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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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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 08시 22분 등록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2009. (주)을유문화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by BERTAND RUSSELL, 1996


* 저자에 대하여


  20세기 대표적 지성이란 평가를 듣는 버트란드 러셀(영국, 1872~1970)은,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학문과 현실 분야에 참여한 활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수학과 철학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나 그 외에도 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 역사, 정치학, 논쟁술 등 많은 분야에서 7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대안학교를 직접 수립하기도 했으며 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작 <수학의 원리>(1903), 상업적 성공을 거둔 <서양철학사>(1945), 가장 훌륭한 저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자서전>(1967~1969)까지 60년 이상 고른 저술활동을 했으며, 일반대중을 위한 개론서와 에세이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을 펴냈다.   

  엄청난 저술활동을 하는 동시에 현실 문제에도 직접 뛰어들어 활동했으며, 자유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벌금형을 받고 모교인 캠브리지 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기도 했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쳐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지식과 실천 양쪽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어려움은 영국에 돌아와 교수가 되고(1944) <서양철학사>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사회적 명성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부터 평화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수소폭탄 실험을 반대하여 아인슈타인과 공동성명을 내고 핵무장에 반대하는 과학자모임의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90세가 넘는 나이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사르트르와 함께 국제전범재판소를 소집하는 등 평생에 걸친 평화운동, 핵무장 반대운동을 했다. 

  35세에 여성의 참정권과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낙선이 예상되는 하원의원에 입후보했을 정도로 진보적이었으며(물론 낙선함) 88세에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적 불평등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서 경제혁명을 통해 경제 정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미국의 패권주의와 ‘힘에 대한 도취’를 경고하며 약자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러셀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나, 3살 때 어머니가 병사하고 2년 후 아버지도 죽어 형과 함께 청교도였던 할머니 밑에서 양육되었다. 가정교사를 통한 교육으로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없었으나 일찍부터 자신의 내면세계에 눈을 뜨고 확실한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이런 성장 과정의 영향 탓인지 러셀은 ‘행복’과 ‘사랑’에 대해서 평생 관심을 가졌다. 4번의 결혼과 많은 연애 속에서 어느 정도 행복과 사랑을 성취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러셀의 자서전을 통해서 꼭 확인해 볼 생각이다- 평생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불같은 열정을 쏟은 것만은 확실하다.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행복의 정복>서문), ‘보편적인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사>)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행복과 사랑에 대한 확신이 러셀을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또한 자서전에서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추구, 인류의 아픔에 대한 연민’이 자신의 인생을 이끈 화두였다고 스스로 밝혔듯이, 또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는 감옥에서 썼듯이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을 평생 행동으로 옮긴 러셀은, 자신의 신념과 불같은 열정을 이성과 분석이라는 논리적 방법으로 세상에 마음껏 표출한 20세기 영웅이었다.


(러셀은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행복을 경시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본문 823p. 그러나 나는 기꺼이 러셀에게 ‘영웅’의 칭호를 붙이고자 한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자, 우리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영웅이었다.)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 지은이 서문


각 세대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와 철학적 주제를 선택하는 능력의 탁월함과 더불어 자신감 넘치는 명료한 서술이 돋보인다. ... 명료성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5]

1. ‘명료성’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이야기해왔다. 명료한 글이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읽히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상의 일들 속에서 의미를 이끌어내고 삶의 통찰을 던져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단순한 당위와 의지만으로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내가 가장 감동적이었을 때를 돌이켜보자. 누군가 나에게 설교할 때가 아니다. 그의 삶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고 보다 큰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을 볼 때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나의 맘을 흔들었다. 점차 감동이 사라져가는 시대라고들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감동에 목이 마르다. 삶의 작은 감동들, 자신의 삶 속에서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내가 찾아야 하는 것들이다. 책 속에서 찾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찾는다. 또 소개받는다. 그 구슬 같은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내자. 내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잼나게 풀어내는 능력이 약하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내자.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낸 사람들, 특히 일과 삶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자들, 또 그런 여자 주변의 남자들, 그런 노력을 통해서 조화로운 삶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우리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들이다. 얼마나 감동적일까. 또 삶의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이야기일까. 또한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는 기록도 충실히 남기자. 그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철학과 사회, 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5]


그리스 문명은...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이다. ... 그리스인들의 기여는 수학과 연역 기술을 발명했다는 점에 국한한다. [6]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불식간에 사용된 전제들을 세밀히 조사하고 기초 원리를 끈질기게 검토해 보는 것이다. 옳다는 근거가 없다면 어떤 전제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말하는 분석적 방법의 핵심이다. [6]

2. 내가 가진 강점들,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나의 글쓰기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지 말것. 물론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사례를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주제는 가설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좁은 세계에 갖추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협되게 해석하지 말자. 이런 점에서 ‘좋은 기업을 넘어 훌륭한 기업으로’의 짐 콜린스의 글쓰기 방법을 참조할 것. 각 장 뒤편에 실은 요약면에서 맨 마지막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넣었다. 즉 가설을 세우고 사례를 모으고 분석하면서 처음의 가정과 다르거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자체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매일 쓰는 일지에 이 부분을 꼭 넣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과 스파르타에 대한 동경, 오르페우스교의 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이해가 된다. 로마 시대에 독창적인 철학이 생겨나지 않고 일종의 처세 철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로마 행정의 지배력이 강하고 일상의 삶이 투쟁으로 점철되었던 탓이다. 일정한 시기에 사회 통합에 기여한 철학도 사회, 정치 환경이 바뀌면 영향력이 약해져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다른 철학이 형성되면서 기존 철학을 대체한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된다. [7]


가톨릭교 내부에서 일어난 정통신앙과 이단사상의 충돌은 가톨릭 제도 개혁의 계기인 동시에 개신교 성장의 계기가 된 종교 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7]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8]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8]

3. 철학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닐까.

새로운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버렸다. 해방세대인 부모님, 386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 그리고 우리 자녀가 맞이할 미지의 세대. 이미 우리의 자녀는 조부모들이 겪었던 시절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이 살아야 할 2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흔히 우리 세대가 부모님을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족관계,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도 크게 변하고 있다. 사랑을 가진 자발적 헌신, 그러나 그 헌신이 개인의 희생이 바탕이 된 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서로의 따뜻한 안식처가 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걸까.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변화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가 둘이 되고 또 셋, 넷이 되는 자연스런 흐름에 행복하게 동참하기 위해서 어떤 맘이 필요한 걸까. 혼자가 아닌 세상을 꿈꾸고 가정이 인간 본성에 반하는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가 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에 대한 꿈일까...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 나는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10]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10]

4. 철학에 대한 나의 기존생각은 완전 제로였다. 오래 전 이름도 어려운 사람들의 탁상공론, 그리고 지금 나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말잔치들... ‘윤리’를 배웠던 기억은 오히려 나쁜 인상을 남겨주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몇 천 년 전에 치열하게 논쟁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을 전해 들으며, 철학이 왜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가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짧은 몇 달의 과정을 보내고 다시 읽는 철학의 역사는 또 그 느낌이 다르다. 결국 삶은 아는 만큼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만큼 느끼는 것인가 보다. 이 책은 그 방대한 분량이 읽기 어려웠던 만큼이나 두툼한 뿌듯함을 안겨준 책이다. 

  

서론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17]


사람들은 왜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 인간의 행위는 셀 수 없이 많은 중요한 점에서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이론, 선과 악에 대한 이론에 좌우되었다. ...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말해주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따름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망각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신학은 사실상 무지의 영역까지도 안다는 독단적인 믿음을 이끌어냄으로써, 우주를 향한 일종의 주제넘고 오만한 태도를 양산한다. [18-19]

5. 얼마 전 누군가에게 들은 나의 첫 느낌, 내 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

조금은 충격이었다. 첫 인상이 좀 차가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지나보니  웃는 모습이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서 더 그랬나 보다.

오랫동안 같은 층에서 근무하던 언니가 있었다. 수선실에서 일하던 언니였는데, 조직구조상 나의 팀이었고 내가 결재를 해야 하는 중간관리자였다. 처음에 언니는 나를 어렵고 불편해했다. 도시락을 싸오고 정시퇴근을 하는 그녀와 점심을 사먹고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내가 업무 외 시간을 함께 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 공감대를 나눌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때 나는 폭주하는 업무 부담과 갑자기 늘어난 팀원들을 감당하느라 별 문제없고 조용한 언니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와 단둘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후 난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성실함과 긍정적인 모습, 그리고 현재에 대한 낙관에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니가 나를 엄청 대단하게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의 두 딸들이 나처럼 멋진 직장여성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뜨금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나에 대한 허상을 제공했던 것이다. 실상은 매일매일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일상에 지겨워하는 또 한명의 생활인이었을 뿐인데...

다시 한참 후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그녀의 말이다. 처음엔 굉장히 깐깐하고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똑같은 아줌마더라. 그래서 실망했냐는 나의 웃음 섞인 질문에 언니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참 대단하다^^

언니와의 일이 있은 후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좀 더 깊이있게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기를 바라고 기대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가 보다.       

내 위에 사람이 없어보였다는 느낌...

몇 달 전 첫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녀의 나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을까?

내가 활개치고 다닌 세상이 얼마나 작은 곳이고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그리고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들...

이런 것들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내가 부쩍 성장하는 시기가 되고 있다. 

나 자신을 믿는 것,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 이 둘의 조화가 내가 지금의 벽을 깨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19]


종교와 과학이 그렇듯이 사회 결속과 개인의 자유는 전 시기에 걸쳐 갈등을 빚거나 불안정한 타협 상태를 유지한다. [19]

6. 전체를 위한 개인이냐, 아니면 개인을 위한 전체인가, 한 개인의 사고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중요한 철학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둘의 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에겐 진보냐 보수냐의 편가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유덕한 삶을 시민과 도시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영혼과 신의 관계로 생각했다. [20]


그리스도교는...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정치적 주장보다 종교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발생한, 신에 대한 의무와 국가에 대한 의무 간의 갈등은 교회와 왕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 형태로 변모했다. [21]

7. 한번도 제대로 된 신앙을 가져보지 못한 나는 신에 대한 의무가 참 궁금하다. 어떤 것이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일까? 이 궁금함 때문에 나는 이 사상이 나타나 있다는 소포클라스의 <안티고네>를 읽기로 결정했다.


주된 이유는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23]


중세는 사상의 측면에서는 율법준수의 열정과 명확한 정치권력 이론이 지배한 시대였다. 모든 권력이 궁극적으로 신에게서 유래한다고 믿었다. [24]


사람을 지도할 원칙이 없어지면 정치는 적나라한 권력 투쟁으로 변모한다. ... 도덕이 붕괴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무정부 상태와 정치적 배반 행위로 ... 이탈리아인들은 ...문명은 뒤처지지만 사회 결속력이 강한 국가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24]

8. 그리스에서 로마로 다시 신흥강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 등으로 유럽의 주도권이 이동한 의미와 원인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었다. 지나친 문명의 발달과 이로 인한 도덕과 원칙의 해이. 그럼 지금 미국이 쥐고 있는 세계의 주도권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종교개혁은 주로 다시 살아난 로마의 지배에 반대한 북부 유럽 민족의 반항이기도 하다. ... 이들은 민족적 동기, 경제적 동기, 도덕적 동기가 한데 결합되어 로마 교황청에 강력히 저항했다. [25]


가톨릭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종교개혁은 로마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25]

  

진리는 더는 권위자에게 물어서 확인하지 않고, 내적 성찰을 통해 확인했다. ...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상 면에서도 주관주의가 계속 심화되어, 주관주의는 초창기 다방면으로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를 부여했지만, 결국 건전한 사회생활에 적대적이고 해로웠으며 개인을 사회에서 분리하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다. [26]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이것은 버클리와 칸트를 지나 피히테로 발전해나가는 첫 단계일 뿐이며, 피히테에 이르면 모든 존재가 단지 자아에서 유출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분명히 불건전해 보이며, 이후 철학은 이런 극단적 입장에서 벗어나 상식적인 일상 세계로 탈출하려는 시도로 점철된다.  [26]

9. 첫 번째 이 책을 읽을 때 이해가 잘 안되던 부분들이 있었다. 이 부분 또한 그렇다. 그런데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약간 읽으면서 데카르트의 이 객관적 사유와 그것이 이후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이 기쁨과 즐거움을 평생 잊지 말아야겠다.  


철학 분야의 주관주의와 정치학 분야의 무정부주의는 손을 맞잡고 나아간다. [26]


현대적인 형태의 무정부주의는 반종교적인 성향을 띠기는 하지만 여전히 초기 개신교 정신에서 많은 부분을 이어받는다. ... 도덕 측면에서 개신교가 강조한 개인의 양심은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와 일맥상통한다. [27]


예술, 문학, 정치에 나타난 낭만주의 운동은 인간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주는 응시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7]


형태가 더 불건전한 주관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반동 -중도적인 타협의 철학인 자유주의 학설은 정부와 개인에게 각각 영역을 정해주려 했다. 로크 [27]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규율주의자 - 행복은 선이 아니며, 고결함과 영웅적 행동을 선호,

             인간 본성의 비합리적인 면에 공감, 이성이 오히려 사회결속을 해친다.

자유주의자 - 과학적, 공리주의적, 합리적 성향

=>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8]


사회 결속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류는 합리적 논증만으로는 결코 결속을 강화하지 못했다. 공동체를 이룬 사회라면 대립하는 두 가지 위험 요소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한쪽에는 너무 강력한 규율과 전통에 대한 지나친 존경 때문에 경직될 우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인주의 성향과 개인의 독립심 때문에 협동과 협력의 토대를 상실하고 결국 분열되거나 외부 세력에게 정복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8]

10. 질서와 자유의 투쟁...

한 번도 이런 관점에서 사회를, 그리고 공동체를 바라보지 못했었다. 또한 내가 질서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게 강해서 내안의 자유, 그리고 내 주위의 자유, 그리고 공동체의 자유를 무의식중에 배척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 관점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오히려 나는 스스로를 비이성적인 관습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질서와 조화를 원하는 만큼, 변화와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된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까지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느린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겠다. 사람과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29]



제 1권 고대 철학

제 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 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전 6세기 초에 동시에 탄생했다. [35]


종교가 제국의 통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 동기는 종교의 원시적 특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신들은 통치권과 결합되면서 도덕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37]


바빌로니아의 종교는 이집트와 달리 내세의 행복보다 현세의 번영에 관심이 더 많았다. [37]


호메로스의 시는 중세 후기의 궁정 소설과 마찬가지로 교양을 갖춘 귀족 계급의 관점을 대표하며,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미신을 서민적이고 비속하다고 해서 무시한다. ...호메로스는 원시성과 거리가 먼 검열관의 위치에서 고대 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이상을 간직했다....쇠퇴기에 이르자 호메로스가 단호히 제거한 원시 신앙들은 고대 내내 절반만 묻힌 채 존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42-43]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보다 종족이나 부족을 위해 생겨났다. ...농작물의 풍작이나 동물과 인간의 다산을 기원했다. [43]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호메로스의 신들은 정복을 일삼는 귀족 계급의 신들로서 실제로 땅을 일구는 농부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풍작의 신이 아니었다. [44]


디오니소스 숭배가 그리스에서 성행한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명이 급속히 발전한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 적어도 특정 부류 그리스인은 원시성을 갈망하고, 당대의 도덕이 허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본능에 충실한 더욱 정열적인 삶의 방식을 동경했다. ...문명인은 장래의 쾌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이러한 인내 습관은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 문명사회는 자기 관리에 의한 견제수단인 사려나 예상뿐만 아니라 법, 관습, 종교를 통해 충동을 억제한다. 이로써 문명사회는 야만 상태에서 물려받은 충동을 억제하고 본능이 점점 덜 드러나게 하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48-49]

11.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기 위해서, 또 농경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유보하는 것, ‘마시멜로 이야기’로 한창 이야기되기도 했던 ‘만족유보능력’, 그런데 미래의 행복이 현재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작은 승리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현재의 작은 기쁨과 미래의 목표를 위한 노력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지금, 이곳의 삶일 것이다.


사려하면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최선의 요소들 가운데 일부를 쉽게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점을 회복한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자마자, 상상력은 일상적인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되면서 자유로워진다. [49]

12. 지나치게 현실을 강조하면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린다!

나 자신, 그리고 한창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배워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현실의 빡빡함을 들이대지 말자. 현실을 직시하지만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방법, 근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사려와 열정 사이에 나타난 갈등은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순수 과학만으로 문명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인간에게는 열정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50]

13. 어른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승진을 준비하는 것처럼 수학과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일 것이다. 삶의 현실적인 면을 배우고 지식을 배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의 열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다. 적어도 예술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예술을 배우자. 아니 느끼자. 이론과 지식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자. 그리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또 공부하자. 내가 모른다고 해서 아이들에게서 기회를 빼앗지 말자. 또한 한 발 물러서서 포기하지 말자. 함께 보고 함께 느끼자. 그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자, 삶일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열적이고 불행했으며, 지성이 인도한 길과 열정이 인도한 길에 내몰려 자신과 싸우고, 천국을 생각하는 상상력과 지옥을 만들어내는 고집 센 자기주장으로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 ...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경우에 한해, 그들은 바로 지성과 열정을 결합함으로써 위대해졌다. [57]

14. 지성과 열정 중 하나만 가지고는 결코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 또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위인들 중 삶이 행복하지 못했던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불행한 사람이기 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 가는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나의 열정에 항상 기름을 채우자.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


제 2장 밀레토스 학파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함)


학생들을 위해 쓴 철학사마다 첫 부분에서 철학은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언급한다. [61]


아낙시만드로스-만물이 제일 실체(무한,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음)에서 비롯됨 

               최초의 지도 제작자 [64-65]

아낙시메네스 -제일 실체는 공기, 서로 다른 물질들 간의 차이를 응축의 정도에 따른

              양적인 차이로 설명함 [66]


제 3장 피타고라스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68]


피타고라스 사상은 오르페우스교의 개혁 운동이고, 오르페우스교는 디오니소스 숭배에 대한 개혁운동이다. 역사를 관통하여 면면히 흘러온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대립은 처음 그리스인들 사이에 나타났는데, 올림포스 신들과 미개한 지역에서 숭배한 신들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 피타고라스는 독특한 중류의 지성적 신비주의였다. [71-72]


수학은 사색적인 생활을 찬미하는 윤리적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72]

15. 현재 삶에서 수학의 진정한 의미는 논리적인 추론과 사고력을 키우고 질서정연함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 <학문의 즐거움>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그 끝없고 무한한 아름다운 세계를 지겨운 계산과 규칙으로 물들이지 말자.

지우에게 즐거운 수학을 느끼게 할 방법을 찾고 기회를 만들자!


파타고라스에게 ‘정열과 공감에 휩싸인 관조’는 지성적 관조이며 결국 수학적 인식에 해당한다. [73]


관조적 삶의 이상은 순수 수학의 창조를 이끌었기 때문에 유익한 활동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74]


과학은 대부분 초기에 일종의 그릇된 신념과 연계되어, 허구적 가치를 부여하기 일쑤였다. ... 수학에 근거하여 사유가 감각보다 우월하고 직관이 관찰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했다. [74-75]


종말론적인 예언 종교와 대비되는 합리주의 성향의 종교는 피타고라스 이래, 특히 플라톤 이후부터 철저하게 수학과 수학적 방법의 지배를 받았다.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수학과 신학의 결합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근대 시기까지 종교 철학의 특징을 형성했다. [77-78]


제 4장 헤라클레이토스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쁨이며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다. [79]


그리스 정신의 일방적인 면 - 자명해 보이는 공리에서 시작하여 연역적으로 추론하지만, 관찰한 것에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해나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80]


역사적 상상력과 심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활동은 동시에 우리의 사고 폭을 넓혀주며,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린 여러 편견이 다른 정신적 기질의 지배를 받는 시대에는 얼마나 어리석어 보일지 깨닫게 한다. [81]


인류를 경멸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로지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3]


“술에 취한 사람은 비틀거리고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도 모르고 자기 영혼을 젖어들게 하면서 풋내기 녀석에게 끌려 다닌다.”

“누구나 자신의 가슴에서 솟아나는 욕망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욕망하는 바가 무엇이든 영혼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모두 얻는 것은 그들에게 좋지만은 않다.” [84]

16.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모두 얻는 것은 그들에게 좋지만은 않다...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까. 추측컨대, 인간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리라. 또한 모든 것을 가진 삶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리라. 어쩌면 죽는 날까지 기대와 바람, 즉 아쉬운 것을 가지고 사는 것이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대와 꿈을 가지고 평생 정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우리 본성이기 때문이리라. 


헤라클레이토스 - 영원히 계속되는 변화, 대립물의 혼합 학설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화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조화는 활과 리라처럼 대립하는 힘의 긴장을 조율하는 것이다.”

투쟁이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은 대립물의 조화 이론과 연결되는 까닭은 대립물이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통일되지만, 통일은 바로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쌍을 이루는 사물은 온전하면서 온전하지 않고, 함께 모이면서 떨어지며, 조화로우면서 조화되지 않는다.”  [86]

17. 바로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조화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조화와 안정을 강조하다 보면 처음 생각과 다르게 개인의 개성이나 상황의 특수성을 무시하기 쉽다. 이것은 지나친 질서의 강조와 함께 개인의 자유를 억누를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조화는 바로 이질성을 당연한 사람과 사물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결합되는 조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항상 유념하자.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태양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88]

18. 과거의 작은 성공,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지 말라. 늘 새로운 강물이 내 발 아래를 흘러간다. 또한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이미 흘러버린 강물이 아니라 바로 내가 딛고 있는 이 물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태양과 날마다 새로워지는 강물이 세상의 본성이며 사물의 본성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려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교는 두 가지 형태, 즉 신과 영혼 불멸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한다. [88-89]

19. 종교 내지는 신앙이 아직 내 맘 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종교적이지 않았던 가정환경과 바로 이 이유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평탄했던 삶이라고 쉽게들 말하는 것. 그런데 영원한 존재가 과연 있을까. 난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이 죽으면 그 후는 이미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철학자들은 시간의 제국에 종속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찾으려는, 위대하고도 끈덕진 탐구를 감행했다. [91]


제 5장 파르메니데스


그리스인들은 이론에서든 실천에서든 온건한 입장이나 중용을 취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92]


감각이란 우리를 속이고, 많은 감각 가능한 존재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93]


철학이 꽤 현대에 이른 시기까지도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수용한 사상은 역설의 극단을 보여준 모든 변화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실체의 불멸성이었다. [97]


제 6장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연의 변화 과정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지배를 받는다 [105]


제 7장 아테네의 문화


페리클레스 시대는 아테네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였다....

극소수에게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과 행복을 겸비하고 지성을 통해 행복해지는 일이 가능했다.

이러한 황금시대를 출현시킨 힘의 균형은 위태로워서 안팎으로 위협을 받았는데, 안에서는 민주정치가 그리고 밖에서는 스파르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107-108]


정치 체제가 붕괴했는데도 아테네의 특권은 유지되어, 거의 천 년간 아테네는 철학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109]


제 8장 아낙사고라스


아테네인들에게 처음 철학을 소개한 인물이자 물리적 변화의 제일 원인이 정신이라고 제안한 첫 인물이기도 하다. [110]


정신이 생물의 일부로 들어가 죽은 물질과 구별시켜주는 실체라 생각했다. [111]


제 9장 원자론자들


“이 사건은 어떤 목적에 이바지했는가?” 를 뜻하거나 “이전에 주어진 어떤 조건이 이 사건을 야기했는가?”를 뜻한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은 목적론적 설명, 혹은 목적인에 의한 설명이고, 뒤의 질문에 대한 답은 기계론적 설명이다....

기계론적 설명이 과학적 지식의 진보를 주도한 반면에 목적론적 설명은 그렇지 못했다. 원자론자들은 기계론적 질문을 했고, 또 기계론적 설명을 시도했다. [118]


지금까지 다룬 철학자들은 모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했다. ...단지 과학적 태도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넘치고 원기왕성했으며 지적 모험에서 얻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데모크리토스 이후 가장 우수한 철학에서조차 우주보다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소피스트  -회의주의

소크라테스-윤리

플라톤 -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 세계를 거부함

아리스토텔레스-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개념

=> 이들의 시대 이후 철학의 활력이 사라지고, 점차 미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 철학은 르네상스기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125]


제 10장 프로타고라스


기원전 5세기 후반 회의주의 운동 - 소피스트, 우두머리 프로타고라스 [126]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130]


객관적 진리를 불신하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는 법과 관습과 전통 도덕을 옹호한다. [130-131]


소피스트들은 논증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논증을 따라가다가 종종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지니게 된 결함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탐구를 하는 경우에 이미 도달해야 할 결론을 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132]

20. 당위론적 사고와 함께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

‘옳고 그르다’ 와 ‘같고 다르다’를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할 것.

잘 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연습할 것. 항상 신경쓰고 주의할 것.


제 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 11장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상상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매력 넘치는 작가이다.... 플라톤은 바로 허구를 창작하는 작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 때문에 역사가로서 지닌 재능을 의심받게 된다. [140]


나는 만약 여러분이 나를 죽이게 되면 나를 해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많이 해치게 된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입니다. ...

악한 사람은 자신보다 더 선한 사람을 해칠 수 없는 법이니까요. [145]


그는(소크라테스) 자기 확신에 찬 고매한 품성을 갖추었고, 세속적인 성공에는 무관심하며, 신의 음성에 인도받는다고 믿고, 명료한 사고야말로 올바른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득하는 사람이다. ... 영혼 불멸을 확고하게 믿으며, ... 내세의 삶이 행복한 삶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147]


소크라테스가 과학 문제보다 윤리 문제에 더 몰두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현명할 뿐이지만,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지식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고의로 죄를 짓지는 않으므로, 지식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덕을 갖추게 된다고 주장.

덕과 지식의 밀접한 관계... 그리스도교 윤리에서 순수한 마음은 본질에 속한 것이므로 유식한 자들뿐만 아니라 무지한 자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150]


변증법은 어떤 문제를 다룰 경우에는 적합하지만, 어떤 문제를 다를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는 면도 있다. ... 플라톤의 영향 탓으로 뒤이은 대부분의 철학은 변증법에서 유래한 한계에 제한받을 수 밖에 없었다. ...

변증법, 자유로운 토론 습관은 논리적 일관성을 증진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 목적이라면 소용없는 방법이다. [151-152]


제 12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파르타의 신화는 플라톤의 정치 이론과 후대에 등장한 수많은 저술가의 정치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53]


오늘날의 우리에게 스파르타 국가는 나치가 승리했더라면 이룩했을법한 국가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157]

21.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스파르타에 대한 환상을 많이 깨뜨려 주었다. 국가의 목적이 전사의 양성이고 시민의 삶의 이유가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서라니 소름끼치는 일이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질서와 평화로움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는가.

개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등과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상처는 햇볕을 쬐이고 말려야 제대로 아무는 것이다.


오랜 기간 스파르타인들이 자신들의 주요 목표인 무적의 전사 종족 육성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곤란하다. [158]


전쟁은 별문제로 하고, 스파르타의 현실은 이론과 동떨어져 있었다. [159]


그리스 세계가 동맹을 맺으려 할 때마다 스파르타의 지역주의가 걸림돌이 되어 실패하였다. [159]


평범한 시민들은 엄격한 통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자 비밀스럽고 불법적인 관능적 쾌락에 탐닉했다. ... 법률을 너무 가혹하게 적용한 결과가 빚어낸 현대의 모든 경험과도 일치한다. ... 이상주의와 권력애가 통합된 결과로 인간은 몇 번이고 길을 잃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160-161]


그리스인들이... 군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속할 능력이 없었던 탓이다. ... 그러나 낯선 민족들이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퍼뜨릴 만큼 감명을 준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의 천재들이었다. [161]


르네상스 시대 이후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플루타르코스에게 관심을 돌렸다. ...플루타르코스는 스파르타의 정치 제재를 찬양할 따름이다. [163-165]


제 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나 중세, 근대에 속한 모든 철학자에게 영향을 가장 크게 끼쳤다. [166]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이다.

 - 이상향

 - 이상 이론

 - 영혼 불멸

 - 우주론

 -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 [166]


플라톤은 아테네의 패배... 자신의 귀족 신분과 가족관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 등으로 민주주의를 경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의 모습을 그리는데 스파르타의 정치 체제를 참조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플라톤은 후세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편협한 제안을 치장하는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플라톤에게 순수하게 철학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들도 그가 스파르타를 지지하기 쉽게 만들었다. ...

플라톤은 아마 소크라테스에게서 윤리 문제에 몰두하는 성향과 세계를 기계론이 아니라 목적론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배웠을 것이다. [167-168]


어떻게 정치적 권위주의와 연결되는가?

- 영원한 선을 최대로 이해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 지성의 훈련과 도덕적 훈련을 겸비할 경우에만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교육, 과두정치

- 지혜를 얻으려면 여유가 필수 요소, 귀족 정치 [168]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플라톤의 견해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우리는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가는 유효한 최선의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169]

22. 이전에는 플라톤이 주장한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플라톤만이 아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름을 알뿐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유명한 몇 마디 말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역사를 읽고 철학을 읽을수록 정확하고 깊은 지식에 대한 목마름, 그리고 이런 교육현실에 대한 갈증과 안타까움은 더해갈 뿐이다.


‘현명한’ 사람들의 무리를 찾아 통치를 맡기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궁극적 이유이다. [169]


제 14장 플라톤의 이상향


이상 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70]


아테네와 19세기 영국에는 제각기 부와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귀족 계급이 존재했지만 정치권력이 독점되지는 않았다. 또 귀족 계급은 힘이 닿는 만큼 감동을 주는 행동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향에서 귀족 계급은 아무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통치한다. [171]


이상 국가의 목적은 전체 국가의 선이지 한 계급의 행복이 아니다. [174]


플라톤은 두 세대가 지나면 신화에 대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옳았다. ... 플라톤은 이러한 신화를 강제로 수용하도록 교육하는 일이 철학과 양립할 수 없으며 지성의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176]


우리는 민주주의 이론의 영향으로 정의와 평등을 결합하지만, 플라톤의 정의 개념은 그러한 결합을 함의하지 않는다. ... 정의가 아닌 권력과 특권의 불공평한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177]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가 하고 물으면... 전쟁 기술과 충분한 식량이 성취하게 될 전부이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기근과 패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에 살았기 때문에,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악을 피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적 수완을 다해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78-179]


사실의 문제는 과학과 과학적인 관찰 방법에 호소하여 해결하지만, 윤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유사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윤리 논쟁은 선전 선동을 포함한 권력투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180]


플라톤은 선 자체가 존재하며 선의 본성을 식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람들이 선에 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적어도 한 사람은 지적인 오류를 범한 셈이며, 마치 사실의 문제에 관해서 일어나는 과학적 불일치인 양 취급한다. [181]


제 15장 이상 이론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앞사람은 의견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을 얻는다. [185]


감각에 나타난 세계에 대해서는 의견을 갖게 될 뿐이지만, 초감각적인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지식을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의견은 아름다운 개별 사물과 관계하지만, 지식은 아름다움 자체와 관계한다. [186]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곧 ‘진리 통찰’이다. ... 철학은 지혜일 뿐만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며, 이러한 사유와 감정의 친밀한 합일은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거의 같다.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 나는 예술, 과학, 문학,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창작물들이 대부분 이런 순간의 체험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으면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꼭 닮은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같다.

내 생각에 이런 체험이 탁월한 창작물을 내는 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체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체험에서 비롯한 주관적 확신은 치명적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 신성한 도취 상태가 지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검토해야 한다. [188-189]

23. 명료한 글쓰기가 장점인 러셀의 글쓰기에 대한 언급이다.

선생님도 동일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쓰다보면 어느 날인가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쓰게 한다는 요지셨다.

즉,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하고 세부사항들을 파악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날인가 전체를 꿰뚫는 통찰이 생긴다는 것이다.

먼저 공부를 할 일이다.


플라톤은 학문과 진리는 선과 유사하지만, 선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 플라톤 철학의 구석구석에서 피타고라스 사상과 마찬가지로 지성주의와 신비주의가 융합되지만, 앞서 말한 최고 정점에 이르면 신비주의가 우위를 차지한다. [192]


윤리와 심미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이 드러낸 편견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은 더욱더 그리스 과학의 기세를 꺾는데 큰 몫을 했다. [199]


제 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침착함은 영혼 불멸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파이돈>은 순교자 한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스며든 많은 학설을 설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00]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 말하자면 실재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철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

이러한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이 자연스럽게 파생한다. [202]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견해를 수용하게 되면 최선의 쾌락뿐만 아니라 최악의 쾌락, 예컨대 선망이나 여러 형태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도 정신에 속할 것이다. [204]


플라톤이 권장하는 방법에 따라 수행 가능한 두 가지 정신 활동은 수학 활동과 신비적 통찰이다. [205]


경험주의자에게 육체는 우리가 외부의 실재계와 접촉하게 되는 통로이지만, 플라톤에게 육체는 ... 사물을 왜곡하는 매체인 동시에 진리 추구와 진리 통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욕의 근원이다. [205]


...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인간으로서 성인들의 성찬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 [212]


제 17장 플라톤의 우주론


비겁하게 살거나 바르게 살지 못한 남자는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게 된다. [219]


세계 속에 필연과 목적이 혼합되어 있다는 믿음은 철학이 생겨나기 오래 전부터 그리스인들이 모두 실제로 공유한 일반화된 믿음이다. [219]


제 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근대인들은 대부분 경험적 지식이 지각에 의존하거나 지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사이에는 ‘지식’이라 부를 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221]


어떤 판단이 다른 판단보다 더 참될 리는 없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더 나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점이 바로 실용주의를 암시한다. [223]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을 받아 다른 지식을 지나칠 정도로 수학과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232]


제 19장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사상을 꽃피운 가장 창조적인 시기에 성장했고, 그가 죽은 다음에는 필적할 만한 철학자가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2000년이 걸렸다. ...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진보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 요소였다. [233]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여덟 살 무렵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다. 거의 20년 동안 플라톤이 기원전 348년에서 347년 사이에 죽을 때까지 아카데미에 머물렀다. ... 기원전 343년 당시 열세 살이던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되었고...열여섯 살... 까지 유지했다....

전반적으로 보아 두 위대한 인물의 접촉은 마치 두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 살았던 양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듯하다. [234-235]


그는 오늘날의 교수처럼 글을 쓴 첫 인물이다. 그가 쓴 논문은 체계를 갖추어 토론 내용이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다. [235]


플라톤에게 스며들었던 오르페우스교의 요소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희석되어 상식이라는 강력한 요소와 혼합되었다. ... 그는 정열에 좌우되지 않는... 종교에 기울지 않은 인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범한 오류는 습관이 형성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리 없는 시대적 한계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그는 상세한 서술이나 비판의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기초의 명확성이나 티탄의 광휘가 부족하기 때문에 거대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다. [236]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묘사해도 괜찮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플라톤 사상과 상식이 쉽게 섞이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236-237]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서 한 단계 진보한 이론이라 확신하며,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239]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를 추종한 스콜라 철학자 - 본질, 형상&질료 [239]


실체에는 세 가지 종류, 곧 감각되고 소멸하는 실체, 감각되지만 소멸하지 않는 실체, 감각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 [242]


플라톤은 수학에 기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기울었다.... 그는 그리스인답게 정지된 완전성을 사랑하고 행동보다 관조를 선호하는 성향도 드러낸다. [244-245]


이성혼의 삶은 관조하는 데 있으며, 관조란 충분히 도달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이 완전히 행복한 상태이다. “이렇게 관조하는 삶은 인간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이리라. 왜냐하면 관조하는 삶은 그렇게 살려는 자가 인간인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 속에 신성한 면이 있는 한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인간은 인간적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죽을 운명인 존재는 죽는 일에 대해 생각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따라서는 안 되지만, 될 수 있는 한 우리 자신을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기에 우리 안의 최고 부분에 따라 살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최고 부분이 영혼의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능력과 가치 면에서 어느 부분보다 훨씬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247]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이 가르치고 나중에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친 개인의 영혼 불멸을 믿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인간이 이성을 지니는 한, 불멸하는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었을 따름이다. 자신의 본성 속에 깃들인 신성한 요소를 늘리는 일은 인간에게 열려 있으면, 신성한 요소의 증대가 바로 최고 덕이다. [247]

24. 신앙을 가지지 않은 내가 가져야 할 자세라 생각한다. 내 안에 깃들여 있는 신성한 요소, 최고 부분을 따라 살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삶. 내 안에 악함과 선함이 함께 있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최고로 아름답고 선하고 신성한 요소를 갈고 닦고 확대하는 삶.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이다.


제 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제시한 견해는 주로 당시 교양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의견을 대표한다.... 아마 깊은 데서 우러난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248]


선은 행복이며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 [249]


지적인 덕은 가르쳐서 얻고, 도덕적인 덕은 습관을 키워서 얻는다. ... 강제로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면 때에 맞추어 좋은 행동을 할 경우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249]


미덕이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하셔야죠.

습관이란 괴물은 온갖 감각을 먹어치우는지라,

악마 같은 습관들도 이 점에서는 천사죠.

정당하고 착한 행동을 버릇 삼아 행하면

똑같이 성직자복 또는 제복을 주어

어울리도록 입혀주니 말입니다. [249]


중용학설 -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 후함은 방탕과 인색함의 중용, 적당한 긍지는 허영과 비굴의 중용, 재빠른 기지는 저속한 익살과 상스러움의 중용, 겸손은 수줍음과 파렴치함의 중용 [249-250]


정의란 평등이 아니라 가끔씩만 평등을 수반하는 정확한 비례를 뜻한다 [250]


군주제를 최선의 정치 형태로 간주하고, 귀족정치를 다음가는 정치 형태로 간주...

우리는 본질적인 구조 탓으로 최선의 것들은 소수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다수에게는 차선의 것들에 만족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니체도 이에 동조한다. 스토아 철학자와 그리스도교도와 민주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253]


그리스도 교리가 미친 영향의 결과로 ...도덕적 장점은 오로지 의지 활동, 말하자면 가능한 행동 방향 가운데서 올바르게 선택하는 활동과 관련될 따름이다. ... 가능한 행동방향이 둘인 어떤 경우에든 양심은 나에게 어느 쪽이 옳은지, 다른 쪽을 선택하면 죄가 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254-255]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목적, 말하자면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인다.

“목적, 우리가 바라는 바, 우리가 숙고해서 선택하는 수단, 수단과 관련된 행위는 선택이나 자유의지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덕 실행은 수단과 관련된다.”

“인간의 선은 완전한 삶 속에서 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인 덕은 목적이지만 실천적인 덕은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윤리학자는 유덕한 행동의 결과는 대개 선하지만 유덕한 행동 자체만큼 선하지 않으며, 유덕한 행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255-256]


윤리학과 정치학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한 윤리 문제를 하나 더 제기한다. 올바른 행위가 목표로 삼은 선이 사회 전체 또는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에 선한 것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선은 개인들이 누리는 선의 총합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부분이 아닌 전체에 속한 무엇인가? [256]


행복은 유덕한 행동에 달려있고, 완벽한 행복은 최선의 활동인 관조에 달려 있다. 관조가 전쟁이나 정치나 다른 어떤 실천 경력보다 더 나은 까닭은 삶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며, 여유는 행복의 본질적 요소다. 실천적 덕은 이차적인 행복을 제공할 뿐이다. 이성은 발휘해야 최고 행복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이성이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258]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내적으로 자기모순이 없으며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 초기 철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정서적 빈곤을 드러낸다. ... 도덕적인 삶의 훨씬 깊은 측면은 하나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 그의 주장은 열정이 없이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나 유익한 견해이다. ... 이 때문에, 내 판단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고유하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 [259-262]

25. 러셀이 명료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즉 좋아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그 명확한 판단기준을 밝히고 있다. 그의 설명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맞고 틀리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학에서 그의 주장이 내적 모순이나 오류가 없다면 옳거나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윤리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권리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다른 사람의 의견, 사상, 경험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이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진리에 대한 의견- 물론 이제는 진리도 상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유념하자-이 아닌 대부분의 많은 것들은 나의 의견을 가지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 것.

러셀 같은 위대한 사상가 또한 자신의 명료한 의견을 밝힘과 동시에 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함을 기억하자.


제 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국가는 최고 단계에 이른 공동체로서 최고선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264]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옳고, 패한 자는 그르게 된다. [266]


이자와 관련해서... 철학자들이 내놓은 견해는, 극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그들이 속한 계급의 금전상의 이익과 일치했다. [266-267]


가장 큰 죄악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268]


군주정치>귀족정치>입헌정치(시민정치)>민주정치>과두정치>참주정치 [269]


정의 “비례에 따른 평등을 실현해 각자 자신의 몫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270]


생계를 유지하려 일하는 사람을 시민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272]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크기에 대해 ... 실수를 저지른다. ... 한 국가나 동맹이 자체 노력으로 외세의 정복 시도를 모두 물리칠 정도로 충분히 강한 경우를 제외하면 진정한 독립이란 헛꿈에 지나지 않는다. [273]


국가의 목적은 교양을 갖춘 신사, 말하자면 귀족다운 심성과 아울러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도 지닌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274]

제 22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고대 말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았으며 중세 내내 그 지위를 유지했다. 13세기 이르러서야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은 형이상학 분야에서도 최고 권위를 부여했다. [276]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결론 세 부분으로 구성된 논증이다. ...

비판 - 형식상의 결함, 삼단논법에 대한 과대평가, 연역법에 대한 과대평가 [277-281]


귀납법은 연역법보다 설득력이 약하며,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만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귀납법은 연역법이 주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준다. 논리학과 순수 수학의 범위를 넘어선 중요한 추론들은 모두 연역 추론이 아니라 귀납 추론이다. [282]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들이... 삼단논법 형식이론을 제외하면 전부 거짓이라고 결론짓는다. [285]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 분야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서 진보했다. [285]


제 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 갈릴레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압도했다. [286]


제 24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그리스인들이... 기하학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은 확고부동하며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수학적 증명 방법의 기원은 거의 다 그리스인에게서 시작된다. [292]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은 지금까지 저술된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인의 지성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296]


바빌로니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수세기에 걸친 관측을 통해 천문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296]


정밀한 도구가 없었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그리스인들이) 측정한 결과 가운데 놀라울 만큼 근접한 것들이 많다. [301]


제 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철학

제 25장 헬레니즘 세계


고대 그리스어 문화권에 속한 세계의 역사 [304]

 1. 자유도시국가 시대

 2. 마케도니아 통치 시대 - 헬레니즘 시대

 3. 로마 제국 시대


철학 분야에서 이런 세계주의 관점은 스토아학파와 더불어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일찍이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306]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분할 - 유럽

                           아프리카(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시아(셀레우코스 왕조)     [308]


전문화는 학문의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당대를 다른 시대와 구분하는 특징이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에 그리스 자치도시들의 경우 유능한 사람이란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춘 인재였다. [310]


알렉산드로스의 찬란한 정복의 시간이 지난 다음, 헬레니즘 세계가 혼돈에 빠져버린 이유는 안정된 지배권을 행사할 만큼 강한 참주가 나타나지 않은 데다 사회 결속을 다질 만큼 강력한 원리를 확립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312]


과거 자유 시대를 풍미한 무질서는 시민 개개인이 자유 시대에 참여했기 때문에 견딜 만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무질서는 무능한 통치자들이 시민들에게 강요한 것이기에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으며, 후대의 로마 복종 시대보다 견디어내기가 훨씬 힘들었다. [312]


그리스 외부의 종교와 미신이 헬레니즘 세계에 미친 영향은 대개 좋지 않았으나 전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 유대인, 페르시아인, 불교도들은 모두 그리스의 대중적인 다신교보다 훨씬 우월한 종교를 자기고 있었으며,... 불행하게도 바빌로니아인들과 칼데아인들이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주로 점성술과 마법적 요소를 수용했다. [314]


최고 철학자들 가운데서도 여럿이 점성술 신앙에 빠져들었다. ... 대부분 필연과 운명을 둘 다 믿으면서도 두 신앙 사이에 내재한 모순을 결코 알아채지 못했다. [315]


총체적 혼란은 지성의 쇠약보다 더욱 심각한 도덕적 부패를 초래하기 마련이었다. 길게 이어진 불확실성의 시대는 ... 평범한 일상의 덕을 갖춘 훌륭한 시민들에게는 해롭게 작용했다. 당신이 저축해둔 돈이 내일 전부 없어질지도 모른다면 검약이란 소용이 없어진다. 당신이 정직하게 대한 사람이 당신을 속인 게 확실하다면 정직이란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다. 대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엣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고집하는 일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315]

26. 안정된 사회의 중요성.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정치와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은 미약한 존재일 수 있다. 성인의 경지에 오른 비범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환경의 영향을 받고 때로는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이상을 따라가도록, 힘들지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네.

타고난 악당은 아니었지만

불운이 겹쳐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315-316]


(이 시대) 인생의 목적은 적극적인 선의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불행의 회피였다. [316]


제 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뛰어난 지성인과 사회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317]

 - 행운이 따르는 시대의 지성인 : 주변 환경과 조화  

 - 그렇지 않은 시대의 지성인 : 혁명적 성향, 근본적인 변화 필요, 가까운 장래 변화 기대

 - 이도저도 아닌 시대 : 세상에 절망, 필요한 것은 알지만 변화할 가망은 없다고 체념함

          현세의 삶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내세나 신비사상에서 선을 구하고 희망을 찾음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대체로 우주 전체를 절망적으로 바라보거나 정치적으로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 정치권력이 마케도니아인들의 손으로 넘어가자, 그리스 철학자들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개인의 덕이나 구원 문제에 더욱 몰두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318]


그리스도교가 개인 구원의 복음을 발전시켜 선교에 열의를 불어넣고 교회를 세울 때까지 주관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점 더 기울었다. [319]


헬레니즘 시대 철학의 네 학파 - 키니코스학파, 회의주의 학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319]


* 키니토스학파

세상은 악하니 세상에 의존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외부의 좋은 것들은 위태로운 행운의 선물로서 우리 자신이 노력한 끝에 얻은 보상은 아니다. 주관의 노력으로 성취한 좋은 것들, 즉 덕이나 체념하여 얻은 만족은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들의 가치만 인정할 것이다. ,,, 헬레니즘 시대의 모든 학설과 마찬가지로 실망감 때문에 자연스런 열정마저 잃어버린, 기진맥진한 사람들에게나 호소력을 갖는 학설이었다. [321]

키니코스학파의 최고 수준에 속한 학설이 스토아 철학 속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스토아 철학은 훨씬 더 완전하고 원숙한 철학으로 발전했다. [322]


* 회의주의 학파

피론은 감각능력에 대한 회의주의에 도덕과 논리에 대한 회의주의를 추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떤 행동을 다른 행동보다 더 좋게 볼 합리적인 근거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22-323]


회의주의는 자연스럽게 철학 정신과 거리가 먼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불확실하니”, 차라리 현재를 즐기는 편이 낫다. [323]

27. 이런 철학 하에서의 현실의 중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대신 차라리 현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모여서 미래가 만들어짐을 믿고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바로 현재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현재를 충분히 즐겨야 한다.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점점 더 독단적인 종교와 구원의 교리로 기울어지던 시대의 추세와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329]


제 27장 에피쿠로스학파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 [334]


다른 철학자들을 관용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또 다른 중대한 과오, 오만하고 전제적인 독단주의에 빠지게 되는 과오를 저지르고 만다. [335]


현자의 목표는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일 [336]


“모든 일에서 최고선은 사려이며, 사려는 심지어 철학보다 더욱 값진 것이다.” 철학은 그가 이해한 대로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계획된 실천 체계였다. [336-337]


정신의 쾌락은 육체의 쾌락을 관조하는 활동 [336]


에피쿠로스학파는 후대에 이교도들이 마법, 점성술, 점술에 점차 빠져드는 경향에 맞서 저항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기여했다. [340]


그리스도교는 지옥에 관한 이전의 민간 신앙을 체계화했을 뿐이다. [343]


에피쿠로스의 복음은 언제나 교양을 갖춘 소수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사후 6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344]


제 28장 스토아 철학


스토아 철학은 초기 순수한 그리스 철학들과 달리 정서적인 면에서 편협하고 어떤 점에서 광신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당시 세계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리스인들이 제공하기 힘들어 보였던 종교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스토아 철학은 통치자들의 호감을 샀다.  [347]


(창시자인) 제논은 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여, 자연학과 형이상학의 가치도 덕에 기여할 경우에만 인정했다. ... 그리스에서 상식은 유물론을 의미했다. [348]


스토아학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 주요 학설을 우주에 대한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348]


개인의 삶은 자연과 인간의 삶은 개인의 의지가 자연의 목적으로 향하는 경우에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덕은 자연과 일치하는 의지 속에 존재한다. ...

개인의 삶 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349]


인간은 저마다 세속적인 욕망에서 해방되면 완벽하게 자유로워진다. [350]


나는 사랑을 원리가 아닌 감정으로 생각한다. 스토아학파는 보편적 사랑을 원리로서 가르쳤다. ... 이들과 닮은 점이 많은 칸트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 친절해지라고 명하기 때문에 당신의 형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칸트가 사생활에서도 이 계율에 따라 살았을지는 의심스럽다. [351]

28. 사랑은 원리일까, 감정일까?

나는 둘 다 맞는 것 같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 대한 사랑은 감정일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등의 표현이 많은 공감을 사는 것은 이것이 타고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사랑과 이것의 결과로서의 결혼은 타고난 감정이자 본능의 흐름으로 시작하여, 동시에 의지적인 결단이 개입된다고 믿는다. 감정의 흐름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그 사람의 삶을 함께 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더해져 완성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에 열정은 얼마나 지속될까? 러셀은 네 번의 결혼을 했고 그 외에도 많은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은 열정을 따라간 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삶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러셀의 자서전을 빨리 보고 싶다.


(로마의 행정장관이자 네로황제의 가정교사였던) 세네카, “지상의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 덕이 높은 삶의 본보기를 남긴다.” [35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스토아학파의 덕을 실천하는데 헌신했다. 그에게 불굴의 의지력이 더욱 필요했던 까닭은 치세 동안 지진, 역병, 길고 힘들게 지속된 전쟁, 군사 반란 같은 참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상록>) [357]


사회상황이 한 시대의 철학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이 처한 상황이 개인의 철학에 생각보다 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철학자들은 보통 사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을 대체로 도외시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문제가 되는 훨씬 큰 선이나 훨씬 큰 악에 무심할 수 없는 법이다. [357]

29. 마음의 여유

삶의 열정과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또한 마음의 여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생을 길게 볼 때 가질 수 있다. 지금, 여기가 참으로 중요하지만 또한 긴 인생의 한 부분임을 인식할 때 나는 여유로워질 수 있다. 남에게 충고하듯이 나 스스로 이것을 믿자. 앞으로 남은 긴 인생에서 지금 나는 충만한 충전을 하고 있다.


희망의 시대에는 현재 겪는 크나큰 악행들도 지나갈 것이기에 견딜 만하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에는 심지어 실재하는 선조차 좋은 기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 스토아학파의 복음이 희망보다는 인내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358]


인간의 형제애를 인정하고 노예들의 평등을 가르친 점 [361]


“그대가 바로 이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으니, 매 순간 행동과 사고를 바르게 하라.” 삶은 우주와 조화를 이루게 될 때 선하며, 우주와 조화를 이룬 삶은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삶과 같다.

...

“항상 우주 안의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대 안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영원무궁한 존재에서 시작하여 그대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영원한 존재에서 시작되어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며 그대가 존재하기 위한 생명의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조차도 사랑하는 것은 인간에게 고유한 특징이다. 또 만약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들이 친척이라는 것, 그들이 무지하거나 무심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잘못을 저지른 자와 피해를 입은 자가 둘 다 곧 죽으리라는 것, 무엇보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대의 통제력을 이전보다 약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대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대가 떠올린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아우렐리우스) [362, 363]  

30.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자신뿐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지만, 선해질 수는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면 불행이란 문제가 되지 않는 척해보자는 말이다. [367]

31. 그런데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선해지고 싶다.

그것은 다른 문제인가?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 주변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스스로 선해지고 싶은 것, 그리고 행복해지는 것.


인식론, 자연법과 자연권 학설

자연에 따라 만인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법률제정에 영향을 주어 특히 여자들과 노예들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17세기 ... 자연법 학설과 자연권 학설은 그리스토교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대의 어떤 황제도 결코 부여하지 못한 실천적 힘을 획득했다. [368]


제 29장 로마 제국의 문화


로마 세계는 행복했지만 모험보다 안전을 선호했기 때문에 삶의 맛이나 재미는 사라졌다...

(마케도니아 시대) 그리스 세계는 활기를 잃고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종교로 기울여졌다. 지상의 제도 속에 이상을 구현하겠다는 소망이 희미해짐에 따라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열정을 잃어갔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아우구스투스에게 복종함으로써 평화와 질서를 확보했다. [372]

32.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삼던 내가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이유. 타고난 기질대로 망망대해로 무작정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준비를 갖추고 떠난다. 배는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항구에 머무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만 준비를 끝내고 출항하자. 바다가 기다린다. 


로마 세계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고, 틀에 박히 사회로 변하는 과정은 후대 황제들의 치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373]


동로마 제국을 지배한 문명은 라틴 문명이 아니라 그리스 문명이었기 때문에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명에 대립하는 그리스 문명의 요소는 바로 아랍인들이 보전했다. [375]


I. 로마가 그리스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

   로마는 그리스어 권 지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상과 예술은 똑같이 쇠퇴했다.

   제국의 라틴 문화권 절반과 그리스 문화권 절반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  [377]


II.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에 미친 영향

   로마는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에 기생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로마인들은 엄격하고 부지런하고 야성적이고 완고하면서 우둔했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그리스인들이 본보기가 됨으로써 역사가들이 말하는 도덕적 타락을 촉진했다. [378]

   그리스 이외의 나라에서 들어온 종교와 미신은 당시 서로마에서 점점 더 확고한 지배력을 장악했다. [379]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 종교는 지상의 세계에 관심이 많고 지상의 행복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했다. 절망의 경험에 더 오래 시달렸던 아시아는 저 세상의 희망을 담은 종교 속에서 훨씬 결과가 좋은 해독제를 서서히 만들어냈다. 이러한 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가 위안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종교였다. 그러나 그리tm도교는 로마의 국교가 될 때까지 그리스에서 많은 요소를 흡수했고, 이런 요소를 유대교의 요소와 함께 후대의 서유럽에 전달해주었다. [381]


 III. 정치와 문화의 통일

   로마의 오랜 통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일 정치 아래 단일 문화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게 했다. [382]

   전쟁과 파괴의 시대에는 결국 양이 질만큼이나 중요한데, 바로 그 양이 로마의 덕택으로 채워졌다. [383]

33. 양이 쌓여야 질로 전환한다는 것. 1만 시간의 법칙도 결국은 그 이야기.

그러나 또한 잊지 말 것은 똑같은 매일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오늘이 매일같이 쌓여야 할 것!


 IV. 헬레니즘의 매개자 이슬람교도

제 30장 플로티노스


신플라톤 철학의 창시자로서 최후의 위대한 고대 철학자였다. 그의 일생은 로마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난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385]

그는 현실 속의 황폐하고 비참한 광경을 외면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영원한 세계를 관조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385]

중세기와 가톨릭 신학의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다. [386]


오늘날 미국 그리스도교는 원시 그리스도교와 유사하다.... 초월적 희망보다는 여기 지상의 삶에 맞는 의무나 일상 세계에서 이루어야 할 사회적 진보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386]


플로티노스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불행했지만, 이론의 영역에서 더 높은 행복을 찾기로 단호하게 결심했던 사람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스피노자처럼 도덕적 순수와 고결함을 갖추어 대단히 감명을 주는 인물이다. [388]


... 이후로는 아름다움, 그것과 관련된 즐거움은 모두 악마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교도들도 그리스도교도와 마찬가지로 추한 것과 무가치한 것을 찬양했다. [395]


플로티노스의 철학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조장하는 결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볼 때 신성한 정신을 보게 되고, 자신의 바깥을 바라볼 때 감각계의 불완전한 면을 보게 된다. [400]

34. 스스로의 안으로만 파고들지 말 것. 외부세계와의 적절한 교류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해 진다. 스스로의 안으로만 들어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 아닐 것이다. 내적 성찰과 외부세계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조화시킬 때 우리는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함께 누릴 수 있다. 


플라톤이 생각한 덕은 당시에 정신이 이룰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성취에 다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대 수세기를 거치면서 덕이란 점점 유덕한 의지만을 뜻하는 용어로 변형되어, 물리계를 이해하려는 탐구심이나 인간 세상의 제도를 개선하려는 욕망을 덕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401]



제 2권 가톨릭 철학

서론


가톨릭 철학이란 말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르네상스까지 유럽 사상을 지배한 철학을 의미한다. [404]


교회와 자주 갈등을 빚던 세속 통치자들은 자신들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의 진실성을 깊이 확신했기 때문에 교회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5]


가톨릭 철학의 1기 - 성 아우구스티누스, 플라톤

가톨릭 철학의 2기 -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관심사는 신앙을 옹호하는 것 [407]


비참한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감에 따라 종교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나날 속에서 일상 세계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후대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누리는 이렇듯 단순한 행복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을 희망할 뿐이었다. [409]

35. 나의 매일매일을 위대한 성취의 하루하루로 만들 것.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것. 그리고 일상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즐길 것. 이런 단순한 행복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지 말 것.


제 1부 교부 철학

제 1장 유대교의 발전


후기 로마가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그리스도교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412]

 - 철학에서 유래한 믿음

 - 유대인들에게 유래한 도덕 개념과 역사 개념

 - 구원 이론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째 계명은 바빌론 유수 직전에 일어난 혁신 [414]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 시대를 살면서 독립된 나라에서 사는 동안 보편화되었던 정통 신앙보다 훨씬 엄격하고, 민족주의 관점에서 훨씬 더 배타적인 정통 신앙을 발전시켰다. [416]


안식일의 중요성 강조, 할례, 이방인과 혼인 금지... [417]


원래 덕은 여기 지상의 삶 속에서 보답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덕망 있고 고결한 자들이 박해를 당하자, 이런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러므로 신이 의로우심을 보증하려면, 보상과 처벌이 내세에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421]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일신교의 기원을 유대교에서 찾으므로, 마카베오 가문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동방과 서방 양쪽에 일신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422]


유대인들은 고유한 종교 의식을 통해 한 민족으로 단결하였으나, 율법을 강조함으로써 점처 독창성을 잃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습에 함몰되었다. [423]


바리새파 사람이 쓴 <12족장의 유언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두 구원을 받게 되리라고 주장한다. [426]


“바리새파의 율법 준수 사상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이상을 망각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치운동에 몰두하게 되면서, 점점 더 율법의 자구 해석에 매달리게 되었고, ... 진정한 계승자들은 자연히 유대교를 등지고 원시 그리스도교 안에서 안식을 찾게 되었다.” [427]


그리스도교는 반유대주의를 자극한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 당시 이슬람교도는 유대인들을 인간답게 대접한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호의로 유대인들은 철학을 추구하고 사색을 펼치며 가르칠 수 있었다. [429]

36. 현대 이슬람교도와 유대교의 유혈대립을 떠올리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과연 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또한 현재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서방세계와 유대교의 친밀함을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유대인들의 영향력 때문인가.

과연 종교의 발원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종교는 참으로 미스테리한 영역이다.


중세 시대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민족이 아닌 개인으로서 문명 발전에 널리 기여했다. [429]


제 2장 초기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유대교의 개혁을 목표로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설교한 가르침이었다. ...성 야고보...성 베드로...

성 바울로는 이방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할례나 모세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430]

유대교의 확신은 신앙이 무너져가는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지만, 할례는 사람들이 개종을 망설이는 장애 요소였다. 음식에 관한 전례법도 불편했다. ... 그리스도교는 성 바울로 덕분에 이방인들이 동화되기 너무 힘든 특징을 과감히 버리면서도 유대교 교리의 매력적인 요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430-431]


유대인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여전히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쾌한 요소였다. 그노시스파는 선민사상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노시스주의 - 영지주의, 영지란 신의 본성을 나누어 가진 영혼의 지혜나 깨달음을 뜻하며,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 [431]

그노시스주의의 일부는 이렇게 이슬람교의 정통 교리에 편입되었다. [432]


유대교 신학은 언제나 단순했다. 야훼는 부족 신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으로 발전했다. 하느님의 정의는 지상에서 덕을 갖춘 사람들에게 번영을 보장해주지 못하자 천국으로 양도되었고, 이것은 영혼 불멸 신앙을 수반했다. [433]


그리스도교 성장의 원인

 - 불굴의 정신과 불관용

 - 내세 교리

 - 기적의 영향력

 - 순수하고 엄격한 도덕

 - 그리스도교 사회의 통합과 규율 [437-440]


제 3장 교회의 세 박사


서방 교회의 박사로 불리는 네 사람은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다. ... 모두 가톨릭교회가 로마 제국에서 승리를 거둔 뒤 야만족이 침입하기 전까지 짧은 시기에 활약했다. [443]


성 암브로시우스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한정하는, 교회 입장의 사상 체계를 확립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서방 교회에 수도원제도의 정착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대부분 제공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신학을 비롯해,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칼뱅이 내세운 교리의 태반을 확립했다. [444]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활약한 당대 지성인들이 세속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로마 제국의 파멸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은 사람들에게 불굴의 용기를 심어주고, 지상의 삶이 헛된 것처럼 보일 때 종교적 소망을 간직하도록 이끄는 데 적합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455]


제 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조물주가 아니라 ... 그들은 물질이 영원한 것이므로 창조되지 않으며, 형상만 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란 물질에서 창조되지 않고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무에서 일어나는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그리스인의 견해는... 범신론으로 이어졌다.  [466]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주관적이라는 것... 시간은 기대하고 고려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468]


<신국>은 중세 시대를 관통하여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으로, 교회가 세속 군주들과 투쟁하는 경우에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469]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에 대해 공감을 표현하고 호의적으로 설명하면서 여느 철학자들보다 우위에 놓는다. [472]


악한 자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신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의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악해진 것이라는 결론 [478]


후세에 영향을 미친 사상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고 국가란 신국에 속한 일부에 불과하므로 종교와 관련된 문제라면 모두 교회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분명한 가르침이다. [478]


펠라기우스 - 자유의지를 믿고 원죄설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인간이 덕을 행한다면 그것은 도덕을 따르려는 인간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480-481]

아무도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를 피하지 못한다. [481]


제 5장 5세기와 6세기


5세기는 야만족이 침입하고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시기였다. [483]

이 혼란기 동안 교회는 육화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으로 소란스러웠다. [484]


6세기에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한 인물 네 사람은 보이티우스, 유스티니아누스, 베네딕투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이었다. [487]


제 6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가장 위대한 성직자들조차 광신과 미신에 물들어 세속 학문을 사악한 것으로 치부했던 탓에, 교회는 로마 문화를 불완전하게 보존했다. 그렇지만 교회 제도는 후대의 학문과 세련된 예술의 부흥을 가능하게 만든,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았다. [495]


교회의 세 가지 활동 - 수도원 운동, 교황 체제의 영향, 선교를 통한 이교도 야만족들의 개종 [495]


수도원 생활은 처음에는 교회 조직과 거의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496]

덕을 완전히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죄의 회피, 특히 육신의 죄를 피하는 데서 찾았다. [497]

서방 지역 수도원 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성 베네딕투스로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창시자이다. [497]

수도자들은 청빈, 순명, 정결의 서원을 한다. [498]


유스티나아누스는 ... 법전 제정으로, 베네딕투스는 수도회 설립으로,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권력을 증대시킴으로써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502]


6세기 사람들은 비록 선대의 사람들보다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으나 후대 4세기 동안 살았던 사람들보다는 문명을 훨씬 더 발전시켜, 제도 형성에 성공했으며 궁극적으로 야만족을 길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509]

그레고리우스는 탁월한 현실감을 지닌 최후의 로마인이다. [509]


제 2부 스콜라 철학

제 7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8,9세기에 의욕이 넘치는 교황들은 절호의 기회를 잡아 교황 권력의 전통을 형성해나갔다. [512]

교황들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롬바르드족 군대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 황제들로부터 독립을 쟁취... [512]


황제와 교황 각각의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고 말았다. 중세의 권력 이론에서 주장한 그리스도교의 통일은 세속 영역에서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의 각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고, 종교 영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써 무너졌다. [517-518]


10세기 무렵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가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520]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 사물의 본성상 이러한 우월한 지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525]


제 8장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


아일랜드 인이며, 신플라톤학파에 속한 학자이자 그리스어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고, 펠라기우스주의자이자 범신론자였다. [527]


가장 위대한 작품은 <자연 구분론> - 이단 비난


제 9장 11세기 교회 개혁


11세기에 이룩한 개선과 진보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다채로웠다.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다음 교황 체제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536]


배후의 동기는 성직자와 속인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성직자 계급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회 개혁의 승리가 곧바로 황제와 교황의 격렬한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 사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537]


교회 규율체계와 통일된 성직자 조직체계는 성직자 계급의 권력을 형성하는 데 필수 요소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11세기에 성직자 계급에서 일어난 도덕적인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538]

교구 사제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다. [539]

성직자의 독신생활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핵심 요소였다. [540]


교황과 황제의 대립

 - 카노사의 굴욕 [546]


11세기 나타난 지성의 부활 - 안셀무스, 로스켈리누스 등 개혁 운동과 관련이 깊은 수도자들 [547]


제 10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동로마 제국을 공격한 주요 세력은 이슬람교도로서 정복 이후에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가치 있는 고유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551]


이슬람교 -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종교, 예언자 무하마드가 창시, ‘이슬람’이란 ‘신에 대한

           순종’이란 뜻 [551]

이슬람의 정복지역 - 시리아, 페르시아, 인도,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스페인,  이탈리아


이슬람교도는 세금을 낼 경우 답례로 어떤 그리스도교 종파든 관대하게 다루었다. [552]

주민들의 태반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553]


그리스도교도를 비롯하여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즉 쿠란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부른 ‘성서의 백성’을 박해하지 않았다. [552]


아랍인은 새로운 종교의 이름으로 세계의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지만 종교심이 깊은 종족은 아니었다. 아랍인이 정복을 시작한 동기는 종교가 아니라 약탈과 재물이었다. 소수 이슬람교 전사가 큰 어려움 없이 고도의 문명과 낯선 종교를 겸비한 다수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광신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인은 아주 일찍부터 종교심이 깊고 사색의 수준이 높았다. 페르시아인은 개종한 다음 이슬람교로부터 예언자 무하마드와 그의 동족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더욱 종교적이며 더욱 철학적인 종교를 만들어냈다. 661년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가 죽은 뒤 이슬람교도는 두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었다. [553]

37. 내가 배운 세계역사는 참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미국으로 주도권이 이동하는 짧은 서양사와 중국 중심의 기술에 일본과 인도에 대한 짤막한 언급의 동양사. 결국 힘과 문명의 흐름에 대한 간략한 기술들. 그나마 지루한 암기과목으로서의 취급. 한때 심취했던 ‘대망’의 영향으로 일본 근대사를 공부하고 싶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고 싶다.

   

무역은 ... 무슬람 윤리 체계안에서 상인 계급의 높은 신분 보장 같은 특수한 여건에 의해 촉진되었다. [555]


오늘날까지도 스페인의 농업은 아랍인이 건설한 관개 시설 덕을 보고 있다. [555]


이슬람교 세계의 독특한 문화는 시리아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동방과 서방의 맨 끝, 페르시아와 스페인에서 가장 번창했다. [555]


당시 철저한 정통 신학자들로 구성된 종파에서는 모든 철학이 신앙에 해롭다고 선언하며 반대했다. [559]


서방 세계가 야만족의 지배를 벗어났을 때 문명을 자극하는 요소로서, 이슬람교도는 주로 13세기에 (스콜라 철학), 비잔틴인들은 주로 15세기에 (르네상스) 에 영향을 주었다. [561-561]


제 11장 12세기


12세기의 네 가지 양상 [562]

 -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갈등 : 13세기 교황의 확실한 승리

 -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 13세기 독립

 - 십자군 : 명예롭지 못한 종말

 - 스콜라 철학의 성장 : 13세기 최고 수준

교황의 권력은 여전히 성장해가는 중이었으나 대체로 중세 세계에 황제의 맞수로서 교황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황제의 위협이 사라지자 교황의 권력도 쇠퇴했다. ... 도시 권력은 경제적 진보의 결과이자 새로운 정치 형태의 근원이 되었다. [567-568]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569]

십자군 운동 이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동방 물품의 무역을 거의 독점했다. 십자군 운동이후 유대인 박해의 결과로 동방 물품의 무역은 대부분 그리스도교도가 장악했다. [569]


스콜라철학 방법의 결점들이란 사실과 과학에 대한 무관심, 관찰을 해야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에서도 추론을 따라 믿는 것, 언어상의 특징이나 세세한 구분에 대한 지나친 강조이다. [570]


제 12장 13세기


중세 시대는 13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

13세기의 위해한 인물들은 정말로 위대했다. 인노켄티우스 3세, 성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2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유형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자들이다. [578]


이단 사상이 널리 확산된 것은 십자군 원정의 실패에 따른 실망감 탓도 있었지만, 주로 성직자 계급의 재산 축적과 사악함에 대한 도덕적 환멸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 교회는 부유했기 때문에 대체로 세속적 성향을 나타냈다. [584]


성 프란시스코는 그리스도교의 성인 대부분과 달리 자기 자신의 구원보다 타인의 행복에 관심이 더 많았다. [589]

성 프란체스코의 삶이 초래한 최종 결과는 부유하고 부패한 수도회를 하나 더 설립하여 성직자 계급제도를 강화하고 도덕적 정직함이나 사상의 자유에서 뛰어난 모든 사람에 대한 박해를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589]


제 1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지혜 자제는 우주의 목적과 관계가 있다. 이제 우주의 목적은 지성의 선, 즉 진리이다. [593]


인간은 육체적 쾌락, 명예, 부귀영화, 세속적 권세, 다시 말해 육체에 좋은 것들을 얻음으로써 행복에 이르지 못하며, 더욱이 행복은 감각 속에 자리 잡지 않는다. 인간은 도덕적인 덕을 실천함으로써 궁극의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도덕적인 덕의 실천이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명상함으로써 궁극의 행복에 도달한다. [599]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는다. [604]


제 14장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스콜라 철학자들


교황 반대 운동은 단지 황제를 지지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는데,... 교황 반대 운동에 새로운 힘을 실어주어, 결국 종교개혁에 이르게 되었다. [612]


오컴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615]


제 15장 교황 체제의 쇠락


13세기로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620]

그리스도교는 여러 종교에서 힘의 원천이 되는 요소들을 찾아 결합했다. 유대인들에게서 성서와 한 종교 이외에 모든 종교는 거짓이며 악하다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622]

구약성서, 신비 종교,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행정 체계가 모두 교회 안에서 혼합됨으로써 교회는 이전의 사회 조직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위력을 겸비하게 되었다. [622]


가톨릭교의 종합은 14세기에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철학보다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더 관련이 깊었다. [623] (아비뇽 유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세속적인 부유한 성직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강했기 때문에 이단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보인다. [630]


제 3권 근현대 철학

제 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 1장 일반적 특징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638]

과학의 권위는 고유한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효력을 나타내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권위이다. [639]


이론과학은 바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응용과학은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

과학의 이론 측면에서 응용 측면을 분리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과학이 점점 더 기술로 변해간 끝에 세계의 본성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측면은 점점 무시되었다. [640]

38.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 배우는 모든 지식은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가치중립적이란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과는 의도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보다 ‘왜’, 또한 ‘어떻게’ 행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내용을 쓰는가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책을 쓰는 목적이 명확히 정리되고 난 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640]


기술로서 수용된 과학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이론 철학자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놓았다.... 기술은 사회에 힘을 제공하지 개인에게 힘을 제공하지 않는다. ... 과학 기술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을 수행하게 하지만 수행해야 하는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641]


제 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643]


이탈리아의 국가들은 서로 반목하는 가운데 술책을 쓰면서 내부 갈등에 프랑스와 스페인을 끌어들이는 짓을 일삼았고 국가 통일에 개의치 않았다. 결국 온 나라는 황폐해지고 말았다. [649]


사람들은 교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고대에 속한 온갖 종류의 무의미한 미신을 받아들이려 마음을 활짝 열었다. 도덕적인 면에서도 교회에서 해방됨으로써 나타난 최초의 결과는 똑같이 참담한 모습이었다. [652]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653]


제 3장 마키아벨리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지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두었다. [654]

39. 많은 자기계발서와 처세서 들이 쉽게 빠지는 길들. 실용서의 가치는 좋은 의도와 목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목적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



우리시대에 와서 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를 더 높이 평가할 텐데, 그 까닭은 우리 시대의 매우 유명한 성공 사례들 가운데 몇몇은 바로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만큼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방법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술 분야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감정가 [656]


종교가 국가 안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까닭은 종교가 독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결속과 유대감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657]


이탈리아 해방과 통일이라는 과업이 사리사욕이 없는 이타적 동기에 의해 완수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권력에 대한 갈망과 명성에 대한 더 큰 갈망이 동기가 된다면 성취될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658-659]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학설을 분명하게 제안한다. 군주, 귀족, 평민은 모두 헌법상 제각기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세 계급의 세력은 호혜적으로 서로 견제하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는 ‘권리’의 개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정부가 전제 정부보다 잔인성, 비도덕성, 변덕의 정도가 덜하다는 현실적인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다. [661]


마키아벨리는 문명인이 비도덕적 이기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는 의견 [662]


세계는 더욱 마키아벨리의 세계와 닮아간다. 마키아벨리의 철학을 거부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현대인은 19세기보다 더욱 천착해서 사고해야 한다. [663]

40. 현실참여에 대한 나의 생각을 깊이 발전시켜야 한다. 원대하게 그러나 허황되지 않고 실천가능하게.

제 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북부 르네상스는...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지도 비도덕성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경건한 신앙심이나 공공의 덕과 결합되었다. [664]


(토마스 모어의)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676]

41. 제목만 알았던 수많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더욱 중요하다. 유토피아의 내용에 대한 고찰보다는 새로운 개념인 ‘유토피아’가 훨씬 활용도가 높다.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서 필수적이다’ 잊지 말 것. 

제 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에 앞선 이탈리아의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기도 했다. ... 반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일 따름이다. ...

종교개혁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반종교개혁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677]


종교 간의 반목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게 되자 점차 종교적 관용을 믿는 세력이 성장...[679]

교리의 통일을 바라는 중세적 소망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기본 교리를 생각하는 자유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 유능한 사람들은 세속 학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680]


제 6장 과학의 발흥


근대와 근대 이전 시대의 차이는 17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서 비롯된다.

근대 철학의 정초자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바로 17세기 과학을 창안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681]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과학자들의 신념이 잠정적인 믿음으로 독단적인 믿음이 아닌 까닭은 증거에 근거할 뿐 권위나 직관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684]

42.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논리적인 근거와 타당한 실험에 의해 뒷받침되는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즉 기존에 자신이 믿고 있던 주장과 이론이 얼마든지 새로운 주장과 이론에 의해 뒤집혀질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진정한 과학의 발전이 가능해진다. 개인의 사고도 동일하다. 새로운 주장을 접하고 새로운 책을 읽을 때 기존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부분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을 폭넓게 이해하고 자신의 기존의 생각과 비교 검토하며 받아들일 때 진정한 독서가 될 것이다.  


뉴턴의 승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결국 과학의 진보를 저해하는, 넘어서기 힘든 장애가 될 위험도 안고 있었다. [692]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695]


17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일마다 악행을 고백해야 하는 비참한 죄인이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놀랍지도 않다. [696]


제 7장 프랜시스 베이컨


“아는 것이 힘이다”

베이컨은 그 격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700]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702]

43. 행동의 습관을 바꾸는 것처럼 정신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동일한 사고의 패턴을 깨고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 행동은  외적인 것을 강제함으로써 가능한데 반해 정신의 습관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가. ‘이기는 습관’에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그만큼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리라.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습관’,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또한 뒤집어 생각하는 습관도 좋다. 다음에는 행동의 변화와 함께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단계별로 정리해보고 싶다.


제 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대륙철학은 인간이 획득한 지식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학적 방법에 의존하는데, 수학적 지식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획득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륙 철학은 플라톤주의와 마찬가지로 순수 사유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한편 영국 경험론은 수학의 영항을 거의 받지 않았으므로 과학의 방법을 잘못 파악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705]


우리 마음속 사유 작용은 임의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때로는 연상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때로는 생각의 결과인 목적에 의존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708]


왕정의 극단적 옹호 <리바이어던>

사회계약 - ‘만민 대 만민의 전쟁 상태’에서 벗어난 자기 보존


어떤 공동체이든 두 가지 위협, 즉 무정부 상태와 전제정치의 위험에 직면한다. [716]


제 9장 데카르트


근대 철학의 창시자.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과학자이기도 함

완전한 철학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노력했다. [719]

‘데카르트적 회의’ 철학의 확고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은 전부 의심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725-726]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 주관주의 경향과 물질은 오직 정신에 알려진 대상들에서 추론을 통해 알려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727]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발전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완성했거나 거의 완성했다. ... 병행하지만 독립된 두 세계, 즉 정신계와 물질계를 제시한다. [731]


제 10장 스피노자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733]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외부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구속되며, 스스로 규정한 정도에 비례하여 자유롭다. [738]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739]


“명석하고 판명하게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한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마련이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 - 사유와 감정이 통일된 상태 [740]


“저들이 한 일을 모르기 때문에 저들을 용서하리라”

“증오심은 보복하면 더 커지지만, 사랑의 힘으로 없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힘으로 극복된 증오심은 사랑의 감정으로 옮아가는데, 이런 사랑은 증오심을 먼저 경험하지 않은 경우의 사랑보다 더욱 위대하다.” [745]

44. 평생 고통과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강도보다 고통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강도가 더 강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에 더욱 감사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유가 된다.

증오를 이기고 극복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746]


제 11장 라이프니츠


최고 수준의 지성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칭찬할 만하지 않다. [747]

45. 많은 인물들이 개인의 삶과 업적이 분리된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과 사상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주장과 삶이 일치된 사람들이 가장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업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삶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없을 때 인간의 사고는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수학자, 미적분학의 발명자, 수리 논리학의 개척자


제 12장 철학적 자유주의


사상과 실생활은 대등한 수준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766]


초기 자유주의가 재산권에 의해 조율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암시한다. ...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나며 이후에 초래된 불평등은 환경의 산물이라는 신념 [766]


지성적이고 윤리적인 개인주의와 질서정연한 사회 생활을 화해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 [768]


자유주의에 반대되는 입장을 점차 발전시켜 나간 새로운 운동은 루소와 함께 시작되어 낭만주의 운동과 민족국가 원리의 유행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769]


제 13장 로크의 인식론


역사상 알어난 혁명 가운데 가장 온건했으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1688년 명예혁명의 주장자이다. [774]

철학자나 온건한 개혁가들은 로크를 추종하고, 극단적인 혁명가들은 루소를 추종했다. [775]


지각이란 “지식에 이르는 첫 단계이자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모이는 입구” [781]


로크는 신뢰성을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에 이르려 일관성을 포기했다. [784]


사익과 공익이 단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일치한다 [786]


제 14장 로크의 정치철학


우리는 지금도 개인이 자기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정치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거부하지만 경제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수용한다... 막대한 부로 타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경제적 힘이 상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는지 생각해보면, (왕권신수설)... 사람들이 어떻게 왕의 권력에 대해 그 같은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미래의 어느 시기에 이르면 이런 신념들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공상적으로 보이는 (왕권신수설) 팔머의 견해만큼이나 허황된 소리로 들리게 될 것이다. [794-795]  

46. 나 또한 개인의 재산 상속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그 방법과 과정의 문제를 지적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러셀의 적절한 예를 읽으며 우리 사고의 편협함을 새삼 느낀다


자연법

사회계약론에서 정부는 계약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만약 계약 내용의 일부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804]


노동가치설은 이익에 눈이 먼 약탈자로 비친 계급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지지를 얻어왔다. [811]


우리 시대는 조직이 지배하며, 이 시대의 갈등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분리된 개인들이 아니라 조직들 간의 갈등이다. 로크가 말한 대로 자연 상태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여전히 존재한다. [815]


제 15장 로크의 영향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행복을 소중해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더욱 ‘숭고한’ 것과 비교하면서 행복을 경멸하거나 멸시하며 천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욱 자비로운 경향을 나타낸 반면, 다른 목적을 내세웠던 사람들은 잔인성이나 권력욕에 무의식적으로 압도당하곤 했다. [821]

로크의 사상에서 비롯되어 계몽된 자기이익의 추구를 가르친 학파는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의 이름으로 인간의 행복을 경시했던 학파들보다 인간의 행복을 더 증진시키고 비참한 고통을 경감시켰다. [823]

47. 인간의 행복은 그 어떤 목적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특히 개인의 행복은 어떤 이유로도 짓밟을 수 없는 절대가치이다.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는 주장은 독재와 전체주의로 흐르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질서와 자유는 그래서 절대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는 타인의 행복과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만 상대적으로 제한받아야 한다. 

제 16장 버클리


물질의 존재를 부정 [824]

마음과 관념들만 존재하므로 물리적인 외부 세계는 철폐된다. [891]


제 17장 흄


로크와 버클리의 경험주의 철학을 발전시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냈고 [838]

버클리가 물리학에서 실체의 개념을 추방했듯, 흄은 심리학에서 실체란 개념을 몰아냈다. [841]

흄은 ... 경험론이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되면 아무도 스스로 과학 전체 영역에서 합리적인 믿음과 경솔한 믿음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양자 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불가지론) [892]


제 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 18장 낭만주의 운동


18세기 후반부터 현재(20세기)까지, ...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 운동의 특징인 감정이나 격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858]

초기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과 아무 관련도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철학과 연결되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또한 루소에 의해 처음부터 정치학과 이어져 있었다. [858]


루소는 기존의 감수성 예찬에다가 호소력을 더하며 폭과 범위를 넓혀놓았는데 ... 그는 이론과 취향 측면에서 민주주의자였다. [859]


낭만주의자들은 평화와 고요가 아닌, 활기차고 정열적인 개인적 삶을 간절히 원했다. ... 19세기 전반기 국가주의는 가장 활기찬 혁명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는데, 대부분의 낭만주의자들은 국가주의를 열렬히 지지했다. [861]


결점은 낭만주의자들의 심리학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가치 기준이 문제이다. ...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무된, 특히 바이런식 인간은 폭력성과 반사회성을 드러내며, 무정부주의적 반항아가 되거나 정복을 일삼는 폭군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환경 아주 깊숙한 곳에 있으므로 호소력을 갖는다. ... 사회의 구속에 반하는 고립 추구 본능에서 비롯된 반항 [865-866]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 도덕 영역에 대한 반항으로 변모했다....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869]

48. 자아실현은 개인에게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최고의 목적은 좁게는 타인의 삶, 넓게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일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제 19장 루소


유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 옹호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로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한다. [870]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은 도덕의 가장 큰 적이며 탐욕을 조장하는 노예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873]


지금까지 대다수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수용했다....

현대의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예전의 ‘신 존재 증명’을 무시하고 신앙의 기초를 인간 본성의 어떤 국면, 즉 경외감이나 신비감, 옭고 그름의 느낌, 염원의 느낌들에 둔다. 이렇게 종교적 믿음을 옹호하는 방식은 바로 루소가 고안하였다. [878]


사회계약론 - 전체주의 국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데 이바지함 [882]

언제나 정당한 군주의 의지가 바로 ‘일반 의지’이다. [884]

헤겔은 이 책에 기술된 철학의 대부분을 프로이센의 절대 정치를 지지하는데 이용했다. 루소의 철학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거둔 첫 결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다. 러시아와 독일의 독재 정치는 부분적으로 루소의 가르침의 성과로 볼 수 있다. [889]


제 20장 칸트


모든 인간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는 그의 원리는 인권을 주장한 학설 가운데 하나이다.

“한 인간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의지에 복종해야만 하는 경우보다 더 끔찍하고 두려운 일은 없다” [894]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 [895]


선험명제와 경험명제의 구분 [896]


“네 행위의 격률이 네 의지를 통해 마치 일반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 [901]


제 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19세기 - 미국과 러시아, 고대나 현대의 인도 철학, 과학 특히 지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유기 화학 분야의 새로운 업적, 기계에 의한 생산

전통 체계에 대한 반항

 - 낭만주의적 반항 : 바이런, 쇼펜하우어, 니체, 무솔리니, 히틀러

 - 합리주의적 반항 : 프랑스 계몽철학자,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 마르크스, 소련 [910]


벤담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915]

다윈 - 진화론,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진화의 동기를 부여하는 힘은 자유로운 경쟁의 세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경제학

[917]


자연과 투쟁 관계에 놓여있는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다음에 인간의 믿음과 포부와 염원을 과학적 선전, 특히 교육에 의해 조종하려는 지배 권력에 대한 신뢰가 자라난다. ... 거의 무한한 힘의 전망에 도취되어 약자에 대해서는 냉담해진 사람들에게 대처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철학의 구성이 우리 시대가 부여받은 가장 절박한 과제이다. [921]

49. 세상의 많은 불공평들, 특히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 국가와 국가의 격차.

글로벌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다. 세계의 문제를 자신과 밀접한 문제로 인식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비슷비슷한 공동체에서만 어울리는 사람은 삶이 평화로울지는 모르지만 삶의 진정한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한다. 나, 그리고 아이들이 삶의 다양한 모습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자. 또한 우리나라, 우리민족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인간관계를 다루면서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현대에 어울리는 윤리 체계를 세우려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람들 상호간의 권력 행사에 바람직한 한계를 긋는 일도 필요불가결하다. [922]


제 22장 헤겔


논리학, 변증법

과정은 결과를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이다. [927]


“세계사는 억제되지 않은 자연의 의지가 보편적인 원리에 복종하도록 함으로써 의지에 주체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훈련장이다.” [931]


제 23장 바이런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바리언의 시를 흔히 조잡하고 하찮게 여길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조차 천하게 취급하곤 한다. [943]


제 24장 쇼펜하우어


의지를 강조하고 철학적으로 부각시킴 [952]

민주주의에 반대 [954]


신화들 가운데 최고의 신화는 열반의 신화인데, 쇼펜하우어는 욕망으로 생긴 집착을 끊어버린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956]


금욕과 체념의 덕을 깊이 확신했던 사람이 스스로 확신한 덕을 실천에 옮기려고 전혀 애쓰지 않았다 [959]


의지가 우월하다는 학설은 염세주의보다 더욱 중요하다... 의지의 규모가 커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지식의 지위는 더 낮아졌다. [960]


제 25장 니체


쉽게 조화되지 어려운 두 가지 가치를 결합하려 한다

-냉혹함, 전쟁, 귀족적 자부심 + 철학, 문학과 예술, 특히 음악 [963]


니체의 영향력이 전문 철학자들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미래를 내다본 니체의 예언이 ...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니체가 질병의 징후일 뿐이라 해도, 그의 질병은 현대 세계에 널리 퍼져 있음이 틀림없다. [969]


니체는 보편적 사랑을 경멸하지만, 나는 보편적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976]

50. 모든 것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의지의 힘은 강하다. 습관의 힘도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사랑의 힘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사랑밖에 없다. 편협하지 않은 인류에 대한 사랑, 때로는 흔들리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제 26장 공리주의자들


벤담-‘철학적 급진주의자들’의 지도자. 히틀러 추종, 연합원리를 심리학의 기본 원리로 삼음

      평등의 신념,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 [978-980]


제 27장 카를 마르크스


급진파의 합리적 성향, 낭만주의에 반대

유물론을 새롭게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987]

도구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989]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989]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내가 하는 작업에 제시된, 즉 철학이 발전한다는 내 견해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의식하고 있다. [990]


제 28장 베르그송


비합리주의


철학은 행복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감정철학, 지식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이론철학, 행동에 대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실천철학으로 분류된다...

현대 세계는 반항하는 실천철학을 요구한다. [998]


제 29장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자. ‘근본 경험주의’, ‘실용주의’, ‘도구주의’ [1009]


회의주의자는 속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나쳐서 중요한 진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1013]


철학의 기능은 이런저런 세계 설명 공식이 참이라면 당신이나 나에게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이론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1015]


제 30장 존 듀이


논리학과 인식론의 근본 개념으로서 ‘진리’를 ‘탐구’로 대체한 학설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1019]


대체로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는 사실들에 의존하는 ‘진리’ 개념은 여태까지 철학에 필요한 요소인 겸손을 가르쳤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자긍심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면, 다음 단계는 일종의 광기에 도취되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이러한 광기는 피히테와 더불어 철학 속으로 침투한 후로 철학자이든 아니든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힘의 도취이다. 나는 이러한 도취가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며, 의도하지 않더라도 힘의 도취에 일조하는 철학은 모두 끔찍한 사회 재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확신한다. [1029]


제 31장 논리 분석철학


피타고라스 시대 이후 철학사에서는 주로 수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와 경험과학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자 사이에 대립이 존재했다.

- 수학파 :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칸트

- 경험주의자 :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등  [1030]


철학자들이 보기에 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으로 대체한 점이다. [1034]


과학적 방법으로 적절하게 다루기 힘든 중대한 분야가 남는다. 이 분야는 궁극적인 가치의 문제를 포함한다. [1036]


진정한 철학자는 모든 선입견을 검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상 진리 추구에 제한을 둔 철학자는 이미 자신의 탐구 활동에 검열 장치를 마련해둔 셈이었다. [1037]


과학적 진실성은 우리의 믿음을 가능한 한 지역적 편견이나 기질적 편견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에 바탕을 두게 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덕을 철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철학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의 고안은 내가 속한 분석철학 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객관적인 철학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 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1038]


 

* 내가 저자라면


  <서양철학사>는 러셀이 미국에서 반즈 재단에서 2년 정도 하던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고 러셀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러셀은 시종일관 자신의 현실 참여적이고 자유주의적 관점을 통해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철학과 역사를 논한다. 이러한 러셀의 관점은 비평가들의 편견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 책의 성공 비결이기도 했다. 나 또한 명확하고 일관된 관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술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이란 표현은 극히 드물게 사용되어야 하며(저술활동 자체가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특히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저자의 가치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대로 행동한 저자의 작품은 그 신뢰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 교양철학교재로 사용되기도 한다는데 내가 대학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고민의 깊이가 얕아서 지금처럼 감동받지는 않았을까?

  책 자체에 대한 감동보다 더 큰 것은 버트런드 러셀에 대한 감동이었다.

  작년에 <행복의 정복>을 읽고, 세상이야말로 나의 생존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회이므로 외부세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으라는 그 명료한 주장에 깊이 공감했고 세상 속에서 나의 의미와 역할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이번에 <서양철학사>를 읽고 또 저자의 삶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면서 세상에 대한 러셀의 치열한 관심과 사랑이 자신과 역사에 대한 깊은 탐색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새삼 확신할 수 있었다.  


  러셀 책의 특징인 서론의 논리적 구성과 탁월함은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10쪽이 조금 넘는 서론을 통해 1000쪽이 넘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고 있으며 또한 저자가 어떤 관점을 통해서 집필했는지, 또한 논리적 구성과 일관성을 맛보여 줌으로서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서론은 요약인 동시에 결론으로서 책을 읽기 전 개론의 형태로 읽으면서 본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을 다 읽은 후 (정말) 긴 내용을 마무리하고 독자의 의견과 감상을 정리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서문의 힘이 바로 러셀의 저술의 힘이자 러셀이 추구한 논리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서문의 힘에 대한 실례를 본 것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스 문명의 발흥에서 시작한 고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부터 존 듀이를 거쳐 논리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빠지지 않는-물론 러셀의 주관적 관점에서-기원전 6세기에서 1940년대까지 인류 역사의 개관, 이 자체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내용을 거시적인 접근과 동시에 한 철학자의 논리를 자세히 분석하는 미시적인 접근까지 종횡무진 펼쳐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저자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고 알고 있으며 치열한 성찰과 탐색을 통해 자신의 논리와 주관을 확실히 세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단편적이었던 세계사적 지식들이 배경지식과 철학이라는 깊이를 가지고 새롭게 내 속에 재정리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또한 그동안 왕조와 정치 위주의 역사 교육이 사회와 철학, 과학, 문화사를 연결한 교육으로 확장되어야만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배울 수 있다는 평소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탁월한 인물이 등장한 후 한동안 그 분야에 침묵기가 찾아오고 오히려 발전과 다양한 논의를 봉쇄하기 때문에 꼭 열린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은 현대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역사속의 교훈이며, 내가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많은 탁월한 인물들이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사실은 수학의 논리성으로 우리의 사고를 훈련할 수 있으며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통해 학문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또한 ‘글로벌 시대’, ‘국제화’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은 도구로서의 단순한 영어가 아니라, 우리 밖의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 그리고 열린 마음이라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철학이 과거의 죽은 지식을 이야기하고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학문으로 나와 동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나와 내가 사는 세계를 설명하고 암묵적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통합한다는 것이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특히 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철학의 정립은 필수요건이다. 당연히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 우리 개인의 철학의 역할이다.


  쓰고 싶은 주제에 관련된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수집하다보면 내용들 사이에 연결과 윤곽이 드러나 전체를 파악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적어 내려갈 뿐이며, 그 후 맑은 정신으로 검토한다는 글쓰기에 대한 부분(189p)은 이 책에서 덤으로 얻어가는 즐거움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작은 아쉬움은 있었다.

  ‘역사’를 다룬 책이기 때문에 고대, 중세, 근현대 별로, 다루어진 인물과 중요 사건이 표시된 연대표가 있었다면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좀 더 쉽게 정리되어 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러셀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여 뺀 듯도 하지만 주석으로라도 등장인물에 대해 출신국가(현재의 국가 명까지) 명을 넣어 주었다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고대 편의 경우 그 시대의 영토 및 영역이 표시된 간단하게 지도를 넣어주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 부분은 <로마인 이야기>에서 만족도가 컸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가장 아쉬움이 컸던 부분은 책 자체에 대한 부분이라기보다 각 시대의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의 정도에 따라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점이다. 물론 러셀이 본문 중에서 중간 중간 관련된 문화와 정치에 대한 개략을 넣고 있으나 나의 경우에 통합적인 이해에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었고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다른 세계사 책과 함께 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물론 이 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셀의 <서양철학사>처럼 깊이 있는 <동양철학사>를 읽고 싶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긴 희망이며, 지나온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아주 솔직하게 진술했다는 러셀의 <자서전>을 꼭 읽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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