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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6일 12시 28분 등록

<<열정과 기질>>

1.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

 하워드 가드너는 1943 7 11,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스칼튼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하버드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1981년에 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수상했다. 2005년과 2008년에는 Foreign Plicy and Prospect magazines 에서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껏 그가 저서 25권은 모두 28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가드너는 15년동안 굿워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9개의 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1,500명의 사람들을 10년간 인터뷰해서 과연 굿워크란 무엇이며, 그것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자질을 연구, 관찰했다. 그는 다중지성이론의 창시자이며,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꾼 <마음의 틀>을 통해 다중지능 이론을 발표 후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지난 20세기 동안 미국의 교육계는 IQ에 대한 열광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능에 순위가 있다는 개념은 효율적이고 잘 정비된 교육 체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게 된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개념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전 생애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시험과 단순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 IQ가 주도하는 현실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해왔다. 뇌 손상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예술 분야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연구는 뇌가 얼마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 <마음의 틀 : 다중지능>에서 가드너는 일곱 가지-음악, 신체, 논리수학, 공간, 언어, 인간친화, 자기성찰 지능-지능을 제시했다. 그가 처음 만든 이 이론이 심리학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교육계에서 좀 더 널리 알려졌고, 꽤 유명해졌다. 그래서 몇몇 사립학교에서는 그가 제안한 교육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구체적인 교육제도를 제안하고 있지는 않다. 가이너는 교육이란 개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마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이 가장 잘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신체 지능이 매우 발달한 학생이 논리 지능과 언어 지능만 평가하는 학교에 배치된다면 그 학생의 자존감은 매우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이 가능성을 가진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매우 잔인한 일이 된다.

가드너는 미국인은 항상 옳은 일만 한다. 그러나 모든 다른 대안들을 다 시도해본 다음에야 그렇게 한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인용구를 좋아한다. 가드너가 원하는 것은 현재의 교육처방을 다중지능으로 모두 바꾸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다양하게 탐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지를 남겨놓을 수 있는 교육이다.

 

그가 창시한 다중지능 이론은 두 가지 개념으로 함축시켜 말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개인화인데, 개인이 필요로 할 때마다 언제든 그들이 학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고, 편안하게 그들이 학습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하나는 다원화이다. 이는 한 동전의 다른 면과 같다.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배울 것인지를 학습시키는 것, 배움을 지속할 욕구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학교에서 할 일이라고 가드너는 이야기한다.

 gardner.JPG

<열정과 기질>을 통해 만난 하워드 가드너를 정의하자면 정직한 연구자이자 친절한 필자이다. 본인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할 것인지, 연구 대상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왠지 이런 연구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려줄 목적으로 책을 쓴다면, 연구과정보다는 연구결과와 그에 대한 해석을 전달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 같은데, 그런면에서 하워드 가드너는 참 정직한 연구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가드너가 끊임없이 비판해 온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교육 방식에 젖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배울 것인지를, 계속 배우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학교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가드너 역시 본인이 쓰는 책을 통해서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책을 통해 고민했던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의 방법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고 제시함으로써, 독자나 이런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있는 다중지능의 이론의 그가 쓰는 책에서도 철저하게 적용하는 그를 보니, 그는 실천가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0년이상 30년 가까이 다중지능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가드너를, <열정과 기질>에서 그가 연구했던 대상들처럼 그의 창조성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다.

<참고자료>

1.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howard_hardner

2.     하워드가드너 개인 홈페이지 www.howardgardner/com/bio/bio.html

3.     브레인 미디어 가드너 인터뷰 www.brainmedia.co.kr/people/1335

4.     열정과 기질의 저자 소개 부분

5.     사진출처 http://www.aifestival.org/speakers.php?year=2010&id=315

 

2.     내가 저자라면

1)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

-       반복적 인지 : 책의 목표, 연구방식에 있어서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등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 함으로써 독자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는 필자가 독자에게 얼마나 공감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       각 장의 정리 및 다음 장 정리 : 각 장의 마지막 단락은 전체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 할 수 있게 해주고, 이후의 장에 나오는 내용을 일러주어서 각장의 내용과 이후 장과의 연결을 이해하기 쉽다.

-       간주곡 : <열정과 기질>의 필자는 참 친절하다. 본인이 어떤 얘기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툴로 할 것인지에 자세히 얘기하더니, 이제 중간에 쉬면서 했던 얘기를 또 다시 한번 정리 해 준다.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정말 간절해 보인다.

-       창조자들의 사진 : 피카소. 말로만 그리고 그림으로만 만나던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       창조자들이 동시대의 사람 : 동시대의 사람이라서 7명이 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왠지 놀랍게 느껴졌다. 전부가 서로 만났던 것은 아니지만,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만났다는 것, 7명 중 일부의 인맥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왠지 .. 이들도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천재이지만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       피카소의 그림과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사진 : 피카소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그림으로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레이엄역시 그녀의 인생과 그녀의 무용의 일부가 담긴 사진을 보며 그녀의 무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어투브를 통해서 그녀의 무용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      창조자들의 일생 : 정말 좋았던 점은, 창조자들의 일대기를 시간의 순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유년기, 10년의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 두번째 도약의 시기, 그리고 말년. 이 모습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부분이다. 

-       실제 쓴 편지, 글의 발췌 : 피카소가 썼던 글의 일부를 그대로 발췌 해둔 부분들이 있다. 왠지 그 사람의 날 것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       공통점의 언급 : 각각 인물을 서술하는 장에서 비슷한 다른 천재와의 공통점을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스트라빈스키 편에서 관객과의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엘리엇의 황무지’, 피카소의 초기 입체주의 시절에도 그러했다고 하는 등. 비슷한 경험에서 다른 사례까지 얘기 해 주니, 비교분석이 훨씬 쉽다.

-       1부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3부에서도 언급하면서 정리한 점은 연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되었고, 본인의 연구에서 남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고찰하고 책에서 언급한 점은 훌륭한 시도인 것 같다.

-       다중지능 이론을 염두에 둔 것 같은 책의 구성

 

2)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       물리학 용어들의 어려움 : 아인슈타인의 사례연구편에서 상대성이론, 물리학과 관련된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왔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이긴 하겠지만, 이해하기는 많이 어려웠다. 그렇게 구체적으로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       여성연구대상자 : 창조성을 가진 자들 중 여자가 그레이엄 뿐이라는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분명, 동시대에 훌륭한 여성들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엘리엇의 생애를 얘기하면서 등장했던 버지니아 울프만 봐도!!! 성비도 조금 더 맞춰서 연구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내가 저자라면.

지금 내가 이 책을 쓴다면

-       대한민국에 국한시켜서 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거나, 대한민국의 교포도 포함.(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이런 사람들이 태어나는게 가능할까?)

-       21세기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연구대상을 선택할 것이다.

-       발레리나 강수진을 포함 다양한 각자의 분야에서 10년이상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 중에 선택할 것이다.

-       대상자들은 반반으로 나누어서, 대한민국에서만 교육을 받아 그런 창조성을 보여준 사람의 예와,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교육받고 자라서 창조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하고 싶다.

-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은 유아기, 유년기의 관심사, 사람들과의 관계-가족,친구 등-들이 창조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은 가드너와 비슷하다.

-       내가 하는 연구를 통해 알고 싶은 가장 큰 것은, 대한민국의 현재 교육이 가드너가 이야기하는 다중지능의 7가지 중 어떤 지능을 가진 이에게 적합한 교육환경이고, 어떤 지능을 가진 이들에게는 취약한 것인지를 알아보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교육환경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이다.

 

3.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며 창조성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세계 국가의 국부의 순서는 창조성의 지표인 특허출원 총량순위와 일치하며, 조직과 기업은 감동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상품과 시스템을 얼마나 선보이느냐로 그 존재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p5

이 책은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그가 처한 주변환경, 그리고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 본질을 날카롭게 조명해낸 최초의 분석서이다. p6

가드너는 이 두 입장을 종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업적을 낸 창조자를 선택한 후, 이들 인물의 특이성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그 속에서 공통성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이 책의 목표는 두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p7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창조성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고, 창조성에도 종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논리-수학 영역에서만 창조성이 뛰어났다. 간디는 인간친화 영역에서 창조성이 뛰어났으며, 마사 그레이엄은 신체운동 영역에서, 스르라빈스키는 음악에서, 엘리엇은 언어에서, 프로이트는 자기성찰 영역에서, 그리고 피카소는 공간 영역에서 창조성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p8

가드너는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환경을 들여다봄으로써 공통적 패러다임을 추출해낸다.

두번째 목표는 이런 사람들의 창조성 발휘를 가능하게 한 시대적 특징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대개는 자유사상에 관용을 베풀줄 알았다. 그들은 근면과 드높은 성취라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체험했을 뿐더러 이것을 자식들에게 전수했다. p9

 

<들어가는 글>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지배한 실험정신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책을 끝내고 싶었지만, 4반세기에 걸친 에움길에 돌아온 지금에서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p13

20세기 초반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분출되었던 과학, 예술, 정치 방면의 눈부신 창조적 업적에 매료되었다. p14

창조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게 된 두 가지 계기.

첫번째 계기는 내 연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다.

두번째 계기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발달심리학, 교육심리학 분야에서 훈련받았고 관심사가 서로 비슷하며 이들 주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 그룹에 내가 소속했다는 점이다. p16

나는 특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이론 공식에 기초해서 창조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발전시켰다. p17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을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 복잡한 주제를 쉽게 다루기 위해 중간중간에 서술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으며,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곳에 세 개의 짤막한 해설(간주곡)을 삽입했다. p19


자네가 읽은 책이 무슨 소용이겠나

답을 찾았지만 해답 없는 인생을 살았을 뿐.(젊은이, 제스와프 미워시) p21

 

1 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익살’(1974년에 초연된 톰 스토파드의 희극)의 진면목은 당시 스위스에 우연히 살게 된 역사적인 인물들의 초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p30

요즘에는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술가란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마술사와 같습니다. p31

무엇보다도 문화적취향이 제각각이고 삶의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들이 유럽의 한 도시에 무일 수 있다는 상상, 그리고 순전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서로 알고 지냈으리라는 상상은, 더 이상 지역과 지역이 멀리 떨어져 존쟇자ㅣ 않게 된 세상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구상이다. p32

 

1)     일곱명의 창조적인 사색가

마하트마 간디. 평화적으로 지향하는 혁신적 방법을 지속적으로 생각해내고, 전쟁이 끝나자 인도에 비폭력적인 정치 혁명을 일으키면서 전세계에 걸쳐 폭넓은 반향을 일으킨다. p34

 

2)     이 책의 목표

세가지 중요한 목표.

첫째,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이를 통해 그들 나름의 특별하고 종종 기묘하게도 보이는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 그리고 그들이 성취한 업적의 특성을 밝힐 생각이다.

 

두번째,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분야에 상관없이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 통어하는 법칙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성품과 조건이 20세기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며, 우리가 이런저런 사상을 구상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또한 다양한 사상들에 반응하는 방식에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 그들을 형성했고 또한 그들이 그 특성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시대에 관해서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7

차오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잇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3)     구성적 주제

분석틀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진다.

창조적인 인물, 창조적인 행위의 대상이나 작업(), 그리고 창조적인 인물의 세게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p38

아동과 대가의 관계 :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고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 창조적인 인물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성격을 쇄신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개인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행하는 역할과,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다. p39

 

<세계에서 자아로, 다시 자아에서 세계로>

실제로 프로이트는 다양한 과학적 견해와 임상 방법을 터득하고 이를 종합하여 정신분석학을 창안했다. 물론 홀로 자신의 꿈을 분석하여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시도했던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p40

나의 첫 번째 사례 연구에서는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해서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이 기본 틀이 된다.

 

<아동과 대가>

아인슈타인은…. 당시 물리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과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기 대문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대신 그는 제1원리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설명 원리를 찾고자 했다. p41

사실 그가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수께끼는 훗날 그의 가장 혁신적인 과학적 업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p42

 

<신동과 천재>

피카소는 일찍이 눈부신 솜씨를 발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된 신동에 대한 훌륭한 연구 대상이다. p42

 

<음악의 정치성>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창조적인 혁신은 전통적인 분야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사고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무용이나 연극과 같은 인접 분야에도 방향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엘리엇은 30대에 창조성의 절정에 이른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먹은 뒤에도 지속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인물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생애는 창조적인 인물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것이다. p44

 

<창조적인 미국여성>

그레이엄은 이전 시기에 여성에게 부과된 여러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기만의 예술 형식을 창조했고,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자신의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

당연히 그녀는 많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었고, 이들이 좀 더 쉽게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청중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p44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

간디는 그가 몸소 간여해서 폭넓게 검토하고 세심하게 실험하면서 인간의 갈등을 폭력 없이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간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데, 좀더 인상적인 사실은 몸소 용기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귀감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들의 고유한 생애를 아우르는 연결의 수준을 넘어서, 교육상 의미 있는 이들의 개별 사례에 두루 두루 해당하는 공통점을 넘어서, 교육상 의미있는 이들의 개별 사례에 두루 해당하는 공통점을 찾아내는 한편, 이들 간의 차이점을 부각시킬 생각이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사례 연구는 아동과 대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프로이트와 스트라빈스키, 간디의 경우는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엘리엇과 그레이엄의 사례 연구는 이들이 활약하는 분야에서 비교적 경계적인 위치에 속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둘 것이다.

창조적인 인물과 그가 활약하는 분야의 변증법적 관계는 이 책에서 변함없이 주목하는 주제이다. 모든 사례 연구에서 나는 개인과 그가 속한 분야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주목할 뿐 아니라, 그가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상징체계를 구상하고 보급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p46

 

4)     동시대인들에 관한 연구

중요한 것은 이들의 창조 여정과 작품을 정확히 조사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p47

 

5)     한 시대의 조명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p49

다만 한 개인이 어떤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편이 훨씬 신중한 의견이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작업이나 성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러한 상호 영향이 법칙이 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p50

 

6)     현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유럽과 동유럽에 만연한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제도의 퇴조와 공통 지식의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는 불온하다 싶을 정도로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모한 창조적 열정이었다. p53

일단 전통과 관습이 특정한 예술 및 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전통과 관습이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회하가 존재할 수 있다면 새로운 무용이나 시 혹은 정치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순식간에 전세계에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p54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혁명적 시대의 특징으로서, 그 도전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1900년 무렵은 특별한 성격을 갖는 시기로서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p55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1)     창조성 연구와 지능 연구

심리측정학자 길포드는 창조성과 지능이 똑 같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사람이 창조적인 잠재력을 지녔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수십년 동한 심리학자들은 상당한 논쟁과 실험을 거친 후 세가지 결론에 도달

첫째, 창조성은 지능과 다르다는 점이다. p50

두번째, 창조성 검사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 창조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전문 직업이나 여기에서 창조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p60

 

2)     창조성에 대한 인지적 접근

3)     성격과 동기부여의 관점

버클리 성격 연구소가 수행한 이 방면의 대표적인 연구에 따르면,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p65

 

<정신분석학적 관점>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작가의 환상 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행동과학의 관점>

정신분석학 전통과 미국의 행동과학 학파(…..) 두 학파는 모두 개인이 창조 활동을 하는 것이 주로 물직적인 보상 때문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내재적 동기>

아마빌라는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창조성이나 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p68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한 개인이 어느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몰입 경험의 궤적이 변하게 마련이다. 한때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라 여겼던 일이 쉽게 달성할 만한 일, 심지어는 유쾌한 일이 된다. 반면에 오래 전에 성취했던 일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p69

 

4)     역사계량학의 관점

시인과 수학자는 20대나 30대에 절정에 도달하는 반면, 역사가나 철학자는 이보다 수십 년 뒤에 정점에 이른다. p71

 

5)     창조성에 대한 나의 접근법

나의 접근법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6)     구성적 주제-재론

구성적 주제는 순서와는 상관없이 대체로 다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관심사. 아동과 청조적인 어른의 관계이다. 이는 어린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사례)

두번째 구성적 주제.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천착한다. 다른 사람들로는 창조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이나 친밀한 친구들), 교육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교사나 스승), 그리고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동료나 경쟁자, 혹은 추종자들)이 있다.(프로이트, 간디, 스트라빈스키) p75

남은 두 사례 연구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좀더 추상적인 관계를 탐구한다. (엘리엇, 그레이엄)

세 번째 구성적 주제. 창조적인 인물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이다.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p76

 

7)      구성적 틀

<발달>

인생행로 :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 발견은 한층 더 심오한 배움과 발견에 이르는 기본 바탕이 된다. p77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유년기야말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p78

아주 어린 시절에 축적해 놓은 자원을 파헤치는 것은 바로 현대가 부과한 짐인 것이다.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p79

창조적인 도약을 이룬 인물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탐구자이며 혁신가이고 사색가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수를 다르는 데만 만족하지 않으며, 선택한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공공연히 권위에 도전하든 그렇지 않든,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 p80

 

창조활동: 나는 발달 과정의 바로 이 시점에서 드러나는 창조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나는 각 인물들이 창조적인 과제를 이루기 위해 염두에 두었던 정신적 모델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해당 분야의 공통어 혹은 상징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곧 여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한층 더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그가 임기응변 식의 해결책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직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좀더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이루거나 새로운 사고방식을 택하기 위해서는 국지적인 해법을 버려야 한다.

창조자는 이제 혼자서라도 복잡한 사정을 모두 감안하여 핵심 쟁점이나 성과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p82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상호관계의 관점:개인과 분야 및 장의 상호작용>

정의.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p83

나는 창조적인 인물이 정규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창조성은 문제 풀이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이나 새로운 질문의 고안도 포함할 수 있다.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p84

 

학제적인 분석틀.

창조성은 어느 한 분야에서 전적으로 도맡아 연구할 수 없는 현상 내지는 개념이다.

창조성을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는 다음 네 가지 분석 수준에서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개인성 / 개인성 / 비개인성 / 다개인성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창조성 연구는 창조성이 위대한 인물의 성과라는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p87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

낯설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아주 적절한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p89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장의 판단이 없으면, 어떤 사람이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생산적인 비동시성>

창조성은 그런 완벽한 조화에서 생기지 않는다. 비동시성이라는 용어로써 나는 창조성의 삼각형 내에 존재하는 부정 교합과 예외적인 유형 및 불규칙성을 지적한다. p93

 

8)     경험적 조사 문제

<개인>

<분야>

<>

 

9)     새로 발견한 주제

<도약의 시기에 받는 지원>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로 하고, 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인 지원도 필요로 한다. p98

 

<파우스트적 거래>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p98

 

2 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1)     첫 제자들

수요 심리학회라는 모임은 프로이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p105

 

2)     성장 배경과 유년 시절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p107

 

3)     프로이트의 다재다능함

프로이트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의학 학위를 받을 때까지 8년 동안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 그는 성경, 고대의 고전, 독일어나 영어로 출판된 셰익스피어 작품,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레싱, 괴테, 실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p108

편지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상을 주는 부분은 결점 투성이인 인간 세계에 강한 매혹을 느끼고 이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이해했다는 점이다. p110

여성이 가정과 직업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이 프로이트가 제기했던 물음들이다.

바야흐로 현대의 문이 열리느 시대에 문명 세계의 중심지에 살면서 영향력 있는 스승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프로이트에게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무한했으리라 보인다. p112

 

4)     최초의 경력 : 신경학

그는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의지가 약한 제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문이나 성품 면에서 자신의 선례를 기꺼이 따르는 제자들에겐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p113

 

5)     샤르코와 정신의학에의 길

이 짧은 유학 시절이 프로이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 기간에 그는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과 생활방식을 시도했었다. p117

한때는 세상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프로이트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면, 그것은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p122

 

6)     고독, 그리고 친밀한 친구들

7)     프로이트가 창조적 도약을 이루기 직전의 심리학 분야와 장

8)     프로이트 혁명의 주요 개념

어떤 지적 혁명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하나만 집어내는 일은 위험하다. 이 위험은 특히 프로이트의 혁명적 사고와 같은 경우에서 두드러지는 법인데,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프로이트의 이론 체계에 힘과 매력을 부여한 것은 여러 맹아적인 관념들이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p129

<신경증>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p131

 

<심리학>

창조적인 인물들은 근본적인 비약을 이루기 직전에,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언어를 믿을 만한 친구에게 시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자기가 아주 미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소통에 대한 이런 욕망은 인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p136

 

<꿈과 자기분석>

모든 꿈은 각기 하나의 퍼즐인 셈이었는데, 그가 퍼즐 풀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p138

이러한 꿈들의 진짜의미를 분석하고 낱낱이 밝히는 과정은 프로이트의 우수한 지능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p139

 

<내용>

 

9)     꿈의 해석 : 1900년의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재능>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p145

프로이트가 어린 시절부터 자기 가족의 결점이나 문학 세계에 보인 관심이나 극적인 이야기 솜씨 등은 젊은 시절의 편지에서도 줄곧 드러났는데, 마침내 꿈을 다루는 글과 이후의 정신분석학 저술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러한 특색은 프로이트의 저작에 거역할 수 없는 매력과 한 번 읽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특성을 부여했다. p146

 

<프로이트의 과학적 접근법>

<처음의 반응>

 

10)  빈의 배경

현대성의 요람인 도시에서, 그 화려한 순간에, 클림트와 바그너와 루스는 프로이트와 말러, 비트겐슈타인과 상상의 커피숍에서 만나 어울리는 허물없는 친구 사이였다. p149

빈의 공식적인 여론과 실제적인 창조 여건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프로이트는 바로 이런 점의 혜택을 입었던 것이다.

지식인 은자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p151

 

11)  지도자로서의 프로이트 : 조직의 확대

프로이트는 또한 교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지만, 교수직을 얻기 위해 강단 정치판에 휘말려드는 것을 혐오했었다. p153

그는 각양각색의 청중 앞에서 역사와 예술, 당대의 독서물, 최근의 사건, 현재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의 관심사 등에서 적절한 예를 자유롭게 끌어들이면서, 친밀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로 폭이 넓은 강연을 할 수 있었다. p154

 

<정신분석학 운동의 아버지>

하지만 결국 프로이트는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충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불만을 품은 추종자들은 정신분석학 운동에서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p156

사회적인 문제에까지 관심폭이 넓어진 것은 자기 개인적인 경험이나 유럽에 불어닥친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기인했을 것이다. p157

이 중요한 여행에서 그는 처음으로 유럽 바깥의 세계에서 자신의 저서를 인정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p158

 

<프로이트의 명성>

추종자는 늘지 않고 제자들이 이탈하거나 자살하는 상황에서도, 프로이트는 젊은 시절 브로이어나 플리스와 맺었던 교우 관계가 결렬될 때만큼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 새로 만난 사람과 감정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기가 어려운 법이고, 동년배 친구들을 잃게 되는 일이 많아지므로 이런 일에 무감각해져야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더 크게 작용한 세가지.

하나.                 오랫동안 홀로 자기 생각을 발전시켰다는 점

둘.  프로이트는 남들이야 어찌 생각했건 자신은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했다.

셋.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어려운 작전을 수행하는 군대 사령관으로 여겼다. p159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p160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이 규칙의 첫 부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p161

 

<세계 도처의 추종자들>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ㅇ르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65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영원한 아이

1)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들

아이들은 다섯 살에서 열 살 무렵까지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면서, 신기하거나 두려운 현상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야외에서 산책하거나 밤에 잠을 자면서도 해답을 궁리하곤 한다. p169

<평범한 유년기>

그녀는 프로이트의 어머니가 어린 지기스문트를 애지중지한만큼 어린 알베르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냉정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런 면은 훗날 알베르트 역시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간혹 보이곤 했다.

알베르트는 드러내놓고 비사교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일찍부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p172

 

<청소년기의 탐구>

철학과 과학 저서를 읽게 되면서, 어린 시절 종교에 심취했던 마음은 거의 사라졌다.

자유로운 정신이 가득했고,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교사들도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라우 주립 학교에서의 경험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주변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호기심을 탐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p175

è  좋은 학교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처럼 공교육을 싫어했던 아이도 좋아할 수 있고,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되어야 할 것 같다.

 

2)     분야의 전문 지식 익히기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지리학과 금융 시장, 스위스 정치, 인류학, 지질학, 괴테의 작품 등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주류 과학 강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p177

주로 홀로 배움의 길에 나섰던 젊은 아인슈타인은 이미 인생 행로의 길을 정한 상태였다.

우리 시대에 물리학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많은 젊은이들처럼, 아인슈타인은 과거의 지식을 너무 많이 배웠다는 점이나 독일인들이 참고 문헌이라고 부른 것 때문에 곤란을 겪지는 않았다.”

è  기존의 방식, 편견에 얽매이지 않음을 뜻하는 것 같다.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 얼마나 자유롭게 사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창조성이겠지.

 

3)     과학적 배경 : 갈릴레오에서 로렌츠까지

<19세기 물리학의 발전>

맥스웰의 성과는 아인슈타인이 읽었던 다른 어떤 것보다 그의 관심에 부합했는데, 아마도 혼자 놀던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공상했던 주제들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p185

가설의 유효성은 얼마나 많은 자연 법칙을 포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p186

아마도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능력이 있으며, 물리학의 최신 성과물에 익숙해 있지만, 아직 현재 통용되는 관점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젊은이의 마음과 성숙한 어른의 마음을 모두 갖춘 사람일 것이다. p190

 

4)     아인슈타인의 객체 중심적인정신

프로이트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매료되었던 데 비해, 아인슈타인은 객관적 사물 간의 관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p191

어쩌면 믿을 만한 친구나 애인들의 이론적 자극이나 비판이 없었다면,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혁신적인 작업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리라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의 결혼 생활이 두 번 모두 실패로 끝났고 두 아들과의 관계 역시 순탄치 않았던 이유는,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갈망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p193

è  다른 사람에 대한 갈망이 부족했다는 것이 나랑 비슷한 것 같다. 나도 가끔 사람들에게 난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완전히 같진 않아도 조금 비슷한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p195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197

이유 없이 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래도, 거리낌 없이 혹평을 해대곤 했다.

권위에 반발하는 기질을 타고 난 아인슈타인은 특히 젊은 시절에는 윗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p198

 

5)     특수 상대성 이론이 나온 특별한 해

아직 20대 초반이던 1665년과 1666년에 걸쳐 아이작 뉴턴은 캠브리지 대학을 떠나 울스소프의 조용한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완전히 홀로 사색하면서 미적분학을 발전시켰고, 빛과 색채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통찰했으며, 중력 법칙을 발견하는 도정에 들어섰다. p200

 

<아인슈타인의 직업 세계 입문>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è  요즘 우리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사회 낙오자. 실패할 것 같은 인생.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초기의 혁멱정인 논문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요체>

<물리학자들의 사고 방식을 바꾸다>

다른 사람이라면 실험ㅇ르 통해 증면된 후에나 인정했을 법한 생각을 아인슈타인은 전제 조건으로 삼아 그로부터 추론을 전개했다.

더 오랫동안 더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오직 보편적인 공식(원리)을 발견했을 때만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과학 혁명의 대조>

과학 혁명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정신적 능력과 마음가짐을 만나게 된다. 우선 특정 분야의 연구 결과와 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다시 발견하는 경우가 생긴다. p209

프로이트와 다윈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교체하거나 앞 시기의 이론적 종합에 부분적으로 합류하는 대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노력의 성패 여부는 주로 그들의 이론적 모델이 전통적으로 인식된 현상이나 새로 발견된 현상을 얼마나 풍요롭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나게 되어 있었다. p210

반면 아인슈타인은 선행하는 이론 체계에 거의 직접 대응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인슈타인 이후 우리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다. p211

 

6)     상대성 이론 : 즉각적인 운명

<아인슈타인의 출세 가도>

7)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다 : 두 가지 투쟁

그는 대략 40대 후반 이후인 남은 반생동안, 시간을 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을 힘겹게 물리치면서 자기만의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리학 분야가 양자 역학 방향으로 진행되는 추세를 바꾸기 위해서도 그만큼 인정사정 없는 투쟁을 벌여야 했다. p220

 

<아인슈타인의 명성>

그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기한 사실, 그것도 상대성이라는 매력적인 표찰을 붙여서 제기한 것도 한 가지 요인이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평판은 그의 개인적인 성품에서도 연유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낙천적인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p220

강경하고 무뚝뚝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는데, 가령 미술사가들이 상대성 이론과 입체주의를 연결시키고자 할 때 그러했다. 그리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과학자들이 그의 주요 이론ㅇ르 악의적으로 왜곡할 때도 그는 냉담하게 침묵했다. p222

 

<세계 정치사에서 행한 역할>

이 점은 아무런 속박 없이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한 우리 시대 공통의 표지라 할 것이다. p223

6년 만에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의거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위력적인 폭탄이 제조되었고 폭발 실험이 이루어졌다.

아주 뛰어난 과학자들 아인슈타인 앞에서는 경외감을 느꼈다. p224

 

8)     일반 상대성 이론

9)     물리학의 주류를 거부하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전문 지식을 익힌 아인슈타인은 아직 젊은 나이에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쇄신했다. p229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서로를 무척이나 존경했고 30여년에 걸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상보성객관적 현실에 관해 논쟁을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방의 견해를 두렷하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진심과 성의로써 상대방을 대했는데, 이 점은 프로이트와 그의 적대자들 간의 관계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p230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그는 홀로였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과 모종의 장대한 설계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p231

è  결국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자기 확신인건가??

 

10)  직관적 지혜와 성찰적 지혜

나이가 들면 연구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 세계적인 명사로 인정받기에 참으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찬란한 고립의 시기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p252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그들을 능가하고 다음 10년 동안 여기서 한층 더 전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참신한 생각은 젊음의 특권이요, 일단 지나가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재능이다.

è  젊음의 특권.. 지금 나는 내 특권을 잘 누리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밀려드는 문장이었다. 그래. 잘 가고 있다.

젊음과 원숙함이 훌륭하게 결합한 아인슈타인의 지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선 그는 세상의 흥미로운 현상에 대한 관심을 평생 잃지 않았다. p253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이 말년에는 로렌츠와 푸앵카레가 된 셈이다. 그는 여전히 탁월한 통찰력을 지닌 사색가요 비평가였으며, 그에 대한 동료들의 존경심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p235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p236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다>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 만치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 작업에는 익숙치 않고 혼자서 일하는 스타일이다. p240

 

::: 간주곡 1 :::

과학자를 비롯한 학자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미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답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과학자의 소명은 더욱 빛이 난다. p243

두 사람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노력했는데, 어쩌면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에 다소 즐거움을 느낀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p244

아인슈타인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이고 어른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문제들이다. 프로이트가 몰두했던 주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종류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동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긴 하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 개시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p247

 

5.     파블로 피카소 신동과 천재

1)     신동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p250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어느 분야에서 전망이 있는아동이란 또래 친구들보다 이런 단계를 좀더 빨리, 그리고 무리 없이 밟아나갈 수 있는 아동을 가리킨다. p252

신동은 당대의 선도적인 혁신가들이나 역사에서 배운 모범적인 인물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거나 특정 분야의 일반적 규준을 익히는 등 자기만의 관심사에 주력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해 나가야 하고, 이렇게 주도권을 되찾게 되면 지금까지 그들의 경력을 관리해 온 사람들과 여러모로 충돌을 빚게 된다. p252

è  최근 김연아가 소속사나 코치와의 문제 등 여러 힘든 일들을 겪는 것도 이렇게 신동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을 깨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와 삶을 주도해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일 까?

일찍이 신동의 재주를 뽐냈던 카미유 생상스에 대해그는 모든 걸 알고 있지만, 미숙함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비꼰바 있다. p254

 

2)     신동 피카소

<재능의 발현>

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리한 방법이었다. p254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집요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다양한 화면 구성을 시도하고 똑 같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그렸으며, 호소력 짙은 극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았다. p258

피카소의 오만불손한 독립성에 대한 역할 모델로 의지가 강한 어머니나 경제적으로 튼튼한 삼촌 살바도르와 같은 다른 인물을 찾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런 실험적 성향이 생긴 이유는 좀더 내생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p259

 

<성장기의 체험과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억세고 강한 성격은 그녀만큼이나 고집이 센 아들의 성격과 충돌을 빚곤 했다. p261

 

<피카소의 유년기 작품>

<재능의 연마>

그는 경박하고 피상적인 표현 방식을 넘어서, 선원과 부두 노동자들의 내면 심리와 자연 풍경이나 거리 풍경의 저변에 흐르는 감정을 탐구했으며, 가족들의 삶이나 밤의 거리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사람들의 갈등과 긴장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p265

 

3)     파리의 젊은 예술가

오랜 시간을 화랑에서 보내면서 자신이 본 것을 모두 흡수했으며, 적어도 겉보기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것을 불러낼 수 있었다. p267

피카소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피카소의 주된 주제는 이제 빈곤에서 보헤미안적 예술가의 삶으로 이동했다. p269

è  천재도 사람인지라..사랑의 영향을 받게 되는구나. 진지하게 연애를 하면서 그림의 주제가 바뀌었다니,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피카소는 시인과 작가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들은 피카소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을 보완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p270

 

<비극의 여파>

<초기 대표작 인생’>

피카소를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한 대표작들은 개인적 의미가 깊이 담긴 사건과 정서를 보편적인 주제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p277

 

4)     아비뇽의 처녀들’ : 실험적인 양식을 향해서

하지만 피카소에겐 현재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을 막는 무언가가, 아마도 어린 시절에 형식을 해체하도록 했던 것과 동일한 충동일 터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è  만족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경지에의 도전이 바로 피카소가 평생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나보다.

초상화가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자 피카소는 세기의 농담이라고 할 만한 유명한 말로 대꾸했다고 한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어. 결국은 스타인이 저 그림을 닮게 될 테니까.”

p279

è  아놔..ㅋㅋㅋ.. 도대체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거냐며?? 피카소 정말 짱이다!!

피카소는 수십 년 전에 그가 보았거나 창작했던 작품 혹은 형태 실험을 했던 작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p283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p287

 

5)     입체주의를 낳은 동반자 관계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동작업을 하면서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양식을 창안하고 탐구했다.

서른살도 되지 않은 두 화가가 유레없이 강렬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공동작업을 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입체주의 양식이 탄생했고, 그토록 빠른 속도로 미술계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은 새삼 물을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p289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해당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모험을 할 때는 이런 행동에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어쩌면 꼭 필요할지 모른다는 점을 논의한 바 있다. p290

 

<입체주의의 특질과 유산>

우리가 입체주의를 창시했을 때는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획기적인 변화나 패러다임의 변동에는 수많은 원인들이 작용하는 법인데, 이 중 어떤 원인도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p293

아마도 이들이 새로운 시각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초창기에 허물없이 지내며 그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과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297

 

<함께 지내는 시간, 떨어져 지내는 시간>

적어도 피카소의 경우는 얼마 동안이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사고방식을 일신했던 경험이 중요했다. 실제로 피카소는 여러 차례 이런 가벼운 여행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낙천성과 삶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p300

아무리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도, 서로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이 점은 특히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창조적인 인물들한테 꼭 해당되는 이야기다. p302

 

<대중과 전위 예술가들의 반응>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입체주의는 여전히 현대 미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예술적 업적의 정점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p303

분명한 것은 입체주의 미술의 이미지가 상업 광고물에서 아류 모방작에 이르는 다양한 시각물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음에도,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미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p304

 

6)     입체주의 이후 : 유명 인사로서의 삶

<성숙한 신동의 작품>

30대 중반에 접어든 피카소는 그 때까지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p305

피카소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을 이루는 동안 자신의 이전 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10년에 걸쳐 창작 활동에 반영했다. p306

 

<신변상의 동요와 예술적 변화>

게도에 따르면 피카소는 일년에 보통 300점의 그림과 소묘를 그려왔지만, 1926년에서 1936년 사이에는 일년에 100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만을 제작했을 뿐이다. p308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흝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고나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p309

 

7)     피카소 스스로 걸작으로 인정한 작품 게르니카

피카소는 모든 갈등, 스페인 내전으로 폭발한 사회적 갈등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과 성, 예술 창조에 관한 갈등까지도 화폭에 담아냈다.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세웠고, 프랑코의 파시즘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p321

 

8)     노년기에 이른 신동

피카소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정과 연인, 아이들 그리고 여름 휴양지를 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꾸준하게 새로운 양식과 대표작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p324

그럼에도 피카소가 대담하게 도전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p325

피카소는 점점 더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해서 여인들이 몸과 영혼을 모두 희생하기를 요구했다. p328

피카소는 결코 헌신적인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이 못 되었다. 다른 누구보다 자기만을 추켜세울 수 있는 친구들을 원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친구들의 헌신적인 자세와 이해 능력, 그리고 인내심을 까다롭게 시험했다. p329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가이자 정치가

불순한 음악가들은 언제나 민족적 단결이나 종교적 자유와 같은 음악 외부의 목적을 위해 음악을 활용하다는 것이다. p334

 

1)     예술 창조의 정치적 측면

스트라빈스키는 작곡과 연주에 기울인 노력에 못지 않게 자신의 음악 인생을 관리하는 면에서도 상당한 정력을 쏟아부었다는 점이다. p335

극소수의 예술가만이 별다른 외부적 자극 없이도 장의 인정을 받을 만큼 운이 좋으며, 소수의 예술가만이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를 만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p337

 

2)     러시아인의 유년기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p340

 

3)     중심지의 음악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음악도로서 많은 걸 새로 배웠으며, 음악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p343

è  스트라빈스키의 이런 경험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직접 보여준 것 같다.

 

4)     초창기의 성공과 운명적인 만남

스트라빈스키는 아버지와도 같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가르침에 금방 이끌렸듯이, 디아길레프 주변에 모여있던 기발한 재주꾼들에게도 곧장 매료되었다.

젊은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활동 모습에서 공동작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마감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은 각기 다르면서 고집은 무척이나 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었다.

è  이 두 가지 배움이 어쩌면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고, 그로 인행 창작활동을 죽기 직전까지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5)     발레곡의 거장이 되다 : ‘불새페트루슈카

<’페트루슈카의 혁신>

페트루슈카의 성공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봄의 제전에 착수할 즈음에 내 귀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p354

 

<실패의 교훈>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p355

 

6)     봄의 제전 :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린 소리

하지만 봄의 제전은 거의 모든 요소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작곡가 자신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을 창안하고 있었다는 점이 쉽지 않았다. p357

 

7)     봄의 제전’ : 공연과 그 여파

라벨은 이 작품의 새로움은 관현악법에 있지 않고 음악 전체의 새로운 면모에 있다고 보았다.

분명히 이 작품은 여러 이유로 처음 듣는 청중을 소외시킨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와 똑같은 이유로 결국에는 수용되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이었다. p366

è  지금도 남들보다 너무 앞서 가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선구자의 역할을 했기에, 누군가는 그 덕분에 빛을 발하기도 하고, 때로 돈을 벌기도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다행이다. 작품이라는 것은 누군가 따라하기 쉽지 않은 것이고, 무형의 창작물이라, 그대로 남아 있으며, 시간만 흘러 그것을 알아보고 인정 받을 수 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청중을 괴롭혔던 불연속성과 단절, 반복, 자유분방함을 젊은 관객은 이 작품의 본질로 여겼고, 반복해서 봄의 제전공연을 관람하면서 음악을 새롭게 듣는 훈련을 했던 것이다. p367

 

8)     시학에서 정치로

<법을 따지기 좋아하는 성향>

탁월한 창조자들은 언제 완벽주의자이다. p374

 

<소품 작곡>

, 자신을 엄격하게 제한할수록 더욱 더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p375

 

9)     결혼’ : 또 다른 종류의 걸작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p378

 

10)  과거의 음악으로부터 얻은 신선한 자극

스트라빈스키에 따르면 피카소는 내가 음악 작곡을 맡기로 한 것과 똑 같은 이유로 풀치넬라의 무대를 디자인해 달라는 주문을 받아들였다 그냥 재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81

è  이 말이 너무 좋다. “그냥 재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에 몰입해서 창조하는 이들의 특징인 것 같다. 그들은 돈이나 명예등의 이유보다는 자기만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스스로 먼저 작품을 시작한 후에 비슷한 위치의 협력자를 한두 명 선택하는 방식을 따랐다. p383

이 기간 내내 스트라빈스키는 현대의 음악과 과거의 음악을 연관짓기 위해 신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창작할 때처럼 그 역시 다른 시대의 음악 소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다만 무의식 차원에서 어떤 실질적인 역사적 주제를 활용하고 인유했는지 감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p384

 

11)  사고와 인격의 성숙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만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고 견뎌냈다. 타락한 면이 없지 않은 출판업자나 음악 축제, 음반사, 홍보업계의 오랜 인습(물론 나 역시도 그런 인습에 빠져 있었지만)을 극복해낸 것이다. p387

다음 곡을 쓸 때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터이다.” 이런 태도는 피카소와 그레이엄 등 많은 성찰적인 예술가들의 견해와 부합한다. p388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와진다.

비슷한 시기에 엘리엇이 문학에 관해 정립한 사상과 영향력 면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기본 바탕의 정신은 비슷하다. 일관되고 정합적인 사상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지적인 포부가 크지 않았던 피카소와 구별된다. p390

 

12)  마지막 업적

스트라빈스키는 음악 인생의 세 번째 시기를 맞을만큼 운이 좋았다.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독창성을 잃지 않고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에너지와 영감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두 명의 젊은 예술가와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p392

스트라빈스키는 20대에는 디아길레프와 교제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 중년에는 고전 음악을 사숙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으며, 만년에는 음렬주의 음악을 접하면서 창조력의 원천을 얻었다. p394

어쩌면 그에겐 피카소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변화무쌍한 능력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피카소에겐 부족했던 작업 방향이나 철학의 일관성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음악과 언어로써 명확히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만년에 이른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과 점점 더 평화롭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p398

스트라빈스키는 이 책에서 논하는 다른 창조자들보다도 유년기에서 흘러나오는 중요한 어떤 것을 간직할 줄 알았고, 또 만년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열매를 만끽할 수 있었다. p399

 

7.     T.S. 엘리엇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1)     황무지의 재발견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우호적이면서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알게 해 준 것이다. 403

 

2)     엘리엇의 성장 배경

엘리엇은 자기 내면에서 청교도 조상들의 기대감을 느꼈고, 여기서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404

어린 엘리엇은 언어에 대한 기억 용량이 남달리 큰 편이었고, 학교에서 주로 익살과 농담으로 채운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10대가 되자 항해 소설과 광시 그리고 좀 더 진지한 운문을 썼고, 남태평양과 하와이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내면서 환상에 빠져들곤 했다. 엘리엇의 사는 특별히 조숙한편은 아니었어도 형식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분명한 어조를 드러냈다. 405

빈민가의 세계와 하버드 신사들의 세계, 가난한 자의 고통과 안락한 사교계의 위신이 마구 충돌하는 모습은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의 영혼을 깊이 흔들었다. 408

하버드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보스턴 거리를 배회하고 방황하고 있던 그는 거리가 수축하고 갈라지면서 자신이 거대한 정적의 심연 속에 빠져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환각적인 경험에 대해 훗날 엘리엇은 신과 교감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결정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젊은 엘리엇이 겪고 있었던 변화, 즉 시적 이미지를 통해서 가장 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는 감정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409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410

 

3)     새로운 삶

그는 다시 한 번 지식이늘의 살롱이나 아방가르드 예술과 누추한 거리의 가난한 모습 사이에 크나큰 대조가 있음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집에 보낸 편지에 다르면, 재능 있는 여느 젊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그저 새로운 지식과 인상을 흡수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411

실제로 엘리엇은 유럽 체류 기간에 밤마다 끔찍한 공포에 시달렸다. 이 때는 엘리엇이 마음속으로 앞으로 살아갈 삶의 모습이나 자기 나름의 철학과 표현 방법을 결정하느라 고심하고 갈등하는 시기였다.

엘리엇은 다수의 정체성과 상이한 목소리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412

대도시에서 사람은 얼마나 더 자의식적인가라고 그는 공언했다. 이 무렵 그는 경계인의 삶에 만족했고, 작가로서의 삶에 운명을 걸고 이국 땅에서 성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413

 

4)     두 시인이 힘을 합치다.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414

파운드가 없었다면 아마도 엘리엇은 영국에 남기도 어려웠을 터이고, 철학을 버리고 시인이 되거나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에이전트 퀸을 만나거나 미국에서 시집을 출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415

è  영웅의 모험에서 보면, 파운드는 조력자가 아닐까?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영국 문학계는 영국 태생이 아닌 작가들이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본토박이가 아닌 경계인 작가들은 영국의 예술 형식이 더 빠르게 변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영국의 예술 작품에 국제적인 흔적을 각인시켰다.

 

<시인의 재능을 입증하다>

엘리엇의 초기시 프루프록의 연가는 영국 문학의 현대화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 416

이러한 결합은 세상을 기이한 병치이미지로 드러낼 뿐 아니라, 그러한 부조화성에 매료되는 사람의 독특한 감수성도 암시한다.

시인의 목소리는 젊은이와 중년, 그리고 노년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남성적인 정체성과 여성적인 정체성, 활동적인 삶과 마비 상태가 동등하게 나타난다. 418

엘리엇은 철학적인 목소리와 산문체의 평범한 목소리를 결합시켰고, 일상 생활의 언어와 이미지로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철학적인 주제를 표현할 줄 알았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시극 전체와 통속적인 시를 옮겨적기도 했다.(이렇게 편지에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실험하는 일은 평생 동안 계속되었다.) 일찍이 엘리엇은 모방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손쉽게 다양한 문학 양식을 패러디하곤 했다. 419

다른 이들에게는 대단한 업적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 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5)     유럽에 정착하다.

한동안 엘리엇은 젊은 예쑬가가 대개 그렇듯이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갔다.

 

<작품 세계의 확장과 명성의 확산>

빚지지 않고 생활을 꾸려가느라 고생하면서 시도 많이 못 쓰고 보람 없는 결혼 생활을 고통스럽게 유지해 가는 와중에도, 엘리엇의 문학적 이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422

그는 특히 울프에게서 작품 세계와 기질 면에서 친화성을 느꼈다.

처음부터 엘리엇은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는 데 꽤 신경을 썼다. 한 때는 부끄럼이 많던 엘리엇이 대담성과 확신을 갖게 된 것이었다. 423

엘리엇은 편집장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소개장을 확보하기를 당부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잡지측에서 사적인 방법으로 제 이름을 알고…… ‘영국의 문학을 쓰거나 최근의 프랑스 작품을 논하는 식으로 꾸준히 인연을 맺었으면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거지요.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424

물론 엘리엇도 자기 경력을 휼륭하게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점잖고 신중한 태도며 별로 드러내지 않는 박학다식과 우아한 유머 감각 그리고 영원한 경계인의 표지는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결국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425

 

6)     황무지’ : 작시 과정과 배경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의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중대한 혁신을 감행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엘리엇도 새로운 상징체계 혹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투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절망과 유럽 문명의 몰락을 담아낼 수 있는 시적 목소리를 창조하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의의>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다른 현대의 문학작품처럼 재독, 삼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부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엘리엇의 비감한 정서를 더욱 뚜렷하고 힘차게 느낄 수 있다. 452

 

7)     황무지에 대한 반응

봄의 제전의 경우에서 보듯, 이 젊은 예술가는 황무지가 본인과 동시대 시인들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나 시 장르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나 하나의 정점, 결정적인 도약의 순간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평가의 장에 확신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엘리엇의 특별한 업적>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비록 정연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는 마치 고대의 모험담을 읽을 때처럼 하나의 완결된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435

 

<창조력의 쇠퇴>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엘리엇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엘리엇의 시에서 더 이상 의미 있는 혁신은 나오지 않았다. 436

서정시란 젊은 시절에 문제작을 내는 경우가 많은 장르이다.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8)     공인으로서의 엘리엇

엘리엇은 개인적인 불행을 끊임없이 일에 몰두하는 방법으로 극복했다. 438

엘리엇은 하나의 단어나 구두점 문제만 갖고도 크게 흥분해서 언쟁을 벌였다. 439

è  이것도 창조자들이 가진 완벽주의자적 성향에서 나오는 것 같다.

 

9)     놀랍게도 엘리엇의 사상에는 점점 더 보수적인 색채가 짙어갔지만, 그 자신은(스트라빈스키와 마찬가지로) 폭넓은 문학관을 견지했고 다양한 성향과 스타일의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440

<종교 개종의 반향>

 

10)  중년의 문학인

대화나 편지 혹은 발표 글을 통해 그는 아주 재빠르고 대담한 평가를 내리곤 했는데, 이런 능력은 문학 저널리즘에 관여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다.

설득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수사적인 표현을 신중하게 구사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견해를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신중하게 제시할 줄 알았다. 442

è  역시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의 특징인가보다. 수사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 말이다.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443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444

엘리엇은 꾸준히 문학을 논의하면서도 문학과 관련 없는 주제로서 세속적인 문제에서 아주 기이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445

모든 증거로 볼 때 엘리엇은 속내를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에게 친밀감을 느낀 사람도 거의 없었다. 특히 만년의 엘리엇은 다른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어야만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446

성격상 엘리엇은 마음이 불안정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었으며 다소 위험스럽게도 다른 사람들과 되도록 어울리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 물론 매력적인 측면이 꽤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엘리엇을 만나고 도와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고 다른 사람의 정치적인 지원이 필요 없게 되면서,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그들과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천성이 다시 강하게 나타났다.

è  왠지 나의 모습일 것 같아서 좀 슬프다..

그가 동료로 인정한 또 한 사람은 버지니아 울프였다. 엘리엇은 그녀의 문학적 혁신에 감탄했고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냈다.

è  버지니아 울프와 친밀하게 지냈다니, 너무 부럽다..ㅜㅜㅜ..

그리고 황무지의 저자로서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에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11)  만년의 엘리엇

조숙한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노인과 아주 닮았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런 조숙한 아이들 중에서도 엘리엇은 제 나이보다 어른스럽기가 단연 돋보이는 아이였다.

엘리엇은 이런 행태의 보상 심리에서 평생 동안 아이다운 성격을 잃지 않았다. 공식적인 글에 비해 동료들에게 보낸 활기찬 편지나 친구들의 아이들에게 보낸 쾌활한 편지들에는 그의 유머 감각과 꾸미지 않은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449

엘리엇의 시가 생생한 인격화와 화자의 목소리가 특징인 극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점은 오래 전부터 주목받았는데, 이제는 이런 면과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는 방식으로 엘리엇의 극은 탁월한 시적 특질이 돋보이는 작품이면서 무대에 올려 공연해도 좋고 그냥 읽기에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452

확실히 엘리엇의 태도에는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454

경계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의 생애는 역설적이다.

엘리엇 가문의 다른 남자들처럼 주류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이썼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경계인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다. 455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가혹한 삶을 살았기에, 비록 희생자라는 느낌을 시적으로 조롱할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무언가에 구속받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토로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 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만으로만 홀려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457

 

::: 간주곡2 :::

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예술적 업적은 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들과 가까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피카소에겐 조르쥬 브라크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에겐  디에길레프 발레단이, 그리고 엘리엇에겐 에즈라 파운드와 비비언 엘리엇이 있었다. 458

마지막으로, 그들은 창조력의 원천을 잃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 위해 일종의 협약, 아주 인상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459

전혀 시도된 바 없지만 일단 탐험이 시작되자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시대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그 상징체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했다. 461

좀더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앞선 시대 작품들과의 연속성도 감지할 수 있다.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개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462

마사 그레이엄이나 마하트마 간디와 구별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창조적인 활동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특정 시기에 그들의 공객적인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따라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464

 

8.     마사 그레이엄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1)     세계 전환기의 무용 분야

마사 그레이엄의 혁신은 무용의 두 가지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우선 고전 발레는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예술 형식이다.

참을성이 없고 모험심이 강하며 불손하기까지 한 미국인들이 보기에 발레는 여전히 유럽의 폐쇄적인 무용 형식이었다.

또 하나의 주요한 무용 흐름은 비유럽인,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의 민속 무용이다.

미국과 유럽의 관객은 이러한 이국적인 무용 공연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대개는 고급 예술이 아니라 민중 예술이나 기예 정도로 여길 뿐이다.

 

<무용 혁신가의 등장>

 

2)     세기 전환시, 마사 그레이엄의 미국

그레이엄의 아버지 조지는 아일랜드 이주민의 후손으로서 억세고 거친 성격을 지녔으며, 마사와 그녀의 두 자매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를 좋아했다. 469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까지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

엄격한 장로파의 가르침이 지배하는 동부의 소도시에서 살다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열대의 정취가 있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것은 여러모로 마사 가족의 심신을 편안하게 했다.

그레이엄은 다양한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홀로 춤추며 무대를 휘어잡는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장엄하고 화려한 옷차림과 표정이 풍부한 눈, 인상적인 모습에 혼을 빼앗길 정도였다.

1914년 그레이엄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레이엄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자유를 느꼈다. 472

 

3)     새로운 경력

그레이엄은 연습 시간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냈으며, 점차 강하고 유연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느꼈다.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마스터하는 것은 거장들의 일반적인 특징인데, 그레이엄 역시 곧 주연 무용수가 되었고, 강사가 되었으며, 관능적인 무이인의 집시 풍 무용인 세레나타 모리스카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473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레이엄은 자기만의 욕망과 가치를 나타내는 무용을 시도하고자 노력했으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목표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어시든 잘 참아내지 못했다.

나는 이 그림처럼 춤을 추겠다. 475

 

4)     새로운 무용

<그레이엄의 초기 무용의 독특한 특징>

1927년 그레이엄의 반역은 인간의 불의를 직접적으로 묘사해서 관객에게 충격을 가했다. 477

옷 모양의 변화로 드러나는 이런 움직임은 몸으로 슬픔을 재연한 형상이라기보다 애절한 기도와 탄원 자체였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주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 예술 장르 가운데 무용은 특히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478

모든 것을 잃을 걸 각오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각자가 우리의 모든 전통을 바다에 내던진 지 오래였다.

 

5)     현대 무용의 애매성

무용은 장식적인 요소를 없애고 간소한 형태가 되어야 했으며, 무용수들은 정서와 감정의 정수만을 추출하여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481

 

6)     현대 무용을 장려한 장

그레이엄에게 추종자가 생긴 것은 아마도 그녀 스스로 끊임 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알리는 노력을 했기 떄문일 것이다.

 

7)     공동작업 시도

이들 가운데 어느 한 무용가 휘하에서 활동하는 무용생들은 다른 무용가의 수업에 참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득이 적지 않았지만, 무용 레퍼토리 극단의 공동 공연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중요한 관계>

 

4)     1930년대 초반의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남서부 지방의 체류와 그 영향>

하지만 그레이엄은 창조력이 풍부한 어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든 자기 모방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489

 

<그레이엄의 다재다능함>

1930 4월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공연에 참여한 것도 그런 활동에 속한다. 493

 

5)     미국적 무용을 창조한 시기

<혁신적인 작품 프론티어’>

<인상적인 작품을 연이어 창조하다>

1935년에서 1945년까지 마사 그레이엄이 이룬 발전은 그녀가 무용단을 결성한 이후 처음 10년 동안 이룬 발전 못징낳게 눈부신 것이었다.

좀 유감스런 일이지만, 내가 하려는 일을 관객이 똑바로 보고 느끼게 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관객이 머리를 해머로 내려치는 데만 익숙하지 않았나 싶다. 499

 

<새로운 공동작업에의 모험>

그레이엄은 이제 머스 커닝엄과 에릭 호킨스와 같은 최고의 남성 예술가들도 곁에 둘 수가 있었다. 503

남자 무용가들, 특히 그레이엄의 연인 호스트가 무용담에 합류한 것은 공연 가능한 작품의 폭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그레이엄에게 성적 열정의 세계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504

 

<절정의 작품 : ‘애팔래치아의 봄’>

처음 10년은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히는 기간이고(그레이엄의 경우는 1916년부터 1925년까지) 두번째 10년은 가장 인상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며(1926년에서 1935년까지), 세 번째 10년은 또 다른 절정의 작품, 그러니까 앞선 시기의 혁신에 기반을 둔 작품이자 그런 혁신을 좀더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해당 분야 전체에 연결시킨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다. 505

이 무용극의 장소와 시간ㅁ ㅣㅊ 배경이 모두 그녀의 삶과 연관돼 있었다.

종교적인 삶과 세속적인 삶, 자작 농장과 개방된 공간, 고립과 친밀한 교제를 둘러싼 복합적인 감정, 결혼과 탄생 및 죽음이라는 인생의 이정표, 그리고 영생의 가능성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507

è  이렇게 다양한 주제가 한 작품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다.

6)     인생의 굴곡과 부침

그레이엄은 여성 혹은 미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옹호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겉으로 비치는 자기 모습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비판을 견뎌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조 활동에 전념했다. 무용단의 매력적인 지도자였던 그녀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나 멀리서 알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

 

<정서 불안>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509

나는 그녀의 대등한 동료였다. 이것 떄문에 둘 사이에 긴장이 형성되었고, 내가 결국 떠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 문화에 영향 받은 시기>

엘리엇이나 피카소와 같은 다른 혁신적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위기 체험은 그레이엄 예술을 손상시키기는커녕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510

그레이엄은 신화적인 주제를 무용에 도입하면서 소위 신고전주의적인 국면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가 20년 전에 이미 통과한 단계였다. 513

 

<수수꼐끼 같은 노트>

마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발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다른 무용가에게 전달하는 일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515

노트를 기록하고 출판한 때는 이미 나이가 꽤 들었을 무렵(무용가로는 노년이라고 할 만한)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자신이 보이고 싶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516

그녀는 월요일 저녁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주 추한 인물이었는데 어느 순간 차갑도록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518

 

7)     무용가의 삶

<테크닉과 작업 습관>

다만 고전 발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이런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520

학생들은 매일 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모을 가지게 되었다.

è  나는 어떤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아야 할까??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521

 

<아이디어와 철학>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현대의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레이엄도 다른 사람들의 구상과 이미지를 원용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523

그러나 그레이엄이 이들의 책에 끌린 것은 이미 이들의 사상이 그레이엄의 격렬한 성격과 그녀가 창조하고재연하려고 하는 역할을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이엄은 인생을 모두 작품 활동에 바쳤다.

마사는 자신의 삶에서 모든 감정적 애착, 모든 집착, 모든 위안 그리고 시간까지 배제시키려고 했다. 여기엔 가족과 아이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그녀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아낌 없이 바쳤다. 일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그레이엄 역시 내가 다른 창조자들에 관해 설명한 것과 같은 종류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특권을 누려야 했다면 세속적인 즐거움과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모두 무용의 제단에 바쳐야 했다.

그레이엄은 어떤 아이디어나 사람과 끝장이 났다고 생각하면 그것(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제거한다. 526

 

<소요학파와 같은 사람>

그레이엄의 후기 작품은 대체로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영혼이 포박당한 여웅적인 인물을 진중하게 다룬 연극적인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그레이엄 자신의 초기 작품을 희화하는 작품까지 포함하는 다소 가벼운 시적이고 공상적인 작품이었다. 528

 

8)     쇠퇴와 갱생

그녀는 자주 술을 마셨다. 가끔은 상당히 취할 정도로 마셨고, 그래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식의 파괴적인 행동은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530

 

<노년의 새로운 인생>

무용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그레이엄은 자선가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

è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은 배고프다.. 슬픈 현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도 인생 내내 자선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니..ㅜㅜ

 

9)     그레이엄의 업적

마지막으로 무용 자체는 여자에게 어울리는 장르로 간주되긴 했으나, 창조적인 분야는 대체로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 참여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마사 그레이엄은 이런 단점들(내 용어로 말하면 비동시성)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537

그레이엄은 실질적으로 새로운 분양를 창조한 셈이나 마찬가지였고 게다가 비평적 장의 발전을 자극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신을 표현할 여지가 그만큼 풍부했고 그런 여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538

그레이엄은 이렇게 몸이 중요한 분야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했고, 그래서 되도록 오랫동안 무용 현장을 떠나지 ㅇ낳으려 했다. 하지만 모든 증거를 통해 볼 때 감정과 사생활 면에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런 가혹한 희생은 특히 선구적인 여성들에게 더욱 심하게 요구되었다. 539

 

9.     마하트마 간디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1)     영국 통치하의 인도

2)     도덕적인 소년 간디

소년 간디는 몸집이 왜소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체육을 싫어했다. 특별히 훌륭한 학생도 아니어서 학교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모한다스는 어린 시절부터 옳고 그름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도 그는 자연스럽게 중재자 역할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다. 544

<어른의 책무>

3)     선택의 연속

라지찬드라라는 정신적 스승과 같은 인물과 함께 시간을 보낸 덕분에 간디는 인생의 힘든 시기에 계속 힌두교도로 남고 변호사로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550

 

4)     남아프리카에서의 성숙

타협과 중재가 상대의 약점을 끝까지파고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나탈에서의 기차 사건>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이 2등 시민으로 대접받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 551

 

<남아프리카의 인도인을 위한 활동>

간디는 이처럼 가혹하고 단단한 현실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유혹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554

그는 많은 조직을 결성하고 이를 이끄는 과정에서 지도력을 갈고 닦았다. 555

 

<중년의 새로운 인생 행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몸소 실천한 선례를 따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했고, 이것은 자신이 견지하는 삶의 원칙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떄문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곧이어 간디는 적극적 실천가답게 자신의 사상과 종교를 직접적으로 실행할 길을 찾아 나섰다. 556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키지 않고는 영혼의 순수성을 얻을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558

 

<비폭력 저항>

그는 사상적인 입장을 정립하고 그것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했다.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반면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561

 

5)     인도의 현지사정을 알아가기

간디와 같은 정치와 사상의 혁신자들, 특시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이는 혁신자들의 경우는, 각자의 신조가 명확히 드러나고 그 원칙적인 실행 방침이 결정화되는 지점을 많이 지적할 수 있다.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사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일의 진행 과정이 불확실한 경로를 따를 여지가 다분한 공공의 광장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궁극적인 실천 모델이 오직 수많은 시행착오와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궁극적인 실천 모델이 오직 수많은 시행창오와 연습 과정을 통해 서서히 확립되는 법이다. 563

 

<결정적인 사건>

<아메다바드 사건의 의의>

우리는 창조적인 도약에는 언제나 한 사람(주르쥬 브라크)이나 작은 집단(아인슈타인의 올림피아 아카데미나 스트라빈스크의 디아길레프 발레단)이 인지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568

 

<일시적인 유예>

 

6)     사티아그라하의 원칙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사상의 기초>

간디는 체계적이고 철저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폭넓은 독서를 했다.

남아프리카 체류 기간에 알게 된 세 명의 저자들에게 큰 감화를 받았다. 소로에게서는 시민 불복종 사상과 개인이 국가의 압력에 저항하는 방법을 배웠고, 간디가 영국에서 공부할 무렵에도 생존하고 있던 러스킨에게서는 인간 행위의 사회적 차원을 이해하는 통찰을 얻었다. 특히 그는 러스킨을 통해 노동(고상한 노동에서 미천한 노동에 이르기까지)의 중요성, 특권층과 빈자들의 관계, 경제적 요인과 인간적 요인읜 갈등에 대해 면밀하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의 저작이었다. 톨스토이를 읽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히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폭력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574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넓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575

나에게 있어 종교가 없는 정치란 우리가 피해야 하는 완전한 쓰레기나 다름없다. 576

 

<사티아그라하의 본질과 실천>

사티아그라하는 두 세력이 그 내부에서 불화와 반목 상태에 놓여 있는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한다.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는 폭력과 고통 혹은 위협을 통해 서로 대결하는 대신, 몸소 고통을 짊어짐으로써 상대방의 양식과 양심을 일깨운다. 577

처벌이 둘벼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복종이 공공의 행복에 본질적인 요소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복종하는 것이다. 579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드라마>

 

7)     간디의 개인적인 측면

간디는 자신의 모든 글, 특히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진리실험>에서 정확하고 거짓 없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과 동기를 성찰했다. 이러한 고백적 글쓰기는 두 가지 효과를 자아냈다. 첫째, 이를 통해 간디는 자신의 역사와 현재 처해 있는 상황, 자기 및 인도 민중 그리고 인류 전체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온전히 자기 내부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582

프로이트와의 비교도 생각해 볼만하다. 두 인물 모두 오랜 시간을 바쳐 자신의 인생사를 분석하고 그 결론을 글로 남겼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매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의심과 파괴적인 행동을 버리도록 고무하는 매개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적인 행동을 하고 글을 썼다. 583

 

<검소함과 극기>

저항 과정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은 모든 단계를 세심하게 신경 쓰는 간디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체포될 날이 가까워 오면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해야할지 미리 계획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친구와 적 모두에게 알렸다. 585

 

<간디의 사람들>

언제나 스스럼 없는 태도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으며, 많은 군중 앞에서도 이런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586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부담을 모두 자신의 두뇌에 맡겨두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완고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각자에게 맞는 일을 적당히 찾아주고 유머 감각을 발휘했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마음을 바꿀 줄은 알았기 때문이다. 587

간디의 행동거지나 생활방식은 그의 민중들에게 공명을 일으켰다.

이들에 대한 간디의 영향력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들은 그들 전부의 공통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자신들과 간디의 정체성을 동화시켰다. 589

è  20세기 현대판 을 보는 것 같다. 아마 간디의 추종자들에게 간디의 존재는 신의 존재와 같았을 것 같다.

 

<불편한 가족 관계>

하리랄(간디의 아들)은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아버지의 믿음과 실천에 반항했다.

è  간디는 아마 가족들에게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가족이 아닌 수많은 타인들도 나를 이해하고 나의 삶과 실천을 지지하는데, 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그리고 가족들은 간디에게 대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타인에게는 저렇게 잘 하하고 이해하려고 하면서, 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저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까?”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문제라서 그런지 더 잘 이해가 된다.

친밀한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간디의 결합은 결국 가족 문제로 불거져 나왔다. 590

하지만 간디에게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가장 중요했다.

간디가 나누었던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신과의 대화였다.

 

<비판과 결점>

간디는 완전히 부도덕하거나 아예 도덕관념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593

 

8)     민족과 세계의 지도자

<소금 행진>

누구든 쉽게 소금을 만들어서 비용 없이 생활 필수품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594

정의로써 힘에 대항하는 이번 싸움에서 나는 세상의 공감을 얻고 싶다. 596

 

<런던 회의>

영국에서 벌어진 어떤 일보다 그를 아프게 하고 낙담케 한 것은 그의 고국 동지들이 그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 특히 이슬람교도와 불가촉 천민 측에서 고국에서보다 런던에서 훨씬 더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는 그에 대한 불신이었다고 생각한다. 601

 

<촌락 생활로의 귀환>

하지만 20년 동안 인도 정치계의 중심에서 활동한 후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간디는 주목하는 관심사가 다소 달라졌다. 그는 합법적인 정치 운동이 얻을 수 있는 성과에 대한 환상을 버렸고, 인도 국민회의 당이 인도인 90퍼센트가 살고 있는 농촌 지역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다고 느꼈다. 602

 

9)     만년의 간디 : 인간과 전설

그의 마지막 단식은 대영제국이 아니라 그 자신의 동포, 자신의 조국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견지하지 못하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힌두교 세력과 이슬람교 세력을 겨냥한 것이었다. 604

글을 쓰고 몸소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친히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인도와 세계 곳곳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도 감화를 주었다. 605

대중에게 다가서는 능력이 가까운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분리될 수도 있다. 607

아인슈타인이 추상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 자연 질서를 통찰했다면, 간디는 적절한 변수를 통해 인간을 통찰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609

 

::: 간주곡 3 :::

간디와 그레이엄은 아주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 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외양,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창조 활동의 핵심이다. 611

현대 무용과 현대 정치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분야를 연결하기 위해 나는 주로 신체와 실존을 순간을 강조했다. 612

그레이엄과 간디는 둘 다 그들의 사상과 신체로 형성된 공간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들의 사상과 이 관념을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신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 간의 변증법적 공간이라고 할만하다. 713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 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614

 

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1)     구성적 틀-재론

이제 나는 확실한 일반화가 가능한 결론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어떤 것이 해당 분야에 고유한 특징이고 어떤 것이 개별 인물의 고유한 특징인지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다. 621

 

2)     전형적인 창조자의 초상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EC는 다소간의 속도 차이는 있지만 관심이 가는 문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해당 분야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 순간이 바로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624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EC의 창조력도 한계에 부딪친다. 이런 경우에는 젊은 동료를 통해 새로 젊음을 되찾기도 한다.

우리가 살펴본 EC의 경우는 오랫동안 살면서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고 죽기 직전까지 커다란 공헌을 한다.

지금까지 강조한 요소 중에 어떤 것도 창조적인 삶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창조적인 혁신을 이룰 가능성을 강조하려면, 이들 요소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625

 

3)     주요 쟁점-재론

<개인적 층위>

인지적 관점.

그레이엄은 폭넓은 지적 능력을 가졌지만 무용 세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느 것에도 심취하지 않았다. 626

다른 창조자들은 일단 어느 분야에 전념한 후로 무척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인물들이었다. 627

 

성격과 동기부여.

EC 유형의 인물들은 실제로 자신감과 기민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근면함,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사교 생활이나 취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일에 몰두하다가 한숨 돌리는 정도의 주변적인 의미밖에 없다. 628

è  왠지 너무너무 위로가 되는 말이다. 나는 EC는 아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가 없다는 것이 내게 어느 정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629

이들이 살아가면서 격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직접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632

모두가 업적과 성취에 기반한 조건 있는 사랑(가족으로부터) 받았을 뿐이다. 아마도 어릴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이야말로 자신의 전부라고 느끼는 성향이 짙어졌을 것이다.

è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다른 부모님들도 그런분들이 간혹있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정말 인간이기에 쉽지 않은 것 같다. ‘업적과 성취에 기반한 조건 있는 사랑이란 말에 왜이렇게 공감이 되는건지..

이들은 모두 억압적인 통제에 반발했다. 633

나는 두 가지 요인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항적인 태도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재능과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634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636

 

인생 패턴 : 창조성의 10년 규칙

10년간의 견습 기간ㅇ르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개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 637

두 번째 도약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창조자 개인의 재능과 포부보다는 해당 분야의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638

두 번째 10년이 지난 후에는 다른 종류의 기회가 생긴다. 639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640

 

<분야의 층위>

<장의 층위>

각각의 창조자들은 대체로 한 명 이상의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648

하지만 다른 창조적인 인물과는 달리 간디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창조한 것처럼 보인다. 간디가 자신의 실험적인 방법에 관한 글을 많이 썼던 이유, 그리고 과거의 종교 지도자나 그 자신의 신과 동등한 처지라고 느낀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와 스트라빈스키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경쟁자로 간주한 경쟁심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보호했고, 세상을 지지자와 적으로 양분했으며, 충성에는 신속한 보상으로 답했고 불층과 배신에는 재빠른 응징을 가했다. 649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 봐도 엘리엇은 적을 찾아내서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제압하려는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던 듯싶다.

간디와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에서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 이외의 사안에 관련해서 논란이 불거진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이론을 둘러싼 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기 입장을 변호하거나 남을 공격하는 일에 무심했다. 650

창조적인 인물들은 주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는 점, 일찍이 신동의 재능을 드러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 등이 그런 예이다. 그리고 평생 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가능성이나 정치적 분규의 불가피성 같은 문제는 분야마다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는 사실도 말해 봄직하다. 653

 

10)  비동시성 평가

어떤 개인이 다소 추상적인 의미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떤 분야에 참여해서 해당 장에 의해 평가받는 성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 창조적이라는 평가에 합당한지 여부를 결정하기는 불가능하다. 654

 

11)  새로 발견한 주제

<도약의 시기에 얻는 인지적.정서적인 도움>

이런 친밀한 관계에 대해 좀더 말해 둘 내용이 있다.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창조자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이 언어를 고안하고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터득해야 한다. 662

 

<파우스트적 거래와 창조적인 삶>

파우스트 전설이란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점에서 특별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통념의 가장 유명한 판본일 뿐이다.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희생했다. 계약의 종류는 다양할지 몰라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모습에는 일관성이 있다. 663

프로이트와 간디, 엘리엇의 극단적으로 금욕적인 삶 역시 파우스트적 계약의 다른 모습이다.

그레이엄은 육체의 쾌락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친밀한 애정 관계를 오랫동안 두려워해서 남편과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è  나도 왠지 친밀한 애정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과의 관계가 힘든건가??

스트라빈스키는 특별히 금욕적이고 절제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매우 냉혹하게 대했다.

이들 가운데 아인슈타인만이 자신의 창조성과 관련하여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계약을 맺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고 남들과 가까이 지내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그 역시 인간적인 영역에서 동떨어진 것을 물리학에 관한 독창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대가로 여겼다는 생각이 든다.

 

12)  남은 문제들

 

에필로그- 현대와 현대 이후

한 시대에 특정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 한 시대를 일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669

 

<문제>

<배경>

일곱명의 현대의 거장들이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세상이었다. 673

파리와 베를린을 대조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흥미를 자아낼 것이다. 파리는 옛 것과 새것, 자국과 타국의 문화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도시였다. 674

이러한 도시들에 이끌린 재능 있는 젊은이들도 이러한 여러 가능성의 인력을 인식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란, 기회의 시간이자 과거의 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며 표면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새로운 예술인지 새로운 인간인지 새로운 도덕인지 아니면 사회의 전면 쇄신인지 누구도 말할 입장이 못 되었다. 그래서 모두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취했을 뿐이다. 675

 

1)     다양한 분야의 현대성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현대성이란 덧없고 우연한 것이다. 이게 예술의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677

분명히 간디는 가장 진보된 소통 방식을 활용했다. 게다가 전보나 인쇄 등 그가 공공연히 비난했던 현대의 발명품이 없었다면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680

내 생각에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682

창조자가 젊은 시절에 해당 분야를 거의 터득하고 그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유년기의 놀라운 힘을 찬양하는 것이고, 어떤 인물들은 그런 능력을 오랫동안 보유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685

 

2)     현대 이후

사실 해체주의비평가의 입장에 의하면, 모든 대상이나 텍스트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다고 한다. 688

현대의 거장들은 과거의 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깊이 젖어 있었다. 690

 

옮긴이의 글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

한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 역량이 축적되어 있을 때나 뛰어난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의 거장이 탄생하려면 그 분야의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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