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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8일 11시 57분 등록

신화의 메시지를 나르는 3대의 수레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이윤기

 

신화의 힘의 저자소개엔 3명이 등장한다. 글이 없던 먼 옛날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야기로 전해 내려왔을 신화’. 그 신화의 메시지를 말과 글을 통해 인류에게 전달하는 수레 역할을 한 비교신화학자 존 캠벨, 존 캠벨과의 대담을 통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신화라는 주제를 보다 대중적인 메시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 해설자 빌 모이어스, 그리고 이들의 대담을 번역하여 한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수레 역할을 맡은 번역가 이윤기가 바로 그 3대의 수레이다.

 

첫 수레 존 캠벨

 

우리의 몸을 전구라 생각해봅시다. 만약 전구가 나갔다고 해서 더 이상 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에너지의 근원은 남아 있는 겁니다. 우리가 육체를 버린다 해도 우리는 지속됩니다. 우리가 바로 그 근원이자 원천인 거죠” (조셉 캠벨)[i]

 

캠벨식으로 말하자면 태초에 에너지가 있었고 이 에너지는 어떤 육체에 시간의 단편을 쪼개 주었다. 에너지에게 주어진 시간의 시작은 1904 3월이었고 공간은 미국의 뉴욕으로 이 에너지는 미국 중산층의 로마 가톡릭 가정을 꾸린 찰스 캠벨과 조셉핀 캠벨의 첫 아이의 육체에 깃들여진다.  이러한 환경과 함께 이 에너지가 주어진 시간의 장에서 시간과 공간을 늘이고 확대하며 영혼을 어떻게 가꿔 나가는지에 대한 여정을 살펴보는 것은 곧 신화의 힘의 저자 조셉 캠벨을 탐험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무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7살의 캠벨은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그의 남동생 찰리와 함께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보러 간다. 그 날 그 공간에서 동일한 쇼를 많은 아이들이 봤겠지만 7살의 조셉을 사로잡은 것은 쇼의 주인공인 카우보이가 아닌 벌거벗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형상이었다. 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 활과 화살을 움켜쥔 그들의 손, 특별한 지식이 담긴 그들의 눈. 이 날 저녁의 경험은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캠벨이 인디언 문화에 사로잡힘으로써 비교신화학에 입문한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후 소년 캠벨은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은 모조리 섭렵하게 된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 아이라면 에너지 넘치게 밖에서 뛰어 놀았을 터인데, 그래서인지 캠벨은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된다. 그러나 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시간의 공백 역시 공부에 몰두함으로써 학생시절 제도권 교육에 낭비될 수도 있었을 시간을 관심 있는 영역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든다.

 

1919년의 화재를 제외하면 풍요로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1921년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공부하다가 콜롬비아 대학교 영문학과로 전과한다. 1924-1926년에는 육상팀 주자로 계주에서 기록을 세우는데 어린 시절 호흡기 질환을 앓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 기록의 경험은 그에게 단순한 승리 이상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그의 절정경험을 언급하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길 걸 미리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와 그의 존재가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1925(21) 1927(23)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파리대학과 뮌헨대학에서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였다. 유학 후 미국에 돌아왔을 때는 1929(25)으로 미국을 강타한 경제대공황을 마주한다. 당시 얼마나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좌절과 방황을 했을까.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본 많은 아이들 중 카우보이가 아닌 인디언에게 사로잡힌 소년은 캠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청년들이 절망을 안고 살았을 경제대공황 시절 청년 캠벨은 그만의 길, 숲 속의 오두막 행을 결정한다. 신영복의 감옥,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 캠벨의 오두막. 타의로 내몰린 격리된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더듬이를 살려낸 사람들의 공통점을 여기서 볼 수 있다.

 

1934(30)에 사라 로렌스에서 교편을 잡게 되어 38년을 보내게 된다. 1938(34) 운명처럼 미래의 아내가될 장 애드먼을 만나 결혼한다. 결혼하여 신혼집으로 향하는 길의 반대편에서 영구차가 오는 것을 보고 그녀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들은 애초에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한다. 각자 인류를 위해 할 것이 너무 많으니 학생들을 가족처럼 여기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훌륭한 유전자가 세상에 남겨지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셉 캠벨의 유전자와 영혼은 그의 책에 새겨져 있다고 위안 삼아야 할 것이다.

 

1954(50) 안식년 때 캠벨은 인도 스리랑카 등지를 여행했다고 한다. 같은 해 한국에서는 구본형씨가 태어난다. 구본형씨는 40대가 되던 어느 날 지리산의 단식원으로 떠난다. 스스로를 격리하고 이 자신을 구속하였던 것이므로 그 을 안먹어 보고자 한 달을 단식한다. 1929 25세의 무직청년 캠벨은 에 대한 구속을 달리 생각해보고자 숲 속 오두막에서 지내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서랍에 넣고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러한 단절변모역시 시대를 두고도 공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87(83) 식도암으로 사망함으로써 조셉 캠벨에게 주어진 시간의 단편은 끝이 난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그의 무수한 저서에 담겨지게 되었고 1904년에 태어난 그 에너지는 1954년 한국의 구본형씨에게 영향을 미쳤고 현재 또 1974년생인 독자 김리아(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어져 또 다른 에너지의 전파를 타고 있다. 이렇게 두 전구는 나갔어도 전기는 계속 흐르고 있다.  

 

두 번째 수레 빌 모이어스

 

출판평론가 최성일은 해외석학의 대담집에 비해 국내 석학의 대담집이 드문 이유 중 하나로 석학의 말문을 터줄 인터뷰어의 부재를 든다. 시청률에 연연하여 인터뷰 프로그램을 달가워하지 않는 국내 방송의 가벼운 풍토 역시 또 하나의 이유다. 이런 점에서 미국공영방송 PBS를 통해 조셉 켐벨과의 대담을 기획하고 진행한 빌 모이어스가 없었다면 조셉 캡벨의 육성이 담긴 신화의 힘이라는 방송과 대담집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빌 모이어스는 PBS(사회교육방송)를 통해 동시대의 탁월한 사상가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학문적 성과를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존 F. 케네디 행정부와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엔 정계에 뛰어들어 백악관 공보비서관을 맡는 등 민주당 진보좌파와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해왔다. ‘왜 지적 호기심에 정부 예산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대의 정신을 알리는 것의 가치 있음을 역설한다. 그의 이러한 신념이 없었다면 양질의 PBS 방송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민한 뮤즈이자 인터뷰어로서 시대의 정신을 말과 글로 남긴 빌 모이어스는 가히 존경 받고 신망 받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수레 이 윤기

 

가르침이라는 것을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 평생 겸허한 메신저로 사셨다. 그럼에도 부고를 듣는 순간, 그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 소설가 김영하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위해 이제 또 다른 수레가 필요하게 되었다. 바로 번역가이자 소설가이자 신화연구자인 이윤기다. 이윤기는 영문학자도 아니고 신화학자도 아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이렇게 약력이 아닌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이윤기에 대해 살피다 보면 이윤기가 캠벨의 영혼을 만나게 되는 과정 역시 우연이 아니고 운명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과인(過人)이라 지칭하며 사는 집을 과인재라 이름 붙였던 이윤기는 자신을 그저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 이 땅을 지나가기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이라 했다. 그 우연한 사건이 어떻게 신화의 힘을 번역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풍요로운 문학적 토양에서 싹을 틔우다

1947 5, 이윤기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그가 첫 돌을 지낸 직후 세상을 떠났기에 경제적 형편이 어떠했을까는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경제적 환경은 넉넉하지 못했어도 문학적 환경은 매우 풍요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막내 이윤기를 맡아 키우다시피 한 할머니는 그에게 직접 천자문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독서광이었던 할머니는 옥루몽’, ‘장화홍련전같은 이야기책을 갖춰 놓고 운율 붙여 읽기를 좋아하여 할머니 방은 그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농삿일을 하는 와중에도 가락에 맞춰 옥루몽한 구절을 불렀다고 한다. 그 역시 어머니를 기쁘게 하자고 그 중 몇 권을 통째로 외웠다고 하니 그의 입담은 타고난 것과 더불어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무의식적인 훈련이 되기도 했으리라. 조셉 캠벨 역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화는 언어가 있기 전부터 이미지와 말로 전승되는 것이니 이렇듯 말을 잘하는사람은 신화를 실어 끄는 수레로 선택이 되는 모양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비록 가난하고 배고팠을지라도 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육화(肉化)하기에는 충분히 풍요로운 환경이었다.  

 

홀로 외국어를 배우며 외국문학을 섭렵하다

헤밍웨이, 오 헨리를 영어로 읽고,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를 일어로 읽었다는 이윤기. 영어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독학으로 시작했고 일본어는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시작했는데 한자지식이 풍부해 남들보다 빨리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어도 공부해 원서를 몇 권 독파했다고 하니 외국에 습득능력이 뛰어난 것도 해당 외국어로 된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하는 것도 존 캠벨과 닮아 있다(존 캠벨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러시아어로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함). 그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의 영어사전 속 표지에는 예일대 교수, 신학 박사, 철학 박사, 의학 박사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니 과연 미래의 기억을 미리 쓴 것에 다름 아니다.

생업을 위해 번역을 시작하다.

사실 그는 작가로 더 인정받고 싶어했다. 생전에 100권을 쓰기를 목표로 하되, 번역은 생업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제도권 교육의 틀 안에 있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한 영역의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이윤기. 시쳇말로 스펙이 없는 그가 신화번역의 적임자인 까닭은 그의 말대로 소위 학자들은 그리스·로마 신화, 몽골 신화, 이집트 신화를 각기 따로 다루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그처럼 지역과 나라 구분 없이 종횡으로 달려드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개정판) 옮긴이의 말/ 신화는 힘이 세다, 그로부터 어언 10

 

5 “잡초 없는 정원 없다라는 잠언이 있기는 합니다만 오역에 면죄부를 주는 말로 이용하지는 않겠습니다. 표현 좋다! 먼저 선수치고 들어가심.

 

(빌 모이어스의 서문) 우주의 노래, 천구의 가락

 

8 “이 시각에도 현대판 오이디푸스의 화신과 <미녀와 야수>의 속편은 41번가와 5번가가 만나는 네거리에서 교통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현대라는 이 시공간에서 신화를 꺼내기에 참 좋은 시작이자 표현.

 

10 ‘그리스의 신들 따위가 오늘날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대단히 현대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가 문화인류학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 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그러게! 박물관의 유물은 쳐다보면서 내면의 정신적 유물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고 있었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박물관이고 박물관장인 것이다! 내면 탐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유물을 발굴할 것인가는 나의 몫.

 

11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 영웅의 역정을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 자기 발견의 삶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2 구도의 궁극적인 과녁은 자기만을 위한 해탈이나 몰아가 아닌, 동아리를 섬기기 위한 지혜와 권능을 얻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는 박사 과정을 밟아 박사가 되는 것도 마다하고 책의 숲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양을 읽으면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는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로 난 가장 확실한 길은 인쇄된 책의 갈피에 나 있음을 깨우쳤다.

 

13 “그는 민담과 인류학에 나오는 해골에게 생명을 불러 넣은 것이다.”

 

15 그에게 신화는, 그 가락의 내력과 이름을 알지 못하면서도 맞추어 춤을 추는 우주의 노래’, ‘천구의 가락이다. 우리는 그 노래와 가락의 후렴을 듣는다.

 

19 이 지혜의 해각을 찾는 일은 어느 시대에서든 그 시대의 중심과제이다. 만년에, 그는 과학과 정신을 새롭게 통합시키는 일에 힘을 쏟았다.

, 그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과학을 공부한 것이 말년에 이렇게 통합이 되는구나.

 

19 영적으로 볼 때 중심은 시점이 있는 곳이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타락하게 하기는커녕 이 온 우주가 우리의 내적 자연이 확대, 투사된 것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고대와 만나게 했다’. 말하자면 과학이 우리를 깨우쳐, 우리 자신이 실은 우리의 내적인 자연의 귀이자 눈이자 사고이자 그 말이라는 사실(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귀이자 하느님의 눈이자 하느님의 생각이자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21 ‘전인미답의 광대한 우리 과거의 파노라마를 아는사람이었다/ 캠벨도 춤을 추었다. 우주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었을 뿐이다.

 

1.     신화와 현대세계

 

예전에는 그리스 문학, 라틴 문학 그리고 성서와 관련된 문학이 교육 과정의 일부를 이루었어요.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이런 게 다 떨어져나간 지금은 신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길이 깜깜해지고 말았어요. 앞에서 말한 고전 이야기를 마음에다 담아 놓으면 그 이야기가 나날이 일어나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터인데 말입니다.

그러게, 한의학의 경우도 예전엔 의역동원(醫易同原)이라 해서 동양의학과 동양철학인 주역의 그 뿌리가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역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전반적인 교육이 모두 실용성 위주로 가는 듯 하다.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몹시 힘이 드는 사람이 생기는 게 다 이것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불완전한 데가 없거든요. 하느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느낌은 진정한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불완전해서 사랑스럽다는 시각은 재미있네. 나는 아슬아슬하게 불완전한 인간인데 그렇다고 사랑스러운 것 같진 않은데?

 

29 거기에 그런 삶에 관한 지혜를 터득하는 젊은이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됩니다/ 신화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온 진리에 대한 모색, 의미에 대한 모색, 의미 있음에 대한 모색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평생 영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영원을 접하고, 신비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이 참 힘든 거 같음. 나 자신을 알기도 어려운데.

 

30 석가라는 분 자신은 이렇게 해서 오신 분(여래)’이라고 불립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암호를 해독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1930년대 소설 탁류를 읽어봐도 어휘가 익숙하지 않아서 빨리 안읽혔는데 이후엔 바로 그러한 장애(지금 쓰지 않는 어휘)가 오히려 나를 그 시대로 데려다 주었다. 

 

31 가슴이 말해줍니다. 반드시 à 이 말 좋다. 이제 내가 즐겨 쓰게 된 심인(心印)

 

33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구속감의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 안에서의 희생으로 억울함이 생기는 것도 사실. 이 관계에서 나를 떼어놓으려니 올이 이래 저래 엉켜서 풀어낼 수가 없는 느낌이다. 결국 일단 결혼을 했으면 퍼즐 조각에서 뚝 떼어 놓듯이 자신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생각하라 함은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짠 옷감 차원에서 생각하라는 건데. 이건 만다라 주제로 하겠습니다. 관계를 위한 희생과 관계 속에서의 정체성 찾기

 

34 내적 실재의 그릇 노릇을 하던 의례가 이제는 그것을 조직하는 수준으로 타락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인 수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35 젊은이들은 의례를 통하여 한 겨레 혹은 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데,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의례를 베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사춘기 의례가 필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지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굉장한 순간을 경험할 수 없어요/ 이런 걸 깨닫는 순간이 올까요?/ 이들이 입문하는 곳은 우리 사회가 아니지요.

아 그래서 중 2병이 생기는 건가? 예전에 없던 중 2병이라는 말이 왜 생긴 걸까 싶었는데.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 낙서를 하면서, 한국에서는 같은 옷을 입으며 그렇게 나름대로의 입문을 하는건가? 나는 큰 애가 초경을 시작하면 나름의 의례를 또는 파티를 열어주어야지.

 

38 전문화에는 전문가가 관심을 두는 문제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속성이 있어요. 하지만 나같이 전문가가 아닌 잡학가는 여기에서는 이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고, 저기에서는 저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기 때문에 문제를 일단 위에서 내려다볼 줄 알지요.

조망할 줄 알고 통합하는 능력이 필요한 거 같다. 그로 인해 통찰력도 생기고. 그런 점에서 이윤기씨가 이 책을 번역한 건 서로 궁합이 맞은 듯.

 

39 …이 순환적인 주기를 계절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말하자면 1년 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 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겁니다.

귤은 눈이 내리는 하얗게 내리는 밤에 이불 속에서 손이 노래지도록 먹어야 하고, 가을 즈음에는 주홍색 물 뚝뚝 흘려가며 홍시를, 여름에는 부채로 파리를 날리며 수박을, 봄에는 산나물을 먹는 등 먹거리에서 계절을 느끼듯.

 

41 테마가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민족의 기질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겠군요?/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으로서, 한번 빠져볼 만한 것이 신화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3 사울 벨로는, 오늘날 과학이 믿음을 대청소 해버렸다고 합니다/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시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시의적절)/ 과거에는 우리가 악덕이라고 하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필요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수없이 볼 수 있어요

 

44  페요테 문화(//추후 조사요망. 궁금)

45 이 여행의 도정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정신적 변용의 단계를 나타내는 특별한 신당이 있어요.

46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온몸에 두루 존재합니다.

의식은 머리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도 참 막연한 거였음.

 

47 숲 속에는 식물의 의식도 있고 동물의 의식도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이런 의식들과 상호 작용을 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명상이라는 게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리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는 관심입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경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장 첨예한 도시의 거리를 지나 성당으로 들어갑니다/ 채색유리는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48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49 다른 사람들의 삶을 벼리는 일종의 교육자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52 서로 모순되는 한 켤레의 인생은 아니겠지요? 표현 좋아서 채집!

 

54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은 기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스타워즈>에서 보는 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과 똑 같은 질문입니다. 기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우리에게 어떤 수단이든지 다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과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말끔하게 정리해줄 듯 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파우스트의 특징은, 기계가 정해준 과녁이 아닌 자신이 정한 과녁을 찾아내는 데 있지요.

그래서 좌충우돌 살며 결국엔 상처투성이가 되어 과거를 돌이키며 후회를 할지언정, 과녁을 찾는 그 여정이 의미 있는 것이다. 계획대로 착착 이뤄진다면 그건 프로그래밍된 기계의 동작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 아직도 과녁을 찾지 못하고 있음에 자책하지 말 것.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서는 안된다. 그 영혼이 비록 방향치라 우왕좌왕 할 지라도.

 

55 기계는 우리를 도와, 세상을 우리의 이미지에 따라 빚는다는 우리의 오랜 이상을 실현시켜줍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시대가 옵니다. 알파고를 봐라. 멀지 않았다.

 

56 각 종교는 정해진 명령 신호를 입력시켜야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아 이것도 비유 좋네. 이런 컨셉의 인도영화가 있었는데.

59.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는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입니다.

 

61 가치 체계의 화신입니다/ 우리 삶의 기운을 북돋우는 힘은 이 세계의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지요.

 

2. 내면으로의 여행

 

83 제가 혼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이 저라는 존재의 바탕, 제 앞을 살던 모든 존재에게서 물려받은 의식에서 솟아나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내 앞을 살았던 존재 10명만 아니 5명만 알아도 개인의 수백 년 전 을 알 수 있는데, 엄마와 할머니 이렇게 2명만 알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결국 3명의 기억만 물려줄 수 있네. 증조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에 대해 단편적인 조각이라도 알아봐야겠다. 그럼 아이들이 자신의 앞에 계셨던 4명을 알 수 있게 된다. 조만간 제일 오랜 기억을 갖고 계신 고모할머니 찾아뵙고 여쭤봐야지.

 

3만 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이 몸과 그 기관이 똑같고 에너지도 똑같은 몸을 지니고 있어요. 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살건, 동굴에서 인간의 삶을 살건 우리는 똑같은 삶의 단계를 거칩니다.

  

85 흡사 한 연극 대본이 각기 다른 곳에서 상연되고 있는 것과 같지요/ 신화의 이미지는…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전수된 것이겠군요/ ‘미스터리움 트레멘둠 에 파스키난스’라고 합니다.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라는 뜻이지요. 이것이 무서운 까닭은 이것 자체가 우리 자신의 본성이자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에 나온다는 겁니다.

  

87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세상 잡사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내면에 송두리째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그 경험의 유물을 담고 있는 박물관의 나의 내면이라니. 명상을 통해 어두운 박물관에 불을 비추고 먼지가 쌓인 경험을 닦아보자.

 

꿈은 우리 자신에 대한 영적인 정보가 무진장하게 발현되는 현장입니다.

 

사람은 다 어떤 종류의 문턱을 넘어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88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의 기억을 떠올려 메모하는 겁니다. 다음에는 꿈의 작은 단편 중에서 하나, 두어 개의 이미지나 관념을 선택하고 이를 연관시켜보면서, 이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기록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꿈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체험(우리 삶에서 의미심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다가 다른 꿈을 꾸면 우리의 해석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지요.

예전엔 종종 꿈을 기록하곤 했는데..다시 시도해봐야겠다. 의외로 재미난 이미지와 상징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글쓰기를 윤택하게 할 지도 모르니.

 

102 인도에서는 내 안에 있는 신을 육체에 사는 자라고 한답니다.

이 개념 좋아. 우주를 떠도는 에너지가 잠시 이 시공간에 들어와 내 육체에 깃들어진 것.

 

111 세상이 여기에 있으니까 누군가가 만들었을 거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을 신의 나타남이라고 보지 않고 방사, 혹은 응결의 현상으로 설명하는 관점도 있어요. 즉 소리가 대기를 응결시키고, 이 대기의 응결체가 불, , 그리고 흙이 되는데, 세상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우주는 이 원초적인 소리, 이 떨림에 싸여 있어요. 바로 이 소리가 만물을 파편으로 이루어 시간의 장으로 보내는 것이지요.

나한테 깃든 이 파편은 어떤 떨림을 간직하고 있나?

 

117 예수가 들어간 곳은 외계가 아니고 내부의 세계인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천국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미지는 외향적입니다만 그 본뜻은 내향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내면을 향함으로써 그의 승천을 좇는 것입니다/ 운문의 독법은 아닙니다. 은유는 암시적 의미로 읽어야지, 명시적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이군요?/ 신화가 바로 우리를 늘 이 지점에다 데려다 놓고는 합니다.

 

119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다른 육신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지요/ 삶을 하나의 시련으로 보는 관념, 이 시련을 겪어야 세속적 의미에서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관념은 고등 종교의 관념입니다.

 

120 사회의 엘리트가 신화를 만든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샤먼이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화를 만든다/ 은유적으로 듣는 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뮤즈, 혹은 성서적인 용어를 쓰자면 하느님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그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길, 그런 순간이 자주 일어나길, 일어날 그 순간이 지속되길. 무엇보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할 것이며 그만큼의 반복적인 행위/훈련이 일상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필사가 되었건, 명상이 되었건, 도깨비를 부르기 위해 촛불을 부는 것이건.

 

126 칸트는 우리의 모든 경험은 시공에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접촉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시공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우리가 접촉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는 갇혀 있지 않고 시공간을 타고 흐르는 관계로,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 그것을 접촉할 수 있다. 독서와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139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천국의 개념이라는 문제로 보면, 거기에서 지복을 누리면서는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에도 두지 않게 됩니다. 영원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느님의 지복직관에서 끊임없는 복락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악의 분별이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만물의 영원을 경험하면 어떻습니까? 그 경험에는 인생의 그런 기능이 있어요.

 

3.     태초의 이야기꾼들

 

141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142 세상을 남에게 양보하는 때가 옵니다.

 

143 육신이 그 힘의 정점에 올랐다가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중년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그 나이의 육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 나이의 의식과 동일시하는 데 있어요.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중년에 이르면 육신은 내리막길로 들어서지만, 육신이라는 수레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중년의 사춘기가 오는 건가. 사춘기는 아직은 어린데 몸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에서 오는 불일치로 인한 혼돈이라면 중년의 혼돈도 그와 마찬가지. 다만 중년엔 의식을 좀 더 영글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155

모이어스: ‘그대이던 들소가 졸지에……

캠벨: ……’그것이 되고 말았지요.

이 대화 슬펐다. 그 침묵과 공백에.

 

156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랍니다.

인종학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아기들도 죽일 수 있을까 의아했었다. 인간으로서의 아기가 아니라 뽑아야 하는 뿌리, 잘라야 하는 싹으로 세뇌를 했기에 그랬겠구나.  

 

157 새들에게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들이 지닌 심성의 자연스러운 발로인 것일까?

 

158 거미가 아름다운 거미줄을 만들 때, 그 아름다움은 심성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거미줄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거미가 지닌 본능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삶이 지난 아름다움 중에 어느 정도가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일까……어느 정도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일까……

 

163 성인식이 입문자를 정신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입문자 개인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인식을 거치면, 소년은 전혀 다른, 씩씩한 성인이 되어 제 몫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166 환경이 이야기를 빚게 한다

내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상상해보자. 인물의 캐릭터와 인물들 간 상호작용 및 갈등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무대로서의 공간과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내 인생을 쓰는 소설가는 나를 왜 이러한 환경에 나를 던졌는가. 어떤 이야기를 빚기 위해 이러한 환경이 내게 주어졌는가. 소설가의 입장에서 내 환경의 조건과 의미를 생각해보자.

 

169 망아 황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부시맨 사회의 춤판도 그런 것일 테지요.

171 망아 상태에서 춤을 추는 춤꾼이 되지요. 사람들에게는 망아의 잠재 능력이 있어요.

 

175 일시적 체험에서 그 일시적 체험이 지닌 영원한 측면을 체험하는 것, 이거야말로 신화 체험인 것입니다/ 신은, 중심은 도처에 있으나 주변은 없는, 이해가 가능한(감각이 아닌, 마음으로만 이해가 가능한) 구체(球體)라고 하는 정의가 그것입니다.

4. 희생과 천복

 

177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178

저는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거기에 있었는데, 창조의 실재가 느껴졌습니다. 그 광막한 벌판의 밤하늘 아래서, 저는 저 자신이, 옛날은 옛날인데 아직도 살아 있는 옛날에 속한다는 묘한 느낌을 체험한 것입니다.

 

성림(聖林)은 도처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자주 숲을 드나들었는데, 그때 나는 , 살아도 많이 살았겠고 알아도 많이 알겠다는 생각에서 숭배하는 느낌이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창조의 실재에 대한 느낌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고 다듬은 돌과 바위뿐입니다.

신화의 힘은 산 속에서 읽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신화를 만나고 싶었기때문이다. 다 읽었을 때는 해가 지고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다 읽은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며 노을이 지기 시작하여 글씨가 보이지 않을 무렵이라고 적었다. 몇 시 몇 분이 아닌 자연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을 나무와 돌을 보며 책을 읽으니 과연 아직도 살아 있는 옛날에 속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성림은 도처에 있었고 책 읽는 시간을 성화시킬 수 있었다.

 

179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삶의 겨냥은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에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들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180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해가 저물어 사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렴풋한 황혼의 시간을 일본어에서는 타소가레’(게 뉘신지?)라고 한단다. 게 뉘신지라고 부르는 바로 그런 자연의 시간대가 존재하듯,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게 되는 성소(聖所)가 있다는 것. 아름답다! 그런 성소를 만들자.

 

사람이 풍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동물과 식물을 신화화함으로써 땅을 창조의 성소로 요구합니다/ 양식화 작업에는 그들의 육체적 특질이 아닌 정신적 특질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182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은, 자기네에게 힘이 될 만한 에너지가 있다고 믿어지는 땅에 세례를 베푼다는 느낌을 줍니다. 땅과, 사람들이 그 위에다 지은 구조물 사이에는 어떤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189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이어스: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캠벨: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접신이 별 거 아니다. 영혼과의 만남이다. 그림을 보면 화가가 몰두하며 그리고자 한 과거의 그 장면을 현재의(미래의)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나는 과거의 정신과 만나는 것 아닌가? 책 역시 마찬가지. 책을 읽음으로써 과거의 정신을 지금 만나는 것이다.

 

190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에 열리게 됩니다.

이 사람이다!’ 싶은 작가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 작가의 책을 몇 권 읽게 된다. 책이라는 게 한꺼번에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책에서 작가의 나이와 경험을 함께 읽게 되는데, 그렇게 영혼이 살찌워지는 과정을 겪는 것이 신기하긴 했다(캠벨은 그걸 일정한 관점이라고 하네).

 

204 육신은 의식을 나르는 수레에 지나지 않아요. 이 개념도 좋습니다. 제가 찜했습니다.

 

213 시간이 존재하면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우연히 어떤 시간대에 처하게 된 삶에 대한 심리적인 자세 자체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더 나은 시간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른 삶을 위해 이 삶을 버리는 행위가 곧 자살인 겁니다.

 

215 사람들은, 살아 있음의 경험을 절실하게 하기 때문에 전쟁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매일 직장을 오가면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우리는 문득, 살아 있음의 체험 안으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삶은 고뇌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이다……그러나 나는 살아 있다……전쟁은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합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이 젊은이는, 전우를 위해 용감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일상인 공간에서 타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나갈 수 있는 용기 또는 충동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은 그런 공간에서 살인에 대해 무뎌지기도 할 터인데. 그런 행동의 차이는?

 

217 이 미로는 앞길을 막는 존재인 동시에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우리는 삶의 한 중간에 이르렀을 문득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몸은 시들어가는데, 별같이 무수한 우리 삶의 주제가 매일 밤 꿈자리를 차고 들어옵니다. 단테는 이것을, “중년에 아주 무서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곡의 배경이 인생의 중년 시기였구나. 그 때도 중년이 방황하는 시기였다고 하니 위안이 된다. 내가 이 나이에 왜 갈피를 못잡나 싶었는데 그런 나이인 거야. 아마도 죽음을 향해 가는 후반전을 앞두고 있기에 이 삶을 더 잘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그런 것인가.

 

단테는 이 숲에서, 각각 자만, 욕망, 공포를 상징하는 괴물 세 마리를 만납니다. 그런데, 시적 통찰력의 화신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지옥의 미궁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지옥의 미궁은 자만과 욕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영원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분명히 나에게도 이 숲에서 무수한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이게 흡수되느냐 튕겨져 나가느냐 하는 것은 내 마음이 열렸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또는 얼른 통역사 베르길리우스를 섭외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신화의 힘이 베르길리우스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220 우리가 순종하지 않아야 하느님의 자비가 소용에 닿게 됩니다. 순종하면 하느님에게 찬스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래, 조이스라는 양반이 진짜 하고 싶어하던 말이 이것이었구나하고는, 조이스 관련 강의록에다 ‘<로마서> 11 32,’ 이렇게 메모하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바로 성서에, 똑 같은 숫자 ‘1132’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이스는 자기 걸작의 노른자위를 기독교 신앙 체계의 역설에서 빌렸던 겁니다. 조이스는 죄 많은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 실로 공적, 사적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의식의 심층을 무자비하게 파헤친 것입니다. 다 그 안에 있어요. 조이스는 인간에게 애정을 가지고 썼을 테지요.

그런 암호를 걸어놓을 때의 조이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 명이라도 발견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걸 풀어낸 캠벨의 희열은 짐작할 수 있고. 할튼 천재들끼리 놀긴.

 

224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열립니다. / 나는 이런 가능성을 붙잡고, “이 학생은 여기에 매달리게 해줘야겠구나”, 이런 결심을 하곤 합니다.

눈빛과 낯빛이 달라지고 심장이 뛰는 그런 상황, 주제, 사람을 찾아보자!

 

225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방향 전환의 계기를 기다리는 능력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나는 유럽에서 공부하다가, 1929, 월스트리트가 무너지기 3주일 전에 미국으로 돌아왔어요. 일자리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지요. 그런데 내게 그 시절은 정말 멋진 시절이었어요.

 

나는 돈이야 어찌 되든, 뉴욕의 서적상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서적상은 내가 바라던 책을 모조리 보내면서 일자리를 구하거든 갚으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4년 뒤에나 갚았지만요/ 그는 이 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수도를 설비해놓으면, 이 집이 수도가 있는 집에 살던 학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거예요. 경제대공황, , . 모두 예비된 시간과 예비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의 바닥까지 내려가 진로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25세 무직청년 캠벨이 마음 속 황홀, 천복을 붙잡은 것이 그 예비의 시작이었을 것.

 

227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리.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다. 창세 때부터 천복의 벌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도착해서 문만 두드리면 열어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방향치라 그 문을 못찾아.

 

생명수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목을 쥐어뜯고 있는 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야 당연하지요.

이런 사람들 있더라 하고 비웃곤 하는데 나도 그런 사람일 수도 ㅋ

 

5.     영웅의 모험

 

229 보통 사람의 성취와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거나 이루어낸 영웅입니다.

 

또 하나의 행적은 정신적 행적입니다. 이런 행적에 따르면,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모험에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맵니다. 영웅의 모험에는, 출발과 귀환 사이에 일종의 주기가 있지요.

 

238 그런데 자진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던져지는 여행이 있어요. 가령 징집 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것이 곧 이런 여행이지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도,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해야 하고, 제복을 입어야 하고, 민간인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던져지는 여행이 닫힌 공간일 경우 내면을 향한 모험, 정신적 행적이 이뤄진다. 신영복의 감옥, 김대중의 감옥,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가 그러하다. 이윤기도 베트남 전쟁 때 영문 페이퍼 북을 읽음으로써 이후 번역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으니.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입원을 오래 해서 그 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버릴 건 없구나.

 

239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나이에도 몸을 던져야 하나. 잠 자고 있는 기질이라는 게 있기는 한 지. 탐험할 것이 뭐 있기나 한 지. 어디에 던져야 하나. 고민해보자.

 

초월적인 에너지의 원천은 분명히 있습니다. 물리학자는 아원자 입자를 관찰하다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어떤 흔적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흔적은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난다는군요. 우리 역시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는 합니다. 모든 생명은 다 그렇지요. 이 에너지가 만물의 에너지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신화에 대한 관심은 여기에다 말을 거는 겁니다.

 

245 분열 증세를 보이는 이 모든 경향을 한곳으로 모아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게 할 수 있는 별자리같은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지요.

 

247 광명이라는 존재 앞에서, “, 쇠고기 샌드위치나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고방식, 이게 얼마나 참람한 겁니까? 그 광명을 내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그것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나, 읽을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온 몸의 세포를 열고 더듬이를 곤두세우자. 나이가 들수록 흡수가 어려운 법. 따라서 의식적으로 마음을 열고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메시지의 해독이 힘들면 베르길리우스를 찾아. 분명 지금도 기회는 도처에 있고 천복의 벌판엔 나에게 문을 열어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리자. 어서옵쑈~! 하며 문을 여는 사람들.

 

251 이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서 영웅은, 기왕에 살던 땅에서 새로운 것을 싹 틔울 잠재력이 있는 씨앗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252 동화가 우리의 현실 적응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권선징악은 현실에서는 안일어나더라.

 

253 인생은 꿈, 혹은 거품이라는, 다시 말해서 마야라는 힌두교 관념을 강의하고 있었어요.

 

254 그래요, 나이가 들고, 우리가 알던 사람,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세계 또한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때 비로소 마야의 신화가 가슴에 와닿지요.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세계는 더 만나야 하는 것, 더 살아야 하는 것, 더 사랑해야 하는 것, 더 배워야 하는 것, 더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신화가 필요하지요.

슬프네. 그래도 아직 나는 더 만나고 더 살고 더 사랑하고 더 배우고 더 싸워야지. 나는 영웅신화와 마야신화를 살짝 섞으련다.  

 

256 그러나 석가는 자기 내부에서 부동하는 한 점을 찾아낸 사람입니다. 이 점이 바로 시간이 다치게 하지 못하는 영원입니다. 이번에도 석가는 요지부동입니다. 그러자 석가를 향하여 던져진 무기는 꽃송이로 변합니다.

여기서 마음의 부동산(不動産)’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내부에서 부동하는 바로 그 점이 마음의 재산이다. 시간도 다치게 하지 못하고 타인도 다치게 하지 못하며 나의 잡념도 다치게 하지 못하는 마음의 부동산. 그런 부동산을 개발하는 복부인이 되자.

 

258

내게는 일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거예요. 책을 완성해야 한다는 욕망이 없다면 죽는 거야 언제 죽어도 좋아요.

예전에 러셀 자서전 읽을 때, 러셀에게는 자살에의 충동이 있었음에도 수학에의 열망 또한 강렬하여 죽으면 이 재미난 수학을 더는 못하는데싶어 자살을 못했다는 대목이 있다.  죽음이 두려울 정도의 학문적 욕망이라니. 나도 그런 걸 찾아야겠다. 단지 자식 때문에 눈 못감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그는 매일 메카에 있는 집을 떠나 산 위의 동굴로 들어가서는 명상에 잠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목소리가 그에게, 받아써라!”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하메드는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코란>>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이야기지요.

중간 중간 번역이 너무 웃긴다. 음성지원 되는 거 같다. “받아써라!” 나도 동굴 들어가면 누가 받아써!라고 해주려나. 동굴이라는 공간 외에 명상이라는 행동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지. 결국 글쓰기의 비결은 수 차례 되풀이 되고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 훈련하듯 써라.

 

276 스승이 할 수 있는 것은 암시입니다/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을 만나는 일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라고 했지요. 인간은,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동물입니다.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삶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살아 있는 신화는 우리에게 우리시대에 알맞은 본을 제시합니다.

 

277 우리가 만일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도, 주어지는 것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 개개의 경험과 우리 개개인이 지닌 잠재력의 발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길은,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을 향한 잠재력, 다른 사람은 체험해보지 못한 것,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체험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나만 체험한 것, 그로 인한 잠재력. 그것을 가지고 요리를 해야 세상에 무언가를 줄 수 있다. 나만 체험한 것!이거 화두로 보관.

 

278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279 “죽기에 좋은 날이다!”/ 죽기에 마침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인디언에게 삶의 집착이 있을 리 없지요.

나에게도 이런 주문이 있었는데! “죽기밖에 더하겠어그런데 이젠 가정을 이뤘으니 여기에 맞는 완화된 주문 하나 조만간 만들자. 공포를 정복해야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니.

 

286 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짐작케 해주는 좋은 기준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287 자기가 전혀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땅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바야흐로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기존의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 기존의 법을 어기지 않으면 창조적인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292 여행을 상상 밖의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노인은 도처에 있으니까요/ 자기 나름의 모험에서 공급되는 삶의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생명은 곧 말라버려요/ 그의 개인적인 삶은 곧 원형적인 여행으로 번역되는 것이지요.

 

293 바로 우리 운명을 빚는 도구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지요.

원수가 내 운명을 빚는 도구다. 그러니 사랑하라. 나의 운명을 빚는 연장으로서의 원수를 사랑하라.

 

295 삶을 부수는 이 늙음과 병과 죽음에서 놓여날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296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이 열반은 천국 같은 어떤 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해탈한 마음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지요/ 자진해서 이 세상에 내려와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이 세상의 슬픔에 참여하는 자를 말합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은, 인간성이 지니는 자기 중심적인 수성에서 깨어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자비라는 말은 더불어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특정한 고통과 더불어

개인마다 주어진 십자가에 대해서 특정한 고통이라 여기고 그 고통을 다른 것으로 변용 또는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 특정한 고통이 나의 개성을 발견하게 해주고 운명을 빚어준다는 것. 이것도 생각거리라 보관용.

 

298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창조주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것이 당신의 내부 어디쯤인지 알아야 한다. 이걸 알아내면 당신은 이것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당신 삶의 일부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가능하다.

 

299 삶의 궁극적인 배경은 우연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걸 통해서 와요. 중요한 것은 이걸 탓하거나 이걸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서 생기하는 삶과 대결하는 겁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여기라는 겁니다.

우연하게, 느닷없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이 또는 소나기같이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만난다. 병과 원수와 죽음 또한 그렇게 우연히 올 것이다.

 

301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아요.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고, 그것과 사귀어야 합니다.

모두에게는 나름의 고통이 있고 나름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득도 방법과 세상에 기여할 것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각자의 개성에 기인하는 그 나름이므로 깨달음의 영역에 있어 특별한 사람, 보통 사람이라는 건 없다. 내 삶의 황홀을 발견하는 것도 나이고 내 삶의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도 결국은 나인 것.

 

302

그러나 타인에게 자비의 문을 열고 온 가슴으로 사는 삶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요.

나는 그게 왜 이렇게 힘들까? 거리를 둔 타인에게는 가능하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힘들다.

 

이 잠재력은 기억이라는 튼튼한 금고 안에 들어 있는 것이고요. 어떻게 하면 이걸 열 수 있습니까?

 

303 이렇게 되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것 같은 우리 삶의 순간과 삶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가치를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 / 영웅의 모험, 즉 살아있음의 모험이지요.

 

 

6. 조화여신의 은혜

 

307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개성과 운명을 찾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308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 자기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입니다.

 

309 각각의 형상은 모두 나름의 의도와 가능성을 지닙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미스코리아 출신 이하늬와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이지선. 둘 다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이하늬는 미스 유니버스 출전 당시, 그 타이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다. 이지선 역시 화상이라는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외모가 확연히 다른 두 여성의 삶을 보면서, 그러나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외모(형상)가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하늬의 아름다움에서, 어떤 이는 이지선의 시련에서 신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 형상은 어떤 메시지를 나르기 위한 의도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까? 이것도 생각거리.

 

311

요즘의 젊은 과학자들은 형상을 낳는 장이라는 뜻으로 형태 발생의 장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던가요? 이것이 바로 여신입니다. 바로 형상을 낳는 장입니다.

 

아기를 생성시키는 행위는 우주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신성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지요. 따라서 생명의 에너지가 시공의 장으로 분사되는 이 신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링감과 요니의 상징, 곧 창조적으로 결합된 남성과 여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조각상이 그 난리도 아니었구나.

 

319 바로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동물적인 행동의 장에서 나와 인간적이고 영적인 장으로 들어갑니다.

 

322 예수는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지 육체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영웅이나 반신은 자비로움이 육화된 존재로 태어나지, 성적인 욕망의 소산, 혹은 종의 보존을 위한 소산은 아니라는 겁니다.

 

333 언제 분화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태아 상태일 때는, 남성이 될 것인지 여성이 될 것인지가 정해지는 어떤 시점이 있다고 해요. 이 시점에 있을 때의 우리 육신은 남성과 여성의 잠재력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지요.

한방에도 전녀위남’(轉女爲男)이라고 아들 낳는 처방이 있다. 임신 후 먹는 약으로 태아를 남성으로 바꾸는 처방이다. 우리가 태아시점에 이렇게 한번 남성과 여성의 잠재력을 공유하는 때가 있다면, 갱년기가 되었을 때 즈음 또 한번 그 찬스가 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찬스가 남성과 여성을 서로 이해하게 해주나?

 

334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는 우리의 기대는 우리 인간의 정신에 어떤 변화가 와야, 이로써 사회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사회, 그 사회의 어떤 무리와 동일시하는가?”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기대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 것인가?

 

335

즉 그들은 바로 그들 자신을, 특정 지역의 특정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하나의 국가로 여겼던 겁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구촌이라는 차원에서 한번 일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곧 육인데 어떻게 영적으로 살 수 있습니까?

옛날의 스승들에게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삶의 단서를 줄 의미가 있었지요.

신화는 우리에게 약도까지 그려주고 있어요. 계속 강조하심.

 

336 이런 초음파 중에는 자그마치 18억 년 전에 발생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18억 년 동안이나 우주를 가로질러와 이제야 우리에게 들리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우리와 이 광막한 우주는 하나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주라는 엄청난 공간에 18억이라는 상상불가 시간까지 등장한다. 그러니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기에 우리는 중요한 존재란다. 하긴 별 빛을 보고 있으니 우주의 떨림 또한 받지 못할 것이 없다. 우주와 나는 하나라는 그 느낌을 상상하고 간직해보자.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346 마음과 마음의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주관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영적인 화합을 깨뜨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중세 궁전의 사랑 놀음이라는 것만 해도 대단히 영적인 겁니다.

중국에 가면 공원에서 자녀들의 사진을 교환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가 획득된 듯 했으나 다시 결혼이 부모의 손아귀로 들어간 최근의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것. 결혼으로 이뤄지지는 않더라도 자유연애, 사랑놀음이라는 것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함께. (생각거리)

 

347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349

사랑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순간은 인생에서 고귀한 순간이지요/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나의 사랑이 있어야겠다. 나의 인생이 있어야겠다/ 이거야말로 내 인생이다, 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왕국을 만들어야겠다,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 그것이 가정일 수 있을까, 가정이라는 내 세상, 내 왕국, 가정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자.

 

350

어떤 선의 당대적 개념도 좇지 않고 오로지 자기 경험으로부터만 지혜를 구하려 했다/ 서구식 개인주의는 이런 낭만적인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의 기능은 반드시 개인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개인을 꽃피게 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지, 사회를 꽃피게 하는 것이 개인의 기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을 보면 연애는 낭만적이었을지언정 결혼생활은 개인적이라 정이 없어 보이던데. 서구식 개인주의가 가정에 적용될 때는 어떠할까, 그러한 개인주의가 자녀도 독립적으로 키우고 결과적으로는 가족구성원을 꽃 피게 하는 토양이 되는 건가? 한국은 부부 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끈끈하게 매여 있긴 하다. 전체를 이루는 퍼즐조각이냐 씨줄과 날줄로 매인 천의 한 실오라기.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가족구성원은 각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생각거리)

 

354 어쨌든 여기에는 굉장히 정교한 심리 평가라고 할 수 있는 시험 과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요. (소바주 궁금하네. 알아볼 것)

 

355 사랑의 고통, 의사가 낫게 할 수 없는 고뇌,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상처를 찬양했지요.

예전엔 그렇게도 상사병으로 앓는 사람들이 많았거늘. 이러한 상사병을 어떻게 치유하느냐가 역시 삶에서 의미가 있는 거였을까? 최근에는 데이트 폭력이나 무시무시한 범죄로 분출되는 것 같다. 상사병이 삶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356 사람들이 살기는 살되, 죽은 삶을 살고 있는 땅, 자기 삶에 대해 아무 용기도 없이 사는 땅,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땅이 바로 황무지입니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358

영적인 삶이라는 것은 인생의 꽃이자 향기인 동시에, 개화이자 성취이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주어진 미덕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존재인 것은 바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이 만나기때문이다(토마스 만)

물질과 정신이 만나는 나.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정신이 깃든 나의 육체가 대단해 보인다. 정신이 육체를 떠날 때까지 이 둘이 협력하여 어떤 선을 이룰 것인가. 선을 이루는 그 과정이 바로 영적인 삶일 것이다.

 

359 우리 삶의 모든 행동은 그 결과에서는 한 쌍의 대극을 낳는다는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361 우리 나름의 삶의 모양을 빚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삶의 어려움 중 하나는 모듬살이가 베풀어주는 마당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을 실제로 버티어주는 것이 모듬살이가 될 때 이 삶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그 모듬살이가 사회도 사회지만 가정일 때 역시 나름의 힘듦이 있다. 가정이 나를 버티어주는 마당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삶의 모양을 빚으며 사는 것. 생각거리! 유한한 시간의 장에서 산다는 것에 인생의 슬픔과 가치가 있듯, 모듬살이가 베풀어주는 마당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363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체험을 획득하기 위해 숲 같은 데로 은둔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367 눈을 감음으로써, 즉 현상을 보고 있지 않아야 직관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369 사랑에는 면역성이 없어요.

 

373 한 집안의 영적인 삶을 조언하는 스승

주치의 개념은 들어봤어도 집안의 영적 스승은 참신하네. 요새 그래서 법륜스님 등이 환영을 받는건가.

 

8. 영원의 가면

 

37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요약하면 눈 뜨고 자연의 풍경을 보며 아! 하고 감탄하고, 눈 감고 내면을 들여다 보며 옴~ 하면 되는겨. 더 요약하면 눈 깜박, ! ~ 나는 자연을 좋아하니 신의 일에 참여하는겐가. 하늘 보고 구름 보고 나무와 돌에게 말을 건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한 곳에 모이지요. 이런 식의 기도법을 산스크리트어로는 자파라고 합니다. ‘거룩한 이름을 되풀이 해서 부름이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기도는 잡념을 몰아내고 한 가지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한 가지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면 상상력에 따라 갖가지 차원의 신비 체험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티벳에서 마니차돌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보면서 우습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일상에서 신을 만나고 있었구나. 하루 중 잡념을 몰아내고 단순한 활동 한 가지만을 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한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필사에 대해 계속 애정이 가네. 그래서 컬러링 북이 유행하기도 한 모양이다.

 

379 언어 밖에 있는 깨달음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이미지부터 넘어서야 합니다.

 

자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나는 이데올로기에는 사로잡히지 않겠다. 러셀이 한 말이었나? 자기 신념이 틀릴 수도 있기에 신념 때문에 죽지는 않겠다고.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힌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자. 물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만 집중하는 시간과의 균형도 함께.

 

380 경험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부여하는 단계/ 이 처녀 수태는, 건강, 자손, 권력, 향락 같은 물리적인 것만을 겨냥하던 인간적, 동물적 삶이 영적인 삶을 잉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81 우리는 자아나 욕망에 의지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안의 인류(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자각하는 문맥에서 살아야 한다.

 

383 특정한 대상을 잠재적인 적으로 만들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공격을 정당화시키자면, 증오와 오해와 멸시의 공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공작의 메아리가 지금 이 시간에도 도처에서 들리고 있군요.

 

385 종교적인 삶이라는 것은 이 특정 시간에 존재하는 이 특정 육신의 의도에 따르는 삶이 아니라 대국적인 의식의 통찰 안에서 사는 겁니다.

그간 이 시간을 살아가는 나라는 개인의 인생만 생각했는데, 우주와 연결된 시간의 단편이 되어 살아간다는 생각은 정말 새롭다. 대국적인 의식이라……

 

387 원형의 건축 구조와 우리 정신 기능의 구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일까요? 몽골의 게르는 원형인데……

 

이 디지털 시간을 벗어나야 우리는 진정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새는 시간을 묘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하루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으니까. ‘황혼타소가레’(게 뉘신지)이듯 나도 나만의 시간의 어휘를 만들어봐야지. 옛날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잡을 때 그렇게 했쟎아. 언덕 위의 나무 그림자가 제일 길 때 만나자. 얼마나 두리뭉실하면서 시적인가.

 

392 만달라를 그리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원을 우주적인 원과 상호 작용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만달라를 만들어 우리에게 적용시켜 볼 수도 있어요. 우선 원을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충동 체계와 가치 체계를 명상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이 두 체계의 자리를 정하고 다음에는 자기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검토해봅니다. 만달라를 그려본다는 것은 우리 삶의 흐트러진 여러 측면을 한 자리에 모으는 훈련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이거 해볼 것!)

 

자기 삶의 중심을 우주의 중심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군요.

 

396 신화 이미지는 우리의 내적 체험과 삶을 위한 메시지가 됩니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신화 체계는 문득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 되는 것이지요.

                                                                           

399 예술가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우연한 리듬에 감동을 받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빛을 경험합니다. 조이스가 깔아 놓은 암호를 풀었을 때 짜릿하셨지요? 저도 마음으로 예술작품 감상하며 그 우연한 리듬을 만나보겠습니다.

 

406 우리는 시간에 갇힌 존재랍니다/ 시간의 너울을 태우고 우리 마음을 영원으로 열어주는 불꽃이 있습니다.

 

410 이 에너지는 만물에 시간의 단편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시간의 단편을 통하여 원초적인 존재의 광대무변한 힘을 체험하는 것, 이게 바로 예술의 기능입니다.

 

411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신의 체험은 언어 밖에 있다……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려고 한다.

 

자기 인생이 누군가의 명령과 계획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어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말하자면 어떤 소설가에 의해 쓰여진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거지요.

그런 느낌 확실히 있다. 소설가가 미리 결말까지 만들어놨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주인공 죽이면 안된다라는 시청자들의 부탁과 협박에 결말이 바뀌는 드라마도 있으니까. 그 소설가가 신이라 해도 결말은 바뀔 수 있고 그렇게 바꿀 수 있는 힘은 주인공이 절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 안에 있되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의지에 의해 구성되고 계획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우연히 만나는 특정인은 때로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가 있습니다.

 

412 어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많은 사건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의지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하지요/ 인생은, 확대 재생산하고 존재를 계속하려는 충동을 지닌 원형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사춘기를 호르몬 덩어리라고 한 표현을 봤는데 진짜 확 와닿더라. 젊은 시절의 불 같은 연애도 그런 충동을 지는 원형질의 충동질로 인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가 현재의 나. 잠재력을 품고 있는 내 육체 안에 살고 있는 자가 그 잠재력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몫. 내 안에 사는 자가 언제 우주의 떨림을 감지하는지, 언제 삶의 황홀을 느끼는지 살펴볼 것, 모르겠으면 아무 상황이나 던져 볼 것. 파르르 떠는 순간을 포착할 것. 모험을 떠나라.

 

413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 그 자체이다……

 

나바호 인디언에게는 소위 화분의 길이라고 하는 놀라운 이미지가 있어요. 그들에게 화분은 곧 생명의 근원입니다. 화분의 길은 곧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내 앞도 아름답고, 내 뒤도 아름답고, 내 오른편도 아름답고, 내 왼편도 아름답고, 내 위도 아름답고, 내 아래도 아름답다. 나는 화분의 길에 들었노라”. 이렇게 노래한답니다.

공중에 흩날리는 화분의 길이라니, 아름다운 이미지다. 나바호 인디언의 화분의 길’, 나중에 찾아볼 것. 한 편의 시일 듯.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

이 책은 PBS에서 1988년 방영된 ‘Joseph Campbell and the Power of Myth’라는 6부작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대담집이다. 스타워즈와 마찬가지로 6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졌으며 PBS에서 방영될 당시의 순서는 1. 영웅의 모험, 2. 신화의 메시지, 3. 태초의 이야기꾼들, 4. 희생과 천복, 5. 사랑과 여신, 6. 영원의 가면의 순서였다. 이 다큐멘터리가 대담집으로 나올 때엔 신화의 메시지신화와 현대 세계내면으로의 여행으로, ‘사랑과 여신조화여신의 은혜사랑과 결혼 이야기로 나누어져 총 8개의 장()이 된다. 순서도 약간 바뀌어 영웅의 모험보다 신화와 현대 세계가 먼저 나온다.

 

한 회 방송분이 각 장()이 되는 것은 이견이 없으나 풀어놓은 자유로운 말의 흐름을 활자화 하자니 그 양이 방대한 감이 있다. 대담을 듣는 것읽는 것에는 집중력 차이도 있기에 한 회 방송분을 그대로 하나의 장()으로 구성하면 읽다가 길을 잃을 위험이 있다. 커다란 주제 아래 다시 나눠지는 작은 화제들이 있으므로 작은 화제로 덩어리를 나눠 읽기 쉽게 구성하면 좋겠다.

 

보완이 필요한 점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어휘가 아닌 다소 낯선 어휘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언어, 즉 현대 영어 외에 고대어와 기타 외국어가 등장하다 보니 이를 한국어로 번역함에 있어서도 잘 쓰이지 않은 단어가 선택이 된 것 같다.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역주로 달려 있었으면 보다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장점

대담집이라는 형식이 무엇보다 좋았다. 다루는 영역의 방대함과 내용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조셉 캠벨과 인터뷰어 빌 모이어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대담집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빌 모이어스는 대중의 입장에서 궁금할 수 있는 질문을 주저함 없이 던지는 반면, 가끔은 조셉 캠벨이 다른 주제로 흐르는 것을 빠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러한 대목에서 두 사람의 친근하고 편안한 관계가 느껴져 그들과 대화하듯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빌 모이어스의 서문이 좋았는데, 조셉 캠벨과 생전에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신화 속 인물을 언급하며 나눈 대화를 시작으로 그의 일생을 소개하여 책을 읽기 전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아무리 가정이라 해도 내가 조셉 캠벨이 되어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은 앞으로 몇 번을 환생해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이 책은 대담집이므로 공동저자라 할 수 있는 빌 모이어스의 입장에서 내가 저자라면을 써보기로 한다. 대담집이라 잘 읽힌다는 장점도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흐름을 잃고 장황하게 읽힐 위험도 있다. 목차 부분에서 언급했듯 큰 주제 아래 각각의 화제를 나누어 먹기 좋게 썰어놓는 형식이 필요해 보인다.

 

캠벨도 언급했듯 스타워즈는 신화의 현대버전이다. 대담이 촬영한 장소 역시 조지 루카스 소유의 스카이워크랜치였다고 한다. 신화가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으므로 스타워즈를 이 책의 샤먼으로 삼는 구성이 재미있을 것 같다. 신화와 관련된 고대 미술 외에 스타워즈의 장면도 삽입된다면 보다 흥미를 자아낼 수 있으리라 본다.

 

각 나라 또는 민족의 신화지도를 부록으로 만들어 곁들인다면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애초에 말이라는 수단이었기에 책으로 구현할 때에는 입체적인 구성을 하는 것이 말과 글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방송을 통해 시청자의 입장에서 들어온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질문을 채택하여 조셉 캠벨의 답변과 함께 마무리가 된다면 상호소통이 구현되는 대담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i] "If the body is a light bulb and it burns out, does that mean there's no more electricity? The source of the energy remains. We can discard the body and go on. We are the source."

Joseph Campbell, “A Joseph Campbell Companion: Reflections on the Art of Living (Copyright © 1991 Joseph Campbell Foundation), 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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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16:20 *.124.22.184

역시 다른 사람의 다른 시각을 보는 게 공부네요.  리아님 글 보니 작가의 표현에 찜 해놓았네요. 저도 다음부턴 찾아봐야겠어요.

저는 내 생각과 다른 것에 계속 딴지걸면서 내용위주로만 보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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