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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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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8일 20시 57분 등록


일요일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이상하게 불안하다. 이런 심정은 보통,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혹은 하는 척 하고 있지만 전혀 아니올씨다인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휴우~~ 이쯤 되면 게으름도 구제불능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 안하고 불안하느니, ‘하면 될’ 것을!

다행히도 아름다운 책 한 권이 손에 잡힌다. 큼직큼직한 사진이 많아서 읽고싶은 기분이 들고 시원시원한데, 게다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이다. 코발트블루의 하늘 아래 청동의 장식으로 꾸며진 카페간판들 혹은 고풍스런 건물들이 숨겨놓은 골목길, 이국적인 도시풍경들!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의 “유럽카페산책”이다. 저자는 여행의 기쁨 가운데 하나가 낯선 거리에서 좋은 카페를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기쁨은 유럽여행의 경우 더욱 각별해서, 여기저기 카페를 찾아다니며 관심을 가진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메모를 정리해서 <월간미술>에 ‘유럽카페기행’을 1년간 연재했고, 이 책은 그 산물인 셈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과 배치가 유독 아름다운 이유가 있었구나.

저자는 파리와 베네치아, 로마와 런던, 베를린과 프라하의 유서깊은 카페를 찾아 그 역사와 멋을 짚어준다.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문화를 연구한 저자의 전공덕분에 카페를 이용한 전설적 인물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시가 풍요롭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문체는 결코 딱딱하지 않고, 여행을 좋아하고 그 어떤 명승지보다 카페에서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어느 보헤미안의 편력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다음과 같은 카페에 대한 명구에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열정을 숨기고 있을 것같다. 게다가 “편력: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 정념으로서의 역사” 같은 저자의 다른 저서 제목이 상당히 땡긴다. 한 번 살펴봐야겠다.

“나의 집과 카페의 관계는 결혼과 연애의 관계와 같다.”
“카페는, 무엇이든 거의 할 수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의 터전’이다.”
“카페는, 나의 집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단점을 모두 치워낸 우리 집이다. ”
“카페는 가정으로부터 도망하고 여자로부터 피신하면서 여인을 찾아가는 곳이다.”

카페문화의 시작은 커피의 보급과 궤를 같이 한다.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1,000년전 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의 어원인 qahwa는 아랍어에서 술을 가리키는 말로서, 커피 또한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도취’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악마의 향기’로 여겨졌다. 커피는 15세기 중엽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였던 예멘에서 처음으로 상품으로서 재배되고 그 뒤 주요한 교역품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하여 카이로, 시리아를 거쳐 16세기 중엽 이스탄불에까지 파급된다.

그리고 터키문명이 최고의 영화를 구가한 16세기에, 커피는 이스탄불 상류계급의 식탁을 진귀하게 꾸민 값비싼 기호품이 된다. 16세기 후반 선술집밖에 없던 이스탄불에 600여개의 카페가 생기며, 이는 유럽의 카페로 전승된다.

1686년 프랑스 최초의 카페 ‘프로코프’가 소르본대학 옆에 문을 열었고, 이후 우후죽순처럼 번져 1788년에 이르면 1,800곳에 이르게 된다. 프랑스사람들은 그 화제에 대해 알든 모르든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고 한다. 또 그들의 방랑벽이 그토록 카페를 확산시킨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카페에서는 신분과 종파, 이데올로기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담론을 즐기고 철학자가 되었으며, 백화난만 세기의 모든 논의는 필경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어, ‘프로코프’는 유토피아와 모반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다.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축제 분위기에 들뜬 프로코프를 저자가 방문했을 때, 그 카페의 메뉴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에 아마도 당신이 앉은 자리에서 볼테르, 보마르셰,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벤자민 프랭클린, 베를렌과 감베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도 식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프로코프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나라마다 색깔이 있어 다시 한 번 내게 여행에 대한 동경을 일깨운다. 가령
프랑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거움을 밖에서 찾고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는데 반해 영국인들은 집에서 티타임을 즐긴다. 영국에서는 오막살이에서도 오후 3-4시에는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영국사람들이 지금도 한 사람당 차를 마시는 양이 미국인의 154배에 이른다고 하는데, 1998년 영국에 스타벅스가 진출한 이래 커피의 급속한 보급에 차가 위협받고 있다고.

그런가 하면 프라하와 베네치아는 ‘유럽의 건축박물관의 거리’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고혹적인 풍광을 다툰다고 한다. 아드리아 해 바다 밑 점토층에 박힌 수백만 개의 떡갈나무 말뚝이 기층이 되어<무슨 소리인지?> 자그만치 118개의 섬과 117개의 운하, 400개의 다리가 연결되고 결합된 수상도시 베네치아, 사진으로만 봐도 유니크하기 그지없는 프라하의 카페에 가고 싶다. 이래저래 책을 읽다보니 오전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다. 놀고싶을 때, 놀 수 있기 위하여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혹은 돈 모아서 유럽여행 가자?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커피에 있어서는 믹스커피를 정수기 물에 타 먹는 수준이지만, 공간에 대한 욕심이 이글거리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이 무르익는 공간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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