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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8일 02시 4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2 페이지 이상)

 

저자: 고운기 교수, 시인

출생: 1961 12 15 /전라남도 보성)

소속: 한양대학교 (교수)

학력: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데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경력: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7.04~2008. 03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객원교수

     2004. 1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읽어가며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삼국유사의 내용으로 유추해볼 때 당연히 국사학자이거나 불교학자라고 생각했던 저자가 뜻밖에 국문학자이자, 또 동아일보 신춘문예 밀물드는 가을 저녁 무렵로 등단한 시력 30년이 넘는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불교방송 아침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또한 저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공식적으로는 기독교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불교라고 자신의 종교를 밝혔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으로서 불교방송까지 진행했다는 부분이 좀 흥미롭다.

 

국문학도였던 저자가 국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마도 [일연의 세계인식과 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우리의 역사, 그 중에서도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는 박사논문 시절부터 이 후 수년간 삼국 유사 이야기와 관련된 자료 수집을 위해 현장을 답사했고, 1999년부터 약 3년간 일본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체류하면서 한문학 비교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는 다양한 현장조사와 연구를 통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2002), [길 위의 삼국유사] (2006), [일연을 묻는다] (2006)을 등 삼국유사와 관련하여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2007년에는 메이지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한국고전문학과 삼국유사를 강의하였는데, 일본에서의 연구와 공부를 바탕으로 논문 [도쿠가와 장서 목록에 나타난 삼국유사 전승의 연구] (2008)를 발표하고, 이 논문과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2009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20을 펴냈다.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필생의 작업으로 삼은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의 첫 권이다.

 

그리고 최근(2012 12) 삼국유사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신화리더십을 말하라’(현암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건국신화의 다양한 인물들의 리더십을 탐구하면서 신화 속의 인물들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건국신화의 주요 인물들로 구성된 내용이라고 하니, 언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신화리더십을 말하다에서 저자는 책 머리에 시 한 편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뒤덮는 밤의 어둠 속에서/ 어떤 신이든/ 내게 불굴의 영혼을 주심을 감사하노라(중략)/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의 '불굴')

 

 삼국유사의 원작자인 일연스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덧붙여 보겠다.

일연스님 (一然)

출생: 1206~1289

속성 김(), 견명(見明)

일직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 양육

9: 무량사(광주) 취학

-       아마도 홀어머니가 양육하기 어려움이 있었던 듯

14: 진전사(양양)로 가서 출가

22: 승과에 합격, 이후 삼중대사, 선사, 대선사 등의 직급에 차례로 오름

44: 정림사(경삼도 남해) 주지로 부임

 

78(1981): 국사로 책봉

*국사: 지덕이 높은 중에게 조정에서 주던 이름

 

일연은 9세인 어린 나이부터 취학을 하고, 14세 때 출가를 하게 되는데, 승려로서의 그의 첫 이름은 회연(晦然)이었는데 나중에 만년에 일연(一然)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스물 두살에 승과승과(僧科)에 나가 합격한 이후 몽고 전란기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도 용맹정진하여 성실한 수도생활을 하여 삼중대사Ÿ선사Ÿ대선사 등의 직급에 차례차례 올랐고, 1981년 그의 나의 78세 때엔 나라의 스승이자 임금의 스승이며, 종교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인 국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마 오늘날의 김수환 추기경에 버금가는 그런 위치일 것이다.

 

일연은 승려로서의 자신의 본분과 위치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그러면서도 시대와 소통하기 위해 소명의식을 갖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던 것 같다. 그 중 후대에 까지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도 그 중 하나이다.

승려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그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가는 구름처럼, 또 흐르는 강물처럼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그러한 그의 삶이 그가 저술활동을 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운수행각 중 자신이 머물던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그가 삼국유사를 작성하는데 있어 좋은 재료가 되었으리라고 미루어볼 수 있다.

 

1.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책을 읽다 마음에 들어 온 인용문을 인용 페이지와 함께 발췌하여 적을 것

 

머리말

<18> [삼국유사]를 읽느냐는 물음에 답하려고 나는 머릿속에 맴도는 숱한 생각 가운데 두 가지 정도를 추려 놓고 있다.

1)     첫째, 이 책에서 한 민족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2)     둘째, 잘나고 못나고 할 것 없이 골고루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면면을 두루두루 보여주기 때문이다.

ð  삼국유사는 일연이 스님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어떤 세속적인 가치 기준을 매기지 않고 볼 수 있었으리라.

 

<19> 보급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도 본디 낸 두 권의 원본에서 두루 추천하고 싶은 장()만 골라놓은 편집본이다.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   유사와 사기에 얽힌 고백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와 사() 에 있다는 점.

ð  유사와 사기의 차이가 사()와 사()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아마 이 책을 읽어 내려감에 있어 지속적으로 마음에 두고 유념해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   삼국유사 탄생의 배경

<24> 고려 초부터 이 시기 지식인들은 우리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는 문자 생활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25>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시키는 촉진제다.  à 첫 번째 저술은 역사서로 정해졌다.

ð  한문이라는 문자를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문자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25> 무인들의 집권은 단순히 집권 자체로 끝나지 않았고 세계관에 변화를 주었다.

<25>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이 사대(四大)로 요약된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문화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의 틀은 우리에게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è

ð  이러한 변화의 시대적 상황하에 우리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왔고, 사대주의의 의존적, 속국민으로서의 사상이 아닌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사상과 함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나타난 듯 하다.

<25-26>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은 이쯤 와서 힘을 잃게 된다. à 한족의 멸망과, 오랑캐의 성쇄

 

<26>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그가(일연) 승려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다. 유학(儒學)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야 인식의 전화를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ð  일연은 승려로서 어떤 편파적이거나 왜곡되지 않은 특히, 중국에게 영향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역사가들과는 차별적 시각으로 삼국유사의 집필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일연은 어떤 사람인가

<27> 일연 = 이름은 김건명, 홀로 어머니 손에 양육되었고, 9세에 무향사(광주)에 취학하고 14세 때 양양 진전사로 가서 출가하게 된다.

승려로서의 처음 이름은 회연(晦然)이었다. 스물두 살에 승과(僧科)에 나가 합격한 일연은, 이후 몽고 전란기의 혼란한 사회 상황 속에서도 올곧은 수도 생활을 계속하여, 삼중대사Ÿ선사Ÿ대선사 등의 직급에 차례차례 올랐다. 세속의 지위에 큰 의의를 부여할 바 아니나, 그가 얼마나 자기 생활에 충실했던가를 알게 해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   [삼국유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28>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이렇게 9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ð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   우리에게 [삼국유사]가 전해지기까지

<32> 한국에서는 1915, 조선연구회가 원문과 일본어 번역을 부친 [삼국유사]를 내놓았으며

 

<중략>

이 땅의 첫 나라 (1)

-   뿌리를 찾았던 첫 세대의 상징

<34>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 머리에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35>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ð  우리와 일본 사이의 독도소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예전에 비해 최근들어 더욱 부각되는 것이 우리가 그만큼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그만큼 voice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ð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약소민족으로써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 어렵기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신화)로 포장하고, 또 일제의 억압하고 가 발달한 것은 의도하는 내용을 표현의 방식을 은유적으로 함으로써 규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

 

-   세 부분으로 된 고조선

<36> 먼저 단군 신화가 실린 [삼국유사]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제목을 [기이] 편의 고조선조다. 이 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권의 책에서 인용했다.

첫 번째 부분은 [위서]라는 책에서 인용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2,000년 전쯤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세웠다.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불렀는데, 요임금과 같은 때이다.

 

짤막한 기사지만 나라가 세워진 시기, 도읍지, 첫 왕 등 주요사항이 모두 들어있다.

 

<37> 두 번째 부분은 [고기]에서 인앵했다.

 

옛날 환국의 아들 환웅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 보니,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무슨 이유로 사람 사는 세상에 내려오고 싶어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추구한 궁극의 이상은 한 마디로 잘 나타나 있다.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은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곧 그의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국의 생각을 보여주는 말이다.

ð  이러한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한 메시지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홍익인간의 정신이고 이런 정신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갔다. 그러한 배경은 아마도 중국이나 외세에 핍박 받고 약소국으로 살아감에도 우리의 우리에게 상황을 탓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열심히 살 뿐 아니라 그 삶이 세상에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38> 환웅이 먹는 것, 생활하는 것 등에서 어떤 의식을 정해 놓고 그것의 준수를 요구했는데, 곰은 묵묵히 이행한 데 반해 호랑이는 그렇지 못했다.

 

<39> 곰은 여자가 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 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은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ð   굳이 여기에서 곰은 여자가 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라고 서술한 맥락상 의미를 잘 모르겠다.

 

-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42> 대게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   조선은 어디로 갔을까

<43> 일연의 단군에 대한 관심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단군조선Ÿ위만조선 등의 존재를 무시하고서, 이 땅에서 생겨나고 없어진 나라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일연은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고조선: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그 뒤에는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지금은 단군이 건국한 조선과 위만조선을 포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한다.

 

*위만조선: 위만이 집권한 이후 멸망할 때까지의 고조선

 

*위만: (衛滿)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인물

 

그는 B.C. 194년 고조선(조선이 국명이지만, 뒷날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칭함)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며, 고조선의 국력을 크게 키운 인물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44>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ð  혼이 담기지 않은 모방은 의미가 없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어쨌든 [삼국사기]가 외면한 이 책(고기 古記)의 단군조선 부분을 일연이 관심 가진 것은 오직 여기서만 조선이 온전히 보였기 때문이다.

 

-   13세기의 시대적 분위기

<45> 이 시기에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 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대내외적으로 같은 시기에 겪은 이 사건은 고려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는데,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왜 민족의 주체성이었던가? 어떻게 민족이라는 각성이 가능했던가?

 

<46> 비록 새로운 질서를 세우자는 대의명분이 정권을 뒤집게 했지만, 그것만으로 정통성이 보장되지 않는 법이다그런데 송나라가 망하고 오랑캐족에 의해 원나라가 섰다. 천자의 나라를 넘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되었고, 무인 정권이 내세웠던 새로운 질서라는 대의명분에 상당한 힘이 실렸다.

 

13세기 이 나라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인의 기개를 한껏 살리면서, 고주몽의 생애를 장황히 읊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기실 민족의 발견이었다. 또 다른 문장가 이승휴는 시를 쓰는 이 나라의역사 [제왕운기]에서 단군 신화부터 시작하였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난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이 아니었다.

 

-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48> 위만이 연나라 출신임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그가 본디 조선족 출신임을 더 내세우고자 한 것이고, 거기에 위만의 차림새를 굳이 내세우다 보면 이러저러한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약간의 추측이 가능하다면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직접 책봉한 기자를 애써 간단히 처리해 버리고, 위만조선을 그 다음 조에 이어 놓은 일연의 생각은 여기서 조금씩 드러난다.

 

-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함께 읽어야 할 이유

<49> 기싸움에서건 맞싸움에서건 한 치도 물러남 없는 힘이 있다.

 

<50> 이렇듯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위만조선까지 조선의 시대는 강력한 한나라의 침공 앞에서 막을 내린다.

 

<51>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떼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중략> 첨부 파일 참조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이 책의 구성 중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란 부분에서 저자의 집필의도와 또 책을 읽으면서 유념해야 할 부분에 대해 깊이 있는 조언을 해 준 부분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인 뼈대와 구성을 책 서문 중에서 발췌하여 가져오도록 하겠다.

 

삼국유사의 140여 개의 조목 중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19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고, 대체적으로 [삼국유사]의 순서를 따랐지만, 경우에 따라 유사한 성질의 것끼리 묶은 것도 있다.”

 

내가 선택한 [보급판][본판]과의 차이점은 [보급판]에서는 21개의 장이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중학교 때 필독서였던 예딤당의 삼국유사를 함께 참고하며 읽으며 이해를 도왔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삼국유사를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절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들에 대해 저자가 해석한 부분이 가장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단군의 건국으로 삼국유사를 시작한 부분에 대한 해석부터 신라의 건국에서도 출발의 의미인 오리지널을 강조한 부분 등 상징을 통해 우리의 주체성과 민족의 자긍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일연의 의도를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이러한 시각을 일관성 있게 제시해준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든다.

 

<35>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ð  우리와 일본 사이의 독도소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예전에 비해 최근들어 더욱 부각되는 것이 우리가 그만큼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그만큼 voice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ð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약소민족으로써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 어렵기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신화)로 포장하고, 또 일제의 억압하고 가 발달한 것은 의도하는 내용을 표현의 방식을 은유적으로 함으로써 규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

<68>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앞서 환웅과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가 직접 왕이 된다든지 왕이 될 아들을 낳는 것으로 북방계 민족과 나라의 출발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ð  그렇게 함으로써 훗날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의 시조가 되는 신라에게 독립적인 주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연의 의도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보완점]

내가 책을 구성한다면, ‘삼국유사원전의 이야기는 그대로 살리고 이와 함께 저자의 해석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 이후 써내려 갔을 것 같다. 저자의 시각 위주로 내용을 본문을 구성하고 실제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오히려 부수적으로 들어가 있는 듯해서 어떤 부분은 원전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삼국사기]의 내용과 다르다는 언급이 많은데 실제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교가 좀 더 있었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저자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기독교이고, 심정적으로는 불교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중간 중간 기독교, 성경과 불교와 삼국유사를 비교하여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서문에 저자가 책을 쓰면서 유념했다고 밝혀두는 부분은 독자로서, 또 향후 나의 책을 쓰고 싶은 예비 작가로서 참고가 될 만한 내용, 또 독서를 할 때 중점을 두어야 할 시각들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던 측면에서 매우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32-33>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유념한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혀둔다.

1)     첫째,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이라는 기분으로, 어디까지나 본문의 이해와 전달을 위주로 하였다.

ð  북 리뷰를 쓸 때 내가 저자라면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그는 집필에 임한 듯하다. 이러한 시각을 참고 삼아 북 리뷰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2)     둘째, [삼국유사]에 실린 전체 조목 수는 약 140여 개, 그것을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19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 그러다 보니 대체적으로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성질의 것끼리 묶느라고 순서를 무시한 부분도 많다.

3)     배경을 설명하면서 [삼국사기]와 면밀히 비교해 보았고, 여러 승전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동안 [삼국유사]를 연구한 여러 선학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한편,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를 많이 참고했거니와, 여기에는 일본에서 정리해 놓은 여러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ð  우리가 책을 집필할 때도 참고로 삼아야 할 내용인 것 같다. 유사서적과의 면밀한 비교 및 다양한 참고 서적의 활용

4)     [삼국유사] 1290년경 일연에 의해 쓰여졌고, 곧이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일연이 이 책에 들인 애정은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생애와 저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삼국유사] 본체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ð   이 또한 우리가 북 리뷰를 쓸때 저자에 대하여 면밀한 조사를 하고 저자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을 군데군데 설명하였다. [삼국유사]는 분명 10세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나, 13세기의 일연이라는 인물에 의해 재구성되었다는 점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ð  책을 읽으면서 일연이라는 사람에 대한 부분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부분에 유념하고 읽어 내려가야 할 것

 

[추가]

고운기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 작인 밀물드는 가을 무렵과 시에 대한 그의 시각이 담긴 인터뷰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옮겨보았다.

 

밀물드는 가을 저녁 무렵 - 고 운 기 -

1.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오고

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산마을로 들어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사립문 밖에 나와 산과 구름이 겹한
새 날아가는 쪽 하늘 바라보다
밀물 드는 모랫벌 우리가 열심히 쌓아 두었던
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
낮의 햇볕 아래 대역사를 벌이던 조무래기들
다 즈이 집들 찾아들어가 매운 솔가지 불을 피우고
밥 짓고 국 나르고 밤이 오면 잠들어야 하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분주히 하루를 정리하고들 있었다
그러면 물은 먼 바다에서 출발하여
이 마을의 집 앞까지 밀려와 모래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부터 잠재웠다
열심히 쌓던 모든 것을 놓아 두고
각자의 집으로 찾아들어간 조무래기들의 무심함만큼이나
물은 사납거나 거세지 않게
천천히 고스란히 잠재우고 있었다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와
산마을 어디로 사라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2.
이 도시에 밀물처럼 몰려오는 어둠
먼 시가지가 보이는 언덕길 버스 종점에 내려
돌아올 버스 토큰 하나 남았던 허전함처럼
모두 쓰고 버리고 힘들여 쌓아놓고 오는 밤
불을 키우고 어둠을 밝혀
한낮의 분주함처럼 서성이지만
먼 옛마을에 찾아와 호롱불 몇 개로 정체를 밝히던 어둠이여
오늘 인공의 빛을 피해 찾아오는 밀물이여
이미 어린아이 적처럼
만들었던 것들과 무심히 결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깊은 잠을 주고 또 평평히
세상의 물상들 내려 앉히는
대지의 호흡이여

어느 땐가 밤이 깊어져
물은 떠나온 제 땅으로 돌아가고
백지처럼 정돈된 모래벌에 아침이 오면
이루었으나 아무것 이룬 것 없는 흔적 위에
조무래기들 다시 모여들었더니
물이 들어왔다 나간 이 도시의 고요함을 딛고
내가 간다
살아왔던 일일랑 잊을 만하고
새 벌판은 끝이 없어
또 쌓아야 모습은 못날 뿐이지만
일이 끝나 날이 저물면
가슴에 벅차도록 몰려오는 밀물은
산이 되고 밭이 되고
집과 자동차와 친구가 되고
정승이 되고 나라가 되고
희망도
사랑도 되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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