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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 07시 58분 등록

[북리뷰32] 서양철학사 다시 읽기

 

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 저자에 대하여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틀런드 러셀 자서전 중에서

 

서양철학사를 통해 만난 버틀런드 러셀(1872-1970)에 대한 느낌은 철학의 영역을 스스로 신학과 과학 사이의 무인지대에서 적절한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 모습이었다.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면서 시종일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의 호흡이 얼마나 깊은 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선대의 철학자들을 평가할 때 그가 선택하는 단어들은 거침이 없다. 인간으로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연민과는 별개로 철학자로서 그를 연옥행이 마땅하다는 판결이나 선민의식과 민족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대교에 대한 비판 등은 윤리 책에서는 접해볼 수 없는 통쾌함이 묻어났고 어려운 철학사이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해주었다.

 

그는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할아버지를 둔 영국의 보수적인 귀족 출신이다. 어느 시대를 살던 주류의 흐름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따르는 사람들의 현실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종교가 이성과 더불어 발전해간다고 믿었던 매우 보수적인 시절에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하고, 버젓이 강의를 하고 다녔다. 여성의 성해방운동과 평화주의자로 전쟁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다.

 

진실과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의 운명은 닮은 데가 있나 보다. 부인과 함께 찍은 표지사진이 실린 ‘행복의 정복’에서 그의 모습은 주변의 탄압과 시련마저도 껴안고 춤출 수 있을 것 같은 내공 깊은 영유와 웃음이 엿보인다.

철학, 과학, 사회학, 교육, 정치, 예술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구애 없이 평생 40여권의 저작을 남긴 그의 왕성한 열정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멋지다. 닮고 싶다.

 

그의 자서전 맨 앞장에 묘비명처럼 새겨진 글귀가 있다.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노라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2. 가슴에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회, 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 러셀은 각 시대의 철학을 종교, 수학, 과학 같은 다른 분야의 발전이나 사회, 정치 상황과 연결하여 서술한다. 따라서 러셀의 철학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비판서이자 흥미진진한 철학 이야기이다. p5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p5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불식간에 사용된 전제들을 세밀히 조사하고 기초 원리를 끈질기게 검토해 보는 것이다. 옳다는 근거가 없다면 어떤 전제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말하는 분석적 방법의 핵심이다. 러셀은 바로 이 분석적 방법을 끝까지 고수하며 진리 탐구의 여정을 이어갔다. p6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거나 해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입장에서 철학사를 서술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철학은 철학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p7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러셀은 이러한 경향이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라 단언하고, 건전한 철학이라면 이에 대한 해독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p8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러셀은 철학사 전체를 꿰뚫으면서 각 철학적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판함으로써 독창적인 철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p8

 

지은이 서문

여러 저자가 공동 작업을 할 때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있다. 역사의 변환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p9

 

대부분의 철학사에서 철학자는 저마다 진공 속에 있는 듯이 등장한다. ... 이와 반대로 나는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p10

 

서론

 

철학적인 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

하나는 조상에게서 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 ...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p17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8

 

사회 결속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류는 합리적 논증만으로는 결코 결속을 강화하지 못했다. 공동체를 이룬 사회라면 대립하는 두 가지 위험요소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한쪽에는 너무 강력한 규율과 전통에 대한 지나친 존경 때문에 경직될 우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인주의 성향과 개인의 독립심 때문에 협동과 협력의 토대를 상실하고 결국 분열되거나 외부 세력에게 정복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체로 문명은 고정된 엄격한 미신 체계와 더불어 시작되어 그 체계를 점차 완화해가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뛰어난 천재들의 시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에는 과거 전통의 선한 면은 남아서, 전통 해체에 내재한 악한 면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면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 무정부 상태에 이르고, 곧이어 새로운 전제 정권이 나타나 새로운 이론 체계에 의해 보장된 새로운 종합을 이루어낸다. 자유주의의 학설은 지금까지 말한 끝없이 반복되어온 동요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오직 장래에 일어날 일이 결정할 터이다. p28-29

 

제1권 고대 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그리스의 정치 체제는 ... ‘참주정치’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p41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오히려 숙명이나 필연, 혹은 운명과 같은 더욱 어둡고 실체가 없는 존재와 관련이 깊은데, 제우스조차 이에 복종해야 한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p44

 

우리는 대부분 디오니소스를 다소 불명예스러운 주신이자 만취의 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주신 숭배로부터 후대 여러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오한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가 발생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하게 되는 도정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p47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prudence,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forethought이다. 문명인은 장래의 쾌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이러한 인내습관은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p48

 

문명사회는 자기 관리에 의한 견제 수단인 사려나 예상뿐만 아니라 법, 관습, 종교를 통해 충동을 억제한다. 이로써 문명사회는 야만 상태에서 물려받은 충동을 억제하고 본능이 점점 덜 드러나게 하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 사유재산 제도는 여성을 예속시키며, 노예 계급을 만들어 낸다. 한편으로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p49

 

디오시소스 숭배자는 사려에 맞선 반동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정을 회복한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자마자, 상상력은 일상적인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되면서 자유로워진다. 바쿠스 종교의식은 ‘종교적 열정enthusiasm'을 불러일으키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신이 그를 숭배하는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신의 숭배자는 자신이 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 p49

 

이러한 종교적 성향은 특히 플라톤에게도 적용되는데, 플라톤을 거치면서 이후 바쿠스를 숭배하는 종교 발전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p50

 

티탄들은 땅에서 태어났으나, 신의 육신을 먹고 나서 신성의 기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땅에 속하기도 하고 신에 속하기도 한 존재이다. 바쿠스 전례는 인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신성에 가까워지게 했다. p51

 

오르페우스교의 특징은 피타고라스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유입되었고, 플라톤을 통해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를 띤 이후 대부분의 철학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쿠스를 숭배하는 종교 의식의 특징적인 몇 가지 요소는... 그중 하나가 여성주의 색채인데, 여성주의는 피타고라스의 사상 속에 더욱 짙게 나타나며,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는 여성들이 정치적 측면에서 남성과 완벽하게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피타고라스는 “성sex의 측면에서 여자들은 본래 경건함과 더욱 가깝게 타고 났다.”고 말한다. 바쿠스교의 특징에 해당하는 다른 요소는 격정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교의 의식에서 생겨났다. 에우리피데스는 특별히 오르페우스교의 중요한 두 신, 즉 디오니소스와 에로스를 공경하며 두 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p54

 

바쿠스 무녀들이 추는 춤은 격렬한 감정을 발산하기 위한 몸짓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 생활의 부담과 보호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아름다운 것들이 넘실대는 세계로, 바람과 별의 자유로움 속으로 탈출하려는 춤이었다. p56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p57

 

오르페우스 교도들은 올림포스 전례를 거행하는 사제들과 달리 우리가 ‘교회’라 불러도 좋은, 즉 누구든 인종과 성의 차별 없이 입회할 수 있는 종교 공동체를 설립했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철학 사상 체계가 생활방식으로 떠올랐다. p60

 

제2장 밀레토스 학파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인물로 ... 만물이 제일 실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탈레스가 주장한 물이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로서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여러 세계 가운데 한 세계일뿐이라 생각했다. p64

 

제3장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에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설립해서, 한동안 도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 그가 창시한 종교의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가르침과 콩을 먹는 것은 죄라는 가르침이었다. 그의 종교는 교단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곳곳에서 국가를 통제할 정도의 세력을 획득하고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규칙을 만들어 지켰다. p71

 

우선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생물로 탈바꿈한다. 더 나아가 존재하는 무엇이든 일정 주기로 순환하는 변화 속에서 다시 태어나므로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순환 주기의 변화 속에서 생명을 타고난 존재들은 모두 혈연관계로 맺어진다. 피타고라스도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동물과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p72

 

그러므로 모든 정화 활동 가운데 최고 단계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공평한 학문이 제공하며, 그런 학문에 헌신하는 자는 가장 효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탄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시키는 철학자이다. p73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며, 신학자들 역시 신과 영혼의 불멸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피타고라스 사상 속에 암시되어 있다. 영원한 세계가 어떻게 분명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앞으로 이어질 장에서 드러날 터이다. p78

 

제4장 헤라클레이토스

고대 그리스인에게 접근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하나는 르네상스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취하던 보편적인 태도로서, 그리스인들이 최초로 가장 우수한 사상과 예술을 전부 창조했고, 현대인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할 초인적인 천재성을 지녔다면서 그들을 미신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추앙한다. 다른 하나는 과학의 승리와 낙관적인 진보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태도로서, 고대인의 권위를 악몽으로 여기면서 이제 고대인이 이룬 공적들을 대부분 잊는 것이 최선이라 주장한다. p79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독특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불을 근본 실체로 생각했다. 만물은 불 속의 불꽃처럼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탄생한다고 한다. “죽어야 할 자는 불멸자이고, 불멸자는 죽어야 할 자이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살고 다른 존재를 살림으로써 죽으리라.” 세계에는 통일성이 있으나, 대립물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통일이다. p82

 

만물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다는 학설보다 훨씬 더 중시한 학설이 하나 더 있었는데, 대립물의 혼합 학설이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 대립물이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통일되지만, 통일은 바로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p86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88

 

제5장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은 「자연론」이라는 시에서 설명되었다. 그는 감각이란 우리를 속이고, 많은 감각 가능한 존재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 the One'로서 무한하며 분할할 수 없다. 일자가 헤라클레이토스에서처럼 대립물의 통일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일자 안에는 어떤 대립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93

 

파르메니데스는 말이란 불변하는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파르메니데스가 펼치는 논증의 기반이며 이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어떤 말에 대해 공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승인된 의미가 실려 있기는 해도, 같은 말을 쓰는 두 사람이 마음속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다. p95

 

제8장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은 무한히 나뉠 수 있으며,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네 원소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 그는 선대 철학자들과 달리 정신이 생물의 일부로 들어가 죽은 물질과 구별시켜주는 실체라 생각했다. 모든 것에는 정신을 제외한 모든 원소의 일부가 들어 있으며 어떤 것에는 정신도 들어 있다고 말한다. 정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으로서 무한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있으며, 어떤 것과도 혼합되지 않는다. 정신에 대해서는 예외지만, 만물은 아무리 작더라도 뜨거우면서 차가운 것, 하야면서 검은 것처럼 대립하는 모든 것의 일부를 포함한다. 그는 눈은 하얗지만 눈의 일부는 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p112

 

제9장 원자론자들

데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철학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철학자들은 모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심없이 노력했다. 그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을 실제보다 더 쉽게 생각했지만,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었던들 그들은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당대의 편견을 그저 답습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나 진정으로 과학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과학적인 태도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넘치고 원기왕성했으며 지적 모험에서 얻음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물고기, 회오리바람, 종교, 도덕 등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으며, 날카로운 지성과 아울러 아이들 같은 호기심도 지녔다. p125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윤리를 강조하고, 플라톤은 스스로 창조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 세계를 거부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기본 개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 체계는 후대에 큰 해악을 끼친 결점을 드러냈다. 그들의 시대 이후 철학의 활력은 사라지고, 점차 미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가톨릭 정통신앙이 승리를 거두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이 출현했으나, 철학은 르네상스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p125

 

제10장 프라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 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는 학설로 주목받는다. 이것은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p130

 

소피스트들들 가운데서는... 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지식은 종교나 덕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 그들은 오늘날의 변호사처럼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논증하는 방법을 보여줄 채비는 갖추었으나, 자신들이 이끌어낸 결론을 실제로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시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안겨주었을 터이다. 그들에게 소피스트들은 경박하고 부도덕한 자들로 보였다. p131

 

제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11장 소크라테스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 뿐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p143

 

제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플라톤은 ... 자신의 철학에 스며든 오르페우스교의 요소를 피타고라스에게서 이끌어냈는데, 종교적 경향,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 내세관, 사제와 같은 어조, 동굴의 비유에 포함된 모든 가르침뿐만 아니라 수학을 중시하는 성향이나 지성과 신비주의가 밀접하게 혼합된 특징이 피타고라스에게서 유래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실재는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논리적 근거에 입각해 모든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이끌어냈다. 또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감각적인 세계에 영원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인 학설을 이끌어냈다. p167

 

우리는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가는 유효한 최선의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계급에 속한 구성원이나 한 나라의 국민은 공통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흔히 다른 계급이나 다른 나라의 이익과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인류 전체를 위한 몇 가지 이해관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치적 행동을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마 인류를 위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미래 어느 날엔가 실현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한 확실히 실현될 수 없다. 또 그날이 오더라도 일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상호 적대적인 특수한 이해관계들 간에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p169

 

제14장 플라톤의 이상향

그 까닭은 남자와 여자의 본성이 같기 때문이다. ...

정기적인 연회에서 신부와 신랑은, 인구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만큼 추첨으로 맺어지며 그렇게 믿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은 국가의 통치자들이 우생학적 원리에 준하여 추첨을 조작하기 마련이다. 통치자들은 혈통이 가장 우수한 아비가 가장 많은 자식을 낳도록 조정할 수 있다. p174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이점은 사적인 소유 감정이 아주 약해지게 함으로써, 사유 재산제 폐지의 묵인이나 공공 정신에 따른 지배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데 있다. 성직자 계급을 독신 생활로 이끈 동기도 대체로 이와 유사했다. p175

 

제15장 이상 이론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현세의 왕이나 군주가 철학 정신과 능력을 갖추어 탁월한 정치력과 지혜가 하나가 될 때까지, 서로 배제하려는 세속적인 철학자나 왕들이 억지로라도 물러나지 않고서는, 도시국가들은 이런 악에 젖어 결코 편안해지지 않고 내 생각에는 인류도 편안치 않을 텐데,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 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 국가는 살아나 햇빛을 볼 수 있다네. p184

 

플라톤의 이상 이론을 요약한다. 우리의 문제는 이것이다.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통속적인 호기심만으로 철학자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고친다.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리 통찰이란 무엇인가? ...

철학자는 사실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앞 사람은 의견opinion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knowledge을 얻는다. p185

 

지식과 의견은 어떻게 다른가? 지식을 얻는 사람은 무엇,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무엇에 대해 지식을 얻게 마련이다. 지식이 틀릴 수 없는 까닭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은 오류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길 수 없다.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지식이 될 테니까 더는 의견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의견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p186

 

그러나 절대, 영원, 불변의 존재를 보는 사람은 의견만 갖게 되지 않고 인식한다. ...

감각에 나타난 세계에 대해서는 의견을 갖게 될 뿐이지만, 초감각적인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지식을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컨대 의견은 아름다운 개별 사물과 관계하지만, 지식은 아름다움 자체와 관계한다. p186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순간의 체험은 너무 확실해서 나중에 의혹이 생기더라도 그 순간의 확실한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예술, 과학, 문학,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창작물들이 대부분 이런 순간의 체험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p189

 

“석유 냄새가 사방에 가득하다” p189

 

여기서 차츰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넘어가는데, 이에 따르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채, 뒤쪽에서 모닥불이 비쳐 앞에 가로놓인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에 비유된다. 죄수들과 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보는 사물은 전부 뒤에 놓인 물체들이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다.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림자들을 실재인양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 물체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마침내 몇 사람이 드디어 동굴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나가게 된다. 동굴에서 벗어난 사람은 난생 처음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는 이제까지 그림자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이 수호자에 적합한 부류의 철학자라면, 이전에 함께 지낸 동료 죄수들을 만나러 동굴로 되돌아가서 진실을 깨우치고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알려주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죄수들을 설득할 때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데, 햇빛으로 나오면서 죄수들보다 그림자를 능숙하게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전보다 더욱 바보처럼 보이는 탓이다. p191

 

이러한 과학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행동 규칙에 따른 실례를 보여준다. 불합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가설이라도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능력을 발견자에게 부여한다면 과학에서 사용해도 좋다. 그러나 운이 좋아 가설이 이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도 그 이상의 진보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이 발전해나가는 특정 단계에서는 선 자체를 믿는 태도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로서 유용했지만, 이후에는 매 단계에서 해로운 영향을 주었을 따름이다. 윤리와 심미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이 드러낸 편견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은 더욱더 그리스 과학의 기세를 꺾는 데 큰 몫을 했다. p199

 

제16장 플라톤의 영혼불멸설

소크라테스, 이제 그대를 키운 우리 아테네 법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생명과 자식들을 먼저 생각한 다음에 정의를 생각하지 말고, 우선 정의를 생각해야 저승의 제왕 앞에서 떳떳할 수 있겠지. 만약 그대가 크라톤의 계획에 따른다면, 그대도, 그대에게 속한 어느 누구도 이승의 삶을 더 행복하게 더 성스럽게 더 정의롭게 살지 못할 것이고, 저승에서도 행복하지 못할 텐데. 죄를 짓지 말고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닌 순교자로서 떠나게나. 그러나 만약 그대가 악을 악으로 갚고 해를 해로 갚고 우리와 맺은 계약과 합의를 깨서, 무엇보다 그대가 잘못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곧 그대 자신, 그대의 벗들, 그대의 조국과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우리는 그대가 살아가는 동안 화를 낼 테고 우리 형제인 저승의 법률이 그대를 적으로 삼게 되겠지. 저승의 법률은 그대가 우리 아테네 법률을 기어코 어겼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

소크라테스는 이 목소리에 대해 “신비주의자의 귓전에 울리는 피리 소리처럼 내 귓전을 울리는 듯하네”라고 말한다. 그는 목소리의 충고에 따라 아테네에 남아 사형 선고를 받기로 결심한다. p201-202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 말하자면 실재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철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렇게 쌍을 이루는 개념들은 제각기 먼저 놓인 개념이 다음 놓인 개념보다 실재하는 정도와 선한 정도에서 우월하다. 이러한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이 자연스럽게 파생한다. 그리스도교는 금욕주의 도덕을 일부만 받아들이고 전체를 다 수용하지는 않았다. p202

 

철학자는 가능한 한 육체에서 멀어지고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다. ...

이러한 학설이 대중에게 퍼지면서 금욕주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음이 분명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의도는 금욕이 아니었다. 철학자는 감각에 따른 쾌락을 애써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나는 끼니를 잊었다가 결국은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철학자들을 많이 보았다. p203

 

밀턴의 실낙원에 등장한 악마는 육체의 고통을 초월해서 온전히 정신에 속한 쾌락을 얻기 위해 파괴 행동을 일삼는다. 유명한 여러 성직자는 감각에 속한 쾌락은 포기하지만 다른 쾌락을 경계하지 않아서 권력욕에 사로잡혔고, 결국 종교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와 종교 박해를 저질렀다. 오늘날에는 히틀러가 바로 그러한 유형에 속하는 인물인데, 누구 말을 들어봐도 그는 감각에 속한 쾌락을 아주 하찮게 여겼다. 육체의 폭정에서 해방되면 위대한 무엇을 성취하는 데 기여하게 되지만, 덕이 커지는 바로 그만큼 죄가 커지기도 한다. p204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소리나 시각, 고통이나 쾌락으로 방해받지 않고 육체에서 떠나 참 존재를 열망할 때 사유는 최고 상태에 이르게 된다. ..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오로지 지성의 통찰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에 갇혀 영혼이 육체의 악행에 물든 동안에는 진니로 향하는 갈망은 만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p205

 

플라톤이 권장하는 방법에 따라 수행 가능한 두 가지 정신 활동은 수학 활동과 신비적 통찰이다. p205

 

우리가 무엇이든 참된 지식을 얻으려면 육체를 떠나야 하고, 그래야만 영혼이 자신 안에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네. 그러면 우리가 바라고 사랑하는 지혜에 이르게 되겠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나 지혜에 이른다는 말일세. 그러니까 육체와 얽혀 있는 동안에는 영혼이 순수한 지식을 얻지 못하다 해도, 적어도 죽은 다음에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 요컨대 육체의 아둔함을 제거하면 우리는 순수해지고 순수한 존재와도 맞닿게 되기에 어디에서나 저절로 진리의 빛과 다름없는 밝은 빛을 알아보게 된다네. ... 정화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현상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 이렇게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풀려나는 현상을 바로 죽음이라 한다네. ...... 참 철학자들, 그들만이 늘 영혼을 육체에서 풀어놓으려 하지. 만물을 다 바꿀 수 있는 진짜 화폐는 바로 지혜라네. p206

 

영혼이 육체를 지각의 도구로 사용할 때, 말하자면 시각이나 청각을 비롯한 감각 기관을 사용할 때, 육체를 통한 지각은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의미하기 때문에 ...... 그때 영혼은 육체에 이끌려 변화를 겪는 세계로 들어가 방황하며 혼란에 빠지고 만다네. 세계가 영혼 주위를 빙빙 돌기 때문에 영혼이 변화를 겪을 때면 술주정뱅이 꼴이 되는 셈이지. ...... 하지만 영혼이 자신에게로 돌아가 반성하게 되면, 그때 영혼은 내세로, 영혼과 유사한 순수, 영원, 불멸, 불변의 세계로 넘어가서 홀로 있을 때면 줄곧 그것들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영혼은 아무 훼방도 받지 않는다네. 그러면 영혼이 더는 길을 잃지 않게 되어 불변하는 존재와 소통함으로써 불변하는 존재가 되는 법이라네. 영혼이 이렇게 불변하는 상태를 지혜라고 부른다네. p210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주겠나? p211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인간으로서 성인들의 성찬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 p212

 

제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이제 우리는 지식과 지각을 동일하게 보는 견해에 맞선, 플라톤의 마지막 논증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가 눈이나 귀로 지각하지 않고 눈과 귀를 통해서 지각한다고 지적하며, 이어서 우리가 획득한 어떤 지식은 감각 기관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주장한다. ... 정신은 그 자신을 도구로 삼아서 어떤 일을 관조하고, 육체가 갖춘 능력을 통해서는 다른 일을 관조한다. ... 정신만이 존재를 파악하게 되며,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지도 못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감각만으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은 감각만으로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지식은 인상이 아니라 반성 속에 존재하며, 지각이 지식은 아닌 까닭은 ‘지각이 존재를 파악할 때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따라서 진리를 파악할 때도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225

 

제19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를 추종한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본질’이라는 용어이다. ‘본질’은 결코 ‘보편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당신의 본질은 ‘당신이 바로 당신의 본성에 따라 존재하게 하는 무엇’이다. 본질은 당신의 속성들 가운데 당신 자신이 아니게 되지 않고서는 잃어버릴 수 없는 속성들이며, 개별 사물뿐만 아니라 종도 본질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p239

 

신은 영원한 순수 사유로서 행복, 즉 완전한 자기충족의 상태에 있어 실현되지 않은 목적이 하나도 없는 존재이다. 이와 반대로 감각 세계는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생명, 불완전한 욕망, 불완전한 사유에서 비롯된 염원을 드러낸다. 모든 생물은 정도가 크든 작든 신을 의식하기에, 신에 대한 염원과 사랑으로 활동하며 신을 향해 움직인다. p246

 

제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행복은 유덕한 행동에 달려 있고, 완벽한 행복은 최선의 활동인 관조에 달려 있다. 관조가 전쟁이나 정치나 다른 어떤 실천 경력보다 더 나은 까닭은 삶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며, 여유는 행복의 본질적 요소이다. 실천적인 덕은 이차적인 행복을 제공할 뿐이다. 이성을 발휘해야 최고 행복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이성이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통 관조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관조하는 한 신성한 삶에 참여한다.

은총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신의 활동은 관조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 존재 가운데 철학자의 활동은 신과 가장 흡사하므로 최고 행복이며 최선의 활동이다. p258

 

전체적으로 보자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초기 철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정서적 빈곤을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살이를 관찰하고 사색한 면면은 지나치게 잘난 체하며 안일하게 대처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서로 열정과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조리 잊어버린 듯하다. 우정에 대한 설명조차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제정신을 잃게 되는 경험이 전혀 없는 기색이다. 그래서 도덕적인 삶의 훨씬 깊은 측면은 하나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종교에 관해 인간이 체험하는 전체 영역을 저버리고 무시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의 주장은 열정이 없이 안락하게 사는 사람에게나 유익한 견해이다. p262

 

제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263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플라톤의 이상향 이론을 비판했다. 첫째로 가장 흥미로운 논평은 플라톤의 이론이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통일성을 부여한 나머지 국가를 개체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p267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산주의를 불쾌하게 여긴다. 그는 공산주의가 게으른 사람들을 향한 분노로 이어지고, 길동무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다툼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재산은 개인의 소유여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이 재산을 널리 사회 일반에 걸쳐 사용하도록 자비의 덕을 갖추게끔 훈련해야 한다. 자비와 관대함은 덕이며, 사유재산이 없다면 실현할 수 없다. p268

 

제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한 해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하다는 견해를 확립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성서와도 맞서 싸워야만 했다. p291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 로마 병사는 로마가 그리스 세계 전체에 초래한, 독창적인 사상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p302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네.

타고난 악당은 아니었지만,

불운이 겹쳐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이는 비범한 소수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원전 3세기를 지배한 도덕관을 요약해 보여주는 말이다. ... “형이상학은 뒤로 물러나고, 윤리학이 당시에는 개인 윤리가 최고 중요한 분야로 등장한다. ” p316

 

제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자, “햇빛만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p320

 

회의주의는 서기 3세기 무렵까지는 교양을 갖춘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끌었지만, 점점 더 독단적인 종교와 구원의 교리로 기울어지던 시대의 추세와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회의주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국가 종교에 불만을 느끼게 할 만한 힘을 지녔으나, 순수하게 지적인 영역에서도 국가 종교를 대신할 만한 적극적인 요소는 하나도 제공하지 못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회의주의를 지지한 대변자들은 과학을 열렬히 믿음으로써 신학적 회의주의를 보완했으나, 고대 세계에서는 이러한 보완이 없었다. p330

 

제27장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일부 회의주의 철학을 예외로 두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는 쾌락을 선이라 생각하고, 이 견해에서 나올 만한 모든 결론을 놀라우리만치 일관성 있게 고수했다. 그는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초이자 목적이다” p335

 

에피쿠로스 학파가 실제로 자연에 대한 지식의 확장에 공헌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후대에 이교도들이 마법, 점성술, 점술에 점차 빠져드는 경향에 맞서 저항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기여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학파의 학도들은 창시자와 마찬가지로 독단과 한계를 드러냈고, 개인의 행복과 관계없는 일에 진정으로 관심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p340

 

제28장 스토아 철학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 “항상 우주 안의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그대 안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영원무궁한 존재에서 시작되어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며 그대가 존재하기 위한 생명의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국가에서 차지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한 공동체라는 스토아 학파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p363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제일 원리들에서 도출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만인을 위해 같은 법이 존재하는 정치 체제, 동등한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통치하는 정치 체제, 무엇보다 피지배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체제”에 호의를 보인다. 이것은 로마제국에서 시종일관 실현하기는 어려운 이상에 가까웠으나, 법률 제정에 영향을 주어 여자들과 노예들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스도교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많은 점들과 함께 물려받았다. p368

 

제29장 로마제국의 문화

로마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 ..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이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 넷째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 p369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에 미친 영향. 첫째는 그리스의 예술, 문학, 철학이 대부분의 교육받은 로마인들에게 미친 영향이고, 둘째는 그리스가 아닌 나라에서 믿는 종교와 미신이 서방 세계 전체에 퍼져나간 현상이다. p377

 

도시국가들을 정복한 마케도니아인드로가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애호했기 때문에, 크세르크세스나 카르타고라면 파괴했을 테지만, 정복한 도시들을 파괴하지 않았다. ... 스토아 학파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형제애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감하는 대상은 그리스인들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p382

 

우리가 그들(아랍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동로마 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그리스 전통의 일부분이나마 직접 계승한 자들은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 바로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접촉을 통해 11세기 지식의 부흥이 시작되어 스콜라 철학에 이르렀다. ... 만약 아랍인들이 그리스 전통을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르네상스인들은 고전 지식의 부활로 얻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p384

 

제30장 플로티노스

신성을 소유하고 신성의 감동을 받은 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 안에 더욱 위대한 어떤 것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을 움직이는 권능을 지각한다. 이처럼 순수한 정신을 간직하는 때에 우리는 최고 신을 향해 서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존재와 존재의 질서에 속한 그 밖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신의 마음을 내부에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실, 신의 마음이 이런 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고 존재로서 알고 있는 어느 것보다도 고귀한 원리라는 사실도 인식한다. 더욱 충만하고 더욱 위대하고, 이성과 마음과 감정보다 위에 존재하며, 이러한 능력들을 부여하지만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원리이다. p392

 

그러나 이런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모든 것을 끊어버려라. p393

 

제2권 가톨릭 철학

서론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회 권력이다. 교회는 철학적인 믿음체계와 사회, 정치 상황이 400년경부터 1400년경까지 이르는 중세 시대의 이전과 이후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을 맺도록 주도했다. 교회는 일부는 철학과 관련이 있고 일부는 성스러운 역사와 관련이 있는 신경信經에 근거하여 형성된 사회제도이다. 교회는 바로 그 신경을 매개로 권력을 쟁취하고 부를 축적했다. p405

 

카톨릭 철학은 서유럽에서 지적 활동이 거의 자취를 감춘 암흑기를 분기점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280~337가 개종한 때부터 보이티우스가 죽은 시점까지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의 사상은 현실로든 최근의 기억으로든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p406

 

교회가 '신국‘을 대표하고, 철학자는 정치 측면에서 교회의 이익을 대변한다. 철학의 관심사는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인정하는 계시의 정당성을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교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맞서 논쟁하기 위해 이성을 불러냈다. p407

 

13세기 가톨릭 철학의 종합은 완벽한 최후의 형태로 자리 잡은 듯 보였으나, 다방면의 원인이 영향을 미쳐 파괴되기 시작했다. 아마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부유한 상인 계급의 성장일 텐데, ... 그러나 신흥 상인 계급은 성직자 계급만큼 지적능력이 뛰어났고, 세속적인 문제에 특히 박식할 뿐만 아니라 귀족 계급에 대처하는 능력도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도시 하층 계급이 시민 자유의 투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p407

 

이리하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그때까지도 정연하고 완전한 체계로 이어지지 못한 중세의 종합은 붕괴되고 말았다. ... 중세시대 전체에 걸쳐, 사려 깊은 사람들은 현세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겪으며 불행에 빠져드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더 나은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견디어 나갈 따름이었다. p408

 

11세기에 일어난 교회의 도덕 개혁은 스콜라 철학을 직접 이끈 서곡이며, 교회가 봉건제도에 점차 흡수되어가는 현상에 맞선 반동이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을 이해하려면 힐데브란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고, 힐데브란트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악과 맞서 싸웠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신성 로마 제국이 유럽 사상에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p410

 

제1부 교부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후기 로마가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그리스도교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요소는 철학에서 유래한 몇 가지 믿음으로 주로 플라톤과 신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에게서 비롯되지만 일부는 스토아 학파에서도 유래했다. 둘째 요소는 유대인들에게서 유래한 도덕 개념과 역사 개념이다. 셋째 요소는 대체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특징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이론, 특히 구원 이론으로, 일부는 오르페우스교와 근동 지역의 유사한 이교 종파에서 유래한다. p412

 

구약성서 이외의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를 말해주는 출처는 없으며, 더욱이 순수한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 시작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p414

 

우선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각별히 보살피는 부족 신이었을 뿐이고,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신을 숭배하는 관습도 인정했다. p414

 

마카베오 4서의 번역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대교Judaism가 안티오코스 치하에서 소멸했더라면, 그리스도교가 자라난 모판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는 지적은 정확한 평가이다. 이렇게 마카베오 가문 출신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유대교를 지켰으며, 궁극적으로 교회 성장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일신교의 기원을 유대교에서 찾으므로, 마카베오 가문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동방과 서방 양쪽에 일신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p422

 

가장 흥미로운 저술은 ‘에녹서’로서, 마카베오 가문 시대 직전, 기원전 64년 무렵에 여러 저자가 쓴 합작품이다. 에녹서는 대부분 족장 에녹의 묵시적 환영을 고백 형태로 기록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로 변하는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 초기 교부들은 에녹서를 정경正經으로 취급했으나,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에녹서는 세상에서 잊히고 19세기 초 에티오피아어 필사본 세 편이 아비시니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행방이 묘연했다. p423

 

창세기 6장 2절과 4절을 확장한 부분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프로메테우스의 전설과 유사하다. 인간에게 야금술을 가르쳐준 천사들이 영원한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인육을 먹기도 했다... p424

 

그리스도교는 복음서를 통해 바리새파를 나쁘게 생각하도록 배웠지만, 12족장의 유언서의 저자는 바리새파로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바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 윤리 격률들을 가르쳤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첫째,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사정에 비추어 보아도 틀림없이 예외적인 바리새파에 속했다. 둘째, 우리는 어떤 운동이든 보수화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셋째, 우리는 특히 바리새파 신도들이 율법을 절대적인 최후의 진리로 믿고 헌신하게 되자마자 사고와 감정의 신선한 활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p427

 

제2장 초기 그리스도교

그노시파는 선민사상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노시스파, 아니 그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감각계를 창조한 존재가 소피아(천상의 지혜의 여신)의 반항아이자 얄다바오트Ialdabaoth로 불리는 열등한 신이라 주장했다. 그노시스파는 얄다바오트가 바로 구약성서의 야훼이며, 뱀은 사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브에게 야훼의 속임수에 맞서라고 경고했다고 말한다. 최고신은 오랫동안 얄다바오트가 자유롭게 본분을 다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최고신이 아들을 보내 인간 예수의 몸에 잠시 머무르도록 하여 모세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켰다. p431

 

제3장 교회의 세 박사

청년기 아우구스티누스는 덕의 귀감과는 동떨어진 정열이 넘치는 남자였으나 진리와 의로움을 추구하려는 내적 충동도 간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처럼 나이가 든 후에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너무 엄격한 인생을 살았으며 철학도 인간다움과 점점 멀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 사상에 맞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그의 견해 가운데 17세기 얀센이 반복해서 주장한 몇몇 견해는 이단으로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개신교도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단 사상을 채택하기 전까지, 가톨릭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통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p456

 

죄가 영혼과 신이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본질적 요소가 되는 까닭은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일 수 있는지, 죄를 지은 영혼이 어떻게 창조된 세계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지 죄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의존한 신학은 당연히 죄의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p458

 

제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 민족의 역사 모형을 그리스도교에 맞게 변경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맞게 변경했다. 마르크스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용어사전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야훼=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마르크스, 선민=프롤레타리아, 교회=공산당,

그리스도재림=혁명, 지옥=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공산사회 p480

 

제6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p495

 

제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원인은 동방교회가 교황의 지배권에 저항한 사건이다. 비잔틴인들이 롬바르드족과 싸워 패배한 이후, 교황들은 억센 야만족에게 정복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교황들은 샤를마뉴의 영도 아래 이탈리아와 독일을 정복한 프랑크 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다. 이 동맹의 결과 신성 로마 제국이 출현하고, 신성 로마 제국은 교황과 황제가 조화롭게 공존을 추구할 정치제도를 갖추었다. p513

 

애초부터 교황과 황제 사이에 이상한 상호 의존관계가 형성되었다. ... 그들의 상호 의존관계로 인해 양측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수세기 동안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황제와 교황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으며, 때로는 황제 편에서 이익을 얻고 때로는 교황 편에서 이익을 취했다. 13세기에 이르자 양측의 갈등은 화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았다. p517

 

그러나 황제와 교황은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고 말았다. 중세의 권력 이론에서 주장한 그리스도교계의 통일은 세속 영역에서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의 각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고, 종교 영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써 무너졌다. p518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경우 이 시기는 당 왕조 시대로, 중국 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 인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이슬람교 문명이 번성했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 세계는 문명을 잃어버리기는커녕 그와 정반대였다. 아무도 서유럽이 후대의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유럽 문명이 곧 문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협소한 견해이다. p525

 

이제는 우리 서유럽이 제국주의의 기미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쟁이 종식된 후 세계가 안정을 찾게 되면, 우리의 서유럽 사상이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의 측면에서도 아시아를 동등한 문화권으로 인정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변화는 의미심장하고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 확신한다. p526

 

제8장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 죄란 인간이 신에게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때문에 발생했다. 악의 근거가 신 안에 있지 않은 까닭은 신 안에 악의 이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은 비존재이고 근거가 없는데, 그 까닭은 만약 악에 근거가 있다면 악도 필연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신의 말씀은 다자를 일자로 돌아가게 하고 인간을 신에게 돌아가게 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신의 말씀은 곧 세계의 구세주이다. 신과 합일함으로써 합일에 영향을 미친 인간의 일부가 신성해진다. p533

 

제9장 11세기 교회 개혁

11세기에 이룩한 개선과 진보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다채로웠다.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 다음 교황 체제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p536

 

성직자 계급 전체의 권력 형성은 성직자 개개인의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모든 개혁 성직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p538

 

12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보이티우스가 번역한 범주론과 명제론이 전부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단순한 변론가로 생각되었던 반면, 플라톤은 종교철학자이자 이상 이론의 창시자로 여겨졌다. 중세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편협한 생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에 대한 편견은 차츰 바로잡혔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변하지 않았다. p550

 

제10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이슬람교의 기원, 헤지라는 622년에 일어났으며, 무하마드는 10년 후에 죽었다. 그가 죽은 직후 아랍인은 정복을 시작하여, 엄청난 속도로 정복 사업을 이어갔다. ... 신자들의 의무는 이슬람교의 확장을 위해 가능한 한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일이었으나, 그리스도교도를 비롯하여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 즉 쿠란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부른 ‘성서의 백성’을 박해하지 않았다. p552

 

이슬람교 철학자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람이 둘 있는데, 한 사람은 페르시아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페인 사람이다. 아비세나의 철학은 선대 이슬람교 철학자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더 가까워졌고 신플라톤 학파와는 더 멀어졌다. 그는 후에 그리스도교 스콜라 철학자들처럼 보편자 문제에 몰두했다. 플라톤은 보편자가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p557) 아베로에스는 신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던 아랍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을 바로잡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마치 교주를 대하듯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했는데, 심지어 아비세나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아베로에스는 신의 존재를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559

 

제11장 12세기

12세기의 네 가지 양상

1.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2.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3. 십자군

4. 스콜라 철학의 성장

 

지금까지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최종 결과는 하인리히 3세에게 굴복했던 교황이 황제와 필적하는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교황은 교회 내에서 완전한 주권자가 되어, 교황 특사들을 파견해 지배력을 과시했다. 이와 같이 교황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교들의 지위는 점점 낮아졌다. 교황 선출은 이제 세속 군주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졌고,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회 개혁 이전보다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다. p565

 

하인리히 3세 시대까지 밀라노 시민들은 보통 밀라노의 대주교를 추종하는 데 만족했다. 그러나 앞 장에서 언급한 파타리노 운동이 상황을 바꿔놓았다. 대주교는 귀족 계급의 편을 들었지만, 대주교와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강력한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시초가 되는 몇 가지 요소가 생겨났고, 도시의 통치자를 시민들이 선출하는 정치 체제도 발생했다. p568

 

교황이 당연히 십자군 창설의 선두에 선 까닭은 그 목적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종교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전쟁 선동의 또 다른 효과는 수많은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 또 다른 결과는 콘스탄티노플과 문학적 교류를 자극했다는 점이다. 12세기와 13세기 초반, 이와 같은 교류의 성과로서 그리스어 문학 작품을 라틴어로 옮긴 번역서들이 많이 나왔다. p569

 

제1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은 선할 뿐만 아니라 선 자체이다. 신은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 되는 선 자체이다. 신은 지적이며, 더욱이 신의 지성 활동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의 본질로써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p596

 

신에게는 의지도 있다. 신의 의지는 곧 자신의 본질이므로, 신의 의지가 향하는 중요한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p598

 

점성술은 평범한 이류로 거부해야 한다. “‘숙명’과 같은 것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아퀴나스는, 섭리로 부여된 질서에 ‘숙명’이란 명칭을 붙일지도 모르지만, ‘숙명’이란 이교도의 말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응수한다. p600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 안에 진정한 철학 정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플라톤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와 달리 논증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따라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p604

 

제14장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스콜라 철학자들

무지의 원인이 네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부정하고 부적합한 권위의 사례 둘째, 관습의 영향이다. 셋째, 무식한 군중의 의견이다. 넷째, 외견상의 지혜를 과시하며 무지를 은폐하는 짓이다. 네 가지 역병 가운데 넷째 병이 가장 치명적이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p606

 

이 시기에 교황 반대 운동의 특징도 변하기 시작했다. 교황 반대 운동은 단지 황제를 지지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는데, 특히 교회 정치의 문제에서 민주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특징은 교황 반대운동에 새로운 힘을 실어주어, 결국 종교개혁에 이르게 되었다. p612

 

교황 권력에 관한 여덟 가지 문제

첫째, 개인은 교회와 국가 안에서 두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세속 권력은 신으로부터 직접 나오는가, 아닌가?

셋째, 교황은 세속 지배권을 황제와 다른 군주들에게 부여할 권리를 가지는가?

넷째, 선거인단의 선출은 독일 왕에게 충분한 권력이 부여되는가?

다섯째와 여섯째, 교회는 왕들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하는 구교의 권리행사를 통해 어떤 권리를 획득하는가? 일곱째, 부정한 대주교가 거행했다면, 대관식은 유효한가?

여덟째, 선거인단 선출이 독일 왕에게 황제의 칭호를 부여하는가? 이 문제들은 모두 당시 현실 저치와 관련된 뜨거운 감자였다. p614

 

오성悟性, understanding의 대상은 사물이지 저인이 생산한 형상이 아니다. 형상은 이해되는 무엇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해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p617

 

제15장 교황 체제의 쇠락

13세기로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순수한 그리스 철학, 특히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레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 오르페우스교와 신비 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인 이러한 동양의 종교들은 그리스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을 변모시켰으며, 결국 라틴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도 바꾸었다. 죽었으나 부활한 신, 그 신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을 먹는 성찬 의식, 세례식과 유사한 어떤 의식을 통해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제2의 탄생은 이교 로마 세계의 대다수 종파들에게 신학의 일부로 수용되었다. 이와 같은 동양 종교적 요소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 금욕적인 육체에서도 벗어난 해방의 윤리와 결합했다. p620

 

15세기에 여러 가지 다른 원인이 교황체제의 쇠퇴에 작용하면서 정치와 문화 두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화약은 봉건 귀족을 희생시키고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는 루이 11세와 에드워드 4세가 부유한 중간 계급과 연합함으로써 귀족들로 인해 야기된 무정부 상태를 평정했다. 이탈리아는 15세기 말까지 사실상 북방 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처지였기 때문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수준도 급속히 높아졌다. 새로운 문화는 본질상 이교도 문화로서 그리스와 로마를 숭상하고 중세 시대를 경시했다. ... 금욕주의가 지배한 기나긴 세월은 다채로운 예술과 시, 쾌락을 추구하는 분방한 활동 속에서 잊혔다. ... 정신은 새로 맛본 자유에 도취되었다. 도취는 지속될 수 없었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공포심을 차단했다. 이렇게 기쁨에 찬 해방의 순간 속에서 근대가 탄생했다. p633

 

제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시기의 정신적 전망은 ...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근대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국가 권력은 처음에 주로 왕의 수중에 있다가, ... 민족국가의 권력이나 국가가 수행하는 기능은 근대 전체에 걸쳐 꾸준히 증가한다. ... 봉건 귀족정치는 부유한 상인 계층과 동맹을 맺은 왕정으로 대체되고 귀족과 상인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는데, 권력 배분의 비율은 나라마다 달랐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상인들이 귀족 계급으로 흡수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p638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현대적인 의미와 민주주의가 중요한 정치적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사회주의는 1917년에 이르러 최초로 정권을 획득한다. ...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은 근대를 구분하는 소극적 특징으로 과학의 권위를 수용하는 적극적 특징보다 앞서 나타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에서 과학의 역할은 아주 미비했다. ... 근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한 과학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혀 다른 지적인 권위이며 정치적 권위가 아니었다. 과학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며, 권위를 수용한 사람에게 신중하고 분별 있는 논증은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과학의 권위는 고유한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효력을 나타내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권위이다. p639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은 근대를 구분하는 소극적 특징으로 과학의 권위를 수용하는 적극적 특징보다 앞서 나타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에서 과학의 역할은 미미했다. 교회에 반발한 사람들은 고대와 연결되는 고리를 마음속으로 찾아낸 데 이어 과거로, 초기 교회나 중세가 아닌 더욱 먼 과거로 시선을 돌렸다. 과학의 갑작스런 등장을 진지하게 논의하게 된 최초의 사건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담은 서적의 출간이었다. ... 과학과 교리를 사이에 두고 기나긴 투쟁이 벌어졌는데, 교리를 고수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새로운 지식에 저항해 싸웠으나 언제나 패배했다. p639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규율은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정치적이든 르네상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스콜라 철학과 교회 정부와 결부되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몰두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협소했으나 일종의 정확성을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그래도 근대 철학은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 데카르트 철학을 보면, 그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에 근거해 모든 지식을 확립하고 명석성과 판명성을 진리의 규준으로 수용한다. ... 완전한 무정부주의에 이르러 종말을 맞았다. 이런 극단적 주관주의는 일종의 광기로 나타난다.

그러는 사이 기술로서 수용된 과학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론 철학자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놓았다. 기술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대로 맡겨지는 일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 이제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 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도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p641

 

고대세계는 로마 제국이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면서 종말을 맞았으나, 로마 제국은 이상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로 존재했다. 가톨릭 세계는 교회를 통해 무정부 상태를 종결시키려 했지만, 교회는 이상으로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결코 구현되지 못했다. 고대식 해결도 중세식 해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자는 이상이 되기 어려워 만족스럽지 않고, 후자는 현실이 되기 어려워 만족스럽지 않다. p642

 

지속 가능하고 만족스러운 사회 질서를 실현하려면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법체계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에서 제시한 이상주의를 결합해야만 가능할 텐데, 이를 성취하려면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p642

 

제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운동은 플라톤 연구를 부흥시킴으로써 적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선택할 경우에 필요한 수준만큼 독자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p649

 

지적 활동은 예정된 정통 신앙의 보존에 지향을 두면서 수도원에 틀어박힌 채 빠져드는 명상이 아니라, 기쁨에 찬 사회적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장려한 점은 더욱 중요했다. p650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이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p650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은 고대에서 토대와 증거를 찾은 미신적인 신념을 마음에 품었다. 마법과 요술은 사악하지만, 불가능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인노켄티우스 8세는 1484년에 마법을 금하는 교서를 내렸는데, 그로 인해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마녀에 대한 무시무시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자유사상가들 사이에서 점성술이 특히 높이 평가되면서 고대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고대에 속한 온갖 종류의 무의미한 미신을 받아들이려 마음을 활짝 열었다. 도덕적인 면에서도 교회에서 해방됨으로써 나타난 최초의 결과는 똑같이 참담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도덕 규칙이 더는 존중되지 않고, 각 국의 통치자는 대부분 배반과 모략으로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냉혹하고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p652

 

도덕의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스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 문화의 편협성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전히 고대 숭배의 노예 상황에 놓인 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논박되기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했다. p653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마저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천재들은 제각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후 맛보기 어려웠던 자유를 누리면서 재능을 꽃피웠다. p653

 

제3장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수시로 언급한 목적들은 모두 절찬을 받을 만하다. 마키아벨리란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비방이나 악평은, 대체로 악행을 솔직하게 인정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위선자들의 분개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판이 필요한 곳이 여러 군데 있지만,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한계를 표현할 따름이다. 마키아벨리가 당대의 정치적 부정행위에 대한 보여준, 지적으로 정직한 태도는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p654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정치적으로 패배했다”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실패한 예언자의 부류에 속한 인물로서 사보나롤라를 꼽으며, 다른 쪽 부류에는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를 꼽았다.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관례는 르네상스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p655

 

그의 가장 유명한 저술인 군주론은 1513년에 집필하여 로렌초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헛된 희망으로 드러났다)을 품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에 흐르는 논조의 일부는 아마 이런 실제 목적에서 비롯된 듯하다. 같은 식에 쓴 더 방대한 저술, 로마사 논고에는 공화제와 자유주의에 더 비중을 두고 지지한 면이 더 두드러진다. 그는 군주론의 첫머리에서 공화국에 대해서는 다른 저술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논의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군주론만 읽고 로마사 논고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학설에 편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저술가로 살 수밖에 없었다. p655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의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는데도 이렇게 요약해 말한다. “지금까지 체사레 공이 정치적으로 행동한 면면을 회고하여 평가해보면, 탓할 점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행운이나 남의 무력에 의존해 갑자기 정권을 잡은 자들이 모두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로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P656

 

군주론의 ‘교회의 공국들에 대하여’라는 흥미로운 장에서는 ‘로마사 논고’에서 주장한 견해에 포함된 사상의 일부를 분명히 숨겨둔 채 논의를 전개한다. 숨긴 까닭은 군주론이 메디치 가문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 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p657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한다.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 ‘군주는 어떤 식으로 신앙을 지켜야 하는가?’란 제목이 붙은 장을 보자. 군주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신앙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지켜서는 안 된다. 때때로 군주는 신앙을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p659

 

결국 핵심은 바로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 이런 평범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긴다”, 다시 말하면 “악은 승리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 해도, 그것은 그쪽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당신의 적수보다 당신의 정치적 기량과 덕이 더 뛰어난 듯이 보이게 하는 데 선전선동이 유리하며,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춘 듯이 보이게 하는 방법은 바로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추는 방법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p662

 

제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유럽 북부 여러 나라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보다 뒤늦게 시작되어, 곧 종교개혁과 뒤얽혔다. 그러나 16세기 초반의 아주 짧은 기간, 신학문이 신학 논쟁과 무관하게 프랑스, 영국, 독일로 활발하게 퍼져나갔다. 북부 르네상스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아주 달랐는데,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지도 비도덕성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경건한 신앙심이나 공공의 덕과 결합되었다. 북부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은 학문연구의 표준을 성서에 적용하거나 불가타 성서의 원본보다 더 정확한 원본을 입수하는데 더욱 흥미를 느꼈다.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들보다 화려한 면은 부족했으나 기초가 튼튼하고 충실했으며, 개인의 학문적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학문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p664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 라틴어 ‘모로스moros'가 바보를 뜻하기 때문에 어울린다는 농담 섞인 암시를 덧붙이며 책을 토머스 모어에게 바쳤다. ... 바보 여신은 지혜의 해독제로 아내를 얻으라고 충고한다. “아내라는 피조물은 무해하고 바보 같지만, 인간의 딱딱함과 침울한 성미를 완화하여 유연하게 할 때 유용하고 편리한 존재이다” 누가 아첨이나 자기애 없이 행복하겠는가? 그런 행복은 어리석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야수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최상의 행복은 망상에서 비롯되는데,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p667

 

바보 여신은 풍자가 독설로 변하는 구절에서 에라스무스의 진지하고 심각한 의견을 대신 말하는데, 성직의 남용이나 폐해에 관한 내용이다. 신부들이 각각의 영혼이 연옥에 머물 시간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삼은 대사(면죄부)와 은사행위, 성인 숭배와 ‘맹목적인 신봉자들이 성자 앞에다 성모를 두는 방법이라 생각한’ 성모 숭배, 삼위일체설과 육화에 대한 신학 논쟁, 실체변화설에 대한 논쟁, 스콜라 철학의 종파 대립, 교황과 주교와 추기경으로 이어진 성직 위계 등 모든 면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p667

 

「우신예찬」은 참된 종교는 바보 여신 숭배 같은 형태를 띤다는 진지한 암시로 끝난다. 책에는 시종일관 두 바보 여신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역설적으로 찬미되는 신이고 다른 하나는 진지하게 찬미되는 신이다. 진지하게 찬미되는 신은 그리스도의 단순성 속에 드러난다. 이러한 찬미는 에라스무스가 스콜라 철학과 라틴어 교양을 갖추지 못한 학자들을 혐오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p669

 

루소의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에 발표된 견해가 문학 작품 속에서 등장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에 따르면 참된 종교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학이란 모두 쓸데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점은 점차 보통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상식이 되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매우 환영받는 입장이다. p669

 

사람들은 대부분 「유토피아」에 대한 설명에 의존해서 모어를 기억한다. 유토피아는 남반구에 있는 섬인데, 거기서는 모든 일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라파엘 히슬로데이라는 선원이 우연히 그 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살다가 섬의 슬기로운 제도를 알리려 유럽으로 돌아왔다. p672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러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자유주의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공산주의 설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대부분의 종교 운동이 따르는 전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쟁에 관한 이야기나 종교와 종교적 관용에 관해 말한 점, 방종한 동물 살해 행위에 반대한 점(사냥에 반대한 가장 웅변적인 구정이 있다.), 관대한 형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유토피아는 절도범죄에 사형을 언도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논증으로 시작한다.) p676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의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교황이 천국 열쇠의 권능으로 요구하던 조공을 더는 바치지 않았다. 반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일 따름이다. p677

 

개신교는 처음에 놀라우리만치 급속한 성공을 거두지만, 주로 로욜라의 예수회 창설을 계기로 성공가도에서 걸림돌을 만났다. 로욜라는 군인 출신이었기에 수도회도 군대식으로 조직했는데... 그들은 수도생활로 잘 단련되었으며, 유능한 데다 대의에 투신하는 능숙한 선동가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신학은 개신교도들의 신학과 정반대였는데, 그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가운데 개신교도들이 강조한 요소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유의지를 확고하게 믿었으며 운명 예정설에 반대했다. 구원은 신앙 하나만이 아니라 신앙과 종교적 행위가 합쳐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p679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다. 30년 전쟁으로, 개신교도나 가톨릭교도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리의 통일을 바라는 중세적 소망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기본 교리를 생각하는 자유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p680

 

제6장 과학의 발흥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꺼어들 여지는 없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설명을 할 때는 목적 개념이 더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p695

 

인간이 자기만족에 도취된 데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작용했다. 핼리는 혜성 출현의 신비를 풀어 시시한 현상으로 만들었으며, 지진이 여전히 가공할 만한 현상이기는 해도 과학자들은 지진을 두려워하고 한탄만 하지 않고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받아 들였다. ... 이 모든 일에 과학의 승리가 더해지고 나면, 17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일마다 악행을 고백해아 하는 비참한 죄인이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놀랍지도 않다.

p696

 

제7장 베이컨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인데,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그는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한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p702

 

제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홉스는 경험론이나 합리론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철학자이다. 그는 로크, 버클리, 흄과 마찬가지로 경험론자였지만, 그들과 달리 순수 수학뿐 아니라 응용 수학과 관련된 수학적 방법의 가치를 인정한 철학자였다. 그의 일반적인 철학 사상은 베이컨보다 갈릴레오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 따라서 대륙 철학은 플라톤주의와 마찬가지로 순수 사유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한편 영국 경험론은 수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으므로 과학의 방법을 잘못 파악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p705

 

리바이어던에 담긴 학설을 고찰해보자..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유물론을 선포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지체의 운동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동인형도 인공 생명을 갖는다. 리바이어던이라 부른 국가는 기예에 의한 창조물로, 사실상 인공으로 만든 인간이다. 이는 유비 이상의 의도를 담은 주장으로서 상세한 고찰을 통해 다듬어진다. 통치권은 인공 영혼으로, ‘리바이어던’을 창조하기로 한 협정과 계약은 ‘인간을 만들자’고 선언했던 신의 명령을 대신한다. p708

 

홉스의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더라도, 정치 이론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논점... 첫째 논점은 언제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할 때 모든 시민의 중요한 이해관계는 같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계급과 계급간의 충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데, ... 나중에 마르크스는 계급간의 충돌이 사회 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 홉스는 이러한 교훈을 근대 영국의 역사에서 분명히 배워야 했다. 지나치게 제한적인 견해로 보이는 또 한 가지 논점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와 연결된다. ... 정부의 존재를 지지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모든 논증은 조금이라도 타당하다면, 국제 정부를 지지할 경우에도 타당하다. 민족 국가들이 존재하고 서로 전쟁을 벌이는 한, 개별국가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만 인류는 보존될 법하다. 전쟁을 막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개별 국가 간의 전쟁 수행 능력만 향상된다면, 모든 국가의 파멸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p717-718

 

데카르트는 고사가 아니라 찾아낸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로서 저술에 임했다. .. 새로운 철학 체계의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일어난 적이 없던 일로, 과학의 진보로 생겨난 새로운 자기 확신의 표시이다.

 

그런데도 내가 의심하지 못하는 대상은 남는다. 그러니까 악령이 아무리 교활하다 해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를 기만하지 못할 터이다. 여기서 나는 신체일 리는 없는데, 신체는 환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는 신체와는 다른 존재이다.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한 무엇으로서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p726

 

데카르트 철학은 그 밖에도 두 가지 점 때문에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첫째,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대개 종교적 이유로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발전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완성했거나 거의 완성했다. 데카르트의 후계자들도 포기한, 송고선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심신 상호작용을 논외로 친다면, 데카르트의 철학 체계는 병행하지만 독립된 두 세계, 즉 정신계와 물질계를 제시한다. 각 세계는 다른 세계를 언급하지 않고서 연구해도 된다.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새로운 생각은 ... 하지만 종교의관점에서 보면 심상치 않은 결함이 발견되어, 둘째 특징이 도출된다. 물질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 측면에서 엄격한 결정론의 입장을 취했다. p731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 영역의 자유의지나 물질계의 우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본성을 표현하며, 사건들이 다르게 일어나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p732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이 실재하는 일이든, 태초부터 끝까지 이어진 원인들의 연쇄과정의 일부이든, 당신은 불행한 사건들이 당신에게만 불행할 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746

 

정치 사회 상황은 저명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반대로 저명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들은 후대 정치 사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흔히 발생하는 상반된 두 가지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일어난 사태보다 책과 더 친숙한 학자들이 철학자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낡은 접근에 맞선 반동으로 새로운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는 이론가들을 거의 수동적인 환경의 산물로 간주한 나머지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p765

 

이성을 잃은 광신은 이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계시를 멋대로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이성도 계시도 떠난 어떤 사람의 두뇌에서 빚어진 근거 없는 공상을 계시인 양 떠벌린다. 우울증이나 자만심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신성과 직접 교제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기이하고 괴상한 행동거지나 의견이 신성하다는 승인을 얻어내지만, 이것은 인간의 나태와 무지와 허영심에 아첨하는 거짓일 뿐이다. 그는 ‘광신에 대하여’라는 장을 이미 인용한 바 있는 “계시는 이성의 심리와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격률로 마무리 한다. p778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낭만주의 운동이 정치와 철학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기 전에 기존의 윤리 기준과 미적 기준에 맞선 반항의 성격이 짙은, 가장 본질적인 형태의 낭만주의를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p858

 

낭만주의자들에게 도덕이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도덕 판단은 예리하면서 열렬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의 도덕 판단은 선대 사상가들이 좋게 여겼던 원리와는 퍽 거리감이 느껴지는 원리에 근거한다. 1660년부터 루소에 이르는 시기, 사람들은 종교 전쟁과 프랑스, 영국, 독일의 내란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들은 혼란의 위험, 강한 열정의 소유자들에게 나타나는 무정부주의적 경향, 안전의 가치와 의의, 안전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희생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았다. 사려prudence는 최고의 덕으로 간주되고, 지성은 파괴적인 동시에 타락한 광신에 반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평가되었으며, 세련된 예절과 태도는 야만주의에 맞서는 방책으로 칭송되었다. 뉴턴의 질서정연한 우주, 행성들이 변함없이 법칙에 따라 정해진 궤도로 태양을 회전하는 우주는 상상 속에 그려진 좋은 정부의 상징이 되었다. 격정 표출을 억제하는 능력은 교육의 주된 목표였으며 고상함의 확실한 기준이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낭만주의 이전 귀족들은 조용히 사라져갔다. 롤랑 부인과 당통 같은 낭만주의자들은 수사학적인 의미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루소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점점 안전과 평안에 염증을 느끼면서 흥분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p860

 

19세기 신성 동맹 체제에 맞선 반항은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편에선 산업계의 자본가 계급과 무산 계급이 군주제와 귀족주의에 맞서 반발했는데, 이는 낭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18세기적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학적 급진파, 자유무역운동, 마르크스식 사회주의가 이 운동을 대표한다. .. 낭만주의자들은 평화와 고요가 아닌, 활기차고 정열적인 개인적 삶을 간절히 원했다. 그들이 산업주의에 결코 공감을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은, 산업주의가 추악한 면모를 드러냈으며, 돈벌이는 영생할 영혼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고, 근대 경제 조직체의 성장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했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 낭만주의자들은 점차 국가주의를 통해 정치 분야로 휘말려 들어갔다. p861

 

낭만주의자들의 도덕은 일차적으로 미적인 동기를 포함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의 특성을 구분해내려면 미적 동기의 가치와 의의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적 감각을 선대 낭만주의자들의 감각과 달라지게 만든 취미의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낭만주의자들이 고딕 건축을 선호한 점이다. 또 다른 사례는 풍경을 좋아하는 취미이다. p861

 

낭만주의자들의 독특한 기질은 허구의 세계를 그린 소설 속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기이한 것, 예컨대 유령이나 퇴락한 고성, 한때 번성했던 가문의 우울한 후손, 수련된 최면술사, 신비학, 몰락한 폭군, 레반트의 해적들을 좋아했다. p862

 

젊어서 죽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던 낭만주의자들은 결국 가톨릭 교회의 획일성으로 인해 자신들만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낭만주의자는 개신교도로 태어났다면 가톨릭교도가 되었을테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톨릭 교도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텐데, 가톨릭 신안과 반항심을 결합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p863

 

낭만주의자들이 가톨릭 신앙으로 기울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나, 낭만주의의 바탕인 개인주의는 개신교도의 뿌리 깊은 특징이었다. 또한 낭만주의자들이 관습, 사상, 제도의 형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성공을 거둔 곳도 거의 모두 개신교 국가들에 국한되었다. p863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숨어 가난한 오두막의 소박하고 고결해 보이는 가족을 지켜보다가 남모르게 그 가족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정체를 그들에게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보면 볼수록 그들의 보호와 친절을 바라는 욕망도 점점 더 커지고, 나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마음씨 고운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고 사랑을 받고픈 열망에 사로잡힌다. 나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그들의 상냥하고 매혹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자 갈망이란 말이야. 그들이 나를 보았을 때 경멸감과 공포심으로 일그러져 돌아서지는 않겠지.”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비슷한 여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한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죽이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다 죽이고 났을 때조차,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시신을 응시하는 동안에도 그 괴물의 감회는 고상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나도 희생자야! 그를 죽였기에 나의 범죄 행각도 끝이 났군. 내 존재의 저주받아 마땅한 비참한 재주도 종말에 이른 거지! 오 프랑켄슈타인이여! 너그럽고 헌신적인 존재여! 이제 그대에게 용서를 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대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을 파멸시키고 그대마저 죽여 돌이킬 수 없게 만든 나. 아아! 그대는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나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네... 섬뜩한 내 죄상의 목록을 훑어보니, 내가 한 때는 고귀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통찰하고 선으로 충만한 생각을 하던 그 피조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구나. 그러나 바로 그러한 존재가 나인 것을 어쩔 것인가. 타락한 천사는 악의에 찬 불길한 악마로 변했다. 신과 인간의 적인 악마조차 광야에서 자기 친구와 공범자를 만나 어울리는데, 나는 홀로 처량하구나.” p864-865

 

사회적 구속에 반하는 고립 추구 본능에서 비롯된 반항은 보통 낭만주의 운동이라 불릴 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낭만주의의 결과를 특징짓는 철학, 정치학, 정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p866

 

책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소망을 품은 사람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생존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원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독한 느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봉사한 사람들이 그의 자아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은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들이 사회적 구속에 반항하는 한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에서는 사랑의 관계 자체가 너무 빠르게 사회적구속이 되어버리고 사랑의 상대는 증오의 대상으로 변해서, 만약 사랑이 그러한 속박을 벗어던질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면 더욱 격렬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사랑을 투쟁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러 각자는 상대방 자아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서 서로 파괴하려 한다. 이러한 관점은 스트린트베리의 작품을 통해 잘 알려졌으며 로렌스의 작품을 통해 더더욱 친숙해졌다. p867

 

제19장 루소

루소가 사상가로서 지닌 장점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든, 그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주로 루소가 가슴, 당시의 용어로는 ‘감수성’에 호소한 데서 기인했다. 그는 낭만주의 운동의 시조이자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성에 위배되는 사실을 추론한 사상체계의 창시자이며, 전통적인 절대 군주제에 대립하는 휴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을 고안한 사상가였다. ...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한다. p870

 

루소는 신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상을 형성했는데, 지금까지 대다수 개신교 신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수용했다. 루소 이전 플라톤 이후의 철학자는 저마다 신을 믿는 경우에는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지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을 제공했다. p878

 

루소의 정치 이론은 1762년에 출간된 사회계약론에서 제시된다. ... 민주주의에 대해 말로만 호의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그 책에 등장한 학설들은 전체주의 국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이바지한다. ... 플라타르코스 영웅전의 리쿠르고스의 생애 편에 나타난 스파르타를 찬미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루소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작은 국가에 가장 적합하고, 귀족정치는 중간 정도 규모의 국가에 가장 적합하며, 군주정치는 큰 국가에 최선인 정치체제라고 말했다. p882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도처에 그를 구속하는 사슬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자유는 루소 사상의 명목상의 목표였고, 사실 그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유를 희생시켜서라도 지키려 한 가치는 평등이다. p883

 

계약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함께 전체 공동체에 전부 양도하는데서 성립하며, 각자 무조건 권리를 스스로 양도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 아래서 계약을 맺는 셈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면 아무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 양도는 조건 없이 해야 한다. 만약 개인들이 어떤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때 공동의 우월한 권위가 없어지므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해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는 계속 이어져, 사회는 필연적으로 무용지물이 도거나 전제 군주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유의 폐기이며 인권 학설을 전면 거부한 것을 의미한다. p883

 

루소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 듯하다. 모든 사람의 정치적 견해는 자기 이익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 이익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개인에게 고유한 이익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된 이익이다. 만약 시민들이 서로서로 계약을 체결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저마다 갈라져 발산된 개인의 이익들은 상쇄되어 공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만 남을 터이다. 이 결과가 바로 일반 의지이다. p886

 

루소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이미 알아보았듯이 고대 도시국가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루소도 지적하듯이 직접 민주주의가 결코 완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제도인 까닭은 국민들을 언제든 소집하기 어려우며 그들이 언제나 공적인 일에 전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들의 종족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정부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터이다. 그렇게 완벽한 정부는 인간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p888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을 이끈 대부분의 지도자들의 성경이 되었으나, 성경의 운명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주의 깊게 읽는 독자는 드물었으며 더욱이 제자들 가운데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에게 형이상학적인 추상의 습관을 다시 소개했으며, 일반 의지의 학설로 인해 지도자와 국민의 신비한 일체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 루소의 철학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거둔 첫 결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다. 러시아와 독일(특히 독일)의 독재 정치는 부분적으로 루소의 가르침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나는 루소의 망령이 미래에 또 다른 어떤 사건을 초래할지 예측하는 위험까지 감수할 의도는 없다. p889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19세기 지성인들의 삶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 더 복잡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관계를 주고받는 구역이 전보다 더 넓어져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유럽인들은 곧나 현대의 인도 철학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둘째, 17세기 이후 새로운 경험의 주요 원천이었던 과학은 특히 지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유기 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다. 셋째, 기계에 의한 생산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으면서, 물리적 환경에 관계하는 새로운 힘의 개념을 제시했다. 넷째, 사상,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통적인 체계에 반하는 철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둘 다에 걸친 의미 심장한 반항은 그때까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러 종류의 신앙과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항은 매우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등장했는데 하나는 낭만주의적 반항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적 반항이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거쳐 무솔리니와 히틀러까지 이어진다. 합리주의적 반항은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더불어 시작되어, 얼마간 완화된 형태로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난 뒤 소련에 유포되었다. p910

 

제23장 바이런

그는 자신의 부도덕성이 자기 혈통에 유전된 저주이며 전능한 신에 의해 예정된 사악한 운명이라고 고백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비범한 인물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비범해져야 했을테고,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당시를 풍미한 자유사상가들의 용기를 뛰어넘는 죄를 감히 저질렀을 것이다. p947

 

“만약 신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러므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추리의 숨은 전제에 주목하라. “나의 긍지를 낮추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으로 판단해야 한다.” 니체는 바이런과 마찬가지로, 심지어 더욱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양육되었으나 더 우수한 지성의 소유자였기에 악마숭배주의보다 더 나은 탈출구를 찾아냈다. 하지만 니체는 바이런에게 언제나 공감을 표현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극은 우리가 가슴과 머릿속에 엄밀한 진리 추구의 방법을 가지는 한, 종교 교리와 형이상학적 독단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성을 발전시킴으로써 너무 유연하고 예민해진 나머지 구원과 위안을 얻을 고상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 여기서부터 인간이 스스로 인식한 진리를 관철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피를 흘릴 수도 있는 위험이 생겨난다.”

슬픔은 지식에서 비롯되지.

가장 많이 아는 자 치명적인 진리를 넘어 가장 깊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네.

지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네. p948

 

제24장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어느 면에서 보든 철학자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염세주의자의 길을 택했지만, 다른 철학자들은 대부분 어떤 의미로든 낙관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칸트나 헤겔과는 달리 철저한 학구파는 아니었지만 대학의 학술 전통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으며, 그리스도교를 싫어한 반면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를 좋아했다. 광범위하게 문화를 흡수한 쇼펜하우어는 윤리학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유독 국가주의에서 자유로웠던 만큼 자기 나라 독일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저술가들의 사상에도 정통했다. 그는 늘 전문적인 철학자보다는 자신이 믿는 철학을 탐구한 예술가와 문인들에게 호소했다. p952

 

쇼펜하우어는 19, 20세기에 유행한 철학의 큰 특징인 의지를 강조하고 철학적으로 부각시켰는데, 그에게 의지는 형이상학의 근본이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악이다. 이러한 대비는 염세주의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에 속한다. p952

 

우주의 의지는 사악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의지는 사악하거나 적어도 우리가 겪는 끝없는 고통의 근원이다. 고통은 모든 생명에 도사린 본질적 요소이며 지식이 더해질 때마다 고통의 양도 증가한다. 의지에는 성취되면 흡족과 만족을 주게 될 고정된 목적이 없다. 종국에는 틀림없이 죽음이 승리를 거두겠지만, “갑자기 터져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힘껏 크게 비누 거품을 불듯이”, 우리는 헛된 목표를 추구한다. 이루지 못한 소망은 고통을 낳고 욕망을 성취해봐야 싫증만 날 뿐이기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이 인간에게 생식을 부추기지만, 이는 고통과 죽음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성 행위와 수치심이 결합되어 있는 이유이다. 자살도 소용이 없다. 윤회설이 설령 문자 그대로 사실은 아니더라도 시화의 형태로 진실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아주 슬픈 이야기지만, 그는 인도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신화들 가운데 최고의 신화는 열반의 신화인데, 쇼펜하우어는 욕망으로 생긴 집착을 끊어버린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 고통은 의지가 강렬하고 격렬한 탓에 생긴다. 그러니까 의지를 덜 발휘할수록 우리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식은 어떤 종류이든 결국은 유용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그는 사랑에 의해 이러한 통찰에 이르는데, 사랑이란 언제나 공감이므로, 타인의 고통과 함께 느껴야 한다. p956

 

쇼펜하우어는 불교가 가장 고상한 종교라고 말하며, 그의 윤리 학설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슬람의 교설이 지배하는 곳을 예외로 하면 아시아 전역에서 정통으로 인정받을 만한 견해이다. 선한 인간은 완전한 잡, 자발적인 가난, 금식과 자기 고행을 실천하려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덕목을 전부 실행함으로써 자신의 개별적인 의지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서양의 신비주의자들처럼 신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덕목을 실천하지 않는다. 이러한 긍정적인 선을 결코 찾을 수 없고, 찾을 수 있는 선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선뿐이다. p957

 

20년 후 마침내 그녀가 죽었을 때, 그는 자신의 회계 장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할멈이 죽었으니 짐도 벗었다.” 그의 삶에서 동물에게 친절한 면을 제외하면 덕을 행동으로 보여준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는 과학적 호기심과 과학의 이득을 위한 동물 생체 해부에 반대하기까지 했다. 이 밖에 다른 면에서는 철저하게 자기 본위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금욕과 체념의 덕을 깊이 확신했던 사람이 스스로 확신한 덕을 실천에 옮기려고 전혀 애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는다. p959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그의 염세주의 사상은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듯이다. ...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이든 염세주의이드 우리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염세주의자가 되느냐, 낙관주의자가 되느냐는 기질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p960

 

의지가 우월하다는 학설은 염세주의자보다 더욱 중요하다. 의지의 학설이 염세주의와 필연적인 논리적 관련성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쇼펜하우어 이후에 염세주의를 주장한 사상가들은 염세주의 안에서 낙관주의의 기반을 찾아내기도 했다.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학설은 여러 현대 철학자들이 주장했는데, 그 가운데 니체, 베르그송, 제임스와 듀이가 두각을 나타냈다. 이 학설은 전문 철학자 사회 밖에서 더 유행했다. 의지의 규모가 커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지식의 지위는 더 낮아졌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철학적 기질에 나타난 가장 특출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p960

 

제25장 니체

 

니체는 쉽게 조화되기 어려운 두 가지 가치를 결합하려 한다. 한편으로는 냉혹함, 전쟁, 귀족적 자부심을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과 문학과 예술, 특히 음악을 갈망한다. p963

 

니체와 마키아벨리는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작업은 자연스럽다. 우선 그들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마키아벨리는 정세에 밝은 실무가로서 공적인 일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견해는 당시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와 반대로 니체는 대학교수로서 별 수 없는 현학적인 학자이자 당시 정치 경향과 윤리적 입장에 의식적으로 반대한 철학자였다. 그런데 두 철학자의 유사점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나타난다. 니체의 정치철학은 공들여 완성해서 더 넓은 영역까지 적용하지만 ‘군주론’에 제시된 학설과 유사하다. 니체와 마키아벨리는 둘 다 권력을 지향하고 계획적으로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윤리학을 세우지만, 이 점에서는 니체가 더 솔직한 편이다.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의 관계는 니체와 나폴레옹의 관계와 같은데, 위대한 자는 열등한 적대자들에게 패배를 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p963

 

특히 악의에 가득 차서 밀을 경멸한다. 그는 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밀이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정당하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하기 바라지 않는 행동을 그들에게 행하지 마라’고 말할 때, 그자의 저속함에 협오감을 느낀다. 이 원칙은 사람 사이의 교섭을 전부 상호봉사에 입각해서 확립할 터여서, 어떤 행동이든지 다 우리에게 한 행동을 보상하는 현금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이 가설이 지극히 비천한 까닭은 나의 행동과 너의 행동의 가치가 같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p964

 

니체의 윤리학이 응용된 두 가지 경우는 주목할 만한데, 하나는 여성을 경멸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지독하게 비판한 경우이다. 그는 결코 지치지 않고 여성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그는 가짜 예언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지금까지는 여자들과 우정을 나누기 힘들며, 여자들은 아직도 고양이나 새나 잘해야 암소와 같은 존재들이라고 한다. “남자는 전쟁을 위해, 여자는 전사의 기분 전환을 위해 훈련받게 마련이다. 다른 훈련은 다 어리석은 것이다.” p966

 

사실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까지는 여자를 효과적으로 억누르고 지배했다. 그는 동양인들처럼 여자들을 재산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인 ‘선악의 피안’에서 그렇게 말한다. 니체가 여자들을 향해 퍼부은 독설은 전부 자명한 진리인 양 제시되지만, 역사나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증거에 의해 지지되지 않으며, 여자들에 관한 경험은 거의 누이동생에게 국한되었다. p966-967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노예도덕’을 수용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 그리스도교는 다른 어떤 종교든 형이상학적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사실상 종교는 모두 거짓이라 확신한 니체는 모든 종교를 전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 판단한다. 그는 가정된 신의 의지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계몽철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신의 의지를 지상의 ‘예술가폭군’들의 의지로 대체하려 했다. p967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마음을 길들이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잘못이다. 야수는 야생에서는 광채를 내지만, 길들면 빛을 잃는다. .. 니체는 정신착란 주기라 부른 회개와 속죄를 혐오한다. 우리가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까닭은 “2000년 동안 우리가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십자가가에 못 박는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파스칼에 관한 웅변조의 구절을 인용할 만한 까닭은 그리스도교에 맞선 니체의 반론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p968

 

니체의 영향력이 전문 철학자들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미래를 내다본 니체의 예언이 지금까지는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의 예언보다 더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p969

 

니체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비난한 까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웃이 내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서 이웃에게 사랑한다는 확신을 준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강하고 용감하다면, 나는 내가 당연히 느낀 경멸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야 한다. p969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이 땅에 공포를 불러오리라.

이것은 간결하게 요약한 니체 철학이다. 초인에게 부여한 힘을 향한 갈망 자체가 두려움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니체에게는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p970

 

제26장 공리주의자들

 

벤담의 주장에 따르면 민법의 목표는 네 가지로서 생존, 부, 안전, 평등이다. 그가 자유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주의하려 한다. 사실 그는 자유에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다. ... 인권을 지지하는 학설을 몹시 경멸했다. 그는 인권이란 명백한 헛소리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불가침 인권이란 죽마 위에서 말 타는 흉내를 내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말이다. p980

 

벤담이 점차 급진주의로 나아가게 된 근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평등을 찬미하는 벤담은 일찍이 재산을 자손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유언의 자유에 따른 재산 분할에 반대했다. 나중에는 군주제와 세습귀족정치에 반대하고, 여성의 투표권까지도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창하게 되었다. 이성적 근거가 없다면 믿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 종교 자체를 거부했다. ... 그는 영국이 미국에서 영토를 확장하든 다른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든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식민지 건설을 바보짓으로 여겼다. p980

 

벤담의 체계에는 명백한 결함이 한 가지 있다. 만약 사람이 언제나 제각기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면, 입법자가 인간 일반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p982

 

제27장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를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그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만을 다루려 한다. .. 마르크스는 어떤 면에서 호지스킨처럼 철학적 급진파의 영향으로 성장한 철학자로서 급진파의 합리적 성향과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받는다.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유물론을 부활시킨 학자로서 유물론을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p987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혁명과 독일 혁명에 가담했으나, 혁명이 실패하면서 1849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짧게 휴가를 몇 번 떠난 일을 제외하면 런던에서 남은 생애를 보냈는데, 가난과 병과 자녀의 죽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저술에 몰두하며 지식을 쌓았다. 살아 있는 동안에 가능하지 않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이 언제나 마르크스의 연구를 고무했다. p988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p989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철학은 도시국가에 적합한 사고방식을 표현했다고 말해도 좋다. 스토아 철학은 세계적인 전제정치에 알맞고, 스콜라 철학은 교회 조직의 지배를 지성의 힘으로 표현한 산물이며, 데카르트 이후나 적어도 로크 이후 철학은 상업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편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짙었다. 또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은 현대 산업국가에 적합한 철학인 셈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마르크스의 판단은 틀렸다. 첫째, 설명되어야 할 사회 상황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얽혀 있다. 사회 상황은 권력에 좌우되며 부는 권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둘째, 사회적 인과관계는 대개 세부적이거나 전문적인 문제에 이르게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p991

 

수많은 시대를 돌아보면 공인된 종교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사이에 중도는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모두 순수 이성이 침묵하는 여러 쟁점에 대해 회의적이고 초연한 태도로 일관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아주 일상적인 의미에서 철학은 이렇게 이성의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결정사항들이 유기적으로 모인 전체를 가리킨다. p993

 

마르크스 합리주의가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발전의 추세에 대한 해석이 사실이며 일어날 사건들이 확증해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계급 이익이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또 설득하려 하지 않고 계급투쟁에 모든 희망을 건다. 따라서 그는 실제로 권력정치에, 그리고 지배 종족을 지지하는 학설은 아니지만 지배 계급을 지지하는 학설에 몰두한다. 그는 진실로 사회 혁명의 결과로 계급 구분이 결국 사라져서 정치와 경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바뀔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처럼 머나먼 이상이며, 그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정치 이념이상의 정통 신조가 강요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p996

 

제28장 베르그송

나는 베르그송의 비합리주의가 이성에 맞선 반항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며 루소에서 시작되어 현 세계의 삶과 사상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만큼 어느 정도 자세하게 논의하려 한다. p998

 

베르그송의 철학을 분류하려는 시도가 성공하기 힘든 까닭은 그의 철학이 공인된 기존의 모든 구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어쩌면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유용할 철학 분류법이 한 가지 더 있다. 구분 원칙은 철학자가 철학하도록 이끌었던 두드러진 욕망에 따른다. 이렇게 하여 철학은 행복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감정철학, 지식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이론철학, 행동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실천철학으로 분류된다.

우선 낙관적인 철학이나 비관적인 철학, 구원의 계획을 제시하는 철학이나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입증하는 철학을 모두 감정철학으로 간주하며, 이 부류에는 대부분의 종교철학이 포함된다. p998

 

베르그송은 진화는 예술가의 작품 활동처럼 진정으로 창조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활동하려는 충동, 막연한 욕구는 미리 존재하지만 욕구가 충족되기 전까지는 욕구를 충족시킬 대상의 본성을 알 수 없다. 예컨대 시력이 아직 없는 동물이 물체들과 접촉하기 전에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막연한 욕구를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막연한 욕구가 마침내 눈이 창조되는 결과로 이어질 노력들을 이끌었다. 시력이 막연한 욕구를 충족시켰지만, 미리 상상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진화 과정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고, 결정론이 자유의지의 대변자들에게 논박하는 입장이 될 수도 없다. p999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intuition이라 부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직관은 사심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 p1000

 

순수 지속은 자아를 그 자체로 살게 놓아두고 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를 분리하지 않을 때 의식의 상태들이 존재하기 위해 가정되는 형식이다. 순수 지속은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전체로 만들며, 통합된 전체 안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구별되지 않은 채 서로 침투하며 연속해서 일어난다. 자아 안에는 상호 외적 관계가 아닌 연속이 존재하고, 자아 밖의 순수 공간속에는 연속하지 않는 상호 외적관계가 존재한다. p1002

 

무엇보다 기억 속에 지속이 드러나는 까닭은 기억 속에서는 과거가 현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 이론은 베르그송 철학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물질과 기억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보여주며, 양자는 바로 정신과 물질의 교차점인 기억의 분석을 통해 실재하는 존재로 긍정된다. 베르그송은 보통 기억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며, 두 활동의 구분을 강조한다. .. “과거는 두 가지 별개의 형태, 첫째는 자동기계작용의 형태로, 둘째는 독자적인 상기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어떤 시를 암송한다면, 다시 말해 이전에 시 낭송을 반복하는 일정한 습관이나 기계적 절차를 습득했다면, 그가 시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적어도 이론상으로 시를 낭송했던 이전 경우를 전혀 상기하지 않고서도 시를 암송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종류의 기억에서는 관련된 과거 사건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p1003

 

진짜 기억은 두뇌의 기능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과거는 물질에 의해 작동하고 정신에 의해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은 물질에서 생겨나지 않으며, 사실 만약 물질이 언제나 일정한 지속을 차지하는 구체적인 지각 속에서 파악된 것을 의미한다면, 반대로 물질이 기억에서 생겨난다는 주장이 진실에 더 가깝다. p1003

 

베르그송 철학의 대부분, 아마 대체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부분은 논증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논증에 의해 뒤집히지도 않는다. 베르그송의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은 시적인 노작으로 평가되며, 대체로 증명될 가능성도 반증될 가능성도 없다. 셰익스피어는 생명을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하고, 셸리는 생명을 온갖 색채의 유리로 된 둥근 천장과 같다고 말하며, 베르그송은 생명을 포탄이 터지면서 파편들이 다시 포탄들이 되어 파열되는 모양에 비유한다. 만약 당신이 베르그송의 영상을 더 좋아한다면, 그것으로 정당화된다. p1008

 

활동이 성취해야 할 목적에 대한 선견prevision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예견된 목적이 전혀 새롭지 않은 까닭은 욕구도 기억처럼 욕구의 대상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활동 속에서 운명적으로 맹목적인 본능의 노예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생명력이 우리 뒤에서 쉼 없이 그치지 않고 밀어댄다는 말이다. p1008

 

목적 없는 활동이 충분히 선해 보이는 사람들은 베르그송의 저술에서 유쾌한 우주관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활동이 만약 어떤 가치든 지녀야 한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보다 고통이 덜하고 부정의가 적고 투쟁도 덜 일어나는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이나 어떤 상상의 예시에 의해 고무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한마디로 명상에 근거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철학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테고, 그 철학이 참이라고 생각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지도 않으리라. p1008

 

제31장 논리 분석철학

피타고라스 시대 이후 철학사에서는 주로 수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와 경험과학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자 사이에 대립이 존재했다.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그리고 칸트는 수학에서 영감을 받은 수학파에 속하고,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로크에서 현대까지 이르는 현대 경험주의자들은 반대파에 속한다. p1030

 

나로서는 이러한 종류의 편견을 도덕적인 근거와 지적인 근거 둘 다에 입각해서 거부한다. ... 진정한 철학자는 모든 선입견을 검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진리 추구에 어떤 제한을 받게 되면, 철학은 공포심으로 마비되어 ‘위험 사상’을 퍼뜨리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검열을 준비하게 된다. 사실상 진리 추구에 제한을 둔 철학자는 이미 자신의 탐구 활동에 검열 장치를 마련해둔 셈이었다. p1037

 

객관적인 철학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 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p1038

 

3. 내가 저자라면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왜 선생님은 이 책을 심화학습 목록에 넣으셨을까 생각해봤다. 그만큼의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겠지.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시 넘기려면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책이 전에 읽었던 그 책이 맞나. 그 때는 어떤 맘을 먹고 시작했던 것일까. 채 1년도 안된 2차 레이스시절이 꿈만 같다. 벌써 나태해진 것일까.

 

읽기도 버거운 이 책을 쓰겠다고 맘먹었을 때 저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록 자신이 쓴 분량도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그만큼을 쓰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읽어야 했을까. 또 생각하고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또 얼마나 걸렸던 것일까. 문든 조정래가 생각났다. 그가 대하소설인 ‘태백산맥’, ‘한강’을 쓰기 위해 피를 말리는 공력을 기울였다는 글을 보면서 숨이 턱하니 막히고 만다.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인생의 역작이랄 수 있는 글쟁이로 목숨을 걸만한 가치 있는 책 한권쯤 남길 수 있을까. 아니 그럴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올라야 할 태산을 눈앞에 두고 잠시 서서 가만히 돌아본다. 어찌어찌했든 간에 북리뷰가 서른 고개를 넘어섰다. 오십 고개 중 이미 절반도 더 왔다. 언제 넘나 싶었던 고개를 이제 스무고개 남짓만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1년 과정이 끝나면, 그 때는 스스로를 책임져야할 자유가 주어지겠지.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던 지금이 더 좋았다 싶어 할 순간들이 오겠지. 그래.. 그렇지. 러셀도 그러했으리라.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저작들 한 권 한 권을 읽다보니 어느 날 태산처럼 쌓여진 자신의 서재를 보게 되었겠지. 지금은 비록 코딱지만한 책장 서너 개에 불과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러셀처럼, 조정래처럼 역작을 남길 수 있겠지. 그들도 시작은 나 같지 않았겠나.

 

공동저작이라는 좀 더 손쉬운 방법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변환과정에 통일성이 있어야 하며, 전후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서 앞과 뒤의 흐름이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되어야 한다던 그의 서문을 통해 다시 한 번 글쟁이의 근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미 지나온 나의 10년사이자 전주의제21의 10년 발자취를 정리하면서 겪는 나의 고통에 감히 비할 바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짐짓 새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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