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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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32] 서양철학사 다시 읽기 <The Best 50>
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회, 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 러셀은 각 시대의 철학을 종교, 수학, 과학 같은 다른 분야의 발전이나 사회, 정치 상황과 연결하여 서술한다. 따라서 러셀의 철학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비판서이자 흥미진진한 철학 이야기이다. p5
2.
여러 저자가 공동 작업을 할 때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있다. 역사의 변환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p9
3.
대부분의 철학사에서 철학자는 저마다 진공 속에 있는 듯이 등장한다. ... 이와 반대로 나는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p10
4.
철학적인 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
하나는 조상에게서 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 ...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p17
5.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8
6.
학설은 지금까지 말한 끝없이 반복되어온 동요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오직 장래에 일어날 일이 결정할 터이다. p28-29
7.
문명사회는 자기 관리에 의한 견제 수단인 사려나 예상뿐만 아니라 법, 관습, 종교를 통해 충동을 억제한다. 이로써 문명사회는 야만 상태에서 물려받은 충동을 억제하고 본능이 점점 덜 드러나게 하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 사유재산 제도는 여성을 예속시키며, 노예 계급을 만들어 낸다. 한편으로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p49
8.
디오시소스 숭배자는 사려에 맞선 반동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정을 회복한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자마자, 상상력은 일상적인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되면서 자유로워진다. 바쿠스 종교의식은 ‘종교적 열정enthusiasm'을 불러일으키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신이 그를 숭배하는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신의 숭배자는 자신이 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 .... 이러한 종교적 성향은 특히 플라톤에게도 적용되는데, 플라톤을 거치면서 이후 바쿠스를 숭배하는 종교 발전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p49-p50
9.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p57
10.
우선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생물로 탈바꿈한다. 더 나아가 존재하는 무엇이든 일정 주기로 순환하는 변화 속에서 다시 태어나므로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순환 주기의 변화 속에서 생명을 타고난 존재들은 모두 혈연관계로 맺어진다. 피타고라스도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동물과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p72
11.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독특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불을 근본 실체로 생각했다. 만물은 불 속의 불꽃처럼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탄생한다고 한다. “죽어야 할 자는 불멸자이고, 불멸자는 죽어야 할 자이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살고 다른 존재를 살림으로써 죽으리라.” 세계에는 통일성이 있으나, 대립물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통일이다. p82
12.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88
13.
소피스트들들 가운데서는... 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지식은 종교나 덕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 그들은 오늘날의 변호사처럼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논증하는 방법을 보여줄 채비는 갖추었으나, 자신들이 이끌어낸 결론을 실제로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시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안겨주었을 터이다. 그들에게 소피스트들은 경박하고 부도덕한 자들로 보였다. p131
14.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p143
15.
우리는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가는 유효한 최선의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계급에 속한 구성원이나 한 나라의 국민은 공통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흔히 다른 계급이나 다른 나라의 이익과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인류 전체를 위한 몇 가지 이해관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치적 행동을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마 인류를 위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미래 어느 날엔가 실현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한 확실히 실현될 수 없다. 또 그날이 오더라도 일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상호 적대적인 특수한 이해관계들 간에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p169
16.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이점은 사적인 소유 감정이 아주 약해지게 함으로써, 사유 재산제 폐지의 묵인이나 공공 정신에 따른 지배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데 있다. 성직자 계급을 독신 생활로 이끈 동기도 대체로 이와 유사했다. p175
17.
플라톤의 이상 이론을 요약한다. 우리의 문제는 이것이다.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통속적인 호기심만으로 철학자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고친다.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리 통찰이란 무엇인가? ...
철학자는 사실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앞 사람은 의견opinion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knowledge을 얻는다. p185
18.
여기서 차츰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넘어가는데, 이에 따르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채, 뒤쪽에서 모닥불이 비쳐 앞에 가로놓인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에 비유된다. 죄수들과 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보는 사물은 전부 뒤에 놓인 물체들이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다.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림자들을 실재인양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 물체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마침내 몇 사람이 드디어 동굴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나가게 된다. 동굴에서 벗어난 사람은 난생 처음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는 이제까지 그림자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이 수호자에 적합한 부류의 철학자라면, 이전에 함께 지낸 동료 죄수들을 만나러 동굴로 되돌아가서 진실을 깨우치고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알려주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죄수들을 설득할 때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데, 햇빛으로 나오면서 죄수들보다 그림자를 능숙하게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전보다 더욱 바보처럼 보이는 탓이다. p191
19.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 말하자면 실재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철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렇게 쌍을 이루는 개념들은 제각기 먼저 놓인 개념이 다음 놓인 개념보다 실재하는 정도와 선한 정도에서 우월하다. 이러한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이 자연스럽게 파생한다. 그리스도교는 금욕주의 도덕을 일부만 받아들이고 전체를 다 수용하지는 않았다. p202
20.
정화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현상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 이렇게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풀려나는 현상을 바로 죽음이라 한다네. ...... 참 철학자들, 그들만이 늘 영혼을 육체에서 풀어놓으려 하지. 만물을 다 바꿀 수 있는 진짜 화폐는 바로 지혜라네. p206
21.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인간으로서 성인들의 성찬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 p212
22.
신은 영원한 순수 사유로서 행복, 즉 완전한 자기충족의 상태에 있어 실현되지 않은 목적이 하나도 없는 존재이다. 이와 반대로 감각 세계는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생명, 불완전한 욕망, 불완전한 사유에서 비롯된 염원을 드러낸다. 모든 생물은 정도가 크든 작든 신을 의식하기에, 신에 대한 염원과 사랑으로 활동하며 신을 향해 움직인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p246
23.
“은총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신의 활동은 관조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 존재 가운데 철학자의 활동은 신과 가장 흡사하므로 최고 행복이며 최선의 활동이다. p258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24.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산주의를 불쾌하게 여긴다. 그는 공산주의가 게으른 사람들을 향한 분노로 이어지고, 길동무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다툼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재산은 개인의 소유여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이 재산을 널리 사회 일반에 걸쳐 사용하도록 자비의 덕을 갖추게끔 훈련해야 한다. 자비와 관대함은 덕이며, 사유재산이 없다면 실현할 수 없다. p268
2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 “항상 우주 안의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그대 안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영원무궁한 존재에서 시작되어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며 그대가 존재하기 위한 생명의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국가에서 차지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한 공동체라는 스토아 학파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p363
26.
로마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 ..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이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 넷째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 p369
27.
우리가 그들(아랍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동로마 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그리스 전통의 일부분이나마 직접 계승한 자들은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 바로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접촉을 통해 11세기 지식의 부흥이 시작되어 스콜라 철학에 이르렀다. ... 만약 아랍인들이 그리스 전통을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르네상스인들은 고전 지식의 부활로 얻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p384
28.
그러나 이런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모든 것을 끊어버려라. p393
29.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회 권력이다. 교회는 철학적인 믿음체계와 사회, 정치 상황이 400년경부터 1400년경까지 이르는 중세 시대의 이전과 이후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을 맺도록 주도했다. 교회는 일부는 철학과 관련이 있고 일부는 성스러운 역사와 관련이 있는 신경信經에 근거하여 형성된 사회제도이다. 교회는 바로 그 신경을 매개로 권력을 쟁취하고 부를 축적했다. p405
30.
후기 로마가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그리스도교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요소는 철학에서 유래한 몇 가지 믿음으로 주로 플라톤과 신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에게서 비롯되지만 일부는 스토아 학파에서도 유래했다. 둘째 요소는 유대인들에게서 유래한 도덕 개념과 역사 개념이다. 셋째 요소는 대체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특징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이론, 특히 구원 이론으로, 일부는 오르페우스교와 근동 지역의 유사한 이교 종파에서 유래한다. p412
31.
가장 흥미로운 저술은 ‘에녹서’로서, 마카베오 가문 시대 직전, 기원전 64년 무렵에 여러 저자가 쓴 합작품이다. 에녹서는 대부분 족장 에녹의 묵시적 환영을 고백 형태로 기록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로 변하는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 초기 교부들은 에녹서를 정경正經으로 취급했으나,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에녹서는 세상에서 잊히고 19세기 초 에티오피아어 필사본 세 편이 아비시니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행방이 묘연했다. p423
32.
창세기 6장 2절과 4절을 확장한 부분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프로메테우스의 전설과 유사하다. 인간에게 야금술을 가르쳐준 천사들이 영원한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인육을 먹기도 했다... p424
33.
그리스도교는 복음서를 통해 바리새파를 나쁘게 생각하도록 배웠지만, 12족장의 유언서의 저자는 바리새파로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바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 윤리 격률들을 가르쳤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첫째,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사정에 비추어 보아도 틀림없이 예외적인 바리새파에 속했다. 둘째, 우리는 어떤 운동이든 보수화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셋째, 우리는 특히 바리새파 신도들이 율법을 절대적인 최후의 진리로 믿고 헌신하게 되자마자 사고와 감정의 신선한 활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p427
34.
그노시파는 선민사상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노시스파, 아니 그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감각계를 창조한 존재가 소피아(천상의 지혜의 여신)의 반항아이자 얄다바오트Ialdabaoth로 불리는 열등한 신이라 주장했다. 그노시스파는 얄다바오트가 바로 구약성서의 야훼이며, 뱀은 사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브에게 야훼의 속임수에 맞서라고 경고했다고 말한다. 최고신은 오랫동안 얄다바오트가 자유롭게 본분을 다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최고신이 아들을 보내 인간 예수의 몸에 잠시 머무르도록 하여 모세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켰다. p431
35.
죄가 영혼과 신이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본질적 요소가 되는 까닭은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일 수 있는지, 죄를 지은 영혼이 어떻게 창조된 세계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지 죄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의존한 신학은 당연히 죄의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p458
36.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 민족의 역사 모형을 그리스도교에 맞게 변경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맞게 변경했다. 마르크스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용어사전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야훼=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마르크스, 선민=프롤레타리아, 교회=공산당,
그리스도재림=혁명, 지옥=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공산사회 p480
37.
그러나 황제와 교황은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고 말았다. 중세의 권력 이론에서 주장한 그리스도교계의 통일은 세속 영역에서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의 각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고, 종교 영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써 무너졌다. p518
38.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경우 이 시기는 당 왕조 시대로, 중국 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 인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이슬람교 문명이 번성했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 세계는 문명을 잃어버리기는커녕 그와 정반대였다. 아무도 서유럽이 후대의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유럽 문명이 곧 문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협소한 견해이다. p525
39.
성직자 계급 전체의 권력 형성은 성직자 개개인의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모든 개혁 성직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p538
40.
교황 권력에 관한 여덟 가지 문제
첫째, 개인은 교회와 국가 안에서 두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세속 권력은 신으로부터 직접 나오는가, 아닌가?
셋째, 교황은 세속 지배권을 황제와 다른 군주들에게 부여할 권리를 가지는가?
넷째, 선거인단의 선출은 독일 왕에게 충분한 권력이 부여되는가?
다섯째와 여섯째, 교회는 왕들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하는 구교의 권리행사를 통해 어떤 권리를 획득하는가? 일곱째, 부정한 대주교가 거행했다면, 대관식은 유효한가?
여덟째, 선거인단 선출이 독일 왕에게 황제의 칭호를 부여하는가? 이 문제들은 모두 당시 현실 저치와 관련된 뜨거운 감자였다. p614
41.
13세기로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순수한 그리스 철학, 특히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레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 오르페우스교와 신비 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인 이러한 동양의 종교들은 그리스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을 변모시켰으며, 결국 라틴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도 바꾸었다. 죽었으나 부활한 신, 그 신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을 먹는 성찬 의식, 세례식과 유사한 어떤 의식을 통해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제2의 탄생은 이교 로마 세계의 대다수 종파들에게 신학의 일부로 수용되었다. 이와 같은 동양 종교적 요소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 금욕적인 육체에서도 벗어난 해방의 윤리와 결합했다. p620
42.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시기의 정신적 전망은 ...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근대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국가 권력은 처음에 주로 왕의 수중에 있다가, ... 민족국가의 권력이나 국가가 수행하는 기능은 근대 전체에 걸쳐 꾸준히 증가한다. ... 봉건 귀족정치는 부유한 상인 계층과 동맹을 맺은 왕정으로 대체되고 귀족과 상인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는데, 권력 배분의 비율은 나라마다 달랐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상인들이 귀족 계급으로 흡수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p638
43.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은 근대를 구분하는 소극적 특징으로 과학의 권위를 수용하는 적극적 특징보다 앞서 나타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에서 과학의 역할은 미미했다. 교회에 반발한 사람들은 고대와 연결되는 고리를 마음속으로 찾아낸 데 이어 과거로, 초기 교회나 중세가 아닌 더욱 먼 과거로 시선을 돌렸다. 과학의 갑작스런 등장을 진지하게 논의하게 된 최초의 사건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담은 서적의 출간이었다. ... 과학과 교리를 사이에 두고 기나긴 투쟁이 벌어졌는데, 교리를 고수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새로운 지식에 저항해 싸웠으나 언제나 패배했다. p639
44.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규율은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정치적이든 르네상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스콜라 철학과 교회 정부와 결부되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몰두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협소했으나 일종의 정확성을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그래도 근대 철학은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 데카르트 철학을 보면, 그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에 근거해 모든 지식을 확립하고 명석성과 판명성을 진리의 규준으로 수용한다. ... 완전한 무정부주의에 이르러 종말을 맞았다. 이런 극단적 주관주의는 일종의 광기로 나타난다.
그러는 사이 기술로서 수용된 과학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론 철학자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놓았다. 기술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대로 맡겨지는 일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 이제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 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도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p641
45.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이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p650
46.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은 고대에서 토대와 증거를 찾은 미신적인 신념을 마음에 품었다. 마법과 요술은 사악하지만, 불가능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인노켄티우스 8세는 1484년에 마법을 금하는 교서를 내렸는데, 그로 인해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마녀에 대한 무시무시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자유사상가들 사이에서 점성술이 특히 높이 평가되면서 고대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고대에 속한 온갖 종류의 무의미한 미신을 받아들이려 마음을 활짝 열었다. 도덕적인 면에서도 교회에서 해방됨으로써 나타난 최초의 결과는 똑같이 참담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도덕 규칙이 더는 존중되지 않고, 각 국의 통치자는 대부분 배반과 모략으로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냉혹하고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p652
47.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마저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천재들은 제각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후 맛보기 어려웠던 자유를 누리면서 재능을 꽃피웠다. p653
48.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정치적으로 패배했다”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실패한 예언자의 부류에 속한 인물로서 사보나롤라를 꼽으며, 다른 쪽 부류에는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를 꼽았다.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관례는 르네상스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p655
49.
그의 가장 유명한 저술인 군주론은 1513년에 집필하여 로렌초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헛된 희망으로 드러났다)을 품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에 흐르는 논조의 일부는 아마 이런 실제 목적에서 비롯된 듯하다. 같은 식에 쓴 더 방대한 저술, 로마사 논고에는 공화제와 자유주의에 더 비중을 두고 지지한 면이 더 두드러진다. 그는 군주론의 첫머리에서 공화국에 대해서는 다른 저술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논의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군주론만 읽고 로마사 논고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학설에 편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저술가로 살 수밖에 없었다. p655
50.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 라틴어 ‘모로스moros'가 바보를 뜻하기 때문에 어울린다는 농담 섞인 암시를 덧붙이며 책을 토머스 모어에게 바쳤다. ... 바보 여신은 지혜의 해독제로 아내를 얻으라고 충고한다. “아내라는 피조물은 무해하고 바보 같지만, 인간의 딱딱함과 침울한 성미를 완화하여 유연하게 할 때 유용하고 편리한 존재이다” 누가 아첨이나 자기애 없이 행복하겠는가? 그런 행복은 어리석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야수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최상의 행복은 망상에서 비롯되는데,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p667
51.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꺼어들 여지는 없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설명을 할 때는 목적 개념이 더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p695
52.
인간이 자기만족에 도취된 데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작용했다. 핼리는 혜성 출현의 신비를 풀어 시시한 현상으로 만들었으며, 지진이 여전히 가공할 만한 현상이기는 해도 과학자들은 지진을 두려워하고 한탄만 하지 않고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받아 들였다. ... 이 모든 일에 과학의 승리가 더해지고 나면, 17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일마다 악행을 고백해아 하는 비참한 죄인이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놀랍지도 않다.
p696
53.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인데,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그는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한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p702
54.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이 실재하는 일이든, 태초부터 끝까지 이어진 원인들의 연쇄과정의 일부이든, 당신은 불행한 사건들이 당신에게만 불행할 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746
55.
“나도 희생자야! 그를 죽였기에 나의 범죄 행각도 끝이 났군. 내 존재의 저주받아 마땅한 비참한 재주도 종말에 이른 거지! 오 프랑켄슈타인이여! 너그럽고 헌신적인 존재여! 이제 그대에게 용서를 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대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을 파멸시키고 그대마저 죽여 돌이킬 수 없게 만든 나. 아아! 그대는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나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네... 섬뜩한 내 죄상의 목록을 훑어보니, 내가 한 때는 고귀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통찰하고 선으로 충만한 생각을 하던 그 피조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구나. 그러나 바로 그러한 존재가 나인 것을 어쩔 것인가. 타락한 천사는 악의에 찬 불길한 악마로 변했다. 신과 인간의 적인 악마조차 광야에서 자기 친구와 공범자를 만나 어울리는데, 나는 홀로 처량하구나.” p864-865
56.
책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소망을 품은 사람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생존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원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독한 느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봉사한 사람들이 그의 자아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은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들이 사회적 구속에 반항하는 한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에서는 사랑의 관계 자체가 너무 빠르게 사회적구속이 되어버리고 사랑의 상대는 증오의 대상으로 변해서, 만약 사랑이 그러한 속박을 벗어던질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면 더욱 격렬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사랑을 투쟁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러 각자는 상대방 자아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서 서로 파괴하려 한다. 이러한 관점은 스트린트베리의 작품을 통해 잘 알려졌으며 로렌스의 작품을 통해 더더욱 친숙해졌다. p867
57.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도처에 그를 구속하는 사슬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자유는 루소 사상의 명목상의 목표였고, 사실 그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유를 희생시켜서라도 지키려 한 가치는 평등이다. p883
58.
루소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이미 알아보았듯이 고대 도시국가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루소도 지적하듯이 직접 민주주의가 결코 완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제도인 까닭은 국민들을 언제든 소집하기 어려우며 그들이 언제나 공적인 일에 전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들의 종족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정부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터이다. 그렇게 완벽한 정부는 인간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p888
60.
19세기 지성인들의 삶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 더 복잡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관계를 주고받는 구역이 전보다 더 넓어져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유럽인들은 곧나 현대의 인도 철학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둘째, 17세기 이후 새로운 경험의 주요 원천이었던 과학은 특히 지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유기 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다. 셋째, 기계에 의한 생산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으면서, 물리적 환경에 관계하는 새로운 힘의 개념을 제시했다. 넷째, 사상,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통적인 체계에 반하는 철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둘 다에 걸친 의미 심장한 반항은 그때까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러 종류의 신앙과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항은 매우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등장했는데 하나는 낭만주의적 반항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적 반항이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거쳐 무솔리니와 히틀러까지 이어진다. 합리주의적 반항은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더불어 시작되어, 얼마간 완화된 형태로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난 뒤 소련에 유포되었다. p910
61.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그의 염세주의 사상은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듯이다. ...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이든 염세주의이드 우리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염세주의자가 되느냐, 낙관주의자가 되느냐는 기질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p960
62.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노예도덕’을 수용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 그리스도교는 다른 어떤 종교든 형이상학적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사실상 종교는 모두 거짓이라 확신한 니체는 모든 종교를 전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 판단한다. 그는 가정된 신의 의지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계몽철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신의 의지를 지상의 ‘예술가폭군’들의 의지로 대체하려 했다. p967
63.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마음을 길들이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잘못이다. 야수는 야생에서는 광채를 내지만, 길들면 빛을 잃는다. .. 니체는 정신착란 주기라 부른 회개와 속죄를 혐오한다. 우리가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까닭은 “2000년 동안 우리가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십자가가에 못 박는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파스칼에 관한 웅변조의 구절을 인용할 만한 까닭은 그리스도교에 맞선 니체의 반론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p968
64.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p989 (칼 마르크스)
65.
마르크스 합리주의가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발전의 추세에 대한 해석이 사실이며 일어날 사건들이 확증해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계급 이익이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또 설득하려 하지 않고 계급투쟁에 모든 희망을 건다. 따라서 그는 실제로 권력정치에, 그리고 지배 종족을 지지하는 학설은 아니지만 지배 계급을 지지하는 학설에 몰두한다. 그는 진실로 사회 혁명의 결과로 계급 구분이 결국 사라져서 정치와 경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바뀔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처럼 머나먼 이상이며, 그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정치 이념이상의 정통 신조가 강요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p996
66.
베르그송의 철학을 분류하려는 시도가 성공하기 힘든 까닭은 그의 철학이 공인된 기존의 모든 구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어쩌면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유용할 철학 분류법이 한 가지 더 있다. 구분 원칙은 철학자가 철학하도록 이끌었던 두드러진 욕망에 따른다. 이렇게 하여 철학은 행복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감정철학, 지식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이론철학, 행동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실천철학으로 분류된다.
우선 낙관적인 철학이나 비관적인 철학, 구원의 계획을 제시하는 철학이나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입증하는 철학을 모두 감정철학으로 간주하며, 이 부류에는 대부분의 종교철학이 포함된다. p998
67.
무엇보다 기억 속에 지속이 드러나는 까닭은 기억 속에서는 과거가 현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 이론은 베르그송 철학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물질과 기억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보여주며, 양자는 바로 정신과 물질의 교차점인 기억의 분석을 통해 실재하는 존재로 긍정된다. 베르그송은 보통 기억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며, 두 활동의 구분을 강조한다. .. “과거는 두 가지 별개의 형태, 첫째는 자동기계작용의 형태로, 둘째는 독자적인 상기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어떤 시를 암송한다면, 다시 말해 이전에 시 낭송을 반복하는 일정한 습관이나 기계적 절차를 습득했다면, 그가 시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적어도 이론상으로 시를 낭송했던 이전 경우를 전혀 상기하지 않고서도 시를 암송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종류의 기억에서는 관련된 과거 사건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p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