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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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저자 소개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심층읽기 편에서는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러셀에게 접근해 보았다. 러셀의 언어철학은 한정서술구 이론과 간접지칭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이 이론을 소개하기 전에 언어철학에서 왜 러셀의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언어철학의 문제는 가장 단순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단어는 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고, 내가 무언가를 말할 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해낸다. 이는 동물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며, 매우 신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문자와 소리의 덩어리가 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언어철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고전적인 철학들은 사물과 대상간의 지칭관계를 설정해 두었다. 가령 우리가 사과라고 부르는 빨갛고, 동그란 과일을 “사과”라는 문자, 혹은 음성의 덩어리로 지칭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는데, 밀의 관점에서 “사과”라는 단어는 사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대답은 직관적으로 명쾌해 보이지만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가령 영어의 “Nobody”의 경우는 무엇을 지칭하는가? 그리고 관사와 조사의 경우에는 지칭하는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또 이런 문제도 있었다. “이명박은 한국의 대통령이다.”라는 문장은 우리에게 어떤 정보를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명박은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지만, 이 말이 나중에도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한국의 대통령”은 지금 비록 지칭하는 대상이 같지만, 나중에는 달라진다. 한 단어가 여러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은 “지칭이론”의 입지를 한껏 좁혀놓았다. 언어이론은 언어의 의미가 어디서 파생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세련된 설명을 필요로 했고, 러셀은 “한정서술구”이론은 위의 문제들을 상당부분 해소해주었다. 한정서술구 이론이란 한 단어의 의미가 여러 단어로 구성된 어떤 서술구(description)을 미리 포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령 러셀은 영어의 더(the)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미리 내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1. 최소 1개의 x가 존재하고,
2. 최대 1개의 x가 존재하며,
3. 그것은 ... 이다.
the를 분석해본 결과 러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발견하였고, 이것은 다른 모든 단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가령 63빌딩은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서술될 수 있다. 이런 개념의 덩어리가 이미 단어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프랑스왕은 대머리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프랑스의 왕”은 없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 지칭하는 바는 없지만, 실제 우리는 “프랑스”와 “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고, 따라서 위의 문장은 “틀렸지만”, “의미를 가진다.” 러셀의 이론에 따르면 노바디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노바디(nobody)란 이미 “아무도 없는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러셀의 이론은 기존의 지칭이론보다는 좀 더 세련된 설명을 제공했지만,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로 제기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연 그런 의미는 또 어디에서 왔는가?” 가령 “63빌딩=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한정서술구가 있다면, “여의도” “가장” “빌딩” 등의 단어 역시 서술구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를 이루는 서술구에도 단어가 있을 것이고, 또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서 무한하게 많은 “개념”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무한퇴행”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스토로슨은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박을 제시했다. 가령 “모두가 그녀를 좋아해”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기서 “모두”는 누구일까?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60억 인구가 모두 그녀를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설사 위의 문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모두”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트로슨의 관점에 의하면 언어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온 약속이며, 러셀이 말한 “한정서술구”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도넬란의 구분까지 이어지는 좀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에 따라서 러셀의 언어철학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언어 뒤에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둘째, 그는 한 단어가 언어를 직접 지칭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지칭이론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해결하였다. 셋째, 그의 언어이론은 논리의 세계와 일상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러셀은 논리의 세계와 일상이 완벽하게 구분되어있다고 보았는데, 이와 같은 견해는 전술한 “수학의 불완전성”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회ㆍ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à 1.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사조와 그 철학자들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철학사에서 러셀의 존재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러셀은 각 시대의 철학을 종교,수학, 과학 같은 다른 분야의 발전이나 사회ㆍ정치 상황과 연결하여 서술한다. 5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 시대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이다. 6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6
다른 한편 러셀은 철학이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을 문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거나 해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입장에서 철학사를 서술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철학은 철학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ㆍ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à 2. 러셀이 행동하는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사회ㆍ정치라는 레시피로 철학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식탁에 놓인 음식을 맹목적으로 입안에 넣지 않고 어제는 콩나물인데 오늘은 왜 콩자반이 반찬으로 나왔는지 맥락을 고민하고 거기서 그의 마음을 무찔러드는 키워드를 자신의 삶과 매칭시키는 노력이 러셀을 러셀답게 키웠을 것이다.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까지 출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7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 경향이 뚜렷한 근대 철학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근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 놓는다. 기술 발전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는데,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에 맡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à3. 자연을 두려워하며 환경에 순치되어 살아온 인간에게 과학기술은 복음이자 해방이었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인간의 인식 수준을 훨씬 앞지른 나머지 인간은 환경과 공존하는 지혜를 충분히 터득하지 못했다. 알다마에 맛들인 당구 100이 쓰리쿠션 게임을 즐기는 300수준에 단숨에 도달한 나머지, 처음에 표적을 맞추지 못한 빨간공이 두번째 당구대를 돌 때는 어떻게 뒷통수를 치게 되는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과 같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8
à4. 러셀의 해법은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지혜의 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느낌이다.
<지은이 서문>
역사의 변화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9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만약 그들이 운이 좋다면)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9~10
이와 반대로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ㆍ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역사를 소개한 장에서도 당대나 후대의 철학과 거의 관련이 없거나 무관해 보이는 것은 가차 없이 배제했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10
à5. 맞다. 철학은 일부 소수 지식인들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플랫폼으로 이것이 없으면 개인은 삐걱거리며 각자 놀게 될 수 밖에 없다.
<서론>
인생과 세계를 표현하는 ‘철학적인’ 사상 체계는 두가지 요소에서 생겨난다. 하나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한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17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17
à 6. 무인지대는 낭비가 허용되는 세계이다. 철학이 밥을 먹여 주나 돈을 벌어주나. INPUT 대비 OUTPUT이 미덕인 오늘날에 철학은 무엇인가. 당장 주린 배를 채우려는 화전민에게 철학은 사치품이겠지만 철학이 없다면 우리는 본능과 습관의 노리개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신학 분야에서는 이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바로 이 명확성이야말로 근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의혹을 품게 된 원인이었다. 18
à 7. 명확성이야말로 인류가 줄곧 추구해온 키워드가 아닐까. 거기에 해답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 무릎팍 도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18
à 8. 우리가 연구원 과정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철학의 정립을 통하여 결국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일게다.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는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19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제1기 철학은 고대에 철학의 길로 들어선 후, 그리스도교가 발흥하고 로마가 몰락했을 때 신학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친 제2기 철학의 위대한 시기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비롯한 몇몇 위대한 반항아를 제외하면 가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았다.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제3기 철학은 선대 철학자들이 활동한 이전 어느 시기보다 과학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형국이다. 전통적인 종교적 믿음은 계속 중요한 가치로 수용되지만,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과학이 정당화를 요구하는 듯이 보이면 수정되거나 변경되어 왔다.
종교와 과학이 그렇듯이 사회 결속과 개인의 자유는 전 시기에 걸쳐 갈등을 빚거나 불안정한 타협 상태를 유지한다. 19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유덕한 삶을 시민과 도시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영혼과 신의 관계로 생각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른 6세기 반 동안, 사회 결속은 철학이나 고대 그리스의 충성심이 아니라 무력에 의해, 처음에는 군사력의 의해 다음에는 조직화된 행정 권력에 의해 보장되었다.
여기서 로마 철학에 돌릴 만한 공로가 전혀 없는 까닭은 사실상 로마 시대에 철학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의미심장한 견해 하나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그것은 이미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 속에는 들어 있었던 반면, 그리스인들이 일반적으로 수용한 정신 측면에서 보면 낯선 사상에 속했다. 즉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21
à9.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묻는 질문 같다. 신에게의 복종은 무지와 두려움때문인가. 순전한 신뢰 때문인가.
6세기 동안 이어진 야만족의 침입은 서유럽 문명의 종말을 초래했다. 21
교회와 국가간의 갈등은 성직자와 속인 간의 갈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 국가와 북부 야만인 국가 간 갈등의 재현이기도 했다. 교회의 통일은 로마 제국의 통일을 그대로 흉내냈다. 교회의 전례 언어는 라틴어였으며, 교회의 지도층 인사는 대부분 이탈리아, 스페인, 혹은 남부 프랑스 출신이었다.
교회는 과거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모든 군대가 왕들 편에 섰는데도 교회는 마침내 승리했다. 교회가 승리한 이유는 일부는 교회 성직자들이 교육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왕들이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23
à 10. 믿음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잉태된다?
중세의 공인된 철학은 시대를 비추는 적확한 거울이 아니라, 한쪽의 생각만 비추었을 뿐이다.
교회의 대분열, 공의회 운동, 르네상스기의 교황제도는 종교개혁 운동을 초래했고, 이는 전 그리스도교의 통일과 교황 중심의 스콜라식 통치이론을 훼손했다, 르네상스기에 발견된, 고대와 지구 표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중세의 다양한 체계에 싫증이 난 나머지 중세의 체계를 정신의 감옥처럼 느꼈다. 23
르네상스기 예술은 여전히 질서와 규칙을 추구했지만, 사상은 오히려 무질서와 혼란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중세는 현실의 삶에서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동요했어도, 사상의 측면에서는 율법 준수의 열정과 명확한 정치권력 이론이 지배한 시대였다. 모든 권력은 궁극적으로 신에게서 유래한다고 믿었다. 신이 바로 교황에게는 성스러운 일을 처리할 권한을 황제에게는 세속의 문제를 처리할 권한을 위임했다는 말이다.
대개 화약의 힘에서 유래한 민족국가는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에 전에 없는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문명의 통일을 믿는 로마인의 유산은 점차 파괴되어 사라졌다.
사람을 지도할 원칙이 없어지면 정치는 적나라한 권력 투쟁으로 변모한다.
결국 그들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보다 문명은 뒤처지지만 사회 결속력이 강한 국가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24
à 11. 문명은 자기위선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야만의 침략이라는 가면을 빌어 자멸한다?
종교개혁은 주로 다시 살아난 로마의 지배에 반대한 북부 유럽 민족의 반항이기도 했다. 종교는 북방 세계를 복종시킨 힘이었지만,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종교가 붕괴되었다.
군주들은 영토 내 교회가 민족적인 색채를 띠게 되면 교회를 지배하기 쉬워져, 교황과 지배권을 나눠 가질 때보다 자기 영토 내에서 힘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25
진리는 더는 권위자에게 물어서 확인하지 않고, 내적 성찰을 통해 확인했다. 더불어 정치계에서는 무정부주의로, 종교계에서는 신비주의로 빠르게 발전하는 경향이 생겨나지만, 이런 경향은 언제나 가톨릭의 정통 체계 속에 편입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근대 철학의 문은 연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26
도덕 측면에서 개신교가 강조한 개인의 양심은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어떤 행동은 결과가 좋거나 도덕규범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도록 고취한 감정으로 인해 찬미되거나 칭찬의 대상이 된다.(……) 예술, 문학, 정치에 나타난 낭만주의 운동은 인간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주는 응시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대적인 형태의 자유주의는 로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로크는 절대적인 권위와 전통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배격했을 뿐만 아니라, ‘광신’ 즉 재침례교의 개인주의도 거부한 인물이다. 27
기원적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자를 제외하면 과학적, 공리주의적, 합리적 성향을 나타냈으며 격렬한 정열에 냉담하고 더 심오한 종교라면 전부 반대했다.
사회 결속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류는 합리적 논증만으로는 결코 결속을 강화하지 못했다. 28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29
<제 1권 : 고대 철학>
제 1 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 1 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청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34
철학은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적 6세기초에 동시에 탄생했다.35
문자기술은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에서 발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등장했다.35
그리스도교에서는 대모신을 동정녀 마리아로 변형시켰으며, 성모 마리아에 대해 ‘신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써도 좋다고 허락한 곳도 에페소스 공의회였다.36
à12. 이런 관점으로 종교를 바라보면 참 공허해진다. 종교도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 단독자로서 신과 독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더욱 철학이 필요한 건가.
신이 입법자에게 법전을 부여했기 때문에 법 위반은 불경으로 간주되었다.37
미케네 문명은 대부분 호메로스가 묘사해 전해주었다.39
그리스인은 연이어 크게 일어난 세 파도를 이겨내고서야 그리스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첫 파도는 이오니아족의 침입이고, 두 번째 파도는 아카이아 족의 침입이며, 세 번째 파도는 도리아족의 침입이었다. 39
‘참주정치tyranny’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democracy’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41
à 13. 제도의 이름만 보지 말고 당대의 맥락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다.
처음에 거의 구별되지 않던 교역과 해적 행위가 그리스인들에게 초래한 가장 중대한 결과는 문자 기술의 획득이었다.41
호메로스의 시는 중세 후기의 궁정 소설과 마찬가지로 교양을 갖춘 귀족 계급의 관점을 대표하며, 민중 사이에 널리 펴져 있던 온갖 미신을 서민적이고 비속하다고 해서 무시한다.42
호메로스는 원시성과 거리가 먼 검열관의 위치에서 고대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이상을 간직했다.43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보다 종족이나 부족을 위해 생겨났다. 일정한 종교의식은 공감에 의한 마술적 힘을 불러일으켜 부족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의도로 거행되었다.(……)그 안에서 개인은 분리된 개체 의식을 상실하고 스스로 전체 부족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다.43
호메로스 작품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는 오히려 숙명이나 필연, 혹은 운명과 같은 더욱 어둡고 실체가 없는 존재와 관련이 깊은데, 제우스조차 이에 복종해야 한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44
à 14. 고대 철학이 물질의 근원을 진지하게 탐구했던 이유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눈에 보이는 법칙으로 설명하여 인간에게 평안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prudence,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forethought이다.48
인간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에는 도취의 요소, 즉 사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열정의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다.49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50
죽은 자의 영혼이 마시면 안 되는 샘물은 망각을 일으키는 레테의 강물이다. 다른 샘물은 므네모시네, 즉 기억의 강물이다.53
황홀경 체험은 그리스인에게 영혼이란 자아의 연약한 닮은꼴 이상이며 오직 ‘육신의 밖에 있을’ 때만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음을 암시했다.59
제 2 장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의 과학과 철학은 모두 투박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사상의 형성과 관찰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64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66
제 3 장 피타고라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68
“우선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생물로 탈바꿈한다.”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73
à15. 당시에도 이론적 체계보다는 미천한 자신의 경험을 악용해 곡학아세한 철학자가 많았나 보다.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확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77
제 4 장 헤라클레이토스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80
연역적 방법의 사용으로 거둔 놀라운 성과는 고대 세계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세계를 주도한 사상을 대부분 잘못된 길로 빠뜨렸다.80
à 16. 연역적 사고는 개인간의 불통에 간혹 상당한 장애요인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옳고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니 서로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게 되기 쉽다.
경멸은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며 숭상은 비판적 태도의 회복에 방해가 된다. 81
헤라클레이토스의 윤리는 일종의 거만한 금욕주의로서 니체의 윤리와 매우 흡사하다.84
흔히 변화의 보편성에 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신념은 “만물은 유전한다”는 구절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88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교는 두 가지 형태, 즉 신과 영혼 불멸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한다. 89
à 17. 철학의 뿌리는 종교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철학은 다만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영원으로 설명할 뿐이다.
몇몇 신학자, 예컨대 잉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은 미래의 매순간 줄곧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시간과 전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며,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으므로 변화의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배제된다.89~90
à 18. 변화를 시간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서양적 관점이다. 불교의 돈오돈수에서 볼 수 있듯 변화는 인식의 문제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 바뀌는 것과 함께 동반된다. 과학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3차원을 초월한 세계를 증명하지 못하기에 서양 철학에서는 여기가 철학과 종교가 나뉘는 지점이 아닐까.
철학자들이 전력을 다해 이루려는 야망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 소멸시킨 듯이 보였던 희망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91
제 5 장 파르메니데스
그는 감각이란 우리를 속이고, 많은 감각 가능한 존재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The One’로서 무한하며 분할할 수 없다.93
실체는 변하는 술어들이 부여되는, 지속하는 주어로 가정되었다. 98
제 6 장 엠페도클레스
흙, 공기, 불, 물을 4원소(그가 ‘원소’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엠페도클레스이다.101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목적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단지 우연의 힘과 필연의 힘으로 변할 따름이다.102
엠페도클레스는 물질세계가 구형이라고 주장했는데, 황금시대에는 다툼이 구형의 바깥에 존재하고 사랑은 구형의 안에 존재했다.102
제 7 장 아테네의 문화
아테네는 단지 위대학 두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철학에 이바지했다.108
노동할 필요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과학, 수학, 철학 연구에 썼다.108
à 19. 현상은 숙성을 통하여 실재로 진화한다.
제 8 장 아낙사고라스
그는 아테테인들에게 처음 철학을 소개한 인물이자 물리적 변화의 제일 원인이 정신이라고 제안한 첫 인물이기도 했다.110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정신은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112
제 9 장 원자론자들
충돌이 일어나면서 원자들의 무리가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나머지는 아낙사고라스의 견해와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소용돌이를 정신의 활동보다는 오히려 기계적으로 설명하려 한 점은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117
지각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감각의 지각과 지성의 지각이다. 지성의 지각은 지각되는 사물들에의존할 뿐이지만, 감각의 지각은 감각에도 의존하므로 속기 쉽다. 124
à 20. 철학자와 예술가의 근본적 차이는 감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미 보았듯이 그에게는 영혼도 원자들로 구성되며, 사유도 신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124
제 10 장 프로타고라스
아테네가 현대 미국사회보다 덜 편협해 보이는 한 가지 점은, 불경하다거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기소된 자에게도 자신을 변호하고 항변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128
플라톤은 늘 자신이 생각한 덕을 사람들에게 함양해 줄 것을 지지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적인 면에서 좀처럼 정작하지 않은 까닭은 학설을 사회적 귀결과 연관시켜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다음과 같이 판단하는 경우에도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는 논증을 전개하면서 수수한 이론적 표준에 따라 판단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덕성을 함양하는 고결한 결론에 이르도록 논의를 왜곡한다. 132
à 21. 현대는 그리스 시대보다 더욱 이런 경향에 취약한 것 같다.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일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도그마에 쉽게 순응하는 걸 보면 자기 철학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지니게 된 결함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탐구를 하는 경우에 이미 도달해야 할 결론을 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à 22. 나찌즘 등 극단적인 국가사회주의, 종교적 도그마의 뿌리가 이미 이때 형성되었다?
제 2 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 11 장 소크라테스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국가에서 받드는 신들을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을 새로 들여와 젊은이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유죄라고 주장했다.142
소크라테스가 과학 문제보다 윤리 문제에 더 몰두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150
그는 아무도 고의로 죄를 짓지는 않으므로, 지식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덕을 갖추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50
à 23. 지식이 덕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그리스 윤리와 그리스도 윤리의 단절을 실감나게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제 12 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153
à 24. 오늘날의 스파르타는 기업이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기업의 쓰임새에 딱 맞는 인간을 육성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스스럼 없이 밝히는 걸 보면…
스파르타의 전성기에 생존한 헤로도토스는 뇌물에 저항할 수 있는 스파르타인은 아무도 없었다는 놀라운 말을 전한다.
à 25. 스파르타인은 건장한 팔다리로 길러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국가를 보위하는 튼튼한 팔다리이면 되었기에 본능을 통제할 자기성찰능력이 결여되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들 간의 동성애는 스파르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풍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춘기 소년들의 교육 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공인된 부분이었다. 164
à 26. 열등한 여자와의 교제보다는 남자들간의 사랑이 용맹과 의지를 키운다고 본 것일까.
제 14 장 플라톤의 이상향
이상 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170
à 27.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통치자의 철학이 국가 경영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철인 정치론은 오늘날에 더욱 의미있는 개념이다. 통치자의 스타일은, 그의 위상 때문인지 사회적 트렌드로 대중화되곤 한다.
플라톤은 두 세대가 지나면 신화에 대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옳았다.176
à 27. 북한의 세습체제가 이를 입증했다. 불과 반세기만에 권력에 의해 급조된 건국신화가 북한 인민의 생각을 성공적으로 잠식했다.
‘이상’과 일상적인 욕망의 대상을 구분하는 차이는 이상이 개인과 관계가 없는 객관적 대상이라는 점이다.179
제 15 장 이상 이론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185
à 28. 탐구심은 앎에 대한 추구이다. 하지만 방향성의 결여라는 점에서 탐구심은 단지 의견이다. 탐구심은 탐구의 대상을 명확히 함으로써 지식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새로 연출된 비극과 새로 전시된 미술품을 꼭 관람하고 새로 나온 음악을 꼭 감상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런 사람은 아름다운 사물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닌데, 철학자는 사실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앞 사람은 의견opinion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knowledge을 얻는다. 185
à 29.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면 나의 것이 된다.
두 종류 지성 가운데 이성reason이 더 뛰어난 능력으로 순수 이상에 관계하며 변증법을 사용한다. 오성understanding은 수학에 쓰이는 지성 능력으로서 진위가 가려지지 않는 가설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성보다 열등하다. 190
플라톤은 학문과 진리는 유사하지만, 선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192
à 30.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플라톤에게 빚진 게 많아 보인다.
제 18 장 플라톤의 지각과 인식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지각하는 감각 기관이 없다는 플라톤의 논증은 대뇌피질을 무시하고 모든 감각 기관이 육체의 표층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가정하는 셈이다.226
계속되는 변화는 정량 장치quantitiative apparatus가 필요한데 플라톤은 그 가능성은 무시한다.232
제 19 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대략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묘사해도 괜찮다.236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서 한 단계 진보한 이론이라 확신하며,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는 점도 확실하다.239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에서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는데, 정신이 영혼보다 등급이 더 높아서 육체와 맺는 관계가 덜 밀접하다.245
제 20 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어느 덕이나 양극단의 중용이며, 양극단은 각각 악덕에 속한다.249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가장 훌륭한 개인은 그리스도교의 성인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개인은 적당한 긍지를 지녀야 하며 자신의 공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도 안 된다. 또 경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경멸해야 한다. 긍지에 찬proud, 또는 대범한magnanimous 사람에 대한 서술은 이교도 윤리와 그리스도교 윤리의 차이,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노예 도덕으로 평가한 의미의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251
최고 덕이 소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윤리학을 정치학에 논리적으로 종속시키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254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는 자비나 박애라 부를 만한 요소가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제 21 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263
결혼 적령기는 남자는 37세이고 여자는 18세이다. 264
제 22 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277
귀납법은 연역법보다 설득력이 약하며,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만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귀납법은 연역법이 주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 준다. 논리학과 순수 수학의 범위를 넘어선 중요한 추론들은 모두 연역 추론이 아니라 귀납 추론이다. 유일한 예외인 법률과 신학은 각각 제일 원리를 의문의 여지가 업는 원본, 바꿔 말하면 법령집이나 성서에서 끌어낸다. 282
à 31. 상대주의의 시대, 개연성이 난무하여 혼란스럽다. 러셀이 말한 ‘합리적 회의주의’, 이것만으로 험난한 파도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실체’는 한마디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문장 구조를 세계 구조로 옮겨놓은데서 기인한 형이상학과 관련된 실수의 산물이다.284
제 23 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운동의 궁극 기원은 의지이다. 지상에서는 인간과 동물들이 변덕스러운 의지가 운동의 기원이고, 천상에서는 변화를 겪지 않는 최고 조물주가 운동의 기원이다.288
제 24 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그리스 기하학자들을 사로잡은 굉장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육면체를 두 배로 만드는 문제로, 어떤 신전의 사제들이 받은 신탁에서 유래하는데, 신탁에 따르면 신이 이전에 만든 것보다 두 배가 되는 신상을 원했다.293
지구에 더하여, 중심의 불에서 동일한 거리에 또 다른 천체, 쌍둥이 지구가 존재한다고도 생각했다.298
제 3 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제 25 장 헬레니즘 세계
역사 속에 실존했던 영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스만큼 신화 형성에 적합한 능력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은 없었다.
제 26 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개’를 의미하는 ’견유cynic’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는 감각 지각의 모호성과 겉으로 나타난 모순된 점들 때문에 흄과 흡사한 주관주의로 나아갔다.
제 27 장 에피쿠로스 학파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한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가 아니라 바로 에피쿠로스였다.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현자의 목표는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 생각한다.
à32.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던 듯 하다. 비범한 하루는 속절없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리곤 하지만 평온한 하루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일상의 기억이다.
영혼원자는 육체에 두루 펴져 있다. 감각은 육체가 발산하는 얇은 막들이 이동하여 영혼 원자들과 부딪칠 때 발생한다.
에피쿠로스가 살던 시대에는 고난의 시대였기 때문에 소멸이 정신의 고뇌에서 벗어난 즐거운 휴식처럼 보였을 것이다.
제 28 장 스토아 철학
스토아 학파의 윤리가 에픽테토스나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시대에나 적합한 까닭은 스토아학파의 복음이 희망보다는 인내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16,17,18세기에 걸쳐 나타난 자연권 학설은 스토아 학파의 학설을 부활시킨 결과였으나 중요한 수정을 거쳤다. 바로 스토아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제일 원리들에서 도출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등등하다고 주장했다.
<제 2권 : 가톨릭 철학>
서론
당시 지성계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들이었다.
고대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중세 세계의 특징은 가지각색의 이원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 1 부 교부 철학
제 1 장 유대교의 발전
유대인들은 고유한 종교 의식을 통해 한 민족으로서 단결하였으나, 율법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독창성을 잃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습에 함몰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의 겸손을 실천하려 노력했으나 유대인은 대개 겸손을 덕으로 여기지 않았다.
제 2 장 초기 그리스도교
정신이 타락하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덕을 갖추면 정신이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면 육체가 없는 존재가 된다. 최후에는 악마조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 전설이라는 사실은 현대 역사학자에게는 명백하지만, 고대인들은 전설로 생각하지 않았다.
제 4 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과거’는 기억과 동일시하고, ‘미래’는 기대와 동일시할 수 밖에 없으며, 기억과 기대는 둘 다 틀림없이 현재에 속할 사실들이다.(……)’’“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현재는 기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는 기대이다.”
야훼=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마르크스
선민=프롤레타리아
교회=공산당
그리스도의 재림=혁명
지옥=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공산사회
à 33. 우리는 똑 같은 세상을 산다. 그러나 각자의 눈을 사로잡는 키워드는 각기 다르다. 키워드가 곧 그의 세계다.
제 5 장 5세기와 6세기
불완전함은 결핍으로서 완전한 원형의 존재를 함축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악의 결핍 이론을 채택했다.
제 6 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청결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는 ‘신의 진주’로 불렀으며 성스러움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제 2 부 스콜라 철학
제 7 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신성 로마 제국의 건국은 이론상으로는 중세기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나는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쟁이 종식된 후 세계가 아시아를 동등한 문화권으로 인정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제 10 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동로마 제국을 공격한 주요 세력은 이슬람교도로서 정복 이후에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가치있는 고유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는 유類, 즉 보편자가 동시에 사물 앞에도, 사물 안에도, 사물 다음에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제 11 장 12세기
스콜라 철학 방법의 결점은 ‘변증법’을 강조한데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제 12 장 13세기
인노켄티우스 3세는 신성의 기미가 없는 최초의 대교황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문화 측면에서 계몽된 사람이었으나, 정치 측면에서는 퇴행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제 3권 : 근현대 철학>
제 1 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 1장 일반적 특징
근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한 과학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혀 다른 지적인 권위이며 정치적권위가 아니었다.639
이론과학은 바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응용과학은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처음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비중이 계속 증가하여 인간의 사고에서 이론과학을 거의 몰아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640
제 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인문주의를 장려하는 정책은 신앙심이 유달리 깊고 진지한 북부 유럽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덕행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647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649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653
제 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핵심을 찔러 말하자면 북부 유럽의 감상주의를 내세워 그리스의 지성주의를 거부한 셈이다.669
16세기는 루터의 등장 이후 철학적인 면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으나, 17세기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었다.
제 6장 과학의 발흥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695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데도 사실상 정반대 결과를 낳은 까닭은 과학의 승리가 오히려 자존심과 긍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695
제7장 프랜시스 베이컨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700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 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702
포괄적인 귀납 과정은 단순 열거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 많은 사례를 통해 확증된다. 이런 상황은 아주 만족스럽지만 않지만, 베이컨을 비롯해 후계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704
à 34.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없으니 결과론으로 진리를 따질 수밖에. 인식의 한계는 곧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제 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에 대한 두려움이 공개적으로 허용되면 종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신이다. 709
의지란 숙고 속에 남은 지속적인 기호나 혐오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의지는 욕구나 혐오와 별개로 생기지 않고 갈등이 일어났을 경우에 가장 강하게 나타난 욕구나 혐오일 뿐이다. 이는 분명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홉스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 710
군주는 전제적인 군주가 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가장 나쁜 전제정치도 무정부상태보다는 낫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711
홉스는 군주에게 복종할 의무에 한 가지 제한을 두었다. 그는 자기 보존의 권리를 절대적인 권리로 간주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군주에게 대립하는 경우에도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결론이 도출된 까닭은 자기 보존을 정부 설립의 동기로 보았기 때문이다.713
제 9장 데카르트
중간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모두 철학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전문능력을 갖춘 우수한 교사들이었을 따름이다. 데카르트는 교사가 아니라 찾아낸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로서 저술에 임했다. 719
마치 두 시계처럼, 신은 정신 활동과 육체 작용이 정확히 맞도록 태엽을 감아놓았다. 그래서 나의 의욕이 생긴 경우 순수하게 물리적인 법칙이 나의 팔을 움직이도록 야기한 원인이 되므로, 나의 의지는 나의 육체에 작용하지 않는다. 724
데카르트는 흔히 ‘데카르트의 회의’라 불린 의심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는 철학의 확고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은 전부 의심하기로 결심한다. 725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나에 대해)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서 파생된 철학에는 주관주의 경향과 물질은 오직 정신에 알려진 대상들에서 추론을 통해 알려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727
데카르트의 철학에는 당대 과학에서 배운 내용과 라 플레슈에서 배운 스콜라 철학 사이의 이원적 대립이 존재한다.732
제10장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체계는 피르메니데스가 개시한 유형에 속한다. 오직 하나의 실체, 즉 ‘신 또는 자연’만이 존재하는 까닭은 유한자가 스스로 존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35
스피노자가 보기에 사유와 연장은 신에게 속한 두 속성이다. 735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736
à 35. 인간이 운명 앞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도입한 결정론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연역적 사고가 느껴져 수긍하기 어렵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기 보존은 정념의 근본 동기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실재하는 긍정적인 면이 우리를 분리된 상태로 두지 않고 전체와 하나가 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기 보존의 특성도 달라진다. 737
à 36.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가 동양사상으로부터 영향받은 점은 없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이러한 논증에 해답을 제시한다. 무지로 인해 우리는 미래가 변경되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고,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경되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래서 희망이나 공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희망과 공포는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견해에 의존해서 생겨나며, 지혜기 없기에 생겨난다. 739
“신에 대한 사랑이 정신 영역에서 최고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말은 본래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듯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한 설명이다. 741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이란 궁극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인 부조화일 따름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수용하기 힘든 까닭은 개별 사건이 그 자체로 존재하며 전체로 흡수되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행동 하나하나는 우주의 일부가 되며, 나중에 일어난 일이 잔인한 행동을 악이 아닌 선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잔인한 행동을 일부로 포함한 전체에 완전성을 부여해서도 안 된다. 746
à 37. 스피노자 철학의 장점을 잘 표현한 대목이다. 티끌처럼 미약한 인간의 존재와 그 미약한존재가 우주를 품었을 때 벌어지는 인식의 혁명이란 이런 것인가.
제 11장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가 바로 이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라는 학설을 창안한 사람이다. 747
데카르트는 세 종류 실체, 즉 신과 정신과 물질을 인정했고, 스피노자는 신만을 실체로 승인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연장extension이 물질의 본질인데 반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연장과 사유가 둘 다 신의 속성이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연장은 실체의 속성이 되지 못한다. 그 까닭은 연장이란 나뉘기도 하는 복합물의 특징이므로 실체들로 구성된 복합물에만 속하고, 각 단일 실체는 연장되지 않기 때문이다.750
à 38. 사물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이 갑자기 언어의 범주로 축소된 느낌이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따르면 각 단자가 우주를 반영하는 까닭은 우주가 단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신이 자연스럽게 결과에 이르는 본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750
라이프니츠는 자신을 스피노자와 대비하며 자신의 체계 안에서 자유의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그의 체계에는 이유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충족이유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행위자에 관한 한, 행위의 이유는 필연성 없이 마음이 내켜서 일어나는 것이다. 751
쿠튀라는 총족이유율이란 참인 명제는 모두 분석 명제, 즉 반대 명제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명제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754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논리학의 두 전제, 곧 모순율과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다. 두 법칙은 모두 ‘분석’ 명제 개념에 의존하는데, 분석 명제란 주어 개념 속에 술어 개념이 포함된 명제이다. 760
그는 세계 안의 모든 개별 사물은 ‘우연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실존하지 않는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à 39. 논리 추론방식은 그리스도교에서 차용한 것 같은데, 세계 안의 모든 개별 사물은 우연적인 존재라니 일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제 13장 로크의 인식론
존 로크는 역사상 일어난 혁명 가운데 가장 온건했으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1688년 명예혁명의 주창자이다. 명예혁명이 겨냥한 목포들은 가장 온건했지만 대부분 착오 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후 영국에서 더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774
로크 사상의 특징은 바로 독단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점인데,이 점은 그에게서 시작되어 자유주의 운동 전체로 전파되었다. 그는 이전 철학자들에게서 우리 자신이 실존하고, 신이 실존하며, 수학의 진리는 분명하다는 몇 가지 확실한 믿음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로크 학설의 다른 점은 진리란 식별하기 어려우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의심하면서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는 취지로 드러난다. 777
로크가 사용한 이성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한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개연성만 지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지지할 수 없는데도 실제 생활에서 수용하면 좋은 명제들에는 어떤 부류가 있는지 탐구하는 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연성의 근거는 두 가지로, 우리가 하는 경험과의 일치와 타인의 경험에 따른 증거이다” 778
아직까지 아무도 신뢰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갖춘 철학을 세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로크는 신뢰성을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에 이르려 일관성을 포기했다. 784
로크가 살았던 당시 정신은 모든 종류의 사물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식이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선언은 새롭고 혁명적인 학설이었다.
제 14장 로크의 정치철학
영국에서 왕권신수설이 타파된 주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교의 다원화이고, 다른 하나는 군주와 귀족 계급, 상류 자본가 계급 간의 권력 투쟁이다. 792
자연 상태에 관한 한 로크는 홉스보다 독창성이 떨어진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 곧 인생이 험악하고 잔인하며 짧은 순간으로 끝나버리게 되는 상태로 보았다. 그런데 홉스는 무신론자라는 평판을 듣게 된다. 로크가 선대 사상가들로부터 계승한 자연상태와 자연법 이론은 신학적 기반을 벗어날 수 없다. 신학적 기반을 떠난 자연 상태와 자연법 이론은 현대 자유주의 사상에서 보듯 명백한 논리적 토대를 결여한 불완전한 이론에 머물게 된다. 797
“사람들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더불어 살며 그들 사이에 재판을 담당할 권위를 가진 공동의 우월한 자가 없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이다.” 798
자연 상태에 이의를 제기한 가장 큰 반론은 다음과 같다. 자연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소송 사건의 재판관이 된다는 점인데, 각자가 자기 권리를 스스로 찾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한 면을 고치는 구제책이 바로 정부이지만, 자연스런 구제책은 아니다. 로크에 따르면 정부를 세우겠다는 계약에 의해 자연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어떤 계약을 하든지 자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며, 다만 하나의 정치 체제를 구성할 뿐이다.오늘날 독립된 각국 정부들은 상대에 대해 자연 상태에 놓여 있다. 799
à 40. 요즘은 인터넷의 대중화로 다시 자연 상태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만인이 마음만 먹으면 재판관이 된다.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인권이 접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로크를 대표 이론가로 꼽을 수 있는 유형의 이론은 사회계약론이다. 이에 따르면 시민 정부는 계약으로 형성된 순수하게 이 세상에 속한 사안으로서 신성한 권위에 의해 확립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사회계약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고 어떤 이는 법적인 허구로 간주했지만, 이들이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는 정부 권위의 기원을 지상에서 찾은 것이다. 803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에 의해 자신과 자기 재산을 공격한 자를 처벌할 권리를 가지며 심지어 죽일 권리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러한 권리를 사회 공동체나 법률에 양도한 곳, 오직 그렇게 한 곳에서만 사회가 만들어진다. 804
그때 미국의 토지는 인디언들이 토지를 경작하지 않은 탓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그는 토지의 가치란 사람들이 실제로 토지를 경작하기 전에도 일할 의사를 갖기만 하면 획득된다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제17장 흄
그는 ‘인상’과 ’관념’을 구분하면서 시작한다. 인상과 관념은 지각의 두 가지 종류인데, 그 가운데 인상impression은 강하고 격렬한 지각이다. “관념 idea”은 사고활동과 추론활동 속에 나타난 인상에 대한 희미한 심상이다. 840
버클리가 물리학에서 실체의 개념을 추방했듯, 흄은 심리학에서 실체란 개념을 몰아냈다. 841
흄은 한 대상이 다른 대상을 산출하는 힘이 두 대상들에 대한 관념들에서 발견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추리나 반성이 아닌 경험에서 원인과 결론을 인식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844
귀납 원리는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원리이거나 이로부터 연역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한도 내에서 흄은 순수한 경험의 입장이 과학을 위한 충분한 기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855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낭만주의 운동을 최초로 이끈 위대한 인물은 루소이지만, 그는 단지 이미 존재하던 낭만주의 경향들을 일정한 한계내에서 표현했을 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교양인들은 감수성을 높이 찬양했는데, 감수성은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특히 공감의 정서를 잘 느끼는 경향이다. 더할 나위 없는 충분한 감정은 직접적이며 격렬한 동시에 사고의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빈곤 상태로 버려진 농부 가족을 보고 눈물을 쏟지만, 농민 계급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마련한 계획에 대해선 냉담하기 일쑤일 것이다. 859
à 41. 예술가들이 간혹 사회의 방향과 엇나가거나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는 배경을 알 것 같다.감수성은 사회적 자각을 통하여 비로소 타인을 품게 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운동 전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렁이는 유용하지만 아름답지 않고, 호랑이는 아름답지만 유용하지 않다. 다윈(낭만적이지 않았던)은 지렁이를 보며 감탄했지만, 블레이크는 호랑이를 찬미했다. 낭만주의자들의 도덕은 일차적으로 미적인 동기를 포함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의 특성을 구분해내려면 미적 동기의 가치와 의의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적 감각을 선대 낭만주의자들의 감각과 달라지게 만든 취미의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낭만주의자들이 고딕 건축을 선호한 점이다. 또 다른 사례는 풍경을 좋아하는 취미이다. 861
à 42. 낭만주의는 ‘다름’을 품지 않으면 야만으로 빠지기 쉽다. 낭만주의와 파시즘은 종이 한장 차이다.
낭만주의는 한편으로 귀족주의를 옹호하고 또 한편으로 이해타산보다 정열을 선호했기 때문에, 상업주의와 재정 문제를 몹시 경멸하고 멸시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선언했으나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대변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한 입장과는 매우 달랐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는 경제적 선점과 열중에 대한 혐오에 근거하며, 자본가의 세계를 유대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암시로 인해 더욱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868
제 19장 루소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한다.870~871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두었으나 모두 고아 양육원으로 보냈다. 872
à 43. 문제적 인간 루소, 그의 내면을 연구해 보고 싶다.
그는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은 도덕의 가장 큰 적이며 탐욕을 조장하는 노예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873
천문학은 점성술이란 미신에서, 기하학은 탐욕에서, 웅변술은 정치적 야심에서, 물리학은 헛된 호기심에서 나왔다. 심지어 윤리학의 기원도 인간의 자만심이다. 교육과 인쇄술의 개발은 개탄할 만한 일이고, 문명인과 교육 받지 못한 야만인을 구별하는 모든 차별은 악이다. 873
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제도로 인해 악해질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874
우리에게 신을 믿으라고 열성을 다해 권유하는 현대의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예전의 ‘신 존재 증명’을 무시하고 신앙의 기초를 인간 본성의 어떤 국면, 즉 경외감이나 신비감 옳고 그름의 느낌, 염원의 느낌 들에 둔다. 이렇게 종교적 믿음을 옹호하는 방식은 바로 루소가 고안하였다. 878
루소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작은 국가에 가장 적합하고, 귀족정치는 중간 정도 규모의 국가에 가장 적합하며, 군주정치는 큰 국가에 최선인 정치체제라고 말했다. 882
루소의 사회계약이란 개념은 처음엔 로크의 개념과 유사해 보이지만, 곧 홉스의 사회계약과 더 흡사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연 상태로부터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개인들이 더는 원초적 독립성을 주장할 수 없는 때가 도래한다. 바로 그때 개인들은 자기 보존을 위해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는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나는 나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나의 자유를 서약하고 보증할 수 있을까? “문제는 전체 공동의 힘으로 각 구성원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며, 각 개인이 스스로 전체의 일원이 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이전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형태를 찾는 것이다.” 계약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양도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 아래서 계약을 맺는 셈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면 아무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 883
루소는 행정부란 불가피하게 공동체 이익이나 일반 의지와 쉽게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자신만의 이익과 자신만의 일반 의지를 가진 사회조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887
à 44. 탁월한 예견이다. 현대의 정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자신만의 조직이 되었다.
제 20장 칸트
라이프니츠는 세계의 나머지 전부가 전멸한다 해도 자기의 경험에 속한 내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890
시대는 변하여 사람들이 이성에 점점 염증을 느끼는 순간이 오자, 루소가 나타나 ‘광신’을 되살려냈다. 그는 이성의 파산을 인정하고, 가슴(심정)을 하여금 머리(이성)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남겨둔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했다. 892
그의 철학은 이론 이성의 냉철한 명령에 반하여 심정에 호소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루소의 『에밀』에 등장한 사부아 보좌신부가 고백한 현학적인 주장의 재판이라 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는 그의 원리는 인권을 주장한 학설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자유를 사랑하고 열망한 그의 심정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대해서도 “한 인간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복종해야만 하는 경우보다 더 끔찍하고 두려운 일은 없다”고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894
칸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순수이성비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895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 형식이다.897
à 45. 인식의 기본틀인 시공간의 개념이 바뀌면 사람들의 행태는 어떻게 변화될까. 재밌는 실험이 될 것 같다.
너는 오직 네 의지의 격률이 동시에 일반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혹은 네 행위의 격률이 네 의지를 통해 마치 일반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901
à46. 1만 시간의 법칙이 이런 걸까. 단지 하나의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법칙이 생활의 틀로 자리 잡히는.
칸트는 대부분의 경우 감각들에 원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데, 그 원인들을 가리켜 ‘사물 자체’나 ‘본체noumena’라 부른다. 우리의 지각에 나타난 사물을 ‘현상phenomenon’이라 부르는데,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한 부분은 ‘감각’이라 부른 대상에서 비롯되며, 다른 부분은 다양성manifold을 일정한 관계 속에 배열하는 우리의 주관적 능력에서 비롯된다. 후자 부분을 현상의 형식이라 부른다. 현상의 형식은 그 자체가 감각이 아니므로, 환경의 우연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903
제22장 헤겔
헤겔의 주장에 따르면, 실재는 이성적으로 존재하고 이성은 실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실재’의 의미는 경험주의자가 뜻하는 내용과 다르다. 그는 경험주의자들에게 사실들로 나타난 존재는 비이성적이며, 비이성적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역설하기까지 한다. 사실들의 외관상 특성을 전체의 국면들로 판단하여 변형시킨 후에만 사실들은 이성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도 실재와 이성이 동일하다는 주장은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정당하다”는 믿음과 뗄 수 없는, 일종의 자기만족에 이르게 된다. 925
헤겔에서 국가는 마르크스에서 계급이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역사 발전의 원리는 민족정신이다. 934
à 47. 그의 주장에는 전제주의의 냄새가 난다. 탁월한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사람들에게 권력이 위임되어야 한다는 사상적 배경이 비친다.
헤겔의 형이상학 속에서 국가를 다른 사회 조직과 대립하는 조직으로서 배타적으로 강조할 만한 좋은 근거는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렵다. 그가 교회보다 국가를 선호하는 데는 단지 개신교도의 편견이 작용했을 뿐이다. 938
전체는 부분보다 실재성이 더 크고, 가치가 더 높은가? 헤겔은 이 두 질문에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실재성의 문제는 형이상학에 속하며, 가치의 문제는 윤리학에 속한다. 938
헤겔의 윤리 학설에 의하면 가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속하기 때문에, 형이상학 학설이 참이라면 틀림없이 윤리 학설도 참이 된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학설이 거짓이라 해도, 윤리 학설마저 거짓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939
헤겔은 전체, 즉 복잡한 존재 전부를 총괄하여 ‘절대자’라고 부르는데, 절대자는 정신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절대자가 사유의 속성뿐만 아니라 연장의 속성도 가진다는 스피노자의 견해는 거부한다. 925
제 23장 바이런
그의 가치는 원색적인데, 바로 선이란 충분히 먹는 것이고 나머지는 쓸데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배고픈 사람이라면 아무도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944
à 48. 시인답게 참 인간의 본성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니체에게 위대한 인간은 신과 흡사한 존재이고, 바이런에게는 으레 자기 자신과 싸우는 티탄이다. 948
루소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상적인 인물인 반면, 바이런은 격렬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루소의 비겁한 성격은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바이런의 비겁한 성격은 숨어 있다. 루소는 단순한 덕을 찬양한 반면, 바이런은 삶을 이루는 요소라면 죄도 찬양한다. 951
제 24장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19,20세기에 유행한 철학의 큰 특징인 의지를 강조하고 철학적으로 부각시켰는데, 그에게 의지는 형이상학의 근본이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악이다. 952
쇼펜하우어는 사물 자체를 존속시키면서 사물 자체를 의지와 동일시했다. 그는 나의 몸처럼 지각에 나타난 현상이 실제로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955
칸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둘 다 현상의 일부일 뿐인데, 이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물 자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의지는 실재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시간 속에 나타나지 않으며 따로따로 분리된 개별적인 의지적 행동들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공간과 시간은 다수성의 근원이고, 쇼펜하우어가 선호한 현학적인 어구로 표현하면 ‘개별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의지는 하나이고 무시간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더 크게 보면 의지는 전 우주의 의지와 동일시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개별성은 나의 주관적인 시간ㆍ공간적 지각 능력에서 귀결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마찬가지로 자연의 전체 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의 거대한 의지이다. 955
신화들 가운데 최고의 신화는 열반의 신화인데, 쇼펜하우어는 욕망으로 생긴 집착을 끊어버린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고통은 의지가 강렬하고 격렬한 탓에 생긴다. 그러니까 의지를 덜 발휘할수록 우리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는 밀이다. 956
à 49. 이 대목에서 부처가 연상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미 열반의 자격을 갖췄음에도 중생의 구제를 위해 이 세계로 남기로 한 부처란 말인가.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960
제 25장 니체
그는 여기저기서 평범한 인간을 ‘섣부른 자the bungled and botched’라고 말하며, 위대한 인간의 탄생에 필요하다면 평범한 인간이 고통을 당해도 반대하지 않는다.963
그렇지만 그는 국가 숭배자는 아니며, 국가 숭배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는 열정적인 개인주의자요, 영웅 신봉자이다.965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마음을 길들이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잘못이다. 야수는 야생에서는 광채를 내지만, 길들면 빛을 잃는다. 도스도예프스키가 교제한 죄수들이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보다 더 우월한 까닭은 그들 자신을 더 존중했기 때문이다. 968
à 50. 니체의 주장은 인간이 두려움으로 인해 길들여져 신에게 복종하게 된다는 것인데, 신과의 소통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두려움을 통해서만 발동된다는 것일까.
니체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비난한 까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69
두 부류의 성인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본성에 따른 성인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성인이다. 970
제 27장 카를 마르크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시하는 일이다.” 989
제 28장 앙리 베르그송
베르그송의 철학은 대부분의 예전 철학과는 달리 이원론 체계에 속한다. 그에게 세계는 공통점이 없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편에는 생명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물질, 아니 지성이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운동하지 못하는 사물이 있다. 999
대체로 지성은 인간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불운인 반면 본능은 개미나 벌이나 베르그송에게나 최선의 상태를 보여준다. 지성과 본능의 구분은 베르그송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내용인데, 많은 부분이 일조의 샌드퍼드와 머턴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본능은 착한 놈이고, 지성은 나쁜 놈이라는 식이다.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이라 부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직관은 사심 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 1000
제 31장 논리 분석철학
물리학이 물질을 덜 물질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사이에 심리학은 정신을 덜 정신적인 대상으로 만들었다.
지성의 측면에서 보면, 철학은 잘못된 도덕의 고찰의 결과로는 비범한 정도까지 진보하지 못했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Ⅲ. 내가 저자라면
<첫 번째 리뷰>
한 사람의 일관된 시각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사를 꿰뚫어볼 기회를 갖는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철학의 바탕이 되는 사회와 역사, 종교의 맥락은 물론 수학, 과학, 논리학 등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가진 팔방미인으로부터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유려한 문장으로 안내를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다 간 러셀 덕분에 최소한 서양의 철학사는 파편으로 부유하지 않고 우리 시대에 살아있는 텍스트로 기능하게 되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주일 만에 읽고 정리하느라 욕지기가 날 지경이었지만 그가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수학자이자 분석철학가가 쓴 글답게 문장은 간결하고 논점은 명확하다.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해 나가는데 건조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 세상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지행합일에 힘썼던 그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리라.
철학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철학자로서의 사명감과 학자로서의 양식이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그에게 철학은 사회라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그는 또한 근대 합리주의정신의 모태가 된 과학발전의 기여에 주목하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며 과학문명이 지닌 야만성을 간과하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합리적 회의주의와 분석적 방법론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 획득된 지식을 공동체와 후대의 번영을 위해 활용했던 그의 태도는 때로는 신권에, 때로는 왕권에 빌붙어 스스로 철학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켰던 숱한 선배 철학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O 목차 및 내용 구성
총 3권 7부 93장으로 구성된 목차는 내용과 적절한 호응관계를 이끌어내 내용을 이해하는데 편했다. 방대한 내용을 의식해서인지 옮긴이 서문과 지은이 서문이 본문에 앞서 소개되는데 저자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전체 내용을 미리 일목요연하게 개관한 것이 철학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각 장을 서술하는 방식도 통일성이 있어 좋았다. 철학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주요 논점들을 열거하고 다음 장과의 연결관계나 앞서 기술한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주니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밝힌다면 각 장마다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주요 관전포인트를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면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 같다. 그리고 고대철학부분에서는 생소한 지명이 많아 애를 먹었다. 사회ㆍ정치적 관계를 유추해 보고 싶어도 어딘지 파악이 안 되어 인터넷에서 고대 지도를 찾아보곤 했는데 지도를 부록으로 첨부했다면 그런 수고를 덜었을 것이다.
O 책 편집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고대, 중세, 근현대를 각각 낱권으로 분리하고 세 권을 하드박스에 넣어 출간했다면 휴대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지식에 대한 탐구심을 남들에게 드러내기에 좋은 책이다.
<두 번째 리뷰>
일주일안에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사조를 명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 책 읽기였지만 낯설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리뷰에서 이해하기 쉬웠던 부분은 그의 문장이었지 책의 내용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마음에 와 닿은 내용들을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이번에도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분히’라는 말에 어폐가 있지만 적어도 2~3개 키워드는 시대에 따른 변천사를 차분히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철학과 종교의 역학관계, 숙명(미래)에 대처하는 유한자로서의 인간, 사회통합의 수단으로서의 철학, 귀납법과 연역법, 칸트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 언어 철학 등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인간은 줄곧 철학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시도하여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에 따라 나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함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철학이 인간에게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하나의 이치가 절대화되면 명확성은 높일 수 있지만 도그마가 되기 쉽다. 철학은 그 자체가 역사의 한 요소가 되어 인류 역사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철학은 사회에게든 개인에게든 만병통치약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세계에 대한 인식의 틀을 제공함으로써 나의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준다. 나를 알고 나의 길을 가면 실패는 있을지라도 혼란은 피할 수 있다. 공허감은 성패와 관계없이 지나온 길이 나에게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마이웨이를 가기로 한 것, 철학과의 친숙한 동행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