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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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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10시 1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가드너는 2차 세계대전 종전 2년전인 1943년 미국 팬실베니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음악인으로서의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으나 결국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역사를 전공하기 위해 하버드에 진학한다. 이로써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의 탄광촌으로 이민 온 그의 가계에서는 유일한 대학생이 탄생한 것이다. 정확한 자료가 없어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똑똑한 아들이 피아니스트보다는 하버드 졸업생으로서의 안정된 삶을 꾸려나가기를 바랬을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마치 엘리엇처럼. 그리고 음악공부를 계속하면서도 하버드에 진학할 만큼의 우수한 학업성취를 보인 것으로 보아 가드너는 ‘가족들에게 왕 대접을 받았고 동료와 스승에게는 애정과 존경을 받았으며,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던’ 유년기를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프로이트처럼.

18세(1961년)에 하버드에 진학한 가드너는 미국의 저명한 사회 과학자인 에릭 에릭슨의 영향으로 연구주제를 역사에서 사회적 관계(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로 바꾸어 지적 탐험을 계속한다. 그는 22세(1965년)에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내내 인간 경험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과 인지적인 차원에 대한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한다. 그러다 대학졸업반 시절에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저서를 읽게 되면서 인지 심리학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고, 대학원 전공으로 발달 심리학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탐색의 과정도 마치 프로이트가 자신의 영역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최선을 다해 발달심리학의 연구방법과 기법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은 어쩔 수 없었다. 발달심리학의 연구 방법과 기법, 교수들이나 동료 학생들이 예술적 창조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이러한 결핍, 즉 경험적 학문인 발달심리학의 연구관행이 ‘인간 사회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가진 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던 ‘예술적 창조성’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동시성이야말로 가드너를 이 분야의 거장으로 서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빈틈’이 가드너에게 ‘발달심리학 기법과 예술적 창조성 연구’를 결혼시킬 수 있는 독점적 기회를 제공했을 테니 말이다.

가드너는 연구실에서 채울 수 없었던 지적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박사학위 이후(1972년부터) 데이비드 퍼킨스(David Perkins)와 함께 예술, 인문 및 과학 분야에서의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제로’를 시작하였다. ‘프로젝트 제로’는 이후 가드너의 연구인생의 홈그라운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데이비드와 공동 소장으로 ‘프로젝트 제로’를 이끌면서 기존의 지능관에 대한 회의를 펼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피아제 이론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고 재평가하면서, 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한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의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유명한 다중지능 이론의 맹아로 작용하게 된다. 그 역시 다른 창조자들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시기에 知的 조력자를 만나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마흔(1983년), 그러니까 박사학위를 받은 지 12년 만에 그는 다중지능에 관한 최초의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의 틀 (Frames of Mind : The Theory Multple Intelligences)이다. 이 책은 가드너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키면서 그는 이 분야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10년의 원칙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마음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여 총 18권의 책과 수백 편의 학술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았다. 또한, 2005년 포린 폴리시지 ‘세계 100대 지성’에 선정되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 20인’의 2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한 창조적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는 ‘물리학, 시’에 비해 비교적 롱런이 가능한 사회과학을 주요 場으로 삼고 있으므로, 그가 <열정과 기질>에서 언급한 논리에 따른다면 앞으로도 그의 창조성은 더욱 더 원숙해지며 빛을 더해갈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자신이 선택한 7명의 대가들에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들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더욱 탄탄하게 창조적 여정을 밟을 수 있는 행운까지 누린 철저한 창조적 거장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거론한 7명보다 우리 시대와 더욱 가까운, 심지어는 현재 같은 공기를 숨쉬는 인물이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롤모델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이쯤되면 나는 궁금증을 누를 수가 없어진다. 이렇게도 철저히 창조적 전범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 자신은 어떤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었을까? 후속작인 <Good Work>과 <Five Minds for the Furue>에서 전문 직업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 요소로서 ‘유능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꼽고 있는데, 다양한 연구와 성찰을 통해 스스로는 그 ‘파괴적인 계약’ 에서 자유롭게 창조적 재능을 누릴 수 있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도 그의 어깨를 빌어 이 불편한 거래를 피하고도 창조자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까?

<열정과 기질>은 이렇듯 참으로 많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며 노련하게 나를 자신의 다음 저작으로 인도하였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감역자의 글_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인간의 정신능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근 100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창조성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불과 최근 2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6)

다중지능론을 주창했던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창조성의 비밀을 역동적으로 풀어낸 교양서이다(6)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창조성과 고나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넓으며, 영역이 서로 상이한 창조적 거장들을 일곱 명이나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방대하다(6)_이런 겁나는 책을 접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성을 만든다고 믿고 싶당..

유려하고 간결한 문체와 서술로 연구서가 되어야 할 책을 수월하게 읽고 음미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대중서로 만들어 놓았다(7)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업적을 낸 창조자를 선택한 후, 이들 인물의 ‘특이성’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그 속에서 ‘공통성’을 찾으려고 시도했다(7)

이 책의 목표 : ①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 ②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7)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로 전환시켜 대답, <개인-일-타인>이라는 창조성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7)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지 못하고,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8)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8)

‘10년 주기론’ :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9)_비슷한 지능과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 10년의 투자가 없이는 대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말. 10년을 한 분야에 매진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선택한 분야 외의 다른 영역에 대한 에너지투입을 최소화했다는 의미. 이런 선택과 집중과정을 파우스트적인 거래라고 표현한 것 같다.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

산업혁명의 비참한 모습을 비껴간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집안은 다들 유복한 편, ‘자유사상’에 관용을 베풀 줄 알았다. 근면과 드높은 성취라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체험. 유년기가 행복하기만 했던 것을 아니지만 가장 끔찍한 상처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강력한 자석의 힘에 이끌리듯. 미래의 거장들은 취향이 비슷한 젊은이들을 만나고 공부 모임이나 예술 혹은 과학 회합을 결성하고 인습파괴적인 잡지를 발간하거나 공연을 기획하면서, 훗날의 창조적인 도약을 낳게 되는 지적 잉태기간을 보냈다(10)

■ 감사의 글

애매한 생각을 명확히 하는데(12)

■ 들어가는 글_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지배한 실험정신

에움길(13)

지적인 고향(14)

인간 경험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과 인지적인 차원에 대한 호기심 사이에서 다소 갈등을 느끼고 있었는데, 대학 졸업반 시절에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저서를 읽으면서 인지적 차원에 약간 더 무게를 두고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을 시적인 해소책에 불과했다(14)

인간사회에 대한 관심이 이미 나의 내부에서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14)

발달심리학의 연구 방법과 기법, 교수들이나 동료 학생들이 예술적 창조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14)_가드너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던 ‘예술적 창조성’에 그의 동료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동시성이 가드너를 이 분야의 거장으로 서게 했던 걸까? 이 간극이 가드너에게 ‘발달심리학 기법과 예술적 창조성 연구’를 결혼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 ◇

예술적 인식과 교육에 특별히 주목한 ‘프로젝트 제로’ : 왜 어떤 아동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위축되는가(15)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은 한층 더 다원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6)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18)

이책을 쓰는 일은 애정이 깃든 작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흥미를 느낀 사람들과 주제를 다루면서, 내가 사랑하는 예술 작품과 시간을 보내고 오랫동안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온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18)

나는 내가 일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19)_우리와 비슷한 작업을 했다는 흔적이 보이네요.. ^^

소원은 이뤄질 테고, 그러면 자네는 연기와 안개로 짜여진 시간의 정수를 갈망할 테지(21)_내 책은 해답을 제시하는 책은 아닐 것이다. 그저 ‘맞아.맞아..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적어도 한명은 있구나..그녀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풀기위해 노력하는구나..’하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집필의 1차적 목적을 달성되는 셈이다. 그렇게 나는 독자와 친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나누는 친구들에 둘러싸인다면 나는 또 얼마나 더 행복해 질 것인가..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요즘에는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입니다(31)★

예술가란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바술가와 같습니다(31)

계몽주의를 이끈 핵심 인물들이 1740년대에는 모두 소년 성가대원이었고, 미국의 주요 초월주의자들이 1820년대에는 모두 대학생이었던 것과 같다(31)_2010.5.23 아이를 업고 북리뷰를 하고 있었다.. ^^

앙드레 말로의 ‘벽이 없는 미술관’ marshal mcluhan의 ‘지구촌’(32)

이 책의 목표 : ①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 그리고 그들이 성취한 업적의 특성, 이들간의 유사점과 교육상 의미있는 차이점을 규명 ②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③ 그들이 그 특성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시대에 관해서 검토(37)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38)

분석틀의 세가지 핵심 요소 : 창조적 인물, 창조적인 행위의 대상이나 작업, 창조적인 인물의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38)

1. 아동과 대가의 관계 :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39)

2.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 창조적인 인물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성격을 쇄신하는 저마다의 고유의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39)

3.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하는 역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할 것(39)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40)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해서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이 기본 틀이 된다(41)

아인슈타인은 당시 물리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과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대신 그는 제 1원리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설명원리를 찾고자 했다(41)

유년기에 흔히 품게 마련인 문제와 정교한 지적분야에서 제기되는 까다로운 도전사이에 펼쳐지는 지속적인 변증법적 대화를 강조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살펴볼 것이다(42)_아이의 질문에 더 귀를 기울여봐야지! ^^

그들이 파리나 취리히와 같은 국제적인 도시에 이끌린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43_

엘리엇은 창조적인 인물이 스스로 경계인이 되는 사례의 시금석과도 같다(43)

마사 그레이엄은 그녀 스스로 역할 모델이 되어야 했을 터(44)_여성 역할모델을 찾아볼까? 그들을 전략참모로 활용해볼까? ^^

창조적인 인물과 그가 활약하는 분야의 변증법적 관계는 이 책에서 변함없이 주목하는 주제이다(46)

이들의 창조 여정과 작품을 정확히 조사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어야 한다(47)_자료를 많이 남겨야겠다. ^^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서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49)

역사의 바탕에 구조적이니 뼈대가 존재한다는 믿음(49)

창조적인 인물들이 창안한 특정한 관념들은 마치 공용화폐처럼 널리 퍼져 있어서 당대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50)_나는 그 공용화폐를 예쁜 수집함에 넣는 역할을 하고 싶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이처럼 틀에 박힌 규범이 광범위한 도전에 직면(51)

세기가 바뀔 무렵에 19세기의 기본교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일이 급속히 그리고 연이어 일어났다. 우리의 일곱 명의 창조자들도 이 맹공격에 중대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52)

현대적인 감수성의 탄생지가 한군데 있다면, 그것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이 퇴조해 가는 빈(5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유럽과 동유럽에 만연한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제도의 퇴조와 공통지식의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는 불온하다 싶을 정도로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모한 창조적 열정이었다(53) ★

각각의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형식을 추구한다는 점, 전통적으로 아이들이 매달리는 문제나 개념들과 씨름한다는 점, 낡은 문명이 죽고 새로운(그러나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문명이 탄생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기록하려고 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55) ★

서로의 활동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았다(55)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 창조성은 지능과는 다른다(59)

발산적 사고(60)

각주 표시법..참신했다.○

대상 인물의 관념체계에 주목하고 인지과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모델을 활용하여 대상 인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63)

심리학의 두가지 접근법(심리측정학 전통, 인지과학적 관점) + 성격과 동기부여(65)

창조적인 건축가들 :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경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65)

무의식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66)

창조적 인물은 리비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승화시켜서 글쓰기나 그림, 작곡, 혹은 과학 탐구와 같은 ‘2차적인’ 목적을 추구한다(66)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 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67)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창조성’이나 ‘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69)★_연구원으로서의 글쓰기가 영..흡족치 않은 것도 이런 이유일까?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69)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자주 창조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러한 ‘몰입 순간’에 도달 할 수 있다면 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도 감수하려 드는 것이다(69)★_이것이야말로 가드너가 말하는 ‘파우스트적 계약’의 본질 아닐까?

한 개인이 어느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몰입 경험의 궤적이 변하게 마련이다. 한때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라 여겼던 일이 쉽게 달성할 만한 일 , 심지어는 유쾌한 일이 된다. 반며에 오래 전에 성취했던 일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69)

창조적인 사람들이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을 계속 올리듯 통례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더욱 더 어려운 도전에 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준다(70)

연구결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보통 35살에서 39살 사이로 나타났지만, 정확한 시기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령 시인과 수학자는 20대나 30대에 절정에 도달하는 반면, 역사가나 철학자는 이보다 수십년 뒤에 정점에 이른다(71)

사이먼튼(역사계량학자)는 ‘뛰어난 창조자들은 대체로 왕성한 창조력을 보이는 법이어서 후세대가 존경하는 ‘훌륭한’ 작품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신통찮은’ 작품도 많이 창조했다.' 고 주장한다(71)

내가 채택한 방법은 그루번의 진화론적 체계의 연구법과 더 가깝고 나는 이 방식에 좀더 공감하는 편이지만, 역사계량학파가 제공하는 귀중하는 풍부한 배경자료 역시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창조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과학은 어떤 식으로든 이 두가지 접근접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72)

이 책에서 나는 읽기 쉽게 나의 결론을 설명할 생각이다. 물론 이 방면에 흥미있는 독자들이 나의 방법과 자료, 그리고 결론을 평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정보도 충분히 제시할 것이다(72)○_감탄할 만한 배려다. 친절이 오히려 에필로그를 사족처럼 만들었지만..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은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 분야의 문화에 걸맞게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이를 완전히 터득하려고 하지만, 점차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제 그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선택한 문제나 주제를 다루기에 적합하고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체계(의미체계)를 고안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76)★_내가 겪은 과정이 나만의 고난이 아니었구나..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의 발견은 한층 더 심오한 배움과 발견에 이르는 기본 바탕이 된다. 뿐만 아니라 발견과정 자체도 훗날의 탐구행위의 모델이 되는데, 이전에는 아무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현상을 철저히 연구하는 자세도 유년기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77)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행위가 억압당하고 한 쪽 방향으로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 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78)★_명심하자!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할 부분이 명확해졌다!!

정해진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규칙대로 살아가는 대신 인생에 대해 좀 도 모험적인 태도를 지니라고 격려하는 역할 모델을 적어도 한 명은 만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78)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유년기야말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79) ★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79)

이런 모험적인 시도는 흔히 반항적인 행위로 간주되지만, 운이 좋으면 교사나 동료들로부터 계속 실험적인 시도에 대한 격려를 받기도 한다(80)_이런 교사나 동료, 혹은 부모가 되려면 스스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요구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내지 않으면 이런 실험을 방치하는 위험을 부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당 분야에 결여된 부분을 지적하고 가능성있는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찾아가는지(81)★_내 분야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법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한층 더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가 임기응변식의 해결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직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좀더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이루거나 새로운 사고방식을 택하기 위해서는 국지적인 해법을 버려야 한다(81)★★_관성을 지키려는 이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이 충돌이야말로 창조적 거장들이 치뤄야 했던 대가였을지도 모른다.

이 때가 바로 창조자의 용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다. 관습적인 상징체계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창조자는 이제 혼자서라도 복잡한 사정을 모두 감안하여 핵심 쟁점이나 성과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형식을 마련해야 한다(82)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84)

많은 창조적 업적이 주어진 문제의 해결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좀 더 높은 수준에서 보면,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84)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식의 창조성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세가지 요소(개인, 분야, 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를 지적, 창조성은 이 세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볼 때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88)

주요인물에 대한 전기를 보면,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 장에 의해 결국에는 무시되고 오해되는 사례, 심지어는 노골적인 조롱을 받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이를 보고 진정으로 혁신적인 작품은 처음에는 거부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 사례도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의 거장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고독한 처지에서 노력했지만, 역사의 긴 안목으로 봐서 참으로 짧은 시간인 10년만에 이름을 얻고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91)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장의 판단이 없으면 어떤 사람이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92)

창조성은 그런 완벽한 조화에서 생기지 않는다. 비동시성이라는 용어로써 나는 창조성의 삼각형 내에 존재하는 부정 교합과 예외적인 유형 및 불규칙성을 지적한다..당연히 비동시성은 생산적인 결과를 낳는다(93)

비동시성의 성과물이 얼마나 창조적인가의 문제 ① 비동시성이 너무 뚜렷하거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있는데, 이 경우는 창조적인 업적이 나오기가 힘들다. 내가 생산적인 비동시성이라고 부르는 중간 수준의 긴장 관계나 비동시성이 바람직하다 ② 생산적인 비동시성이 많이 존재할수록 진정으로 창조적인 업적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비 동시성의 과잉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바람직한 것은 비동시성에 압도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인 비동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94)★_영웅이 모험을 떠나는 이유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동시성이란 영웅을 자극하는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자기계발의 진척 정도, 거장이 되었을 때도 남아있는 아이다운 특성에 대해 주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면서 버티고 이겨내야 했던 긴장감의 정도에 관심을 기울인다(95)

아이와 부모 관계의 성격, 가정 내의 규율과 관대함에 대한 태도, 사회 및 해당 분야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특징짓는 경계성의 정도를 살펴본다(95) ★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하고..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 지원도 필요로 한다(98)★_엄마, 남편, 그리고 스승, 동료가 다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와 보육자의 관계, 자란 후의 젊은이와 주변 친구들의 관계(98)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그레이엄)도 있다. 피카소는 이런 거래가 거절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스트라빈스키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버리면서까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있다(99★_‘원만한 삶을 포기하고, 즉 이미 주어진 행복의 영역을 희생하면서까지 그 ‘일’에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실은 하나마나한 질문, 아마도 정신을 잃는 걸거다. 이성적인 판단을 너머서는 영역인 것이다.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_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첫 제자들은 거의 모든 성원의 빈의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한 유대인이었다(104)

수요 심리학회의 정수에서 빈 정신분석학회가 태동했고, 여기서 국제 정신분석학 협회가 탄생한 것이다(105)

어머니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받았으며..유모는 항상 프로이트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격려했던 것 같다(107)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사실(107)

내 아들의 발가락이 내 머리보다 영리하다(108)

당시만해도 의사라는 직업이나 의사가 하는 일에 특별히 마음이 끌렸던 것은 아니다. ..나는 지적 탐욕이라 해도 좋은 지적 욕구에 이끌렸을 뿐이었다(108)

8년동안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108)

프로이트는 평상시에는 쾌활하고 열정적이며 기지가 넘쳤으며 가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야심만만한 청년이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도 보였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무대와 인물, 제도를 꾸며내거나 시적인 공상으로 비약할 줄도 알았다. 여러 언어로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극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문학에서 미술로, 과학에서 철학으로, 신변문제에서 직업이나 정치, 혹은 세속적인 문제로 거침없이 주제를 바꿔가며 편지를 썼다. 이미 누군가의 스승 노릇을 할 때였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설명하고 편지 상대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으며, 자신이 얻은 시작을 종합하려고 애썼다. 아마도 프로이트와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109)

편지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상을 주는 부분은 결점 투성이인 인간 세계에 강한 매혹을 느끼고 이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이해했다는 점이다(110)

인생의 모든 빈틈에 대해 그 원인과 이유를 지치지 않고 따져 물었다(111)★_이 빈틈이 다른 말로 비동시성? 인생에는 원래 빈틈이 있게 마련이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 이 빈틈을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속한다. 이 들 중에 그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창조자..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오지랖 넓은 푼수들이다!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했다(111)

현대의 문이 열리는 시대에 문명 세계의 중심지에 살면서 영향력 있는 스승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프로이트에게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무한했으리라 보인다(112)

프로이트는 이러한 이론적 분위기에 휩싸여 제한된 과제만을 수행해야 했다(112)

5개월의 이 짧은 유학시절이 프로이트의 인생을 바꾸었다(115)

적어도 몇몇 신체 증상은 완전히 심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요인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다(115)

언젠가는 새로운 영웅이 되고 “샤르코만한 위치에 오를”것임을 확신한다면서 자신의 끈질긴 야심을 드러냈다. 프로이트처럼 비범한 재능과 정력,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파리체류 이후의 10년간이 너무나 조용한 시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116)

그는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과 생활방식을 시도했었다(117)

당시에는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 마음속에 억눌렀지만, 그 대가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예전에 억압된 기억을 말로 풀어내면서 거기에 얹힌 묵은 정서를 발산하면, 증상을 없애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118)

환자가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최면중에 다시 경험하면 그 증상이 사라지리라는 것이었다(119)

정신분석학이 발전하면서 그와 맺은 우정을 잃어야 했다(120)★_창조자들은 성장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같은 레벨의 사람들과 오래 친분을 나눌 시간이 없다. 친구들이 그와 비슷한 속도로 성장해주시 않는다면 이별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다. 익숙해질 무렵이면 그는 이미 다른 공기로 숨쉬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 자신은 후에 “고집스런 바보들에게 냉담한 대우”를 받았다고 썼다. 이런 반응에 낙심이 너무 컸던지, 이후 42년간의 남은 생애 동안 프로이트가 빈에서 공개적으로 의학 강연을 한 것은 오직 한번 뿐이다(122)

한때는 가족들에게 왕 대접을 받았고 동료와 스승에게는 애정과 존경을 받았으며,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가 가장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브로이어 등 가장 가까운 동료들은 더 이상 뜻을 같이 하려고 들지 않았고,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가 주장하려는 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때는 세상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프로이트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면, 그것은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122)_나?

거의 매일 약혼녀 마르타 베르나이스에게 자기의 영혼을 쏟아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르타에게 자기 생각을 다 털어놓지 못했을 때는 처제인 민나를 대화 상대로 찾았는데, 민나는 언니보다 더 지적인 여성으로 평생 동안 독신으로 지내면서 40년 이상 프로이트의 집안일을 돌보았다(123)_누군가..어딘가..분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해한다. 그를 전적으로..

학문적이고 정서적인 유대감을 한 사람과 맺기를 더 좋아했다(123)

두 사람은 모두 비교적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사고를 발전시켰고, 세상에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 줄 사람, 물론 그렇다고 전혀 비판할 줄 모르는 위인이 아닌 사람이 최소한 한 명쯤은 있기를 바랐다(124)

프로이트는 고독감과 자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해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다...어디에서도 학문적인 지원을 얻지 못하는 삶이 있지요. 주변에는 ‘너한테는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분위기만 있는 겁니다...사람들은 나를 편집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내가 자연의 위대한 비밀 한 가지를 풀었다는 느낌이 확실한데도 그렇다네..한없이 우쭐대다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던 것이다(125)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훔볼트의 앵무새처럼(126)_정확히 같은 감정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다른 혁신가들도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상태를 회고할 때면,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127)_우리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가 아닐까..적어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인 것은 확실하다.

핵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하나만 집어내는 일은 위험하다(129)

억압..방어기제..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과정(129)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적 세계의 핵심이다. 우선, 의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려는 일군의 표상들이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검열기제는 의식에 닿기에 부적절한 표상들을 걸러내고 그것을 무의식의 영역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전환과정을 통해 그 불편한 표상들에 결부된 정서가 여러 종류의 증상으로 전환되는데, 이 중에는 말실수와 같은 무해한 증상도 있고 히스테리 발작과 같은 꽤 심각한 증상도 있다. 불편한 표상들이 전의식에 닿거나 의식의 층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야 한다(130)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무의식에 이르는 왕도(130)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기제이다. 억압이 가장 중요한 방어 기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승화라든가 반응형성, 투사, 전위, 금지와 같은 다른 방어 기제도 존재한다. 임상 의사는 이러한 다양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관찰하고 환자가 방어자세를 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환자는 처음 병을 유발한 사건을 인식하고 방어 기제를 해소할 수 있다(131)

나 같은 사람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132)★★★_마치 이를 갈아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설치류처럼..나..아닌가?

창조적인 인물들은 근본적인 비약을 이루기 직전에,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언어를 믿을 만한 친구에게 시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자기가 아주 미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소통에 대한 이런 욕망은 인지적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인지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통에 대한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소통 관계와 어릴ㄴ 시절의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는 심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136)◇_가드너는 어쩜 이렇게나 잘 알고 있었을까? 스스로 체험하지 못했다면 묘사해 낼 수 없는 영역이 아닌가? 그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확실하다.

검열기제와 다양한 종류의 위장,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려는 두려운 표상들, 의식 아래에 잠복한 성적인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137)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저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소원이 위장되지 dskg고 audqoqr하게 드러나며, 어른의 경우에는 대개 더욱 복잡하고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138)

프로이트는 자신이 심한 괴로움을 겪기 때문에 그런 자기분석의 고통을 기꺼이 떠맡았다는 내용을 암시하기조차 했다(139)★_결국 그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였기에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문제해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억은 그 자체로는 무의식적이지만, 꿈은 무의식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144)

두 개의 심리장치..꿈 내용을 검열하는 기제, 검열되는 꿈 재료..모든 신경증 증상을 무의식의 소원성취로 간주해야 한다고 단언한다(144)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밀한 영역과 언어와 논리적 설명의 영역에서 눈에 뛰게 우수한 편인데, 이는 유능한 사회과학자나 행동과학자의 전형적인 표본이다(146)

그는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잇는 분야를 선택했겠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은 분명 아니었다(148)

대단한 인물들이 이웃해서 살면서, 카페에서 허물없이 어울리고 회합에서 의견을 교환했다(149)

성적인 문제에 고결한 체하는 모습은 빈의 중산층 사이에 만연한 태도(150)

프로이트는 치유를 갈망하는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치유법을 알려준 것이다(153)

사색적인 많은 젊은이들이 설득력이 점차 놓아지는 프로이트의 간단한 요약문이나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에 매료되어 정신분석학에 이끌렸다(154)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155)

프로이트는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충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156)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다(159)★_그들이 참으로 배신스러운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피해자’라고 표현하다니..그러면 그들이 분명한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데..그러니까 그들은 효과도 크지만 위험한 ‘충격요법’같은 존재일 뿐이다. 충격요법은 절실한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명심해야한다. 스스로의 체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함부로 취할 치료법이 아니라는 것을..이들은 그들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억지로 시술한 ‘충격요법’이 아니라면야..치료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병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만 본 적이 있더라도 기억할 것이다. 아무리 시시한 수술이라도 보호자는 ‘이 수술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게 되어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서약서’없이 피해자들을 시술했다는 것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충분히 경고했을 수도 있다. 그 경고의 유별남이 그들을 다시 기인으로 만들었겠지만..음..넘 흥분했나? ㅎㅎ

하루에 여덟내지 아홉 시간은 환자들을 보았고, 매일 산책을 했으며, 가까운 친구들이나 브니이 브리스의 동료들과 어울렸으며, 책을 읽고 고대의 유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나 2시까지 글을 썼다..프로이트는 확실히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19세기 브르주아 계층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160)

<꿈의 해석>은 그가 샤르코의 임상교실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정확히 10년만에 탄생한 업적(161)

82살의 나이에 런던으로 강제로 이주한 후에도 환자를 보고 글을 썼다. 암으로 인해 몸은 쇠약해지고 고향을 잃은 상황에서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는 의연했다(162)

그는 사람들이 읽고 연구하고 논박하거나 추종하는 훌륭한 저서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자신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계속 성장해 갈 학회 조직과 정신분석학 운동 역시 유산으로 남겼다(163)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165)_★영웅의 여정과 정확히 일치..음..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_영원한 아이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169)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170)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173)

그는 오랫동안 흥미를 느낀 주제를 가지고 있었고, 대중적인 저서와 주변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얻은 과학적 신념을 지녔으며, 가족 사업을 통해, 그리고 우호적인 분위기의 아라우 주립학교에서 과학분야의 일을 즐겁게 해 본 경험이 있었다(176)

역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역학이 이루어낸 성과였다(179)

프로이트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매료되었던 데 비해, 아인슈타인은 객관적 사물간의 관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191)

체계적인 독서계획..유쾌한 농담을 나누었고 서로의 열망과 두려움을 함께 이야기했다(192)

어쩌면 믿을 만한 친구나 애인들의 이론적 자극이나 비판이 없었다면,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혁신적인 작업을 완수하지 못했으리라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193)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193)

수학은 수많은 전문 영역으로 분리돼 있는데, 그 하나하나는 우리의 짧은 생애를 쉽게 소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194)

아인슈타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한 사고를 할 때까지는 발달단계를 거쳐야 했다(195)

예술만큼이나 아름다운 개념구상을 눈부시게 표현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197)

권위에 반발하는 기질을 타고 난 아인슈타인은 특히 젊은 시절에는 윗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198)

그만한 재능의 젊은이가 획기적인 발견을 하기 직전에도 교사직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긴 하다(201)

실무직은 나 같은 사람에겐 구원이나 마찬가지다. 학계에서 성공하려면 학문적 업적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만이 피상적인 분석에 만족하자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201)★_명심하자! 오히려 하고 싶은 일에서 롱런하려면 실무적인 밥벌이를 놓지 않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돈 때문에 설익은 결과물을 가장해서 내놓아야 한다면 그 비극을 어쩔 것인가? 차라리 무성과가 낫다. 무책임한 결과물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자!

특허국의 이름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202)

공간 자체 그리고 시간 자체란 그늘 속으로 사라져버릴 운명에 놓였으며, 오직 이 양자의 결합만이 독립적인 실재로 존속하게 될 것입니다(213)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216)★

높은 봉급과 원하는 만큼 가르치는 선택권이 보장된, 카이저 빌헬름연구소의 소장으로 선임(218)★_완전 부럽당!!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처럼 자기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사소한 다툼이나 앙심을 품은 경쟁자에게 시달리지 않았다(219)

아인슈타인은 적절한 연구 환경과 좋은 동료들, 그리고 세상의 인정을 나름대로 중요시했고 (219)

대략 40대 후반 이후인 남은 반생동안, 시간을 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을 힘겹게 물리치면서 자기만의 연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리학 분야가 양자 역학 방향으로 진행되는 추세를 바꾸기l 위해서도 그만큼 인정사정없는 투쟁을 벌여야했다(220)

아인슈타인의 평판은 그의 개인적인 성품에서도 연유했던 것 같다. 털털한 옷차림, 헝클어진 머리, 텁수룩한 콧수염, 격의없는 태도, 보헤미안 기질 등 남의 이목을 쉽게 끄는 겉모습을 하고 다녔던 그를 보면,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었고 쉽게 호감을 느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 없이 낙천적인 (자기의 행동을 규율하려는 사회의 관습이나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221)

조화로운 우주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조용한 사색가는 이제 세계의 상징, 폭넓은 존경과 뿌리깊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자기 이론에 대한 이해와 오해에 대처해야 했다(222)

넉넉한 봉급을 받고 연구의 재량권도 보장받았다(223)

그는 내가 물리학을 이해하는 만큼 심리학을 이해하고 있어서, 우리는 아주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225)_멋지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작업이 다른 많은 동료들의 작업과 점점 더 분리되는 상황에 틀림없이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231)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그는 홀로였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과, 모종의 장대한 설계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231)

나이가 들면 연구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 세계적인 명사로 인정받기에 참으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찬란한 고립’의 시기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232) ★

젊음과 원숙함을 절묘하게 결합할 줄 알아야 하고, 이런 결합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나 가능하다(232)

젊음과 원숙함의 결합은 창조적인 과학천재의 고유한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선 그가 젊은 시절에 숙고했던 문제가 당시의 물리학에 적합했다는 점에서, 둘째 그가 공간적․시간적 상상력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이 그의 과학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233)

그는 우리가 보통 아무 생각없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234)

아인슈타인은 그의 시대에서 언제나 독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데, 단지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아니라 원숙하고 성찰적인 인간으로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236)

시작은 유년기의 날카로운 직관이었지만, 그것이 결국 탁월하고 포괄적인 철학이 되었다(237)

아인슈타인은 만약 북극곰으로 태어났더라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되었을 것이다(237)

아인슈타인은 이처럼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지만, 그의 과학적 천재성, 심미적 감성과 종교저거 심성 그리고 세계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모두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사람의 인격 속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다(239)

가족이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상 전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 물리적 본성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240)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작업에 익숙하지 않고 혼자서 일하는 스타일이다...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여기에는 나름대로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으니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240)_내 생각과 같다. 내가 나의 고립을 ‘신의 선물’이라고 믿었던 이유였으니까

물리학보다 체계가 느슨한 분야에서는, 이를테면 문학이나 철학 또는 역사와 같은 분야에서는 어린시절의 직관에서 성찰적인 지혜로서의 변화가 자연스럽고 무리없이 일어난다(241)

간주곡1

두사람은 모두 탁월한 학자이며 사상가로서, 평생동안 지식탐구에 몰두했다(242)

물리 세계, 사회 세계, 정신 세계(242)

이미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답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과학자의 소명은 더욱 빛이 난다(243)

두 사람은 정신유형과 활용한 상징체계가 서로 달랐다(244)

두 사람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노력했는데, 어쩌면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에 다소 즐거움을 느낀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프로이트는 금욕적으로 성관계를 단념했고, 아인슈타인은 충만한 가정생활을 일부러 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246)★_이걸 ‘포기’라고 해야하나..그들에게서 갈등의 기운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최고(지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이겠지..둘 다를 취할 수 없다면 자연히 덜 중요한 것을 버려야 할 테니까. 이것은 그들이 창조적 인재들이었기에 특별히 처한 상황이라기 보다는 인류 보편의 문제가 아닌가? 둘다를 얻으려고 욕심내다보면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남들보다 각별했던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247)

5. 파블로 피카소_신동과 천재

모차르트와 피카소는 모두 유년기에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보였고, 예술가이자 예술 교육가였던 아버지의 지원과 격려를 크게 받았으며,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지방의 여러 대가들을 능가했다(250)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251)

신동의 출현은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형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추어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님과 사려깊은 부모, 재주를 뽐내고 선보일 수 있는 풍부한 기회, 경쟁의 의무를 덜어주는 혜택, 대중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로, 특정 분야에서 공인된 아동이 발판으로 삼아 도약할 수 있는 일련의 장애물 등이 필요한 것이다(252)

자신에게 ‘의미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거나(253)_나에겐 아빠.

시각적 세부와 색채의 배합을 알아내고, 공간 구성에 대해 사유하고, 현실적인 장면이든 그림속의 장면이든 자신이 본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재능과 솜씨를 발휘했다(255)

숫자를 수량을 나타내는 상징보다는 차라리 시각적 무늬로 여기고 싶어해서, 가령 0은 비둘기의 눈으로, 2는 비둘기의 날개로, 숫자의 합은 베이스라인으로 생각하는 식으로 숫자들에서 비둘기의 모습을 볼 정도였다(256)

학교 근처에 머물다가 그냥 집으로 되돌아가는 등의 신경증적인 모습도 보였다(256)_‘나’, 땡땡이 기질에 있어서만..

가족은 피카소가 그림을 그려놓은 종이와 수많은 노트, 학교 교재, 이밖에 피카소가 붓이나 연필을 댄 흔적이 있는 것을 모두 모았다(256)

피카소는 다양한 화면구성을 시도하고 똑같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그렸으며, 호소력 짙은 극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았다258)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259)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261)_참두꺼비 대왕

피카소로 하여금 자선행위에 따르게 마련인 고마움과 쓰라림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261)

피카소가 모차르트와 같은 몇몇 작곡가들과는 달리, 위대한 화가들은 사춘기 이전에 진지한 주목에 부응하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는 규칙에 그대로 해당되는 듯하다(262)_위안이 된다

어린 천재란 그저 유년기의 천재일 뿐이지요. 나이가 들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그런 아이도 미술가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263)★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263)

불필요한 정규수업을 연이어 받고, 평범한 교사들을 경멸하고, 사적인 갈등을 빚곤 하고, 이전 시기의 맘에 드는 거장들을 사숙하며 독학으로 기량을 연마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모차르트와 거의 비슷하다(264)

경박하고 피상적인 표현 방식을 넘어서, 선원과 부두 노동자들의 내면 심리와 자연 풍경이나 거리 풍경의 저변에 흐르는 감정을 탐구했으며, 가족들의 삶이나 밤의 거리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사람들의 갈등과 긴장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았다(265)

자기를 있는 그대로 충실히, 혹은 현란한 의상과 복장을 차려 입은 모습으로 그렸으며, 기지와 예리함이 번득이는 몇 번의 붓질로 모델의 정조와 성격, 심지어는 생각까지 포착하는 놀라운 솜씨는 관람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265)

침묵할 때조차 타고난 지도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카소는 자신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한하다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명료하게 느꼈을 터인데, 유년시절에 이미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바 있다(266)

세상에 대한 독특한 비전을 뚜렷하게 보여준 화가(267)

그는 바로 이런 성급함 때문에 경박한 기교의 대가에 그칠 위험이 있다. 다작과 풍작은 폭력과 활력이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창조력이 왕성한 예술가가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268)

친구들은 피카소가 성취해야 하는 것을 분명히 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에너지를 쏟을 방향에 관해 조언을 해주었으며, 다양한 사상을 가르쳐주었고, 그의 작품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동시에 이 언어의 전문가들은 그들이 자연 언어로서 묘사하려고 하는 인물의 성격을 몇 번의 붓놀림으로 완벽하게 포착해내는 피카소의 놀라운 솜씨에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270)

그가 평생 동안 드러내놓고 모호한 태도를 보인 가족이나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감정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한 시각 예술가가 사유하고 상징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277)

위대한 예술가들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한 대표작들은 개인적 의미가 깊이 담긴 사건과 정서를 보편적인 주제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277)★_결국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어릴 때는 신동이었고 낯선 나라로 어렵게 이주해서 개인적인 특성이 강렬한 심미적 양식을 만들어낸 사람한테는, 똑같은 양식에 머무르면서 추종자를 키우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채 돌아가는 성공의 수레바퀴에 그대로 오르고 싶은 유혹이 매우 클 것이다(278)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찿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279)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 : ①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 걸 한데 모으는’ 스타일의 명인 ②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형(279)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결국은 스타인이 저 그림을 닮게 될 테니까(279)

1894년부터 1967년까지 보관하던 175권의 드로잉 노트가 발견된 것이었다. <아비뇽의 처녀들>의 스케치만 그린 노트 8권도 포함되어 있다(283)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284)_매일해라! 매일!! ^^

피카소의 그림은 완성작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거의 없다(285)

누가 휘발유를 마시고 불을 뿜어내는 느낌(288)

낮에는 각자 그림을 그리고 밤에 만나서 서로의 작품을 살펴보았다(289)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서로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290)

이 기간동안만은 피카소도 노트 기록을 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동반자 역할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할 수 있다(290)

어떤 묘사 방법을 확고히 결정해버리면 그 방법이 무엇이든 이득뿐만 아니라 손해도 생길 것임을 알고 있었다(294)

이러한 협력은 자아의 희생이 필요했거니와, 적어도 피카소의 경우에는 재능을 상당 부분 억눌려야 했다(300)

아무리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도, 서로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이 점은 특히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창조적인 인물들한테는 꼭 해당되는 이야기이다(302)

고독의 시간은 친밀한 어울림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302)

입체주의 미술이 과학을 예술에 도입한 사조이며 최초의 객관적인 예술이고 대상 사물의 구조를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양식이라고 서술했다(303)

입체주의 미술의 이미지가 상업광고물에서 아류 모방작에 이르는 다양한 시각물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음에도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미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304)

자신의 작품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조차 자신이 정작 성취하고자 했던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카소는 스스로가 호기 있게 시도한 예술적 반역을 망각했으며 여러 악평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305)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307)_작가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

사생활의 혼란은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다(308)_그가 진정 작품을 위해 '파우스트적 거래'를 한 거라면 정신없는 사생활을 정리했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티모시 힐턴은 피카소의 다채로운 연애 경험, 미술 양식과 매체에 관한 다양한 실험, 보헤미안적인 삶과 부르주아적인 삶이 혼융된 생활 등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영감이 사라지는 현상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였다고 보았다(308)_이거 마치 나이든 여배우가 들어가는 나이를 망각하고 '주연'에만 집착할 때 생기는 현상 같다. 자신만이 해 낼 수 있는 영역이 분명이 있었을텐데..안타깝당..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허나 공정한 관찰자라면 피카소의 고통은 그 태반이 그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310)_절대 동감!!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313)

예술가의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작업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언젠가는 과학이 존재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과학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터다. 창조적인 인물을 탐구해서 인간 일반에 관해 알고자 하는 그런 과학이다(313)_탁월한 선견지명? ^^

그는 부분과 전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318)★_전체구도와 부분을 수없이 오가다 보면 뭔가 나왈 것이다! 시도해 보자!!

피카소가 시각적 묘사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사유한다는 점을 보여준다(320)

천진한 아이의 눈에 비친 혼돈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321)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이다...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력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322)

피카소의 마음속 생각과 감정을 거의 모두 담아낸(322) ★

피카소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정과 연인, 아이들 그리고 여름 휴양지를 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꾸준하게 새로운 양식과 대표작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324)

피카소는 난마처럼 뒤얽힌 복잡성과 날카로운 단절로 점철된 삶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분야에서 활동했기에 피카소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과 예술적 자극을 얻을 수 있었고,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324)_첫단추가 중요하다. 조화로운 가운데 최상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조건화가 잘 못된 것 같은 느낌이다.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물론 단정지을 수 없다. 더 연구해 봐야겠다. 누가 해 놓을 걸 읽어야겠다. 이런 변태 할아버지한테는 정이 안가서리...--;;

젼재의 영예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피카소의 '퇴폐적인' 후기 작품에 쏟아질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비난의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325)

피카소는 찰리 채플린이나 아인슈타인처럼 대중 앞에나서 연기할 줄 알았다(326)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영웅'들 누구도 거센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327)

피카소는 그림을 그릴 때 색깔을 고르듯, 시기와 목적에 따라 적당한 친구를 고른다(329)★_그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친구라고 꼭 전인격을 함께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피카소는 평생동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때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330)_일단 부럽긴 한데..쩝..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초월해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330)

피카소는 온 힘을 다해 질로를 파멸시키려고도 했지만 자신의 맹렬한 공격에도 흔들립없는 모습을 보고는 마지못해 그녀를 존중하기로 했던 것 같다(332)_시험했던 건가? 하여간 강자에게 강한 사람은 드물다!!

분명한 것은 <아비뇽의 처녀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이다(332)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_음악가이자 정치가
 
페트르슈카(334)_지금 듣고 있어요. 놀라운 IT의 힘!!  ^^

정치라는 외부적인 자극요소가 없이는 음악창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웅변한 실례인 것이다. 모든 창조다들,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폭넓은 대중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한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주위 동료들 사이에서 적절히 처신해야 한다(335)_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진짜 고객과 눈앞의 가짜 고객사이의 긴장을 경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과 연주에 기울인 노력에 못지 않게 자신의 음악 인생을 관리하는 면에서도 상당한 정력을 쏟아부었다는 점이다(335)

예술창조의 정치적인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스트라빈스키는 해당 분야를 관할하는 장에서 예술가 자신이 요령있게 처신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 셈(337)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곡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337)

다양한 인물들이 자주 방문하는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지적 중심지였다(338)

창조적 인물이나 그 가족들은 탁월한 재능을 암시하는 어린 시절의 특징적 표지를 찾는 데 열심인 법이고, 필요하면 그것이 증거로서 '가치있음'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억을 윤색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339)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적인 소양이나 지적능력을 계발하는 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340)

그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만났다(340)

생애 처음으로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환경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342)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342)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은 별볼일 없는 태작에 불과하다(343)_위안이 된다..

디아길레프 위엄있고 화려한 인상을 풍기는 귀족으로서 도박꾼과 지식인, 책략가, 예술가, 몽상가 기질이 조금씩 뒤섞인 인물이었다(345)

필요한 건 다 있는데 돈이 좀 부족해요. 하지만 곧 해결될 겁니다(346)

자신의 본능적인 감각을 철저하게 믿었던 디아길레프는 아무런 주저없이 스트라빈스키에게 <레실피드>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해 달라고 요청했다(347)_이런 사람도 필요하지.

젊은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활동 모습에서 공동작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교훈 두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마감시한을 지켜야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은 각기 다르면서 고집은 무척이나 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면서 타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었다(348)_명심하자!! 완전 아프당!!

창조력이 풍푸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다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바빴을 뿐이다(351)

처음 들으면 귀에 거슬리지만 서로 간에 부드럽게 어울렸다(352)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트라빈스키는 이처럼 독창적인 작품을 손쉽게 작곡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피아노 앞에 앉아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 어울리는 악상을 다듬어내기 위해 씨름을 해야 했다(353)

모종의 예술적 시대정신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353)

공전의 성공을 거듭한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고 해도 길을 잘 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355)

잉태기간이 길었던 이유는 스트라빈스키가 설정한 목표가 지나치게 새롭고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357)

처음 작품을 구상하고 악보에 옮겨 적을 때 이미 작품 전반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358)

그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시의 욕구와 욕망에 많이 집착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374)

자신을 엄격하게 제한할수록 더욱 더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375)★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서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378)

스트라빈스키가 외부에서 받은 다양한 영향과 자기 내부에서 느낀 여러 종류의 압력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379)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381)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세상 이치다(383)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을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는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383)_열심히 공부하자!!!

스트라빈스키는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의식이라는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작품을 경멸했다(384)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말 할 수 있을 뿐이다(384)

스트라빈스키의 삶은 대중적인 이목과 논란의 중심에 선 저명하나 음악가로서의 삶과 지성적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장인으로서의 삶이 균형을 이루었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특별한 경우에만 격렬한 디오니소스의 세계에 들어가는, 기본적으로는 질서와 균형이라는 아폴로적 원리를 체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387)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일을 하다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388)

두명의 저자는 각각의 개별 정체성을 녹여서 새로운 성격을 만들어냈다(396)

스트라빈스키는 좀 더 생기넘치는 젊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397)

피카소에겐 부족했던 작업 방향이나 철학의 일관성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음악과 언어로써 명확히 표현할 줄아는 능력이 있었다(398)

만년에 이른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과 점점 더 평화롭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이제는 삶을 즐기로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여행도 자주 다녔다. 사생활을 만끽하면서도 유명세에 시달리지 않는 요령도 체득했다...스트라빈스키는 생의 마지막날까지 작곡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에게 의미가 있었을 뿐 아니라 20세기의 음악사에 크게 기여했던 음악형식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작곡가였따(398)

스트라빈스키는 이 책에서 논하는 다른 창조자들보다도 유년기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것을 간직할 줄 알았고, 또 만년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열매를 만끽할 수 있었다(399)

우리가 다루는 다른 창조자들도 대개 그렇듯이, 스트라빈스키 역시 전 세계의 인정을 받는 대신 평온하고 애정어린 가족관계를 잃어야 했던 것이다(399)_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일정한 에너지로 꾸려지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무한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지혜로우려면 최적의 지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된다. 힘들지만 분명히 가치있는 것일테니까..

7. T.S. 엘리엇_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믿는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404)

커다란 강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교감할 수 없는 뭔가를 품고 살아간다(404)

그는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꼈다(407)

매혹과 역겨움을 번갈아 느꼈다(408)

그는 거리가 수축하고 갈라지면서 자신이 거대한 정적의 심연속에 빠져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환각적인 경험에 대해 훗날 엘리엇은 "신과 교감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결정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409)

그 때까지는 그는 가족이 마련한 각본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공부도 잘했고 해야할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글쓰기에도 능숙했고, 학문이나 사교면에서 별 어려움 없이 주위의 기대에 걸맞게 살아왔던 그였다..하지만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엘리엇은 점차 소외감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409)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숭 ㅣㅅ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410)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411)★

엘리엇이 또 다시 야심적이고 보수적인 교수직을 선호하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일종의 유예기 혹은 퇴행기로 생각하기 쉽다(412)

엘리엇은 다수의 정체성과 상이한 목소리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412)

 제의와 인간실존에서 질서가 담당하는 역할에 관심이 많았고, 주관적인 체험에 흥미를 느꼈으며, 조화되지 못하는 신념들을 통합시키는 방도에 관심이 많았고, '개념적' 지성을 믿지 않았다(413)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414)★

몇년만에 자기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419)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420) 

하버드 대학교의 2년째 연수 장합금을 포기하고, 런던 지역에서 교사노릇을 하고 글을 쓰면서 살겠다고 결심했다(420)_'어떻게 이런 결정을 했을까?'라고 더이상 묻지 않는 거 보면 나 좀 큰 건가?  ^^;;

둘은 상대가 자신의 두려움과 단점을 어루만지고, 서로 다른 성력과 소망이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421)

주도적인 문학그룹에 파운드가 끼어있다는 점은 확실히 엘리엇이 문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힘이 되었다(423)

각 인물의 중요도에 따라서 서신교환이나 만남의 횟수 그리고 교제기간을 적절히 조정했다(423)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424)★

공적으로는 파운드에 비해 덜 공격적이었고 사석에서도 어머니에 비해 고집을 덜 부렸다(425)

여전히 엘리엇은 수줍음과 뻣뻣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불만이 많았지만, 만나는 유력인사들 대부분에게 멋진 인상을 심어주었다(425)

단편적인 구절을 써서 모으는 일을 계속했다(425)

확실히 엘리엇은 이 작품을 오랫동안 그와 그의 어머니가 사로잡혀 있었던 정신적 여정을 묘사할 뿐만아니라 자기 시대에 대한 중요하고 '결정적인' 진술을 하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했다(426)

그는 서로 다른 목소리로 세상을 정탐한다(426) ★

엘리엇은 의혹과 폐허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험과 탐색을 시작한다는 구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지만,다양한 문화에서 취한 신비적인 탐색 주제를 풍부하게 서술한 웨스턴의 책이 아직은 이런 주제와는 다른 구상을 품고 있던 엘리엇에게 매력적이고 풍요로운 사유의 수단을 제공한 셈이었다(426)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427)

파운드는 문학에 관한 조언을 했고 비비언은 정서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기는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다. 실제로 두사람은 두가지 역할을 모두 했다(429)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429)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430)

이 젊은 예술가는 <황무지>가 본인과 동시대 시인들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나 하나의 정점, 결정적인 도약의 순간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평가의 장에 확신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434)

엘리엇의 시에서 더이상 의미있는 혁신은 나오지 않았다(436)

시란, 특히 서정시란 젊은 시절에 문제작을 내는 경우가 많은 장르다(437)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437)

일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야심과 욕망에서 나온 면도 있었지만, 손에 덜컥 쥐어지는 자유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더이상 시를 쓰지 못한다는 공포에서 나온 면도 있었다(438)_이해된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실상, 재원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 예술과 사상의 세계에서 중심 인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이런식의 복잡한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다(439)_그래서 기본 인프라가 중요하다. 욕심이 자원을 넘어서면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고 대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게 마련인 듯하다.

엘리엇은 깨지기 쉬운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엄격한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440)

성숙한 시인은 선배 작품의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443)

시인은 해당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444)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444)

모든 증거로 볼 때 엘리엇은 속내를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에게 친밀감을 느낀 사람도 거의 없었다(446)_아이러니다. 그는 그렇게나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는데..결국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구나..

재능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을 금방 찾아낸 다는 점이었다(446)★★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서, 드물게는 여러 분야에게 기존의 업적을 완전히 배워 익힌다. 이미 당대의 첨단에 이른 자들은 한층 더 나아가기를 열망한다. 이들은 발달 과정의 중요한 시점에서 금방 동료를 알아본다(447)

성격상 엘리엇은 마음이 불안정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었으며 다소 위험스럽게도 다른 사람들과 되도록 어울리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448)_이게 무신 문제라는 건지..@@

경계인이라는 느낌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함의한다.(공동체에 편안히 자리잡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경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455)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456)_징징거리는 거 나쁘다. 것도 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까. 예술가로서의 희열을 누렸다면 잃은 것에도 담담할 줄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아까웠다면 버리지 말았어야지..나 너무 가혹한가?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한 요인일 것이다(457)

비비언과 헤어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발레리와 결혼했을 때 엘리엇은 마음의 평화와 만족감을 얻었다. 이와 동시에 문학적 생산능력은 현저하게 퇴조했는데...그런 빛나는 업적을 계속 쌓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지도 않았고 감당할 수도 없었더라도 경계인의 자리를 줄곧 지켜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457)_하지만 누가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간주곡 2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은 1.모두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족이 높이 평가한 예술 장르에서 활약했다. 2.젊은 나이에 예술의 중심지로 이주했다. 3.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예술적 업적은 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들과 가까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4. 젊은 사람들이 그들 인생의 측근에서 활기를 되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5. 창조력의 원천을 잃지 않기 위해 일종의 협약을 맺었다(459) 

이들은 장인정신이 투철한 예술가였다. 매일같이 작업실에 들어가 거의 홀로, 완성까지 몇 달 혹은 몇 년씩이나 걸리는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463)

8. 마사 그레이엄_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이사도라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춤을 추었다. 그녀는 자연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몸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했따(467)

이사도라의 성공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르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468)

몇몇 다른 창조자들과 마찬가지고 어린 시절의 마사는 보모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470)

어린 그레이엄은 거짓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470)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딸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 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네 모습에 다 써있어. 주먹을 쥐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등이 뻣뻣해지고 발을 끌거나 눈을 내리 깔고 있잖니.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까지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471)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열대의 정취가 있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것은 여러모로 마사 가족의 심신을 편하게 했다(471)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472)★

그레이엄은 몸이 아주 작은 편이었고,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딱히 매력적이랄 수 없는 용모에 유연성도 별로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472)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밤 늦게까지 연습하기 일쑤였고,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도 지속적인 정진을 요구했다(473)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마스터하는 것은 거장들의 일반적ㅇ니 특징(473)

거의 서른 살이 된 시점에서 그녀는 마음속에 번지는 모든 의심을 접어두고 프로이트나 피카소에 비견할 만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475)

그레이엄은 자기만의 욕망과 가치를 나타내는 무용을 시도하고자 노력했으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목표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잘 참아내지 못했다(475)_이런 완벽주의가 '올인'투자밖에는 안되는 그들 기질의 특성이 아닐까?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그들은 기질적으로 그 분산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그림처럼 춤을 추겠다(475)

마치 육체가 본래의 습관을 깨고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478)

오늘날의 삶은 신경을 자극하고 날카롭게 후비는, 뒤죽박죽 엉켜 있는 삶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하다...내 무용에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480)

공연 당일까지 프로그램이 계속 바뀌었다. 완벽주의와 혼란이 나란히 존재했다. 물론 공연 자체는 대개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덕분에 막이 오르고 내리는 그 순간까지 전체 단원이 엄청난 긴장을 견뎌내야 했다(482)_이거..어쩔 수 없는 거였을까..꼭 막판까지 허덕허덕거리게 만드는 무쎠운 상사들도 이거였던 걸까? 그래도 아직은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어느정도는 자제할 줄 알아야한다는 쪽으로 기우는건 어쩔 수 없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그녀는 무용가로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는 셈이다...관객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484)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군요(485)

그녀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알리는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486)

루이스 호스트는 그레이엄의 후원자이자 공명판 역할을 했던 것인데, 그녀는 이런 호스트에게 자신의 꿈과 의혹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고 긴장되는 창조의 순간에 곁에 있는 그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었다(487) 
 
젊은 예술가한테는 담쟁이처럼 타고 넘어갈 벽이 필요한 법이오. 나를 그 벽으로 생각하시오(488)

창조력이 풍부한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복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489)

무용계의 대담한 선구자들과 더불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495)

변경 지역에 사는 개척자의 세계는 위험하지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세계임을 암시하는 듯 했다(496)★★★

초기작의 심각함과 황량함을 유머와 풍자, 그리고 밝은 특성이 보완했다(499)

자리를 복제하고 반복하는 지분한 특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면서 참신한 새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꺽이기는 했으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다(502)

그레이엄 주변에는 재능이 탁월한 동료들이 모여있었다(503)

그레이엄은 지나칙 엄격한 태도를 지녔지만, 무용단원들에게 헌신적인 편이었고 그녀를 떠날 생각을 하면 어쩐지 그녀를 버린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면이 있었다(504)

사회적 여건 속에서 그레이엄은 현대 무용의 지도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풍자와 조롱의 주된 과녁이 되었다(508)

겉으로 비치는 자기 모습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비판을 견뎌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조활동에 전념했다. 무용단의 매력적인 지도자였던 그녀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나 멀리 알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508)

그레이엄은 쉴 새 없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했다(509)_이건 스타일의 문제일까?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삶이 요구하는 긴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509)

그레이엄은 주변 상황을 자신이 직접 통제할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고집에 호킨스는 소외감을 느꼈다(509)

이후로 그녀 곁에 모인 사람들은 그녀(아니면 그녀의 명성)가 필요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레이엄은 이들에게 의존할 수도 없었고 이들을 터놓고 신뢰할 수도 없었다(510)

그레이엄은 70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 시기의 작품을 공연하는 무대에 올랐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다(513)

마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발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다른 무용가에게 전달하는 일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었다(515)

노트는 그레이엄이 자기 작품의 어떤 ‘공간’을 전개시킨 장소이다...그녀가 작품에 구현하고자 했던 생각과 감정을 환기하는 문헌 자료의 인용구절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다(516)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려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517)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517)

아주 추한 인물이었는데 어느 순간 차갑도록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518)

70년 동안 큰 변화없이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519)

나는 발레 자체와 싸운 적이 없다. 다만 고전 발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이런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520)

근육의 긴장은 낭떠러지에 서서 하늘을 보는 것 같고 이완은 땅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520)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했다(520)

학생들은 매일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10년 동안 훈련을 받은 후에 비로소 군무단을 벗어나 4인 그룹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521)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W.H. 오든..시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521)

“딱 좋아”란 말을 하는 법이 없었어요. 언제나 힘겨운 승리만이 있었죠. 아마 거기서 버텨낸 사람이면 어디가서도 성공할 겁니다...금욕적인 삶은 필수 덕목이나 마찬가지였다(521)

나는 무용을 삶에서 분리시킨 적이 없다..나는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느끼기를 원한다(522)_캬~

그녀의 영웅이던 세인트 데니스는 항상 글을 끄적거리며 시를 쓰곤 했고 여기서 데니스의 무용이 출현한 바 있는데, 그레이엄도 작품활동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일을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시적․신체적 제분소에 빻아지는 낟알이 되었다(523)

우리가 읽고 마음 깊이 흡수한 것이 보석처럼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겁니다(524)★★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524)

그레이엄의 무용 대부분은 영웅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힘과 열정을 겸비한 저명한 여성, 한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배우로서 그레이엄은 자신이 맡은 인물의 모든 장점과 단점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524)

다재다능한 배우가 그렇든이, 그레이엄도 <모든 영혼은 서커스이다>의 우스꽝스럽고 산만한 여성에서 <마음의 동굴>의 사악하고 악독한 메디아에 이르기까지 자기 내부에서 다양한 성격적 특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525)_배우가 되고 싶다. 나도..엄청..엄~~~~청!!

마사는 자신의 삶에서 모든 감정적 애착, 모든 집착, 모든 위안 그리고 여가 시간까지 배제시키려고 했다. 여기엔 가족과 아이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그녀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바쳤다. 일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525)

내가 오만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반드시 숭배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525)

그레이엄은 자신이 만든 드라마에서 살아야 했다. 그 드라마의 일부분으로 자신들을 제공한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525)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그레이엄 역시 내가 다른 창조자들에 관해 설명한 것과 같은 종류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525)_그녀는 기꺼이 그랬던 것 같다. 여한이 있다한다면 한번 더 태어나면 될 것이다.

세속적인 즐거움과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을 모두 무용의 제단에 바쳐야 했다(526)

당신이 무용단에 소속해 있으면, 마사는 당신을 위해 죽는 시늉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무용단을 떠나는 순간 당신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526)

후기작품은 대체로 두 범주 : ①영혼이 포박당한 영웅적인 인물을 진중하게 다른 연극적인 작품 ②그레이엄 자신의 초기 작품을 희화하는 작품까지 포함하는 다소 가벼운 시적이고 공상적인 작품(528)

분노와 상심을 머금은 채 그레이엄은 이 기막힌 심정을 반전시킬 만한 일을 모조리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531)

사망할 당시에도 재정 적자는 상당히 심각했고, 그레이엄 무용단의 운명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채로 남게 되었다(534)

이국적인 용모를 오히려 매력의 중심으로 삼아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537)

세익스피어의 여동생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동생이 세익스피어 못지 않은 재능을 타고 났어도 남성 우월적인 주변상황의 벽에 부딪쳐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537)

자신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갈 줄 알았다(538)★

가정과 사생활면에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런 가혹한 희생은 특히 선구적인 여성들에게 더욱 심하게 요구되었다(539)

비평가 조셉 캠벨이 자아의 전부를 인생에 바치는 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레이엄은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만약 그런 길을 택했다면 나는 예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539)_결국 ‘왜 사느냐?’에 대한 판단의 문제인 듯 하다.
 

9. 마하트마 간디_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544)★_모든 인간이 일정 레벨이상의 마음성장을 이루고 난 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살이에 완벽이란 것이 어디에 있겠냐며..체념하려는 찰라에 만난 글귀..그래도 더 성장한 사람과 덜 그러한 사람간의 위계가 상대적인 비극의 느낌으로 남게 되는 걸까?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간디는 엄청난 독서와 풍부한 산 체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549)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550)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고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했다(555)★_본 받을 것은 본 받자!!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은 공적으로 봉사하는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 되었다(557)_그러게 빨리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의 삶을 선택한다면 가족을 이루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성직자처럼

간디는 스스로 도덕적인 삶을 모범적으로 실천해서 도덕적 권위를 얻지 않으면, 자신이 인도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윤리적인 실천가로 활동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557)

대중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실행하면서 아주 공개적인 방식으로 파우스트적 계약을 실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558)_일종의 유명세겠지..

스트라빈스키의 준비된 귀에‘<봄의 제전>의 화음’이 들려왔듯이 그에게 불쑥 단식을 결정하겠다는 마음이 찾아온 것이다(568)_나도 단식해보고 싶다. 어떤 느낌일 것인가?

구속 수감을 일종의 유예로 여겼다. 그는 과거의 행적을 반추하면서 폭넓은 독서와 사색에 전념할 수 있었고..(572)_폭넓은 독서와 사색. 이것이 이번 1년동안 내게 주어진 제일의 과제다!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575)_내가 추구하는 모델!

<진리 실험>에서 정확하고 거짓 없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과 동기를 성찰했다(582)

간디의 성찰방법 : 모든 사안에 대해 그는 도덕 대수학의 정리를 만들어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일탈 행위를 할 때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583)

극기를 통해 삶의 자양분을 얻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아무런 재산도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은 참으로 여유있고 편안한 삶이다...나는 가난한 탁발 수도승이다...기도가 내 삶을 구원했다.”(584)_이해가 갈듯 말듯.

간디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584)

혼란스런 상황이 닥치는 와중에도 그는 매일 해야 할 일, 편지와 기사를 쓰고 모임에 참석하고 일지를 기록하면서 소위 ‘戰場’의 비서와 부관과 계속 접촉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585)

간디와 가족들의 관계, 특히 자실들과의 관계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589)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특장이 있는 사람이 이처럼 인간 관계가 불안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590)

가장 친밀한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어쩌면 대중을 상대하는 일에 위대한 재능을 가진 자의 어쩔 수 없는 부수물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591)_과연 그럴까? 동양인이었던 간디에게 지나치게 신비감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이다.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탁월한 호소력을 발휘했던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는 그처럼 어렵게 지냈고, 나체의 젊은 여자를 곁에 두고 잠을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사례에서 보듯 자신의 강압적인 행태와 이기적인 동기에 그처럼 둔감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롭다(606)_미쳤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미친 노인네..

그가 선택한 분야(도덕 분야)에서 조숙함을 보였고 그 분야의 거장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할 줄 알았다. 신중하게 경계인의 위치를 견지한다거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도 자기만의 시가을 갖는 데도 소홀함이 없었다는 점, 근본적으로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점, 정치적인 효과를 위해 사적인 친밀성을 희생햇다는 점, 사상이나 인품에 아이같은 요소가 남아 있다는 점도 모두 창조의 거장다운 표지였다(608)

어떤 인종이나 민족도 다른 인종이나 민족에 비해 우월하지 못하며,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고, 타협은 두 정파를 모두 강화한다(609)

간주곡 3

그레이엄과 간디는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611)

두 사람 모두 진을 빼는 일을 하다보니까 주기적으로 투쟁과 공연 무대에서 물러나 자신의 행적을 성찰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613)

간디마이 어떤 집단에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614)

3. ‘내가 저자라면’

책에 직접 반응한 나의 생각

나는 내가 읽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19)_우리와 비슷한 작업을 했다는 흔적.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티가 나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정리한 도표와 간주곡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이한 각주표기법도 좋았다. 무엇보다 이 작업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케 해준 책이었다. 그런데 그가 읽고 싶어하는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랑은 좀 다른 것 같기는 하다. ^^;

이 책에서 나는 읽기 쉽게 나의 결론을 설명할 생각이다. 물론 이 방면에 흥미있는 독자들이 나의 방법과 자료, 그리고 결론을 평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정보도 충분히 제시할 것이다(72)_ 위의 고민에서 비롯된 감탄할 만한 배려다. 그런데 이 경우엔 오히려 ‘長考 끝의 惡手’라는 생각이다. 고마운 친절로 오히려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분량인데..여기에 사족을 더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 않았을까? 두괄식으로 앞에 요약을 넣었다면 에필로그는 과감히 생략해도 좋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한 생각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이 책을 굳이 가드너가 쓸 필요가 있었을까?

이책을 쓰는 일은 애정이 깃든 작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흥미를 느낀 사람들과 주제를 다루면서, 내가 사랑하는 예술 작품과 시간을 보내고 오랫동안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온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18)

가드너 자신에게는 의미있는 작업이었을지 모르겠다. 참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보고 선택한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너무 혼자 즐기진 말았어야 할 듯하다. 그가 1장에서 제기한 연구문제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심정으로 각 인물들의 ‘전기’에 접근했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각 인물들을 소개하는 부분은 각 분야에 대한 짧지만 훌륭한 안내서가 될 만했으며, 이를 소화해낸 가드너의 박식함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었지만 그게 뭔가? 그들의 ‘열정과 기질’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기대를 갖고 책을 대했던 나로서는 참 어이없는 성과일 뿐이었다. 우아한 코스요리 먹으러 들어갔다 정신없는 뷔페요리를 먹고 나온 기분이랄까?

물론 코스요리든 뷔페요리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같으니 결국은 먹는 사람의 역량이 문제라고 말한다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7명이 보여준 서로 다른 재능의 스펙트럼과 분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왠지 더 친숙하고 편하게 다가온 인물과 분야가 있었으니, 그 부분이야말로 내가 가진 재능이고 내가 정복해야할 분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결국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스타일로 챙겨먹는 것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리고..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그 ‘파우스트적 거래’ 이 부분 아무래도 좀 너무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었나 싶다. 프로이트와 간디가 선택한 금욕적인 생활이야 결혼해서 (나로서는 넘친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아이까지 낳은 다음에야 시작한 것으로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각 인물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인간적 단점들은 글쎄 그것들이 반드시 창조력의 대가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이 창조적 모델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치루지 않아도 좋았을 그런 영역이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일’에 훨씬 많은 가중치를 두었기에 ‘원만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영역에 쏟을 만한 에너지가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 오히려 문제는 주위사람들이 그들의 이 치명적인 결점들을 ‘창조적 공헌’의 대가로 너무나 많이 참아 주었다는 것 아닐까? 다시말해 ‘창조적 대가들은 다 그런 것이니 수혜자인 우리가 참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빼앗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이 결함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은 천성적인 결핍이었다면 이들은 한낮 괴팍한 늙은이라는 평판으로 인생을 마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내내 ‘창조력’의 대가로 ‘파우스트적 거래’를 해야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다. 성욕이든 식욕이든 나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 정도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가드너는 후속작에서 이에 대한 보완을 시도하는 듯 보이지만, 이 한권만으로 보면 참으로 위험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대학시절 작가의 삶에 대한 동경과 포기를 동시에 안겨준 인물이 이외수였다. 작품에 나타나는 그의 정신세계에 빠져들면서도 현실에서 보여지는 그의 奇行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예술가에게 조화로운 삶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던 나는 아쉬움을 접고 ‘세속인’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열정과 기질>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온 나이기에 답답함은 더했다. 다시한번 포기해야한단 말인가?

다행히 나는 15년만큼 노련해졌다. 가드너가 아무리 큰 존재일지라도 잘 못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의 완결성을 위해 성급하게 내린 결론으로 야심찬 예술가 지망생들이 꿈을 접게 될까봐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IP *.53.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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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5.24 11:45:38 *.219.109.113
이제 미옥이가 안정이 되는 것이 느껴진다.

꼼꼼히 분석한 느낌. 2차 레이스 때 자기의 느낌의 강도에 따라 별 땡땡을 치며

알록달록 북리뷰했던 그 느낌이 그대로다.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05.24 14:45:12 *.53.82.120
역시 투입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솔직히 이번에야 2차레이스때처럼 꼼꼼히 책을 읽을 수 있었네요.  ^^;;

점점 안정되어
2차 레이스때의 희열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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