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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4일 17시 26분 등록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Writing Down the Bones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권진욱 옮김/한문화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1948~ )

나탈리 골드버그.JPG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계 유태인이다. 그녀는 1986년에 발표한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Writing Down the Bones> 한권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름과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스승으로 이야기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또한 그녀의 책은 미국을 넘어서 전세계로 번역, 출간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통한 자기성찰 및 반성 그리고 창조적 삶의 방법등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그녀의 사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생활은 이혼이란 과정을 거치며 심각한 자기비하 상태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그 기간동안 온전한 인간관계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기댈 수 있고 나를 돌봐 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또한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여 시인의 길을 걷긴 했지만 항상 밥벌이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밥벌이와 천직 사이에서의 고민. 그것은 그녀에게 가장 절실한 생존의 문제 그 자체였다. 생활이 그렇다보니 시인이었던 그녀가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쓴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친구 중의 한사람에게서 이러한 류의 책을 써보라고 권유를 받긴 했지만, 막상 이 책을 쓰고자 펜을 든 나탈리는 갖은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에 몸서리 쳤을 것이다. 시인은 정신이 맑아야 한다. 그러나 시인도 밥을 먹어야 산다. 이러한 간단하고 명확한 명제를 두고 그녀는 책을 쓰는 내내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완성했을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적어도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이죠. 가장 힘든 싸움은 글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하거나그저 한 번 시도해 보는 단순한 활동으로 끝이 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그녀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그녀의 말을 빌어 옮기자면 나탈리는 학창시절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꽤나 모범적인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모범적이란 단어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창조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모범적 학교생활을 마친 후 그녀는 시나 소설, 즉 작가생활을 하면서 살고자 했지만 그러기에는 밥벌이가 더욱 궁함을 알고 친구들과 동업하여 식당을 차리게 된다.

그 후 식당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꽤나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사업번창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작가의 꿈은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과일과 야채 by 에리카 종>라는 시집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평범한 소재로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전업작가로 전환하게 된다.

그녀의 경력 중 독특한 점은 그녀가 미네소타 주에 있는 한 선원(禪院)에서 약 8년간 선수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선(禪)이라고 하는 것이 동양적인 것이다보니 서양인 그것도 서양여자가 접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도 불구하고 선수련을 8년간이나 받고 그 후 계속하여 선수련에 정진하는 것을 본다면 그녀의 삶과 선(禪)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숙한 관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선수련이 그녀의 글쓰기의 기본이 되었다. 수련을 하듯 글쓰기도 그렇게 접근해 가면 인생이 되고, 삶의 모습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글쓰기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때 내가 글쓰기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는 것, 글쓰기와 내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 내가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글이 나를 쓰고 있는 것. 그러한 경지가 저자가 생각하는 완벽한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현재 그녀는 집필, 글쓰기 워크샵, 미술, 강연 등 다양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 그녀의 저서

Chicken and in Love (1979)

Writing Down the Bones (1986)

Wild Mind: Living the Writer's Life (1990)

Long Quiet Highway: Waking Up in America (1993)

Banana Rose (1995)

Living Color: A Writer Paints Her World (1997)

Thunder and Lightning (2000)

The Essential Writer's Notebook (2001)

Top of My Lungs (2002)

The Great Failure (2004)

Old Friend From Far Away: The Practice of Writing Memoir (2008)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9-10P)

본문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인생에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14-15P)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계속 밀고 나갈 때, 비로소 그 일은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17P)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똑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뿐더러 나 자신을 더욱 높은 이해의 경지로 끌어 올린다.

글 쓰는 법을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18P)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19P)

당신의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19-20P)

글쓰기는 정신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작업이기에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에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24P)

감정과 사유에 대한 집착을 흘려 보내는 것, 끝까지 계속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좌선의 규칙이다.

글쓰기도 이와 똑같다.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질려 겁을 먹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수업 첫 시간에는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들이 있다. 좋은 일이다. 글을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다. 자신의 감정에 마멸되지 않아야만 저 반대편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 들라. 이것이 원칙이다.(26-27P)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29P)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활활 불을 붙여 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내면의 에너지원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으로 우리가 느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다.(28P)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번쩍’하고 빛을 내는 불씨이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28P)

첫 생각은 에고나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 견고하며, 지속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당신의 글쓰기를 누르던 자아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인간적 감정과 인생의 단면이라는 파도를 타고 더 큰 조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29P)

어째서 첫 생각에는 이처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첫 생각은 신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란‘숨을 불어넣다’라는 의미로‘신(神)을 들이마신다’는 의미이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동안 당신이 겪어온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에 물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각이 가진 에너지이다.(30P)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31P)

티베트 불교 승려인 초감 투룽파(Chogyam Trungpa)는 이런 말을 했다.“무서운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스스로의 마음을 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 내야만 합니다.”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가져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워밍업 단계이다. 훈련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전에 거쳐야 하는 가장 초기적이며 또한 본질적인 바탕 그림에 해당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논문이나 희곡, 여행기이든 그 글에 힘이 실리게 된다.(32P)

열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33P)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움직이는 사육제』(A Moveable Feast)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리에서 미시간 이야기를 썼듯 어쩌면 나는 파리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파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육체의 세계, 인생이 남긴 쓰레기 더미는 자꾸 쌓여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경험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질소화합물과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이 비옥한 토양이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 피워 주는 자원이다.(38-39P)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새, 나무, 하늘, 달, 그 외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만이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일합니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될 것이다.(41P)

우리는 계속 비료가 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고 글을 쓰는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 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다른 사람의 성공도 인정할 수 있으며 쓸데없는 욕심에도 빠지지 않게 된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마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도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 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훈련을 하라.(41-42P)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쓰레기와 비료에서부터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비평도 무섭지 않다.(46-47P)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노트에 적어 두라. 그것이 한 단어이든 문장이든 이러한 목록들은 당신이 다음에 글을 쓰고자 할 때 요긴하게 끄집어 내어 사용할 수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이처럼 목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글쓰기 훈련에 있어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글쓰기의 재료들을 찾아내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글쓰기가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의 재료들과의 관계에서 탄생되는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49P)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에 다가가 더 깊고 훨씬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56P)

선(禪)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과 피 흘리는 싸움은 하지 말라.(57P)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어떤 글이든 언제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59P)

습작시절부터 창작자를 편집자 또는 내부 검열관과 분리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이유는 창작자가 자유롭게 호흡하고 탐험하고 표현할 공간을 가지기 위함이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창조적 목소리를 내려는데 편집자가 성가시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작업을 진행시키기 힘들다면, 편집자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한번 적어 보라.

“당신은 사기꾼이야. 대체 누가 당신 같은 인간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하겠어? 당신 작품? 엿같아! 말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야. 작품이라고 말할 가치라도 있나? 사람을 보면 열을 아는데 글이라니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야? 당장 집어치우고 보다 ‘돈’이 되는걸 하는게 낫지 않을까? 글 쓴답시고 여기 죽치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일뿐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도 한결 수월해 진다.(60-61P)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65P)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모든 거리 속으로 들어가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66P)

글을 쓰는 데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재능과 능력은 훈련을 거쳐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67P)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68P)

시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시인이 언어를 통해 맥박이 뛰게 하고 따뜻한 피가 흐르도록 만들어 내는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개체이다.

우리는 그 시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그 시를 노래했을 때 시인이 보았던 이미지를 다시 불러와야 한다. 정작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를 쓰는 것을 배우는 방법이다.(69P)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70P)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70P)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71P)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당신이 쓴 시를 세상 사람들이 읽게 만들고, 당신은 계속 또 다른 시를 쓰는 것이다.(72P)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시 한 줄 속에 처박혀있어도 영원히 만족할 수 있는 영구불변의 진실이란 없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73P)

“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새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헤 쏟아붓도록 해야 한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 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은유란 논리나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은유를 위해서는 사물을 바라보던 익숙한 시각에서 기꺼이 벗어나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폭넓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75-76P)

은유를 위한 은유를 하지 말라.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지 말라. 그저 평범한 사고방식에서 한발 물러서서 머릿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계속 기록해 보라. 이런 연습은 마음과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줄 뿐 아니라 창조력을 키워 준다.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76P)

누구나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오븐에서 막 꺼낸 피자처럼 종이 위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풀어 주라. 아주 간단한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79P)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임을 명심하라.(79-80P)

당신이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이,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80P)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85P)

우리의 삶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 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그러므로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89-90P)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임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며 우리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 우리가 삶의 세부 사항을 묘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 우리를 대량학살하려는 원자폭탄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90P)

세부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91P)

단지 재료를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 하나의 생명체로 확장시켜야 한다.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 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이 분리되지 않는다.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93P)

세부묘사를 이용하라. 세부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이다.(95P)

봉급자들은 시간과 돈을 맞바꿔 일한 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97P)

작가는 앞에 가파른 언덕이 있든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가 있든 언제나 스스로를 조율하며 몇 킬로미터의 원고라도 써낼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언제라도 수많은 세상을 넘다들어야 하기 때문이다.(100P)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이 있는 곳을 채우고 있는 공간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은 당신을 통해 그 공간의 소리를 분출시킬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게 된다.(103-104P)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된 글이 태어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시를 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104P)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의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105P)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작가인 바쿠는 “나무를 알고 싶으면, 나무한테 가라”고 말했다.(106P)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108P)

어빙 호웨(Irving Howe)는 <유태계 미국인 이야기(Jewish American Stories)> 서문에서 “최고의 작품은 감상적인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감상적이기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썼다.(109P)

소망들을 글고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 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116P)

강박증이 유령처럼 달라붙듯, 우리의 꿈도 계속 앞에서 어른거리는 성질이 있는가 보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관심이 쏠리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117P)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119P)

글쓰기는 심리학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작가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언어를 통해서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손을 잡고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끌어가야 한다.(123P)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124P)

고유성을 허락하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 주라.(125P)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다갈 수 있다. 우리 마음 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126P)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의 전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127P)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당신이 쓰는 글과 함께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도 있다.(135P)

뉴욕에 살고 있는 단편 작가 그레이스 팔레이(Grace Paley)는 이런 말을 했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137P)

이야기 만들기는 글쓰기 훈련의 자원이다. 이야기를 해 봄으로써 무엇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무엇이 지루하게 만드는지 의사전달력과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137P)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139P)

글쓰기는 공동체 행동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작가는 절대 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140P)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역사, 이념, 그리고 대중문화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글쓰기 안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141P)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 줄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141P)

작가와 동지가 되어라.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의 한 부분만을 찾아내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에게만 틀어박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자신을 통해 많은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작가와 동지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142-143P)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도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만이 이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은 자기 본위에서 나온 이기심일 뿐이다.(143P)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 버려라. 우리 모두는 어차피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고통스럽다. 그것을 자신만이 고통스런 존재로 생각해서 더 어렵게 할 이유는 없다.(143P)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밭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145P)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처럼 너무 바쁘거나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그녀가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147P)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당신이 동물처럼 행동해 보는 방법도 좋다.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없다. 일상의 찌꺼기에서 꺼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그리고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이라는 단계 밑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148P)

세상이란 언제나 흑과 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물론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151P)

스스로 경계할 부분이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152P)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떨쳐버리라. 자신 속에 무한한 자원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는 그런 날은 찾아온다.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태우는 행위이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결국 확실치 않았던 부분을 확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152P)

창조성이란 완전히 그 반대편, 조절력을 포기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161P)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163P)

카타기리 선사는 부부에 대해서 ‘부부는 마주보고 걷는 이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서서 걸어가는 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164P)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단순한 존재이지만 특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166P)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도 존경을 표하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글의 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167P)

글쓰기를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로 만들라. 심지어 당신이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때 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172-173P)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175P)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고 느껴질 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바로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치게 할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우리를 나아가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177P)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에게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예전에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178P)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다시 또 쓰라. 당신의 글은 많은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자꾸 쓰면 쓸수록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다.(180P)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181P)

사실 글쓰기는 당신의 친구이다. 글쓰기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182P)

고어 비달(Gore Vidal)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183P)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어떤 이유이든지, 글쓰는 행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깊이 불사르며 발산하게 해 줄 것이다.(189P)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을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195P)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키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 보라. 우리는 마치 우리가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편안한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에 방심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213P)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 다시 돌아와 글로 나타내게 하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214P)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215P)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마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서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난 매일 글을 쓰겠어.” 이런 규칙으로 자신을 마비시키는 짓은 하지 말라.(220-221P)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등을 펼 수 없고, 펜을 놓은 다음에야 등을 편다.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한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야 하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도전이 되는 것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221P)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정원을 손질해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224P)

“고독은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냉수 샤워를 합니다. 그때마다 차가운 기운에 펄쩍 놀랍니다. 하지만 나는 물줄기를 피하지 않고 계속 서 있습니다. 고독은 언제나 우리를 물어뜯습니다. 우리는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겁니다.”-카타기리선사- (230P)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고독의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거기서부터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당신의 인생을 그에게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라.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231P)

당신의 글을 읽을 독자에게 당신 심장 더 깊은 속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당신은 카톨릭 신자, 남자, 남부 사람, 흑인, 여자, 양성애자, 그리고 하나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또 나의 글의 원천은 어디인가. 이것을 먼저 알고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켜 줄 때 당신은 세상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이다.(240P)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만약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잠시 미루어 두라.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작품을 읽어 보라. 무언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당신의 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보일지도 모른다.(259P)

만약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에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말라. 당신이 쓴 좋은 부분은 이미 당신을 위한 퇴비가 되기 위해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라.(259P)

윌리엄 카로스 윌리엄스는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 버려도 좋다.” 그 한 줄이 바로 시라는 뜻이다. 시는 인생을 담은 탈 것이며 생명력의 그릇이다. 한 줄 한 줄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작품을 쓸 때 이런 부분은 간직하고 나머지는 제거해 내어라.(261P)

자신의 작품을 다시 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269-270P)

에필로그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성공은 고립감과 또 다른 실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큰 감정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말라.(277P)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이 책은 한마디로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기존에 나와있던 글쓰기에 대한 책과는 확연하게 차별화가 된 책이다. 기존의 책들이 글쓰기를 위한 기술의 전수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면,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받아들임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자기성찰, 표현, 반성 그리고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방법까지 다양한 인생의 모습을 모색하도록 만들어주는 전혀 글쓰기 책 같지 않은 글쓰기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2007년 11월에 이미 한번 읽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게 되니까 그 느낌이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르다. 물론 그 당시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변경연의 연구원으로서 작년 1년간 본격적인 글쓰기 연습을 했기 때문이리라.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머리와 가슴에 콕콕 박혀 들어왔다. 글을 쓰는 기쁨, 고통, 괴로움, 고독, 환희와 정열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내용의 많은 부분은 작년 한해 글쓰기를 하는 동안 고심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왜 좋은 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은 머리로 이해한 사람보다 그 감동이 클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란 무엇일까? 저자는 글쓰기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을까. 그래서 이 책 안에 등장하는 글쓰기의 정의 비슷한 내용들을 모아 보았다.

글쓰기는 ○○ 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68P)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71P)

글쓰기는 심리학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작가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언어를 통해서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손을 잡고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끌어가야 한다.(123P)

글쓰기는 공동체 행동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작가는 절대 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140P)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태우는 행위이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결국 확실치 않았던 부분을 확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152P)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163P)

사실 글쓰기는 당신의 친구이다. 글쓰기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182P)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정원을 손질해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224P)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일까. <보통사람들>의 저자 쥬디 게스트의 추천사를 읽어보면 이 책이 일반 사람들에게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모험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도 최고의 안내서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모든 방법이 들어 있다. 이런 접근법은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혁명적인 방법이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이용할 수 있으며 또한 누구에게나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책상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많은 고통과 후회를 덜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여러분의 인생까지 구원해 줄지 모른다.”

다른 유명인들은 글쓰기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글쓰기에 대한 좋은 말은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찾아 보았다. 위의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글쓰기의 정의와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듯 싶다.


글쓰기에 관한 명언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조지프 퓰리쳐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 나탈리 골드버그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찬 놀이이다. - 스티븐 킹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 존 스타인 벡

글은 쓴 사람의 영혼을 보여준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 그레이스 팔레이

글을 쓰고 싶다면 종이와 펜 혹은 컴퓨터, 그리고 약간의 배짱만 있으면 된다. -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써야 한다. 글쓰기의 첫 번째 열쇠는 쓰는거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들 뿐이다. - 알베르 카믜

글 쓰는 것은 쉽다. 그저 혈관을 열고 피를 흘리면 된다. - 레드스미스(Red Smith, 1906-1982, 스포츠 기자)


글쓰기의 어려움

“당신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그 결과물을 아무도 먹지 않으려 한다. 세부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거듭 세부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만큼 세부묘사가 글의 생동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읽는 독자에게도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저자의 말은 백분 공감도 하며, 이해도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머리로 그리기가 어렵고, 머릿 속 이미지를 글로 풀어 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또한 그러한 작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몰입하지 못하고 대충 뭉뚱거리고 넘어가게 마련인 것이다.

이렇게 쓰여진 글에 대해 저자는 냉정하다. ‘그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추상적인 글쓰기는 독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웅대한 사고와 생각 그리고 쇠도 녹여버릴 뜨거운 열정으로 쓰여진 글이라 할 지라도 추상적인 표현으로 흘러버린다면 독자들은 자진해서 그 글들을 읽지 않은채 쓰레기통으로 버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마추어같은 추상적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한마디로 말한다. 훈련과 훈련 그리고 또 다시 훈련이라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서만이 글이 더욱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글쓰기에도 분명 재능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감수성이라든가 언어의 구사력,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보다 한 단계 위의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훈련을 통해서 그 부족한 점을 많이 메울 수 있다고 하는 점이다. 끊임없는 훈련을 한다면 추상적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잠재력까지도 계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저자의 말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건다. 계속적이며 꾸준한 훈련을 통해 글쓰기와 함께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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