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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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그렇다. 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시작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어떠한 경계도 모르는,
오직 영혼의 자유만을,
오직 그대 존재의 침묵만을,
오직 그대 잠재력의 성장만을,
그대 밖의 신이 아닌 오직 그대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신성(神性)만을,
그대 안에 존재하는 그 신성의 경험만을 아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성(religioness)의 시작이다."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 이 사람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얻은 깨달음의 상태를 인간의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듯이, 오쇼 라즈니쉬라는 인간 역시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그는 육체가 아닌, 영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이기에 그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자서전을 통해 본 그의 삶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고,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았지만, 다른 세상을 산 사람이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심오한 세계에서 살다간 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니,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살다 간 것이 아닌 계속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육신을 떠났을 뿐. 21세에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자신의 외적전기는 끝났다고 한 그의 말처럼, 그의 외적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한 번 쫓아가본다.
오쇼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외조부모와 함께 한 시간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오쇼가 이후에 영적구루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그의 외할머니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할 수 있다. 오쇼의 부모는 오쇼의 친할머니가 죽자, 가업으로 내려오던 의류판매점 일을 맡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어린 가족들을 돌봐야 했던 그들은 오쇼를 외조부모에게 보내게 된다. 그의 외조부모들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오쇼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평범함이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오쇼가 그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절대적인 자유를 허락해준다.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 어린 오쇼는 버릇없고 건방지고 오만불손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삶의 근본적인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어린 손자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훗날 그의 외할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손자의 제자임을 선언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쇼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기도 하였다. 세기의 영적스승으로 남은 오쇼의 정신적인 부모는 외조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그야말로 영적 신동이었다. 14세 때 이미 사토리라 불리는 영적경험을 하고, 21세에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스스로 그때 이후로 자신의 외적인 삶은 끝났다는 말을 남긴다. 대학에 가서도 대학원에 가서도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대학원 졸업 때는 철학 부문의 최고상을 받았으며, 인도 토론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한다.
그는 처음에는 라이푸르의 산스크리트 대학에서, 그 뒤에는 자발푸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철학을 가르친다. 학교 안에서도 모든 전통을 무시한 그의 독특한 교수방법은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학생들에게만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가 교수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자서전 속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권위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대학이란 곳에서 그가 행하는 갖가지 파격적인 언행은 그야말로 그곳을 초토화 시킨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바꾸어간다. 이후 그는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전파하기 위해 교직을 버리고,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강연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기존 종교의 가치에 대해 직설적으로 의심을 표명하고, 기존 종교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그가 말하는 대로 그야말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런 그의 언행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기성종교를 비난했으나 자신은 교주처럼 행세했고, 정신의 신비를 가르쳤으나 자본주의의 속성을 적극 활용했다는 비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비난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의 메시지는 종교도, 철학도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일종의 연금술이며 인간 변화를 위한 과학이다. 따라서 나의 메시지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자들, 용기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나의 메시지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그대는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따라서 나의 메시지는 그대가 외투처럼 걸치고 자랑할 수 있는 철학도 아니고 그대를 괴롭히는 질문을 잠재우기 위한 교리도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언어적 대화가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훨씬 위험하다. 그것은 바로 죽음과 부활이다."
오쇼는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물론 그것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있는가하면, 사기성 짙은 궤변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는 결국 1990년 1월19일 인도의 푸나에서 자신의 몸을 떠났다. 그는 결코 자신이 육체의 죽음이 우리 인간이 말하는 죽음이 아니라고 했다. 현재 푸나의 오쇼 코뮨 인터내셔널(Osho Commune International)이라는 그의 명상캠프는 영적 성장을 위한 세계적 메카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해마다 수 천 명의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그가 전 세계에서 온 제자들과 구도자들에게 강의한 내용은 30개가 넘는 언어를 통해 600권이 넘는 책으로 발간되어 자신 안의 길을 찾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빛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껏 단 한권의 책도 직접 집필한 적은 없으며, 그의 자서전 역시 그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탄생된 것이다.
오쇼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14) 그대가 제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사실(fact)과 진실(truth)의 차이이다. 보통의 역사학은 진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진실은 물질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직 의식의 사건들을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19)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은 순수한 개인성을 필요로 한다. 영성은 어떠한 종류의 의존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자유를 창조해낸다.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
20) 나에게 있어 영성은 단지 자신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40) 스승은 그 스스로 알았고 자신이 안 것을 나누어준다. 선생은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을 고스란히 세상에 전해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41) 앎의 대상은 없다. 알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아는 자가 있을 뿐이다.
56) 언제나 자신에게 진실한 나니는 말했다. "바꾸기에 너무 늦는 법은 없어요. 당신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꾸세요. 사실 당신은 늙어가고 있으니까 더 빨리 바꿔야 해요. 늙었으니까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은 바꾸지 않을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늙은 사람은 그럴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충분히 늙었어요."
69) 자유가 함께하는 사랑, 만약 그대가 그것을 갖는다면 그대는 왕이나 여왕이다. 자유가 함께하는 사랑, 그것은 진정한 신의 왕국이다. 사랑은 그대에게 땅으로 통하는 뿌리를 주며, 자유는 그대에게 날개를 준다.
76)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자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겠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렇다면 방랑자라고 해도 존경받을 만해요. 존경은 직업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존경은 그 사람의 행동이 힘과 명료함, 지성으로부터 나오고 있느냐와 관계가 있어요.
76) 제가 대학에 가는 건 어떤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두세요. 저는 그런 바보같은 일들을 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요. 하지만 아주 교양 있고, 영리하고, 교육받은 방랑자는 무척 필요해요.
105)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105) 그들은 붓다나 크리슈나를 아름답게 그려놓아 그대 안에 붓다나 예수, 크리슈나가 되고 싶은 커다란 열망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 열망이 그대 고통의 근원이다.
106) 그대 존재의 자연스런 길을 따른다면 비록 지옥에 있다 해도 그대는 천국에 있을 것이다.
115) 몇 번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좋다. 몇 번쯤 길을 잃는 것은 좋다.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대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돌아오라. 삶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119) "제발 선생님의 갈 길만 가주세요. 선생님의 과목이 아니면 어떠한 조언도 제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저의 삶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저는 기꺼이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그것만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125) "저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단지 볼 뿐이에요. 그리고 선택의 문제는 없어요. 저는 제가 뭘 공부하게 될지 알아요. 그것은 어떤 직업이 더 유리할지 저울질해볼 문제가 아니에요. 거지가 될지라도 해도 저는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131) 만약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나와 똑같이 절대적으로 비어 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두 거울이 서로 마주보고 있게 될 것이고 두 비어있음만이 비춰질 것이다. 무한한 비어있음이 비춰질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 그러나 그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안에서 그대 자신의 생각을 볼 것이다.
135) 그들은 와야 했기 때문에 왔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단지 사회적인 관습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지 그들이 왔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오는 것조차도, 그들이 죽었을 때 청소차가 그들을 실어가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140)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은 없다. 만약 그대가 삶에 집착한다면 그때는 모든 두려움이 거기 있다.
141) 내가 파리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순간, 짜증은 사라졌다. 파리들은 여전히 몸 위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파리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몸 위를 움직이고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즉시 하나의 거리가 생겼다.
147) 나는 그들이 나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대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에 빠진다. 세상이 그대를 그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대 쪽에서도 아무런 기대가 없다.
159) 마음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성을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적인 일들에 질리게 되면 마음은 깨달음을, 해탈을, 니르바나를, 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똑같은 욕망이 돌아온 것뿐이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160) '내가 깨달음을 얻은 날' 이라는 말은 단순히 성취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
161) 노자(老子)는 말한다. 진리가 말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64) 노력은 필요하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만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65) 에고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계속 욕망의 페달을 밟기 때문이며, 계속 무언가를 얻으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이며, 계속 자기 자리보다 앞을 향해 도약하기 때문이다.
168) 그대는 그대와 그대의 희망 사이의 거리를 줄일 수 없다. 희망은 지평선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과 지평선 사이에, 희망 사이에, 투영된 욕망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다.
168) 그대의 희망없음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 그대의 욕망없음 속에 그대의 유일한 충족이 있다. 그대의 엄청난 무력함 속에 불현듯 전 존재가 그대를 돕기 시작한다.
208) 저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을 질문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질문입니까?
234) 존경은 선생의 자질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제자나 학생들에게 요구되지 않았다. 존경심은 그저 일어났다.
241)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없는 단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통합과 개인성, 진정함, 그리고 충족감에서 오는 엄청난 지복을 주었다.
275)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도 다음 단어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어떤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 사람은 준비를 할 때 실수를 범한다.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것을 기억할 때에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어떤 강연자도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281) 깨달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며 유일한 경험이다.
283) 나 자신의 경험으로는, 만약 그대가 침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가 마음을 초월할 수 있고 그대의 의식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그대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의 행동들은 전혀 중요시되지 않는다. 오직 그대의 의식만이 중요할 뿐이다.
303) 나는 종교성을 하나의 특질로 본다. 그것은 조직의 회원권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인 경험이다.
315) 신은 없다. 그러나 모든 꽃 속에, 모든 나무 속에, 모든 돌 속에 신성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 안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에만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 언어를 모른다.
343)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그 한순간 동안 그대는 깊은 명상적 상태 속에 있다. 생각이 멈춘다. 웃으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둘은 정반대이다.
368)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그것은 이 순간의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강요도, 어떤 국가도, 어떤 역사도, 어떤 경제도, 어떤 무의식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370) 단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라. 만약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즉시 징벌이 따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보상이 따라 올 것이다.
387) 믿지 말라. 물어라. 그대가 믿는 그 순간 질문은 멈춘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두라. 믿지도 말고 믿지 말지도 말라. 단지 깨어 있는 채로 모든 것을 탐구하고 의심하라, 그대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것이 진리이다.
407)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들을 넘어 움직일 수 있다. 믿는 사람은 생각에 집착한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마음의 부분이다.
416) 모든 사람들의 100도가 각각 다르다. 사람 또한 100도에서만 수증기로 변하지만 모든 사람의 100도는 서로 다른 것이다.
429)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마음 그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429) 붓다의 심리학은 마음 안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붓다의 심리학은 분석이나 종합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바깥으로부터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바로 그 바라봄이 곧 변형이다.
432) 만약 제가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면 저는 다시 그 강을 더럽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마음 속으로 뛰어든다면 더 많은 소음이 일어나고 더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가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그 기술을 배웠습니다.
433) 그대의 마음을 더 자각하라. 그러면 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그대는 높이 더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다. 마음은 바윗덩이와 같은 작용을 하여 그대를 아래로 끌어 내린다. 마음은 그대를 중력의 장(場) 안에 붙잡아 둔다.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묶여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대는 붓다장(buddhafield)으로 들어간다.
443) 머지않아 동양도 서양도 없어질 것이다. 하나의 세계만이 있을 것이다.
448) 그대의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는데 들어가고 또 3분의 1은 교육에, 배우는데 들어간다. 뭐가 남는가?
그중 많은 부분은 밥벌이에 들어간다.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을 계산해본다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70년 가운데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7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쳐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대가 염두해 두는 것은 그대가 빨리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459) 나의 노력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지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486) 나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가능하면 불가능할수록 그것은 더 해볼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실패했고 과학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동양이 실패했고 서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뭔가 더 높은 통합체가 필요하다. 동양과 서양이 만날 수 있고, 종교와 과학이 만날 수 있는 통합체가 필요하다.
490) 나는 태풍의 중심이다. 따라서 나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490) 외부상황은 변할지 몰라도 그대의 의식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르침의 전부이다.
외부상황은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어느 날은 성공하고, 어느 날은 실패한다. 어느 날은 정상에 있고, 또 어느 날은 밑바닥에 있다. 그러나 그대 안의 무엇인가는 언제나 그대로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엇인가가 그대의 실체이다. 나는 나의 실체 안에 살 뿐이다. 나는 실체를 둘러싼 모든 꿈과 악몽들 속에 살지 않는다.
493) 세상엔 오직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505) 그대 안에 하나의 혁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음을 넘어 의식의 세계 속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종교적이지 않다.
514) 나의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상태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달성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흰 구름이 될 것이다.
518) 그대는 그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가 그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대 앞에 모든 길들을 펼쳐놓아 그대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올바른 길이 나타날 때면 그대는 즉시 그대 안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신호이다. 그것이 그대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기다려온 때라는 것을, 이것이 그대의 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521) 그대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좋은 기회이며, 도전이며,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을 창조적으로 이용하라.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라. 조용히 그대 자신의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의 확신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좋다.
523) 나누라. 그러나 강요하지 말라. 나눔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눔은 타인을 매우 존중하는 것이다. 나눔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강요는 폭력적이다.
543) 기러기는 물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려는 욕망이 없다. 그리고 물은 기러기의 상을 받아들이려는 욕망이나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일어난다. 기러기가 날아갈 때면 물은 기러기를 비춘다. 그 반영은 거기 있다. 그 상은 거기 있다. 그러나 물은 비추려는 마음이 없고 기러기도 비춰지려는 갈망이 없다.
565)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자유는 책임이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스스로 그대의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그때는 다른 누군가가 그대 대신 그 책임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대는 노예가 된다.
586) 나는 그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대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대에게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거기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기 안에 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시간 속에도 있지 않으며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정지할 때의 느낌, 완전한 정지의 느낌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의 경험과 같다.
605) 이완하라. 그대가 단지 주시자일 뿐이라는 것만을 기억하라. 육체는 그대가 아니다. 마음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하나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대가 거울과 같은 주시 속으로 침잠함에 따라 전 존재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신성해진다.
3.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이 절(section)은 미천한 지식을 가진 필자와 저자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지는 장소이다. 변경연의 부지깽이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고수들과의 지적 경쟁을 독려하며 우리를 죽음의 링으로 몰아넣길 즐긴다. 이 책의 저자 오쇼 라즈니쉬는 지금까지 만난 고수 중에서도 참 유별난 고수이다. 말로는 그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나에게 그는 너무나 큰 강적이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인도의 각종 토론대회를 휩쓸고, 인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석학과 종교지도자들을 KO시킨 그와 내가 어찌 지적 경쟁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잊고 있었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이 책은 오쇼 라즈니쉬, 그가 쓴 책이 아니다. 그는 평생 무려 600여 권의 저작을 남겼지만,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책을 쓰는 것을 부질없는 짓이라 여겼다. 이 책 역시 그의 이름을 내건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강연과 기존의 저작물들을 편집하여 출간된 책이다. 그것도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말이다. 아무튼 사실상 상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지만, 나로서는 무서운 경쟁상대를 직접 대면하지 않게 된 것에 다소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책의 뼈대
이 책은 자서전이면서도 단순히 시간적 순서나 작가의 기억의 흐름만을 따르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형식과 구성을 취하던 오쇼, 그가 전하는 '길은 내안에 있다'라는 그 하나의 메시지는 책의 곳곳에 아니 전체에 녹아들어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부. 평범한 인간: 전설 뒤에 숨은 역사
2부.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3부. 유산
4부.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 사건들
오쇼의 삶은 그의 말처럼 단지 그의 외적 경험과 그가 겪은 사건들로만 이야기 되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자서전의 형식도 그 만의 독특한 삶을 반영하여 구성된 듯하다. 일반적인 자서전의 형식과 내용에 가장 가까운 장(chapter)은 1부와 4부이다. 1부 '평범한 인간'에서는 그의 인생을 서술하고는 있지만, 이 역시 그의 외적인 삶과 함께 내적인 삶을 많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내적인 삶이란 그의 영적 깨달음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4부에서는 그의 인생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라 하면 바로 2부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남다른 인생을 살다간 인물인 만큼, 많은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에 대한 관심은 단지 그가 태어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나갔다.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별명을 붙여주었고, 자신들이 바라보고 싶은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가진 오쇼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워낙 다양하고 남다른 것들이어서 이 부분은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매우 짜임새있다고 생각한다. 자서전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주관적 시점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내용을 따로 할애한 점이나, 자신의 내적 전기(1부)와 외적 전기(4부)를 분리해서 구성한 점 또한 특별하다. 하지만, 3부 '유산'은 꼭 들어갔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말했듯이 오쇼가 남긴 저작은 무려 600여권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책 외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녹음과 영상 형태의 강연자료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자서전에 '유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요약해 제공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까지도 전하고픈 메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서전에서만큼은 다른 곳에서도 수없이 반복되었을 그의 메시지 보다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시대의 자기계발
"서양은 지나친 과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동양은 지나친 종교로 고통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인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신인간은 신비가이며, 시인이며,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 (487p)
그 동안 서양은 과학, 동양은 정신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어 왔다. 물론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들은 많다. 오쇼의 말처럼 과학과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이성과 감성, 지식과 지혜, 몸과 마음 등 서양과 동양을 대조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수도 없이 많다. 여기서는 오쇼가 사용한 단어를 사용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그야말로 자기계발이 붐이다. 서점가에는 언제나 자기계발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무엇이 됐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오쇼는 인간은 먹고살기 힘든, 즉 의식주가 곤란한 수준을 넘어서면 영적 성장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서일까? 꼭 영적성장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저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더 건강하고 멋진 몸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되고, 더 많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것일까? 오쇼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류는 종교와 과학을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는 동양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고, 과학은 서양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동서양을 바라보는 수많은 대조적인 관점을 두루 받아들이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매일매일 성장을 꿈꾸는 현대인들이 가슴깊이 새겨두어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진정한 성장이란 어느 한 부분만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7가지 습관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 또한 그의 책에서 인간의 성장을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4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균형있는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엔 종교와 과학은 그저 대립의 대상이었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허황됨으로 여겨졌고, 과학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단순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 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종교와 과학은 이제 더 이상 싸움을 그만두고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쇼의 말처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종교와 과학, 그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는 이 둘을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진정한 자기계발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험한 책?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때론 무서운 경험일 수 있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랄까?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가치, 진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지식과 믿음들이 모두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산산이 깨부수어질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게 한다. 오쇼 자신도 자신의 메시지를 듣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쇼를 비롯한 여러 영적 구루가 경험한 그 깨달음의 상태는 무엇일까? 이 세상, 이 우주는 정말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정말 누구인가? 이런 수많은 질문들을 가슴속에 남긴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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