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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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Greating Minds> / 하워드 가드너 / 북스넛
* 저자에 대하여 *
하워드 가드너는 나치 정권을 피해 이주한 이민자의 아들로 1943년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런던 경영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고 돌아온 1966년, 가드너는 하버드 대학 발달 심리학을 전공하고 197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나이가 28세였다. 그는 스승인 에릭 에릭슨의 영향을 받아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 등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인 ‘인지(認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교과 보스턴 대학교에서 후기박사연수를 받으면서 그는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과 두뇌기능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의 관심은 영재아동과 두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로 쏠리게 된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그는 인간의 지능과 창의력 발달을 연구하는 장기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제로’의 연구원이 되어 유아발달연구를 주도하게 되는데, 이 연구를 토대로 발달 심리학, 영재특성, 그리고 두뇌손상과 관련된 많은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기간에 쓰인 대표적인 책 중 하나가 <부서진 마음(1974)>인데, 이 책을 보면 가드너의 관심이 주로 어디에 쏠려 있는지 충분지 짐작할 수 있다.
1983년 즉, 박사학위를 받은 지 12년 만에 그는 다중지능에 관한 최초의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의 틀(1983)>이다. 그 후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지켜보면서 10년 뒤, 그는 다중이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1993년에 <마음의 틀(1993)> 개정판을 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의 틀>이 나오던 해에 그는 “다중지능의 실제”를 다룬 <다중지능(1993)>을 출간하게 되는데, <마음의 틀>이 순수하게 다중지능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책이라면, 이 책은 다중지능의 응용 , 특히 교육적 응용을 염두에 둔 책이다. 그리고 2006년 가드너는 “다중이론의 실제”를 다룬 1993년 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기에 이른다. 13년만의 수정보완인 셈이다. 그는 책의 제목도 <다중지능(2006)>으로 바꾸고, 25년에 걸친 가드너의 다중지능 연구를 결산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저작으로는 <미래 마인드 Find Minds For The Future(2008)>가 있다.
현재 가드너는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인지와 교육’교수로 재직 중이며,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조교수를 겸하고 있다. 또 하버드 대학 ‘프로젝트 제로’의 공동 책임자이기도 하다.
<열정과 기질>에서 제시한 10년 주기론이 가드너 자신의 삶에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중지능이라는 연구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대해 10년을 주기로 이론을 정교하고 다듬고 수정하면서 체계를 세워가고 정립하였다. 인간의 인지적 발달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인생의 대부분을 연구를 하는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연구 성과를 학술적 발표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며, 학위논문 수준의 전문적인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설명하여 책을 출간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책들은 심리학, 교육학 등의 전공인들 뿐만 아니라, 인간발달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쯤 읽어보았을 법하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다중지능이론을 바탕으로 인간발달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있으며. 최근의 저작인 <미래마인드>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 훈련된 마음, 종합하는 마음, 창조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윤리적인 마음이 필요하고 계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중지능이론에서 시작한 그의 인간발달에 대한 관심은 사람의 마음을 계발하는 것에 까지 연결되어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인간발달 연구에 대한 도전과 모험정신은 후학으로 마땅히 본받을 만하다.
* 내 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
p38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p39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행하는 역할과,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할 것이다.
p40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p43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장들 역시 다양한 문화에 흠뻑 젖는 것이 필요하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파리나 취리히 같은 국제적인 도시에 이끌린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p45 반면 정치와 종교, 교육, 상업, 임상 분야 등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창조성을 논하는 일은 왠지 가당치 않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보다 예술가와 과학자가 창조성 논의에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지엽적이다. 다른 이유가 좀더 실질적인데, 정치를 비롯한 인간 관계의 영역에서는 창조적인 도약이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따라서 어떤 특정한 창조적인 도약을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활약한 특정한 개인과 동일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p48 물론 이들 작자는 지능의 전 영역을 골고루 지녔고,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능을 두루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우수한 지능이 서로 달랐고, 각자의 창조적인 도약 역시 특정 지능의 우수함을 요구하는 해당 분야의 상징과 이미지 및 조작방식을 정교하게 활용한 성과물이다.
p49 나는 이와 같은 시대 정신, 즉 특정한 개인들이 우연히 그것을 일깨우고 결과적으로 (어쩌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빗나간 총탄이라든가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p5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유럽과 동유럽에 만연한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제도의 퇴조와 공통 지식의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는 불온하다 싶을 정도로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모한 창조적 열정이었다.
p76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p79 어느 분야에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p81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한층 더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가 임기응변식의 해결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직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p106 프로이트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글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한 사람의 유년 시절이 그의 인생 행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p111 프로이트가 수수께끼나 퍼즐과 같은 곤란한 문제를 푸는 데 몰두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그는 분명 역설적인 문제에 골몰하는 것을 좋아했고, 해답이 풀릴 때까지 곰곰히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p132 나 같은 사람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마침내 한 가지를 찾아냈다……심리학이다. 항상 나를 유혹하는 목표였는데 신경증이라는 주제를 만난 지금은 한층 더 마음이 끌린다.
p137 ”내가 내린 결론에 망설임과 의심이 생길 때마다, 아무 뜻도 없고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꿈을 분석해서 꿈 속에서도 논리적이고 뜻이 분명한 심리 과정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밝혀 낸다는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신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p144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 형성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p145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 프로이트
p148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p150 프로이트의 사상은 그가 살았던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또한 그런 환경에서 유기적으로 움터 나왔던 것이다.
p159 나이가 들면 새로 만난 사람과 감정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기가 어려운 법이고, 동년배 친구들을 잃게 되는 일이 많아지므로 이런 일에 무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p161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p164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생각했고 정신분석학은 과학으로 간주했다.
p165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선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p169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유가 아니라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나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과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 들 수 있었다.
p171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알게 된다.
p173 어린 아이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충동적인 반발이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191 아인슈타인은 객관적 사물 간의 관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팔았으며, ‘나’와 ‘우리’의 세계에서 ‘그것(사물)’의 세계로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p193 이론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았으며,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아인슈타인은 회고 한다. 곧이어 그는 향수 어린 심정으로 이렇게도 말한다. “현대의 여러 조직 중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처럼 고독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등대나 등대선에서 근무하는 것이 그런 직업이 아닌가 싶다.”
p194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이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는 수십 년 동안 마음 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p194-195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p197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200 프로이트는 자기 이론의 진가를 올바로 평가받기 전에 먼저 하나의 분야와 장(場p을 스스로 창조해야 했다.
p202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김나지움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고, 처음에는 취리히 공대 입학에 실패했으며, 영향력 있는 스승이나 후원자도 없었다. 교수직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p209 ”1900년이 지나고 얼마 후에 …..나는 기지의 사실을 토대로 추론을 통해 참된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더 오랫동안 더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오직 보편적인 공식(원리)를 발견했을 때만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p210 이런 대답함은 나이가 들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인슈타인은 기꺼이 미지의 세계로 발은 내딛고자 했는데, 어린 아이의 중요한 정신적 성향이랄 수 있는 이런 특징을 그는 꽤 오랫동안 보유했다.
p.229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전문 지식을 익힌 아인슈타인은 아직 젊은 나이에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쇄신했다. 많은 청조적인 인물들이 처음의 근본적인 도약이 함의하는 내용을 탐구하는 다음 10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 결정적인 도약을 감행했다.
p230 아인슈타인의 외모와 몸가짐, 그리고 마음 속으로 ‘어른’의 기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에는 아이다운 천진성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낙천적인 아이(아이들이란 자기 행동을 규율하려는 사회의 관습이나 기성 세대의 잔소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다)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p231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그는 홀로였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과, 모종이 장대한 설게도(비록 인간은 일시적으로, 아니 영원히 이 설계도에 접근할 수 없다고 증명된다 하더라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 덕분 이었는지도 모른다.
p233 젊음과 원숙함이 훌륭하게 결합한 아인슈타인의 지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선 그는 세상의 흥미로운 현상에 대한 관심을 평생 잃지 않았다. 호프만은 이렇게 쓴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나 그의 마음 속에는 과학이 있었다. 그는 차를 저으면서 차 찌꺼기가 컵 바닥의 가장자기가 아니라 가운데로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전혀 뜻밖의 사실, 즉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과 연결시켜서 설명했다. 모래 위를 걸울 때도 그는 우리가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즉, 마른 모래나 물에 잠긴 모래는 그렇지 않은데 젖은 모래는 딱딱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과학적 설명을 찾아냈다.
p237 나는 다른 분야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똑같이 발현되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에 발달한 이론 물리학은 그의 재능(그리고 한계)을 지닌 사람이 천착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였다. 하지만 그가 음악가나 랍비 혹은 기술자가 되었어요, 항상 자신이 생각한 문제에 끈질기게 관심을 두는 모습과 삶의 다양한 영역들 간의 관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을 것이다.
p256 신기에 가까운 예술적 재능과 빈약한 학습 능력 간의 불일치(내 용어로는 능력간의 비동시성)는 분명 어린 피카소를 괴롭히는 문제였을 것이다.
p259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순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감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p260 미신적인 성향이 강했던 피카소는 전문 분야에서나 개인적인 삶에서나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느꼈고, 이런 만용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응분의 죄책감도 느꼈다.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p271 피카소는 긴 생애 내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대개의 경우는 죽음을 아예 부정하려고 했다. 죽은 사람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질병과 노화, 죽음을 야기하는 사람이나 요인을 두려워했다.
p287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p300 적어도 피카소의 경우는 얼마 동안이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사고방식을 일신했던 경험이 중요했다. 실제로 피카소는 여러 차례 이런 가벼운 여행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낙천성과 삶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도시 환경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p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것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고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p334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p335 스트라빈스키가 은행가와 브로커,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 등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분열된 인격’을 입증하는 증거로 충분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상의 문제에 그토록 세세하게 관심을 쏟고 자기 논리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어지 됐든 그가 위대한 음악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 스트라빈스키의 정신은 천재 음악가와 대금업자로 거의 정확히 양분된 것 같다.
p337 잘하든 못하든, 열의가 있든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든,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일에 만만찮은 정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p342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p348 스트라빈스키는 배움에는 열심이어서 무엇이든 빨리 익혔고 활발하게 반응했다. 그는 융통성 있는 성격을 지닌데다 호기심도 남달랐고 다방면에 재주가 있어서, 무대 장치가나 무용수, 안무가, 심지어는 사업상의 일을 책임지는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어울려 일할 수 있었다.
p355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p366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이었다. 실험적인 리듬은 그 자체로 청중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면서 봄의 새 기운을 넌지시 알리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와 신비롭고 엄격한 현자와 불행한 처녀가 한꺼번에 뿜어내는 긴장된 분위기가 서려있었다.
p383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랬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 시킬 수 있었다.
p.387 스트라빈스키의 삶은 대중적인 이목과 논란의 중심에 선 저명한 음악가로서의 삶과 지성적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장인의 삶이 균형을 이루었다.
p388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p390 나의 행동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워진다.
p391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내재적인 논리에 따라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스트라빈스키는 음악과 음악 외적인 사건 사이에 별다른 연관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한 것 같다.
p399 기력이 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일 수 없겠지만, 세기의 저장에게는 더욱 더 쓰라린 일일 될 것이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는 우리 시대의 거장 누구 못지않게 늙어가는 현실에 잘 대처했고, 부인과 ‘양자’ 크래프트와 함께 개인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다른 창조자들과 부대끼며 치러야 하는 갈등과 분쟁을 스스로 단념할 줄도 알았다. 결국 그는 마지막 안식을 찾아 땅에 묻혔다. 그가 사랑했던 도시 베네치아에, 반세기 전에는 언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단체를 세우고 예술적 촉매 역할을 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와 화해를 원한다는 듯이 디아길레프 옆에 묻혔다.
p404 커다란 강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교감할 수 없는 뭔가를 품고 살아간다.
p407 엘리엇은 산문적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예술을 일종의 종교로 간주하면서 시적 상징이 존재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는 영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나아가서 시란 외부와는 절연된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시몬스의 문학관에 열광했다.
p408 빈민가의 세계와 하버드 신사들의 세계, 가난한 자의 고통과 안락한 사교계의 위선이 마구 충동하는 모습은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의 영혼을 깊이 흔들었다.
p410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p413 대도시에서 사람은 얼마나 더 자의식적인가라고 그는 공언했다. 이 무렵 그는 경계인의 삶에 만족했고, 작가로서의 삶에 운명을 걸고 이국 땅에서 성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p.431 엘리엇은 한때는 통합된 전체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점차 조각나고 해체되어 무력화된 유럽 문명의 묵시론적 종말, 유럽 문명에 만연되어 있는 병적인 불안감을 시라는 언어 예술에 담아냈다
p444 시인은 정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p457 이렇듯 엘리엇은 앞에서 다룬 현대의 거장들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을 집약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 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게다가 엘리엇은 저절로 경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생산적인 비동시성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었다.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p457 엘리엇의 뛰어난 작품은 경계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출현했거니와, 그런 빛나는 업적을 계속 쌓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지도 않았고 감당할 수도 없었더라고 경계인의 자리를 줄곧 지켰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p458 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예술업적은 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들과 가까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p461 특정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자신들의 변화하는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는 창조물을 축적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것이다.
p463 어느 경우든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는 창조자의 삶에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었다.
p.464 특정 시기에 그들의 공개적인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따라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p470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 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네 모습에 다 써있어. 주먹을 쥐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들이 뻣뻣해지고 발을 끌거나 눈을 내리깔고 있잖니.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p472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
p474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p480 모든 것을 잃을 걸 각오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각자가 우리의 모든 전통을 바다에 내던진 지 오래였다.
p481 신들을 모방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신들의 춤을 추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람과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힘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춤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p482 그레이엄은 어떤 춤을 어떻게 출지에 관해서 미리 정하는 법이 없었다. 무대 배경이나 의상을 언제까지 준비 완료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 당일까지 프로그램이 계속 바뀌었다. 완벽주의와 혼란이 나란히 존재했다. 물론 공영 자체는 대개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덕분에 막이 오르고 내리는 그 순간까지 전체 단원이 엄청난 긴장을 견뎌야 했다.
p489 그레이엄은 창조력이 풍부한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든 자기 모방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p502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꺾이기는 했어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것이 없었다.
p508그레이엄은 여성 혹은 미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옹호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겉으로 비치는 자기 모습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비판을 견뎌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조 활동에 전념했다.
p509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삶이 요구하는 긴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517p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p519 나는 발레 자체와 싸운 적이 없다. 다만 고전 발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이런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p524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 그리고 작품 활동은 필연입니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p525 마사는 자신의 삶에서 모든 감정적 애착, 모든 집착, 모든 위안 그리고 여가 시간까지 배제시키려고 했다. 여기엔 가족과 아이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그녀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바쳤다. 일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p526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p537 마사 그레이엄은 이런 단점들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국적인 용모를 오히려 매력의 중심으로 삼아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엄격한 청교도 유산을 때로는 모방하고 때로는 그 토대를 무너뜨리면서 무용의 민간한 주제로 활용했다.
p538 현재의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새로운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도전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창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갈 줄 알았다.
p538 몸도 젊었고 마음은 더욱 젊었던 그레이엄은 피카소만큼이나 오랫동안 창조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다.
p539 비평가 조셉캠벨이 자아의 전부를 인생에 바치는 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레이엄은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만약 그런 길을 택했다면 나는 예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p544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p547 간디가 영국에서 공부하기로 한 것은 금기시된 길을 가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549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간디는 엄청난 독서와 풍부한 간 체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p556 힌두교 교리에서는 가장이 어느 시점이 되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종교적 고행자로서 은둔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p558 그는 오직 작은 공동체에서만 실행이 가능한 단순한 삶,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금욕적인 삶을 요청했다.
p560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안목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p563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565p 그는 신념의 세기를 강조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 자기의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p566 나의 믿음이 시험에 든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불쑥 일어나 그들에게 선언했다. 그처럼 엄숙하게 맹세한 약속을 그들이 조금이라도 어기는 기색이 있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며, 35퍼센트의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그들 모두가 나가 떨어질 때까지 어떤 음식도 손대지 않겠노라고, 거의 반응이 없었던 지난 집회와는 달리 이번엔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모두가 깨어났다.
p568 창조자는 새로운 언어로 작업하는 만큼, 이를 이해하고 창조자가 표현하려는 내용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음을 알아주는 지지자가 꼭 필요한 법이다.
p573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p574 인간의 권리 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비교적 은둔적인 예술 혁명가들은 주변의 동시대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한 반면, 다른 사람들과 밀접히 연관된 사안에 크게 공헌한 간디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p575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p576 종교는 정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러나 아무런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p606 창조의 거장을 다루는 내 관점으로 보아도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탁월한 호소력을 발휘했던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는 어렵게 지냈고, 이 마지막 사례에서 보듯 자신의 강압적인 행태와 이기적인 동기에 그처럼 둔감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롭다.
p607 네루는 간디가 “마치 정신분석학의 전문가가 환자의 과거를 깊이 조사해서 그의 콤플렉스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환자에게 알려주어서 병증을 제거한 것처럼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p610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트마 간디
p611 간디와 그레이엄은 아주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 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외양,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창조 활동의 핵심이다.
실존의 순간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p614 이들 창조자들 가운데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한 분야를 쇄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간디의 업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p623-624 E.C.는 다소간의 속도 차이는 있지만 관심이 가는 문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해당 분야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 순간이 바로 가장 긴장괸 순간이다.
p624 E.C.는 혁신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흐름(몰입의 경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특별한 계약, 즉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으려 한다.
p627 사실 이들 일곱 명 중에 오직 피카소만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동, 즉 어린 시절부터 거장 수준의 솜씨를 발휘하는 인물을 뜻하는 신동에 가깝다. 다른 창조자들은 일단 어느 분야에 전념한 후로 무척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인물들이었다.
p629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에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 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p633 각각의 인물들은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유모의 보살핌 말고는 조건 없이 따뜻하고 친밀한 애정을 충분히 받지는 못했다.
p635 우리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모두 인구통계상 경계인이었음은 물론 이려니와 그러한 경계인이라는 위치를 창조활동의 지렛대로 삼았다.
p637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은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p640 이처럼 창조적인 인물은 정력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지만, 백과사전에 등재된 생산물의 숫자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p.647 일단 선택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정진을 하다 보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다른 인물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각각의 창조자들은 대체로 한 명이상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p.654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p656 하지만 비동시성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낀 자는 다른 많은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주류라는 안락한 지위를 찾아 돌진하는 가운데서도 대개는 계속해서 비동시성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그에 못지않은 진실이다.
p662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는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매우 긴장이 높은 시기일 수밖에 없다.
p663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미신을 믿거나 비합리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p668걸출한 인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각되게 마련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p677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p678 현대 예술은 끊임없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전통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의 말대로 '새로움의 전통'을 창조하려는 단호한 노력이다.
p680 간디는 적어도 하나의 의미에서는 현대적인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는 전통적인 힘의 정치를 거부하고 정치적 대결을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즉 벌거벗은 채로 서로를 마주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환원했다. 하나의 분야를 그것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환원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현대적인 기풍의 뚜렷한 징후이다.
p682 내 생각에는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에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속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p685 아동의 세계와 거장의 세계는 의미 있는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나는 현대의 업적에 독특한 점이 무엇인지 포착하려고 했다.
p693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르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p694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와,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p694-695 개인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방침이 교육계나 일반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 내가 저자라면 *
<열정과 기질>은 창조성이 교육의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 가장 솔깃한 주제의 책이다. 20세기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풍요롭게 한 창조적 천재를 다룬 이론서이자 실용서이다.
가드너가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을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 복잡한 주제를 쉽게 다루기 위해 중간 중간에 서술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으며,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곳에 세 개의 짤막한 해설을 삽입했다.’라고 이미 밝힌 것처럼, 주제는 학술 논문에서 다룰 법한 것을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글쓰기를 해주고 있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반복적으로 가드너가 창조성을 지닌 인물들에게서 파악된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립한 이론적 체계들을 학습할 수 있다. 그러기에 어려운 주제가 더욱 친근하게 풀어서 설명을 듣는 느낌을 받는다. 가드너가 생각한 창조성 연구의 주요 요소인 1. 구성적 주제, 2. 구성적 틀, 3. 경험적 조사 문제, 4. 새로 발견한 주제 의 항목을 통해 상세하게 창조성을 발휘한 인물들은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보통 인물에 대한 분석의 글은 지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드너의 분석은 그들이 어떻게 창조성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는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여러 개인적인 사건과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분야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한 인물의 평전을 보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가드너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인간발달과 관계된 것이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솔깃하게 여길 수 있으나, 그의 책들이 더욱 관심을 받는 것은 그의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 능력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래 마인드>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종이에 글쓰기를 좋아했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낸 글을 써왔으며, 그 과정에서 글쓰기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비판하고, 가르치는 기술들을 연마하게 되었다. 나는 또한 나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기술완성을 위한 ’훈련‘이라는 의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를 보면 그의 글쓰기는 창조성 훈련의 과정이라고 보여 진다. 일단 어린시절 흥미와 즐거움을 느낀 대상에 대한 끊임없이 연마하고 그속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이론들이 공허한 이론의 제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이 몸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에 가깝도록 스스로가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어린 시절에 대한 의미 부여이다.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이처럼 세상을 보는 힘을 통해 직관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은 어른답게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있다. 그런 시각으로 교육을 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아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여전히 교육의 장에서는 어른답지 못한 아이들은 아직 교육을 받지 못한 덜된 상태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드너의 이론을 참고하자면 아이들의 창조성을 발휘시키기 위해서는 어른이 되는 학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의 호기심어린 마음과 도전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드너가 창조성을 발휘한 7인을 꼽은 인물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도 있었지만 20세기의 격변기 속에서 사회와 문화가 그들을 천재로 만드는데 한몫했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가드너 연구한 인물들이 살았던 격변기의 그때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21세기가 도래하였고,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하루하루, 아니 1분 1초 마다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는 시대이다. 이 사회와 문화속에서 살아하는 우리,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창조성이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드너가 강조하는 창조성의 조건들이 성공의 조건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 가드너의 연구들을 보면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들을 연구한 것에 이어 창조성을 바탕으로 리더쉽연구를 하고 있다. 창조성을 발휘하는 훈련을 통해 리더쉽을 발휘하여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한 논리는 자칫 창조성을 학습해야한다는 또 다른 획일화 교육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부여받은 재능의 최대치를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창조성의 발휘가 아닐까.
<목차>
들어가는 글
제 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간주곡1
5. 파블로 피카소
6. 이고르 스프라빈스키
7. T.S. 엘리엇
간주곡2
8. 마사 그레이엄
9. 마하트마 간디
간주곡3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에필로그 - 현대와 현대 이후
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