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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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33. 심청도 심 봉사도 옛날 옛적이라는 시공간의 존재들이다. 옛날 옛적이란 과거의 특정한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어느 신화학자의 말을 빌면 옛날 옛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다. 따라서 우리 개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시간인 것이다. 옛날 옛적이 '영원한 현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들어도 늘 새롭게 느끼는 비결이 아닐까?
* 옛날 옛적이라는 시공간
37. 실제 일상에서 그림자를 만나는 순간도 이 이야기 만큼이나 극적이다. 타인의 그림자를 만나든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든 전혀 예기치 않았던 모습에 당황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표면으로 노출되는 순간, 자기 영혼 속에 자기가 전혀 모르고 있던 완전히 다른 영혼이 살고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런 전혀 다른 인물이 밖으로 노출되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다. 타인의 그림자를 인지하는 것이 자신의 것을 인지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 그림자 노출
* 심봉사와 스님의 만남
39. 이런 대조적 특징을 보이는 그림자를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스님의 경우 심 봉사를 구해 준 행동은 분명 선한 행위이다. 그러나 지불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부추겨 허황된 약속을 하게 만들어 결국 큰 희생이 불가피하게 만든 점은 명백히 선이라 볼 수 없다. 실제로 그림자의 특성은 보편적인 가치나 개인의 의견 그리고 사실과 거짓 등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다.
* 이래서 내가 이야기, 소설을 좋아하나 보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속 사람들... 선과 악으로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
* 그림자가 거짓과 진실, 보편적 가치 등이 혼재된 것으로 나쁜 것만이 아니고, 좋은 것만이 아니듯, 실제의 삶도 이분되지 않는다.
* 무지와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피해나 파괴력은 대단하다. 공각기동대 2탄(이노센트)에서 어린 소녀가 자신이 살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사건의 계기가 된다. 아이는 구출되지만 아이를 구출한 어른은 그 아이의 그 이기심에 화를 낸다. 그 이기심, 무지는 선악과 불편부당을 판별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무섭다.
* 가장 폭력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아동들의 무지에서 나온 행동이 상대에게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다룬 것들이 있다. 무지나 어리석음이 아이들의 전매특허는 아니지만...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만 용서해 버리는 것도 있고.
여기에서는 어른인 심 봉사가 그 무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40. 심 봉사가 순식간에 시주 결정을 한 것에도 볼 수 있듯, 그는 한꺼번에 오랜 어두움을 해결하려 든다. 그야말로 한판 뒤집기이고 소위 말하는 대박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오래 묵은 내면의 심리 상황을 일순간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상황이 암울할수록, 처지가 답답할수록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 또한 인간의 한 모습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심 봉사의 모습은 이성의 눈이 먼 사람이 마음의 눈도 멀게 된다는 전형적인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 이성의 눈이 멀면 마음의 눈도 먼다.
41. 이 영화에서 거리의 악사가 겪어낸 무수한 세월과 인고의 나날들, 그리고 천 번 현을 끊을 만치의 필생의 노력이 바로 내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이다. 내면의 깊이를 탐색하는 데 결코 지름길이란 없으며, 심 봉사가 추구하는 인스턴트 해결책은 더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
* 서편제에서는 한을 갖고 산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한을 풀어내는 소리를 하는 삶.
46. "여성으로서 네가 지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더니 그녀의 답은 "how to feel", 어떻게 느끼는지 안다는 것이었다.
47. 심청 : 효녀인가?
심청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갖은 고초를 겪는다. 하루하루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다. 아버지가 풍기는 어둡고 암울하고 침울한 분위기가 청이를 압도한다. 이런 주변 환경과는 상관없이 그저 착하고 아름답고 친절하고 갸륵하고 부지런한 천사표가 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꿈을 통한 내면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착하게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내면이 우울함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자신보다는 남의 편의와 안녕을 먼저 고려하는 사랑의 실천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면화된 우울함이 깊이 배어 있는 이들의 꿈에는 종종 가면이 등장한다.
* 청이가 천사표이길 바라는 것은 바램이고, 천사표는 어려울 것이다. 천사표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가혹한 일이지.
* 전쟁통에 살아남아서 소녀가장이 되어서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가 옆집 아저씨가 어느날 집에 쌀을 갖다주었을 때 착찹하단다. 그날밤 치마를 걷는다.
* 어느 날 헤밍턴코리아에 딸바보 아버지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자신의 딸을 보면서 아내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딸이 하는 것은 사랑스러운데,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아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내에게 그런 성격이나 행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가족이 서로서로 자신의 가족의 일원을 보면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딸바보 아버지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아내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이해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심청이 효녀라면, 심 봉사가 20세 내외에 안맹하여 그의 부인 곽씨가 살림을 꾸려가며 겪었을 고초에 대해서도 '효'에 맞먹는 멋진 말을 붙여줘야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가정을 꾸리고 지키는 노력을, 특히나 여성의 노력을 당연히 생각하며 무시하는 면이 있다. 아니면 반대로 여성의 착취가 이어져 어린 딸에 대한 착취까지 갔나?
49. 심리학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여성의 심리는 흔히 양극단을 보인다. 하나는 남성을 모방하여 남성의 세계에서 남성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경우다. 대게 지나치게 야망 지향적이거나 냉혹한 지성의 소유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극은 지나치게 '여성적인' 것이다. 주로 병적으로 과잉 친절을 베푸는 유형이다. 심청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자답다'거나 '현모양처 감'이란 칭찬이 뒤따른다.
* 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다. 그리고 내 여자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기도 하고.
기상청 입사 동기 박** 그리고 나 - 남성의 세계에 살아버린 게 아닐까.
49. 희생은 선택권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더 큰 의식의 진화를 위해 작은 의식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심청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버려 두면 아버지가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고 아버지를 살리자면 자신의 목숨을 내주어야 한다. 이래도 저래도 이기는 길이 없는 이런 상황은 희생보다는 악마와의 거래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 아귀병(걸신들린 병)에 걸려서 딸을 팔아먹는 아버지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결국은 자신의 몸을 먹어서 얼굴만 남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지만..... 그나마 거기에서는 딸이 변신하는 능력이라도 있는데, 여기서는 일방적으로 소멸이네.
51. 사람들의 꿈을 탐구하다 보면 개인의 깊은 내면의 요청은 가끔 사회적 준거와 상반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대다수 여성들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려 할 때면 '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자기 의심이 여성이 갖는 최대의 함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55. 잔치의 맨 마지막 순간, 심 봉사가 궁궐로 온다. 청이를 얼싸안는 순간 봉사의 눈이 번쩍 떠진다. 심 봉사의 어두움,암울함의 베일이 마침내 걷히게 되는 이 이미지의 계기는 바로 청이라는 새롭게 만개한 여성성을 다시 얼싸안는 것이다.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심 봉사의 '심'이 가라앉음, 무거움, 우울함, 어두움은 아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여성성과의 단절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이 어두움은 마땅히 여성성과 다시 결합함으로 해결된다.
* 심청가에서는 심 봉사는 20세 안팎에 눈이 멀었다. 그건 결혼한 후에 그러하다. 가부장적인 세상에 남성성만으로 좁은 학문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게 그가 눈이 먼 이유가 아닐까 한다.
또한, 양은 움직이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심봉사의 경우는..... 눈이 멀고, 그의 생계는 그의 부인 곽씨가 부지런히 바느질이나 남의 집 일을 도와서 꾸린다.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다.
2장 : 콩퀴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걸리지 않았다 - 콩쥐팥쥐
69. 아버지는 콩쥐 엄마가 죽었을 때 순발력있게 재혼하여 콩쥐팥쥐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장을 만들어 주고는 이야기에서 사라져버린다.
* 콩쥐 아버지의 부재
71. 아버지가 딸의 정신적인 성장 발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성 개발에 관한 한 아버지의 역할이 덜 직접적이거나 미미하다는 추측이다. 비중이 약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과 가슴으로 회자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들을 유추해볼 따름이지만 실제 구전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혹은 형제지간 아니면 자매지간처럼 동서 간의 갈들을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73. 시야의 확대나 광활함이란 개념은 고대 동양에서 여성에게 권장되는 덕목은 아니었다. …..... 시야가 좁은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 아니라 좁은 문에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삶을 살게 된다. 가정에서 심리적인 중심인 어머니의 시야가 좁으면 자녀들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너른 시야란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특히 여성-어머니-주부에게 더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성 -1번째 : 너름의 지혜
73. 현재 미국 소설가 중 생태와 평화운동에 대해 급진적인 목소리로 떠오르는 바버라 킹솔서의 심미적인 표현이 있다.처음 그랜드캐니언을 대한 그녀의 묘사이다.
"캐니언을 보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그랜드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랜드(광할함)는 사물을 보는 관점인데 이 관점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우리의 욕망들을 고요히 잠재운다. 발밑에 끝없이 펼쳐지는 진홍의 심연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내면의 리듬인 태곳적의 여성으로 고요히 몰입하게 되어 그저 응시하게만 되고 감동의 숨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마치 우리 존재는 너무나 미세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여성성 -1번째 : 너름의 지혜
78. 여성에게는 밑 빠진 독의 이미지처럼 가능성만 차고 넘쳐 하나도 형상화되지 않거나 자기 것으로 고이지 않는 심리가 강하다. 이런 경향이 특히 강한 사람들은 가능성의 성찬을 차릴 수는 있지만 먹어서 배가 차고 마음이 살찌는 밥상을 차려내지 못한다. 이런 성향의 소유자일수록 자기가 소화하고 즐길 수 있는 양의 한계를 깨달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모든 것이 그냥 새어 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내게 특히나 필요한 조언이다.
79. 달-두꺼비-여성은 영생과 연결된다.
79. 여신 시대의 관점으로는 차고 이지러지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달처럼 한 사람의 생애는 탄생과 성장과 죽음과 재탄생이 주기가 반복된다. 여기서 영생이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재탄생으로 연결됨으로써 이 땅에서 생명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번성한다는 의미이다. 마치 달의 주기처럼 일생에 수십 수백 번 삶과 죽음과 재탄생의 주기가 되풀이되는 것이다.계절의 변화를 겪는 자연의 모습처럼.
* 자연의 변화처럼 살고, 차고, 이지러지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영생이라......
주역에서 말하는 변화라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구만. 난 그것을 제대로 읽기나 했을까? 책을 읽을 때 왜 삶이나 영생이라는 것이 시들했을까? 내 마음에 다시 살아나는 게 없었나 보다.
81. 심리학적으로 여성들은 분화되지 않는 혼란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애매모호함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등장하는 갈등은 바로 이러한 기질,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향에서 발생한다. 이 분별 작업은 애매함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기질을 보상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고, 수많은 여성 신화에서 과제로 주어진다. (Von Franz 156)
* 여성성 3번째 - 분별의 지혜
83. "그동안 다른 문화권에서 배우고 투쟁하며 산 시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이 탄식을 들은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분명 다른 세상을 접했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웠지만 그 생각을 적용하고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끝없이 너의 사고를 반추해 보게 하고 지지해 주는 그룹이 필요해." 혼자서 하는 투쟁이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여성들의 모임(women's circle)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그룹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
* 여성 그룹 속에 사는 삶
83. 무리가 함께한다는 사실 외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참새의 속성이 경쾌하고 발랄함이다. 먼저 등장했던 두꺼비와는 극적인 반대편에 있다.
* 참새의 가벼움
84. 나는 마릴린 먼로의 낡은 필름을 보면서 가벼움의 미학과 힘이 성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트남전쟁 당시 장병 위문을 위해 베트남으로 간 먼로가 단상 위에 오르자 거기 있는 수십 수백만 참전용사들이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무장 해제되었다. 전장에서의 피로와 외로움과 피비린내를 순식간에 녹여내려 달콤함으로 감싸버린 먼로는 그 자리에서 여신이었다. 나는 1970년대에 살아 있는 아프로디테를 보았다.
86. 콩쥐는 검은 소를 통해 비옥하고 기름진 땅의 풍요로움을, 두꺼비를 통해 깊이로 향하는 무거움과 신중함을, 그리고 참새 떼를 통해 가벼움과 생동감을 얻는다. 무겁기만 하면 삶이 너무 심각해지고 가볍기만 하면 경박해질 수 있다. 이 무거움과 가벼움이 땅의 비옥함과 조화되어 전인격적으로 발달한 여성인 콩쥐를 자신의 의식세계를 무한히 확장한 우주적인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세가지 동물의 상징과 온 세상
87. 신발은 땅과 사람을 연결해 준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과 충족감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검은 소가 준 신이 콩쥐의 발을 떠나서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검은 소와 두꺼비와 참새를 만났던 세계뿐 아니라 집안일로 거칠어진 손, 남루한 옷차림, 부엌 바닥과 구정물, 계모와 팥쥐의 시기와 질시의 세계에도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것이다. 이 두 세계 모두 콩쥐의 의식에 구체적인 실체로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깨어 있는 세계와 꿈의 세계,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 모두에 굳게 발을 디딜 수 있기에 콩쥐의 꽃신이 양쪽 세계에서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왜 하필 꽃신인가?
88. 콩쥐의 여정에서 남성 여웅의 여정과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 하나는 통곡이다. 눈물을 연약함의 표시라고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울음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아무런 가식 없이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너무 힘들다"라고 고백하고, "나는 할 수 없으니 천지신명이시여 굽어 살피소서"라고 자기 한계에 대해 진솔하게 토로하는, 간절한 구원에의 요청이다. 이런 모진 시련과 고통으로 울어 본 사람만이 자신의 아픔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그리고 우주적인 비극에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영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고통에 함께하는 깊은 연민과 열린 감성이다.
* 콩쥐의 눈물, 울음
* 그래 이 통곡이 새로 태어나는 울음인 것 같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주인공이 개울가에서 아버지에게 가서 슬퍼하는데, 죽은 아제가 '그래 울어라!'라고 다독여줬다.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바뀌는 것일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는 그 전환점?
3장 :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성장통 - 해님달님
93. 종일 일을 하고 오누이에게 돌아오던 산길에서 어머니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떡을 하나 주자 호랑이는 날름 삼키고 또 달라고 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 과정을 되풀이 하다 보니 어느새 떡은 동이 나 있었다. 떡이 없어지자 호랑이는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한다. 어머니가 팔을 하나 떼어 주자 호랑이는 또 욕심을 낸다. "팔 하나 더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몸통만 주면 안 잡아먹지" 어느새 머리만 남은 어머니는 오누이가 있는 집을 향하여 데굴데굴 굴러갔다. 움막 근처에 다다르자 호랑이는 어머니 머리를 덥석 먹어버리고는 어머니 옷으로 변장을 하고 오두막에 당도했다.
94. 산화와 의례가 살아 있는 원주민 종족들은 일생 동안 수 차례 통과의례를 치른다. 통과의례란 삶과 죽음의 드라마다.이들의 일생은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탄생이 거듭되는데, 매 죽음의 순간마다 기존 세계는 파괴되고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열리다. 그러므로 죽음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듭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95. 전통적으로 통과의례는 반드시 연장자가 전 과정을 인도한다. 부족의 구성원이 죽음과 탄생의 과정을 무사히 치러내도록 공동체가 의례라는 안전한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참가자의 인생의 전환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지켜보고 인정하고 축복한다.
96-97. 고통으로 신음하는 남편을 구급차로 옮기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서울 사는 딸에게 고들빼기김치를 갖다 먹여야 한다는 투철한 잠재의식을 지닌 우리 어머니. 자식을 먹이겠다는 엄마의 일념을 누가 감히 말하리오. 구급차 타고 온 김치를 받아 먹게 된 우리 언니의 첫마디,
"참 본능적이잖아."
유학 생활 8년 동안 한결 같았던 우리 엄마 전화 문구는 "밥은 잘 묵꼬?"였다. 서른이 넘은 딸에게 이런 유치한 질문을 한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 엄마의 고래 심줄보다 질진, 자식 먹이는 본능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긴 본능도 잘라야만 한다는 것이, 허리끈 메고 비싼 돈 들여 공부시켜 잘난척하는 딸이 주장하는 바이다.
98. 해님달님 이야기에서는 이 탄생을 산파가 조력하거나 사제가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힘으로 새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무의식이 행하는 탄생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경우 엄청난 파괴력이 뒤따르고 혼란이 가중된다.
99. 백인 아이라 희생 제물로 바치려나 보다 했던 나의 짐작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통과의례를 통해 여인의 아들은 죽었다. 그리고 부락에 새로운 전자가 한 명 탄생했다. 전사는 한 여인의 아들이 아니라 부락의 아들이고, 어머니의 보호막 아래 놓인 것이 아니라 독립된 성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여 준 통과의례 과정은 세계의 수많은 원시 부족 사이에 행해지는 통과의례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통과의례는 반드시 마을의 어른들에 의해 관장이 되며, 동성끼리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의 집단 의례로 거행된다.
100.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동물은?' 이라는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인간이다. 호랑이는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의인화이다. 영원히 주린 배로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먹어도 먹어도 차지 않는 배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욕망이 부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저 고픈 배를 자꾸 채우려고만 하는데, 문제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왜 배가 고픈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배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101. 호랑이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성은 거짓말, 술수, 위장에 능한 음흉함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동시에 우둔하고 어리석다.
* 우리 이야기의 특징인가? 세계적인 특징인가?
101. 창조 신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런 인물들은 한결같이 대조적인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인디언 신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코요테와 아프리카 신화의 산토끼, 우리 전재동화에서는 호랑이와 도깨비,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오니(귀신)등이다. 이와 같이 신화나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상반된 특질을 가진 원형을 트릭스터(trickster)라 한다.
102. 부유하되 결코 그 부가 지속되지 않는다. 요술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익살과 장난끼가 차고 넘친다. 사기성이 농후한 번뜩이는 재치, 기지를 부릴 때면,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는 게 기분 좋다.
103. 상상력이 얼어붙고 권위가 판을 칠수록 이런 트릭스터의 등장이 돋보인다. 권위든 위선이든 편견이든 정체된 삶의 틈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트릭스터이고, 트릭스터식의 사고 방식이 상상력이 부재한 사회에 유일한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103. 주목할 사실은, 호랑이가 등장하여 일으키는 대혼란으로 산골 오두막집에는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 집안의 안정과 고요는 집밖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나 혼란과 맞서 싸워 이겨서 쟁취한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재난이나 파괴, 질병 등의 삶의 어두운 측면을 거부한 곳에서 유지되는 일시적인 평화였다. 거대한 위험 도사리는 환경 속에 섬같이 존재하는 이 오두막은 찰나적인 낙원과 같은 곳이다.
110. 통과의례는 자녀와 어머니에게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111. 어머니는 더 이상 오누이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 아닐까 한다. 중년이란 삶의 절반의 지점에 다다랐다는 말이며, 이때는 나머지 절반의 삶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기이다.
여성이 영원한 어머니라는 말은 어떤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진정한 어머니란 자녀를 위한 어머니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양육하고 돌볼 줄 아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결국 자녀가 성장하여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될 때에는 어머니도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충만하게 채워 가는 것이 자녀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네 문화에서는'자신을 위한 어머니'라는 과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113. 과거에는 존재했으리라 짐작하는 의례는 이미 사라졌고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신화나 의례에서 신성한 힘이 사라지면, 그것들은 그저 어린이를 위한 동화나 놀이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님달님 이야기 역시 이 의례가 변형된 잔재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15. 해님달님 이야기에 숨어 있는 물, 기름, 도끼, 나무는 다양한 종교 의례에서 핵심적인 상징으로 사용된다.
....... 이 다섯 가지 상징물은 특히 출산에 관련된 의례에 꼭 등장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우선 칼로 탯줄을 자르고 물로 씻긴 다음 기름을 발라 신의 가호와 축복을 빈다. 새 생명의 탄생은 가계도에서 볼 수 있듯이, 커다란 나무의 형태를 따라 조상과 연결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119. 나바호 족의 여성 통과의례 : 여신 '호조'의 탄생
119. 나바호 족에게 새로 여인이 태어난다는 것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다. 갓 태어난 여인을 변화의 여신과 동일시하는 그들의 믿음은 이 여인의 탄생이 변화의 여신을 그 땅에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새로 빚어진 여인과 함께 새롭게 탄생하여 여신의 힘 호조가 나바호 땅과 그 땅의 생명들, 그리고 나바호 우주를 새롭고 풍요롭고 조화롭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 나바호 족의 새로운 여인의 탄생 통과의례나, 혹은 다른 부족의 통과의례를 보면 이들은 분명히 개인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중학생 때 가정시간에 청소년기(사춘기)에 나타나는 특징에 대해서 신체적인 변화와 정신적인 변화가 어떤 것인지 배웠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사회적으로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 것이다. 외모의 변화 만큼이나 정신의 변화는 중요해서 그때의 혼란스러운 것을 다루었을 텐데.....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다, 변화한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게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국민윤리시간에 철학이란 것을 배우고, 국어시간에는 국어란 것을 배우며 여러 가지를 익히지만 총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나열식으로 여러 가지를 일러주지만 그것들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른들(부족의 연장자)의 안내가 없었다.
학교라는 집단은 있었지만, 집단의 연장자와 그 구성원의 관계가 통과의례를 거치는 존재와 그것을 안내하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사춘기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 밖에.
* 우리 사회는 급변했다고 한다. 특히나 우리 세대는 그렇다. 베이비부머의 자식들. 엄청난 변화를 겪은 이들과 그 변화의 산물 속에 사는 자식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부모가 사는 환경과 자식이 사는 환경이 엄청나게 달리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4장 :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나무꾼과 선녀
127. 이런 여자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옛이야기에는 이런 여성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꿈에서 탄생한 남성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28.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서 금기는 아이를 넷 낳기 전에는 '절대' 날개옷을 내어 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늘로 되돌아오고 싶으면 '절대'발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옛이야기에서 '절대'는 반드시 깨어진다. 금기가 깨지는 순간 꿈의 세계도 사라지고 그 모든 것은 일장춘몽일 뿐이다.
128. 여성과 결호을 이야기하다가가 남성의 아니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남성이 자신의 아니마와 외부에서 만나는 여성을 구분해야 건강하고 성숙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성은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이런 이미지가 여성의 원형적 이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날 때에는 그 남자, 여자의 의식,그리고 남자의 무의식인 아니마와 여자의 무의식 아나무스, 이렇게 넷이 만나게 도기 때문에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쉽지는 않지만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려면 자신의 아니마, 아니무스와 자기 곁에 있는 상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자신의 이상형과 현실에서의 자기 곁에 있는 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129.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상대에게 자기 무의식을 투사하게 된다. 상대방의 본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상대방에게서 그 모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흔히 "남자가 어떻게...." 또는 "여자가 어떻게....."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하는 여자와 남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기대하는 남자와 여자가 바로 자기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아니마, 아니무스다.
* 내가 바라는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구나.
130.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 이야기가 '남성 폐경기'라는 제목의 일화로 남아 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그리고 성인 남자를 상담하면서 아니마 투사가 사춘기 소년이 한때 앓는 열병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생, 특히 이 친구처럼 50대 초반의 남성들에게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0. 건강한 남녀관계란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여성과 남성을 인식하고, 그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사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교훈하고 있다.
130. 심리학적으로 사슴이 '절대'라고 말하는 금기는 이것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남성이 아니마를 의식화하는 과정에는 아이 넷을 낳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숫자 4는 상징적으로 완전을 뜻한다.)
131. (나무꾼과 선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머리속에 그려 보자.)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니 날개옷이 사라져서, 친구들은 다 하늘로 돌아가는 데 혼자 알몸으로 지상에 떨어져 있다. 이렇게 실오라기 하나 걸칠 것 없이 완전 무방비로 노출된, 가장 취약한 상황으로 상대방을 몰아넣어 관계를 시작해 보겠다는 남자의 심리 상태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 아이고 이런.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나무꾼처럼 행동했구나. 사냥꾼처럼 상대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을 해버렸네.
132. 우리는 선녀를 나무꾼의 아니마라 규정했다. 그렇다면 자기가 자기 내면의 여성에게 무슨 짓을 하던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성이 자기의 아니마를 대하는 태도와 외부 세계에서 만나는 현실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성을 궁지로 몰아 관계를 맺어 보려는 나무꾼의 태도가 일반적으로 그가 자기 주변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라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 섬에 데려가고 배 끊기고 하는 것과도 비슷하네. 요즘은 그걸 수법을 다 아니까 서로 이용하긴 하지만,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관계를 맺어보려는 기본 구조는 같아 보인다.
133. "당신에게 날개옷은 필요 없어." 이런 남성이 이 말 뒤에 꼭 붙이곤하는 "나는 최선을 다해 가족을 돌보고 당신만을 사랑할거야."라는 굳은 결의에 찬 선언을 듣고 경계하는 여성은 많지 않다. 자기는 아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수시로 하는 사랑 고백은 주로 "당신은 나 없으면 못 살아."이다. 맙소사!
그렇다고 이런 표현 속에 담긴 남성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여성이 있다면 남성 심리에 대해 무지한 여성이거나 남성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진심은 이해하되 남성의 이런 표현이 여성에게 치명적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133. 여성에게 날개옷이 필요한지 아닌지 누가 결정하는가? 날개옷이 필요 없다는 나무꾼의 표현에서 그가 여성의 문제,여성의 고민, 여성의 꿈을 남성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남성적인 방법으로 다루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이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대학 영어 시간에 흑인의 인권 문제, 인권 운동에 대해서 백인이 그것을 반대하는 데, 한편은 무조건으로 과격하게 반대하고, 다른 한편은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하며 배려란 것을 하며 이렇게까지 해주는 데 왜 그런 인권운동을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해 반박하며 자신의 의견을 쓴 글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사람의 입장은 백인들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무엇을 하는가 마는가를 규정한다면 급진적이고 과격한 반대보다는 조용한 반대가 더 나쁘다고 그랬다.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하며 자유를 주겠다는 것에 반대한다고.
* 상대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고 자신의 시각으로만 자신의 입장으로만 판단하여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이 먼저 깨어져야 하는 구나.
155. 하나에게 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마이클 주장만을 수용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나는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마이클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이 나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희생과 포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통제 앞에 취약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않는 전형적인 '착한 여자'를 또 다시 대면하였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의 오랜 고민과 분투가 이 대목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음을 본 나는 하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의 필요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마이클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니?"
137.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과 생활해 보면 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엉뚱한 데 신경 쓰느라 일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 과잉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이유는 순리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 아, 아름답다.
사부님과 함께한 시간이 이러했지. 살롱9의 후반부의 시간이 이러했지.
138. 내가 변하고 성장함에 따라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시각이 달라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파생되어 나오고 이야기도 나도 계속 변해 가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옛이야기들은 수백 년 수천 년 계속 살아가나 보다.
138.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한 기차역 플랫폼이다.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들을 전송하기 위해 나온 가족들로 붐빈다.기차에서 가까운 맨 앞줄에 선, 쉰 살가량 되어 보이는 여인이 남편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초조해 하며 서 있다. 바로 뒤에 있던 젊은 여인이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청한다. "당신은 결혼 생활을 한 지 오래 되었지만 저는 지난주에 결혼했어요.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야 하니 나에게 앞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오십대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결혼에 관한 한 나도 초년생이오. 결혼이란 넘고 넘어야 할 수많은 계단이 있는데 매 계단마다 나는 초년생이 되고 새댁은 단지 그 첫번째 계단에 서 있을 뿐이라오."
* 가족...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것 중에서.
강사가 자기가 첫 애 낳고 무척 힘들었단다.애는 처음 키워봐서. 둘째를 낳았을 때는 .....'세상에는 둘째는 또 처음 키워보잖아요. 힘들었어요.'라고. 맞다. 우리는 매번 자신 앞에 계단에 놓여있고, 그것은 초년생이 겪는 것과 같다.
좀더 수월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어.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고, 새로운 관계가 되고, 그 아이는 나이를 먹고, 자신도 나이를 먹고 매번 상황이 바뀌어 간다.
선녀와 나무꾼도 매번 그리했겠지. 우리 어머니 선녀와 아버지 나무꾼은 자식을 넷 낳아 기를 때까지 그 긴 세월 7년, 8년, 9년, 10년이 될 때까지도 자신과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어.
139. 날개옷 상실이 결혼으로 연결되고 날개옷을 되찾는 것이 결혼에 위협이 되는 선녀의 딜레마에 이야기를 시작하자.
140. 제주 전통에서 혼례복과 호상복이 같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징적으로 혼례는 죽음의 의례이다. 물론 신화적 상상력이 살이 있던 옛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오늘날 혼례와 장례를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이토록 힘겹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41. 목사, 신부, 랍비가 모여서 언제부터 사람의 생명이 시작되는가 하는 질문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신부는 수정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라고 말한다. 목사는 수정 후 완전히 착상이 된 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랍비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고 난 뒤 비로소 생명은 시작된다고.
142.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진정한 희생이 아닐 것이다. 심청처럼 강요된 희생과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희생이 두렵다. 심청 같은 주어진 이미지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이것을 희생이라 착각하고 받아들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희생이란 더 큰 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현재의 의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체념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 것이다. 관계를 위해서든 자기를 위해서든 자발적으로 선택한 희생은 용기이고 자부심이고 사랑이다.
142. 이 친구의 또 다른 두려움은 배우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내면의 필요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이었다. 결혼 생활에서 이런 부담은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결혼 생활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다.
143. 날개옷을 상실하고 혼인하는 선녀의 이미지와 주고 또 주는 사과나무 이미지가 겹쳐진다. 주고 또 주다가 죽은 나무나, 선녀다움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선녀의 모습에는 쓸쓸함과 허무만 남는다. 이것이 선녀가 하늘로 되돌아간 진짜 이유가 아닐까? 선녀다웠던 옛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곳, 그리고 선녀의 힘을 새롭게 채울 수 있는 곳이 하늘나라였을 테니 말이다.
144. 자기 탐구에 게으르지 않은 깊은 영혼의 소유자들이 형성하는 관계는 아름답다. 개인의 영혼이 자유로울수록 친밀함도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149. 위의 사례는 서양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창조한 그들만의 독특한 결혼 공간이다. 흔히 꿈의 집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노어 홀에 따르면, 꿈의 집이란 지루함과 고독과 백일몽이 허용되는 꿈을 꿀 수 있는 집을 뜻한다.꿈꾸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집에 살면, 충족되지 않는 꿈과 환상을 집 밖에서 찾아 헤매게 된다. 상상과 꿈과 환상을 허용하는,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한다는 기대만으로도 막막하게 느껴지는 결혼에 대한 새 꿈을 꾸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옳소. 이런 이야기를 남자와 할 수 있다면 결혼 전에 결혼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꿈이 죽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마음에 들었던 남자와 더 이상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어리석음, 이제는 두려워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볼 수 있겠다.
5장. 영원한 처녀가 되를 예술 _ 공주와 바보 이반
155. 손잡고 걷는 것이 수줍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가 네 명이나 태어났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꿈속에 오이 밭에 가셨다가 태기가 있으셨던 건 아닌지.
* 표현이 재미있다. 우리 조상님들과 부모세대는 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린다.
155. 러시아 옛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동원하는 이유는 성이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라는 진실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몸이 머리만큼 자유롭지 못해서 억울하다. 몸의 해방 없이 정신의 해방이 없다는 사실을 믿기에 마사지도 배우고 태극권도 배우고 요가도 하지만, 섹스에 관한 한 솔직하지도 편안하지도 못하니, 나는 모과 정신이 분리되어 통합되지 않은 인간이다.
156. 공주가 우울하다는 말은 왕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대표적이 여성성이 생산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우울이란 본질적으로 창조와 관계가 있어서 우울하면 창조를 못하고,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울하다고 표현한다. 심 봉사에게서 살펴보았듯이 우울이란 모든 것이 가라앉아 생명의 기운이 흐르지 않고 새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 암울하고 정체된 상태다.
158. 바보란 대개 왕국 중앙에서 가장 먼 곳에서 태어난다. 혜택을 적게 받는 계층이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재산도 물려받지 못한다. 그래서 기존의 가치나 예속되지 않은 절대 순수가 이들 안에서 보호된다. 이들은 운명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되, 온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조해야 한다. 자연히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시련은 예외 없이 뒤따른다. 마지막에는 영웅이 되든 왕이 되든 새 왕국을 건설하고 새 시대를 연다. 이들을 바보라 부르는 이유는 기존의 틀에 갇힌 사람들이 이들의 천재성을 몰라보기 때문이다. 이 바보와 대조적인 사람들이 바로 공주를 웃게 만들려다 실패하고 죽어간 무수한 선남들이다.
* 큰바보 노무현 대통령. 바보 조르바, 바보 예수. 바보 임꺽정, 바보 장성백.
*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160. 구석기초기부터 그리스, 몰타, 아일랜드, 발트, 슬래브 등 광범한 지여게서 등장하는 ‘여신상’에는 석삼 자(三)같은 모양의 줄 세 개가 장식되어 있다. 여신 전통을 발굴하고 그 상징을 해석해낸 고고학자 마리아 김부타스는 이 상징을 생명 에너지의 기본적 세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원천은 생명을 주는 어머니의 세 가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삼신이란 단어와 이런 해석을 연결시키는 것이 성급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류 초기부터 생명을 관장하는 여신과 숫자 3의 결합이 빈번했던 것은 사실이다.
163. 중세 교부 하면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사막에서 온 몸을 가리는 긴 수도복을 입고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들의 일기장에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낮에 그토록 열심히 기도와 수련에 정진했는데 밤만 되면 요망하게도 이런 야한 꿈을 꾸게 되니 이 제거할 수 없는 질긴 욕망을 어찌하오리까”라는 탄식조로 시작된다. 그러나 내 꿈 선생님 제러미 테일러는 이것에 대해 이들의 낮 동안의 기도 생활이 너무나 충만하고 행복했음을 무의식이 확인해주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163. 실제로 나는 수도원 안에서 워크숍을 할 때 수강생들로부터 가장 야한 꿈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한다. 섹스 꿈은 구도자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지향하는 영적 합일, 즉 신과의 하나 됨의 체험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성적으로 억압되어 섹스를 갈망하는 사람의 꿈은 이와 전혀 다르다.)
165. 험난한 14년의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여정은 남편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고, 페넬로페는 간절히 기다려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아내에게 자기가 두 사람을 위해 어떻게 침상을 만들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세월이 변해 얼굴은 잊어버려도 몸의 기억은 남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깊은 부부의 성찬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데 우리는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
167. 하늘에서 뿌려진 씨앗을 바다의 자궁이 보듬어 잉태한 여신은 출생의 순간부터 완전히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스의 대부분의 여신들이 처음부터 다 자란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남신들은 아기로 태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풍성함과 우아함과 생명의 기운을 물씬 뿜어내는 여신 아프로디테. 그 잉태의 비밀에서 드러나듯 여신은 천상적 요소인 아프로디테 우라니아(Aphrodite Urania)와 땅적 요소인 아프로디테 판데모스(Aphrodite Pandemos)의 두 특질을 동시에 지닌다.
168. 이 여신의 꽃도 하나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잘 알고 있듯이 타오르는 빨간 장미가 아프로디테의 꽃이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는 야생화 또한 여신의 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고도로 정제된 아름다움 모두 여신의 특질인 것이다.
168. 두 대극적인 요소인 천상의 송고함과 땅적인 비옥함, 성과 속, 야성과 문명, 영과 육이 한 몸에 통합된 여신이 아프로디테다. 달콤함의 원천인 꿀벌이 그녀의 곤충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과 살살 녹아내릴 듯한 달콤함, 장난기 서린 포옹과 키스, 흥겨운 놀이는 모두 여신의 것이다. 아기 같은 얼굴에서 드러나는 티 없는 천진함과 부드러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공기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가벼움과 유머가 아프로디테의 공간에 진동한다.들꽃같이 싱그러운 냄새와 자연스런 접촉이 주는 따사로운 감촉, 가벼워진 공기와 말의 유희와 예술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순수한 기쁨이 바로 여신의 선물이다.
* 이 부분을 읽는데 나는 너무 행복했다. 풍성함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행복하다.
168. 끝없이 순수한 기쁨의 샘물이 솟는 아프로디테의 비결 하나는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그녀의 처녀성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여신은 자기가 태어난 사이프러스 섬으로 돌아가 의례를 통해 처녀성을 회복한다. 갓 태어난 여신처럼 대지에도 싱그러운 에너지와 생명의 기운이 퍼져나간다.
* 이런 상징을 쓰는 이야기 몇 가지.
그러니까 여신과 그의 사랑하는 자가 함께 있을 때, 섬은 만물이 다 새롭게 태어나고 꽃을 피운다. 물론 물고기들도 번성하고 또 어민들은 만선이다. – 서문다이의 만화 끝섬에 사는 이계로 넘나들었던 물의 요정 같은 여자 이야기가 Rure(루어)에서도 다룬다
신이 사랑을 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사랑이 온 세계에 퍼진다는 발상은 루머 뿐 아니라 꽃밭이나 천상을 묘사하는 것에 많이 등장한다.
* '그가 태어났을 때 무지개가 쓰고, 온 세상에 향기가 가득했다.'라는 우리의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의 탄생 이야기가 대지에 싱그러운 에너지가 가득하다라는 표현이구나.
아기의 탄생 때에 큰 별이 떴다라는 표현도 비슷한 상징같다.
168. 처녀라는 상징은 자신의 성이 온전히 자기 것이란 뜻이다. 일생 수많은 섹스를 하지만 매번 고유한 느낌으로 다가오듯, 매 순간 처음의 떨림과 용기와 두려움을 간직하는 것, 이런 ‘영원한 처음’이 바로 아프로디테의 마술이다. …….처녀성이란 육체 안에 가두어 두어야 할 잠금장치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심리 안에서 끝없이 재생해야 할 새로움이다.
* 처녀성이 단 한번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새로 태어나는 풍성함이라면 ….. 진짜 신의 속성이네. ‘생명’ 그 자체의 속성이네.
169. 제우스가 천상과 지상을 통틀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우주에서 가장 추하고 일그러지고 변형된 외모를 가진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하라고 명하자 여신은 이 결혼을 받아들인다. 대신 우주에서 가장 섹시한 남신 아레스를 애인으로 택한다. 이것이 그녀의 방식이다.
170. 그 사이 두 여자와 두 장소를 왔다 갔다 하던 남편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사진 속의 아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그는 죄책감에 짓눌리고 가슴이 양분되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아내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 놓는다.고백을 들은 아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자신이 너무 힘들고 가슴이 아픈 이유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 어제 본 드라마 다모(2004년 MBC 드라마)에서 장성백은 채옥을 만나 산채에 살게 되면서 칼을 놓고 싶었다고 했다. 전에 그가 분노로 칼을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채옥과 함께 오래도록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장성백은 채옥이 산채에 들어온 이유를 안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왔건 거기서는 다 어울려 살 수 있을거라 여겼다. 그러나 채옥에게는 (이분법적으로) 법을 위배하는 장성백 일당은 악의 무리였고 같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회적 규율이 굴레가 되어 옥죄어 가슴이 깨져버리는구나.
* 법, 관습, 타인과 함께 살 때 지켜야할 규칙..... 이런 것은 참 편리할 때가 있는데, 가슴이 시키는 일을 못따라 가는 때가 많아.
171. 아프로디테의 특징이 어떤 형태로든 존중되지 않는 환경은 추하다. 문화는 빈곤하고 집단 심리는 우울증에 빠진다.역으로 우울한 사람은 절대 아름다움을 위해 더 이상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다. 심 봉사의 집처럼 몸도 마음도 주변도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흔히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를 화려한 보석이나 값비싼 명품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해다. 규격화된 몸 사이즈와 유행에 민감한 패션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더욱 큰 오해다.
171. 아프로디테적 특성을 존중하는 사람과 공간의 문화는 쾌적하고 평화롭고 여유롭다. 일상의 삶을 윤택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채워 가는 것이 바로 여신의 예술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집단의 열저잉 곧 문화의 질을 결정한다.
172. 아름다움이 강렬하면 숨을 멈추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면서 세상은 전혀 다른 향기로 진동하였다"라는 표현처럼 이때쯤 내 안에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이 많이 결린 것 같다.
173. 내가 아프로디테의 원형을 초대한 이유는 성에 관한 온전한 진실을 말해 줄 필요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생명이 지니는 본연의 힘인 성의 신비와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우리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성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화와 이미지가 우리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6장. 계모의 주술에서 벗어나라 - 연이와 버들 소년
178. 계모는 한결같이 사악하고 모질고 잔인하고 가혹하고 교활하고 파괴적이다. 계모라는 원형적 여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원형은 보편적이다. 원형적인 여성이 보여 주는 특질이라면 모든 여성에게 예외 없이 내재된 요소인 것이다. 결코 부인할 수도 제거할 수 없는 여성성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면 우리는 내면의 이런 어두운 측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까?
179. 이러한 질문들을 성찰해 보기 위해 우리 각자 안에 있는 가장 만나고 싶지 않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여성을 우선 표면으로 끌어내 보자.
* 이책에 나오는 질문이나 제안들이 나는 참 좋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180. 상징적으로 계모란 무슨 의미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리감이다. 나(자아)와 직접 연결이 되지 않은 대상, 새롭게 이식되어 내 공간 안으로 들어온 대상이다. 나와 관계도 없는 사람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과 같이 의식의 공간 안에 새롭게 들어온, 부인할 수도 냋ㄹ 수도 없는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공통적으로 공격적이고 조직적이고 치밀하고 압도덕인 힘을 지닌다. 감당하기 어렵고 사악하고 파괴적이다.
181. 이름은 자신의 특징, 개성, 고유함을 집약하고 그 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여 운명과도 직결된다. 그러므로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자기'라는 개체의 형성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연이, 콩쥐, 장화나 홍련 같이 이름이 구체화된 여성, 이야기의 주인공을 자아(ego)로 보고, 계모를 주인공이 의식으로 통합하지 못한 반인간적이고 본능적이고 초월적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의식의 요소로 볼 수 있다.
* 그저 계모라 불리는 이름 없는 여인들
182. 친자식에게만 '좋은' 어머니라는 사실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제한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자기애이다. 지고지순한 어머니의 사랑이나 무조건적 사랑의 신호에 생채기를 내는 말이지만, 자기애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한정된 사랑을 보여주는 어머니들이 의외로 많다.
183. 신화의 납치, 강간을 이야기할 때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에게 질문했다. "신화의 납치와 강간의 이미지에 대해 공부하면서 삶에서 시련을 피해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힐먼의 대답은 "아이다"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발밑으로 난, 깍아지라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줄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당신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184. 계모 주위에는 항상 찬 기운이 냉랭하게 흐른다. 계모로 인해 엄동설한에 바깥으로 내몰린 연이는 살을 에는 매서운 칼바람에 노출된다. 콩쥐에게는 연이처럼 엄동설한 한파가 닥치지는 않지만 '찬 기운이 살살 돈다'는 표현처럼 장시간 지속적인 냉기가 에워싼다.
*계모를 에워싸는 냉기
184. 엄동설한에 여름옷을 입고 산길을 헤매는 연이의 이미지에 처절한 외로움이 묻어나온다. ....... 외로움이란 어머니, 본향, 궁극적인 회귀의 장소, 영혼의 집과 멀어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어머니의 보살핌이나 보호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은유적으로 말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188. "여성은 생산하지 않으면 우울하다." 우울에서 창의적 표현 즉 생산이 안되는지, 생산을 할 수 없어서 우울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순간 감정의 흐름이 정지되면서 창의적인 에머지도 생명의 기운도 동시에 얼어붙는다. 이반 이야기의 공주처럼 감정의 물꼬가 터지지 않는 한 몸도 마음도 병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적 활동은 불가능하다.
189. 극단적으로 냉정한 사람은 갑자기 분노를 삭이면서 곧 바로 찬 얼음처럼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계모의 불길은 버들과 버들의 세계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린다. 이 파괴적은 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190. 분노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타당하지도 타당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191.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기 내면이 진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런 여성들은 "착한 여자는 절대 화내면 안 돼"라는, 사회가 내리는 처방전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집단적 준거를 수용하고 답습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무서운 진실을 말하자면, 이런 여성이 삼킨 분노는 마치 잉태한 아기처럼 무의식의 자궁에서 새록새록 자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성이 하루 아침에 나쁜 여자로 둔갑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이치다.
192.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과적으로 표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효과 없는 분노의 표출은 상대로 하여금 방어벽을 설치하게 하여 문제의 본질에서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효과적이지 않는 분노의 표출은 문제의 본질에서 등을 돌리게 만드는 방어벽을 만들 뿐이다.
193. 우리가 분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분노가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기존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한다. ..... 분노는 무조건 억눌러야 하거나 무분별하게 난사할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분노를 다루는 법을 훈현해야 하는 것이다.
* 강한 강정적인 동요는 변화를 이끈다. 특히나 분노는 변화를 요구하는 감정이다. 적극적인 액션을 요하지.
193. 우리는 먼저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누가 무엇에 책임이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화가 날 때 남을 공격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대하지 않고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지 각자 자문해 보자. 이런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분노는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분노를 다루는 실용적인 방법
194. 분노는 마른 장작에 지친 불길처럼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사그라진다. 반면 증오는 훨씬 지속적이고 사악하다. 연이를 끝없이 구박하고 상처 입히고 해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짜내고 뒤를 밟는 감정은 증오다.
증오의 기저에는 공격성과 파괴력이 강하게 자리한다. 그리고 공격 대상에 대해셔는 열정적이다.
194. 애정이 결핍되었거나 자신이 충분한 사랑이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을 드러내기 쉽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취약한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감이 깊어진다.
197. 한국에 돌아와서 대책 없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너무나 무의식적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당하는 입장에선 정말 억울하다. 상대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고 그 질투의 부리가 무언지 보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매번 힘들다. 이 감정은 너무나 무의식적이라 정착 질투하는 본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얼마나 잔인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 '맙소사'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하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똥을 쌀거다'라는 말을 해서 웃음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현명한 방법인 듯 하다. 놀랄일에 놀라고, 놀릴만한 일은 놀리며 가볍게 사는 게 필요한 듯 하다.
197. 흔히들 질투를 사랑의 필요악처럼 다루지만 엄밀히 말해서 힘과 사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197. 관계에서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면, 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쾌락만 충족하는 관계가 지속되거나 상대이 지위나 경제력 때문에 성립되는 관계라면 그런 관계는 그저 자기 만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이기적인 관계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축소하고 조악하게 만들뿐이다.
198. 질투는 자기가 가진 것을 타인이 앗아갈까 염려하는 두려움이라면, 시기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해 내는 욕심이다. 자기에겐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행복, 지혜, 아름다움, 부, 젊음, 친밀함 등을 부러워하는 감정이므로 사실 상당 부분은 자기연민이 차지한다.
198. 질투가 강한 살마이 보이는 또 다른 특성은 강한 보수성이다. 자기 안에 있는 공허함과 의심으로 가득한 자리를 지탱해줄 절대부동의 견고한 기준과 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연성을 수용할 여유가 없으며 무정형, 무질서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자유 대신 배타적인 소유를 강조한다.
199. 시기와 질투는 보수성뿐 아니라 이기심과도 연결되어 있다.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무조건 배척한다는 뜻이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가족, 내 동문, 내 동향, 내 그룹 등 '내....'라는 자아 중심의 그룹이 무리지어 남과 구분되는 '우리'를 만들어 힘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집단 이기주의의 근원 또한 계모가 보여 주는, 개인 안에 파괴된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가능성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199. 지나치게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향 또는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시기와 질투가 강한 이기적인 사람들은 온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거나 자기만을 위하여 돌아가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관심은 정작 늘 타인을 향해 있다. 타인이 가진 것을 보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들고, 타인에게 자기 것을 빼앗기기 않기 위해 타인을 관찰하느라 자기 에너지를 고갈한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에게 남이 시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200. 미국 남서부 파이우테(Paiute) 종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부락에 신통력을 지닌 샤먼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신출귀몰한 힘을 사람을 치유하는 데 쓰지 않고 악용하여 파괴를 일삼았다. 이 샤먼의 이름은 '돌로 된 셔츠를 입은 사람'이다. 그는 동굴에 살면서 사람을 납치하고 재물을 빼앗는 등 온갖 파괴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샤먼을 해칠 엄두를 못 냈다. 신비한 영양이 돌오 된 셔츠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동굴로 접븐하지 못한 것이다. 이 영양의 몸은 털로 뒤덮여 있는데, 털 끝 하나하나마다 눈이 달려 있다.
돌로 된 셔츠를 입은 사람이란, 가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는 표현의 은유이다. 털끝마다 눈이 달리 ㄴ영양이 이 인물을 지킨다는 말으 이 샤먼이 항상 긴장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늘 주변을 경계했다는 뜻이다. 눈의 숫자만큼 의심도 많고, 이 의심의 눈들이 자기에게 상처 될 일을 찾느라 분주하다. 자연히 다른 사람의 의도나 행동을 끝없이 오해하고 곡해한다.
200. 돌로 된 셔츠는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나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앵혈한 연상시키지만, 한편 그는 터무니없는 곳에서 눈물의 바다를 연출하는 과장된 감상주의자이기도 하다.
7장. 산골 오두막에는 왜 할머니가 살고 있었을까? - 머리 아홉 달린 거인
207. 우리는 이 할머니가 계곡에서 무를 씨고 있는 여인과 동일한 인물임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 사람에 깃든 두 가지 영혼이란 표현처럼, 무를 씻는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산골 오두막집 나이 많은 할머니의 또 다른 얼굴이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지혜의 여인이자 동시에 가장 싱그러운 젊음과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 접근하기 어려운 무서운 얼굴의 소유자이가 음식을 주는 따사로운 여인, 생명을 부여할 수도 생명을 거두어 갈 수도 있응 이 두얼굴이 모든 여성이 지니는 본질적인 역설의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11. 그리스 여신 헤카테의 경우 구체적인 지형 묘사가 없지만, 두 길 혹은 세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데, 신화적 상상력이 살아 잇는 사람들에게 세 길이 만나는 지점은 항상 운명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자 중요한 결정의 지점이며, 치유의 비밀이 숨겨진 곳이기도 하다. 또 교차로는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지점으로, 한시적 세계와 무한의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리스 인들은 교차로에 도달하면 미지이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돌을 놓아 헤카테의 자비를 기원했다고 한다.
211. 러시아와 동류럽에 널리 알려진 바바야가는 울창한 숲속에 산다. 대낮에도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깊고 깊은 숲은 낮과 밤이라는 익숙한 자연의 리듬이 사라지는 곳이며 사람의 흔적이 끊어지는 곳이고 불확실과 불예측의 장소이고 더두움의 두깨만큼이나 숨어 있는 깊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213. 바바야가, 헤카데, 라 로바, 산골 오두막의 태곳적 할머니 또한 역설적이다. 오두막에 당도한 남자에게 할머니는 인간이 발 들이지 않아야 할 땅으로 들어온 이유부터 묻는다. 일반적인 신화의 규칙대로라면, 이때 분명한 이유가 없거나 이율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할머니에게 목숨을 빼앗긴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거나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슬쩍 맛을 보기엔 이 지하세계, 어두움의 세계, 이 세상 너머의 세계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질문은 지하 세계를 탐험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이 세계를 탐험할 만큼 자아가 강한지 묻는 것이다. 야생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213. 미국의 농부시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시
"어두움을 알기 위해서"
빛을 가지고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국
빛을 아는 것이다.
어두움을 알기 위해서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라.
빛 없이 가서
더두움
또한
꽃을 피우고 노래한다는 것을
발견하라......
214. 어두움을 이해하려면 빛을 감지하는 렌즈가 아니라 어두움에 반응하는 전혀 새로운 렌즈가 필요하다. 깜깜한 밤에 잠이 들면 광활한 꿈의 세계가 환하게 열리듯, 빛으로 상징되는 의식의 눈을 포기할 때 더 큰 비전이 열리고 어두움이 스스로 그 신비를 드러낸다.
216. 우리에게는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이라는 힘이 있고, 보이지 않는 우주의 그물망을 가시화해 주는 오라클(신탁)이 있고 또 밤마다 저절로 열리는 꿈의 세계가 있다. 이 외에도 춤이나 악기 연구, 노래, 그림, 문학, 열정적인 사랑, 명상, 기도 등 평소의 의식 상태를 넘어서게 하는 모든 활동이 이 어두움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219. 삶이 지워 준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생존을 위해 애쓰다 보니 여럭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등 수많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으나 결정적으로 원인은 자신이 진정으로 갈감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고 양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문하라. "내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잃어버린 나의 꿈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나는 나이 본능적 목소리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내 생명을 되찾을 수 있을까?"
220. 꿈에서 상처 입은 동물이나 주검의 등장은 곧 자신의 본능 세계의 상처와 죽음을 의미한다.
* 꿈에서 죽음 때문에 무서웠던 것 3번 모두 죽음과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였다.
-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꾼 꿈: 갑자가 뭐가 튀어나와서 주변의 사람을 마구 목을 베어 죽였다. 목이 확 베어서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리치고 도망가고 그랬다.
- 졸업여행 중에 꾼 꿈 : 아버지인가, 누군가가 카트를 밀고 가는데 그 안에 죽은 사람이 축 늘어져 있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거리는 음침하고 사람들이 어둡고,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피색만 기억한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담아서 어디로 옮겼다. 나는 죽음의 거리에 서 있었다.
- 남동생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상심하셨고, 여동생과는 다른 일로 다투고... : 꿈속에서 나는 여동생을 목졸라 죽이고 있었고, 이미 죽어서 쓰러진(내가 죽인)남동생이 살아나서 둘이서 나를 죽일 것 같은 환각에 시달리면서 동생 목을 조르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그렇게 동생들을 죽이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그러면서 내가 죽을까 두려워했다. 손이 힘이 아주 많이 들었다. 꿈에 내 손으로 힘을 주어 누군가를 죽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21. 직관은 결코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자연이 그 변화에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듯 말이다. 늘 호기심을 가지라. 그리고 나면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내면의 비전을 보고, 내면의 냄새를 맡고, 내면의 느낌을 감지하고, 내면의 진실에 따라 행동하라. 그리고 끝없이 질문하라.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222. 현대인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가장 쉽고 안전하면서 효과적인 방법 하나가 꿈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222. "신이 매일 밤 우리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데도 우리는 봉투도 뜯어 보지 않고 버린다." 해석하지 않는 꿈은 읽지도 않고 던져 버리는 편지와 같다.
223. 꿈은 신화와 마찬가기로 은유와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셉 켐벨은 '꿈은 개인의 신화이고 신화는 집단의 꿈이다'라고 했다. 신화와 꿈은 같은 언어로 표현된다.
꿈은, 신화와 마찬가지지만, 이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의미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226.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꿈이 미래에 대한 예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측, 예언, 사전 결정 등은 운명론적 논쟁을 불러일으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진행되지 않는 미래가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꿈은 분명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 예감을 가지게 한다. 꿈의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낮동안의 시간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일직선상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230. 혹한을 피해 가축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날 초지를 찾아 길을 떠나는 카라반에 대한 영화였다. 새로 새라반을 인도하게된 젊은 지도자가 경륜과 연륜이 쌓인 노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앞에 두 길이 펼쳐질 때는 힘든 길을 선택하라."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청혼을 받아들여 유목 생활을 청산해볼까 하던 환상은 더 이상 내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내부의 관심과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이 두 세계가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과학적, 합리적인 세계관이 우리를 끝없이 이런 체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이런 비과학적,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체험할 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232. 잃어버린 복음서라는 도마 복음에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면 그 드러낸 것이 자신을 구원한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면 그 드러내지 못한 것이 자신을 파괴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여 고유한 선물을 활짝 드러내는 것이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은 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에 대해 무지하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한다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파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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