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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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16-니진스키 영혼의 절규-20100621
1. 저자에 대하여
니진스키 : 러시아식 정식 이름은 Vatslav Fomich Nizhinsky이다.
(1889년 3월 12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출생하여 1950년 4월 8일 런던의 사설진료소에서 신장질환으로 사망)
니진스키의 아버지는 폴란드 출신의 발레 마스터 이자 댄서였던 토마스 라우렌티예비치 니진스키이고, 역시 댄서였던 어머니 엘레오노라 베레다 사이에서 삼남내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친 부모 모두 이름난 무용가였으며, 특히 아버지는 무용의 대가로서 뛰어난 도약기교로 유명했다. 아버지의 이 도약기술을 니진스키가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니진스키의 도약은 전무후무한 기교를 보여줬다.
그의 부모는 자신들의 무용단을 가지고 있었고, 러시아 전역에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는 어린시절 대부분을 카프카스 지방에서 보냈으며, 니진스키가 춤에 대단한 소질을 가진 것을 직감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형 스타니슬라프와 누이 브로니슬라바와 함께 춤을 추었다.
1894년 5살 때 니주니 노브고로트에서의 가족 공연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1898년 8월말 9살이 되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무용학교에 입학했는데, 당대 최고 교사들이 모여 있던 이 학교에서 교사들은 곧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았다. 이 교사들은 니진스키에게 졸업해서 마린스키 극장에 입단하도록 권유했고, 1902~1904년 동안 학생신분으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와 오페라의 작은 배역을 맡는다.
1906년 모자르트의 <돈 조반니>를 위한 포킨의 ‘디베르티스망’에 출연해 호의적인 주의를 끌기 시작하고, 포킨의 <에우니체>에서 작은 배역 ‘그리스 노예’을 맡았다
18세가 되던 1907년 봄 우수한 성적으로 황실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7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에 독무자로 입단했다. <탈리스만> <파키타> <곱사등이 말> <캉도르 왕>, 포킨의 <아르미드 관>에 출연했다. 이때 그는 류보프 왕자와 디아길레프를 만난다.
1908년 발레리나 프레오브라젠스카, 파블로바, 카르사비나 등과 포킨의 <쇼피니아나> <레 실피드>에 출연했다, 그리고 레옹 박스트에게 드로잉 레슨을 받는다,
1909년 20세 때 다아길레프의 발레 뤼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 <아르미드 관> <잔치> < 레 실피드> 등에 출연한다, 이 시기 쯤에 류보프와 결별하고 디아길레프와 동거를 시작한다,
1910년 <세헤라자데> <사육제> <동방의 춤> <샴인의 춤> <지젤>에 출연하고 발레 뤼스의 스타가 된다,
1911년 21세 때 <지젤>공연에서 ‘코스튬 사건’으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해고되고, 디아길레프 사설 발레단을 창설하고 <장미의 정령> <나르시스> <페트루슈카> <푸른 신>등에 출연하고 '무용의 신'으로 칭송받는다.
1912년부터 그는 안무를 시작했다.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를 위해 <목신의 오후> <유희> <봄의 제전>을 창작했다. <틸 예울렌스피에겔>은 디아길레프의 지휘를 받지 않고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다. 그의 안무작품은 일반적으로 대담할 정도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13년 9월 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헝가리 백작의 딸 로몰라 드 풀츠키와 결혼하고 디아길레프와 결별과 동시에 발레 뤼스에서 해고된다.
1914년 런던에서 자신의 발레단 창설하나 실패로 끝나고, 마드리드와 비엔나로 간다, 첫딸 키라가 태어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이때 러시아인이라 해서 헝가리에 억류된다. 1915년 발레 뤼스의 미국 순회 공연을 위해 니진스키 석방운동이 국제적으로 전개된다.
1916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시즌에 출연하고 <틸 오일렌슈피겔>안무와 제작을 한다, 1917년 2차 남미 순화공연을 가지고 발레 뤼스의 공연이 종결된 후 몬테비데오에서 적십자 자선공연에 <페트루슈카>로 출연한다, 이것이 마지막 공연이 된다,
정신분열증으로 판명된 뇌질환으로 1919년 29세의 나이로 은퇴하고 정신요양원을 전전한다, 1920년 둘째딸 타마라가 태어난다. 정신병 발발 후 1919년에서 1950년 스위스·프랑스·영국등지에서 살았고, 1950년 신장질환으로 런던에서 죽어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의 오귀스트 베스트리스 옆에 안장되었다.
1933년 니진스키의 첫 전기가 로몰라 여사에 의해 런던에서 간행되었고, 1936년 니진스키의 <일기>가 로몰라의 편집으로 영문판으로 간행되었다.
발레를 통한 구도가 : 니진스키
니진스키의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은 니진스키의 생애를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나머지 30년은 암묵 속에 가려진 60년”이라고 요약했다고 한다. 10년간 발레를 배우고 10년을 춤추었는데 발레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한 천재 무용가 니진스키.
여성 발레리나의 보조역할만 해왔던 남성 발레의 세계를 바꾸어, 남성 댄서를 발레리나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발레 예술에서 남성과 여성의 요소를 대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니진스키였다고 한다. 남성 무용수가 고전 발레에서 주도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니진스키 이후부터였고 니진스키로 인해 남성 댄서를 위한 안무의 의미와 역할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니진스키는 놀라운 도약력과 섬세한 해석력으로 관객을 매료시킨 것으로 지금 전하고 있는데 그가 발레하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에겐 ‘중력의 법칙’ 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그가 공중에 날아오르는 방법이 너무나 불가사의해서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부모로부터 선천적인 재능을 물려받았고, 어릴적부터 발레의 조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탁월한 무용가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일기>중 “ 만약에 사람들이 내게 사진이 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한다면 나는 일생을 사진에 바칠 것이다. ”라고 한 것으로 볼 때 그는 신을 이해하기 위해 무용에 집중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신을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를 택했을 때 그에게 발레가 도구였던 듯하다. 그 발레에 너무 몰입하여 신경과민이 일어났고, 자신의 천재성이 오히려 그를 공격하여 신경과민이 과도하게 되어 범인들의 눈에는 그가 미쳤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어 그를 정신병원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곧 일어난 그의 절망이 정말로 그를 미쳐가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가 계속 춤출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가 10년 자라고 10년 배우고 40년 춤추었다면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발레의 또 다른 기적을 만날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를 정신병동으로 몰고 간 그의 주변이 한스럽다.
2.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역자 서문
[P. 5] '앵그리 영맨(Angry Youngmen)'의 기수로 알려진 윌슨은 스물아홉 살 때 쓴 이 작품 속에서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반 고흐, T. E. 로렌스와 함께 ‘실패한 아웃 사이더’의 전형으로 꼽았는데, 니진스키가 정신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자기 분석서’라 할 <일기>를 쓴 것도 스물아홉살 때였다.
나는 스물한살 때 이 책을 읽었다. 그것은 무서운 흡인력으로 나를 사로잡았으며, 특히나 윌슨이 현대사회의 소외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광범하게 인용한 니진스키의 <일기>는 내게 일종의 전기 쇼크와도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의 정신 편력에서 니진스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P. 5-6] 사실 우리의 일생은 대상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할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만남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 또는 역사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관념을 위해 우리는 삶을 희생할 수도 있고 이상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와의 정신적 교감(交感) 속에서 더없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었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우리의 내면에 일대 지진을 일으켜놓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P. 6] 니진스키의 ‘발견’은 내겐 하늘이 준 선물과도 같았다. 그로 인해 나의 정신의 지평선은 무한히 확대되었다.
[P. 8] 그의 <일기>는 정신의학도를 위한 텍스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온갖 환상과 기억들과 자유 연상의 숨막히는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에 불합리한 문장도 그 자체로서 의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자해설
니진스키의 비극
[P. 13]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전설적인 명성의 절정에서 홀연 암묵의 신비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일기>는 이 양 극단의 가파로운 경계선에서 필사적으로 기록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으로부터 단절되어 내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한 천재 예술가의 내면의 여로를 나침반도 없이 한없이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하게도 특이한 기록이다. 마치 천 길 벼랑에서 무시무시한 암흑의 심연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과 공포를 감지케 하는 소리없는 영혼의 절규와도 같은 것이다.
[P. 13-14] 흔히 천재와 광기는 자주 사이좋은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히나 과도한 상상력과 극단적인 감각 과민이 특징인 예술적 천재들은 광증의 희생자가 된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네르발, 휠덜린, 슈만, 반 고흐, 니체 등등.... 그러나 이들 중 아무도 니진스키가 남긴 일기 같은 걸 기록하지는 않았다(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집필을 했지만 니진스키처럼 발광하기 직전에 쓴 것은 아니었다.)
[P. 15] 니진스키의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은 니진스키의 생애를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그리고 나머지 30년은 암묵 속에 가려진 60평생”으로 요약했다.
[P. 16] 실제로 발병이후의 30년에 대해선 버클의 말처럼 거의 암묵 속에 가려져 있었다고 보아 마땅하다. 그러나 1991년 피터 오스월드의 <니진스키-광기로의 도약>이 빛을 보게 됨으로써 어둠속 30년의 장막에 가려졌던 많은 사실과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P. 21] 정신질환 이후 그는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문자 그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너무나 깊이 너무나 멀리 자기 속으로 은퇴해버린’ 결과 더 이상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역시 다시는 외부세계를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세계와의 교통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P. 21-22]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란 낱말을 처음 발명한 블로일러 박사를 필두로 프로이트, 융, 크레펠린을 포함한 세계의 가장 탁월한 정신병의들이 니진스키를 진료했지만, 끝내 그는 정상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충고는 한결같았다. “정신의학자의 간호 아래 그에게 최상의 상태로 육신을 편하게 해주고 조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로 하여금 자신의 꿈에 잠겨 있도록 내버려두세요.”
이 같은 충고가 최상의 치료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스도보다도 더 고통을 받았다.”고 자탄했을 만큼 자신에게 슬픔과 고통만을 주었던 이 세계와 사람들 속으로 그 자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 22] 니진스키는 “의사들은 내 병을 모른다. 내 정신은 건강한데 내 영혼이 앓고 있다. 내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곧 치유될 수는 없다.” 고 단언하고 있다.
[P. 22] 내 어린 딸은 노래하고 있다. “아, 아, 아, 아.”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나 그 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낀다. 그 애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은 -아! 아!- 공포가 아니고 기쁨이라는 것을.
[P. 23] 그는 마치 자신에게 고유한 자연스럽고 특수한 동작언어로써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말로써 번역할 수는 없어도,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P. 24] 니진스키의 춤을 직접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겐 이른바 ‘중력의 법칙’ 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가 공중에 날아오르는 방법은 너무나 불가사의해서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다.
[P. 24-27] 테크닉 면에서 니진스키 못지않게 도약하거나 엘레바시옹, 앙트르샤를 포함한 온갖 복잡한 묘기를 시연하는 댄서들이 많이 있었지만- 또한 현대에 올수록 테크닉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그러나 어떤 댄서도 니진스키가 창출하는 예술적 효과를 관객에게 미칠 수는 없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고 공중에 머물러 있었으며 자기가 내려오고 싶을 때 땅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관객들은 그렇게 느꼈다. 도약하건 떨어져 내리건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공중으로 넘나들었으며, 그럴 때의 그 가벼움과 아름다움은 도저히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P. 27] 올라갈 때보다 더 천천히 내려오고 원하는 만큼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은 ‘일루전(illusion)’의 비밀은 니진스키의 도약이 갖는 비범한 ‘조형적 특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한 아마도 그것은 니진스키의 의지력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솟구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다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P. 28] 한번이라도 그의 춤을 목격한 사람에게 니진스키는 영원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는 완벽한 도구로 만든 결과 어떤 역을 춤추든 완전히 자기가 맡은 배역의 인물이 돼버리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그의 춤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니진스키는 “자기 고유의 인격을 표출하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절대(예술)의 종이 되고자 자신을 선택했던 것이며, 그 결과 그의 육체와 얼굴은 그가 연기하는(춤추는) 다양한 배역의 실체가 통과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던 것” 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P. 32] 이와 같이 유별난 혈통에 의한 선천적 자질과 러시아 황실 발레의 전통이라는 위대한 유산, 그리고 레가트 형제들을 포함한 빼어난 교사들에 의한 엄격한 교육에다 니진스키 자신의 끊임없는 수련(그는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항해 중의 선상에서까지 매일 여러 시간씩 반드시 연습을 했다)이 겹쳐 역사상 가장 특이하고 불가사의한 한 사람의 천재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P. 32-33 ] 어떤 위대한 천재도 과거와 동떨어져 고립된 존재로 출현할 수는 없다. 어떤 독창적인 창조자도 그가 종사하는 영역에 누적돼온 유산의 영향에서 완전히 면제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니진스키에 앞서간 창조자들의 활동과 러시아 발레의 전통은 댄서(해석자)로서나 안무가로서의 니진스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거나 혹은 이들 창조자들의 작품이 이룩된 환경이나 작품의 양식을 통해, 그리고 그걸 나진스키 속에다 계발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P. 33-34] 더욱이나 그가 완벽하지 못한 육체적 수단을 가지고 완벽의 극치에 도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그의 허벅지와 다리의 근육은 비상하게 발달했지만 162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키와 짧고 굵은 다리는 이상적인 고전 발레리노의 조건으로선 핸디캡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일단 니진스키가 무대에 등장해서 춤추기 시작하면 설사 그의 이 같은 신체적 불리함을 들추어내고 싶어 혈안이 돼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장에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었다. 니진스키의 무대상의 변신을 여러번 지적한 바 있는 무류의 감식가 카를 반 배흐턴은 그처럼 자유자재한 변신의 비밀은 니진스키의 의지력에 있다고 보았다.
[P. 35] 남성 댄서를 위한 안무의 의미는 니진스키로 인해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남성을 위한 안무의 역할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P. 35-36] 이와 같이 남성 댄서가 고전 발레에서 주도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니진스키 이후부터였다. 그는 남성 댄서를 발레리나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발레 예술에서 남성과 여성의 요소를 대등하게 만들어 놓았다.
[P. 40-41] 다행히도 발레는 몬테카를로에서 돌아와 리허설을 보게 된 레옹박스트의 열광에 의해 구제되었다. 그는 흥분해서 니진스키에게 키스한 장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두고 보시오. 파리가 얼마나 이 작품에 열광할지를.” 그는 기필코 <판>은 ‘초(超) 천재(super-genius)’ 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그는 거침없이 바보라고 했다. 결국 박시트의 예언은 실현되었고, 니진스키는 이 첫작품으로써 안무가로서의 자신을 구축햇던 것이다.
[P. 42] 니진스키의 제스처는 이미 친숙해진 이디엄의 확장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색채와 규모로 된 방향을 지닌 제스처의 새로운 사용이었다. 그는 무한한 표현의 매커니즘으로서의 인간 육체에 고유한 파토스에 의존했는데, 이 메커니즘이 갖는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진동, 경련, 전율 등은 기쁨이나 절망 공포 사랑 혹은 증오 따위를 위한 인습적 나열이 아니었다.
[P. 42-44] <판>은 음악 작품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공연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리허설되고 공연된 최초의 발레였다. 이 10분 밖에 안되는 짧은 발레가 무려 90회 이상의 리허설을 가졌다, 니진스키는 자신이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테크닉으로써 진정 안무적 천재임을 과시했지만 댄서들은 이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는 데 호된 시련을 겪었던 셈이다.
[P. 45] 니진스키의 또 하나의 걸작 <제전>은 전전기(戰前期)의 발레 뤼스를 극점에 이르게 했던 발레이다. 사실 이 작품은 발레단 자체도 겨우 지탱할 수 있었던 대담한 혁신이었다. 쉴새없이 변하는 박자와 불협화음으로 된 스트라빈스키의 폴리리듬적(polyrhythmic) 음악은 지극히 까다로운 데다 니진스키가 창안한 원시적 스텝은 댄서들 속에 거센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의 취향과 훈련에 극도의 자부심을 가진 데다 젊은 니진스키의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믿지 않는, 유능하고 자기만족적인 공연자들은 결코 투쟁 없이 저들의 테크닉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니진스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P. 47] 스트라빈스키는 죽기 4년전인 1967년에도 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볼쇼이 발레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 비치와의 담화 중 이렇게 말했다. “내가본 <봄의 제전>의 모든 해석 가운데 나는 니진스키의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P. 48] 나는 만사가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될 때 <봄의 제전>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압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그것은 새로운 지평선, 다른 태양광선으로 흘러넘치는 거대한 지평선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고 독특한 색채와 선을 볼 것입니다. 전혀 뜻밖의 아름다움을.....
[P. 49] <판>을 창조했을 때 니진스키는 불과 스물세 살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제전>을 완성했던 것이다,
[P. 52] “어쨌든 우린 정신이상이 되지는 않아요. 우린 그걸 타고나는 것이지.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럴 소인(素因)이 선천적이라는 거야. 천재와 정신이상은 서로 근친이지. 정상과 비정상은 두 국가 사이에서처럼 국경이란 게 없어요.
[P. 53-54] 블로일러는 니진스키가 병원에 입원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니진스키가 혼란돼 있고 부적절하게 흥분되어 있으며 가족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데다 ‘음란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를 가두어 그보다 더 혼란된 사람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른 더 지독한 습관에 젖게 하는 길이 될지도 몰랐다. 블로일러는 이 댄서가 강한 배우적 본능과 공격적인 성깔의 발작 및 굉장한 육체적 힘을 지녔다는 걸 알아봤다. 이와 같은 사람을 병원에서 관할하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분란을 초래할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고 그들을 학대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다.
“그냥 그를 가게 내버려둬요.” 라고 블로일러는 로몰라에게 충고했다. 그녀는 그와 이혼을 해야 한다고. 가정의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니진스키를 위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니진스키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력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 - 적어도 그 자신과 또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한- 한층 더 나을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강조했던 것이다.
블로일러의 충고에 로몰라는 망연자실했다. 그야말로 그것은 청천벽력이었다. 7년 전 니진스키의 춤을 처음 목격했던 순간 그녀에게는 바로 운명이 되었던 이 남자-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온, 자신에겐 신과도 같았던 그와 헤어지라고? 그녀는 블로일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그의 방을 뛰쳐나왔다. “나는 그 장소가 운을 그리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내 주위를 돌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문을 밀고는 바슬라프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돌진해갔다. 그는 코사크 캡을 쓰고 러시아식 모피코트를 입은채, 창백하고 묘하게 슬픈 얼굴로 멍하니 도해가 든 용지들을 보면서 테이블 곁에 서 있었다. 나는 멈춰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나의 응시 아래서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그는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내게 죽음의 영장(令狀)을 가져오고 있구료.’”
[P. 55] 블로일러는 이런 불행을 초래하게 된 저간의 상황을 몹시 유감스러워했다. 결국 이 같은 쇼크가 질병을 급성으로 진행시킨 것이며, 다른 상황에서 였다면 증세는 진전되지 않은채 현상태를 유지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P. 55] 이렇게 해서 니진스키와 더불어 하는 로몰라의 30년에 걸친 제 2의 인생 역전이 시작되었으니, 참으로 그것은 희망과 절망, 투쟁과 궁핍으로 점철된 영웅적인 도정이라 할 만했다.
[P. 56] 니진스키의 생애를 훑어보노라면 마치 북구의 신화에 나오는 ‘우수(憂愁)부인’의 저주라도 받은 것 처럼 그의 주변에 항상 불운의 그림자가 따라다닌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흠사 노예의 발목에 족쇄로 채워진 무거운 쇠사슬과도 같이 모진 고뇌와 비애가 한 평생 숙명처럼 그를 질질 끌고 다니며 놓아주지 않았다고나 할까.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라고 일기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일찍부터 본능적으로 인생의 비참과 불행을 이해하고 있던 그의 영혼은 한평생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P. 58] 니진스키의학교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친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그의 천재성은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최초의 경탄은 어느덧 시샘과 적의로까지 변해갔던 것이다.
[P. 61] 천성적으로 비사교적인 데다 철두철미 묵고적인 기질이었던 그는 처음에 자신이 교사들과 급우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땐 누구에게나 미소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자기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의 교감을 단념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느꼈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방에다 나를 가두었다. 나는 높은 천장을 가진 좁다란 방에 있었다. 나는 벽과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내게 죽음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이었고, 오직 춤추고 있을 때만 자유를 느꼈다.
[P. 61]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이해받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정신의 파국을 향해 서서히 침몰해간 니진스키의 비극은 이때 이미 그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다.
[P. 63] 일련의 불꺼진 홀들을 지나가다가 그는 역시 불이 꺼진 마지막 작은 홀에서 니진스키를 발견했다. 피아노 앞엔 니진스키가 앉아서 <탄호이저>의 서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음날 음악교사는 학감 선생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니진스키는 음악수업에 결석했을 뿐 아니라 가장 단순한 음악작품도 분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 63-64] 이 일화에서 우리는 니진스키의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감정’이란 낱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에서 볼 때 그가 말하고 있는 ‘감정’은 본능, 다시 말해 무의식의 심적 충동을 의미한다. ‘생각’에 대응하는 ‘느낌’, ‘논리’에 대응하는 ‘직관’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이나 논리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느낌과 직관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아내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그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면 좋으련만.” 혹은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쓰려고 한다.” 등등. 그의 <일기>를 통독하고 나면 누구나 그가 무섭도록 강한 본능 - 직관의 소유자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일기>는 그의 본능-무의식의 거대한 강의 격류라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탄호이저>사건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나 니진스키는 단순히 과묵할 뿐 아니라 항상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P. 69] 필경 세르게이의 자살은 니진스키의 의식 속에 무서운 충격으로 고착되어 훗날 그가 정서적 혼란을 겪게 됐을 때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P. 74] 디아길레프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여성과의 성적 관계에 대해선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항구적 반려를 동성 속에서 찾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의 삶의 비극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끌린 대상은 거의 언제나 동성애 성향이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성숙 단계에 있는 가장 남성적인 젊은이였던 이들은 남성으로서 충분히 성숙되자마자 맨 처음 매혹당한 여성을 위해 디아길레프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유혹자나 엽색가가 아니었다. 버리는 쪽은 항상 그가 아니고 상대방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끊임없는 행복과 실망의 연속이었으며, 슬픔과 놀람과 배신감을 보상처럼 남겨주었던 것이다.
[P. 74-75]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사 두 사람의 관계가 성적인 단계로 발전했다 해도 디아길레프의 흥미가 성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가 이끌린 것은 그들의 육체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 그들의 재능이었다. 아무리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 해도 그가 평범한 보통의 남자라면 결코 디아길레프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사랑을 받았던 대상들은 거의가 위대한 예술가의 혼을 지닌 창조적 천재라 할 만했다.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그래서 그 자신의 이념에 따라 형성하고 지도해줄 수 있는 그러한 마음에 이끌렸던 것이며, 아직 꽃봉오리인 이들 미성숙의 인격체를 화려하게 만개시키는 데서 그의 사랑은 절정에 달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니진스키와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을 최고의 형태로 실현시킬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발견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사실이 그러했다.
[P. 76-77] 그러나 그가 인간과 예술가로서 성숙해감에 따라 애초의 기대와 찬탄은 불신과 환멸로 바뀌어갔을 것이다. 선도자인 디아길레프는 마치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유연한 재료인 니진스키를 자신의 이상에 맞게 교육하고 그에게 삶의 지평선을 넓혀주었으며, 세계의 각광을 받으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 제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스스로 독자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는 그걸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니진스키는 그의 의도대로 형성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디아길레프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두 사람의 불화는 바로 여기서 싹텄다. 다시 말해 니진스키의 독립과 자기 주장은 바로 디아길레프와의 파국이 시작되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명백히 표현된 것은 니진스키가 그의 최초의 발레 <목신의 오후>에 의해 안무가로서의 자신을 굳건히 구축했을 때부터 였다.
[P. 79-80] 천성적으로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혼자가 되자 디아길레프와의 사랑이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라 성찰하게 되고,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베리아로 가 수도승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에겐 사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같은 진퇴유곡 속에서 아마도 그는 ‘결혼’이라는 제 3의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디아길레프는 한동안 니진스키를 발레 뤼스에서 떠나 있게 할 구실로 ‘모종의 스캔들’이 생기기를 내심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데, 결과는 그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니진스키의 결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 한동안 그와 헤어져 있을 생각까지 했던 그였지만 이 소식은 가히 벼락의 일격과 같았다. 슬픔, 분노, 당혹, 배신감, 복수심...........
그리하여 그는 얼마 안돼 니진스키에게 ‘해고’전보를 보냈고, 이후 니진스키의 앞길을 가로막는 온갖 책략으로 그에게 보복했다. “현재 니진스키가 서 있는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낮은 위치로 밑바닥까지 그를 떨어뜨릴 테다!” 이 같은 그의 예언대로 니진스키는 결과적으로 삶의 맨 밑바닥까지 떨어진 셈이 되었으니, 이야말로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실 니진스키를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록 전심전력한 사람은 바로 디아길레프 자신이었던 것이다. 훗날 니진스키가 정신의 붕괴를 겪은 후 디아길레프는 다시 한 번 니진스키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둘의 우정은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P. 81-82] 그러나 이 부녀의 유례없이 깊은 애정과 상호 밀착된 관계는 1899년 백작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오히려 로몰라의 인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로몰라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의 능력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이때의 충격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녀의 정서 속에 영원히 고착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P. 82 ] 로몰라가 약혼한 바로 그해, 즉 1912년 봄에 발레 뤼스가 첫 부다페스트 시즌을 갖게 되었으며, 이때 <사육제>의 아를르캥으로 출연한 니진스키의 춤을 본 순간 그녀에겐 모든 것이 변했다. 흡사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녀는 자신에겐 전혀 새로운 어떤 목적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부름을 강하게 느꼈으며, 이것은 거의 종교적인 경향과도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동행한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저 남자는 내 남편이 될 거야.” 그녀는 이 같은 자신의 변모를 백모와 의논한 뒤 약혼을 파기했다.
[P. 85] 그 순간부터 로몰라의 전 삶은 발레 예술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녀의 관심의 중심은 니진스키였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인격과 그의 천재였던 것이다. 그녀의 광적인 집착은 만약에 니진스키의 천재가 영속돼야 한다면 자신이 그의 불멸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기를, 즉 그의 아이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P. 87] “내게는 바슬라프가 진정한 반려요 벗이며, 오빠이고 남편이며 연인이었다. 그는 나의 모든 기분과 온갖 사념, 온갖 욕망을 깡그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내가 관심을 갖는 일체의 것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의식 밑바닥에서 나는 항상 자신이 비범한 천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젠 그가 니진스키란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예술에서뿐 아니라 사랑에서도 의심 없이 그는 거장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벽한 행복’은 영속하지 않는 법이다.
[P. 90] 그의 춤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우리가 시체들 위를 떠다니는 그를 거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우리의 넋을 빼놓았다. 관객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도 이상하게 매혹된 상태로. 그들은 화석이 된 것 같았다. ... 그는 춤추고 또 추고 계속 추었다. 그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다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 그것은 죽음에 대항하는 삶의 춤이었다.”
[P. 92] 이것은 니진스키가 세상에 보여준 마지막 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날 (1919년 1월 19일) 그는 “오늘이 나와 신과의 결혼날”이라고 로몰라에게 선언했다. 그가 문제의 ‘노트’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날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P. 92] 니진스키에게 춤을 추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극장은 그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극장과 춤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위한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었다. 마치 극장에선 그의 타고난 본성으로 있는 것과 같았고 거기선 모든 것이 그의 영혼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극장과 단절되어 춤을 출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P. 93] 니진스키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요 영혼이었다. 그러나 극장이 없었으므로, 니진스키는 자기 속에 깊이 물러가 자신의 고유한 ‘무용’의 내면세계에서 살기 위해 삶의 현실로부터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영역자 서문
[P. 95] 니진스키의 <일기>영문판은 1936년 니진스키의 처 로몰라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리고 이어 다른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상당한 성공을 누렸다. 그것은 이 저명한 무용가가 삶과 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고찰을 자극할 수 있는 날카롭고 독창적인 사상가였음을 보여주었는데,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게 이건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다.
[P. 97-98] 그에게 ‘감정’은 직관적 통찰력, 즉 어떤 대상-인간과 상황-을 정서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이해는 그의 마음속에선 영적인 체험과 동종일 수 있는 것으로, 신중한 사색에 의해 달성되는 일은 드물며, 그가 ‘생각’ 또는 ‘지성’이라 부르는 수단에 의해선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니진스키는 생각이라는 걸 다소의 경멸감을 가지고 감정의 정반대로 간주하고 있다. 즉 순순하게 지적이고 거의 인공적인 행위로서 결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도 없고 친밀한 관계를 이끌어갈 수도 없다. 하지만 ‘생각’과 ‘지성’을 ‘이성’과 호동하면 안 된다. 니진스키는 이성을 논리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서 발산되는 능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P. 98]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적으로 획득한 (그리고 반드시 나쁜) 행동 양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습관이 없는 것은 온갖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P. 98-99] 나는 또한 니진스키의 논리에 반하는 문장도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이를테면 ‘나는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러시아어로 발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은 ‘그들은 러시아어로 말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 의미일 듯하다). 이런 예들들은 비록 부분적으로는 그의 언어적 곤란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이런 기묘함은 오히려 그의 혼란한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랄 수 있다. 나는 레이아웃 작업에서도 역시 이와 비슷한 태도를 견지했다. 니진스키에겐 그의 서술이 논리(‘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념의 연상에 의해 지배되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이렇게 된 결과 문장의 단락이 거의 없게 된 것이다, 번역에서 임의로 단락을 만들면 독자들에겐 확실히 도움이 될 테지만, 그렇게 되면 원본에선 부족한 순서와 모양새를 갖추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의 상태와 또 단하나의 온전한 전체로서의 실제에 대한 그의 비전을 잘못 전하게 될 것이다,
[P. 99] 그는 어찌나 집필에만 전적으로 매달렸던지 작가들을(아마도 그 자신을 포함해서) ‘순교자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닮은’ 자라 부를 수 있으리라고까지 느낀다. 그리스도와의 자기 동일시 및 신과의 자기 동일시는 결코 그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어떻든 그것은 일기의 일관된 주제인 것이다.
1부
삶
[P. 103] 나는 마른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병든 땅이다, 온통 산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스위스 사람들은 메마르다. 그들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내 시중을 드는 하녀는 메마른 인간이다. 그녀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녀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다른 직업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이 고갈돼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취리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은 메마른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수많은 공장들과 숱한 사업가들이 있다. 나는 메마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P. 105] 나는 조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솔직히 쓰는 것이다, 나는 내가 느끼니까 춤추고 싶은 것이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춤추고 싶진 않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P. 106] 나는 선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다 그들에게 주고 싶다.
[P. 108] 내가 신경과민이 된 것은 신이 관객들을 일깨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즐기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춤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춤을 추었다. 그들은 나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졌고 그래서 내가 자기들을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신경과민이었고 그래서 이 같은 감정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P. 109] 나는 더 춤추고 싶었지만 신이 내게 말했다. “됐어, 그만.” 나는 멈추었다.
[P. 112] 나는 사람들이 나를 느끼지 않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이 두렵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이 두렵다. 그들은 내가 즐겁고 흥겨운 춤을 추기를 바란다. 나는 흥청거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P. 114] 그녀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죽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P. 114] 나는 그들, 즉 귀족들에게 춤추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춤추진 않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감정을 주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P. 115] 그들이 나를 느낀다면 나는 구제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난ㄴ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고통을 박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P. 116] 나는 유쾌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흥겨움은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흥청거림은 마음의 죽음인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삶을 사랑한다,
[P. 118] 나는 광인의 삶을 이해했다, 나는 광인의 심리를 안다, 나는 광인을 반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광인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P. 120-121] 나는 추락할지도 모르는 벼랑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나는 추락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신은 내가 추락하는 것ㄹ 원치 않는다, 내가 추락할 때면 언제나 ‘그’는 나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P. 123] 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쓰는 것 모두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쓰는 것은 무엇이나 다 절대적 진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걸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나는 체험했다. 나는 손이 뻣뻣해 질 때까지 쓰겠다. 나는 지치지 않았다.
[P. 127]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나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 나는 내일 계속해서 쓰겠다. 신은 내가 쉬기를 바라기 때문에.....
[P. 128] 나는 니체를 좋아한다. 그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P. 128] 다윈의 자연은 인공적이다. 그는 자연을 느끼지 않았다. 자연은 생명이고 생명은 자연이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나는 자연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나는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은 나를 느낀다. 자연은 신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인공적인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자연은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나의 자연을 숭고하다. 나 역시 자연을 공부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감정에 일치하는 자연을 공부했다. 나의 느낌들을 광범위에 걸쳐 있다. 따라서 나는 자연을 공부하지 않고도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자연은 삶이다. 삶은 자연이고, 원숭이는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이다. 원숭이는 인간의 자연이 아니다. 나는 인간 원숭이가 아니다, 원숭이는 운동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속의 신이다. ........인간은 신이다
[P. 129] 내적 힘이란 곧 감정을 뜻한다.
[P. 130] 나는 내가 쓴 어떤 것도 고치면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의 습관을 바꾸겠다, 내일 나는 잉크로 쓸 작정이다. 신이 그걸 원한다는 것 느끼니까. 지금 나는 지워지지 않는 연필로 쓰고 있다.
[P. 132] 나는 흥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고기를 먹었다. 그래서 거리의 여인들에 대한 욕정을 느꼈다.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욕정이 내게 그녀를 뒤쫓도록 했다.
[P. 134] 나는 감정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싶기 때문에 이 책을 쓰고 싶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감정에 대한 나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할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P. 134] 나는 신의 명령을 완수하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간이다,
[P. 139] 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에겐 불가능하다, 신은 신을 이해한다. 인간은 신이다, 그러므로 신을 이해한다.
[P. 139] 나는 행복하다. 내가 사랑이므로. 나는 신의 사랑이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미소한다. 사람들은 내가 미쳐갈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제 정신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니체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정신을 잃었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정신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P. 146] 나는 신이지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교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신이지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다.
[P. 149] 나는 선물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다. 선물은 하나의 습관이다. 선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지 풍족히 가진 사람들에게 주면 안 된다.
[P. 151] 나는 짐승들을 죽인다. 나는 삶에 해로운 것이면 무엇이나 다 죽이는 포식자이다,
[P. 153] 나는 개가 사냥감을 냄새 맡듯이 가난한 사람을 느낀다. 나는 후각으로 가난한 사람을 찾아내는 친절한 개다. 나의 후각은 매우 예민하다. 나는 스스로 가난을 공언하지 않는 빈자들을 찾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가난을 공언할 필요는 없다.
[P. 153]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진 않겠다. 그들에게 삶을 주겠다. 삶은 빈곤이 아니다. 빈곤은 삶이 아니고. 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한다.
[P. 156] 이 펜은 신이라 불릴 것이다. 나는 신이라 불리고 싶지 니진스키라 불리고 싶진 않다, 그러므로 이 펜을 신이라 불러 달라고 청하리라,
[P. 158] 나는 다른 사람들의 교정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만사에 대해 교정해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나는 결점들을 자닌 인간이다, 나는 학자다운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감정의 상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P. 163] 나는 반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의 반대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신이다, 반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다,
[P. 164] 나는 교회에 가겠다. 나는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신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이 아니다. 신은 이성이고 과학은 반그리스도이다.
[P. 169] 디아길레프는 사악한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악랄한 논쟁술에 대항해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P. 170] 나는 5년동안 쉬지 않고 디아길레프와 함께 일했다. 나는 그의 모든 속임수와 버릇들을 알고 있다. 나는 디아길레프였다 나는 디아길레프 자신이 아는 것보다 한층 더 잘 그를 안다 나는 그의 약한 면과 강한 면 모두를 알고 있다.
[P. 175] 나는 결혼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인생을 알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과오를 범하지만, 그들은 생활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내와 남편 양자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나는 타락한 짓들을 하는 아내와 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P. 183]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는 우둔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둔함 속엔 감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둔함은 인간속의 감정이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느끼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
[P. 189] 아내는 올바른 삶이 좋은 것이라는 걸 알지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알지 못한다. 올바른 삶이란 신에게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신에게 복종해야 되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 누구인지를 알며, 그래서 그의 소원을 아는 것이다.
[P. 190] 신은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목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신의 도구이다 나는 신의 사람이다,
[P. 191] 나는 지적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적인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강대하다.
[P. 191] 나는 너무 낳은 생각 때문에 미쳐버린 사람들을 알고 있다,
[P. 195] 나는 그대가 아는 것 이상으로 그대를 잘 알고 있다.
[P. 199-200]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신이다. 신은 감정을 지닌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감정 속에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내가 그걸 느끼고, 그래서 그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허튼소리를 쓴다. 아름다움은 토론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비판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비평이 아니다. 나는 비평이 아니다. 비평은 영리하게 되려는 시도이다. 나는 영리하게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P. 201]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앓고 있지 않다. 나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다.
[P. 203] 그는 나의 두뇌를 검사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그의 마음을 검사하고 싶다. 나는 이미 그의 마음을 검사했다. 그는 나의 두뇌를 검사할 수 없다. 그걸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위해 약간의 시를 썼다. 나는 그가 나의 두뇌를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시를 썼다.
[P. 216] 모든 것을 감정의 토대 위에 구축하는 사람은 끔찍하지 않다, 그의 감정들은 끔찍하다.
[P. 217] 나는 사랑 나는 피
나는 그리스도의 피
나는 그대를 사랑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노니
나는 그대 자신 속의 사랑이다,
그대는 내안의 사랑이네
나는 그대에게 사랑은 피라는 걸 말하고 싶다네
나는 그대 속의 피가 아니네
나는 그대속의 피라네
나는 피를 사랑하지만 피속의 피는 아니라네
나는 피를 사랑하고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네
나는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이다,
[P. 225] 나는 사랑의 탈혼 상태이다. 나는 탈혼 상태의 인간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다, 나는 탈혼 상태에서 쓸 수가 없다, 나는 감정을 지닌 탈혼 상태이다, 그리고 이 탈혼 상태는 이성이라 불린다.
[P. 242] 나는 모든 사람이 니진스키는 미쳤다고,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보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모든 걸 본다, 나는 로이드 조지가 윌슨을 논박한 글을 읽었다.
[P. 255] 그의 입맞춤이 유다의 키스인지 혹은 친구다운 입맞춤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P. 256]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의 로무슈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나쁜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나를 비판한다,
[P. 260] 나는 인민들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내가 인민들에게 바라는 것과 꼭 같은 행복을 그녀에게도 바라는 것이다.
[P. 265] 병든 사람들, 이를테면 이성적인 마음을 갖지 않은 미치광이들은 신경으로 느낀다고 나는 이성을 지닌 미치광이 이다. 그러므로 나의 신경은 훈련돼있단 알이다, 나는 신경질 적이 되고 싶을 땐 그렇게 된다, 내가 신경과민이 아니라는 걸 사암들에게 납득시켜야만 할때 나는 신경과민이 아닌 것이다,
[P. 268] 나는 알아보기 쉽게 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P. 272] 나는 신이 내게 씻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씻으러 갔다,
[P. 278] 만약에 그가 해를 입는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할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한사람의 인간이다, 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등골이 오싹할 것이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을 동안 이것들을 출판하고 싶다, 이것이 불러일으킬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P. 283] 나는 주님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육신 속에 깃들인 영혼이라 말했지만 교회는 그의 가르침을 왜곡했으니 그들은 그를 살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를 죽였다.
[P. 284] 만약에 사람들이 내게 사진이 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한다면 나는 일생을 사진에 바칠 것이다.
[P. 287-288] 나는 잉크 공장들의 속임수를 알고 있다. 나는 흥행사들의 속임수를 안다. 디아길레프 역시 흥행사이다. 공연단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디아길레프는 다른 흥행사들로부터 사기 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이 흥행사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흥행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걸 그는 잘 안다. 흥행사들은 모두 도둑놈으로 간주된다. 디아길레프는 도둑이 되고 싶지 않으므로 흥행사로 불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마에케나스(예술의 후원자)로 불리고 싶어 한다. 디아길레프는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디아길레프는 사람들을 속인다. 아무도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P. 288] 디아길레프는 화제의 대상이 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한쪽 눈에 외알 안경을 끼고 있다, 나는 그에게 어째서 외알 안경을 끼는가를 물었다. 왜냐하면 그는 외알 안경 없이도 잘 본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아길레프는 그의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 295] 나는 계속 써나갈 수가 없다, 나 자신이 집필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P. 303] 나는 어머니를 무한히 사랑했다. 나는 더욱더 자신을 춤에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날씬하게 되었다, 나는 신처럼 춤추기 시작했다. 누구나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직 학생이었을 때 이미 나는 주도 댄서로 춤추고 있었다,
[P. 309] 나는 삶이 무엇인가를 안다. 삶은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나는 삶을 위해 죽음을 원한다,
[P. 312] 그대에겐 쓸수 없다는 말을 나는 하고 싶다 나는 그대에게 쓴다, 나는 그대에게 말하리라.
[P. 316] 이시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누구나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걸 나는 안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누구와도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주기를 바란다,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싶으니까 말이다.
[P. 318] 우리는 신, 그대들은 신
나는 말하고 싶다, 신이란
신은 신이지만 신은 신이라는 것을
[P. 326] 나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것이 언짢았다. 내가 고기를 먹는다면 다른 동물이 도살될 것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 나는 오직 먹고 싶을 때만 먹는다. 아내는 많이 먹는다.
[P. 337]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 난 길을 보았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갔고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기쁨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내 길을 갔다.
[P. 344] 나는 과로로 쓰러졌고 열에 떠 있었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아내는 슬피 울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가 과도하게 일하는 걸 보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다 돈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나는 돈을 원치 않았다. 나는 단순한 삶을 원했다. 나는 극장을 사랑했고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호되게 일했다. 그러나 후에 나는 내가 호감을 사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므로 열의를 잃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 속으로 은퇴했다. 나는 너무나 깊이 자신 속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아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자신이 잘못을 범했음을 깨닫고 내가 자기를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다, 그녀가 가엽다. 나는 울고 있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울고 또 운다
[P. 347]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쓰라고 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P. 347] 나는 무얼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신은 나의 집필을 원한다,
[P. 348] 나는 웅ㄹㄹ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영혼 속에 너무나 심한 통증을 느끼므로 나 지신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나는 고통을 느낀다, 네 영혼은 병들었다. 나의 병은 영혼의 병이지 마음의 병이 아니다. 내가 다시 좋아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나는 알고 았다, 내 병은 쉬이 치유되기엔 너무나 위중하다., 나는 불치이다, 내 영혼은 앓고 있다, 나는 가련하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불행하다,
2부
죽음
[P. 353]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 내가 그걸 원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나 지신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살지 못했다, 나는 오직 6개월 동안만 살았다, 나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P. 355] 나는 죽음에 관해 쓰고 싶다. 나는 첫 번째 책을 ‘삶’이라 하고 이 책은 ‘죽음’이라 부르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관념을 심어주겠다.
[P. 355]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사상가가 되고 싶다, 나는 생각하고 나는 쓴다, 나는 졸작 작가가 아니고 사상가이다.
[P. 360] 또한 나를 정신병원에 처넣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나는 괘념치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원한다, 만약에 신이 원한다면 나는 내 골을 날려버릴 것이다, 어떤 것에도 나는 대비할 것이다, 신은 사람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 모든걸 원한다는 겅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도구가 되겠다.
[P. 364] 교수들은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감정을 상실했기 때문에 어리석다는 걸 안단 말이다, 그들은 쓸모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에 저들의 눈을 잃어버린 것이다,
[P. 364-266] 나는 결심했고, 일에 착수했다. 나는 마치 황소처럼 일했다 나는 결코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거의 자지도 않았다, 나는 일하고 또 일했다,
[P. 369] 비평가들은 항상 자기들이 예술가들보다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주 저들의 지위를 남용하며 예술가의 공연에 대해 질책하곤 한다. 예술가들은 가난하다. 그래서 비평가들과 직면했을 때 떠는 것이다. 그들은 상처를 입고 기분이 상한다. 그들의 영혼은 흐느껴 운다. 나는 편견을 지닌 비평가인 한 화가를 알고 있는데, 그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예술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브누아이다.
[P. 375] 나는 사랑을 추구했고 아무데도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P. 378] 나는 황소처럼 일했다, 나는 순교자처럼 살았다, 나는 디아길레프가 고된 삶을 살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사업을 위해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P. 382] 나는 자고 싶은데, 신은 그걸 원치 않는다, 나는 짐승처럼 느꼈기 때문에 종이를 긁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포식동물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짐승이다.
[P. 382] 나는 나 자신과 또 나를 닮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짐승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악의적인 것들을 쓰기 때문에 나를 악의에 찬 사람이라 말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악의적이다, 나는 악의에 찬 포식성의 짐승이다,
[P. 391] 많은 사람들이 니진스키는 울보라고 말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울보가 무엇인지는 안다. 나는 울보가 아니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살아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운다. 울보가 어떤 것이라는 건 나도 안다 사람들은 신경이 약한 사람들을 울보라고 부른다, 나는 신경과민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내가 신경과민이니까 말이다, ..............
[P. 392]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란 신이 그걸 바라는 곳에선 좋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선 죽음이란 나쁜 것이라는 것도.
[P. 394] 나는 재치있는 의견들을 피력하기 위해 글을 쓰는게 아니다, 나는 설명을 하기 위해 쓴다, 이 책에 대해 나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나는 나의 저서를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P. 396] 사람들은 내게 신경과민이 성격의 약한 측면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신경과민은 성격의 약한 면이 아니라 과민한 습관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P. 410] 나는 사람들이 영적인 주음을 좋아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들이 신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들이 신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자연속의 신이다, 나는 신의 심장이다, 나는 심장속의 유리이다,
[P. 411] 사람들은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신이 두려워서 습관적으로 교회에 가는 것이다, 신은 성상속에 있지 않다, 신은 인간의 영혼 속에 있다, 나는 신이다, 나는 정령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P. 412]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겠다. 신이 날 도와주리라. 내가 그를 이해하니까 나는 자신이 결함을 지닌 인간임을 알고 있다, 누구나 결함을 지녔다는 것도. 신은 누구나 도와주고 싶어한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안단 말이다. 내가 신을 느끼니까 말이다.
[P. 413]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때 나는 결함 없는 사람이 되리라,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P. 415] 나는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교활함을 알 수 있다, 나는 위대한 심리학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리라,
[P. 420]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한사람이 집필을 위해 그의 자유로운 시간을 몽땅 포기할 때 즐거움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대답하리라,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많이 써야만 한다. 집필은 힘든 일이다, 앉아 있는데 지치기 때문이다,
[P. 427] 나는 그들이 나를 정신이상이라 생각한다는 걸 눈치챘다. 왜냐하면 시장의 부인이 내게 나의 건강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내 건강은 항상 좋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미소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P. 428] 내가 신을 생각했을 때 오스카도 손가락을 하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신을 느꼈을 때 오스카는 돌아누웠다. 나는 이걸 알아챘지만 이해하진 못했다 나는 그걸한 것은 신임을 느꼈다. 나는 지금이야 그걸 발견했다.
[P. 434] 나는 사람들이 어째서 피곤한가를 이해한다. 그들은 많이 먹는다. 그리고 음식물은 사람이 생각을 할 때면 머리로 피를 몰리게 하는 것이다.
[P. 436] 나는 디아길레프를 두려워했지 죽음이 두렵진 않았다,
[P. 444] 나는 오랫동안 일했다. 하지만 나는 신을 느꼈으므로 일이 잘되었다, 나는 발레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을 대중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P. 446] 나는 사악한 사람들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반대로 그들과 싸운다, 나는 스베틀로프와 너무나 많이 싸웠기 때문에 그를 봤을 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P. 458] 나는 옛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정신이 낡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노라고 대답하리라, 나는 정신이 젊은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정신이 잚은 사람이었다. 바그너와 베토벤 기타 등등의 사람들도 정신의 젊은이였다.
[P. 465-466] 나는 로이드 조지 패들에게 내가 ‘인간-신’ 임을 보여주리라, 오라! 와서 나와 싸우자. 나는 만인을 패배시킬 것이다. 나는 총알도 무섭지 않고 독약도 두렵지 않다, 나는 영적인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는 미치진 않겠지만 울고 또 울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신이다. 나는 신속의 인간이다, 나는 결함을 지녔다. 신이 그걸 바라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결함과 완벽을 다 보여주겠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랑을 지닌 사람이다,
[P. 468] 나는 인간 속의 신이다. 모든 사람들은 만약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을 행한다면 누구나 신이 될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저들의 결점을 고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결함이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개선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나는 과거의 결함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P. 470] 나는 그대들이 무언가 다른 것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신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무한이다, 나는 만물이다, 나는 무한 속의 삶이다, 나는 정신이다, 그리고 정신은 무한이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은 육체와 함께 죽는다. 인간의 지성은 유한하다.
[P. 473] 나는 1년 이상을 신과 함께 살았으며 매일처럼 일을 했다, 나는 잠을 잤고 신을 생각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잠자면서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하리라는 걸 안다, 내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옳다고 나는 말하겠다.
[P. 479] 나는 순교자이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기 때문에 쓰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지쳤으므로 쓸 수가 없다, 나는 그만두고 싶은데 신은 나를 말릴 것이다, 신이 내게 그만두게 할때까지 나는 쓰리라,.............
[P. 480] 나는 완전히 초연한 태도로 모든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리라, 나는 미리 모든 걸 알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신은 내게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게 경고하는 것이다,
편지
편지1 - 장 드 레츠케에게
[P. 488] 어머니는 모유로 저를 키우셨고 제게 폴란드어를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므로 저는 폴란드인인 것입니다. 저는 러시아어에서 성장했으며 그곳에서 저는 러시아 소년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폴란드인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폴란드인이었으니까요. 저는 러시아를 사랑하지만 볼세비키들은 싫습니다. 저는 그들의 승리를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볼세비키인의 승리는 무신론자의 승리라고 봐야지요. 신 없는 동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야수입니다.
[P. 490] 전쟁기간에 저는 무용에 전심전력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성공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디아길레프와 함께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너무도 많은 불쾌한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편지2 - ‘친애하는 부인(오톨린 모렐?)’
[P. 494-495] 저는 더 이상 디아길레프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저는 그 없이 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이념은 그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게 오기를 저를 방문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디아길레프가 그를 자기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저 역시 그와 비슷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저는 대단한 발전을 했지만, 이발전은 디아길레프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디아길레프가 아닙니다. 저는 마음을 지닌 인간입니다. 저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의 정신을 매우 심원하게 발달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발레 뤼스의 니진스키가 아닙니다. 저는 신의 니진스키입니다.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신은 저를 사랑합니다.
편지4 - 드미트리 코스트로프스키에게
[P. 499-500] 나는 사람들이 신이라는 걸 안다네. 자네가 신이라는 걸 알고 있네. 자넨 신을 이해하지 못해. 따라서 자네가 신이라는 걸 모르는 거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네. 수개월 동안 나는 내 방을 떠나지 않았네. 혼자 있는 게 좋았거든. 나는 신을 이해하게 되었네. 나는 그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네. 만약 자네가 나를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걸세. 나는 많이 쓰네. 많이 그리고 많이 춤추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이 지겨워한다네. 많이 울기도 하고.
[P. 500] 정신은 신이지. 육신이 산다면 신은 사는 걸세. 나는 신이야. 나는 육신 안에 깃들인 정신이네.
편지5 - 연합군 참모총장께
[P. 502] 저는 인간이지 야수가 아닙니다. 저는 잔인함을 싫어합니다. 저는 볼세비키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를 죽일 수 있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의 어머니가 부르주아이기 때문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저는 부르주아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저는 만민을 사랑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죽는 걸 원치 않습니다.
편지6 - 엘레오노라 니진스키에게
[P. 504] 제겐 딸애가 하나 있는데 이 애를 어머니가 길러주셨으면 해요. 어머니 안에는 신이 계시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제 딸애의 마음속에 ‘그분’을 살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 딸은 놀라운 아이랍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아주 잘 들으니까요. 그러므로 그 애는 어머니 말씀을 잘 따르리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신은 어머니가 제 딸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편지7 - 앙드레 드 바데에게
[P. 507-508] 나는 영혼을 지닌 인간입니다. 내가 영혼을 갖고 있다는 걸 당신에게 증명하고 싶습니다. 나는 신입니다. 나는 ‘춤’입니다. 나는 사랑입니다. 나는 신입니다. 당신이 나를 광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입증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신과 더불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미친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실수를 좋아합니다. 만약 내가 아무런 실수 없이 쓴다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광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신이니까요. 나는 신을 사랑하게 때문에 신인 것입니다. 나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편지8-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P. 510-511] 나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급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신경과민이라 생각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나는 과민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침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세련된 문장을 쓰는 걸 결코 배우지 않았답니다. 나는 사상을 기술하고 싶은 겁니다. 내겐 사상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가지 사실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군요. 나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내속에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신 안에 살고요. 신은 나의 속에서 삽니다. 나는 춤에 관한 작업으로 매우 바쁩니다, 나의 춤은 진보하고 있습니다,
[P. 511]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표가 죽은 것이기 대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지 않습니다, 단신은 나의 작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적은 신이 아니니까요. 신은 적이 아니고요. 적들은 죽음을 추구합니다. 나는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은 악의를 지녔고요. 나는 포식동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포식동물입니다,
[P. 511] 당신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P. 512] 나는 웃기 위해 쓰지 않습니다. 나는 울기 위해서 씁니다, 나는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P. 512] 당신은 나를 싫어하지요.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불행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신경과민을 가장했더랬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척했었지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신이었습니다,
[P. 513-514]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당신과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표는 다른 것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어떻게 가장하는가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복리를 원할 때의 가장은 좋아합니다. 당신은 악의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제왕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왕입니다. 당신이 나의 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왕입니다. 당신은 내게 위해를 바라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악의에 찬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입니다.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평화롭게 자거라.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바이.
사람이 사람에게
부록
영역 편집자의 말
[P. 517] 니진스키의 일기는 세권의 학교 공책에 기록됐는데, 이 공책들 중 제 1부는 격자(格子) 줄이 쳐있고 나머지 두 권은 아무 줄이 없다, 모두 합쳐 일기는 총 314페이지이며......
타마라 니진스키 인터뷰
일기 원본 출간에 관하여- 마르틴 플라넬스
[P. 522] 한순간도 마음이 상하진 않았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했고 나와 아버지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보았다. ....... 이를테면 두려움은 어린아이 때부터 줄곧 나를 지배해온 감정인데 아버지 역시 두려움에 대해 말씀하신다,
[P. 523] 아빠의 고독한 모습은 진정제와도 같았다. 나는 아빠의 난폭한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단 한번 아빠는 나의 외조모인 에밀리아 마르쿠스의 엽서들을 내 앞에서 슬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땐 참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악의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P. 524] 사실상 아버지는 어머니의 유일한 아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니진스키를 추억하는 데 바쳤다,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P. 525] 세상에서 미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 나의 어머니 심정을 상상하겠는가? 여러 달 동안 어머니는 내가 정상이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나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어머니는 나 역시 정신병이 아니F가 하는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
3.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구성
이 책은 니진스키의 <일기>를 그의 처 로몰라의 편집으로 영문판으로 간행된 것을 이덕희가 번역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1부 삶과 2부 죽음, 그리고 니진스키가 지인에게 보낸 8개의 편지가 뒷부분에 편집되어 있고 부록으로 영역 편집자의 말, 딸인 티마라 니진스키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일기> 삶과 죽음은 생모리츠 도르프 과르다문트 산장에서 1919년 2월 27일에 기록한 것으로 되어있다. 실제 작성 기간이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니진스키가 마지막 춤을 보여주고 1919년 1월 19일 로몰라에게 “오늘 나와 신이 결혼한 날”이라고 선언하고 나서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삶과 죽음의 마지막 서명이 2월 27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약 8일에 걸쳐서 작성된 것 같다.
역자는 니진스키의 <일기>를 그가 자신의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에 그 예후를 예감하면서 써내려간 영혼의 절규라고 말했다. 그래서 제목을 ‘영혼의 절규’ 명명했는데 책의 내용에 상당히 적절한 잘 지어진 제목인 듯하다.
니진스키는 <일기>를 쓰고 나서 더 이상 춤을 추지 않고, 정신을 닫아 버린다. 그래서 이 책 <일기>가 주는 특징은 한 인간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기 전 복잡한 그의 정신세계를 가감 없이 솔직히 엄청난 에너지로 써내려간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는 온갖 종류의 환상과 자유연상으로 가득하여 정신의학도들에게 훌륭한 텍스트 역할을 할 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모호한 근거를 수없이 만나고 만난다.
(2) 이 책의 장점
① 우선 역자는 니진스키를 오래 연구하고 니진스키 때문에 발레 관련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책의 앞부분 9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자 해설은 정말 훌륭한 니진스키 연구서라고 할 수 있었다.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으면, 읽는 우리가 함께 미쳐 버릴듯한 대목이 많이 등장하고, 두서도 없고 비논리적이라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다. 책을 읽기 전 니진스키가 정신병으로 세계를 닫아버렸음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봤지만, 그래도 그의 반복되는 정신에너지의 분출을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데 역자는 니진스키를 훌륭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21세에 니진스키를 만났다고 했던가? 법학공부를 했던 21세의 역자가 니진스키에 빠진것을 보면 역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듯하다. 6페이지에서 역자는 “니진스키의 ‘발견’은 내겐 하늘이 준 선물과도 같았다. 그로 인해 나의 정신의 지평선은 무한히 확대되었다” 라고 하고 있었다. 역자는 니진스키의 <일기>를 번역한 번역자로만 그친게 아니었다. 그는 니진스키를 정말 이해하고 있었다. 역자는 미쳐버린 듯 보이는 니진스키의 행위와 생각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역자해설에서 보여준 니진스키의 삶과 사생활, 무용가로서의 그의 인생, 그가 교류한 사람들, 그의 작품, 그의 가족과의 관계 등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 해설한 것은 니진스키를 처음 접한 독자에게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번역가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한 역자 이덕희 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② 또 역자가 역주를 많이 달아놔서 이해가 참 용이했다. 그의 조사방법은 우리에게 인물연구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③ 군데 군데 삽입한 사진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던 말기의 사진을 볼 수 있어서 그의 삶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볼 수 있을 단초를 넣어 두었던 점이 좋았다. 나는 뚱뚱해진 니진스키가 인슐린 요법으로 호전되었을 때 보여준 “뚱보의 도약사진”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사진이었고 그런 사진을 입수해서 넣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로몰라가 넣었는지, 영역판 편집자가 넣었는지 역자가 넣었는지 모르지만)
(3) 내가 역자라면
니진스키 <일기> 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역자의 해설도 훌륭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니진스키의 정신병질과 관련한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라면 그는 30살 무렵부터 정신분열증에 시달렸고 평생을 요양원을 전전했다 한다. 그리고 이 <일기>는 그가 자신의 정신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써내려간 마지막 영혼의 절규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정신의학도들에게 좋은 텍스트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일기>를 분석한 정신분석의의 분석사례를 삽입하는 것은 어땠을까?
2차세계대전때 미국 OSS(CIA전신)는 정신분석의사 랑거 박사(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의 직속 제자) 에게 히틀러의 정신분석을 의뢰한다.
랑거는 실제 히틀러를 만날 수 없었으므로, 히틀러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그가 행동한 사례들을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종합하여 OSS 비밀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한 적이 있다. 이 극비 보고서에서 랑거가 내린 결론은 히틀러는 경계성인격장애자라는 것이었고, 나약한 히틀러와 강인한 총통이 내부에서 끝없이 싸우는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히틀러는 아마 자살할 것이다 라고 결론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실제로 히틀러는 권총 자살을 한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정신분석의 위력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인물을 만난 적도 없고 지인들과의 인터뷰와 기록만으로 정신분석을 정확히 해내고, 자살할 것을 예측해낸 랑거 박사의 통찰력에 크게 감명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일기>를 정신 분석의가 본다면 뭐라고 할지가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이 <일기>의 어디에서 그의 정신분열의 조짐을 찾을 수 있는가?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인간의 정신은 양의 차이 이지 질의 차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정상인의 연구를 통해 정신병질의 해결책을 볼수 있고, 또 정신질환자의 사례에서 정상인의 특징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정상인 누구든지 정신병질의 소양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정신병질로 판명을 받지만, 그 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천재가 가지는 과도한 정신 에너지는 쉽게 그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다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속의 천재들에게서 많이 본다,
한 분야에 몰입할 때 천재성이 드러나지만, 제어하지 못한 정신에너지는 그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일반인도 그럴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런 면에서 니진스키의 <일기>를 정신분석의가 분석한 사례를 삽입하여 정신의 위험을 보여주는 경우를 우리가 알 수 있게 해 두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따로 <일기>를 분석한 책을 써도 될 것 같다.
그런 분석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과연 심각한 정신분열증이었는지, 조금 과도한 신경과민이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만약 니진스키의 장모가 그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위험하긴 했어도 천재성을 무용으로 더 발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정신 분열증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다는 주치의 블로일러 교수는 니진스키가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흥분과 혼란이 부적절 하긴 했지만 그런 그를 가두어두면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상 그리되고 말았다.
그가 만일 춤을 계속 출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일기>를 정신분석한 결과를 보게 되면 우리 내부에 있는 정신병질의 소양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진스키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요 영혼이었는데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전부 사라지게 되었을 때 버텨낼 재간없이 그는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문을 닫아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따라서 내가 역자였다면 광기와 정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준으로 <일기>를 재편집하고 정신분석의의 분석 결과를 중간 중간 삽입하면서 우리에게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체크해 볼 수 있을 텍스트로 만들었을 것 같다. 어쩌면 <일기:해석>이라는 제목으로 편집해도 될듯하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역자는 삶과 죽음을 각각 한 개의 챕터로 편집했는데, 소제목도 없고 단락조차 전혀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니진스키의 원문형태로 번역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읽는데 무척 지루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야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따라서 역자 나름대로 삶과 죽음을 각각 몇 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면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을 듯하다. 소제목없이 정신없이 써내려간 니진스키를 따라 읽으니 나에게 정신분열증세가 생기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