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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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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5일 09시 12분 등록
* 원제 : Mans and His Symbols

. 저자 소개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기초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마지막 글이 실린 『인간과 상징』이다. 이 책은 자신의 연구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 의해 이해되기를 바랐던 카를 융의 소망이 실현된 역작으로 인간의 영혼에는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는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사고의 바탕이 되는 원시적 감성, 공포,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융은 이 책에서 그 무의식의 세계를 검증한다.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과 상징』의 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융 자신이 집필한 부분으로 일종의 입문서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무의식의 세계와 원형과 상징, 그리고 꿈의 세계를 소개한다. 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은 조지프 헨더슨 박사의 글로 고대의 신화, 전설, 원시적인 제의에 원형적인 양식이 있음을 예시한다. 3부 개성화 과정에서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박사는 한 개인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인지하고 존중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은 회화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대하여 인간이 되풀이해서 느껴온 것을 아닐라 야페 박사가 설명한다. 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을 쓴 욜란데 야코비 박사는 흥미롭고 성공적이었던 사례사의 분석을 통해 꿈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융의 사상 개요>

첫째, 융은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중심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문명화된 의식이다. 의식은 자아의 세계이다. <자아>라는 것은 <자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우리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는 우리의 중심인 자기를 향해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는 자아의 세계가 전부 로만 착각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의 세계와 같이 설명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해리는 자아의 세계를 전부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의 자리에서 노예의 자리로 추방당하였다. 우리는 중심을 상실하였 다. 현대인의 마음은 에덴동산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서글픈 운명이 맺혀 있다.

 

융은 희미한 잔영으로만 남아있는 자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왔고, 오늘 우리에게 그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네주고 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자기의 세계는 너와 내가 서로 넘나드는 화해의 세계이고 통합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보다 보편적이며 진실한 세계이고 영원한 세계이다. 오히려 그곳은 그늘에 가리워진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이다. 그리고 중심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꿈을 통하여, 신화를 통하여, 상징을 통하여 자기의 세계에서 자아의 세계를 향해 건네주는 메시지에 우리는 귀를 모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의식의 치명적인 손실은 꿈에 의해 보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저 깊은 내면의 무의식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하겠다.

둘째, 우리의 세계는 설명 가능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세계 안에서의 '이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으로는 마음의 전체성을 결코 파악할 수 없 다.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판적 이성이 지배하면 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곤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우리가 의식하면 의식할 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삶을 통합할 수 있다." 의식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겸허함을 상실한 채, 이성의 왕국으로만 전진하려는 현대문명의 기나긴 행렬은 사실 막대한 손실을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문명은 합리성에 의하여 바벨탑을 축조하였다. 완고한 탑의 벽돌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합리성의 질료는 비합리성을 신화로 매도하였다. 왜냐하면 바벨탑의 세계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시대는 비합리성이 사멸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비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가. 단지 이성의 등불이 건져내지 못하는 심연의 세계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바벨탑이 감내해야 할 불길한 징후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심연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마치 빛이 소멸하고 어둠에 깃든 저 밤하늘에는 단지 우리 눈에 보이는 저 별만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연은 존재를 망각케 한다. 하지만 존재는 심연에 앞선다. 오히려 존재는 어둠을 품는다. 심연과 어둠에 서 있는 존재는, 비록 설명되지 않을지언정, 자명한 존재이다. 그래서 은폐되어 있고 불가해한 존재 (essentia absconditus et incomprehensibilis)는 모르는 존재(essentia ignotus)가 아니다. 사실 '비합리 적인 것'은 모르는 것이나 인식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조차도 이름붙일 수 없을 것이다. 이름은 존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실로 융의 동시성 이론이나 죽은 자와의 대화는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빈약한 기능인가를 예증해 준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는 않고 설명되지는 않는 세계가 우리 가까이에 있고, 그리고 그 세계가 우리를 인도한다고 융은 말한다.

셋째, 융은 우리 각자의 生이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 심성의 뿌리에는 저 깊은 무 의식의 세계, 전체의 세계와 닿아 있다. 그렇다면 각자의 生은 결코 가볍거나 보잘 것 없는 生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生은 우주를 닮아 있다. 영원의 세계인 무의식의 현현이 각자의 生인 것이다. 플레로마의 세계에서 클레아투라의 세계로 뛰어든 최초의 사건이 生이다. 우리의 生은 불멸의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세계 속으로 뛰어든 사건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生은 끊임없는 성숙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 지향 이 바로 '개성화'인 것이다.

우리는 융을 통하여 살아있음()이 결코 예사스럽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제 생은 환희이고 생명은 경 이로움이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펄럭거리며 비상하는 저 새를 보자. 새는 날기 위하여 얼마나 지난한 시간동안 새가 되려는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긴 계절을 인간의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백 년의 삶을 만나기 위하여 백 만년 동안, 그 한 순간 만을 꿈꾸어 온 존재이다. 백 만년 겨울잠의 기나긴 제의를 통하여 우리의 삶은 주어진 것이다. 우리 삶의 밑둥에는 백 만년의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뿌리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단지 백 년을 사는 삶이 아니다. 우리는 백 만년을 몸으로 살아가는 푸른 생명나무이다. 그 생명나무가 가장 찬연한 열매를 맺는 그 순간, 그 절묘한 순간이 바로 지금의 生이다. 그러기에 生은 저 영원의 빛의 드러남이다. 또한 지금의 生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구현 (Individuation)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꿈은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예언한다. 꿈이란 자기와 자아가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삶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심의 소리이다. 꿈은 삶의 해리를 통합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고백하였다면, 융은 "꿈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지금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꿈을 타고 우리에게 건너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서늘하게 만났던 융에 대한 감정은 이제는 따스한 할아버지로, 예리한 관조의 시선을 통 하여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해 주는 영혼의 의사로, 오늘의 가난한 마음과 가난한 문명에 한 줄기 빛 을 선사하는 천상의 헤르메스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꿈은 마음의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이며 그 문은 저 우주의 태고적 밤을 향하여 연다. 그것은 아직 자아의식이 없던 시기의 마음이었고 자아의식이 일찍이 도달할 만한 곳을 훨씬 넘어서 있는 마 음이 될 태초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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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

 

 

. 내 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 카를 구스타프 융

 

꿈의 중요성

 

일상생활에서 종종 마주치는 용어나 이름이나 한 장의 그림 따위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백한 의미 외에도 특정한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경우 우리는 그것을 상징이라 부른다. 21

 

결국 어떤 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인간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확연성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는 법이다. 말하자면 이 범위 밖으로는 인간의 의식적인 지식이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현실 지각에는 무의식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우리가 우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감각이 현실의 사상 事象, 현실의 풍경이나 소리에 반응할 때라도 이 현실의 사상은 어느 정도 현실의 영역에서 마음의 영역으로 옮겨간다고 하는 점이다. 일단 마음의 영역에서 옮겨가면, 이 현실의 사상은 심적 사상 심적사상, psychic event으로 변하는데, 이 심적사상의 긍극적인 정체는 알 수 없다(그 까닭은 우리의 마음 자체가 그 심적 실체 psychic substance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경험에는 무수한 불가지적인 요소가 있는 데다, 인간으로서는 물질 자체의 본질을 규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어떤 구상적 대상도 완전히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23~24

 

우리가 <마음 psyche>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의식 및 그 의식의 내용물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26

 

인류학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개 민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장 보편적인 정신 착란 가운데 하나를 <영혼의 상실 loss of a soul>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곧, 저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의식이 눈에 띄게 붕괴된 (전문적으로 말하면 의식의 분열dissociation)상태를 뜻한다. 27

 

개인이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을 자기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심리학적 사실이다. 28

 

의식적으로 서술하는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고 전개가 있고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꿈의 경우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상의 좌표가 전혀 다른 것이다.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그것을 조사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 보는 물건을 손에 넣고 그 모양을 자세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엎어 놓고 보고 뒤집어 놓고 보는 것처럼 꿈도 그렇게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4

 

<자유> 연상방법은 꿈을 꾼 사람을 꿈의 내용물로부터 갈지자로 유리시켜 버리고 말지만 내가 고안한 방법은 오히려 중심에 꿈의 이미지를 두고 그 주위를 빙빙 도는 것 같은 방법이다. 나는 꿈의 이미지를 중앙에 두고 그 이미지를 사방에서 파악하면서, 꿈꾼 사람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부리는 수작은 전적으로 무시한다. 37

 

내가 <아니마>(영혼 혹은 생명력을 뜻함)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남성이 지닌 여성적 측면이다. 이 여성적인 측면은 본질적으로 주변과의 관계,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열등한 기능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여성적 측면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타인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은폐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38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시적인 것, 혹은 미지의 것에 저항한다. 38

 

무의식에서의 과거와 미래

 

꿈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 근본적인 원칙이 있다. 첫째는 꿈을 하나의 사실로 다루어야 하며 꿈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전제도 사전에 상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꿈이라는 것이 무의식의 고유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40

 

조금전까지 할 말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것을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든지, 친구를 소개하려고 그의 이름을 말하려는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각나지 않는 상태>, 생각이 무의식이 되었기에, 또는 적어도 잠깐이나마 의식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의 감각 기능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들릴락 말락 하는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 소리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울림을 멎었다가 다시금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주의력이 증가하거나 감소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소리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41

 

니체가 말했듯이, 자존심이 좀처럼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 기억이 오히려 길을 비키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잊어버린 기억 가운데서, 그 불쾌감과 견딜 수 없음 때문에 잠재의식화한(그리고 의식적으로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 기억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억압된> 내용이라고 부른다. 47

 

이 같은 내용물이 대개 무의식화하고 마는 까닭은, 의식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생각 중 어떤 것은 정서적 에너지를 잃고 잠재의식화하는 수도 있다(즉 더 이상 의식의 주의를 끌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잠재의식화하는 것은, 그 생각이 우리의 흥미나 관심을 끌기에는 미흡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식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49

 

프랑스의 수학자 푸앵카레, 화학자 케쿨레의 과학적 발견은(그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무의식에서 문득 솟아난 <계시>덕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른바 <신비적> 체험 또한, 한순간에 <모든 과학의 질서>를 깨닫게 되고만 돌연한 계시와 관련이 있다.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인간의 이중성에 관한 강한 느낌>과 맞아떨어질 이야기를 찾기 위해 수년을 보내던 중, 꿈속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줄거리를 계시받았다. 51

 

꿈의 기능

 

숫자는 숫자인 동시에 신화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피타고라스학파에게 숫자는 신성한 것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실제적인 데 숫자를 쓰고 있는 우리는 이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56

 

꿈속의 이미지는 깨어 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그러한 이미지에 상응하는 개념 또는 경험보다 훨씬 회화적이고 생생하다. 그 까닭 중 하나는, 꿈속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에 담긴 무의식적인 의미가 표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사고하는 상태에서는, 우리는 의미의 표현을 합리적 표현이라는 한계 안에 가두어 버리려고 한다. 의식의 언어적 표현이 생동감을 잃는 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심리적 연상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57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일상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Du kannst mir auf den Buckel steigen(내 등에 기어오르려면 기어올라)!>이라는 말은, <네가 뭐라고 하건 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식 표현을 빌리면 <Go jump in the lake(물에나 풍덩 뛰어들어)!>, <너 좋을 대로 해>가 되겠는데, 이런 관용구도 꿈속에서는 실제로 호수에 풍덩 뛰어드는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다. 58

 

이 꿈의 이미지는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은유적인 방법을 써서 간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까닭은(이러한 현상은 참 빈번히 일어난다) 꿈이 의도적으로 의미를 <위장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이 담겨 있는 회화적인 언어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우리는 일상의 경험에서 어떤 사실을 되도록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언어에서든 사고에서든 공상적인 요소는 버려야 한다고 배운다. 58

 

남아메리카의 어떤 인디언 부족은 깃털도 날개도 부리도 없으면서 저희 부족은 붉은 아라라 앵무새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까닭은 미개인 세계에는 우리의 <합리적>인 세계와는 달리 사물과 사물 사이에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60

 

그에 반해 우리가 영위하는 사물의 세계에서는 심리학자들이 이른바 심리적 동일성, 혹은 <신비적인 관여>라고 부르는 것이 제거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미개인들의 세계에 다양한 색채와 풍부한 환상적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 연상의 후광이다. 이런 것들을 제거한 지, 혹은 잃어버린 지 하도 오래되어 우리는 이런 것을 만나도 이제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의식의 경계 저쪽에 잠복하고 있던 이런 것들이 이따금씩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도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떠오르는 것으로 여기고 만다. 60

 

프로이트는 이 꿈의 이미지를 <고태의 잔재 archaic remnants>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꿈의 내용이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의 마음에 잔존해 온 심리적 요소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무의식을 의식의 부속물쯤(혹은 회화적으로 표현하자면 의식에서 거부된 것을 쏟아 넣는 쓰레기통쯤)으로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다. 61

 

꿈의 일반적인 기능은 꿈 소재를 산출함으로써 심적 평형psychaic equilibrium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꿈은 이로써 섬세한 방법으로 심리적인 균형psychological balance을 이루게 된다. 나는 이것을, 우리 심리 구조에서의 꿈의 보완적(혹은 보상적) 역할이라고 부른다. 비현실적인 이상에 사로잡힌 사람,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자신의 능력과 어울리지 않게 과대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거나 추락하는 꿈을 꾸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늘을 날거나 추락하는 꿈은 그들의 인격적 결함을 보상해 주는 동시에 목하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계획이나 걷고 있는 도정이 위험한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66

 

현대인은 자기의 본성대로 살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정신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이런 현대인의 의식의 불균형은 무의식에 의해 보상돼야 한다. 66

 

꿈을 다룰 때 고지식한 태도를 준수하는 사람은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꿈은 인간의 편도 아니고 인간적인 것도 아니다. 꿈은 아름답고 너그러운 동시에 잔혹할 수도 있는 여신의 정신을 닮은 자연의 숨결에서 솟아난다고 보아도 좋다. 69

 

나는 문명이 사회를 발전시킨 결과 인류가 얻게 된 크나큰 이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얻은 이익이다. 내가 인류의 원시 상태와 문명상태를 비교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런 손익의 균형을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69

 

원시인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합리적>인 현대인 이상으로 본능에 지배되는 경향을 보인다. 69

 

정신적 안정을 위해, 나아가서는 생리적 건강을 위해 의식과 무의식은 총체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고 서로 평행을 이루며 작용해야 한다. 만일 이 양자가 서로 분리되거나 <분열>되면 심리적 장애가 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이 합리적인 부분에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 부호인데, 이것을 해석하면 빈곤한 의식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잊었던 본능의 언어를 다소 소생시킬 수 있다. 70

 

꿈의 분석

 

기호는 그것이 나타내는 개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 반면, 상징은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의미 이상의 어떤 것을 나타낸다. 더욱이 상징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다. 75

 

꿈속에선 상징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꿈은 생기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은 상징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寶庫(보고)라 할 수 있다. 75

 

상징은 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징은 모든 종류의 심적 표현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상징적인 사고와 감정, 상징적인 행위와 상징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상징적 양식의 배열에는 무생물까지도 무의식과 상호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계가 그 임자의 죽음과 때를 같이해서 멎어버리는 등의 사례는 수없이 확인되었다. 상수시에 있던 프리드리히2세의 궁전 추시계가 국왕이 임종하는 순간 멎어 버린 것도 이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75

 

나의 직관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한 의외의 통찰로 이어졌다. 즉 나의 꿈은 <나 자신>이고, <나의> , <나의> 세계, 타인이 나름의 이유나 목적에서 만들어 낸 이론적인 구조와는 전혀 다른 전적인 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80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그 개인에서 분리되어 인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가 오류가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요즘 같은 사회적 동란과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개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 많은 것들이 개인의 정신적, 혹은 도덕적 자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을 바르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화나 상징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81

 

유형의 문제

 

심리학을 제외한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는 하나의 가설이 비개성적 주체에 적용되는 것도 타당한 것으로 용인되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두 개체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에 직면해야 한다. 이 양자는 어느 쪽도 자신의 주관적인 인격을 박탈당할 수 없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비인격화할 수가 없는 것이다. 82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대극성의 조화 balanced opposite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의 경우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은 어떤 판단도 최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이 생기는 까닭은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관점이 심리학 위에도 밖에도 없기 때문이다. 83

 

나는 이성을 쓰는 사람이란 곧 <사고하는> 사람-자기 자신을 타인이나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지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능이 있는데도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을 통해 적응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었다. 86

 

개념의 정의에 따르면 감정은 정서emotion가 아니다(정서라고 하는 것은 그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비의도적인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감정>은 사고나 마찬가지로 <합리적인>(즉 질서를 부여하는) 기능이지만 직관은 비합리적인 (무엇인가를 감지하는 perceiving) 기능이다. 직관이라는 것은 하나의 <육감>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판단 작용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내적 외적 상황에 좌우되는 비의도적인 것이다. 직관이라는 것은 감각 지각 sense perception같은 것인데, 이 감각 지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이 아닌 신체적인 요인에 의한 외적 자극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비합리적이다. 87

 

그러니까 <감각>,(감각 지각)은 우리에게 어떤 것의 존재 여부를 알려 주고, <사고>는 그 존재하는 것의 정체를 알려 주며, <감정>은 그 존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알려 주며, <직관>은 그 존재하는 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며 어디를 지향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87

 

우리는 꿈의 상징이 대체적으로 의식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심리 세계를 그대로 부여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의미와 목적성은 의식만이 누리는 특권은 아니다. 이 의미와 목적성은 생명체 안에서 고스란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생물의 생장과 정신의 생장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식물이 꽃을 키워내는 것처럼 마음도 상징을 창조한다. 우리의 꿈 하나하나가 바로 이 과정의 증거이다. 93

 

꿈 상징에 나타나는 원형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리적인 충동으로 주로 감각을 통해 지각된다. 그러나 이 본능이라는 것은 공상 중에도 나타나 대개의 경우 상징적인 이미지로만 나타난다. 바로 이 <나타남>을 나는 <원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원형의 기원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원형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나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직접 상속에 의한 유전이나 이주에 의한 <雜交(잡교) 受精(수정)>이 이루어진 일이 전혀 없는데도 나타난다. 101

 

우리는 개인적인 콤플렉스가 일방적이고 오류에 빠진 의식의 태도를 보상하는 것으로 믿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신화도 인류 일반의 고뇌와 불안(기아, 전쟁, 질병, 연로,. 죽음에 관한)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치유의 방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16

 

신이나 악마는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신이나 악마는 현대인에게, 하루도 가실 날이 없는 막연한 불안이나 심리적인 갈등, 약물, 알코올, 담배, 먹을 것에 대한 끝없는 욕구-그리고 무엇보다 갖가지 신경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121

 

인간의 영혼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영혼의 주인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기의 기분이나 정서를 제어할 수 없는 한, 무의식적인 요인이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계획이나 결정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의 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무의식적 요인이 생기는 것은 원형이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기 분열 상태를 인식하지 않기 위해 칸막이 체계system of compartment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니까 외부 생활과 자신의 행동 영역의 특정 부분을 각각 다른 서랍에 넣어 놓고 서로 대면시키지 않는 것이다. 122

 

초월적인 존재 supreme being(하나든 여럿이든)와 내세의 삶이라는 관념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다. 이러한 관념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인뿐이다. 127

 

자기 존재에 보다 넓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그러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자신을 떠돌아다니는 천막 직공에서 더도 덜도 아닌 존재로 인식했다면 성 바울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131

 

상징의 역할

 

현대인은 저희가 자랑하는 <합리주의>(현대인에게서 신성한 힘이 있는 상징과 관념에 반응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린 원흉)가 인류를 심리적 <지하 세계>의 처분에 맡겨 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는 이제 <미신>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한다(혹은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해방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지극히 위험한 수준까지 그 도덕적, 정신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도덕적 또는 정신적 전통이 붕괴된 순간부터 인류는 이 세계적인 규모의 방향 감각 상실과 분열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는 것이다. 139

 

내가 생각학로는, 신앙은 절대로 사고(인간이 지닌 가장 강한 무기)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신앙인들은 과학을 두려워 한 나머지(덩달아 심리학도 두려워한 나머지) 인간을 지배하는 영원한 진리인 신성한 정신력에서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우리에게 신비와 누미노스(numinous, 신성한 힘)는 이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제 거룩한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40

 

원형은 이들이 지닌 누미노시티, 즉 살아 있는 개인과의 관계가 고려될 경우에만 생명력과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45

 

무의식은 마음이 그 발전 도상에서 버렸던 온갖 옛것들(환각, 공상, 구태의연한 사고 형태, 기본적인 본능 따위)을 되찾으려고 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인 것에 접근할 때 저항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무의식이 되찾으려고 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과 저항을 느끼는 이 잔재는 가치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내용물은 상당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잔재에 대해 불쾌감, 심지어는 공포를 느끼기까지 한다. 바로 이러한 잔재는,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신경증의 형태로 개인의 전인격 속으로 퍼져 나간다. 145

 

그 율법사는 유대교인들에게 옛날에는 하느님이 종종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지금은 왜 하느님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그 율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그 정도로 고개를 낮게 숙일 수 있는 이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152

 

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 조지프 L. 헨더슨

 

영원한 상징

 

오늘날의 정신 질환자의 꿈속에 나타나는 내용과 고대 신화는 대단히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이 측면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닌 까닭은, 현대인의 무의식은 아직도 원시인들의 신앙이나 제의에 나타나는 상징 형성 능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능력이 그들의 정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상징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의존하고 있고, 우리의 태도나 행동 또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161

 

영웅과 영웅의 창조자

 

영웅 신화의 보편적 기능이 영웅  개인의 자아의식, 즉 자신의 장단점에 대한 인식의 계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영웅은 이런 보호령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면서 세상이 마련하고 있는 문제와 부딪쳐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 이런 입문 의례를 치러내고 인생의 성숙기에 접어들면 영웅 신화는 그에게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영웅의 상징적 죽음이 개인에게는 성숙의 성취인 것이다. 166

 

영웅은 용을 때려눕힐 정도로 강자가 되려면, 그 파괴적인 힘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 먼저 그림자를 극복하고 동화시킬 수 있어야 자아에게 승리를 안길 수 있는 것이다. 180

 

여성을 구출하는 모티프는, 탐욕스러운 어머니의 이미지로부터 자기 아니마상을 해방시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해방이 달성되지 않는 한,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남성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188

 

바꿔 말하면 여성과의(결국은 성인 사회 전체와의) 성숙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자 관계에 묶여 있는 심적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단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영웅과 용의 싸움은 이 <성장>과정의 상징적 표현이다. 188

 

입문 의례의 원형

 

여성의 입문 의례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여성 근본의 수동성이다. 이것은 여성이 월경 주기 때문에 자율성에 심리적 제약을 받게 되는 사실에 의해서도 거듭 강조된다. 여성에게 이 월경주기는 입문 의례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월경 주기에 복종의 정신을 일깨우는 힘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 월경 주기를 통해 여성을 지배하는 생명의 창조력에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까 남성이 입문 의례를 통해 집단의 공동생활이 자기에게 맡기는 역할에 몰입하는 것처럼 여성도 이 월경 주기의 시작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자기 기능에 자신을 투입하게 되는 것이다. 200

 

초월의 상징

 

초월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꿈 상징은 뱀인데, 이 뱀은 로마 신화의 의신 아에스쿨라피우스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오늘날에는 의사의 직업을 나타내는 기호로 쓰이는 이 뱀은 원래 나무에서 사는 무독사이다. 이 뱀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의신의 지팡이를 감고 올라감으로써 하늘과 땅의 중재를 상징한다. 234

 

우리는 해방이나 자유의 상징으로 들새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트기나 우주 로켓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이들 제트기나 우주 로켓 역시 중력에서의 일시 탈출이라는 초월의 원리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고대인들에게는 안정과 평화의 상징일 수 있던 억제의 상징이 현대인에게는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 보장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38

 

3부 개성화 과정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마음의 성장 패턴

 

<자기>는 마음속에서 그 마음의 임자를 지휘하고 인도하고 어떤 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기>는 의식적인 인격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꿈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다. 꿈은 꿈꾼 사람의 인격을 끊임없이 발달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조정 기능의 중심으로 나타난다. 246

 

이 가능성의 발달하는 정도는 <자아> <자기>로부터 나오는 메시지에 얼마나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247

 

<자아>는 본래 임의의 욕구를 산출하고 그 욕구를 무한정 따르게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전체성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조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듯하다. 그렇다면 마음의 모든 체계를 밝힘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그것을 의식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곧 <자아>인 것이다. 247

 

그림자의 자각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통찰함으로써 이 그림자를 의식적인 인격 안으로 통합할 수만 있다면 개성화 과정도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 266

 

꿈을 꾼 사람이 이 무의식을 체험하는 방법은 몸 전체로 느끼는 방법뿐이다. 그러므로 꿈을 꾼 사람은 몸 전체로 느낌으로써 이 무의식을 만나고 여기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한다. 270

 

무의식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가감 없는 솔직한 자기반성과 삶의 전면적인 재편성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하기야 무의식을 진지하게 다루고 무의식이 야기하는 문제와 맞서자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진정성에는 너무 무관심한 나머지 의식하고 있는 행위의 도덕적인 측면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요컨대 무의식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기에는 너무 게으른 것이다. 272

 

아니마 : 마음속의 여성

 

한 남성이 지니는 <아니마>의 특성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에게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아니마는 흔히 조급하고, 우울하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274

 

남성의 인격 속에 잠재해 있는 부정적인 아니마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신랄하고 표독스러우며 여성스러운 말투로 던지는 의견으로 표명될 때가 있다. 276

 

이러한 아니마는 자연이 지니고 있는 어떤 속성처럼 무자비하고 잔혹하다. 오늘날까지도 유럽에서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는 마녀 신봉은 바로 이러한 독부 신앙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276

 

가장 자주 등장하는 아니마의 표상으로는 에로틱한 공상을 들 수 있다. 많은 남성들은 영화 혹은 스트립쇼를 보거나, 외설적인 사진을 보며 공상을 키워 나간다. 이것은 미성숙한 아니마의 원시적 측면으로, 대인감정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할 경우, 다시 말해서 인생에 대한 감정이 유치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이러한 아니마는 강박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277

 

아니마의 이 모든 측면은 우리가 그림자에서 관찰한 것과 똑 같은 경향을 지닌다. 즉 아니마 역시 투사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아니마는 남성에게 실제 여성이 지닌 특질로 인식되기도 한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처음 만나는 순간, <바로 이 사람이다!> 생각하고 바로 그 순간에 사랑에 빠져 버리는 것은 그 여자의 모습이 그 남자의 아니마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278

 

아니무스 : 마음 속의 남성

 

남성의 아니마상이 자기 어머니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듯이, 여성의 아니무스는 아버지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 딸의 아니무스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정한> 신념이라는 특수한 색체를 부여한다. 290

 

기묘할 정도로 수동적인 태도, 혹은 감정의 마비 증세, 혹은 무가치한 느낌까지 낳을 수 잇는 자신감의 부재, 이런 것들은 무의식적 아니무스의 의견 표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존재 깊은 곳에서 아니무스는 늘, <너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슨 일을 해봐야 소용도 없어. 무슨 일을 하건 네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 한다고 네 인생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니까>하고 속삭인다. 295

 

자기 : 마음의 정체성

 

개인이 아니마, 아니무스와 오랫동안 진지하게 맞서 온 결과 부당하게 아니마, 아니무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폐해를 극복하면 무의식은 다시 그 지배적인 성격을 바꾸어 정신의 가장 심오한 내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300

 

동양사람들과 서양의 일부 그노시스파 사람들은, <우주적 인간>이 구체적인 외적 실체가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이미지라는 점을 곧 인지했다. 가령 힌두 전통에 따르면, <우주적 인간>은 개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간 내부에서 유일하게 영생 불사하는 존재이다. 이 위대한 내적 인간은, 인간을 창조의 고통에서 끌어내어 근원적인 영원의 세계로 되돌림으로써 인간을 구제한다. 309

 

실제적인 용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인간 존재라고 하는 것은 개개의 본능, 즉 배고픔, 권력, , 적자생존, 종의 보존 같은 일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메커니즘 내에서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그 까닭은 인간의 주된 목적은 먹는 것, 혹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10

 

우리는 외적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범위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우리가 외계의 현실이 <그 자체로, 그리고 그것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311

 

<자기>가 자주 돌(보석이든 하찮은 돌이든)로 상징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언급된 바 있다. 암곰이나 사자가 갈고 있는 돌이 바로 <자기>를 상징하는 좋은 예이다. 많은 꿈에서 마음의 중핵을 이루는 <자기>는 종종 수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19

 

<자기>의 사회적 측면

 

집단을 억압하면, 개인을 억압할 때와 마찬가지 결과가 생긴다. 즉 집단이 신경증적인 분열이나 심리적인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의식의 반응을 억압하려는 이 같은 시도는 기본적으로는 우리 본능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40

 

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 아닐라 야페

 

신성한 상징-돌과 동물

 

우선 예술이 지니는 상징성과 그러한 상징성의 특징을 예시하기 위해 모든 시대를 통해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세 가지 모티프를 가려 뽑아 보기로 한다. 이 세 가지 모티프란 돌, 동물, 원의 상징이다. 357

 

원의 상징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인간이 외계를 파악하는 방법은 혁명적인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상향 이동>(중세 말에 정점에 달했던)이 역전하면서 인간은 다시 대지로 돌아와 자연이나 육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것이다. 376

 

일찍이 1911년에 칸딘스키는 그의 유명한 에세이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어느 시대든 예술의 자유에는 그 한계가 있는 법인데, 아무리 창조적인 천재라도 이 자유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법이다>라고 썼다. 386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벌거벗은 대상(곧 물질)과 벌거벗은 비대상(곧 정신)에 대한 두 가지 몸짓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상징적인 표현의 바탕이 되었던 정신의 균열을 반영한다. 이 균열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지식과 믿음의 갈등으로 나타났던 것이기도 하다. 이 균열은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점진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정신과 본능, 자연과 정신, 의식과 무의식의 균열로 발전하는데, 현대 회화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양자의 대립에 따른 정신의 상황인 것이다. 390

 

사물의 내밀한 혼

 

영국의 저술가 허버트 리드 경은 샤갈에 대해, 무의식으로 통하는 문턱을 완전히 넘는 일이 없이 <언제나 자기를 그 문턱에까지 데려다 준 대지에 한 발을 대고 있다>고 썼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무의식과의 진정 <올바른>관계 맺음을 나타낸다. 399

 

우연이란, 우리로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동적인 질서와 의미의 원리를 가리킨다. 이 원리는 <대상>속에서 <숨겨진 영혼>으로 나타난다. 402

 

초현실주의자들은 나뭇결이나 구름 모양 등을 환상적인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파울 클레가 지적했듯이) <우연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원망이다. 402

 

예술가는 자연의 외형에 대해서는, 예술을 비평하는 현실주의자들만큼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현실에 얽매여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은, 예술가는 자연의 외형적 산물에서는 창조 과정의 진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형태로 표현된 작품보다 형태를 부여하는 힘 쪽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파울 클레) 407

 

정신의 심층은 어두운 곳으로 내려갈수록 개체적 독자성을 잃게 된다. <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즉 자율적인 기능 체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집단적인 것으로 변모하다가 마침내는 육체의 물질성인 화학 물질로 보편화되면서 결국 그 특이성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육체를 이루고 있는 탄소는 탄소 그 자체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도 그 <최하층>으로 내려가면 곧 <세계> 자체이지, 더도 덜도 아닌 것이다. (카를 융) 412

 

나는 어릴 때, 인간은 추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보다는 동물이 훨씬 사랑스럽고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물한테까지 혐오감을 느낀 다음부터 나의 그림은 점점 도식적이고 추상적인 방향을 지향하게 되었다. (프란츠 마르크) 413

 

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 - 올란데 야코비

 

분석의 시작

 

이런 크로아상은 보통 <달의 이빨>이라고 불린다. 달로 상징적으로 암시되는 이 크루아상은 여성의 지배적인 힘을 강조한다. 431

 

무의식에 대한 공포

 

많은 사람들에게 돼지는 상스러운 성욕을 연상시킨다(가령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는 자기에게 정욕을 품은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다). 개는 충성스러운 동물을 대표하지만, 성행위에 분별이 없기 때문에 흔히 난교의 대명사쯤으로 불린다. 그러나 캥거루는 감싸고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모성을 상징한다. 444

 

결론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물리학자 파울리는 생명의 진화 개념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수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무의식적인 마음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 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최근까지는 종의 돌연변이는 임의로 발생하는 현상이며, 자연 선택에 의해 <의미 있는> 종은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도태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순전히 우연을 통해서만 이러한 선택 및 도태 현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구가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는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487

 

융 박사의 <동시성> 개념은 어쩌면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열쇠 노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성>개념의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가 어떤 종류의 희귀한 <경계 현상 border-phenomena> 혹은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까닭을 설명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87

 

원형적인 개념이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적어도 이 점을 우리가 궁극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내면적 정신적 경향에서, 다시 말해 인간이 설명해야 하는 여러 가지 내적 외적 사실 사이의 <만족스럽고> 합리적인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경향에서 솟아난 것임은 분명하다. 자연과 우주를 검증하려고 할 때마다, 객관적인 성질을 탐구하거나 발견하는 대신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말마따나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489

 

많은 수학적인 제1직관이나 <선험적>인 관념 중에서 심리학적을 보면 <자연수>가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보인다. 이 자연수는 의식적인 일상의 측정이나 계산의 조작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몇 세기에 걸쳐 점성술이나 수비학이나 풍수지리학 등의 원시적인 점술(모두 산술적 계산에 바탕을 둔 것으로 융 박사의 동시성 이론의 측면에서도 연구된 바 있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이 맡긴 뜻을 <읽어 내는> 실제적인 수단으로 존재해 온 것들이기도 하다. 495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융과 융학파의 대표 학자들이 무의식의 세계와 원형과 상징, 그리고 꿈의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한 저술이다.  융이 저술한 1부는 그가 사망하기 직전 쓴 것인데 일생을 바쳐 공들인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 쉽고 편안하게 서술되어 감동스러웠다. 2부는 고대 신화, 전설을 중심으로, 3부는 개성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였다. 4부는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 5부는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을 다루었는데 비슷한 주제를 각기 다른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이어 이 책을 읽으니 조셉 캠벨과 융의 공통분모가 더욱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느 지점에서는 두 사람이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삶의 한 축을 이루는 신화와 무의식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묘미가 느껴진다.

이 책은 융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내용, 시각자료, 그리고 편집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역자 이윤기의 노고가 느껴지는 번역 또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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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14:23:15 *.210.34.134

However, if you want to avoid black, try on fit bonny wedding dresses can be silver, plumb, gold, cream, etcetera. Wearing a stylish, colorful Chinese wedding dresses will make you more memorable, and it is much more festive than black. For the wintertime, try on corset wedding dresses that are dark red, dark blue, ruby, gold, purple, or emerald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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