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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일 06시 22분 등록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Marco Polo / 김호동 역주)
 원제: <세계의 서술, Divisament dou Monde>

* 저자에 대하여

  마르코 폴로는 1254년에 베니스의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 니콜로는 동생 마페오와 함께 마르코 폴로가 출생하기 직전에 상업을 위해 콘스탄티노플과 솔다이아로 떠나 약 15년간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의 출생을 볼 수 없었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후 고아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마르코 폴로는 정규적 교육을 받거나 라틴어와 같은 충분한 교양을 익히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이 후에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직접 저술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구술’하여 기록한 원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남겨진 <동방견문록>의 내용을 보면 그가 똑똑한 젊은이였으며, 세밀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였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부친과 숙부가 베니스로 귀향하고 2년 후, 마르코 폴로가 17세 무렵인 1271년, 마르코 폴로를 포함한 폴로 일가는 다시 동방으로 길을 나선다. 지중해의 항구도시 라이아스를 출발하여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이란의 사막을 통과한 후,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파미르 산을 넘고 내몽고 지방을 지나 3년 6개월의 여행 끝에 1274년, 쿠빌라이 칸의 여름 수도인 상도에 도착한다.   

  마르코 폴로에 따르면 그는 쿠빌라이의 신하로 17년 동안 중국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색목인을 대거 활용했던 원나라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추청된다. 심지어 그는 원나라 도시, 양주를 3년간 통치했다고 서술하기도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폴로 일행의 희망은 원나라의 왕녀를 속국에 인도하는 역할을 맡으며 가능해졌고, 26개월 만에 천주항과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거쳐 테헤란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흑해를 건너고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베니스로 귀향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1295년의 일이다.

  마르코 폴로는 고향에 돌아온 후 1298년 제노아의 감옥에 갇혔는데, 이곳에서 피사 출신의 르스티켈로를 만나 자신의 놀라운 견문을 구술하고 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였다. 이 기록이 바로 <세계의 서술, Divisament dou Monde>이다. 이것이 바로 후에 서구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중국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행기 行記>, 또는 <유기遊記>라고 불리고, 일본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는 <동방견문록>으로 번역된 바로 이 책이다.

  1299년 여름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르코 폴로의 행적은 남아있지 않으며, 다만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세 딸과 부인 등 그의 가족이나 그다지 넉넉지 못했던 재정상황을 추측해 볼 뿐이다. 죽기 직전인 1324년 1월 8일 유언장 작성을 마친 이 위대한 여행가는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생전의 희망에 따라 베니스 시내에 있는 산 로렌조 교회에 있던 부친의 무덤 옆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지만, 후일 교회가 개축되면서 무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해설

1. 시대적 배경

쿠빌라이의 치세기간은 34년으로서 그것은 몽골제국의 어느 군주보다도 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사에 남긴 거대한 족적은 그의 긴 통치기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원조의 마지막 군주는 그보다 1년이 더 긴 35년이라는 치세를 누렸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망국의 순간을 지켜보아야 했다. 쿠빌라이는 정치가로서의 원대한 안목과 전략가로서의 치밀한 판단력을 겸비했고, 군주로서의 그의 역랑은 초원의 세계를 넘어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가 완성시킨 제국의 틀은 후계자들에 의해 존중되었고, 그의 시대에 시작된 동서문명의 교류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유산을 남겼다.

  폴로 일가의 여행은 1260년 베니스를 출발하여 1295년 귀향함으로써 막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쿠빌라이의 치세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니,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놀라운 기록은 바로 쿠빌라이 치세의 몽골제국과 그 주변세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이 위대한 시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기념물인 것이다. [11]


15세의 마르코가 베니스의 집을 떠나 41세의 나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는 이 몽골제국의 세계에서 거의 벗어날 수 없었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를 가리켜 “우리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백성과 지역과 재화를 소유한 가장 막강한 사람”이라고 부룬 것도 그 특유의 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12]


그는 자신이 직접 보았던 세계, 특히 쿠빌라이 제국의 광대한 영역, 무한한 재화, 거대한 도시들의 실태를 소개할 때 끊임없이 베니스나 유럽의 상황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있다. [13]


지금 우리가 마르코 폴로의 글을 읽을 때 그 속에 황당한 일화나 터무니없는 과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다른 여러 역사 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한 자기 시대의 기록자였는가 하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글의 내용을 ‘진실’과 ‘허구’로 가려내는 것은 우리의 관점일 뿐, 마르코 폴로 자신이 의식적으로 어떤 부분은 일부러 허구적인 내용을 쓰고 다른 부분에서는 시실대로 기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진실’과 ‘허구’로 구분하는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전체를 하나의 ‘실상’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유럽인들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조차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적은 지식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마르코 폴로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들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세계에 머물러 있던 그들에게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대카안의 제국’이 비록 ‘허상의 카멜롯’처럼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러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원천이 되었고, 나아가 그것을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구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콜롬버스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유럽은 근대로의 일보를 내딛게 된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14]

 

2. 마르코 폴로의 생애

마르코 폴로가 원제국 내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과장했을 수는 있겠지만, 소위 색목인들을 대거 활용했던 당시 원제국에서 그가 원지로의 사신이나 양주와 같은 강남의 도시에서 관리로 일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18]


3. <동방견문록>의 내용과 특징

이 책을 여행기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

이 책에는 ‘여행기’나 ‘견문록’류에 보이는 개인의 감상이나 흥취가 극도로 억제되어 있다. 뒤에서 상술하듯이 그가 과연 이 책을 쓴 것이냐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돌아보거나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세계의 서술’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고, 따라서 각 지역마다 그가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하는 개인적인 소회를 피력하지 않은 것이다. [25]


마르코 폴로의 글에는 어느 도시에 대한 설명이든 거의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몇 가지 항목이 있음을 보게 된다. 먼저 방위와 거리인데,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까지 어느 방향으로 ‘며칠 거리’에 있는가를 밝힌다. 그는 해가 있는 동안 말을 탄 채 달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 (30킬로미터 정도)를 ‘하루 거리’로 잡고, 방위는 동, 서, 남, 북과 동북, 동남, 서남, 서북의 8방위 체계를 사용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동쪽과 동북쪽 사이’ 등의 표현으로 좀더 구체적인 방향을 명시했다. 두 번째로 그는 주민들의 특징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는데, 종교적으로 기독교, 이슬람(사라센), 불교(우상숭배자)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그들의 주식과 생업은 무엇인지, 또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정치적으로 누구에게 예속되어 있는가 하는 사항들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그 지방의 특기할 만한 물산이나 동식물을 적었다. [27-28]


그의 글은 ‘견문록’이나 ‘여행기’처럼 필자와 독자 사이의 긴밀한 정서적 교류는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부분들은 무미건조하리만큼 기계적이어서 때로는 마치 ‘편람’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물론 그의 책이 이러한 내용으로만 일관된 것은 아니며, 만약 그러했다면 그의 글이 오늘날까지 불후의 ‘고전’으로 꼽힐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구에서 성경 다음으로 베스트셀러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그것은 수백 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고갈되지 않는 상상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28]


그의 길이 지니고 있는 힘은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본 것이든 아니면 들은 것이든 간에, 당시 유럽인들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은 모두 “아무 거짓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것”이며 그가 “목도하거나 진실이라고 들은 갖가지 경이를 글로 쓰게 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것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죄악이 될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던 마르코 폴로의 확신에서 나오고 있다. [29]


그가 전해주는 이 일화들 가운데 지금 우리의 눈으로도 진실성에 의심가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점은 14세기 마르코 폴로가 살던 시대의 인식의 수준이다. 다른 문명에 대해 거의 완전한 무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경외, 종교적인 권위와 기적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 등이 그들의 관념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던가. ...

그것이 마르코 폴로가 지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진실이라고 들은’ 그대로를 옮겼을 뿐이며 또 자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허구’와 ‘상상’의 일화들을 통해 그 자신 및 동시대인들의 관념세계의 일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0]


4. 마르코 폴로의 관점

마르코 폴로의 관심은 너무나 다방면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글에 반영된 그의 입장은 상인이나 선교사 혹은 외교사절의 그 어느 것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그의 기록은 실로 당시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지역에 대한 ‘지리지’이고 ‘박물지’이며 동시에 ‘민족지’라고 할 수 있다. [32]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풍습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 안에서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의 이모저모를 저울질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가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35]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 대한 그의 이러한 유연한 태도는 어려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지 때문에 서구 중세의 협애한 기독교 지상주의의 세례를 덜 받은 탓도 있겠지만,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효하고 공존하는 세계에 오랫동안 살면서 특히 그러한 문화적 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몽골제국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7]


5. <동방견문록>의 의문점들

그러나 사물을 일단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법이다. [42]


7. 본 역서의 지침

본 역서의 주석들에 대해서 역자는 나 자신의 독창적인 연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이미 질량면에서 상당한 주석들이 축적되어 있어 그것을 넘는 자신의 창견을 제시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포티에-샤리농, 유울-코르디에, 펠리오 등의 주석은 평생을 바쳐 연찬한 결과이고 고유명사 하나에 대해서도 장편의 논문들이 있는 상황에서 역자가 감히 무엇을 더 보태었다 해도 구우일모에 불과할 것이다. [52]


서편

우리는 이 책이 아무런 거짓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것이 될 수 있도록 본 것은 보았다고, 또 들은 것은 들었다고 밝힐 것이다. [73]


자기가 보거나 진실되게 들은 갖가지 놀라운 것들을 글로 쓰게 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것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게 내버려둔다면, 너무나 커다란 죄악이 될 것이라고. [74]


마르코가 매우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대카안은 그를 6개월 이상이나 걸리는 곳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 청년은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하고 현명하게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카안이 세계의 여러 곳으로 보낸 사신들이 돌아와서 파견된 일에 관해서만 말할 뿐 그들이 찾아갔던 지방들에 관한 다른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바보 같고 어리석다고 하면서 사실 그가 듣고 싶은 것은 파견된 일 그 자체보다는 낯선 나라의 풍습과 관행과 신기한 것들이라고 말했던 것을 여러 번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던 마르코는 사신의 임무를 띠고 가게 되었을 때, 대카안에게 다시 설명할 수 있도록 모든 신기한 것과 이상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89]


1편 서아시아

그는 이처럼 많은 보물을 보고 크게 놀라 사람을 보내 칼리프를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는 “칼리프여! 그대는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보물을 끌어 모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는가? 그대는 내가 그대의 적이고 이처럼 많은 군대와 함께 그대를 넘어뜨리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가? 그대가 그것을 알진대 어찌해서 기병과 용병들에게 보물을 나누어 주어 그대와 그대의 도시를 지키도록 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칼리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울라우는 그에게 “칼리프여! 이제 그대가 그토록 보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대에게 그것을 먹이겠노라”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칼리프를 보물이 있는 탑으로 데리고 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일체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

그 뒤 그는 탑 속에 버려져 나흘째 되던 날 마지막에 거기서 죽었다. 그가 모든 것을 잃고 백성들과 함께 죽는 것보다는 갖고 있던 보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그의 땅과 백성을 지켰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113-114]


복음서에서 만약 하나의 겨자씨만큼의 신앙을 가진 기독교도가 있다면 그는 주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두 개의 산을 합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구절을 발견하자, 이것이야말로 기독교도를 사라센으로 개종시키거나 아니면 모조리 처형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정말로 많은 수의 네스토리우스파와 야콥파 기독교도들을 모두 불러오게 했다. ...

그러나 그들이 상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 하나님께 이 문제에 관해 동정과 자비로써 인도해주기를, 그리고 만약 칼리프가 요구한 것을 하지 못했을 경우 그가 내릴지도 모를 잔혹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마호메트가 그들에게 준 율법은 그들의 율법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악을 가하거나 혹은 어떠한 것을 빼앗더라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만약 국가가 없었다면 그들은 더 많은 나쁜 짓을 행했을 것이다. [117-121]


남자나 여자가 죽으면 성대한 장례를 치르는데, 부인들은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죽은 뒤 4년 동안 적어도 매일 한 번은 운다. 그들은 친척과 이웃이 모두 모여 죽은 사람을 위해 크게 울고 통곡하며 슬펴한다. <죽은 사람이 자구 생기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죽은 남자나 여자를 위해 어떤 날이든 정해주기만 하면 일정한 대가를 받고 와서 능숙하게 곡을 해주는 여자들도 있다.> [138]


[그러면 ‘노인’은 “만약 너희가 내 말을 듣는다면 그 같은 은총을 베풀어주겠노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노인’의 적이었던 많은 군주들과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부하와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것은 모두 지금 말한 ‘노인’의 명령과 뜻을 수행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현세를 경멸하며 주군의 적과 함께 죽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 지방에서는 모두 그를 폭군으로 여기며 두려워했다.] [145] 


2편 중앙아시아

왕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 발라시가 귀하고 대단히 값진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캐내어 세계 각지로 가져가도록 내버려둔다면, 너무나 많은 양이 빠져나가 그것은 그렇게 귀하지도 값지지도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왕은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그렇게 가혹한 형벌을 정한 것이다. [155-156]


그들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고 정의로써 다스리는 왕이 있다.

그들의 관습에 따라 은신처에 머무는 은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탐하지 않고 잘 절제하기 때문에 매우 정결하며, 신앙에 어긋나는 어떠한 죄악도 범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매우 성스럽게 여겨지고 또 굉장히 장수한다. [159]


그들은 사라센이 소유하던 매우 아름다운 돌을 가져와 교회 중앙에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의 주춧돌로 놓았다. ...

사라센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황금도 보물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돌을 되돌려 받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

그 돌을 돌려주기로 한 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 돌 위에 있던 기둥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돌로부터 적어도 세 뼘이나 올라가 마치 그 아래에 돌이 놓여 있는 것처럼 그대로 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 기둥은 그렇게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상태로 있다. [164-165]


그들은 마치 동물처럼 살기 때문에, 우리가 심각한 죄라고 여기는 것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82]


1187년 타타르들은 그들의 언어로 칭기스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매우 용맹하고 현명했으며 또한 대담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건대 이 사람이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 낯선 지방에 흩어져 살던 온 세상의 타타르들이 모두 그에게로 와서 그를 군주로 떠받들었다. 이 칭기스칸은 훌륭하고 공정하게 통치했으니, 이에 대해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더 이야기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타타르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는지 정말 놀랄 정도였다. [185]


대카안들의 시신이 그 산으로 운구되는 동안, 심지어 그것이 40일 거리 정도나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도중에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시신을 옮기는 사람들의 칼에 베인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서 저승에서 너의 주군을 섬겨라!”고 말한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죽이는 사람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서 주군을 섬긴다고 믿고 있다. [192]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아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그런 일을 매우 사악하고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아내들은 선량하고 남편에게 충직하며 가사일을 아주 잘 돌본다. [193]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이야기해 주겠다. 그들은 만약 필요하기만 하면 아무런 음식도 없이, 단지 말젖을 마시거나 포획하는 사냥감의 고기만을 먹으면서 한 달씩 행진하기도 하고 한 곳에 머물기도 한다. 말은 방목되는 초원이 어떤 곳이든 거기서 풀을 뜯어먹기 때문에 보리나 건초를 따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말들은 주인에게 매우 고분고분하다.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만약 필요하다면 그들은 무기를 들고 밤새도록 말 위에 타고 있으며, 말은 그러는 동안에도 줄곧 풀을 뜯어먹는다. 그들은 일이나 어려움을 감내하는 데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또 가장 검소한 사람들이며, 여러 지역과 왕국들을 정복하기에 가장 탁월한 사람들이다. [195]


3편 대카안의 수도

내가 위에서 말한 이 궁전 역시 모두 대나무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카안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그것을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하게 했다. ...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대카안은 1년에 석 달, 즉 6월과 7월과 8월은 그곳에 머무는데, 그 까닭은 그곳이 덥지도 않고 오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석 달 동안 대카안은 대나무 궁전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 외의 기간에는 조각으로 분해해서 보관한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조립했다가 분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213]


몽골인들은 귀족을 처형할 때 사람을 카펫 안에 말아서 죽임으로써 피가 흘러나와 밖으로 보이거나 땅을 적시는 일이 없도록 했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맹우였던 자무카를 처형할 때 ‘피가 안 나오게’ 죽였고 [225]


그는 부활절이나 성탄절과 같이 기독교도가 중요하게 여기는 절기가 되면 언제나 이러한 행사를 치렀다. 그는 사라센이나 유대인이나 우상숭배자들의 주요 절기에도 마찬가지로 행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모든 사람이 숭배하고 존경하는 네 명의 예언자가 있다. 기독교도들은 자기네 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고, 사라센은 마호메트라 하며, 유대인은 모세라고 하고, 우상숭배자들은 여러 우상들 가운데 최초의 신인 사가모니 부르칸이라고 한다. 나는 이 넷을 모두 존경하고 숭배하며, 특히 하늘에서 가장 위대하고 더 진실한 그분에게 나는 도움을 부탁하며 기도를 올린다.”라고 대답했다. [227]   


카타이 사람들은 대카안의 통치를 증오했는데, 그것은 그가 타타르들, 아니 대부분 사라센들을 통치자로 임명해서 보냈고, 카타이인들은 마치 노예처럼 취급당해서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카안의 카타이 지방에 대한 지배권은 마땅한 권리에 의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무력에 의해서 장악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믿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집안에 충실하고 카타이지방 출신이 아니었던 타타르, 사라센, 기독교도들에게 그 지방에 대한 통치권을 맡긴 것이다. [246]


그는 사라센들의 저주받을 종교가 모든 죄악을 합법적으로 만들고 자기들 율법에 다르지 않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저 저주받을 아크마트와 그의 아들들이 자기들은 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종교를 경멸하고 혐오하게 되었다. [248]


몽골인들은 특히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문지방 밟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풍습을 갖고 있었는데 [252]


대군주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 어떠한 왕이나 신하나 사람도 토끼나 황갈색 사슴이나 노루나 사슴과 같이 3월에서 10월 사이에 새끼를 낳는 동물들은 결코 사냥할 수 없다는 점이다. [267]


누군가 이 지폐들을 너무 오랫동안 보관해서 찢어지거나 더러워지면 그것을 조폐소로 갖고 가서 새롭고 깨끗한 것으로 교환하는데, 100분의 3을 그곳에 남겨준다. [272]


만약 누군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일들을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궁금해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우상숭배자들과 사라센들은 비용을 부담할 수만 있다면 각자 여섯, 여덟, 열 명의 부인들을 둘 수 있고 무수한 아들들을 낳는다. ... 그러나 우리는 한 명의 아내를 갖고, 만약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남자는 아들을 갖지 않은 채 그녀와 함께 인생을 마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처럼 사람이 많지 않다.

또한 양식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은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대부분 쌀, 피, 기장 등을 먹는데, 특히 타타르, 카타이인, 그리고 만지의 여러 지방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들 지역에서 이 세 종류의 곡식은 한 말의 종자로 100배의 수확을 올린다. 이들 주민은 빵을 먹지 않고, 단지 이 세 가지 곡식을 우유나 고기와 함께 끓여 먹는다. ... 또한 가축들의 수도 늘어나 끝이 없을 정도로 번식하여 ... 이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 어찌해서 그 지방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277-278]


대군주는 백성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가 통치하는 여러 지역과 지방으로 전령들을 보내어, 기후의 이변이나 메뚜기떼 혹은 다른 역병으로 백성이 곡식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알려고 한다. 만약 어떤 백성이라도 피해를 입거 곡식을 갖지 못하게 되면 그는 그들이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걷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곡식을 그들에게 내주어서 그것을 먹고 파종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실로 군주의 커다란 은택이다. 그는 여름에 이같이 행하고, 겨울에는 가축에 대해서 그런 은택을 베푼다. 즉 어떤 사람의 가축이 죽었을 경우 군주는 자기 가축을 그에게 주어 돕고, 그해에는 그에게서 세금을 받지 않는다.

대카안은 어떻게 하면 자기 밑에 있는 백성을 도울까, 혹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재산을 늘리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온 생각과 걱정이 쏠려 있다. [281-282]


모든 장인들은 약정에 다라 일주일에 하루는 그를 위해 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대카안을 그런 것들을 재료로 옷을 만들도록 하고, 그것을 앞서 말한 가난한 가구들에게 겨울과 여름에 각기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286]


타타르들은 우상들의 율법을 배우기 전에는 초기 관습에 따라 자선을 베풀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가면 오히려 그를 내몰며, “신이 네게 준 악운을 갖고 꺼져라! 만약 신이 나를 사랑하듯이 너를 사랑했다면, 네게도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주지 않았겠느냐”라며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들 가운데 현자들, 특히 앞에서 말한 박시들이 대카안에게 빈자를 돕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며 그들의 우상신들이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그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빈자들에게 보시를 베풀게 된 것이다. [287]


현재의 대카안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보다 더 만연해 있는 도박과 사기를 모두 금지시켜버렸다. [290]


4편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

남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법이 없다. 그들은 만약 여자가 많은 남자들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 있지 않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311]


그들은 가금류나 양, 소, 들소의 고기를 날로 먹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동물의 몸에서 꺼낸 생간을 고깃간으로 가져가 잘게 썰어서는 마늘로 만든 장에 찍어 즉석에서 먹는다. 그들은 다른 날고기들도 같은 방식으로 먹는데, 교양있는 사람도 날고기를 그대로 먹는다. 그들은 그것을 잘게 썰어서 좋은 향료를 섞어서 마늘로 된 장에 찍어서 마치 우리가 요리한 음식을 먹듯이 맛있게 잘 먹는다. [320]


어쩌다가 누군가 용모가 잘생기고 점잖으며 또 모습이 수려한 사람이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그곳 어느 집엔가 유숙하게 되면 밤중에 독이나 다른 방법으로 그를 죽인다. 그러나 돈을 빼앗기 위해서 그를 죽이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지닌 훌륭한 외모와 좋은 품격, 그의 지식과 영혼을 자기 집에 남겨 두기 위해서이다. [323]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를 씻겨 천으로 둘러싸고, 여자의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갓난애를 돌본다. 그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이런 식으로 40일 동안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는데, ... 그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의 부인이 자궁으로 아이를 낳는 동안 너무나 애를 썼기 때문에, 그 40일 동안만이라도 더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아이를 낳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325]


5편 중국의 동남부

누군가 자기 딸을 출가시키려 하거나 혹ㅇㄴ 다른 사람으로부터 혼인 요청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그 딸을 장래의 남편에게 처녀의 몸으로 넘겨주어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 아버지와 남편은 의무와 서약으로 동의하며, 만약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혼인은 무효가 된다. [347]


그는 매년 2만 명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을 돌보도록 했는데, 이제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겠다. 그 지방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다버리는데,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가난한 여자들이 그런 짓을 한다. 왕은 그들을 모두 데려다가 각자 어떤 성좌 어떤 별의 위치에서 태어났는가를 적도록 한다. 그 뒤 거느리고 있는 아이들을 돌볼 많은 보모들에게 여러 곳 여러 지방에서 그들을 양육시키도록 한다. [356]


만약 누군가 가난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행운을 얻어 자기 직업을 수행하지 않고도 품위있게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면, 그가 원하지도 않는데 무엇 때문에 그에게 그 직업을 계속하라고 강요하는가? 신이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것에 역행한다는 것은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것이다. [380]


이러한 종류의 믿음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신경쓰지도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들에 대해서도 그 같은 공경이 바쳐질 것이며, 그와 똑같이 저승에서도 공경받으리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더 감정적인 만지 지방의 사람들은 분노나 슬픔을 당하면 더러는 자살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누군가 자신을 한 대 때리거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어떤 피해를 주어 상처를 입혔을 경우-가해자가 권력이 세고 지위가 높기 때문에 도저히 복수할 힘이 없을 때-상처입은 피해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는 밤중에 가해자 집의 문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음으로써 상대방에게 더 큰 비난과 멸시가 돌아가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목격한 이웃사람들이 가해자를 향하여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시체를 화장할 때에는 관습에 따라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도록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음악과 하인들과 다른 것들로써 그에게 예우를 갖춰주라고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목을 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 즉 돈 많고 권력이 강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온전히 경의를 표시함으로써 저승에서도 마찬가지의 공경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관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390]


6편 인도양

그는 자기 동생의 부인인 어떤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는 그녀를 빼앗아 자가기 취해버렸다. 지혜로운 그의 동생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런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왕은 자기 동생에게 여러 번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들의 어머니는 왕에게 자기 젖가슴을 보여주며 “만일 네가 분쟁을 일으킨다면 나는 너희를 먹였던 이 젖가슴을 도려내고 말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싸움은 가라앉았다. [445]


사람이 죽어 그의 시체를 태우고 나면 그의 아내는 그 불에 스스로 몸을 던져 남편과 함께 화장된다. 이렇게 하는 여인들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송받는다. 사실 내가 말한 이런 것을 실제로 많은 부인이 행한다. [448]


또한 아들을 둔 사람은 누구나 그가 13세가 되면 즉시 음식을 빼앗고 집에서 멀리 내쫓아버린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제 그가 자기 손으로 장사 같은 것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스스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53]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벌거벗고 다니고 국부를 드러내놓고도 창피한 줄 모르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또 이 세상에 나올 때 아무런 옷을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벌거벗고 다니는 것이다. 우리가 국부를 보이면서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것으로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적인 쾌락이나 죄악을 범하지 않는 당신의 손이나 얼굴이나 신체의 다른 부위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신체 일부분이 죄악을 범하고 성적 쾌락에 빠지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옷을 입어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마치 손가락을 보이듯이 그것도 보이는 것이다.” [468]


죽는 것과 늙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왕의 아들은 왕궁으로 돌아가서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 또 그를 창조한 사람을 찾아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왕궁을 떠나, 아주 깊고 외딴 산중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일생을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았고 극도로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정말로 그가 기독교도였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위대한 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473]


해적들은 상인이 탄 선박을 탈취하면 배와 함께 모든 물건을 빼앗아버린다. 그들은 사람을 해치지는 않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가서 또 다른 물건으로 장사해라! 그러다 보면 또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지.” [483]


여러분은 이제까지 그 주교가 사라센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어떻게 복수했는가에 대해서 들었다. 정말로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수많은 영토가 파괴되고 황폐화되었다. 그것이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사라센놈들은 기독교도보다 결코 더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503]


7편 대초원  

이 처녀는 어찌나 용감한지 그 나라 안에서 그녀를 거꾸러뜨릴 만한 젊은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그들을 모두 거꾸러뜨렸다. 왕인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시집보내기 위해 남편을 찾아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그러기를 원치 않으면서, 자신을 힘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남편으로 맞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부왕은 딸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특권을 인정해 주었다. [520]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내를 맞이할 때 귀족 출신의 여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냥함과 미모를 갖춘 여인을 구하는 것이다. [520]


몽골인들은 왕족이 죽으면 초원에 묻은 뒤 남들이 그것을 찾아 훼손하지 못하도록 그 위로 말들을 달리게 하여 다른 땅과 구별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매장한 사람들조차 그 지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매장할 때에는 미리 어미낙타와 새끼낙타를 같이 데리고 가서 매장지에서 새끼 낙타를 죽이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미낙타는 그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지점을 다시 찾아 조상들에게 제사지낼 수 있다고 한다. [543]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역자가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막상 이 책을 읽은 사람 또한 의외로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연구원 과정이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 읽어보지 못했을 책이 아니었을까. 이런 점이 바로 연구원 과정의 크나큰 매력이다.

  이 책은 보통의 역사서가 아니다. 또한 단순한 기행문이나 감상문도 아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려지는 세밀한 묘사와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700년 세월을 뛰어넘는 그 시대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감흥에는 사진과 삽화를 통해 원본의 감동을 전달해주고자 애쓴 역자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50쪽이 넘는 해설 또한 1.시대적 배경, 2.마르코 폴로의 생애, 3.<동방견문록>의 내용과 특징, 4.마르코 폴로의 관점, 5.<동방견문록>의 의문점들, 6.사본과 역주, 7.본 역서의 지침, 8.주요 역주서와 연구문헌 등 여덟 개의 내용으로 나뉘어져 아주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자인 김호동 교수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충분히 살려서 제목은 유명하지만 그 내용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책과 그 시대를 우리 앞에 가져다주고 있다. 특히 시대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서 중국과 일본에 치우친 우리의 좁은 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지식을 일깨워준다. 물론 이 부분에서 아쉬운 점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를 위해서 지리적 지명에 요즘의 지명을 주석으로 좀더 자세히 달아주었으면 하는 생각과 주석에 한문이 많아서 수월하게 읽기 어려웠던 점, 그 시대의 지도에 요즘의 지명을 함께 병기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르코 폴로의 여행경로를 담은 전체 지도는 책의 맨 앞 표지에 한 장 있었지만 7편으로 나누어진 목차에 따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대카안의 수도,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 중국의 동남부, 인도양, 대초원 등 각각의 지도가 좀더 자세하게 실렸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역자도 밝히듯이 이 책에는 현대의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상당히 있으며, 또한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부분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이야기의 진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13세기 한 서양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들을 편견과 왜곡 없이 경탄하고 신기해한, 그리고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고향사람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 이 글을 서술해나간 마르코 폴로의 그 마음을 헤아리며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 또한 이 책을 글의 진위를 따지기 보다는 진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읽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다. 책을 읽으며 그 안의 내용 자체에 감탄하기도 했고 마르코 폴로가 이것들을 보고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물론 사라센(이슬람교도)과 우상숭배자(불교도)들을 이야기하는 구석구석에서 13세기 기독교인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이해되기도 했다.

  연구원 해외연수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나와 다름을 바라보는 시각과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이었다. 새롭고 다른 것에 대해 열린 마음과 경탄하며 즐기는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먼 곳으로 떠남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마음이 여행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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