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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1일 20시 39분 등록
금빛 기쁨의 기억


문화평론가 강영희.

책을 읽으며 삼십대 후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의외로 마흔 일곱의 초로에 접어드는 나이였다. 외갓집인 서울 북촌의 조선식 기와집에서 태어났고, 토종 순한국인 외할머니의 무릎에서 자라났다. 그런 그녀가 초로에 접어들며 ‘기억속의 심상’에 이끌려 ‘토속적인 자기’와 ‘세계인’의 회통을 찾아서 백남준, 겸재, 추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문학과 대학원,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가 연극평론으로부터 시작해서 문화평론, 인물 인터뷰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사람과 문화에 대해 천착하는 것은 지천명을 앞에 둔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중국, 프랑스, 이탈이아, 대만, 미국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에 대한 잡문을 써온 그녀는 ,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이며 인문이며 창조이며 성찰이다.


금빛 기쁨의 기억.

“이상한 일은,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선비정신의 세례를 받은 적이 없는 내가, 푸른기 도는 순백자나 탈속의 해학이 넘치는 골코름한 철화백자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영혼이 말갛게 씻기우는 상쾌함을 맛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251)
이 책의 부제가 ‘한국인의 미의식’임을 감안하면 저자는 한국인의 ‘잃어버린 기억속의 심상’을 되살려 ‘한국인의 미의식의 자폐’를 걷어내고자 1인 시위에 나선다.
“이처럼 의젓한 취향을 식민사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의 페이지로부터 얻었을 리는 없을 터.”(251) 라는 자문자답을 통해 저자는 “백의민족이여 안녕, 이데올로기여 안녕”이라는 말로 그동안 한국인의 미의식으로 자리잡아온 ‘자폐적인 유토피아, 은자의 소극성, 폐쇄성’으로 대표되는 백의민족에 종말을 고한다.
한(恨)의 미학이나 폐쇄적이고 자폐적인 백의민족으로 한정지어진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하여 저자는 선언한다.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에 들어앉고자 하는 닫힌 마음 대신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 나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저다음’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은자의 소극성 또는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세계 시민의 적극성 또는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261)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장사꾼이면 어떻고 평범한 시민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 창조적이기를 원하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인과 한국인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25)
지천명의 나이를 눈앞에 둔 저자가 한국인의 미의식 눈에 씨인 콩깍지를 벗겨 한국인과 세계인의 통합적인 모순, 회통을 시도코자 애쓰는 절절한 몸짓은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 보관(寶冠) 문화훈장을 받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 예술론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의 무기교, 무의식이라는 호도된 한국인의 미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 모두의 성찰을 촉구한다.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 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124)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236)
그렇다. 글로벌 멀티미디어 시대 정보통신 강국의 국민으로서 세계와의 문화적 교류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는 한국인의 의식속에서 이데올로기적 표상인 백의민족의 강박적인 이미지를 머리속에서 걷어내는 일은 한류(韓流)로 브랜드화 하는 한국인과 세계인의 창조적 회통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식민사관을 통해 한국인의 미의식의 밑 둥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적인 취향의 해방과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외침은 이십 일 세기의 ‘법고창신’을 통한 세계시민의 울림으로 들려온다.
비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코자 하고 ‘울음을 마침내 웃음으로 초극’하고 ‘한을 결국 흥으로 곰삭이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얼마나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것인가.
‘상의 형과의 어울림’, ‘근경의 미학에 깊은 장맛을 더해주는 원경의 미학’, ‘비보를 통한 상극적인 상생’을 간직한 한국인의 미의식은 얼마나 멋진 이십 일 세기의 세계인의 길인가.


내가 저자라면.

책을 읽으며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확인하며 한국집 지붕의 자연곡선, 색동저고리 오방색 등 한국인의 미의식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랄까.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글을 읽으며 결국 한국인의 미의식은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또한 ‘세계인인 한국인’을 지향하지만 우리는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적인 세계화’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은 바로 ‘한국적인 세계화에 대한 열망’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였다. 우리의 의식 밑 둥에 세뇌되어 있는 ‘자랑스런 단일민족에 대한 허구’에 대한 불안이었다.
나는 ‘한국의 오리엔탈리즘’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이나 한국사회의 배타성에서 수 없이 목격했다. 애써 덮어두려는 우리의 의식까지도.
한국이 오리엔탈리즘의 과거의 피해자에서 미래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나의 우려는 내게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왜냐하면 나는 진정으로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과의 비교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문화는 그 지역의 역사와 삶의 양식, 토양, 기후 등의 총체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그 자신들 외에 어느 누구도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미의식’이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우리 것을 연구하고 그 성과물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세계시민’들의 몫일 따름이다.
‘미국적인 세계화’의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고통을 일국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한국적인 세계화’에 대한 열망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두렵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과 매사속에서.



금빛 기쁨의 기억에서.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뉴욕이야말로 종교와 예술과 문화에 걸쳐 세계문화의 다원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남을 흉내 내는 것’과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곳이 아닌가. 이 같은 ‘토속적인 자기’들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이야말로 이렇다 할 ‘토속적인 자기’를 지니지 못한 오늘의 미국문화로 하여금 세계문화의 리더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게 한 비결은 아니었을까?(22)
오늘의 창조와 관련된 예술가인 이상, 그의 마음속에 세계인과 한국인의 두 얼굴이 공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것들은 결코 제로섬과 같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며 분열적인 모순이 아니라 통합적인 모순이다.(24)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장사꾼이면 어떻고 평범한 시민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 창조적이기를 원하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인과 한국인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25)
토속적인 자기를 내던진 채 유행사조만을 따르는 세계인의 망상은 물론이요, 유행사조 또는 동시대적인 세계성을 향해 빗장을 걸어잠근 채 토속적인 자기만을 다짐하는 한국인의 자폐 역시 우리의 선택이 될 수는 없다.(26)
한국적인 것의 항목에 한국화한 샌드위치라는 새로운 메뉴가 덧붙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이라는 모순을 창조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만고불변의 공식이 아니겠는가?(51)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예술론

한국예술의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자유곡선이 아니라 자연곡선이라는 것이다. 한옥의 지붕곡선은 제비가 물을 차고 올라가듯이 끄트머리로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들려올라간 자연곡선으로서, 끄트머리까지 직선으로 가다가 추녀께에서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중국집 지붕의 자유곡선이나 시종일관 직선적인 요소에 의해 주도되는 일본집 지붕의 선과 구별된다.(94)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한국의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 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106)
그렇다면 한국인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인 격을 중시한 반면 일본인은 ‘넘나듦이 가능하지 않은 세부항목’인 기교를 중시한 까닭은 무엇일까? 비어있는 형태에서 충실한 정기가 배어나오는 것. 육체의 기교를 멀리 하고 정신의 격을 가까이 하는 것. 이 같은 한국의 미를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고 다만 일본인의 미의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던 야나기는 그것을 완전하지 못하고 갖추어지지 못한 비어 있는 형태로서 받아들였다.(111)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 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124)

3부 한국인의 미의식

아름다움이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창조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성찰이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28)
하지만 사람의 눈에 익숙한 것은 어디까지나 형(形)인 까닭에 무형의 상(象)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이, 상이란 형의 기본을 이루는 것일 뿐 아니라 형을 통해 자취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132)
만일 형을 인간의 감각에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은 일반적인 인간, 즉 명(明)을 잃은 인간이나 또는 자연법칙을 관찰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식되기 어려운 무형을 말하는 것이다.(133)
‘눈에 보이는’ 형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이 때문에 흔히 멋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성격을 지닌다. 박수근의 그림과 마애불에서 흘러넘치는 격조 넘치는 성찰의 시선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향오행 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있다.(139)
적어도 몇 걸음이나 몇 마장 떨어진 자리에서, 육체의 눈을 가늘게 뜬 대신 영혼의 눈을 크게 뜨고, 근경의 미학이 아닌 원경의 미학으로 바라보라. 만약 그것이 코앞에서 조목조목 뜯어보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거칠기보다 부드럽고, 졸(拙)하기보다 아(雅)하며, 어눌하기보다 격조 있게 보인다면 그때 비로소 당신은 상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142)
지난 세기의 한국인은 발효 맛에서 생기의 미감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취향과 결별하는 기억상실의 세월을 살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발효 맛의 취향과 화해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되살려야 하며 ‘기억 속의 심상’과 알뜰하게 손잡은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163)
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 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비보의 원리란 이처럼 상극적인 것을 향해 대립과 투쟁을 전개하는 대신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안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상생적인 조화로움을 통해서만 생기를 얻을 수 있고 상극적인 부조화를 통해서는 사기에 노출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의 도깨비 상을 통해 잘 드러난다.(169)
나주의 운문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세워진 돌장승은 길을 사이에 두고 여장승과 남장승이 마주보고 서있다. 조선 숙종 때에 세워졌고 표지판에는 ‘사원입구에 세워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상’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런데 정작 돌장승은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손주들의 재롱을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는 마음씨 좋은 시골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기와 싸워 이기는 대신, 상생적인 조화를 이룩하여 생기를 북돋움으로써 벽사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적 비보의 원리이자 한국적 미의식의 원리이다.(170)
한국인의 자화상은 눈물을 웃음으로,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해학과 신명의 본질이 관철된다.(173)
그렇다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생기,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자화상으로 하여금 눈물과 한을 넘어 웃음과 흥으로 휘몰아치게 하는 원동력이다.(177)
울음이란 마침내 웃음으로 초극되고야 만다는 것, 한이란 결국 흥으로 곰삭여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한에만 주목하는 한국적인 한에 대한 담론은 이제는 청산되어야 한다.(179)
다만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상극적인 것을 늪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세기의 한에 대한 담론을 역사책의 한켠에 선명하게 기록해 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181)
우리는 지난 세기의 한국인이 서구적 근대를 향한 ‘시간과의 경쟁’에 빠져든 결과 공간의식과 공간취향을 상실해 버린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주위의 공간을 오로지 서구적 근대의 잣대인 돈 가치, 효율성, 편리성에 의해서만 판단한 나머지 개인이 사는 집이나 집단이 사는 도시에 대해서도 오로지 평수나 땅값 같은 돈 가치만을 따지는데 익숙해졌으며, 그 결과 자신의 공간취향이 발붙일 자리를 상실해버린 것이다.(186)
우리의 고지도는 삶터로 넘쳐나며, 삶터는 삶의 기업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오늘날의 지도에는 더 이상 삶터도 삶의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187)
고지도는 인체와 마찬가지로 땅을 뼈대와 핏줄이 갖추어진 살아있는 유기체, 생명체로 보았다.(189)
미의식을 상징하는 ‘기억 속의 심상’의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가 바로 색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보다 ‘밝고 맑은’ 색, 즉 명도와 채도가 아울러 높은 색이다. 한국인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라는 이미지가 이것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202)
이데올로기적인 표상이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배제적인 성격을 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단순히 자기관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뒷바퀴에 그치지 않으려면 탈민족주의 시대를 내다보면서 자기를 극복하는 민족주의라야 된다. 오늘날 일국주의의 물질적 풍요가 그 얼마나 세계 분규의 씨가 되어 있는가는 정치의 상식이다.(221)
이데올로기적인 표상인 백의민족의 강박적인 이미지를 머리속에서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색동옷과 녹의홍상,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 오방색의 화려한 배합인 단청, 자주색의 삼회장저고리, 색동보다도 고풍스럽고 몬드리안보다도 모던한 조각보의 색 꾸러미처럼 아득한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밀어냈던 색채적 심상의 기억속에서 되살릴 수 있다. 따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222)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취향은 고유의 풍토와 역사속에서 형성되는 인문적인 지혜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제멋대로의 것’이 되기보다는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것이 바로 취향이 지닌 성찰의 가능성이다.(232)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236)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다. 천지인의 일부인 인간은 비인간적인 질서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속기에서 벗어나 탈속의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239)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를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 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에 들어앉고자 하는 닫힌 마음 대신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 나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저 다음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은자의 소극성 또는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세계 시민의 적극성 또는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261)
요컨대 민족예술 운동은 20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발의 상극지향을 한국적인 상생지향으로 승화시켜내고자 한 당대적인 움직임으로 주목받아야 한다.(269)
새것을 프리즘을 통과하여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남은 내 것의 존재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278)
백남준과 겸재가 그랬으며 추사도 그랬듯이 한국인이니, 세계인이니 하는 구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인으로 여겼으며 이 같은 회통적 사고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창조의 주체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279)
전통의 고유색과 현대의 난장은 불이(不二)의 묘경으로 회통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퇴행적인 저다움을 딛고서 도달해야 할 진정한 저다움인 동시에 조선식의 순종적 예술실천을 추사식의 잡종적 예술실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진정한 견인차인 것이다.(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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