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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8일 20시 0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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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한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천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과 기억력이 밑받침 되었지만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이었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사상은 분리된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성향은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 변혁 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통할 공간을 폐쇄된 학문 공동체로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 중요한 업적을 포함하여 그가 지닌 확고한 신념과 세계관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글로 담아내어 관심을 지닌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에게서 천재의 오만함이나 귀족의 도도함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나 글이 경박하거나 얄팍한 것 역시 아니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러셀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해주는 것이며,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면모라고 하겠다. 진정한 학자가 지녀야 할 덕목인 학문적 진지함이 반드시 엄숙함일 필요는 없다. 러셀은 이미 100년 전에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학자로서의 엄숙함이라는 옷을 벗어버렸다. 논리학과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저술이자 러셀의 주저 중 하나로 평가되는 <수학의 원리>의 방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시기에도 그는 사회적 문제를 멀리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1928년에나 주어지는 여성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그는 1996년 여성참정권협회에 가입하여 이듬해 하원의원직에 첫 도전을 했다. 또한 논리적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하여 인식론과 존재론 분야의 저작을 왕성하게 집필하던 1910년대 중반 전쟁이 터지자 그는 징집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5개월의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자신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대부분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에 자신은 매우 행복한 삶을 즐긴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러셀은 그가 실로 삶을 즐기며 살았기에 『행복의 정복』에서 단순 명쾌한 행복론을 주장할 수 있었으리라.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나는 짐승이 되어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짐승들은 저다지도 평온하고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나는 서서 오랫동안 짐승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조건을 역겨워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캄캄한 밤에 일어나 죄를 뉘우치며 우는 일도 없다.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며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뭇 짐승들 중 어느 한 마리도 불만을 느끼지 않고 소유욕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어느 한 마리도 다른 짐승에게 무릎 꿇는 일도 없고 수천 년 동안 살아온 종족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 지구 위 어느 한 마리도 명예를 가지고 있거나 불행하지 않다. -윌트 휘트먼-

 

제1부 불행의 원인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나의 목적은 문명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불행은 분명한 외부적 원인이 없어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다. 나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주로 잘못된 세계관, 그릇된 윤리, 좋지 못한 생활 습관에 있다고 믿는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행복이든 동물의 행복이든 모든 행복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가능한 일에 대한 자연적인 열정과 요구를 파괴한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능력 범위 안에 속해 있는 일이며, 따라서 나는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변화의 방법을 제시하려고 한다. [14]

지금은 삶을 즐기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삶을 더 즐길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대부분 손에 넣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욕구-예컨대 어떤 것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식의 획득 따위-를 깨끗이 단념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주된 원인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15]

나는 나 자신을 의심의 여지없이 비참한 사람의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무관심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점점 더 외부의 대상, 즉 세간의 일이라든가 여러 가지 지식의 분야라든가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15]

‘자기도취’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습관적인 죄의식에 반대되는 것이다. 자기도취는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또 자기 자신이 찬양받기를 바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도취는 정상적인 것이며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자기도취가 중대한 악이 되는 것은 너무 지나칠 경우이다. [18]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되며, 그럴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 법이다. 따라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오직 남에게서 칭찬을 받는 데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또 설사 목적을 이룬다 하더라도 완전히 행복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19]

허영심이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 깃들인 쾌락을 말살하고, 불가피하게 피곤과 권태를 일으킨다. 허영심은 대개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며, 이런 경우에는 자존심을 키우는 것이 그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도 객관적 관심에 의해 자극된 활동에 성공할 때만 효력이 있다. [19]

➜ 자만심은 자신감이 극도로 부족할 때 나타나는 양상일 수도 있겠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은 매력적이기보다는 강력해지기를 바라고, 사랑을 받기 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과 구별된다. 많은 정신병자와 역사상의 대부분의 위인이 이러한 타입에 속한다. [19]

알렉산더 대왕은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으나, 단지 그에게는 정신병자의 꿈을 실현시킬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꿈을 실현할수록 자신의 꿈의 폭도 넓어져 결국 그는 꿈을 완전히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자 그는 신이라 자처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폭음, 격렬한 분노, 여성에 대한 무관심, 신성에 대한 요구 등은 그가 행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인간성의 한 요소를, 다른 모든 요소를 희생시켜가면서 개발했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온 세상을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재료로 삼는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

➜ 어떤 것이든 정도를 벗어나면 좋을 것이 없다.

 

바이런적 불행

인간이라는 동물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생존 경쟁에 적응하기 마련인데, 이성적 인간(homo spiens)이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온갖 변덕을 만족시킬 수 있을 때에는, 그의 생활에 아무런 노력도 없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행복의 본질적 요소를 상실하기에 충분하다. 아주 사소한 욕망을 쉽게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욕망의 실현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만일 철학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도 역시 불행한 것으로 보아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비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중 일부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행복의 불가결한 요소임을 그는 잊고 있는 것이다. [28]

➜ 욕심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가장 주된 원인인 듯.

이 세상에는 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는 재능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겠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어려운 생활에 전념해보라.” [43]

➜ 경험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어려움을 견뎌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투쟁이다. 투쟁을 벌이면서까지 두려워하는 것은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보다 우월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46]

➜ 남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면 평상시에 느끼는 두려움이 훨씬 줄어들 수 있는 건지도.

어떤 직업에 있어서나 성공에는 경쟁이라는 요소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존경의 대상은 오직 성공만이 아니고 오히려 성공의 원인이 된 탁월성이다. 과학자는 돈을 벌기도 하고 벌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돈을 벌지 못했을 때보다 더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탁월한 장군이나 제독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놀라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 경우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가난 그 자체가 하나의 명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한 경쟁은 일부 계층에 국한되어 있는데, 그 계층은 아마도 가장 영향력이 있거나 또는 가장 존경받는 계층은 아닐 것이다. [51]

오늘날의 부자도 가끔 교양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 대체로 전혀 다른 타입이다. 그들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화랑을 세우는 경우에도 그림의 선택은 전문가에게 의뢰한다. 그가 그림으로부터 얻는 쾌락은 그림을 감상하는 쾌락이 아니라 다른 부자가 그 그림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데서 오는 쾌락인 것이다. [52]

경쟁의 철학 때문에 오염되는 것은 사업만이 아니다. 여가도 마찬가지로 오염된다. 조용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여가는 권태로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래서 계속적인 가속이 반드시 요청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말은 마약과 쇠약뿐이다. 이러한 병에 대한 치료법은, 건전하고 조용한 기쁨을 삶의 조화로운 이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56]

 

권태와 자극

권태는 본질적으로 어떤 일에 대한 욕망이 좌절된 것을 뜻한다. 그것은 반드시 즐거운 일이 아니어도 무방하고, 권태의 희생자로 하여금 그 날을 다른 날로부터 구별하게 하는 사건이면 충분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권태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라 자극이다. [58]

권태는 인간이 자연적인 운명의 일부가 아니며, 생생한 자극을 추구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확신하고 있다. [60]

전쟁, 학살, 박해는 모드 권태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웃과 말다툼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므로 권태야말로 모럴리스트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적어도 인류의 죄악의 반은 권태를 두려워한 나머지 저질러진 것이기 때문이다. [61]

그러나 권태를 전적으로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권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건설적인 권태이고 또 하나는 파괴적인 권태이다. 건설적인 권태는 마약이 없는 데서 생기고 파괴적인 권태는 생동하는 활동이 없는 데서 생긴다. 그렇다고 마약이 삶에 있어서 좋은 역할을 하나도 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현명한 의사가 아편을 처방하는 경우가 있으며, 나는 이러한 경우가 아편 금지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62]

권태의 어떤 요소는 너무 지나친 자극을 회피하는 것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나친 흥분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깊고 근본적인 만족 대신 쾌감을, 지혜 대신 약삭빠름을, 아름다움 대신 값싼 경이를 대치시킴으로써 모든 종류의 쾌락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62]

나는 자극에 대한 반대를 극단적으로 밀고 갈 생각은 없다. 어느 정도의 자극은 건전하지만 만사가 다 그렇듯이 문제는 그 양에 있다 너무 적으면 병적인 갈망을 일으킬 것이며 너무 지나치면 피로를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권태를 견디는 어느 정도의 힘은 행복한 생활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63]

➜ 자극에 지나치게 노출 되면 그 영향으로 서슴없이 잔인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언론에서 많이 볼 있는 청소년들의 폭력행위도 그만큼 자극적인 것에 많이 노출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위대한 책에는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으며, 위대한 생애에는 모두 흥미 없는 기간이 있다. [63]

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도 몇 번의 위대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감격적이지 않다. [64]

칸트는 전 생애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10마일 이상을 나간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다윈은 세계 일주를 한 후 나머지 생애는 자기 집에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두세 번 혁명을 선동한 다음에는 나머지 세월을 영국 박물관에서 지내기로 결심했다. 어느 경우에나 조용한 생활이 위인들의 특색이었다는 것, 게다가 그들의 쾌락은 외부에서 볼 때 결코 자극적이지 않은 쾌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4]

➜ 위인들의 인생이 늘 버라이어티 하지는 않다는 것. 그들에게도 한 번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겠지.

위대한 업적은 어느 것이나 불굴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알프스 등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인들에겐 휴일에 육체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오락을 제외하고는 다른 종류의 오락에 쏟을 에너지는 거의 남지 않는다. [64]

어느 정도의 단조로운 생활을 참는 능력은 어린 시절에 길러야 한다. 현대의 부모들은 이 점에서는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대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쇼라든가 맛있는 음식 따위의 수동적인 오락을 지나치게 제공하는 반면,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날과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주로 약간의 노력과 창의력에 의해서 어린이 스스로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찾아내는 것이라야 한다. 예컨대 영화 구경처럼 자극적이지만 육체적 노력이 전혀 필요 없는 즐거움은 아무 드물게 주어져야 한다. [64]

➜ 이 책은 40년 전에 쓰였는데 그때도 가정교육은 문제였나 보다.

자극은 본질적으로 마약과 같아서 점점 더 많은 양이 필요하게 되며, 흥분하고 있는 동안의 육체적 수동성은 본능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 식물처럼 같은 토양에 그대로 놓아둘 때에 가장 잘 자란다. 따라서 너무 잦은 여행, 너무 다양한 인상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으며, 그들이 성장했을 때 유익한 단조로움을 참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단조로움 자체가 가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어떤 좋은 일은 어느 정도의 단조로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65]

어떤 진지한 건설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나 청년은 목적 달성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경우에는 상당한 권태를 자진하여 참을 것이다. 그러나 오락과 유흥을 일삼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의 마음속에 건설적인 목표가 생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소년의 생각은 먼 미래의 목적 달성보다는 오히려 목전의 쾌락에 쏠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권태를 견뎌내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들의 시대가 될 것이고, 자연의 자연스러운 섭리로부터 부당하게 벗어난 사람들, 모든 생명력이 마치 꽃병에 꺾어다 꽂아둔 꽃처럼 천천히 시들어버리는 사람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65]

➜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보다는 당장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자극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더 잔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대지의 생명과 접촉하게 해주는 쾌락은 깊은 만족을 주며, 그리하여 쾌락이 사라져도, 비록 그 쾌락을 즐길 때보다는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그 쾌락이 준 행복은 여전히 남아 있다. [67]

현대의 도시인들이 겪고 있는 특수한 종류의 권태는 현대의 도시인들이 대지의 생명과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67]

자기 자신의 생활 방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권태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역설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이 권태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건설적인 권태로부터 달아나려다가 그들은 훨씬 더 나쁜 종류의 권태의 희생자가 된다. 행복한 삶은 대부분 조용한 생활이어야 한다. 참된 환희는 오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68]

➜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한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연습도 이제는 필요하다.

 

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걱정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때에도 그들은 걱정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때에도 그들은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한다. 남자들은 사업상의 고민을 잠자리까지 끌고 들어간다. 내일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원기를 회복해야 할 밤에도 몇 시간씩이나 당장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도 없는 문제에 대해 곰곰이 되풀이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도 내일의 행동을 위한 건전한 지침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방식이 아니라 불면증 환자의 어순선한 상념처럼 반미치광이 같은 방식으로 고민하곤 한다. 밤새 그렇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매달린 걱정은 아침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들의 판단을 흐려놓고 기분을 상하게 하여 사사건건 격분하게 만든다. [72]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들은 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도외시할 수 있다. 줄곧 과도하게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대신 오히려 적절한 때에 적당하게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정돈된 심리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행복과 능률이 얼마나 증진되는가를 알면 놀라울 정도이다. 곤란하거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필요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즉시 그 문제에 정신을 집중해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 않는 한 결정을 재고하지 말라. 우유부단보다 더 피곤한 것은 없고 또 그것만큼 무익한 것도 없다. [73]

➜ 우리를 가장 불행하고 만들고 있는 것은 어떤 외부적 환경 요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대부분의 걱정은 그 문제가 대단치 않은 것임을 깨달으면 감소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공개 강연을 해왔다. 처음에는 모든 청중이 무서웠고, 신경과민으로 강연은 매우 서툴렀다. 그 시련이 무서워서 강연을 하기 전에는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강연을 마쳤을 때는 신경의 긴장 때문에 기진맥진 했다. 점차로 나는 내가 강연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으며, 잘하든 못하든 우주에는 변화가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하여 강연의 성공 여부에 개의치 않으면 않을수록 강연이 덜 서툴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점차로 신경의 긴장이 감소되어 결국엔 거의 긴장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73]

➜ 내가 실패를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결과가 내 인생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더 많이 행동할 수 있겠지.

대부분의 신경피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 또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커다란 슬픔이라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행복을 끝장나게 할 것처럼 보이던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로 사그라져 언젠가는 그 고민의 매운 맛을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자기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인간의 자아라는 게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어떤 초월적 존재 가운데 둘 수 있는 사람은, 철저한 이기주의자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 즉 일상생활의 걱정거리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74]

현대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피로는 언제나 정서적인 측면의 것이다. 순수한 지적 피로는 순수한 근육의 피로와 마찬가지로 숙면으로 해결될 수 있다. 정서와는 관계가 없는, 상당히 많은 지적 노동-예컨대 정밀한 계산-을 하는 사람들은 일과 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함으로써 그날의 피로를 없앨 수 있다. 과로 탓으로 돌리는 해독은 과로가 그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이나 불안이 그 원인인 것이다. [74]

➜ 걱정에 휩싸여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하루 종일 일을 한 것 보다 더 피곤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즉 내가 상당히 어려운 어떤 문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면 나는 이 문제를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아주 열심히-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열성을 기울여서-생각하고, 이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말하자면 일을 의식의 지하에서 진행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몇 달 후에 내가 의식적으로 그 문제로 되돌아오면 의식의 지하에서 그 일이 이미 완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돈다. 이러한 기술을 발견하기 전에는 몇 달 동안을 아무런 진척도 보지 못한 채 걱정을 하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쭉 고민하고 있었다고 해서 해결이 더 빨리 되는 것도 아니어서, 공연히 몇 달 동안을 허비하고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몇 달 동안을 다른 탐구에 바칠 수 있다. [76]

어떤 불행이 닥쳐왔을 때 진지하고 신중하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직시한 다음에는, 그 불행이 그렇게 두려운 재난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열거해보라. 그런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나빠 보았댔자 내 한 몸에 일어나는 일이 결코 우주적 중요성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 동안 최악의 가능성을 응시한 후, 진정한 확신을 가지고 “좋아, 그까짓 것 별 문제 아닐 거야”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을 때 당신은 당신의 걱정이 놀라울 정도로 감소된 것을 알게 되리라. 이러한 과정을 몇 번은 되풀이해야겠지만 아무튼 당신이 최악의 사태를 직시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면 당신은 당신의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고, 그 대신 일종의 쾌감이 생긴 것을 알게 될 것이다. [77]

➜ 최악의 상상은 늘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가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열거 할 수 있다면 그 두려움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종류의 공포는 그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욱 악화된다.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피하려고 하는 공포의 망령을 부추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78]

삶이란 자극의 도움 없이는 참아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극적인 쾌락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신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건강을 해치거나 일에 방해가 될 정도의 피로한 쾌락은 피하는 것이다. [80]

 

질투

비교하는 습관은 치명적인 것이다.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그 일을 충분히 즐겨야지, 다른 사람에게 생겼을지도 모를 일에 비하면 즐거운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87]

현명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즐거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88]

➜ 사람들이 나에게 잘 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 여겨 별 것 아니라 치부했다. 이것도 다 비교에서 기인된 문제였구나. 괜한 비교로 인해 나를 더 위축시키고 있었다.

사실 질투에는 도덕적인 면도 있고 지적인 면도 있지만 분명 일종의 악덕이다. 이런 악덕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비교 관계를 통해 보려고 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월급을 탄다고 치면 나는 만족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나의 두 배나 되는 월급을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만일 내가 질투가 심한 성격이라면, 그 즉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만족은 적어지고 불공평하다는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은 정신적 훈련, 즉 무익한 일은 생각하지 않는 습관뿐이다. 행복보다 더 부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내가 나 자신의 질투를 고친다면 나는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남의 선망에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보다 두 배의 월급을 받는 그 사람역시 그 나름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두 배를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며 이처럼 인간의 질투엔 한계가 없는 것이다. [88]

당신은 성공만으로는 질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역사나 전설 속에는 언제나 당신보다도 더 성공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에게 찾아오는 쾌락을 즐김으로써,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리고 당신 자신보다도 훨씬 행복하다고 상상하는-아마도 이런 상상은 대개 착각일 것이다-사람들과 비교하는 일을 그만둠으로써, 질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89]

질투는 경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행운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계급 제도가 확립되어 있던 시대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은 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한 최저 계급은 상류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거지 역시도 더 많이 얻어낸 다른 거지를 부러워할지언정 백만장자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와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의 평등주의적 이론은 질투의 폭을 훨씬 넓혀놓았다. 당분간 이것은 분명히 폐단에 속할 테지만, 이는 보다 공정한 사회 제도에 도달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폐단이다. 불평등을 이성적으로 고찰하면, 그것이 어떤 탁월한 공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한 부당하게 보인다. 그리고 불평등이 부당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 결과로 생기는 질투는 불공평한 일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치료법이 없다. [90]

나쁜 일은 모두 서로 관련되어 있고 나쁜 일 중의 하나는 다른 나쁜 일의 원인이 되기 쉽다. 특히 대체로 피로는 질투의 원인이 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일반적으로 불만을 느끼는데, 이 불만은 힘이 덜 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의 형식을 취하기 쉽다. 그러므로 질투를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피로를 줄이는 것이다.[91]

 

죄의식

인간은 불행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과도한 요구를 제시하기 쉬운데, 이러한 요구가 대인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방해한다.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는 우월한 듯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게 되고, 남을 칭찬하기는 어렵고 시기하기는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보두에게 불쾌한 사람이 되고 점점 더 고독해질 것이다. 너그럽고 관대한 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뿐 아니라, 이러한 태도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므로 스스로에게도 행복의 원인이 된다. [105]

진실로 만족스러운 행복은 우리들의 능력을 가장 충실히 발휘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장 충실히 이해하는 데 있다. [108]

➜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피해망상

가장 고상한 사람의 활동도 그 대부분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며, 이 점을 유감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류를 존속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17]

무슨 일을 하던 간에 확실한 열의의 도움이 있어야 그 일을 적절히 마칠 수 있으면, 이기적인 동기가 없으면 열의는 생기지 않는다. [117]

성자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일종의 자기기만과 연관되고 자기기만은 쉽게 피해망상을 일으킨다. [118]

자기기만에 근거를 둔 만족은 어느 것이나 견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무리 불쾌한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진실에 직면하고 진실에 익숙해져서 그 진실을 토대로 당신의 삶을 세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22]

 

여론에 대한 공포

여론은 여론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는 여론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난폭하다. 개는 사람들이 무시해버릴 때보다는 무서워할 때에 더 크게 짖고 더 쉽게 물려고 든다. 인간이라는 짐승도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그들을 무서워한다는 낌새를 보이면 당신은 좋은 사냥 대상이 되기 쉽고 반면 당신이 무관심을 나타내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따라서 당신을 건드리지 않는다. [128]

관용을 베푸는 마음을 기르는 최상의 방법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주된 쾌락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135]

 

제2부 행복의 원인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성공했을 때 언제나 놀라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실패할 때 놀란다. 같은 놀라움이라도 전자는 유쾌하지만, 후자는 불쾌하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는 것이 진취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141]

어떤 취미에 몰두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신념에 헌신하는 것과 같다. 생존 중인 가장 저명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은 그의 시간을 수학 연구와 우표 수집에 동등하게 분배하고 있다. 우표 수집은 수학 연구에서 진전을 보지 못할 때에 위안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49]

행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 한 당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 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152]

➜ 나에게만 집중된 시선을 거두어 세상에 돌리고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나를 덜 괴롭히게 되게지.

 

열의

마음은 마음속에 들어오는 여러 재료를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이상한 기계이다. 그러나 외부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재료가 없으면 이 기계는 무력하다. 그런데 소시지 기계와는 달라서 이 기계는 재료를 스스로 공급해야 한다. 여러 가지 사건들은 우리가 그 사건들에 대해 갖는 관심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부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외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영혼을 살펴보는 순간에 자기의 내부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유형으로 분류되고 결합된 요소들로 구성된 매우 복잡하고 흥미 있는 여러 가지 경험을 발견할 수 있다. [156]

시골길을 산보할 때 마주치게 되는 여러 가지 사물을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은 새에, 어떤 사람은 야채에, 어떤 사람은 지질에, 어떤 사람은 농업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뭐가 됐든 당신이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흥미 있는 것이 되며, 다른 조건이 같다면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이 세상에 더 잘 적응한다. [157]

➜ 삶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그만큼 나 이외에는 관심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사랑

안정감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 사람들보다는, 적어도 그들의 안정감이 그들을 재난으로 이끌고 가지 않는 한, 훨씬 더 행복하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정감은 다른 사람이라면 굴복하고 말았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당신이 틈이 벌어진 좁은 판자 위를 걷는다면, 겁을 먹지 않았을 때보다는 무서워할 때에 떨어질 확률이 더 크다. [171]

➜ 실수가 많아지는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이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결과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올바른 종류의 사랑을 언제나 받고 있다는 데에서 생긴다. [171]

 

가족

어른이 확신과 자신을 갖지 못할 때, 어린아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좋다. 자녀에 대한 권력보다는 진정으로 자녀의 복지를 바라는 부모라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정신분석과 같은 교과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본능에 의해 올바르게 인도될 것이다. [196]

 

권태의 예방책으로서 가장 우선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일이다. 흥미 없기는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권태는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하는 사람이 느끼는 권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01]

➜ 어떤 일이든 하고 있을 때는 무기력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건설과 파괴를 구별할 수 있다. 건설에 있어서 최초의 사태는 비교적 무질서하지만 최종적인 사태는 하나의 목적을 구체화한다. 파괴에 있어서는 이와 반대이다. 즉 최초의 사태는 하나의 목적을 구체화하지만 최종적 사태는 무질서하다. [204]

가장 만족스러운 목적은 한 가지 성공에서 다음 성공으로 결코 종말에 도달함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것이다. [206]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힘은, 항상 그렇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불행한 기질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불행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만일 예술가에게 작품으로부터 얻는 환희가 없었다면 그는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훌륭한 일이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가장 훌륭한 일은 인간을 덜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예술가보다는 기질적으로 훨씬 덜 불행하며, 따라서 대체로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며 그들의 행복은 주로 그들의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208]

자존심이 없이는 진정한 행복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신이 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대체로 자존심을 갖지 못한다. [208]

➜ 자존심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바탕으로 드러나게 되는 건가 보다.

시종일관 한 목적만으로 행복한 삶이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행복한 삶의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시종일관한 목적은 주로 일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209]

 

일반적 관심사

일이 끝났을 때 일을 잊어버리고 이튿날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생각해내지 않는 사람은 그 동안에도 줄곧 일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보다 일을 훨씬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 이외의 것에도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는 일을 마땅히 잊어야 할 때에 훨씬 쉽게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반드시 하루의 일로 소모된 능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어야 한다. [212]

다른 문제에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걱정거리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게 만드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 닥쳤을 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218]

➜ 걱정거리로 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걱정 때문에 더 많은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불행이 닥쳤을 때, 불행을 참아내기 위해서는 행복한 때에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현재를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연상이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늑한 휴식처를 마음속에 마련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219]

 

노력과 체념

우리를 가장 피로하게 만들고 결국엔 격분하게 만드는 것은 매일매일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는 일을 매일같이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확실하고 지속적인 행복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231]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의 유력한 원인이지만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폭넓게 말한다면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주듯이 계산을 한 끝에 사랑을 주려고 하는 것은 무익하다. 계산된 사람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사랑을 받는 사람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234]

모든 불행은 어떤 종류의 분열 또는 통일의 결여에서 생기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자아 내부에 분열이 생기며, 자아와 사회가 객관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 둘 사이의 통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이와 같은 통일을 이루는 데 실패해서 고통 받는 일이 없는 사람이며, 또한 그의 인격이 인격 자체에 대항하여 분열되어 있지도 않고 세상에 대항하여 다투고 있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적 시민이라고 느끼며 자유롭게 우주가 주는 장관, 우주가 주는 환희를 즐기고, 또한 자기를 뒤이어 오는 사람들과 자신이 실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에도 크게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생명의 흐름과 본능적으로 깊이 결합될 때, 우리는 가장 큰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38]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과연 현대인은 행복할 수 없는가, 행복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현대인이 현대인으로서 최대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러셀의 생각으로, 현대인의 행복의 감각이 마비된 원인을 냉철하게 규명하고 현대인이 회복해야 할 감각은 어떠한 내용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러셀은 행복이 우연히 주머니 속으로 굴러들어 오는 일은 결코 없으며, 행복은 오직 쟁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떠한 길을 택해서든 산을 정복한 사람만이 산정상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행복 또한 착실하게 정복해 가는 것의 문제라며, 행복은 정복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러셀의 행복론이다.

그는 행복보다는 불행이 그 정체를 파악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이 책의 전반부를 불행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할애하고, 현대에 중요하고 일반적인 불행의 원인은 어두운 인생관이나 세계관, 경쟁, 피로, 권태, 질투, 부질없는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의 횡포 등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와 같이 불행의 원인을 규명한 다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갖고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원만한 가정과 헌신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보다는 광활한 바깥 세계야말로 우리 행복의 무진장한 보고라는 생활 태도, 어떠한 불행도 이겨낼 수 있는 의지와 용기, 밝고 명랑한 인생관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이러한 것은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이나 불행을 직시하며 도피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면 당신은 반드시 행복을 정복할 수 있다는 참으로 평범한 행복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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