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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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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7일 08시 30분 등록

누구나 그렇겠지만,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올해 일흔둘이신데, 몇 달에 한번씩 뵙다보니, 뵐 때마다 달라지시는 것같다. 천성이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정말 법없어도 살 분이다. 성장기의 나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씩씩한 둘째딸로, 엄마와 미주알고주알 잔정을 주고받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 성격이 워낙 데면데면하여 재잘대는 편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농촌활동 한답시고 수상쩍게 떠돌다 결혼하게 되어, 집을 오래 떠나있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되겠다.

엄마와 관련된 기억으로는 두 가지가 선명하다. 아들애를 낳을 때, 태아가 잘못 앉았다고 해서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는데 건강체질인 나로서는 처음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생겼다. 아무리 씩씩하다고 해도 난생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는 마음이 편키야 했으랴, 그 때 수술실로 밀려 들어가는 내게 엄마가 다급하게 소리치셨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배수술 두 번이나 했어!”
그 때의 그 든든함이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직후의 병원에서였다. 그러고보니 두 번 다 병원에 대한 기억이로구나. 9년 전 가벼운 수술이라고 여겼는데, 노환이라 그랬는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무도 임종을 못한 셈이다. 부랴부랴 올라간 내 손을 붙잡고 엄마가 울며 말씀하셨다.
“아아, 내가 니 애비를 굶겨 보냈다”
수술때문에 속을 비워 허하셨는지, 아버지께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며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것이 못내 서러운 것이었다.

내가 나이들고 엄마는 늙어가시며, 이제 우리의 역할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엄마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듯이, 이제 내가 엄마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아들이 있고, 엄마는 아들을 애인 대하듯 애틋하게 대하신다. 하지만 딸들 눈으로 보기에 아들은 영원한 응석꾸러기이다. 섬세한 이야기상대도 되지 않거니와, 늘 엄마에게 요구만 하는 느낌이다. 어쨌든 별다른 계획없이 부딪치는대로 살자는 주의인 내게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그건 엄마에 대한 것이다. 여행도 자주 보내드리고 싶고, 혹은 텃밭을 마련해드려 소일거리를 드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

사실은 이런 꿈들은 모두 당연한 것이다. 엄마에게서 받은 것을 갚는 것에 불과하다. 엄마세대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최대한 해 주고, 자식에게서 봉양받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세대였다. 나의 엄마역시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며 살았다. 아직도 우리 집에 오시면 하루만에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놓으신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까지 조금 쉬었다 가시라고 해도 잠시도 앉지 않고 당신이 입었던 옷까지 빨아놓고 가신다.
그러니 나의 태도는 생각있는 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보은의 태도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짜임새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엄마때문이고,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효도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문제는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다.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서 아들애가 대학 2학년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워낙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인성교육이니, 속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심지깊고 자율적이라 조금도 신경쓸 일을 만들지 않는 아이였다. 게다가 감수성이나 개인주의적인 측면 등 모든 면에서 나의 복사판이었다. 촌놈이고 또 다분히 내향적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기대이상으로 대학 생활을 잘 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동아리에 취미를 붙여 부지런히 출사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홍대앞 클럽이나 각종 공연에도 자주 가는 등, 외향적인 면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 것같아 보기좋다. 입학초기에는 내딴에는 사회과학 쪽 책좀 읽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 대학가 분위기는 영 딴판인가보다. 아들 애 자체가 중고시절 보다도 책을 덜 읽는 것같다.

나는 친정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자식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고 또 봉양받기를 원하는 세대가 아니다. 말하자면 부모를 봉양하되 자식에게 봉양은 받지 못하는 낀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자 간에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우리 엄마처럼, 아들보기를 애인처럼 애틋하게 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자관계밖에 아는 것이 없는데, 어디쯤에서 적절한 관계정립이 가능할지 아직은 막막하다.

어느 순간 아이가 부쩍 큰 것을 깨달을 때, 아이가 객지생활을 너무 잘 해 나갈 때, 아! 이렇게 아이가 떠나가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형적인 엄마였다면 이럴 때 상당히 격리불안을 느꼈겠구나 하는 자기분석도 뒤따른다. 나는 아직도 자기계발에 관심을 쏟는 신세대 엄마이므로, 서운함이나 위기의식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처신에 생각이 미친다.

희생에 대한 보은으로서의 효도에 대신 놓일만한 가치는 어떤 것이 있을까. 희생하지도 않아놓고 권위를 내세울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다. 무조건적인 효도를 요구하기에는 나는 너무 이성적이다.

아직 정확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언제고 말이 통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겠다는 원칙만 세워 놓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의논상대이지 모든 결정은 아이가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정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아이의 인생이 시작되었고, 독립된 개체만이 대화든 사랑이든 나눌 수 있을 터이므로.

여기까지 쓰는데 일말의 회한이 스쳐간다. 결국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하는 서구식 모자관계가 될 확률이 높은데, 그것이 과연 전통적인 가족관계보다 발전적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생의 천적끼리 만나 부부가 된다는 식으로, 부모자식관계도 마냥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평생을 끌어안고 일상을 공유하며 비비고 사는 것이 가족이고, 끈끈한 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래저래 인간관계에는 해답이 없나보다.


IP *.85.14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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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6.17 10:07:47 *.118.67.80
그렇네요.
인간관계는 답이 없는 것이 답인것 같군요.
남자인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독립할 나이가 되면서부터(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님은 제 안중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필요할 때 돈이나 부쳐주는 것으로 생각했었지요.
마흔을 넘어서니 부모님이 다시 생각나더군요.
자식은 특히 아들들은 그런가 봐요.
20대, 30대에는 부모에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그냥 놔두세요.
천천히 지켜보면 될 문제를 굳이 간섭해서 마마보이 만드는 엄마들이 많찮아요.
그리 멀지 않은 시간안에 모자간에 마음이 오고가는 좋은 대화를 할 시간이 금방 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땐 너무 늦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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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6.17 13:04:05 *.199.135.236

사실은 나도 그랬을꺼면서, 은연중에 무심한 아이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던 것같네요. 게다가 성격이 똑같아서~~ ^^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을 아이들에게 내리사랑으로 물려준다, 생각해야겠지요. 아이들은 또 부모가 되어보아야 알 꺼구요.

화성, 금성에서 온 것은 남녀뿐이 아니라 부모자식관계에도 성립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자로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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