을 쏟은 이유와 우리가 지난 역사를 알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말해준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I. 조각상 이야기


1. 고대의 땅에 오른 서막

엄청난 유물을 바라보는 18세기 지식인들의 시각은 두 가지였다. 르네상스 이후에 태어난 사람답게 고대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사람과 정밀 학문의 태동을 느끼며 심미주의에만 빠지지 않고 사실 연구에 헌신하기를 열망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고대의 예술에 대한 애정에 학문적 연구와 비평을 도입한 사람 (요한 요아임 빙켈만) [36]


2. 빙켈만과 새로운 학문의 탄생

<헤르쿨라네움의 발굴 유물들에 관하여>-1762년 첫 공개 보고서

보고서의 가치는 그것이 베수비오 산 기슭의 발굴에 대한 세계 최초의 객관적 기술이라는 데 있었다.

<고대 미술사>

엄청난 분량으로 늘어난 고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참고할 ‘표본도 없이’ 고대 미술의 변천사를 최초로 기술한 책이었다.

대단히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를 세우고, 탁월한 통찰력으로 고대 사람들의 인식을 더듬어 나가며, 활력이 넘치는 필치로 고대의 정신을 전달했다. 그 결과 지식층에서는 고대의 이상을 추구하는 일에 헌신하려는 바람이 불었고, 나아가 고전주의 시대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다.

빙켈만이 애초에 의도했던 학문적 장비는 1767년에 발표한 <미공개 고대 유물>에 장착되었다. [41-42]


빙켈만의 업적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지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혼란만이 난무하던 세계에 질서를 도입하고, 추측과 전설로 얼룩진 분야에 학문적 체계를 세웠다는 데 있다. 그가 열어준 고대의 세계를 바탕으로 괴테와 실러를 낳은 독일 고전주의가 싹틀 수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보다 더 오래된 문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는 빙켈만이 미리 준비해둔 연장을 사용해 손쉽게 어둠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43]


3. 역사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

그 삶은 시간의 어둠 속에 깊이 가라앉았지만, 오늘날 인류의 언어와 풍속과 문화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46]


그 모습은 한 순간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횃불을 비추자 불빛에 모든 것이 흐트러지는 듯했다... 수백년을 견딘 몸뚱이가 공기와 닿는 순간 가루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다. [47]


유물은 끊임없이 문외한의 손에 파괴되었고, 도굴범들은 숨겨진 보물을 찾았다. 고고학자들이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과거를 만나기는 불가능했다. [49]


속지 않는 기술, 수많은 특징으로부터 작품의 진위 여부와 종류와 역사를 읽어내는 방법, 즉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을 해석학이라고 한다.

고고학자는 역사의 흔적을 찾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결론을 얻을 때까지 수사관과도 같이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퍼즐을 짜 맞추듯 돌멩이 한 조각 한 조각을 WK 짜 맞추어 간다.  [52]


헤라 여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들의 결정을 받들어 키디페의 두 아들을 안락사시켰다. 어린 날에 안락하게 죽는 일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54]


4. 가난한 소년이 쓰는 보물찾기 동화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은 채 아들의 손을 잡고 불길에 휩싸인 트로이 성을 QK져나와 달아나는 아이네이아스의 그림이 있었다. [58]


슐리만은 언젠가 호메로스 이야기에 나오는 머나 먼 나라를 찾아내고 그 연구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소년 시절의 꿈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59]


“6주 후에는 내가 쓴 편지를 플라톤이 받아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각오로 공부했다.” [61]


“하늘이 내 무역 사업에 기적과도 같은 축복을 내려 주신 덕분에 1863년 연말에는 내 야심을 능가하는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에 이어 내린 결론은 너무도 의외였다. 오직 하인리히 슐리만 자신만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무역 사업에서 손을 뗐다.” [62]


최상의 경제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 소년 시절에 품은 꿈을 좇기 위해 자신의 업무용 선박을 모두 불태웠다. 머릿속이 호메로스 이야기로 꽉 차있던 그 사람은 역사성을 의심하던 학계의 견해에 맞서 호메로스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문헌학자들의 펜이 수백 권의 책을 통해 흐려놓은 역사를 삽으로 직접 확인시켜주겠다면 일어섰다. [62]


<일리아스>- 위대한 시인이 쓴 신화와 전설, 신과도 같은 시인의 광휘가 번쩍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는 시인들 사이에서만 인정받았다...

차라리 트로이는 인간 호메로스의 문학적 영감이 창조한 허구의 세계라고 믿는 편이 쉬웠다. [63]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오직 매료된 마음 하나만으로 성공을 일구어낸 사례가 있었는가? [64]


일개 상업 견습생에서 백만장자로 성공하기까지 쏟았던 열정을 이제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쏟아부을 차례였다. 그는 신들인 듯 일에 몰입했고, 물자 또한 아낌없이 투입했다. [70]


5. 아가멤논의 마스크

세상에는 일생 믿기지 않을 만큼의 큰 성공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훗날 이런 사람의 일생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화려하게 묘사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 사람의 일생이란 뒤로 갈수록 더욱더 고조된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76]


이 또한 학문적 고찰의 결과라기보다는 고대의 기록에 대한 강한 믿음에서 우러난 결론이었다. [79]


중요한 점은 슐리만이 잃어버린 과거를 향해 또 한 번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학문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보물을 찾아냈다. 그 보물은 유럽 문화의 원조를 밝혀주는 값진 자료다. [82-83]


6. 슐리만과 학문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

“아마추어! 아마추어! 이 말은 학문이나 예술을 애정과 즐거움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싶은 열정 때문에 추구하는 사람들을 생업으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얕잡아 일컫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 일로 벌어들이는 돈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멸은 빈곤, 배고픔, 또는 기타 강한 욕구가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진지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천박한 신념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일반 대중의 생각도 같으며, 따라서 그들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전문가’에 대한 일반적인 존경심과 아마추어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실 아마추어에게는 예술이나 학문 자체가 목적인 반면, 전문가들에게는 수단일 뿐이다. 학문이나 예술을 가장 진지한 열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일 자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는 사람, 그래서 순수한 애정으로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최고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언제나 이런 아마추어들이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88-89]


성공한 ‘아웃사이더’에 대한 ‘전문가’의 불신은 일반인이 천재에게 보이는 불신과 같다. 안정된 인생행로를 걷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그러나 이런 멸시는 정당하지 않다. [90]


물론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조건은 모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수단이 순수하다면 자격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아웃사이더’들을 특히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91]


슐리만의 초기 해석과 연대 확인이 거의 다 틀렸다는 사실은 비극적인 실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콜럼버스도 처음에는 인도를 발견한 줄 알았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작아지는가? [92]


7. 미케네, 티린스, 그리고 수수께끼의 섬

오늘날 우리는 이 문명을 크레타-미케네 문명이라고 부른다. 슐리만은 처음으로 그 문명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문명의 본체를 발견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97]


슐리만은 발굴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그의 상인 기질이 고고학자로서의 관심을 눌렀던 것이다. 슐리만은 학문에 어마어마한 재산을 투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1612그루의 올리브나무에서 얻을 기름을 손해본다는 생각 때문에 선사시대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를 포기하고 말았다. [99]


에반스는 슐리만이 그랬던 것처럼 전설과 설화의 흔적을 파나갔다. 슐리만이 그랬던 것처럼 궁궐과 보물을 발굴했다. [101]


8. 아리아드네의 실

무역과 전쟁을 민족 간 교류의 동력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큰 세계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작은 세계에도 평화와 약탈이 공존했다. [102]


전설에 의하면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에게 처음 미궁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모든 미로의 표본이 되었다고 한다. [103]


그들은 풍요와 쾌락을 탐닉했고, 번영의 절정에 있을 때 이미 향락에 빠진 채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쇠퇴하는 문화는 이미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장미꽃잎으로 속을 채운 매트리스라 할지라도 그 위에 누워만 있으면 몸에 못이 박힌다.

경제적 번영은 곧 문화적 쇠퇴의 시작이었다. [105]


II. 피라미드 이야기


9. 승리가 된 패배

나폴레옹 1세와 비방 드농은 이집트를 최초로 고고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사람들이다. [117]


영웅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나폴레옹은 혜성처럼 온 유럽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의 뜨거운 열정에 유럽 사람들이 지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폴레옹은 ‘병든 뇌에서 나온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117-118]


다재다능하고 어떤 점에서는 매우 놀랍기도 한 드농은 오늘까지도 그의 이름에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훌륭한 업적 한 가지를 남겼다. 이집트를 총검으로 정복한 나폴레옹은 그 승리를 1년밖에 유지할 수 없었지만, 드농은 파라오의 나라를 제도용 연필로 정복해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의 그림은 이집트 역사에 새로운 영원의 시간을 부여했고, 우리의 의식을 눈뜨게 했다. [123]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도 표현주의도 모른 채 ‘수공업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어떤 세부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고 묘사했던 옛 동판화가들의 작품처럼 학문에 필요한 사실성을 철저히 지켰다. 이렇게 드농의 그림은 연구하고 비교하는 학자들에게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자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이 자료를 근거로 이집트학의 바탕이 된 <이집트 기록>이 완성되었다. [125]


프랑스는 헛수고를 한 것 같았다. 1년에 걸친 노력이 아무런 보람도 없는 듯했다. 이집트 눈병으로 실명한 학자들의 희생도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한 세대 동안 연구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파리로 가지고 왔다. 영국으로 인도된 이집트 유물을 한 점도 빠뜨리지 않고 복사했던 것이다. [126]


이 화려한 전집은 부자들만이 소장할 수 있었으며, 학문적 보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시대에 이 책이 갖는 의미를 요즘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날에는 학문적으로 중요한 발견을 할 때마다 그림이나 영화, 말과 소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수백만 부가 출판되어 다른 책과 경쟁하게 된다. 누구나 살 수 있고 또 잊어버리며,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도 쉽게 옮겨간다. 오늘날에는 더는 아무것도 보존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이 가치 없는 것으로 쉽게 전락한다. 그 옛날 이 최초의 <이집트 기록>을 손에 넣은 사람이 어떤 흥분에 사로잡혔을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읽고 상상도 못했던 삶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수천 년 전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든 이 책이 현대인보다 경외심이 강했던 그 시대 사람들을 어떤 전율에 떨게 했을지 우리는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127]

“빛은 네가 입고 있는 옷이구나....”

성서의 시편 작가는 이렇게 읊었다. 아침 일찍 투명하게 파란 하늘에 태양이 솟아 그 여정을 시작한다. 그 빛은 희고 노란 모래에 반사되어 노랗게, 눈부시게 반짝인다. 모래 위에 드리운 물체의 그림자는 푸른 잉크를 쏟은 듯 짙고, 가위로 오린 듯 뚜렷하다. 영원토록 태양빛을 받는 이 사막은 ‘날씨’를 모른다. 비도 없고, 눈도 없고, 안개도 우박도 없다.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도, 번쩍이는 번개도 없다. 바람이 건조시킨 이 사막은 씨앗을 품지 않는다. 모든 경작지의 흙은 부스러지고 으스러져 알갱이가 되고, 땅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이런 사막에 나일 강이 범람한다. ‘강의 아버지, 만물의 창조주 나일 강’은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 여러 호수의 물을 먹고, 어둡고 축축한 열대의 나라 수단에 내리는 빗물을 삼키고 부풀어 오른다. 강둑을 모두 넘고, 모래를 덮치고, 사막을 삼키고 진흙을 뱉어낸다. 무시무시한 7월의 흙탕물. 수천 년 전부터 매년 16엘레씩 수위가 오른다. 열여섯 명의 아이들이 강의 신을 둘러싸고 노는 바티칸의 대리석 군상은 16엘레가 상승한 나일강의 수위를 상징한다. 강은 포만감에 젖어 서서히 강바닥으로 다시 내려앉는다. 강이 삼킨 것은 사막만이 아니다. 메마름과 황량함도 삼켰다. 갈색 황토물이 흐른 곳에서는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땅에서 곡식이 자라고 수확은 두 배, 네 배가 된다. 그리고 ‘흉년’을 먹여 살릴 만큼 풍족한 ‘풍년’이 든다. 그곳에서 매년 새로운 이집트가 탄생한다. [129-130]


뻣뻣한 자세로, 모든 동작에서 위풍당당하게, 항상 옆얼굴만 보이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집트 사람의 삶은 죽음을 향한 여로였다.” 이러한 목표 지향성은 부조 벽화에 잘 강조되어 나타났다. 현대의 어느 문화철학자는 이집트 미술의 원초적 상징은 ‘길’로 그 의미는 유럽의 ‘공간’이나 그리스의 ‘인체’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1]


10. 샹폴리옹과 세 가지 언어로 쓴 새김글의 비밀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돌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에 넋을 잃었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 푸리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제가 읽을 거예요! 몇 년 후 제가 크면요!” 어린 샹폴리옹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137]

  

두 사람이 소년시절의 꿈을 실현시킨 방법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슐리만은 전적으로 호자 공부했지만 샹폴리옹은 정해진 교육의 길을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말이다. 슐리만은 전문적인 기본 소양을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로 작업에 착수한 반면, 샹폴리옹은 그 시대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으로 무장했다. [138]


신기하게도 샹폴리옹이 배우는 모든 것, 그가 하는 모든 일, 그에게 흘러드는 모든 영향은 이집트 마법의 손아귀에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은 ‘이집트’와 통했다. [138]


지금까지 생각해온 일, 줄곧 남몰래 품었던 희망이 그 순간 갑자기 분명해졌던 것이다. “나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거야. 난 할 수 있어!” 상폴리옹의 갈색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140]


인류의 정신사에서 수많은 오류를 만들어낸 그 경직성이 이번에도 학자들의 뇌를 마비시켰다.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코페르니쿠스와도 같은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고수해온 전통의 궤도를 모두 벗어나는, 번갯불처럼 ‘번쩍!’하고 어둠을 밝히는 그런 착상 말이다. [143]


훗날 슐리만은 유럽의 모든 언어를 섭렵할 때까지 고대 그리스어 공부는 미루기만 했다. 고대 그리스어야말로 슐리만이 가장 동경하는 언어가 아닌가? 따라서 그 공부를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들게 되리라는 사실을 슐리만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어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었다. 샹폴리옹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로제타석에 새겨진 세 가지 언어를 맴돌았다. 소용돌이처럼 빙빙 돌며 점차 고찰의 대상을 향해 좁혀 들어갔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지기만 했다. [146]


11. 국가반역 죄인이 해독한 상형문자

샹폴리옹은 역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실을 향한 갈망이라고 천명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나폴레옹식 진실이나 부르봉 왕조식 진실이 아닌 절대적 진실이었다. [151]


이런 점에서 샹폴리옹은 정치가였으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갈등했다. 그는 한 순간도 자신의 이상을 저버리지 않았지만 때때로 자신감을 잃었다. [151]


그런데 호라폴론이 상형문자를 줄곧 그림문자로만 보았기 때문에, 100년 동안 이루어진 모든 해석은 그림에 담겨 있는 상징적 의미를 찾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156]


위대한 정신적 발견은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끝없이 사고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을 훈련한 끝에 얻는 결과다. 따라서 그 발견의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은 의식과 무의식, 뚜렷한 집중력과 흐릿한 몽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번개처럼 스치는 착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무리 기발한 생각이라도 그 생각에 이르기까지 쏟은 노력의 역사를 알게 되면 기발하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일단 원리가 밝혀진 후에는 오류가 너무나 명백해지고, 착오는 찾을 수 없으며 문제도 간단해 보인다. [160]


샹폴리옹은 12개 이상의 고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162]


100년도 채 넘지 않은 과거에 같은 문화권에서 사용했던 문자도 알아보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그 시절 샹폴리옹은 낯선 문화권에서 3000년에 걸쳐 일어난 문자의 변천을 밝혀낸 것이다. [164]


12. 4000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굽어보고 있다!

샹폴리옹이 상형문자를 해독한 이후 수십 년 사이에 네 사람이 이집트학 분야에서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 이름을 이 책에서 서술하기에 편리한 순서대로 들자면, 이탈리아의 벨초니, 독일의 렙시우스, 프랑스의 마리에트, 영국의 피트리다. 벨초니는 수집했고 렙시우스는 정리했으면, 마리에트는 보존했고 피트리는 측량하고 해석했다. 이 네 사람이 유럽의 각기 다른 네 나라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네 사람은 같은 목표를 추구했고, 지식과 진실을 향한 욕구가 무엇보다도 강했다는 점에서 일치했으며, 한 가지 업적에 공동으로 기여했다. [172]


오스발트 슈펭글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대 사람들에게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없으면 역사의 기록도 없다. 이집트에는 역사가가 없었다. [180]


이집트의 신들은 후대에 와서야 인간의 모습을 띠었다. 고대인들은 부호, 식물, 동물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의식했다. [187]


13. 피트리와 아메넴헤트의 무덤

고고학계의 위대한 측량가이자 해석자인 윌리엄 매튜 플린더스 피트리는, ... 열 살 때 이미 이집트학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때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집트의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유물을 꺼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땅속에 묻히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경외심과 지식욕을 잘 조절하여 이집트의 흙 한 알 한 알을 ‘긁어내야’한다는 말이었다. [194]


유일한 존재였던 한 사람을 위해 지은 무덤들. 자신의 이름을 수십만의 이름 없는 사람들을 시켜 하늘 높은 곳에 돌로 쓰고자 했던 사람들. 오직 명성을 얻기 위한 일이었을까? 단지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돌로써 표명한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의 주제를 망각한 권력자의 지독한 오만이었을까?  [201]


육신의 죽음 후 자유로이 떠도는 ‘영혼’ - ‘바’

수호정령인 ‘카’, ‘카’는 인간이 타고나는 생명력의 화신 [202]


이러한 믿음의 힘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모든 이성의 목소리를 눌렀다. 파라오들의 피라미드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끝도 없이 치달은 이기주의의 산물이었다. [203]


피라미드는 본질적으로 파라오만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오직 그의 죽은 육신과 그의 ‘바’와 그의 ‘카’를 위해. [203]


여기서 파라오들의 오만은 비극으로 급변한다. 돌로 요새와 같은 무덤을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땅 밑 마스터바나 간단한 모래 무덤 속에 누운 사람들이 오히려 고인으로서 더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의 무덤을 대부분 도둑들이 그냥 지나갔던 것이다. [205]


14. 왕가의 계곡을 누비는 도둑들

왕은 자신의 미라를 위신에 걸맞게 값비싼 장식품으로 치장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위엄을 훼손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유혹은 너무도 컸다. 부자가 되고픈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물은 그것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찾은 사람의 차지였으며, 도둑은 이르든 늦든 그 길을 찾고야 말았다. [225]


15. 미라

‘너는 오늘 처음으로 내 앞에 왔다. 이번에는 가도 좋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와서는 안 된다. 명심, 또 명심하라.’ [234]


잘한 일일까? 울음을 토하며 자신의 가슴을 치던 그 사람들의 눈에는 브룩시 또한 도둑이 아니었을까? 3000년 동안이나 왕들의 무덤을 훼손한 무도한 사람들과 같지 않았을까? 학문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이 충분했을까? [245]


16.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을 발견하다

슐리만은 몸소 삽을 들어 땅을 판 최후의 위대한 아마추어였으며, 독자적으로 활동한 천재였다. 그 후 크노소소와 바빌론을 발굴할 때부터는 가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지휘부가 투입되었다. [247]


하워드 카터는 정밀학에 대단히 심취했으며 동시에 학문적 방법론의 엄격성, 정확성, 치밀성을 최상의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이로써 카터는 고고학 제국의 위인 반열에 들었다. 그들은 오직 보물을 찾기 위해, 혹은 죽은 왕의 시신을 파내기 위해 삽을 들고 나선 사람들이 아니다. 인류가 찬란한 고대 문명의 모습과 표정과 성격과 정신을 발견한 이래 모든 수수께끼를 파헤친 사람들이었다. [248]


학문의 역사에서 흔히 일어났던 일이 이때에도 일어났다. 카터는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올라 한 지점에 삽을 꽂았다. 그 지점은 사실상 정확히 고른 지점이었으며, 발굴을 위해 파야 할 땅의 최소 면적이었다. [252]


이 정도의 자료를 근거로 투탕카멘의 왕의 고분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다니! 아니, 직관에 근거한 확신을 얻다니! 이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투철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54-255]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틀림없이 그 통로 뒤에 있었다. 그러니 당장 문을 부수고 발굴을 계속하고 싶었고, 그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극기가 필요했다.” 카터는 문에 낸 구멍을 통해 안을 들어다본 후 이렇게 기록했다. 집으로 향하는 나귀의 발걸음은 평온했지만 커터는 충동과 조바심, 엄청난 발견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유혹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맞서 싸워야 했다. 6년에 걸친 노력 끝에 위대한 발견을 눈앞에 둔 고고학자가 고분을 다시 메우고 후원자이자 친구인 카르나본 경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한 일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257]


17. 황금의 벽

투탕카멘의 고분 발굴이 이집트 유물 발굴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건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정확하고 철저한 작업 방식에 있었다. 그러나 발굴 초기부터 세계 각지에서 쏟아진 도움의 손길과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하워드 카터도 이토록 치밀하게 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66]


“그것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작은 화환이었다. 청상과부가 된 왕비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작별의 인사였다. 이 초라한, 아직 한때의 고운 빛을 희미하게나마 간직한 몇 송이 마른 꽃잎 앞에서 호화롭고 화려한 왕의 자태와 번쩍이는 황금은 그 빛을 잃고 말았다. 그 화환은 수천 년 세월의 무상함을 가장 절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277]


III. 탑 이야기


18. 성서구절

19. 보타의 니네베 발견

구약성서에서는 두 강 사이 땅의 북부 지방을 아람 나하라임, 즉 강 사이의 시리아라고 부른다. 그 땅에 신의 분노가 쏟아졌다. 아람 나하라임의 니네베와 니네베 남쪽의 대도시 바빌론을 통치했던 잔혹한 왕들이 하느님 외에 다른 여러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 땅에서 쫓겨났다. 여기가 바로 메소포타미아다. 오늘날의 이름은 이라크이고, 그 수도는 바그다드다. [298]


거듭 허탕을 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확실한 정보 하나 없이, 단지 이 언덕을 파면 가치 있는 유물이 나오리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날이 가고 달이 가도록 파고 또 파도 나오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기호로 덮인 금간 벽돌 몇 점과 엉망으로 파손되어 도저히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조각품 파편 또는 너무도 유치해서 아무런 상상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토르소 몇 점뿐이건만, 그럼에도 여전히 삽을 놓지 않는 일이 어떤 일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301]


20. 설형문자 해독

천재란 무엇보다도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볼 수 있고, 복합구조에서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로테펜트의 진실로 천재적인, 결정적인 착상은 놀라우리만치 단순한 것이었다. [315]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상형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의 이름은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는 반면 그로테펜트의 이름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한 위대한 유물에 그 역사적 의미를 조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발견을 꼽자면 단연 그로테펜트의 설형문자 해독이며, 최초라는 수식어는 오직 그에게만 해당된다. [320]


21. 베히스툰 바위의 새김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난무했다.

그 오리무중의 숲 속에서는 좁디좁은 오솔길조차 찾아낼 수 없을 듯했다. [326]


22. 님루드 언덕에 묻힌 궁전

이제 성서에서 악습의 본고장이자 부패의 온상으로 그토록 많은 저주를 받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대도시가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했는지 소구 사람들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드넘 박물관에 처음으로 고대 아시리아의 유물을 전시하는 대형 전시관이 설치되었고, 어마어마한 성벽의 전면도 복원되었다. 그 전까지 단지 전설, 민담, 고대의 작가들이 쓴 미심쩍은 여행기, 그리고 성서에서만 등장했던 건축물의 모습을 실제로 접한 사람들은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다. [330]


레이어드의 삶은 보타나 롤린슨의 삶과 흡사했다. 모험심이 넘치는 동시에 출세도 했고,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세상물정에 밝았으며, 정치에도 참여했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 또한 대단히 노련했다. [331]


레이어드는 청년 시절부터 동방을 꿈꾸었다. 머나먼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페르시아..... 스물두 살의 청년은 곰팡내 나는 런던의 변호사 사무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 앞날의 여정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그를 손짓하는 것은 오직 법정에서 쓰는 가발뿐이었다. 청년은 일상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꿈을 찾아나섰다. [332]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곤 한다. 우리는 새벽에 조촐한 오두막 또는 아늑한 천막을 빠져나와 기분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해질녘이면 아랍인 대상들이 오두막을 지은 고색창연한 폐허나 지금은 그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쇠락한 마을에서 밤을 보냈다.  [333]


23. 조지 스미스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로마였다. 막강한 도시, 대도시, 세계적인 도시였다. 어마어마한 궁전과 거대한 광장, 넓은 도로가 건설된 도시였고, 전대미문의 신기술이 승리를 자랑한 도시였다. 또한 극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한 도시였다. 유혈 폭동으로 얻은 권력이든, 혈통이나 작위에 의한 권력이든, 돈이나 폭력 또는 이 모든 요인을 교모하게 결합하여 손에 쥔 권력이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매를 맞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천민들의 도시였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그들은 그럴듯한 슬로건이 보여주는 자유의 징후에 몇 번이나 미혹되었다. 전체의 복지를 위해 일하라든지, 민족의 안녕을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든지...... 20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밀물과 썰물과도 같이 그들은 사회적 봉기와 안정된 노예생활 사이를 오가며 영원히 동요하는 천민들이었다. 깨치지 못했고, 맹목적이었으며, 이들 도시의 대형 도축장에 선 가축처럼 언제든 희생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시리아의 도시들은 유일신을 섬기지 않았다. 수많은 신들을 섬겼으며, 때로는 아주 먼 옛날의 신들을 모시면서 그 신들이 지닌 창조적인 힘을 거세시켰다. 거짓과 선동의 도시들이었으며, 정치를 영구적인 사기술쯤으로 생각하는 도시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니네베였다. [364-364]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인생에서 얻은 모든 것을 배에 실었다. [375]


24. 포화 속을 뚫는 콜데바이

이런 고고학에 콜데바이는 애정을 쏟았지만, 고고학을 향한 애정이 세상을 향해 열린 그의 시각을 흐리지는 못했다. 그는 나라와 민족에 대해, 상황에 따른 유혹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즐거움에 대해 언제나 열린 마음을 유지했으며, 그에게서 넘쳐흐르는 유머의 샘은 결코 마르지 않았다. [381]


운명의 길은 어둠에 싸여 있고

앞날로 이끄는 별빛은 흐리니

잠자리에 들기 전 코냑 한 잔을

나는야 즐거이 비워낸다네! [382]


“나는 내 속에 누군가 들어 앉아 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 콜데바이, 이제 이것과 저것만 하면 돼.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사막에서 도둑들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기승을 부려도 도둑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386]


25. 바벨탐 에테메난키

그것은 당시에 사용되었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침입할 수 없는, 초고의 방어 기능을 갖춘 요새였다. 그러나 바벨은 정복되지 않았던가? 이에 대한 설명은 한 가지 뿐이다. 적은 외부에서 쳐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적은 끊임없이 장벽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내정은 혼란을 거듭했고, 적이 성내로 들어와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기 바라는 정파도 늘 존재했다. 이 태도는 때로는 정당할 수도, 때로는 부당할 수도 있다. 이리하여 굳건하기가 비길 데 없던 바빌론 요새가 무너졌던 것이다. [395]


피라미드는 통치자가 자신의 일생에 걸쳐 지었다. 그들 가운데는 짧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자신을 위해, 자신의 미라와 자신의 ‘카’를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러나 계단식 탑은 여러 통치자가 세대를 이어 쌓아 올렸다. 할아버지가 시작한 공사는 손재 대에 와서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곳의 통치자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지구라트를 지었다. 지구라트는 민족의 성전이었다. 신들의 제왕 마르두크 신을 받들었던 수천 명의 행렬이 향하는 목적지였다.  [399]


바벨탑은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오만을 상징한다. [402]


26. 대홍수

검은 고양이가 길을 가로막으면 재수가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는 미신이 떠오를 때, 십진법만 사용하는 우리가 열두 칸으로 나뉜 시계를 볼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리의 운명을 행성과 연관시킬 때, 우리는 바빌로니아를 생각하는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일부는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빌로니아 민족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땅에서 유래했다.

발굴 현장에서 새로운 유물이 출토될 때마다 고고학자들은 놀랄 따름이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우리의 사고와 감정 속에 얼마나 많은 바빌로니아의 정서가 남아 있는가?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빌로니아의 지혜가 다른 민족에게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408]


“인간의 노력을 단지 그 성과만으로 평가한다면, 수메르인들은 뛰어난 지위에 오르지 못할지언정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간의 노력을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평가한다면, 수메르인들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마땅하다. 그들의 문명은 깊은 야만성에 빠져 있던 세계에 빛을 던졌고, 역사적 발전의 동력을 세계 최초로  가동시켰다. 우리가 성장한 때는 모든 예술의 근원이 그리스에 있다고 믿은 시기였으며, 그리스 자체는 아테네 여신처럼 올림포스 산에 사는 제우스신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피운 문명의 꽃씨를 리디아인, 히타이트인들이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페니키아, 크레타, 바빌론,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문명의 뿌리는 그보다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모든 민족들에 앞서 수메르인이 있었다.” [422-423]


IV. 층계 이야기


27. 몬테수마 2세의 보물

이 책에서 등장하는 역사상 위대한 발견에 있어 처음으로 유럽 사람이 기독교 문명과는 다른, 폐허의 잔해로부터 찬란한 문명을 복원하는 노력 없이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만나는 사건이었다. [429]


“이 문화의 소멸은 폭력에 의한 파멸의 유일한 예다. 그 문화는 시들지 않았다. 억압당하거나 저지당하지도 않았다. 절정의 화려함을 뽐내던 시기에 목이 잘린 것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꺾어버린 해바라기꽃처럼!” [429-430]


발견에는 연구가 뒤따를 수도, 뒤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연구에는 반드시 정복이 뒤따랐다. 신대륙은 상상도 하지 못한 부의 원천이었다. 국제무역의 새로운 시장인 동시에 약탈을 기다리는 보물창고였다.  [430-431]


28. 목이 잘린 문명

교회를 떠나서는 어떤 예술도 없었고, 교회 없이는 학문도, 삶도 없었다. 서구의 세계관은 기독교였다. 이와 같이 폐쇄적인 세계관에서는, 정당성과 영원성, 구원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어쩔 수 없이 배타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독교가 아니면 무조건 사교였고, 그들과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야만인이었다.

16세기 사람들의 이런 기본 사상은 다른 문화, 다른 세계관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데 절대적인 걸림돌이 되었다. 이와 같이 수직 관계만 알고 수평관계는 모르는 서구의 사상은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의 실상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444]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성처녀 마리아의 기적도 아니고 성자들의 기적도 아닌, 에르난 코르테스의 기적이었다. 그의 기적은 모든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영웅의 노래로 찬양할 만했다.  [453]


29. 도시를 산 스티븐스

“이 날씨는 사람의 기운을 갉아먹었다. 산욕을 치르는 여자들은 죽기도 했다. 황소들은 살이 빠지고, 암소들은 젖이 나오지 않았으며, 암탉들은 알을 낳지 않았다.....” [461]


... 제단 앞의 유물 주변을 빙 둘러서 나무가 자라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숲은 그 유물이 마치 성물인 양 그늘을 만들어 보호하려는 듯했다. 유물은 마치 신처럼 보였고, 사라져간 민족을 숲의 엄숙한 정적 속에서 애도하는 듯했다. [466]


“폐허가 된 도시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난파한 조각배와도 같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돛은 날아가고, 이름은 사라지고, 배에 탔던 사람들은 익사했다. 그 배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배인지, 얼마 동안 항해했는지, 왜 침몰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배의 모양으로 미루어 어느 나라의 배인지 짐작할 뿐, 정확한 사실은 어쩌면 결코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469]


아즈텍 문화는 가장 찬란하게 꽃피운 상태에서 코르테스에 의해 ‘목이 잘린’반면, 스페인 정복자가 마야 제국의 해안에 상륙했던 당시 마야는 문화적, 정치적 절정기가 지난 지 이미 수백 년 뒤였다. 그 민족은 소멸하기 직전 최후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상태였다. [478]


“그 베일은 생명이 유한한 인간의 손으로는 들춰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결론은 지나치게 용기를 잃은 태도다. 생명이 유한한 인간의 손은 오늘날에도 파헤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수백 년 전에는 뚫을 수 없는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도 오늘날에는 이미 그 베일을 벗어던졌다. [479]


30. 막간극

수메르인은 메소포타미아로 온 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최초의 주거지를 정하고, 그곳에서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변에서만 번성한 문명이 아니라 나일 강과 더불어 번성한 문명이었다. 이들 민족에게 이 강들이 있었다면, 고대 그리스에는 좁다란 에게 해가 있었다. 즉, 과거의 위대한 문명은 모두 운하문명이었다. 고고학에서는 문명 발상지의 전제조건으로 흔히 강을 꼽았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문명은 운하문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문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전제는 고대 문화민족들은 주로 농경과 축산을 주산업으로 했다는 점이다. 마야인은 비록 나름의 특별한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농경을 했다. 그런데 축산은? 마야 문명은 실제로 가축이나 짐 끄는 짐승이 없는 유일한 문명이다. 즉, 수레 없이 이룩한 문명이었다. [481-482]


중앙아메리카의 탐험가들에게는 세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첫째, 이 문명이 지닌 독창성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의문 투성이였으며 둘째, 오직 방대한 자료가 마련되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비교 연구가 불가능했고 셋째, 그 땅의 지형적인 특징이 신속한 후속 연구를 가로막았다. [483]


31. 버려진 도시의 비밀

유카탄의 제 2대 대주교였던 디에고 데 란다는 광신적인 사제인 동시에 현대적인 이성을 가진 학문 애호가였지만 이 두 가지 인격을 조화시키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두 가지 영혼이 싸운 끝에 광신도의 영혼이 승리를 거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디에고 데 란다도 다른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마야의 기록들을 악마의 작품으로 몰아, 닥치는 대로 불살랐기 때문이다. 그가 지성에 따라 한 유일한 일은 단지 생존해 있던 마야의 영주들을 세헤라자데로 만든 일뿐이다. 이들 이야기꾼이 들여준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디에고 데 란다는 마야인의 삶과 이상, 그들의 신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록에 스케치도 곁들였는데, 그 스케치는 마야인들이 사용하던 달과 날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485]


마야 민족은 정확한 천문 관측을 복잡한 수학적 기술과 결합할 줄 알았다. 매우 합리적인 사고력을 지닌 민족이었다. 동시에 병폐가 매우 심한 신비주의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었다. 마야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달력을 고안하고는 그 달력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489]


이렇게 냉혹한 사회구조는 10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이완되지 않은 듯하다. 그 속에서 멸망의 씨앗이 싹텄다. 수준 높은 문화와 사제들의 학문은 어쩔 수 없이 밀교와도 같은 성격을 점점 더해갔다. 그들의 지식은 결코 아래로 전달되지 않았다. 경험 교환은 없었다. 마야 학자들의 예리한 사고력은 점점 더 하늘의 별만을 향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탱해줄 힘의 원천인 농경지는 잊어버렸다. 무서운 재앙을 막을 도구를 고안하는 일도 잊었다. 그토록 훌륭한 학문적, 예술적 업적을 이룩한 민족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간단한 연장 하나가 없었다. 마야에는 쟁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에 대한 설명은 오로지 마야 지식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정신적 자만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495]


32. 우물로 가는 길

“어느 날 아침, 첫 햇살이 먼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때 나는 이 신전의 지붕에 올라섰다. 아침의 정적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밤의 소음은 사라지고, 낮의 소리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위로는 온 하늘이, 아래로는 온 땅이 숨을 죽인 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때 크고 둥근 태양이 떠올랐다. 빛나며, 이글거리며, 세상은 순식간에 노랫소리와 흥얼거림으로 가득 찼다. 나무 가지의 새들과 땅의 벌레들이 다 함께 찬미가를 불렀다. 자연은 최초의 인간에게 태양을 숭배하라고 가르쳤고, 인간은 그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 오늘날까지도 따르고 있다.” [499]


모든 민족의 민요에서 우물로 가는 소녀들의 모습은 때로 심오한 뜻을 내포하기는 해도 줄곧 삶에 대한 긍정, 삶의 즐거움을 묘사한다. 그러나 신성한 세노테로 가는 마야의 어린 소녀들은 죽음의 길을 걸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소녀들이 우물 앞에 선다. 곰팡내 나는 물은 소녀의 몸을 삼키고, 비명마저도 삼킨다. [500]


그러나 모든 사물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역사가들이 과거로 파고드는 이유는 건축 기사가 땅을 파는 일과도 같다.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일이다. [513]


33. 숲과 용암으로 덮인 층계

고고학의 역사에서는 엄청난 역경 속에 겨우 완성한 역사의 그림이 새로이 발견된 사실로 인해 한순간에 일그러질 위기에 처하는 사간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학자들이 기존의 그림을 일그러뜨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마치 뜨거운 수프 접시 주변을 빙빙 도는 고양이처럼 대단히 소심하게 주변만을 맴돌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학문의 자기 방어적인 성질이 작용한 결과다. [519]


“이토록 절대적인 어둠에 싸여 있으면서 어떤 물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땅이 있는가? 이 모습을 본 사람은 경탄과 당황 가운데 어떤 느낌이 더 클까?” [524]


“아스텍 문명과 마야 문명의 특징은 종종 서구의 고대 세계와 비교를 통해 부각되는데, 이러한 비교에 따르면 아스텍은 로마에 해당되고, 마야는 그리스에 해당된다. 이 비유는 전체적으로 보아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야 민족은 실제로 여러 공동체 조직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이들 공동체는 서로 반목했고, 때때로 공동의 적과 싸워야 할 때만 단결했다. 마야 제국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조소, 건축, 천문, 산술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했다.

이에 반해 아스텍 민족은 호전적이었다. 톨텍인들은 아스텍 민족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다. 톨텍인들은 에트루리아족에 비견될 만하다.“ [527]


톨텍 또는 어쩌면 그보다 더 이전에 살았던 종족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맡은 역할은 수메르인과 마찬가지로 발명가였다. 마야 민족은 바빌로니아 민족과 같이 우수한 발명품의 혜택을 누리며 문화제국을 건설했다. 아스텍 민족은 호전적인 아시리아 민족과 나란히 세울 수 있다. 그들은 발달한 학문으로 이익을 챙겼지만, 그 학문은 순전히 권력으로 활용되었다. [527] 


V. 아직은 할 수 없는 이야기


34. 고대의 땅에서 펼치는 현대의 연구

발굴 사례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지 않고 네 개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 별로 소개함으로써 네 개의 독립된 문화권, 즉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에 대한 윤곽이 자연스럽게 잡히도록 했다.

소개된 문명들은 ‘고고학 소설’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어울리는 문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문명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다 보면 정말로 낭만적인 모험을 즐길 수 있으리라 판단되는 문명들이다. [535]


현대인들을 질식시킬 듯한 일상의 문제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탈진 상태에 이른 현대인들은 과거로 눈을 돌렸고, 지난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고고학적인 문제에 관한 일반인의 참여는 그 범위가 더 넓어지고 그 요구가 더 절실해졌다. 이런 관심은 이집트에 건설할 댐으로 인해 일부 유물이 안타깝게도, 대단히 안타깝게도 물에 잠길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했다. [552]



* 내가 저자라면


  생동감 넘치고 물이 흐르는 듯한 C.W.체람의 문체와 김해생의 번역은 고고학이라는 조금은 낯선 주제의 이 책을 순식간에 읽어가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묘사와 적절한 등장인물들의 감정 묘사는 고고학에 문외한인 나조차 감정이입을 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덧붙여 이 원서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1984년 번역본(안경숙 옮김, 대원사)과 비교해 보면 역자의 힘이 막강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원제 <Gods, Graves and scholars : 신, 무덤, 학자들 - 고고학 장편소설>와 저자의 머리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문 학술서적이 아니라 고고학이라는 학문분야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즉 박물관에 있는 유물에 대한 지루하고 고루한 보고서가 아니라 발굴 작업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꿈과 땀, 때로는 그들의 좌절과 절망을 생생하게 그림으로써 역사 속에서 고고학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살아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저자의 상상력을 발휘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오로지 사실만을 기술하면서 문학적 요소를 첨가한 ‘논픽션 소설’이다. 이러한 형태는 일반인이 쉽게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전문성을 갖추는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문체와 형식을 가지고 재미있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시도인데, 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의 경력과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사랑이 재미와 지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리에 포획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며, 이런 점이 바로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5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이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 고고학 탐사와 발굴에 막대한 업적을 남긴 이 책의 많은 주인공들이전문 고고학자들이 아니었듯이, 이렇게 생생하게 그들의 업적을 살려낸 저자 또한 전문 고고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라는 것이다.

  이미 읽었던 죠셉 캠벨의 <신화의 힘>이 저널리스트 마이어스와의 대담으로 엮어져 나와 그 어떤 책보다 쉽게 신화에 대해 알려준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행간에 숨은 뜻과 의미를 파악해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저널리스트적 감각이 요긴함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강점은 또한 내용을 전개하면서 글의 생동감을 살리고 자신의 묘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글을 생생하게 인용한 것이다. 자칫 건조할지도 모르는 고대 유적을 묘사함에 있어서, 또 낯선 곳의 풍광을 묘사하기 위해서 자신의 글 외에 과거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기행문과 보고서 등을 인용함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4년 반에 걸친 조사의 힘이었고 책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생생한 묘사를 위해 과거시제 속에 현재시제를 섞어서 사용한 것도 훌륭한 시도이다.   

  책의 부록으로 연대표를 실은 것은 책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높이며 저자의 노력을 짐작하게 하며, 중간 중간 참고할 자료로서 도움이 된다.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는 책은 그 전문성을 보여줄 자료를 첨부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마지막 장에서 현대의 고고학계의 관심사와 현안들을 흥미있게 보여줌으로써 앞에서 다룬 네 가지 고고학의 주된 발굴 현장의 이야기가 현재와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생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수중 탐사 기술과 비행술, 탄소 연대측정법의 개발 등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되는 고대의 수수께끼들을 점차 많아질 것이며, 아직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는 것 또한 알려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보면서 마무리의 방법과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마무리(V.아직은 할 수 없는 이야기)에 간단하게 언급한 슐리만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이 책의 본문에 ‘각주’ 또는 그 장(I.조각상 이야기)의 뒷부분에 좀 더 자세히 언급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본문에서는 슐리만에 대해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열정을 바친 성공한 백만장자, 모험가, 또 성공한 발굴자로서 매우 긍정적인 관점에서 썼다가 책의 말미에 슐리만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을 간단히 기술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신뢰성 면에서 좋은 구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서전에 기술되고 본문에서 인용된 슐리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중에 조작된 것이라거나,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정직하지 못했다는 점, 발굴과정에서의 많은 실수 및 해석과정에서의 오류 등 슐리만에 대한 부정적인 많은 부분들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물론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산과 노력을 들여 트로이를 발굴하고 고고학 발전에 기여한 슐리만의 공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저자 C.W.체람이 ‘사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만큼 이런 다양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고고학에 대한 다른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이 책을 보고 편향된 사고만을 하게 되는 오류를 최소한으로 막아줄 것이다.     또한 이런 슐리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이미 알고 있던 독자라면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저자의 관점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머리말에서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이유를 굉장히 자세히 설명하지만, 그 외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에 대한 설명이나 언급 없이 바로 첫 번째 장에서 조각상 이야기로 들어가는 도입부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하다. 저자가 이 책을 구성하는 네 가지 문명의 발생지를 각각의 챕터로 설정한 이유조차 마지막 장을 읽은 후에나 이해가 된다.

  따라서 도입부에 머리말 외에 네 가지 문명에 대한 저자의 선택과 간단한 이야기가 있다면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 쉽게 이해가 되고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가지 챕터 속의 34가지 소제목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들(예, ‘승리가 된 패배’. ‘4000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굽어보고 있다!’, ‘막간극’ 등)이 많아 다루고 있는 내용이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물론 ‘소설’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고학적 사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제목을 단 것(예,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을 발견하다’, ‘샹폴리옹과 세 가지 언어로 쓴 새김글의 비밀’ 등)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더는 아무것도 보존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이 가치 없는 것으로 쉽게 전락한다. [127]


머리말

I. 조각상 이야기

  1. 고대의 땅에 오른 서막

  2. 빙켈만과 새로운 학문의 탄생

  3. 역사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

  4. 가난한 소년이 쓰는 보물찾기 동화

  5. 아가멤논의 마스크

  6. 슐리만과 학문

  7. 미케네, 티린스, 그리고 수수께끼의 섬

  8. 아리아드네의 실


II. 피라미드 이야기

  9. 승리가 된 패배

 10. 샹폴리옹과 세 가지 언어로 쓴 새김글의 비밀

 11. 국가반역 죄인이 해독한 상형문자

 12. 4000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굽어보고 있다!

 13. 피트리와 아메넴헤트의 무덤

 14. 왕가의 계곡을 누비는 도둑들

 15. 미라

 16.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을 발견하다

 17. 황금의 벽


III. 탑 이야기

 18. 성서 구절

 19. 보타의 니네베 발견

 20. 설형문자 해독

  21. 베히스툰 바위의 새김돌

  22. 님루드 언덕에 묻힌 궁전

  23. 조지 스미스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24. 포화 속을 뚫는 콜데바이

  25. 바벨탑 에테메난키

  26. 대홍수


IV. 층계 이야기

  27. 모테수마 2세의 보물

  28. 목이 잘린 문명

  29. 도시를 산 스티븐스

  30. 막간극

  31. 버려진 도시의 비밀

  32. 우물로 가는 길

  33. 숲과 용암에 덮인 층계

  

V. 아직은 할 수 없는 이야기

  34. 고대의 땅에서 펼치는 현대의 연구


부록 : 연대표

       참고 문헌

IP *.106.7.10

프로필 이미지
청강경수기
2010.04.16 14:56:27 *.145.204.123
헉~ 언제 다 보시고... 저는 이제 시작해야 되는데.........
 1등 감축드립니다 emoticon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4.16 16:47:30 *.30.254.28

난 내일 병원에서 용평으로 교수 워크샵
1박 2일 가는 것 준비하고 있어.., 
연이은 워크샵으로 주말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 데...흑흑...

선형..이미 다 읽었을 것 같더라니...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깐.....ㅎㅎㅎ

고생했어...
프로필 이미지
2010.04.19 11:55:39 *.106.7.10
ㅎㅎㅎ 오빠 제가 좀 내숭이었나요?
근데 그땐 진짜 다 읽지 못했다니까요, 
전 오빠에 비해 시간이 훨~씬 많잖아요. ^^;;
오빠 진짜 시간 없어서 어떡해요? 꿈에서 이야기할만 하신데요.
용평 잘 다녀오시고 리뷰랑 칼럼 올려주세요 ^^
근데, 그럼 이번에도 마무린 남자 화장실에 숨어서 ???  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맑은
2010.04.16 16:57:24 *.227.177.59
1등 이시네요. 저자에 대해서, 찾기가 정말 힘들던데....어쩌면 좋아.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04.17 00:05:21 *.219.109.113
일요일에 있는 너의 스케줄때문에 부지런을 떨어  마쳐 올려놓고
그것에 집중하려는 너의 마음이 느껴진다.
일요일 시험 잘치고, 부지런함에 나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


프로필 이미지
2010.04.19 11:52:51 *.106.7.10
느껴지셨어요? ㅎㅎㅎ
제가 원래 그닥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이곳에선 부지런한 사람으로 되어가는 듯 ^^ 
프로필 이미지
박상현
2010.04.19 09:52:30 *.236.3.241
선형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리뷰다.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늘 꼼꼼한
시간관리와 성실함으로 극복해 가는 모습이  좋네. ㅎㅎ 

개인적으로 각자의 고유영역을 과감히 지르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 멀리 가면 우리가 공유할 것도 그만큼 풍부해질테니.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12 [51] <신의가면1-원시신화> 저자 & 저자라면 수희향 2010.04.17 3384
2311 북리뷰 7.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_ C.W 체람 [6] [1] 박상현 2010.04.17 3158
2310 [51] <신의가면1-원시신화> 인용문 [1] [1] 수희향 2010.04.16 4470
» 북리뷰7.<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Gods, Graves and scholars)> C.W.체람 (C.W.CERAM) [7] 이선형 2010.04.16 3536
2308 Review 변신이야기 [7] 된다 우성 2010.04.13 3153
2307 북리뷰6.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 -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5] 낭만 연주 2010.04.13 3693
2306 북리뷰 6. [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 [5] 박상현 2010.04.13 3176
2305 6. 변신이야기_저자와 구성 [4] 맑은 김인건 2010.04.13 3600
2304 북리뷰6.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 오비디우스 [6] [1] 이선형 2010.04.13 3632
2303 6. 변신이야기_발췌 [3] 맑은 김인건 2010.04.13 4326
2302 <변신이야기 1,2>, 오비디우스 [9] 이은주 2010.04.13 3057
2301 <신화의 힘> -조셉캠벨 [4] 낭만 김연주 2010.04.05 3068
2300 Review 신화의 힘 [3] 최우성 2010.04.05 2729
2299 신화의 힘 [4] 이은주 2010.04.05 2704
2298 5. 신화의 힘_저자와 구성 [7] 맑은 김인건 2010.04.05 2862
2297 북리뷰 5. [신화의 힘](조셉 캠벨) [3] 박상현 2010.04.05 2628
2296 5. 신화의 힘_발췌 맑은 김인건 2010.04.05 2741
2295 북리뷰 5. <신화의 힘> 죠셉 캠벨 / 빌 모이어스 [6] 이선형 2010.04.03 2845
2294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file [3] [2] 숙인 2010.03.31 4438
2293 How to live -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윌리엄 브리지스 [2] [2] 숙인 2010.03.31 3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