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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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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0일 09시 06분 등록
 

북리뷰42 -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2번째 읽기-20110110


1. 저자에 대하여


윌리엄 브리지스 (William Bridges)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10인 중 1명이며, '변환관리'의 창시자이다. 하버드, 콜롬비아, 브라운대학교에서 수학했고 박사 학위는 1963년 미국 문명사에 관한 논문으로 브라운대학에서 받았다. 한때 영문학 교수였으나,  1970년대 중반, ‘전환 관리’ 분야로 활동영역을 옮기고 윌리엄 브리지스& 어소시에이트(William Bridges &Associates)를 창립해 워크숍과 강연을 통해 개인과 조직에게 전환기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개인의 변환 관리뿐 아니라 조직의 변화 및 변화 관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인간성심리학협회의 대표를 지냈고, 베스트셀러 [전환]과 [전환 관리], 이 책의 원저인 [변환의 길],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를 포함하여 10권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아내 수잔과 함께 캘리포니아 밀 밸리(Mill Valley)에 살고 있다.  퍼시픽 벨, 박스터 헬스케어, 인텔, 카이저 퍼머넨테, 프록터 앤 갬블, 휴렛 팩커드, 미 산림청, 세브런 코퍼레이션, 사우디 아람코, 스탠퍼드대학, USA 투데이, 쉘 패트롤륨(런던), 오스트레일리아 국방부, 아스트라-제네카 제약회사, 트라이벤트 파이낸셜 등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에서 조직 합병, 구조조정, 지도부 교체, 문화 변혁 등과 관련된 일을 지원해왔다.



2. 내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검정색 :첫 번째 읽기

파랑색 :두 번째 읽기

빨강색: 50개의 내 생각


Prologue

전환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수업

[P. 6]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학 작품은 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이를 읽는 독자들의 이해와 감상이 변한다. -조지 엘리엇

[P. 6] 인생을 살다보면 영영 떠났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P. 9]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현실이 사라질 때 마다 그 대답은 오래된 현실과 관련된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현실을 탐험하고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 9] 전환이란 깨닫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P. 9] 전환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정체성 역시 깨뜨렸다.

[P. 11] 아내의 죽음은 나에게 마음의 바닥을 비워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을 제공했다. 전환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전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내생각 1) -> 인생이 관성의 법칙에 따라 잘 굴러가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최초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따라서 윌리엄 브리지스 말대로 전환은 단순한 깨달음 이상을 주기도 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크게 느끼는 경우 자신의 삶을 전면 부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들기도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이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상태로 들어간다. 무기력이 사람에게 찾아올 때를 윌리엄 브리지스는 림보(limbo)상태라고 정의 했다. 무기력이 지배하는 이 시기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P. 12] 이 책은 내가 60대에 접어들고 21세기가 시작된,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있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에 서있는 나에게 전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며 어떻게 생각되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 이상한 텅 빈 상태를 나는 중간지대라, 곧 림보Limbo라고 부른다.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다.

(내생각 2) -> 윌리엄브리지스는 전환이 시작되기 전 텅빈 상태를 중간지대 림보상태라고 정의 했다.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고 이전의 기술과 방법이 먹히지 않는 지점이다, 그런 이유로 이 지점에 들어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심리적 혼란을 겪게 된다. 나는 그 상태를 무기력이 지배하는 기간으로 본다. 림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답답함과 낭패감 그리고 고통만을 느낄 뿐이다.

 

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

[P. 14]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이다 .-앤 머르 린드버그

(내생각 3) -> 그러나 변화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역행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쉽게 하기 위해선 의식적인 힘이 아닌 무의식적인 어떤 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강제적인 힘(force)로 할 수 없는 것을 잠재적인 힘(power)로 할수 있다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힘인 power는 무엇인가? 우리의 일생은 자신을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고 power를 키워가기 위한 순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M 스콧 펙은 사랑의 반대를 게으름으로 정의했다. 이 게으름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우리는 잠재의 힘인 power가 우리를 일으키도록 매번 깨어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삶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P. 14] 무엇인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변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이든 끊임없이 재조장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생각 4) -> 같은 의미로 볼때 우리는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시도해야 한다. 성장을 할 수 있을 때 현재를 유지할 수 있다.  

[P. 14-15]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같은 것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껴안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박탈해 왔다는 것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P. 15] 우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모든 것은 사실은 변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변화가 한창 진행될 때에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아무리 견고하고 편안하고 필수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도 한때는 새롭고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거북한 느낌을 주는 일들이었다. 

변화란 앞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하면서,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일들과 함께 간다.  

(내생각 5) -> 변화가 앞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장이나 발전만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며 살아온다. 그러나 어느날, 중년의 나이쯤에 그런 경험을 많이 하게되는데, 발전이 아닌 퇴보, 성장이 아닌 추락을 만나기도 한다. 폐휴지를 모으는 노파를 보면선 우리의 말년이 저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도 없음을 느낀 순간 우리의 미래는 깜깜해 보인다. 그때 누구나 철렁하게 된다.   그러나 변화가 앞으로 가지 않음을 인지하고 그 추락이 성장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기로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삶은 다시 아름답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필요한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변화란 ‘마땅히’ 저항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왜 저항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며, 익숙하지 않은 영토를 탐험하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현재에 집착하게 된다’고 대답한다. 또는 선천적인 이기심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거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25년간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전환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오면서, 사실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내생각 6) ->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이 변화가 아닌 전환이라는 심리적 전환이 물리적 변화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P. 16]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P. 16] 새로운 상사와 일하게 되는 것은 변화이다.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변화이다

[P. 16] 한편 전환이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리고 다시 잡게 되는 그 중간에 이전의 방식도, 그리고 새로운 방식도 통하지 않는 창조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전 것의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 이 세가지 과정이 전환이다.

(내생각 7) -> 물리적 변화를 했음에도 새로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상사가 취임해오면 그와 일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 중에 그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 상사를 자꾸 되뇌이는 사람들이 있다. 전환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전환은 변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환이 없다면 변화란 기계적이고 피상적이고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는 전환이 일어났다 해도 도중에 실패했다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처음 시작했던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은 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내생각 8) -> 새로운 상사가 왔거나 새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심리적 전환을 하지 못한 경우라면 그는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려 하고 새집에서의 새 이웃을 만나는 대신 과거 살던 곳에 찾아가 수다를 떨게 되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그리움과 사람 때문에 옛 이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전환을 해야 하는 에너지를 전환 거부에 쓰게 된다. 심각한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P. 17] 전환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전환의 세 가지 과정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오래된 것을 놓아버리는 것에 대해 저항할 수도 있고 중간지대에 서서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위험성들이 불안정성에 대해 저항할 수도 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위험성들이 불안정성에 대해 저항할 수도 있다.

[P. 17]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전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놓아버릴 수가 없어서 전환을 거부한다. 

(내생각 9) -> 예수가 38년된 혈루증 병자를 고쳐주는 기적을 베풀었다. 또 앉은뱅이에게 ‘달리다굼’이라고 말한 순간 그는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일어나 자신이 누워있던 이부자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일단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나는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보았다. 그 앉은뱅이였던 사람은 그 이후 어찌되었을까? 그는 걸을 수 있게 된 변화의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겠으나 오래동안 그를 지배해오던 앉은뱅이 방식을 쉽게 버릴 수가  있었을까? 아마 그는 자신을 부양해오던 가족의 힘을 뿌리치고 스스로 밥벌이를 위해 집밖으로 나가는 상황을 거부했을지 모른다. 앉은 상태에서 주는 밥을 편하게 먹던 상황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던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할지 모른다. 새로운 상황은 그에게 집밖으로 나가 일을하게 만들려고 하고 가족들의 잔소리가 더해진다. 걸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가족 부양이라는 새로운 책임의 무게에 그는 고통스러워하고 예전의 상황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우리 인생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  의무의 거부, 전환의 거부는 마땅히 해야할 의무의 거부에서 생겨난다. 

[P. 17] 때로는 변화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전환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림보limbo 상태에 남겨지기도 하는데, 사실을 대체하고 새로운 자신을 대체한다는 것은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중간지대’라고 부른다.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곧장 진행되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면, 전환은 중간지대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생각 10) -> 윌리엄브리지스 말대로 심리적 전환을 하지 못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 못하고 있을때 그 림보상태라는 중간지역에서 사람들은 심리적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 속에 있는 동안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현실과 자신의 부적응과 삐걱거림을 알게 된다. 그러나 쉽게 그곳에 들어가지지도 않는다.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때 그사람은 심각한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P. 17] 사람들이 전환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속에서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었던 상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파장을 일으키고’ 다른 것, 더 오래된 것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며 같은 상태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내생각 11) -> 앉은뱅이가 전환을 거부하는 것은 그가 고통스럽게 앉은뱅이로 있을때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동정심이 그로 하여금 받기만 해도 되는 존재로 학습시켜버린 탓이다. 그는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받기만 하던 때가 그립다. 오래된 것, 익숙한 것에 대한 끌림으로 그는 전환을 거부하는 것이다.


[P. 18] 전환은 현재의 상태를 제거하면서 오래된 상처를 건드릴 뿐만 아니라, 현재가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내생각 12) -> 앉은뱅이는 어쩌면 어느날부터 가짜 앉은뱅이가 되어 구걸을 다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전환을 거부하는 에너지는 막강하다.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 엔트로피이 법칙을 역행하는 일이므로 사람들은 사다리를 거슬러 오르기 힘들다. 펄펄뛰는 연어의 역행은 엄청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그렇듯 인간 의식의 상승은 등용문을 통과하듯 집중된 에너지를 발화할 때 일어날 수 있다.

[P. 18] 인생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자서전 소제목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의식적인변화, 즉 아직 생소한 곳으로의 이주 이혼 등이 아니라, 천천히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두루 영향을 미치는 감정상의 변화들이다,  - 니딘 고디어  

[P. 18-19] 엄밀히 말하자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전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전환을 ‘반작용의 전환’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 전환은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고 그것은 변화를 통해 내가 도달한 길이었다.

[P. 19] 그러나 다른 종류의 전환도 있다. 그것을 ‘발전적인 전환’이라고 부른다.

[P. 19] ‘발전적인 전환’이란 외적인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깃든 자연적이고 내재적인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청소년기에 겪는 전환은 발전적인 전환이다. 중년의 전환도 그렇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심오한 변화도 역시 발전적인 전환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점진적으로 깨닫든 아니면 갑작스레 깨닫든,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

(내생각 13) -> ‘반작용의 전환’이든 ‘발전적인 전환’이든 우기체가 느끼는 혼란은 유사하다. 윌리엄브리지스는 둘을 구분하여 후자는 마치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아내를 잃었을 때 느낀 고통이 ‘반작용의 전환’을 일으켰다면서 다른이의 중년의 고통은 ‘발전적인 전환’이라고 표현하는 저자에게 동의할수 없다. 나는 모든 전환은 고통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전환이 사춘기라는 무서운 심리적 혼란 현상을 가져오고 중년의 전환역시 그 유기체를 혼란에 빠트린다. 때로는 우울증을 지나 자살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심리적 혼동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겪을수 있다. 어떤 전환이 더 쉬우냐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전환은 다 어렵다고 정의하고 우리는 그 전환을 쉽게 넘어갈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각개인에게 제시된 문제이고, 특별히 지식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P. 20] 살면서 어떻게 이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또 인생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당황스러워 한다.

[P. 20] 전환은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P. 20] 종결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오래된 견해, 진실, 태도와 가치 자아상 등을 놓아버리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잠시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을 설득하여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덮으려 할 수도 있고 포기하고 항복해야 할 때가 오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상태는 우리의 삶이 마치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래된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뒤섞여 다가오고, 믿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은 대혼란 상태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도 바로 이 상태이다. 그러므로 중간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창조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P. 20-21] 마지막으로 새로운 태도와 자아상과 같은 새로운 견해와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했을 때 마침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삶이 예전의 궤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고 이제는 삶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되고 새로운 견해와 목적과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P. 21] 사람들이 변화에 노출될 때 질병은 어김없이 사람을 공격한다. - 헤로도토스

[P. 21] 전환의 과정은 존재론 같은 관념적인 형태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 진행된다.

[P. 22] 전환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이전의 상황이 종료된 상태에서는 슬픔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단지 변화를 준 것이 실수였다고 만 생각했다. 왜 그렇게 비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P. 23] 떨어져 나갔다가 재조직되는 그 사이에서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은 황무지로 내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황량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반게네프는 이것을 ‘중간지대’라고 뷸렀다. 

(내생각 14) -> 떨어져나갔다가 재조직되는 전환기,  그 중간지대에서 사람들은 황무지로 내몰린 느낌을 갖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정신의 사막’ ‘인생의 사막’이 생기는 이유이다. 변화가 있었으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일어나는 고통, 그것이 인생의 사막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무기력을 체험하게 된다. 그 아무것도 할수 없는 지점 그곳이 빈게너프의 중간지대, 윌리엄 브리지스의 림보상태이고 내가 말하는 ‘인생의 사막’이다.


[P. 24] 성년식을 젊은 사람이 막 들어서려고 하는 성인의 삶을 소개하는 의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반 게네프는 이런 발전적인 전환은 그들이 떠나려고 하는 청소년기를 완전히 버려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수 없다’는 말은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비유적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환의 시점에서 종결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내생각 15) -> 전환이 일어나지 않음은 이전 단계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변화가 일어나면 기전단계 전부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화이 일어나고 사막을 쉬이 빠져나올수가 있는 것이다. 



[P. 24]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클라우드 베르나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학습을 방해한다.”

(내생각 16) -> 학습된 무기력처럼 학습된 무엇이 새로운 것의 학습을 방해한다.


[P. 24] 마흔살의 나이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을때 나는 소위 중년의 전한이라고하는 인생의 ‘틈’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부족들이 의식을 지내는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세단계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생각 17) -> 우리는 새로운 시작에만 집중하기 쉽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보다는 종결해야 할 것이 무언지를 먼저 알고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결없는 시작은 구호뿐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매번 시작만 반복하는 것이다.

무엇을 종결할지 생각해야함을 먼저 기억하라.

[P. 25]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 G.K.체스터든

(내생각 18) -> 과거의 습성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의 전환이 시작될 수 있다. 인지의 전환이란 과거의 생각을 버리는 작업이다. 자신이 살아온 만큼 누적되어 있던 학습된 결과를 부인하는 행위이다. 삶을 성공으로 보내기 위해, 인생의 성장을 위해 과거에 대한 전면 부정 그것이 인지 전환의 핵심이다.

[P. 25] 우리는 하나를 마치면서 또 다른 하나를 시작한다.

[P. 26] “나에게서 직업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P. 27] 의식의 생각은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고, 끝과 상실의 느낌들은 단지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을 창조하는 바닥다지기 작업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생각 19) -> 새로운 시작은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고, 상실의 느낌이 주는 종결의 행위가 바닥다지기 작업과 일치한다. 이 바닥 다지기는 장시간 일어날 수 있다. 

[P. 27] 이전의 것을 마치고 바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시작 전에 이전의 것을 마쳐야 한다.   

(내생각 20) -> 어이없게도 인생에서 이것을 알지 못해 실수하는 사례가 무척 많다. 이전의 단계를 종결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새로운 시작을 한사람들은 아무 준비없이 사막으로 들어간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P. 28] 전환의 황무지 같은 곳을 천천히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족의 의식에서 보면 황무지는 개인의 내부와 주변 모두에 존재하고 있다. 즉 젊은이들은 외적인 황무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삶’과 ‘정체성’에 의해 이루어졌던 질서가 사라질 때 내적으로 형태가 없고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내생각 21) -> 윌리엄브리지스가 전환을 황무지로 표현한 것에 주목하자. 그만큼 전환의 과정이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황무지를 천천히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혼란스런 상황을 천천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의미일 것 같다. 

[P. 29] 물론 사회는 사람들이 중간지대에서 자신의 일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중간지대를 지칭하는 언어도 없다.

(내생각 22) -> 예를 들어 준비없이 퇴직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이 중간지대의 삭막함이라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직장의 일에만 집중했었는데 갑자기 책상이 사라졌고, 그들이 내몰려 나온 사회에는 그들의 일이 없다. 무기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것 저것 시작하다가 그나마 퇴직금마저 날려버린다. 종결이 없었고 새로운 시작도 없이 그들은 중립지대로 내몰린 것이데 사회는 그들의 무기력에 대해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

[P. 31] 겉으로는 평상시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환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불과 몇 년전까지 가르치는 일과 교외에서의 생활을 사랑하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완전히 혼자였고 혼란스럽다고 느꼈던 감정들을 견뎌냈다.

[P. 31]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면서, 2년동안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갔다.  [P. 32] 그러나 동시에 이따금씩 비추는 어렴풋한 등불에만 의지한 채 내 삶의 어두운 통ㄹ호를 더듬어 내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인지 알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었다.   

[P. 32-33] 그러나 사실 그 시절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전환기에 뛰어들기 이전에 내가 느꼈던 상대적인 안락함이나 안전함을 되찾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P. 33] 지금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들이 실제로 새로운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해도, 그들은 시계를 돌리고 싶어 하며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또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내생각 23) -> 왜 사람들은 전환을 하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상황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변화는 이미 일어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축복이랄  도 있는 변화를 한 경우라도 그는 과거의 상황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걸을 수 있게된 앉은뱅이처럼 이미 건강해진 자신이 취해야할 새로운 의무를 학습하는 대신 과거 학습되어있던 구걸의 생활이 익숙하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건강해 졌는데도 앉은뱅이시절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P. 33] 옛날이야기가 있다. 한사람이 인도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착하고 보니 서인도제도였다. .... 가장 큰 전환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저 현상을 재건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내생각 24) -> 그는 서인도제도에 갈 생각이 없었으나 인도를 향해 가는 항해를 매일 실행했기 때문에 서인도제도에 가게 된 것이다. 변화 후 전환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그가 할 일을 지속할 때 어느날 전환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한번에 로켓을 달로 보낼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매일 지속했던 연구결과가 그런 성과물을 만들어냈듯이 우리의 전환이 매일의 작업으로 현실화 될 수 있다. 매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P. 33]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별의 시간은 다가온다. - 테네시 윌리엄즈

[P. 33-34]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이 공통점은 종결의 단계에 와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결은 다음의 경험들을 겪으면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P. 34] 반드시 이루어야 할 내적인 포기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이해이다. 놓아버려야 할 것은 직업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 같은 것이다.

[P. 35] 상실은 내적인 것을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가장 적합한 신호이므로, 전환기에 놓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무엇을 놓아버릴 때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내부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놓쳐버린다거나 외적인 변화가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생각 25) -> 무엇을 놓아버릴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은 변화는 림보에 머물게 만든다. 종결없는 변화는 전환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살을 빼려는 사람은 무슨 운동을 할지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살아온 습관을 버리는 행위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 자신이 먹던 간식을 포기하는 일, 달콤한 코코아를 포기하는 일, 누워서 지내던 소파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일 등등 그는 먼저 포기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이후에 그가 할 운동의 양과 그의 새 식단을 생각하는 순서로 진행됨이 옳다. 모든 전환에는 버림이 먼저이다. 먼저 버린다면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않는다.

[P. 36] 변화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전환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막이 끝날 때마다 일어나며, 동시에 다른 무엇인가가 무대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 37] 전환이란 이전의 생활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 소중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생활을 놓아버리는 것뿐이다.

(내생각 26) -> 인지의 전환도 그러하다. 자신이 믿어오고 있던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그 믿음이었으나 이제는 그것을 놓아버리고 새 믿음을 갖는다. 그 작업이 될 때 인생의 사막없이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P. 37]  당신의 옛날은 끝이 났다. 그것을 지속하고 이전의 삶을 재건축하거나 회복하고 싶어도 지금은 놓아버릴 때이다. 

[P. 37]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인생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혼을 하든,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나든, 배움을 포기하든, 고국을 등지든 이러한 모든 행동은 관계를 끊는 것이다. 끝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삶’을 끝내는 것이다. 

[P. 37-38] 변화와 전환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관적인 현실과 정체성을 놓아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외부의 변화를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환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만든다.

(내생각 27) -> 변화를 먼저했고 자연스러운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변화에만 머물러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것 중 그가 전환을 하지 못하는 탓에 강제적인 물리적 변화를 시도했으나 전환을 거부한 변화는 림보라는 황무지의 고통만을 안겨준다.

[P. 38]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놓아버리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진실’과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이것을 ‘견해’ 또는 ‘가정’ 또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P. 39] 믿음을 회복하고 열정을 재창조하려고 할때

사람들은 삶의 완성된 순환고리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사랑도 놓아버려야 한다.  -아나이스 닌

[P. 40] 인생은 관대하고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가져다준다, 그 각도는 항상 다르다. 때때로 그 광경의 각도가 우리의 마음을 깨뜨린다.  


2. 전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P. 44] 네가 새로운 시작을 좋아한다면 암에 걸렸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거야. 매일 매일 난 새롭게 시작하고 있어.

[P. 45] 아내는 치명적인 질병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곧장 밀고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 항상 함께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예상했던 삶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전의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변화 이전의 자신을 놓아버리고 중간지대에서의 경험을 존중하게 된다면 좀 더 풍부하고 놀라운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생각 28) -> 변화했으나 전환하지 못하는 단계, 그 무기력의 상황을 오히려 하나의 경험으로 존중하라는 윌리엄 브리지스의 주장은 새로운  관점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학습을 위한 장이 될 수 있음을 무기력에서 겪는 고통마저도 가르침이 될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무기력증은 고통이 아니다. 그는 준비 단계에 있는 것이다.

[P. 58] 모든 사물은 변화에 의해 생겨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리고 우주는 그 무엇보다 변화를 사랑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이에 적응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P. 61] 중간지대에 머물렀던 시간은 아내가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통찰력을 갖게 해주었다. 이전에는 전혀 쓰지 않았던 말과 글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 중간지대는 이미 경험했던 어느 것보다도 큰 친밀함과 기쁨을 보장해준다.

(내생각 29) -> 중간지대를 통과한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까? 한번만이 허락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린 억울함을 대신할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수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의 성장을 위해선 단계를 오르는 일뿐 아니라 추락하는 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조물주의 입장에선... 그러나 내가 신의 의지에 동참하고 그이 뜻에 협력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내야 하는 것은 견뎌내는 일이다. 회피가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신의 선의를 회피해 버린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온몸으로 신의 뜻을 받아들이 때 나는 중간지대에서 조차 성장할 수 있다.


   

3. 방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P. 62] 누구나 훌륭한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성장의 수고는 하려들지 않는다.   - 괴테

[P. 62] 전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우리가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전환은 이전 상황에 맞게 행동했던 방식들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새로운 상황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게끔 새로운 방침을 알려준다.

[P. 63] 새로운 나라나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이웃을 맞는 것도 전환이고, 오래된 습관과 기대를 바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 또한 전환에 포함된다.

[P. 64]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찰스 듀보-

[P. 64]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 만큼이나 그 세계를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전환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P. 65] 상황이 변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전환을 시도한다.

[P. 65] 뒤처지다가 전력질주로 따라잡는 판에 박힌 상황에서 전환은 느린 행동에 가속도가 붙게 만든다.

  

[P. 65] 왜 우리는 매일, 매분마다 조금씩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 대답은, 우리가 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부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모습을 조금씩 매번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P. 65-66]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프로세스에 발맞춰 생애의 모든 요소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흔한 표현이지만 매일 매일이 남은 생애의 첫 번째 날이라 하더라도 매일 아침 침대에 누워 처음부터 다시 현실을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시간 삶을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세계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다행히 우리는 그것들을 포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외적인 현실을 인식하기전까지는 잘지낼 수 있다.

대부분 어떤 변화가 오기전까지, 그리고 내부세계가 삐걱거리기 전까지 오래된 현실을 고수하고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내생각 30) ->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가급적 전환하지 않으려고 거부한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난 이후에도 위헙이 닥치기 전까지는 과거의 습관을 반복하려한다. 매일 새롭게 삶을 기획하는 것은 과도한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사람들은 가능한 미루고 또 미룬다. 이 미룸을 짧게 할수 있는 사람만이 중간지대에 머무는 시간을 줄일수가 있다.

[P. 68] 전환의 경험을 한다는 것, 특히 전환의 단계 중에서 중간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은 깊은 창조적 에너지와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내생각 31) -> 중간지대에서 창조적 에너지와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계기는 모두에게 일어날수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중간지대를 바라볼때 창조적 에너지가 발현될 수 있을까?

[P. 69] 어떤 일이 마무리되고 난후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많은 결정들은 중간지대에서 이루어지다, 단 이것은 삶이 새로운 형태를 지니기 전에 이루어진다. 

[P. 69] 중간지대에서 우리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전환을 일으킨 변화의 요인에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간지대는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뒤엎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가능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P. 69] 그렇게 할 때, 삶의 다음 단계에 들어서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여는 발단을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된다. 새로운 방향제시, 개인 성장, 자기 확신과 창조성, 이 네가지 요소들은 모두 우리가 일을 수행했던 방식과 그동안의 경험들을 버리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잠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통찰력과 추진력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기회의 양식들과 주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내생각 32) -> 중간지대에서 ‘새로운 방향제시’ ‘개인 성장’ ‘자기확신’ ‘창조성’ 이 네가지 요소들이 우리가 일의 수행방식을 버리게 한다면 전환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중간지대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내부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P. 70] 새로운 방향제시, 개인 성장, 자기 확신, 창조성을 통해 새로운 주제나 생각으로 삶이 분석되고 개조된다,

[P. 70] 어떤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자신만을 위한 삶은 그 자신뿐 아니라

관찰자까지도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 칼 융

[P. 73] 전환의 다섯 가지 기능 외에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여섯 번째 기능이 존재한다. 전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현실이 무너지면서 삶의 형식속에 갇혀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여 순수한 본래의 상태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P. 74] 모든 시작은 하나의 결말이다. 모든 시작은 어떤 것으로 귀결된다. -폴 발레리

[P. 75] 새롭게 하는 것은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전환은 항상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진 만큼 놓아버리게 한다. 

[P. 75] 우리가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전에 삶이 정해 놓은 종결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내생각 33) -> 전환이 일어나기 위해선 놓아버림의 종결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취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래된 것을 놓아버리고 비워 버려보자. 그때 비로소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될것이다.

[P. 75] 개인의 전 생애는 오로지 태어남의 과정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에 죽는 비극적 운명을 가졌을지라도

우리를 죽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P. 75-76] 변화 그 자체는 전환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변화는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발전적인 전환이라고 부르는 내적인 절차 속에서도 전환의 여섯가지 기능이 일어나다.

[P. 76] 내 경우에는 30대 후반,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해 왔던 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게 되면서 서서히 이런 종류의 전환기에 처해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생각 34) ->  내가 42살에 10년을 근무하던 대학을 사직했을 그때 이후 나 역시 윌리엄 브리지스의 심리적 전환기를 비슷하게 경험했다. 사직으로 인해 이미 물리적인 변화는 일어났지만 오래된 타성으로 나는 교수가 아닌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비정규직 교원의 불안함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때 나는 비로소 사직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전환이 일어나지 못하고 변화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중간지대의 행위였다. 그리고 그 중간지대는 아주 오래동안 나를 괴롭혔다. 전화하지 못한채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P. 77] 현실과 전환이 진행되는 ‘그 세계’는 처음에는 딱 들어맞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제한하고 속박하기 시작한다. 이런 방법들이 점점 구식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그것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고 그들을 있던 곳으로 되돌려놓으려고 애쓴다. 또 뭔가를 더할 수 있거나  다르게 만들 방법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을 들여 그런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왕의 말과 신하를 전부 모은다 하더라도 깨진 험프티를 다시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생각 35) -> 이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 무기력이다. 해도 해도 안되는 상태가 지속된다. 

[P. 77]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삶을 대비하는 일과 현실의 구체성에 싫증을 내고 스스로 끝을 내기도 한다.

(내생각 36) -> 변화후의 전환을 하지 못해 느끼는 무기력이 오랜기간 지속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끝을 내고 싶어 한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상승기에 있을 때의 사람은 그 상황을 빠져 나오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하락기의 사람은 상황을 빠져 나오고 싶어하는게 아니라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상황이 피해지지 않으면 그는 포기에 이르게 된다.


[P. 78] 변화는 그만의 이유로 일어난다. 하지만 변화로 인해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방향제시나 개발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줄곧 전환과 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놓아버리는 것이 결코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한다. 

[P. 78] 전환의 중심에 자리한 신비함과 마주쳤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환 속에 있을 때 삶이 우리에게 잡고 있던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간지대에 들어서서 ‘혼돈’이라고 부르는 순수한 에너지 상태에서 나오는 시간,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존재방식을 창조하거나 발견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P. 80] 삶은 순탄하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씨앗은 외벽을 파괴하고 나오지 않으면 자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P. 80] 비록 전환이 어떤 특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루어진 변화의 결과라 할지라도, 전환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전환은 그 자체가 의지를 갖고 있고 우리는 미리 알지 못한 채 전환을 겪게 된다.

[P. 81] 전환이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 이상임을 알게 된다면, 그 다른 곳은 전환의 여정이 가진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기능에 의해 이루어진다.

[P. 83] 각 인간의 삶은 그 자신에게 부여된 길이다.

아무도 완전하고 완벽할 수 없다.

미숙한 사람도, 지적인 사람도

각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

[P. 84] 전환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내생각 37) -> 윌리엄브리지스는 지속적으로 전환을 위해선 버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있다. 종결없이는 전환이 없다는 것이다. 

[P. 84]  성장, 개선, 변화 속에서만 진실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 앤 머로 린드머그

(내생각 38) ->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 개선, 변화가 있어야 안정될 수 있다. 정체된 삶이 안정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발전하고 있을 때 우리는 강한 안정감을 느낄 수가 있다. 

[P. 86]  나의 생각은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의 좌절로 기인한 결과였다. 꿈이 좌절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 87] 모든 사람의 상태는 사람이 만들어낸 질문에 상형문자로 된 해결책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 그것을 삶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다,

[P. 87] 경험은 부서지기 위한 거친 상형문자다.


4.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P. 89] 끝을 맺는 것은 시작하는 것과 같다.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시작한다.  - T. S. 엘리엇

[P. 96] 당신은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남자를 고르거나 직업 또는 이웃을 고르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것은 남자나 직업, 이웃이 아닌

당신의 인생이다. -제서민 웨스트-

[P. 96] 시간이 흐르면서 끊어진 것은 단지 관계가 아니라 관계를 연결해주는 희망, 공포, 꿈과 믿음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P. 101] 과거에 충실한 우리의 마음은 내일의 즐거움이

오로지 오늘 무엇을 이루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거부한다

파도의 아름다운 물결선은 앞서간 파도가 물러나 사라질때 드러난다.

-앙드레 지드-


[P. 102-103] 상실의 주요한 네가지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이탈 : 우리가 잃은 것으로부터의 분리

* 비 동일화 : 상실로 인해 오래된 정체성이 파괴되는 것

* 각성: 생각 없이 받아들인 현실이 상실로 인해 박탈되는 것

* 방향감각상실 : 우리가 가진 정체성과 함께 나눈 현실을 모두 잃은 결과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상실감

[P. 103] 심지어 언제가 중간지대로 옮겨가 다섯 번째 단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 단계인 ‘발견’은 새로운 인생, 새로운 정체성과 견해를 맞이하는 단계이다.

[P. 107] 죽음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 더 많아지는 일이다. - 토마스 만

[P. 109] 슬퍼할 시간이 부족한 자는 슬픔을 풀어버릴 시간도 부족하다. - 세익스피어

[P. 111] 혼란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 헨리 밀러

[P. 113]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났을 때 자동적으로 전환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미리 예정된 결과는 일을 좀 더 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전환을 맞게 된다. 결과가 없다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중간지대에서 해야 할 일의 하나이고 전환과 창조 사이에 연결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가끔 일이 잘되어 가는지 알 수 없을 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가엾게 생각했다.   

[P. 114-115] 비관주의는 모든 가치를 과거에 두고 ‘앞으로 좋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모든 가치는 예전의 방식에 있었어’ 라면서 불확실한 모든 것 들로부터 반동적 도피를 하려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모든 가치를 미래에 두고 불확실한 모든 것들로부터 진보적 도피를 할 것을 주장하며 ‘현재를 넘어서는 즉시 모든 것이 좋아질것야 이것은 내가 끊임 없이 나에게 말했던, 더 나은 운명을 맞이하는 일이야’ 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P. 115] 하지만 비관주의든 낙관주의든 이것은 모두 현재를 부정하고 도피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심하게 상처를 입었을때 필요한 의지처가 될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내생각 39) -> 과도한 비관주의 만큼 과도한 낙관주의가 위험한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둘 다 우리를 현재에서 멀어지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현재 내가 하는 일 지금 내가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그것이 나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P. 115] “희망이란 우리가 가는 길에 아주 좋은 동반자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서서히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헨리팩스 경  

(내생각 40) -> 희망이 우리를 잘못인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톡데일 파라독스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포로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는 스톡데일의 말을 우리 인생의 위기에서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P. 115] 시작의 기술은 위대하다. 하지만 마침의 기술은 더 위대하다.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P. 116] 죽음은 인생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엘리엇의 비명에 써있는 것처럼 죽음은 때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의미하는 끝은 오래된 것을 마감하고 인생의 새로운 한 장을 시작하게 한다.        


5. 우리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P. 117] 나이는 여유롭게 다가오지도, 빠르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황급히 이어진다. -진 리스

[P. 120] 변화는 지리적인 이동이나 고등학교 졸업 또는 부모의 이혼들을 가리킨다. 전환은 학생들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돌아보면 그들은 변화를 전환을 유발하고 표시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일이 생겼을 때 왜 전환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작은 변화에서 커다란 전환이 유발되는 것일까?

[P. 120] 왜 전환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금세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일까?

[P. 121] 어떤 책에서는 중년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지나 한 단계 더 나아가 ‘성인발전’ 이라는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내생각 41) -> 중년의 위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전환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성, 새로운 관점, 인내, 포용을 가져오게 되고 이런점으로 인해서 ‘성인발전’이라는 말이 생성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 121] 공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자신을 세우고

마흔 살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쉰 살에 하늘의 이치를 알고

예순 살에 모든 것이 편안하게 들리고

일흔 살에 무슨 행동을 해도 법도에 이긋나지 않았다.

(내생각 42) -> 마흔살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존재할까? 그는 아마 서른살에 자신을 세우는 작업에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중에는 마흔에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이도 있다.   

[P. 122] 전환은 그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고, 삶의 원동력 그 자체였다.

[P. 122] 비록 변화 자체가 그들을 난처하게 했을지라도 모든 변화가 중요한 전환들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몇몇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삶을 크게 상승시켰다.

[P. 122] 대부분 사람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변화들은 내적으로 거대한 방향조정과 재배치를 유발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 전환들은 변화가 계기가 되었지만, 결과는 자신이 삶에 대한 내적 발전의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내생각 43) -> 물리적 변화가 내적 전환을 모두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내적인 대오각성으로 물리적 변화가 없더라도 전환을 가져온 사람들은 커다란 비약을 하게 된다.

[P. 123] 사물은 성숙기를 넘으면 스스로 부패한다. - 노자

[P. 123] 전환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떤 면에 있어서 예전과 다르다는 것만을 깨닫게 하지 않는다. 전환을 겪은 사람들은 세상을 의미심장한 다른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P. 124] 부족 사회에서는 인생의 한 장과 그 다음 장 사이의 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었다. 이 의식은 부족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세상을 새롭고 어른스러운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P. 125] “우리가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진실을 허구로 만들어버리는 또 다른 진실은 항상 존재한다” -크리스토퍼 프라이-

[P. 127]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위기에 처했을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그곳까지 데려온 이전의 자신으로 물러났고,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데 실패했다, 위기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삶이 가져다준 선물이고 신호였다, 결국 그의 배는 파괴되었다

[P. 127-128] 하지만 오래된 지혜는 ‘발전’이 배움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가졌던 것을 던져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내생각 44) -> 여기서도 윌리엄 브리지스는 버림을 강조한다. 발전이 일어나려면 버림이 먼저이다. 

[P. 131] 자만은 몰락의 원인이 아니다. 단지 시간상 몰락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우리가 전환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좀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리고 욕실 거울에 써 붙여 놓는다. 그리고 일이 개선되기 시작할 때 기술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P. 131] 나는 내가 예상했던 목적에 맞추기 위해 업적의 완성을 늦추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점차 발견하고 목적을 키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조애나 필드

[P. 131] 전환은 오래된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과정이다.  끝과 시작의 사이에는 중간지대의 틈이 있어서 새로운 삶으로부터 오는 모든 혼돈이 흘러간다. 중간지대가 없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없다. 물론 전환은 단지 순환의 반쪽이고 존재하는 세상의 순환의 또 다른 반쪽이다.

[P. 131-132] 하나의 전환이 끝나는 시작과 그 다음 순환이 시작되는 종결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이 이 세상이다. 존재의 흐름이 교류하는 것은 세상과 현실의 연속 속으로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P. 132] 발전의 길은 이전의 우리를 놓아버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것을 찾았을때 따르는 피시테일링 코스이다. 제시간에 놓아버려야만 새로운 것이 된다. 이것이 전환의 방법이고 인생의 길 또는 방법이며 구체화되고 해방되고 축소하고 감소하는 흐름의 교류이다.

(내생각 45) -> 제시간에 놓아버리는 것을 할 수 있어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진다, 전환의 핵심은 결국은 놓아버림이다.

[P. 133]  삶의 기술을 익히고 싶은가, 아니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삶이란 기술을 모아놓을 수 있도록 축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P. 134] 무엇인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지.... - 코코 샤넬

[P. 134].  우리가 가장 완벽하게 살아 있을 때는 전환기에 있을 때이다. 

(내생각 46) -> 결국 우리는 매일 잃고 버리고 있을때 가장 완벽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누군가가 되기를 결정했을때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코코 샤넬의 말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인해 우리인격과 삶의 질이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는 이유임을 가르쳐준다. 포기하고 버릴수있을때 매일 매순간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지의 전환이 매순간 잏어날 수 있을때 우리는 전환과 성장을 만날 수 있다.

[P. 137] 놓아버리는 해동을 통해 과거는 그들에게 더욱 의미심장해 진다.  

[P. 137] 당신의 삶의 이야기에 표제를 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표제를 구분해야 한다면 그 이름도 지어야 한다. 표제를 지을 때는 그 당시 당신의 삶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P. 137-138] 표제를 지을때 고려해야 할 일반적인 질문들이 있다. 한가지는 당신의 인생에 얼마나 표제를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아홉 살짜리가 많은 표제를 가질 수도 있고, 일흔 살 노인이라도 평생 동안 너 댓 가지의 큰일들 밖에 없을 수도 있다 

[P. 144] 나의 삶의 어떤 영역에서, 나는 내가 항상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 '전환관리' 세미나에 참석한 한 참가자로부터

(내생각 47) -> 삶의 매순간 전환점에 서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삶은 충일해질 것이다. 전환은 늘 준비되어있고 그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오면 그는 바로 전환에 돌입할 수 있다. 중간지대를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중간지대의 무기력을 겪지 않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P. 145]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당신의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6. 결혼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P. 148] 결혼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최고의 기회이다. -조셉 바스

[P. 152] 결혼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별거는 탁월하게 작용했다.  - 리즈 스미스

[P. 160] 내가 봤을 때 결혼의 한 가지 이득은

당신이 파트너와 사랑에 빠졌을 때,

다시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주디스 바이어스트

[P. 164]  고통은 공허함을 낳는 요인이다.

고통은 시작될때 진정시키기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고통이 시작되는 때가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

[P. 165] 아름다움은 결점을 가리지 않고 결점은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한다. - 공자

[P. 166] 한 인간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모든 임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최후의 시험이자

증거인 것으로 다른 일들을 위한 준비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P. 167]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7. 여행을 끝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P. 168] 원형은 하천의 바닥과 같다.

물이 없어지면 말라버리고 말지만

어느 때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형은 오래된 물줄기와 같아서

삶의 물이 이곳을 따라 흐르며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든다.

물줄기가 오래될수록 수로는 깊어지면,

물은 잠시 없어졌다가도 조만간 다시 돌아온다.  - 칼 구스타프 융

[P. 168] 나는 결혼을 ‘여행’이라고 부르고 싶다,

[P. 168-169] 어떤 사람들은 진부한 표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별생각없이 비유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두가지 이유로 인간의 의식에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심오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뒤로 수많은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정신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둘째,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면서 여행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환의 모습을 뚜렷하게 포착한다.  

[P. 170] 여행은 마침내 하얀 고래와 마주치거나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때와 같은 상황에서 끝난다, 그 결말은 목표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목표는 내부의 어떤 곳을 향한 외부의 표현이며,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 변화가 내가 인용한 여행담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변화는 여행에 관한 설명들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역동적인 요소이며 그것은 신화 속에서도 나타난다.

[P. 171] 짐가방을 잃어버리는 순간 소풍은 ‘여행’이 되고 만다. -미상

[P. 172] 황무지는 죽음의 세계, 한계에 이른 생명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놓아버릴 시간이고 쥐고 있던 것을 뒤로하고 떠날 시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내생각 48) -> 황무지가 한계에 이른 생명을 비유할 때 그때가 바로 놓아버리고 떠나야 사간이라고 한것은 우리가 인생의 사막이라는 막막한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놓아버리는 행위를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을 다시 말하고 있다. 윌리엄브리지스는 계속 ‘놓아버림’을 강조한다.

[P. 172] 당신의 삶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지라도 당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보호의 목소리는 당신의 삶을 완전히 알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P. 172-173] 이제 막 대피소 가까이 왔다. 만일 대피소에 무사히 들어가고 태풍이 지나갔다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당신은 가야만 했을 ‘행운의 길’을 놓쳐버리고 그 대신 ‘불운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행’이 바로 구원의 손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P. 174] 어떤 일을 끝내고 상실감을 느끼고, 놓아버린 후에 우리는 항상 낯선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간지대는 결코 지도상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거울안 혹은 토끼 굴이나 옷장 뒤편에 존재한다.

(내생각 49) -> 중간지대가 지도에 없기 때문에 그곳이 무서운 곳이 된다. 예상되지 않은 상ㅌ이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고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므로 낭패를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노력에도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점차 무기력을 체험한다.      

[P. 175]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혜가 가치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할만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혜가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P. 176] 일이 잘풀리기 전에는 역경이 절정에 달하기 마련이다. 어느날 당신이 마녀의 부엌에서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당신을 약간 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수가 없지만 당신은 물통을 들어 마녀에게 부어버렸다. 그러자 마녀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당신은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대답은 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눈부신 발전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떠오른 것’이다. 

(내생각 50) -> 우리가 무기력한 상황을 탈출할수 있는 방법이 의외로 예기치 않던 곳에 존재할 수 있다. 우리를 그토록 막고 있던 것이 우리의 행동하지 않음에 있을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P. 180] 이 모든 모험이 끝난 후 당신 안에 그 힘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사가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작 당신이었다. 당신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답은 발뒤꿈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깐!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여정은 모두 불필요한 것이었단 말인가

[P. 181]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은 지리적으로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잊혀진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는 힘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여행이다.

- 조셉 캠벨

[P. 182] 도로시는 걸어왔던 길을 외면함으로써 지혜를 얻게 되었다. 도로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간지대의 가능성이 풍부한 볼모지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곳에서 도로시는 발전을 위해 다음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지혜는 항상 순례자에게 똑바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고 의도한 방향으로 기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전환의 길은 이와 반대이다,

[P. 183] 변화는 신화속에서 이루어지든, 혹은  개인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이루어지든 간에 전환이 진정으로 가야할 목적지이다.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는 미스터리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상태와 또 다른 상태 사이 혹은 하나의 삶의 양상과 그 다음 삶의 양상 사이의 경계 근처인 변방과 같은 상태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P. 183] 반드시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P. 184] 우리가 길(가는 길로서의 길)을 따라 간다고 해도 여정을 알길(방법으로서의 길)이 없다. 우리는 같은 곳을 행해 가고 있다. 우리 모두 변화의 길, 삶을 새롭게 만드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각각 고유하고 반복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P. 186]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는 과정은 커다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P. 187] 전환의 방법과 삶의 여행 기술이 별개의 것이라면, 그래서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을 모방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방은 언제나 죽은 것을 창조해 낸다. 모방은 본래의 뜻을 단순화시키고 실제로 중간지대에 놓인 바로 그 사람들이 진짜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P. 188] 개인적인 위기를 갖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는 중대한 위기로 생각하면서 잠재력을 깨달아야 하며, 여정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P. 188] 전환을 일으키는 여행은 언제나 목적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목적지가 따라가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당신이 시작한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그 점이 그들에게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P. 189]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행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여행이지 그들의 여행은 아니다.

[P. 189-190] 나에게 도움되었던 여정에 관한 세 가지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각 여정은 상상했던 곳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을 갖고 돌아와서 찾고 있던 것을 이곳에서 변형하여 보여줄 때 끝나는 왕복여행이다.

둘째. 여정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삶의 전체에서부터 전환을 이루는 매 순간이 모두 여정을 경험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것은 목적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길이다.


8. 나의 천직을 찾아내다
[P. 191]  꼭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 샤롯 퍼킨스 길먼

[P. 193] 그러나 결국 구불 구불하고 전환점이 많은, 가는 길로서의 길을 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때로는 생각없이 살아가는 와중에 삶의 목표를 성취하거나 이익을 얻게 된다.

[P. 193] 식물을 기르는 것처럼 삶을 대해야 한다.

[P. 193] 인생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한 논리적인 방법으로 재연할 수 없는, 부패한 꿈과 무익한 노력의 거름으로부터 자라고 있다,  

[P. 196] 경력을 개발하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이지 인생자체는 아니다. 기회를 찾고 자신을 선전하고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회상을 통해 당신의 직업으로 확인된 길을 찾기 위해 이것도 시도해보고 저기로도 한번 가보라는 내면의 소리에 부응하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면 기회를 잡게 된다. 

[P. 199]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 -존 도스 파소

[P. 201]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P. 201] 우리는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사람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이웃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것은 사람도 직업도 이웃도 아닌 인생이다. - 제서민 웨스트

[P. 201] 우리는 길을 정확하게 따라갈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길이 없다. 그저 땅의 윤곽을 따라 걷는 것이다. 땅이 생긴 것에 따라 왼쪽으로 돌고 다른 곳에서는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논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P. 203] 인생으로 들어가는 문은 대개 우리 뒤에서 열리고

우리를 뒤로 잡아끄는 손은 우리의  앞쪽에 있다. -조지 맥도널드

[P. 207] 내경험상, 명확하지 않더라도 모든 성공적인 변화는 일이 익숙하게 진행되었던 대로 잔행되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과 대부분 실패한 변화는 끝을 잘 마무리 하지 못한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변화를 원할 때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전환기에 있는 사람은 연이은 변화에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에 대한 진실한 동정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변화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이 변화 체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P. 208]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마라. 작은 계획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없다, -다니엘 H 번햄

[P. 209] 이카루스의 날개가 햇볕에 녹기 시작할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 211] 타고난 일을 갖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일과 도구는 항상 존재한다. -제임스 러셀 로웰

[P. 216]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소유할 때

당신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P. 217] 나는 의미있는 일을 찾고 일에서 삶을 지탱해 가기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걸었다. 물러서고 패배한 시간은 보다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길과 같았다. 내가 뒤에 남겨놓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진퇴양난에 빠지거나 길을 잃었던 순간이 여정의 다음 부분을 향해 방향을 잡기 위해 찾아야 했던 중간지대였음을 알았다,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인생의 다음 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리고 가야 할 짐이었다. 

[P. 217] 에머슨은 인생은 상형문자라고 이야기했다. 인생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9. 새로운 전환점에 서다

[P. 218-219] 중간지대는 변화의 3단계중 두 번째 단계이다. 과거의 인생이 사라진 후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고 적응하기까지의 중간 시간이다. 끝과 시작은 놓아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등 무엇을 한다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중간지대에서는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 두 변화의 상태는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중간지대는 인생에 있어 아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과 같다, 중간지대는 더러운 것을 지우개로 지우고 나서 남게 되는 회색의 희미한 자국처럼 인생에 넓게 펼쳐진 무색의 공허한 띠와 같은 것이다. 

[P. 219] 옥수수는 밤에 자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P. 219-220]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중간지대를 설명하기 힘들다. 중간지대는 그 시기가 끝나기 전에는 인생의 따스함과 의미를 주지 않는 길고 추운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동면하는 계절이다. 또한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를 잇는 색다른 무인지대이다. 

[P. 220] 중간지대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발산되는 혼란스런 신호를 받는 시기다.  

[P. 220] 중간지대에서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진다, 하루가 마흔 시간 같다, 그와 동시에 어느 몇 주간은 몇 가지 기억만을 남기고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다.  

거의 40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 224] 겁쟁이도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지만,

용감한 자만이 긴장감을 견뎌낸다. - 미그논 맥러린

[P. 229] 삶에 죄가 있다면, 그 죄목은 다른 삶을 갈구하고

냉혹하게 큰 삶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절망하지 않은 것이다, - 알베르 까뮈

[P. 234] 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다지 자신감을 되찾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류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진취적이었다 나는 생각만 하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P. 234]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살고 가치있는 삶을 산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말이다. 

[P. 241] 세상은 그 어느 것보다도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험은

너무나 많은 오랜 경험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은 그 어떤 오래된 생각과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은 진짜 새로운 경험과는 함께할 수 없다.

-D. H. 로렌스-

[P. 246] 바다에는 안내 표지판이 없다. -비타 색빌 웨스트

[P. 247-248] 선택으로는 선택하지 않았던 부분을 평가할 수 없다. 동전의 반대면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기 위해 몇 백 번이나 동전을 던질 수 없기 때문에 반대 면이란 것은 없다. 단지 하나의 인생이 있을 뿐이고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시도라는 것도 있을수 없다. 옳다는 것은 이미 옳은 것과 틀린 것을 내포하기 때문에 인생이란 자체가 이미 옳고 그른 인생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 또한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고 다른 인생이 좋은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살수 없으므로 옳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선택한 갈과 선택에 의해 창조된 인생이 있을 뿐이다.

  

[P. 249] 미리 인식한 목적에 맞는 성공을 서서히 만들어 갈 때가 아니라

알지 못했던 목적을 차츰 발견하고 키워 나갈 때

인생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안나 필드  

[P. 250] 상상력을 올바로 사용하면 대단히 혼란스럽고,

이상한 언어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미래에 대해 내가 할 일은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창조는 미래를 예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유산의 산물이 현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나무의 가지가 하나하나 앞으로 늘어뜨려지듯

미래가 활짝 펼쳐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래가 가까워지면 삶은 멈춘다. 그러나 근심하지 마라- 생떽쥐베리

[P. 252] 인생은 어떤 일이

다음에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죽음이 조금씩 다가온다, - 아그네스 드 밀

[P. 253] 나는 이렇게 느리게 깨우쳐 나간다. 아흔 살이 된다 해도 변화라는 것은 자신의 길을 따라 되는대로 흘러가다가 중간지대를 열고 들어가 현재의 그늘에서 변화가 나타날 때 새로운 형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임을 처음으로 알게 될 것이다.

10 나이를 먹으면 삶의 무대도 넓어진다.

[P. 254] 나는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 젊음을 온전히 즐겼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영혼뿐이다.

젊음의 영혼은 모험을 즐기며 혼돈 속에 사는 젊은이보다

평온하게 사는 나이 든 사람에게 잘 깃들 수 있다. - 조지 산타야나

[P. 258] 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세상을 새로 만들 힘을 주었지만, 이것은 또한 우리 사회가 변화의 인간적 측면을 다루는데 있어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P. 259] 세상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배운 방법은 수동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다. 처음 알게 되었다가 차츰 예전의 실제를 실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알았던 것이나, 알게 된 것을 버리는 과정에서 지식이 축적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지대에서는 더더욱 현실을 혼란스럽고 이상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단계를 지나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후 스스로의 삶은 과거와 같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다. 내가 맞긴 한데 과거의 내가 아닌 것이다.

[P. 259] 단순히 습득한 지식과 구별하기 위해 지혜라고 부르는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깊이 있는 삶의 변화를 한번이라도 경험하거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번 경험하는 길밖에 없다. 지혜를 습득하고 난 후에야 과거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P. 261]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종결만이 아니다. 흔히 중간지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감은 종결만큼이나 두려움을 주는데 이는 중간 지대가 어린 시절 홀로 버려졌을 때 느꼈던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P. 261]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는 언제나 중간지대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다고 느끼듯이, 무엇인가가 진짜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P. 261-262]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시작이 혼란스러운 중간지대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대신 자신이나 세계를 변화시킬 행동의 전체적인 순서를 계획하여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면서 의지에 따라 행동하여 새로운 시작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의 계획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비통하게 머리를 흔들며,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계획을 수행하는 법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변화가 아닌 전환을 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P. 262] 흔히 변화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변화는 어렵다. 사실 존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전환을 피하기 위해 개인이나 조직 모두 변화를 이용한다.

[P. 264]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지혜를 전달해주는 사람과 그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

[P. 266-267] "우리를 겁먹게 하는 모든 것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는 무기력한 어떤 것이다."  

[P. 267] 문제, 결점, 열등감은 온전히 나쁜 것만이 아니다, 이것이 없이는 개발과 성숙에 이를 수 없으므로 사람을 구해주는 힘이 있는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지혜로운 이야기를 살펴보면 눈에 띄지 않고 무시당하던 어린아이가 마침내 승리하거나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승리는 패배자에 의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방법으로, 또는 처음에는 실수로 보였던 것에 의해 성취되어 항상 뒷문으로 들어온다.

[P. 267]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우리 자신 같아진다. - 로버트 앤서니

[P. 272] 다시 한번 그녀는 나를 지도해 주는 스승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스승이 되었다,  

[p. 278] 여행의 은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인생의 매 순간마다 짐을 꾸리고, 우리의 시도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무엇인가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사실 모든 여행은 순례다. .... 모든 여행은 또한 출장이다.

[P. 278]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했든지, 어디가 종착지이든지 여행의 진짜 방향은 깊이 있는 현실을 향한다.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방향은 혼란스러워진다, 모든 각성은 작은 각성이었고, 베일 너머 잠시 넘겨다본 것뿐이고, 갑자기 투명해진 세계를 잠시 경험한 것이자,

[p. 278-279 그러나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의 움직임이 끝나 새로운 움직임이 됨으로써 최종 종착지에 이르게 되므로 중요한 것이다,

 ‘자연적인 진행은 하나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삶이 진행되는 과정이다’라는 말로 전환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좋겠다.

11. 인생의 새장을 열다.

[P. 280] 삶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다음 순간에 무엇이 올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때는 조금씩 죽음이 시작되는 때이다, -아그네스 드 밀

[P. 280-281] 무생물은 시작하고 나서 멈추어버리지만, 자라고 성장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는 생물에게는 끝이 먼저 오고 시작이 다음에 온다. 이는 우리가 보금자리를 떠나 세계로 들어가는 생명 탄생의 형태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음 너머로 들어가는 죽음이 형태이다. 이는 전환을 거쳐 다시 새로워지는 형태로 변화와 재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신화속 여행의 형태이기도 하다.

[P. 281] 전환을 거쳐 다음에 오는 것은 전에 있었던 것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갖는다, 전환을 통해 다음에 오는 것이 앞에 있는 것을 자동적으로 이기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다. 새로운 봄이 겨울을 대체하고, 새해가 지난 해를 대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여기에 적대감은 없다. 단지 계승만이 있을뿐이다, 전환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계승은 졔속된다.

[P. 282] 나는 미래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미래가 내 삶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과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간은 내부적으로 그 모든 문제와 씨름하며 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놀랍도록 풍성했다.

[P. 283-284] 나는 우연히 인도의 철학자 타고르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말이 혀 위에서 사라질 때, 새로운 노래가 가슴으로부터 튀어나온다. 그리고 과거의 길이 없어진 곳에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새나라가 나타난다.” 그 글은 다시 한번 확신을 주었다,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것이다.

[P. 289] ‘마음을 따르라’는 것이 ‘생각을 멈춰라’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매우 다르다. 마음을 멈추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이를 갈구하는 것이다. 해답은 행동하기 위한 올바른 방ㅂ버을 찾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갈길을 발견하는 데서 온다.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방향을 찾는 메커니즘을 켜두면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시간이 없다. 그 대신 앞서 종결의 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P. 291]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풍자이다.

경전에 나와 있는 상징적인 삶의 모습처럼. -존 키츠

[P. 295] 미래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움직임의 형태로 또는 우리가 곁눈질로 볼 수 있는 양상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미래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또 예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삶에서 우리를 이 지점까지 데리고 온 오랜 방식을 놓아버려야 한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초조하게 찾아 헤매기 전까지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P. 295] 미래는 또한 과거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예시가 담겨있고 미래는 그 예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P. 296] 노르웨이의 동화에서 영웅은 세가지 신호가 교차하는 곳에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한 그는 무사히 귀환할 것이다.”

“이 길을 여행한 그는 돌아오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한 그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물론 그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Epilogue-전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시간


[P. 298]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즉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임을 믿는 것, 그것이 천재성이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라 그것이 우주의 감각이 될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P. 303] 우리의 길을 가는 한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고 있다. 

[P. 303] 삶은 상상 속의 골대를 향해 가면서 상대편에 대항해 땅을 차지하려는 풋볼 경기가 아니다. 전 지역을 다 차지했다고 해서 점수를 얻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내에 상대편과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삶은 오히려 야구 경기와 더 비슷하다, 야구경기에서 베이스를 모두 돌아야만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타임’은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감독하는 것이다,

[P. 304] 삶의 움직임은 또한 순환적이다. 달리기로 모든 베이스를 돌아야 하지만, 선을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므로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상대방에 대해 힘을 사용하는 것도,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순환은 다른 힘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구는 투석기에서 돌아가는 바위처럼 돌면서 전진하지만 태양은 옆에서 끌어당긴다. 서로 저항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차원에서의 끌림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단지 말고 당기기가 아니라 호를 그리며 다시 돌아올 때 까지 구부러진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홈에 도착하게 된다.

[P. 307] 우리가 일생을 통해 이루는 것은 서로 부딪치면서 ‘세상’이라고 알고 있는 또 다른 안전한 존재를 상실하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시작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삶이 상실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내 자신이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3. 내가 저자라면


북리뷰를 위해 “How to live :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라는 제목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책제목에서 무척 흥분되었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할지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해야만 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책의 원제목은 “The way of Transition” 이었는데 역서 제목을  “How to live :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로 한 것을 보면 출판사나 역자가 고심을 많이 한듯하다. 원제가 “How to live”인줄 알았는데 “The way of Transition”여서 의외였다. “The way of Transition”이면 “Transition의 방법(혹은 길)”이다. 다소 평이한 제목인 듯하다.  그런데 transition이라는 용어를 저자가 쓴 것을 보니 단순한 변화는 아닌 것 같았다, 원래 transition이라는 용어는 사전에는 변화, 변환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의미는 A->B->C에서 A가 C로 갈 때 B를 거쳐서 가는 것을 수학에서 말하는 용어가 transition이다. 그래서 천이, 추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으니 중간지대를 거처 변환되어가는 것을 저자가 transition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저자는 그것을 전환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과 조직에서 '전환 방법'을 강의하는 강연가이라 누구보다 변화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가 병에 걸리고 결국 죽음으로 이별을 하는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결코 변환이 쉽지 않음을 자신의 사례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이 실제 닥쳤을 때 쉽게 적용되지 않음을 자신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쓴 책인 듯하다. 우리는 변화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고, 숱한 자기계발서들이 변화이론에 대해서는 언급 하고 있다. 그러나 윌리엄 브리지스는  'transition'이라는 변화와 조금 다른 개념인 '전환'에 대한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변화가 어떤 상황을 바꾸는 것이라면, 전환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변환과 전환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변환이 아니라 전환이다.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전환이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리고 다시 잡게 되는 그 중간에 이전의 방식도, 그리고 새로운 방식도 통하지 않는 창조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전 것의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 이 세가지 과정이 전환이다. 전환은 변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는 말로 변환과 전환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고, 전환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말한다.  사람들이 변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급하게 뭔가를 하려고 하거나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고 제대로 된 변환을 하려면 기존의 습관과 관습을 버려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제대로 된 끝'이 있어야 제대로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변환의 3단계 중 첫 단계로 '시작'이 아니라 '끝'을 놓고 있다. 변환의 3단계는 끝, 중립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이다. 

중간지대, 중립지대, 림보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전환이 시작되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었고 그건 내 경우에도 적중했다. 나는 내가 림보상태였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중간지대는 5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저항은 격렬했고, 나는 초죽음 상태가 되어갔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 나를 과거에 머물러 두게 하려 하는 것임을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었으나 윌리엄의 주장을 통해 내가 머문 그곳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윌리엄 브리지스는 많은 강연을 하고 있는 변환, 전환 전문가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완벽한 변화에 대한 가르침이나 계몽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나약성을 드러내는 솔직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아내와의 정신적 교류를 쓴 것에서 나는 그들 부부가 참 아름다운 부부라고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담의사와의 불륜을 알고 그 의사가 파면 당하는 일을 겪으면서 저자가 아내에 대해 치루어야 한 감정적 전환 과정을 읽으면서 저자의 역설적인 연약성과 강인함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측은해졌다. 또한 변화와 전환을 통과해가면서 자신이 배운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저자의 깊은 고뇌와 용기를 만날 수 있었다. 아내의 부정을 알았을 때의 심리적 변화와 그것을 계기로 하여 아내를 마음으로부터 놓기 시작했음을 고백하는 저자에게서 강한척하지 않는 신사를 보았다.   그는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으로 느껴졌고, 적어도 책을 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 같진 않았다. 그는 다른 강연가들처럼 크게 소리치며 외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완벽한 사람인양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용조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작은 소리는 그 어떤 웅변이나 외침보다도 강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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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1.01.10 09:43:31 *.42.252.67
꼼꼼하고 분석적인 리뷰를 하셨네요.
50개의 내 생각....... 내 책쓰기에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을 정리 하는 일 해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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