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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6일 00시 07분 등록

북리뷰 79. 소중한 추억, 나의 어머니


책: <소중한 추억, 나의 어머니> 헨리 나웬 지음. 성찬성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1988. 1993 2판 1쇄.
    원제: <In Memoriam >  Henri J. M. Nouwen. 1980.


***저자에 대하여

 

 

전에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라는 책으로  동일한 저자의 책을 리뷰 한 일이 있습니다. 
    http://www.bhgoo.com/zbxe/567798


***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5. 나의 어머니는 1978년 10월 9일 월요일 오후 6시 14분에 세상을 떠나셨다.

의사가 들어와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보더니 말했다. “운명하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했다. 나는 이 순간 우리에게 꼭 맞는 말, 비탄의 말과 감사의 말과 희망의 말을 찾아내려고 고심하였다. 지극한 친교의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고요하고 평화롭게 누워 계셨다. 우리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기도하였다.

 

“주여, 이제 이분을 당신의 집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분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가도록 힘을 주소서.”

 

6. 나는 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최후의 몇 날을 글로 옮기고자 한다. 이 며칠 동안에 실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내가 걱정되는 것은 적당한 낱말을 찾아내서 내 체험의 윤곽을 잡아놓지 않으면 이것이 일상생활의 회오리에 휘말려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7. “참, 안됐네.” “그래, 마음이 아파”

 

이런 대화들은 위안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심한 권태감만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애도를 표하는 이들 모두가 무척이나 고맙고, 또 내가 느끼는 비애를 누구하고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8. 내가 이 사건을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비록 평범하여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이 못 된다하더라도 많은 면에서 알려지지 않은 불가해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정상적인 사건들 속에서 인간생활의 신비를 접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 남자와 여자가 포옹하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죽을 때, 생명의 신비는 우리에게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그 무엇과 깊숙이 접촉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명의 은밀한 심연을 발견하게 된다.

9. 이제 그 분은 더 이상 내 어머니만이 아니다. 그 분은 생전에는 몇 사람에게만 속해 있었으나 죽음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속하게 되었다.

 

11.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너무 더디었다. 뉴욕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갈 때 나는 어머니와 영원히 작별인사를 나누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행기가 차가운 북대서양 상공에 이르렀을 때는 외돌이가 된 기분이었다. 외로운 것도,낙담한 것도, 불안한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외톨이였다.

 

12. 그때 나는 슬픔은 반갑지 않은 동반자이며, 낯선 사람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침 일곱 시에 나는 시폴 공항의 기다란 복도를 걸어 나왔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내 어머니가 고통 중에 누워있는 나이메헨 병원의 병실에 들어섰다. 내가 미소를 띄우자 어머니는 내가 와준데 대해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머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손을 어루만졌다. 말은 거의 할 수도 없었고 필요치도 않았다. 우리가 함께 있는 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16. 그녀가 내 눈을 응시할 때, 나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이 내 안에 계속 남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녀가 남편과 자녀들 및 손자들, 그리고 그녀를 변함없이 감싸왔던 기쁨에 찬 삶 등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19. 내가 저녁에 병실에 다시 왔을 때 그녀의 눈빛은 변해있었다. 내가 그녀를 빤히 응시해도 그녀는 더 이상 눈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병자 성사를 드릴게요...치유의 기름을 바르고 우리 함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어요.” 내가 어머니를 향하여 몸을 굽히지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난 생각하기가 힘들구나. 무엇이 좋을지는 네가 알잖니?” 하고 말했다. 나는 촛불을 켠 후에 기도를 시작했다. 새 생명과 위기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하느님의 뜻에 자기를 맞길 수 있는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는 그녀에게 성유를 바른 손으로 세 차례 성호를 그어 주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이미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20. 이 조용한 순간 - 촛불 하나와 낮게 발음된 말씀 몇 마디, 그리고 성유를 바르는 친교예식 - 직후에 그녀의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대한 준비가 미처 되어있지 못했다. 그녀의 죽음이 몸부림을 동반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21. 내가 그녀에게 발라준 기름이 처절한 전투가 시작된다는 표지였음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은 힘겨운 죽음을 설명하려는 경건한 시도 그 이상의 것이었다.

 

22. 어머니는 내게 죽는 것이 두렵다고 여러 번 말해왔다. ‘하느님의 면전에 나아가 내 일생을 그대로 보여드리기가 두렵다“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23. 우리는 불안하게 허공을 휘젖는 두 팔을 붙들어주고, 땀에 밴 이마를 부드럽게 닦아주고, 베개를 조심스럽게 바로잡아주는 등 사소한 일들을 하면서 그녀와 자리를 함께 하는 일 외에 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5. 왜 우리는 선하고 온유하고 자애롭고 사랑에 찬 삶을 살았던 한 여인에게 이 같은 고뇌와 고통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왜 그토록 관대하고 희생적이었던 그녀가 이렇게 괴로운 시간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과 몸부림은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27. 친구들은 곧잘 나에게 “자네 어머님은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셨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남들을 위해서 살았다.

 

29. 그러나 나는 다른 것을 보았다. 즉 내 어머니는 철저하게 홀로 하느님을 상대로 하여 삶의 최종 결단인 신앙의 결단을 내려랴 하는 순간에 들어선 것이다.

 

31. 어머니가 더 이상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경우, 나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느껴질까? 나는 이런 체험은 전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러 해 동안 자주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곤 했다.

32. 내가 그녀한테서 피부로 실감한 것은 내가 착하거나 나쁘거나 내가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내가 가까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거나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수용,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어떤 댓가나 교묘한 속임수와는 무관한 사랑,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사랑을 감지했다.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귀속’이라는 낱말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선과 안전의 실재를 표상했다.

 

34. 어머니의 삶이 점점 끝나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는 그녀가 우리들 사이에 만들어놓았던 고리가 갈수록 더 강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35. 우리가 느끼기 시작한 이 새로운 유대는 “너희에게는 서로가 있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침대 주위에 모여서 바친 기도는 편안하고 자유스러우며 자발적이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말씀들은 서로간에 해왔던 그 어떤 말들보다 더 큰 힘과 의미를 가졌다.

 

39. 사흘 동안 몸부림치고 난 어머니는 기력이 쇠진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양 팔을 휘저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도를 웅얼거리거나 하느님을 향해 소리칠 기운도 없었다.

 

41. 지난 사흘동안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최후”라는 것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이제 고마움이나 후회스러움, 기쁨이나 슬픔 따위등을 표현할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변화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끝나가고 있었고 우리와 그녀와의 관계는 추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42.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내 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삶이 아주 간결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차례의 번뜩임, 한순간 한 번의 호흡..도착과 출발...어제와 오늘...그 모두가 눈 한번 깜짝하는 순간으로 압축되었다.

 

43.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그녀는 단지 호흡을 멈춘 것 뿐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두 눈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차마 못 보겠더구나”하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은 전혀 극적이지 못했고 아주 조용했다. 나는 그때 내가 방에 있지 못했던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45. 안개가 짙게 깔린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침실 커튼을 젖히고 들판에 자욱히 깔린 짙은 안개를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벽촌까지 오는데 애를 먹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어머니 장례식은 11시에 거행될 예정이었다.

나는 안개 속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완전하게 파악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자신의 내적 삶 가까이로 접근하기 힘들었다. 이별의 슬픔이 있었는가 하면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드리려고 찾아오는 친구들을 맞는 기쁨도 있었다.

 

46. 이 며칠 동안 가장 힘들고 서글펐던 순간이 뇌리에 떠올랐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병원을 출발하여 부모님이 최근 8년 동안 사셨던 조그마한 시골 읍내로 45분 동안 차를 몰고 달리면서 조용하게 어머나 이야기를 했다. 차가 막 집 골목으로 길을 꺾어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서러움이 안으로부터 북받쳐 올랐다. 눈물이 줄줄 계속 흘러내려 아버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47. 그 후 며칠 동안 집 안이나 집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곧잘 어머니의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 사이의 시간은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겨두고 떠난 수많은 모습들을 발견해내는 시간이 되었다. 오랫동안 지극히 당연하고 뚜렷하며 정상적인 것들이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고 있었다.

 

48. 나는 이제 나에게 사제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심어 주었고 나와 함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성찬례를 행했던 어머니를 위해 성찬례를 집전하려 하고 있으며 , 평생동안 무수히 나를 축복해 주었던 어머니에게 마지막 고별인사 삼아 그녀의 육체를 축복하고 분향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새 생명을 선포하려 하고 있었다.

 

49. 예식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진정한 경축식이 되었다.

우리가 묘지를 향해 행진할 때는 성당에서 축제예식을 거행했던 것 이상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관을 들고 성당을 나설 때는 이미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어 푸른 풀밭은 온통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행렬이 엄숙한 격식을 갖추고 묘지로 서서히 움직일 때 조객들은 무용수 같았다. 들판에는 어린 말들이 뛰어다녔고 창공에서는 새들이 날아다녔으며 미루나무들은 바람에 하늘 거렸고 거리에서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명랑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의 하느님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51. 모두가 자리를 뜨고 난 후에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니가 누워있는 조그마한 대지를 뒤덮고 있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치면서 너무나도 서글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이는 것뿐이었다.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인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53. 사흘 뒤에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케네디 공항을 떠난 지 불과 2주일 밖에 되지 않았건만 몇 해가 흐른 것 같았다. 여덟 시간을 비행하는 동안 나는 오직 잠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불안 긴장 두려움이 기쁨 감사 사랑과 더불어 내 힘을 완전히 빼앗아 가버려 그저 모든 것을 잊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집으로 가고 있는가? 이번만큼은 내 자신에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남의 나라에 와 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일하고 있는가? ” 라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54. 나는 그동안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을 따라주었고, 내가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고, 내가 쓴 논문과 저서들을 빠짐없이 읽어주었고, 내 삶을 당신의 삶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어머니가 이제 안계시다는 사실을 서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동안 비록 나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나의 일부로 항상 나와 함께 있었으며, 나는 세상을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와 함께 그녀와 함께 줄곧 이야기 해왔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상적이던 그녀와의 대화가 갑작스럽게 끝나버리자 공항과 공항택시, 내 아파트로 가는 여정 및 기타 사소한 불편들까지도 모두가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심지어 터무니 없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 이야기들이 허공에 떠있는데 내 여행, 내 강의, 내 성공과 실패, 내 고생과 기쁨들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미국으로 되돌아오자 슬픔이 되살아났다. 물론 내게는 아버지가 계시고 그분은 어머니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내 감정을 파고드는 것은 어머니의 부재였으며, 따라서 나는 이 세계를 내 집으로 만드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55. 그 후 몇 주간은 기술하기가 힘들다. 피로와 슬픔, 비애와 혼란이 있었지만 기쁨과 감사, 새로운 통찰과 아름다운 추억 역시 없지 않았다. 나는 너무 빨리 정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유혹과 싸워야 했다. 아내가 죽은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위를 했던 리처드 캐보트 박사 생각이 났다.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도록 돕기보다는 그 고통을 숨기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의식적으로 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여러 달동안 검정색 옷을 입고 사교생활을 삼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나 자신이 절제하지 않으면 쉽게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의지에 반해 어머니를 잊어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56. 나는 내가 어머니를 잊지 않아야 하며 설령 고통과 슬픔과 비애를 동반한다 할지라도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예수의 제자들은 40일 동안 사람들과 격리된 채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즉 성령을 받기 전에 오랫동안 애도하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있은 뒤에야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자기네 주님에게 매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성령이 그들 마음속에 강림하실 수 있었다.

 

57. 어머니를 기억한다는 것은 친구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벽에다 사진을 걸어두거나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또한 계속해서 어머니 생각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로 하여금 내 안에서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어 나를 빛 가까이 이끌어주도록 허용함으로써 그녀가 점진적인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58. 그녀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어느때보다도 더욱 내 가까이 머물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서, 그녀는 진실로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주고 있었다.

59. 이제 다시 나는 내 일터로 돌아놔서 가르치고, 읽고, 쓰고, 웃고, 화를 내고 있다.

60. 나는 급진적인 변화, 새로운 시작, 위대한 회심을 때때로 꿈꾸곤 한다. 그러나 나는 삶을 통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주도록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이 세대의 뛰어난 영성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헨리 나웬 신부님의 에세이다. 그는 네델란드에서 1932년에 태어났다. 사제가 된 이후에 심리학을 공부하였고 예일대에서 강의를 했다. 1980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모두 60쪽의 얇은 책이다. 이미 나의 나웬 신부님의 책을 여러 권 읽어 이 분의 열정과 글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 책을 어머니 방에 놓아두었다. 우리는 부모님께서 사시던 집을 아직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에 형제들이 가끔 그곳에서 지낸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그리우면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으라고 거울 앞에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책이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 형제들에게 많은 위로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세월이 좀 흘러 이젠 내가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쓰고 있다. 몇 권의 책을 다시 심층읽기를 하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뒤적이다가, 이 책을 찾아내고 다시 읽었다. 맑고 차거운 가을 밤, 이번에는 나웬 신부님의 글이 이제는 “내가 죽은 후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하는 관점에서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중요한 시선이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에게도 죽음은 예외없이 찾아올 것이고 피상적인 죽음을 나와 함께 사는 죽음으로 새로운 묵상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쩌면 지금 나는 통과의례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왔고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채 묵묵히 죽음 공부를 해 왔다. 지금까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팔짱을 끼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팔짱을 풀고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모으고 죽음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팔짱을 끼면 우선 심장이 보호되니 두려움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다. 물론 두 손도 가슴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니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좀 더 가까이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내게는 좋은 길동무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이 책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좀 더 심오한 신앙의 신비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저자가 카톨릭 사제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바쁘게 사느라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신앙의 신비로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해 두는 것이 나의 죽음 공부의 열매라고 생각하며 짧은 글 긴 생각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잠시 이 글의 목적을 잃었다. “내가 만일 저자라면....”이라고 말하기 보다 나도 사실 이렇게 얇은 책을 쓰고 싶다. 어디엘 가든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위로도 받고 읽은 구절 또 읽으며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그러나 헨리 나웬 신부님은 이미 100권이 넘는 책을 쓴 영성가이다. 그러니 그는 사실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네델란드 인으로서 미국에서 주로 살고 있었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실천적 삶은 추구했던 그는 그의 경력만으로도 책이 되는 작가였다. 그가 하루의 일과를 기록만 해두어도 바로 한권의 책이 되고 마는 작가. 내가 만일 저자라면 ....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아쉽게도 1996년 9월 21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어떻게 다르게 써보겠다는 생각보다도 좀 더 오래 살아서 죽음 준비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준비가 잘 된 죽음이라..........

 

 

 

 

 

 

 

 

 

 

 

 

 

 

 

 

 

 

 

 

 

 

 

 

 

 

 

 

 

 

 

 

 

 

 

 

 

 

 

 

 

 

 

 

 

 

 

 

 

 

 

 

 

 

 

 

 

 

 

 

 

 

 

 

 

 

 

 

 

 

 

 

 

 

 

 

 

 

 

 

 

 

 

 

 

 

 

 

 

 

 

 

 

 

 

 

 

 

 

 

 

 

 

 

 

 

 

 

 

 

 

 

 

 

 

 

 

 

 

 

 

 

 

 

 

 

 

 

 

 

 

 

 

 

 

 

 

 

 

 

 

 

 

 

 

 

 

 

 

 

 

 

 

 

 

 

 

 

 

 

 

 

57. 어머니를 기억한다는 것은 친구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벽에다 사진을 걸어두거나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또한 계속해서 어머니 생각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로 하여금 내 안에서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어 나를 빛 가까이 이끌어주도록 허용함으로써 그녀가 점진적인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58. 그녀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어느때보다도 더욱 내 가까이 머물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서, 그녀는 진실로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주고 있었다.

59. 이제 다시 나는 내 일터로 돌아와서 가르치고, 읽고, 쓰고, 웃고, 화를 내고 있다.

60. 나는 급진적인 변화, 새로운 시작, 위대한 회심을 때때로 꿈꾸곤 한다. 그러나 나는 삶을 통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주도록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이 세대의 뛰어난 영성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헨리 나웬 신부님의 에세이다. 그는 네델란드에서 1932년에 태어났다. 사제가 된 이후에 심리학을 공부하였고 예일대에서 강의를 했다. 197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모두 60쪽의 얇은 책이다. 이미  나웬 신부님의 책을 여러 권 읽어 이 분의 열정과 글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 책을 어머니 방에 놓아두었다. 우리는 부모님께서 사시던 집을 아직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에 형제들이 가끔 그곳에서 지낸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그리우면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으라고 거울 앞에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책이다. 마음 붙일 곳을 찾지못해 헤매일때.  우리 형제들은  각자 갈구하던 만큼의  위로를  이 책에서 찾았으리라  믿는다.

세월이 좀 흘러 이젠 내가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쓰고 있다. 몇 권의 책을 다시 심층읽기를 하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뒤적이다가, 이 책을 찾아내고 다시 읽었다. 맑고 차거운 가을 밤, 이번에는 나웬 신부님의 글이 이제 “내가 죽은 후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하는 관점에서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중요한 시선이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에게도 죽음은 예외없이 찾아올 것이고 피상적으로 바라보던  죽음을 이제는 나와 함께 사는 죽음으로 새로운 묵상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쩌면 지금 나는 통과의례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왔고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채 묵묵히 죽음 공부를 해 왔다. 지금까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팔짱을 끼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팔짱을 풀고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모으고 죽음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팔짱을 끼면 우선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심장이 보호되니 두려움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다. 물론 두 손도 가슴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니 보호가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좀 더 가까이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천천히 들어보아야겠다.  언제나 내게는 좋은 길동무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이 책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좀 더 심오한 신앙의 신비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저자가 카톨릭 사제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바쁘게 사느라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신앙의 신비로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해 두는 것이 나의 죽음 공부의 열매라고 생각하며 짧은글 긴묵상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잠시 이 글의 목적을 잃었다. “내가 만일 저자라면....”이라고 말하기 보다 나도 사실 이렇게 얇은 책을 쓰고 싶다. 어디엘 가든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위로도 받고 읽은 구절 또 읽으며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그러나 헨리 나웬 신부님은 이미 100권이 넘는 책을 쓴 영성가이다. 그러니 그는 사실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네델란드 인으로서 미국에서 주로 살고 있었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실천적 삶은 추구했던 그는 그의 경력만으로도 책이 되는 작가였다. 그가 하루의 일과를 기록만 해두어도 바로 한권의 책이 되고 마는 작가. 내가 만일 저자라면 ....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아쉽게도 1996년 9월 21일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어떻게 다르게 써보겠다는 생각보다도 좀 더 오래 살아서 죽음 준비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준비가 잘 된 죽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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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08:03:44 *.69.159.123

작가 2세님

댁글 댓글.... 번지수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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