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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8일 01시 55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10_삼국유사_일연.jpg

일연(본명 김건명, 1206 ~ 1289)

1206, 경상도 장산군 (오늘날 경북 경산시) 태생

1219, 승려로 출가

1227, 승과 시험 합격

1249, 남해 정림사에서 수행 (남해의 분사 대장도감에서 조판 사업에 참여)

1259, 대선사에 임명

1281, 삼국유사 저술

1283, 충렬왕에 의해 국존(국사)으로 추대

1289, 인각사에서 입적

(위키백과 참좌)

 

승은 김, 이름은 건명, 본관은 경주이고 처음의 자는 회연이였으나 나중에 일연으로 바꾼다. 고려 충렬왕때의 승려로 노년에 보국국사까지 오른다. 당시 단일 종교(불교) 국가였던 고려왕조에서 보국국사의 지위는 현재와 비교하여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지위로써 그는 국가의 최고 고위직을 지냈다. 하지만 그가 쓴 역사서로 보아 그는 관료적이거나 꽉 막힌 타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시대가 권위적이고 소통이 없던 계급사회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이러한 성격으로 삼국유사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1206년 태어났다. 1206년은 징기스칸이 몽골을 넘어 중국을 통일한 해이다. 이 사건은 변방의 고려를, 그리고 일연의 마음가짐을 바꾼다. 그는 14세에 승려가 되기위해 출가하고, 22세에 승과 시험을 합격한다. 그리고 비교적 늦은 나이인 44세에 남해 정림사의 주지가 되었다. 55세에 중편조동오위를 짓고(아직까지 삼국유사와 함께 남아 있는 일연의 유일한 작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아주 늦은 나이인 78세에 국사가 되었으며 위대한 우리의 역사서 <삼국유사>를 편찬하였고, 84세에는 입적하게 된다. 입접훅에는 홀어머니를 모실 정도로 효심이 극심했다.

 

당시 일연이 살던 시대는 징기스칸이 몽골을 중심으로 중국을 통일한 시기로 외부적으로 고려왕조는 징기스칸의 원나라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던 시기였다. 또한 내부적으로 무인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시기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힘든 상황이였다. 일연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우리 민족의 미래와 인간 본연에 대한 탐색을 했을 것이다. 지식인으로써,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가야 할 관료로써 그 책임감은 막중했으리라.

 

그는 역사서를 편찬한다. 위대한 우리민족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새로운 역사서를 기획한다. 기존의 중국 중심의 <삼국사기>를 대신하여 고려왕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역사서 <삼국유사>를 편찬한다. 삼국사기를 포함한 많은 책들과 문헌들을 참조하고 발로 뛰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였다. 30년간 삼국유사를 연구해왔던 고운기 교수는 일연의 이러한 부분을 특히 높이 산다. 그리고 그 역시 삼국유사 관련 서적을 집필할때는 유적지를 직접 탐방하고 그 지방 설화나 구전되어지는 이야기에 대해 수집한다고 한다.

 

고운기 교수처럼 우리나라의 신화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뿌리를 이으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틀 위에서 우리 문화가 더욱 굳건해졌으면 한다. 아마 후세에 일연은 삼국유사를 지은 저자로써,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선각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10_삼국유사_고운기.jpg

고운기 (1961~,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시인)

저자 고운기는 삼국유사에 대해서라면 단연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다. 1986년 석사 논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삼국유사에 대해 연구해 왔다. 무엇이 고운기를 삼국유사에 빠져들게 한 것일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삼국유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올해로 26년재 삼국유사를 쫗아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삼국유사가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누군가 한국인 너희는 누구냐고 물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특성, 정체성. 왜 고운기는 삼국유사를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선정한 것일까? 잘은 모르지만 그는 삼국유사를 어떤 소명의식에서 비롯하여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궁형의 치욕을 이겨내면서 완수하려고 했던 사마천의 <사기>처럼, 고운기는 그의 일생의 평생의 숙제를 완성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앞으로 15권의 책으로 삼국유사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업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2011,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스토리텔링 삼국유사), 현암사>

2010,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 현암사>

2009,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현암사>

2008, <자전거타고 노래부르기, 랜덤하우스>

2008, <도쿠가와가 장서 목록에 나타난 삼국유사 전승의 연구, 논문

2007, <길 위의 삼국유사, 미래 M&B>

2006, <일연을 묻는다, 현암사>

200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현암사>

2001,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창비>

2001,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월인>

1998, <새로 읽는 한국고시가, 드림북스>

1995, <섬강그늘, 고려원>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0_삼국유사_표지.jpg

각 챕터 이야기의 간략한 요약문을 정리해 보았다. 훗날 인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 중간의 좋은 글귀는 색깔처리 하였다.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삼국유사 탄생의 배경

-고려 초부터 이 시기 지식인들은 우리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시키는 촉진제다

-첫번째 저숙은 역사서로 정했졌다. 자연스러운 현상.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 다음, 그 앞 시대를 정리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다.

-무인 정권 이후 고려는 전반기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바로 자신에 대한 성찰

-대외적으로 송나라의 멸망과 원나라의 성립(징기스칸)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인련의 작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가 <삼국사기>를 의식하고 있음은 특히 기이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8,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이 땅의 첫 나라

뿌리를 찾았던 첫 세대의 상징

34,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34, 누구나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에 자못 중요하게 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 등재, 그것도 첫머리에 자리잡은 일이 그렇다.

 

35, 그러기에 유려한 한문으로 집필된 <삼국사기>의 첫머리에 단군은 실리지 못했고, 세월은 150여 년을 흘러야 했다.

 

35,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35,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한편 비애스러운 그러나 풍부한 이야기의 세계가 거기서 만들어진다. 상징으로 그리는 역사를 옳게 읽자면 독자는 상상력을 써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다른 한편 즐겁기도 하다.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42, 대개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다.

-처음 환웅이 신단수에 내려왔을 때 그곳에는 이미 사람 사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묶어 나라를 이룩하고 다스리는 제도가 없었을 뿐이다. 비록 그가 첫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단군이 나오고, 단군은 곧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더러 단군의 자손도 있겠지만, 그때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다가 단군을 왕으로 모신,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자손이다.

 

조선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말하지만, 일연의 단군에 대한 관심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려 왕조에 들어 이전 시대를 정리하는 처음 역사서는 <삼국사기>가 차지했다. 12세기 중반의 일이다. 사실 <삼국사기>는 한반도에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삼국사기>는 체제나 내용에서 그렇게 세련되게 나왔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다음 모든 자료를 없애 버렸다는 김부식의 행동 저편에는 이 같은 의식이 잠재해 있었을 것이다.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른 아닌 우리의 실종이였다.

 

13세기의 시대적 분위기

-이 시기에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 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약간의 추측이 가능하다면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직접 책봉한 기자를 애써 간단히 처리해 버리고, 위만조선을 그 다음 조에 이어 놓은 일연의 생각은 여기서 조금씩 드러난다.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함께 읽어야 할 이유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일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구려와 북방계

한반도 전국시대와 삼국의 정립

-한반도에 건설된 나람들의 구성원이 딱히 어느 한 곳 출신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의 시대 곧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군웅할거하는 시대를 맞는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물리친 자리에 이른바 4군을 두는 때와 같은 시기인데, 나는 이것을 앞서 한반도판 전국시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족의 처음 시대를 쓰면서 그다지 인색할 일은 아니었다. 분명 삼국으로 정립되기 전에 비록 왕권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나, 한 단위를 이루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로 지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조선의 정체를 인정한다면, 하나의 체제가 무너진 다음 일정한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가 잡혀지는 것 또한 중국의 고대사가 그랬듯이 매우 자연스럽다.

 

북방계의 시작, 부여

-먼저 북방계의 흐름이다. 이 계통은 부여에서 고구려, 백제로 흘러간다. 물론 최후에는 고구려와 백제로 정리된다.

-하늘님인 해모수가 직접 내려와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되었으며, 다시 그 아들을 왕위에 올렸다는 점이다. 해모수에서 해부루로 이어지는 와위다.

 

동명왕 기사, 사기와 유사의 차이점

-중요한 것은 고기를 받아들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를 극명하게 확인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고기의 신이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들인 일연의 삼국유사에 와서 주몽은 삼국사기에서보다 더 확실히 하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때,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라와 남방계

남방 문화 속의 신라

-아무래도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와 같은 북방계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보이고자 해서인 것 같다. 비록 중국계 사람들이 진한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신라의 지배계층이 아니었다. 그저 한가한 동네 노인들로나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확대해석하지 말자는 것이다.

 

신라 여섯 부족은 또 다른 오리지널

-먼저 여섯 부족을 설명함은 같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의 유민이라 한 데 반해 일연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혁거세 탄생, 또 하나의 이야기

-그러나 일연은 김부식의 사론을 인용하면서, 위에서 본 것처럼 이 마지막 구절을 삭제해 버렸다. 김부식과는 달리 선도 성모’ – ‘혁거세’ – ‘알영부인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인정한다는 뜻이리라.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80, 역사가 프로레스링이라는 말은 아니다. 역사는 그런 쇼나 각본으로 비유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링을 진짜 격투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함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히미코와 같은 시대의 연오랑 세오녀

-일연은 삼국의 역사적 사실을 쓰면서 삼국사기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자신이 조사한 부분이 일부 첨가되기는 한다. 그런데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에 와서 처음으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데, 매우 자신만만한 태도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해와 달을 섬긴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빛이 있다고 다 보는가? ‘눈 뜬 소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밤에 찾아오는 손님

야래자 설화의 전통

87,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 준 점, 우리는 지금 삼국유사의 편찬자 일연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가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 유형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삼국시대의 비극적 영웅들이 어떻게 ㅔ태어났는가를 실감나게 전해 준다. 우리는 거기서 당대 사람들이 기이한 인물의 탄생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는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사람을 돕는 귀신

-여기까지 읽어 보면, 정치에 무능하고 음란에 빠져 왕의 자리에서 쫓겨 났다는 진지왕의 초상이 조금은 색다르게 그려진다. 마치 진지왕이라는, 현실에서는 실패한 왕을 다른 역활로 복권시켜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불명예스럽게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진지왕을 데려다 그 혼의 힘으로 특이한 아들을 낳게 하고, 이렇게 해서 그가 세상에 사는 동안 못다 이룬 일을 보상하게 했던 것일까? 몸으로 못하면 혼으로라도 말이다.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밤손님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통일의 운명을 타고난 사나이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춘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 그러나 사실이 무슨 상관이랴. 사실을 더 그럴 듯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리면 그 사실은 더 힘을 얻는 법이다.

 

진골의 탄생

-처남 매제간으로 맺어진 김춘추와 김유신 콤비는 이후 거칠 것 없이 자신들의 뜻을 펼쳐 간다. 김춘추가 왕실 내에서 강력한 입지를 굳혀 가는 동안 김유신은 군부를 장악한다. 특히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런 그가 춘추를 왕위에 앚히자고 제안했을 때 성골ㅇ릐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다. 이제 진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문무왕 법민

-물론 통일을 위한 모든 기반을 김춘추와 김유신이 마련했으므로, 문무왕은 다만 그것을 이어 마무리한 정도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자 시절에도 문무왕이 아버지 못지않은 활약을 벌이는데다, 2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통일 후의 마무리 작업 특히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해결해 낸 점등은, 통일을 위한 전쟁보다 더 어려웠던 일로 보인다.

 

사천왕사로 지켜 낸 땅

-총장 무진년에 신라와 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평양에 온 당나라의 군사 일부가 돌아가지 않고 진영에 머물렀다.

-기회를 보면서 신라를 습격하려고 꾀하는 것이었는데 문무왕이 이를 알고 선수를 쳤다.

-당나라는 50만 대군으로 시나를 치려고 하였다.

-당나라 유학중이였던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방어책으로 마련한 것이 명량의 비법이었다.

-낭산 남쪽 기슭에 신유림이 있으니, 이곳에 사천왕사를 창건하고 도량을 열면 좋을 것

 

117, 뇌물은 그 옛날부터 필요악이었던 모양이다.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용으로

-왕위에 있었던 20년 동안 문무왕은 당나라와의 투쟁을 계속한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꾀어 신라를 괴롭히게 하고, 문무왕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당나라 군사를 쳐부순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되든 영융 2년 신사년에 돌아가셨다. 왕이 유언하신 말씀에 따라 동해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왕이 평소 지의 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더할 수 없는 선물, 만파식적

-“비유컨데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륭한 임금이 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122,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만파식적은 어디로 갔을까

-왕은 일본 사람들이 이 피리를 보자고 많은 금은보화를 가져와 간청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물리쳤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자세히 쓰기로 하겠지만, 그런 다음에 만파식적은 더 이상 소식이 없다.

 

첫 성전환증 환자

일연이 그리는 경덕왕의 존재

-오늘날 우리들이 신라 향가의 전모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 그나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14수의 극히 제한된 편수만 가지고 따진다해도, 충담과 월명은 향가 시인의 첫자리를 차지해 부족함이 없다.

 

죽은 누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사실 이 시는 여덟째 줄까지 평범한 인간이 토로할 슬픔을 절제된 감정 속에서 마음껏 뱉어 놓고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면 승려의 신분으로 주책 맞을 일, 아홉 번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이기도 하다.

 

최후의 시도

-다시 경덕왕 이야기로 넘어간다. 뒤를 이을 태자까지 책봉했지만 왕의 심기는 편안하지 못하다. 완연히 나라가 기울어 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더욱이 왕은 자신의 목숨이 이제 경각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태자는 어리다. 그리고 억지를 부려 얻은 아들이어서 그런지 왠지 신통치 않다.

 

여자 같은 남자

-해공왕은 성전환증 환자였을 것이다. 그는 정식 왕비만 둘이었는데, 16년간 재위하였으므로 24세에 죽었지만, 아들을 두었다는 소식도 없다.

 

왕이 되는 자

야심가의 등장

-끊이지 않는 반란과 혜공왕의 난정을 틈타 새로 왕이 된 김양상 곧 선덩왕은 재위 6년 만에 병으로 죽는다.

-양상은 왕이 되어서도 5년 만에 자리에서 물려나려 했다. 그러나 여러 신하가 말리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결국 다음 해 몸져눕고 만 것이다. 어쨋건 그는 늙은데다 그다지 패기만만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신은 야심찬 왕족의 아들이었다.

 

139, 같은 꿈을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뜻인지는 모른다.

 

꼼꼼하면서도 과감했던 왕

-그러나 실제 이 독서삼품과는 그다지 널리 활용되지 못하였다. 역시 기득권 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 같은 예를 고려조에 와서 공민왕, 조선조에 와서 영,정조 같은 이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신라의 원성왕은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왕이었다.

 

왕이 되는 자의 금도

-원성왕 사후 신라 왕실은 겆잡을 수 없는 혼란기에 빠진다.

-왕의 자리를 놓고 벌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란 결국 정권을 잡고자 하는 진골 귀족 계간간의 골육살쟁이었는데, 소성왕부터 헌안왕까지 9 60여년이 지나는 동안 세 명의 왕이 살해된다.

 

145,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세상을 돌며 그가 본 바를 설명하는 대목이나, 부하의 말을 듣고 그에 따르는 대목이나, 두 가지 모두 경문왕이 무엇보다 덕을 가진 이였음을 보여주는 데 부족하지 않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때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다.

-경문왕은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결코 순탄치 않은 왕 노릇을 했는지 모른다. 그 자신 아무리 덕을 갖추었다 한들, 이미 시대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졌는데, 늘 행운만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바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그 세계관이 비극적이다. 경문왕이야말로 그런 비극적 세계관의 주인공이다.

 

견훤, 비운의 영웅

백제 땅에서 나온 마지막 왕

-실상 견훤은 백제 땅에서 나온 마지막 왕이다.

-신라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왕건과 끝내 경쟁 관계에 섰던 견훤을 언급하지 않고는 마무리가 시원찮았을 것이다. 그래서 견훤은 이 조의 사실상 주인공인 왕건을 빛내 주는 훌륭한 조연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3대에 걸친 물고 물리는 불화

-불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똑같은 되풀이를 견훤과 그의 아들 신검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끝없이 반항하다 망한 견훤 집안 3대다.

 

호랑이가 키운 아이

-기이한 인물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ㅣ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아마도 그 결정적인 사건은 견훤의 경애왕 살해일 것이다.

-도리어 등뒤의 적을 만든 셈이었다.

-왕건이 연패하는 중인데도 신라에서 고려와 화친하고 더 나아가 나라를 맡기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됨됨이가 견훤처럼 사나운 사람보다 온순하고 정이 많기로, 왕건이 그들의 뒤를 잘 봐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편지로 싸운 한 판

-절정의 순간에 보낸 견훤의 편지와, 예봉을 피해 가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왕건이 보낸 답장에서 우리는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최치원의 이야기

-어쨋든 이 편지 싸움을 정점으로 형세는 급격히 왕건 쪽으로 기울었다. 견훤의 부하들은 하나 둘 왕건에게 항복해 왔다.

 

가엾은 완산 아이

-그 중 넷째 아들 금강이 키가 크고 지략이 많아, 견훤은 그를 특별히 사랑해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견훤은 금산사 불당에 위리안치 되었고, 금강은 죽임을 당했으며, 신검이 왕위에 올랐다.

 

라이벌에게 의지한 마지막 생애

-반역을 당한 자는 비참하지만, 반역자가 아들인 경우엔 슬픔은 이중으로 겹쳐오고, 급기야 천륜을 팽개친 불구대천의 원수 삼기가 어디에도 없을 지경을 만들어 낸다.

-술을 빚어 마시다가 감시하던 군사 30명을 취하게 만들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오랫동안 적이었던 왕건에게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러 갔다. 왕건은 그가 지닌 성품대로 부하들을 보내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당한 배신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온 이 노장이 도착하자, 자기보다 10년 위라고 해서 그를 높여 상보라고 했다. 상보는 경순왕에게도 주었던 직함이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166, 순교는 어떤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 순교 자체로 성스럽다.

 

순교자의 마음

-‘삼국사기에서는 불교를 받아들이자 주장하는 이차돈과 그에 반대하는 다른 신하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는데, 법흥왕이 할 수 없이 이차돈에게 형벌을 주는 족으로 결론 내린다고 적었다.

 

아도의 본마음을 이룬 성자

-‘이차돈의 머리를 베었더니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는 대목은 어디에나 있다. 붉은 피가 아니라 흰 젖이었다는 이적이 이 이야기의 절정 부분이며, 흰 젖은 부처님의 감응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 불교가 뿌리내리는 데에 치른 값진 희생의 전통, 그것은 곧 아도와 이차돈의 순교다.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황룡사의 돌무더기

-황룡사는 옛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신라의 한 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 아닌 마음속에서는 신라인이 상상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였다.

 

황룡사 구층탑의 경우

-불가사의한 높이다. 과연 얼마만한 건축 기술을 가졌기에 20층 아파트 높이의 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어쨋거나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

 

그 안타까운 최후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고종 16년 곧 무술년 겨울, 몽고와의 전쟁통에 탑과 절 그리고 장륙존상과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탔다고 알려 주고 있다. 1228년이라면 일연의 나이 23세 때이고, 전쟁이란 바로 몽고의 2차 침입을 말한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흰 달이 비추는 산

-부득과 박박이 각가 미타불과 미륵불을 근실히 구하다 함께 왕생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속세를 버리고 산중으로 숨는다.

-박박의 처소에 아리따운 한 낭자가 찾는다.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지만 박박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부득은 여자를 자고 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밤이 깊어 여자에게 산기가 있자, 이 난처한 경우에도 정성스레 시중을 들어준다. 이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지극해서였을 뿐이다.

-낭자의 출산을 위해 준비해 준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이라 밝히고, 스님의 대보리가 이루어지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부득을 비웃어 주려 찾아온 박박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부득의 도움을 받아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시로 완성되는 삼국유사

-박박: 여자를 암자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은 이편계를 지키는  출가자의 바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기적인 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 뿐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된다.

-부득: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다면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참 보살행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수순중생의 뜻을 저버리지 않은 부득의 행위는 이 같은 참 보살행의 소치임이 분명하다.

 

201,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야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낙산사의 힘

진신의 친견담과 조신

-낙산사와 진전사의 거리는 그 사이에 고개도 하나 없는 이삼십 리 정도. 이웃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두 절이 일연에게는 바로 한 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기 낙산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소중히 건사하고, 끝내 삼국유사에까지 거두어들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추측도 아니다.

 

의상과 원효의 거리

-의상의 본디 목적은 진신을 직접 뵙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치밀하고 정성들인 노력 후에 얻은 만남이다. 그런 노력으로 얻지 못할 무엇이 있겠는가 웅변하는 듯하다.

-문면으로만 놓고 보건대 원효의 완전한 실패담이다. 진신을 만나러 간다는 사람이 길가다 마주친 여인들에게 희롱이나 일삼고 있으니 될 일도 안될 판이다.

-그가 관음보살인줄 알았건 몰랐건 만나기는 했다.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다소 익살스럽게 써 내려간 의상과 원효 두 라이벌의 관음보살 만나기를 넘어가면, 범일 스님과 정취보살의 이야기는 완연히 다른 색깔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의 꿈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 중구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 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마침 강릉 태수의 딸을 보고 조신은 한눈에 반하고 만다. 여러번 낙산사의 부처님 앞에 나아가 빌었건만, 야속히도 태수의 딸은 배필을 정하고 말았다.

-언뜻 선잠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뜻밖에 나타난 꿈은 시작된다.

-황홀한 기분이 되어 사판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여 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년은 비참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을 둘씩 나누어 서로 다른 길을 향해 손을 놓고 가려다 조신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그것은 꿈의 끝이었다.

 

216,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사람, 원효

217,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이라고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221, 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에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바보 같은 원효

-그러나 삼국유사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원효는 어쩐지 그렇게까지 잘난 원효가 아니다. 멍청한 짓 아니면 실수나 저지르는 조역만 그에게 주어져있다.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문 닫힌 분황사에서 추억하는 원효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밀교의 한 자락

어떤 사람이 승려가 되었는가

-승려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대체적으로 인생의 번뇌와 그 번뇌 속에 시달리는 세속의 인간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가는 그 번뇌로부터의 떠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슬픔이다.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싶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신라의 밀교 승려

-밀교는 같은 불교이면서도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교는 드러나 불교, 밀교는 숨어 있는 불교랄까? 일반적인 불교를 포함하면서 거기에 넘어선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이 이 때문이다.

 

236,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혜룡과 용의 질긴 싸움

-일연의 혜통에 대한 평가는 극진하다. “이제 화상이 무외를 제대로 배워와, 속세를 두루 돌며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교화시킨은 물론 운명을 보는 밝음으로 절을 지어 원망을 씻어 주니, 밀교의 바람이 여기에서 크게 떨쳤다는 논평은 물론이려니와,

 

명랑의 신인종

-일연이 관ㅅ미을 가진 불교 사싱이 매우 넓다고 하겠는데, 이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한다. 노골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나선 조선조의 정치 이념에 따라 한국의 불교사는 잠시 주춤한다. 그런데 이때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은 ㅉ고이 밀교나 점찰법회 같은 것이었다. 이른바 사람들을 미혹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었던 것이다. 일연도 이 같은 부류로 나눠지고, 그에 따라 일연에 대한 관심이나 사적이 인멸되지 않았나 추측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불교적 정신이 바탕 된 사회

-한마디로 말한다면 감통편의 이야기들은 신라 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민간 대중에게까지 얼마만큼 체화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삼국유사’ 9개 편 가운데 여기를 가장 즐겨 있는다(감통), 이름 없이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불교를 매개로 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246, 크건 작건 실천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 자리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에서 읽을 수 있다.

 

광덕과 엄장

-그러나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숨어 사는 이의 멋

숨어 사는 것의 뜻

269, 공자는 천하게 도가 있으면 드러나고, 없으면 숨는다고 말했다.

 

-불교에서의 숨음은 이와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세상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만 해서 은거가 아니다. 또 드러냈다고 해서 드러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

-헛된 명성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혜현은 그가 이룬 높은 경지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몰려왔는데도, 도리어 거기서 달아나 홀로 지냈으니 정반대의 경우라고나 할까?

 

낭지와 포산의 두 성인

-일연은 아직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메모해 두었던 듯하다. 이것이 삼국유사찬술의 재료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 결정적인 증거를 보게 된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둔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저자라면

삼국유사 원본을 읽은 것이 아니라 번역서를 읽었기 때문에 일연의 글과 고운기 교수의 해석사이에 나만의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고운기 교수의 해석에 동의했다. 삼국유사가 씌어진 이유와 일연의 의중, 시대적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운기 교수는 30년 가까이 삼국유사를 공부하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이다)

 

특히 삼국유사는 유사의 특징답게 서민의 이야기나 패배자의 이야기, 그밖에 정사에서 다루기 힘든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원효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처럼, 관용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은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 안에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고운기 교수는 이런 일연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추켜 세운다.

 

아래는 이 책의 목차이다.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이 땅의 첫 나라

고구려와 북방계

신라와 남방계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밤에 찾아오는 손님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첫 성전환증 환자

왕이 되는 자

견훤, 비운의 영웅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낙산사의 힘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밀교의 한 자락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숨어 사는 이의 멋

 

내가 역사서를 편찬한다면 최대한 담백하고 건조하게 작업하고 싶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 싶다. 역사가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역사서는 왠지 그렇게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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