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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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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1일 00시 30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동방견문록> 을 지은 작가로서 1254년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베네치아에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탐험가, 여행가로서의 마르코의 길을 닦아준 것은 아버지인 니콜로와 삼촌 마페오였다. 마르코는 1269 15세 때 동방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이미 그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 쯤이 지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1271 17세의 아들 마르코를 데리고 고향 베니스를 떠나 동방으로 여행길을 올랐다. 마르코는 아주 영특해서 타타르인의 습속. 언어. 문자를 순식간에 습득하였다. 길을 떠나 대칸의 궁정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네 가지 언어와 문자를 알아듣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성품은 아주 조심성이 있고 현명했다. 그런 영특함과 선량함으로 그는 오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후 1271-1295 17년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인 중궁에 머물렀다. 이 경험을 기록한 여행기 <밀리오네 Ⅱ million> 는 흔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Travels of Marco Polo> 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리학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1324 1 8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베니스 시내에 있는 산 로렌조 교회에 있던 부친의 무덤 옆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후일 교회가 개축되면서 그의 무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동서간의 만남의 시초가 되었던 마르코 폴로의 행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며, 도서실에만 가 보아도 어린이 동방견문록을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은 어린이부터 중 고교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한 번쯤 들어본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찌르는 글귀

 

서장

 

마르코는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들 나라에서 보내며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다. 나중에 그는 포로가 되어 제노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같은 포로 신세였던 피사 사람 루스티첼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가 그 내용을 모두 기로데 남겼던 것이다. 그때가 1298년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기로데 남겼다고 해도 남긴 기록은 그 견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즉 그의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에만 한정되어 있다.[12]

 

니콜로가 돌아와 보니 아내는 지난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당시 15세 된 아들 마르코만이 혼자 남겨져 있었다. 마르코가 이 견문록의 구술자 바로 그 사람이다.[18]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는 아주 영특해서 타타르 인의 습속. 언어. 문자를 순식간에 습득 해였다. 대칸의 궁정에 와서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네 가지 언어, 문자를 알아듣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아주 현명한데다가 조심성 있는 젊은이였고, 대칸은 이 선량함과 유능함을 알아듣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22]

 

1장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횡단

 

소아르메니아

 

이 나라 귀족들은 용감하여 무용을 자랑했으니 지금은 나약하고 비열한데다가 술고래로 타락하고 말았다. 바다에 면한 도시 라이아스가 있어 무역의 일대 중심을 이루고 있다.[34]

 

투르코마니아 지방에 대해서

 

도시, 촌락의 그리스 인으로 둘 다 상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융단이나, 심홍색을 비롯한 갖가지 색채의 고급 비단,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산물이 있다. [35]

 

대아르메니아

대르메니아는 광대한 나라이다. 그 나라 들머리에 있는 도시 아르친간은 세계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삼베를 만들어 내며 각종 공예가 발달했다. 이 나라에는 여름에 목축을 하기에 알맞은 목축지가 있으므로, 여름이 되면 이웃해 사는 타타르 인의 군대가 이 나라에 주둔한다. 이 나라 중앙부에는 컵 모양의 ‘고산’ 이 있는데, 산 정상에 방주가 안착했다는 전설이 있어‘ 노아의 방주 산’ 이라 불린다. 이 산은 산 모양이 멋지고 광대하여 주위를 도는 데 이틀이 넘게 걸리며, 두터운 만년설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아직 정상을 정복한 자는 아무도 없다.[35-36]

 

조르지아 인과 국왕, 그들의 사정

 

조르지아 인은 용모가 단정하고 성질이 용맹하며 활 쏘는 기술에 능하다. 그리스 교회의 성식을 따르는 그리스도 교도이며 그 풍습으로서 머리를 목사처럼 깎고 있다. [36]

 

한쪽은 바다가 가까이 있고 다른 쪽은 광대한 산맥. 삼림을 안고 있어 기병으로는 좀처럼 넘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36]

 

조르지아에는 도시가 많고 생사의 산출량이 많다. 백성은 이것을 짜서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비단이나 금실 직물을 제조한다. 이 나라에는 성 레오나르도 수도원이 있다. 이제부터 불가사의한 일은 거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수도원 근처에 산지에서 흘러나온 물로 채워진 호수가 잇다. 이상하게도 이 호수의 고기들은 사순절 첫날이 오기까지는 크든 작든 한 마리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순절이 되면 어디서부터인지 고기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이후 부활절 토요일, 즉 부활절 저녁까지는 고기가 넘칠 듯 많다가 다시 전혀 그 자취를 볼 수 없다고 한다.[38]

 

모술왕국

 

모술은 광대한 왕국으로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잇다. 그들은 마호메트를 신앙하는 아라비아 인이며 나머지는 그리스도교의 교법을 쫓는 다른 민족이다. 다량의 목면을 산출하며, 이것을 원료로 한 리넨이나 그 밖의 직물을 다량으로 생산한다. 주민은 수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며 타타르 영주에 예속되어 있다.[40]

 

대도시 발다크 함락

 

발다크(바그다드) 는 대도시이다. 전에는 온 세계 이슬람 교도의 군주인 칼리프의 도읍이었다. 마치 로마가 모든 그리스도 교도의 군주인 교화의 도읍인 것과 같이, 하나의 큰 강이 시내를 뚫고 흐른다.[40]

 

발다크 성이 점령된 뒤 훌라구는 칼리프가 만든 금고용 탑을 발견했다. 그 속에 모다 둔 금은 보화가 엄청났다. 어느 누구도 여태까지 막대한 재물이 한 군데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본일이 없을 정도였다. 훌라구는 이것을 보고 그야말로 경탄하여 곧 칼리프를 자기 앞에 연행시켜 힐문했다.

“칼리프여, 그대는 무엇 대문에 이토록 거액인 재물을 모았는가. 또 도대체 그것으로 무엇을 할 작정이었는가. 내가 그대를 적대시하여 대군을 이끌고 그대를 물리치기 위해 진격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는가.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대 자신과 그대의 성인 이 도시를 방위하기 위해 왜 이 재물을 휘하장병에게 나누어 주어 사기를 높이려하지 않았는가?” 칼리프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훌라구는 이어 말했다.

“칼리프여, 그대는 재물을 한 없이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럼 이것을 그대에게 주겠다.” 이리하여 훌라구는 칼라프를 연행하여 금고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 칼리프여, 자아 마음 놓고 실컷 그대의 재물과 함께 있도록 하라.

금고 속에 갇힌 칼리프는 나흘째 되는 날 마침내 그 속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그리스도 교도가 용케 산을 움직였다.

 

구두장이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하늘에 높이 들고, 무사히 산이 움직여 함께 있는 모든 그리스도 교도의 목숨이 부지 되도록 정성을 다하여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자 구두장이는 소리 높여 외쳤다.

“아버지 하느님,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나는 지금 그대에게 이렇게 명령하노라. 오오 산이여, 성령의 힘으로 그 자리를 바꿔 그 쪽에서 이쪽으로 옮기라.” 그러자 산은 금세 무너지기 시작하여 마침내.1.6 km 가량 앞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 칼리프는 물론 함께 있던 이슬람 교도들은 경악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자도 많이 있었고, 칼리프 자신도 은근히 그리스도 교도로 변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비에 속해 있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알려진 사실이다.[48]

 

유서 깊은 타우리스

 

타우리스(타즈리즈)는 이라크라 부르는 지방에 있는 가장 크고 웅장한 도시이다. 물론 이라크에는 그 밖에도 많은 도시와 촌락이 있지만 타우리스의 유서에 필적한 만한 도시는 없다.[49]

 

타우리스 주민은 상업, 수공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으며 값진 각종 비단이나 금실로 짠 피륙을 제조한다. 이 도시는 교통상의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인도, 발다크, 모술, 크레메소르를 비롯하여 그 밖의 각지에서 들어오는 물자가 넘쳐난다.[50]

 

성 바르사모 수도원

 

타우리스 지방에 성 바르사모 라 불리는 수도원이 있다. 이 지방에서 존경받던 성자 이름을 딴 수도원이다. 그들은 한순간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늘 양털실로 띠를 짜고 있다. 이들 손으로 짠 띠를 지참하여 신자나 귀족에게 나누어 준다. 이 띠를 매고 있기만 하면 어떤 아픔이라도 몸의 고통이 치유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이것을 믿고 어떻게든 그 띠 하나를 손에 넣으려고 열망하는 것이다.[51]

 

옛날 이 고장의 세 임금이 그 때 마침 태어난 예언자에게 가서 예배하고 찬양하기로 하여, 저마다 황금, 몰약 , 유황, 세가지를 공물로 지참했다. 태어난 예언자가 신인지 지상의 왕자인지, 또는 의시인지를 공물로 시험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 아기가 황금을 잡는다면 지상의 왕자이고, 유황을 쥔다면 신, 몰약이라면 의사라고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52]

 

세 임금은 아기에게 예배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바쳤다. 아기는 세 가지를 다 손에 쥐고, 임금이자 자신의 신하인 그들에게 뚜껑이 달린 작은 상자를 주었다. 이리하여 세 임금은 저마다 자기 나라에 돌아갔던 것이다.[52]

 

신을 찬양하려고 찾아온 세 성자

 

아기는 세 임금의 가슴속에 신앙이 싹튼 것을 용케 꿰똟어 보고, 그 신앙을 영원히 단단히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돌멩이를 그들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세 임금은 돌멩이의 뜻을 몰랐으므로 이것을 옆에 있는 우물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돌멩이가 우물에 던져지자마자 곧게 뻗은 한 줄기 불꽃이 하늘에서 우물로 내려왔다. 세 임금은 곧 이 불을 그 나라에 갖고 돌아가 나라 안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에 안치했다. 그리고 이 불을 끄는 일이 없이 계속 태워 신으로서 이것을 숭배하고, 신에게 바치는 희생이나 공물은 모두 이 불로 태우기로 했다.[54]

 

2장 중국의 서북 변경

 

대도시 사마르칸

 

대칸의 새 국왕은 주춧돌의 석재를 이틀 이내에 이슬라마 교도들에게 돌려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전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성 요한에게, 자신들이 처한 이런 굴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마침내 돌려 줘야 할 때가 왔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성 요한의 영험함이 나타나 교회의 기둥이 세 뼘 정도가 떠올라, 주춧돌과 기둥 사이가 벌어진 것이다. 주춧돌을 가져가기 쉽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둥은 오늘날까지 떠오른 채로 있다. 이 사건이야말로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놀라운 기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91]

 

카물 지방

 

카물은 전에 독립 왕국이었던 지방이었다. 많은 도시, 촌락이 있는데 카물이 수도이다. 이 고장에 풍부한 식료, 음료수를 오가는 나그네에게 팔아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명람한 성품으로 틈만나면 악기를 연주하며 가무를 즐기고 육체적 쾌락에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다. , 자기들만의 문자(위루르 문자) 가 있어 저작이나 독서의 취미도 겸비하고 있다.[98]

 

이코구리스탄 지방

 

이 나라의 우상숭배자들은 자기들의 법률, 습관을 지미며, 아주 학식이 깊고, 또한 늘 문예의 길에 노력하고 있다. 이 나라는 곡물이나 질이 좋은 포도주를 산출한다. 그러나 겨울철 극심한 추위는 아마도 세계 어디보다 심할 것이다.[99]

 

쉬쿼르 지방

 

이들 산에는 먹기만 하면 발목이 떨어져나간다는 독초가 나는데, 이 고장에서 자란 짐승만이 이것을 잘 알고 있어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지방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현재에서 나는 짐승에 짐을 싣고 이 산들을 넘어간다. 주민은 농경을 생업으로 하며 무역에 종사하는 자는 드물다. 아 나라는 가는 곳마다 보양지이다. 토착인은 거무스름한 살갗을 하고 있다.[101]

 

우상 숭배자 사이에서도 수도사들은 일반 교도에 비해 훨씬 청정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색욕을 특히 깊은 죄로는 간주하진 않지만 피하고 있다. 그들의 도리에 따르면, 여자 측에서 사랑을 요구해 왔을 따라면 수도사라도 이런 경우에는 동침해도 전혀 죄가 되지 않지만, 반대로 남자 쪽에서 여자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죄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102]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 어머니가 아니라면 사촌 자매는 물론 남편이 죽은 어느 여인이라도 동들 수 있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 교도가 심각한 죄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전혀 죄악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의 생활은 짐승에 가깝기 때문이다.[102]

 

칭기즈, 타타르 인의 제 1대 칸이 되다.

 

칭기즈 칸은 이들 부족에게 활과 그 밖에 수시로 쓰게 될 무기를 주어 제국 토벌에 나섰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라 순식간에 여덟 나라 정도를 정복하였다. 당시 이들 제국은 민중이 자치적으로 정부를 옹립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나라마다 군주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유사시 단결이 튼튼하지 못하여 타타르의 대군 앞에 모두 격파되었다. 칭기즈 칸은 그러나 이들을 이끌고 제국을 평정해도 그들을 살육하든가 약탈하는 일 없이. 단지 이들을 이끌고 계속되는 정벌에 종군시켰을 뿐이었다. 그에게 정복된 여덟 나라의 수많은 백성들은 그의 훌륭한 통치와 선량한 준주로서의 자세에 탄복하여 기꺼이 그를 좇아 정벌에 종사했다. 칭기즈 칸은 온 세계를 덮을 만한 막대한 부족이 산하에 모였다고 느끼자 세계 정복의 뜻을 갖게 되었다.[105]

 

프레스터 존과 칭기즈 칸의 대결전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격전이었다. 서로 많은 사상자를 냈으나 결국 칭기즈 칸이 승리를 얻고 프레스터 존은 전몰했다. 칭기즈 칸은 승리의 기회를 포착하여 적군을 모조리 정복했으므로, 프레스터 존의 나라는 여기에서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칭기즈 칸은 이 전투 뒤 6년간을 재위하여 많은 성채와 제국을 평정했다. 그러나 6년째 마지막 무렵 카아주라는 성채를 공격하다가 무릎에 화살 상처를 입고, 그것이 악화되어 마침내 죽고 말았다. 지용을 겸비한 큰 인물이었으므로 이 죽음은 그야말로 일대 통탄사였다.[108]

 

대칸의 용모와 품행

대칸의 신장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키이며 자태는 단정하다. 살도 알맞게 찌고 특히 사지의 균형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안색은 흰데다가 불그스름한 빛이 돌아 장미 같고, 눈은 검고 아름다우며 코도 보기 좋고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칸에게는 네 아내가 있으며 모듀 정실로서 대접 받고 있다.[145]

 

대칸의 아들들

 

대칸은 이들 4명의 정황후 사이에서 21명의 아들을 얻었다. 장남은 칭기즈 칸에 연관시켜 칭기즈라 명명되어 차대의 칸, 즉 전 제국의 군주가 될 인물이었고, 사실 이는 아버지 칸의 존명에서 이미 확인되어 있었던 것인데 불행하게도 일찍 죽고 지금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테무르라는 손자가 있으므로 이 테무르가 차대의 칸의 칸이 될 것이다. 테무르는 현명하고 용맹하여 지금까지도 자주 전공을 세워 그 지당함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148]

 

대칸 탄식일의 대축연

 

대칸은 928일에 태어났으므로 그날에는, 나중에 서술하는 신년 잔치 만큼은 안 되지만 이에 버금가는 성대한 향연을 나라 각지에서 열고 경축의 뜻을 표한다. 탄신일에 대칸은 금실 자수를 금박처럼 놓은 눈부신 예복을 입으며 12 천의 중ㅅ긴, 무장도 같은 색, 같은 모양의 예복을 입는다.[168]

 

아 탄신일에는 온 세계의 타타르 인이나, 대칸에게 복종하는 각지 각국에서 저마다의 신분에 따라 막대한 헌상품을 공납한다. 이 밖에도 이를테면 어떤 관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도 거액의 선물을 보내온다. 대칸의 탄신일에는 또 욷상 숭배자. 이슬람 교도. 그리스도 교도 맟 가터 모든 사람들이 성대히 성가를 합창하고 향불을 피우고 등불을 바친다. 그리고 저마다의 우상이나 신에게 대칸을 수호해달라고 엄숙히 기도하고 만세를 빌며 대칸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이와 같은 것이 대칸 탄신일에 거행되는 축전이다.[168]

 

이 책에서 당연히 기록하기에 알맞은 사항이면서 지그까지 말하지 않고 빠뜨리고 있었던 한 가지 경이할 만한 일이 있으므로 여기에 그것을 서술하기로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대칸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끌려 나오는데 대칸을 보자마자 호랑이는 마치 공손한 뜻을 표염하는 듯이 그 자리에 엎드리는 것이다. 호랑이마저 대칸을 군주로 생각한다고 해석되니 않을까. 쇠사슬도 아무것도 매이지 않은 채 호랑이가 대칸의 어전에서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할 만한 광경이 아닐까[171]

 

대칸의 호사함, 오락의 즐거움은 도무지 보고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그 자리에 함께 있어 눈으로 보고 확인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178]

 

대칸이 국민에게 사용하도록 한 지폐

 

캄발륙에는 대칸의 조폐국이 있다. 그 정비된 솜씨를 보기만 해도 그야말로 대칸이 최고의 연금술사라는 사실이 분명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182]

 

흉년 및 가축의 폐사 때 행하는 대칸의 구휼

 

대칸은 영내 곳곳에 속령. 제왕국. 제주현. 사신을 파견하여 국민이 기후불순,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 기타 재앙으로 농작물 피해를 입었는지 살펴보게 한다. 만약 피해를 입음 지역이 있으면 그곳에는 그해에 내야 할 세금을 면제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창고를 열어 식량과, 이듬해 파종에 부족하지 않도록 종자를 제공한다. 이것은 거짓 없는 사실로서 그야말로 대칸이 백성에게 베푸는 커다란 은혜인 것이다.[192]

 

카타이 인의 계율과 관습

 

카타이 사람들은 끊임없이 학문에 주력하고 과학의 탐구를 지행하고 있으므로 학식도 깊고 풍습도 순량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어는 국민보다도 우수하다는 것이 마르코의 견해였다. 그들의 풍습 중에서 마프코가 몹시 혐오를 느끼고 아주 난처했던 것은 겨우 한 가지 뿐이었다. 카타이 인은 능변이며 말투는 솔직하다. 남과 인사를 나누는 데에도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정중하고, 식탁을 같이 해도 신사답고 예의 바르다. 그 밖의 만사에 있어서도 모두 그렇다. 그들은 어버이를 매우 존경한다. 만약 어버이를 화나게 하든가 효를 게을리 하는 이들이 있으면, 불효자의 엄벌을 직무로 하는 관청이 당장 불효의 사실을 실증해서 이것을 제재한다.[200]

 

4장 원난으로의 사절행

 

티베트 지방

5일간 말을 달리면, 과거 몽케 칸의 정벌로 인해 황폐해진 버린 황량한 지방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도 과거에는 많은 도시. 성읍. 촌락이 있었으나 모두 파괴되고 지금을 그 유적만 남아 있다. 인가가 없는 그 땅을 20일 동안 가로질러 간다. 이 사이에는 호랑이. . 살쾡이 그 밖의 야수가 무리지어 살고 있어 여행자에게는 아주 위험한 지역이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 지방에 무성하게 있는 큰 대나무는 둘레가 세 뼘 정도, 길이가 15걸음 정도 되며, 마디와 마디 사이도 넉넉히 세 뼘은 된다. 여행객들은 밤중 숙영지에서 이 큰 대나무를 잘라서 태운다. 대나무를 태우면 아주 커다란 쇠를 내면서 폭발하므로 호랑이. . 그 밖의 야수는 이에 졸라 쏜살같이 도망친다. 여행자들은 이 지방에 많은 야수로부터 가축을 지킬 경우에도 이 방법을 사용한다.[221]

 

카인두 지방

 

이 고장 남자들은 외국인이나 기타 어떠한 종류의 남자가 자기 아내. . 자매를 비롯한 가족 내의 여자들을 간음하도 누구 한 사람 그것을 발칙한 행위라고 힐책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이들 여자들과 함께 자려고 하면 기꺼이 이를 맞아들인다. 이러게 함으로써 여러 심들이나 우상이 그들에게 은총을 내리고 현세에서 여러 가지 복을 내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들은 다음에 이야기하듯이, 그야말로 기꺼이 가족 중의 여자들을 여행자에게 제공한다. 즉 이 고장 주민은 여행자가 숙소를 구하거나 또는 그 밖의 이유로 자신의 집을 찾아오면, 곧 그 집 여자들에게 여행자의 어떤 요구라도 들어 주라고 명하고 자기는 외출한다.[225]

 

사금이 채취되는 강이 몇 개 있고, 호수나 산에서도 대량으로 채취된다.[229]

 

카르단단 지방

 

주민들은 누구나가 금니를 하고 있다. , 황금을 이에 씌우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자기 이에 맞추어 황금 포피를 만들어 이것을 윗니. 아랫니. 모두에 씌운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에게만 한하고 여자는 하지 않는다.[232]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즉시 목욕시키고 배내옷을 입혀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 대신 자리에 들어가 갓난아기를 보살핀다. 남편은 무슨 필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20일간쯤이나, 아니 장소에 따라서는 더 긴 기간쯤 자리에 들어박힌 채 있다. 그러면 친구나 친척들이 모두 문안하러 와서 그와 상대를 한다. 이 동안 쭉 성대한 잔치를 벌여 접대가 계속된다. 이 풍습은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동안 아내가 몹시 고생했으므로 그 보상으로 일정한 기간, 20일간이라든가 그 이상 이 고생에서 벗어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데서 행해지는 것이다.[233]

 

방갈라 지방

 

이 나라에는 고유의 왕이 있고 고유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주민은 대다수가 우상 숭배자 들이다. 이 나라는 인도와 접경하고 있다. 거세된 남자가 많고, 이웃 각국의 귀족. 진신은 모두 이 나라에서 재물을 얻고 있다. 인도 상인이 이 나라에 찾아와 앞에서 말한 거세된 남자나 노예를 각국에 데려가 팔고 있다. 이 나라에 거세된 남자나 노예가 많은 것은, 이 고장 주민에게 잡힌 자는 누구나 곧 거세되기 때문이다.[243]

 

칸지구 지방

 

본인이 희망하는 사물을 얼굴. . . 팔다리에 즉 온몸에 바라는 수만큼 먹으로 윤곽을 그린다. 윤곽이 다 그려지면 본인의 손발을 묶어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남자가 그를 못 움직이게 붙잡는다. 그러는 동안 전문가가 바늘 다섯 개를 묶은 도구로, 그려진 물상의 윤곽대로 온몸을 마구 찌른다. 바늘 다말로 피부를 다 찌르면 곡 흑색 액체 염료가 그 위에 부어진다. 이렇게 하면 윤곽이 그려져 있는 도형은 바늘로 찌른 자국대로 나타난다. 이 수술은 대단히 고통스러워 마치 지옥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들이 구태여 이것을 행하는 것은 그것이 대단히 고상한 표시라고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문신을 많이 하면 할수록 멋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수술 때문에 많은 피를 흘리게 되므로 죽는 자도 적지 아노다고 한다.[244]

 

5장 대운하 연안 공도를 따라 푸젠으로 가는 여정

 

사안푸 시

 

대칸의 대군은 3년 동안이나 이 도시를 계속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으므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마침 이때 니콜로, 마페오, 마르코 세 사람이 말했다.

“ 저 도시를 지금 당장에라도 항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군지휘관들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으나 기꺼이 이 말에 동의 했다.

“페하, 우리의 종자 가운데서 투석기라 하여 어떤 돌이라도 던질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할 수 있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써서 성내로 돌을 쏘아 넣으면 성의 백성들은 도저히 갼딜 수 없어 즉시 항복할 것입니다.

“ 그대들의 건의를 짐은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대칸은 서둘러 그 투석기를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내의 백성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이 재해에 혼비백산하여 무서움에 떨면서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대책을 논의했으나 투석기를 막을 방법을 발견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성을 열고 항복하지 않는 한 온 성내가 몰살을 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268]

 

콘차 왕국

 

이 지방에 관해 특별히 말할 것은 주민이 어떤 더러운 것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일이다. 이를테면 사람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면 개의치 않고 먹는다. 누구든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어는 것이나 뜯어 먹으며 매우 맛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전장에 가는 사나이들, 즉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로서 그야말로 항상 사람을 죽여서는 피를 마신 다음 고기를 다투어가며 먹는 그런 자들이다. [295]

 

푸주시

 

이 지방에는 이 틴구이 시내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갖가지 청자가 만들어 진다. 그 됨됨이릐 훌륭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디 도시는 자기 그릇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이 도시에는 만들어지는 자기는 이 지역 내에 팔려 나간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지에서는 그것이 다량으로 구워지므로 값도 싸다. 베네치아 화폐로 1그로소이면 아름다운 청자를 세 개나 살 수 있다.[302]

 

6장 남해 경우 귀국 항로

 

다그로얀 왕국

 

마술사의 능력에 따라 신의 계시가 예지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마술사가 진단하여 병자가 살아나지 못할 운명에 있다고 말하면, 병자의 가족은 즉시 죽음 선고를 받은 이들 병자의 뒤처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부른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초종 받은 집에 와서 먼저 병자를 눌러놓고 그의 입을 틀어막아 질식시켜 죽여 버린다. 그리하여 병자가 숨을 거두면 가족들은 시체를 요리하여 모든 친척을 부른 다음 이를 죄다 먹어치운다. 정말 글자 그대로 뼈골까지 죄다 먹어치우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육체를 조금이라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신념에서 우러난 것이다.[334]

 

네쿠에란 섬

 

자바의 람브리 왕국을 더나 북쪽으로 약 150마일을 항해하던 쌍둥이 섬에 이른다. 그 중 하나가 네쿠에란 섬이다. 이 섬의 주민들은 아직 왕을 세우지 않고 마치 야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남녀 모두가 벌거벗은 채 돌아다닌다.[336]

 

안가만 섬

 

모두가 우상을 숭배하며 동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섬의 주민은 그야말로 이 책에서 특필되어야 할 종족이라고 생각되므로 그 광경을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섬 사람은 머릴와 이빨과 눈이 정말로 개와 비슷하다. 그 중에서도 머리는 특히 진짜 사나운 개와 같다. 원주민들의 성질은 매우 잔인하여, 사람을 사로잡으면 그 사람이 같은 종족이 아닌 한 모두 잡아 먹는다. 이곳에서는 각종 향료를 다량으로 산출한다. 원주민의 일상 식량은 쌀. 우유. 및 생선이다.[337]

 

세일란 섬

 

세계 최고의 귀중한 물품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 어느 곳을 찾아도 발견 할 수 없는 질이 좋은 귀중한 루비가 오직 이 선에서만 산출되며, 그 밖에 사파이어, 황옥, 자수정, 설류석 등 갖가지 보석류도 마찬가지로 채취된다. 이 섬의 왕이 소유하는 루비는 세계에서 미할 데 없이 훌륭한 것이고, 과거에도 그것을 맞먹는 것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338]

 

대마아바르 지방

 

“ 이 사람은 신상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한다.

되풀이하여 외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닌 끝에 형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사형수는 12자루의 단검 중에서 두 개씩을 뽑아들고 외친다.“ 나는 신상의 명예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친다.

그리고는 허벅지, , 배 등을 빠르게 찌르고 마지막 남은 칼로 목을 찔러 숨을 거둔다. 이렇게 하여 자살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가족들은 화호를 지르며 시신을 화장한다. 이때 그의 아내가 스스로 불 속으로 몸을 던지면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찬을받는다. 그렇게 하지 않은 여인은 평생 멸시 당한다.[345]

 

국왕과 중신을 비롯하여 서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땅바닥에 앉기로 되어 있다. 왜 좀도 다른 방식으로 앉아서 위풍을 갖추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가니, 땅에 이렇게 앉는 것은 다른 어떤 것에 앉는 것보다도 위풍이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아무리 흙을 숭상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하물며 이 흙을 얕보아도 좋을 사람이 있겠는가?[345]

 

식사할 때 오른손만을 사용하고 왼손으로는 음식물에 손대지 않는다. 깨끗한 것, 아르다운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오른손을 쓴다. 왼손은 일방적으로 부득이하여 하는 싫은 행위, 깨끗하지 못한 행위, 이를테면 콧구멍을 닦아낸다든가 뒤를 본 뒤 밑을 닦는 것과 같은 동작을 한다.[346]

 

브라만교의 발상지 라크 지방

 

브라만 교도들은 육식과 음주를 그하고 있으며, 그들의 관습에 다라 결백한 생활을 한다.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관계를 맺지 않으며, 또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생물의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은 죽이지 않으며, 그들은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므로 곧 다른 교도와 그별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지방에서도 똑같이 무명천으로 한쪽 어깨에서 반대쪽 겨드랑이 밑까지 걸쳐 휘감고 있다. , 가슴에도 등에도 비스듬히 무명천을 휘감고 있다.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방에서 보든지 반드시 브라만 교도이다.[359]

 

음부까지 드러내어 부끄럽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옷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내 소유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처럼 발가벗은 채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음부를 드러내고 있어도 별로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음부를 사용하는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조금도 짓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남에게 보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당신들이 손이나 얼굴 그 박의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짓지 않은 몸의 일부를 드러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362]

 

그들은 식사에 관해서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한 금욕 고행을 한다. , 물 이외에는 무엇하나 섭취하지 않는 단식을 1년 동안이나 하는 것이다.[364]

 

 

7장 터키국의 사정

 

대터키국

 

카이두는 대칸에게 자기와 대칸이 정복한 땅 중 자기의 몫, 특히 카타이 지역과 만지 지역의 일부를 계속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하여 대칸은 늘 다음과 같이 회답해왔다.

“나는 나의 아들들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카이두에게도 기꺼이 몫을 주겠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러자면 카이두도 다른 다른 여러 왕과 마찬가지로 내가 부를 때는 언제든지 저정에 와서 회의를 참석해야한다.

대칸은 그의 아들들과 다른 신하들처럼 복종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그러나 카이두는 삼촌인 대칸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이런 대답을 보냈다.

“복종은 하겠으나 대칸의 궁정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궁정에 가면 틀림없이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카이두와 대칸 사이가 나빠졌으며 마침내는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동방의 빛을 찾아서

 

마르코 폴로의 여정은 온 아시아 대륙을 하나의 단이로 삼아 순회를 했다는 것 뿐만이 아니아 더 나아가 그것을 지중해 세계로까지 연장시켰고, 그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 일주 경오를 만들어 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것은 즉, 당시의 동서 두 세계를 교통평면으로 통일했다는 것이 된다. 구면으로서의 지구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의 위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세인의 평면적인 지상 세계는 마르코 폴로의 실지 검증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은 이러한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데, 그 의의를 더욱더 빛내는 것은 그가 바로 이 <견문록> 을 남겼다는 점이다.

 

동방견문록

 

1270년 말 (1271 후반) 베네치아 출발 .... 베네치아 → 아크레→ 예루살렘→ 아크레 회환→ 라이아스 도착 (1271 10) → 라이아스→아크레 회환= 1271년 말 → 라이아스 →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종단 3년 반 → 상도 도착= 1274년 여름 (1275 4) .....원조 체재 17년 → 취안저우 출범= 1290년 말 91291 1) → 취안저우 → 해로 26개월 → 호르므즈 도착 = 1293 2 (1293년 초) .... 호르무즈→ 타브리즈 → 에브헤르 도착 =1293년 여름 (1294 3) ..... 애브헤르 → 타브리즈 회환 → 타브리즈 .... →트레비존스 → 콘스탄티노플 → 베네치아 도착 =1295 (1296)

 

마르코 폴로는 본디 상인이다. 다라서 그의 <동방견문록> 은 타국의 색다른 성격과 풍속을 주로 기록했던 평범한 여행자들의 여행기와는 전혀 다르다. <동방견문록> 은 그보다도 각지의 산물, 물가, 시장 상황, 통화 등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그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산물 중에서도 특히 황금, ,보속, 진주, 향료, 향수, 비단 같은 상품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가 사치품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이었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

 

그는 불행히도 1298 9월 쿠르졸라 해전에서 패배한 제노바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1년간 계속된 감옥 생활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그는 아버지 니콜로에게의 위의 여행 기롣즐을 받아, 같은 방에 수감된 피사의 소설가 루스티첼로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스테첼로는 마르코의 구술을 필사했다. 이 수초본이 바로 <견문록> 의 원본이다. 아마도 이 원본에서 여러 가지 제 2의 원본ㅇ이 나왔을 것이다. 이 사실은 현존하는 각종 다른 원전들의 계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확인할 수 있다.[468]

 

 

 

내가 저자라면

 

동방견문록의 편찬

 

‘동방견문록’ 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글의 원제는 ‘세계의 서술'( Description of the world)이다. 1298 98일 베니스와 제노아 두 도시 국가 사이에 벌어진 아드리아 해상의 쿠르졸라 해전에서 베니스 측 갤리선의 지휘관으로 참가했던 마르코 폴로가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결국 제노아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 거기서 피사 출신의 루스테겔로라는 사람을 만나 자신이 놀라운 견문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 대한 진기하고 놀라운 것들에 대해서 서술했다. 그것이 동방에 국한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유럽에 알리려 했던 것은 단순히 자신의 경험담이 아니라, 당시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견문록은 지리서이자 여러 민족의 생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동방견문록의 내용과 성격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을 기초로 해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기행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읽다보면 어느 지역을 여행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라기보다는, 13세기 후반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에 재한 체계적인 서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어는 지방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방위, 거리, 주민의 언어, 종교, 산물, 동식물 등을 하나씩 기록했다.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려 했던 것은 단순히 자신의 여행담이 아니라, 당시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었던 것이다.

지식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믿거나 말거나 한 사실들이 읽는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바그다드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겨자씨만 한 신앙이라도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 는 구절, 믿음 깊은 외눈박이 구두 수선공을 찾아가 산을 옮기는 기적과 같은 내용은 진짜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직도 호기심으로 남아 있다. 그 밖에도 산상의 노인’ 에 관한 이야기, 쿠빌라이 칸의 장엄하고 화려한 도시와 궁전들, 낯선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아내와 딸을 내주어 동침케 하는 풍습을 지닌 이야기는 당대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에게도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풍습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고전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 되었다.

 

동방견문록의 의문점

 

동방견문록을 읽어가다 보면 사람들의 의아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점들이 많고, 그것 때문에 마르코 폴로나 동방견문록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주장들을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이미 폴로의 동시대인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허구적이라고 의심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회의는 학자들에 의해서도 제기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물론 나 역시도 책에 나온 이야기들이 다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가‘ 제노아의 감옥’에서 루스테켈로에게 구술하여 책을 완성했다는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자료들이나 자체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결정적인 반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이렇게 의구심을 가지고도 반드시 읽어 나가야 할 고전이 아닐까 싶다.

 

마르코 폴로의 영향

 

마르코 폴로의 설명은 중세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고 길을 틔워 주었다. 서양의 지평선이 넓어짐에 따라 마르코의 영향력은 커져만 갔다. 일본에 대한 묘사는 1492년에 저물어가는 해를 향하며 여행을 떠난 콜롬버스에게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 주었다. 또한 향신료 생산 지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서양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역을 찾아나서 향신료 교역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아랍 상인들의 독점 상태를 깨뜨리도록 했다. 마르코 폴로가 기록한 풍성한 새로운 지리적 정보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대양을 항해한 15세기 말과 16세기에 널리 이용되었다. 교통이 전 세계 망으로 발달한 지금에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700년 전 이룬 훌륭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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