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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1일 08시 53분 등록

저자에 대해서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출간하면서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은 백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할정도로 글쓰기의 바이블이 되었다. 저자는 독특한 체험을 통해 글쓰기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그녀는 25년간 선 체험을 해 오면서 카타기리라는 선승을 통해서 깨달은 점을 글쓰기에 접목하여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그녀의 글쓰기는 선의 그것처럼 내면으로 향한다.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힘을 중요시한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오랜 명상체험을 통해 얻게 된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그녀의 글이 매력적인 것은 글쓰기를 테크닉이나 재능의 범부에서 꺼내 삶의 한가운데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책은 도움과 위안이 되어주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실이나 정보를 나열하거나 일화나 적고 말아서는 안된다. 내 눈으로 진실을 찾아내어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현실속의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꾸미거나 피해가지 말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솔직히 풀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좋다. 독자와 내가 같은 현장에서 같은 상황으로 같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생생한 글쓰기란 결국 나의 이야기여야 하며, 내 이야기가 독자의 이야기여야만 한다. 공감의 요소는 거기에 있는 듯 하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을 읽으면서 첫 느낌은 솔직함이었다. 역시 솔직함은 찐하다. 그녀의 친구는 글쓰기와 사업이 닮았다라고 하였다. 나 역시 인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이  글쓰기를 통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훈련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 차곡차곡 쌓이는 삶으로의 전환을 꿈꿔온 나에겐 의미 있는 구절이다. 건강한 정신으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삶에서도 그렇고 사업에서도 장수브랜드들의 특성이다. 오래간다는 것은 세월의 때만큼 관록있다.

 

그녀는 실천적 글쓰기를 강조한다. 실천하면서 연구하면서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글쓰기가 바로 실천적 글쓰기다. 삶의 과장된 왜곡 없이 이것보다 더 진실한 알맞은 지혜가 또 있을까! 이 책이 제목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인 것은 과장이 아님을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녀의 삶이 실천적이었고, 그녀의 글이 실천을 기반으로 한 결과였고, 글쓰기는 그것의 기록들을 옮겨 놓는데 불과한 것이다.

 

그녀는 첫 생각의 에너지를 제약하지 말고 강렬하게 글을 쓰라고 한다. 이것은 영감의 느낌을 지속하는 방법이다. 영감은 순간의 재치가 아니라, 우주의 긴 시간속의 지혜가 함축되어 나오는 그 무엇이다. 그 연결고리는 만인이 동참할 수 있는 그 어떤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지구건너편에 있는 그 어떤 누구와 만나게 해준다. 그것은 배움 전의 감정상태이다. 아름다움을 배우지 않아도 그냥 깨닫게 되는 것처럼 첫사랑처럼 달콤하고 신비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감대로 글을 쓰라고 한다. 참으로 깊고 정확한 지적이다. 나 역시 기업이미지를 만들 때 또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영감에 의존하게 되는데, 영감에 따라 표현된 작품은 여지없이 통렬하다. 그 느낌을 잊지 말고 새벽에 일어날 마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수련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저자는 글쓰기의 수련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위밍업 단계와 같다고 하였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완성되어질 그림의 대략적인 틀을 잡게 되는데 그런 이치와 같은 것이다. 내 첫 책에도 밑그림에 대해서 예를 들며 설명해야 겠다.

 

저자의 글쓰기가 매력적인 것은 그 예를 드는 방법에 있다.

그녀는 글쓰기의 워밍업의 지속성의 예를 무용수의 스트레칭, 유상선수의 몸풀기등을 통해 제시한다. 예가 쉽기 때문에 와 닿는다. 이런 글쓰기는 어려운 단어로 인해 감정을 잃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어는 최대한 쉽게 선별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글을 쓸때는 일체의 욕망을 버려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써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라고 하면서 집착을 버려야 글이 제대로 써지고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음을 얘기했다. 나의 글쓰기는 집착이 강한 것 같다. 너무 잘 할려고 애쓰다보니 글이 어려워지고 딱딱해 지는 것이다. 우선 나중에 다듬더라도 마음의 흐름에 따라 그 첫느낌이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가보자. 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때에 첫 느낌을 따라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 오랜 습작의 산물들이 좋은 글을 위한 소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속에서 터져나온 감정어린 글들이 그리고 그런 감정을 찾아내는 글쓰기는 그 훈련의 시간만큼이나 감정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무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쓰자.

 

내 책에서 독자들에게 자기의 내면과 스스로의 비젼과 꿈을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이미지트리를 활용하려 한다. 그 이미지 트리는 의식의 욕망과 흐름을 진실하게 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것이라 할것이며 그래야 새로운 꿈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업 이전에 자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추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책 저자의 글쓰기 방법과 그 예시의 방법은 내 책을 쓰는데 좋은 소스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썼던 네가 지금처럼 멋진 글을 쓰게 되었다니 놀라워! 너를 보면 나 역시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아.”[42]

 

이 대목은 그녀가 독자들을 위해 어떻게 글을 썼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녀는 스스로의 성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즉 성공한 한 사람으로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에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로서 하나의 성공인이긴 하겠지만, 그 과정은 매순간의 치열한 노력이었음을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진실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한다. 그녀의 검소한 말투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저자는 글감 노트를 통한 글쓰기 훈련의 방법은 제시한다. 인상깊은 것은 글감노트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들 이었다. 시를 펼쳐서 계속 이어서 쓴다라는 것이나,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골라서 글을 써보는 것이나,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고 그 장면을 글로 써내려 가는 방법은 매우 좋은 것같다.

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생각이다. 내 삶을 둘러싼 감정들을 나열하여 하나하나 치고 글을쓰며 치고들어가봐야 겠다. 또한 제가 닮고 싶은 또는 내가 추구하는 깊이의 책들이 있다면 그 책의 글들을 쭈욱 따라가며 내가 쓰면 이렇게 쓸 것이다라는 관점으로 옮겨 담는 작업을 하면 매우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꼭 활용해 봐야겠다.

 

그녀는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하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작품을 탄생시킨 순간 다시 작가로 돌아가야 한다. 작가는 작품이 될 수 있는 무한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 그랬던가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글을 쓴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래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만큼 글쓰기라는 것은 24시간 전부가 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삶을 보더라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온 정신을 캠퍼스에 쏟아 붓고 있지 않는가!

이 감각을 잊지 말자.

 

책을 쓸 때 배울점 아이디어 한가지

좋은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글을 전개하는 관점이 풍부하고 세밀해서 하나의 깊은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글을 쓸 때 영감을 떠올려서 적용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것은 내가 쓸 목차를 옆에 늘 펼쳐놓고 책을 읽을 때 영감이 떠오르는 장면에 밑줄을 긋고 내 목차의 어느 한부분에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페이지를 기록해 놓는 것이다. 책의 제목과 함께그러면 책이 보다 풍성해지고 예리해 질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실행해야겠다.

 

저자의 글쓰기가 매력을 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쉽게 쓰는 글쓰기는 그녀의 매력중 하나일것이다. 이를테면 작가들을 애인에 비유된다. 그리고 다른 위대한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상대 작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비유를 애인으로 들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감정의 깊이와 인식의 습성을 다 흡수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유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1인 기업가들에게 브랜딩이란 어떠해야 할까? 옷일까? 아니면 내복일까? 넥타이?

아내의 손길? 애인? 신화? 뭘까? 어떤 비유가 가장 깊게 받아들여질까? 그 어려운 브랜딩이란 용어를~

 

일은 작품과 같은 것이다. 나탈리골드버그는 그런 욕구를 자극한다. 한번 더 한 번더 자신의 끝을 알기 위해 더 나아가라 한다. 그것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인간의 손 조각가의 손이다. 이것은 본능적인 자극이다.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이 책이 쉬우면서도 자극적인 것은 내용의 두께감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두께감이란 덩어리 같은 글을 의미하는데, 일상의 잔잔함을 얘기하면서 인간의 인내 즉 극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친근하게 교훈적으로 나를 설복시킨다.

 

어떤 일을 할 때 그러니까 제대로 맘을 먹고 누군가 이루지 않았던 또는 가지 않았던 길을 갈때는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으면 내가 가는 길은 평범하고 순탄할 길이다. 사람이 발길이 없는 곳을 걷는다는 것은 모험이다. 고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길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고독할 것이다. 고독이 나를 이끌게 하라. 고독과 친구가 되어라. 모든 위대한 영웅은 고독을 즐겼다. 아니 고독이라는 친구와 함께 길을 떠났던 것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면돌파를 의미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로 세상에 외치고자 함이다. 그래서 내 책은 미디어이다. 화가가 화폭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전시회를 통해서 발표하듯이 나는 나의 글을 책이 담아 발표를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식이 나의 해결방안이 어떻게 느껴질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경험으로 볼 때 다수의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믿어라. 그리고 더 섬세하게 좋은 방안들을 끄집어 내어 그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자.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라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환상임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기대하며 죽어간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가장 혁신적인 나의 모습으로 내 삶을 살아가자. 지금 현재를 라이브하게 살자.

 

가까운 시일내에 예술과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모임을 만들어 봐야 겠다. 나탈리는 이 책에서 이야기모임을 하나 만들어 보라 했다. 그 모임의 목적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나 역시 매일 새롭게 변화되기 위해서 자극이 필요하고 그런 모임을 이끌어 나가보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책을 출간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할 일이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이 시에는 좋은 재료가 들어 있는데도 잘 연결되지 않았어그렇게 계속 해보는 것이다. 나탈리의 말처럼 내가 책을 쓰거나 작품을 내거나 삶을 살아갈 때도 항상 나에게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하나를 보여주더라도, 시 같은 제대로 된 진실과 감성을 주자.

 

사람들은 내 글을 읽어야 할 의무감이 없다. 나를 모르고 나랑 관계한 적이 없다. 이때 나의 글은 어떠해야 할까? 그들의 주목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모두를 내 책에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불투명해진다. 그렇다.

결국 좋은 책이란 무관심한 독자가 아닌, 평소에 애절하게 필요했던 어떤 부분을 일깨워주는 길가의 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숲속의 불빛이여야 하며, 고개를 쳐들면 보이는 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그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책은 발이 없기에 먼저 손을 내밀어 잡을 수가 없다. 그들이 잡을 때를 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지 내가 있음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 문지기와 같은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의 성소를 발견하고 즉 평화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깊게 내다보고 판단하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의견은 천차만별이고 니체가 말한 것처럼 천개의 눈과 천개의 길이 있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개인들의 의견속에서 나는 내 조그만 평화로운 장소에서 의지를 세우고 내 뜻을 조금 더 살피고, 내 전하는 바를 조금 더 따져보고 명확하게 당당하게 행동을 해야만 한다. 글쓰기는 내 평화로운 장소의 서재이다.

나탈리는 그것을 알려 주었다. 뛰어난 사업가, 전략가, 지식인, 운동선수, 예술가 모두 자기만의 성소가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을 숙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내가 저자라면은 책에서 느껴지는 영감을 기반으로 써 내려갔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해 두고 싶었고, 후에 꺼내서 활용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이 산다는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 갔다. 저자의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책의 생동감의 살아있게 된 것은 누구나 어떤 무엇을 할 때 겪는 사연들 속에서 더 강한, 더 큰 인내심이 필요한, 더 깊은 통찰을 보여주기에 책이 매력적인 것이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추천의 말

나는 단순한 사실만 나열하거나 재미있는 일화나 적고 마는 작가로 끝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가족의 진실을 찾아 내어 작품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소망이 있었다.[4]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5]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5]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라고 긍정하라.[6]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그녀의 책보다 더 큰 도움과 위안은 보이지 않는다.[7]

 

1974년은 내가 명상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해다. 나는 카타기리 선생을 만날 때마다 선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의 대답이 나에게는 무척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라 그가 나탈리, 선이란 글을 쓰는 것과 똑 같아요라며 글쓰기를 언급하자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3년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훈련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글쓰기에 대한 글들은 달리기나 그림 그리고 당신이 인생에서 함께 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친구이자 크레이 연구소 소장인 존에게 이 책의 몇 부분을 읽어 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탈리,지금 당신이 말하는 건 사업 이야기와 똑같군. 그게 바로 사업이야. 글쓰기와 사업가의길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13]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16]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또 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이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17]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17]

 

첫 마음 종이와 연필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솔직히 나는 새로운 글을 쓸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었는지 의아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19]

 

고정관념은 아주 위험하다. 오히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 자신에게 글쓰기를 탐험할 수 있는 많은 공간을 허용해 주라는 말이다.[21]

 

내면 세계가 외부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이 외부 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못할 것도 없다.[23]

 

첫생각을 놓치지 말라.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질려 겁을 먹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생각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25]

 

나는 그들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쓰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25]

 

이러한 치열한 글쓰기 훈련에 있어 가장 기본은 제한된 시간 동안 글을 써 보는 것이다. 10, 20 1시간시간의 길이는 알아서 정한다.시간의 길이는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글쓰리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마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26]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불을 확확 붙여 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에너지의 심장부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다.[26]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두번, 세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의 의식은 일상의 관념 세계로 다시 돌아와 맨 처음 피어난 신선한 불꽃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27]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에너지가 넘칠 수 밖에 없다.[27]

 

어째서 첫 생각에는 이처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동안 겪어온 감정과 시간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각이 가진 에너지다.[28]

 

멈추지 말고 써라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29]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30]

 

또한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위밍업 단계다. 훈련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전에 거쳐야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바탕 그림에 해당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30]

 

육상 선수들은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는다.[31]

 

더욱이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나 후에는 다시 또 달려 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다.

 

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시를 쓰고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을 제한시키지 말라. 이렇게 자신을 제안하는 순간 당신은 경직되고 얼어붙는다.[32]

 

그저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미래의 위대한 소설가가 되리라 결심을 했으면서도 정작 단 할 줄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을 나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만약 당신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쓰리리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이런 기대감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32]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32]

 

또 다시 달리기에 비유해 보겠다. 달리기가 좋아서 잘 달리고 있을 때는 달리는 것에 대한 저항이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달리기를 위한 활동에 퍼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달리는 사람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의 모든 것이 진정으로 글쓰기에 실려 있다면, 거기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글쓰는 행위만이 글을 쓰고 있게 된다.[33]

 

8장의 행동 다음에 반드시 제9장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의 원칙은 없다.[33]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쉬는 공간이다.[34]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일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 상태를 글로 적절히 표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오직난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어라는 소리만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35]

 

학생들은 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 보겠다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37]

 

계속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그 풍요의 정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37]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 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38]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39]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썼던 네가 지금처럼 멋진 글을 쓰게 되었다니 놀라워! 너를 보면 나 역시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아.[42]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으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43]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런 인식이 생긴 뒤에는 아름다움과 다정한 배려, 명료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

 

습작을 위한 글감노트 만들기

 

이처럼 목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글쓰기 훈련에 있어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글쓰기의 재료들을 찾아내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글쓰기가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46]

 

이렇게 글감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육체는 자연스럽게 글쓰기 작업과 친숙해지고 지난 경험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 않았을 때 조차 글쓰기는 끊임없이 당신의 삶 속에서 진행된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통해 양분을 흡수하고 태양열을 빨아들여, 점점 무성하고 진한 초록 잎을 지닌 식물로 자랄 준비를 하는 것이다.[46]

 

다음은 내가 제안하는, 글감 노트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이다.

1.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서 써보자.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3.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글을 써 보자.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을 환장시켜야 한다.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글을 적어 보라. 이어서 끝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 보라.

4.       한 가지 색, 예를 들면 분홍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이제 노틀 펼치고 그 경험에 대해 15분 동안 적어 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긴장을 풀고 당신의 아침을 구성했던 모든 세부 사항을 하나씩 묘사해 보는 것이다.

6.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라. 지금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쪽이나 펼쳐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 보자.

14.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이런 요령으로 지금 당장 자신만의 글감 노트를 정리하고 활용해 보라. 글쓰기 훈련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50]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

 

당신 속에서 싸우는 마음이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이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수시로 옆길로 새게 될지도 모른다.[52]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어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버린 것이다.[54]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명문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25일이 되었을 때 노트가 다섯 장 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나는 나머지 5일 동안 전략을 다해 나머지 노트를 꽉 채우고야 만다.[55]

 

직접 경험한 것만이 체험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누군가 써 놓은 글을 읽으면서도 체험할 수 있어요. 뉴욕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뉴욕의 모든 도로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여러분 속에는 다른 이들의 삶도 들어가 있습니다.[59]

 

작가는 작품을 대할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61]

 

어떤 것이 이상적인 글쓰기인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 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62]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이 쓴 글을 증명하지 못하고 걱정하지 말라. 내 마음이 그 들판 속으로 영원히 산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었다.[62]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운동법이 적힌 책을 읽고 것 가지고는 절대 살을 뺄 수 없는 법이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제로 운동을 해야 한다.[64]

 

우리는 그냥 그 시에 최대한 몰입해야만 한다. 그 시를 쓰며 시인이 보았던 이미지를 다시 불어와야만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가르치듯이, 장작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때는 시에 대하여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 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65]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이 견고하며 영구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66]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생각, 내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66]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우리르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67]

 

내가 쓴 시 가운데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의 긴 시가 하나 있다. 이 시만 읽으면 나는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 시를 읽은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안 됐다라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어느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67]

 

글쓰기로 다시, 또 다시 돌아가라. 당신이 쓴 시가 너무 좋다고 경탄하는 소리에 넘어가거나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바보짓이다.[68]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68]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 뜨려라.

 

몇 년전 어느 신문에 인도에 감녀 자동차를 먹는 요기가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자동차 한대를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걸쳐 천천히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에 각별히 관심을 갖는다. 그는 몇살이나 되었을까? 자동차를 먹고 체중이 불었을까? 치아가 전부 성할까? 혹시 라디오나 TV도 먹어치울까?

이 요기이야기에는 애초부터 논리가 들어갈 틈이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71]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71]

 

은유를 위한 은유를 하지 말라.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평소의 사고 방식에서 한발 물러서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계속 기록해 보라.이런 연습은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창조력을 키워 준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72]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바로 이것이다.[75]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 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서투르고 꼴사나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75]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모,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76]

 

글쓰기는 평생을 걸쳐 이루어야 하며 또 많은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다.[76]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77]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작가란 결국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 자주 출몰해서 괴롭히는 것,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자신의 육체가 풀려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엮는다.[78]

 

세부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당신의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이것을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을 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83]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84]

 

작가가 쓰는 글을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85]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며 우리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85]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86]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가 부둥켜 안아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86]

 

케이크를 구우려면

 

케이크를 구우려면 설탕, 밀가루, 버터, 베이킹소다, 계란, 우유가 필요하다. 케이크는 계란도 아니고 우유도 아니다. 이것이 케이크의 연금술이다.[87]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88]

 

당신이 만약 글을 쓰는 중간중간 자주 시계를 보는 사람이라면,”나는 공책 다섯 장이 다 채워 질때까지 즉, 케이크가 완전히 구워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쓰겠다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하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을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89]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누구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89]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전달하려는 감정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미식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독자들이 , 이거 파운드 케이크쟎아또는 가벼운 레몬 푸딩이쟎아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89]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월급쟁이들은 시간과 돈을 맞바꿔, 일한 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은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92]

 

글쓰기는 육체적 노동이다.

 

글쓰기 훈련은 하나의 그을 완성하기까지 중간에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 끊임없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생각들을 육체적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94]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몸만 보고서도 나는 그들이 얼마나 글쓰기 작업에 몰입해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진짜 글쓰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껌을 씹지 않는다. 대신에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호흡이 아주 깊어진다. 글을 쓰는 손은 느슨해지고, 그들의 몸은 몇 킬로미터르 내처 달려도 좋을 만큼 잘 이완되어 있다.[95]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에 세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네루다,홉킨스,밀레이,휘크면….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96]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거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99]

 

랍비인 잘만 샬처는 라마 재단의 한 강연회에서 자신이 랍비 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들이 노트를 가지고 다닐수 없었다고 말했다. 랍비가 되려는 학생들은 필기 없이 단지 강의를 듣고 수업 내용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처럼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사물의 진실을 읽는이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고, 따라서 마음에다 사물에 대한 기록을 해나가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99]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100]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과 목표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있다면, 원래 돌아가야 할 자리로 부드럽게 잡아당겨야 한다. 글을 쓸때는 마음 속에 무수한 길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묘사도 자신이 정한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04]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꿈에 대해 써라.

 

일단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자신 안에 내재된 창의적인 힘을 허락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당신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또는 시든, 그것을 쓰는 방향을 잡게 된다.[113]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알게될수록, 당신은 글을 쓸 때 상황에 따라서는 구문론이라는 틀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이처럼 문장구조를 깨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한발자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116]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을 이를 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117]

 

누군가의 글에서 이건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라는 식으로 무언가에대하여라는 단어를 볼 때 나는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든다.[118]

 

때로는 평범한 진술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을 때도 있다. 사진을 들여다보듯 하나하나 선명하고 분명한 어휘로 써야 한다. 심지어 에세이를 쓸 때도 평범한 진술이 한층 더 생생한 글을 만들어 줄 수 있다.[118]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절대 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 이야기에 당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119]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이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120]

 

당신의 코앞에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121]

 

몰입하기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125]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거대한 크기를 가진 현실을 벗어난 환상적인 것에도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127]

 

기본 정보만을 다룬 묘사는, 그 안에 비범함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보인다.[127]

 

우리는 춤을 추는 사람의 심장 속으로 들아가서 우리 눈 앞에서 평범함과 비범함이 동시에 불꽃처럼 피어오르게 해야 한다. 모든 사물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는 세부 묘사가 독자의 눈 앞에 그러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129]

 

어떻게 글쓰기를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대하는 올바른 눈이 떠질 때 우리는 세부 묘사를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반영시키는 것으로 다루게 된다.[129]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이야기를 지어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이런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라. 이야기 만들기는 글쓰기 훈련의 자원이다. 이야기를 해 봄으로써 무엇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무엇이 지루하게 만드는지 의사전달력과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132]

 

작가는 일반적인 묘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기를 원한다.[133]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 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134]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136]

 

다른 작가들과 동지가 되어라.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의 한 부분만을 찾아내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에게만 틀어박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자신을 통해 많은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작가들과 동지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137]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바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140]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140]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140]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당신은 작가다.[141]

 

방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141]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143]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 내리고 소화시켜라.[143]

 

가령 아침 10시에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주어진 시간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1시간이건 20분이건,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성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안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143]

 

자신을 믿어라.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글을 쓰는 대신 내내 이런 상태로 멍하지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의 의식이 점점 개화되고 있는 거야! 이것이 글쓰기보다 휠씬 중요하며, 또 글쓰기의 목적이 바로 이거 아니겠어!” 나중에 이런 상태에서 빠져 나왔을 때 나는 카타기리 선생에게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 , 그건 그냥 게으름을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151]

 

모차르트가 작곡을 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 책을 읽게 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151]

 

작업실에 대하여

 

글을 쓸 공간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방 하나만 구하도록 하라. 대단한 공사를 해서 뜯어 고칠 생각일랑 하지 말라.[154]

 

글 쓰는 작업 자체가 우리의 불완전성을 자꾸 들추어 내는 일인데, 더 이상 손 볼 데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이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하는 것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155]

 

어떤 이들은 공간이 남는 것이 두려워 모든 구석을 꽉꽉 채워 놓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공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유와 드라마를 만들어 내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155]

 

,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158]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해라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거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라,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164]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165]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166]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167]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 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167]

 

삶을 사랑하라.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169]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지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171]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174]

 

두달에 한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늘 똑같다. ‘어리석은 짓이야. 돈 한푼도 벌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경력도 쌓지 못하고 있쟎아.이제는 내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너무 외로워. 이런 게 싫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도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은.”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174]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유태교 전통에는 소년이 처음으로 토라의맨 첫 자를 읽으면 꿀이나 단 음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공부를 하면 단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학습 유도 방법이다. 글쓰기도 당연히 이래야 한다.[176]

 

언제나 나를 유연하게 해주었고, 참된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던 순간들과 만난다.[177]

 

장대 위에서 발을 때라.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180]

 

왜 글을 쓰는가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베어커 선승은 라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도 가 아니라무엇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그러니 라는 질문은 심리학자에게 맡겨라.[182]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당신은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당신은 얼간이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이 냄새에 미쳤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186]

 

관통하는 글쓰기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189]

 

작가로 살아남기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크롱파는 사업가가 되려면 우선 먼저 위대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이것은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며,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다.[196]

 

아주 빠르게 글을 쓰게 되면 실제로 자기 제어가 통하지 않게 된다. 내 경우는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196]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글은 장편소설이나 단편, , 희곡 등 장르마다 모두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형식으로 적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최고다. 그 형식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 보라. 맨 첫 문장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신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199]

 

시를 쓰는 사람이 장편에 도전하고 싶다면,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비약시키는 방식은 버리고 이제는 구조를 갖춘 완전한 문장 쓰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장편을 읽는 동안 당신 몸은 완전한 문장을 쓰는 법, 끈질기게 장면을 구성해 나가는 기술 그리고 주인공이 커피를 따르는 동안 보이는 식탁보의 색깔과 여자의 성격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점점 감을 잡게 될 것이다.[200]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207]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207]

 

그는 익숙한 땅을 박차고 날아오름으로써 자신에게 더 많은 공간을 허락해 준 것이다. 정확한 문장에만 집착했다면 뻔한 정교함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208]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다른 운동이 그렇듯,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데는 연습만이 지름길이다. 하지만 글쓰기 훈련은 의무적으로 치러질 수 없다는 점이 여느 훈련과 다르다. “그래, 나는 오늘 한 시간 동안 글을 썼지. 어제도, 그제도 한 시간씩 훈련했어이렇게 그냥 시간만 채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시간속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한다.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않을 때는 목숨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펜을 끄적거리면서 언제 시간이 끝날까 자꾸 시계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209]

 

매일 글을 쓰라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규칙만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210]

 

만약 오랜 시간에 걸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글쓰기에 충분히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오직 연습 시간의 경과로만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평생을 연습해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212]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등을 펼 수 없고, 펜을 놓은 다음에야 등을 편다.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215]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음식에 대해 써보라

 

글쓰기를 하다가 막히거나 글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되어갈 때, 음식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 가운데 음식 만한 것도 없다.[220]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써 보라. 둥뚱그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음식 하나를 골라야 한다.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자.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먹었는지, 어느 계절에 그 음식을 먹었는지 등의 세부 사항을 가능한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221]

 

음식을 소재로 삼아 당신은 추억으로 돌아갈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도 있으며, 아주 철학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도 있다.[221]

 

외로움을 이용하라.

 

스스로에게 너덜머리가 났을 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쓰고 있는 작품에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지쳐버리는 시기도 찾아오게 마련이다.[226]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회피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장 글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231]

 

이야기 모임 만들기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10분간 글을 쓴다. 10분이 지나면 각자 썼던 글을 차례대로 읽는다. 글에 대해 비평하는 시간은 없다. 이 수업의 특징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읽기 때문에 의식이란 것을 챙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며, 어떤 비평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유를 얻게 된다.다른 사람 작품에 평을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겠다는 건강한 욕구를 만들어 준다.[239]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내면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이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고요한 평화와 확신감을 얻는 열쇠다.[248]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런 다음에 결정을 내려라. 이때 나오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참다운 작품이고 목소리다.[250]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두고 읽어 보는 것이다. 만약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잠시 미루어 두라.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작품을 읽어 보라. 무언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251]

 

만약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에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말라. 당신이 쓴 좋은 부분은 이미 당신을 위한 퇴비가 되기 위해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251]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사무라이가 뭐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입니다.[253]

 

사무라이 세계는 거칠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야박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단한 진실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그리고 그 진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상처 입힐 수 없는 진실이다. 이 진실이 세상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고 시를 빛나게 한다.[253]

 

시는 생명력의 그릇이다. 한줄 한줄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작품을 쓸 때 이런 부분은 간직하고 나머지는 잘라내 버려라.[254]

 

솔직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이 시에는 좋은 재료가 들어 있는데도 잘 연결되지 않았어그렇게 계속 해보는 것이다.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255]

 

고쳐 쓰기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읽어 보지는 말라.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 전에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 작품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 정도 걸려 노트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다면, 이제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대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 보아야 한다.[256]

 

읽을 때는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이 사람이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작품을 처음으로 대하듯이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읽자.[256]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257]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259]

 

한달 후 당신은 그 시절 당신이 썼던 노트를 읽으며 그 들의 훌륭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게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259]

 

미련 없이 적을 잘라 내는 사무라이처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기꺼이 감상을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본질을 꿰뚫는 마음으로 자신의 글을 쳐다 보라. 하지만 글에 간섭하고 싶고 좀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에고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면 된다. 작품을 타이핑하고,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표에 침을 묻히는 일을 시키면 된다. 단지 작품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라.

원고 수정작업은 새롭게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쓴 글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전체 그림을 다시 본 다음 그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부 묘사를 첨가하면 된다. 이때도 10, 20분 식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수정에 들어간다. 원래 작품에서 나온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다시 써 보자.

예를 들어 파스트라미에 대해 쓰고 있다고 하자. 맨 처음 글쓰기는 좋았지만, 같은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더 남았을 수도 있다. 하루고 이틀이고 일주일이고, 파스트라미에 대한 글을 몇 개 더 써보는 것이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자신을 탓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지금껏 쓴 글들을 모두 읽어보고 좋은 부분만을 골라 조합시켜 보라.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강하게 끌리는 내용만을 잘라서 이어 붙이는 것이다.

고쳐 쓰기를 할 때에도 처음 글을 쓸 때처럼 제한된 시간 안에서 훈련하는 규칙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방법이 전에 썼던 작품과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된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 속에 빠져서 첫 생각이 윙윙거리는 모기떼에게 피를 빨아 먹히기 전에 재접촉을 시도하는 것이 휠씬 낫다. 첫 생각과의 재접촉은 고쳐 쓰기를 위한 휠씬 효율적인 방법임과 동시에 에고의 참견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고쳐쓰기 방법은 단편, 에세이, 장편의 어느 부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때로는 습작 노트를 전부 다 읽어 봐도 그럴싸한 글이 단 한 두 줄에 불과할 수 있따. 그렇다고 낙심할 것은 없다. 단 한번의 경기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하는 축구 선수들을 기억하라.

자신이 쓴 글 중에서 좋은 부분은 표시를 해두라. 이것들을 글감 목록에 적어 놓으면 다음 번 다시 글을 쓸 때 그 중 하나를 잡아서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다. 또 표시를 해둔 글은 그 문장에 대한 기억을 강화해 훗날 필요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이 떠오르도록 만든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던 별개의 부분들이 뭉쳐져서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262]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스즈키 선사가 열반되기 직전, 오랜 도반이었던 카타기리 선사가 그를 방문해서 들은 말은 그와 달랐다. 스즈키 선사는 침상 옆에 서 있는 카타기리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난 죽고 싶지 않네

간단하면서도 이처럼 진한 진실이 어디 있는가. 그는 그 순간의 느낌을 아주 쉬운 말로 고백한 것이다.[264]

 

스승님이 보여주신 위대한 노력이 고마울 뿐입니다

카타기리는 위대한 작품 앞에 서게 되면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술가가 명화를 보면 자신도 명화를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받는다. 예술가는 생명력을 발산하고, 영적인 사람은 평화를 발산한다. 하지만 카타기리는 이 영적인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예술가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유한 평화와 접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접촉을 이루지 못할 경우 예술가는 파멸한다고 했다.[264]

 

그러므로 작품에 매여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는 평화의 장소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불타는 생명력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야기 중간에 흥분해서 날뛰다가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거나 영원히 책상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264]

 

우리는 스즈키 선사가 죽음을 앞두고 내뱉은 난 죽고 싶지 않아라는 말 속에 씁쓸하지만 명료한 진실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노나 자기 연민,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진실을 수용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계속 작가로 지켜 주는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뉴욕이나 뉴저지의 책상 앞에 있지 않고 티베트의 고원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인생이 눈앞에서 으르렁대고 죽음이 바로 등뒤에서 쫓아오더라도 할 말을 쓰기 위해 언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다.[265]

 

에필로그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잇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을 사라지지 않는다.[267]

 

카타기리 선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쪽에서 당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진하십시오.”

이틀 전 아버지에게 말했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리러 가요.”

아버지가 말했다.

뛰어내리는 건 상관하지 않겠지만, 꼭 그렇게 높은 건물을 골라야 하는 이유가 있냐?”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탈리, 이 책은 끝났어. 넌 또 다른 책을 쓰게 될 거야.”[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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