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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9일 10시 10분 등록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11-5 Review]  

1.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 1939~)  

그는 빈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학의 교직에 있으면서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소립자 연구를 계속했다. 대학에 있으면서도 동양사상과 물리학을 비교하는 많은 강연과 논문을 발표했고, 그 스스로 동양적 명상 수련을 실천했다.  

프리초프 카프라 박사는 그의 첫 번째 책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세계관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동양 사상에 들어 있는 전일적이며 역동적인 세계관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상세히 비교 설명하였다. 그의 두 번째 책인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은 현대 물리학에서 깨달은 그 새로운 세계관이 다른 학문 분야로 확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전일적인 또는 유기체적 세계관에 뿌리 박은 시스템적 접근이 생물학, 심리학, 생의학, 경제학 등 여러 가지 자연 과학 및 사회 과학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아직도 넘어서지 못하는 견해들이 그들 학문의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고 있는가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 『탁월한 지혜(Uncommon Wisdom)』,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다.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 

인류의 사상사에 있어서, 두 개의 다른 사상의 조류가 만나는 그러한 지점에서 가장 풍요한 발전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전적으로 타당한 얘기일 것이다. 이러한 조류들은 인류 문화의 전혀 다른 분야에, 상이한 시대와 상이한 문화 환경과 상이한 종교적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을 것이다.  

제2판 역자 서문 

8. 서구 문명을 과거 300년간 주도해 온 과학적 방법은 주로 공간적 분할과 분석의 방법으로 一에서 多를 보는 것이지만 동양의 철인들은 주로 명상과 직관의 방법으로 多에서 一을 보려 했던 것이며, 시간의 축에서 생멸하는 자연을 창조적인 생명의 원리로 파악했던 것이다. 

카프라 박사는 오늘의 산업 문명이 중병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객관적 지식의 대가로, 가치 문제를 소홀히 한 가치 중립의 과학에도 책임이 있다 하여 오늘의 서구 학계에 맹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사는 현대의 제 과학 분야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분석 일변도의 과학방법이 이제는 각 학문의 발전에 큰 장해 요인이 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새로운 전일적이며 종합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2. 시간이란 다른 위치에 있는 각기의 관찰자에 따라서 동시성과 흐름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동시성과 흐름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모든 관찰자에 공통되는 절대 시간이란 없은 것임을 상대성 이론은 입증했다.  

13. 관찰자는 그 설문의 방식을 통하여 관찰 대상의 현상에 참여하게 되므로 관찰자는 자연의 연극에 있어서 관객이며 동시에 배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객관적 존재의 문제는 주관적 인식의 문제와 밀착하게 되며, 주관과 객관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서 작용한다.  

14. 저자는 이 책 속에서 힌두교, 불교, 도교, 역사상 등 동양사상을 통틀어서 신비주의라 했다. 4세기의 사리치우스는 “신비란 일어난 일이 없지만 언제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란 마술을 행하거나 기적을 바란다는 뜻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모든 존재 자체를 신비한 것으로 본다는 의미에서의 신비주의일 것이다.  

15. 극미세계의 원자의 구조가 극대 세계의 태양계의 구조와 거의 같듯이 이 우주의 제 현상 간에는 엄청난 유사성이 있는 것이며, 고도로 민감하고 언제나 통찰하는 예술 정신은 삼라만상 간의 상징을 보고 그 만뢰 속에 공명의 화음을 들으며 육합에 차 있는 친화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경험은 예술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서양 예술과 동양 예술의 주류가 양극적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 예술의 주류가 동적인 것이라면 동양 예술의 주류는 정적인 것이다. 서양의 인물화가 정서를 유발하는 것이라면, 동양의 산수화는 그것을 침잠시키는 것이며, 교향악이나 오페라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면 아악을 위시한 우리의 전통 음악의 주류는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16. 고요한 무념의 경지에서 생명의 힘을 표현하는 동양의 고차적 예술인 서도와 같은 것은 서양에는 없다. / 동양의 현인들이 정적의 시간을 찾아 스스로의 마음의 수련에 주력한데 반하여 현대인들은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인 고독을 두려워하며, 매스컴과 광고의 홍수 속에 불어만 가는 물욕과 갈등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길 없고, 공간적/시간적 사회의 분열과 단층은 갈수록 심화되어 불안과 고독감은 가중되며, 마음은 더욱 어지러워져서 진정제와 수면제의 판매량과 정신 분석의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다.  

제2판 저자 머리말  

19.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분명한 것이었고 미래에 상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집필하면서도 때로는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는 나를 통하여 글이 쓰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20. 서양인들은 융합보다는 자기 주장, 종합보다는 분석, 직관적 지혜보다는 합리적 지식, 종교보다는 과학, 협동보다는 경쟁, 보전보다는 확장에 편중해 왔다. 이같은 일방적인 발전은 이제 극히 위험한 단계, 즉 사회적.생태계적, 도덕적 그리고 정신적 차원의 위기에 도달하였다.  

21. 물리학과 신비주의의 연관성은 매우 흥미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중요하다. 현대 물리학의 성과는 과학자들이 가야 할 전혀 다른 두 길을 열어 놓았다. 극단적인 표현을 쓴다면, 한 길은 부처로 나아가고 다른 한 길은 폭탄으로 이어진다.  

22.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과학자와 기술자 가운데 거의 절반이 군사관계 연구와 생산에 참여하여, 전면 파괴의 보다 정교한 수단을 개발하는 데 인간의 발명과 창조의 방대한 잠재력을 낭비하고 있다. 이 시대에 부처의 길, ‘가슴이 있는 길(path with a heart)'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제1판 저자 머리말  

24.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 나는 또한 원소들의 원자와 내 신체의 원자들이 에너지의 우주적 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25. 수년간의 정밀한 분석적인 사고 끝에 정신적 직관이 나에게 떠오르자 그 압도적인 감격에 나는 눈물을 흘렸으며 그 순간 나는 카스타네다처럼 그 인상을 종이 쪽지에 황급히 적어 내려갔던 것이다.  

26. 신비주의란 무엇보다도 책으로서는 터득할 수 없는 하나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어떤 신비주의적 전통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 속에 실제 뛰어들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바랄 수 있는 전부는 이러한 뛰어듦이 고도로 바람직한 것이라는 느낌을 심어주는 일 뿐이다.  

제 1부 물리학의 길 

33.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에게나 다른 이에게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 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것이다. -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 

37. 모든 서양 철학이 다 그런 것처럼 물리학도 그 근원은 기원전 6세기의 초기 그리스 철학, 곧 과학과 종교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문화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학파의 현인들은 이러한 구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피지스’라고 불렀던 사물의 본질, 즉 진정한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다.  

40. 갈릴레오는 실험적 지식을 수학과 결부시킨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바로 이 점에서 그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42. 마음이 흔들리면 잡다한 사물이 생기지만, 마음이 고요하면 잡다한 사물이 사라진다.  

44. 이 책은 동양적 지혜와 서양의 과학 사이에 본질적인 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과학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한다.  

45. 우리는 먼저 현대 수학의 고도로 정교한 언어로 표명된 정밀 과학과, 주로 명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들의 직관은 언어로써 전달될 수가 없다고 주장되는 정신적 수련을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부터 다루어야 한다. 

46.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고, 중국의 노자는 “알아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동양에서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을 명명하는 데서부터 이미 그 가치 평가가 분명해진다. 

48. 불교의 선사들은 달을 가리키기 위하여 손가락이 필요한 것이지, 일단 달을 알아본 다음에는 그 손가락 때문에 마음을 써서야 되겠느냐고 말한다. 도가의 현자 장주는 이렇게 말했다.

고기를 잡으려고 망을 치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망을 잊는다.
토끼를 잡으려고 덫을 놓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는다.
뜻을 전하려고 말을 하지만 뜻이 통한 다음에는 말을 잊는다. 

52. 이러한 통찰은 갑자기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등식을 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욕탕 속에서 심신을 녹이고 있을 때나 숲 속이나 해변을 거닐 때처럼 허심할 때에 홀연히 떠오르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지적활동에 골몰하고 나서 잠시 쉬는 틈에 이 직관적 마음은 솟아나는 듯하며, 이것이 과학 연구에 희열을 가져다주는 명석한 통찰을 갑작스레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55. 과학에 직관적 요소가 있다면 동양의 신비주의에도 또한 추론적 요소가 있다.   

56. 이것은 동양적 전통에서는 지성이 영역밖에 있고, 생각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관찰함으로써 얻어지는 직접적 통찰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즉 스스로의 안에서 바라보는 것에 의해서, 관조에 의해서, 도교에 있어서 이 관조의 뜻은 본래‘본다’는 것을 뜻하는 ‘관’이란 도가의 사원 이름속에 구체화되어 있다. 

59. 마치 섬광 속에서처럼 우리는 그 잊었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여기엔 사고 과정은 들어있지 않다. 그것은 정말 갑작스러운 직각적인 통찰이다.  

60. 직관적인 통찰이 익살의 밑바탕을 순간적으로 꿰뚫을 때에만 우리는 그 익살이 의도했던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61. 동양의 예술 양식들 역시 명상의 양식이다. 그것들은 예술가의 이념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의식의 직관적 형태를 발전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자기 실현의 방도인 것이다. 인도 음악은 악보로 읽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연주를 듣고 음악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킴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극 운동도 구두 지시에 따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생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거듭거듭 반복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일본의 다도는 느리고 의례적인 동작으로 가득 차 있다. 중국의 서도는 억제되지 않은 삼매경의 손놀림을 요구하고 있다. 동양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모든 기예는 의식의 명상적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쓰이고 있다. 

62. 학문을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준다. 

75. 여기에서도 스승은 물론 자연이며, 그것은 선사처럼 어떠한 서술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수수께끼를 던져 주는 것이다.  

79. 동양의 신비가에 의하면 실재에 관한 직접적이고 신비적인 체험은 그 사람의 세계관의 바로 그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스즈키 다이세쓰는 그것을 “경험의 모든 표준 형태를 다 뒤엎는, 인간의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고 하였다.  

90. 아인슈타인은 자연 본래의 조화를 굳게 믿었고, 그의 과학적 생애를 일관하고 있는 가장 깊은 관심은 물리학의 통일된 바탕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제 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 

117. 한두교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불릴 수도 없고, 또한 잘 정의된 종교도 아니다. 그것은오히려 수많은 종파와 의식과 철학적 체계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하고도 복합적인 사회 종교적 유기체이며,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잡다한 남신과 여신을 경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교 의식과 예식 및 정신적 계율을 포함하고 있다.  

118. 힌두교의 대다수가 나날의 예배를 통해 살아 있는 민간신앙을 지켜오는 소박한 주민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힌두교는 심오한 통찰력을 전수하는 탁월한 정신적 스승들을 수없이 배출해 왔다.  

125. 서양인들은 힌두교의 신화를 다양한 모습과 육화를 통해 꽃피게 한 남신과 여신의 그 황당무계할 정도의 엄청난 숫자에 그만 혼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힌두교도들이 이처럼 수많은 신들에 어떻게 다 대처하는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모든 신들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다 동일하다는 힌두교의 기본적 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들은 모두 다 같은 거룩한 실재의 갖가지 현시며, 무한하고 무소부재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브라만의 다른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27. 불교는 소위 역사상 부처인 싯다르타 고타마라는 단일한 창시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기원전 6세기 중엽 중국의 공자와 노자, 페르시아의 차라투스트라,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등 수많은 정신적, 철학적 천재들의 탄생을 보았던 그 범상치 않은 시기에 인도에서 생을 누렸다.  

부처는 이 세계의 기운이나 신의 본성, 혹은 이와 유사한 문제에 관한 인간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인간 존재의 고뇌와 좌절 등 인간적 상황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므로 그의 교리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요법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 인간적 좌절의 기원과 그 극복 방법을 교시하였는데, 이 목적을 위하여 마야, 카르마, 니르바나 등과 같은 인도의 전통적 개념들을 받아들여 그것들에 새롭고 생동하는, 막바로 들어맞는 심리학적 해석을 가하였다.  

대승 불교가 아시아 전역에 전파됨에 따라 각기 상이한 문화와 정신을 가진 많은 민족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부처의 교리를 해석했는데, 그 오묘한 점들을 세밀하게 다듬고 거기에다가 그들 고유의 사상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불교를 세기를 초월하여 살아 있게 하였으며, 심오한 심리학적 통찰력을 갖춘 고도로 정교화된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128. 이것은 싯다르타 고타마가 숲 속에서의 7년 고생 끝에 어느 날 밤 겪었던 체험이다. 그는 ‘정각수’라고 하는 그 유명한 보리수 아래서 깊은 명상 속에 잠겨서 ‘좌정’해 있던 중 ‘더 능가할 것이 없는 완전한 깨침’가운데서 그가 찾고 의심하던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확연히 청정해짐을 얻었고, 이로써 ‘불타’즉 ‘각자’가 된 것이다. 동양 세계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불타, 즉 부처의 상은 서양에서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상처럼 특별한 의미를 띠며, 명상하는 부처의 훌륭한 조각품을 창조해 낸 전 아시아의 수없는 예술가들을 분발 고무시켜 왔다.   

138. 도가에 따르면 인간적 행복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직관적 지혜를 믿을 때 얻어진다는 것이다.  

139. 도교의 창시자는 노자다. 도덕경, 즉 [길과 힘의 경전 Classic of the Way and Power] 이라는 후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대개 알려져 있다.  

140. 공자의 어록인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은 중국적 사유방식의 전형이라 할 간결하고 암시적인 스타일로 쓰여 있다. 중국 정신은 논리적으로 추론해 들어가는 일이 없어 서양에서 진화되어 온 것과는 사뭇 다른 언어를 발전시켰다.  

148. [역경]에 의탁하는 목적은 단순히 앞날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의 소인을 찾아 적절한 행동을 취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역경]을 보통 점술서의 차원을 넘어 지혜의 서로 끌어올린 것이다. 

155. 힌두교나 불교와 마찬가지로 도교는 추론적인 지식보다 직관적인 지혜에 보다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156. 장주의 책은 추론과 변설을 경멸하는 글귀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개가 잘 짓는다고 좋은 개로 인정받는 게 아니고,
사람이 능숙하게 말한다고 슬기롭다고 인정되는 게 아니다.  

157. 도가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변용과 변화가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158. 어떤 것을 달성하려고 할 때 그 반대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말한다. 

좁히려면 반드시 먼저 펴 주고 약화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강화 해 주고,
때려 눕히려면 반드시 먼저 치켜주고 뺏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오묘한 지혜라고 한다. 

구부려라. 그러면 당신은 곧게 되고, 텅 비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가득 찰 것이며
다 닳고 해지면 새로울 것이니... 

162. 노자는 말한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다.
현자는 행함이 없이 그의 일을 수행하고 말함이 없이 그의 가르침을 준다. 

165. 선은 이처럼 상이한 세 문화의 철학과 특질이 독특하게 융합된 것이다.  

167.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보고 불성을 얻는다.  

169.“배고플 때 먹고 피곤할 때 잠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한다는 것은 오랜 훈련을 필요로 하고,그래서 정신적 위업을 이루는 것이다.

유명한 선가의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선을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다.
선을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개오를 얻고 나면 산은 다시 산이고 강은 다시 강이다.  

170. 나는 이미 일본인의 다례인 자노유의 느리고 의식적인 동작과 서도와 회화에 요구되는 무의식적인 손놀림, 그리고 ‘전사의 길’을 뜻하는 ‘무사도’의 정신에 대해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제 3부 대비 

186. 현대 물리학으로부터 도출되는 상호 연결된 우주적 망이란 상(이미지)은 동양에서 자연에 대한 신비적 체험을 전달하는 데 널리 쓰여 왔다.  

187.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에 따라 도출된 자연이다.” 

193. 노자는 이르기를 “세상에서 미를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추가 존재하며, 선을 모두 선한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사악한 것이 존재한다. 라고 하였다. 신비가는 지성적인 개념의 영역을 초월하며, 그것을 초월하는 가운데 그는 모든 대립적인 것들의 상대성과 양극 관계를 알게 된다. 

195. 동양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란 선을 위해 분투하고 악을 소멸시키는 불가능한 과업을 떠맡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선과 악 사이에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197. 노자의 말에 의하면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란 “남성적인 것을 알고서도 여전히 여성적인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204. 힘과 물질, 입자와 파동, 운동과 정지, 존재와 비존재- 이것들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초월된 대립 개념이거나 혹은 모순 개념들 중의 일부다. 이러한 모든 대립하는 쌍들 중에서 마지막 것이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원자 물리학에 있어서도 역시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까지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양자론 가운데에서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며, 그래서 계속 그 해석 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215. 현대 물리학은 동양의 신비주의의 기본이 되는 사상의 하나를 가장 극적으로 확증시켰다. 그것은 곧 우리가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모든 개념들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실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지도의 부분들과 같은 것이지 영토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킬 때마다 우리 정신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고 우리는 어떤 개념들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방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238. 세월의 흐름을 잊어버리세. 의론의 분분함도 잊어버리세. 무한한 경계...노닐면서 거기서 우리의 안식처를 마련해 보세. 

252. 불교도에 있어서 각자란 생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그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다. 선승 운문은 “도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간단히 "계속 걸어가라”라고 대답하였다. 따라서 불교도는 부처를 ‘여래’즉 ‘왔다가 그렇게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중국 철학에서는 유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재를 도라고 부르며 모든 사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우주적 작용으로 본다.  

258. 우리의 은하계인 운하수는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공간을 돌고 있는 커다란 원반 모양의 별들과 가스다. 

263. 미시적 세계의 탐구는 오랫동안 인간의 사색을 사로잡고 자극하여 왔던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 곧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의해서 유발되었다.  

264. 에너지는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데 사용되어 온 가장 중요한 개념들 중의 하나다. 일상 생활에서와 같이 어떤 물체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물체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77.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부터 와서,
그것으로 돌아갈지니,그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 

278. 물리학자의 아원자적 세계와 같이 동양 신비가들의 현상적인 세계는 끝없이 이어지는 탄생과 죽음 곧 윤회의 세계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은 허의 순간적인 현현이므로 아무런 근본적인 주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을 특히 불교 철학에서 강조되는 것으로서 어떤 물질적 실체 같은 것의 존재를 부정하며 또한 지속적인 경험들을 겪는 변치 않는 ‘자아’라는 생각은 하나의 망상이라고 간주한다.   

289. 진공이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끝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입자들을 함유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대 물리학이 동양 신비주의의 허(虛)에 가장 가까운 유사점이 있는 것이다. 

327. 대칭에 대한 동양 철학의 태도는 고대 그리스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극동의 신비적 전통들은 대칭적 모형들을 상징이나 명상의 방편으로 자주 활용하지만, 대칭의 개념이 그들의 철학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자연의 속성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소산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동양의 예술 형식들은 비대칭을 현저하게 편애하였으며 완전히 규칙적이거나 기하학적 형상은 종종 기피되고 있다.  

353. 변화와 변역에 의하여 생성되는 그 역동적인 모형들의 개념으로 인하여(역경)은 어쩌면 동양사상에서는 S 행렬 이론에 가장 가까운 비유가 된다. 두 체계에서 강조되는 것은 대상물보다 작용면에 있다.  

365. 동양의 현인들은 대체로 사물을 설명하는 데 흥미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물의 통일성에 관한 직접적이고 비지성적인 경험을 체득하는 데에 더욱 흥미를 두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인생의 의미, 세계의 기원, 열반의 세계에 관한 모든 질문에 대해 ‘고귀한 침묵’으로 대답을 해주었던 부처의 태도다. 무엇인가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선사들이 하는 불가해한 대답도 제자들에게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즉 모든 것이 다른 것의 결과라는 것, 또 자연을‘설명’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의 통일성을 보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뜻한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설명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366. 말과 설명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이 동양 신비주의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다. 도교도와 불교도들은 모두 ‘말의 그물’또는 ‘개념들의 그물’에 관해 언급하여 상호 연결된 망이란 생각을 지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374. 각 입자가 다른 모든 입자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개념은 동양의 신비주의 속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신비 사상에 있어서도 일어났다. 예를 들면 그것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유명한 단시에 암시되어 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그리고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하여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그리고 하나의 시간에 영원을 간직하라.

380. 참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참 알고 있지 않다.  

맺음말 

385. 현대 과학이라는 것이 그 모든 정교한 기계 장치를 가지고서도 동양이 현인들에게는 수천 년 동안이나 알려져 왔던 고대의 지혜를 단지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그 과학적 방법을 버리고 명상을 시작해야 하는가? / 나는 과학과 신비주의를 각각 추론적인 것과 직관적인 것 두 능력을 지닌 인간 정신의 상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물리학자는 추론적 정신의 극단적 전문화를 통하여 세계를 경험하고, 신비가는 직관적 정신의 극단적 전문화를 통하여 세계를 경험한다.  

중국의 고언으로 부연하자면 신비가들은 도의 가지가 아니라 도의 뿌리를 이해하고, 과학자들은 뿌리가 아니라그 가지를 이해하고 있다. 과학은 신비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신비주의는 과학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러나 인간은 그 둘을 필요로 한다.  

386. 신비주의적 경험은 사물의 가장 깊은 본성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하고 과학은 현대 생활에 긴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종합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직관과 과학적 분석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제 2판 후기  

391. 그때 아인슈타인은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라는 저 유명한 은유로 보어의 양자 이론 해석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제 3판 후기  

412. 새로운 패러다임에 있어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보다 더 대칭적이다. 우리는 확실히 부분들의 속성을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는 동시에 부분들의 속성은 전체의 역동성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체가 일차적이며, 일단 전체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나면 최소한 원리상으로 부분들의 상호 작용의 속성과 형태들을 유도해낼 수 있다.  

413. 과정을 통한 사고는 동양적 신비주의 전통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것들의 개념, 이미지, 신화들 가운데 대부분은 시간과 변화를 본질적 요소로 하고 있다. 힌두교, 불교, 도교의 경전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세계는 운동, 흐름, 변화를 통해서 지각된다는 것이 보다 분명해진다.  

414.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보는냐에 달려 있다. 

415. 데카르트는 그의 유명한 저서 [방법서설]에서 당시의 과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그와 같이 흔들리는 토대 위에는 단단한 어떤 것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나서 데카르트는 확고한 토대 위에 새로운 과학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418.“과학은 잠정적인 대답을 통해서 자연 현상의 본질에 더욱 깊이 도달하려는 일련의 더욱 미묘한 물음들을 향해 나아간다.” 

419. 나의 마지막 기준은 관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장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핵파괴의 위협과 자연 환경의 황폐화에 직면해 있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과학과 기술의 바탕을 이루는 방법들과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인간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로부터 협조와 비폭력의 태도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카프라 박사와 월드스타‘비’는 닮았다(?)
어떤 인터뷰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지독한 연습벌레로 알려진 월드스타‘비’는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몸 만들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이중적인 매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였어요. 얼굴은 여성적이지만, 몸은 남성적인 그런 매력이요.”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머리가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카프라 박사의 책을 읽으면서, ‘비’가 말하는 이중적인 매력을 그에게서 느꼈다.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접목이라는 것은 왠지 쌩뚱맞아 보이지만, 물리학자의 명쾌한 논리로 동양사상을 조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으니까..동양사상에 대한 미시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은, 정체불명의 안개같았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 주었다. 그는 힌두교, 불교, 도교, 주역 등 동양사상을 통틀어서 신비주의라 했다. 물리학자로서 직접 동양의 태극권을 연마하는 등 동양사상을 체험하는 경험이 있었기에 물리학과 신비주의의 통합적 분석이 가능한 저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님이 미리 주의를 주실 만큼, 읽기에 어려운 책이다. 역시 어려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없었으면, 읽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구원 생활이 끝나도, 연구원 생활의 습성(?)을 계속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저자라면]을 생각하면서, 카프라 박사처럼, 두가지 주제를 정해서 하나로 융화시킬 수 있는 내가 가진 이중적 매력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쓰려는 책의 주제와 내가 잘 할 수는 음악을 매칭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그런 고민의 내용들을 첫 책의 목차에 넣어봐야겠다. 

[목차]
제2판 역자 서문
제1판 역자 서문
제2판 저자 머리말
제1판 저자 머리말  

제1부: 물리학의 길
1. 현대 물리학 - 마음을 담은 길?
2. 아는 것과 보는 것
3. 언어를 초월하여
4. 새로운 물리학  

제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
5. 힌두교
6. 불교
7. 중국 사상
8. 도교
9. 선 

제3부: 대비
10. 만물의 통일성
11. 대립의 세계를 넘어서
12. 공간 - 시간
13. 역동적인 우주
14. 공과 형상
15. 우주적 무도
16. 쿼크 대칭들 - 하나의 새로운 공안
17. 번역의 모형
18. 상호 관통 

맺음말
제2판 후기: 다시 찾은 신물리학
제3판 후기: 신물리학의 미래
참고문헌
찾아보기
해설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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