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수희향
  • 조회 수 273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0년 1월 18일 09시 20분 등록

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추천의 말>

u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5).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u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12).”

u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 (16).”

u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17).

u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 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18).

 

<첫 마음, 종이와 연필>

u       글 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19).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u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 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25).

u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26).

u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이른 글을 에너지가 넘칠 수 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막던 에고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7).

u       어째서 첫 생각에는 이처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7).

u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28).”

 

<멈추지 말고 써라>

u        예술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세계다. ..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다 (29).

u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와 소설을 방편으로 삼아 진정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29).

u       티베트 불교 승려인 초감 트룽파는 이런 말을 했다. “무서운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내야만 합니다 (30).

u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30).

u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31).

u       ..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34).

u       우리는 글쓰기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된다 (34).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u       우리가 경험한 일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35).

u       비옥한 토양은 단시일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인생의 모든 세부 항목들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서 쓸데없는 찌꺼기들을 걸러 내야만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36).

u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 나무, 하늘, ,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38).”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u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지 않은가 (41).

u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43).

u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 (44).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

u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53).

u       선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53).

 

<눈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u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61).

 

<글 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u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63).”

u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64).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u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66).

u       내가 낭송한 시는 내가 아니다. …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66).

u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67).

u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67).

u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68).

u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69).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u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71).

u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72).

u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 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 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광 같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영감의 근원은 만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히 그것들의 공통적인 법칙과 본질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73).

u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 은유의 세계에서는, 안개 낀 저녁에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73).

 

<글쓰기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아니다>

u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 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 서투르고 꼴사나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 (75).

u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 (75).

u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76).

u       글쓰기는 평생을 걸쳐 이루어야 하며 또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76).

u       글쓰기는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77).

 

<강박 관념을 탐구하라>

u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 자주 출몰해서 괴롭히는 것,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자신의 육체가 풀려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엮는다 (78).

u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79).

u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가련한 예술가들이여! 그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작을 만들어도 결코 만족하지 않죠. 계속 길을 떠나 좀 더 다른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80).”

u       예술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술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절대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81).

u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81).

u       가끔 작가들 중에서 술에 의지해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 결국 그것도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려는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인 것이다 (81).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u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82).

u       당신이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신이 글을 쓸 때 정말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 낼 수 있다 (83).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u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84).

u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85).

u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 (86).

u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부둥켜 안아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86).

u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86).

 

<케이크를 구우려면>

u       케이크는 계란도 아니고 우유도 아니다. 이것이 케이크의 연금술이다 (87).

u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도 이것과 똑같다. 당신이 소설 한 권을 채울 만한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여기에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시켜야 한다 (88).

u       단지 재료를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야 한다.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창조해야 한다 (88).

u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 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88).

u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 (88).

u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89).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u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 일상 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91).

u       결국 당신은 돈을 버는 일보다 글을 쓰기 위해 바보가 되는 것도 무릅쓰는 글쟁이의 인생에 더 많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92).

u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찾아와 그 땅을 팔라고 하면, 제 정신이 있는 작가라면 결코 그 땅을 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땅을 팔면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되면 조용히 안식을 하고 꿈을 꾸는 데 필요한 장소는 사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92).

u       그러므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당신 속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림보가 들어 있다. 그 느림보가 당신이 모든 것을 팔아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이마에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응시하게 만든다 (92~3).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u       사람들은 글 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등 모든 지각 능력과 관계하고 있다 (94).

u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라. 작가가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의 호흡이 생생히 느껴질 것이다 (95).

u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세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96).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u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은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당신은 그저 식탁 건너 편에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 곳의 분위기가 내는 소리와 의자와 문이 말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도 (99).

u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오고 있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 (99).

u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 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한 글이 태어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99).

u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100).

u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100).

u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100~101).

u       위대한 선승인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101).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u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103).

 

<꿈에 대해 써라>

u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112).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u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지나친 우월감에 빠져 있다.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도 인간 못지 않게 중요한 그들만의 삶이 있다 (114).

u       카타기리 선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배려해 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러한 배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물들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는 의자, 공기, 종이 그리고 심지어 거리에 대해서조차 마음을 가진 존재로서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이 세상 속에서 우리 마음이 이루어 내야만 하는 제일 큰 일이라고 했다 (115).

u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나는 지금 모든 존재와 함께 깨달았다고 말했다 (115).

u       당신은 작가로서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그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16).

u       때로는 이처럼 문장 구조를 깨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116).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u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 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117).

u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117).

u       그 다음에는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끌려 갈 수 있을 만큼 더 깊은 단계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주면 된다 (118).

u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119).

 

<그냥 이라고 말하지 말라>

u       고유성을 허락하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 (120).

u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 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121).

u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만 같다 (121).

u       우리가 우리들 코 앞에 있는 사물에 더 가까이 갈수록, 그 사물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줄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의 전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122).

u       작가는 건축가이자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한다 (123).

 

<몰입하기>

u       선 명상법에 행선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을 배우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명상법이다. … 이렇게 느린 동작을 하다보면 사소한 발걸음 하나하나도 온 몸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공기와 창문, 햇빛의 존재도 느끼게 된다. 만약 바닥이 없다면, 하늘이 없다면, 생명의 원천인 물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관통하고 있다. 계절조차도 우리의 걸음을 지탱하게 해 준다 (125).

u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125).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u       우리는 세부 묘사가, 마음이 우주만큼이나 큰 왕국이라는 것을 표현하거나 뉴멕시코의 높은 언덕들을 나타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27).

u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한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128).

u       모든 사물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는 세부 묘사가 독자의 눈앞에 그러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128~9).

u       우리 모두는 그물망처럼 얽혀서 서로의 우주를 창조해내고 있다. 누군가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슬픈 파장을 남기게 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129).

u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친절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먼저 자신에게 친절할 때에만 세상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129).

u       글쓰기를 대하는 올바른 눈이 떠질 때 우리는 세부 묘사를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반영시키는 것으로 다루게 된다 (129).

u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찾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130).

 

<이야기 친구를 만들다>

u       뉴욕에 살고 있는 단편 작가 그레이스 팔레이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 (132).

u       일상 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작가들은 새로운 글감을 찾아 낸다 (133).

u       작가는 일반적인 묘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기를 원한다 (133).

u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 하는 준비 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133~134).

 

<작가는 위대한 애인이다>

u       글쓰기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역사, 이념 그리고 대중 문화 모두를 끌어 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글쓰기 안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135).

u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136).

u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136).

u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136).

u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 만약 누군가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다른 작가들을 나와 분리된존재로 여기지 말라 (137).

u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 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솔직하고 마음 편한 고백인가. 다른 작가들과 동지가 되어라 (137).

u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137).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 들다>

u       1 더하기 1 48이 될 수도 있고, 벤츠 승용차나 애플 파이 그리고 푸른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진정으로 받아들여라 (139).

u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 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140).

u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140).

u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140).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u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당신은 작가다.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든 떨쳐 버릴 수 없다 (141).

u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 (141).

u       고양이는 언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튀어 오르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단지 고요하게 응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42).

u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든 모습들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142).

u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두자 (142).

u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 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 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143).

u       그런 다음 드디어 당신이 튀어 나올 때, …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꿈꾸지 말라 (143).

u       작가는 요리를 하건, 잠을 자건, 산책을 하건 언제나 작가다 (143).

u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아주 상식적인 생각에서부터 부처와 같은 마음까지 (144).

 

<자신을 믿어라>

u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146).

u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 “이것이 이 순간의 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훗날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146).

u       또 하나, 스스로 경계할 부분은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147).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u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하얗게 텅 비어서 창문 밖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모든 것과 한가 되고 싶은 사랑을 느낀 적도 있었다. 글을 쓰는 대신 내내 이런 상태로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151).

u       헤밍웨이는 <움직이는 축제>에서, 자신이 앉은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임스 조이스가 있었다며 카페에서 글을 쓰는 광경이 파리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가에 대해 적고 있다 (151).

 

<작업실에 대하여>

u       글을 쓸 공간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방 하나만 구하도록 하라. … 비가 새지 않고, 창이 하나 있고, 난방만 된다면 그만이다. 책상과 선반, 푹신한 의자 하나만 들여놓으면 당장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154).

u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어 놓고서도 작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를 여럿 보아 왔다 (155).

u       선승들은 작가의 방은 곧 그 작가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155).

u       그들은 자기의 창조성이 완전히 그 반대편, 즉 조절력을 포기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156).

 

<,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u       거창한 주제는 자칫하면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변질되거나 진부한 장문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처음에 하고자 했던 말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157).

u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157).

u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작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158).

u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158).

u       카타기리 선사는 부부에 대해서 그들은 마주보고 걷는 사이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서서 걸어가는 사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제를 향해 접근해야 하는 방식이다. , 머리를 바싹 쳐든 공격적인 태도가 아니라 비스듬히 서서 춤을 추는 것이어야 한다 (158).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u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161).

u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161).

u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지게 마련이다. … 거꾸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161).

u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162).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u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4).

u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164).

u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165).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u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166).

u       그저 당신의 느낌이 가는 대로 계속 글을 쓰는 것만은 잊지 말라.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167).

u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167).

u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167).

 

<삶을 사랑하라>

u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169).

u       나는 작가다. 작가는 많은 시간을 홀로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또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 예술가는 제도가 만들어낸 사회의 바깥에서 살고 있다 (169).

u       나는 언제나 나의 한계를 넘어 계속 밀어붙이고 싶다. … 내가 방향을 잃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질 때마다 인생 전체가 의문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 이런 건 아주 고통스럽다 (169).

u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로움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해도, 두려움에 갇혀 버리거나 존재론적 무의미로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171).

u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힐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171).

u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172).

u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172).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 먹히지 말라>

u       카타기리가 대답했다. “그건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약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또 다시 당신을 쓰러뜨린다 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글쓰기에도 같은 진실이 통한다 (173~4).

u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174).

u       두 달에 한 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늘 똑같다. …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 (174).

u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174).

u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175).

u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 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175).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u       글쓰기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 (176).

u       고어 비달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177).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u       카타기리 선사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백 미터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 성공적인 글을 썼다고 해서 결코 쉴 수 없다는 뜻이다. 실패한 글을 썼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178).

u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만인 당신을 건강하게 또 살아 있게 지탱해 준다. … 이 세상 어디에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은 없다. 그러니 그저 계속해서 글을 쓰라 (179).

u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져 간다. … 이전의 실패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무언가 위대한 글을 쓰라. 아니면 실패한 후에 느끼는,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에 대해서라도 쓰라 (179).

u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면,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 (180).

 

<왜 글을 쓰는가>

u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글쓰기가 인생을 치료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글쓰기 자체가 치료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181~2).

u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그 동안 수없이 느껴 왔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에 빛을 주고 색을 입혀 이야기 구조를 덧붙이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분노를 붉은 튤립으로 변형시키고, 슬픔을 회색빛 낙엽으로 가득 한 오래된 골목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183).

u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183).

u       우리의 글 속에는, 그것이 쓰여지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환경이 모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185).

u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86).

 

<관통하는 글쓰기>

u       케이트와 나에게는 글쓰기, 서로 나누는 것 그리고 우정이 모두 중요했다 (188).

u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 (189).

u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189).

u       자기 안에만 깊이 처박혀 있는 자기 자신을 바깥으로 한걸음 내딛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0).

 

<작가로 살아남기>

u       우리는 작품 속과 작품 바깥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비공격의 실천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이 기술대로 살아야만 한다 (192).

u       카타기리는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는 말라는 뜻이다.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작가로서 살아남은 방법이다 (192).

u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193).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u       일본에서는 뛰어난 하이쿠를 적은 종이를 병에 담아 강이나 개울에 띄워 보내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의미심장한 우화다 (195).

u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트룽파는 사업가가 되려면 우선 먼저 위대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며,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195).

u       우리는 대중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196).

u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198).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u       글은 장편 소설이나 단편, , 희곡 등 장르마다 모두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형식으로 적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최고다. 그 형식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 보라. …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신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 (199).

u       많은 하이쿠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반드시 독자들의 마음을 도약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독자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초월적인 세계를 일깨우는 순간이다. 바로 이런 순간 우리는 신을 경험하며 저절로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하이쿠가 가지는 미덕이다 (201).

u       눈 사람과 나눈 말/ 눈 사람과 함께 / 사라지네 시키 (201).

u       문학의 형식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생이라는 형식을 채워 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u       이미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개척지를 개간하고 미지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한다. … 나는 그들이 한 번쯤은 입게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 버린 바보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바랐다 (206).

u       내 말은,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207).

u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하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 보라.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207).

u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207).

u       그는 익숙한 땅을 박차고 날아오름으로써 자신에게 더 많은 공간을 허락해 준 것이다 (208).

u       스즈키 선사는 <선심초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을 통제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스스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와 양을 탁 트인 황야에 풀어 놓는 것이다 (208).”

u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208).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u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209).

u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210).

u       우리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배울 뿐, 규칙이 왜 그리고 얼마나 가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211).

u       만약 오랜 시간에 걸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글쓰기에 충분히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오직 연습 시간의 경과로만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평생을 연습해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때로는 더 멀리 가기 위해 인생을 변화시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212).

u       자신의 규칙대로 미리 단정하지 말라. …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사려 깊은 사람은 굳이 법규를 들먹이지 않아도 항상 경우에 맞는 일을 하는 법이다 (214).

u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214).

u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214).

u       글쓰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에는 글쓰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214).

u       글쓰기 훈련에도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214).

u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215).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u       13세기의 선승인 도겐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 (217).

u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218).

u       이렇듯,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219).

 

<음식에 대해 써 보라>

u       이것이 인생이니, 인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22).

 

<외로움을 이용하라>

u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고독의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거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을 배우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에게 당신의 인생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게 된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224~5).

u       고독의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225).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u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쓰고 있는 작품에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지쳐버리는 시기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때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 하나의 작은 자극이 때로는 위축된 창조력을 되살려 줄 때도 있다 (226).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u       가끔 다른 사람의 인생만이 재미있고 내 인생은 무의미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렇게 자기중심을 놓쳐버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만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균형을 잃어 한쪽으로 기울고 만다 (229).

u       당연합니다.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갈수록 당신은 점점 더 당신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229).”

u       당신이 태어난 출생지는 글의 문체와 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229).

u       습작할 때 글의 리듬을 주시해 보라 (230).

u       예를 들어 당신이 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직접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아도 당신 글 속에는 성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231).

u       하지만 명심하라. 뿌리로 돌아가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뿌리 위에는 가지와 잎사귀와 꽃이 있다. 이것들은 무한한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231).

u       우리는 단 한가지로 정의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뿌리를 파내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을 선택한다. 우리가 자신을 만들어 준 최초의 장소를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232).

u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32).

u       당신의 글을 읽을 독자에게 당신 심장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233).

 

<이야기 모임 만들기>

u       친구들과 이야기 모임을 만들어 보라. 촛불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약물이나 술에 취할 필요는 없다 (237).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u       자신을 벌거벗기고 해체시키는 기분. 하지만 이것도 괜찮으니 받아들이라.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243).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u       모든 사람이 세익스피어 같은 대문화라는 말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245).

u       카타기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모두가 부처입니다. 나는 당신이 부처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내 말이 믿어지지 않겠죠. 당신이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할 때, 당신은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 (247).

u       우리 안에는 누구나 뭔가 천재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발산시켜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면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 이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고요한 평화와 확신감을 얻는 열쇠다 (248).

u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라. …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248).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u       더 고통스러운 일은 얼어 붙어서 아무것도 노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어붙으면 나쁜 글밖에 나오지 않는다 (251).

u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두고 읽어 보는 것이다 (251).

u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져라 (251).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u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는 후배 시인인 앨런 긴즈버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 버려도 좋다.” 그 한 줄이 바로 시라는 뜻이다. 시는 생명력의 그릇이다. 한 줄 한 줄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253~4).

u       솔직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글쓰기를 하다보면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을 뚫고 무언가 선명한 것이 표면으로 올라올 때가 있다 (254).

u       자신이 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 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그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254).

u       완전히 태워버린 것, 첫 생각헤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누군가 정말 뜨거운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이 듣는 모든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수업을 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254).

u       자신의 작품을 솔직하게 쳐다보라.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된 것이다 (255).

u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 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255).

 

<고쳐 쓰기>

u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다 (257).

u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257).

u       작품 전체를 다시 읽어보는 것에는 당신 마음의 움직임과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57).

u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 (259).

u       만약 글을 쓸 때 당신이 진정으로 글 속에 있었다면, 글로써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제는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썼던 언어들을 더 그럴싸한 다른 언어로 고치거나 조작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를 벌거벗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59).

u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던 별개의 부분들이 뭉쳐져서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262).

 

<나는 죽고 싶지 않다>

u       카타기리는 위대한 작품 앞에 서게 되면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말을 자주 한다. … 예술가는 생명력을 발산하고, 영적인 사람은 평화를 발산한다. 하지만 카타기리는 이 영적인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예술가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한 평화와 접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264).

 

<에필로그>

u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을 가지라 (267).

u       카타기리 선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쪽에서 당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진하십시오.” (268).

u       이틀 전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리러 가요.” 아버지가 말했다. “뛰어내리는 건 상관하지 않겠다만, 꼭 그렇게 높은 건물을 골라야 하는 이유가 있냐?” (268).

 

 

IP *.11.53.177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32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효인 2010.01.25 5046
2231 '통섭' - 에드워드 윌슨 file 희산 2010.01.25 5857
2230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 - 박경철 [3] 書元 2010.01.24 4175
2229 스무살 여행,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2] 백산 2010.01.24 5845
2228 북리뷰 40 : 죽음 앞의 인간 - 필립 아리에스 [1] 범해 좌경숙 2010.01.24 6144
2227 내 인생의 첫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숙인 2010.01.23 2917
2226 내 인생의 처 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혜향 2010.01.19 3307
2225 내 인생의 첫 책쓰기 -오병곤,홍승완 정야 2010.01.19 2891
2224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 제임스 맥클렐란 3세 & 해럴드 도른 file 희산 2010.01.18 6941
»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인용문 수희향 2010.01.18 2739
2222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2] 수희향 2010.01.18 3070
2221 신화와 인생 효인 2010.01.18 2999
2220 롱테일 경제학 - 크리스 앤더슨 file [1] [1] 숙인 2010.01.17 4417
2219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 [2] [1] 백산 2010.01.17 4845
2218 번 슈미트의 미학적 마케팅 [5] 혁산 2010.01.17 5238
2217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박경철) [2] 書元 2010.01.17 4474
2216 뼛속까지 내려가서 서라 - 나탈리 골드버그 혜향 2010.01.12 2656
2215 아니마와 아니무스 효인 2010.01.12 6669
2214 '선비답게 산다는 것' - 안대회 희산 2010.01.12 4089
2213 동화 쓰기 특강 -임정진 [1] 정야 2010.01.12 4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