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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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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5일 09시 11분 등록

[북리뷰 44] 피터드러커 자서전

 

1. 저자에 대하여

 

Peter Ferdinand Drucker

현대를 대량생산원리에 입각한 고도산업사회로 보고, 그 속에서 기업의 본질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전개한 학자로, 스스로는 "사회생태학자(soc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경영학의 전문내용을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을 고안하는 등 미래 사회의 변화와 인간이 사업과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조직화되는가에 대한 탐구에 관한 내용을 주로 연구하였다.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경영자문가, 교육자, 작가이다. 그의 보수적인 저서는 현대 기업의 철학적·실제적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였다. 빈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933년 런던에 이주하여 경영평론가가 되었다. 1937년 영국 신문사의 재미통신원으로 도미하여 학자 겸 경영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1942년에 집필한 『산업인의 미래The Future of Industrial Man』(독일에서는 『산업사회의 미래』로 번역)에서 20세기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연구했다. 이 저서의 출간으로 드러커는 194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에서 2년간 경제 분석가로 일하게 되었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법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로써 학문적 분과로서의 경영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다. 그 후 드러커는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시티코프, IBM, 인텔 등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 정부 부처, 국내외의 비영리 단체를 위해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다.

 

그는 젊었을 때 법학, 역사, 경제학, 사회학 등을 두루 섭렵했고, 음악은 피아노와 첼로를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정도였으며, 일본화에 대해서 평론집을 저술하고 강의를 했을 정도로 미술에도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전통 방식에 의한 학습을 통해 다방면에서 고급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드러커는 사회를 남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파악했다. 이런 그가 경영학자가 된 것은 순전히 인간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는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으며, 경영학의 체계를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삶의 수준을 높이고, 기업과 인간을 보는 눈을 바꾸도록 하였다. 생산과 분배, 생산요소, 지식사회, 변화, 지식근로자, 인간의 수명증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선견력은 일선 경영 자들이 기업을 경영하고 자기관리를 하는 데 큰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1950년과 1971년 사이에는 뉴욕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를 역임했고, 1969년에 이 대학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총장상을 받았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고, 미국과 벨기에, 일본, 스위스, 스페인, 체코 등지의 대학에서 다양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는 클레어몬트 대학의 포모나 칼리지에서 극동 지역 예술을 가르쳤다.

 

피터 드러커는 사회, 경제, 정치, 경영의 모든 주제를 다룬 뛰어난 저술가로서 30여 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그는 20세기 후반의 많은 변화들을 예측하였는데, 민영화와 분권화, 일본 경제의 발전, 사업에서의 마케팅의 중요성, 정보화 사회의 발현과 평생 교육의 필요성들을 주로 강조하였다. 경영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한 그의 저서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총판매 부수는 600만 권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현대를 대량생산원리에 입각한 고도산업사회로 보고, 그 속에서 기업의 본질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전개하였다. 기업은 영리심의 존재와 관계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이윤은 손실회피·생산액증대를 위한 2대 지도원리로써 미래의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필요한 비용에 불과하다는 그의 이론은 이윤이나 비용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보여 주었다. 제도파적 기업관(制度派的企業觀)에서 분권관리(分權管理)나 직장자치를 전개하는 등 미국에서는 크게 체계화된 경영관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제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년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 『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위대함의 법칙』 등이 있다

 

2. 가슴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역자서문] 드러커 안의 드러커 들여다보기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통상적인 자서전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통상적인 자서전이 자신의 얘기를 직접 혹은 제3자가 기술하는 방식인데 반해, 이 책은 드러커가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커 자신을 비추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p6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개인사를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커가 평소 주장했거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를 능가하는 그의 문필력이 빛을 발하면서 난해한 주장들이 일상과 접목되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더불어 삶의 교훈과 지혜를 준다. 물론 그는 위대한 경영학자이지만 이 책은 경영 이야기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 가족, 교육, 금융, 기술, 언론 등 각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p6-7

 

드러커는 공적인 일에서는 특정 개인이 뛰어나다는 것만 갖고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공적인 일에는 연속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진정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을 육성해야 한다. p7-8

 

그 당시라고 해서 역사서적이나 전기물, 통계자료가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사회과학’ 서적들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 책들은 사회의 의미와 분위기 또는 현실을 전달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훌륭한 컬러 사진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초원의 경험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통계수치로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지 표현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p17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위대하거나 유명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은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p19

 

프롤로그.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p21

 

나는 웅덩이를 좋아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웅덩이에서 풍덩풍덩하는 소리보다 더 좋은 음향을 별로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그런 웅덩이를 풍덩거리면서 밟고 건넌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그런 식으로 건너지 않는다. 당시 나는 군중들에 의해 원치 않는 방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웅덩이를 돌아서 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즉 거대한 인간집단의 압력이자 집단운동의 물리적 위협이 나를 압도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웅덩이의 한쪽 끝에서 맞은편 끝까지 철퍼덕거리며 건너가야 했다. 나는 웅덩이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 뒤를 따르던 덩치큰 의과대학생에게 한 마다 말도 없이 깃발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p27

 

우리 같은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어른들이 말하는 ‘전쟁 이전’의 생활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내 또래 소년들에게 있어서 “내가 성장하면”이란 말은 “내가 징집당해 전선에 나가게 되면”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p30

 

나는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악당 크란츠를 변호하는 열정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그건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가 법을 어겼는지 여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는 식당주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는 손님들이 식당에 왔을 때 기대한 것이자 본인이 손님들에게 약속했던 것, 손님들이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을 제공했던 것뿐이다. p30

 

크란츠에 대해서는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p31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람

 

할머니가 손녀들에게 해주는 약간 불가사의한 충고도 이야깃거리다. “얘들아, 밖으로 나갈 대는 항상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 입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손녀들 가운데 하나가 반쯤은 기분이 상해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 전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 -본문 중에서 p37

 

내가 할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는 이미 과거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유일한 흔적이라면 물결치듯이 구불구불하고 풍성한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는데, 붉은 갈색의 머리칼이 당시에도 여전히 뜨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p39

 

“하지만 할머니, 그 창녀한테 기침약을 갖다 줬잖아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너희는 언제나 그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옮기는 끔찍한 성병만 걱정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나 역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 p42

 

할머니의 조카들 가운데 한 명(어쩌면 조카손녀 가운데 하나)이 영화와 뮤지컬 코미디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여배우의 반열에 올라섰고, 그녀의 염문이 쉬지 않고 야단스러운 일요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p43

 

할머니는 바로 되받아쳤다. “그게 바로 내가 싫어하는 거야. 그 늙고 추잡한 호색한들의 자만심과 허영심에 몸을 파는 것 말이야. 난 그런 걸 매춘이라고 불러.” p43

 

할머니가 연주하는 그들의 음악은 건조하고 단조롭고 하프시코드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났으며, ‘그랜드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울림은 별로 없었다. p46

 

이런 저런 ‘할머니의 일화’가 떠올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할머니는 그녀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공인된 가문의 푼수였다. 우리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누구든 저녁식탁에서 ‘할머니의 일화’를 화제로 삼았다. ‘할머니의 일화’는 우리 가족 가운데 가장 말수가 적은 사람조차 활발한 발언자로 만들었다. p48

 

할머니는 여러 날을 줄을 서며 허비하지 않고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경선을 통과했다. 그녀는 식료품상이 결국 물건값을 낮추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드름쟁이가 만자 표시를 벗어버리게까지 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할머니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라틴 경구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도 바보와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나치당과 여러 해 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p62

 

하지만 할머니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모든 단점을 참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눈길을 주는 바보같은 여자들과 벌이는 멍청한 짓거리나 여자가 옆에 앉지 않으면 절대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에게는 성이나 결혼, 정부 같은 것보다 피아노가 더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규칙을 만드는 쪽은 남자였고,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런 규칙들을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p65

 

젊은이, 당신은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를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구려. 하지만 대신 앰뷸런스를 불러주시는 게 좋겠소. 당신 차에 낯선 여자가 타고 있으면 당신의 명예가 손상될지도 모른다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거든. p69

 

헤메와 게니아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넌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했고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 지금 네가 빈을 떠나겠다는 것도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이곳은 과거 속에 있고 이미 끝난 도시니까.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게니아에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라. p77

 

18세기 오스트리아 계몽운동의 산물인 해외무역부는 초창기부터 오스트리아 프리메이슨(세계시민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인도주의적 단체)과 은밀한 연결고리를 통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p84

 

정부 안에 이처럼 과격한 조직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오스트리아 자체의 관대함 때문인지 아니면 당시 정부 조직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서인지를 설명하는 문제는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런 집단을 억지로 포옹하고 있었다. p85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반유대주의 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마르크스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빈의 프로이트나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 같은 헤메의 동시대 인물들도 반유대주의 입장을 취하는 방식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등을 돌렸다. 프로이트의 경우 자신의 마지막 주요저서인 <모세와 일신교>를 통해 그런 입장을 보였던 것이다. p92

 

헤메가 자신의 조상이 유대인이 아닌 척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인을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가진 부르주아적 근성과 탐욕적이고 유물론적인 정신은 사회를 오염시킨다고 여겼다. 그에게 유대인이란 종교나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정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최대한 비유대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p92

 

하지만 헤메는 거절했다. 양쪽 모두 6개월 동안 서로부루퉁한 채 지내다가 결국 헤메는 황제고문관이 됐다. 그리고 ‘세례식’의 전례는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헤메가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셈이고, 그 결과 다음부터는 유대인이 유대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p95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p96

 

비록 외적으로는 침착했지만, 어쨌든 그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깥 출입을 삼간 채 집에서 체스를 두거나 혼자 있을 때는 체스의 수 읽기에 관한 문제에 몰두했다. 당구를 치거나 고전음악을 듣기도 했는데, 그는 비록 표면이 긇히고 변형이 생기기는 했지만 엄청난 양의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잃어갔다. 하지만 일단 그가 입을 열면 그의 혀는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신랄한 말을 토해냈다. p103

 

누구도 그녀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학생들이 온단 말인가? 게다가 가족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여학생들이 무슨 수로 학비를 조달한단 말인가? 게니아는 빈의 신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면광고를 실어서 “남녀 모두를 위한” 대학시험 대비과정의 개설을 선언했다. 그리고 작은 글자체로 이렇게 덧붙였다. “학비는 걱정하지 말 것.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음.” p112

 

다시 2년이 더 흐르자 그녀의 학교는 교육부로부터 학교 승인을 취득했고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학생을 위한 순수 김나지움으로 인정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몇 년 뒤에나 그런 교육기관이 생겼고 프랑스에서는 거의 10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여자 고등학교가 탄생했다. p113

 

당시 시대조류를 보면,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영토였던 곳에서 최초로 ‘서류’가 중요해진 시기였다. 비록 요즘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여권이나 신분증, 비자, 운전면허 등과 같은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음은 물론 심지어 출생증명서조차 없는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지만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서류가 없는 사람은 인간대접을 받을 수 없는 세상이 왔다. p117

 

게니아는 먼저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 다음 비서를 시켜 몇 군데 전화를 걸어 탄원자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꾸며대는 사람과 진정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귀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p118

 

그녀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당신을 귀찮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가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몹시 바쁘시니 아마 누구누구라는 부인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저도 당신이 난처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일을 전부 끝마치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겠죠. 저는 이 문제로 당신이 골치를 썩이지 않도록 도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p119-120

 

슈바르츠발트 학교는 군인의 딸들이 노처녀 선생이 되는 운명을 벗어나 적어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따라서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의 부모인 군인들에게도 학교는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p131

 

그와 나는 뉴욕 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했지만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미제스는 나를 진정한 경제학과 결별한 변절자로 생각했다.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도 있었다)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을 때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며 말을 걸었다. “자네도 아네테를 알 거야, 그렇지? 만약 그녀가 남자여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여건이 조성됐다면, 아마 리카르도 이후 최고의 경제학자가 됐을거야.” p132

 

그러다가 아네테와 헤메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 헤메는 아네테와 결혼하기 위해 게니아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네테는 일생 동안 헤메의 곁에 남아 있기 위해 세 가지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그리고 헤메의 청혼은 게니아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물론 게니아는 이혼에 동의하고 헤메의 결혼의사를 아네테에게 알려주기까지 했을 정도로 관대했지만 아네테는 그러지 않았다. ... 아네테는 여전히 게니아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학교와 아동 캠프, 호숫가의 여름 리조트에 이르는 모든 슈바르트발트 기업의 관리자로 남아 있었다. p134

 

역사적으로 볼 때 살롱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처음 생긴 유형은 ‘프레시외즈(17세기전반에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했던 잘난 체하는 취미와 경향을 가진 여성을 부르던 말)’ 즉 루이 14세 시절 파리의 ‘블루스타킹(문학을 좋아하는 여성이나 여성문학가를 자처하는 여성들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 풍습에 맞지 않게 청색 모직 양말을 신은 데서 연유됐다)’에 의해 생겼다. p134-135

 

내가 공연을 끝냈을 때 헤메가 특유의 목소리로 뱉어낸 말은 내 생애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된 교훈이 됐다.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 마.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계수치는 의심해 봐야 해. 내가 직접 경험해 본 일이야. 난 거의 12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수출현황에 대한 통계를 담당하고 있었어.” ... “그 주제에 대해 아무도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넌 네 연구를 반드시 발표해야 해. 여기 몇 군데 학술지 명단이 있다. 여기다 네 논문을 보내보렴.” p140

 

하지만 그녀가 노인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어떤 노인도 나서서 프로그램에 등록하지 않았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노인들이 자선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단어인 ‘그라이스’라는 말이 특히 노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p143

 

당시 취리히는 마르크스주의에서부터 무정부주의와 신지학, 시오니즘에 이르는 온갖 정치사상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특정한 필요성과 그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p145

 

젊은 신문기자가 그녀를 인터뷰하며 사람들이 원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물었다. 그러자 게니아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것이 인간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원칙이란 내게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야.” 이는 절대주의의 세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이단이다. 교육과 심리, 환경, 경제, 정치, 심지어 인종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이상적인 미래나 ‘절대 다수를 위한 선’이라는 망상을 이해 인간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괘씸한 이단이어라도 게니아의 신념은 결코 평가절하당할 만한 사상이 아니었다. p146

 

내가 그들의 실체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꿈속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스웨덴 작가인 셀마 라게를뢰프의 <닐스의 이상한 여행>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것은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아동용 모험소설로, 동시에 스웨덴의 역사와 지리를 아주 잘 묘사해서 오늘날까지도 나는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스웨덴을 대단히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 p148

 

이 이야기 속에서 배가 난파당해 표류하던 선원이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도시는 대부분 상인이었던 시민들의 탐욕과 자만심, 거만함 때문에 침몰했으며, 시민들은 죽음이라는 안식이 없이 영원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일요일에 교회종이 울리면 그들은 호화로운 교회로 가서 충실하게 예배에 임했지만, 나머지 6일 동안은 신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평일에는 열심히 서로를 속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거래했다. 그들은 구식의 비싼 의복을 걸쳤고 으리으리함과 화려함에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시처럼 그들은 죽은 몸이었다. 살아 있는 세계에서 온 선원은 깊은 흥미를 느꼈지만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그들과 똑같은 움직이는 시체로 변하게 될 테고, 결코 대지와 태양, 사랑과 인생, 그리고 진정한 죽음이 있는 세계로 복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p148

 

1920년대는 경제 및 사회지표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던 최초의 시기였다. 통계가 그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재 상황을 ‘전쟁 이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비교대상에는 감자 수확량(이것은 거의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이나 범죄율(안타깝게도 이 수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쟁 이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나치가 등장해 이 결점 아닌 결점을 치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뒤부터 다시 급등했다.) 또는 철도로 운반되는 우편물의 양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p152-153

 

나치즘은 분명 혐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찰스 린드버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 “과거를 향한 물결”이 되고자 기를 쓰고 있을 때 나치즘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향한 물결”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 ‘전쟁 이전’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들조차도 ‘전쟁 이전’이라는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며 거의 질식할 정도의 수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p153

 

반면 뉴딜의 미국은 미래를 지향하고 있었다. 프랭크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대공항 이전’ 증후군이 미국인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마비시키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p154

 

엘자와 소피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급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p158

 

읽기는 잘하지. 사실 너 같은 책벌레는 따로 읽기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단다. 그래서 나도 네게 더 이상 읽기 공부를 시킬 생각은 없단다. 이제 네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 하렴. 피터, 너무 어두운 데서 책을 읽다가 눈을 버리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야 하다. 너는 내가 안 보고 있는 줄 알고 책상 밑에서 책을 읽더구나. 항상 책상 위에서 읽어라. 다음부터는 네 자리를 창가 쪽으로 옮겨 밝은 곳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해주마. p159

 

내가 그녀의 글씨체를 흉내 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글씨체를 갖고 있단다. 그리고 네 글씨체는 바로 이거지. 너도 동의하니?” 나는 당연히 동의했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하자꾸나. 그래야 너하고 내가 네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 자, 여기 네가 쓸 학습장들이 있다. p161

 

물론 손재주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올해가 끝날 무렵이면 너도 몇 가지 간단한 공구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질거다. 우선 어머니를 위해 소젖 짜는 발판부터 만들어보는 것은 어떠니?

그 말에 나는 펄쩍 뛸 수 밖에 없었다. “저의 집에는 소가 없는데요. 무엇 때문에 어머니께서 소젖 짜는 발판을 원하시겠어요?”

“왜냐하면 네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그것이기 때문이지.” 미스 소피가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 말은 내가 생각해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물론 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소젖 짜는 발판이라도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지만 말이다. p164

 

미스 엘자는 우리가 학습장에 기록하는 성적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성적을 거짓으로 기록할 때마다 그녀의 능숙하고 우아한 글씨체로 점수가 수정된 학습장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이 계속되면 결국 미스 엘자의 호출을 받게 되고 심한 질책을 당했는데, 그것은 마치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다른 학생들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p166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숭배했다. 50년 뒤에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내 머릿 속에는 신이 미스 엘자와 대단히 많이 닮았을 것이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장이 내게는 별로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의 장점을 발견하는 일에 관한 한 미스 엘자는 신이었으며, 그것은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이야기하는 그 신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p167

 

미스 소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어서 남학생도 바느질과 요리를 배우고 여학생은 연장을 다루고 고장난 물건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때때로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 그것은 “눈과 손이 서로 협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길”이라고 학부모들에게 설명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많은 엄마들이 선생님께 항의서를 보냈다. “우리 집안에는 구멍난 양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자 미스 소피가 답신을 보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정상적인 아홉 살짜리 아이가 있는 가정에 어떻게 구멍난 양말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P168

 

하지만 신사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벌어먹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누구도 청나라의 고위관료들을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도 손을 사용하는 것을 비천한 일로 봤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손톱을 거의 30센티미터나 길렀다. p170

 

미스 소피의 혁명적인 사고는 그녀의 작품이 아니다. 이 개념은 길고 복잡한 조상을 갖고 있다. 그 시초는 19세기 초 교육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가 바로 프뢰벨이라는 유치원의 창시자다. 초등학교 교과과정의 하나로 아동들에게 수공예를 가르친다는 그의 생각은 유럽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p170

 

거의 대부분의 선생들이 실망스런 수준에서 약간 적합한 수준 사이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밑에서 지도를 바든 일년 동안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나느 그들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교직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p179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내 자신을 연마하는 데 게을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읻이다. 이런 현상은 전문적인 작가가 별 생각없이 빠져들게 되는 위험이다. 나는 자신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p181

 

내 손가락들은 나뭇결을 따라 대패와 사포로 깨끗하게 다듬은 나무의 느낌을 기억한다. 내가 그런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미스 소피가 내 손을 붙잡고 나무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p182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오라보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p187

 

가장 좋은 학교는 “통나무의 한쪽 끝에 마크 홉킨스가 앉아 있고, 다른 쪽 끝에는 학생이 한 명 앉아 있는 학교”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선생을 직접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좋은 선생은 연예인과 같고 연예인에게는 관객이 필요하다. p191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p193

 

사실 타고난 선생은 자신의 재능에 교육법을 추가함으로써 아주 쉽게 더 훌륭한 선생으로 발전할 수 있다. .... 전통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스승으로 간주되지만 소크라테스 본인은 이런 평가를 일종의 모욕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선생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교육자’, 즉 학습을 위한 안내자였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학습’ 방법이었던 것이다. p198

 

하지만 소피스트들이 지배한 것은 서구뿐이었다. 다른 문명은 서구문명과 소피스트, 즉 가르침이란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생에 해당하는 인도어는 ‘구루’이며, 구루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는 대학의 학위가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영혼이 부여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 비슷한 예로 일본의 센세는 선생이라기보다는 ‘명인’에 가깝다. 하지만 서양 전통에서는 기술로서의 가르침에 집중한 나머지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르침은 재능이고 학습이 기술이다. p199

 

우리는 학습기능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다. 우리는 모든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가 ‘학습하는 유기체’이며, 이들 유기체는 학습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 것이다. p200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 (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p200-201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p201

 

프로이트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프로이트는 자기 동정을 혐오하는 아주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 대한 세 가지 허상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그 허상을 믿었다. 포르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문화와 예술에 창의적인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으며, 모두들 그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이 이루어낸 그런 성과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들을 함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 이 글에서 드러커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현실의 프로이트를 프로이트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p202

 

공식적인 허상 속의 프로이트는 올림포스의 제우스나 구약성서의 야훼처럼 근엄한 유일신이다. 하지만 자신의 ‘프로이트적 실언’에서 그는 고통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이다. 고전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 프로이트의 저서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인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p203

 

나는 어린 시절에 악수를 나누어야 했던 다른 모든 어른들은 잊어버렸지만, 나중에 부모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이때의 일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오늘 일은 이어선 안 된다. 넌 방금 오스트리아에서,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난거야.”...“그래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야.”... 사실 어머니는 프로이트와 그이 이론 모두에 아주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그가 “오스트리아,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205

 

프로이트는 결코 불평을 하지 않고, 자기 동정을 혐오하며, 넋두리라면 질색을 하는 아주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결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생활이나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고통에 있어서도 그만큼 냉철한 사람이었다. 대신 그는 재정난, 유대인 차별, 빈 의사들의 냉대 같은 가공의 고통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했다. p207

 

1900년경에 빈의학회가 파티에서 촌극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몰리엘의 <상상병 환자>를 패러디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상스러운 돌팔이 의사는 이런 대사를 했다고 한다. “그 환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다면, 그것이 그가 앓고 있는 신경증의 원인입니다. 또 그가 어머니를 미워했다면, 그 역시 이 신경증의 원인입니다. 병이 무엇이든간에 원인은 항상 같지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병도 항상 같고요. 따라서 치료법은 이렇습니다. 한 시간씩 스무 번의 치료가 필요하고, 그때마다 50크로네를 내셔야 합니다. 정신북석의 이론과 의료활동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장면은... 심지어는 청중석의 정신분석학자조차도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고 한다. p215

 

토마스 만은 프로이트의 여든 살 생일축하 자리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분석은 소설이라는 예술에 그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의사들도 이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프로이트가 문화와 문학, 종교와 예술에 힘있고 창의적이며 자극제가 되는 비평가였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영혼에 창을 냈다는 점은 기꺼이 인정한다. p219

 

여기서 한 가지 사실만은 아주 분명하다. 프로이트는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러고 나서 그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신분석학의 출현이 ‘빅토리아 시대의 성적 억압’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19세기 후반의 빈은 성적으로 자유로웠고, 성적 활동도 공개적이며 활발했다. p220-221

 

프로이트는 종교적으로 엄격한 사람이었고, 성이 불가피하긴 해도 인간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프로이트는 말도 안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는 유대교 전설에 등장하는 아담의 두 번째 아내인 악마 릴리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릴리트는 아담을 유혹해 그를 이브에게서 빼앗고, 남성에게 성적 대상을 만든다. 이때 만들어진 여성은 다른 고등동물의 암컷이 실생활을 위해 매 달 며칠만 발정기이고 나머지 기간에는 성생활을 하지 않는데 비해, 항상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p224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빈 의사들을 무시하기 위해 빈 의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척해야만 했던 것이다.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포로이트 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p233

 

트라운 트라우네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매혹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마리아 뮐러와 좌반신 불구의 트라운 트라우네크 백작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사이다. ... 국립도서관의 행정담당 부관장이었던 백작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팸플랫’이라는 소책자를 가명으로 쓴 사회주의자였다... 잃어버린 세대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백작의 쓸쓸한 고백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전쟁의 비극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p234

 

하지만 아직 20대 전후의 젊은 세대들은 자유주의가 다음에 벌어질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에 의지하기로 했지. 그 힘이 조직과 헌신, 그리고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사회주의였지. p262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야. 사회주의가 실패했지. 우리가 의지했던 유럽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진심으로 전쟁에 반대했어. p263

 

세계대전의 책임을 놓고 군인과 정치가, 사업가들을 비난하는 게 요즘 세태라는 걸 너도 알 거다. 하지만 진정으로 전쟁을 원했던 사람은 바로 위대한 사회주의 대중이었어. 그들은 사회주의를 완전히 때려치웠지. p264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했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버렸어. 내가 영국에서 예수교 재단의 공립학교에 다닐 때 마흔여덟 명이 같이 졸업했지. 그 가운데 열여덟 명은 아직 살아 있지만, 나머지는 플랑드르의 무덤에 누워 있어. p265

 

그러자 황제는 이렇게 대답했지. 그도 자기와 같은 지위의 여성하고만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러나 보니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덤밖에는 갈 곳이 없더라고 말이야. p266

 

오스트리아에 공확국이 성립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정부를 구성했을 때, 그들이 내게 교육부 장관직을 제안했다는 사실 말이야. 그건 내가 늘 꿈꿔오던 자리였고, 게다가 나는 그 일을 맡을 준비도 되어 있었지.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맡을 수 없었어.... 때때로 나는 쓸모없이 부서진 내 육체와 함께 아직도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심한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기꺼이 생을 마감하고 싶어질 정도니까. 단지 마리아가 아직도 나를 원하지만 않았다면.... p267

 

사회주의는 1914년 8월의 총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사회주의의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동지들 간의 상잔인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의 끝이 아니었다. 신학은 신앙보다 더 질겼다. 그것은 또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의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으로서 사회주의의 종말이었다. 비록 영원히 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세대 전체에 관한 한 말이다. p268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주의 초기 이상을 가진 일부 몽상가들이 초기의 비전에 호소하면서 사회주의의 실제는 진실한 믿음이 필요하고 비통한 왜곡에 시달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p268

 

영국은 젊은 장교들의 사망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컸는데, 다른 나라의 지도층은 신사도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식 신사도는 약간 무모한 행동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교육받은 젊은이의 수가 훨씬 더 부족해졌다. p270

 

자신이 오스트리아 프리메이슨의 수장이란 사실을 네 아버지가 말해줬는지 모르겠구나.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스스로 밝혔던 것은 아니다. 그는 프리메이슨 오스트리아 지부의 비밀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p274

 

그건 그렇고 백작께서는 나치가 들어왔을 때를 대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어디로 가실겁니까? 우리는 해외로 도피하지는 않을 거다. 마리아와 나는 네 부모님과 달리 자식이 없으니까.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치가 빈으로 왔고, ... 트라운 트라우네크 백작과 마리아 뮐러도 탈출했다. 독일 군대가 위풍당당하게 빈으로 행진해 왔던 바로 그날, 그들은 조용히 동반자살했다. p275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폴라니 가(家)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폴라니의 가족은 드러커가 아는 한 가장 특이한 사람들이자 재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대단한 것은 가족 모두가 19세기를 극복하려는 한 가지 목적에 헌신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초월하는 제3의 사회’를 탐구했으며,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런 사회를 찾아낼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커는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들의 실패는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 줄곧 서양인의 관심을 끌어왔던 절대적인 시민종교에 대한 탐구나 완전한 사회에 대한 탐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p278

 

네 사람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요.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다니!”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요.” 카를의 아내인 일로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빈은 헝가리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지만 카를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카를의 월급은 다른 헝가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나가서 필요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죠.” -본문 중에서 p279

 

“우리는 파나마 운하에 관해 쓴 당신의 논문을 읽었으며, 아주 훌륭한 논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주로 그래프와 표로 이루어진 글이지만, 처음으로 내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는 짜릿함에다 내가 오랫동안 읽어온 글을 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쁨이 더해졌다. 그것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p280

 

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다섯 형제는 각자 독자적인 길을 갔지만 결국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똑같은 성배를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선 원탁의 기사를 떠올렸다. 그들은 각자 하나의 ‘답’을 찾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폴라니 가는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가장 성공한, 그러나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가장 실패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또 가장 생기있고 호기심과 활력이 충만한 가족이었다. 적어도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네댓 명의 폴라니는 그랬다. p286

 

무솔리니를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협동조합국가를 바탕으로 하는 계급결속이라는 새로운 비전으로 전환하게 만든, 그래서 치명적인 타격에서 회복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오토 폴이었다. 협동조합국가란 나라를 위해 공통적으로 헌신하는 여러 계급이 결속하고, 그 때문에 묶은 나뭇가지, 즉 영광스러운 로마 공화정의 유밀인 속간처럼 부러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의미한다. p290.

 

그 당시(다른 사람들보다 적어도 10년은 앞서서) 아돌프는 대부분 백인인 선진국과 대부분 유색인종인 후진국 사이에 남북갈등이 있을 것을 예견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브라질이 미래이 사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p292

 

무지처럼 카를도 신동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무지처럼 젊은 시절에 자신을 소진시켜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카를은 예순 살이 다 된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자신의 창조성을 꽃피우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p296

 

<위대한 변환>에서 폴라니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 사회와 경제를 바꾼 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 영국 사회와 경제를 바꾼 것은 재화의 거래와 자본의 교환을 넘어서 또 다른 두 가지 생산요소인 토지와 노동, 특히 고용과 사람들의 생계문제를 포함하기 위해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지닌 시장 시스템이 확대된 때문이었다. 이런 주장은 새로운 논제였으며, 논란의 여지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카를에게 경제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안, 경제적인 성장과 안정성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제공하는 사회를 찾아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p303

 

그들은 정말로 특별한 가족이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내가 아는 가장 특이하며 가장 재능이 뛰어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목표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p309

 

당시 카를은 미온적인 타협이라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만한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산업인의 미래>에 녹아 있는 내 의도였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시장의 혼란과 불화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유를 지키게 될 것이다. p310

 

그러나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구교와 신교의 교리를 통합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명석한 사상가들의 실패가 50년 후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을 예고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것은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p311

 

크레머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크레머는 드러커 자신이 정치적으로 이단자임과 드러커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p312

 

그의 옷차림도 외알 안경만큼이나 이상하고 구식이었다. ... 헐렁한 바지에 트위드 재킷을 입고... 멋지게 재단된 승마바지를 입고 반질반질 광택을 낸 무릎길이의 검은색 승마부츠를 신고.. 콧소리가 섞인 나른한 목소리... 얼굴 위에 돛처럼 우뚝 솟아 있는 뾰족하고 큰 코, 높은 광대뼈, 뾰족한 턱,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푸른빛이 도는 회색 눈, 사냥개와 이리의 중간쯤 되는 인상을 주는 그는... p315

 

옛 프로이센은 영토라기보다는 사상, 즉 ‘늙은 프리츠’가 불렀던 대로 ‘군대로 구체화 된 사상’에 가까웠다.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프로이센 사람들’은 거의 모두 프로이센 영토 출신이 아니었지만 사상을 함께 했다. p320

 

‘선한 독일인’도 항상 존재했다. 약간은 감상적이고, 약간은 맥주의 분위기가 나는 자유주의자로, 음악을 사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독일인을 일컫는 말이다. ..빌리 브란트의 모습에서처럼 어느 시대에나 실재하는 독일인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p321

 

‘제3의 독일인’은 당시 나치의 만자 배우에서 빠르게 나타나는 추악함과 야만성, ‘선한 독일인’의 선량하고 예의바르지만 무기력한 자유주의를 모두 반대했다. 그것은 바로 이상적인 옛 프로이센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가난하지만 만족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신을 두려워하고, 군복을 입고 무기를 지녔지만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고, 관리와 신사의 명예라는 규범아래 자제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따라서 외알 안경, 카약에 꽂아놓은 제국해군의 군함기, 힌 깃, 승마 부츠와 승마복 등 그의 차림새는 모두 의도적인 선언이었던 것이다. p323

 

자신은 인생에 딱 두 가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모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크레머, 네가 직접 참모본부장이나 외무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크레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혀 없어. 나는 내가 사색가이지 행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연설을 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야.” p324

 

프리츠 자신도 이런 야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일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야. 하지만 난 절대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거야. 절대로.” 프리츠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까이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자기 목표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어냈다. p325

 

그 옛날 크레머와 나눈 긴 대화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인물이 지니는 패러독스를 인식하게 됐다. 위대한 인물이 지니는 패러독스를 인식하게 됐다. 위대한 인물이 없으면 비전도 리더십도 우수함과 업적의 기준도 없다. 또한 공적인 일에서 평범함은 살아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는 개인적인 성취 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상태를 남긴다. 디즈레일이의 지적처럼 그의 빈자리는 대개 기법만 알지, 다른 것은 거의 알지 못하는 ‘해병 대위’가 물려받게 된다. p338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따라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리슐리외나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와 같은 ‘천재 외무장관’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p339

 

게다가 키신저는 크레머에게 부족한 능력, 즉 저술가와 연설가로서의 능력과 재사와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키신저가 저술한 책들은 크레머의 원칙들에 의해 생명을 얻었다. .. 키신저는 1942년 프리츠 크레머에게서 처음들은 외교 정책의 우선원칙, 외교정책에서 힘의 우선 원칙, 천재 외무장관의 필요성이라는 세 가지 정치철학의 원칙을 즉시 실행에 옮겼다. p340

 

미국 외에 어떤 나라에서도 임박한 국내 선거에서 단기적으로 표심을 잡기 위해 적대적인 아랍 본토의 한복판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우는 것에 동의하는 중대한 약속을 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 p340

 

그러나 크레머와 키신저의 ‘힘’에 대한 정의가 부적절하며, 실로 유해한 것이었음이 여러 사건에서 입증됐다. 중국이 그 크기와 군사적인 잠재력만으로 정말 ‘강국’이 될 수 있는지는 시간만이 대답해 줄 수 있다. p341

 

헨슈와 셰퍼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그 책이 나온 후 내 의도대로 그 책을 이해한 나치는 곧 그 책의 출판을 금지하고는 공개적으로 불살라버렸다. 물론 그 책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나 또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은 내 입장을 분명히 해주었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던 것이다. p349

 

그는 군대에서 듣기 어려운, 더더욱 학문의 전당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비난과 독설, 육두문자로 뒤덮인 긴 열변을 토했다. 그 자리에 모인 학자들로서는 뜻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누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상스러운 욕설로 가득한 연설이었다. ... 그가 말을 마치자 쥐죽은 듯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저명한 생화학자가 뭔가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마침내 그 훌륭하신 자유주의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주 흥미로운 연설이었소, 정치위원 동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매우 계몽적이었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생리학 연구비가 좀 더 지급될 것인지 알고 싶소이다.”... 회의는 곧 끝났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가까운 친구사이였던 유대인 동료와 나란히 걸어 나올 용기가 있는 교수는 얼마 없어서 대부분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진저리가 쳐졌다. 그리고 48시간 내에 독일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p351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이아고(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악한), 엄청난 죄를 짓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맥베스 부인(셰익스피어의 <멕베스>의 여주인공으로 권력욕이 강한 여인)이 있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세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p363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수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p364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괴물일까, 어린 양일까? 그리고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셰퍼의 자기 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죄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p364

 

브레일스포드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역사의 과학적 법칙보다 신념과 도덕을 토대로 한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형안의 분석가, 굴하지 않는 양심의 소유자로 유명했던 브레일스포드는 스스로를 유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결국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영합시켰다. 그 결과 지난날의 무게 있는 존재에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 p365

 

브레일스포드는 정직성을 의미했다. 독립성을 의미했다. 이기적이지 않음을 의미했다. 특히 당시 정치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던 젊은이와 지성인에게 그는 그런 의미였다.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나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복귀시키는 것 역시 반대자의 힘이라는 것을 브레일스 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p366

 

그는 영국의 마지막 ‘반대자’였으며, 그 때문에 중요한 사람이 됐다.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p367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주로 견과류와 치즈를 먹고 살았지만 손님들에게는 스테이크 요리를 해주는 걸 즐겼고, 사람들이 자기가 해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길 좋아했다. 그는 파이프 담배를 좋아했고 채식식사와 함께 몰트 위스키와 ... 그보다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보다 힘을 북돋워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그는 시골 벽난로의 흔들리는 불빛 옆에 앉아서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는 프랑스어로 ‘상냥함’이라고 부르는 자질을 갖고 있었는데, 그 상냥함은 남자다운 매력이었다. 브레일스포드는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으나 그가 공언하는 믿음은 반종교적이었다. ... 그러나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10대 시절에 깊은 영적인 위기를 겪었고 신앙을 잃었으며 불같은 불가지론자가 됐다. 나는 그가 누군가에 대해 신랄하거나 고약하게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그 부드럽고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편협하고 험악하며 종파적인 사람으로 돌변했다. 모든 교회와 모든 종파, 모든 성직자를 비방했으며 천주교의 뚜쟁이와 우상 숭배자를 비난하는 존 녹스의 독설과 악담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p369

 

브레일스포드는 자유주의 소수파로 발칸 전쟁에 갔다가 사회주의 소수파가 되어 돌아왔다. .. 그의 신조는 과학적이고 논증적인 마르크스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사회주의였다.... 톨스토이는 세기가 바뀔 무렵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존경받는 작가였다. 연민과 겸손의 사회주의, 인정이 있는 농부와 겸손한 마을 사람의 사회주의라는 톨스토이의 단순한(혹은 단순하게 보이는) 사회주의가 옥스퍼드의 연구원에게, 그리고 산업혁명의 발상지였고 당시에도 여전히 산업혁명의 요새였던 랭커셔의 <맨체스터 가디언> 논설위원에게는 오히려 색다르게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p373

 

브레일스포드는 결코 페이비언주의자도 아니었고, 권력에 굶주린 초이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관료적인 이미지에 맞게 사회를 바꾸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유약함이나 명석함을 경멸했다.(경멸의 대가는 그 이상으로 돌려받았다).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역시 크게 신용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에 싫증을 느꼈으며 경제학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 그의 사회주의는 역사의 과학적 법칙ㅂ다는 신앙과 도덕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머리나 재력의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가슴의 사회주의였다. 따라서 그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p375

 

그에게 인도의 독립은 영국의 양심 문제였다. 기독교의 옛 가르침처럼 노예는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 주인은 노예를 소유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어 결국 영혼을 잃고 파멸할 것이었다. ... “인도인들이 얼마나 내 덕을 많이 보고 있는지는 말로 다할 수가 없지. 그들은 아직 내가 필요해. 그러나 인도가 독립을 자축하게 됐을 때 날 초대하진 않을걸세.” 실제로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p379

 

영국이 인도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노예가 주인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주인이 노예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더 크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동당의 옛 동지들까지도 그의 입장을 달가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독립을 중요시 했다. p379

 

나는 좌익도, 한결같은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 시절에 노엘과 클레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몇 안 되는 좌파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노엘은 나를 친구로 삼았던 것 같다. ...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의 공산주의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교조주의와 무조건적인 동조, 비밀경찰과 테러 행위, 끝도 없는 신학적 궤변 등은 모두 그의 비위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파시즘과 나치즘이 꾸준히 지지를 얻는 것을 지켜보면서 점차 소련공산주의를 파시즘과 나치즘을 상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됐다. p384

 

그는 공산주의자에게 그들의 관념적 ‘순수성’을 단념하고 파시즘을 저지하고 물리치는 데 더 치중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에게 1970년대의 용어로 말하면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보다는 ‘유로코뮤니스트’가 되라고 촉구했다. p385

 

브레일스포드는 그들의 배반과 연출된 자백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에 대항할 다른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었겠는가? 그의 양심은 다시 권력에 대한 신봉에 저항하는 독립적인 반대자가 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정치현실에 대한 감각은 그에게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그는 악을 용서하거나 눈을 감아버렸다. 브레일스포드의 마음과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완벽하게 간파한 공산주의자들은 브레일스포드를 능란하면서도 신중하게 조종했다. p388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가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복귀시는 것 역시 반대자의 힘이라는 것을 브레일스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그는 양심을 환경에 맞추었다. 오랜 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마이스키를 믿지 않았으며 스탈린주의자들의 선전과 공산주의의 목적 역시 깊이 불신하게 됐다. p390

 

다른 좌파들과는 달리 나는 노엘의 문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별을 할 때, 그는 나를 결별수단으로 이용했다. p391

 

마침내 대사의 사무실로 안내됐을 때 마이스키는 그를 ‘브레일스포드’라고 불렀다. 25년 동안을 ‘노엘’이라고 불러왔는데 말이다. “브레일스포드, 다신 이곳을 찾지 말게. 찾아온다 해도 만나주지 않을걸세. 우린 이제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

브레일스포드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난 영국 국교회 반대파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알거 같네. 크롬웰을 위해 스튜어트 왕조와 싸워 승리를 바쳤지만 그 뒤 크롬웰이 그들을 버리면서 너희들의 일은 끝났다고 말했을 때 말일세.” p396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p397

 

프리트베르크 -19세기의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단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 p412

 

그러고는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어렵게 협상했던 네덜란드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 젊은 직원이 아직 몇 가지를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기꺼이 양보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만, 귀사에서는 우리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 없으며, 따라서 합의하신 1만5천파운드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드러커, 자네는 다른 누군가의 평판을 방어해 주는 변호사가 아니네. 자넨 은행가이고 자네가 얻거나 잃는 평판은 모두 자네 자신의 거야.” p414-415

 

자네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우린 자넬 그 보험회사에 다니게 놔두었을 거야. 우리는 이 회사의 공동경영자를 위한 일종의 비서로서 자넬 채용한 거야. 그런데도 자넨 회사에 도움이 될 일을 해서 봉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도통 생각하지 앟는군.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다음 주 화요일까지 자네의 계획표를 서면으로 제출하게. 자네에게 맡겨진 일을 더 잘 해나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란 말이야....

부족한 점이 있으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주려면 봉급은 왜 주나?

그제야 나는 모시기로 되어 있는 세 명의 공동경영자를 돌아보게 됐고, 그들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을 물어보았다. p416

 

일단 상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효과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하급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해결방안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프리트베르크의 휴지통을 비우지 말고 다음 날 아침에 내가 점검할 때까지 놔두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3일도 안 돼 회계상의 혼선이 없어졌다. p417

 

책을 통해 경제전문가가 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은행업이란 사람을 다루는 일이야. 앞으로는 사람을 관찰해 보게. 내가 관찰해 볼 만한 몇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헨리아저씨였다. p417

 

사과할 것 없네. 그 사람은 나를 유대인 속물로 생각하겠지. 맞아, 난 유대인 속물이야. 하지만 내 말을 기억해두게. 5년 안에 그 사람은 내가 말한 대로 하게 될 거야.

5년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그 허세덩어리 목사는 일주일에 두 번 정오음악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입장료를 받아 전쟁으로 부서진 시티 교구의 교회들을 수리하는데 사용했다. p423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단지 상인이 게으른 거지. 고객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다고 말해서는 안 돼. 고객을 ‘재교육’시키려고 해서도 안 돼. 그건 상인이 할 일이 아니거든. 상인이 할 일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지. 만일 고객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같다면, 밖으로 나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점과 상품을 살펴보는 거야. 그러면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단지 그들의 현실이 상인의 현실과 다를 뿐인 거야. p424

 

고객의 불만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해 p426

 

대신 베른하임 백화점에서 어느 정도의 감소량이 정상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네. 그러고는 6개월마다 시행되는 재고조사에서 정상적인 감소량보다 상품이 적게 줄어든 매장의 직원들에게는 후한 보너스를 지급했지. p426

 

그 체인에서 10여 명의 구매자들과 얘기를 해보았다. 그들은 아주 영리하더구나. 하지만 다들 회사를 위해 싸게 구매하고 있었지. 고객을 위해 싸게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잘못된 일이야. 고객을 잃고, 매출을 잃고, 수익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p427

 

우리에게 정식으로 소개시켜 달라고 하지 그러셨소? 그 회사와 회장을 다 알고 있는데 말이오. 영국에서는 제대로 된 소개가 없으면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요. 프리트베르크가 말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부탁드리지 않은 겁니다. 전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p438

 

만일 내 제안을 팔아야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요. 내 제안은 사람들이 듣자마자 ‘그렇지’라고 할 정도로 아주 간단한 거니까. p442

 

이 채권은 지금 팔리는 가격보다 최소한 6배의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난 관심이 없소.

어째서죠?

당신들이 그 채권을 사려는 이유는 단 하나, 확실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죠. 난 내가 그 회사를 위해 기여하고 뭔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소. 머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오래전에 버렸지요. p444

 

40년 전에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얻었던 수많은 즐거움은 내가 거의 사라져 가는 인종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데 있었다. 사라져 가는 인종이란 발자크가 가장 잘 묘사했던 19세기 프라이비트 뱅커(부유한 사람들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주는 사람을 말함)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전성기를 구가한 것은 물론 런던의 시티에서였다. p446

 

로베르트와 파르크하슨 -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친 영향

로베르트는 어둡고 냉소적이며 늘 사색에 잠겨 있는, 아주 잘 생긴 남자였다. 라파엘 이전의 낭만주의 화가들이 그린 타락한 천사의 초상처럼 생긴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데다가 기품 있는 모습이었고,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이 아주 완벽한 것으로 봐서 새빌로의 최고급 양복점에서 맞춘 옷을 아주 뛰어난 ‘신사의 시종’이 매일 아침 털고 닦고 다림질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우울하고 감정적이었으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p452

 

3. 내가 저자라면

 

<전주의제21 10년의 발자취>를 쓰는 동안, 상현이 이 책을 권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해가고 있는 드러커의 자서전 형식이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그런 글을 쓰는데도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맞았다. 나는 이미 가까이 함께 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지만, 실은 내가 그들을 통해 본 모습과 배우게 된 것들에 대해 쓰고 있었다. <전주의제21 10년의 발자취>가 또 다른 의미에서 나의 30대 풍광에 대한 기록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강으로 가라(가제)>를 구상하면서, 병곤선배로부터 강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한 부분을 좀 더 확대시켜보면 어떻겠냐는 주문을 받았다.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 보였다.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피터드러커의 자서전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인물의 선정과 전개방식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통상적인 자서전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통상적인 자서전이 자신의 얘기를 직접 혹은 제3자가 기술하는 방식인데 반해, 이 책은 드러커가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커 자신을 비추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p6

 

적어도 ‘헤메와 게니아’의 이야기는 그들의 자서전 같다. 관찰자로서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치열한 체험자로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들을 설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평범함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서전을 빌어 피터 드러커를 통해 그려진 인물들은 하나같이 시대의 흐름을 앞질러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피터는 왜 그런 사람들의 삶에 남달리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구성

인물과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분야를 적정하게 구성하여 인물들을 설정하고, 내용의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 엘자와 소피의 이야기에서는 교육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과 자신이 교육자의 길로 나서게 된 동기 그리고 자신에게 교육자로서 어떤 삶의 지향을 가지는 지를 다루고 있다.

 

각 장의 구성은 인물들의 이름과 부제(예, 엘자와 소피 ;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그리고 각 장이 가지는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열줄 정도의 주석이 달려 있다.

 

“본문 중에서”

본격적인 장의 내용을 시작하기 전, 서두에 설치된 “본문 중에서”는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문단을 머리에 달아, 독자를 유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매우 세련된 편집 기술로 이해된다. 특히 자서전과 같이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서술해야 하는 자서전 같은 글의 특성상 단점이 될 수 있는 평범한 출발의 한계를 보완해주고 있다.

 

그는 달필이다.

프로이트를 프로이트적으로 분석하여 비판한 점이 그렇고, <헨슈와 세퍼>에서 세상의 가장 큰 죄가 결국 무관심이라는 지적은 글의 극전전환과 멋진 구성을 보여준다. 매우 맵시 있는 글솜씨가 인상적인 장이었다. 또한 드러커는 역사와 사회에 또 다른 시각을 통해 자서전이 낼 수 있는 맛을 잘 낼 줄 아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물이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로 역할을 해가는 과정에서 시대적 조류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피터 드러커 자신의 사고정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녹여내고 있다. 예를 들어 <크레머>에서 드러커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국제적 리더십에 관한 주장을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지속가능한 리더십에서 위대한 개인 지도자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의 고민과 연구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묘사를 통해 사람의 성격과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그의 말대로 통찰력이 있는 관찰자로서 그의 장점이 글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가 가진 통찰력은 그의 관찰자적인 오랜 습관과 훈련을 통해 형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1 그의 옷차림도 외알 안경만큼이나 이상하고 구식이었다. ... 헐렁한 바지에 트위드 재킷을 입고... 멋지게 재단된 승마바지를 입고 반질반질 광택을 낸 무릎길이의 검은색 승마부츠를 신고.. 콧소리가 섞인 나른한 목소리... 얼굴 위에 돛처럼 우뚝 솟아 있는 뾰족하고 큰 코, 높은 광대뼈, 뾰족한 턱,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푸른빛이 도는 회색 눈, 사냥개와 이리의 중간쯤 되는 인상을 주는 그는... p315

 

예2 로베르트는 어둡고 냉소적이며 늘 사색에 잠겨 있는, 아주 잘 생긴 남자였다. 라파엘 이전의 낭만주의 화가들이 그린 타락한 천사의 초상처럼 생긴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데다가 기품 있는 모습이었고,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이 아주 완벽한 것으로 봐서 새빌로의 최고급 양복점에서 맞춘 옷을 아주 뛰어난 ‘신사의 시종’이 매일 아침 털고 닦고 다림질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우울하고 감정적이었으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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