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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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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6일 09시 01분 등록

작가에  대하여 <죠셉 캠벨  , Joseph Campbell 1904-1987.>

만나고 싶었다. 자신의 꿈을 찾아   있는 용기, 자신이 살아온 삶을 관통하는  혜안과 지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   있는 통찰을 우리에게  주신 그와 이야기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1987 10월의 마지막 가을 밤 하와이 자택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꾸던 꿈을 쫓아 살았을 때 가장 자신답게 살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수 많은 연구 업적의 글을 남겨 놓았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읽고 있는 책들이 그가 살아 생전 남긴 땀과 시간처럼 느껴진다. 젊은 시절 단호한 의지로 구도의 수행과도 같은 생활을 통해 독서의 길을 간 것 ,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결실들을 정리하여 저술에 매진했던 그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나의 모습이 보였다. 늦은 나이에도 이렇게 훌륭한 저서들을 낼 수 있는 그는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대였다. 

어린 시절  자연사 박물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물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그 속에서 보았던 상상의 세계가 현실 속의 실제가 될 수 있음을 자상하고 명료한 설명으로 확신을 주던 그, 지금 내 손에는 그의 사진이 들려있다. 그의 얼굴은 자상하고 따뜻했다. 눈가의 주름조차 사랑스러웠다. 자신과 관련된 경험을 묵상하는 명상이나 다도를 즐겼던 것이 그의 얼굴을 이토록 평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을까? 센리큐의 큰 제자 나보쇼케이의남방록에 있는 다례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당신의 책에서도 묻어 나오는 것 보면서 신화 뿐만 아니라 차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과 함께 살아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외모나 성품으로 느낄 수 있는 그대는 딱 내 이상형이다. 같이 일본에 여행가서 차를 즐기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도하며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 애인이 좀 그렇다면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에 둘러 앉아,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들려주는 할아버지로라도 좋겠다. 그에게서는 어디로 보아도최고의 수식어를 달고 있는 학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편안함이 좋다.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  자체이다.”“  삶을 경험하는  자체가 인생의  목표이다.” 그냥 한 번 읽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멋진 말이다. 이 글들을 마치 기둥에 새겨진 유물의 조각처럼 내 마음에 새겨 놓았다. 그는 자유주의자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구이기도 하다. 

 책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  많은 자료를  보며 연구한 것을  번에 알려주려고  쏟아 붓는듯 해서 오히려 난해했는데 당신의 의도도 그러했냐고, 난해함을 인정하는지 어디다 물어 보면 좋을까 안타깝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오는 당신의 책은 점점 정리가 되어가고 안정되어 충분히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즐기며 천복을 따르기로 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하와이 당신의 묘비 앞에서라도 두런두런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의 책을  여러  만나고 나니 이제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책에 담긴  경험과 통찰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하나의 의례였음을, 덕분에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느낄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를 만났던 책은 <신화의 힘>,<신화와 인생>,<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그와 만나고 싶은 책은 <세계 영웅의 신화>, <신화와 세계>, <신의 가면 시리즈> < 신화와 함께 하는 삶> 등이 있다.  

내가 지치거나 힘들 때, 길이 모호해질 때 나는 당신을 찾을 겁니다. 오래오래 당신과의 만남을 유지하렵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가슴 따뜻하게 다가와 위로해 주실꺼죠?”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
 

<프롤로그 : 원질신화> 

1. 신화와   

콩고 주술사의  주문이나 노장 경구집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법이나 모두 의미나 내용 면에서  변화 무쌍한  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13] 

어느 시대, 어던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불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14] 

 방울의  바닷물이 바다의 본질을 고스란히 대표하고, 하나의 벼룩 알에 생명의 신비가  두루 깃들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이는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 발명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14]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4]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정신 의학에서 떠오른 뜻밖의  새로운 사실이다. 정신 분석학자들의 대담하고도  획기적인 저술은 신화학도들에게 없어서는   될 자료다. [15]  

제대로   일반 신화학은 없어도, 사사롭고 드러내어  인정 받지 못한 미성숙단계에 있다 뿐이지, 그래도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포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5]  

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16]  

따라서, 유아가  최초로 적의를 갖는 대상은 최초로  애정을 투사하는 대상과 일치하고, 유아가  최초로 갖는 이상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이원일체 상황이다. [17]  

불행한 아버지는  다른 현실로부터, 자궁 안에서와   같은 상태로 재현된  지상의 천국을  침범한 최초의 틈입자다. 따라서, 유아는  아버지를 적으로 체험한다. [17]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 보낸다. 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밑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여기에는 보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꼬마 정령, 불편한 혹은 억압당한 심리적인 힘이 도사리고 있다. [19]  

이것은 촉발되면  무서운 사신으로 우리 머리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무섭다고 하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질서의 바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21]  

우리는 이러한  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원시 사회 생활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른바 통과 제의(출생, 명명, 성인, 결혼, 장례 의식 등)는 이런 단계의 마음가짐이나, 애착이나, 생활 패턴으로부터 심적으로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형식상으로 특이하고 극히 가혹한 단절의 체험이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22]  

참으로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22]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타락의 길을 버리고 영험적인 정신의 도움을 따르게 하는 우리 내부의 고차원적인 신경증인지도 모르겠다. [23]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 이미지들이 신화와 제의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통해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 그래야 우리의 에너지가 심해의 바닥이나 진부하고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유아의 놀이방의 동화책에서 풀려날 수 있는 것이다. [24]  

우리의 상징이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반대되는 것으로 전화한다.  그런가  하면  시기에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25]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그것은, 꿈의 본질처럼 눈앞에서   녹아버릴, 견고한 물질의 세계를 향한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흐름이다. [25]  

전통적인 통과  제의는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다. [27]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29]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있다.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우리가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응보 천벌 여신 Nemesis의 복수 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올가미다. 전쟁은 올가미다. 변화도 올가미이며, 항구 불변성이라는 것도 올가미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 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29]  

창조 작업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을 위한 위기가 따르는데, 토인비 교수는  위기를 묘사하는  <해탈> <변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 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30]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이 없다. [30]  

우리는   높이 솟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있다면 우리는  위대한  천품의 시혜자, 시대의 문화영웅(한 나라 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0]  

꿈은 인격화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다라 내용이 달라진다. [33]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33]  

대속자들에  의해 아득한 옛날, 인류에게 주어져 수천 년간 계승되어 온, 사회의 상징적 도움이라는 미덕, 통과 제의, 은총으로 입은 성사를 통해서 구원 받는 것이다. [37]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3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37]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39]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40]   

2. 비극과 희극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오  톨스토이 백작 [39]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 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40]  

하늘의 신화가  삶의 발자국을 뒤로 남기고 밤의  문턱에  준비가  노인의 것이듯, 동화는  땅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나라의 것이며, 현실로부터 보호 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 간에 거덜날 운명에 놓여 있다. [42]  

동화, 신화, 그리고  영혼의 신곡에 나오는 해피엔딩은 모순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비극의 초절성으로  읽혀야 한다. [42]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모르는 환희다. 따라서  양자는 양자를 서로 보듬고  서로를 엮는, 단일한 신화적 주제와  경험을 나누는 용어다.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42,43]  

신화와 동화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43]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땅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기 전에  보다 중요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아. 우리가 알고 있고 더러  속에서  찾아가기도 하는 미궁 안에서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이다. [43]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44]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44]  

3. 영웅과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 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5]  

중요한 것은  정각은 말로써는 전할  없고 오직  정각에의 방법만 전할  있다는  것이다. [48]  

제의, 신화, 그리고  형이상학은 초월적인 조명 가까이 까지  인도 받는 것은 가능하나 거기에  접근하는 마지막 단계는 개인의 조용한  체험으로써만 가능하다. [48]  

영웅의 모험은   단위의 패턴, ,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어진다. [50]

원질신화의  복합적인 영웅은 예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영웅은 사회의 존경을  받기도 하고, 무시당하거나 경멸을 당하기도  한다. 영웅과 (혹은) 그가 속한 세계는 상징적인  어떤 장애로 고통을 받는다. 동화일  경우 이러한 장애는 금반지 하나가  사라졌다는  가벼운 것이지만, 묵시록적인  이야기에서는  세상의 심리적, 정신적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판국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대개  동화 속의 영우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보통이다.[52.53]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장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험의 형태, 등장인물의 역할, 마침내 얻은 승리의 내용물에는 놀라울 정도로 별 차이가 없다. [53]  

돌이켜보면,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 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54]  

영웅이 애써  찾아 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54]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 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54]  

4. 세계의 배꼽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속으로 흘러 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환,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을 나타내는 듯하다. [55]  

 분류는  보이지 않는 원천, 우주라는 상징적 원의 중심인 입구, 불교에서 말하는 부동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데, 세계는 이곳을 중심으로 순환한다고 일컬어진다. 이 자리 밑에는, 심연의 물을 상징하는 용, 즉 우주적인 뱀의 머리가 있는데, 심연은 물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적인 에너지이며, 불멸하는 존재의 세계 형성자인 데미우로고스(조물주). 생명나무, 즉 우주 자체는 바로 이곳에서 자라난다. [58]  

왜냐하면 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 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 모든 사물 안에서 약동하는 소생의 연속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세계 보존의 신비인 것이다. [58]  

태양은 희생  제물로 풍성한, 끊임없이  음식으로  가득 차는 신의 쟁반이고, 신의 살은  고기며, 신의 피는 마실 것이다. 동시에  신은 인간에 대한 자양의 공급자다. [60]  

<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안에서 살고 나도  안에서 산다> [60]  

 문화가  신화 안에서 인간 존재의 면면이나   문화의 면면을 키워나갈 , 그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 [60]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헤라클레이토스  [62] 


 

1 : 영웅의 모험  

  1 :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 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1]  

크든 작든, 삶의 단계나 정도가 어디에 이르러  있든, 이러한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완성되면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때가 도래한 것이다. [72]  

프로이트는,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때의 고통(탄생하는 순간의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 지는 등의)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면, 분리와 탄생의 순간은 불안을 야기시킨다. [73] 

동화에 나오는  징그럽고 욕지기나는 개구리나 용은, 태양을  입에 물고 솟아 오른다.  징그러운  뱀이나 개구리,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하도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징한다. 여기엔 징그렂고,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미지의  혹은 지진한 요소, 원리, 그리고 생존의  본질이 우글거린다.[73]  

 신화적  여행의  단계(우리는 이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80]  

2.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 혹은 <문화>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81] 

세계전역의  신화와 민화는,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이득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래란  생과 사의 부단한 연속만은 아니다. 개인이 가진 현재의 이상과, 미덕과, 목족의  체계가 어떻든 이득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보장되어 있다.[82]  

신성이   자신의 적이  것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2] 

인간은 밤이고  낮이고, 자신의 어지러운 시멍의 폐쇄된  미궁 안에 살아 있는 자기의 이미지인  신적인 존재에 쫓긴다. 문을 나가는  길은 막힌지 오래다. 출구는 없다. 인간은  사탄처럼, 죽자고 자기 자신에게 매달린다. 이때 그가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혹자는 그러다  안에서 마침내  파멸하기도 한다.[83]  

처녀는 부모의  상으로 후퇴하여 거기에서 보호를 받았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꿈 덕분에 아내와의 생활을 청산하게 된 어느 불운한 가장의 경우와 같다. [84]  

이러한 유아기  고착 사례들은 당사자가 유아기적 자아  그리고 유아기적 정서 관계  이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당사자는 유아기의 벽에 갇혀 있다. [85]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의적인 내향성은 창조적인 정신의 고전적인 방편 중의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인 장치로 응용할 수도 있다. 이 방편은 심적 에너지를 심층으로 몰아 무의식적 유아기의 이미지 및 원형적 심상이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활성화시킨다. [87]  

인격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있게 된다. 이것은 인도 요가  수련의 기본적인 원리다. [87] 

신경증적인  유형과 생산적인 유형을 비교해 보면  전자는 자기 자신의 충동적인 삶에  대한 과도한 관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음을   있다.  양자는 평균적인  유형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자기를 현재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균적인 유형은, 의지력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로운 형태로 다듬는  경향이 잇다는 점에서 다르다.[88]  

3. 초자연적인 조력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를 준다. [93]  

이러한 존재는  자비로운 ,  숙명적인 보호 세력을  표상하고 있다. 영웅이 빠져드는 환각은 곧 안식처이며,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이다. 모태 안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이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약속은 현재를 지탱케 하고 과거와 미래까지 주관한다(따라서 알파이자 오메가다). [96]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인다. [96]  

4.  관문의 통과  

영웅은 이윽고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 만나기에 이른다.  수호자는  영웅의 현재 상황, 혹은 삶의 지평의  한계를 상징하면서 사방에서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105]  

집단의 보편적  믿음이 미지의 땅으로  발을 내딛으려  하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05]   

미지의 (황야, 밀림, 심해, 타향 )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107]  

살아서든 죽어서든  새로운 경험 역을 지나려면 같은  세력의 파괴적 측면을 극복하고   특정 구역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111]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112]  

자기 생활권이라는  벽에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영웅은 반드시 이런 괴물(몹시 위험하면서도  때로는 마법의 권능을 베푸는) 만나야  한다. [112]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무기는 다름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118]  

 여섯번째  무기가, 명과 형이라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현상계의 마력이  무너지자 그는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신적인 정령)  된다. [119]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 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0]  

5. 고래의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120]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감은 신도가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신도는   신전 안에서, 자신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티끌에 불과하다는 자기 정체를  깨닫게 된다. [123]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23]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는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없다> 썼다. [124]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124]  

기원전 3천년대에서 2천년대까지, 그러니까 초기 제정 일치  시대 말기의 고대 국가에서는 이러한  대속물의 희생제가 관례였던  하다. [126]  

  2 : 입문  

1. 시련의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 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이 국면은, 기적적인 시험과 시련을 다룬 세계의 문학을 창출해 왔다. [128]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28]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32]  

주술사는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 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133] 

어떤 사회에  속하는 사람이든지, 고의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시베리아의(푸닥) 성산에  못지 않는 상징적인 것들(능히 여행  당사자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신비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자기정화>  이르는  길의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133]  

<그런데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지복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 코란  [139]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 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시련은   관문의 문제를 심화 시키고 질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 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주위에 있는 것은 머리가 많은 휘드라이기 때문이다. [143]  

2. 여신과의 만남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이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 세상에 유혹하는 ,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145]  

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전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사랑을 받던 <좋은>어머니(젊고  아름다운)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미녀처럼, 아직 우리의   영원의 바다 밑바닥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148]   

만유의 어머니의  신화적 표상은 우주에 대해,  우주의  존재를 윤택하게 하고 지켜주는 최초의  여성적 속성을 부여한다. 환상이란 원래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어린아이, 주위의 물질 세계에  대한 성인의 자세에는 밀접하고도 노골적인  상응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50]   

많은 종교  전통에는 자신을 정화하고, 안정을 유지하고, 마음을 가시적 세계의 자연 속으로  입문 시킬 목적으로, 이러한 원형적 심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교육적인 이용 방법이 전해져 왔다. [151]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새끼를 먹는 돼지다. 이렇게  해서 여신은, 개인적인 어머니는 물론  우주적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유형을 드러내면서 <> <>  통합한다. 여신의 숭배자는 이 두 유형의 어머니를 똑같이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 지어 멋대로 가른 <> <> 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152]  

 여신은  다름아닌,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다.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칼리.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152]  

신화학의 심상  언어에서 여자는, 알려질  있는 것들의  전체성으로 표상된다. 알게 되는 존재가   영웅이다. 영웅이 삶의 다른 형태인  입문의 과정을 진행함에 따라 여신의  형상은 그에게 일련의 변형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153]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153]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154]  

입맞춤이  대수요? 그대를 껴안아  수도 있소.” [155]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156]   

여신(모든 여성에게  현현 되는)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157]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여성이   삶인데, 영웅은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와 아버지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자기가 곧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59]   

삶의 상황을  수습하는  대한 실패는 결국 의식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밖에 없다.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양식으로,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160]  

우리는   일반적인 유형과의 비교에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도깨비란  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理想)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160]  

은자의 살이  뼈에 붙어 있고  맥박이 고동치는   삶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키는 일을 막기 어렵다. [165]  

우리는, 마귀의  무대이며 마귀의 목표이기도    , 시온을 향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가 도둑 무리와 은거하고 있는   땅의 초라한 나그네다.[166]   

4. 아버지와의 화해  

창조와 파괴의  역동성은, 팔의 흔들림과 천천히 구르는  오른 발꿈치의 리듬으로 상징된다. 이것은, 모든 사상(事象) 중심은 항상 고요하다는  것을 뜻한다.[169]   

삶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배우고, 은둔의 명상을  통해 깨친 실체는, 보편적이고 비이원적인  존재-의식-행복이라는 동일한 실체의   가지 측면이기 때문이다.[169]   

아버지의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피해자의 에고가 투영된  것이다.  지난날 존재했던 예민한 유아기의 장면이 전면으로 투사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170]  

<화해 atonment>, <하나되기 at-one-ment> 스스로 만들어낸   마리의 괴물((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자비를 믿을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다.[171]   

갖가지 시련을   치른 자를 집안으로 용납하는  아버지 입장이 얼마나 어려우며, 얼마나  주의를 요하는가는, 그리스의 유명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파에톤의 불행한 행적이   그려내 보이고 있다. [173]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177]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넓은 세계로  나갈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177]  

아들은 세계를  섭렵하는  있어서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삼고 딸은 섭렵된 세계 자체가  되는데 있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삼는  것이다.[178]  

입문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부모의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관련성을 철저하게 바로 잡아주면서  그가 살아갈 삶의 기술과 의무와  특권을 소개하려는 의도를 수렴하고  있다. [178]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입문의 영광을 입는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이제 거듭난 자이며,  자신이   아버지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서야 하고 입문의 사제, 안내자, 태양을  향한  노릇을 해야 한다. 요컨대, 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입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178]  

이런 식으로  그들은 위대한 아버지 뱀의  <안에서> 어머니를 잃는 대신에  보상으로  얻게  새로운 세상을 소개 받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 상상의 중심(즉 세계의 축)에다 젖가슴 이미지 대신 남근을 세운다. 이 기나긴 일련의 의식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은 할례 집도자의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러운 공격을 통하여 남근을 그 포피로부터 해방시키는 대목이다.[180]  

우리 문화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소위 <원시 문화>  자생적인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원시 문화란, 전혀 다른 지역에서, 대개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 풍토 그리고  다른 종족에 의해 발전한 풍습이  어느 지역에서 채용, 변질, 형식화한 것이라고    있다.[184]  

 땅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이러한  신성한 절차를 통하여 현상계에 대한 공포를 이기고 불사의 존재를 향한 초월의 희망을 획득할 수 있었다. [186]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192]   

아들이 아버지를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194]  

5. 신격화  

부처 자신처럼,  신과 같은 존재는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의 한 본보기다.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 <만물에는 불성이 있으니>, <일체의 존재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196,197]  

보살은, 불성의  경계에  귀인이다. 소승 불교의 견해에  따르면, 환생하면 부처가  대성이고, 대승  불교의 견해에 따르면, 우주적인 대자 대비의 원리를 표상 하는 일종의 구세주다. 산스크리트어의 <보살> <존재의 본질이 정각에 이른 자>란 뜻이다.[196]  

관음은 범인과  현자에게 두루 신성한 존재다. 왜냐하면  관음이 세운 맹세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세상을 버티는 심오한 직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98]  

어머니와 누리던  유아기라는 아이의 낙원에 침입한 아버지는  원형적인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모든 적은 아버지( 대한  무의식)를 상징한다. 그래서 <살해당한 것은 모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204]  

이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마음을 정화하는 대신  세계를 정화하고 싶어진다. 성도의 율법은  이제 구성원의 집단(종족, 교회, 국가, 계층)에만  적용되고, 이윽고, 재수가 없어서 이웃이   할례받지 않은 , 야만인, 이교도, 토인, 혹은 이방인에 대한 성전의 기치가  오른다(앙심에 거리끼기는커녕 경건하게  예배라도 드리는 기분으로 기치를 올리는  것이다). [205]  

<증오는 증오로  해소되지 않는다. 증오는 사랑으로 해소되는데 이는 고대의 진리다.>[205]  

전문 성직자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구세주의 십자가는   국가의 깃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인  상징이다.[208]  

세계 종교(우주적  사랑의 교리)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현대인은 마땅히 다른 위대한(그리고  훨씬 오래된) 우주적 친교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된다. , 근원적인 말씀이  평화, 모든 존재에 대한 평화를 지향하는  부처의 우주적 친교에 관심해야 하는  것이다. [208]  

<신은 각기  다른 신도, 시대, 국가에 맞추느라고 서로 다른 종교를 만들었다. 그 교리에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 그러나 길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심 전력으로 어느 길이든 따라가면 누구든 신에 이를 수 있다> - 라마크리슈나 [208]  

육계(六界) 미망의  도시 가운데 으뜸가는 소인(素因)  악업에서 나온  죄악과 우매함이다.

여기서 중생은  좋고 싫음에 의지하니 언제  좋고  싫음이 다르지 않음을  틈이 없다.

오호라, 좋고  싫음의 무상함이여.

만상이 본래  비었음을 알면, 그대 마음에 대자 대비가  일어나리라.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 내면 나를 만날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 성자이며  시인인 밀라페파(Milarepa) . [209]  

무한한 사랑이며, 전능한 보살인 관세음이 지각 있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굽어보고,    존재 안에 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마음 안에는 평화가 있다. [210]  

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 몸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인 아버지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 [211]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생명, 새로운 탄생, 새로운  존재의 지식이(따라서 우리는  몸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보살처럼 모든 몸, 세상의 모든 육신으로 산다) 우리에게 주어졌다. 저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211]  

양성적 신은  입문 의식이라는 주제의 궁극적 요체다. [212]  

보살에 대한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 구유적 성격이다. 이 보살과 만남으로써 분명히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 서로 만난다.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213]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213]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 [214]  

종교적인 가르침의  목적은 개인을 일반적인 미망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그 미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종교는 욕망, <에로스>와 적의, <죽음>을 바로잡는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 유명한 불교의 팔정도의 가르침에 따라 충동을 뿌리째 <꺼버리는> 방법을 통해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 [215]  

마지막 <미망과  욕망과 적의의 적멸>( 열반)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참된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상태는 육체가 사윌 때까지 계속된다. [215]  

<형상은   것이며,  것은  형상이다.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그것은   것이며,  것이라고 하는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216]  

세상으로부터의  출발은 오류가 아니라 여행의   출발이다.   여로에서, 우주 순환의  심오한 적멸을 깨치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217]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217]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깃들여 있음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물이 사실은 영원한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을 성취시키는  나무 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를  마시고, 들리지 않는 도처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일러 신선이라고  한다. [218] 

손님은 뜰길을  다라 들어와, 허리를 구부리고 문을  들어서야 한다. 이어서 그림이나 꽃꽃이, 소리를 내며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에  예를 표하고 바닥에 정좌한다. 통제된  단순성에 의해 지배되는 극히 단순한  분위기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 안에서  무한한 존재의 비밀을 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손님은 자신과 관련된 경험을  묵상   있다. 다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축소된 우주를 명상하고,   축소된 우주와 불사의 선인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219]

나무, 바위, , ,  모든 것은 살아 있다. 이러한  무정물은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 없을 , 문득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무정물들이다.[222]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시간의 세계란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 [223]  

현명한 자는   자궁 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보다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까지  안다. [223]  

어쩌면 남성상은  입문의 원리와 방법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우 여성상은  입문 의식의 목적이 된다. [223] 

남성의 형상  오른 손에는  자신과 쌍을 이루는  벼락이 있고  손에는 여신을 상징하는  방울이 있다. 벼락은 질서이자 영원성이며, 방울을 <교화된 마음> 이다. 방울소리는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숭수한 정신을  사진 자들이 듣는 영원의 아름다운  소리다. 따라서  소리는 내면의 소리다.[224]   

6. 홍익  

가령 원시  사회의 핵이라고   있는 주술사라는  직업은 <일련의 방어 기제로 자기의  미숙한 육체가 파괴 당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에서 비롯된다.> [228]   

상상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말로 다할  없는  천복의 가르침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옷으로 위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233]   

<눈에 보이는   모든 신들은 정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상을 표상하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236]  

따라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웅이 얻으려는 것도  그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영광, 말하자면  그들의 불로 불사적 존재를 가능케  하는 권능이다. 이 기적적인 에너지 본질만이 불멸적인 존재이며, 도처에서 이 에너지를 현현시키고 나누어 주고 표상하는 신들의 이름과 형상은 가변적인 것이다. [237]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낣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248]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249] 

누이, 말이, 마음이  하릴없다.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를  남에게 가르칠 방도도 알지 못한다. 이는 이미 알려진 바와도 같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것까지 초원해 잇다. 이것은 최고의, 그리고 궁극적인 시련이다. 영웅의 시련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련이기도 하다. [250]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말하자면 인간이 자기  내부의 뚜껑을 열어 젖힐  있을   그렇다. [250]  

  3 : 귀환  

1. 귀환의 거부  

원질 신화의  규준인 완전한 순환 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 양털, 혹은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한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은혜가 사회, 국가,  천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253]  

2. 불가사의한 탈출  

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된다. 동양에서는  엄격한 지도와 감독 없이 심리적으로  해이해진 상태에서의 요가 수련은 몹시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263]  

 세계의  상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실수,  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269]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신은 만물에  내재하기 때문에, 부엌의 냄비나 접시에서  천황에 이르기까지 만상은 신으로 여겨져야  마땅하다는 , 이것이 신도, <신의  >이다. [276]   

4. 귀환 관문의 통과  

영웅의 귀환은,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281]   

정상 상태로 깨어 있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281]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294]  

5.  세계의 스승  

신화는, 이미  변모한 신비의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 내보이지는 않는다.  경우 변모의  순간은, 마땅히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고구되어야   귀중한 상징인 것이다. [297]  

그러나 우리가  성경 속의 이야기를 의심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상징 체계이지 역사성은 아닌 것이다. [299] 

 너에게  영험한 신의 눈을  터인 , 볼지어다. 궁극적인  요가의 권능을…… 이 말과 함께 요가의 왕은 아르쥬나에게 우중의 신 비쉬누로서의 자기 형태를 드러내었다.[300]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 불과하다. 상징은,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진로> 오해 되어서는 안 된다. [305]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을 투명하게  닦아 우리에게 오는 진리의 빛이  이에 가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305]  

<베다를 공부한다  하더라도, 무서운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보시를 행한다 하더라도, 또 의식을 행한다 하더라도 네가 본 나의 이 최고의 모습은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오직 믿는 마음이면 나를 알 수 있고 참답게 볼 수 있으며 내게 들어와 하나가 될 수 있느니라.> [305,306]  

예수는 똑같은  것을 훨씬 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306]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 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306]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현자로, 때로는 왕관에 미친  자로, 때로는 방랑자로, 때로는 예언자처럼  부동하는 존재로, 때로는 자비로운 얼굴로, 때로는 귀인으로, 때로는 폐덕자로, 때로는  무명인으로…… 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무대 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배우 이전의   자신이듯이, 불멸의 지혜를 깨친  자는   불멸의 경지 안에  거한다. [307]  

6. 삶의 자유  

영웅이 지닌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 나는 것이다. [307]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있다.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307,308]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 하고, 이를 살아 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있다면, 그는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있다. [308]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바를  행하라….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308]  

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313]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위대한  재생의 손길인 자연은 부단하게 형상에서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313]  

  4 : 열쇠  

전기나 역사나  과학으로 읽힐  신화의 명은 거기에서  다한다. 왕성하게 살아있는 이미지들이  옛날 다른 하늘 아래서 있었던 까마득한  사실로 전락하는 것이다.  문화가  자기네 신화를 이런 식으로 번역할   그들의 삶은 고갈되고, 그들의 사원은  박물관이 되며, 과거와 미래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319]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320]  

신화적 상상은   함축적인 의미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322] 
 

2  우주 발생적 순환  

  1 :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 되어온 심리학이다. [326]  

신화의 패턴은  의식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신화는 전통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회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326]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사실은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원리는 인간의 육체의 형태   신경 구조처럼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 유전된 것이다. 간단하게 공식화된 이 보편적인 교리는, 이 세계의 가시적인 모든 구성물(사물과 존재)은 편재하는 힘에 의한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 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돌아갈 귀소라는 것이다. [327]  

제의와 신화의  기능은 유추 작용을 통해 이를    있게 하고 이를 촉진시키는 기능이다. [330]  

신화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 혹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드는 것이다. [330]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31]  

구원은 초의식으로의  귀환과, 이에 따른 세상의 소멸에 있다. 이것은 우주 발생적 순환, 세계 현현의  신화적 이미지, 그리고 비현현 상태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중요한 테마   공식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탄생, ,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331]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332]   

신은 인간의  삶을 떠맡고, 인간은, <대립물이 합일하는> 순간,  신과 인간이 서로의 먹이로  각각 하강하고 상승하는 길목으로서의 태양의 문턱에서 만나는 순간에, 제 내부에 있는 신을 방면한다. [332]   

2. 우주의 순환  

신이란,   흐름을 통제하는 법칙의 상징적 구현체다. [333]  

우주 발생적  순환은 우주 자체의 반복,  끝없는  세계로 표상된다.  순환의 주기 안에는  소멸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333]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은 이러한 회화적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337]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되어,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그리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의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339]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340]  

3. 허공에서 - 공간  

<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342]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342]  

진정한 존재는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꿈으로 존재한다. [342]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우주 발생적  유출의  번째 결과는 이승적 단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고,  번째 결과는    속에서 생명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생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적 형태 아래 자가 생산을 위해  양극화했다는 것이다. [348]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무한 위로  있는 껍질이다.> [353]  

남녀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자각은, 우주의 만상(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는  광물까지도)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자각에  이르게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357]   

5. 하나에서 여럿으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 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65]   

  2 :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다소 추상적으로  이해하자면,  세계의 어머니는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  우주적 알의  껍질인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 조금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자가 번식하는 절대자를 움직여 창조의 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자인 것이다. [374]   

  3 :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례를 받게 된다. [397]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400]   

요약컨대 이렇다. 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시간을 견디어야 했다.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던져졌다. 어느 경우든 그를 당혹케 하는 것은 미지의 암흑이다. 이곳은 의외의 존재, 자비로운 동시에 심술궂은 존재의 영역이다. 천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아기를 도와주는 동물, 어부, 사냥꾼, 쪼그랑 할머니, 혹은 농부가 나타나기도 한다. 동물들 사이에서 자라거나, 혹은 지그프리트처럼 생명의 나무 뿌리를 파먹는 땅귀신 사이에서 자라거나, 혹 작은 방에서 혼자 자라면서(이런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있다) 이 어린 세상의 신참자는, 헤아리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권능이 있음을 배운다. [409,410]  

3. 전사로서의 영웅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  행위다. 이야기는 순환한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는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도깨비-폭군은 불길한 사상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다. [422]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며,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428]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행동하는 영웅은  우주 순화의 주체이며 처음으로   세계를 움직였던 추진력을 생생한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432]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 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432]  

6. 구세주로서의 영웅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440]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 [441]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생명의 에너지를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441]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2]  

7. 성자로서의 영웅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영웅의 유형이 있다. 즉 성자, 고행자, 출가자(出家者)로서의 영웅이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 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443]  

8. 영웅의 죽음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있어야 한다. [445]  

  4 : 소멸  

1. 소우주의   

놀랄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잇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458]  

2. 대우주의   

그러나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만이 아신다……[473]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신화의 해석에는  최종적인 체계가 있을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있을  같지 않다.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 프로테우스와 같다. [477]  

신화 체계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프레이저),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 (뮐러),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뒤르켐),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쿠마라스와미),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교회). [478]  

신화 체계에  대한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8]  

2. 신화, 제의(祭儀), 명상의  기능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있다. 개인은   구성 요소일  있을 뿐이다. [479]  

출생, 세례,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479]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 개인은 축제를 정상적, 일상의  생존으로 수렴할 것을 배운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가 확인된다. [480]  

사회라는 단위에서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자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  충실했다고 고백할  잇는 사람만이 <존재한다> 동사를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480]   

진정으로 종교적인 제의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피할 기 없는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480]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추방은, 탐색 모험의   단계일  있다. 모든 사람은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 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481]  

이러한 명상을  통해 입문자는 자기의 심층에 이르고, 마침내  껍질을 뚫고 엄청난 자각에  이른다. 요컨데 사회와 의무는 분리된다. 자기 자신을 위대한 인간으로 발견한  아무개 아무개 씨는 내성적이며 초연한 인간이 된다. [482]  

목표는 <보는  >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482]  

3. 오늘날의 영웅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 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새벽의  태양이 어머니 밤의 자궁을 빠져  나오듯이,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 나왔다. [484]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모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484]  

세속적인 국가의  보편적인 승리는 모든 종교 조직을  부수적인, 필경은 무익한 위치로 끌어내려, 오늘날에는 종교적 무언극이 일요일  아침에 벌이는, 경건한 체하는 종교  놀음에서 더도 덜도 아니게 되고  말았다. [485]  

인간이 되려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인간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신의 얼굴을 알아 보아야  한다. [486]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488]

 

내가  저자라면 

힘이  되었던  

고난한 삶을  영위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추구해야  자신만의 영웅담을 찾아    있도록 힘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은 책이었다. 이미 많이 출판되어 나와 있는 자기 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내 안에 잠든 나’, 즉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나를 찾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들 보다도 선명하게 귀환한 영웅으로 나를 찾았을 때 폭발적인 힘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 또한내 안의 거인을 신화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음과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통찰을 제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좋은 점이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던 괴로움, 고독, 그리고 방황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에 돋보기를 갖다 대었다. 내가 지냈던 과거의 추억과 힘든 시간들이 보였다. 꿈이나 자신만의 가상의 세계에서 그려보는 상상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무시 되거나 좌절되던 자책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씩 그 관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최종의 관문을 멋지게 통과한 이후에 그 고난의 과정을 이겨냄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의지를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가 보였다. 마음이 아파올 무렵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더 아픔이 각성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위로도 되었다. 신화가 투영하는 영웅의 본질적 원형이 내 안에 잠재된 거인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주는 진정한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차례를 읽으며  구성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2부에  걸친 8장의 챕터 제목과 거기에 따르는 소제목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적합했다. 그의 초기 작품임을 감안하면 신화에 대한 해석과 활용에 대한 아주 지적이고 논리적인 통찰을 제시함으로써 이후의 신화 연구의 초석이 되었던 작품다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연구해서 가지고 있는 포괄적인 신화 및 다양한 종교적 이야기에 대한 사전 이해가 부족하여 이해가 어려워서 책을 읽는 내내 힘들고 난해했다는 점이다. 내가 저자라면 다 먹지 못하고 소화도 못 시킬 만큼의 많은 음식을 차려놓기 보다는, 다양한 독자층을 겨냥하여 조금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나갔을 것이라고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다방면의 사전 지식을 위해 더 많은 자료들을 찾아 읽는 자극제가 되는 책으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두 가지의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IP *.219.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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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14:17:08 *.106.7.10
언니가 캠벨 할아버지와 차를 마시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
남도 여행에서 차분하게 차를 마시다가 불연듯 시인에게 허리를 들이대던 모습도 겹쳐서 떠오르고요 ㅎㅎㅎ
이로써 캠벨과 함께 한 신화여행은 일단락이 지어졌지만 곧 다시 찾아 읽게 될 거란 예감이 듭니다.
저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제일 난해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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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은주
2010.04.27 09:09:27 *.219.109.113

그러게 우리 죠셉은 난해하게 글 쓰는 것 빼고 다 마음에 들어.ㅋㅋ

내가 다음 달 다기랑 종류별 차를 다 가지고 가서 차 내려줄게. 일본은 못 가도

더 좋은 곳에서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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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26 15:56:59 *.236.3.241
책 여기저기에 울긋불긋 포스트잇을 붙이고 꼼꼼하게 독서에 몰입하던
웨버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ㅎㅎ

은주 웨버도 과거에서 길어올릴 야그들이 많을 것 같은데 캠벨 아저씨
안내 받아서 함 잘 봐 보세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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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27 09:15:02 *.219.109.113
하이고~~  독서에 몰입하는 모습이라~ 흠 다음에 포스트 잇 더 붙여나가야쥐

야그들을 많이 길어올려 나누어 줄까?  알았어 잘 봐 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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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27 02:57:50 *.129.207.200
연주의 글이, 안아주는 느낌이라면, 은주 누님 글은, 옆에 있다면 안아주고 싶은 느낌이 드네요. 누나를 보면 부성본능이 생겨요. 

일본에는 캠벨 대신, 저랑 가지요. 제가 가이드해드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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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15:00:05 *.106.7.10
ㅋㅋㅋ, 언니, 고로컨 안돼죠. 흐흐흐
묙이랑 나도 있는데, 묙도 이제 시간 많아요 ^^
참, 우리 든든한 연주도 있구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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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27 09:20:05 *.219.109.113
어멋!  * ^^ *  캠벨 대신 ~ 미스터 로버캅이랑? ㅋㅋ

부성본능  ㅋㅎㅎㅎㅎ 쪼아, 그럼 나를 안고 일본을 가면 되겠네.

그런데 이런 비밀 이야기를 여기다 써 놓으면 우리 동기들이 다 달라 붙잖아.

>>  인건이 대답 : 왜, 둘이 가요? 다 같이 가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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