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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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 경제의 기본 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재산은 엄존한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또는 입장료, 가입비, 회비를 받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하는 것이다. 놀이의 내용과 접속권으 ㄹ놓고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은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전문 지식과 재주를 가진 날고기는 전문 제작사와 독립 하청업체가 하나의 팀으로 묶인다. 이들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만 한시적으로 존속하는 네트워크의 일원이 된다. 대본, 배역 선정, 세트 디자인, 촬영, 분장, 음향, 편집, 필름 현상은 모두 독립된 제작 회사와 한시적으로 제휴하는 독립 기업들에 의해 처리된다. 제작사는 수많은 전문 기업들의 지식을 종합하여 특정한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정확하게 끌어 모은다. 한편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전문기업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면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한다. 가령 특수 효과 회사는 하루 동안에도 영화의 특수 촬영, TV광고, 라이브 무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여 여러 네트워크에 발을 걸쳐 놓는다. 필요할 때만 인력을 제공하거나 특정한 과제를 완성해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음으로써 인건비 부담도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연예 관련 기업의 수는 3배로 늘었다. 그런데 직원의 수는 10명을 넘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1960년에는 독립 제작사에서 미국 전체 영화의 28퍼센트를 만들었지만 불과 20년 뒤에는 그 비율이 58퍼센트로 늘었다. 43 반면 메이저 영화사들은 전체 영화의 겨우 31퍼센트만 만들고 있다.
물리적 가치만이 재산으로 인정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시대에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었다. 물질적 재산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여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부풀리는 것은 재산을 가진 모든 인간의 갈망이었다. 마돈나의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물질이 판을 치는 세계>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시장의 시대를 지탱한 주춧돌의 하나였던 소규모 자영업자가 건재하며 단지 체인 가맹점으로 새롭게 변신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역동적 변화를 크게 오독한 결과이다. 체인 사업은 체인점이 <내 사업을 가질 수 있는>좋은 기회라고 선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고 있지만, 미국 경영 협회는 소유와 접속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잰 커크햄과 티모시 맥가우언은 미국 경영 협회가 발간한 [체인 산업 핸드북]이라는 책에서 <일반인의 오해와는 달리 본사는 체인점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런 오해는 단순희 의미론의 문제가 아니라고 커크햄과 맥가우언은 지적한다. 체인은 기업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업 개념, 운영 방식, 브랜드를 일정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허용하고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갱신하기로 한 약속이다. 체인 가맹점은 사업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사업체에 단기간 접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데 불과하다. 이 관계는 판매자 - 구매자가 아니라 공급자 -사용자의 관계이다.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이다. 93
제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점점 많은 운전자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임대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구입자의 평균 보유 기간은 3년 6개월, 반면 임대 이용자는 평균 2,3 년에 한번꼴로 차를 바꾼다. 자동차 대리점은 고객의 임대가 언제 만료되는지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적기에 새로운 임대를 위한 교섭에 들어갈 수 있다.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제품이 수명을 다하는 동안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르 제공하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기업은 플랫폼을 싸게 공급한다. 129
너무 과격한 발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먼저 구입자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고객의 관심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공급자는 고객에게 제품을 거저 제공해야 다가설 수 있다. 그렇지만 물건을 안 판다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는가? 고객의 사업을 공동을 경영하여 실적과 수익을 개선시키고 거기서 남는 차익을 공유하는 길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급자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고객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식견을 빌려줄 뿐이다. 고객은 사실상 클라이언트, 파트너가 된다. 137
관심사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결국 고객이 모일 수 있는 행사나 집회,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홀리데이 인의 프라이어리티 클럽은 투숙 횟수가 가장 많은 5백 명에서 1천명 사이의 최우수 고객을 1년에 두 번 리조트로 초대하여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면서 호텔 경영 전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이 클럽 회원은 전문 스포츠 클리닉, 명사 강연, 특별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회원들은 자기들끼리는 물론이요, 홀리데이 인 경영진과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홀리데이 인의 중요 고객 마케팅 담당 상무인 켄 프라이스는, 토론에 참여하여<아이디어와 느낌을 회사에서 나누어달라고> 회원에게 부탁한다고 강조한다. 380만 명에 이르는 회원 가운데 일부는 이 회사의 수많은 지역 자문회 위원으로 영입된다. 프라이어리티 클럽 회원은 아주 열성적이 고객으로 입증되었다. 그들은 1년에 평균 60일을 홀리데이 인에서 투숙한다. 163
오늘날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살 것이 없다>는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말은 바로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선진국에서, 특히 자본주의 생활 양식이 제공하는 풍성한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전세계 인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ㅇ에게 상품의 소비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한집에 차가 두세 대 있고 텔레비젼만 대여섯 대씩 있고 온갖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가전 제품이 완비되어 있을 때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새삼스러운 욕구가 생겨나기는 어렵ㄷ.
미국인은 열흘에 한번꼴로 몰을 찾고 평균 1시간 15분 동안 그곳에 머문다. 이렇게 뻔질나게 몰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서이다. <몰은 입체 텔레비젼과도 같다>고 코윈스키는 말한다. TV와 함께 성장한 세대에게 휙휙 바뀌면서 스쳐 지나가는 점포의 이미지, 끝없이 이어지는 선전문과 드라마를 방불케하는 무대 장치는 너무나 친숙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몰에서는 시청자가 텔레비젼 안으로 들어가서 실타래처럼 펼쳐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이다. TV와 몰은 <시청자>와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여 제품이나 서비스, 아니면 길이 기억될만한 사건 같은 상품화된 체험을 팔기 위해 정교하게 연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매체라고 할 수 있다. 231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상업 활동을 묘사하는 데 동원되는 이미지와 비유도 글로벌 경제에서 문화 상품이 부상하는 현실에 발맞추어 달라지고 있다. 효율성, 생산성, 실용성, 납품 가능성, 계산력 같은 기계적 이미지는 문화 상품의 연극적 이미지에 의해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경영서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들의 제목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다. [사업은 공연 예술이다. 어지러운 변화의 세계를 헤쳐가는 새로운 사고], [즉흥연주, 창조적 경영의 원리와 비결], [체험 경제, 일은 연극, 사업은 무대], [오락 경제,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 미디어의 위력]. 존 카오는 [즉흥 연주]에서 <사업은 공연 예술>이라고 역설한다. 여느 경영 컨설턴트처럼 카오도 <대기업도 '스튜디오 모델'을 현실에 맞게 도입하면 유리한 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독립 하청업체와 뛰어난 예술가의 재능을 하나로 결집하여 문화를 상품의 형태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 부릴 수 있는 수단을 마음껏 동원하여 괜찮다 싶은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디어 기업의 총수와도 같다>242
광고주는 이제 대중을 단순한 제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징의 소비자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자연히 광고는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광고는 개인이 스스로 떠올리는 삶의 줄거리를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좀더 원대한 줄거리로 끊임없이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퍼부어지는 수많은 광고 메세지를 통해서도 문화와 그 다양한 의미에 접하게 된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문화에 대해서 한수 가르쳐 주고 무엇을 사야만 그럴듯한 문화적 함의와 체험을 누릴 수 있는지를 일러준다. 따라서 고도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제품의 생산도 아니고 서비스의 수행도 아니고 정보의 교환도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문화 상품의 창조다. 261
문화적 유행을 남보다 한 발 앞서 예측하여 재빨리 상품으로 만들어야 떼돈을 벌 ㅅ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69
탈근대 세계에서 이야기와 공연은 사실과 수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는 상징과 기호를 연구하는 기호학에 열광할 것이다. 근대 세계가 물리학의 법칙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문법과 의미론의 법칙에 관심을 기울인다. 진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집념은 더 이상 학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제 학자를 움직이는 힘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 탐구이다. 의미를 캐는 열쇠는 언어가 쥐고 있다. 우리가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버그퀴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탈근대 세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생활 영역의 으뜸가는 현실이 되었다.> 286
요즘 사람은 개인적 구원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는다. 홀러간 황금 시대를 되찾으려는 열망 같은 것은 더더욱 상상도 못한다.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일신이 편안하고 건강하며 육체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 혹은 그런 유의 일시적 환상뿐이다. 순간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열정이 사람을 지배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선조나 후손을 위해 살지 않는다. 300
사람은 상징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타인들도 그들 나름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세계는 교감을 주고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적 사실이나 사회적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사실이나 대상이 연극적으로 전개되어서 하나의 주제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극장은 사회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극장은 사회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현상,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의 실상을 응축하고 정형화해 놓은 곳이다. 320
통신 혁명과 미래의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대담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잇다. 뉴욕의 맨해튼 한곳에 있는 전화기 수가 사하라 사막 남쪽의 전체 아프리카에 있는 전화기 수보다 많다. 339
접속은 사실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혁명,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사이버스페이스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접속은 상업권으로 뚫린 기업의 포털 사이트나 관문으로 나아가는 접속이라는 암묵적 전제에서 출발하는경우가 많다. 지금 돈을 주고 접속하는 것의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짜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체험은 물론 그에 어울리는 문화적 치장과 복장까지도 구입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공공 생활은 상업 공간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문명의 미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355
이런 음악은 현지에서는 문화 자본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한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고유 음악은 어떤 인간 집단이 처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대변하고 정신적 열망이나 정치적 갈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이다. 그렇지만 적절하게 가공과 포장을 통해 상품으로 팔리는 음악에서, 정작 핵심이 되는 메세지는 희석되거나 누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367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는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놀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겉으로 드러난 규칙과 드러나지 않은 규칙이 있고 심각하고 방향성이 있으며 목적 지향적인 놀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의 통상적인 근로 환경에 비하면 훨씬 덜 딱딱하다. 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 고독하게 혼자서 즐기는 놀이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어울리는 놀이가 훨씬 많다.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치밀하게 조직된 시합이나 운동 경기와는 달리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놀이는 일처럼 쉽게 계량화할 수가 없다. 놀이는 도식적인 잣대를 거부한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6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 영역을 집어삼켜 상업적 오락물, 체험, 유료 공연, 금전 관계의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도 지금 세대가 자연 경제와 인간 경제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기울인 것과 똑같은 정성과 노력을 이 운동에 쏟아 부어야 한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 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물적 자본의 소유권이 한때는 산업 사회의 근간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 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 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이미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저만큼 나가 있다. 보동산을 팔아치우고 재고를 줄이고 시설을 비리록 아웃소싱을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물적 소유를 무조건 털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는 21세기 경제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생산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빌려 쓰는 추세로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12
경제 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시장이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물적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 판매자와 소비장의 상품 거래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사용자는 이런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중요한 아이디어, 지식, 기술에 접속할 수 있다. 13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하는 것이다. 놀이의 내용과 접속권으 ㄹ놓고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은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이다.
지구 전역으로 뻗어 있는 통신만을 거느린 다국적 미디어 기업은 세계 곳곳에서 지역 고유의 문화 자원을 캐내어 문화 상품과 오락으로 재포장한다. 15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문화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세계에 척척 적응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 그들에게 접속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의 인간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교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이고,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인적 자유의 의미는 소유권이라든지 남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능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대신 상호 관계의 그물망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의미가 점점 부각될 것이다. 그들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첫번째 세대이다. 22
이 최초의 호스트 컴퓨터는 1969년에 온라인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1988년까지 모두 6만 대의 호스트 컴퓨터와 연결되었다. 아르파넷을 신호탄으로 다른 네트워크들도 속속 등장했다. 미국 과학 재단 NSF은 주요 대학에 둔 슈퍼컴퓨터 사이트들과 미국 전역의 연구자들을 연결하는 NSF넷을 만들었다. 1990년에 아르파넷이 문을 닫자 NSF넷은 컴퓨터늘 연결하는 중추 역할을 맡았다. NSF 점점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우리가 오늘날 인테넷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변신했다. 다른 정부 기관들도 자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에너지부는 ES넷을 세웠고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은 NSI넷이라는 온라인망을 구축했다. 1980년대로 저어들면서 민간 네트워크도 사방에서 등장했다. IBM, GTE(미국의 대형 전화 회사- 옮긴이), AT&T가 선도적 역할을 맡았다. 내부 연락과 공급자아 소비자 사이의 실시간 통신이라는 이중 용도로 개발된 이 민간 네트워크들은, 컴퓨터가 매개하는 네트워크에 바탕을 두고 굴러가는 경제가 출현할 수 있는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의 메세지는 전화선, 케이블, 위성을 통해 전송된다. 제임스 글레이크에 따르면 소유라는 관념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려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터넷이]사물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만인의 컴퓨터를 연결한것, 그것이 인터넷이다.>31
일본 전자 회사들이 내놓는 제품의 수명은 지금 3개월밖에 안된다. 소니는 1995년에 무려 5천여 가지의 신제품을 쏟아냈다. 짧은 수명을 가진 신제품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현실 앞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본부장 네이선 마이어볼드는 이렇게 잘라 말한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길어야 18개월밖에 못 버틴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자신을 상대로 경쟁을 벌여야 하는 ,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가령 인텔 같은 회사는 한꺼번에 세 가지 종류의 차세대 칩을 개발한다. 한 칩을 생산하는 동안 2세대 칩은 제작 준비에 들어가고 3세대 칩은 한창 설계중이다. 허니웰 사는 노동 시간을 5 ~ 10퍼센트 줄이면서도 제품 개발 기간을 60퍼센트나 단축했다. 제록스는 제품 개발 기간을 50퍼센트 줄였다. 36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전문 지식과 재주를 가진 날고기는 전문 제작사와 독립 하청업체가 하나의 팀으로 묶인다. 이들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만 한시적으로 존속하는 네트워크의 일원이 된다. 대본, 배역 선정, 세트 디자인, 촬영, 분장, 음향, 편집, 필름 현상은 모두 독립된 제작 회사와 한시적으로 제휴하는 독립 기업들에 의해 처리된다. 제작사는 수많은 전문 기업들의 지식을 종합하여 특정한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정확하게 끌어 모은다. 한편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전문기업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면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한다. 가령 특수 효과 회사는 하루 동안에도 영화의 특수 촬영, TV광고, 라이브 무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여 여러 네트워크에 발을 걸쳐 놓는다. 필요할 때만 인력을 제공하거나 특정한 과제를 완성해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음으로써 인건비 부담도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연예 관련 기업의 수는 3배로 늘었다. 그런데 직원의 수는 10명을 넘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1960년에는 독립 제작사에서 미국 전체 영화의 28퍼센트를 만들었지만 불과 20년 뒤에는 그 비율이 58퍼센트로 늘었다. 43 반면 메이저 영화사들은 전체 영화의 겨우 31퍼센트만 만들고 있다.
전자 상거래가 성행하는 무게 없는 세계에서 탈물질화되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다. 부동산도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좀더 개방된 네트워크 형태의 조직 구조를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안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사무실에서 개인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서와 부서 사이에 칸막이를 세워두었던 산업 시대의 업무 공간은 회사 조직의 위계적 형태처럼 설 자리를 잃었다. 네트워크 환경에서 개인적 공간은 사회적 공간으로 바뀐다. 함께 일한면서 끊임없이 정보, 지식, 식견을 공유해야 하는 프로젝트 팀에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확 트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무 환경에서는 공간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면서 타인을 배제하는 ,무조건 소유하고 보겠다는 발상은 금물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동료에게 거리낌없이 바로 다가갈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50
재산과 돈의 탈물질화,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재고를 없애고 부동산을 털어내려는 안간힘, 개인 저축의 소멸, 이런 것들과 함께 나타나는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의 형태이며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자본 자체가 많은 산업에서 부차적 지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리적 자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구, 기계, 설비, 공장 같은 인프라와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경영 컨설턴트와 경제학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물리적 자본을 쌓아두지 말라고 기업에 조언한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경영 컨설턴트 스탠데이비스, 언스트 앤드 영 부설 경영 혁신 센터 크리스토포 마이어 소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리는 자본을 소유하거나 심지어는 통제하는 것이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이라는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데이비스와 마이어는 다른 경제 전문가들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자본 설비를 보유해 보았자 재미를 못 본다.....소유에 집착하면 점점 체중이 불어나서 기업의 발빠른 변신에 걸림돌이 될 뿐> 이라고 강조한다. 데이비스와 마이어는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산 시설을 재고로 유지하는 자본이, 생산 시설에 접속할 수 있는 '저스트인타임' 자본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자본에 대해 그들이 입버릇처럼 되는 말은 <사용하되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스튜어트는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산업 경제의 늙은 방어군과 네트워크 경제의 젊은 기업가와 경영자를 갈라놓는 새로운 정서의 차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기업은 하나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으로, 다시 말해서 자산 소유인 아니면 자산 임차인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64
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구식 공장, 노후한 설비, 고루한 경영 시스템과 업무추진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기업이 망하는 첩경이다. 아웃소싱을 통해 장기적 소유에서 단기적 접속으로 과감히 방향을 전환하는 기업은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갈 수 있다.
아웃소싱 산업은 호황을 구가중이다.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아웃소싱업체는 14만 6천 개가 넘는다. 2000년 말까지 아웃소싱 산업의 전체 규모는 3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형태로든 아웃소싱 서비스를 이용하는 160만 개의 기업 가운데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10명 미만의 직원을 둔 소기업이다. 하지만 대기업도 내부 업무를 점점 밖으로 이양하고 있다. 미국의 10개 제조업체 가운데 3개는 이미 생산 활동의 절반 이상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 있다. 72
물리적 가치만이 재산으로 인정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시대에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었다. 물질적 재산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여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부풀리는 것은 재산을 가진 모든 인간의 갈망이었다. 마돈나의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물질이 판을 치는 세계>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원형의 세계다. 개념의 세계, 픽션의 세계다. 산업 시대의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데 빠져들어 있었다면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사업의 성패를 아이디어가 좌우하는 접속과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다.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확장하여 보편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84
사업 방식의 체인화는 비교적 역사가 짧다. 여기서 체인으로 묶이는 것은 사업 개념이다. 모기업은 자신이 보유한 개념과 상푝같은 무형의 자산이 산하 체인점의 공장, 시설, 기계, 원료 같은 유형 자산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특히 서비스업체는 자신의 영업술과 상표를 하나로 묶어 지역 사업가에게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방 점포 하나하나는 본사의 판박이처럼 운영된다. 모든 지역에서 본사와 똑같은 이미지로 포장되고 운영된다. 체인에 가입한 점포는 본사에 보통 1만 2천 달러에서 10만 달러의 라이선스료를 낸다. 본사는 별도의 돈을 받고 해당 점포에게 설비, 교육,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한다. 건물 임대료, 시설비, 보험료와 각종 공과금, 인건비는 모두 가맹점이 부담해야 한다. 체인 가맹점은 또 총매출액의 5 ~ 12퍼센트를 모기업에 내야 한다. 89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시장의 시대를 지탱한 주춧돌의 하나였던 소규모 자영업자가 건재하며 단지 체인 가맹점으로 새롭게 변신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역동적 변화를 크게 오독한 결과이다. 체인 사업은 체인점이 <내 사업을 가질 수 있는>좋은 기회라고 선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고 있지만, 미국 경영 협회는 소유와 접속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잰 커크햄과 티모시 맥가우언은 미국 경영 협회가 발간한 [체인 산업 핸드북]이라는 책에서 <일반인의 오해와는 달리 본사는 체인점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런 오해는 단순희 의미론의 문제가 아니라고 커크햄과 맥가우언은 지적한다. 체인은 기업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업 개념, 운영 방식, 브랜드를 일정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허용하고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갱신하기로 한 약속이다. 체인 가맹점은 사업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사업체에 단기간 접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데 불과하다. 이 관계는 판매자 - 구매자가 아니라 공급자 -사용자의 관계이다.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이다. 93
1998년 존스 홉킨스 대학과 위스콘신 대학 연구진은 캘리포니아의 생명공학 회사인 제런Geron 사와 공동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개체를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원시 세포, 곧 인간의 간세포를 분리하고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특허 출원은 이미 냈고 미국 특허 상표국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특허가 나오면 제런은 앞으로 20년 동안 인체 간 세포를 지배할 수 있어 향후 의학 연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인간의 진화 방향에까지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연구자들은 인체 간 세포를 이용하여 인간의 성장 과정을 지배하는 다양한 유전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것이 성공하면 인간 단백질, 세포, 섬유, 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앞으로 간 세포를 이용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역시 일정한 사용료를 물어야 할 것이다. 108
제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점점 많은 운전자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임대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구입자의 평균 보유 기간은 3년 6개월, 반면 임대 이용자는 평균 2,3 년에 한번꼴로 차를 바꾼다. 자동차 대리점은 고객의 임대가 언제 만료되는지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적기에 새로운 임대를 위한 교섭에 들어갈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임대의 개념을 한 차원 발전시켜서 영국에서 <가변>임대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고객은 임대 계약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의 가격대에서 원하는 자동차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싫증이 나면 다른 모델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런 공동 임대는 자동차를 소유물에서 순수한 서비스의 역할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헬무트 베르너 대표이사는 <우리의 목표는 자동차 한 대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신의 기회를 보장하는 완벽한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113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제품이 수명을 다하는 동안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르 제공하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기업은 플랫폼을 싸게 공급한다. 129
심지어는 일회용 전화까지 등장했다. 1999년 새로운 종류의 전화기가 특허를 받았다. 이 전화기는 너무나 싸서 <정해진 통화량>단위로 팔리고 시간이 경과하면 버리면 그만이다. 이 전화기를 발명한 랜디스 리자 알트슐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가 장난 전화에 시달릴까 봐 걱정하는 엄마, 아이, 여행자에게 인기를 끌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회용 기술은 손에 들고 다니는 전자 게임을 비롯해서 다양한 전자 제품에도 활용할 수 있다. 결국 물리적 형체보다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권이다. 130
몬산토의 회장이며 대표이사인 로버트 샤피로는 소유보다는 접속을 중시하는 시장 전략을 선택하면 사업의 초점을 판매에서 사용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최초의 경영자에 속한다. 1997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샤피로는 소비자는 물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갖는 기능을 사는 것이라면서 카펫을 만드는데 쓰이는 몬산토의 나일론 섬유를 예로 들었다. <카펫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저 그 위에서 걷고 싶을 뿐이다....만약 몬산토나 카펫 제조업체가 카펫을 소유하고 교체 시기가 왔을 때 찾아와서 갈아준다면 어떻게 될까?> 인터뷰에서 샤피로는 갑자기 모든 게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만든 모든 제품을 앞에 놓고 사람들이 이 물건을 정말로 사는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물건 자체가 필요한 건가 아니면 그 물건의 기능이 필요한 건가? 만약 우리가 카펫이 아니라 카펫 서비스를 판다면 그 경제적 여파는 어떻게 될까?>133
너무 과격한 발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먼저 구입자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고객의 관심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공급자는 고객에게 제품을 거저 제공해야 다가설 수 있다. 그렇지만 물건을 안 판다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는가? 고객의 사업을 공동을 경영하여 실적과 수익을 개선시키고 거기서 남는 차익을 공유하는 길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급자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고객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식견을 빌려줄 뿐이다. 고객은 사실상 클라이언트, 파트너가 된다. 137
앞으로 생산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판매 중심에서 관계 구축 중심으로 궤도 수정을 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마케팅 전문가와 경영 컨설턴트, 경제학자, 미래학자가 쏟아내는 무수히 만흔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스탠 데이비스와 크리스토퍼 마이어는 [오리무중; 네트워크 경제와 변화의 속도]라는 책에서 구식 경제에서는 <일련의 불연속 거래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자꾸 물건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느냐가 관건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에서 모든 기업은 <고객과 항구적 관계를 맺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1대 1의 미래]라는 책에서 마케팅 컨설턴트 돈 페퍼스와 마사 로저스는 <제 아무리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소프트웨어는 '고객 관계'>라고 주장한다. 페퍼스와 로저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만든 모든 제품은 뜬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 믿을 건 당신의 고객밖에 없다. >146
고객 관리는 소유와 경제 활동의 통제권이 대중의 손에서 기업의 손으로 점차 넘어가는 장구한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가정과 공방에서 이루어지던 경제 활동이 자본을 소유한 기업가에 의해 공장으로 옮겨졌던 것을 상기하자.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지배함으로써 그전까지는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가정과 공방이 임금 노동을 해야만 생활하고 생존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20세기 초반 분업과 조립 라인이 등장하면서 노동자는 생산 과정에 대한 마지막 통제 능력까지도 빼앗겼다. 프레데릭 테일러는 공장과 매장에 과학적 경영 원리를 도입하여 생산 조직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테일러는 스톱 워치를 이용하여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측정하여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었다. 153
마케팅의 진화는 기업과 고객이 1 대 1로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소비자의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생산 공정의 혁신으로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장으로 새로운 상품이 수없이 쏟아졌다. 전쟁이 끝난 뒤 몇 년 동안은 억눌려온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물건을 찍어내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대공황과 전쟁은 생산의 물줄기를 극도로 빈약하게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사치품은 물론이고 생활 필수품도 마음 편히 써보지 못한 그 동안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전후 세대는 미친 듯이 사들였다. 교외로 주거 공간이 확대되고 하이웨이 문화가 형성되고 대형 쇼핑몰이 속속 등장하면서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50년대는 판매자가 시장을 주도했다. 제조업이 왕이었고 기업은 생산비와 유통비를 어떻게 절감하느냐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물건을 내놓기 무섭게 소비자가 사주었기 때문에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점포마다 물건을 대기에 바빴다. 불연속적 시장 거래만으로도 충분해 보였고 재주문은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소비자 시장에서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웬많나 가정에는 차고에 차가 두 대씩 있었고 세탁실에서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윙윙 돌아갔으며 방마나 컬러 텔레비전이 한 대씩 놓였다. 기업은 새로운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57 소비자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생산 과잉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시장에 물건을 얼마나 신속하게 공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여 충실한 고객으로 만드느냐였다.
생산 관점에서 마케팅 관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강조한 현대 경영 기법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썼다.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사회가 부를 낳는 자원을 기업에 위임한 것은 고객에게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 마테킹은 제품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특이한 사업 기능이다. 모든 사업을 최종 결과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마케팅에 대한 관심과 소명이 모든 사업 부문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158
관심사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결국 고객이 모일 수 있는 행사나 집회,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홀리데이 인의 프라이어리티 클럽은 투숙 횟수가 가장 많은 5백 명에서 1천명 사이의 최우수 고객을 1년에 두 번 리조트로 초대하여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면서 호텔 경영 전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이 클럽 회원은 전문 스포츠 클리닉, 명사 강연, 특별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회원들은 자기들끼리는 물론이요, 홀리데이 인 경영진과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홀리데이 인의 중요 고객 마케팅 담당 상무인 켄 프라이스는, 토론에 참여하여<아이디어와 느낌을 회사에서 나누어달라고> 회원에게 부탁한다고 강조한다. 380만 명에 이르는 회원 가운데 일부는 이 회사의 수많은 지역 자문회 위원으로 영입된다. 프라이어리티 클럽 회원은 아주 열성적이 고객으로 입증되었다. 그들은 1년에 평균 60일을 홀리데이 인에서 투숙한다. 163
공간과 물자의 상품화가 인간의 경험과 시간의 상품화로 바뀌는 현상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시간 중에서 조금이라도 남아도는 시간은 금세 모종의 상업적 연결 고리로 채워진다. 그래서 시간 자체가 가장 희귀한 자원이 되어버린다. 팩스, 이메일, 음성 메일, 휴대폰, 24시간 온라인 증권 거래 시장,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현금 자동 인출금기와 온라인 뱅킹, 밤새도록 할 수 있는 전자 상러래와 검색, 24시간 계속되는 텔레비젼 뉴스와 오락 프로,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 약국, 수리점은 모두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고성을 질러댄다.
모든 노력이 상업적 서비스로 변질될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일종의 시간의 덫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상업적 서비스와 관계는 시간을 상품화하여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는 사업가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사실상 무한정 나타날 수 있다. 접속의 시대로 이제 막 접어드는 초창기인데도 시간의 상품화는 벌써 포화의 조짐을 보인다. 상품화된 서비스나 괸계에 접속해야 한다는 압력과 유혹을 모든 인간, 모든 기간이 받고 있다. 우리는 상업적 영역 안에서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온갖 활동, 시간과 노동을 절약할 수 이는 온갖 수단을 만들었지만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인간이 지금처럼 시간에 쫓기며 산 적도 없었다. 이것은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는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우리 주위에서 상품화되는 활동의 다양성과 속도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167
많은 사람들이 CID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CID가 제공하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화된 생활 경험을 얻는 대신 소유권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CID에 거주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인 관리 수칙과 계약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CID주민은 소유권과 재산권을 교묘하게 박탈당하고 접속 생활 공간에서 장점을 누리는 한편 그에 수반되는 함정까지도 감수하면서 점점 단순한 점유인으로서 위상 변화를 겪는다. 집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일평생 누릴 수있는 가장 중요한 재산의 형태이므로 CID생활 방식이 전통적 재산 개념을 어떻게 잠식하고 그 과정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라이프 사타일을 경험하는 것보다 덜 중요해지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적, 법적 토대를 깔아놓는지 한번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176
CID는 주택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지만 <가정 경험>의 성격을 새롭게 정의하게끔 만드는 또다른 요인들이 있다. 미국의 주택 보급율은 66.7%로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지만 전문가들은 소유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조류가 특히 부유층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 집을 살 만한 여력이 없는 저소득 가구, 독신자, 신혼 부부가 주로 이용해 온 아파트 임대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183. 편리한 서비스, 시설, 경험에 대한 단기적 젒고에 높은 비중을 두고 전통적인 주택 소유에 수반되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아파트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184
인격은 스스로에게 현실을 부여하려는, 다시 말해서 외부 세계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려는 몸부림이다.
사람의 인격은 소유되는 대상 안에 늘 나타나기 때문에 재산은 인격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을 알고 확인하게 된다. 재산은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헤겔은 보지 않았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재산은 개인적 자유를 표현한다. 재산으로 자기를 감쌈으로써 사람은 자신이 인격성을 시공간 속에서 부풀리고 자기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사람은 세계 안에서 자기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니 소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별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유의 자부심>이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소유에 수반된느 개인적 자부심, 책임감, 의무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기 충족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193 큼 독립적이는 뜻이다. 재산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접속만 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 훨씬 더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자꾸 남들과 연결되고 상호 의존적이 되면 우리의 자기 충족감은 약화되고 외부의 압력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일까? 194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강력한 쌍두마차이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점점 많은 부분이 새로운 디지털 회로를 통래 표현되고 있다. 통신은 인간이 공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룩한 세계를 공유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디지털 통신의 모든 형태를 상품화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살아있는 경험 - 문화 생활 - 을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를 상품화하는 결과로 귀착된다. 202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공동체)의 철자가 비슷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커뮤니티는 공동의 의견과 공동의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있어야 성립한다. 이렇게 자명한 원리를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열리는 토론에서는 거의 무시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해석되고 생산되는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독립된,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암묵적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학자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나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립할 수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 앞에서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다. 문화 -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공동의 경험 - 는 미디어 시장으로 인정 사정 없이 끌려 들어가서 상업적으로 개조된다. 마케팅 전문가들과 사이버스페이스의 교조들이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을 관계 구축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개인적 경험의 판매,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 구축, 관심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의 건설을 마치 성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읊고 다닐 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문화를 상품화하고 모조리 상업화하자는 것이다. 205
오늘날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살 것이 없다>는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말은 바로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선진국에서, 특히 자본주의 생활 양식이 제공하는 풍성한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전세계 인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ㅇ에게 상품의 소비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한집에 차가 두세 대 있고 텔레비젼만 대여섯 대씩 있고 온갖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가전 제품이 완비되어 있을 때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새삼스러운 욕구가 생겨나기는 어렵ㄷ.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 완전한 문화적 자본주의를 향한 최후의 변신을 시도한다. 문화적 생화을 상징하는 기호, 그 기호를 해석하는 예술적 의사 소통의 형식만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체험 그 자체를 우려먹는 것이다. 미래의 기업은 사람의 생활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점점 더 떠맡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미래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앨빈 토플러도 그중 한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체험의 생산자가 경제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축을 떠맡게 된다>고 토플러는 내다본다. 그것이 실현되는 날에는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체험이라는 가장 일시적이면서도 가장 지속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212
파인과 길모어는 체험 산업의 고용 증가세는 서비스 산업 전체의 고용율에 비해 2배나 빠르다고 강조한다. 체험 산업의 등장은 토지의 상품화(인클로저 운동)에서 시작되어 주택과 공예의 상품화로, 나아가 가정과 공동체 기능의 상품화로 이어진 자본주의 체제 진화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생산하는 물건, 우리가 남을 위해 수행하는 서비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적 체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존재 전체가 상품화되고 있다. 214
쿡은 체험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단순한 서비스의 판매자와는 전혀 다른 발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판매자 - 구매자 관계를 공급자 - 사용자, 서버 - 클라이언트의 관계로 탈바꿈시켜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그래서 여행과 관광을 상이한 판매자와 구매자의 독립된 시장 거래들로 구분하는 방식을 과감히 제거하고 포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고객으로부터 한꺼번에 돈을 받으며 고객과의 1 대 1 관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서비스 시대를 열었다. 미리 정해 놓은 요금을 한꺼번에 받고 쿡은 교통, 식사, 숙소, 관광, 환전에 이르리까지 고객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액 요금을 받고 무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현대의 의료 보험 체계도 따지고 보면 쿡이 창안한 영업 방식의 골격을 모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문화 생산의 아버지로서, 체험 자본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실천가로서 당연히 인정받을 만하다. 218
미국인은 열흘에 한번꼴로 몰을 찾고 평균 1시간 15분 동안 그곳에 머문다. 이렇게 뻔질나게 몰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서이다. <몰은 입체 텔레비젼과도 같다>고 코윈스키는 말한다. TV와 함께 성장한 세대에게 휙휙 바뀌면서 스쳐 지나가는 점포의 이미지, 끝없이 이어지는 선전문과 드라마를 방불케하는 무대 장치는 너무나 친숙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몰에서는 시청자가 텔레비젼 안으로 들어가서 실타래처럼 펼쳐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이다. TV와 몰은 <시청자>와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여 제품이나 서비스, 아니면 길이 기억될만한 사건 같은 상품화된 체험을 팔기 위해 정교하게 연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매체라고 할 수 있다. 231
유구한 전통을 가진 문화 속에서 살다가 아직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의 연륜을 갖지 못한 파릇파릇한 문화를 가진 사회로 이주해 온 수많은 이민자에게 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문화 적응과정이었다. 영화는 많은 이민자,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에게 미국이 당연히 제공할 것 같은 <이상적>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미국적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단서를 찾고 싶어하고 자신의 삶을 새로운 문화에 통합시킬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하던 1세대 이민자를 교육시키고 감화시켰다. 1909년에 이미 뉴욕에는 340개가 넘는 영화관이 있었고 토요일에는 25만 명이, 일요일에는 50만 명이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았다. 239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상업 활동을 묘사하는 데 동원되는 이미지와 비유도 글로벌 경제에서 문화 상품이 부상하는 현실에 발맞추어 달라지고 있다. 효율성, 생산성, 실용성, 납품 가능성, 계산력 같은 기계적 이미지는 문화 상품의 연극적 이미지에 의해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경영서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들의 제목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다. [사업은 공연 예술이다. 어지러운 변화의 세계를 헤쳐가는 새로운 사고], [즉흥연주, 창조적 경영의 원리와 비결], [체험 경제, 일은 연극, 사업은 무대], [오락 경제,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 미디어의 위력]. 존 카오는 [즉흥 연주]에서 <사업은 공연 예술>이라고 역설한다. 여느 경영 컨설턴트처럼 카오도 <대기업도 '스튜디오 모델'을 현실에 맞게 도입하면 유리한 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독립 하청업체와 뛰어난 예술가의 재능을 하나로 결집하여 문화를 상품의 형태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 부릴 수 있는 수단을 마음껏 동원하여 괜찮다 싶은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디어 기업의 총수와도 같다>242
버크가 새로운 행위 분석의 틀을 제공했다면 어빙 고프먼은 [일상 생활의 자기 제시]라는 책에서 연극적 은유를 인간 행동 분석에 처음으로 엄밀하게 적용했다. 고프먼은 의도가 깃들어 있는 모든 사회적 행동은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라고 하면서 모든 연기에서 배우는 공연을 연습하는 이면 영역(분장실)과 대사를 내뱉는 표면 영역(무대)사이를 오간다고 주장한다. 244
인공 환경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상품으로 바뀐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삶을 만들어주고 우리는 그것을 구입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소비자가 되어버린다. 251
광고주는 이제 대중을 단순한 제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징의 소비자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자연히 광고는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광고는 개인이 스스로 떠올리는 삶의 줄거리를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좀더 원대한 줄거리로 끊임없이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퍼부어지는 수많은 광고 메세지를 통해서도 문화와 그 다양한 의미에 접하게 된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문화에 대해서 한수 가르쳐 주고 무엇을 사야만 그럴듯한 문화적 함의와 체험을 누릴 수 있는지를 일러준다. 따라서 고도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제품의 생산도 아니고 서비스의 수행도 아니고 정보의 교환도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문화 상품의 창조다. 261
문화적 유행을 남보다 한 발 앞서 예측하여 재빨리 상품으로 만들어야 떼돈을 벌 ㅅ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69
임시직에 익숙하고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편성된 조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부모 세대처럼 단단히 뿌리 박은 삶보다는 아주 유연하고 순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이고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쪽이다. 작문 실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자 데이터를 처리하는 실력은 한 수 위다. 분석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이다. 디즈니월드와 클럽 메드를 <진짜>라고 생각하고 쇼핑몰을 공공의 광장으로 여기며 소비자 주권 운동이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믿는다. 275
탈근대 세계에서 이야기와 공연은 사실과 수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는 상징과 기호를 연구하는 기호학에 열광할 것이다. 근대 세계가 물리학의 법칙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문법과 의미론의 법칙에 관심을 기울인다. 진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집념은 더 이상 학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제 학자를 움직이는 힘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 탐구이다. 의미를 캐는 열쇠는 언어가 쥐고 있다. 우리가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버그퀴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탈근대 세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생활 영역의 으뜸가는 현실이 되었다.> 286
어디를 둘러보아도 유희와 쾌락의 추구가 판을 친다. 건축만하더라도 그렇다. 규칙성과 기능성에 중점을 두었던 근대 건축의 진지함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탈근대 건축은 아이러니와 즐거움을 중시한다. 충격과 자극,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탈근대 건축가들은 역사적 양식을 짜집기한 건물을 짓곤 한다. 그리그 로마 시대의 기둥과 처마 장식을 신바롴트 시대의 장식물과 나란히 놓는다. 우주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건물의 정면을 19세기의 고급 주택에 널리 쓰이던 갈색 사암으로 처리한다. 로마 건축 양식으로 꾸며진 안뜰에 기계의 이지미가 물씬 풍기는 복잡한 장식을 덧붙이고, 그 옆의 로비 벽에 그려진 극사시주의풍의 그림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3차원으로 재현해 놓는다. 전통 건축의 문법은 파기되고 우상 파괴주의가 힘을 얻는다. 관심을 끌 수 잇고 논쟁과 토론의 주제를 부각될 수만 있다면 어떤 건물을 지어도 상관없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288
자아 개념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소유 관계라는 비유가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데 더 없이 유효 적절하게 쓰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헌터 대학의 마이클 우드와 텍사스 대학의 루이스 주커 두 사회학자는 [탈근대 자아의 전개]라는 책에서 <누적된 노력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자아가 부단한 과정 속에서 각성되고 발견되고 실현되는 현재 지향의 자아>로 변모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 299
요즘 사람은 개인적 구원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는다. 홀러간 황금 시대를 되찾으려는 열망 같은 것은 더더욱 상상도 못한다.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일신이 편안하고 건강하며 육체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 혹은 그런 유의 일시적 환상뿐이다. 순간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열정이 사람을 지배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선조나 후손을 위해 살지 않는다. 300
우선 새로운 인쇄 매체는 사람이 지식을 조직하는 방식을 재정의했다. 머리로 외워서 입으로 전달하는 비생산적인 방법이나 중세의 필사본처럼 베끼는 사람의 주관이 가미되는 방법은 사라지고 지식에 좀더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분석저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쇄는 안간의 기억에 의존하던 옛날 방식과는 달리 내용이 요약된 도표, 일련 번호, 주석, 색인을 짜임새 있게 제공하여 끝없이 과거를 환기해야 하는 부담에서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켜 주면서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이런 의식의 변화는 물질의 무한한 획득과 인간의 진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이어졌다. 302
사람은 상징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타인들도 그들 나름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세계는 교감을 주고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적 사실이나 사회적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사실이나 대상이 연극적으로 전개되어서 하나의 주제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극장은 사회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극장은 사회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현상,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의 실상을 응축하고 정형화해 놓은 곳이다. 320
21세기에는 과거의 재산권처럼 접속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접속은 재산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재산권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협소한 물질의 차원을 다루지만 접속은 체험 자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좀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통신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 덕분에 지리적 시장이 사이버스페이스로 전환되면서 인간 관계를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열렸다. 컴퓨터 , 통신, 케이블 TV, 가전제품, 방송, 출판, 오락이 하나의 종합 통신망 안으로 통합되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인간이 상호 교류하는 방식에 역사상 유례없는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 232
통신 혁명과 미래의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대담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잇다. 뉴욕의 맨해튼 한곳에 있는 전화기 수가 사하라 사막 남쪽의 전체 아프리카에 있는 전화기 수보다 많다. 339
당연한 일이지만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에서 소유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이론들이 나타나고 있다. 점점 많은 지식인, 법학자, 경제학자가 기존의 전제를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네트워크 경제와 접속 세계의 새로운 현실 앞에서 소유 관계의 본질과 철학을 새롭게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종래의 사유 재산 체제를 변호하는 자유 지상주의 진영의 목소리는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미국과 영국에서는 여전히 높지만 적어도 학술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일부 학자들은 재산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고 비판하고 있다. 접속 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이론의 편린들이 아직 공론화되지는 않았어도 글의 형태로는 슬슬 나타나고 있다. 접속 관계의 본질을 꿰뜷는 완전한 이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경제가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현실 공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산업 자본주의에서 문화 자본주의로 빠르게 변모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반성하기 위한 논의의 여건은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 349
접속은 사실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혁명,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사이버스페이스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접속은 상업권으로 뚫린 기업의 포털 사이트나 관문으로 나아가는 접속이라는 암묵적 전제에서 출발하는경우가 많다. 지금 돈을 주고 접속하는 것의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짜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체험은 물론 그에 어울리는 문화적 치장과 복장까지도 구입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공공 생활은 상업 공간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문명의 미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355
급변하는 탈근대 세계의 복잡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극복 수단이라면서 신세대의 변화 무쌍한 의식을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던 리프턴조차도 이것이 인간의 행동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ㄴ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364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성공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에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던 것을 해체하고 재가공하고 포장하고 판매하여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내용을 상품화된 체험으로 바꾸는 데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앞에서 살펴본 모든 이유들 때문에 그 승리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장과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다. 365
이런 음악은 현지에서는 문화 자본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한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고유 음악은 어떤 인간 집단이 처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대변하고 정신적 열망이나 정치적 갈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이다. 그렇지만 적절하게 가공과 포장을 통해 상품으로 팔리는 음악에서, 정작 핵심이 되는 메세지는 희석되거나 누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367
모든 현실 문화는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친밀감은 지리적 공간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밀감이 없으면 사회적 신뢰망을 구축하기도 어렵고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문화를 소생시키고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사이버스페이스에 쏟아 붓는 만큼의 관심을 지리적 공간에도 보여야 하고 채팅방에 들이는 만큼의 정성을 현실 공동체에도 기울여야 한다. 373
시민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 세계에서 입수할 수 있는 지식에 접속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리적 공동체 안에 배태되어 있는 집단의 지식과 지혜에 접근하는 것을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에서 해당 정보를 클릭하는 것이 배움의 저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실의 시공간에서 남들고 살을 맞대고 어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배움의 일부분이다. 시민 교육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수집되는 모의 지식을 보완하고 교정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학교가 사이버스페이스에 있는 상업적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무도 맡을 수 있는 능력과 각오를 지닌 젊은 세대를 배출하려면 두 가지 방식의 학습을 골고루 체험시켜야 한다고 시민 교육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375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는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놀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겉으로 드러난 규칙과 드러나지 않은 규칙이 있고 심각하고 방향성이 있으며 목적 지향적인 놀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의 통상적인 근로 환경에 비하면 훨씬 덜 딱딱하다. 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 고독하게 혼자서 즐기는 놀이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어울리는 놀이가 훨씬 많다.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치밀하게 조직된 시합이나 운동 경기와는 달리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놀이는 일처럼 쉽게 계량화할 수가 없다. 놀이는 도식적인 잣대를 거부한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6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 영역을 집어삼켜 상업적 오락물, 체험, 유료 공연, 금전 관계의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도 지금 세대가 자연 경제와 인간 경제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기울인 것과 똑같은 정성과 노력을 이 운동에 쏟아 부어야 한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여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나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고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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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2 | 살아남기 위하여_발췌 | 맑은 김인건 | 2010.08.30 | 2389 |
2461 | 8-4. 위기 그리고 그 이후.-자크 아탈리 | 은주 | 2010.08.29 | 2728 |
2460 | 북리뷰. <엔트로피> -Jeremy Rifkin | 낭만연주 | 2010.08.23 | 3252 |
2459 |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 박미옥 | 2010.08.23 | 3045 |
2458 | Review 소유의 종말 [1] | 최우성 | 2010.08.23 | 2417 |
2457 | [북리뷰 22]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2] | 신진철 | 2010.08.23 | 2963 |
» | 소유의 종말_발췌 | 맑은 김인건 | 2010.08.23 | 2742 |
2455 | 소유의 종말_저자, 구성 | 맑은 김인건 | 2010.08.23 | 2599 |
2454 | 북리뷰22-<유러피언 드림:제레미 리프킨> [2] | 박경숙 | 2010.08.23 | 2962 |
2453 | 북리뷰 22. 유러피언 드림_제러미 리프킨(민음사) [3] [2] | 박상현 | 2010.08.23 | 2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