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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0일 22시 04분 등록

사마천 역사서로 代를 잇다

 

 

: 내 이름은 유천낭. 서한의 명장 이광이 나의 외할아버지이고, 아버지 유진정은 시서화에 뛰어난 분이셨죠. 저는 아버지의 이러한 재능을 물려 받아 5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워 벽에 작은 동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답니다. 10살 때에는 산수, 인물 등을 그려 동네사람들이 저더러 꼬마화가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15살 때에는 <육경>을 통독하고 <장자>, <이소> 등을 읽었습니다.

 

: 내 이름은 사마천. 아버지는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으로 천문과 역학은 물론 도가(道家)까지 두루 섭렵한 뛰어난 학자였다네. 아버지는 천문학, 주역, 음양의 원리 등을 깨치셨고 주로 도가의 영향을 받으셨지. 나는 10살 때부터 학문을 시작하였는데 당시의 대학자 동중서, 공안국(논어 주석을 쓴 사람) 등에게 문학과 역사학 경전에 대한 지식을 배웠다네. 내가 살던 집 뒤로는 황하가 도도히 흐르고 있었는데 13살 때 아버지가 잠시 고향으로 돌아와 나를 데리고 황하와 위수 일대를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셨던 기억이 새삼 나는군. 그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는 방랑수업, 현장답사가 시작된 것이야.

 

: 저는 15살 때 어머니를 따라 장안에 계신 외할아버지(이광)를 뵈러 갔다가 우연히 당신-사마천-의 글을 보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졌습니다. 사촌오빠 이릉의 도움을 받아 몰래 당신의 얼굴을 보고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지요. 그런데 하필 이광리-한무제의 처남-가 저에게 반해 그만 첩으로 삼으려 했던 것을 아시나요? 저는 그의 첩이 되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를 피해 사마천 당신의 집으로 도망갔지요. 이때부터 박학다식한 당신과 서로 알게 되고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따라 명산대천과 역사명승을 돌죠. 강회, 여산, 구의산 장사 등지를 가보고 그곳에서 자료를 수집합니다. 지도도 그리면서 풍찬노숙하며 당신이 사기를 쓰는데 필요한 상세하고 가치 있는 사료를 모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 스무 살 무렵에는 견문을 넓히고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기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답사하며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했다네. 벼슬살이를 시작한 후로는 무제를 수행하며 전국을 다녔지. 이러한 현장 경험은 이후 <사기> 저술에 큰 도움이 되었다네. () 나라의 애국 시인 굴원(屈原)이 자살한 멱라수(汨羅水)를 찾아가서는 애도를 표했고, 한신(韓信) · 소하(蕭何) 등 한나라를 세운 공신들의 고향을 찾아가서는 현지에서나 전해오는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모으기도 했다네. <사기>에는 이러한 현장감이 담겨 있지.  

 

: 그랬지요. 결혼 후 당신은 아버님과 장강남북을 돌아다니셨죠. 서남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황제를 모시고 전국을 순유할 때 얻은 자료를 당신이 정리하고 있을 때 저는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자료의 고증을 도왔었지요.

 

: 아버지와 함께 하던 어느 날, 낙양에서 아버지는 생을 마감하셨고 나에게 유언을 남기셨다네. 사관집안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당신이 저술하시던 사기를 나더러 완성하라고 하셨지. 나는 그렇게 '역사서의 완성'을 필생의 사명으로 물려받게 된 게야. 38살 때인 기원전 108,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으로서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지.

 

: 그래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40대에 접어든 당신은 조정의 일과 <사기> 저술이라는 두 가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셨지요.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기억하시나요? ‘빈객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밤낮없이 미미한 재능이나마 오로지 한마음으로 직무에 최선을 다해 주상의 눈에 들고자 한다라고 쓰셨지요. 당신, 정말 열심히 살았었는데

 

: 아버지의 유언이 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네. 하지만 하늘은 내가 그저 그런 역사서를 쓸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사기>의 퀄러티를 위한 또 다른 장치로서의 사건을 내게 던지고 말지.  태사령에 임명된 지 10년째 되던 기원전 99, 47살이 되던 그 해 내 인생에 중대한 전환이 되는 뜻밖의 사건을 맞이하게 되네. 이른바 ‘이릉(李陵) 변호사건’ 또는 ‘이릉의 화’라 부르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신의 뜻, 우주의 뜻인가 싶다네. 한나라의 영웅인 이광(부인의 외할아버지)의 손자 이릉(부인의 사촌 오라버니)이 흉노족과 싸우다 투항한 사건이 있었지. 기존의 그의 충성심과 용맹함을 감안하면 비겁한 항복은 아닐 거라 생각하였다네.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명장 이광의 손자로 이릉은 그간 흉노 토벌에 빛나는 공을 세웠단 말일세. 다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어쩔 수 없이 흉노에 항복한 것 뿐이거늘. 하지만 그를 변호하는 와중에 작전상의 실수가 한무제의 처남인 대장군 이광리를 지목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게 된 걸세. 그렇게 나는 한무제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고 1년이나 옥고를 치뤄야 했지.

 

: 외할아버지와 외사촌 오라버니, 그리고 저를 첩으로 삼으려 했던 이광리가 얽힌 악연이었지요.

 

: 1년 후 내게는 형벌을 고를 권리가 주어진다네. 50만전이 있으면 풀려 날 수 있었지만 중인계급인 나에게 50만전은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지. 나는 앞이 캄캄했다네. 일이 왜 이렇게 꼬인 것인 지 답답했다네. 아버지의 간곡한 유언이자 필생의 사업인 <사기>가 눈에 아른거렸지. 그래, 나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다. 결국 궁형을 선택했고 그렇게 내 나이 48세에 궁형을 당하게 된다네.

 

: 얼마나 힘드셨어요. 당신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사형보다 더 치욕적인 형벌을 자청하셨지요. ‘내가 화를 누르고 울분을 삼키며 옥에 갇힌 까닭은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였소라고 옥 중에서 친구 임안에게 편지를 쓰셨지요. 저는 당신이 궁형을 당한 후에도 사기를 완성하도록 당신을 격려하였습니다. 당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저는 사기 정본을 가지고 암자로 들어가 성과 이름을 숨기고 갖은 고난을 겪으며 <사기>를 세상에 내놓을 날을 기다렸습니다.  

 

: 그렇소, 당신 덕에 사기를 집필하고 완성하고 남길 수 있었소. 무엇보다 당신은 나를 그려줬지요.

 

: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이 20세부터 55세까지, 매년 당신을 위해 1장씩 연도별로 화상을 그렸습니다. 모두 35폭이었죠. 당신이 돌아가신 후 아들 사마침과 사마관은 사위인 양창, 외손자인 양운을 통하여 당신의 유골을 고향으로 모셔 안장하였습니다. 48세 이전의 당신의 화상에는 모두 검은 수염이 가슴까지 휘날리지요. 이후의 그림은 궁형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로 수염 없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 당신은 가슴까지 휘날리는 수염이 있는 대장부로 새겨져 있습니다.

 

: 그렇다네. 내 비록 남자로서 치욕적인 형벌을 받지만 아내의 도움과 더불어 아버지의 유언대로 <사기>를 완성하네. 나는 그렇게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의 代를 이었네. <사기>를 읽는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네. 사기의 독법은 나의 관점을 보라는 걸세.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나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네.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면면히 흐르는 나의 저항정신도. <사기>는 나의 몸과 마음그리고 영혼을 담은 자식이니 말일세.

 

1. 백이열전

 

71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위대한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 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16-17)’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천하라는 소중한 그릇,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을 전달받는 왕의 의미가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퇴색되고 변질되었다.

 

76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의 당혹감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악한 사람은 끝내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권선징악은 동화책에서나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당혹감은 독일의 괴테도 겪었고 그는 지상에서의 비극 = 천상에서의 희극이 될 수 있음을 알렸다. 하늘의 도는 그것이 이뤄지는 시공간적 차원이 다른 것이다.

 

77 공자가 말한 길이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또한 저마다 자기의 뜻을 좇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또한) 말했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78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지만 훌륭한 명성이 묻혀 거론되지 않는 것이 슬프구나!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 중에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지고한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23 주공이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되어 공자가 나타났고,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 만에 사마천 자신이 나타났으니, 사기를 지어 성인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사기저술 작업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강조한 것이다.

 

2. 관안열전

 

출신이 보잘것없던 그가 재능을 펼치고 제나라의 뛰어난 재상이 된 것은 전적으로 포숙의 추천 덕분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사람을 알아보는 포숙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상대방의 학력을 몰라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결국엔 티가 난다.

 

이 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제 환공의 포용력으로 인재를 발탁하는 능력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는 포숙의 대범함에 있다.

 

83 관중은 빈곤하여 언제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끝까지 그를 잘 대해 주고 속인 일을 따지지 않았다.

 

84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내가 자그마한 절개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이해심이다. 나에게도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을까(있다). 또한 내가 무조건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있다).

 

84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85 백성과 더불어 좋고 나쁜 것을 나누었다.

여민락(與民樂). 듣기도 좋고 뜻도 좋다.

 

85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부모형제, 아내, 자식-이 굳게 결속하고, 사유-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 , , -가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그런데 배고픈 이가 배고픈 이의 심정을 알고, 99마리의 양을 가진 이가 1마리 양 가진 이의 양을 빼앗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배고팠다가 곳간이 채워진 자에게서 인심 난다.’ 나는 그런 마음과 곳간의 넉넉함을 가진 부자이고자 한다.

 

87 (안영은) 제나라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놓지 못하게 하고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8 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는 노역에 종사하거나 외출할 수도 있지만 저녁이 되면 반드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88 그런데 지금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건만 겨우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아주 의기양양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첩이 헤어지자고 하는 까닭입니다.

 

10 여기서 패도란 인과 의를 가볍게 보고 권모술수와 무력을 숭상하는 것으로서 왕도와 상반되는 뜻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 여러 제후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도 제후들이 대부분 패도를 숭상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과 의로 다스려지는 지상낙원의 건설은 결국 헛된 꿈일까. 지금은 권모술수와 무력을 숭상하는 패도가 아닌 황금을 숭상하는 패도라 할 수 있다.

 

90 오늘날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

이런 마음이 들었던 사람이 내겐 두 분 계시다. 한 분은 고인이 되셨지만.

 

3. 노자, 한비 열전

 

법치를 내세운 한비는 전국 시대 한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로서 눌변이지만 논리력을 필요로 하는 글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 중 하나만 잘하는 사람도 있고.

 

95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모습과 지나친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이런 지적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한 순간 역사적인 두 인물은 통한 것이다. 지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은 사람한테는 나도 지적 안 하게 되더라.

 

96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그는 학문을 스스로 숨겨 명성을 없애는 데 힘썼다.

 

96 선생께서는 앞으로 은둔하려 하시니 (저에게) 억지로라도 책을 지어 주십시오.

노자의 마지막은 진짜 어땠을까. 궁금하다. 철저한 잠적과 은둔.

 

97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내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를 내쳤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아마도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이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98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이 생각대로 펼쳐졌으므로 왕공이나 대인들에게 그릇감으로 여겨지지 못했다.

 

98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내 뜻대로, 여의(如意)라는 말 좋다. 이렇게 쓰다가 문득 여의주는 어떤 한자일까 하고 보니 같은 한자이다. 모든 바람을 들어주는 구슬.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뜻대로 되게 하려면 일단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라는 인형에 매달린 실부터 잘라보자. 그런 얽매임이 없어진 후에라야 내 뜻대로 춤추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99 사물이 극단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사상으로 기본 틀을 삼는다.

극단은 극단끼리 통하고. 火인 나와 木인 남편이 함께 화목을 이루게 된다.

 

101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의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101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102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SWOT 분석이니 브랜딩이니 다 이런 것. 제품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소비자의 마음에 유세하는 것.

 

103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103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

 

103 재상 이윤이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가 포로가 된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면서도 이처럼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은 뒤에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재능 있는 인재라도 이러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104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105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 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고, 뒹굴 자리를 보고 씨름에 나가자.

 

105 용이라는 벌레는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용이) 죽인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한 유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지 말아라. 사람 사이에서도 약점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106 나는 다만 한자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슬플 뿐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인가. 그 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하고 상상하며 그 이후의 내 인생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평탄하게 굴러갔을 거 같지는 않더라. a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타격의 b라는 일이 일어났을 것 같더라. 물레방아를 다 없애도 결국은 찔리고 말았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인간에게 지워진 재앙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일까?

 

107 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이고, 무위에서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다. / () 요지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무위에서 변화에 호응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 나중에 찾아볼 것.

 

107 그 극단에 치우쳐 각박하고 은혜로움이 부족했다. (이들 셋은) 모두 (노자의) 도와 덕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니 노자의 사상이 깊고도 먼 것이다.

 

5. 손자Ÿ오기 열전

 

124 손빈이 도착하자 방연은 그가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고 시기하여 죄를 뒤집어씌워 손빈의 두 발을 자르고 얼굴에 글자를 새기고는 숨어 살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사람의 질투란. 나는 이런 질투심을 잘 이해 못하겠다. 잔혹함을 부르는 것은 분노보다 질투인 경우가 많다.

 

125 급소를 치고 빈틈을 쳐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126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잘 이용하여 유리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130 아름답구나, 산천의 견고함이여! 이는 위나라의 보배로구나!

파우스트의 잔상이 아직 남아서 밑줄을 긋는다. 자연을 바라보며 너 아름답구나! 하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여.

 

131 이렇게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중요한 것은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적국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134 초나라의 도왕은 평소 오기가 현명하다고 들어 그가 오자 초나라의 재상에 임명했다.

 

135 오기를 쏘아 죽인 일에 연루되어 일족이 모두 죽은 자는 70여 집안에 이르렀다.

세상에! 70여명이 아니라 70여 집안이다. 이런 연좌제가 서양에도 있었나? 문득 궁금해진다. 동양이 유난히 씨를 말린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은 아닌지.

 

135 속담에 말하기를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행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6. 오자서열전

 

1 춘추 오패 중 한 사람으로, 백수 생활 3년을 청산하고 마침내 세상을 장악했다. 부하를 잘 다루고 덕을 행한 군주로 평가된다.

이걸 믿으라고? 3년간의 백수생활이 백수생활이 아니었을 터. 1000일 동안 그는 어떤 매일의 힘을 길러 세상을 장악했을까.

 

140 건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로 평왕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다. 평왕은 건을 차츰 멀리하더니 성보읍을 지켜 변방을 방비하도록 하였다.

반대로 아내를 사랑하면 그 아이들까지도 사랑하지. 재혼가정에서 아버지가 사별 후,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더 사랑하여 엄마 잃은 본처자녀들이 홀대 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141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142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힘을 빌려 아버지의 치욕을 씻는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침착하고 지혜롭고 현실적이다.

 

144 오랜 시간이 지나 초나라 국경의 종리라는 마을과 오나라 국경의 비량지라는 마을은 모두 누에를 치며 살았는데 얼마 뒤 이 두 곳의 여자들이 뽕잎을 차지하려 다투다가 마을 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을 보고 초나라 평왕은 몹시 화를 냈고, 두 나라가 모두 병사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게 되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며 살 것이지, 뽕도 잃고 땅도 잃고.

 

145 그래서 공자 광에게 전제라는 사람을 추천하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초야에 묻혀 밭을 갈았다.

일견 안타까워 보이지만 어쩌면 자연에 묻혀 승과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148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엎고 말 것이오.”

신포서는 말했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킬 것이오.”

 

149 초나라는 비록 도리는 없으나 이토록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으니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150 월나라를 오나라에 바쳐 자신은 오나라 왕의 신하가 되고 자기 아내는 그의 첩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151 지금 오나라에 월나라가 있다는 것은 사람의 배 속에 병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왕께서는 월나라를 먼저 없애려 하지 않고 제나라를 치려는 데 힘쓰고 있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나라가 배 속에 병이 생긴 거라고 할 정도였으니 오죽하면 오월동주라는 말이 나왔을까.

 

155 9년 뒤에 월나라 왕 구천은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죽였으며 태재 백비도 주살했는데 자기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고 구천 자신과 내통하였다는 이유였다.

 

155 승이 직접 칼을 갈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이게 순서가 좀 왔다 갔다 하네. 칼을 갈고 있던 승이 나중에는 초야에 묻혀 밭을 가는구나(145).

 

7. 중니제자열전

 

유가의 창시자 공자는 주나라의 신분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과도기에 살았는데, 오랜 세월 제자들과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봉건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적 직책을 갈망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논어를 읽을 때는 공자가 왜 그렇게 천하를 주유해야 했을까 싶었는데 사기열전을 읽어보니 공자왈이 씨알이 먹힐 시대가 아니었더라. 사람 목숨이 파리만도 못한 시대에 仁이 무슨.

 

공자의 이름이 후세에 알려지게 된 이유가 자공 덕분이라는 사마천 특유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생동감 있는 묘사 기법과 사실에 근거한 자료 수집이 돋보이며, 불분명한 내용도 그대로 전한다는 원칙을 보여 주고 있다.

자료는 사실에 근거하되, 불분명한 거라도 전한다.

 

163 단목사(자공)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재물만을 모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했다.

내가 익히고 싶은 기술이다. 세상의 흐름을 보고 예측할 수 있는 것. 돌고 돌아 돈이라 하듯이 재물, 돈의 흐름을 통해 세상의 흐름이 읽혀지는 법이다.

 

164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살펴보면 (내가 해 준 말들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166 백우가 악질(문둥병)에 걸렸을 때 공자가 문병을 갔다가 창문 사이로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늘의 운명이구나! 이 사람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운명이구나!”

병을 운명이라 한 것이 도리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성경에서는 신의 징계수단으로 문둥병이 언급되는 것이 불편했었다.

 

168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악셀만 있는 자에게는 브레이크를, 브레이크만 있는 자에게는 악셀을. 부모는 자녀에게, 배우자는 배우자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그러한 보완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169 자로는 제명에 죽기 어려울 것이다.

 

169 해진 솜두루마기를 걸치고서 여우나 담비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자와 함께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170 머릿수만 채우는 보통 신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2 아아, 자로가 죽겠구나!

그 뒤 얼마 안 되어 정말 자로가 죽었다. 공자는 탄식했다.

내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뒤로 남의 험담을 듣지 않았거늘.”

이때 자공은 노나라를 위하여 제나라에 사자로 갔다.

 

173 재여는 참으로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년상이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의식인 것이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온전히 챙겨줘야 하는 아기. 태어나서 3년은 부모의 케어가 필요하다.그래서 부모님 3년상이 나온 모양이지만 사실은 부모가 아기처럼 무력해지는 말년에 효를 다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죽고 나서 3(정확히는 25개월)이 무슨 의미. 재여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제안을 한 거 같은데 공자가 인하지 않고 박했다. 3년상으로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 터. 신사임당도 친정아버지 3년상을 치뤘다고 함.

 

176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184 오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고서 급히 진나라와의 싸움을 그만두고 돌아와 오호에서 월나라와 세 차례 싸웠으나 다 지고, 결국 월나라 군대에게 도성까지 내주었다. 월나라 군대는 궁궐을 에워싼 뒤 오나라 왕 부차를 죽이고, 재상 백비의 목을 베었다.

 

184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 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대단한 지력가다. 나라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니 돈을 굴리는 것은 껌 씹듯 쉬웠을 듯.

 

184 자공은 또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일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돈을 잘 굴렸다.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못하였다.

돈을 굴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에 새삼 주목하게 되네. 돌고 도는 돈을 굴렁쇠라 생각해보자.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 등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자공.

 

187 그는 자식이 죽자 너무 슬퍼하여 소리 높여 울다가 눈이 멀었다.

다소 과장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감정이 극한 상황에 이르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몸이 상할 정도의 감정의 극한에 흐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계속 모르고 싶고. 울다 눈이 멀고 걱정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상황의 극한의 슬픔과 염려.

 

190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193 (그가 를 보다가) “흰 옥의 티라는 구를 세 번 되풀이하여 읽자, (공자가)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194 내가 걸어다니고 그를 위해 곽을 만들어주면 될 터인데 그러지 않은 것은 나도 대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걸어서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9 번수가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말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200 유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주시오. 그곳은 당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오.

그곳에 유자를 앉힌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의지였다. 이 에피소드만 보면 닮았다고 유자를 공자처럼 모셨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나 현실에서 이런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닮은 모습으로 상징되는 여러 허울과 가짜. 가짜인데 진짜인 양 속이는 사람도 문제지만 껍데기에 현혹되어 속을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문제.

 

8 상군열전

 

208 공숙좌가 세상을 떠난 뒤 공손앙은 秦나라 효공이 전국에 어진 이를 찾는다는 포고령을 내리고 목공의 패업을 이어 잃었던 동쪽 땅을 되찾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어진 이를 찾는다

 

210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움트기도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논의하는 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좇지 않습니다.

 

211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은 백성의 풍속을 바꾸지 않고 교화시키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바꾸지 않고 다스립니다. 백성의 풍속에 따라서 교화시키면 힘들이지 않고도 공을 이룰 수 있고, (있는) 법에 따라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할 것입니다.

 

211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얽매입니다.

멋진 말이네. 법을 만들고 고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제 받고 얽매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213 상공업에 종사하여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와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모두 체포하여 관청의 노비로 삼는다.

너무하네. 박했다 진짜. 상공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은 무슨 죄야. 가난이 꼭 게으른 탓도 아닌데.

 

214 그러나 태자는 군주의 뒤를 이을 사람이니 형벌을 가할 수도 없어서 태자의 태부로 있던 공자건을 처벌하고 태사 공손가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너무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음. 결국 나중에 벌 받음.

 

215 백성은 아버지와 자식 또는 형제가 한집에 사는 것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

 

215 (주나라) 천자가 조상의 제사에 쓴 고기를 효공에게 보내니 제후가 모두 축하해 주었다.

 

217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맹난고의 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당신과 사귀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인간관계의 프로포즈. 멋지네. 꼭 남녀 간의 교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제 제안. ! 저사람과 알고 지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218 돌이켜 귀 기울이는 것을 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볼 수 있는 것을 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彊이라고 합니다. 순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총명이 그런 뜻이구나. 그래서 총에 耳가 들어가는 구나. 귀 기울이고 마음 속으로 보는 사람.

 

220 오고대부가 세상을 뜨자 진나라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며, 절구질을 할 때도 방아타령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고대부의 덕정때문입니다.

 

221 ‘에서는 덕을 믿는 자는 창성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은데 아직 목숨을 연장하여 더 오래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상과 오의 성 열다섯 개를 돌려주고, 전원으로 물러나와 꽃과 풀에 물을 주며 살지 않습니까? 동굴 속에 숨어 사는 현명한 사람을 세상에 나오도록 하여 진나라 왕에게 추천하고, 노인을 받들어 모시고 고아를 보살피며 부모와 형을 공경하고, 공을 세운 자에게 그에 걸맞은 지위를 주고 덕 있는 자를 존중한다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9 소진열전

 

227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따르면 농사를 주로 하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에 힘써서 10분의 2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임무인데 지금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입과 혀끝만을 놀리고 있으니 곤궁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227 그리하여 주나라 책 음부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다. 1년쯤 되어서야 (유세할)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말했다.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들에게 유세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머리 파묻고 읽어서 설득의 심리학을 깨친 것인가. 1년 만에 가능한가?

 

228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소. (우리 나라는) 다스리는 이치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천하를 통일할 수 없소.” 당시 진나라는 상앙을 죽인 뒤라서 변론하는 선비들을 싫어하여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234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병사의 자질이 뛰어난지 모자란 지를 헤아려, 두 군대가 서로 싸울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기고 지는 것과 죽고 사는 관건이 이미 가슴속에 생기게 됩니다. 어찌 평범한 사람들의 말에 가려 어두컴컴한 곳에서 큰일을 결정하겠습니까!

 

235 대체로 다른 사람을 깨뜨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깨지는 것, 다른 사람에게 신하라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신하로 거느리는 것을 어떻게 한날에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237 이 무렵 주나라 천자가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올렸던 고기를 진나라 혜왕에게 보냈다.

215 페이지에는 (주나라) 천자가 조상의 제사에 쓴 고기를 효공에게 보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대단한 의미인가봐? 이번엔 혜왕에게 보냈네.

 

238 또한 대왕의 땅은 다함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어, 다함이 있는 땅을 가지고 끝이 없는 요구를 맞이해야 하니, 이것은 이른바 원한을 사고 불행을 불러오는 격입니다.

개인의 인생에 적용한다면? 다함이 있는 시간과 육체(건강)를 가지고 끝이 없는 요구를 맞이하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는지?

 

243 신은 가만히 왕을 위하여 그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사기열전 내내 보이는 이러한 표현이 재미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상태에서 조언을 한다. 나의 보스 존 카힐은 항상 “I totally agree with you, BUT!...”하며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클라이언트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반박하지 않으면서 제안을 하는 그만의 화법이 있었다. 에이젼시나 컨설턴트의 화법은 사기꾼의 화법과도 맞닿아 있긴 함.

 

244 (제나라는) 멀리 치우쳐 외진 곳에서 바다에 의지하고 있으며, 길이 끊긴 동쪽 변두리 나라이기 때문에 여태까지 남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소.

 

245 신이 듣건대 (모든 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환이 닥친 뒤에 걱정하면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이 점을 빨리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질환을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 나의 주치의는 내가 질병둔감도가 높다고 한다. 이번 달은 건강검진의 달이 될 듯.

 

247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맹약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울러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다국적 회사 차렸다. 해외시장에서 로열티 받고 사는.

255 신이 죽으면 신을 거열형으로 다스려 시장 사람들에게 돌려 보이시고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신을 죽이려던 자를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시신이 훼손되면서까지 그 놈을 찾아야 했겠나? 지독하다. 공자가 보면 仁이 없다며 통탄할 노릇이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한들 마땅한 벼슬 하나 얻을 수 없던 이유를 알겠다. 시대가 엉망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으니 공자의 존재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당시에 仁을 이야기 하며 다닌다는 것이 참 대단한 의미였구나.

 

258 대체로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를 좋아하고 멸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한다고 합니다.

 

261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10 장의열전

 

271 장의는 위나라 사람이다. 처음에는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종횡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71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 주시오.”

신체부위에서 자신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일까. 난 예전엔 다리였는데(싸돌아 다녀야 하니) 요새라면 내 손가락이 멀쩡한지 보아 주시오라고 할 것 같다.

 

272 자네같이 재능을 가진 자가 이처럼 어렵고 부끄러운 처지가 되었는가? 내 어찌 자네를 왕에게 추천하여 부귀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네는 거두어서 쓸 만한 인물이 아니네.

 

273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자네는 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의도를 갖고 모욕을 주고 시련을 준다. 또한 은밀히 도와줄 천사를 옆에 붙인다. 일개 인간도 이러한데 신은 오죽하랴!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인간유형도 나의 뜻을 북돋아 주기 위해 신이 보내신 건가. 싫은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은데 신이 보낸 인간으로 봐야 하나?

 

279 진나라는 다시 위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한나라 신차가 거느린 군대를 깨뜨리고 팔만 명의 목을 베었다.

인구가 많아서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가? 팔만 명의 목이 베어지면서 몇 배의 인생이 뿌리가 뽑히고 무너졌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팔만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에게 의지했을 때 어머니, 아내, 자녀들의 삶은 어쩌나.

 

279 위나라 땅의 형세는 본래 싸움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281 초나라 군사가 많다고는 하나 쉽게 달아나 굳게 지켜 싸우는 끈기가 없습니다.

 

281 그리고 신은 잠시 휴가를 얻어 위나라를 떠나 있고 싶습니다.

 

288 신은 병력이 부치면 싸워서는 안 되고, 식량이 부치면 오래 싸우지 말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92 호랑이처럼 용맹한 병사, 맨발에 투구도 쓰지 않은 채 적진으로 뛰어드는 병사, 화살이 턱을 꿰뚫어도 창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달려가는 병사가 셀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로봇 같은 병사. 실제로 저렇게 앞뒤 안보고 싸울 수 있으려면 생각하는 힘보다는 입력된(세뇌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누군가의 심은 의도대로 살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적인 조작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조작 등.

 

293 나라의 오랜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한순간의 달콤한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남의 임금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93 대체로 화를 만들어 놓고 복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그 계책이 성글어서 진나라에 깊은 원한만 사게 됩니다.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른다면 멸망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수 없습니다.

 

293 이는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땅의 형세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294 비록 전쟁에서 이겼다는 명성은 얻었지만 실제로는 나라가 망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제나라는 크고 노나라는 작았기 때문입니다.

 

295 제나라는 외지고 보잘것없는 나라로서 동해 가에 숨어 있으므로 일찍이 사직에 주는 이익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없소.

 

298 그 누이는 이 소식을 듣고 비녀를 날카롭게 갈아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마계산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300 제후들은 장의와 무왕 사이에 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연횡 약속을 어기고 다시 합종하였다.

 

304 내가 공을 일에 신물이 나도록 해 드려도 괜찮겠소?

 

306 대체로 사람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병이 났을 때입니다.

그리고 고향의 맛이 그립지. 한국에 오래 살았던 어떤 일본인이 죽기 전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고 했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11 저리자, 감무열전

 

313 저리자의 이름은 疾이고 진나라 혜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어머니는 한나라 여자이다. 그는 우스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여 진나라 사람들이 지혜주머니智囊이라고 불렀다.

아니 이름을 왜 하필이면 疾로 했대? 중국어로는 날쎄고 사납다는 뜻이 있긴 하더라마는.

 

317 과인은 삼천(여기서는 韓나라를 의미함)까지 길을 넓혀 휘장이 쳐진 수레를 타고 가서 주나라 왕실(이 있었던 낙읍)을 보고 싶소. 그렇게만 되면 과인은 죽어도 썩지 않을 것이오.

또 파우스트 생각나네. 파우스트도 이런 바람을 내비쳤지.

 

318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겁을 먹었습니다.

 

319 그런데 신은 떠돌아다니며 벼슬살이하는 몸에 지나지 않습니다.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거 좋지 않나? 컨설턴트.

 

321 세상 사람들은 존귀하게 된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가 존귀하다.’라고 말합니다.

학벌이 좋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 한 부부를 아는데 두 분 모두 자꾸 대학원 다니려 하면서 학력을 만들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의 근성과 노력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데 그렇게 된 까닭을 무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위해 노력할까.

 

324 부디 당신의 남는 빛으로 그들을 구제해 주십시오.

이 말 좋다. 남는 빛을 나누어도 밝음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332 바야흐로 진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천하는 더욱 권모와 술수로 치달으려 했던 것이다.

 

12 양후열전

 

341 천하의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는 친다는 것은 1000균이나 나가는 쇠뇌로 곪아 터지려는 종기를 터뜨리는 것과 같아서 제나라를 쉽게 깨뜨리겠지만 삼진과 초나라를 지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13 백기, 왕기 열전

 

백기와 왕전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재능을 갖추어 천하를 무찔렀지만 진나라를 위해 천하를 지킬 수는 없었고, 심지어 자기 몸조차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말이다. / 더불어 백기의 공로가 커질수록 그에 따른 진나라 소왕의 시기도 더욱 심해지는 과정이 묘사되는 등 진나라 통치자들의 잔혹한 모습과 군주와 대신들 간의 긴장 관계도 드러나 있다.

 

348 적장 망묘를 달아나게 하였으며,

 

351 백기는 사람들을 속여 모조리 산 채로 땅속에 묻어 죽이고, 남은 어린 아이 240명만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머리가 베이거나 포로로 사로잡힌 자가 이때를 전후로 하여 45만명이나 되었다. 조나라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다.

아이고~ 한숨 나온다. 어린 아이 240명이라니. 그나마 아이들이라도 돌려 보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쩜 이렇게 잔인할까.

 

354 백기는 사는 곳을 옮겨 가면서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고 뼈 있는 말을 했소.

 

354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 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 11월의 일이다. 그는 죽었지만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마을이 모두 제사를 지내 주었다.

첫 문장 보고 기가 막혔다. 사람들을 그렇게 산 채로 매장하고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드립을 하다니! 곧 죽어 마땅하다고 하여 누그러졌다가 진나라 사람들이 그를 가엾게 여겼다는 대목에서는 다시 기가 막히기 시작. 다만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이 사람은 죽기 직전이라도 뉘우쳤다는 것에 위안을. 장평 싸움에서 죽은 수십만 명과 240명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358 내가 자손을 위한 재산을 만들려고 논밭과 정원과 연못을 요청함으로써 다른 뜻이 없음을 보여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 왕은 가만히 앉아서 나를 의심할 것이오.

 

358 무엇을 하고 놀던가?

 

359 그렇지 않소. 무릇 3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되오. 반드시 싸움에서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소?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쳐부순 것이 많아서 그 후손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오. 이제 왕이는 이미 3대째 장군이 되었소.

 

360 태사공은 말한다.

속담에 자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백기는 적의 전력을 헤아려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은 없애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가 되어 시황제조차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 왕이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5 맹상군 열전

 

375 선왕 7년에 전영은 사자로서 한나라와 魏나라에 가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제나라에 복종하게 했다.

 

379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사람들은 저마다 맹상군이 자기하고만 친하다고 생각하였다.

이건 과장인지 진짜인지. 사람 목숨을 파리같이 아는 시대라 염치는 더욱 없을 거 같은데 의외로 사소한 일에 목숨을 끊음.

 

382 맹상군이 이 말을 듣고 노여워하자 (그와 함께 길을 가던) 빈객들이 (수레에서) 뛰어내려 칼을 빼서 수백 명을 베어 죽이고, 마침내 현 하나를 없애 버린 뒤에 떠났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일까? 진짜라면 정말이지 광기의 시대이다.

 

385 맹상군은 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 설 땅에서 조용히 살고자 하였다. 민왕은 이를 허락했다.

 

395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家나 되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뭔가 좀 웃프네. 호주 사람들한테 죄수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도도히 흐르는 피는 어찌할 수 없는겐가.

                    

16 평원군, 우경 열전

 

사마천은 구차한 삶을 감추고 발분하여 글을 지었기 때문에 우경을 기록한 부분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편은 지나치리만큼 찬미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400 이에 평원군은 곧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의 목을 베고, 직접 문 앞까지 가서 절름발이에게 그 목을 내주면서 사과했다. 그 뒤 문하에 다시 조금씩 (선비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즈음 되면 춘추전국 여인잔혹사도 나올 법 하다. 거의 IS 수준이다.

 

400 평원군은 식객과 문하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사람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했다

문학적 소양과 무예라, 문무를 함께 어떻게 갖춰? 싶다가도 가능하겠다 싶기도 하네. 신라 화랑도 그러했고 변경연으로 치면 기상씨도 있고.

 

401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기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403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404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404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100만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406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맞닥뜨린 사졸들은 쉽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408 공손룡은 견백지변에 뛰어났다.

 

410 이것은 진나라를 돕고 자신을 공격하는 일입니다.

자가면역질환

 

413 또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 그 결과는 조나라의 멸망뿐입니다.

 

413 이와 같이 된 것은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부인들에게는 다정했기 때문이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오.

남편이 죽으면 달리 방도가 없어 부인과 첩은 따라 죽는 것도 많았던 거 같던데. 정을 줘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414 원컨대 왕께서는 이것으로 결정하시고 더 이상 의논하지 마십시오.

단호하네.

 

417 평원군은 풍정의 그릇된 말에 빠져 조나라 장평의 40여 만 병사를 산 채로 매장되게 하고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했다.

나 당분간 장평 싸움이 좀 마음에 걸릴 거 같다. 240명의 아이들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17 위 공자 열전

 

그 무렵 長老들의 말을 참조하여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편에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하는데, 이 명제를 내세워 후영을 중심축으로 삼아 사마천의 인재관을 서술해 나간다.

역사가 개인사에 녹아 들어간 어르신의 옛 이야기는 소중하다. 나도 그래서 얼마 전 집안의 마지막 어른을 찾아뵈러 창원에 갔었지.

 

421 (그의 어짊에) 선비들이 사방 수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몰려와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여 식객이 3000명이나 되었다. 그 무렵 제후들은 공자가 어질고 식객이 많음을 알고 섣불리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지 않은 지 10여 년이나 되었다.

 

422 그 뒤로 왕은 공자가 어질고 능력 있음을 꺼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423 그러나 공자의 낯빛은 더욱더 부드럽기만 했다.

 

426 그래서 빈객들에게 청하여 수레와 기마 100여승을 마련하고 빈객들을 이끌고 진나라 군대와 부딪쳐 조나라와 같이 죽기로 했다.

무식한 건지 무모한 건지. 당시의 생명관이 궁금하다. 남의 목숨만이 아니라 자기 목숨도 너무 막 버리려고 해.

 

429 저도 마땅히 따라가야 하지만 늙어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공자의 일정을 헤아려, 공자께서 진비의 군대에 이르는 날에 북쪽을 향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이런 심리를 어떻게 해석하면 되나? 조폭들이 그 폭력성만큼이나 의리를 중시하는 그런 심리인가?

 

429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군대 안에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가고, 형과 동생이 함께 군대 안에 있으면 형이 돌아가라. 외아들로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모시도록 하라.

이런 명령이 떨어졌을 때 다들 얼마나 기뻐 울었을까. 때로는 아들을 보내려고 하는 아버지, 동생을 보내려고 하는 형이 있었겠지. 이 시대의 백성들이 너무 안됐다. 그나저나 우리 아빠는 홀어머니를 둔 외동아들이라 백호부대인지 어딘지 가고 싶었는데 못갔다고, 결국 카투사 갔다고 분해 하셔서 어릴 적에 나는 카투사는 안좋은 곳인지 알았다.

 

433 공자가 조나라에서 소중히 여겨지고 천하 제후들에게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위나라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34 이렇게 밤낮으로 즐기고 마시기를 4년이나 계속하더니 결국 술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해에 위나라 안희왕도 죽었다.

 

435 한나라 고조는 아직 미천하고 젊을 때 공자가 현명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는 천자 자리에 오른 뒤 대량을 지날 때마다 언제나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 주었다.

 

435 그러나 신릉군만이 깊은 산과 계곡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것은 일리가 있(는 이야기). (그의) 명성이 제후들 사이에서 으뜸이었던 것도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고조도 대량을 지날 때마다 백성이 (신릉군을) 제사하게 하고, 그 제사를 끊기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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