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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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 해보는 러셀)
행동하는 지식인 [버트란트 아서 윌리엄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5. 18 ~ 1970. 2. 2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 연구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트런드 러셀이 아흔을 넘어서 쓴 자서전의 첫 문장이지요. 촘스키의 좌우명이 바로 이 러셀의 이 세가지 열정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지성 촘스키도 반하게 한 러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러셀은 600년 전통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명문가라고 하면 보수주의적 가풍이라 생각하지만 러셀 가문은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로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가문이었습니다. 17세기 스튜어트 왕가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윌리엄 러셀이 바로 그의 선조였으며, 러셀의 할아버지는 영국의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하며 선거법 개혁 등 영국의 민주주의를 이끈 존 러셀(1792~1878)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앰벌리 러셀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인습타파주의에 무신론자였고, 사회계약론과 자유론으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1842~1876)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집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적 힘’을 기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지복한 행복과 사랑 그리고 엄격한 교육 속에서 자랐으니 이토록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러셀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리고 1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조차 할 수 없었으니 따뜻한 부모의 사랑은 미쳐 느껴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러셀은 할머니 밑에 자라게 되었는데 러셀의 할머니가 손자 교육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아마도 부모의 빈자리를 가문의 자긍심으로 채워준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러셀은 자신의 성공요인으로 자긍심을 들고 있는데요. 부모 얼굴도 모르는 그였지만 할머니가 시시때때로 들려준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힘을 기른 것입니다.
그의 할머니 러셀 백작부인은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다른 부문에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다윈주의의 지지자였으며, 러셀에게 사회 정의에 대한 시각을 키워주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던 성서 이야기인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라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러셀의 좌우명이 되었고, 러셀은 일평생 이 좌우명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범을 보여주게 됩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자기관리
할머니 아래에서 자란 러셀의 사춘기는 굉장히 고독했으며, 그는 몇 차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회고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뉴사우스게이트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이 있었는데 혼자 거기에 가서 일몰을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수학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그의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어린 시절의 그의 고독이 얼마나 사무치게 깊은 것이었는지 또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외로움, 고독, 견딤이 주는 의미를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고독은 고통이었지만 그를 성숙한 인격으로 만들어 주는 발판이 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러셀의 성장기를 대표할 만한 일화를 하나 더 엿볼까요.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습니다.
삿갓조개, 말미잘, 바위, 모래, 고깃배, 그리고 등대. 삿갓조개를 잡아당기면 바위에 착 달라붙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척 인상 깊었으므로 애거서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삿갓조개들도 생각을 해요?” 그녀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럼 배워야지요.” 내가 응수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나, 배움에 대한 생각이나 좋은 학자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일화라고 보여집니다.
러셀은 살아가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의 부모와 가문을 욕되지 않게 하겠다는 본능적인 삶의 충동을 어렸을 때부터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철저한 시간관리로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한 것입니다. 그는 부모 없이 자란 아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욱 엄하게 자기관리를 했다고 하지요.
러셀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가 편지를 주고 받은 이들은 톨스토이, 네루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그가 받은 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고 하지요. 그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면 오전 8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신문을 읽고, 편지를 썼으며,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는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을 만나거나 인터뷰를 했으며, 2시부터 4시까지는 독서를 하였고, 그 후로 7시까지는 글을 쓰거나 저녁모임을 가진 후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글을 쓰며 하루를 마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0살이 넘어서도 이 일과표대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하니 대단한 자기관리 의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념의 실천
러셀은 가문의 가풍을 이어받아 매우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는데요. 러셀의 자유주의 정신은 실험학교를 세우는 것으로 완성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27년 러셀은 두 자녀가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아내와 함께 ‘비콘 힐 스쿨’이라는 학교를 직접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러셀은 당시 기독교 사상만을 강요하며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영국의 주입식 교육을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나아가 그는 학교는 창조적인 상상력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비콘 힐 스쿨'의 운영 목적도 과학적 사고,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 출신인 그는 당시 <수학원리>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을 때인데요. 출중한 실력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또 <교육의 대해서>라는 책에서 “자녀들의 자유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주어진다’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요. 실제로 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만 주어지면 생활습관 등이 나쁘고 이기적인 아이를 만들 수 있다면서 자유와 더불어 책임을 부여하는 교육을 실시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의 학교는 강제로 폐교되고 말았는데요. 지금도 러셀의 학교는 창조적 교육혁신을 이룬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러셀은 이후 왕성한 집필활동과 강연, 사회운동 등을 펼치며 아흔이 넘어서까지 철학자, 교육자, 문학가 그리고 반전 평화운동가로 살았는데요. 1950년대에는 핵 철폐 운동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을 비판하는 레셀 민간 법정을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94세의 나이에도 핵무기 반대 운동에 앞장 섰다가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러셀은 고아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지만 선조들이 남긴 자유주의 정신은 그의 인생에 등대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러셀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이 무능하게 행동하는 것은, 성격이 우유부단함에 있다. 망설이는 것보다 실패가 낫다.”
망설이지 말고 한발 나아가라는 뜻일 겁니다. 94세 나이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감옥까지 간 러셀,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 준 것은 좌우명과 신념 따라 실천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찾아본 글들]
1. 네어버 캐스트
(1) 논리적으로 행동하였던 철학자.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210
(2) 버트란트 러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69
2. 위키백과사전의 '버트란트 러셀' http://ko.wikipedia.org/wiki/
3.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www.bhgoo.com / 연구원 칼럼 중 서양철학사 외
4.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 http://choi1.com/zbxe/
[참고] 그의 저작들
l 1912. 철학이란 무엇인가(권오석 역, 2008) / 철학의 문제들(박영태 역, 2000)The Problems of Philosophy. London: Williams and Norgate.
l 1916.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이순희 역, 2010) Principles of Social Reconstruction.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19. 수리철학의 기초 Introduction to Mathematical Philosophy.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22. 러셀 북경에 가다(이순희 역, 2009) The Problem of China.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25. 상대성 이론의 참뜻(김영대 역, 1997) The ABC of Relativity. 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l 1925. 나는 믿는다(What I Believe. 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l 1926. 러셀의 자녀교육론 On Education, Especially in Early Childhood.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27. An Outline of Philosophy.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27.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재황 역, 1996) Why I Am Not a Christian. London: Watts.
l 1927. Selected Papers of Bertrand Russell. New York: Modern Library.
l 1928.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김경숙 역, 2008) Sceptical Essay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29.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김영철 역, 1997) Marriage and Moral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30. 행복의 정복 / 러셀의 행복론(황문수 역, 2001) The Conquest of Happines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35.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은경 역, 1997) In Praise of Idlenes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35. 종교와 과학(김이선 역, 2011) Religion and Science. London: Thornton Butterworth.
l _. 런던 통신 1931-35(송은경 역) Mortals and Others: American Essays 1931-1935
l 1938. 권력 (안정효 역, 2003) Power: A New Social Analysi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40. 의미와 진리의 탐구(임병수 역, 1990) An Inquiry into Meaning and Truth.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l 1945. 러셀 서양철학사(서상복 역)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and Its Connection with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Day. New York: Simon and Schuster.
l 1948. 인간과 그 밖의 것들(송은경 역, 2005) Human Knowledge: Its Scope and Limit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49. 권위와 개인(이종익 역, 1997) Authority and the Individual].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50. 반속적 에세이 Unpopular Essay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59.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곽강제역, 2008) My Philosophical Development.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59. 서양의 지혜 Wisdom of the West, edited by Paul Foulkes. London: Macdonald. George Allen & Unwin.
l 1961.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고정식 역, 1993) Fact and Fiction.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61. 인류에게 내일은 있는가(고정식 역, 1991) Has Man a Future?,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51–1969. 러셀 자서전(송은경 역, 2003) The Autobiography of Bertrand Russell, 3 vols.. London: George Allen & Unwin.
l 1969. 러셀의 철학노트(최혁순 역, 1990) Dear Bertrand Russell... A Selection of his Correspondence with the General Public 1950–1968, edited by Barry Feinberg and Ronald Kasrils. London: George Allen and Unwin.
l 소중한 삶을 여는 인생노트 / 러셀 인생노트
l 파이의 역사
l 일반인을 위한 철학
l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Bertrand Russell's Best edited by R.E. Egner
l 연구서
l 러셀(신일철 역, 1982) Bertrand Russell, by A. J. Ayer (1972), reprint ed. 1988
l 버트란드 러셀(최혁순 역, 1984)Bertrand Russell and His World, by Ronald W. Clark (1981)
2.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옮긴이의 말
사람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신체에 관해서는 자연적 제약과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가능한 한 더 많이 자유스러워야 하고, 정신에 관해서는 나쁜 감정과 욕망에서 해탈해야 할 뿐 아니라 무지와 혼란의 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확보하지 위해서 학문적 지식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학문의 모태이자 핵인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지혜로운 판단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적 자유와 자립을 확보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7)
역자의 대단한 철학-자유-학문에 대한 사상이 보인다. 이 <옮긴이의 글>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이후로 <주인 되는 삶>, <가치정의>이런 것에 대한 고민의 기저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 되는 삶에 지식의 중요성 그리고 구체적으로 철학의 자리매김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문구이다.
지은이의 말
칸트는 자신이 논박 당하는 걸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오해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철학자를 제쳐 버리기 전에 그 철학자가 정말로 주장하려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9)
철학을 알아가는 방법적 지침이 될 듯하다. 무수한 철학적 이론을 기억하려 하는 것은 무용하다. 철학자가 주장하는 명제의 이면과 그것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가치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과학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미지의 영역과 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접경 지대에 이르러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그는 바야흐로 과학의 세계를 지나 사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변적 사고 활동 역시 일종의 탐구 활동인데,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철학이라는 학문이다. (10)
과학은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10)
그렇다. 철학은 사색하는 활동이다. 철학 책을 읽고 유명한 명제를 외우는 것은 철학과 무관한 것이다. 내가 일상에서 철학을 하는 것은 바로 나의 근본적 물음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원래 철학이 시작된 건 인생의 고민거리를 풀어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철학은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 하는 탐험 여행처럼 오직 알고 싶어서 시도하는 지적 모험이다. (12)
사람이 미지의 것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사실을 다음 두 가지 태도뿐인 것 같다. 한 가지 태도는 다른 사람이 서적을 통해 알았거나 또는 영감을 얻는 이런 저런 비법을 통해 알았다고 떠드는 주장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자기 스스로 실제로 알아보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과학과 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12)
나는 나를 알아가는 길 위에 서있다. 스스로를 탐구하고 생을 알아보고 있다. 나는 철학자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셈이다. (12)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그리스 철학 전체를 지도하면서 이끌고 있는 생각은 로고스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다른 무엇보다도 말과 한도(限度)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잇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를 아울러 하는 사람은 지식이 좋은 것이라는 윤리적 신조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데, 이 지식의 좋은 점, 즉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은 공평무사하게 탐구하였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이다. (21)
모든 이원론의 바탕에는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깔려 있다. 그리스 사람들의 사상에서 이 구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원론은 선과 악의 이원론과 조화와 투쟁의 이원론이다. 다음에는 현상과 실재의 이원론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대단히 활기를 띠고 있는 이원론이다. (22)
하나의 물질 즉 한가지 실체가 여러 가지 상태의 다른 물체 속에서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는 가설을 발견한 사실 만큼은 여전히 훌륭한 업적이다. (26)
철학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29)
답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물음은 유의미와 무의미를 구분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여본다.
위대한 사람은 그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낸 위대한 질문에 의해서 결정된다 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도 현의 길이를 조절하여 조화로운 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피타고라스 이후로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33)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숫적 구조를 알아내야 한다. ...이 생각은 학문(과학)에 대한 현대적인 견해가 지니고 있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33)
"신은 인간을 어린애로 본다. 그것도 인간이 낳은 어린애로 본다." (37)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생각들을 자료로 하여 실재의 세계는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의 균형잡힌 조정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전개했는데 바로 이점이 그가 철학에 남긴 괄목할 만한 발견이자 기여이다. (37)
선과 악은 하나이다. 이 말의 뜻이 선과 악은 그게 그것이라고 동일시해야 한다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이와 반대로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악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선의 개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요컨대 산비탈을 없애 버림으로써 오르막길을 없앤다면 그와 동시에 내리막길도 없어져 버리는 법이다. 선과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말일 것이다. (39)
인류의 지성의 발전이 이처럼 양극으로 대립하는 두 입장을 끊임없이 탐구해 본 다음에 나타나는 이런 식의 종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건 확실히 옳은 말이다. (45)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의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어제 믿고 있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신념을 혹시 서로 모순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한번 해보지 않고 잘도 믿고 살아간다. (49)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에 대한 공감. 신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적인 일의 진행에 참여하였다. 이런 도시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언짢은 얼굴로 대하면서 "idiot" 즉 바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어에서는 이 말이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 잡힌 자"를 뜻한다. (51)
그리스 도시들 사이에 질투와 자기들의 입장만 내세우는 개인주의로 인해 너무 심하게 분열되어 있어서 나라 전체의 안정은 도저히 얻을 수 없었다.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었다가 나중에는 로모에 정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는 그 전체를 하나의 문화적 단일체로 계속 유지시켜 주었던 공통의 제도와 이상이 있었다. 그리스의 민족적 서사시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이 밖에도 그리스 사람들을 결속시켜 주는 다른 유대들이 또 있었다. 모든 그리스 사람이 코린트만의 북쪽 구릉 지대에 있는 델피의 성지를 숭배하였으며, 델피의 신탁을 상당히 존중했다. (52)
이처럼 생명력 넘치는 시대의 사람들은 그 시대 자체를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터무니없는 오만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기원전 5세기 말엽에 나타나 이러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삶의 표준을 깨우쳐 주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54)
원자론이 공상적인 사변의 산물이 아니라,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이 물음을 제기한 이래 150년 도안이나 진지하게 궁리한 끝에 얻어진 답이라는 것만 지적해 두기로 한다. (70)
얼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답을 갖고 싶은데도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어서 애성이가 난 상태, 대체로 이러한 난감한 상태가 소피스트들이 처해 있었던 심리 상태였다. (71)
현재 나의 마음상태와 비슷한 것이다. 소피스트의 경박함이 나에게 있다.
소피스트 들은 인간이 도저히 참다운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사람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의견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71)
소크라테스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2. 아테네의 철학
최고선 즉 사람의 가장 훌륭한 상태인 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덕은 곧 지식이다. 최고선으로서의 덕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건 그리스 철학 전체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81)
옮긴이의 글에서 받았던 느낌을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이 자신에게 닥칠지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 즉 인간에 관해 깊이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자기의 의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82)
이런 소명, 자기완성에 이르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인가. 깨달음이 주는 것인가, 단련되는 것인가.
이순신에서 품었던 의문이, 사마천에서 품었던 생각이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서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왜 그런 용기가 없는 것인가.
대학의 기능은 학생들의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가능한 많은 사실을 쑤셔넣은 일이 아니다.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86)
지금 내가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것도 맥을 같이 한다.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실천을 통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 철학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과 마음도 그러해야 한다.
누구나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공포와 유혹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공포와 유혹을 둘 다 물리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관리자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게 된다. (98)
러셀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을 지니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 2가지를 여기서 지목하고 있다. 공포와 유혹. 공포를 이기는 것은 용기인가. 유혹을 이기는 것은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인가. 무서워서 못하고, 삿된 욕망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공포와 유혹의 극복, 이것은 내 삶의 모토로서도 손색없는 통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정 어린 지혜" 여기서 말하는 우정은 물론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지적 동반자들 사이의 애정을 뜻한다. (103)
변경연의 느낌과 비슷하다.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무지는 자유로운 삶 즉 지식과 통찰에 의해 성취되는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와 비슷한 견해가 헤겔의 철학에 보이는데, 헤겔의 철학에서는 자유라는 말이 누군가가 현상의 필연적 진행 과정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05)
옮긴이 글에서 받은 느낌의 연장 두 번째.
페이지 115. 낚시질을 예시로 한 구분에 의한 정의 방식.
재미있는 프로세스이다.
비존재는 존재와 같은 수준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비존재는 완벽한 추상 개념 즉 존재하지 않음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건 뻔하다. 여기서 말하는 비존재는 이러이러한 비존재(Not-being such and such),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러이러한 것이 아닌 존재(Being other than such and such)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비존재감에 대한 정의와 비슷한 듯하다. 이러이러한 것이 되지 못한 상태가 비존재의 상태인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Nothing이 아니라 존재하되 이러이러한 무엇이 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의 무엇이라고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최초로 플라톤을 비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23)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물질과 실체를 혼동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실체란 성질들을 실어 나르면서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124)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세에 권위로 군림하게 된 결과 삼단논증은 2천여 년이나 줄곧 논리학자들에 의해 논증의 유일한 유형으로 인정 받아 왔다. (129)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이성능력, 감각능력, 영양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세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며, 동물은 두 가지 능력, 식물은 한 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140)
철학을 세상사와 인연이 없는 상아탑으로 보는 생각은 스토아 학파사람들에게서 기인한다. 그리스의 과학 운동이 사라져 버린 원인은 이들이 감각의 세계를 외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141)
정의론이 현실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든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142)
정의를 이야기 하기 전에 선결과제는 그것의 공정성이 무엇인가를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정의와 공정의 관계를 잊지 말자.
최근에 정치적으로 공정사회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능동적 쾌락은 우리가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원동력으로 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체험하게 된다. 일단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어떤 욕구도 없을 때 수동적 쾌락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수동적 쾌락은 포만의 상태에서 느끼는 취한 듯 열중한 상태이다. (163)
쾌락은 행복의 얼굴이다. 그런 쾌락이 능동성과 수동성으로 구분되는 개념이 재미있다. 능동적 쾌락이 없으면 수동적 쾌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구하라. 얻어라. 쾌락을!!
신들은 인간에게 상을 주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요컨대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극치이자 최고의 선이기도 한 고요한 평정 상태의 유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절도있는 인생 행로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의무라고 보고 있다. (165)
덜 소유함으로써, 즉 필요 만큼 소유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에피쿠로스 학파가 주장하는 쾌락주의의 기본사상이었구나.
배부른 돼지처럼 사는 것이 쾌락주의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의 오류를 확인!!
스토아 철학은 하나의 윤리 이론으로서는 고전 시대의 윤리 이론과 비교해 보면 별다른 특색이 없는 엄격한 수양 방법론이다. (166)
그러나 스토아 철학이 정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목은 어떤 의미에서 덕이라는 내면적인 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본 사실이다. 물질적 재산의 손실은 언제라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존심을 잃는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67) ★★★★★★
플로티노스 형이상학의 중심 이론은 삼위일체론이다. / 이 이론 자체는 기독교 신학에 끼친 영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이론이 아니고 신플라톤적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177)
고대철학은 플로티노스에서 그러한 분기점에 이른다. 이때부터 어쨌든 서양에서는 철학이 교회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179)
그리스 정신과 로마 정신의 차이를 그리스의 사원과 로마의 공화당(바실리카)을 대비시킴으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무사한 탐구의 성과를 이용해서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이 참신한 활력을 다소 자의식에 빠져들었던 스토아 철학이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자리를 굳혔을 때에 얼마간 잃어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양 문명을 이끄는 지성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최상의 것들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181)
고대 그리스 철학의 Summary!!! 이 책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마음 깊이 와 닿은 구절이다. 2000년 전의 사상이 지금의 나를 비롯한 우리의 의식에 영향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삶의 가치와 방식을 나도 지금 적용해 본다는 것이 더욱 의의가 있는 것이리라.
4. 초기 기독교 철학
마지막으로 영혼과 육체를 대립시키는 양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 이원론의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된 이론 즉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던 몇 가지 영혼과 육체에 관한 이론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론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이해한 형태로 사도 바울에게 전해졌고, 다시 바울의 새로운 종교 즉 기독교에 대한 견해 속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이론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금욕주의의 성향을 띠게 된 것은 이 이론의 영향 때문이었다. (186)
아리스토텔레스와 대척되는 철학적 종교적 입장의 시작이다. 잘 살펴두었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비교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
기독교와 유태교는 신의 선민이 있다는 교리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186)
5. 스콜라 철학
암흑시대, 그 기간은 대략 서기 600년부터 1,000년까지를 잡는다.
교황은 그들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줌으로써 여전히 황제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키면서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속적 권력과 영적 권력은 운명적인 상호 의존 관계로 묶이게 되었다.(212)
아랍 사람들은 정통의 가톨릭 신학이 신플라톤주의 신조를 고수하고 있던 때에 네스토리우스파가 지지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221)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보다도 아랍권에서 연구되어 역으로 서양으로 그 이론이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확인해 보는 듯하다. 그것에 대한 배경이 궁금한데, 이것은 나중에 김용규 선생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여 주실 때 확인해 봐도 좋을 듯하다.
아베로스가 철학에 기여한 주요 업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플라톤주의의 왜곡된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연구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222)
아베로스의 저작은 라틴어 번역판을 통하여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했기 대문에 아베로에스주의자로고 불린 자유 사상가 전체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222)
스콜라 철학에서 가장 큰 이론적 문제는 철학계를 서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분열시킨 보편자 문제였다. 실재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권위와 그의 형상론을 근거로 삼고 보편자는 사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유명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빌려 보편자는 그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225)
오캄은 철저한 유명주의자였다. 논리학은 엄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보면 언어상의 도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239)
단테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의 일상언어를 문학의 보편적 도구로 다듬었는데, 이로써 지방의 잡다한 사투리를 넘어선 표준어가 최초로 설정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라틴어만이 문학의 표현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이제는 이탈리아어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241)
각 민족마다 가지 나라 말을 사용하게 되자, 교회는 철학과 과학의 분야에서 전개되는 지적 활동을 지배하는 힘을 상당히 잃어 버리게 되었다. (243)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에는 속죄를 해야 한다든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246)
VS
기독교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앞으로 다가올 더 훌륭한 생활을 준비하는 일로 간주하였으며, 인생의 현실에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을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지고 나온 죄를 정화시키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시련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초인간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한데 신은 이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247)
스콜라 철학이 빠져 있었던 잘못은 경험적 탐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험에 의해 발견된 사실들이 이처럼 경시 되었던 것은 이 세계의 문제보다는 신과 저 세상의 문제에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대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예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은 다시 한번 인간을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세웠다. (249)
6. 근대 철학의 발흥
중세 시대의 몰락으로부터 17세기의 거대한 진보의 격랑에 이르는 전환기는 네 가지 도도한 운동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 특징 네 가지 : 문예부흥, 인본주의 , 종교개혁, 경험적 탐구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인쇄물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승인만 해야 한다면, 독서 능력은 사람에게 거의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253)
이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유식함의 확정인지 철학적 사유의 매질을 구하는 것인지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독서의 기본적인 생각으로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존 질서에 젖은 통치자들은 과감하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에게 기존 질서가 파괴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야만적 형벌을 언도하였다. (254)
나의 내부에서도 그렇다. 변화하려는 생각은 공포와 욕망에 의해서 애초에 싹이 잘린다.
문예부흥은 고대 사람들의 지식이 완전히 동면의 상태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잠에서 깨듯이 시작된 게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255)
사람은 누구나 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으므로 신학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개신교의 견해이다. (263)
루터의 종교개혁 발단 배경 (267)
어떤 점에서 종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에서 비교적 사소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분명히 적합하지 못하였다. (269)
철학적 전통이 종교에 휩쓸리는 것,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종교와 인간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단을 수단 이상의 것으로 간주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271)
베이컨이 삼단논법을 거부한 일은 그로 하여금 과학적 탐구에서 연역이 하고 있는 역할을 과소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가설로부터 구체적이면서 시험 가능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수학적 연역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낼 방도가 전혀 없다. (280)
이론(가설)에서 사실을 연역하는 것은 수학적이다.
사실에서 이론을 찾아가는 귀납은 과학적인 것이다.
보통 때보다 더 추웠던 어느 날 데카르트는 추위를 피해 시골 작은 집에 들어가 흙으로 만든 화덕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웬만큼 몸을 녹이자 사색을 시작했는데, 그날 해질 무렵에는 자신의 철학 체계 전체의 윤곽을 분명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284)
오랜 사유 끝에 길이 열리는 그런 순간이구나. 부럽다.
결국 의심하는 사람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그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데카르트의 근본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실존한다"는 명제가 딛고 서 있는 기초이다. (286)
스피노자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받고 유태인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를 갈아주는 일 이외에는 온통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291)
"본인은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 철학을 진전시키는 일이 중단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본인은 자신의 철학이 기성 종교를 뒤엎으려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어느 선에서 '철학하는 자유'를 억제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아직도 철학 교수직보다 더 좋은 행운을 바로고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본인의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생활이라야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평온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강의하는 일을 삼가하고자 한다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멋지다. 스피노자가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거절하면서 보낸 서문이다. 그에게도 사회적인 명성에 대한 욕망도 있었을텐데 이렇듯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그의 지혜가 부럽다.
신과 종교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너무나 시대를 앞선 것이어서 그가 매우 품위 있는 윤리 이론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1백 년 동안이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생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9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자유로부터 때로 불편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말해 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일찍이 무언가를 만든 사람치고 과연 누가 그로 인해 좋지 못한 일이 전혀 발생할 수 없을 만큼 현명하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인생의 모든 일이 법률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인생사의 결함들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결함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금지할 수 없는 일은 때로 그 일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허용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292)
실체라는 건 완벽하게 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293)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고 나고, 이 실체는 우주 전체이며 또한 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는 둘 다 모든 사물의 총합체이므로 이 둘은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그것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그 유명한 범신론이다. (293)
스피노자의 철학체계는 철학의 역사에 나타난 체계 구성의 가장 뛰어난 실례일 것이다. (293)
사물들을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본성이다. (294)
사람이 외부의 여러 가지 영향력과 원인에 얽매여 있는 한 노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상태는 모든 유한한 것이 처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은 신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한 더 이상 그러한 영향력에 지배되지 않게 되는데, 그 까닭은 우주 전체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점점 전체와 동조를 이루어 감에 따라 그 정도에 맞는 자유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독립 즉 자기 결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신에게만 옳은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방도는 이러한 신과의 동화이다. (295)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인데,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295)
스피노자에게는 모든 것이 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또 실재하는 우주 속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우주와 접촉하기 위해 일상의 실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295)
라이프니츠는 오직 신만이 완전 과학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을 필연성의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보았다. (301)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테레키 이론 즉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나타나려고 분투한다는 이론에 의해서 고무 받은 것처럼 보인다. 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에서 모든 잠재성이 동시에 실현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최대한 많은 양의 현실성을 갖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01)
진리는 사실과 같은 것이다. (302)
실행이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는 건 옳은 말이다. 어떤 행동을 이지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그 행동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일이 인간의 행동이나 실행의 영역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건 명백하다. (304)
사실 과학과 철학의 임무는 일상언어를 가지고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 과제를 풀어 낼 수 있도록 더욱 날카로워진 언어적 도구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주당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 있는 근본 취지이다. (306)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자유주의의 요지는 관용이다. (308)
왕권 신수설의 거부와 더불어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기존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고, 또 그 결과 종래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311)
근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1)개신교의 성격에 기반(자기 식으로 신과 교섭), 2)중산층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상업과 공업의 발달)
자유주의 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311)
개인주의 신조는 주로 이성주의자의 이론이었으므로, 이성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 열정의 지배를 받는 건 문명화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열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 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312)
로크는 현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철학적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정합성 있는 입장에서 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편적 방식으로 취급하였다. (316) → MBTI로 본다면 전형적인 S(감각)유형일 것으로 여겨진다.
뉴턴의 물리학은 단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철저히 일소해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크의 정치 이론은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왕권신수설을 깨끗이 논박해 버렸고, 스콜라 철학의 자연법 사상을 근대의 상황에 알맞도록 변경시켜 기초로 삼고 국가에 대한 새로운 기본 신조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319)
이성주의가 꼭지점을 땅에 대고 서 있는 피라밋이라면 경험주의는 밑면으로 버티고 선 피라밋이다. (320)
버클리 철학의 근본 주장은 어떤 것이 실존한다는 건 그것이 지각되고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누구도 이 견해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기가 지각하는 대상이 자신의 정신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21)
정신이 실존한다는 말은 '지각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325)
버클리는 "대체로 나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의 흥미를 끌었고 또 지식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 막고 있던 난점들은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주 많은 난점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 탓에 생겨났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먼지를 일으켜 놓고는 그 먼지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한다." (327)
흄은 재산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경제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알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방식을 조절하였다. 그는 학문연구에 전명하기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이처럼 검소한 절약 생활을 꾸려 나갔다. (327) → 무미 건조하게 필사만 하다, 이 구절을 보고 가슴이 촉촉해짐을 느꼈다. 나 또한 흄처럼 가난하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공부 자체를 위함인가? 아니면 부자가 되기 위함인가? 내가 몰입을 하는 순간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성취감에서 비롯된다.
흄이 말하는 경험은 지각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지각들 사이에서는 이 연속 이외의 어떠한 결합 관계도 지각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데카르트 식의 이성주의와 로크 및 그 추종자들의 경험주의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사물들이 밀착하여 딱 들어맞게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 결합 관계가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에 반해서 흄은 사물들 사이에 그렇나 결합 관계가 있다는 걸 거부하며, 오히려 혹시 그런 결합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결합 관계를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329)
흄은 '정신은 여러 가지 지각이 계속 등장하여 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극장'이라고 보았다. 정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오직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지각들 뿐이다. (331)
그는 일정한 종류에 속하는 두 대상이 감각 지각에서 빈번하게 결합하다 보면 그 인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두 관념을 연상하게 되는 정신의 습관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는 정신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습관은 바로 이 심리적 과정에 의해서 생긴다. (333)
8. 계몽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영국의 경험주의 운동이 지닌 탁월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다른 전통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보여준 폭넓은 관용의 태도이다. (336)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 운동의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상기시킨다. (337)
계몽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립된 지적 활동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었으며, 참으로 글자 뜻 그대로 이제까지 암흑이 지배해 오던 곳에 광명의 빛을 비추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338)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점에서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38)
낭만주의자들은 위험스럽게 사는 편을 지지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해버렸고, 어쨌든 이론적으로 불안한 생활 방식이 더욱 고상하다고 주장하였다. (339)
낭만주의자들은 공리성을 일축해 버리고 심미적 표준에 의존한다. (340)
낭만주의는 다른 누구보다도 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는 아마도 바이런일 것이다. 우리는 바이런에게서 철저한 낭만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에게서 반역, 도전, 기존의 관습에 대한 경멸, 무모함, 고상한 행위를 볼 수 있다. 그가 그리스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그리스 서해한의 미쏘롱기라는 습지에서 죽은 사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위대한 낭만적 행동이라 하겠다. (340)
유물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성의 탁월성이다. 사람들 위에 그 동안 군림해 오던 종교를 타파해 버린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최고의 것이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으며, 이 일을 위한 특별한 축제일을 마련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 일은 이성을 신으로 모시는 일이었다. (343)
칸트는 평생 한번도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지나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매우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습관은 아주 규칙적이었으므로 그가 지나가는 걸보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는 튼튼한 편은 아니었으나 차분한 생활방식 때문에 질병을 피할 수 있었다. (347)
나에게는 칸트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의 욕구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칸트는 흄이 시도했던 바와 같이 경험에 의해서 개념을 설명하는 대신에, 개념에 의해서 경험을 설명하려고 착수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칸트의 철학은 한편으로는 영국의 경험주의가 보인 극단적인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의 이성주의가 주장한 본유 원리 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48)
칸트의 12개의 범주 (350)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이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지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지성은 참으로 사람마다 현격하게 활용의 정도가 실제로 다른 지능이기 때문이다. (351)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 칸트의 도덕 법칙은 결국 경험적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는 이 도덕 법칙을 정언 명령이라 불렀다. (353)
피히테의 정치 사상은 생산과 분배를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에 관한 마르크스 생각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철학적으로 우리의 커다란 과심을 끄는 것은 그가 칸트의 이원론에 반대하려고 고안해 낸 자아(Ego)에 관한 이론이다.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은 헤겔에 의해서 최종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359)
헤겔의 철학은 실천적인 면의 우위를 역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60)
자유는 환상을 품는 게 아니라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그리스 철학에서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전조를 보였던 이 세계의 필연적 진행과정을 파악하는 일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겠다. (363)
정반합 이 세 단계는 우선 어떤 진술이 주장되고 나면, 그에 대립하는 주장을 하는 진술이 맞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두 진술의 주장 내용이 절충되어 세 번째 진술로 정돈된다는 것이었다. (365)
지적 발전은 변증적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측면에서 보면 변증적 방법은 물음과 대답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플라톤의 대화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366)
변증적 과정의 통찰은 지적 성장에 관한 심리학에 기여하였다. (368)
관념주의자들의 생각이 단지 애매하고 막연한 말로 표현되기는 했을지라도 그들의 착상이 노리고 있는 목표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채 통째로 깨끗이 잊어 버리는 건 위험한 일이라 하겠다. (369)
관념주의자들의 견해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배타심과 잔인성과 포악한 행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비해서 자유주의의 원리는 사람들에게 관용심과 이해심과 타협심을 길러 놓는다. (371)
실존주의는 오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의지를 이성으로부터 단절함으로써 사람은 철학적 반성의 결론이 아니라 의지의 자발적 기능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일은 아주 쉬운 방식으로 신앙이 다시 한 번 사람의 정신 생활에 들어설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372)
실존주의의 원리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이 원리의 내용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먼저 어떤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다음에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73)
이성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이성을 과대 평가 하는 일만큼 위험하다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은 일이다. 헤겔은 이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성이 우주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과오에 떨어졌다. 키에르케고르는 반대편의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이성은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즉 구체적인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최고의 원리들과 일치하고 있다. (374)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철저히 악한 것으로 보며,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고통을 이 의지 탓으로 돌린다. 게다가 그는 헤겔이 그랬던 것처럼 지식을 자유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376)
우리의 인생에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의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의지를 마취시킴으로써 우리가 열반 즉 공에 도달하게 되어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야의 장막을 걷어 내고 세계의 실상을 보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야란 이 세계에 대한 환상적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377)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성주의에 입각한 헤겔 학파의 여러 가지 신조에 반대하면서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377)
그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증진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최고 수준의 인간, 다시 말하면 가장 건강하고 강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지닌 탁월성이었기 때문이다. (377)
10년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홀로 외로이 전전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문학 작품을 쓰면서 지냈다. (378)
그의 첫 번째 주요 작품인 <비극의 탄생>(1872)에서 그리스 정신에는 아폴로적 기질과 디오니소스적 기질이 있다는 유명한 구별을 주장하였다. (378)
아폴로적이다. 디오니소스적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니체로부터 기인 된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 기질의 분출로서의 열망을 아폴로적 성향이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378)
우리 인생에 비추어 한번 생각해볼 명제이기도 하다.
니체가 비극에서 중시하는 것은 주인공을 통해 감정을 정화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이었다. (378)
인생의 조잡하고 잔인한 현실을 일종의 공격에 의해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지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한 특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379)
니체는 사람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또 이 두 유형의 사람은 각기 다른 두 유형의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구별하였다. 이 두 유형은 주인과 노예이다. (379) ★★★★★★★★★★★★★
나는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과 종이 되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니체의 사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나는 언젠가는 이런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내 삶에 내가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면 내가 진정 '주인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내적 외적 여건이 갖추어지면 그런 책을 써보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를 니체가 뒷받침 해주고 있으니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해 보아야 하겠다.
니체가 무엇보다도 싫어했던 것은 새로운 기술문명과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대중적 인간의 출현이었다. 그는 사회의 올바른 기능이 귀족적 이상을 실현시키는 소수의 위대한 인물을 길어 내는 묘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379)
삼성이 말하는 "한명의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살린다"는 천재론은 니체의 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은 애플의 스티브잡스를 보고 있노라면 니체의 이론을 세상 사에 대입하여 보면 적합하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려고 분투 노력해야 할 목표는 신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간이다. (379)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383)
마르크스의 목표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변혁하는 데 있다. (384)
공리주의 운동은 아주 분명하게 허치슨이라는 사람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윤리 이론에서 이름을 물려 받았는데, 허치슨은 그 이론을 이미 1725년에 상세히 전개하였다. 이 이론의 요지만을 간략하게 말하면 선은 쾌락이고 악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상태는 고통을 상쇄하고 남는 쾌락의 양이 가장 많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 견해는 벤담에 의해 채택된 후 공리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385)
벤담은 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동료인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교육의 무한한 치료 능력에 대하여 더없이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386)
벤담은 법의 기능에 관해서 누구나 자신을 위한 최대의 쾌락을 추구하는 중에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다른 사람의 활동을 해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87)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법의 공정한 기능이 매우 핵심이구나
밀은 귀납적 입증에 근거를 부여하는 건 그것이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에 예외 없이 들어 맞는다는 사실이며, 이것 자체가 최고의 귀납적 입증이라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389)
정당화라는 작업은 연역 논리학의 일이기 때문이다. 귀납이 정당화되어야 할 대상이라면 그 정당화 논증 자체가 귀납논증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귀납을 연역적으로 해명하려고 할 게 아니라 연역과는 다른 별개의 논리적 사고로 취급하는 것이라 하겠다. (389)
공리주의 윤리학은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이론이다 (391)
내가 보기에는 인간과 원숭이가 공동의 조상을 가졌다는 주장이 원숭이에게는 틀림없이 모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392)
한참 웃었다. 러셀 생각의 배경이 듣고 싶었지만 특별한 멘트는 없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세 가지 중요한 사상적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395~396)
1) 전체주의 - 개별의 문제가 아닌 체제의 문제이다.
2) 계급투쟁 - 헤겔의 변증법적 투쟁
3) 유물주의 - 본성은 정신이 아니다. 변화. 실용적 유물주의. 실천적 변화
마르크스는 리카르도에게서 노동가치이론을 받아들었지만, 이 이론을 해석하는 관점은 그와 달랐다. 리카르도와 맬더스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바뀔 수 없다는 무언의 가정을 인정하고 논의를 전개했는데... (395)
마르크스는 기존의 질서도 바뀔 수 있다라고 전제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에 변증적 유물주의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이론 속의 진화론적 요소와 헤겔 철학의 요소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397)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과학을 오해하여 부르주아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낙인 찍고 배척하는 일은 정말이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397)
마르크스의 이론 역시 특정한 시대에 형성된 특수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한 이론일 뿐이라고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399)
콩트는 우리가 경험에 의해 직접 주어지는 것을 가지고 철학을 시작해야 하며, 현상의 배후로 넘어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므로, 자신의 철학을 실증 철학이라고 불렀다. (400)
콩트가 무엇보다 열심히 추구했던 연구는 학문적 연구의 모든 분야를 논리적 질서에 따라 하나의 포괄적 체계로 정돈하는 일이었다. (402)
퍼스는 옳다고 주장되는 진술은 모두 반드시 실제적 성과를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다시 말하면 옳은 진술, 즉 진리는 미래의 행동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동일한 유형에 속하는 모든 상황에서 그 진술에 따라 행동하려는 성향을 형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05)
제임스의 구별에 따르면 이성주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주의 이론은 낙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실험을 무시하고 내성을 중시한다. 이를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주의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비관적 성향을 보이고 이 세계의 부분들이 분할되어 있음으로 인정하며 사변적 궁리보다는 실험을 더 좋아한다. 이를 '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408)
여전히 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논리 체계가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워지는 논리적 기호들의 체계에 관한 일반적 가정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414)
철학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음미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415)
10. 현대철학
아득한 과거의 사상가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후세의 철학자들의 비판적 평가라는 시험을 받아 왔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옛날의 사상들은 점점 걸러져 왔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416)
그렇구나. 내가 책에서 보고 있는 철학자가 대부분이 아니구나. 그렇지 내가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명멸해 갔겠는가. 학문이라는 세계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시간의 테스트를 뚫고 나온 것이구나.
누구에게나 일을 겪은 다음에 현명해진다든가 이미 성숙한 철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변화의 의의를 세세한 사항까지 모조리 연역해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건 헤겔주의자들의 환상일 것이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몇 가지 일반적인 흐름일 것이다. (416)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의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418)
철학에 대한 과학의 반발은 알고 보면 결국 콩트의 실증주의가 일으킨 결과였다. (421)
베르그송의 경우에는 논리 그 자체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브래들리는 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고, 베르그송은 비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다. (427)
베르그송은 본능의 최고 형태를 직관으로 간주하는데, 이 직관은 이 세계와의 직접적 일치에 도달하는 일종의 정신 활동이다. (428)
우리는 '기억'이란 말을 어떤 때는 누군가가 지금 진행시키고 있는 회상이라는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뜻으로 이해하며, 또한 때로는 그렇게 회상되고 있는 과거의 사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429)
프로이트는 명백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순전히 관찰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만을 가정하고 이루어지는 심리학으로 나아갔다. (431)
실증주의라는 편견 때문에 즉각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방법에서 가설이 하는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431)
꿈과 의식상태나 각성상태를 구별 짓는 것은 꿈이 일종의 자유와 환상을 허용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자유와 환상은 우리의 각성된 의식 생활 속에서 가차 없는 사실들을 견뎌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의 이 자유는 실제로는 진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을 뿐이라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431)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서양의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였던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이었다. 이 힘들은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440)
야스퍼스의 경우에는 철학이란 세 번째의 초월적 존재 즉 자족적 존재에 속하는 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월적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개인의 노력이다. 야스퍼스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과 자유롭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일은 바로 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가 이성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에 관해서는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그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불안한 느낌 또는 그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빌려 온 용어로 말하면 두려움과 동반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객관적 존재의 수준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반면에, 자아-존재의 영역은 기분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할 수 있다. (443)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전통과의 연결이나 개인의 생활에 이미 일어난 사건과의 연결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444)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진술을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궁극적인 단순 성분들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이론은 때로 논리 원자주의라 불렸는데, 초기의 이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단순하고 궁극적인 것들이 있다는 신조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451)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철학자이다. 나중에 이들 사이의 관계를 좀더 살펴보아야 할듯하다.
맺음말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책을 한 권 읽었으면 읽은 시간 만큼 사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읽은 것이 겨우 내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것을 하기에는 시간에 너무 쫓기고 있다. 나름의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내어 사숙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공든탑이 될 수도 있다.
상식인은 물론이고 학자의 경우에도 때로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조감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일을 위해서는 너무 부피가 크지도 않고 지나치게 내용이 상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눈으로 전체를 조감한 개관이 필요하다. (453)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이 일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른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 흐르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453)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문제로 삼으면서 주의를 기울였던 문제들 중의 하나는 이 세계의 일반적 특성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454)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일 뿐이며, 사람이 명제를 언어로 진술할 때에는 오류에 떨어질 가능성이 항상 있는 법이다. (455)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458) ★★★★★★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강압에 의해 금지되지 않도록 탐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459)
3. 내가 저자라면
(1) 내가 이야기해보는 <서양의 지혜>
<서양의 지혜>는 러셀이 1945년 <서양철학사>를 출간한 이후 14년 뒤인 그의 나이 87세인 1959년 출간한 책입니다. <서양의 지혜>는 철학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수학, 논리학, 신학을 비롯한 인간과 삶에 대한 러셀의 모든 사상이 '철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인류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만큼 이 책은 러셀의 주관적 사상을 담고서 철학을 중심으로 한 우리가 사유하는 삶으로써 전체를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의 맺음말을 통하여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너무 부피가 크지도 않고 지나치게 내용이 상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눈으로 전체를 조감한 개관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책의 기술방식에 대해서도 철학적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해설과 더불어 논평을 가하면서 서술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정보의 수집과 나열을 넘어 자신의 사상으로 해석함에 역점을 두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사실상 철학에 관한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해석은 무수히 많은 논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이론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해 놓은 책들은 도서관의 일면을 채우고도 넘칩니다. 하지만 좋은 눈을 가진 선각자가 한 분야의 전체를 조망하는 책은 대단히 드물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신>의 저자 김용규 선생님이 연구원들과 사석에서 말씀해주신 "세상에는 ‘책’이 있고 ‘약간의 책’이 있습니다. 좋은 책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마도 이런 책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이 책은 그의 나이 87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바로 그것은 그의 생각을 뒷받침할 여러 가지 그림을 찾아내고 곁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스스로도 이를 '실험적'이라 평가하면서도 자못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는 통상 말로만 표현되게 마련인 철학사상을 기하학적 비유를 이용하여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한 사실이다. 이런 식의 표현에 근거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으므로 그 결과가 항상 완전히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표현 방법은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2,600여년 전의 탈레스부터 현대 사상가인 비트겐슈타인까지를 조망하면서도 하품 나오게 하는 고담준론에 그치지 않고 나의 지적 모험을 실질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이드로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관점과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 보려는 대 철학자의 피땀어린 노력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칩니다.
(2) 내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교양은 사람의 꼬라지와 품위를 구분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40대를 전후하여 내 삶을 돌아보니 외양은 멀쩡한 듯 보였어도 내적인 깊이는 그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의 24시가 버무러져 4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편의점의 24시처럼 그냥 많은 타인들이 들락거리는 나와는 무관한 듯이 삶은 그렇게 있었다. 수수방관하는 삶의 전형이었다.
그때 나는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에게 자유는 무엇이냐"
"사랑한다의 기준은 어떤 것이냐"
"시간이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일이란 무엇을 담아야 하느냐"
나는 단 한 가지의 질문에도 내 생활을 지탱해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쪽 팔린 일이었다.
물론 그때의 질문들은 마흔을 즈음해서도 아무것도 세워져 있지 않는 '가치관'의 사막에서 그냥 물어본 것들이었지만, 그런 질문 이후로 나는 가치관의 우선 순위에 따라 내 삶의 <가치 정의>를 내려보고 싶었다.
사랑은 이런 것이며, 그래서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 하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 끄덕여줄 그런 삶의 가치와 정의를 내려보리라 다짐했다.
오늘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내가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학문으로서의 <哲學>은 어불성설일테니 나를 담고서 <철학함>을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이런 이야기는 예전에도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40대를 지나면서 내적 꼬라지가 품위를 갖추어 가는 과정을 <제대로 된 삶의 주인 되기>라는 명제 아래에서 논의해보고 싶다. 그런 논의에 대한 대강의 흐름을 기록해 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l 철학함의 출발
- '철학'이라는 것 '철학함'이라는 것
- 삶에 대한 사랑 자기애(自己愛)
- 기타 비슷한 꼭지 2~3개
l 삶의 12(?)가지 가치에 대한 일반 노트
(철학자 혹은 명사들의 삶의 가치에 대한 정의 모음 + 해석)
- 진리란 무엇인가
- 가치란 무엇인가
- 이성과 감정이란 무엇인가
- 희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 자유란 무엇인가
- 사랑이란 무엇인가
- 기타 등등 주요한 삶의 가치들
(뒷장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사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는 가치선정)
l 나만의 가치 정의하기 (나의 경험이 꼭 들어갈 것)
-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가치를 정의해 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의 소개
- 가량 독서의 방법 및 추천도서
- 모닝페이지를 적용해 보는 것
- 명상하는 것 등
l 삶의 주인으로서의 삶과 철학
- 나의 결과로서의 모습이 좀더 구체화 되어서 보여질 필요가 있다.
- 내가 아무것도 되어져 있지 않다면 뜬 구름 잡는 소리일테니...
- 사부님의 삶을 조명하는 것 + 명사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
- 니체의 철학과 결부하여...(서양의 지혜를 읽고 주인과 노예철학을 니체가 주장했다는 것을 알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