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 조회 수 2295
- 댓글 수 18
- 추천 수 0
천국의 문 앞에서 신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신에게 읊조렸다. "신이시여 저에게 미스토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50페이지 짜리를, 시간이 정히 없으시면 20페이지 짜리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신의 뜻대로 고르시옵서서" 신은 무척 바쁘시어 그것 조차 읽으실 시간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그래서 여기에 간단하게 나에 대한 설명을 올린다.
"신이시여, 여기 오기 직전에 몇 명의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7년을 함께 산 와이프는 한숨과 함께 "당신은 까다로운 사람이야. 그리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지." 그리고 다음은 가장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대답했습니다. "넌 철 없는 인간이지, 하지만 돈 없는 것 빼고 요즘 가장 부러운 사람이지." 다음은 저를 짝사랑했던, 지금은 시집가서 부산에 사는 여자 후배에게 물었더니 "성실하고, 착하고 하지만 약간은 머리 아픈 사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몇 명의 사람 모두 저의 생각 많은 특징에 대해서 약간 골치 아프다는 투로 이야기 한 것이 특이할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50페이지의 미스토리를 쓰고서도 아직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 드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올해까지 마흔두해를 살면서 행복하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살았던 보통 사람이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수 많은 이들처럼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지만 좌절이랄지 고달픔이랄지 회한 같은 행복의 반대말에 더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것에 대해서 최근에 생각해 보고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에게 행복은 나의 행동이 언제나 나의 의지를 따르는 것에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와도 일맥상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 시간, 그리고 매초마다 우리가 소멸하는 순간을 향하여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아마도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년 전에는 특별한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것의 직접적인 이유는 신께서 저에게 물으신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저 또한 스스로에게 몇 년 전에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더불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삶의 가치들 가령 행복, 자유, 사랑, 그리고 윤리와 도덕, 신과 죽음 등 어느 것 하나 내가 정의할 수 있는 삶의 기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바람이 불면 금방 흩어지고 말 구름처럼 그렇게 인생이 허무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생의 배움을 택해서 스승과 벗을 만나 마음 경영, 인생 경영, 자기 경영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전에는 책을 보고 오후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한 것입니다. 자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어느 순간 무능으로 해석되는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삶의 관리가 잘 되도록 보살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는 것이 항상 나의 의지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의지 또한 많은 시간 불안정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삶은 많은 순간에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줄지어 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고, 경쟁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상처 뒤에서 환호하고 즐거워 한 적이 있고, 직업상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만한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하며 칼자루를 쥐고 칼날을 잡으라 내민 적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무수한 순간들이 도덕과 규범 그리고 보편적 선으로부터 떨어져서 어긋나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실수와 잘못 그리고 부족함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외면하려 했었고 마음에 가두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새들을 새장 안에 가두고 들리는 울음들을 모른 채 외면하는 잔인함처럼 그렇게 마음을 닫아두고 살았습니다.
최근의 배움의 시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마음의 빗장을 열고 닫힌 새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외면하고 싶었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내 마음 속에 가둬 두고 괴롭혔던 것들을 풀어 주는 제의와 같은 시간을 통하여 고단한 얼굴들이 치유 받고 쉴 수 있음을 부족한 인생은 이제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어떤 순간이 좌절과 환멸, 허망함만을 안겨주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이시여, 어렸을 적 친구들과 훔쳐먹었던 빵과 중학교 때 옷 안에 숨겨 나왔던 책과 학용품들, 그리고 대학교 때 술을 마시고 술 값을 내지 않고 도망쳤던 그런 무수한 잘못들에 대해서도 함께 뉘우치오니 정상 참작을 부탁 드립니다.
신이시여, 아주 오래 전에 쇼펜하우어라는 사람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어느 날 밤 생각에 잠겨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경관이 다가와서는 "저....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고, 쇼펜하우어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고 합니다. "나도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소."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려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심정이 절실히 이해가 됩니다. 일생 동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최대한 자신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모으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증거들이 잘 어우러져 하나의 얼굴을 만들지 못하고 유리 파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이해하여 주실 것을 지극히 당부 드리오며 기회를 주시어 몇 년 후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였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구절의 말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적게 소유하고 풍부하게 존재하라." 하루를 세 단위로 나눠 새벽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이웃과 친교를 나누며 살았던 생태 근본주의자 스콧 니어링의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향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첫 책에 쓸 나의 프로필
새마을 운동이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었던 197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페가수스좌. B형.
궁핍한 시절이었고 시절에 딱 맞는 그런 형편이었지만 집안의 3대 독자라는 타고난 운명으로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남자는 부엌에 가서는 안되고, 걸레를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상 이치와 무관하다는 것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약간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아내와의 사이에서 간간히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때의 영향이 생의 흔적처럼 남아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이직을 따라 순천에서 40Km정도 떨어진 여천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하였다. 산을 넘어 학교를 다니고,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고, 보름날 아랫마을 윗마을 투석싸움을 하고, 정기적인 방학 이외에도 농번기 방학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더불어 사는 인생에 대한 동경,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놀이와 삶에 대한 동경은 그리운 유년시절이 아름다운 인생의 미장센을 만들어 놓은 확실한 간증과 같은 것이다.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유년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그 후로 13년간 대도시에서 불안정한 마음과 성공이라는 욕망을 한 몸처럼 껴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자릿수를 늘이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동의 시간을 늘이기도 했었고, 콘크리트 사각 덩어리에 세상이 부여해 놓은 상징을 붙잡기 위해서 자신의 상징을 뿌리 채 잊고 살기도 했었다. 끝없이 곁눈질 하면서 살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본 어느 날, 세상의 보폭에 자신의 보폭을 맞추기에는 능력이 턱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음'이라는 이유를 붙여두고 2010년 회사라는 조직을 떠났다.
현재는 불안정한 마음의 원인을 인생 수업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스승을 모시고 마음 경영을 배우는 일에 힘쓰고 있다. 지금의 배움이 얼마간 지속되고 혹은 새로운 일을 언제쯤 맞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지난 시간 촌사람과 도시인, 직장인과 자유인 그리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던 고민들을 찬찬히 풀어헤치고 그 끝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울림 하나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희망하는 내일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여름날 아침에 해가 뜨는 시간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일기 형식의 글을 쓰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여 오전에는 인생 수업을 위한 책들을 읽고 오후에는 생활의 운용을 위해서 돈을 번다. 적당히 현명하고 적당히 어리석은 생활의 절충을 통해서 행복한 일상을 만들고 있고 더불어 인생의 첫 책인 <거시기...>를 펴내게 되었다.
[나를 표현하는 다섯 줄]
1.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삶을 간절히 원하는 외로운 늑대의 영혼을 가진 자유인
2. 사람과 인생, 예술과 자연에 대한 뒤늦은 사랑을 깨달은 것처럼 항상 한 박자 늦는 지각생.
3. 누구에겐가 지는 것을 싫어해서 과도한 에너지를 쏟거나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소심한 인간. 하지만 대범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어설픈 사람.
4. 물질보다는 정신을 도시보다는 자연을 갈등보다는 이해를 추구하는 니어링 부부의 동경자.
5. 이 일을 하며 동시에 저 일을 하는 멀티테스킹이 불가능하고 한 가지에 마음을 뺏기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모노 라이프 스타일의 정신 소유자.

중딩(기숙사 생활을 하는 탓에): 난 요즘 혼자 있을 때 "나는 누군인가?"를 생각하곤해.
내가 왜 사는지도 생각해.
고딩(다 겪은 후의 여유로움에): 아주 좋은 시간을 갖는 구나. 그런 시간을 많이 갖도록해.
그러면 넌 아주 많이 클거야. 난 그 생각을 하다가 말았거든.
지금 많이 후회가되.. 넌 의외로 음감이 있는것 같더라.
너를 좀 표현할 수 있는 극단에 들어가봐도 좋을듯 해.
꼭 내가 집에 있어야 우리집이 돌아가는것은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 홀가분했씁니다
루까에서 내가 나에게 쓴 엽서 그대로 입니다.
늑대가 쓰는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신이야기, 철학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13살짜리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에 답을 찾는 일이 즐겁도록 말이예요.
난 항상 그대를 응원합니다.. 우우우~ 우~우~

살다보면 어느새 수많은 배역을 소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게다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을 만큼 모두 중요한 역할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의미있는 대상에 올인하고 있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몰입형 인간들에겐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죠.
에너지를 분산투자하자니,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고
겨우 집중할 아이템을 찾아내, 그토록 바라던 몰입의 희열을 누릴 수 있게 되어도
이로 인해 소홀해 질 다른 영역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죠.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죠?
어쩌면 우리가 여기에 모여있는 진짜 이유는
이 숙명적 딜레마에 대한 자기만의 해법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 깊이 응원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