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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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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0일 09시 37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Howard Earl Gardner) 는 현재 68세로 현존하는 작가이다. 1947 711일 태생인 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어린 시절을 스크랜턴 시에서 독서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소년으로 자라났다. 가드너는 전기와 역사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에릭 에리슨의 심리분석적인 역사와 전기를 읽고는 ‘지적인 고향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이 그를 사회과학과 행동과학 분야로 눈을 돌리게 했다. 1960년부터 인간이 지닌 재능의 본질에 관심을 갖고 예술분야의 천재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고, 1965년 하버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뒤이어 재능과 두뇌의 관련성 탐구로 일가를 이루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역사와 전기물에 대한 흥미를 제쳐놓고, 경험적인 학문인 발달 심리학의 연구 방법과 기법을 터득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70년 그는 비범한 인물을 가능하게 한 사회심리 및 문화적 조건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쏟아, 마침내 그의 학문적 결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중지능 이론 제안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인간 지능에 관해 평생을 연구해온 학자다. 1971년에 하버드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하며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교수이자, 보스턴 의과 대학의 신경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가 되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의 예술가적인 생각과 창의성에 대해 연구하던 ’Project Zero' 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가드너는 1975년도부터 다중지능과 관련된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교육체계를 가드너 식으로 바꾸었으며, 그의 이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소와 단체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가드너의 위대한 연구 업적

 

가드너는 인간의 능력을 IQ 로 가늠하는 것에 철저히 반대를 했다. IQ는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며, 그 기본 가정 자체가 오류덩어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굳이 IQ 의 몇 가지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것이 논리 수학적 사고 능력의 일부를 측정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 으로 이미 필명을 크게 날리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자 교수로 있다. 이러한 다중지능에는 음악지능, 논리 수확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대인관계 지능, 신체 운동기능, 자아지능, 그리고 최근에 주장한 자연 친화지능과 마지막 실존지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실존 지능은 아직 널리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저서들을 살펴보았다. <열정과 기질>이 전형적인 창조적 인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책이라면 <교육 받지 않은 마음> 에서는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질을 갖추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교과과정을 따라가거나 학습능력을 습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 다루었다. <열정과 기질>, < 교육받지 않은 마음> 에서 동시에 추구했던 명확한 연구 방향들이 집합되어 <통찰과 포용>  책이 탄생되었다. 그 밖에 <Good Work> 에서는 훌륭한 전문인이 되는 것의 중요성과 해당 분야의 전문 직업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체인징 마인드> 는 마음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들의 사례제시와 변화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하워드는 이런 다양한 저서를 통해 전문적 학술 연구를 일반인 대상으로 쉽게 알려 주고자 하고 있다.

 

그는 마음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여 총 18권의 책과 수백 편의 학술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로인해 그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 맥아더 펠로우십을 받았고 1990년에는 미국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았다. 또한 2005년 포린폴리시지 ‘세계 100대 지성’ 에 선정되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 20인’에 가드너가 2위로 선정 되었다. 그는 세계 26개의 대학(불가리아, 칠레, 그리스 이스라엘, 이태리 등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받은 명예학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7 3월 한양대에서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왔다. 그는 “학자로서의 삶에 있어서 경이로움은 앞으로 다른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배움에 대한 그의 학자다운 관심과 열정, 호기심이 담긴 말이다. ‘창조성’, ‘리더쉽’,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 ‘마음의 변화’ 등 다양한 그의 호기심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 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시대적 화두이자 가장 경쟁력 있는 인간 특질은 다름 아닌 창조성이다.[5]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며 창조성의 중요성을 갈파했다.[5]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외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다.[7]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8]

 

10년 주기론’은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9]

 

들어가는 글 :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지배한 실험정신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13]

 

내가 궁금했던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서로 다른 지능을 대표하는 몇 명의 인물을 비교하고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18]

 

나는 내가 읽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을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19]

 

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장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나는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두 번째 목표는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마지막 목표는 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활기에 넘쳤던 시대, 즉 내가 ‘현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관해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36,37]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38]

 

이 분석틀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진다. 창조적인 인물, 창조적인 행위의 대상이나 작업(), 그리고 창조적인 인물에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38]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40]

 

시대를 통틀어 프로이트만큼 전인미답의 영역을 고독하게 개척했던 탐구자는 거의 없었다.[41]

 

아인슈타인은 제1원리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설명 원리를 찾고자 했다.[41]

 

피카소는 일찍이 눈부신 솜씨를 발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된 ‘신동’에 대한 훌륭한 연구 대상이다.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42]

 

거의 모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이 공동 작업의 소산이므로 그의 창조 활동을 연구하면, 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고 그 성과를 비평가들이 검토하는 과정에 스며있는 정치적인 요소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43]

 

하나의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기꺼이 이주하는 것은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장들 역시 다양한 문화에 흠뻑 젖는 것이 필요하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엘리엇은 다른 누구보다도 현대의 창조적인 인물이 지니는 경계성(marginality)을 고려하게 하는 인물이다.[43]

 

그레이엄은 이전 시기에 여성에게 부과된 여러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기만의 예술 형식을 창조했고,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자신의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44]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는 소모적인 대결과 비열한 복종, 그리고 폭력에 대한 호소 없이 귀중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도를 찾는다. 간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데, 좀 더 인상적인 사실은 몸소 용기 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귀감이 되었다는 점이다.[46]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 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48,49]

 

최근 프랑스의 혁신적인 이론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역사적 시대는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보통은 무의식적인) 가설들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고 주장했다.[49]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혁명적 시대의 특징으로서, 그 도전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이다.[55]

 

2장 창조성의 연구방법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였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59]

 

길포드의 도전적인 시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상당한 논쟁과 실험을 거친 후에 다음 세 가지 결론에 도전했다. 첫째, 창조성은 지능과 다르다는 점이다. 창조성과 지능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지능이 우수하지 않아도 창조성이 풍부한 사람이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둘째, 창조성 검사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종이 시험(paper-and-pencil test)으로 창조성을 검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소 파멸적인(devastating) 진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창조성 검사는 시사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아직 그 유효성을 인정 받지는 못한 상태이다.[59,60]

 

우선 무의식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창조적인 행동의 원동력과 의미는 창조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66]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67]

 

스키너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68]

 

사회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는 일련의 탁월한 실험을 통해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68]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 상태(flow state) 혹은 몰입 경험(flow experience)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 된 경험(intrinsically motivating experience)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 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69]

 

나의 접근법은 네 가지의 독립된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구성적 주제로서 연구의 길잡이가 될 뿐만 아니라 개별 사례 연구를 정식화하는 기본 원리를 제공한다. 둘째는 구성적 틀로서 많은 훌륭한 동료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도출한 학제적인 분석틀을 전제하고 있다. 세째는 경험적 조사 문제로서 경험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 명확한 해명을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새로 발견한 주제는 개별 사례 연구를 수행하면서 처음엔 연구 의제가 아니었던 것이 새로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들이다.[72,73]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78]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79]

 

공공연히 권위에 도전하든 그렇지 않든,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가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80]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83]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84]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84]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84]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로 하고, 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인 지원도 필요로 한다.[97]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98]

 

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장 지그문트 프로이드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생각하는 <꿈의 해석>이 출간된 후에야,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이론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터이고, 어쩌면 그들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105]

 

아들의 재능을 굳게 믿고 있는 아버지(“내 아들의 발가락이 내 머리보다 영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108]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학도가 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108]

 

프로이트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의학 학위를 받을 때까지 8년 동안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 그는 성경, 고대의 고전, 독일어나 영어로 출판된 셰익스피어 작품,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레싱, 괴테, 실러 등 다양하고 폭 넓은 독서를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고, 세르반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 미술과 연극을 좋아해서 자주 전시회나 극장에 들렀고, 자신이 본 작품을 날카롭게 비평했다.[108,109]

 

젊은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 였다.[110]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했다. ,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111]

 

하지만 히스테리 환자가 아닌 환자도 최면 상태에서는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는 샤르코의 실험 결과는 프로이트에게 새로운 사실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적어도 몇몇 신체증상은 완전히 심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또한 이러한 환자들이 최면상태에서 행한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무의식의 강력한 작용에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15,116]

 

이 대화 치료법은 말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하는 것이다.[119]

 

강력한 정서를 마치 물의 흐름을 막아놓은 댐처럼 막아버리면 히스테리 증상이 생기는데, 이 때 증상은 정서를 억누르지 않았을 경우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치료는 카타르시스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억제된 에너지를 발산시켜 증상을 제거하려고 했다.[120]

 

대담하게도 프로이트는 이렇게 단언했다. “어떤 원인이나 증상을 출발점으로 삼든, 종국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적 체험이다.[121]

 

<정신분석학 운동의 역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다른 혁신가들도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면,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127]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 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129]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130]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131]

 

모든 심리 기제는 신경의 연결과 에너지 상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프로이트가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잇는 마음의 기본 법칙(예를 들어, 뉴런 양()의 줄어드는 경향)을 기술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뉴턴적인 관점을 갖는다고 여겨졌다.[134]

 

창조적인 인물들은 근본적인 비약을 이루기 전에,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언어를 믿을 만한 친구에게 시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자기가 아주 미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136]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137]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중략)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140]

 

꿈 분석과 자기분석을 통해 그는 어린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강한 성욕(육체적인 쾌락뿐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추구)을 갖는다고 확신했다.[142]

 

프로이트는 기억 조직을 자세하게 탐구하면서 새로운 기반을 닦았다. 기억은 그 자체로는 무의식적이지만, 꿈은 무의식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꿈의 동인은 무의식에서 생기며, 꿈에는 무의식적 소원이 잠복해 있다.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 형성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그는 모든 신경증 증상을 무의식의 소원 성취로 간주해야 한다고 단언한다.[144]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145]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155]

 

프로이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다.[165]

 

4장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원한 아이

 

아인슈타인은 아주 까다로운 물음을 제기해 놓고 그것에 대해 골몰하곤 했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을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168]

 

물리학자 라바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171]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충동적인 반발이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173]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뉴턴의 ‘절대적’ 역학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을 때도, 가령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경우에도 이런 상대성 원리가 유효하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점이다.[183]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 위치는 명백히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간계를 표현하지 않는 용어로는 물체의 위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공간에는 어떤 이정표도 없다. 공간의 어느 한 구역은 다른 모든 구역과 똑같다.” – 맥스웰[184]

 

올림피아 아카데미 성원들은 함께 도보 여행이나 캠핑을 떠났고 수영을 했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서로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유쾌한 농담을 나누었고 서로의 열망과 두려움을 얘기했다.[192]

 

아인슈타인은 이론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았으며,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한다.[193]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194,195]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 속에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지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내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와 근육 감각적인 요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196]

 

"나 자신과 나의 사고 방법에 관해 살펴보노라면, 공상하는 재능이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하는 재능보다 나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196]

 

실제로 그의 혁신적인 업적은 공간적 이미지와 수학 공식, 경험 현상 그리고 기본적인 철학 주제를 통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립 프랭크가 지적한 대로 아인슈타인은 자기 생각을 다양한 표상 방법을 통해 나타내는 일을 즐겼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97]

 

권위에 반발하는 기질을 타고 난 아인슈타인은 특히 젊은 시절에는 윗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는 가장 야심적인 도전 앞에서 몸을 사리는 과학자들에 대한 경멸감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198]

 

1900년이 지나고 얼마 후에…… 나는 기지의 사실을 토대로 추론을 통해 참된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더 오랫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오직 보편적인 공식(원리)을 발견했을 때만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209]

 

아인슈타인의 도약은 물리학적 분석의 여러 요소를 통합하려고 했고 낡은 사례와 원리를 좀더 광범위한 이론틀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는 고전적인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우리가 시간과 공관,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다.[211]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216]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230]

 

탁월한 젊은 과학자가 중년과 만년에도 계속해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체계가 느슨하고 발전 방향이 다양한 분야, 가령 사회과학처럼 아직도 발전 도상에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매우 중요한 발견을 이룬 다음에 남은 생애 동안 그 발견에 따른 지적 자본으로 연구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이다.[234]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236]

 

아인슈타인은 겉으로 보면 모순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젊은이와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이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여 준다.[238]

 

간주곡 1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모두 위대한 도약의 시기에 고립된 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론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받았다. 또한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245]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이 유년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현대에 대한 이 책의 연구에 적절한 면이 있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의 사건을 성년의 감정과 인격을 좌우하는 주된 추진력으로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중시해서 아이들이 물리학에 대한 직관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246]

 

깊은 수준에서는 유년기와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247]

 

5장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252]

 

오랜 친구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254]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집요한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다양한 화면 구성을 시도하고 똑 같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그렸으며, 호소력 짙은 극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았다.[258]

 

내가 보기에 이런 실험적인 성향이 생긴 이유는 좀더 내생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의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서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259]

 

피카소는 아동 전시회에 관해 다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263]

 

피카소는 일종의 결산을 의미하는 작품을 캔버스에 그렸다. 이 경우엔 캔버스의 크기도 커졌고, 사전 준비 과정도 길어졌으며, 밑그림과 스케치 역시 훨씬 많이 그렸다.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쳤다.[273]

 

피카소의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 하나의 정점이자 선취(anticipation)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이전에 보았던 것, 그리고 최근까지 작업해 왔던 것을 훌륭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생」은 이 재능 있는 스페인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상징이자 징후이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277]

 

피카소에겐 현재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을 막는 무언가가, 아마도 어린 시절에 형식을 해체하도록 했던 것과 동일한 충동일 터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278]

 

초상화가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자 피카소는 세기의 농담이라고 할 만한 유명한 말로 대꾸했다고 한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어. 결국은 스타인이 저 그림을 닮게 될 테니까.[279]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284]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287]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 피카소와 나는 당시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일 …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리들한테는 참으로 즐거웠던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 받았다. …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 우리는 서로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조르쥬 브라크[290]

 

두 화가는 새로운 시도에 나서게끔 서로를 자극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의 엄격한 태도가 없었다면 지나치게 왕성한 창작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터이고, 브라크 역시 피카소의 창조적인 사례와 자극이 없었다면 온갖 종류의 대상과 시각 요소를 작품에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295]

 

아무리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도, 서로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고독의 시간은 친밀한 어울림의 시간 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302]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307]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309]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313]

 

“내 그림은 탐구다. …이 탐구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내가 번호를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실험을 하고, 여기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두었다. 이런 점을 고맙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예술가의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작업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과학이 존재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과학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터다. 창조적인 인물을 탐구해서 인간 일반에 관해 알고자 하는 그런 과학이다.[313]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317]

 

“정신적 가치가 삶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토대인 예술가들은 인간성과 문명의 가장 숭고한 가치가 위기에 처한 갈등 상황에 대해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일 수도 없고 보여서도 안 된다. 항상 나는 그렇게 믿어 왔다.[321]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이다.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322]

 

어떤 의미에서 피카소는 난마처럼 뒤얽힌 복잡성과 날카로운 단절로 점철된 삶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324]

 

6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그는 음악가라는 장인이 작업하는 소재인 가락과 리듬은 그 자체로는 목수의 대들보나 보석 세공사의 보석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334]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342]

 

젊은 스트라빈스키는 공동 작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마감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은 각기 다르면서 고집은 무척이나 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었다.[348]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355]

 

분명히 이 작품은 여러 이유로 처음 듣는 청중을 소외시킨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와 똑같은 이유로 결국에는 수용되고 인정 받았던 것이다.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이었다.[366]

 

「봄의 제전」에 대한 드뷔시의 평이 정곡을 찌른다. “기상천외하고 난폭한 음악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모두 갖춘 원시 음악 같다.[367]

 

탁월한 창조자들은 언제나 완벽주의자이다. 처음의 구상을 세목 그대로 애써 실현하고자 하며, 수정이 꼭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용기 있는 창조자들은 어떤 권리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려 하며, 설사 의식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는 원래의 착상을 그대로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타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374]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음악사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당시 그가 매혹되고 영감을 받은 것은 무엇이든 때와 여건을 불문하고 활용하여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색깔이 담긴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381]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세상 이치다.[383]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 시킬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은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은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383]

 

“엘리엇과 내가 낡은 배를 수리하지 않았는가?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384]

 

“나의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다. 나는 매일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잇는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어린 시절에 이미 이 재능은 내가 잠시 보관하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을 때, 내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맨 처음에 말한 생각이 중요하다.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386]

 

종교적인 음악을 작곡하려면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악마도 믿어야 하고 교회의 기적도 믿어야 한다.[386]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나간다.)[388]

 

‘음악의 시학’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와진다.[390]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 우호적이면서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 준 것이다.[403]

 

그는 나이 든 여자들이 휘어잡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답게 자기 또래의 여자들을 사귀는 범에 서툴렀고, 여자들에게 위협감을 느꼈을 뿐더러 성적 욕망을 해소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꼈다.[409]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기질은 달랐어도 출신 배경이 같았던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졌다.[414]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문학계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이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429]

 

중대한 혁신을 감행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엘리엇도 새로운 상징체계 혹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투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절망과 유럽 문명의 몰락을 담아낼 수 있는 시적 목소리를 창조하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430]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437]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443]

 

그의 생각대로 시인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시인의 마음은 무수한 감정과 말씨와 이미지 등을 붙잡아 저장해둘 수 있는 용기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의식적이고 정리되지 않는 산만한 형태로 남아있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444]

 

시를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개입하면 방해가 될 수 있는 정서적인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444]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444]

 

경계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의 생애는 역설적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경계인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다.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일부러 경계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455]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 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456]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잇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457]

 

간주곡 2

 

특정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자신들의 변화하는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는 창조물을 축적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것이다.[461]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개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462]

 

실상 엘리엇이나 스트라빈스키는 좀 뒤늦게 태어났다면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그들의 모든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 역시 그런 것에 익숙하다면, 아예 작품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세명의 예술가들은 앞 장에서 다루었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실 혹은 작업실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464]

 

8장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흔히 이사도라는 신체를 무엇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로 여겼다고 한다. 그녀는 무용을 위대한 음악 작품의 반주에 맞춰 공연하는 진지한 예술 형식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467]

 

이사도라의 성공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무용 비평가 애그니스 드 밀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었다.[468]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 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네 모습에 다 써 있어.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까지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470,471]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훗날 그레이엄은 회상했다.[472]

 

거의 서른 살이 된 이 시점에서 그녀는 마음속에 번지는 모든 의심을 접어두고 프로이트나 피카소에 비견할 만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 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474,475]

 

뛰어난 무용가들은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화면을 경멸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주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478]

 

“오늘날의 삶은 신경을 자극하고 날카롭게 후비는, 뒤죽박죽 엉켜 있는 삶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하다. ……내 무용에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480]

 

가벼운 즐거움과 여흥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해서 돌아갈 것이다.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프로그램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용가로는 용서 받지 못할 일을 하는 셈이다. ……관객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484]

 

1930년경 그레이엄은 현대 무용의 적통을 확립했다. 동작에서 일체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감정 표현의 정수만을 표현하는 무용, 동시대의 주요 사안과 대화하는 무용이 그것이다.[489]

 

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꺾이기는 했어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적은 없었다.[502]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521]

 

“나는 무용을 내 삶에서 분리시킨 적이 없다...나는 이해 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나를 느끼기를 원한다.[522]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히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줄 유산으로 여긴다.[523]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524]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526]

 

무용가의 도구는 탄생과 죽음의 운명에 매여있는 그의 육체이다. 그가 사멸하면 그의 예술도 사멸한다.[540]

 

9장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544]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이 많고 허둥대던 변호사로 1891년 런던을 떠난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 - 루이스 피셔, 전기작가[549]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 뿐인,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558]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는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560]

 

“나는 영국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563]

 

무엇보다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의 저작이었다. 톨스토이를 읽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히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폭력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574]

 

에릭슨이 그의 간디 연구에서 강조한 것처럼,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575]

 

“폭력을 사용해서 정부가 법안을 폐기하도록 강제한다면, 나는 몸의 힘을 사용하는 셈이다. 법에 복종하지 않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나는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엔 자아의 희생이 수반된다.[578]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585]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 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스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600]

 

아인슈타인은 좀더 시적인 말로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도 후세대인들은 이런 인물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걸어 다녔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609]

 

간주곡 3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마하트마 간디[610]

 

간디와 그레이엄은 아주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 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외양,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창조 활동의 핵심이다. 몸을 위주로 한 삶은 작업실이나 실험실에 기반한 다른 창조자들의 삶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 현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관객과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단식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텝을 잘 못 밟아 작품을 그르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그럴싸하게 보이지 못한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실존의 순간 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611]

 

그레이엄에게 공연은 그 자체로 목적이 있었던 반면, 간디에게 실행이란 정치와 사회 및 종교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614]

 

3부 창조성의 조건

 

10장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나는 이들 전형적인 창조자(Exemplary Creator: E.C.)에게서 공통의 주제를 발견했다. (중략)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비록 부모와 친밀한 사이일 수는 있어도 감정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오히려 유모나 보모 혹은 다소 먼 친척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중략)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집안에서 종교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라도 도덕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E.C.는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로 자라나는데, 덕분에 스스로 가책을 받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한 때는 종교를 거부했다가도 훗날 다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중략)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2~624]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629]

 

프랑스의 소설가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들은 도착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내 작품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마치 고행자가 배를 할퀴는 마모직 셔츠를 사랑하듯이 말이다.[633]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개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637]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엘리엇의 『황무지』, 그레이엄의 「프론티어」, 간디의 아메다바드 파업을 결정적인 도약으로 간주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혹은 『토템과 터부』),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 엘리엇의 「4개의 사중주」, 그레이엄의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의 소금행진 등이 두 번째로 정점에 오른 도약이라 할 수 있다.[638]

 

에필로그 : 현대와 현대 이후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란, 기회의 시간이자 과거의 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며 표면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675]

 

이 급진적인 작품은 마치 인생의 의미란 오직 죽음에서만 찾을 수 있고 죽음은 황홀경과 다를 바 없으며 창조는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676]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예술의 현대적인 특질을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현대성이란 덧없고 우연한 것이다. 이게 예술의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677]

 

현대 예술은 끊임없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전통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의 말대로 ‘새로움의 전통’을 창조하려는 단호한 노력이다.[678]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창조적인 도약은 이런 두 영역의 성공적인 결합에 있으며, 이런 결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682]

 

현대의 거장들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다운 천진성과 자기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결합할 수 있었다.[683]

 

창조자가 젊은 시절에 해당 분야를 거의 터득하고 그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창조적인 도약은 원숙한 인물의 원숙한 작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 거의 유아기의 감각과 시점을 보유할 수 있는 자만이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685]

 

인간이란 어쩌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방향, 장르 혼융의 방향으로 무한정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전통, 모더니즘과 역사주의,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와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 혹은 퇴행적인 시기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691]

 

옮긴이의 글

 

우리는 흔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보고 “똑똑하다”거나 “지능이 우수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가드너는 이런 발상이 틀렸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이 무조건 지능이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단정짓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처럼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카소처럼 공간 지능과 신체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 역시 다원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692]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 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693]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694]

 

각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방침이 교육계나 일반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695]

 

내가 저자라면


자연 친화적 지능(Naturalist Intelligence)

자연 친화적 지능은 다중지능 이론의 목록에서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것으로, 자연 현상에 대한 유형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능력을 말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이 먹을 수 있는지를 그들의 자연탐구 지능에 의존하여 알아냈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후 형태의 변화에 대한 감수성과 같은 것을 자연탐구 능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자연탐구 지능이 높은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타잔처럼 자연 친화적이고, 동물이나 식물 채집을 좋아하며, 이를 구별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높다. 산에 가더라도 나뭇잎의 모양이나, 크기, 지형 등에 관심이 많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남다르다고 한다. 8가지 다중지능에서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여덟 번째 자연 친화적 지능에 관심이 많이 갔다. 인간과 동물의 특별한 교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밝혀지는 그날 자연친화적인 지능은 또 하나의 다중지능의 이론체계에 획을 그을 것이다. 

나만의 흥미


첫째, 최고의 학식을 갖춘 학자이지만,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재미있는 사례와 함께 다양하게 섞어서 비록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썼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창조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 그의 책은 간결하고 분명하였다. 그러나 깊고 방대했다.

둘째, 창조적 7인으로 선정된 거장들은 모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들이었다. 이 책은 대상인물의 관념체계에 주목하고 인지과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모델을 이용하여 대상 인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려는 것이 목표였는데, 각 거장들의 삶의 궤적이 비교적 상세하고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읽기가 아주 좋았다. 또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창조성 소재 모형’ 에 비추어 그들의 원천에 대한 노력을 전기 수준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셋째,10년 주기론’에 대한 이해였다. 꿈벗의10대 풍광도 10년 주기인데 다시 보아도 흥미로운 용어이다. 창조자들은 10년 동안 그 분야에서 기본을 터득하고, 다음 10년간 이를 획기적인 창조적 혁신으로 창출해내며, 다음 10년간은 창조성을 발휘하고,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렇다면 10년의 주기는 사람도 자연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는 마술의 시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농담같지만 그 안에 함의가 있다는 생각이다.

 

구성적 주제


이 책은 세 가지 핵심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창조적 인물, 창조적인 행위의 대상이나 작업(), 그리고 창조적인 인물의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1. 아동과 대인과의 관계: 개인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완성의 아동의 세계와 자기 세계에 확신이 있는 성인 대가의 영역 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 개인과 그의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모든 사람은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현재 통용되는 상징체계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상징체계를 고안한다.

3. 개인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흔히 창조적인 인물들은 홀로 작업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기간 내낸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마사 그레이엄을 뒤에서 30년 이상 그녀의 삶에서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스승 루이스 호스트를 말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중요한 관계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주 좋은 관계로 보였다.


아쉬운 점


이 책을 통해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작가가 내놓은 이슈에 대한 정의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다중지능이라는 획기적인 개념도 노력의 성과이기는 하나 거창한 방법론과 방대한 연구에 비해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지는 못했다. 또한 책의 홍보에 비해 내용은 그다지 마음에 와 닿게 감동적이지 못했다. 그의 분석, 자료 수집, 세밀한 분석의 노고는 인정하겠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만큼 감동적인 전달은 하지 못한 것 같다. 즉 이해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쉽게 썼으나, 나에게는 내용적인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여러 책에서 나의 마음을 끄는 책은 그의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있는 ‘체인징 마인드’ 였다. 마음을 구성하는 실체와 이들의 형식에 대한 설명, 마음을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들의 사례 제시를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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