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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1일 18시 37분 등록

카를 융

 

이 사람도 사람인걸까?

융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이 기억하는 초기에 사실들을 늘어 놓고 있다. 유모차에서의 기억부터 유모에게 머리를 붙었던 아주 어린 시절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고있자면 이 사람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의아해진다. 특히나 서너살 정도 꾸었던 꿈이라면서 꿈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은 경악에 가깝다. 나의 최초의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지만 그보다 훨씬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게 만든다. 아마 그는 많은 장면에 호기심을 느낀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순간 그에게 일어났던 감정에 말이다.

 

내면의 목소리

프로이트와 함께 했던 시기의 융은 자신의 의견을 많이 접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프로이트의 의견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조하면서도 핵심 사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은 모습인데 프로이트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저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어길 수 없었고 결국은 프로이트와 결별함을 알면서도 그 저술을 끝냈다. 이는 처음 정신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환자를 대할 때에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순간이든 결정의 순간이 닥치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철저히 따랐다.

 

고독한 모습

그는 많이 외로웠다고 했다. 고독을 맛보았다고 했다. 내면의 목소리라니. 상징이라니. 신화라니. 과학이 발달하고 있던 때의 그의 말은 뜬 구름이나 잡으려 하는 말이라고 생각되었을 수 있다. 더군다나 당시의 누군가는 종교와 정면으로 대립하려는 것으로 해석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많은 이들의 강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가 발견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강렬한 체험들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일련의 활동들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을 압니다.

그는 신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책에는 직접적으로 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도 신을 알 수 없다. 나는 그렇다. 체험. 그 강렬함이 빠진 것이다. 머리 속으로 더듬어 그를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강렬한 체험. 그렇지 않다면 이 말 한마디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때 나는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라면

시간의 흐름이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풍부해짐을 감안한다면 이는 당연한 순서인지도 모른다. 융의 사상은 일생 전방에 걸쳐서 일어나는 하나의 흐름이다. 거대한 물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다 더 좋은 구성은 없었을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융의 호기심과 사색, 고뇌를 따라가다보면 조금의 가닥을 잡을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도 만년에 사상 부분을 전체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가장 의식이 꽃피운 시점에서의 간결하게 정리된 글이 아닌가 한다. 그의 일생은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

서문에서 융은 이 책의 흐름을 밝히고 있다. 아주 확실하다. 자서전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신의 자서전은 자신의 의식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의식을 빼고는 융을 말할 수 없음을 분명이 밝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전체적으로 사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역사와 함께 그때 일어났던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데 융 역시 초반에 이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빨간 색이 세번 읽기의 결과물(?) 입니다.

 

옮긴이 서문 자서전 문학의 백미

자기 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9

어떤 방법으로든 전하려고 하다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는 꿈을 꾸고도 쉽게 잊어버린다. 다음까지 생생한 꿈을 그다지 드물지 않나?

 

그와 같이 자기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9

융의 자서전의 흐름을 한 마디로 아우르는 말

 

나는 신을 압니다.” -10

믿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말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11

누르려 해도 눌러지지 않는 것들.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를 표출하려는 욕구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

나 자신은 과학적이지 않은데 과학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가혹해 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의 친절한 설명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옛이야기, ‘나의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12

 

자서전을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적절하게 비교할 만한 것들도 없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12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의내리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쉽제 정의내리곤 하잖아. 나에 대해서는 하지 못하지만. 이중성인가? 자서전은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운 글이다.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한한 신성으로부어 떨어져 나왔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인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12

 

인간은 자신에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12

내 자신이 제어가 되는가?

 

힌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 제시될 뿐이다. -13

약간 허무한 느낌이 드는데. 내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13

내적 뿌리?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14

흠흠. 나는 나이가 한참 들어서 깨달았지. 결국 모든 선택은 내가 해온 것이고, 앞으로의 선택도 그럴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예수의 대역인 그 지하의 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34

 

내게는 그것이 종종 엄숙한 가장무도회나 일종의 장례식처럼 보였다. 거기서 사람들은 심각하거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갑자기 몰래 웃기도 하는 등 정말로 슬프지 않은 듯이 보였다. -35

장례식. 내내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잖아.

 

거기에 사랑하는 하느님과 주 예수가 황금관으 쓰고 하얀 옷을 입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 예수로부터 그 예수회 수도사가 생긴 셈이었다. -36

화려한 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흉측한 아이를 잡아 먹는 괴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과 괴물은 동일하다는 것인가? 그곳은 신의 자리인데 왜 그 괴물이 있는 거지?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 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무언가의 메시지라 생각. 자기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이 아닌데 자신은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를 보낸 곳에 대한 물음.

 

어린아이에게 익숙한 천진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도 모든 멍텅구리는 뭔가 아주 거북스러운 것을 빨리 없애버리려 한다. -37

방어기제?

 

그때 이를 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서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거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으로 출발은 한 것이었다. -37

다시 태어남. 계기가 된 것은 꿈과 공포를 느끼게 했던 예수회 수도사(아니겠지만)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친척 아주머니가 늘 한 걸음씩 뒤처져 있는 나를 출구 쪽으로 잡아끌며 소리쳤다. “이 추잡스러운 놈아, 눈을 감아! 추잡스러운 놈아, 눈을 감으라니까!” 그 순간, 나는 그 형상들이 벗은 몸으로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걸치고 있다는 것을 재빠리 알아차렸다! -40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그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친척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하게 됨으로 인해서 그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나무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아이들이 보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45

학창시절의 학우들은. 우리도 이러한 유혹을 받았겠지. 하지만 그만큼 확고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유혹하거나 강요당한 대로 살아버렸는지도 몰라.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는 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츰 인식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차 있는,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했다.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46

밝음과 어둠의 공존, 자신 안에도 그러한 것이 있음을 깨달음.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46

 

이러한 행위의 의미 또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49

비밀을 가짐으로써 오는 만족감?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사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50

알 수 없는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시도. 그 비밀을 궁금해하는 그의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결과겠지?

 

나는 언제나 그 비밀에 몰두해 있었고 그것을 탐색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비밀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 나에게 설명해주고 가르쳐줄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항상 바랐다. -50

우리도 어딘가에 이런 비밀 하나를 숨겨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비밀은 오래되고 묻혀 결국은 나에게도 비밀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라는 말을 듣게 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신비로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야.’ -50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 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51

무의식이 우리에게 전달하려 하는 바? 전통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어 온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52

우리가 했던 행동들도 그렇게 이루어져서 지금 우리가 숙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하는 행동조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 숙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별 의미가 없어 보이던 유치한 행동 이것이 어쩌면 우리 무의식에서 뻗어나와 하나의 의례를 구성하는 하는 것은 아니가?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어머니가 내 등뒤에다 대고, “아빠 엄마늬 안부 전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코 닦는 것도 잊지 말고, 너 손수건은 챙겼니? 손은 잘 씻었니?” 운운하는 말들을 길거리 사람들이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굴욕으로 느껴졌다. -58

정말 대수롭지 않은 챙김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적에는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 엄마의 말들을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꾸한다. 융의 말이 맞다. 이런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나는 손도 잘 못씻고 코도 잘 못 닦는 아이취급을 받는 느낌이 생길 것이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굴욕이 될 수 있다. 그런 느낌에서 제법 컸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

내가 쓸쓸할 때도 나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비밀, 즉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59

현재 보이는 내가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느끼고 있지 않은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들과 다르다고 믿는 양가적인 감정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여든 세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이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단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59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사람도 할 수 없었으니 부담을 가질 것은 없다.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런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65

바퀴의 테를 잡고 있는 삶, 시험전에 놀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놀고 있지만 놀고 있지 않음.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하게 할 수 없는.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66

그 이전에는 공부를 하면 쓰러지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도 공부를 하면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판단하고 실천에 옮기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그것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나를 밀쳐 넘어뜨린 친구에게 나는 한 번도 심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었다. 그 친구는 이를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것에 불과하며 내 편에서 그 사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67

선택하지 않은 것도 내가 선택한 일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과 비슷하게 보인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에 상황이 이러해서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에 언젠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바위 위가 있다. 그 사람이 그래서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

나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하다. 이게 어쩌면 제일 힘든지도 모른다.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67

일의 겪은 것은 하나의 불행일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듯. 어떤 상황도 나를 위해서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보기에 최악이라도,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67

 

 

너는 누구냐?

그래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마치 자기가 대단하다고 내세우는 악동처럼 반응하고 있구나! 게다가 너는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올다는 것을 알고 있다.’ -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70

우리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도 있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에는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믿어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지 않나? 흔히 사람이라면 다 그런것이 아니냐며 넘어가곤 하지만.

 

,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결과에 혼란을 느끼고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72

두 시대, 두 인격을 깨달음.

 

이 세상은 나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나는 항상 무엇이 내게 닥치는지,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고 싶어했다. -74

소심증

 

나는 그 부담은 벗었지만 또 하나의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74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을 마침내 듣게 되었을 때, 나는 하면 안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들게 되는 패배감

 

나는 왜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생각해야만 하는가? 나는 맹세코 원하지 않는 일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원하는가? 누가 나로 하여금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어ᄄᅠᆫ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이 무서운 의지는 어디서 오는것인가? 왜 내가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만들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악몽처럼 나에게 온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나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76

의문. 딱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비슷하게 생각해 보는 것들이 아닐까?

 

그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피조물이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오로지 완전한 것만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 죄를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 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은 뱀이라는 존재로 인해 분명해졌다. 아담과 이브를 말고 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했다. 전지한 하느님은 인류 최초의 부모가 죄를 범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아먄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78

악 역시 신의 뜻? 어쩌면 아담과 이브는 인간성장을 암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부모 밑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라는 것이 낙원의 생활이라면 죄를 짓고 떨어져 나와 자신만의 세상을 개척하는 것이 성장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만의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거잖아?

 

la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르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78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전통적인 도덕에 의하면 죄는 피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바로 그렇게 해왔으나 이제는 그런 식으로 계속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78

창조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자기 자신만의 방법의 개발. 이전의 방법으로는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시작하게 된다.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79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80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81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시를 알려서 전하려는 옥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년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사니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5

두 번 읽어도 힘들다.

 

 

자연과 사원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전혀 믿지 못하거나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진부하고 공허하게 들렸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 방도를 알지 못했다. -86

1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융은 체험을 했고 아버지는 공부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한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87

융의 믿음.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체험이겠지. 하지만 체험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그저 책을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나는 비난들에 대해 특별히 예민했다. 그 비난들이 모두 어느 정도는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89

우리가 비난에 대해서 쿨하지 못한 이유, 비난을 들으면 정말?”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은 아닐까?

 

하느님은 인간들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그렇게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말도록 금하고, 심지어 지옥불길의 영원한 저주로 벌을 주기도 한다. -92

 

두 인격의 어머니

나는 어머니 역시 두 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악의없고 인간적이었으며, 거기에 반해 또 하나는 으스스했다. -97

우리 모두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101

알고 있으나 자신을 속인다. 때로는 그 속임수에 내가 가장 먼저 넘어가서 안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은 세례식이나 장례씩 들과 같은 교회의 온갖 행사와 별다를 바 없었다. 나는 성찬식이 뭔가 이미 계획되고 인습에 맞는 격식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 역시 무엇보다 규범에 맞게 수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이 보였다. 꼭 알맞은 단어들을 강제로 말하거나 읽는 것도 그런 규범에 속하는 것이었다. -106

나는 하루종일 새 옷을 입고 두루 돌아다니고소 싶었다. 하지만 그외에는 허전했고 내가 무억을 느꼈는지조자 알지 못했다. -107

성찬식.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감흥을 느낌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감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여기게끔 우리가 교육이 된 것은 아닐까? 적절한 사회화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악마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110

악마 역시 하느님이 지어내신 것. 우리가 완전히 만들어 진 것이라면 악마 역시?

 

 

악의 기원

인격도 역시 하나의 성격일 것이다. 성격은 이것이면 이것이지 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일정한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이 모든 것이라면, 그는 구분이 가능한 성격을 어떻게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하느님이 하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주관적이며 한정된 세계의 자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어떤 종류의 성격 내지는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112

 

자아는 유치하고 허영심이 강하며,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며, 애정결핍이며, 탐욕스럽고 공정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며 그외 나쁜 것들 투성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113

자아

하느님은 그 전능한 힘으로 피조물들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하느님은 피조물을 시험할 욕심이 생겼다. 실험결과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피조물을 시험대 위에 세웠다. 실혐결과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피조물을 시험대 위에 세웠다. , 그람 이런 하느님의 성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인간적인 인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114

인격이 있는 신?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시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121

신의 경험은 어떤 이들에게만 찾아오는 거지?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왜 학식있는 책들 가운데 여기에 관한 것은 없단 마린가? 가 그런 경험을 한 유일한 인간이란 말인가? 왜 내가 그 유일한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가? -124

왜 나만? 왜 내가? 하는 식의 물음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나에게서 특이한 면을 눈치채지 목하게 하는 이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125

누구나 다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평범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 부분의 평범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이점은 감추려 하기 마련인건가?

 

나는 깜짝 놀라며 격분하여 외쳤다. “나는 그것을 베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좋은 작문을 쓰려도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단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너는 이런 작문을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거야. 그래, 어디서 베꼈지?”-126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융은 자신이 베끼지 않았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선생은 베껴온 아이들을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 경험으로 하여금 이런 일취월장을 의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베껴온 아이들은 다 베끼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때 실력을 보여주지 않은 융의 잘못일까. 아니면 자신의 학생을 믿지 못하는 선생이 잘못일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융을 믿어 주었을까?

 

물론 그 선생은 너의 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다. 다시 말해 너와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도 너와 마찬가디로 의심 많은 사람인 것이다. -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28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131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34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 했다. -136

바라는 바를 알게 되었을 때 의욕도 생겨난다.

 

실제로 모든 화급한 문제들은 일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릴적 비밀이 그러했듯이, 신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138

화급한 문제들이 신의 세계에 속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우리들을 보면서 그리 말할 수 있다. 당장 도움이 되는 급한 불부터 끄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지만 정작 급한 불은 이런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은 나에게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38

융에게 신

 

 

자연과학 VS 신의세계

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공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144

자신이 가졌다고 보이는 제 2의 인격. 이 구분을 명확하게 짓고 특성을 찾아내다니...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51

결점과 부족함. 없는 사람과 사는 것이 더 힘들다. 착한 사람이 있을때 그 사람과 조금 거리를 두려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 적이 없나? 그 사람 옆에서 나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결점이 있는 인간이 되어도 좋다는 위로도 되고, 또한 내 주변의 사람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근거도 된다.

 

그 무렵 아직 내 인생은 서로 연관되지 않는 개별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지는 그런 천진한 상태에 있었다. -153

융이 이렇게 하나의 흐름을 꿰뚫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그의 사상의 발전이 이루어준 결과일 것이다. 그도 그 당시에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현재는 개별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진 상태인지도 모른다. 점점 더 만개해가는 과정이 될 수 있겠지. 비교하는 것부터 실례겠지만

 

식물은 분명히 순진무구한 신성한 상태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식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59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164

그래도 최근에는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운명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165

왜지?

 

이 무렵 나를 놀라게 하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169

항상 꿈이 등장한다. 최근 많아진 꿈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진다.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엇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170

 

나는 제 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 2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170

1의 인격과 2의 인격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담이 일찍이 이런 방식으로 낙원을 떠난 것으로 여겨졌다. 낙원은 아담에게 유령이 되어 버렸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돌밭을 경작해야만 하는 그곳에 빛이 있었다. -171

어린 시절이 아담의 낙원인가? 그럼 나는 오랫동안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 기를 쓰고 버티고 있었던 것인가?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173

내 경우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확장시켜서 딸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참.....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75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176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이러한 종류의 인식은 사람들이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마찬가디로 이런 인식들 역시 증명을 전혀 할 필요가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에게 명백했다. 그것은 마치 일출의 아름다움이나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공포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도 같았다. -179

신에 대한 체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강렬하게 믿고 있고 듣는 이는 그 믿음을 제대로 전달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결국 경험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다품을 해야만 했으며 가족과 자기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179

신과 했어야 했군. 식구들과 나와 말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따져 물어야 했던 거군.

 

하느님은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하기는 그지없는 저 꿈들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 대답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79

나도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들은 눈을 내리깔고

대학을 떠나 속물의 땅으로 돌아갔도다.

, 저런, 저런, 저런,

, 얼마나 변해버렸는가! -183

 

대학 신입생시절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세계는 나에게 그러하듯 아버지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무한한 지식의 보물이 내 앞에처럼 아버지 앞에도 놓여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온통 기죽게 하고 우둔하게 만들고 쓰라리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84

내 부모 역시 그랬겠지. 내 딸이 보는 나 역시 그럴테고.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어디서나 마음은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으나 C.G카루스의 경우처럼 마음이 언급된 곳에서 마음에 관한 진정한 지식은 없었다. -193

마음에 대한 이해 부족.

 

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 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194

 

이런 점에서 순진한 사람은 동료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1

니체가 처한 상황. 그는 많은 것을 알았지만 세상속에 융화되지는 못했던 사람인듯 하다.

 

사람들은 작가, 신문지가, 또는 시인들에게만 그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허용할 뿐이다. -201

우리가 알지 못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우리는 허용하지 않는다. 얼마나 좁은 사람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 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이런 말도 하지 말자 생각하게 되는데 세상을 살기란 참 신경쓸 일이 많군

 

나는 더 나은 방법이 정말 없어 사실들을 제시하는 말만 들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사실들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202

사실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열광하다.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왜 어떻게 해서 식탁이 갈라지고 칼이 파열된 것일까? -206

더 분명한 계시가 되어 오는 것인가?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211

부럽다.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 저녁, 나는 오랫동안 열망했던 사치스러운 소원을 이루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간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과도한 낭비를 할 많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골동품을 팔아서 번 돈이 아직 얼마 남아 있어 그 돈으로 오페라 구경도 하고 뮌헨과 슈투타가르트 여행도 알 수 있었다. -213

작은 사치. 이런 작은 보상들이 우리를 얼마나 동기화 시키는지. 우리의 의욕을 얼마나 불태우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나는 나의 숙명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를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217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화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223

비밀이자 치료. 그것의 발견. 그러기에 더욱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것.

 

그녀가 평생을 통해 자기 죗값을 치르도록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욱 뜻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녀는 운명에 의해 충분히 벌을 받았다. 그녀는 퇴원하면서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났다. 그녀의 속죄는 이미 우울증과 병원 입원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그리고 자식을 잃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깊은 고통이었다. -225

그 영화가 뭐였더라? <셔터 아일랜드> 선량한 사람으로써 죽을 것인가 좀비가 될 것인가? 였던가?

 

음주는 괴로운 상황을 잊기 위해 자신을 마취시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는 그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32

이런 시도들을 많이 보게 되잖아. 결국 다음 날 아침은 여전히 같은데 마치 그걸 잊기 위해서인듯 더 마셔대지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차괴하기 때문이다. 살인범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셈이다. 누가 죄를 범하고 잡히면 그는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된다. 누가 도덕적 지각 없이 몰래 죌르 짓고 발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벌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고 그 죄를 알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235

잘못을 하면 누군가 그것에 비난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졸이게 된다.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형벌을 내리게 된다.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36

환자가 가진 사연의 다양성 만큼이나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은 그 상처를 건드려서 그 상처가 완전하게 나아 다시 기능하게끔 만드는 것인가?

 

여러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 일컬을 수 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39

그들도 정상적으로 기능하던 사람이다. 정상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241

 

 

꿈의 분석

치료는 환자로부터 자연스럽게 진전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248

다양한 사람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

 

물론 의사는 소위 방법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규격화된 일정한 방식에 메이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론적인 전제는 다만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 오늘은 그 전제가 타당할지 모르나 아마도 내일은 다른 전제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249

굴대를 잡고 있어야 한다.

 

모든 환자에게는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어떤 분석에서는 내가 아들러학파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고, 다른 분석에서는 프로이트학파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도 무언가 할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 -249

 

그런데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자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250

자신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 해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알겠어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사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251

나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먼저다 .모범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부분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0

다른 이가 베푼 결여인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결여인가.

 

그녀는 신화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으로 그녀 안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모두 연애행각과 의복, 성적인 것으로 쏠리고 있었다. -263

......

 

저항은 특히 완강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개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독일 수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66

저항도 고려해 주어야 한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세상의 관심을 끌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비상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전례가 없는 발전과 재앙을 두루 겪은 사람들을 의사는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다른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바치기 까지 끝없이 열광할 만한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능이 기묘하고도 꺼림칙한 정신적인 기질 속에 뿌리박고 있어 우리는 그것이 천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단편적인 발달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269

 

이전 시대라면, 신경증, 즉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지 않았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화에 의해 조상들의 세계와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있고, 그리하여 단지 바깥에서 보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서이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지디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ㅈㄱ흥 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270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에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270

이 틈이 벌어지면 중상이 나타나는 것.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 심리학을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271

지식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피분석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그들과 나의 환자들이 나에게는 끝없는 이미지의 연속으로 펼쳐보였던 정신현상과의 대면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272

자신의 생활 장면에서 많은 것을 배우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272

융은 체험을 중요시 했기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278

 

하나의 충동은 다른 하나의 충동 없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은 한편으로 그러한 충동에 굴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286

그래도 극복하려는 노력마저 없다면 어떻겠어?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더 고려했다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87

한계점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런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287

아직은 이 말을 잘 모르겠어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288

그러므로 더욱더 가변적이 것이 아닌 진리를 보아야 겠지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295

지키려 하면 할수록 빠져나가는 것. 무엇이든지 꽉 움켜잡을수록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300

꿈이 우리에게.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그들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계몽이 신경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조로운 일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때에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부터 억압해오던 것에 머물기를 너무 좋아하기만 한다. -307

빠져나오면 치료가 되는게 그들은 머물러 있다. 현실을 싫어하면서도 그 안에 머무른다. 우리네 모습도 닮아 있지 않나?

 

인간이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한 버릴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 불가능하다. -308

그런데 왜 그렇게 이성적인 아니면 안 되는 듯 나를 다그치게 되는 것일까?

 

나는 희생의 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310

 

 

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당시능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15

나에게 할 수 있는 질문들

 

해석은 환자의 대답과 연상에서 자연히 도출되는 듯 했다. 나는 이론적인 관점을 모두 접어두고 환자가 꿈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나는 꿈을 꿀 때 이와 같은 방식을 꿈해석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316

나의 꿈은 내가 해석해야 되는 것일까?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320

때론 이런 것들이 나에게 길을 알려줄 수도 있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321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325

내부의 소리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틈,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326

감정-이미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고상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마구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견뎌내려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다.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야 비로소 그 미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327

그렇게라도 해방될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327

 

 

필레몬과의 대화

나는 책상 앞에서 또다시 나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만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마치 바닥이 실제로 내 및에서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329

두려움이란 것은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그러한 꿈속의 방황에서 사람들은 흔히 젊은 처녀와 동행하는 노인을 보게된다.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그런 짝의 예들이 발견된다. 그노시스파의 전승에 따르면, 시몬 마구스는 사창가에서 데려온 한 젊은 처녀와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헬레네라고 불렸고 트로이 헬레나의 재현이라고 여겨졌다. 클링소르와 쿤드리, 노자의 무녀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예에 속한다. -334

수로부인이 생각나는데

 

팔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335

내 마음 속에도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겠지?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속의 짐승이나 방 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당신이 방안에서 사람들을 본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그 사람들을 만들었다거나 당신이 그사람들에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336

 

아마도 나의 무의식이 내가 아닌 어떤 하나의 인격을 이루었고, 그것이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를 말로 표현하는가보다. -339

내 안에도 다른 인격이 있는걸까? 우리는 모두 다중이인거야?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341

그래서 우리는 쓰기 훈련을 한다.

 

그것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무의식 내용에서 힘을 제거할 수 있다. -341

그 인격을 끌어내어 밝은 빛을 쪼이게 해주어야 한다는 건가?

 

결정적인 것은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해대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342

 

당신은 지금 또 무엇을 하려는 거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소? 나는 그것을 알았으면 하오!” -343

의식이 무의식에게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돠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345

설명하려 말자. 그 마음부터 버리자.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게 나일 수도 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중명했다. -346

니체와의 차이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져들었다. -346

귀환하지 못한 영웅?

 

나는 원초적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새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체험은 생명력 없는 주관적 가설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351

 

나의 저작, 즉 내가 정신적으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은 다 초기의 명상과 꿈에서 나온 것이다. -351

어린 시절의 중요성?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개대 소홀히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안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결국 무의식의 부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351

부정적 작용이 나타나도록 방치하는 나인가?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353

급한 일보다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일을 먼저 하라는 말을 우리는 듣지.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은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353

우리 자신이 먼저 들어주지 않고 있다. 나의 소리를 다른 이는 모르더라도 나는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나중에 나는 이 사실을 나의 연구저술에서 제시했고, 나의 가까운 벗들에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만일 내가 그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느 절대적인 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354

그가 한 노력들.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생각

 

거기에 있는 동안 나는 아침마다 노트에 작은 그림, 즉 만다라를 그렸는데 그것은 당시 나의 내면적 상황과 연관된 듯이 보였다. 그 그림으로 내정신의 변화를 매일 관찰할 수 있었다. -355

꿈일기?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계속 의문이 일었다. “ 이 과정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가? 어디에 그 목표가 있는가?” -356

연구원을 하면서 나는 끝없이 묻는다.

 

모든 길의 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357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단일형의 발달도 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단계에서나 있는 일이고,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한다. -357

모든 발달은 중심을 향한다. 결국은 중심을 보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발달한다면

 

그런 환상이 없었으면 나는 아마도 방향감각을 잃고 그 작업을 포기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마음이 표현되었다. 프로이트와 헤어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질 것을 알았다. 그 무렵 프로이트를 넘어서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이럴 때 그런 꿈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은혜의 작용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361

그도 프로이트와 결별할 당시 불안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사람이란 때론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마련이 아닌가?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361

지금?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 과정, 즉 개성화였다. -367

개성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가?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 였다. 그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374

읽어보고 싶다.

 

나는 인간의 본능을 에너지과정의 여러 표현으로 여기며, 열이나 빛 들과 유사한 힘으로 본다.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할 수 없다. -377

 

목수의 아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382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388

 

이 죄악은 누구의 책임인가?”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이 세상과 죄를 창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숙명적 고뇌를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하느님에게 있다. -389

 

그 문제가 나에게 달려든 방식대로, 즉 감정을 억제하지 않은 채 체험한 그대로 써내려갔다. -389

 

인간은 신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않다면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95

 

밑바닥에 도달한 그 순간, 나는 학문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부딪혔다.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397

학문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과학은 많이 발전했지만 예전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에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397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398

내가 가능한 것들을 해 낸다.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단지 커튼으로 나누어진 방 한구석이긴 하지만, 인도 가옥에는 대개 사람들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403

혼자만의 공간의 중요성

 

건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편적으로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좇아서 일을 했다. 그래서 내적인 연관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꿈속에서 탑을 지은 셈이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게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404

켐밸의 방랑?이 생각나는 부분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05

단순함이란 때론 가장 어려운 법. 그렇지만 단순한 법

 

여기 돌이 있네. 보잘것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406

연금술사의 돌. 해리포터 1권이 생각나는 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과 함께하는 삶이 전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무의식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다. -409

불협화음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자연은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무섭도록 모순되고 혼돈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410

자연이 항상 조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카르마

나는 미래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419

그렇다면 이미 나의 미래는 준비되고 있는것인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420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 들어가 거친 ㅗㄱ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나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421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422

사대를 막론하고 찾고 공통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로 보인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422

많은 것들이 시간을 단축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징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423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427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기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의지와 숙고된 의도에 다라 자의적으로 행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강렬함이다. -433

삶의 강렬함. 찾고 있는바.

 

어린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 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 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437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438

합리적인 것은 때로 희생을 가져오는 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쿨함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43

머리로 생각한다가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마음으로도 생각이 가능할 터

 

저기 떠오르는 저것이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어떻게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단 말이오? 어떻게 다른 신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태양 이외에 다른 신은 없소.” -448

태양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신도 그랬다. 태양도 신이다.

 

그는 태양의 아들로 그의 생명은 우주론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의 아버지요 보존자인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고 지도록 돕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충격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0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가 빌지 않아도 태양이 떠오르리라는 것을 안다. 어떻게 알 고 있는 거지? 어쩌면 태양이 진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452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것은 모두 좋다. -루소 -453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 -457

 

여성의 평등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반관계가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 -467

둥반관계가 의미가 있었다면 여성의 평등권이라는 말이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가 내게 무엇을 가져올 것인지는 미리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 만족할 만한 대답과 경험을 갖게 되었다. -486

처음에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할 수는 없잖아. 물론 기대하게 되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489

경험주의의 입장?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 -489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시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시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의미는 오직 그걱이 본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데 있지 않다. -491

인간임을 떠나고 시지 않은 마음?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491

참여해야 해방도 가능하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에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 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더질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주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1

 

역사적 발전은 그리스도 모방으로 이어져, 개인의 전체성이 이르기 위해 자기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간 길을 본받아 따라가려고 한다. -496

자신 고유의 길을 가야한다.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508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글로 표현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라고 말이다. ‘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516

 

 

융합의 신비

내가 어제와 동시에 오늘과 내일 존재한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한 현재이며,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그래도 하나였다. -525

이것 역시 경험으로만 가능한 것인가?

 

감정적인 관계는 강요와 예속으로 부담을 주는 열망의 관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그로 말미암아 상대방과 우리 자신이 부자유하게 된다. 객관적인 인식은 감정적인 연관성 너머에 있다. 이 사실이 중요한 비밀로 여겨진다. 객관적 인색을 통해서만 진저안 융합이 가능하다. -526

감정적 관계가 주는 억압의 요소, 진정한 융합의 비법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잇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527

공자와 제자의 대화가 생각난다. 쉴 곳은 무덤뿐?

나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몫을 타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기쁨도 서러움도 말이다. 누구나 다 각자 개인이 느껴야 할 몫이 있는 것이라고. 누구든지 그것을 비켜 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닥쳐올 것이라면 그저 맞이하는 방법 외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이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oqo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528

어떻게든 다가올 일이라면 그저 담담하게 맞이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나에게 올 것이었다면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왔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비켜갈 방법따위는 알고 있지 않았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신화적인 인 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애 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체를 사람들은 놓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것 없이 지내야 하는 어떤 그럴듯한 이유도 제시 할 수 없다. -534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 둘 것이다. 심지어 그것으로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535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이것 역시 조건부이긴 하지만)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536

이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 하루를 살더라도 말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536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 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 보라.

이것을 단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 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꿈은 때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한다. 엄마는 내 수능점수를 맞혔고, 내가 아이를 낳을 떄 순산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그 꿈은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539

 

부인하는 자는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542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죽은 자의 혼령들도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던 것만 알고 그 외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앎에 참여하기 위해 인생 속으로 밀고들어오려 애쓴다. -546

 

살아있는 사람의 혼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죽은 자에 비해 유리하다. , 명쾌하고 결정적인 인식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546

 

어딘가에서 이미 도달하게 된 의식성의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죽은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상한을 이룬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상의 삶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니며, 사람이 죽을 때 ;ㅕㄴ으로 가져가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모앵이다. 오직 이곳, 대극이 부딪히는 지상의 삶에서만 일반적인 의식은 고양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과제로 여겨지는데 신화화가 없이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채워질 수 있을 뿐이다. -551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551

그래도 나는 조금 실존주의적인 입장인데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 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주주의에 갖혀 경직 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558

장단점이 있기 마련. 개인에 따라서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할 것

 

 

단일성과 무한성

나는 양쪽다 옳다고 생각한다. 서양인은 외향적인 경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대향적인 경향이 강한 듯 하다. -560

어느 것이 꼬집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인 듯

 

부처는 제자들이 니다나(인연)사슬을 명상하는 것, 다시 말해 출생, , 늙음과 죽음,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원인과 작용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유익하리라고 여겼다. -561

 

나의 존재 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562

 

정신적인 삶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564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조의 근본에 불완전함이나 근원적 결함이 없다면 어찌하여 창조 충동, 완성된 것에 대한 갈망이 생기겠는가? 어찌하여 신들에게 인간과 창조가 중요했던가? 그리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니다나사슬의 연속은 무엇인가? 어찌하여 부터의 존재의 고통스러운 환각에 대하여 그것의 을 서라하고, 기독교인이 임박한 세계의 종말을 바라는 것인가? -566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애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이 관심 쏟지 않을 것이다. -572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572

잘못된 소유가 가져오는 문제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573

결국 제약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내가 만들어 내고 그 안게 갖혀서 다른 환경을 탓하고 있는거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맑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 볼 수 있다. -574

의식이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해서 꿈이 많아 진 것은 아닐까?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우리는 결코 악에 더 이상 빠져들어서는안 되며 선에도 빠져들어서도 안 된다. 이른바 사람들이 빠져버린 선은 도덕적인 성질을 잃게 된다.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빠져버렸으므로 그것이 나쁜 결과롤 발전하기 때문이다. 중독의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ㅕㄴ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 이상 이끌려서는 안 된다. -580

어떤 것이든 빠져듬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중용?

 

윤리적 결단이 요구한다면, 버릇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의 대극에 빠져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81

 

하지만 개인은 보통 자신의 결단능력을 결코 인식하지 못할 만큰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당황스러운 가운데 의지할 수 잇는 외부적인 법과 규정을 자꾸만 소심하게 찾고 있다. -582

소심해지고 자신이 안주할 수 있는 전례를 찾아간다.

 

우선 철저한 자기 인식, 즉 자신의 전체성에 대한 최선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82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584

우리가 억압했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는 왜 억압하게 되었던 거지?

 

신은 인간의 현실로 들어서 인간의 형상 속에서 인간과 함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육화를 통해 인간, 즉 그의 자아는 내부적으로 으로 대체되며 신은 외부적으로 인간이 된다. -592

인간이 신이 되고 신이 인간이 된다? 뭔가 잡힐 듯 말 듯 한 기분이다.

 

인간은 성찰하는 정신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는 인간 본성이 특히 의식의 발달을 오이 ㅕㅇ가하고 있음을 그의 정신을 통하여 증명한다. 의식의 발달을 통하여 그는 자연을 소유하고 그 안에서 세계의 현존을 인식하며 이를 테면 창조주를 입증한다. 이로써 세계는 현상이 왼다. 의식적인 성찰 없이는 그렇게 될 수 없는 법이다. -594

의식적인 성찰의 중요성.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 거야?

 

의도되거나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으로부터 예감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고, 손으로 더듬어 찾아진 것이었다. -595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준다. -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597

우리는 이미 이것을 경험했잖아?

 

신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이 신과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말씀은 우리에게 자연발생적으로 다가와서, 우리를 강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이 모두 인간적이며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이다. -597

 

우리는 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 다른 곳에서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597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을 우리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상하리만치 맞아떨어져 가는 현상들도 말이다.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맞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598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온갖 집단적인 동일성, 예를 들어 어느 조직체의 일원이 되는 것, 무슨 주의나 그와 같은 것들을 신봉하는 것 등은 장애가 될 수 있다. -601

개성화

 

다만 개인에게 설명될 수 없는 잔인한 ㅣㄹ연이 있을 뿐이다. 익서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자비한 숙명성에 휩쓸리게 한다. 아마도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가할 만한 가장 고유한 영역에서 생애 처음으로 보다 강하고 낯선 존재를 대면하게 될 것이다. -603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것들.

 

어린아이의 정신은 전의식 상태에서 결코 백지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개성적인 혀앹를 이루고 있으며, 게다가 온갖 특수한 인간적 본능들을 갖추고 있고, 또한 보다 고급스러운 기능들의 선험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610

아이들에게도 기질이 있긴 한데. 뒤로 갈수록 융은 어렵다.

 

어떤 의식적인 의지도 생의 충동을 오랫동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610

가장 강렬한 것이 생의 충동. 살고자 하는 욕망?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주관적이라 부르고 단지 개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람들은 그 진술이 진정으로 개발된 주체로부터 나왔고 오로지 개인적인 동기에서 야기된 것인지, 아니면 보ㅕㄴ적으로 나타났고 집단적으로 존재하는 역동적 유형에서 솟아나온 것인지 구분하지 않음로써 실수를 범하고 있다. -616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618

바울의 조건문. 멈춰지는 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 전서> 13:7) 이 구절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619

사랑

 

 

회고

비밀로 가득찬 세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3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개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624

자신만이 가진 특성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우리는 저마다 다른 특성을 타고 태어났으니까.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624

이럴 때 우리는 군중 속에서 홀로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아군을 찾아나서게 되지

 

고독한 사람보도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 만개하게 된다. -625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하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들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628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내가 기대할 수 있었을까? 기대 밖의 인생이다. 이보다 더 나다울 수도 없다. 이 길이 나의 길이다.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들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629

나는 후회는 잘 하지 않는다. 일어난 일이고 그것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후회하기 보다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하지만 실수라는 것도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후회할 만한 일도 나를 키워가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 후회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나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것 아닌가? 그저 되돌아보고 얻는 것이 있다면 후회로 가득 차 있는 것보다 낫다고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너무 쉬운가?

 

나는 나 자신에 관해 놀라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나는 슬퍼하고 낙심하고 열광한다. 또한 나는 그 모든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거의 합을 계산할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결정적인 가치나 무가치를 확증할 입장이 못 된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 -629

나는 그 모든 것이다.

 

편집자의 말 A. 야페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635

그럼... 우리는 말할 가치가 있는 것만을 보고 있는 것이군

 

내가 그토록 애를 써서 상세히 현한 것을 짧은 형태의 글로 내놓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나의 온갖 증거자료를 생략해야 할 것이고, 연구결과를 이해하는 어려움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는 단정적인 현방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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