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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8일 11시 11분 등록

# 저자 조사

단테 알리기에리 ( 1265. 5.30~1321. 9.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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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테의 삶과 작품

단테 알리기에리 ( 1265. 5.30~1321. 9. 13 ) 는 중세를 종합하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문을 연 작가이자 철학자, 평론가, 그리고 정치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새로운 삶(신생)을 쓰던 젊은 시절, 단테는 청신체파라는 문학 동인을 만들어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신체파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관점과 문체로 담아내는 퍽 진보적인 단체였다. 그들에게 사랑은 궁정 연애의 단계를 훨씬 뛰어 넘어서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하는 통로였다.

신곡에서 단테는 중세의 천문학과 신학, 철학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을 동원하고 ,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도를 통하여 초월적인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을 재현한다.

그의 여정에는 하느님의 구원을 향한 기독교적인 소명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상의 평범한 인간들을 계몽하여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도 강하게 새겨져 있다. 그

는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여 때로는 군인으로 참전하고 때로는 외교관으로,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코무네( 중세 말기 이후 이탈리아 주민 자치 공동체)의 이상을 이탈리아 전체에 확산시키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좌절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망명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주위 현실을 정리하고 반성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에 몰두 할 수 있었다.

 

2. 단테의 생애

단테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푸른 벌판의 큰 월계수 나무 아래에서 사내아이를 낳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아이는 금방 자라 월계수 나무의 잎사귀를 따려고 하다가 넘어졌는데 금세 성장하여 공작이 되었다.

월계수는 그리스 시대부터 명예를 상징했다. 왕관의 재료로 사용되어나 학문이나 업적이 뛰어난 사람을 상징하는 재료로 쓰인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테의 성장을 오래도록 지켜보지 못하고 단테가 어릴 적에 사망한다. (단테 5세~10세 사이로 추정됨 )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단테에게 곧 운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단테의 생애를 살펴볼 때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이 끊임없이 단테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데 어머니를 일찍 여읜 영향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1274년 단테가 9살일 때 어버지를 따라 포르티나리 가문의 파티에 갔다가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게 된다.

둘 사이에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단테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후 단테는 학문에 정진했다. 1287년 피렌체를 떠나 볼로냐 대학과 파도바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교육기관의 모태인 볼로냐 대학에서 수사학, 철학, 법률학, 천문학 등을 배웠다.

1281년 아버지가 사망 단테는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꼈지만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

1283년 단테는 피렌체 거리에서 9년 만에 베아트리체와 우연히 마주치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당시 풍습에( 집에서 정해주는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 풍습) 베아트리체는 시모네디 바르디와 결혼하고, 단테는 젬마 도나티와 결혼했다.

1290년 6월 베아트리체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픔을 잊기 위해 전투에 참가할 정도였다.

베아트리체의 죽음 때문에 단테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새로운 인생>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교황당 敎皇黨(겔프)과 황제당皇帝黨(기벨린)의 싸움이 피렌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었는데,

이때 피렌체는 피사 등의 인근도시를 지배하여 강대한 공화국이 되었다. 피렌체를 둘러싼 당시 정세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테의 삶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단테는 의사와 약사 조합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1300년, 당파 싸움으로 인해 피렌체는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어 싸웠다.

흑당은 교회와 타협하여 세력을 확장 소 귀족층과 직인(기술자)층이 결합한 백당은 왕권과 교권으로부터 자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백당에서 활약하던 단테는 1301년 11월, 백당이 흑당에 패배하자 벌금과 함께 피렌체에서 2년간 추방선고를 받았다.

 

이때부터 단테는 피렌체에서 쫓겨나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단테는 1303년경 <속어론>을 집필하며

지식인의 공용어인 라틴어보다 각 지역의 일상어인 속어로 시를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훗날 <신곡>을 집필할 때 라티어가 아닌 피렌체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게 된다.

 

1304년 <향연>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의 윤리 문제를 다룬 것으로, ‘철학자 시인’이라고 불리는 단테의 철학과 사상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1306년 이후 ‘지옥’을 쓰기 시작하여 1309년에 작품을 완성한다.

1312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 하인리히 7세가 등장함.

1315년 피렌체로부터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벌금 단테의 올곧은 신념이 ‘적당한 타협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말자’ 가족들은 1318년에 라벤나에서 단테와 만났다.

1321년 ‘천국’ 편을 마지막으로 <신곡>을 완성 <신곡>의 원제는 ‘comedia’로 희곡이라는 뜻 ‘신성한 (divina)’ 이라는 뜻을 덧붙임

 

곡은 140행 안팎이며, 모든행은 11음절로 구성 전체 14,233행으로 방대한 작품

하지만 단테 자신과 밀접한 관련 당시 단테가 고향에서 추방당해 이리저리 떠돌던 때 질투하고 태만하거나 인색하고 낭비하는 습성은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신곡>은 문학적 가치가 높다

 

단테가 떠돌며 ‘지옥’을 쓰고 있을 때 원고를 잃어버렸는데 우연히 단테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단테의 글을 읽고 감동하여 작품을 완성하기를 바란다면서 단테에게 원고들 돌려주었다.

대적하고 있는 자들도 깨닫고 선한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 <신곡>에 있는 것이다. <신곡>은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의 선한 의지를 되새겨 보게 한다.

 

자신의 조상이나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연옥과 천국에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중에서도 베아트리체는 천국의 천사로 나온다.

베아트리체는 천국에서 단테를 걱정하고 도와준다. 현실에서 그들은 깊은 대화를 나누 사이도 아니고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지도 않았다.

베아트리체의 입장에서 보면 단테는 깊은 사랑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 작품에서 천사로 표현해냈다.

 

단테에게 문학적 영감이 되는 사랑의 연인 베아트리체 그녀에 대한 단테 이외에도 <신곡>은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통용되던 라틴어가 아닌 피란체어로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테 자신이 라틴어에 능통했고 속어를 얕잡아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소신껏 피란체어를 택했다. 덕분에 일반 대중들도 <신곡>을 널리 읽게 되었다. 1321년 귀도 다 폴렌타의 사신으로 베네치아를 방문 단테를 병을 얻는다. 결국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1321년 9월 14일에 라벤나에서 죽어 라베나의 산 피에트로 마조레 교회에 묻힌다. ‘꽃의 도시’ 라고 불리는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행운아 일까?  덕분에 학문에 심취 그곳에서 영감의 원천인 베아트리체를 만났지만 피렌체의 정치가들은 그를 20년동안 타지에서 떠돌게 했다.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동안 신곡을 썼으니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단테는 타향에서 죽을 때 까지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신곡>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었으니 단테 스스로 선한 의지를 실천한 셈이다.

 

3. 단테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조각가 오기스트 로뎅은 ‘지옥의 문’을 만들었다. 로뎅의 대표작중 하나인 ‘입맞춤’은 ‘지옥’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울로가 입을 마주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화가 들라크루아와 음악가 푸치니도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과 음악으로 작품을 만들고 작가 매튜 펄은 <단테클럽>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4. 작가연보

1265. 5.30

이탈리아 피렌체 출생

아버지 알리기에로 디 벨린치오네와 어머니 가브리엘라 델리 아바티 사이에서 태어남. 여동생이 있었다.

 

1270. ~75년  어머니 사망

 

1274년 베아트리체를 처음으로 만남

 

1277년 무렵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브루레토 라티니에게서 수사학과 고전 문학 사사

라티니는 1280년대 단테에게 문화 , 정치, 인간의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어린 시절 단테는 피렌체 도시와 외부 지역을 누비며 시각적 상상력을 키운다.

 

1285년 혹은 1290년

젬마 도니티와 혼인 이후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둔다.

 

1290년

베아트리체 사망

 

1294년혹은 1292년

1283년부터 써 온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의 글들을 모아 새로운 인생을 완성한다.

스승 브루네토 라티니가 사망함.

 

1299년 딸 안토니아 (나중에 베아트리체로 고침) 출생함.

 

1300년 단테가 속한 백당이 집권하여 권력의 중심에 섬( 최고위원)

 

1301년 백당이 흑당에 패배

 

1302년 공금횡령과 뇌물의 죄목으로 벌금과 2년간 추방 선고를 받는다. 이때부어 정처없는 유랑 생활을 시작함.

 유랑 생활은 향연에 자세히 묘사 되어 있으며 신곡에서도 많은 부분이 소개되어 있다.

 

1304년~ 1307년 신곡 중 지옥편을 구상한다.

1306년~ 1309년 지옥편 집필.

1308년~1312년 연옥편을 구상하고 집필

1314년 지옥편 출판.

1315년 가을 연옥편 출판.

1315년 천국편 집필 시작

1320년 천국편 완성

 

1321년 9월 13일 밤

귀도 다 폴렌타의 사신으로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병을 얻어 사망한다. 산피에트로 성당에서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산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장된다.

사망 후에도 단테는 피렌체의 공적이었다. 1373년 10월 피렌체는 당대 가장 뛰어난 단테 연구가 보카치오의 단테 강연을 승인한다.

 

5. 내가 저자라면

신곡은 작가 단테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등장 시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돌아본 일종의 기행문이다.

하느님의 초월적 세계를 필멸의 육체를 지닌 인간이 여행을 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런 여행은 단테의 상상력과 언어로 가능했다. 신곡은 인간을 초월한 세계를 상대적으로 초월적이지 않은 단테라는 한 인간이,

상상으로 체험하고 자신의 언어에 담은 그리고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의 손에 들려 읽히면서 재생되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다.

문학의 상상력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를 지상에서 재현한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나 베아트리체와 같은 길잡이들이 단테를 인도하는 형식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인도하는 셈이었다. 길잡이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 세계관 종교관을 바탕으로 한 단테의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지옥의 수많은 마귀들, 형벌의 장치들, 정죄산의 구조,

그리고 천국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정수리인 빛까지도 단테 상상의 소산이다.

 

주인공 단테는 그런 상상을 이끈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하지만 단테는 작품 내에서 그 모든 것들을 꾸미고 조절하며 작동시키는 하느님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의 방향은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한다. 여기서 구원은 기독교적 개념이지만 단지 내세를 향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현세적인 삶의 향상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 신곡은 단테의 자기반성의 흔적이며 또한 당대에서 대중의 교화의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단테는 당대의 인문학자들의 비난과 아쉬움을 무릅쓰면서도 신곡을 이탈리아어(피렌체어)로 썼다. 당대 일반 대중 독자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탓이었다.

 

신곡은 원래 14,233행의 삼연체 형식의 운문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작품이다. 중세의 심오한 신학과 오묘한 우주관 그리고 광대한 인간의 삶의 지식의 온갖 면면이 끝없이 발굴되는 글이다. 원문이 운문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신화와 역사, 그리고 당대 현실에서 가져온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작가의 입장과 더불어 압축되어 묘사되어 있어 읽어내기 힘들었다.

 

책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주석이 많은 관계로 주석을 페이지 아래 명기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묘사들은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상징과 은유의 체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지옥 편 보다는 천국 편에서 많은 부분이 마음으로 다가왔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연옥편도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 연옥 천국 이런 순서로 구성된 것도 특이했다.

물론 씌어진 순서대로 편집 된 것이지만, 나의 머리 구조 속에 있는 하늘나라 구성 순서는 연옥 지옥 천국이므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

신곡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려낸 화가들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으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좋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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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2:55:19 *.107.146.173

ㄴㅐ 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지옥편과 천국편은 첨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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