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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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 오전에 회사의 동료 선배가 자신의 아이가 이제 입학할 때가 되었는데 학교를 아직 못 정해서
고민이라고 하며 나에게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문득 생각났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대안학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러자 32개가 넘는 comments가 순식간에 질문에 자석처럼 붙는다.
아침에 읽었던 장하준 저자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라는 책 속지에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썼던
문구를 떠올리게 한 답변도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의 질문은 성공적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던 혹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나 한 번쯤 나의 질문을 통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요즘은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버스가 온 줄도 모르고 놓치는 적도 가끔 있다.
스마트폰의 폐해일 수도 있지만 난 좀 더 긍정적으로 이러한 삶의 변화를 바라보고 싶다.
세탁기가 우리를 구원한 것보다 인터넷이 가져온 혁명은 미진할 수 있다는 챕터를 읽으면서 출근했었는데
난 내게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굉장히 많은 삶의 변화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소통의 변화만 해도 그렇다.
이전에는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만나서 그리고 나의 지인들이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신문을 통해서나 TV를 통해서 보았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나의 질문에 빛의 속도로 와서
철커덕 붙는 경험은 어려웠던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을 쓴 이후로는 늘 여러명의 친구들이
내 곁에 함께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버스가 온다. 난 잠시 생각을 접고서 버스에 탄다.
진보와 대안의 관계에 대해서 잠시 나의 생각이 머무른다.
다양한 면에서 우리는 대안적인 삶을 고민해 볼 수 있다. 지금의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면
혹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그러한 대안을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비단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지금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하여 생각을 해볼까? 우리의 삶에 불평을 퍼부으면서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출근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면서도
혹은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삶에 대한 무수히 많은 오류에 대해서
그저 받아들이기만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안적인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고
삶의 물살 따라서 살기 바쁘다. 여기서의 삶의 태도는 개인의 성향이 긍정적인가 아닌가를 떠나
그 삶의 구조에 대한 고찰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처럼 요즘 난 혼자서 고민이 되는 문제들 그리고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은 화두를
페이스북을 통하여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러한 소통의 채널이 좋은 것은
의외로 나의 고민이 다양한 사람들의 답변과 댓글을 보면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장하준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패러다임을 들여다보는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이 흐르고 흘러서 다시 내게로 온다.
조금 지난 포스팅인데에도 누군가 그 글에 답글을 달면 다시 '딩동'하고 나의 핸드폰으로 알려준다.
한 번 던진 화두가 계속해서 진화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선방같다. 일상 속에서의 화두인 셈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주제가 생기기도 하고 늘 가지고 있는 화두에 덧붙여서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
난 세탁기의 전후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러한 스마트 월드가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다보니 당장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고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해주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지 않는 한 우리들의 스마트 월드는 붕괴될 수도 있다.
어떤 역사학자는 진보라는게 역사상에 정녕 존재했었냐고 묻기도 한다.
단지 형태의 변화일 뿐 우리들이 대안적인 삶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되고 있는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당장에 머리가 아프더라도
그 성장통을 함께 겪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바람을 맞아들여야 한다.
시야를 확장시키고 지금의 다양한 과학들을 사용할 줄 알고 그것을 폐쇄적이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을 넘어선
공헌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안 교육이 더 이상 대안 교육이라는 칭호로 남아 있지 않을 때에 우리는 또 한 번의 진보를 맞이할 것이고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이지만 변화를 통해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도 대신 고민해 주지 않는다.
대안적인 삶에 대해서 오늘도 우리는 스마트하게 생각해야 한다. 장콕토의 세상사를 보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나무에 새겨 놓으라고 한다. 나무줄기에 새겨 놓은 이름은 그와 함께 성장하니까. 말이다. 좋은 말이다.
난 그 대신 오늘도 페북에 화두를 던질 것이다. 나의 이름에 많은 이들의 의견과 소통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생각의 순환고리가 빛의 속도로 일어날 수 있도록.
그 생각들을 안고 있으면 버스 안도 선방이고 거리 위도 산사와 다름이 없다.
그대는 오늘 그대의 삶에 대해
혹은 세상사에 대해서 대안적인 방안을 고민해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사-장 콕토
자네 이름을 나무에 새겨놓게나.
하늘까지 우뚝 치솟을 나무줄기에 새겨놓게나.
나무는 대리석보다 한결 낫지.
새겨놓은 자네 이름도 자랄 것이니.
사샤와 대안적인 삶에 대해 함께 화두 놀이를 하실 분들은 어서 오세요 페이스북의 세계로

길은 사람이 가야 나는 법이지
그리고 새로운 길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가고 많이 갔는가에 따라 익숙하고 편안한 길이 되지
사람들은 몇 발자욱 내디뎓다가 되돌아오곤 하지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길위에는 웅덩이만 널려있지
무엇이 새 길을 가게 할까?
길이 막혀서.
아니면 다니던 길에 지치고 답답해서...
아니면 꿈이나 희망때문에...
아니
어떻게 하면 새길을 만들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그 동행이 편안해질 때겠지....?
아니면 확고한 미듬과 간절한 열망...?
어쨋든 그건 확실해
갈 수 없어서 안 가는 길이 아니라
안 가기 때문에 갈 수 없는 길이 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