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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11시 46분 등록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정서웅 옮김 (민음사)

 

I. 저자에 대하여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생 : 1749 8 28일 프랑크푸르트

사망 : 1832 3 22 (82) 바이마르

직업 : 시인, 소설가, 극작가

국적 : 독일

활동기간 :  낭만주의

배우자 : 크리스티아네불피우스

 

 (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8 28 ~ 1832 3 22)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었다

 

1) 아동기와 청소년기

괴테의 양친중 친계의 혈족은 튀링겐 출신으로 농업, 수공업, 여관업으로 종사했던 가문의 후손이었고, 모계쪽은 남서독 일의 학자 및 법률가 집안이었다. 괴테의 친할아버지는 만스펠트 지역의 아르테른 출신 재단사로 여러 해 방랑 생활으 한 후에 프랑크 프르트에 정착하였고, ‘수양버들집이라는 여관의 상속녀와 결혼하여 여관 주인이 되었다. 괴테의 아버지, 요한 카스파어 괴테는 그 상당한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교양 수련 여행을 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프랑크 프루트 시청에서 직책을 얻으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후, 그는 1742년 황실 고문관이라는 칭호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는데 이 칭홀르 통하여 그의 고향 도시에서 가장 명망있는 시민과 동렬에  수 있었지만,반면 공직에서는 영원히 배제 되었다. 그는 직업적인 의무 수행 없이 32세 때부터 사작인 연구와 취미 생활에 몰두하였다.

1748, 그는 프랑크 프르트의 시징을 지낸 요한 볼프강 텍스토어의 딸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텍스트와 결혼했다. 이 부부 사이에 태어난 여섯 아이들 가운데 요한 볼프강과 그보다 한 살 아래였던 코르넬리아만이 초기 청소기를 넘기고 살아 남았다.

 

괴테의 부모님은 그 시대 교양 시민계층의 생활 태도를 잘 드러냈다. 본래 나란히 놓여 있던 두 채의 건물로서 연결이 잘 되어 있지 않던 이 집을 1755년 개축하였는데 이때 괴테의 아버지는 명백히 좋고 편안한 내부 시설을 위해서 건축학적인 외관을 도외시했다. 그는 서재와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진열한 화랑을 꾸미는 데 많은 노고를 기울였다.

괴테가 시와 진실에서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 기념품 가운데 괴테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것은 피라네시 양식으로 그려진 일련의 로마 전경이었다. “그곳은 내가 성장 할 때, 슬프지는 않았지만 동경에 차 가장 즐겨 머물던 곳이었다.” 라고 괴테는 회상 한다.

소년 괴테는 오래된 산업 도시에서 드러나 있는 거리와 골목, 분수, 수도원, 그리고 교회와 함께 상세히 묘사 했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는 위아래로 자신의 시선을 끌었던 아름다운 강과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활동, 축제와 오락을 서술했다.

괴테가 말하는 아버지에 대한 체적인 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수많은 개별적인 사간과 연관하여 괴테는 번번이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고 또한 여러 차례 그의 무뚝뚝하고 완고한 태도 혹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강철 같은 엄격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만 그가 외모 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 방법에서 드러나는 많은 문제와 질서에 대한 사랑도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갔다는 사실을 훗날 스스로 감지하며 살았던 것 같다.

활기차고 명랑한 성격을 타고난어머니는 오성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인품에 대해 하나의 균형추를 이루었다. 괴테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나이열여덟이었고 괴테의 아버지는 거의 사십이었다.

 

괴테는 고상한 시민집에서 으레 그랬던 것처럼 그는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를 익혔다. 고대어를 배운 후에 근느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그리고 나중에는 히브리어까지도 배웠다. 열 살의 나이에 괴테는 이솝,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를 읽었으며 천일야화와 디포의 로빈슨 크루스’, 슈나벨의 펠젠부르크 섬도 읽었다. 학문과 함께 종교 교육도 집중적으로 병행되었는데 종교 교육은 당시 프랑크 프르트에서 주도적이던 계몽된 루터교가 지배했다. 예배에 참가하는 것 외에도 구약가 신약을 매일 읽는 것이 종교 교육에 포함 되어 있었다. 훗날 괴테는 비록 정통파 기독교 형식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노년에도 자신의 정신적 교양의 큰 부분을 성서에 힘입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2) 대학 시절

16세의 나이에 괴테는 대학에서 공부할 준빌르 했다.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고대학을 전공하기위해 괴팅겐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계획은 아들이 법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후 고위 행정 법률가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쇠사슬에서 풀려난 포로의 심정으로, 그리고 중요한 새해를 맞는듯한 마음으로 괴테는 1765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상업 활동, 유복함, 부유함을 증언하는 이제 막 지나간 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온통 로코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박람회의 도시는 이보다 훨씬 좁은 자유시 영역 안에서만 자라온 명문가의 아들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새로운 영향에 휘말렸고 대단한 인상을 주는 문예애호가로 변모해갔다.

마침내 라이프치히는 17세의 소년 괴테에게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열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괴테는 1766년부터 쇤코프씨의 포도주 바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거기에서 식당 주인의 딸 안나 카타리나와 알게 되었고 케트헨이라는 이 대단히 예쁘고 상냥한 소녀에게 반해 열렬한 사랑에 빠져다.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났지만, 자신의 끊어오르는 열정을 문학적인 형상화를 만들어낸 과정에서 근느 내면적으로 자신을 사로잡은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 이미 그 당시에 필요했음을 작품 시와 진실에서 암시 했다.

대학 시절이 끝날 무렵 괴테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육체적 탈진으로 인해 각혈을 하게 되었고 며칠씩 삶 과 죽음을 오락가락 했다. 어머니의 친구인 주자나 카타리나 폰 클레텐베르크의 영향으로 신비주의적이고 경건주의적인 글에 몰두하기 시작 했다.

그녀의 격려로 라이프치히에서 겪었던 심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괴테는 나의 불안, 나의 초조, 나의 노력, 나의 추구, 연구.생각 및 동욜르 그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나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내가 신과 화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생긴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주지시켰다. 그런데 나는 청소년기부터 신과 좋은 관계에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다가 많은 경험을 한 후에 나는 신이 내게 갚을 빚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나에게 불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상상했다. 그리고 난느 대담하게도 신이 용서받을 일이 몇가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오만 불순한 망상은 나의 한없이 선한 의지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내기 보기에 신은 나의 이러한 의지를 더 잘 도와주어야만 했다. 내가 어리석은 사내로서 나의 많은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끝났다.”

 

3)괴테의 전반적인 삶의 개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帝室顧問官)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市長)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民政長官)의 숙사(宿舍)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佳作)을 낳게 하였다.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牧歌的)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그 후 회한(悔恨)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의 문학운동인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흐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 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 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 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ö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 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그는 25세에 자기의 체험을 형상화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을 출판했는데, 수많은 젊은이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 남녀를 모방하는 등 전 유럽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이 무렵 『파우스트(Faust)』의 집필을 시작하기도 했고 그밖에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27세가 되어 괴테는바이마르 공국의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었고 33세에는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의 칭호를 받았다. 1795년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를, 1808년 희곡 『파우스트』 1부를 출간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소설 『친화력(Wahlverwandtschaften)』을 완성했다.

그는 1815년 그의 나이 66세에 재상에 임명되었으며, 1819에는 「이탈리아 기행」1부를 완결하고 잡지 『예술과 고대』를 발간하기도 하는 등 폭넓은 문학 활동을 했다. 이어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를 썼고 1829 80세 때에는 『파우스트』 1부가 다섯 개 도시에서 공연되었으며 『이탈리아 기행』전편이 완결되었다. 그리고 2년 뒤 『시와 진실』과 『파우스트』 2부를 완성하였다.

 

4) 그의생애

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1764)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중(1765-1768),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1770), 클레텐베르크 양과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헤르더와 상봉해,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진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

 

제젠하임의 목사의 딸인 프리데리케 브리온을 사랑하여 민요풍의 청신 소박한 서정시를 지었고, 대승원의 건물을 보고 고딕 건축의 진가를 터득하기도 하였다. 귀향후 변호사를 개업(1771)하였으나, 관심은 오히려 문학에 쏠려 <괴츠(Gottz)>의 초고를 정리하고 다름슈타트의 메르크와 친교를 맺었다. 1772년 법률 실습을 위해 베츨라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 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1773) <클라비고(Clavigo)>, <스텔라(Stella)> 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시켰다.

 

초기

 

바이마르  1775 4월 릴리 쇠네만과 약혼을 하나 얼마 후 파혼하고, 당시 18세였던 바이마르 공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초청되어 11월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바이마르 시절 전기의 약 10년간(1775 - 1786)에는 정무를 담당하여 추밀참사관, 추밀고문관, 내각수반으로서 치적을 쌓는 한편 광물학·식물학·골상학·해부학 등의 연구에도 정진하였다. 그 밖에 아우구스트공의 모후 안나 아말리아, 시인 빌란트, 고전적 교양미가 풍부한 크네베르 소령, 궁정가수 코로나 슈레타 등 궁정 안의 사람들과 밀접한 친교를 맺었다. 괴테는 이런 정무나 사회 및 자연연구를 통하여 자연과 인생을 지배하는 법칙을 터득하고 자기 억제를 배우며 슈투름 운트 드랑적인 격정을 극복하여 점차 평정과 원숙의 도를 더해 갔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 의한 감화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우아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일곱 아이의 어머니였으나, 괴테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다. 부인에 대한 애정과 동경, 절도와 체념, 이러한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시인에게 내면적인 평정을 갖게 하였다.

 

이탈리아 이러한 내면적인 변화에 응하여 저술된 것이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Iphigenie auf Tauris)>(, 《타소(Torquato Tasso)》와 서정시 <인간성의 한계> <신성(神性)> 등의 시 작품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10년간은 궁정생활의 중압으로 마음의 안정을 빼앗겨 정돈된 창작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1년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로(1786-1788) 여행을 떠났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남국의 밝은 자연과 고미술에 접함으로써 고귀한 내용을 완성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6)와 《타소》는 그의 대표작이며, 《에그몬트(Egmont)(1787)는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다.

 

바이마르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불피우스와 동거하여 장남 아우구스트를 낳았으나(1789) 그해 7, 프랑스 혁명 발발로 괴테는 아우구스트 공을 따라 프랑스에 종군하여(1792) 발미 전투와 마인츠 포위전에 참가하였다(1793).

 

그러나 그 다음해에 독일 문학사상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괴테와 실러의 상봉이었다. 1794 7월말, 예나에서 자연과학 회의의 귀로에 종합적이며 직관적인 괴테와 이념적이고 분석적인 실러는 괴테의 식물변형론을 통하여 상호 이해하는 바 되어 1805년 실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교가 계속되었다. 양자간에 교환된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실러와 사귀는 동안에 저술된 주된 작품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헤르만과 도로테아》(1797)가 있다.

 

실러의 사후, 만년에 접어든 괴테는 《시와 진실》을 위시한 일련의 자서전 저술에 착수하는 동시에 이미 착수하였던 창작의 완성에 힘썼다. 《친화력(親和力),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와 《파우스트》를 완성하였고, 또한 《서동시집》(1819), 《마리엔바트의 애가》(1823)가 저술되었다. 이 밖에 그의 만년에 관해서는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속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5) 업적

궁정극장의 감독으로서 경영·연출·배우 교육 등 전반에 걸쳐 활약했다. 1806년에 <파우스트> 1부를 완성, 31 82세에 제2부를 완성시켰으며, 연극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았다. 자연과학의 분야에까지 미치는 방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연극면에서는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고전작가까지 평가, 또한 그리스 고전극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6) 종교

괴테는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755년 리스본 지진과 7년전쟁을 계기로 신앙에 회의를 가졌다. 1782년 괴테는 "난 반 기독교인이나 말뿐인 기독교인(un-christian)이 아니라 비 기독교인(non-christian)이다."라고 말했다.

 

7) 괴테의 작품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이탈리아 기행》

- 《파우스트》

- 시 〈프로메테우스〉

 

괴테가 신문학에 눈을 뜬 시기부터 82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단속적(斷續的)이기는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쓴 비극 작품이다. 2부로 되어 있으며, 전편(全篇) 1 2111행의 대작이다. 파우스트 전설은 영국의 극작가 C.말로의 희곡 《포스터스 박사 Dr. Faustus(1588∼1592)에 의해 처음으로 문학작품으로서 승화되었다. 말로는 파우스트를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의 비극으로서 동정적으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르네상스적 이상(理想)으로 불타는 파우스트는 인형극 등을 통해 독일 민중과 친근해졌으며, 이것을 소재로 문학작품을 본격적으로 써 보려고 한 사람이 레싱이었다. 그의 파우스트 극은 단편(斷片)이긴 하지만, 인간이 지식을 구하려는 것은 곧 신의 뜻으로서 지식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한 인간은 덕목(德目)에 안주(安住)하여 저절로 비행(非行)을 버리게 된다는 계몽주의의 이상을 고양(高揚)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괴테는 사람은 어떠한 미망(迷妄)의 길을 걷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계속한다면 종국에 가서는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간의 노력과 향상의 원동력이야말로 마음 속에 있는 신에게 귀의하려는 마음과 육체에 깃든 마음과의 상극(相剋)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괴테는 《파우스트》를 쓰기 이전부터 이 소재는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고, 성장해 갔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가 완성한 《파우스트》는 이 소재를 괴테의 전체 인격으로 침투시켰을 뿐만 아니라, 독일정신의 완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승화시켰다. 《파우스트》는 독일적인 동시에 인간정신 전체가 지향(志向)하는 불후(不朽)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파우스트》 집필은 1774년에 착수되어 1775년에 초고인 《우르 파우스트》를 집필하였고, 1790년에 제1부 《단편(斷片) 파우스트》를 간행하였다. 1798년 실러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시 집필을 시작, 1808년에 제1부를 간행하였다. 그후 20년 가까이 중단되었다가 제2부가 완성된 것은 괴테가 죽기 1년 전인 1831 7월이었으며, 2부는 그가 죽은 후에 간행되었다.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파우스트

 

 

파우스트 1

 

비극 제1

 

천상의 서곡

P20 셋이서 :  그 광경을 보면 천사들은 힘을 얻나니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릴 자 없어도

당신의 지고한 역사(役使)들 모두

천지창조의 그날처럼 정업합니다.

P43 파우스트 : 이성(理性)과 올바른 마음만 가진다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연설은 저절로 되는 법이라네.

 

서재

P89 파우스트 : 어떤 옷을 입든 이 비좁은 지상이 삶에서

나는 여전히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다.

P 91 파우스트 저주하노라, 저 지고한 사랑의 은총을

저주하노라, 희망을! 그리고 사랑을!

저주하노라, 무엇보다 인내심을

P94 파우스트 : 저 세상 따위는 개의치 않네

자네가 우선 이 세상을 박살내 버린다면,

다음에 어떤 세상이 생겨나든 무슨 상관이겠나.

이 땅에서만 나의 기쁨이 샘솟고,

이 태양만이 내 고뇌를 비춰줄 뿐일세

이것들아 우선 헤어질 수 있다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든 될 대로 되라지.

미래에도 증오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 세상에도 역시

상하의 구분이 존재하는지,

그런 이야길랑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네.

P95 파우스트 : 고귀한 노력을 경주하는 인간의 정신을

너희들 따위가 이해한 적이 있었느냐?

자네는 물리지 않는 음식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수은처럼 끊임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붉은 금() 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결코 이길 수 없는 노름이나

내 품안에 안겨

이웃 남자에게 눈짓으로 약속을 하는 소녀,

혹은 유성처럼 사라져버리는

신의 쾌락 같은 명예를 선사할 수 있단 말인가?

따기도 전에 썩는 과일이 있다든지

나날이 새롭게 푸르러가는 나무가 있다면 보여주게나!

P99 메피스토펠레스 : 한가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게 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사실이외다.

생각컨대 당산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시인과 친분을 맺도록 하십시오.

사자의 용맹,

사슴의 민첩성,

이탈리아 사람의 혈기,

북방인의 끈기 같은 것 말입니다.

P100 메피스토펠레스 : 관대함과 간특함을 겸비하면서

뜨거운 청운의 충동을 지니고

계획대로 연애나 할 수 있는 비결을 말입니다.

P110 메피스토펠레스 : 자네는 제법 체격이 당당 하고

배짱 또한 부족한 것 같지 않으니,

자네 스스로 자신감만 갖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네를 믿게 될 걸세.

특히 여자 다루는 법을 배워두게나.

계집들이란 줄창 아프다, 괴롭다,

각양각색으로 하소연을 하지만

딱 한 군데만 치료하면 낫게 돼 있은즉

자네가 웬만큼 성실하게만 군다면

계집이란 계집은 몽땅 수중에 넣을 수 있다네.

 

저녁

146~7 파우스트 : 너 달콤한 사랑의 아픔이요, 내 마음을 사로잡아다오!

주위에서 숨쉬는 이 고요함,

이 질서와 만족감!

가난 속에 깃들인 이 충만감!

감옥 간은 골방 속에 깃들인 축복이여!

, 나를 받아다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두 팔 벌려 그녀의 조상들을 맞아주었을 의자여!

, 얼마나 자주 이 둘레에

아이들의 무리가 에워싸곤 했을까!

내 사랑하는 소녀도 통통한 뺨을 하고

성탄적의 선물에 감사 드리며

메마른 할아버지 손에 경건히 입맞추었겠지.

, 소녀여, 나는 느끼노라,

실하고도 알뜰한 너의 마음이 내 주위에서 살랑거림을.

P148 파우스트 : 여기가 날 에워싼 것은 마법의 안개인가?

향락의 충동이 물밀쳐와

사랑의 꿈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기분이다.!

 

정원

P174 메피스토펠레스 : 바람난 나비들처럼!

마르테 : 그분이 그 앨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메피스토펠레스 : 그녀는 마찬가지고요. 세상 일이 다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이웃 여인의 집

P161 마르테 : 다만 너무 떠돌아다니길 좋아했고,

남의 계집이나 낯선 고장의 술,

그리고 망할 놈의 노름을 좋아한 게 탈이었지요.

 

숲과 동굴

P177 파우스트 : 마음을 달래듯 흘러가면,

암벽들 사이에서, 또는 이슬 적은 숲속으로부터

선조들의 은빛 모습이 둥실 떠올라

성찰에의 강렬한 욕구를 진정시켜 주누나

P183 파우스트 : 이 작은 세계에서 국한 시키고 있다.

그런데, 신의 미음을 받은 나는

바위들을 움켜잡아

산산조각을 내도

흡족치가 않았다.!

난 그 애를, 그 애의 평화를 깨드리고 말았다.!

 

그레트헨의방

P184 그레트헨 : 그이가 오실까,

창밖을 내다보고

그이를 만날까,

문밖을 서성이네.

P185 그레트헨 :  내 마음 언제나

그이 곁으로 달려가노니,

, 그일 붙잡아

놓치지 않으리.

 

마르테르의 정원

P190 마르가레테 아, 제가 혼자 잘 수만 있다면요!

오늘 밥 당신을 위해 빗장을 열어놓겠어요.

P190 프우스트 : 오 나의 천사여,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말아요.

여기에 약병이 있소! 단 세방울만

어머니의 음료수에 섰어 넣으면,

편안히 깊은 잠을 주무실 것이오.

P190 마르가레테 : 사랑하는 당신을 보기만 하면

무엇이든 당신 뜻에 맡기고 싶으니 웬일이죠.

당신을 위해 벌써 너무 많은 걸 해드려서

이젠 더 할 일이 없는 것만 같아요.

 

P198 메스스토펠레스 : 멋진 발푸르기스 출제의 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요.

P199 메피스토펠레스 : 부디 정신을 차려라!

일단 일을 치르고 나면

그 다음은 안녕이란다.

가련하고 가련한 소녀들아!

자기 몸을 아끼려면

어떤 도둑놈에게건

절대 사랑을 주지 말아라,

손가락에 반지를 낄 때까지는.

성당

P204 합장 :  진노의 날이 오면

그날, 세상은 재로 변하리라.

 

발푸르기스의 밤

P218 메스스토펠레스 : 저지른 일은 지난 일, 지난 일은 저지른 일이외다! 좀 새로운 걸 진열해 놓으세요!

 

발푸르기스의 밤의 꿈 혹은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금혼식

새로운 것만이 우리의 마음을 끌 수 있으니까.

P228 젊은 마녀 :  분 바르고 옷 치장하는 건

호호백발 할망구나 하는 짓이지.

나는 벌거벗고 숫염소 등에 않아

포동포동 탐스런 몸 자랑한다오.

P233 차세에 능한 자들 : 천하태평 이라,

이것이 유쾌한 친목회의 이름이오.

더 이상 두 발로 걸을 수 없으면,

그땐 머리로 걸어 다니죠.

 

흐린 날, 벌판

P236 파우스트 : 나는 한 여인의 슬픔만으로도 뼈와 살이 깍 이는 것 같은데, 네놈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태연하게 조롱할 수 있단 말이지!

, 거기에 창조적 원형적인 것의 비밀,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의 상징성이었다

 

 

파우스트2

 

비극 제2

 

1

 

곁방들이 딸린 넓은 홀

P65 탐욕 : 손짓 발짓 몸짓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테니

익살극이라도 한바탕 벌여봐야겠어.

적은 진흙처럼 황금을 주물러봐야지.

이 금속으론 무엇으로나 변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유원지

P76 메피스토펠레스 : 젊은 것들은 수줍으나 욕정적이고, 나이든 것들은 영리하옵지요.

 

어두운 복도

P87 파우스트 : 자넨 날 공허 속에 보내어 거기서 내 기교와 힘을 증신 시키려는 것이겠지. 자네는 날 불 속에서 알밤을 꺼내 오는 고양이처럼 다루려 하는 군.

 

밝게 불 밝힌 방들

P93 귀부인 : 가슴 속 깊은 곳이 부글부글 끊고 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그이가 내 눈빛 속에서 행복을 찾았는데,

다른 년과 눈이 맞아 내게 등을 돌리고 있어요.

 

기사의 방

P98 천문박사 : 전능의 힘을 가진 그대들은 그것을 나누어서

낮의 천막으로, 밤의 지붕 밑으로 보낸다.

어떤 자는 즐거운 인생행로를 잡을 것이요,

어떤 자는 대답한 마술사를 찾아나설 것이다.

마술사는 아낌없이, 자신 있게 모두가 원하는 것,

그 경이로운 것을 보여주리라.

P99 귀부인 : , 피어나는 젊음의 힘이 어쩌면 저리도 눈부실까?

P104 여기서부터 정신이 정령들과 싸우고,

위대한 이중세계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멀리 있던 여인이 어찌 더 가까워질 수 있으랴!

내가 그녀를 구하겠다. 그러면 그녀는 이중으로 내 것이 되리라.

, 용기를 내자! 어머니들이요! 어머니들이요! 용납해 주소서!

그녀를 알게 된 자, 그녀를 놓칠 수 없으리라.

 

2

 

높고 둥근 천장의 좁은 고딕식 방

P119~120 학사 :  분명합니다.! 늙음이란 차가운 열병 같아서

변덕스런 고민으로 오한을 일으키어요.

누구나 나이 삼십이 지나면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 없어요.

따라서 당신네들은 적당한 때에 때려죽이는 게 상책 이지요.

P120 학사 :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도 나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하루하루 내가 가는 길을 장식해 주었으며,

대지는 나를 위해 푸르고, 꽃피어나는 것입니다.

밝음을 앞으로, 어둠을 뒤로 하고

나만의 황홀경 속에서 신속하게 나아갑니다.

P120 메피스토펠레스 : 어리석은 생각이든, 똑똑한 생각이든

옛사람들이 벌써 생각하지 않은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P130 호문쿨루스 : 그만한 노력엔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법,

황금, 명예, 명성, 건강과 장수,

그리고 아마 한문과 덕망까지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안녕히 계세요!

P146 파우스트 : 수많은 물줄기 사방에서 흘러

한데 모여 깨끗한 웅덩이를 만드니

평평한 게 목욕하기 알맞다.

P150 파우스트 : 당신은 당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보았고,

그 고매한 자들의 행위를 본받으려 애쓰며

반신(半信)처럼 진지한 나날을 살아왔음을.

그렇다면 수많은 영웅들을 중에서

누구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까?

P156 만토 : 언젠가 제가 오르페우스를 들여보낸 적이 있었죠.

더 잘 해보세요! 기운을 내요! 마음을 굳게 먹고요!

 

3

 

스파르타에 있는 메넬라오스 왕의 궁전 앞

P221 헬레나 : 안주인 면전에서 하녀들을 꾸짖는 자는

무엄하게도 주부의 집안 다스리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오.

주인이란, 하인의 하는 일이 문제지 어떤 사람인가는 묻지 않는 법

그대가 지금까지 안주인 대신

왕궁을 지켜온 공로는 인정하겠소.

P222 헬레나: 하지만 이제 주인이 돌아왔으나,

그대는 물러나 칭찬 대신 벌을 받지 않도록 처신하시오.

P224 헬레나 : 충직한 하인들간에 조성되는 불화만큼

주인을 해롭게 하는 것도 없느니라.

도성을 황폐하게 만든 여인의 무서운 꿈의 형상은 과거의 나였나? 현재의 나인가? 미래의 나일 것인가? 시녀들은 떨고 있건만, 가장 나이 많은 그대,

그대는 태연자약하구나. 내게 알아듣도록 말을 해 다오.

P227 합창 : 위안에 넘치는 정다운 말,

근심을 잊게 할 다정한 말 대신

너는 온갖 옛날 일 들추어내고,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만 찾아내

현재의 광채는 물론

미래를 은은해 비추는 희망의 빛까지도

모조리 어둡게 만드는구나.

 

성채의 안마당

P251 헬레나 ;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어울리고,

한 마다 말이 귓전에 울리면,

다음 말이 따라와 그 말을 애무하는 것 같군요.

P252 파우스트 : 아주 쉽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되지요.

가슴에 그리움이 넘쳐나면

둘러보며 묻지요

P252 파우스트 : 현재만이 보물이고 소득이고 재산이며 담보인데, 보증은 누가 서나요?

P253 합창 : 남자의 사랑에 익숙한 여인은

이것저것 가리진 않아도

그 맛은 제대로 알지요.

P253 헬레나 : 전 아주 멀리 있는 듯하면서 가까이 있는 기분이 에요.

P254 파우스트 : 한 번뿐인 운명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지 마십시오.

존재한다는 건 의무입니다.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P258 합창 : 누구보다 뛰어난 분이라 생각합니다.

병사들과 용감하고 현명하게 결합되어 있으니,

어떤 지시를 내린다 해도

용사들 대령하여 순순히 따르지요.

P262 파우스트 : 죄가 변해 정자가 되나,

우리 행복도 아르카디아처럼 자유롭기르!

 

그늘진 숲속

P270 파우스트 :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라.

떨어지지 말아라.

다쳐서는 안된다.

P272 합장 : 사랑스런 아기님

당신의 목적은 이룬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모두

당신에게 기울었으니까요.

P278 헬레나와 파우스트 : 즐거움 뒤에는 이내

무서운 고통이 따르는구나.

P279 합창 : 아아, 세상의 행복 누리도록

귀한 가문, 뛰어난 능력 갖추고 태어났건만,

슬프다. 일찍이 세상을 떠나

청춘의 꽃 꺾이고 말았네!

P280 합창 : 인습과 법률에

거칠게 부딪혔지요.

그래도 끝내 고귀한 생각이

순수한 용기를 소중히 여기고,

훌륭한 과업 이루려 하였지만,

당신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지요.

P286  나머지 일부 : 술잔을 더듬는 주정꾼들, 머리와 배는 술로 가득,

한두 사람 걱정스레 소리치지만, 소란을 더욱 크게 할 뿐이죠.

그도 그럴게, 새 술을 담으려면 묵은 술부대를 서둘러 비워야 하니까!

 

4

 

고산(高山) 지대

P291 메피스토펠레스 :  전에는 바닥이었던 게 이젠 봉우리가 된 셈이지요.

가장 낮은 것이 가장 놓은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저 그럴듯한 학설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뜨거운 불구덩의 노예생활로부터

자유로운 공기가 충만한 곳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잘 간직했다가

훗날에야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이외다.

P296 파우스트 : 당치도 않은 소리! 이 지상에도 아직도

위대한 일을 할 여지가 낳아 있어.

 

앞산 위에서

P306 황제 : 자기만 살아나겠다는 건 이기주의의 신조지.

거기엔 감사도, 정분도, 아무나 명예도 없느니라.

잘 계산해 본다면, 이웃집의 화재가

너희까지 삼켜버린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느냐?

P309 파우스트 : 머리가 잠들면 모든 것이 늘어지고,

머리를 다치면 당장 모든 것이 상처를 입게 되며,

머리가 빨리 건강해지면 수족도 싱싱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P312 들치기 : 여자란 움켜쥘 때도 지독하지만,

빼앗을 땐 그야말로 사정 없지요.

이기는 편에 불어야죠. 무슨 짓이든 가능하니까요.

P314 파우스트 : 시칠리아 해변에서 떠도는

안개 띠에 대한 애기를 들어본 적 없으신지요?

거기선 한낮에도 안개가 또렷이 흔들리면서

중천에 드높이 올라서는

이상한 아지랑이에 반사되어

희한한 광경을 보여준답니다.

P315 황제 : 자연이 위를 위해

영험한 힘을 모아준 게

누구의 덕택인지 말해 보시오.

P316 파우스트 : 사심 없는 선행엔 좋은 결실이 따르는 법이 옵니다.

P320 메피스토펠레스 : 물은 환영(幻影)을 좀 청해 오너라.

그들은 알기 어려운 여성의 비술(秘術)로써

실체(實體)와 가상(假像)을 떼어놓을 줄 아느니라.

그런데 누구나 가상을 실체라고 믿는단 말이야.

 

번역 황제의 천막

P327 황제 : 젊고 활달한 군주는 허송세월을 할 수도 있게느나,

세월이 그에게 순간의 중요함을 가르쳐주는 법인즉,

하여 짐은 지체 않고 왕가와 조정을 위해

그대들 네 공신과 인연을 맺고자 하노라.

P329 황제 : 이제부터 우리의 지하실에

좋은 포도주가 가득하도록 유념하라.

하지만 그대 자신은 절제해야 하리니,

기회의 유혹을 받아 홍취가 지나쳐서 안 될 것이야!

P331 황제 : 짐은 아직 나라를 위해 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지만,

존엄한 선조 대대의 사살은 사려 깊은 눈길을

현세의 성급한 공명심에서 미래의 위험으로 돌리게 하는 구려.

 

5

 

주위가 훤희 트인 고장

P341 팔레몬 : 파도에 파도가 사납게 거품을 내며,

그대를 무섭게 괴롭혔었지.

현명한 영주님 대담한 신하들이

도랑을 파고 둑을 쌓아

바다의 세력권을 좁혀놓고는

그 대신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하지요.

 

궁전

P349 파우스트 : 반항과 고집에 부딪히면

화려한 성공도 꺽이게 마련이다.

고통이 너무 깊고 지독하면,

정의로우려는 마음도 지치고 만다.

 

깊은 밤

P353 파우스트 : 망루지기가 슬퍼하지만, 나도 마음속으로는

참을성 없는 행동에 화기 치민다.

하지만 보리수나무 숲이 황페해져

반쯤 숯검정이 되었으니,

그곳에 곧 전망대를 세워

한없이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하겠노라.

 

한밤중

P358 파우스트 : 어떤 순간에도 만족을 모르는 자,

그가 나아가는 길엔 고통도 행복도 함께 있겠지!

P360 파우스트 : 밥이 점점 깊어가는 것 같구나.

 하지만 마음속엔 밝은 빛이 빛난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 서둘러 완성해야겠다.

주인의 말보다 위력이 있는 것도 없으리라.

여봐라, 하일들아!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내가 대담히 계획했던 일, 멋지게 이루어다오.

연장을 잡아라. 삽과 괭이를 놀려라!

맡은 일은 반드시 해치워야 한다.

엄격한 규칙대로 열심히 일하면,

비할 데 없이 좋은 보수를 받으리라.

이 위대한 일 완성하는 데는

수천의 손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족하리라.

 

궁전의 넓은 앞마당

P363 파우스트 :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에 둘러싸이더라도 여기선

남녀노소가 모두 값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P363 파우스트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P364~5메피스토펠레스 : 지나가 버렸다니! 어리석은 소리.

어째서 지나갔다는 거냐?

지나갔다는 것과 전혀 없다는 것은 완전히 같은 것 이다.!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냐!

창조된 것은 무() 속으로 흽쓸려가게 마련이다.!

<지나가 버렸다!>-여기에 무슨 뜻이 있지?

그야말로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도 마치 무엇이 있었던 양 뱅뱅 맴돌고 있다.

나는 오히려 영원한 허무가 좋단 말이다.

 

매장

P376 메리스토펠레스 :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감쪽같이 속다니.

자업자득이지만 너무나 기분이 나쁘다.

창피하게도 실수를 저질러

애쓴 보람 없이 헛물만 켜다니 참 꼴불견이다.

 

심산유곡

P379 천사와 닮은 교부 :  험난한 인생길 걸어온 흔적도 없구나.

이 세상을 하는 데 적합한 도구인

내 눈 속으로 내려오너라.

P380 승천한 소년들의 합창 : 손에 손 잡고

즐겁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 하자.

거룩한 마음을 구가하자!

신의 가르침 받았으니

서로가 의지하자.

우러르는 신의 모습

볼 수가 있으리라.

 

 

III. 내가 저자라면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삼독후 성심껏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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