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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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길버트 / 노진선 역 / 솟을북, 2000)
(Committed : A Skeptic Makes Peace whit Marriage by Elizabeth Gilbert, 2010)
* 저자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미국 코네티켓 출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단편소설집 <순례자들(Pilgrims)>, 장편소설<엄격한 남자들(Stern Men)>등이 있으며, 2002년 <마지막 미국인(The Last American Man)>은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오년간 남성잡지 GQ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 잡지 대상에 세 번이나 후보로 올랐다.
주로 남성성에 대한 책과 기사를 쓰며 나름대로 인정받아왔던 저자는 스물다섯 살 때 ‘대책 없이’ 뛰어들었던 6년간의 결혼을 이년에 걸친 이혼으로 끝낸 후 불쑥 여행을 떠난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으로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의 여행은 인도의 아쉬람을 거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드디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일단락이 된다. 2006년 발간한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바로 이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에서의 삼색 여행’에서 자신의 이혼과 그에 따른 고통과 극복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그녀에게 20, 30대 여성이라는 새로운 독자층과 명성을 안겨주었고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뉴욕타임스, 미국 서적상협회, 아마존 베스트셀러로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혼해도 괜찮아(Committed)>는 그 이후 저자가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연인 펠리페와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서로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각자의 뼈아팠던 실패 경험으로 결혼에 대해선 진저리를 치던 두 남녀가 결혼이란 제도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된 사건과 그에 따른 온갖 고민들, 결혼을 결심하고 겪게 되는 미묘한 갈등과 극복의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의 결혼과 삶, 그리고 그녀가 여행하던 여러 나라와 민족들에게 보고 듣고 느꼈던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덧붙여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칠 수 있었던 그녀의 내적 탐색은 세심한 그녀의 관찰력과 공감능력, 그리고 엄청난 솔직함을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자신의 사생활을 이토록 솔직하게 까발린다는 것은 이정도의 깊은 고민이 없고서는 무모한 일이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세상에 결혼보다 위험천만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요.
-벤저민 디즈레일리, 1870 : 빅토리아 여왕의 루이스에게 보낸 약혼 축하 편지에서
독자들에게 - 결혼과 어떻게든 화해하려고 노력한 또 하나의 이야기
결국 수백만 명의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 깨달음은 큰 위안이 되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독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주문형 베스트셀러를 쓰는 법은 모른다. 그 방법을 알았다면 진작부터 그런 책을 썼을 것이다. 그러는 편이 내 삶도 훨씬 편안하고 안락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나 같은 작가들에게는 그렇다. 우리는 써야만 하는 이야기들, 혹은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쓸 뿐이다. 그리고 책이 출판된 후의 일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책을 출판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수많은 개인적 이유로 인해 내가 써야만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결혼이라는 복잡다단한 제도와 어떻게든 화해해보려는 노력을 담은 또 하나의 자전적 이야기다(거기다 사회-역사적 보너스 섹션까지 들어간다!). 책의 주제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아닌, 정확히 스물일곱 명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 [11-12]
늘 그랬듯이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르침과 위안을 얻는다. [13]
제 1장 결혼, 불현듯 내 삶에 다시 끼어들다
결혼은 경찰이 인정한 우정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결혼은 하기는 쉬워도 깨기는 훨씬 힘들다
물론 이혼은 원래 고약한 법이고, 우리의 이혼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혼의 끔찍함을 1에서 10까지 측정하는(1이 평화적 이혼이고, 10이 ... 음 실제 이혼에 해당된다고 할 때) 전능한 우주의 저울이 있다면, 내 이혼은 아마도 7.5쯤에 해당될 것이다. 자살이나 살인만 없었을 뿐, 우리 부부의 이혼은 평소에는 예의 바르던 두 사람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22]
결혼은 하기는 쉬워도 깨기는 훨씬 힘들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23]
그저 유쾌한 나날이 지겹게 반복될 뿐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느니 하면서 투덜거렸다. [26]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이후 마음의 변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과 같을 환경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지는 변화. 펠리페가 리즈를 따라 이주를 결심한 이유.
뜻밖의 방해자, 미국 국토안보부
“당신이 우리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저런 식으로 물어보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대는 잠시 아무 힘도 없는 내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교묘하게 상대의 공감을 구하는 것이다. [33]
펠리페, 강제 추방당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우리 둘 다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하늘을 날던 물고기와 바다로 뛰어들던 새가 그물에 걸린 것이다. [34]
‘결혼’이 해결책이 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두 사람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
그래, 어떤 심정이었는지 확실하게 감이 오는군. 설명이 아니라 묘사를 했다!
무일푼으로 체포되어 막막한 상황에 처한 그를 내가 그대로 팽개치고 떠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던 걸까? 우리의 사랑이라는 작은 영토 안에서조차도 나라는 여자는 장애물이 나오자마자 배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사람으로 통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상황이 반대였더라면, 나는 단 한순간도 펠리페가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나를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기꺼이 치르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그에게 나도 그렇게 믿음직스런 존재가 될 수는 없었을까? ...
하지만 이제는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 되는 일이 내게도 중요해졌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40]
상대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고 싶다는 열망. 그를 믿을 수 있는 만큼 나를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지속적인 사랑과 결혼에는 신뢰라는 든든한 토양이 필수적이 된다.
“나도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도 할 수 있어요.” [41]
행복한 신부가 되기 위한 열 달 동안의 여행
지금까지 살면서 운명의 장난은 때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심지어 그것을 극복하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상황에 떠밀려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최소한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라는 사실을 굳이 대단한 천재가 아니더라도 깨닫기 마련이다. [43]
이 어리둥절하고 성가시고 모순적이면서도 끈질기게 존속해오는 결혼 제도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조금 노력해보는 것도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 후 열 달간 내가 유일하게 생각하고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주제는 결혼이었다. [43]
오호라, 이미 소설을 몇 권이나 썼던 저자도 새로운 주제에 대해 이 정도 집중력과 자료조사가 필요했던 거군. 폭넓은 학습과 자료조사는 공감 있는 글쓰기의 기본!
스테파니 쿤츠 <진화하는 결혼> 읽을 것!
어둠 속에 누워 내가 읽는 책 속의 모든 정보를 걸러내고, 결혼에 대한 갈등과 편견을 지워나가며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결론을 찾아 역사 속으로 파고들었다. [45]
과거의 경험상 뭔가에 대해 더 알게 될수록 그 대상이 덜 무서워졌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결전의 날이 되었을 때 딱딱하고 징그러운 알약을 삼키듯 내 운명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펠리페와의 결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구식인지는 몰라도 나는 결혼식 날에 행복한 신부가 되고 싶었다. 행복하면서도,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신부. [46]
결혼수업이 필요한 이유. 무지로 인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에게 또 둘에게 닥칠 일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행복한 결혼의 시작.
제 2장 감히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남자는 어떤 여자하고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 여자를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오스카 와일드
베트남 목족에게 결혼에 대해 묻다
몽족 남편은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친밀한 의논 상대가 될 필요가 없다. 아내가 감정을 다스리도록 조언해주고, 지적으로 아내와 동등해야 하며, 슬플 때 아내를 위로해줄 필요도 없다. 대신 몽족 여자들은 자매, 이모나 고모, 엄마, 할머니 같은 여자들에게서 감정적인 위안과 응원을 얻는다. [55-56]
결혼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지 않는 몽족
내가 살던 산업화된 서구 사회에서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어떤 배우자를 선택했느냐일 것이다. 배우자는 곧 가장 반짝이는 거울이 되어 그 사람의 개성을 세상에 반사한다. 뭐니뭐니 해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가장 사적인 문제이고, 그 선택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현대 서구 사회의 평범한 여성에게 언제, 어떻게 남편을 만났고, 왜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십중팔구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 조심스럽게 살이 덧붙여졌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수차례 곱씹고 내면화하고 샅샅이 훑어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60]
낭만적인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며,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는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62]
“좋은 남편도 나쁜 남편도 아니야. 그냥 남편이야”
아서 할아버지와 몽족의 공통점은 아마도 결혼 생활이 시작될 때보다는,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후 결혼 생활이 끝나갈 무렵에 부부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의 인생을 마법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줄 특별한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상대에게 호감과 애정이 생기리라 기대하면서, 앞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7]
결혼은 힘들고 지겨운 내 인생을 한 번에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낯선 두 사람이 만나 긴 시간동안 이루어내는 마법 같은 일임도 분명하다.
행복 추구권은 우리 문화의 트레이드마크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69]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타고난 권리라고 배웠다. 행복 추구권은 우리 문화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행복이 아닌 심오한 행복, 심지어는 가슴이 뛸 정도의 행복 말이다. 낭만적 사랑만큼 사람을 날아오를 듯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만 해도 결혼은 낭만적 사랑이 무성하게 번성할 수 있는 비옥한 온실이 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따라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던 내 첫 결혼의 온실 속에 원대한 기대감을 심고 또 심었던 것이다. [70]
“누구는 행복해서 사나?” [71]
결혼이라는 배에 용량보다 훨씬 많은 기대를 싣고 있다
나로서도 내 개인적 욕망을 선선히 포기할 생각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모든 욕망은 현대인으로서 내가 갖는 생득권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내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나는 삶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원할 것이다. 내 의사를 표현하는 선택을 하고, 내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을 하고, 때로는 아무도 납득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위험한 선택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선택이다.
그런 자유를 누린 결과 내 삶은 내 것이 되었고, 나를 닮게 되었다. [72]
이 모든 선택과 갈망으로 인해 우리 삶에는 이상한 유령이 어른거리게 되었다. 선택받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이 그림자 세상에서 우리 주위를 영원히 맴돌며 계속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거야?” 그리고 이 질문이 우리를 가장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곳이 바로 결혼이다. 극도로 사적인 선택이니만큼 감정적 갈등이 심하기 때문이다. [74]
연애결혼이 중매결혼보다 이혼율이 높다고 이야기되는 이유와 비슷하다. 선택과 그에 따른
갈등이 공존하는 것.
자기 앞에 놓인 길이 하나뿐일 때 우리는 대체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75]
“욕심내지 말자!”를 내 인생의 모토로 만들 수는 없다. 게다가 결혼을 앞둔 젊은 신부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생의 기대치를 낮추라고 충고하는 것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75]
당연히 나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상징이다. 세상은 내게 최고의 것들을 기대하라고 허락해주었다. 역사상의 그 어떤 여자들에게 허용된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삶과 사랑에서 기대하라고 허락해주었다. 남자를 사귈 때 나는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원했고, 그것도 모두 동시에 원했다. [76]
행복에 대해 평생 간직해온 기대를 한 사람의 손에 전부 쏟아붓는 순간부터 결혼은 고역이 된다. 그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고역이다.
미국의 젊은 여성들이 원하는 남편상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남자라고 한다. 이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무리한 요구다.
이제는 배우자로부터 무려 영감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자기는 할 수 있어, 해봐! [77]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남편상은 어떨까? 외모는 평균이상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동시에 자상하고 가정적이어서 아내만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이고, 거기에다 완벽한 시집식구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가능한 남자.
서로가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모든 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기대감. 배우자로서의 업무 내역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해야 한다는 기대감.
난생 처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77]
제 3장 결혼은 수세기 동안 계속 움직인다
결혼은 사회의 첫 번째 굴레다.
- 키케로
강제 추방되는 것보다 결혼이 낫다
결혼의 역사적인 변화들
초기기독교의 결혼에 대한 강한 거부감
유대교의 결혼 옹호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말소된 여성들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낭만적인 결혼식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92]
그녀(이혼 법정의 판사)는 뉴욕 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의해 사회의 한 귀퉁이를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이다. [93]
(초기 유럽 사회) 당시의 시민사회는 “인간의 가슴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머리는 변한다”라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 같다. [94]
‘일체(一體, coverture)'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존재가 결혼하는 순간 사라진다는 개념이다.
두 배로 늘어난 남자의 권력 속에서 여자의 권력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96]
결혼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편견들
1975년 전까지 코네티컷 주의 기혼 여성은 남편의 승인 문서 없이 대출을 받거나 은행 계좌를 만드는 일이 불법이었다. [97]
1984년 뉴욕 주에서 ‘혼인 강간 면제’라는 역겨운 개념을 뒤엎기 전까지 남편은 아내에게 성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98]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1967년에 대법원 판결로서야 유색인종간의 결혼이 합법적으로 인정받는다) 당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0퍼센트의 미국인들이 이 판결에 격렬하게 판대했다. [102]
동성결혼은 결코 결혼 제도를 파괴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동성 결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훗날 우리가 그 문제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이다. [107]
자신들만의 새 집을 마련함으로써 이른바 프라이버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시간은 자신만의 바람과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집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내 삶은 오로지 내 것이다. 나는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감정의 선장이 될 수 있다. 나만의 낙원을 추구하고, 나만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천국까지 갈 것도 없다. 피츠버그 시내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살면 그곳이 곧 천국인 것이다(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집안에서 정해준 상대여서도 아니고, 그저 웃는 모습이 좋아서 내가 직접 선택한 배우자). [110]
이혼의 고통은 사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
결혼이 ‘제도적’(더 큰 사회의 요구를 바탕으로 하는)이라기보다 점차 ‘개인주의적’(나의 요구를 바탕으로 하는)이 되면서 이혼율은 계속 높아만 갔다. [112]
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사랑이 식은 뒤에는 그 배우자와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주장할 것이다. [112]
결혼학자 바바라 화이트헤드 ‘표현적 이혼’
표현적 이혼이란 단지 사랑이 식었다는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단지 사랑이 변했고, 마음속의 실망감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수단이 이혼이기 때문이다. [113]
최성애 박사가 미국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 원인이라고 지적한 것이 바로 ‘표현적 이혼’이다. 한쪽의 귀책사유가 없어도 이혼이 가능해지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 약해진다는 이유로 그녀는 이 제도를 반대했다. 또한 이 책의 저자와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의견은... 아직 ‘잘 모르겠다’이다.
사업 계약이었던 결혼이 호감의 징표로 변모함에 따라 이 제도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은 사랑만큼이나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114]
“인생은 때로는 혼자이기에 너무 힘들고,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에 기초한 결혼은 혈연관계나 재산에 기초한 결혼처럼 평생 구속력이 보장되지 않는다. 보장될 수가 없다. 김새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아진 것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싫어질 수 있다. 그리고 둘만의 천국은 금세 둘만의 지옥으로 추락한다. [115]
오늘날 환자의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의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통계는 1970년대에 토마스 홈스와 리처드 레이히라는 두 연구가가 만들어낸 평가표다. 홈스-레이히 스트레스 지수에 따르면 1위 ‘배우자의 죽음’, 2위 ‘이혼’ ... ‘가까운 가족의 죽음’, ‘심각한 질병’, ‘실직’, ‘투옥’ [115]
이혼이 그토록 힘든 것은 이율배반적인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이혼의 가장 끔찍한 고통은 한때 자신이 사랑하고 보호했던 상대가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원수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117]
그런 대재앙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혼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펠리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에 기초한 결합은 이상하게 약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혼은 감히 사랑을 믿는 문화, 아니면 감히 사랑을 결혼 같은 중요한 사회 계약과 연결 짓는 문화에서 사는 대가로 우리가 다함께 내야 하는 세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처럼 함께 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말과 마차처럼 함께 가는 것은 ... 사랑과 이혼인지도 모른다. [117-118]
첫 번째보다도 훨씬 겸손한 마음으로 재혼할 것이다
오로지 사랑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깨지기 쉽다.
결혼식 날의 맹세는 결혼의 그런 부질없음을 숨기려는 고귀한 노력이다. 우리의 인연은 정말로 전능하신 신께서 맺어주신 것이며,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혼인 서약을 하는 사람은 전능하신 신이 아닌,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맹세를 깨뜨릴 수 있다. [119]
모든 연인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죽고 못 사는 연인일지라도 자신들의 의지와 달리 상대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그것은 진리다. [119]
폴란드에 이런 속담이 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 [120]
제 4장 결혼, 낭만적인 사랑의 미혹을 넘어서다
약혼 비자를 기다리며 라오스를 가다
인터넷 카페에서 스님의 연애 편지를 훔쳐보다
난 아직도 당신이 내 연인이기를 갈망합니다. [129]
와우! 이 문장 오늘 신랑한테 문자 넣어야겠다. 아름답다...
그의 답신-난 언제나 그대의 연인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오. 여인아 갈망하지 말고 그대의 온 가슴으로 품어라 여기 펄떡대는 그대의 연인을...
세상을 휩쓰는 욕망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다. 때로는 그것이 부적절해 보이는 욕망일지라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불 보듯 뻔한 재앙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특권이다. [130]
사랑의 미혹은 인간 욕망 중 가장 위험한 것
붓다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 원했던 것을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붓다가 말한 고통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욕망이다. 누군가를 원하는 순간, 우리는 수술용 바늘로 그 사람의 살갗에 우리의 행복을 봉합해놓는다. 따라서 그 사람과 조금만 떨어져도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어 다시는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앉으나 서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다. 그런 원초적 욕망에 사로잡히면 더 이상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욕망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132]
불교에서 타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출가하는 이유.
사랑하는 이와 나를 한 몸, 하나의 피부로 만들지 않는 것이 행복의 전제조건, 열정에 빠지지 않는 것? 아니면 열정에서 적절한 시점에 떨어져 나오는 것? 과연 열정과 안정되고 행복한 결혼생활은 어떤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욕망에 관한 학술서 <향연> 아리스토파네스 [134]
미혹은 인간이 갖는 욕망의 가장 위험한 측면이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소위 ‘침입적 사고’라고 부르는 상태로 이어지는데, 집착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단 사랑에 미혹되기 시작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 외의 다른 모든 일, 대인관계, 책임, 섭생, 수면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의 작용까지 변해 마치 마약이나 자극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가 된다. [136]
열정적인 사랑이 막 시작되었을 때 - 연애가 처음 시작된 6개월 사이 [136]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사랑에 더 쉽게 미혹된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할수록 앞뒤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137]
절대 결혼 결정을 피해야 할 시기, 최소한 사계절을 돌아보라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사랑에 미혹되는 것을 꼭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랑에 미혹된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은 연인이 아니다. 생면부지의 남에게 자신의 완성된 꿈을 투사해놓고 잔뜩 흥분한 자기 모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칼 융은 연애가 시작되고 6개월까지는 상대가 누가 됐든 순수하게 투사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나 사랑에 미혹되면 탈선된 투사를 한다.
프로이트는 사랑에 미혹된 상태를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과대평가”
괴테는 한술 더 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정으로 만족한다면, 그들이 착각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139]
20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내 전공
그렇게 열에 들뜬 상태에서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제정신으로 하는 진짜 성숙한 사랑, 매해 융자금을 갚고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그런 사랑은 미혹이 아닌 애정과 존경에 바탕을 둔다. [139-
세상에는 분명 화톳불처럼 타오르는 집착에서 시작했다가, 세월이 흐르며 건강하고 장기적인 연인 관계라는 꿈부기불로 누그러져가는 사랑도 있다. [141]
모든-아니, 많은 연인들이 꿈꾸는 사랑과 연애와 결혼의 모습이 아닐까. 물론 나도 그렇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런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 결혼이 어떻게 그런 단계를 밟아 왔는가에 대한 책일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데 쉬운 일은 아니었고 위기도 있었다.
여행도 했고, 건강한 형태의 즐거움을 부지런히 추구했다. [143]
찰나적인 연애와 섹스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이득이 될까?”라는 어른스러운 질문으로 그 모든 유혹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성장했다. [143]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감정적으로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기에 인생에서 두 번의 사춘기를 겪는다고 했다. 몸이 섹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때가 첫 번째 사춘기요, 마음이 섹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때가 두 번째 사춘기라고 했다. 이 두 시점 사이에는 아주 오랜 세월의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 [143]
나와 펠리페의 연애에는 온갖 낭만적인 요소가 다 들어 있었고, 나는 언제나 그런 점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미혹된 상태는 아니었고,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그가 내 인생의 위대한 해방자나 내 삶의 근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한 나 역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의 흉강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았고, 펠리페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다. 서로의 눈에 우리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완벽한 영웅으로 보였을 테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로에게 오로지 가능한 것만 요구했다. 약간의 친절함, 약간의 배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싶은 공동의 욕망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펠리페에게 어떻게든 날 완벽하게 채워달라는 부담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설사 그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숱하게 겪고 나니, 이제는 그것이 온전히 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중요한 진실을 배운 뒤로는 어디까지가 내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의 영역이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서는 사리분별을 잃지 않은 친밀함의 한계를 배우기까지 무려 35년이 걸렸다.
C.S.루이스는 그 한계를 멋지게 정의한 바 있다. “내 불행은 아내의 몫이 아닌 온전히 내 몫이요, 아내의 불행은 내 몫이 아닌 온전히 그녀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 부부는 알고 있다.”
다시 말해, 때로는 1더하기 1이 2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45]
<스님의 주례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 나온다. 나와 배우자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것. 서로가 다른-구분된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것. 우리가 결혼에 대해 품고 있는 가장 큰 환상은 원래 한 몸이었던 둘이 나누어졌다가 다시 한 몸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원래 한 몸이었던 소울메이트를 찾는 환상여행... 한없이 낭만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불행한 시작임을 알겠다. 그는 동반자이지 내가 아니요, 나는 또한 그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만 나를 채울 수 있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때만이 우리는 환상의 결합이 된다.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 나또한 아팠다.
존 F. 케네디 부류냐, 해리 트루먼 부류냐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고 한다. 아이를 만드는 남자와 아이를 기르는 남자.
‘바소프레신 수용기관 유전자’ [147]
살다보면 대쪽 같은 정절도 휘청거리게 만드는 ‘상황’이 일어나는 법이다. 어쩌면 우리가 결혼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인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휩쓸린 나머지 언젠가 부부간의 유대감마저 끊어버리는 상황. [148]
셜리 P. 글래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벽과 창문’이론
글래스 박사는 기혼자들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고 했다. 부부 관계의 ‘벽과 창문’이 올바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부부 관계는 창문과 벽으로 이뤄져 있다. 창문은 부부가 세상에 공개하는 그들의 관계의 한 측면이다. 다시 말해 창문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구멍이다. 반면 벽은 부부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지키기 위한 신뢰의 장벽이다.
배우자와 이야기해야 할 비밀을 새로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보다 현명하고 정직한 길을 택해야 한다. 집으로 가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의 창문과 벽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 [149-151]
미국 불륜 전문가 셜리 글래스 박사 <NOT "JUST FRIENDS">
“친근한 이성 직장동료를 얻는 것은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 첫 출발이다.
기혼자가 회사내 동료에 대해서 설명할 때, ‘친구’라는 단어 앞에 ‘단지’, 또는 ‘그냥’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되는 경우가 생기면, 사무실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졌다는 소리다.”
얼마전 신문기사와 연결된다. 사내 멘토에 대한 기사를 흥미있게 보고 스크랩을 했었다. 이 주제는 충분히 다룰 가치가 있다. 나의 경우, 그리고 신랑의 경우.
나는 한 때 욕망이란 인간이 손쓸 도리가 없는 토네이도와 같다고 믿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토네이도가 우리 집을 강타해서 공중분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금실이 좋은 부부들은 그냥 운이 좋다고, 운 좋게도 토네이도를 피해 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토네이도를 대비해서 지하에 함께 대피소를 짓고,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그 대피소로 피신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152]
가끔씩 단둘이 가지는 시간이, 간신히 시간을 짜내어 만드는 데이트가 우리의 대피소였던 것 같다. 아무런 이론적 배경 없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결혼을 위한 대피소를 만들어 왔다니, 행운이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면, 당연히 친밀감이 싹트고, 결혼 생활도 단지 사랑의 힘만으로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 무슨 전략이나 도움, 도구, 통찰력은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전남편과 나는 엄청나게 무지하고, 엄청나게 미성숙하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단지 결혼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용감하게 결혼에 뛰어들었다. [153]
제대로 된 결혼을 위해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다
정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은 결혼 생활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부부간의 신뢰는 한 번 깨지면 다시 이어붙이기가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일단 오염된 강을 다시 정화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편이 훨씬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154]
각자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발을 디딘 채로 결혼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157]
우리가 어색함과 불편함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나이를 먹으면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냉엄한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랑에 한껏 취해 있을 때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속에 우울함과 분노가 가득하고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었을 때 이야기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다. [158]
이혼이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적 환경에서 살아온, 그리도 두 당사자가 이혼을 직접 겪었던 이들의 경우 현명한 처사이다. 반면 이혼을 선택지에서 아예 지우고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혼전계약서는 어떤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또 미래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사회적 장치를 취할 수 있다면 보다 안정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연애와 신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때로는 약간의, 실 같은 족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일엽편주가 결혼생활의 지탱이 될 수도 있다. 보통 한국 신혼부부들의 재산 목록 1호는 집, 또는 전세금이니, 공동명의계약서 정도는 어떨까. 불편한 점을 무릎쓰고-불편한 점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감수할 가치는 있다- 최초의 손바닥만한 신혼 전세방을 공동명의로 한 이래, 고수해 오고 있는 공동명의. 내가 주변의 여성들에게 강추하고 있는 항목!
갈매기도 25퍼센트는 이혼한다
네잎 클러버를 모으듯이 우리의 장점을 수집해 호주머니 속에 잔뜩 넣고 다니며 확신이 필요할 때마다 초조하게 만지작거렸다. [159]
‘충돌회피형’
‘상호 수용적인 행동’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마음을 슬쩍 내보였다가, 불화를 피하기 위해 뒤로 후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양쪽 모두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일 때만 효과가 있다. [160]
싸우지 않는 부부도 문제라고? 싸움도 두 종류가 있다. 서로를 비판하고 상처를 입히고 주도권을 가지려는 싸움과 자신의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소통을 시도하는 싸움.
신혼 때 불같이 싸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화해하는 선배부부를 보면서 우리가 왜 싸우지 않는지 약간은 걱정이 되었던 적이 있다. 우리부부는 우리의 방식대로 싸우며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붓다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적당한 시간과 거리만 둔다면, 저절로 없어진다고 가르쳤다. [161]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은 당사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에머슨 [162]
사랑하기에 그를 보호하고 싶다
완벽한 척하면서 그를 유혹하고 싶지 않다
결혼 전에 동거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혼 확률이 좀 더 높은 것 같다. 사회학자들은 아직 그 이유를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169]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보수적이고 제한된 시각을 가진 부부일수록 더 불행하고 유대감도 약했다. 바꿔 말하면,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오던 자질구레한 집안일에도 남편이 참여하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170]
너울거리는 차이점 위에 균형 잡고 바로 서다
나는 남녀 관계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가장 좋은 면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상대방의 가장 훌륭한 점을 사랑하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어. 그건 똑똑한 게 아니야. 진짜 똑똑한 건 상대의 단점도 받아들이는 거야. 파트너의 단점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 ‘이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지. 왜냐하면 좋은 건 없어지지 않거든. 항상 예쁘게 반짝거릴 거야. 하지만 그 밑에 있는 쓰레기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어. [176]
내가 결혼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항상 해온 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두 세 가지를 기준으로 보고, 나머지 부분들은 pass or non-pass 로 판단하라는 것.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가지고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선을 정해 판단하라는 것. 그의 조건, 그의 환경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는 생각.
상대방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훌륭한 선물은 없다. [177]
자신의 단점을 잘 파악했다면, 그것을 완벽하게 고칠 수는 없을지라도 통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펠리페 자신이 고칠 수 없었던 단점을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177]
“인간은 누구나 단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가 있고, 유혹에 약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녀가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서로의 단점을 알게 되지만, 또한 상대방과 나의 존경스럽고 훌륭한 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엘리너 루스벨트 [178]
평상시에는 좋은 사람이 가끔씩 아주 꼴 보기 싫은 눈엣가시처럼 구는 것을 가능한 한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엌은 리놀륨 장판이 깔린 작은 신전이 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매일같이 상대를 용서하는 법을 수련해야 한다. 결국에는 우리도 상대에게 용서받고 싶기 때문이다. [179]
이런 차이점들 가운데는 중요한 것도 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모두 고칠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누군가와 친밀해지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실망감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용서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독제인 것 같다. [181]
우리의 차이점과 단점은 너울거리는 그림자처럼 언제나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시야의 한쪽 구석에 친밀감이라는 녀석이 너울거리는 차이점 위에 서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녀석은 실제로 우리 둘 사이에 서서 썩 잘해내고 있다. [181]
제 5장 여성과 결혼이라는 주제는 사방이 수수께끼다
아무런 명칭도 얻지 못한, 오늘날의 문제점은 일과 사랑, 가정, 육아라는 네 개의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동시에 돌리는 것이다. -베티 프리단
집집마다 이혼과 맹장염 사연은 하나씩 있는 법!
자기 뜻대로 사는 미혼 여성, ‘적군의 폭탄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
극도의 가난은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돈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선택의 자유를 준다. 돈으로 아이의 양육을 맡길 수 있으며, 욕실을 따로 쓸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청구서를 두고 옥신각신할 필요도 없다. 안정된 결혼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모든 일들이 가능해진다. [200]
케오의 일상으로 들어가 또 하나의 결혼을 보다
외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확고한 단어는 ‘퍼준다’
여기서 ‘우리 쪽 사람들’이란 우리 집안의 여자들, 특히 내 뿌리이자 근원인 이가 쪽 여자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식을 위해 평생 당신이 소유했던 물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포기한 일은 우리 외할머니 세대의 모든 여성들이 가족과 남편, 자식을 위해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17]
할머니들의 유일한 문제점은 다른 것은 다 퍼줘도 자신의 삶에 대한 견해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19]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반자가 있고, 그 동반자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두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에 확신이 있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220]
남편 인생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병적인 심리의 반영이라고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나 노이가 자신들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인정할 것이며, 그들의 그런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삶은 정확히 그들이 원하던 바였다. [220]
완벽한 결혼이라는 판타지에 세뇌된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결정이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일이라고 말했던 외할머니가 그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이 상황 [222]
‘결혼 혜택 불균형’
혼인 서약을 통해 남자들은 많은 이득을 얻는 반면, 여자들은 주로 많은 이득을 잃는다는 뜻이다. [223]
딸이 언젠가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면, 공부를 끝까지 다 마치고, 가능한 한 결혼을 미루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지 말고, 기꺼이 욕조 청소를 해주는 남자를 찾으라고 조언해주어라. 그러면 우리 딸들도 미래의 남편과 비슷하게나마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24]
“내 경우에 결혼하고 싶다는 건 곧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다는 욕망이야.”
결혼식은 “내가 영원히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특히 나 자신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는” 공식적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225]
오로지 결혼식 판타지를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뛰어나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남자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오후 한나절 동안 자신의 가치를 공공연하게 증명하는 대가로 미래의 행복을 내놓는 것이다. [226]
최대한 현실에 바탕을 둔 명확하고도 거짓 없는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히 우리 여성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냉정한 식별력이 생기기까지는 가끔씩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227]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여성은 성인이거나 바보?
최소한 우리 집안에서 부부간의 큰 불균형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이 썼듯이 “여성들의 온전함은 보살핌의 가치 체계와 얽혀 있는 듯하다. 따라서 여자로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강렬한 본능 때문에 우리 집안의 여자들은 종종 스스로에게 해로운 선택을 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며,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중요한 느낌을 계속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229]
선택의 자유, 그것은 현대인의 특권인 동시에 책임이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었으며, 비록 큰 대가를 치렀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지켜나갈 것이다.
“필리스는 남편을 위해 직장을 포기했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234]
어떤 시대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결코 단순하게 느껴질 수 없는 법이다. [235]
‘뉴잉글랜드 묘지 신드롬’을 안고 사는 현대 여성들
스테파니 쿤츠
“언제, 몇 명의 아이를 낳을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피임 수단이 생긴 후에야 비로소 여성들은 삶과 결혼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237]
엄마는 자신의 일을 커리어로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엄마의 그런 취미 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나중에 엄마가 말한 대로, 엄마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남편의 도움과 격려 없이 두 가지 모두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241~242]
나는 우리 엄마를 포함한 많은 현대 여성들이 가슴에 자신만의 뉴잉글랜드 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 포기했던 꿈들이 그 묘지 안에 말없이 묻혀 있는 것이다. [243]
분명한 것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었기에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은 엄청나게 향상되었지만, 엄마 개인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45]
사회 시스템은 엄마들에게 스스로의 존재가 거의 사라질 정도로 이타적이 되어서 가족을 위한 모범적인 환경을 조성하라고 요구한다. ...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런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할지 고민할 수는 없을까? 여자들이 자신의 영혼 밑바닥까지 벗겨내지 않고서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건강한 가정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 말이다. [246]
언젠가 분명히 올 것이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우리는 진화하고 있다.
나의 두 딸이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변화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와 우리들의 의무이자, 기쁨이 될 것이다.
여성의 자아와 엄마의 자아가 부딪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또 다른 선택, ‘이모 연대’에 합류하다
나는 아기를 키우는 일에는 반드시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간절한 욕망, 심지어는 운명이라는 느낌까지 있어야 한다. 아기를 낳는 일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248]
“아이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양가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그렇게 지긋지긋한 동시에 가슴 뿌듯한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가끔씩 말문이 막혀.”
“맞아, 아이를 낳으면 자유를 잃게 돼. 하지만 엄마가 되면 새로운 자유를 얻지. 무조건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도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 정말로 엄마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도 엄마가 되면 힘들어해. 뚜렷한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아기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마.” [250]
이 똑똑한 여자들은 그저 자기 식대로 일을 해결하고, 본능에 따라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내가 엄마가 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나 이외에 다른 어떤 여자도 대신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251]
이 세상 부부는 자신들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나간다
우리 부모님은 처음 만난 이후로 여전히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이기도 하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이 서로에게 육체적으로 만족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한 선물이다.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는 이성적인 차원을 넘어선,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성적인 끌림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친밀감은 어떤 설명이나 이론도 뛰어넘는다.
부모님은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다. 함께한 세월도 이제 40년이 넘고, 서로 간의 타협도 대부분 끝났다., 일상은 여유롭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취미로 하던 일들도 수준급이 되었다. 두 분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패턴으로 매일 서로의 주위를 맴돈다. [259-260]
시인 잭 길버트, 결혼이란 “기억에 남는 사건들 사이”의 일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기억나는 것은 “휴가와 비상사태”, 즉 가장 좋은 때와 가장 나쁜 때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똑같은 일상이 희미하게 뒤섞여 있다.
결혼은 별다른 특징 없는 2천 번의 아침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별다른 특징 없는 2천번의 대화이며 바로 거기서 친밀감의 바퀴가 서서히 굴러간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친밀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일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눈만 돌리면 곁에 있어서 공기에 버금갈 정도로 필수불가결한 존재. [260]
엄마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보다 야망을 더 많이 포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가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이 아버지가 엄마에게 요구한 것보다 훨씬 많다. 아버지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딸과 조금이라도 함께 살 생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자네 공간을 정해놓고 평생 그걸 사수하도록 하게.”
한번은 아버지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엄마가 자기 삶의 95%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95퍼센트를 엄마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분노보다, 나머지 5퍼센트를 끝내 차지하지 못한 엄마의 분노가 더 크다는 것이다. [262]
결혼은 문명의 마구로 남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며, 따라서 그의 들뜬 에너지를 억누른다. [262]
엄마가 나머지 5퍼센트까지 노리고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 싶을 때만 팔꿈치로 엄마를 밀어냈다. [264]
아주 가끔 그의 저 깊은 속까지 몽땅 알아내고 그 안에 나도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가도 그런 내 감정의 격렬함에 혼자 놀라곤 한다.
그를 백퍼센트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 또한 수시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산다. 게다가 난 그가 나를 완전히 알고 나를 완전히 소유하길 원하지 않는다. 내 안에는 그 누구에게도-친정엄마도, 아이들도, 물론 신랑도- 속하지 않는 내 자신이 있다. 그러니 그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으리라. 가끔 슬쩍슬쩍 비치는 그의 새로운 면, 낯선 면들이 나에게 설레임이 되듯이 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돈 걱정 없이 건강하고, 자유롭게 네 아빠와 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구나. 네 아빠와 나는 각자 할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 뒤에 매일 저녁 식탁에 마주앉지. 그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저녁 식탁에 앉아서 웃고 떠든단다. 행복한 일이지.”
“솔직히 말해서, 내 인생의 황금기는 너희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됐어.” [266]
자신의 인생에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 가질 수 있다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순진한 환상은 오래전에 버렸을 것이다.
엄마는 모순이라는 거친 바위가 솟아 있는 친밀감의 들판에 꽤 편안한 자신만의 안식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267]
제 6장 결혼 생활에서 상대를 풀어주고 구속하는 법을 배운다
결혼은 아름다운 거야. 하지만 정신적인 패권을 두고 싸우는 끝없는 전쟁이기도 하지.
- 마지 심슨 -
수렁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
남자들은 대체로 무력감을 느낄 때 단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272]
내가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 있다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실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272]
“이 상황이 당신에게 정말 힘들다는 걸 알겠어요.”
[부부를 위한 사랑의 기술 : 부부관계를 강화하는 열 가지 전략] 가트맨 박사 [280]
연인 사이에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 오랜 친구의 말대로 결혼 생활의 행복은 홧김에 하려는 말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 때마다 생기는 흉터의 개수로 정해지는 것이다. [283]
“앞으로 서너 시간은 서로에게 하는 말을 조심합시다. 살다 보면 지금처럼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말다툼을 벌이기 십상이지. 쉴 곳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하는 말에 신중합시다.”
말다툼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체포해두자는 것이다. [284]
“사랑해”
마법의 주문.
조심할 것은 “사랑해. 그렇지만...”으로 만들지 말 것.
“사랑해. 그래서 난 .......이 걱정돼.”
사랑에 빠진 인간은 추운 겨울밤의 고슴도치와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분은 다투지 않기 위해 채소를 나눠서 가꾸게 되었다. ...
그렇게 두 분은 따로 또 함께 텃밭을 가꾼다. [294]
서로 나누는 부분들.
시댁, 친정 등 주변의 관계관리, 재활용품 버리기, 주말 식사 준비, 청소 등등의 일상, 아이들 교육과 학습에 대한 부분들.
미묘한 문제가 발생할수록 조심스럽게 서로의 영역을 나누어 간다.
한 사람의 문제제기가 있을 때 매번 조정해가면서 우리 가정만의 틀을 만들어간다.
쇼펜하우어, 고슴도치
현대인의 친밀한 관계가 갖는 필연적인 딜레마
“가시에 찔리지 않고도 몸이 얼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찾을 때까지 주기가 계속 반복된다.” [295]
돈과 자식 같은 중요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비트, 블루베리처럼 사소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은 서로의 영역을 나누고, 또 나눠서 자신들만의 고슴도치 춤을 만들었다. 계속 협상하고, 계속 조정하고, 서로의 의지가 존중되는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계속 찾으면서 상대의 영역에 침범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한다. 친밀감이라는 이 이상한 텃밭을 계속 가꿀 수 있는, 미묘하면서도 도달하기 어려운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은 많은 타협을 했다. [295-296]
결혼은 원래 구속이고 상대를 길들이기 때문이다. [296]
폴란드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주제에 대해 탁월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현대인들이 친밀감과 자율 모두를 가질 수 있으며, 가져야 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산다고 했다. 즉 삶에서 친밀감과 자율이 똑같은 비율을 차지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만 하면, 구속감은 전혀 느끼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이 주는 안정감만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마법의 단어, 맹목적으로 숭배되기까지 하는 단어가 바로 ‘균형’이다.
바우만이 썼듯이 우리는 결혼 생활 속에서 “어떤 권력도 빼앗기지 않은 채 얻으려만 하고, 불가능해지는 일 없이 가능한 일만 있고, 의무는 거부한 채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동경이 아닐까? 사랑이 상대를 구속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에 빠지면 마음은 한없이 팽창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큰 제약이 따른다.
그의 (성적, 감정적, 창조적) 에너지는 상당 부분 내게 속해 있다.
더 이상 그 에너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라고도 할 수 없다. [297]
상호적이며 조용하고 부드러운 압박 작전을 펼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기에 상대를 풀어주는 동시에, 극도로 조심스럽게 상대를 구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절대, 단 한 순간도 서로에게 구속되지 않은 척해서는 안 된다. [298]
어린왕자 다시 읽어볼 것! 여우와 어린왕자의 ‘서로 길들이기’
펠리페를 두고 혼자 떠난 캄보디아 여행
구명보트를 하나로 이어 붙이고 항해를 계속하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여행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 삶은 엉망진창이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항상 올바른 길로 갈 수만은 없다. [306]
제 7장 모든 결혼은 정부를 전복하는 행위다
인생에서 결혼만큼 타인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는 일도 없다. 하지만 결혼이야말로 인생에서 타인이 가장 많이 개입하는 일이다. - 존 셀던,1689-
상대의 이야기를 물려받고 교환하며 밤을 새우다
시간이 흐르면 친밀감도 그런 효과를 발휘한다. 오랜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상대의 이야기를 물려받고 교환한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부록이 되고, 상대의 생애가 덩굴처럼 휘어감고 자랄 수 있는 시렁이 된다. 펠리페의 개인사는 내 기억의 일부가 되었고, 내 생애는 그의 생애의 재료들과 엮이게 되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한 땀 한 땀 모여 친밀감이 수놓아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314]
그렇게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친밀감이다.
이 행위, 조용한 밤에 이야기를 나누는 이 행위야말로 동반자 관계의 신기한 연금술을 가장 잘 증명해준다. 왜냐하면 펠리페가 아버지의 수영하던 모습을 묘사했을 때 나는 그 영상을 머릿속에 받아들여 내 삶의 가두리에 조심스럽게 꿰매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평생 그것을 지니고 다닐 것이다. 내게 숨이 붙어 있는 한, 설령 펠리페가 죽고 한참 지난 후에라도 그의 어린 시절 기억, 그의 아버지, 그의 강, 그의 브라질, 이 모든 것이 내 일부가 될 것이다. [316]
10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해 왔어도, 그리고 수없는 시간과 이야기를 나눠왔어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야기꺼리가 넘쳤다. 출장을 다녀온 신랑과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곳으로 수학여행을 온 우리나라 학생들을 만난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조숙했던 그는 수학여행 간다는 이야기조차 집에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간 며칠 동안 혼자 학교에 나가 공부를 했다는, 그래서 경주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올해 가족 여행지를 경주로 정할 수 있었다. 처음가본 아이들과 신랑에게는 물론, 버스 윗 창으로 들어오던 벚꽃과 아이들의 북적댐만 기억나던 나에게도 경주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오솔길을 손잡고 걷던 일, 벚꽃이 휘날리는 보문단지, 살짝 넘어가는 햇빛과 조명들이 너무도 아름답던 대릉원에서 자전거를 타던 일... 이날의 기억들은 내가 죽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까르륵 까르륵 숨넘어가게 웃던 아이들의 소리와 아이들을 함께 바라보던 그의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결혼은 혼자서 하는 기도가 아니야!
대체 공적이고 법적인 결혼식이 뭐길래?
조셉 캠벨 <황금가지>
의식은 중요한 사건을 평범한 일상과 분리하기 위해 중요한 사건 주위에 일종의 원을 그리는 행위다. 의식은 우리를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끄는 마법의 안전벨트로, 그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 한가운데를 조심스럽게 지나갈 수 있다. 마부가 눈가리개를 한 말에게 “너무 대단하게 생각할 것 없어, 친구. 일단 한 발짝만 떼면 무사히 맞은편에 가 있게 될 거야”라고 속삭이며 불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329]
친구와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에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330]
결혼에 대한 내 가장 큰 두려움은 결국 결혼이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리라는 생각이었다. [336]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든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야말로 ‘프라이버시’의 정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섹스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전복적인 일면, 즉 ‘친말함’을 뜻한다. 세상 모든 연인들은 시간이 흐르며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339]
결혼은 마음의 자유를 대표 [340]
결혼을 해도 아내인 동시에 인간일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모든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보장된 것이다. [343]
우리는 동반자 관계 안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갔다. 무엇인가를 원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러하다. 감정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둘만의 친밀감을 갈망한다. 둘만의 친밀감에 빠져 있을 때도 그것을 갈망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불법일 때도 둘만의 친밀감을 갈망한다. [344]
결혼해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떠들썩한 노래
제 8장 결혼은 가장 공적이면서 사적인 일이다
드디어 국토안보부의 승인을 얻다
마침내 법적인 부부가 되다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결혼해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10개월간 탐색의 결과이다. 아직도 저자가 두 번째 결혼에 만족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결혼과 자신, 그리고 배우자에 대해 이토록 깊고 넓은 탐색과 공부를 한 결과가 행복한 결혼으로 지속되기를 응원하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결혼을 선택의 사항보다는 인생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많은 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되풀이 주장하건데, 결혼준비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신혼집’과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 준비는 결혼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아내와 남편이라는 역할에 대한 마음과 생각과 몸의 준비이다. 한 번씩 이혼을 거친 저자와 그 약혼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그 예가 될 수 있었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 벌어진 장면부터 결혼식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신의 이야기를 뼈대로 하여 풍부하게 포함된 다양한 인용들과 인문학적 자료들은 지식과 더불어 읽는 재미를 높여주었다.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결혼’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가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에게도 큰 참고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보다 보편성을 띄고 전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더 고민하면서 저자가 군데군데에서 인용한 책들도 읽게 되었다. 책 제목과 책표지의 반지 사진 또한 마음에 들었다. 결혼한 지 40년이 된 부모님 모습-‘그렇게 두 분은 따로 또 함께 텃밭을 가꾼다’-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