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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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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 23시 58분 등록

두 번째 읽기 : <신화의 힘> -조셉캠벨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1. 신화와 현대 세계>

p26 캠벨: 인류의 삶을 떠받쳐오고, 문명을 지어오고, 수천 년 동안 종교의 틀을 지어온 고대의 정보는 심원한 내면의 문제, 내면에 관한 신비, 내면적인 통과의례의 문턱을 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길을 가는데 도로 표지가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도로 표지에 상응하는 걸 만들어서 길잡이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신화라는 주제를 마음에 두게 되면 우리는 대신할 것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우리는 신화를 통해 인류의 근원에서 오는 전통의 느낌과 삶의 싱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26-27 모이어스: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옛 이야기를 하고, 읽는다는 말씀이군요?

캠벨: 내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소설(위대한 소설)이라는 것은 놀랍도록 교훈적입니다. 20대와 30대에, 심지어는 40대에도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은 나의 스승이었어요. 이분들이 쓴 것은 죄다 읽었으니까요. 이 두 분이 쓴 작품들은 신화적 전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대단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론 : 학생들에게 옛이야기, 위대한 소설을 읽게 하여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하고 자신의 삶을 현실과 조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p.29 캠벨 :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모이어스: 그러니까 신화가 그 실마리라는 것이지요?

캠벨: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삶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우리는 그 삶의 경험을 통해 내적인 조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을 하게 되며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데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실마리가 신화이다.

p.30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자, 다른 민족의 신화를 읽어야 하지,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읽는 것이 아니랍니다.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이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 신화교육 방법론: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서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상징과 메시지를 느끼고 경험 배우기.

p34 캠벨 :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들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작에도 이 세계를 위협하는 것 아닙니까?

모이어스: 사회가 강력한 신화를 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캠벨 : 지금 우리가 처한 것 같은 사태가 나지요. 의례가 없는 사회가 어떤지 알고 있으면 <뉴욕타임스>를 읽어보세요.

캠벨: 뉴스를 한 번 보시라는 겁니다. 문명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행하는 파괴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도 뉴스로 등장해 있을 겁니다.

p.35 모이어스: <고린도전서>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는 군요.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캠벨: 바로 그겁니다. 사춘기 의례가 필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지요. 원시 사회에서는 이빨을 쪼아낸다거나 몸에 상처를 낸다거나 할례(割禮)를 베풀거나 하는 사춘기 의례가 있었어요. 이러한 의례를 거치면 어린이의 몸은 더 이상 어린이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모이어스: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라나는 경우, 오늘날 이들은 어디에서 신화의 존재를 만날까요?

캠벨: 스스로 만듭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온통 낙서투성이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이렇게 낙서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불량배가 있고 나름의 입문 의례가 있으며 나름의 도덕률이 있어요. 아이들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신화를 체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위험합니다. 그 까닭은 이들의 범이 도시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나름의 입문 의례를 치르지만, 이들이 입문하는 곳은 우리 사회가 아니지요.

p36 캠벨: 어떤 문화권이든지 우리가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모듬살이에는 삶의 규범이 될 만한 룰, 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이해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는 법이지요. 그런 문화권에는 에토스(ethos)라고 할 수 있는 것,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어떤 묵시적 양해 사항이 있어요.

모이어스: 신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군요.

캠벨: 정리되지 않은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신화교육의 방법론 : 사회가 사람을 섬기는 체험을 위해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입문의례를 치르게 해주어야 한다.

p.37 캠벨: 오늘날 우리는 비신화화(非神話化)한 세계를 살고 있어요. 참 역설적이게도, 그 결과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이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왜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냐고 했더니, 거기에는 메시지가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신화가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분명합니다. 내가 대학에 강연이라도 가면, 강의실은 내 말을 들으러 온 학생들로 미어져 터집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작은 강의실밖에는 배정해주지 않아요. 왜 이렇게 작은 강의실을 배정해주는지 아세요? 학교 당국자들이 학생들이 내부에 충만해 있는 열기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삶의 지혜와는 상관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교수들 역시 자기가 가르치는 학문이 삶의 가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학문(문화인류학, 언어학, 종교학 등을 말합니다)에는 전문화 경향이 뚜렷해 보입니다. 한 방면에서 어엿한 전문가가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한 전문 학자가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면 이런 경향이 있다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 비신화적인 사회에 사는 학생들 스스로가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는 삶의 지혜와 상관없는 테크놀로지이다. 학교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삶의 지혜와 관한 이야기인 신화에 대한 교육이다.

p.41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38년간이나 신화를 가르쳐왔습니다. 고만고만한 중류 가정을 배경으로 하여 대학에 온 젊은 처녀들에게 정통 종교와 다른 이 신화를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어떻게 신화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까?

캠벨: 젊은 사람들은 덥석 집더군요.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으로서, 한번 빠져볼 만한 것이 신화이지요.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및 방법론: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의 입문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의례를 통해 삶의 단계에 맞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학생들에게 신화가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와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주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도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p43 모이어스: 이러한 붙박이별, 삶의 지평(이게 바로 신화이겠습니다만), 이런 것을 잃은 아이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요?

캠벨: 조금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신문을 한 번 보세요. 엉망진창입니다. 신화는, 바로 지금 이 시각에 우리가 사는 삶과 구조에 어울리는 수준으로도 삶의 본을 제공해줍니다. 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시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삶의 모습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50년전에는 온당했던 것이 지금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어요. 과거에는 미덕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악덕이 되었고요. 과거에는 우리가 악덕이라고 하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필요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수없이 볼 수 있어요. 도덕적인 질서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사는 실제적인 삶의 도덕적 필요성과 발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그렇지 못해요. 구시대의 종교는 다른 연령층, 다른 족속, 다른 가치 체계, 다른 우주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다 보니 이제는 역사와도 발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린 세대는 앞 세대에게서 배운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정작 들어다보아야 할 내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내면만 기웃거리고 있어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학생들이 잃어버린 붙박이별, 삶의 지평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신화교육을 통해 우리 삶의 구조에 어울리는 삶의 본을 제공받아야 한다.

p46-47 나는, 의식과 에너지(氣 )는 어떤 점에서는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입니다. 삶의 에너지를 찾아볼 수 있는 데엔 반드시 의식이 있습니다. 식물의 세계에도 의식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 숲 속에서 많이 지냈습니다. 숲속에서 살다보면 서로 각기 다른 이런 의식이 상호 관계 속에서 뒤엉켜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숲속에는 식물의 의식도 있고 동물의 의식도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이런 의식들과 상호 작용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담즙은 우리가 먹은 음식에, 우리 의식에 도움이 될 만한 게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압니다. 이 모든 작용이 곧 의식입니다. 이런 의식을 단순한 기계적 술어로 번역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p.47 모이어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 수 있습니까?

캠벨: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명상이라는 게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곧 명상입니다. 그 명상의 대부분이 비의도적(非意圖的)인 명상이긴 하지만요. 많은 사람이 명상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되, 돈이 들어올 데, 돈이 나갈 데에 관해서만 명상을 합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의 문제에만 관심을 둡니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는 관심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기 자식과 영적인 의식을 나누고자 하지만 이게 안 됩니다. 영적인 의식이 없는 사람이 자기 자식과 그것을 어떻게 나눕니까? 그러면 영적인 의식이라고 하는 걸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화가 필요합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및 방법론: 삶의 에너지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을 영적인 의식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명상을 통해서 가능하다. 삶이라는 것이 곧 명상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신화인데 우리를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p.48 캠벨: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인간의 어마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現夢)하고 있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나는 이 원형적인 꿈 세계의 문턱에 이를 때마다 거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압니다.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자 인간의 원형적인 꿈이기에 삶의 살아하는 도중에 절망의 위기, 기쁨의 순간. 실패와 성공의 순간 등의 삶의 경험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를 가르쳐주므로, 다양한 삶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p.54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은 기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스타워즈>에서 보는 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파우스트의 특징은, 기계가 정해준 과녁이 아닌 자신이 정한 과녁을 찾아내는 데 있지요.

p.57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뿐입니다.

☞ 溫故知新, 法古創新

p59 신화 자체가 노래인 것이지요.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는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입니다.

p64 모이어스: 우리에게는 어떤 신화가 필요할는지요?

캠벨: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p.74-76 모이어스: 인간에 대한 신화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일는지요?

캠벨: 앞으로도 우리는 신화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세상은 신화를 낳을 사이도 없이 너무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요.

모이어스: 그럼 신화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캠벨: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내가 밤낮 하는 이야깁니다만,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 앞에서 이미 경이를 경험합니다. 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런 세계를 잃은 사람에게 신화는 있을 수 없지요. 만물에서 신비를 읽을 때, 우주는 한 폭의 거룩한 그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

신화의 세 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신화가 곳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은 바로 이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重婚)의 신화도 있곤, 단혼(單婚)의 신화도 잇는 것은 이 기능 대문입니다. 중혼이든 단혼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다르니까요. 신화의 기능 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이 사회적 기능입니다. 시대착오적이지요.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야야 할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신화의 4가지 기능 - 개인이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적인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 자기 삶의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적용할 수 있다. 신화는 개인의 스스로 학습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학습 도구이다.p76 성서에 바탕을 둔 서구의 이야기는 선사 시대의 우주관 위에 서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우주에 관한한 오늘날의 개념과는 맞지 않아요. 이건 그 시대 사람들의 것이지 더 이상 우리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온 길을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로써 짐승과 물과 바다가 사실은 우리와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신화교육은 우리의 근원으로 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도록 하여, 오늘날의 자연 파괴적인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에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p.77 오늘밤에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알 수 없듯이, 내일 어떤 신화가 태동할지도 알 수 없어요.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옵니다.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정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에 관한 신화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신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내밀 수 있는 나의 중심 사상입니다.

이런 신화는 다른 모든 신화가 다루었던 문제를 고루 다루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유아기에서 성장기를 거쳐 성인기에 이르고, 성인기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기까지의 모든 문제, 심지어는 이 사회와의 관계, 이 사회가 지니는 자연의 세계와 우주와의 관계까지 고루 다루어진 신화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신화가 한결 같이 하는 이야기, 이야기가 한결 같이 반영하는 신화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말한 사회 역시 이 지구라는 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신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과 방법론 : 우리 땅을 토대로 한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신화 속에서 다루는 인간성장의 단계, 인간과 밀접한 사회와 자연과 우주와의 관계가 고루 다루어진 신화이다. 아이들에게 신화교육을 통해서 스스로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창의성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될 것이다.

p.78 캠벨: 달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같은 게 안 보이잖아요? 이것은 미래 신화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상징 같습니다. 우리가 세워야 하는 나라가 이러한 나라이고, 우리가 한 겨레가 되어야 하는 나라가 바로 이러한 나라인 것이지요.

p.81 시애틀추장의 이야기 “……누리는 삶의 끝은 살아남는 삶의 시작이랍니다.……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2.내면으로의 여행>

p.85-86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온다는 겁니다.

p86 나는 신화와 같이 삽니다. 신화는 나에게 늘 그런 소식을 전해줍니다.

p86 천국과 지옥이 다 우리 안에 있지요. 모든 신도 우리 안에 있지요. 이것은 기원전 9세기에 성립된 인도 <우파니샤드>의 위대한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모든 신들, 모든 천국, 모든 세계가 다 우리 안에 있어요. 이런 개념이야말로 확장된 인류의 꿈이고, 꿈은 서로 갈등하는 우리 몸속의 에너지가 이미지 형태로 현현한 것이지요. 신화는 우리 몸의 서로 갈등하는 각 기관의 에너지가 상징적인 이미지, 은유적인 이미지로 현현한 것이지요. 우리 몸의 각 기관이 갈등한다고 한 까닭은, 이 기관은 이것을 원하고 저 기관은 저것을 원하는 식으로 바람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뇌도 이러한 기관의 하나입니다.

p.87 폴리네시아 속담처럼, 대로는 “고래 잔등 위에서 송사리를 낚는”수도 있는 것이지요. 만물의 바탕자리는 바로 우리 존재의 바탕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세상 여기저기에 널린 온갖 잡사를 다 보고는 하지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세상 잡사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p87 꿈은 우리 자신에 대한 영적인 정보가 무진장하게 발현되는 현장입니다.

p.88-89 모이어스: 꿈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캠벨: 우리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모이어스: 어떻게 하면 우리 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까?

캠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의 기억을 떠올려 메모하는 겁니다. 다음에는 꿈의 작은 단편 중에서 하나. 두어 개의 이미지나 관념을 선택하고 이를 연관시켜보면서 이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기록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꿈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체험(우리 삶에서 의미심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다가 다른 꿈을 꾸면 우리의 해석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지요.

캠벨: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기다리는 캄캄한 숲 속에서 한바탕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이어스: 그러니까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신화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면 좀더 건강하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나 만일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인 꿈과 발이 맞지 않으면…….

캠벨: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억지로 체제에 적응ㅇ하려고 하다 보면 신경증에 걸립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 신화는 사회가 꿈꾸는 집단적인 꿈, 공적인 꿈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꾸는 꿈에 대한 꿈의 해석을 궁금해 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 인류전체의 꿈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통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p,89-90 범용한 사람도 자기의 길을 찾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는 하나 기왕에 해석된 길을 반드시 벗어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웅은 그렇지 않아요.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p.96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서 살아지는 겁니다. 이 상징적이고 역설적이 이미지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비입니다.

p.102 삶의 신비는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 너머에 있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많은가, 적은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못한가 하는 개념의 용어 속에 갇혀 있어요. 우리는 항상 대극(大極)이라는 용어 안에서 생각해요. 그러나 궁극적 실재인 하느님은 대극의 너머에 존재하지요.

p.105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최초로 체험하는 것이랍니다.

p107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인간이 세계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 같다는 설명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육체가 하는 내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공통되는 바탕에서, 융박사의 이른바 원형(原型)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 원행은 인간이 공유하는 신화의 관념이라는 것이지요.

p.113 우리는, 원수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우리의 다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p113 캠벨: 이 세계라는 대교향악단과 조화를 이루려면 우리 개인의 하모니를 이 큰 하모니에 맞추어야 하는 거지요.

모이어스 : 어떤 문화권의 이야기든 어떤 기원을 가진 이야기든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존재를 이해하려는 이 인간의 상상력, 아주 작은 모험을 통하여 초월의 기능성을 획득하려는 인간의 장엄한 모습에 문득 놀라고는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캠벨: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삶이 시 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모이어스: 시라고 하셨습니까?

캠벨: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를 배운다는 것은 예술과 시의 영감을 일으킨 수 있다. 시라는 것이 행위와 모험을 언어로 나타낸 것이라면 우리는 시에 대한 학습을 통해 인간의 행위와 모험, 즉 삶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p.114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는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산트리스트어로 된 시 중에 자주 인용되는 시가 있는데, 이게 중국의 <도덕경>에도 나옵니다. 이렇습니다.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p114 모이어스: 신화 중에는 믿을 만한 것도 있고, 약간 터무니없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요?

캠벨: 각각 다른 의미에서 모두 믿을 만한 것입니다. 모든 신화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에, 그리고 동아리를 자연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신화는 자연의 장과 개인의 본성을 통합시킵니다. 신화는, 조화시키는 힘입니다. 가령 우리의 신화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종교에는 윤리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좌와 화해, 정담함과 부당함을 정해 놓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 쪽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신화를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기에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삶의 전통을 배우고 자연과 개인의 본성을 통합시켜 인간이 조화를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p115 자신을 부정적인 것과 동일시할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것과 동일시해야 할 것 같다는 겁니다.

p.120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뮤즈(예술의 여신), 혹은 성서적인 용어를 쓰자면 ‘하느님’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영감이라는 것은 무의식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샤먼이나 선견자(先見者)가 하는 말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말인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p132-134 캠벨: 산타클로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관계라는ㄴ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라서 그것은 체험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산타클로스는 없습니다. 산타 클로스는 관계를 인식하는 길로 아이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없이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 인생이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모이어스: 조르바는 인생에 대하여, “말썽?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말썽 아닌가”하고 있습니다.

캠벨: 어느 한쪽에 선한 것은 그 반대쪽에는 악한 것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참혹한 것임을 알면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낼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 참혹함이 바로 신비,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의 바탕이라는 것까지 알아야 합니다.

캠벨: 세속성(상실하고, 상실하고 상실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이 원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요.

모이어스: 선생님도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캠벨: 이대로가 즐거운 겁니다.…… 이 악몽에서 헤어나는 길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자체가 만물을 창조한 무서운 힘의 현현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상事象의 끝은 늘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그러나 고통 도한 세상이 존재하는 까닭의 일부입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신화교육을 통하여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선과 악, 긍정과 부정 등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배우고 삶의 양면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인생의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p.135 캠벨: 의례를 통해서, 사람들은 가장 은밀한 행위에 무리를 지어 참가하지요. 은밀한 행위가 무엇일까요? 삶에 필요한 행위, 즉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는 행위지요. 우리는 이런 짓을 무리지어 합니다. 그게 삶인 것이죠. 영웅이 이러한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절망이나 복수로서가 아닌, 자연의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삶에 참가한다는 점입니다.

영웅의 행동반경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선악이 있는 시간의 장, 대극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초월의 장을 나서면 대극의 장으로 들게 마련입니다. 인류는 선악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정당함과 부당함, 이것과 저것, 빛과 어둠가지 알게 하는 지혜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 시간의 장에 있는 모든 것은 이원적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그러하고,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한 쌍의 대극은 남성과 여성입니다. 이 경우는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은 수용적이며, 남성은 전사戰士이고 여성은 몽상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영역과 전쟁의 영역이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이것을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이라고 하지요.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에게는 모든 것이 선하고 옳고 의로우나, 인간에게는 어떤 것은 옳아 보이고 어떤 것은 옳아 보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의 이 인간은 시간의 장, 결정의 장에 놓입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 중 하나는 이 양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중심을 알고 있다. 나는 선과 악이라는 것은 이 속세의 착각일 뿐이요. 하느님 보시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는 것임을 안다”, 이러한 인식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신화의 학습방법론: 의례를 통해 자신의 삶에 참여하여 영웅의 삶을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에 선과 악 양자의 존재, 우리가 존재하는 곳의 이원론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신화를 통해 배울 수 있다.

p138-139 캠벨: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영원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과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천국의 개념이라는 문제로 보면, 거기에서 지복至福을 누리면서는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에도 두지 않게 됩니다. 영원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느님의 지복직관에서 끊임없는 복락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악의 분별이 없이 지금이 자리에서 만물의 영원을 경험하면 어떻습니까? 그 경험에는 인생의 그런 기능이 있어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의 구체적인 방법론인 인간성장단계에 따른 의례를 경험하고 영웅의 여정을 체험하며 지금 이순간, 현재를 사는 것이 영원을 사는 것이다.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한다.

 

<3.태초의 이야기꾼들>

p.141-143 캠벨: 고대의 신화는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목적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헛길로 들어서서 하느작거릴 수도 있고, 몸이 바라지 않는 것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모이어스: 그래서 이런 신화와 옛 이야기가 우리 안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군요.

캠벨: 그렇지요. 인간의 발달 단계는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세상의 질서와, 복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시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서 살지요. 그러나 성숙하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면 신경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내 것처럼 사는 시절이 지나면, 이윽고 세상을 남에게 양보하는 때가 옵니다.

모이어스: 그러다가 결국 죽는 거지요?

캠벨: 그러다 결국 죽는 거지요. 죽음은 최종적인 해방입니다.

모이어스: 실제로 선생님께 도움을 주는 신화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지요.

캠벨: 가령 인도의 신화에 따르면 말이지요. 우리가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들어갈 때는 입는 것도 달라지고 이름도 달라집니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나서 나는 내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삶에 관한 나의 사고 방식도 바꿨습니다. 말하자면 삶에 고나한 관념 자체를 바꾼 겁니다. 그러니까 공부하고 활동하는 삶을, 이 신비를 즐기고 감사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바꾼 것이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과 학습방법론: 신화와 의례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화시키고 인간의 삶의 자연의 원리에 조화시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 있고 그 단계를 제대로 따라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우리의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6기 연구원으로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나는 바로 다른 단계로의 삶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변화를 할 것인가?

p146 캠벨: 삶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냥꾼입니다. 사냥꾼은 맹수와 마찬가지입니다. 신화를 보면, 사냥하는 맹수와 사냥감이 되는 짐승이 어울려 의미심장한 역할을 연출해냅니다. 이 양자는 삶의 두 측면을 암시하지요. 즉 공격적이고 죽이고 정복하고 창조하는 삶의 측면과, 대상, 혹은 객체가 되는 삶의 측면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우리가 태초에 사냥꾼의 모드로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의 근원에 아직 사냥꾼의 특성이 남아있다. 신화에 사냥꾼과 사냥감이 되는 짐승이 함께 연출되는 것처럼 인간의 삶속에도 사냥꾼의 주체로서의 삶과 사냥감이 되는 객체로서 삶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냥꾼 모드의 삶은 오늘날 창조성을 구현하는 삶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p166-168 캠벨: 의례를 소중하게 재현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이 살아 있게 해야 합니다.

캠벨: 인간은 환경에 반응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문화 전통이 생겼어요. 이것은 기원전 약 1,000년에 다른 데서 온 겁니다. 이 문화 전통은 우리 현대 문화와, 새 우주관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동화시키니 않아 왔어요. 신화를 살아나게 해야합니다. 이것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神話化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이어스: 그러니 예술가가 바로 오늘날에 신화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까?

캠벨: 옛날에 신화를 쓴 사람들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응하는 사람들이었지요.

모이어스: 동굴 벽에 그림도 그리고, 의례를 집전하기도 했으니 그렇겠군요?

캠벨: 그렇지요. 독일에는 상당히 로맨틱한 데가 있는 묵은 표현이 있습니다. ‘다스 폴크 디히테트’라는 건데, 이것은 전통 문화의 관념과 시는 모두 민주에게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전통 문화는 엘리트의 경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들의 귀는 우주의 노래에 열려 있어요. 이들이 민중에게 이야기하면 민중에게서 반응이 생기는데, 이 작용과 반작용이 상호작용을 하는 겁니다. 민중의 문화를 빚겠다는 최초의 충동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학교에서 의례 재현하기, 아이들 안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본성 깨우기,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여 자신만의 이야기, 신화 만들기. 우리 아이들 리더로 만들기, 리더가 사회를 이끌어왔다.

 

p.175 캠벨: 수많은 철학자에 의해 되풀이된 신에 관한 정의가 있습니다. 신은, 중심은 도처에 있으나 주변(周邊)은 없는, 이해가 가능한(감각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가 가능한) 구체(球體)라고 하는 정의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은 모이어스 씨가 앉아있는 그 의자입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 둘 다 이 신비의 드러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의 해답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신화적 자각일 수 있습니다.

모이어스: 그게 곧 메타포, 현실의 이미지라는 것이군요.

캠벨: 그럼요. 우리가 이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개인주의라고 변역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중심은 언제나 다른 사람 안에서 우리와 마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바로 신화적인 홀로 서기입니다. 우리가 곧 중심에 잇는 산이고, 이 중심에 있는 산은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4.희생과 천복(天福)>

p177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p.177 사는 곳을 성화(聖化)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p178 큰 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들어가면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고 한 사람이 키케로였지요. 아마? 성림聖林은 도처에 있습니다.

p179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해 인사를 보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p.179 모이어스: 선생님께서는 저서<신화 이미지>에서 변모의 중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지요. 변모의 중심은 현세의 벽이 무너지면서 우주의 경이가 드러나는 관념적인 성소(聖所)라고 하셨습니다만, 성소라는 말은 떤 뜻으로 쓰셨습니까?

캠벨: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朝刊)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抱卵室)입니다. 처음에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모이어스: 이 성소가 우리에게, 초원이 사냥꾼에게 했던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초원의 사냥꾼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성소였어요. 그러나 우리 삶의 겨냥은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天福)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 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아이들의 창조성과 잠재력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성소, 그러한 공간를 마련해주도록 하자. 부모와 친구, 선생님,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신만의 성소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자. 아이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것, 자신의 천복을 만나는 연습을 학교에서 시키도록 하자.

p183 모든 땅이 다 성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땅에서 삶의 에너지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의 전통은 그랬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땅을 성별聖別했던 것입니다.

☞ 내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이 성소, 성지가 되도록 하자.

p.186 내게 감동을 준 것은 현재입니다. 대성당은 세계의 영적 정보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줍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걸어다니면서, 앉아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면서 명상하는 곳입니다.

p.186-187 왜 우리가 새삼스럽게 신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줍니다.

☞ 신화교육 학습방법론: 인간발단 단계에 따라 의례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인생전체에서의 의례가 우리 삶의 하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맞이 하는 하루는 새날이다. 그 새로운 단계로 집입하는 날에는 그 날의 의례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날마다의 새로운 의례 체험은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줄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도 날마다 새로운 날에 대한 의례의 체험을 통해 삶의 질서를 바로 잡아가는 연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

p.189-190 모이어스: 오늘날 자연의 본성인 신성(神性)은 누가 해석합니까? 구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캠벨: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모이어스: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캠벨: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자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로 옮겨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 됩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를 경험하기 위해 오늘날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캠벨식의 책읽기는 근본적인 스스로 학습법에 대한 제시이다.

p191 캠벨: 사냥꾼들은 개인적이거든요. 농사꾼은 그렇지 않지만 사냥꾼은 개별적으로 행동합니다. 벌판에서 자연 조건과 악전고투하면서 자연의(언제 어느 방향으로 가라는)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냥꾼에게, 평생을 해도 사냥에서 같은 상황을 두 번 경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상황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사냥꾼들은 특별한 재주와 능력을 요하는 개인기도 익혀야 합니다.

☞ 학생을 두가지 분류로 하는 것을 어떨까? 농사꾼 스타일과 사냥꾼 스타일. 특히 오늘날 많은 학생들의 경향성과 사냥꾼의 특징과 비슷하다.

p194 가치, 즉 평가의 결과는 삶을 지배하는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사냥꾼의 의식은 늘 외계의 동물에게로 쏠립니다. 그의 삶은 동물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사냥꾼의 신화는 외계 지향적입니다. 그러나 씨를 부리고, 씨가 죽고, 여기에서 새 식물이 움트는, 말하자면 식물의 경작과 깊은 관계가 잇는 농경 신화는 내계 지향적입니다. 사냥꾼에게는 동물이 신화를 촉발합니다. 권능과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숲으로 들어가 금식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동물이 나타나 권능과 지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농경문화에서는 식물의 세계 자체가 스승 노릇을 합니다. 식물의 세계는 생멸의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의 삶과 동일시됩니다. 그래서 내계 지향적 관계가 이루어지지요.

☞ 사냥꾼과 농사꾼p201 땅에 쓰러진 고목과 떨어진 잎에서 새싹이 나온다. 이것은 죽음에서 생명이 솟고 죽음으로부터 새 삶이 비롯됨을 깨닫게 한다. 어설프게 결론을 내려보자면, 생명이 늘어나려면 죽음이 늘어나야 한다.

p.203 삶의 모습 자체는, 반드시 삶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요.

p205 죽음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거지요. 이 양자는 한 사상(事象), 즉 ‘존재’의 두 측면이니까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welbeing과 weldying의 교육

p.209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테마를 드러내고 있어요.

p.211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형이상학적 진실일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우리를 바로 이러한 진실에 던져 넣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일단 진실에 대한 개달음에만 이르면 목숨을 거는 일도 곧잘 하게 됩니다. …… 사람들은 자기를 잊은 채로 서로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 신화교육을 통한 교사론: 교사는 학생을 나와 동일시하여 인식하고 사랑해야 한다.

p218 중세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류의 마음이 연민의 가슴으로 열린 순간, 즉 ‘열정(passion)'이 ’연민(compassion)'으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 My Destiny....Compassion...우선 나에 대한 연민에서 전인류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시킬 것.

p.222-223 캠벨: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살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지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모이어스: 이 천복을 좇으면 어떻게 됩니까?

캠벨: 천복에 이르는 거지요. 중세의 필사본에, 여러 문맥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행운의 수레바퀴라고 하는 이미지입니다. 이 바퀴에는 굴대도 있고 바퀴살도 있고, 테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성혼서약(成婚誓約)에도,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넉넉할 때나 가난할 때나,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중략)…나는 그대를 중심으로 맞아들이고 그대를 천복으로 좇는다, 그대가 나에게 줄 재물도 아니요, 그대가 나에게 줄 사회적 지위도 아닌 오직 그대만 좇으리다……. 뭐 이런 대목이 있지요. 이게 바로 천복을 좇는 것입니다.

모이어스: 천복이 있는 영생의 샘을 찾는 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캠벨: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에 들어온 것과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걸 잡는 겁니다.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 학생들에게 천복을 따르는 삶에 대해 알려주기

p223-224 모이어스: 선생님께서는 언제 선생님의 천복을 만났습니까?

캠벨: 어릴 때 일입니다. 나는 고집이 세서 누가 무슨 말을 하건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리 가족은 늘 나를 도와주었어요. 언제 어디에서든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주었으니까요. 나는 그런 삶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모르고 지냈어요.

모이어스: 부모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천복을 찾게 해줄 수 있습니까?

캠벨: 아이를 잘 알아야 하고, 아이에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를 도와줄 수 있지요.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가르칠 대 나는 학생들과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식 정도는 약 반 시간씩 개인 면담을 하고는 했어요. 가령 학생들과 독서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노라면 학생이 보이는 반응에서 뭔가를 느껴낼 수 있지요. 자기 천복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열립니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붙잡고, “이 학생은 여기에 매달리게 해주어야겠구나.” 이런 결심을 하고는 합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방에서 자기 갈 길을 찾은 학생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교사는 아이들을 잘 알기위해서 늘 주의를 기울이고 도와주어야 한다. 학생들과의 개인 면담시간을 자주 갖고 학생들의 반응에서 그들이 천복과 관련된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조언해주어 학생들이 그것에 매달리게 해주어 자신의 길을 찾아 가도록 해주는 것. 교사는 학생의 조력자이며 삶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

p.225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가 전적으로 관심을 쏟지 않던 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방향 전환의 계기를 기다리는 능력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실제로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종종 있던 일이어서 나는 알고 있지요.

남학생들에게 교양 과목을 가르칠 당신, 나는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어요. 어떤 학생이 나에게 와서, “제가 이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저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저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어요. “모르겠네, 남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아니면 대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부모는 자식에게, “너는 법과대학에 가야 해. 법관이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거든” 이런 말을 능히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부모가 시켜서 선택하는 삶은 바퀴테를 붙잡는 삶입니다. 굴대를 붙잡아야 천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요.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 학생들은 항상 자신의 진로에 대해 궁금해한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찾아하기보다는 주변의 상황 특히 부모님의 의견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들에게도 자신의 진로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들의 재능을 파악해 주어야 하고 그 다음은 자산의 내면의 울림을 좇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천복을 찾아 가는 길에 들어 설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의 천복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p.226 모이어스: 대공황의 와중에 멋진 시절이라니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캠벨: 돈이 없다는 건 느꼈지만 가난하다는 느낌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그 당시 사람들, 좀 좋았어요. 나는 그 당시에 프로베니우스를 발견했어요. 문득 이 양반이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는 프로베니우스가 쓴 것은 모조리 읽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나는 돈이야 어찌 되든, 뉴욕의 서적상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서적상은 내가 바라던 책을 모조리 보내면서 일자리를 구하거든 갚으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4년 뒤에나 갚았지만요.

뉴욕의 우드스톡에 아주 멋진 노인이 있었어요. 이 양반에게는 방이 아주 많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이 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연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그런데 이 집에는 수도가 없었어요. 물론 우물물을 길어다 쓰거나 펌프로 잘올려 써야 했어요. 그런데 수도를 놓지 않는 이유가 걸작입니다. 수도를 설비해놓으면 이 집이 수도가 있는 집에 살던 학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거예요. 나는 이 집에서 기본 도것와 공부는 거의 다 했어요.

정말 멋진 시절이었죠,. 나는 내 천복을 좇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말하는 이 천복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배운 겁니다. 산스크리트어에는, 이 세상의 가장자리, 즉 초월의 바라로 건너뛸 수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 세 가지 있어요. 즉 ‘사트Sat’ '취트Chit' '아난다Ananda'가 그것입니다. 사트라는 말은 ‘존재’ 취트라는 말은 ‘의식’ 아난다라는 말은 ‘천복’ 혹은 ‘황홀’을 뜻합니다. 이 말을 공부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지요.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 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처방에 영험이 있었던 것 같군요.

☞ 자신의 길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우주가 그를 돕는다. ‘돈이 없다는 건 느꼈지만 가난하다는 느낌은 없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돈이 없다는 것은 현상적인 사실이지만 그것에 끌려서 가난의 느낌에 매몰되지 않았기에 우주가 그의 확고한 풍요에 대한 에너지에 응답을 한 것이다.

p266-227 캠벨: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깊이와 경험과, 사트, 취트, 아난다와 관련된 존재의 확신과, 의식과 천복을 통한 나름의 존재 방식이 있어요. 종교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보기까지는 끝내 천복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런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천복이라고 생각해요.

모이어스: 천복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것이군요.

캠벨: 천국에서는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생전 안 하던 경험을 하니 대단하긴 하지요.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경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지, 천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모이어스: 선생님은 천복을 좇는 그 순간순간에, 혹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저에게는 그럴 때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캠벨: 늘 하지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굳게 믿는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하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천복을 좇으면, 나의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모이어스: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요?

캠벨: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요? 있다면 연민을 느껴야 당연한 불상한 사람이지요. 생명수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목을 쥐어뜯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야 당연하지요.

모이어스: 영원한 생명수가 옆에 있다고 하시는데 그게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캠벨: 그게 어디가 되었든, 우리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 학생들이 자신의 천복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교사가 먼저 천복을 따르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감동으로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천복을 좇는 사람은 바로 여기, 지금 이순간에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5.영웅의 모험>

p.229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p.229-300 사람의 행적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육체적인 행적입니다. 육체적인 행적을 보면, 영웅은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요. 또 하나의 행적은 정신적 행적입니다. 이런 행적에 따르면,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모험에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맵니다. 영웅의 모험에는, 출발과 귀환 사이에 일종의 주기(週期)가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모험의 구조와, 모험이 지니는 영적인 요소는 태고의 성인식에서 충분히 예고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 성인식을 통하여 아이는 아이의 시절을 포기하고 어른이 되기를, 혹은 유아기의 인격과 정신을 버리고 책임있는 어른이 되기를 강요당하지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일종의 기본적인 과정이며 정신적인 변모 과저입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의 보호와 감독 아래 의존적인 상태로, 줄잡아 14년에서 20년 동안이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냅니다. 박사 학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기간이 35년쯤으로 늘어날 수 있겠지요. 이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만, 대신 벌이면 벌, 상이면 상을 받아야 하는 복종적인 예속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심리적인 미성숙 상태를 박차고 자기 책임과 확신 위에서 영위되는 삶의 현장으로 나오려면, 죽음과 재생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영웅 여행에서 기본이 되는 모티브입니다. 즉 이 여행을 마쳐야 한 인간은 어떤 상황을 떠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는 더욱 풍부하고 성숙한 인간 조건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모이어스: 넓은 의미에서, 이 죄 많은 세상에서는 영웅이 아니어도, 누구나 내면을 향한 영적, 심리적 여행을 할 테지요.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교사는 학생이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거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경험해야할 ‘영웅 여행’에 대한 정보를 신화를 통해 제공하고, 자신의 천복을 좇아가는 길에서 당황하고 두려움에 빠지 않도록 멘토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p.233 모이어스: 영웅의 시련, 시험, 난관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캠벨: 굳이 말하자면, 이 사람이 정말 영웅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관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 정말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 용기, 지식,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누군가가 예비해놓은 어떤 관문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p.233-234 캠벨: 여기에서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參究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해왔지만 지금부터는 저렇게 생각해보는 것……. 의식의 변모는 이로써 시작되는 것이지요.

모이어스: 의식은 어떻게 변모합니까?

캠벨: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를 통해서 변모하겠지요.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인 겁니다.

모이어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보상의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처녀가 괴물에게서 구출된다든지, 도시가 멸망을 면한다든지, 영웅이 구사일생한다든지 하는…….

캠벨: 있지요. 그런 보상 성격의 성취가 없으면 영웅 신화가 아니지요. 물론 실패와 영웅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은 자기가 성취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광대 영웅인 셈이지요.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교사는 신화교육을 통해서 영웅여행에는 시련과 계시가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미리 알려주어서 영웅여행의 길에 대한 시험을 들었을 때 슬기롭게 그 과정을 보내어 의식의 변모의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p.239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있는 것이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p243 우리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런 모험을 할 때는 늘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244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자기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따르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위험이 우리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p245 모이어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영웅이 아닌 명사名士를 숭배하는 것 같은데요.

캠벨: 유감이지만 그렇군요. 브루클린의 고등학생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설문을 돌렸더니 3분의2가 ‘명사’라고 대답했다더군요. 뭐가 되자면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하는 한심한 대답이지요.

모이어스: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거군요,

캠벨: 그저 유명해지고 싶다. 그저 이름만 얻고 싶다는 건데, 한심해요.

모이어스: 사회에 영웅이 필요한 겁니까?

캠벨: 필요할 것 같군요.

모이어스: 왜요?

캠벨: 분열 증세를 보이는 이 모든 경향을 한 곳으로 모아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게 할 수 있는 별자리 같은 이미지가 필요한 거지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영웅 모델을 세우게 하여, 자신이 그러한 영웅이 되는 날을 꿈꾸며 영웅의 여정을 따라가게 해야 한다.

p.251 전설적인 영웅은 큰 일을 한 사람, 무엇을 세운 사람인 경우가 보통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 새 종교를 세운 사람, 새 도시를 세운 사람,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세운 사람인 것이지요. 이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서 영웅은 기왕에 살던 땅에서 새로운 것을 싹 틔울 잠재력이 있는 씨앗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 교사는 학생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품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싹 틔울 황금씨앗을 찾아 떠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준비를 해주어야 한다.

p251 우리 삶(남의 삶을 시늉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삶) 역시 탐색의 여행에서 나온 것입니다.

p251 모이어스: 이런 이야기들이 왜 인류에게 중요한 것입니까?

캠벨: 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도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요. 만일에 어떤 이야기가 이른바 원형적인 모형(아이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 혹은 성인으로서 살게 될 새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다룬 이야기)을 다룬 것이라면 그것은 중요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도중에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본보기가 되어줄 테니까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학생들에게 신화에서 원형적인 모형을 다룬 이야기들을 모아 들려주면 자신의 발전 단계를 스스로 인식하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p253 동화는 어린이들의 신화예요. 각 나이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신화가 있어요. 나이를 먹게 되면 튼튼한 신화가 필요해집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사춘기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맞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신화는 무엇이 있을까?

p253-254 모이어스 : 그러니까 소년에게 필요한 진리가 있고 노인에게 필요한 진리가 있다는 것이군요.

캠벨: 그럼요, 하인리히 침머 박사가 컬범비아 대학에서 강의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당시 그는, 인생은 꿈, 혹은 거품이라는, 다시 말해서 ‘마야(幻)’라는 힌두교 관념을 강의하고 있었어요. 그의 강의가 끝나자 한 젊은 여학생이 그분에게 질문을 하더군요.

“침머 박사님, 인도 철학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야’라는 것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자 침머 박사가 이러시더군요.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게. 자네같이 꽃 같은 아가씨는 몰라도 되는 것이니까.”

그래요. 나이가 들고, 우리가 알던 사람,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세계 또한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때 비로소 ‘마야’의 신화가 가슴에 와닿지요.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세계를 더 만나야 하는 것, 더 살아야 하는 것, 더 사랑해야 하는 것, 더 배워야 하는 것, 더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신화가 필요하지요.

☞ 신화교육 학습방법론: 학생들의 시기에 맞는 신화를 찾아 제시하고 자신의 때에 맞는 신화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p254-255 우리의 본 모습은 우리 내면에 있는데, 이 내면에 대한 탐색이 바로 내가 40여 년 전에 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담으려고 했던 주제랍니다. 신화가 지니는 우주론 및 사회학과의 관계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예요. 이 관계는 여전히, 우리가 속한 이 새 세계에 적용될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그 책을 쓴 40여 년 전에 견주면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적인 삶의 양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따라서 잠깐만이라도 이 세상의 기원신화를 접어두고(기원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이 뭐라고 말해줄 테니까.), 인간의 내면 탐색에 관한 신화로 되돌아가, 깨달음의 단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어떤 시련을 경험하게 되는지, 어른 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한번 읽어보세요. 이야기는, 우리 곁에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있어요. 종교에 있어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가 어떤 종교든지 상관없이 인간의 내면 탐색에 관한 부분에서 인간의 성장과 관련된 같은 구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학습시키면 통합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 신화를 읽으며 사실 어떠한 종교도 배타적일 필요없이 다 수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p.259 캠벨: 신화도 그렇게 해서 신학으로 축소되고 맙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유동적인 것이에요. 대부분의 신화는 자가당착적이지요. 한 문화권에 똑같은 내용의 신화가 몇 개씩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모두가 같은 신비를 해석한 것인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신학이 들어와서는, 이것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화는 시예요. 시적 언어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종교는 시를 산문으로 바꾸지요. 하느님은 글자 그대로 저기에 있다. 이거야말로 글자 그대로 하느님 말씀이다.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 가까워지려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식이지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신화가 시적언어로 이루어져있으므로 시를 학습하여 신화를 읽고 그 상징을 해석해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p.262 모이어스: 우리가 아기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의 의식 아래에는 이미 어떤 기억이 분명히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군요.

캠벨: 거기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 얼마나 어머어마한가를 알면 더 놀라게 되지요. 아기는 엄마의 젖꼭지가 입술에 닿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압니다. 아이의 기억에는 우리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붙박이 행동 체계가 있어요. 우리는 이걸 본능이라고 하지요. 이게 바로 생물학적 기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 더 지나면, 외부로부터 강제를 당할 때마다 무엇인지 거북살스럽고, 이질적이고, 두렵고, 죄의식이 느껴지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시기가 우리의 가장 까다로운 심리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인 거죠.

신화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 자료였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적당한 신화 교육을 베풀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 사회 안에서 행동 통일을 하는 데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 거지요. 나에게는 하나의 이론이 있어요.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쳤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은이의 경우는, 문턱 넘기 의례와 관련된 신화 대응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및 학습 방법론: 인간에게 있는 무의식 차원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료가 신화이다. 아이들이 삶의 과정에서 어떠한 벽에 부딪혔을 때 그에 해당하는 문턱 넘기 의례와 관련된 신화 대응물을 제시하여 그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p264-263 캠벨: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막연할 때는 이웃의 충고나 영향력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요. 나는 엄격하고 권위주의 적인 사회 상황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그만큼 모르는 상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이어스: 늘,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입니까?

캠벨: 지금 우리가 그래요. 지금 우리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있어요.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바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늘 명령과 지시를 받으면서 살지요. 아이들은 달력을 보면서 휴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휴일이 되어야 저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이어스: ‘자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자기’와 우리가 잘 모르는 도 하나의 ‘자기’ 즉 진짜 ‘자기’가 있을 수 있겠는데요. 신화는 어떻게 하면 이 진짜 ‘자기’를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까?

캠벨: 신화가 암시하는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신화나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은 알고 잇을 테니까요. 이것은 운동선수가 코치를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좋은 코치는 선수에게, 팔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 다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지시는 하지 않아요. 좋은 코치는 선수가 달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선수의 천성적인 동작 양식만 조금 수정해줍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면서 그 제자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아냅니다.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명령은 제자들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예술가들도 제자를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은 스승이 되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따금씩 말을 해줌으로써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던져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런 말을 들려줄 스승이 없으면 스스로 창안한 방법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즉 자기에게 어울리는 바퀴를 발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또 하나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책 역시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 만 같은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 배웠어요. 이 두 사람은 기초적인 신화 테마를, 현대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개인적인 문제, 어려움, 깨달음, 관심의 해석에다 응용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신화 모티프를 선택해서 길잡이로 삼는 것도 좋겠지요.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 역할: 교사는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거스르거나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명령이 아닌 적절한 충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만약 교사 스스로가 아이들에 실마리를 제공할 능력이 없을 시에는 책 속에서 아이들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책을 추천해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 줄 정도의 능력이 없는 교사라면 자기계발을 통해 재교육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p.265 우리 생각의 체계에 맞게 이 조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 조직의 배후에 작용하는 역사적인 힘은, 그 정도의 행동은 의미도 없을 만큼 거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요.

p270 우리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지요. 사고를 하기는 하되 가게를 운영하는 사고를 해요. 하지만 의식은 우리 인간 존재의 부수적인 기관일 뿐이에요. 그러므로 이 의식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게 하면 안 됩니다. 의식은 기가 한풀 꺽인 상태에서 우리 인간성을 섬겨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도 좋은 존재는 아닌 것이지요. 의식이 통제하게 될 때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인간이 생깁니다. 이런 인간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만 편들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 우리에게 의식에 붙어있는 무의식의 차원이 있는 것을 인식하고 신화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천복을 따라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천복이라는 것은 의식적 차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적 차원이 더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

p270 이 세상에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세상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남의 말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 신화교육이 필요성: 오늘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고 아이들 또한 그런 사람들 틈에서 제대로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신화교육을 통해 자기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대한 방법을 익힌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p271 우리는 조만간 무엇이, 이 이승의 삶이라는 꽃을 잘 가꾸는가를 알아내어 그것에 헌신해야 합니다.

p271-272 모이어스: 하지만 이 새로운 진실의 도전에 맞서고, 자기 삶을 여기에다 맞추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아니겠습니까?

캠벨: 천만에요! 그렇지가 않아요. 스승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소수겠지요. 그러나 내가 말한 것에 반응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위험에 처할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나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이와 같아요. 이런 능력은 우리 안에 있어요.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시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인간은 누구에게나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측은지심있으므로 그 본성이 착하다. 본성이 착하다는 것의 전제는 인간에게 내재된 긍정의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는 학생 누구에게나 있는 긍정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허용해주어야 한다.

p.272-273 캠벨: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겁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잇는 것을 거머쥡니다.

모이어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우리 개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선생님의 이른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캠벨: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모이어스: 우리의 일입니까, 삶입니까?

캠벨: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모이어스: 우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캠벨: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혼이 없는 세계는 황무지입니다. ……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생명이 우리 안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알아내어야 합니다. 연후에 우리 자신의 튼튼한 삶을 사는 겁니다.

모이어스: 여행을 떠나고, 우리 심층으로 내려가고, 용을 죽이는 이 일.....반드시 혼자 해야 합니까?

캠벨: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라도 좋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해서 마지막 일,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혼자 해야 합니다.

모이어스: 우리의 자아는 무엇입니까?

캠벨: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자아랍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역할: 학생들이 영웅의 여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과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 영웅의 여정을 떠날 것인지, 어떠한 영웅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아이들의 몫이 되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가 좋아서 선택하여 자신의 천복을 따르도록 하자. 단지 천복을 찾고 따르는 과정을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천복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p.275 캠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리아드네의 실뿐이지요.

모이어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뿐인데도, 우리는 우리를 구해줄 재물, 우리를 구해줄 권력, 우리를 구해줄 사상(思想)을 차아 엉뚱한 곳을 헤매지요.

캠벨: 그 실이라는 게 찾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실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은 거지요. 선생님 소리 듣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사람들이 이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입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 교사의 역할은 조력자임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p.276 스승이 할 수 있는 것은 암시입니다. 스승이 되는 사람은 등대와 같지요. “이 너머에 암초가 있으니까 키를 똑바로 잡아라. 저 너머에는 해협이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등대와 같지요.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본’을 만나는 일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라고 했지요. 인간은,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동물입니다.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삶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있는 신화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알맞은 본을 제시합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학생이 배를 몰고 가고 있다. 스승이 그 배의 키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배를 몰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생이다, 스승은 학생이 때로는 자신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때로는 자기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와 같은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p.277 서구인들은 ‘나’안에 잠재해 있는 삶의 과녁이자 이상을 살지 절대로 남의 안에 있는 가능성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위대한 서구적 진실이라고 믿어요. 우리가 각기 나름대로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일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도, 주어지는 것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 개개의 경험과 우리 개개인이 지닌 잠재력이 발현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동영의 전통적인 사회, 거의 모든 전통 사회를 보면 개인은 기계로 찍어낸 과자 같아요. 이런 사외 구성원의 의무는 정확한 용어로 정확하게 정의되어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지요.

영적인 문제의 도움을 받으러 스승을 찾아갈 경우, 이 스승은 그 제자가 전통적인 길 어디쯤에 와 잇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가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압니다. 그러면 스승은 이 제자에게 무엇을 주는고 하니, 바로 자기가 구상한 바를 일러줍니다. 그러니 제자가 스승 비슷하게 도리 수밖에요. 서구의 교수 방법은 이와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들 나름대로 구상하게 하고 그렇게 구상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인도해주지요. 그러니까 학생은 자기 나름의 자기 길을 찾아야 하지요. 그러니까 그 길은,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을 향한 잠재력, 다른 사람은 체험해보지 못한 것,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체험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역할: 교사는 동서양의 교육방법을 모두 익혀 가각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다양한 학생들에 맞춰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p.278-279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죽기에 좋은 날이다!”

죽기에 마침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인디언에게 삶에의 집착이 있을 리 없지요. 이게 바로 신화가 전하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만,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이 모습은 ‘나’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이미 성취한 자기성(自己性)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신화교육의 필요성 및 학습방법론: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의 공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학생들은 살아있음에 대한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개인의 죽음이전에 주변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교육을 하여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이 모두 중요함을 잘 살아야 잘 죽을 수도 있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아 현재에 충실한 자기의 천복을 따라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p.285 아이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요. 맡겨서 홀로 서기에 충분한 힘이 있게 되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새끼 새는 자기가 날 수 있을 때가 되었다는 걸 압니다. …… 내 생각에는 사람들에게도 안에는 이런 것이 있지 싶어요.

예술학교 학생들에게는, 스승이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이 순간이 스승이 가르치고자 하는 기법을 모두 자기 것으로 동화시킨 순간, 날 준비가 된 순간이지요. …… 스승 소리를 듣는 사람은 마땅히, 제자에게 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먼저 알고 때가 되면 날게 해주어야 합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다른 계통의 학생들도 대개 자기에게 때가 오면 그때를 알아차립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교사는 제자가 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먼저 알고 날게 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면밀히 관찰하여 그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p.286-287 신화는 처방까지 해주지요. 가령 신화는 우리에게, 나이 몇 살에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까지 가르쳐줍니다. 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짐작케 해주는 좋은 기준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인차가 엄청나게 납니다. 사람들 중에는 대기만성형이 있어서 아주 늦게야 빛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딱 하나뿐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지요.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겁니다.

아무리 신화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좇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행복을 좇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러줄 뿐이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과 학습방법론

p287 ‘구혼의 거절’이라고 이르는 모티프- 캠벨: 구혼을 거절하는 순간에, 어머니가 정해준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에 모험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로써 주인공은 자기가 전혀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땅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바야흐로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정해준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면, 기존의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 기존의 법을 어기지 않으면 창조적인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학생이 언젠가는 우리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모험을 새로운 장소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시기가 되었을 때 학생들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행운을 빌려 전송해 주어야 한다.

p291 우리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길이 아닌 우리의 길을 좇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한 권능자들의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p.297-298 고통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그 고통을 비롯되게 했다.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 Amor fati’라는 건데 ‘운명적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천만에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설사 하느님이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하느님은 당신 안에 있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창조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것이 당신의 내부 어디쯤인지 알아야 한다. 이걸 알아내면 당신은 이것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당신 삶의 일부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가능하다.

☞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그것이 긍정의 시작이다. 모든 긍정은 자기 긍정으로 비롯된다. 그것이 자존감의 시작이다.

p299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여기라는 겁니다.l 이렇게 하면 우리 의지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p299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어요. 운동경기를 보면서 내가 조금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정점에 이르러 있는 운동 선수는 내부에 靜點을 하나 지니고 있어요. 그의 움직임은 바로 이 정점에서 생겨납니다. 움직임의 場에서 뛰고 있는 한 제대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어요. 내 아내는 춤꾼인데요. 내가 물어보니까 춤의 세계에도 그런 게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 안에 정점이 잇다는 건 거의 확인이 된 셈입니다. 우리는 이 정점을 찾아내어 우리 의지로 장악해야 합니다. 이 중심을 잃으면 긴장이 생기고 긴장이 생기면 우리의 주의는 분산됩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자신의 정점을 찾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운동경기나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통해 정점을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마음에도 적용하면 된다.

p301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아요.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고, 그것과 사귀어야 합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역할 :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라. 우리는 모두 소중한 창조적인 존재들이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그러하다.

p303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이게 왜 ‘버금’이냐 하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로 드러난 진리 중에는 으뜸이라는 뜻이지요. 신화의 진리는 말씀 너머, 이미지 너머,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의 테 밖에 있어요. 신화는 우리의 마음을 이 테 밖으로 보냅니다. 이 테 밖에 있는 것은 앎의 대상은 될망정 드러냄의 대상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인 것이지요.

신화 자체의 신비와 우리 자체의 신비를 알고 체험하면서 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앎과 체험은 우리 삶에 광휘를, 새로운 조화를, 새로운 빛을 더합니다. 신화의 문맥에서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눈물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것 같은 우리 삶의 순간과 삶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가치를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이지요.

 

<6.조화여신(造化女神)의 은혜>

p.333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참여하지 않으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없어요.

p336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인 것입니다.

p.337 우리와 이 광막한 우주는 하나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 신화교육의 필요성: 신화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결국 우주의 일부분이자 하나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삶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이자 주체가 될 것이다.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p.347 자기의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p.359 우리 삶의 모든 행동은 그 결과에서는 한 쌍의 대극을 낳는다는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배가 의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세의 로망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겁니다.

 

<8. 영원의 가면>

 

p.376 내게는 삶의 경이에 대한 경험이 있어요. 내게는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어요. 나에게는 증오의 경험도 있고, 남이 턱주가리를 부셔놓고 싶다는 악의의 경험도 있어요.

p.378 나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별로 다르게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돈에 관해서 명상하는 것도 좋은 명상으로 칩니다.

p.383 원수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뽑아내려 하지 말고, 내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뽑아내는 겁니다. 그럴 수 있으면 원수가 사는 삶의 방법을 비난 할 수 없을 겁니다.

p386-387 캠벨: 이 대화에서 모이어스 씨가 드러내고 있는 것,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적인 원리의 깨달음입니다. 그러니까 모이어스 씨가 곧 그 깨달음의 수레인 것이지요. 모이어스 씨가 곧 정신의 광휘인 것입니다.

모이어스: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습니까?

캠벨: 자기 삶을 가슴으로 사는 삶의 단계에 올려놓은 사람에게는 다 그렇습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교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가슴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p388 캠벨: 온 세상이 원입니다. 세계에 있는 원꼴의 둥근 이미지는 모두 인간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원형의 건축 구조와 우리 정신 기능의 구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 겁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둥글게 살자! 그것이 자연적인 본성에 부합하는 삶일 것이다. 사각형 학교에 사각형 교실 사각형 책상에 사각형 책을 올려놓고 사각형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사각형 사물함을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둥글게 살자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환경을 물리적으로 둥글게 만들어보는 작업을 해보자. 교실안에 환경미화부터 둥글게, 그리고 힘 좀 쓸 수 있게 되면 둥근 교실에서 둥근 칠판을 보며 둥근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게 해줄 께. 지금 할 수 있는 건 운동장에 둥근원을 그리며 노는 것이 전부이구나.

p.394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적 탐색은 우리 내부의 발화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발화점은 존재의 모습이 확정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선악과는 무관하고, 공포도 없고 욕망도 없는 순수무구한 한 점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모르는 채 용감하게 전장으로 달려나가는 병사의 마음이 바로 이 한 점의 상태와 같지요.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p.398-399 절정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실재하는 어느 한 순간에 하는 경험입니다. 존재의 조화와 나 자신의 관계를 경험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입니다. 나는 절정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이게 어떤 경험인지 알았습니다만, 내 경우는 운동 경기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이긴다고 확신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길 것 미리 알고 있었어요. 이게 나의 절정 경험입니다. 그날은 어떤 선수도 나를 이길 수 없었어요. 나와 나의 존재가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나와 나의 존재가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내 평생 그날의 두 경기만큼 내가 완벽하게 해낸 것은 없습니다, 온 몸으로 온전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경주를 끝낸 그 경험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절정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은 어떤 절정 경험에서든 마찬가지이지요.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인생에서 절정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절정경험을 한 개인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학창시절에 절정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운동경기 등을 통한 육체적 체험일 수도 있고 학문의 탐구를 통한 정신적 체험일 수도 있다. 어떠한 체험이든 내면의 성찰을 가능하게 할 인생 최대의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p411 그래서 詩가 있는 거지요.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이런 효과를 지니는 시를 통해서야 우리는 저 광휘, 저 에피파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에피파니는 精髓를 통해 드러납니다.

☞ 신화교육의 학습방법론: 어아들에게 시를 가르치자. 언어가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 담고 있는 함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 신화는 시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신화에 담겨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p412 인도 신화의 인드라의 그물

p412 나는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은, 확대 재생산하고 존재를 계속하려는 충동을 지닌 원형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p412-413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누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오?”라고 묻겠지요. 내 대답은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 신화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 학생들에게 ‘자신의 내재된 잠재력을 발취하여 자신의 천복을 따르는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교사 자신이 그것을 실천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내고 있어야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p413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 겁니다.

 

* ‘내가 저자라면’ *

 

1. 책의 구성

각 챕터에서 저자가 언급한 신화의 상징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림이나 사진과 관련된 본문의 내용을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시작부분에 싣고 있다.

챕터의 핵심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나 저자의 다른 저서에 나오는 관련 내용을 인용하여 챕터의 말머리를 시작하고 있다.

내용을 전개하면서 곳곳에 본문에서 설명하는 신화의 이미지와 관련된 저자의 글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은 모이어스와 캠벨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모든 챕터의 진행은 신화와 관련된 모이어스의 질문과 캠벨의 답변으로 이루어져있다.

 

2. 책의 목차

․ 옮긴이의 말

․ 빌 모이어스의 서문

1. 신화와 현대세계

2. 내면으로의 여행

3. 태초의 이야기꾼들

4. 희생과 천복(天福)

5. 영웅의 모험

6. 조화여신(造化女神)의 은혜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8. 영원의 가면

 

3. 전개 방식

주제에 대해 빌 모이어스의 질문에 캠벨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화를 글로 옮긴 것이다 보니 캠벨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강조하여 말하게 되어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다른 주제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되어 지고 있다. 캠벨의 사상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만약 나의 책이 이 전개방식을 도입한다면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해주는 형식의 글이 한 꼭지 정도로 들어가는 것도 반복되는 구성상의 지루함을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이번 두 번째 읽기에서는 신화를 교육해야 되는 필요성과 신화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필요한 학습방법론, 그리고 신화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어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가에 대한 3가지 관점으로 책을 분석해 보았다.

<신화교육의 필요성 및 학습방법론>

1. 세계화를 위한 교육에 신화가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공부하면서 우리의 신화와 공통점을 찾고 그 근원이 다를 바 없음을 우리는 우주, 자연 안에서 하나임을 깨달아 국경이 없는 전지구적며 전인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진정한 세계화의식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2. 신화가 사라진 지금, 신화교육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창의성 교육을 실현시킬 수 있다.

3. 신화의 학습은 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신화와 시의 공통점은 함축성이다. 이는 또 인간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인간의 삶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속에서 함축하고 있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인생일 것이다. 신화와 시를 배우는 것은 바로 우리 인생을 배우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신화에 담겨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4. 신화의 학습은 인간발달의 단계에 따른 의례를 경험하고 영웅의 여정을 체험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사람들이 영원을 기약하면서 미래를 꿈꾸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현실에 충실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경험을 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영원을 사는 것과 같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발달의 단계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화의 학습을 통해 인간발달의 단계에 맞는 의례를 경험하여 신화의 기능인 몸과 마음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현재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오늘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고 아이들 또한 그런 사람들 틈에서 제대로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신화교육을 통해 자기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대한 방법을 익힌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6. 신화교육을 통해서 자신이 결국 우주의 일부분이자 하나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학생은 삶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이자 주체가 될 것이다.

7. 인생에서 절정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절정경험을 한 개인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학창시절에 절정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운동경기 등을 통한 육체적 체험일 수도 있고 학문의 탐구를 통한 정신적 체험일 수도 있다. 어떠한 체험이든 내면의 성찰을 가능하게 할 인생 최대의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신화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1. 학생들은 항상 자신의 진로에 대해 궁금해한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찾아하기보다는 주변의 상황 특히 부모님의 의견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들에게도 자신의 진로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파악해 주어야 하고 그 다음은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좇아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자신의 천복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 학생들이 자신의 천복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교사가 먼저 천복을 따르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감동으로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

3. 교사는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거스르거나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명령이 아닌 적절한 충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만약 교사 스스로가 아이들에 실마리를 제공할 능력이 없을 시에는 책 속에서 아이들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책을 추천해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 줄 정도의 능력이 없는 교사라면 자기계발을 통해 재교육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4. 학생들이 영웅의 여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과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 영웅의 여정을 떠날 것인지, 어떠한 영웅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아이들의 몫이 되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가 좋아서 선택하여 자신의 천복을 따르도록 하자. 단지 천복을 찾고 따르는 과정을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천복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5. 학생이 배를 몰고 가는 주체이다. 스승이 그 배의 키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배를 몰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생이다, 스승은 학생이 때로는 자신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때로는 자기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와 같은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6. 교사는 학생이 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먼저 알고 날게 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에 대한 애정을 갖고 면밀히 관찰하여 그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 선생님 소리 듣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사람들이 이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입니다.”라는 캠벨의 말처럼 교사의 역할은 조력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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