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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9일 10시 32분 등록

마지막 편지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구본형

2013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편지글들을 모아 [마지막 편지]로 출판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월간중앙>에 실렸던 구본형의 편지연재했던 글들을 초고로 삼아 편집한 것이다.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게. 내게 나의 독자는 이름 없는 대중이 아니었네. 그들이 곧 나였고 내가 그들이었네. 그들과 나는 어제보다 빛나는 오늘을 살고자 매일 맞이하는 일상에서 함께했던 친구였다네. 그들에게 고맙다며 포옹으로 인사하고 싶네. 그들로 인해 나의 삶은 한 편의 시가 되었네.”

저자가 마지막 남긴 인사라고 한다.

 

저자는 가장 예쁜 종이에 가장 아끼는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썼다고 한다. 11기 시작하며 구본형 저자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만 있었는데 이 편지글을 보면서 ~ 나도 편지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글은 내가 저자가 되어 제목에 해당되는 주위사람들을 생각하며 순서와는 다르게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나만의 글들을 같이 쓰려고 한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여는 편지

하루에 30분 혹은 한 시간 정도의 책 읽기는 네 생각을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다. 밑줄을 쳐가며 읽어라. 애착을 갖게 될 것이다. ... 무엇을 아주 잘한다는 것은 이 있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는 내가되기를 기원한다.” (6)

저자가 딸에게 보낸 많은 편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많은 편지 중에 이 편지를 고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편지는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냄새를 간직한 채로.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 보면 그때의 저로 돌아갑니다. (6)

편지뿐 만아니라 같이 본 책도 그렇더라.

 

4. 결혼을 앞둔 J를 위하여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읽은 편지다. 변경연 11기 동기 중 결혼을 앞둔 J가 있어서 이기도 하고 단톡방에서 농담처럼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했던 또 다른 결혼한 동기의 말이 생각나서이다. 내가 이 글을 읽고 나서 해줄 말이 생각날까 싶기도 하다.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계절이 바로 봄이지. 그러나 봄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단명한 아쉬움에 있다. (49)

하루가 저무는 속도가 화살 같고, 일 년이 촌음 같아, 결국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아야만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네. (49)

많이들 하는 얘기다. ‘오늘을 마지막처럼하지만 막상 하루가 시작되면 잊어버리고 그저 하루를 살게 된다.

모든 상처는 인생의 약이 되나니,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때조차, 그 순간을 지나는 상흔과 자취가 남는 것이니,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살아 있음이니. (51)

인간은 결국 두 가지 종류로 대별된다고 생각하네. 한 종류의 인간은 실재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적 인간이라네. ...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신성한 잉여의 아름다움이라는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라네. (52)

저자의 이분법에 난 동의하지 못하겠다. 복잡 미묘한 하물며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 좀 더 그런 경향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처한다. 모든 상황에서 본능적인 동물적 인간이라면 그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자연은 실용적이지 않아. 자연은 넘쳐흐른다네. 그때 장관을 이루게 되지. 역설적이게도 필요를 넘어서는 잉여, 그것이 바로 문화라고 생각하네. (53)

인간은 실제 필요에 충실한 동물적 인간성과 잉여의 신성한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성을 한 몸 안에 모두 가지고 있다네. (53)

이런... 위의 대별은 왜 한 거지.

결혼은 이 두 가지 속성이 생활의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부딪히고 조화하는 삶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네. (53)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네. 하나는 싸움을 잘하라는 것이네. (53)

이건 나와 생각이 같다.

하나가 늘 피하고 양보하고 눌러두면, 다른 사람에게는 편할지 몰라도 참는 사람에게는 질곡과 억압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네. 결혼이 아니라네. (53)

갈등이 싫어서 참고 맞춰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엔 서로에게 좋지 않게 된다.

나는 이 불협화음을 튜닝이라고 부른다네. (54)

많이 싸우시게. 그러나 악기를 거칠게 다루어서는 안 되네. (54)

난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와는 안 맞는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각자의 아킬레스 건은 건들지 마라.” 이게 더 나에겐 편하다.

또 하나는 결혼을 통해 서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네. 종종 결혼을 자유의 억압과 축소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네.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책임과 의무로 양 어깨를 누르는 참담함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네. (54)

아마 다른 동기가 이런 의미에서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했을 거다. 남자들이 뭘 얼마나 참는다고 그런 걸까. 책임감은 더 클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자가 남자에 비하면 정말 많이 참으며 산다. 직장에서, 집에서, 시댁에서.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해내는 것이라네. (54)

혼자보다 둘이 나으려면 서로의 마음을 알아줘야하고 힘들 땐 서로에게 힘이 돼야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싸움도 소통의 하나다. 소통이 단절되면 오해가 생기고 섭섭하고 그러다 점점 멀어진다. 감정을 나누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은 쇼윈도 부부가 있다.

 

6. 제발 떠나게, 일밖에 모르는 M에게

이 편지는 남편을 생각하며 골랐다. 농담처럼 남편을 워커홀릭이라 부른다. 본인도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일이 즐겁단다. 이 편지의 제목을 보는 순간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나는 바로 그 공항에서 세 종류의 여행객들을 만나게 되었다네. 한 종류의 여행객은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고 여행을 나섬직한 초로의 부부였지. (71)

그런데 또 한 그룹의 여행자들은 전혀 달랐다네. 그들은 20대의 청년 둘이었지. (72)

또 다른 여행객인 나, 25년 전 나는 비즈니스로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지. ... 내 돈 한 푼 쓰지 않는 여행이지만 공짜에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듯이 출장은 여행이 아니라네. 나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네. (72)

난 세 그룹에 속하지 않는 다른 부류다. 중년의 약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진, 그러나 몸은 좀 힘든 여행객이 아닐까.

정말 나를 놀라게 하여 여행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초로의 부부였다네. ... 이미 육체가 모험을 거부하기 때문이네. (73)

여행의 맛은 육체를 마음대로 굴릴 수 있어야 그 맛을 십분 향유할 수 있다네. 몇 시간의 여정에 피곤함을 느끼고, 시차 적응 때문에 며칠간의 숙면을 희생한 것에 대해 불편해하며, 깨끗한 호텔을 선호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모험의 정신을 잃어버린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네. (73)

하긴 20대엔 텐트에서 자서 온몸이 아파도 여행자체로 즐거웠었는데, 이젠 편한 여행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한마디로 여행이란 젊디젊은 뛰는 흥분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자신이 확장되어가는 짜릿함을 즐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 (73)

한번 마음잡고 제대로 된 여행과 휴식을 즐겨보라는 권유라네. (74)

남편에게도 이야기 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여행 말고 본인만을 위한 여행을 해보라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하더니, 가까운 산이라도 혼자 다녀보려고 하더라. 다행이다.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젊음을 쓰고, 아니 들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쓰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네. 그때그때 미루지 말고, 그때의 정신으로, 그 순간 인생에 찾아든 기쁨을 추구하라는 말이네. (74)

여행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를 만나는 것이라네. (74)

그저 스치는 생각으로 저런 곳에 저런 집을 지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네. 여행을 하다보면 늘 드는 그런 생각 아닌가? (75)

2월에 지인이 남해로 터전을 옮겨 식당을 오픈했다. 겸사겸사 다녀왔는데 거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을 힘들어 한다. 나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데 못살 곳이 어디냐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네. (75)

우리 부부는 집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다. 크기는 물론이고 소유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아직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 뿐이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는 아파트가 두 채인데 우린 하나도 없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그때 열렸던 것이라네. (75)

늙어서 놀아보니 그 놀이가 기대한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네. (76)

그 나이 때에 맞는 놀이가 있는 거지.

나를 모르는 곳에서 전혀 일상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 정녕 살아보고 싶은 그 모습으로, 남들이 일하는 벌건 대낮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조금 튀는 옷을 입고 선글라스 속의 눈초리로 지나가는 예쁜 여인에게 미소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76)

저자는 벌건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에 타인의 눈초리가 신경 쓰이는 시대에 살아서 그것에 대한 자유가 큰가보다. 이제 근무형태는 다양해져서, 평일에 휴가를 쓰는 사람도 있어서 별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과는 또 다르긴 하다.

그러니 올해는 제발 그럴듯한 여행을 떠나도록 하게. (76)

매년 두 번의 여행,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한 달도 못 되는 선물을 내게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77)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겠는가? (77)

그렇지. 우선순위지. 여행이나 여유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고 느끼는 거지.

그저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즐길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돌아다니는 것이 나이에 어울리는 현명한 처세 아니냐고. ... 그것도 맞네. 나이가 들어서는 그때에 어울리는 점잖은 여행이 있게 마련이지. (77)

나는 저자의 글에서 자연스러운 여유와 자유로움보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변화에 너무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그 낡은 자네에서 벗어나 50년 만에 새로운 제3의 인생을 획책해보게. (78)

어려서 우연히 형성된 그것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일관성이 되어버린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78)

그리고 저자가 찾게 된 변화된 삶에 너무 흠취한 것 같다.

 

11. 좋은 사장이 되고픈 H에게

세 번째 읽은 편지, 조만간 복합문화공간을 열고 경영을 하게 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고른 편지다.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을 재미로 하자.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레이비드 로렌스(132)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전쟁의 와중에도 놓아두고 나누는 정신을 키운다면 멋지다 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132)

가장 많은 삶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인생에서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133)

그들은 기부라는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 계몽된 부자들에게는 좋은 집과 멋진 자동차, 명품 가방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기부와 나눔이 그들의 특권에 대한 새로운 자부심을 보여줄 명품이 된 것입니다. (133)

이게 선진사회 시민의 모습이다.

그들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선 환경보전과 인권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에게 성공을 안겨준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134)

내가 만난 기업가들 중에서 가장 진정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134)

나도 진정성을 귀하게 여긴다. 강사로써 아무리 말을 잘하고 내용이 좋다고 해도 진정성이 없으면 청중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진정성이 눈에 보이지 않아 모를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느껴진다.

가장 초보적 단계의 기업은 순수한 자본주의적 원칙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경쟁이 지배 원리입니다. (135)

그다음 단계는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을 나누는 기업입니다. (135)

세 번째 수준에 오른 기업은 그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기업은 뿌리를 내린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자신의 번영과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인식에 이릅니다. (136)

내가 하고자 하는 경영이 이것이다. 지역에 도움이 되면서 선순환을 하는 그런 기업.

마지막 도약의 단계는 인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지요. ... 위대한 기업으로 진화한 것이지요. (136)

진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사회는 기업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바로 존중을 원하는 것입니다. (137)

직원이 행복하면 고객이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하며, 따라서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138)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성과를 창조할 수 있도록 일과 관심사를 연결해주어야 합니다. (138)

리더십이란 우리가 함께 해냈다.” 라고 외치게 하는 것입니다. (138)

리더십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예전엔 앞서서 끌고 가며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젠 각 개인에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누구도 성공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각자 그 성공의 한 부분일 때 우리가 만들어집니다. (139)

나는 당신의 희생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행복과 성공을 원합니다.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만 여기에 남으십시오.” (139)

어느 곳에서든 희생은 결국엔 좋지 않게 끝난다. 희생의 다른 이름은 참음이다. 참는다는 건 억압이고 그래서 언젠가는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그땐 그동안의 참음과 희생을 보상받고 싶어 하지만 강요된 희생이 아니면 타인을 원망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행복은 과정도 즐겁지만 결과적으로도 즐거울 수밖에 없다. 혹여 결과가 즐겁지 않아도 과정이 즐거웠으므로 만족한다. 그래서 성공이 아닌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다.

 

8. K, 원하는 일에 너를 던져라

네 번째로 선택한 편지. 아직 자기가 진정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탐색중인 아들을 생각하며 본 편지다.

너를 보면, 사람의 타고난 재주란 바지 속에 넣으면 뾰족한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밖에 없는 송곳 같은 것임을 떠올리게 된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감출 수 없는 것이 타고난 재주가 아니겠느냐. (95)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아들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 영업이고 마케팅인데 분야가 다르니 막막합니다. 사람들이 명함을 주며 연락하고 싶다는데 아직 제 명함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99)

기쁨이 기쁨에 연이어 손을 잡고 나타나고, 마치 오랫동안 그 일이 예견된 것처럼, 한 일이 벌어지면 연이어 그 일의 다음 단계가 저절로 열리는 듯할 때가 있다. 그때는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은 우주가 오래 기다리다가 일을 도와주기 위해 스스로 펼쳐지는 것과 같다. (100)

나도 그랬다. 뭔가 필요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다. 이번 변경연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글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던. 누가 그 말을 하느냐가 그래서 중요한가보다.

물질이란 결국 기본적으로 전체 속에 자신의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국소적 방식으로 자신을 들어내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데이비드 봄 (101)

라는 존재는 한 방울의 잉크처럼 지금의 나로, 응결된 실체로, 가장 국소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원래의 나는 온 우주에 여러 번의 회전으로 접혀 들어가 있는 미세한 미립자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지. (102)

하나의 일이 벌어지면 그것과 연관된 사람들과 사건들이 하나씩 펼쳐져 등장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102)

당분간 회사를 다니는 일을 빼고는 모든 시간을 여기에 쏟도록 해라. 이윽고 때가 되면, 너는 오직 이 일만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 이 일로 너는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103)

아들아, 너도 조만간 그런 일을 찾게 되겠지.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정 네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결코 낭비도 아니며 실패도 아니다.

 

12. 대범하고 거침없이 다시 그대에게

다섯 번째 고른 편지. 이렇게 살고픈 마음을 품고 있는 나에게, 11기 동기인 리아, 수정의 여행 동기를 생각하며 선택한 편지다.

나는 인류의 문화로 가득한 도시들을 몇 개 남겨놓음으로써 늘 가슴에 여행에 대한 신선함과 호기심, 그리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욕망을 남겨두었어요. (144)

그곳을 돌아보며, 역사는 결국 인물이고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144)

이 사람이 바로 유명한 메디치가의 로렌초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그를 두고 운명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 최대한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쓴 바로 그 사람입니다. (145)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후원한 메디치가의 참주였지요. 그는 특히 도나텔로를 극진히 아껴 자신이 죽은 후에도 도나텔로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피렌체 교외의 농장을 하나 도나텔로에게 주라고 유언을 했답니다. (146)

그는 예술가였지 농장주는 못 되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피에로는 다시 그 농장을 돌려받고 그 대신 매달 그 농장에서 들어오는 수입만큼을 그의 계좌에 넣어주게 했답니다. (147)

예술가와 예술가의 재능을 보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후세에도 길이 남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영국의 가난한 무명의 현대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 찰스 사치도 로렌초와 같은 사람이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이 도시의 기분을 알고 있다. 우리 메디치가가 쫓겨나는 데 50년도 걸리지 않을지 모르나. 하지만 사람은 가도 물건은 남는다.” (147)

실제로 그의 예상대로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이끈 시기는 6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 그러나 그의 말대로 500년이 지난 지금도 피렌체는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147)

언젠가 오래 둘러보리라.” 이것이 바티칸에 대한 내 소감입니다. (148)

이 도시에서는 프랑스인은 프랑스풍으로, 에스파냐인은 에스파냐풍으로, 독일인은 독일풍으로, 이탈리아의 각 지방 출신들도 각자 제 고장의 독특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서민들조차 그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거지는 상대의 옷차림으로 그의 출신지를 알아차리고, 그 나라 말로 한 푼 줍쇼.“라고 말을 건다.” [여행일기] 몽테뉴

다양성의 존중이란 참아야 하는 갈등과 불편이 아니라, 특이성과 차이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는 대범한 정신이라는 것을. 사방으로 뻗은 로마의 대로를 통해 바람이 거침없이 통하듯 자연스럽고 대범하게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 거지만이 한 푼 얻기 위해 그 차이점에 주목할 뿐이지요. (150)

어느 가족이 다 같이 세계여행을 하며 아빠가 머리를 길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 모습을 이상한 듯 쳐다보는 데 외국여행을 하면서는 한 번도 그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너무도 다른 모습들이 많아 전혀 특이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리오소(arioso), 대범하고 거리낌 없이라는 말은 영원한 로마의 정신을 가장 훌륭하게 대변하는 단어입니다. (150)

나는 당신이 르네상스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와 예술에 당신의 부를 모두 쓰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151)

이런 우연이... 동기 수정이 르네상스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고 했었다.

 

1. 잡다한 일로 꼭 하고픈 일을 못하는 P에게

여섯 번째 선택한 편지. 항상 집안일에, 옥상 채소에 물 줘야한다고 긴 여행도 못 가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너의 다양한 관심과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13)

너는 성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 너 스스로를 잡다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면서 또 다른 일들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 일과 저 일이 서로 도우며 삶으로 결집되어 하나의 형체로 수렴되는 모습이 아니라,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산되는 모습이다. (14)

~ 이거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매일 글을 쓰지만 그 글들이 서로 모여 하나의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흐르지 못하는 것 같구나. (14)

너는 또 하루의 일부를 네 아이를 보살피는 데 쓸 것이다. 머리가 빠르고 손이 재며 순발력이 뛰어나니 반복되는 가사 일을 재빨리 해치울 것이다. (15)

가사일과는 좀 거리가 있는데... 엄마는 해당되겠다. 좋아하는 것도 일처럼 하신다. 천천히 즐겁게가 아니라 후다닥 빨리 해버린다. 그리곤 일상이 심심하다 한다. 꽃을 좋아하니 꽃을 기르는 것에 즐거움을 가지셔도 될 텐데 큰돈 드는 것도 아닌데 꽃 사는 건 돈을 아끼신다.

늘 글을 쓰니 나는 너를 작가라고 부르고 싶지만, 한 권의 책도 없으니 사회는 너를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15)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즉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16)

프로가 되려면 오래해야 한다. 오랜 집중과 반복되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16)

프로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지난한 과정을 혼자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다. 그리고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할 수 있다.

너는 절망적 용기라는 이 기묘한 말의 뜻을 알겠느냐? 그것은 마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나는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16)

일단 프로가 되려는 뜻을 세우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스스로 세워 지켜가야 한다. (17)

첫째,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하나의 일에 집중 투입해라. 이때는 반드시 이를 지원하는 습관의 힘을 빌려야 한다. (17)

자신만의 루틴한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둘째, 번거로운 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 정신과 몸의 건강을 지켜주는 너만의 쾌락을 구하도록 해라. (18)

셋째, 필요한 만큼의 금전은 벌어야 한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너무 쪼달리면 안된다. 그러니 자력으로 밥벌이가 되어야 전념할 수 있다. ... 먼저 절제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일이 부업 정도는 되도록 간단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18)

이것도 어느 정도는 돼있다. 하지만 주저하는 마음 때문에 당장 무엇을 하지 못한다.

작가의 필연적 고뇌와 집중 과정에서 너무도 쉽게 물러난 것이다. 쉬운 길로 얼른 도망간 것이다. (19)

네 안에 들어 있는 무수한 아마추어들에 맞서라. 나는 사람들이 종종 한 길을 갈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언덕과 가파른 계곡 앞에서 되돌아오는 것을 많이 보았다.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 길로 가면 참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 여긴 사람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흥미를 잃고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 자신도 그걸 안다. (19)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작업화 과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다. 재주가 많은 팔방미인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모두 이런 것을 경계하라는 교훈이기도 하다. (20)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들었던 얘기다. 이것저것 잘하는 아빠가 오히려 신통치 못한 수입이라 나 역시 그럴까 걱정하신 거다. 아빠는 재능에 비해 사회지능이 발달하지 못해서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의도로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 조언은 어떤 모습이든 나의 모자람에 대한 충고이니 불쾌할 만한 요소를 품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조언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20)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다. 불편할 걸 알지만 해주는 조언은 애정 어린 조언이다.

작가가 되어 살아도 좋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매일 글을 쓰고, 그 글들이 페이지마다 연결되어 같은 방향으로 물길이 되어 흐르게 해라. 혹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나 물길이 막히고 고여 더 나아가지 못할 때도 쉽게 던져버리고 다른 주제, 다른 영역, 다른 재미로 도망가지 말고 매일 그 커다란 웅덩이를 조금씩 채워가거라. (21)

기억해라. 신은 누구에게나 공헌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너를 잡다하게 써 낭비하지 마라. 너를 딱 맞는 네 일에 집중해 쓰도록 해라. (21)

다 읽고 났더니 엄마보다 나에게 맞는 편지였다. ‘잡다한 일이 조금 다르긴 하다.

 

7. 생전 처음 쓰는 아버님 전 상서

일곱 번째 선택한 편지. 11기 동기인 의섭 장례식 때 아버님께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나서 보게 된 편지다.

생전 처음 해본다는 것은 어색한 일입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한 번도 아버지께 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편지가 처음이네요. (83)

오늘 작고한 지 오래된 당신께 처음으로 편지를 한 통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83)

이제는 제 마음에 어떤 생각이 찾아오면, 가능하면 그 생각대로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8)

이 글을 보니 마치 저자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고 그런 것 같다.

학교에 내야 할 등록금이 오래 연체되어, 담임선생님이 저를 수업 중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84)

옛날엔 왜 이리 아이들에게 가혹하게 했을까. 나도 교무실에 불려가 언제까지 낼 수 있는지를 말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지키지도 못할 기일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에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걸 했었다. tv등 가전제품이 있는지 여부를 손을 들게 했다. 손을 드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참 무식한 시대였다. 배려라는 것이 없던. 그나마 나중엔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체크해서 제출했다.

집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바로 너야.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너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할거야.” (84)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며 야무지지 못하고 그저 사람만 좋은 분, 그게 아버지에 대한 우리 가족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85)

우리 아버지도 그렇다. 법 없어도 사실 양반,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받아야 할 돈이 있어도 달라고 못하시는 분. 그러면서 가족에겐 버럭 소리 지르고 따뜻한 말, 애정표현도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우신 분이다.

아버지는 평화주의자셨지요. 한 번도 폭력에 의존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85)

저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도 어려서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살았던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가난했으나 신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커집니다. (85)

가정 폭력을 옛말처럼 여기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많다고 한다. 더 내밀해지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폭력이 육체적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니 더 그럴 수 있다.

당신께서는 제 진로에 대하여 한 번도 개입하신 적이 없었지요. 그건 당연히 제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당신께서는 자식들에게 무심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6)

나도 이런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의 대답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였다.

잠결에 들은 두 분의 목소리는 더없이 따뜻하여, 되돌아보면 제 유년기의 아름다운 장면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87)

지난 번 독서 강의 시연 후 독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다른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종종 시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커서도 힘들면 그 시가 생각나고 의외로 위안이 되더란다. 그 시 덕분에 자신의 자존감은 높아졌다며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강의시연이 지식이 아닌 의미 있는 기억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 나야말로 감사했다. 우린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는 아주 많이 편찮으셨지요. 또 초상을 치르겠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셨지요. (87)

저자에겐 부인과 자녀가 참 중요한 사람들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 세상을 떠나며 남겨진 가족 때문에 힘드셨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사실 별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초저녁잠이 많은 제가 잠든 후 들어오셨고, 저는 그 다음 날 아버지가 깨시기 전에 학교에 가곤 했으니까요. (88)

저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아버지, 그러나 전 그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89)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빛나는 순간을 아주 많이 기억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좋은 아버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89)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90)

저자의 아버지께 드리지 못하는 편지였다. 동기 의섭은 살아계신 아버지께 먼저 편지를 썼다고 했다. 저자의 아버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다시 한 번 아버지 생각이 나겠네. 어느 누구보다 가슴으로 읽겠다. 아들은 아빠와, 딸은 엄마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며 부모가 되면서 부모를 다시 보게 된다. 나는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부정을 하다가도 엄마의 살아 온 삶을 이해하게 되고 하지만 마음처럼 표현하지 못하며 또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 자식은 우릴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5. 남자 고르는 법에 대하여, 사랑에 빠진 L에게

여덟 번째 선택한 편지. 대학원 같은 과 학생과 사귀는 대학원 동기인 민지를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젊은 사랑은 내려칠 장소를 찾는 벼락같은 것이니, 너무도 성급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뒤 또 그렇게 사라져간다. (59)

심지어 몇 년을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느 날 고목에 꽃이 피듯, 느닷없는 새로운 감정이 꽃필 수 있다. (59)

서로 악감정이었던 사람과도 생길 수 있는 게 사랑이다. 저 두 사람이 설마~ 하는.

나이 어린 소녀나 소년들의 풋사랑은 대부분 그 대상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자체를 사랑한 경험으로 남을 때가 많다. (60)

그래서 불같이 타오르다가도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 대상도 자주 바뀌고 기간도 짧다.

사랑은 절대 할 수 없건만, 종종 쿨한 사랑이 존재하는 줄 안다. 상처 없이 헤어지기를 바라는 사랑은 사랑조차 아니건만, 사람들은 기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어두운 사랑의 반을 두려워한다. (60)

요즘은 헤어지자고 하는 말도 만나서 하지 않고 문자로 한다고 한다. 기본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옛사람이다. 불편한 감정에 대해 직접 부딪혀서 해결하기보다 기피하는 현상이 커졌다. 감정적 미성숙함이다. 어렵고 불편한, 힘든 것들을 해결하면서 사람은 성숙해진다.

사랑이 지혜일 수는 없는 것이니, 사랑에 빠져들기 전에, 아직 정신이 온전할 때 참고해두면 좋겠다. (61)

사랑에 빠지기 전에 한 이야기도 사랑에 빠지면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 오히려 사랑에서 빠져나오면 그때서야 맞아 전에 그렇게 애기했지. 하더라.

남자를 고르는 첫 번째이며 절대적 기준은 착한 놈이 좋은 놈이라는 것이다. (61)

사람 마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이거다. 분명 착한 놈이 좋은 놈인 건 알겠으나 끌리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오죽하면 나쁜 남자 캐릭터가 인기라고 할까. 아이러니다.

남자를 고르는 두 번째 기준은 당연히 가슴이 따뜻한 훈남이다. 내가 보기에, 종종 멀쩡한 여자들도 어리석은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 나쁜 남자 증후군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62)

(아내나 애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사귀다)

그대가 아무리 잘 감추었다 하더라도 혹시 발각되는 날이면, 명명백백히 드러나더라도 결단코 아니라고 맹세하라. 지나치게 비굴하게도, 지나치게 상냥하게도 굴지마라. 그대의 유죄를 인정하는 셈이니까. (63)

로마시대의 로마식 사랑이 현재에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가도 어차피 같은 사람이니 같을 수밖에 없다.

사나이다움이 미덕과 가치였던 남성 사회에서 열등한 존재에 불과했던 여인들은 자신의 외모에 지나친 강박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매력적인 전리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64)

스스로 열정에 예속되어 사랑을 사랑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남자를 고르지 못하면, 여인은 인형과 노예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64)

이건 너무 많이 갔다. 여자가 수동적인 존재란 말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 남자는 어쩌란 건다.

남자를 고르는 마지막 기준은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살 수 있는 남자이다. ... 잘 맞는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사람은 아름답다. (64)

이건 정말 높은 기준이다.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 재능으로 먹고살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선 나름 성공한 건데 그런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그 사랑이 사랑이려면 둘이 잘 어울려야 한다. 어울림은 다양한 것이니 같은 색의 어울림도 있고, 보색의 어울림도 있을 것이다. (65)

홀로 있을 때는 작아 보이다가도, 그와 같이 있으면 그로 인해 내가 크게 돋보이고 그 또한 그러하다면, 그 사랑은 잘 어울려 행복한 사랑이다. 그럴 때는 그 사랑을 믿고 따르도록 해라. (66)

너는 가장 소중한 가치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 다만 이제 용기만 내면 된다.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살지 마라. 재미없다. 너로 인해 세상의 한 조각이 기뻐하게 하라. (66)

나는 남자건 여자건 상대를 고르는 기준은 얼마나 본인과 가치관이 맞냐 다. 사랑도 삶이고 삶은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행동의 모습과 선택이 다르다. 인생은 매번 선택의 연속이다. 할까, 말까 하는 순간에 그 가치관이 작동한다. ‘해야하고 안해야 하는 지 그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한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이해하고 맞춰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면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 Y에게, 젊음은 미리 늙지 않는 것이다

아홉 번째 선택한 편지. 학석 수업에서 만난 기공과 학생 동우. 오랜 기간 대학을 다니고 결국 논문을 못 써서 졸업을 못했지만 학벌보다 세상을 선택한 멋진 청년을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봄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이 밤, 눈길을 걸어 집에 가도 나쁘지 않으리라. 옷깃을 세우고 잠시 망설이는 나를 몰아 눈길을 걸어보기로 했네. 마음을 먹자 그 길은 즐겁고 특별한 작은 모험처럼 여겨졌다네. (38)

내가 그런 우스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아마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대들 젊은이들을 대학 캠퍼스 안에 수백 명 모아놓고, “젊음은 젊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난 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38)

젊은이들의 무모함, 용기를 실천한 것이었군.

부산에 와서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해줄 수 없느냐고. 강연료를 줄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나눠달라고 말이야. (39)

백 명의 유명인사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그 학생이 대단하다. 만약 나에게 이런 제의가 왔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나도 거절했을 거다. 강연료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몇 백 명의 대중 강연은 별로 효과가 없더라. 내가 아직 그 정도가 되지 못해서 인지도 모르지만 많은 인원은 몰입도가 적다.

나는 이 강연회에 가지 않겠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아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세요.” (39)

자네는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과 모여 이 강연회를 아이티 재건을 돕는 모금운동과 연계시키고, 뜻이 있는 NGO를 초청하고, 대학교 앞 상가를 돌아다니며 모금운동을 했지. (39)

나는 자네가 애써 배우려는 사람이고, 온전하게 자신을 바쳐 열심히 현재의 삶에 참여하려는 멋진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네. (40)

나는 종종 젊은이들이 너무도 빨리 밥벌이와 친해지는 현상을 보곤 한다네. 너무도 빨리 경제적 필요에 무릎을 꿀ㄹㅎ는 것을 자주 목격하지. (40)

과연 이게 젊은이들의 생각이고 선택일까. 난 이게 사회와 어른의 생각에 물들은 것이라 생각된다. 젊은이들이 무언가 고민하고 실패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재촉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식사회이고, 창의성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라네. 기업은 창의성에 목매고 있지. 그런데 열 명의 대학생 중에서 아홉 명은 비슷한 인생을 가지고 있다네. ... 자신만의 차별적인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창조성이 생명인 사회를 맞이한다는 말이네. (41)

한국처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사는 나라도 없다. 그러니 남들과 다르게 보다 남들처럼을 강조하며 산다. 이것도 사회문화와 사회인식이 작용하는 것이라 본다.

나는 젊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 (41)

그는 우연히 칠레의 한 노동자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다네. (42)

그것은 내가 겪은 가장 추웠던 경험 가운데 하나였지만 낯선 이 인류에게 좀 더 다가간 느낌을 갖게 해준 경험이기도 했다.” (43)

체 게바라는 그 여행에서 이런 장면들과 무수히 마주치면서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혁명가로서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네. (43)

동우와 체 게바라는 참 비슷한 점이 많다. 중고 오토바이 하나 사서 캐나다 일주를 하며 찍은 사진으로 여행 책을 내고 결국 그 경험이 여행업이란 걸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결코 돈을 쫒지 않고 경험과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에서 젊음을 본다.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전해지는 깨달음의 크기가 인생을 바꾸는 것이라네. 사건을 해석하는 힘을 키우고, 그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43)

그렇다 똑같은 일이 생겨도 사람에 따라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그저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내가 본 동우는 젊음이란 단어와 잘 맞는 사람이다. 이 편지의 내용이 전혀 필요치 않는 멋진 청년이다. 난 우리 아들이 이런 청년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대학을 다니며 대학 졸업장, 자격증, 학점을 위해 공부한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면서 타과 수업을 들으며 인문학적 사고를 끊임없이 하면서 생활했다던 청년이었다. 사회에 나가서 남들처럼 살지 않으니 옆에서 보기에도 신나보였다. 기대되는 청년이다.

 

9. 졸업을 앞둔 S에게, 직장 구하는 법에 대하여

열 번째 선택한 편지.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에 수업에서 만난 승연이가 취업 걱정을 하던 때를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나는 네가 어느 길로 가든지 응원할 것이다. 제 길을 간 인생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쉽게 자신의 길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107)

직업을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직업이 바로 직장인이다. 절반 이상이 넘으니 말이다. (108)

직장은 마치 천직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머무는 연옥과 같아서 그 속에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거치게 되고, 이 일 저 일을 맛보고 수련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108)

평생 그 연옥에 마무는 사람도 있고, 그 연옥에 못 들어가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구직 과정 역시 인생의 즐거운 과제이니 한번 스스로 즐겨볼 만하다. 몇 가지 게임의 원칙을 알려줄 테니 네 취향에 맞게 변형하여 써보도록 해라. (109)

첫째, 취업은 삶에 대한 자세와 재능을 파는 것이라는 새로운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109)

결국 학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펙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드밴트지로 쓰이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하는 배제하는 최저 채용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109)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그거라도 갖춰 놔야한다고 한다. 삼성 인사팀 직원이 오히려 스펙에 맞지 않는데 지원한 사람은 무조건 뽑는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 모 아니면 도이지만 똘끼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채용의 결정적인 기준은 오히려 인턴십과 면접으로 그 중요성이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10)

둘째,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몰려 있는 곳에만 집중하면 결국 전형적인 레드오션만 쳐다보는 꼴이 된다. 시선을 다양하게 돌려,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 곳은 아니지만 아주 괜찮은 기업을 찾아보는 것이다. (110)

또 한 가지는 괜찮은 중소기업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인원은 적지만 특별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도 제법 된다. (111)

승연이가 그랬지. 냉동만두 파동이 있을 때 고등학생이었다고 그래서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커피를 좋아해서 동서식품에 지원하게 됐는데 그때 마침 콘프로스트 사태가 났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섞어서 다시 포장해 판다는 뉴스로, 그 기업에 합격하면 가야할지 고민이고 과연 기업은 기업윤리라는 것이 있는지, 노동자는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는지, 급여가 문제가 아니고 기업에 대한 회의를 가졌었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를 무룹 쓰고 사회적 기업에 취직을 했다. 만족스럽다고 했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소규모는 기업가의 마인드가 크게 작용한다. 실망스런 모습에 다시 배움을 선택했다던 얼마 전 소식은 한편 반갑기도 했다. 아직 젊으니 좀 더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아주 강력한 자기소개서를 써두라는 것이다. (111)

요즘은 인적성 평가를 먼저 한다. PC로 한다. 승연이를 통해 들은 경험담은 이력서와 면접만으로 채용이 되던 시기와 멀게만 느껴졌다. 기업마다 다른 인적성 검사와 어쩜 무의미해 보이는 그 검사에 들이는 시간이 아깝더라는 말도 생각난다.

나도 연구원들을 뽑을 때 아주 긴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해서 꼼꼼히 읽는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기술하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객관적 경험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이 네게 무엇이었는지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113)

내가 작성한 개인사와 다른 동기들의 개인사를 보며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형식으로 쓰고 그 내용도 참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참 열심히 산 사람들이고 그럼에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덕이 재능보다 나은 사람과 재능이 덕보다 나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늘 갈등한다. 내가 보기엔 오랜 기간을 두고 잘 쓸 수 있는 인물은 덕이 재능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13)

그럼 재능이야 세월이 흐르면 습득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덕은 쉽게 쌓이지 않는다. 예전에 조벽교수의 강연에서 들은 사례가 생각난다. 같은 동료교수 임용과정에서 지원자 중 가장 연구 실적이 뛰어난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며칠의 워크샵 동안 그 지원교수의 생활을 지켜보며 공통적으로 그 교수와 함께 할 수 없겠다고 느꼈단다.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으나 공동이 사용하는 음수대에 가래를 뱉는 것을 보고선 너무 놀랐단다.

사회생활을 통해 너는 자유와 단결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묘책을 찾아내야 하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 밑에서부터 배우도록 해라. (114)

어디든 사람이 모여 일을 하다보면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진 않는다. 오히려 일은 힘들어도 버티지만 사람이 힘들면 그건 어렵다. 다행인 것은 좋은 일을 하는 곳엔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그래서 승연이가 NGO나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것이 잘 맞는 것 같다.

 

10. 마침내 화가가 된 A에게

열한 번째 선택한 편지. 국문과를 졸업하고 유치원에 근무하다 뒤늦게 아동미술 공부를 하고 그 분야에 취직한 조카 지아를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자네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과거의 자네가 겪어왔던 그 길들을 잠시 되돌아볼 수 있었네. 내가 보았던 자네의 표정들이었다고 할까. (119)

내가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자네는 답답해 보였네. ... 그때 아마 자네는 미술학원릉 접고 막 다른 일을 시작한 후였던 듯하네. (120)

미술학원을 열고 아이들의 입시 지도를 시작했지만 그대의 회의는 깊어갔다네. 예술이 밥벌이가 되고, 작품이 상품이 되고, 인생은 요령이 되어가는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네. 자네가 가진 미술에 대한 애정이 순수할수록 자네의 하루는 스스로에게 기만적이고, 영혼을 파는 것 같은 모멸이었던 것 같네. (120)

조카 지아도 영어 유치원에 근무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거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쉽게 그만두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그림엔 소질이 있다 보니 너도 자연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유치원 경력으로 교육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아동미술을 배운 건 잘 맞고, 그 경력이 인정받았다니 더욱 잘됐다.

떠나서는 안 되는 곳을 떠나가려 마음먹은 자의 혼란’.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대의 첫 번째 표정이었네. (121)

일을 끝내고, 그래 밥을 벌어야 하는 시간을 끝내고 휴식이 찾아오면 팔레트와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앉아 있는 그대를 상상했지만, 그대는 밤이 되면 그저 쓰러져 잘 수밖에 없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었지. (121)

유치원이 멀어서 다니기에도 힘들었을 텐데 그 시간을 쪼개서 아동미술을 따로 배웠다니 기특하다. 자격증까지 땄다니 많은 노력을 했을 건데 그만큼 너에게 맞는 것이었나 보다.

나는 그때 그대의 얼굴이 떠난 자의 시절’, 바로 방황과 무기력과 일상이 지배한 범벅 표정의 시절이 아니었나 하고 추측해보네. (122)

너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겠다. 가까이 있거나 자주 보지 못했으니 그 시간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결심을 품은 자의 얼굴이었네. 자네는 내게 편지를 보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다시 참석하고 싶다고 했네. 이번 여행은 사람이 다 찼으니 다음에 오면 어떻겠느냐고 했을 때, 자네는 꼭 이번이어야 한다고 말했네. (122)

너도 그랬다. 명절 날 인사로 물었던, “유치원 잘 다니고 있지?” 그만뒀어요.”라고 했다. 왜 그만뒀는지를 듣고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자리를 구하고 그만두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할 수 있는 생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니라고 결정하고 밥벌이 때문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면서 말이다.

매일 그리자. 천 개의 얼굴을 그려보자. 그러면 마음이 본 것을 손이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123)

그대가 거의 매일 그려 내 홈페이지에 올리는 얼굴들을 보며, 자네가 드디어 매일 그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 그 표정은 틀림없이 매일 그 일을 하는 자의 성실함일 것으로 생각하네. (123)

미래도 과거처럼 확실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매일의 힘과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또한 믿고 있기에, 나는 매일 그리기얼굴의 화가라는 그대의 꿈을 이루게 해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124)

얼마간의 습작기가 지난 다음에 자네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내 얼굴을 하나 그려주게. ... 내 얼굴 그림은 웃고 있는 것으로 책만 한 크기이면 되네. (124)

저자의 얼굴 그림을 그려줬을까 궁금하다.

가족 그림은 제법 크게 그려주게. 책 크기의 네 배쯤 되게 그려주게. 좋은 자리를 잡아 걸어두겠네. (125)

나는 모두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 같은 그림은 원하지 않네. 각자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의 세계를 애정으로 지켜보는 가족의 사랑을 그려주게. (125)

갑자기 이 글을 보면서 우리 가족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나는 충분히 그릴 수 있는데 그림을 그릴 생각은 못하고 사진만을 생각했다. 아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 그려야겠다.

어떤 일은 바랐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일은 바라지 않았으나 뜻밖에 이루어지기도 한다네. 그리고 알게 되지. 그 바라지 않았던 일이 사실은 정말 마음을 다해 바라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말일세. (125)

나는 지금의 내가 좋네. 나는 자유와 독립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내가 되기 위해 나는 그 긴 세월을 둘러왔네. 그 둘러온 인생이 바로 내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네. (126)

나도 지금의 내가 좋다. 나도 많이 둘러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다. 지아 너도 지금 그 과정에 있는 거다. 그러니 즐겁게 그 과정을 보냈으면 한다.

 

2. 세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앞둔 B에게

열두 번째 선택한 편지. 교사 출신 부모님이 첫째 아이 사춘기가 되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섯 식구 모두 세계여행을 다녀온 옥봉수 선생님을 생각하며 고른 편지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뻔한 인생이 네 안에 들어와 자리 잡기 전에, 너는 이곳을 떠났다. ...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26)

먼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조리 읽고, 그다음에는 그 작가가 인용한 책의 작가로 옮겨가 그들이 쓴 책들을 모조리 읽어나갔던 것이다.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은 이런 모두 읽기방식으로 그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27)

아무런 책임질 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즉 방랑을 할 때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면 안 된다. 특히 다음 두 가지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굶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다.” (27)

지난 삶 자체가 하나의 줄거리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절, 그 순간에는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면 그야말로 완벽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28)

옥봉수 선생님의 선택도 그랬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모하게 다녀온 여행이지만, 여행 중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너무 다른 것을 통해 이해할 수 없던 가족들의 성격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가족 상담이 아니면 상담을 안 한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 상담소를 오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지금부터는 이렇게 생각해보는 삶의 일대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돌연한 삶의 각성이 일어나면, 우리는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29)

선생님도 교사 부부로의 안정된 삶을 던지고 나선 여행으로 다시 안정된 삶이 아닌 여행에서 깨달은 가족의 중요성을 실천하는 삶을 선택하셨다.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에 닿은 것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지요. 그걸 잡는 겁니다. ... 그때는 사자의 주둥아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될 대로 되라고 믿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30)

그래, 두려움은 틀림없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흥분과 다른 것이 아니다. (30)

버리지 못하면 얻을 수 없다. 너는 미래의 안정을 버리고 하고 싶은 떨림을 찾아 나서지 않았느냐?’ (31)

자신을 떨리게 한 우연한 각성에 다다른 사람들은 모험이 없는 인생은 로망이 없는 연애처럼 지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1)

땅에 뿌리내린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꿈을 꾸자. 하늘로부터 받은 모든 영감을 동원하고 지혜를 빌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기도해보자. (32)

현실에 발을 딛고 꿈을 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주의자, 몽상가 일뿐이다.

너의 두려움, 그 두려움 앞에 움츠러드는 열정, 그리고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불안은 오히려 본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나팔수들이다. 바로 너의 정신적 각성이 인생의 변곡점과 도약점에 서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32)

맞는 말이다. 뭐든 새로운 일을 앞에 두면 두려움 법이다. 자신 없고 피하고만 싶다. 이를 넘어서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33)

이렇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에 맞선 지아야, 앞으로도 그렇게 너의 마음이 가는 일을 따라가면 된다.

 

13. 신이여, 저를 다 쓰소서

열세 번째 선택한 편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앞으로의 나를 있게 할, 신을 생각하며 고른 또 다른 편지다.

어렸을 때는 간절한 갈구가 있었겠지요. 아마 그때 작은 두 손을 모으고 무엇인가를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겠지요. 그 후 제 기억 속에 당신께 편지를 쓴 일은 없는 모양입니다. (155)

어렸을 땐 동네 교회를 성탄절 때면 가고 무슨 행사가 있어 초청받아 간 것 같다. 그러다 구세군 교회에 다니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엄마와 함께 몇 번 같이 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다시 중학교 3학년 친구 따라 갔다가 세례까지 받았다. 이렇게 띄엄띄엄 다닌 교회, 신앙생활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 아이가 초등 5학년 때 전학 온 친구가 목사님 딸이었다. 아들만 다니던 교회를 아들은 중학교에 진학하고는 뜸해졌다. 몇 번 아들과 같이 갔었다. 그러다 작년 봄에 불현 듯 너 왜 힘든데 혼자 견디고 있냐. 나에게 와서 기대렴.’ 이라는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이제 아들은 가지 않고 나만 가고 있다.

인생이 비교적 편안했기에 저는 당신을 알지 못했고, 그 긴 세월을 당신 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그 자체가 바로 축복이었음을 또한 알게 됩니다. (156)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난 나 자신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나도 꼭 신앙이 있어야 하나 그저 남 해롭게 안하고 베풀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살면 되지 했다.

이때 마음속으로 운명처럼 신앙의 길로 걷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과정은 느닷없는 것이었으나 가장 저다운 방법으로 제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56)

사람과의 약속은 겉과 속이 달라도 지켜지면 되는 것이나,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 안에 신을 모시는 것이니 유리처럼 투명할 것입니다. (157)

저자는 믿음도 확실하다. 난 아직도 나약해서 자꾸 변명이나 합리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썬데이 크리스찬이 되지 않으려 하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다.

요즈음 단테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157)

난 수업시간에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최후의 유혹]을 읽고 영화<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쿼바디스나 벤허, 십계보다 더 사실적이었다. 니코스 카잔차스키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경건하고 성스럽지 않은 묘사가 불편했을 것이고, 갈등하는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난 반대로 그래서 더 믿음이 생겼다. 그 시대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세례를 받는 장면이나 예수가 결혼식에서 춤을 추던 모습들이 그랬다.

저는 그동안 눈뜬믿음을 원해왔나 봅니다. 신에 대한 믿을 수 있는 근거, 객관적 확실성을 가진 증거들을 찾아 그것들이 저를 당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주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159)

신은 그를 찾는 이에게는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명확히 나타나기를 원하는 반면, 진심으로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감추기를 원한다. 파스칼 [팡세] (159)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고 나서야 이렇게 당신께 처음과 다름없는 편지를 쓰게 되니 느닷없고 쑥스럽습니다. (160)

당신께 앞으로 살고 싶은 삶에 대하여 세 가지 뜻을 적어봅니다. (160)

저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제가 믿으니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도록 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탐욕을 줄이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며, 낮은 정신으로 살도록 애쓰겠습니다. (160)

제가 날마다 엎드려 기도하게 도와주십시오. ... 제가 두려워하더라도 용기를 주십시오. (161)

저는 또한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애쓰겠습니다. (161)

저는 또한 제 길을 열심히 가겠습니다. ... 저에게 주신 재능을 다 쓰고, 제게 맡기신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당신이 주신 재주를 남김없이 다 발휘하여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돕겠습니다. (162)

더 많은 좋은 생각들이 퍼져 나가게 저를 도구로 써주십시오. (162)

저자의 쓰임이 이 땅보다 하느님의 나라에 더 필요하셨나요? 그래서 그렇게 빨리 데려가셨나요?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저자와 신이 계시니 걱정할 것 없겠네요.

 

저는 지금처럼 저의 앞길을 열어주시고 알맞은 쓰임의 길을 열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젠 어떠한 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매사 감사함으로 넘쳐나매 마음의 평강을 얻었습니다.

 

14. 나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열네 번째 선택한 편지. 나는 나에게 뭐라고 쓸 수 있을까. 나를 생각하며 고른 마지막 편지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갔다. ... 10년 동안 14권의 책을 썼고, 그전에 썼던 3권을 더하면 모두 17권의 저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명 정도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교류하게 되었다. 10년의 결산으로 나쁘지 않다. (167)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하다. 특히 그 전에 글을 썼던 것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나는 내게 편지를 쓰기로 한다. 내 속에는 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었으니, 앞으로 10년은 내 속의 나와 화해하고 깊어지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167)

앞으로의 10년을 예상했는데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여기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되지만 죽음은 삶에 가려 숨어 있지. 그러다가 어는 덧 삶이 저물기 시작하면 죽음은 점점 더 확실한 존재로 삶을 압박하게 된다. 그러니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야. 그것은 언제나 삶 속에 숨어 있었고, 삶이 익어감에 따라 그것도 익어가고 있었던 거야. (169)

나이가 들어가서 인건지 저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땐 이런 생각이 드러난다. 태어남과 죽음,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이 모두가 삶이다.

객관 정신이라는 이성이 진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법은 없어. 우리는 변화하는 거지. (169)

너와 나는 서로 대립되는 쌍이었지. 네가 하고 싶어 하면 나는 말렸지. 넌 너무 극단적이었거든. 나는 현실을 살아야 했고, 너는 살고 싶은 대로 살려고 했어. (170)

그러게.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본능적인 모습은 숨기고 산다. 그래서 잘 안 보인다. 이성이란 이름으로 가둬두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위대한 결정을 몇 번 했다면 모두 네 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170)

내 인생의 별난 변곡점에는 늘 네가 있었지. (171)

대단한 필력을 가진, 진짜 질투 나게 하는 글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의 글을 읽고 스스로 나의 자리로 물러설 참이면, 그때 그 교활하고 죽이고 싶은 네 얼굴이 문틈사이로 빼꼼히 나를 쳐다보며 묘하게 웃더란 말이야. (172)

요즘 시카고 타자기란 드라마가 하고 있다. 작가의 고뇌를 유령작가란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갑자기 그 드라마와 오버랩 된다.

난 이제 2010년의 중반에서, 이 무성한 여름의 한복판에서, 앞으로 10년을 너와 잘 지내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싶다. (172)

첫째, 나는 한쪽 끝에 서 있을 테니 너는 반대쪽 끝에 서 있어라.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투쟁과 전투가 아니라, 혼자서는 볼 수 없는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일상생활의 제한된 지평을 넘어 세계를 보고 더 넓은 전망과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다. ... 나는 현실을 볼 테니, 너는 이상을 보아라. 나는 사회를 볼 테니, 너는 개인의 욕망을 보아라. (173)

이렇게 내면의 자아와 편지로 이야기를 하다니. 난 그저 나의 또 다른 면을 혼자서 보는 정도인데, 나도 편지를 써봐야 하나.

둘째, 우리는 인간의 변화를 다루자. ... 우리는 존재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 이행해가는 것을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173)

너와 내가 통합된 더 큰 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10년 프로젝트다. (174)

나는 이성의 밝은 빛을 따라 삶을 설계할 것이다. 너는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나를 지원해다오. (174)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여름다운 것은 없으며, 그것처럼 당황스러운 것도 드물지만, 일단 젖고 보면 그것처럼 즐거운 하나됨이 없다. 나는 너를 비처럼 받아들여 흠뻑 젖을 것이다. 너는 나를 나무처럼 춤추게 하라. 그리하여 우리는 비온 뒤의 숲처럼 되자. (175)

너무 멋진 표현이다.

 

나의 나에게.

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그리곤 나에게 모든 뒷감당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래서 자꾸 너를 살피게 된다.

너무 과하지 않으려 하고

신중하려 한다.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땐 너의 그 자유분방함이 좋다가도

어느 땐 감당이 안 된다.

네가 하는 대로 그냥 두고 싶기도 하다.

대부분 내가 너보다 절제를 잘해 큰 실수가 없다.

하지만 너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낀다.

그러니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과하지 않게 나타나는 것은 환영한다.

너무 이기적인가.

 

내가 저자라면

 

저자에 의해 선별된 편지가 아니지만,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포함했으면 좋았겠다. 저자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편지글이지만 많은 책들을 인용하며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쓴 것은 내가 잘 안 되는 것이라 배워보고 싶다. 그만큼 많이 읽어야 가능한 것이리라.

 

내가 저자라면이 아니라 내가 저자가 되려면주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 이 글을 발췌하며 메모한 것들을 모아 그 사람에게 보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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