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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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이부영 지음, 한길사 34주차 (11/20~11/27) 티올(윤정욱) I. 작가 분석 가. 저자 분석 : 이부영 서울대학교 의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1966년 스위스 추리히 융 연구소를 수료,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독일
및 스위스 등 각지 정신병원에서 수련 및 근무하였으며, 귀국 후 서울대학교 의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장을 지냈다. 그
밖에도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1977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퇴임 후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분석심리학 전문수련기관인 한국융연구원을 설립 현재 운영 중이다. 한국 융학파의 태두로서 한국에 분석심리학의 씨앗을 뿌리고 분석심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자 정통한 정신치료술의 하나로 인식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1차적으로는 당연히 환자의 치료에 있겠으나, 학문적
성취가 깊어짐에 따라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나타나는 다양한 상징 체계를 해석하고 그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세계를 해명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단행본 중에서는 분석심리학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심층을 밝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분석심리학 3부작'이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한국의 민담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탐구한 『한국
민담의 심층분석』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 현재 제대로 된 융 선집을 출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데, 번역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 해마다 한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이 완성되는 날 한국인도 비로소 융의 세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분쉬의학상을 비롯하여 국내외 많은 상을 받았으며, 『융
기본 저작집』(전9권, 솔
출판사)을 비롯한 여러 책을 번역하였으며, 분석심리학에
관련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다. 나. 그가 말하는 ‘그림자’에 관해
(그림자는 무엇이고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그림자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림자의 인식은 개성화 과정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개성화란
치료의 과정에 해당한다. 이미 그림자의 특징을 밝히는 데서 그림자의 정체는 일단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이를 자기의 인격의 부분으로 인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어두운
인격의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림자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림자의 존재를 일단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림자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다행히 그림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특이한 방법이 있다. 우리는 그림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방법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림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인식하기 어렵지
않다. 그림자는 인격의 어두운 특성이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꼴사나운 언어나 행동,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행위, 그리고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나 행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그림자의 인식은 다음과 같다. 1) 남의
탓으로 드러나는 그림자 그림자는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난다. 그림자의 존재는 그 특성상 우리 인격의 일부이므로 인격이 반영되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난다. 그림자의 나타남은 개인의 감추어진 인격의 어두운 부분과 관련되는 측면이다. 이 부분은 투사처럼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잘못의 원인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현상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어두운 인격인 그림자를 옮기면, 그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에 의해 영향을 받아 부모대신에 가족 내에서 악역을 맡는 속죄양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부모에게 의식화되지 못하거나 인식되지 못한 부모의 어두운 인격의 그림자가 생물학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자식에게 어느 정도 전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가정의 평화를 강조하는 생활에서 모든
가족성원들이 겉으로는 평화롭게 협동하면서도 무의식 속에 적개심을 억압하고 있는 가족의 가짜-협동성(pseudo-community)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나중에 개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가족의 건강까지도 해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그림자 그림자의 투사는 상호간의 불신과 반목, 증오와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그는 틀림없이
그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서로 상대방에게 가지고 있으면, 그림자의 상호투사는 두 사람 사이의 오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투사된 그림자의 내용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면 "그것 봐, 내
말이 틀림없잖아. 그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단정을 지음으로써 투사를 강화시킨다. 이런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어두운 인격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한다는 점에서 투사의 성격이 확실하다. 개개인의 어두운 인격이라는 그림자는 일상생활, 특히 대인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개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인격의 부분을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이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 따라 달려 있을 뿐이지만, 그것은 여지없이 우리의 삶에서 관계의 갈등으로 작용되는 측면이 있다. 때로 우리 자신이 남을 향하여 울분을 터트릴
때, 남을 저주하거나 심히 공격할 때, 자기의
의지와는 다르게 비사교적으로 행동할 때, 인색하고 편협하며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릴 때, 비겁하거나 경박하며 위선적인 모습의 굴절된 모습은 모두 그림자의 존재를 반영하는 모습들이다. 3) 극심한
분노를 유발하는 그림자 그림자의 정체는 극심한 심리적 상태와 상황에서
드러나기 쉽다. 극심한 심리적인 상태에서는 대체로 의식의 조절력이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극심한 분노는 그림자가 드러나기 쉬운 상태로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 누가 자기의 결점을 책망할 때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면, 평소에 의식하고 있지 않는 그림자의 일부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단치 않은' 타인에게
비난을 받는다는 일은 짜증스런 일이 될 터인데, 이때 우리는 과도하게 대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 순간 놀라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은 아마도 자아가 타인에 의해 간파되었다는
점도 있고,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검은 마음을 인식하였다는 의미도 있다. 이때 우리는 이를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인 양 남의 탓으로 돌리는 등의 무모한 태도를 보이므로
적절히 은폐하거나 반응하는 형태를 취하려는 것이다. # 꿈을
통한 인식 # 그림자는 꿈에서도 나타난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꿈은 꿈꾸는 사람의 정신적인 성격의 특성들이 의인화 및 인격화되어 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꿈을
통한 그림자의 인식은 다음의 몇 가지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1) 동성(同性)의 인물로서의 형상화되는 그림자 분석심리학에서는 꿈이나 신화에서 그림자는
꿈을 꾼 사람과 동성의 인물로서 나타난다고 본다. 무의식 속에 숨겨진 개인의 정신적인 어두운
부분은 꿈으로 활성화되어 인격체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개인의 편견 및 습관의
문제, 때로 자신의 인격의 가면이라는 페르조나(Pesona)와
연결되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꿈에서 개인의 어떤 부분을 비난했다고 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내적인 판단에 의해 비난당한 것이다. 이는 자아가 간파당한 순간이며, 그 결과 곤혹스러운 침묵이 발생하기 마련이기에 개인은 고통에 찬 갈등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합리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를 떠올리게 된다. 이 불행한 영웅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신화에 등장하는 엘리스(Elis)왕의 아우게아스의 가축의 우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
가축의 우리는 30년 동안이나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는데, 헤라클레스가
강물을 끌어 들여서 하루에 말끔히 청소했다는 이야기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수용하여 엄청난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이룩한 것이다. 이런 일은 꿈에서 나타난 그림자의 정체를
올바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인지를 알지 못하면, 거기에 매여 갈등하거나 고통을 당할 뿐 개선의 여지란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꿈에서 나타난 그림자의 존재는 그렇게 받아들여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개선하여야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이다. 2) 자아에게
신호를 보내는 그림자 꿈에 나타난 그림자는 단순히 비난을 넘어
자아와 사귐을 원하는 것이다. 꿈에 나타난 그림자의 존재는 자신의 성격과 반대되어 수용하기
어려우나 자아에게 접근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자아가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얼마나 그림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달려있다. 만약 자아가 이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 종종 그림자는 파괴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인격의 발전을 중단시키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어느 누가 남을 지나치게 멸시하는
사람의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러면 꿈의 타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그림자가 꿈으로
형상화된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타인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는 것은 꿈의 원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꿈에 나타난 흉악한 사람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일단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개인의
충동과 부주의를 통한 인식 # 그림자의 인식은 개인의 충동과 부주의한
행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림자는 때로 자신이 원치 않는 개인의 충동을 유발시키거나
부주의를 유발시키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해야 한다. 1) 충동을
유발하는 그림자 그림자는 그 특성상 어두운 인격으로서 부정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거나 신(神)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열등한 성격의 측면인 그림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장담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집단이 요구하는 선한 마음과 행위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온갖 사회악에 대하여 연민의 정(情)을
가지거나 혹은 멸시하는 사람은 이른바, 그림자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스스로
인격자임을 자처하고 확신하면서 고매한 인격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들은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 또는 각종 신경증을 일으킬 조건아래 있는 사람이다. 무의식적인 그림자에서 자아가 단절되어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 그림자는 인격에서 잘못 다루면 인격의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노이로제나 정신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자기에게 그림자 따위는 없다고 자처할 때 그림자가 자신 속에 있는데 보지 않으려 할 때 그것이 바로
신경증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2) 비인격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그림자 그림자는 반드시 결점으로만 성립되는 존재의
특성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인식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특성이란 일반적으로는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에서
인식해야 하는 필요성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그림자는 개인의 뜻밖의 충동이나 부주의한 행위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오든가, 원치 않는 음모가 꾸며지든가,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
등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로써 개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식적으로 전혀 바라고
있지 않은 상황의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 그림자는 의식적인 인격보다도
집단적인 것에 훨씬 감염되기 쉬운 특성도 있다. 대개 사람은 혼자일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남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나 유치한 행동을 하기에 이르러서는 생각 없이 그 대열에 끼는 경향이
있다.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자기의 것이 아닌 충동에 몸을 내 맡기도 만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나 타인의 그림자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특히 이성(異性)이
아닌 동성(同性)인 사람과의 접촉에서 일어난다. 이는 대개
이성의 그림자를 인정은 하지만, 그것에 의해 불쾌감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으며 쉽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 개인적인
투사를 통한 인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